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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류­정발연 격돌/신민 내분 심화

    ◎잇단 총재 비난에 “해당행위”로 규정/주류측/“권위주의에 젖은 과잉 반응”맞대응/정발연/정발연측의 해명으로 불씨남긴채 진정 23일 하오 국회에서 열린 신민당의 소속의원 당무위원 연석회의는 당내 통합서명파 모임인 정치발전연구회(정발연)소속 이형배의원의 발언파동을 원론적 수준에서 문제삼은뒤 간단히 끝나 당초 예상됐던 주류측과 정발연측의 일대결전은 펼쳐지지 않았다. 이는 최근의 당내분규가 분열위기로까지 인식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감정적인 대립을 벌여 사태를 악화시키는 것은 양자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전교감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날 회의발언에서도 일부 비쳐지긴 했지만 주류측은 정발연이 발족이후 사사건건 당과 김대중총재를 비난하는등 사실상의 해당행위를 하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고 정발연도 주류측이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지나치게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맞대응하고 있어 양자관계는 이미 냉각상태를 지나 정면대결로 치닫는 양상을 보이고있다. 특히 주류측은 이의원의 사과발언에도 불구하고 『책임소재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하는 반면 정발연측은 「최악의 상황」까지를 염두에 두고 집단대응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이의원에 대한 징계문제를 둘러싼 또한차례의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이날 하오2시30분부터 열린 당무위원및 의원연석회의에서는 당초 정발연의 활동문제등 당의 진로문제를 놓고 주류측과 정발연측의 일대격돌이 예상됐으나 주류측의 강도높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이형배의원이 해명성 사과발언을 했고 정발연측 의원들이 맞대응을 자제해 1시간만에 종결. 회의후 주류측의원 30여명은 회의장에 앉아 『이형배의원의 사과만으로 넘어갈 수 없으니 의원총회를 열어 다시 정발연의 입장을 들어보자』며 차제에 정발연의 해체요구 분위기까지 확산시키려했으나 이우정수석최고위원·이용희최고위원등 주류측 최고위원들의 만류로 일단 진정. 회의에서 사회를 맡은 이수석최고위원이 『오늘 회의에 이의원의 당기위 회부문제로 정발련측 의원이 많이 안나온 만큼 당진로문제에 대한 토론이 어렵겠다』며 회의연기의사를 피력했으나 이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요청,신문에 난 자신의 발언내용을 해명함으로써 예정대로 진행. 이의원은 『사실이 아닌 얘기가 사실처럼 보도되어 당과 김대중총재에게 누를 끼쳐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김총재를 모시고 정권교체를 하는 것이 나의 꿈이고 만약 그렇게 되지 않으면 후일 한이 될 것』이라고 김총재에 대한 충성발언을 계속하며 사건의 무마를 희망. ○…회의후 정발연측은 조윤형국회부의장실에 모여 구수회의를 가졌는데 『대의를 위해 이의원이 사과발언을 했고 우리의 목적이 야권통합이니까 이의원의 당기위회부사건은 이것으로 일단락 짓자』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 조부의장은 이날 주류측의 공세에 정발련이 맞대응하지 않은 이유로 『현재 당내 통합추진위가 민주당과 접촉한 결과 통합에서 역할분담·공동대표·경선등 3개안에 서로 의견의 접근이 있었기 때문에 당내 민주화문제는 일단 유보키로 한 것』이라고 설명. ○…신민당의 이같은 내분양상과 관련해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결국 양자가 갈라설지여부로 집약되고 있으나 주류 정발연측 모두가 회피하려는 심정만은 분명해 현단계에서 분가가능성을 점치기에는 섣부르다는 분석. 주류측의 입장에서는 서울 출신이 중심인 정발연측 인사들이 집단탈당할 경우 지역당의 이미지가 더욱 고착화되는 부담이 있고 정발연측도 14대총선을 얼마 안남겨둔 시점에서 탈당후의 신당창당 모색등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류측의 강경파들은 『이의원의 발언파문은 김총재를 음해하기 위한 정발연의 고의적인 반당행위』로 단정,이의원사건을 계기로 정발연의 「백기항복」을 목표로한 대대적인 공세를 펴나가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이를 위해 8월말까지로 예정된 조직개편과 때를 맞춰 정발연소속의원들에게 탈퇴를 권유하고 불복하는 사람들은 지구당위원장직을 박탈한다는 것이 주류강경파들의 복안. 정발연측은 최근의 상황이 주류측의 감정적 과민반응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아래 자체적으로 마련한 야권통합방안을 제시해 공론화시켜 국면전환을 꾀하겠다는 전략. 이형배의원을 포함한 소속지구당위원장들에 대한 제재조치가 있을 경우 모든 지구당위원장들이 사퇴서를 제출하는 등의 방식으로 집단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 “중동 새 불씨” 북한 스커드미사일/미지가 밝힌 충격의 수출실태

    ◎걸프전 끝난뒤도 공급… 재무장 부축/시리아에 1백50기 5억불어치 판매계약/80년이후 이란 30억불,리비아 10억불 수입 걸프전 종전이 5개월여 지난 시점에서 중동국가들이 신형 스커드미사일 등으로 대규모 재무장을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충격을 주고 있다.특히 이들 나라들에 도맡아 무기를 대주는 나라가 바로 북한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더해준다. 미월스트리트저널지는 10일 북한이 걸프전 이후 대량의 개량 스커드미사일을 아랍국가들에 판매해온 사실이 미정보기관과 첩보위성 등을 통해 확인됐으며 이것이 중동평화정착에 큰 위협요인으로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지의 보도에 따르면 북한이 공급하고 있는 미사일은 걸프전때 사용된 스커드미사일보다 성능이 훨씬 우수한 스커드C미사일.종전직후인 지난 3월부터 북한은 시리아와 1백50기의 스커드C미사일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공급가액은 모두 5억달러.시리아는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아랍평화군 창설지원금으로 받은 20억달러중 일부를 여기에 썼다. 이란·리비아는 시리아보다 먼저 북한 스커드미사일을 구입했다.북한의 미사일 판매는 극비리에 이루어지고 있다.북한이 대서방 이미지를 고려해 미사일 판매사실을 숨기려 하고 사우디·시리아 등도 재무장사실이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서방정보기관에서는 이런 사실을 근거로 사우디를 「온건국가」로 분류할수 없다는 판단까지 내려놓고 있다.사우디는 자신들이 지급한 지원금이 북한미사일 구입에 쓰여도 좋다는 사전승인을 시리아측에 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스커드C는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사용한 「알 후세인」스커드B미사일보다 성능면에서 훨씬 앞서는 것으로 밝혀졌다. 시리아는 이밖에도 두차례 더 북한미사일을 들여와 현재 총1백기의 북한미사일을 보유하고 있고 50기 추가구입계약을 이미 마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미국은 아랍국중 화학무기전력이 최강인 시리아가 스커드C미사일을 대량 확보한 사실에 크게 신경을 쓰고 있다.이스라엘 전역이 시리아 화학무기 사정권안에 들기 때문이다. 북한은 1980년대초부터 스커드B미사일 생산을 시작했다.북한스커드B의 최대고객은 이란.이란은 지난 88년초 스커드B 40기를 북한에서 구입,그해 2월부터 4월까지의 이라크 공격때 사용했다.지난해초 이란은 북한스커드B 20기를 추가구입하고 탱크·지대공미사일·대포 등을 잇달아 구입해 북한과의 군사유대를 더 강화했다.지난1월부터 북한스커드C미사일 부품이 이란으로 반입되고 있다는 사실이 미첩보위성을 통해 확인됐다.이란은 이 부품들을 조립해 미사일발사실험을 성공리에 마쳤다. 북한이 이란에 판 무기거래액은 총30억 달러에 이르는데 대금결재는 석유로 하기로 합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무기의 가장 오랜 고객은 리비아이다.지난5년간 스커드B·C를 비롯,10억달러에 달하는 북한무기가 리비아로 넘어갔다. 반면 리비아는 북한의 미사일개발에 최대 비용지원국 역할을 맡고 있다. 북한이 사정거리 6백마일의 최신 중거리 탄두미사일을 개발하는데도 리비아가 비용부담을 맡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스커드D로 불리는 이 미사일은 앞으로 1년이내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특히 이 미사일은 리비아에서도 생산키로 두나라가 합의했음이 확인됐다. 이집트가 스커드C를 생산하는데도 북한이 도와주고 있다고 최근 영국의 BBC방송이 미정보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이집트가 지난해 카이로교외에 스커드C미사일생산시설을 건설하는데 북한기술자들이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이 시설은 이집트·사우디·아부다비·영국이 컨소시엄으로 만든 「아랍­브리티시 다이나믹스」사가 건설을 맡고 있는데 앞으로 8주내지 12주 뒤면 미사일생산에 들어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같이 북한의 미사일판매가 중동평화에 심각한 위협요소를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미행정부는 아직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유일한 반응은 지난 6월4일 국무성대변인이 낸 짤막한 성명서 하나이다.이 성명은 『우리는 미사일확산에 관계된 북한의 활동을 오랫동안 주시해왔다.우리는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통해 우리의 이같은 우려를 분명히 밝히겠다』라고 말했다.하지만 이문제를 다루기 위한 미하원청문회는 2개월 전부터 계획됐음에도 아직 열리지 않고 있다. 걸프전은 따지고 보면 서방이 이라크의 무장을 방치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었다고 할수 있다.이같은 전철이 다시 되풀이되려 하고 있는 것이다.예를들어 시리아는 북한스커드C 구입외에 소련과도 20억달러의 무기구매계약을 추진하고 있다. 미정보기관들이 내린 결론은 걸프전의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서방은 지금부터라도 중동의 무기거래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 한진중 노조위원장 박창수씨 장례치러

    【부산=장일찬기자】 「한진중공업 박창수노조위원장 장례위원회」(위원장 백기완)는 30일 하오7시쯤 학생·근로자등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에서 박씨의 발인및 영결식을 갖고 시청앞에서 노제를 치른뒤 이날밤 늦게 부산역을 출발,사체를 장지인 경남 양산에 안장했다.
  • 김양장례 충돌없이 치러/장 총장 중재로 파고다공원 앞서 노제

    ◎성대서 영결식… 평화행진 뒤 모란공원 안장 김귀정양의 장례가 김양이 숨진 지 19일 만인 12일 모교인 성균관대에서 무사히 치러졌다. 김양의 유해는 이날 하오 1시쯤 학교를 출발,파고다공원 등에서 노제를 치르고 밤늦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묘지에 안장됐다. 이날 장례행사는 큰 탈 없이 치러졌으나 일부 재야인사와 운동권 학생 등은 노제가 끝난 뒤 도심 곳곳에서 산발적인 시위를 벌였다. 「김양대책위원회」는 이날 상오 9시30분쯤 성균관대 학생회관 1층 로비에서 발인식을 가진 데 이어 상오 10시30분쯤 본관 앞 광장에서 옮겨 영결식을 가졌다. 영결식에는 김양의 어머니 김종분씨 등 유족과 계훈제 백기완 지선 스님 등 재야인사 학생·시민 등 5천여 명이 참석했다. 하오 1시쯤 영결식이 끝나자 선도차와 방송차 영정 만장 등은 학교 정문으로,김양의 유해는 11일 교내로 들어갔던 옆문으로 나왔다. 학교를 나온 운구행렬은 1만여 명으로 불어나 혜화동 네거리∼대학로∼종로5가와 4가를 거쳐 파고다공원으로 가려다 경찰이 종로3가 네거리에서막자 30여 분 동안 머물렀다. 이에 운구행렬은 선두에 섰던 장을병 총장이 현장을 지휘하던 김원환 서울시경국장에게 「평화행진」을 약속,파고다공원 앞으로 가 노제를 지냈다. 이들은 이어 하오 9시15분쯤 대한극장 앞에 도착해 약 1시간30분 동안 노제를 지낸 뒤 하오 10시15분쯤 김양 모교인 무학여고에 들러 운동장에서 다시 한 번 노제를 갖고 청량리∼망우리∼경춘가도 등을 거쳐 경기 마석 모란공원에 도착,이날 새벽 김양의 시신을 안장했다. 한편 김양의 노제에 참석했던 「서총련」 서부지구 소속 연세대·서강대생 등 1천여 명은 이날 하오 7시10분쯤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고가 입구에서 경찰에 돌을 던지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인 뒤 신촌로터리까지 진출,돌과 화염병 시위를 계속하다 2시간여 만에 해산했다.
  • 시신 얼어 4시간30분 걸려/14일만의 김양 부검…백병원 주변표정

    ◎바리케이드 철거에 “이제 편히 잠자겠다”/검찰팀 도착하자 「사수대원」들 비난구호 ○…7일 오전 11시40분쯤에 시작된 부검은 2시간쯤 걸리리라는 당초의 예상과는 달리 오후 4시10분까지 끌어 영안실 밖에서 결과를 기다리던 보도진·시민 사이에서는 『사인이 확실히 나오지 않는 것 아니냐』는 추측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부검이 늦어진 이유는 김양의 시체가 열흘 이상 냉동실에 보관돼 있던 관계로 얼어 있어 이를 녹여가면서 부검을 진행해야 했던 때문이라는 것. ○…임채진 검사·이정빈 서울대 의대교수 등 검찰부검팀 7명과 수사요원 등 20여 명은 이날 상오 10시40분쯤 승용차와 중형승합차에 나눠타고 백병원 현관에 도착했는데 이들이 차에서 내리는 순간 백병원 현관은 몰려든 취재진과 이를 저지하는 사수대 학생 30여 명이 뒤엉켜 아수라장. 학생사수대는 스크럼을 짠 채 임 검사 등 검찰관계자 7명을 먼저 통과시켰으나 뒤따르던 경찰관계자들의 출입은 제지. 한편 학생들은 임 검사 등이 엘레베이터를 타는 동안 『귀정이를 살려내라』는 등의 구호를 외치기도. ○…부검이 진행되자 병원영안실 주변에는 학생·시민 50여 명이 늘어서 부검결과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으며 학생들은 반정부 구호를 외치기도. 직장인들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영안실 주변으로 몰려들어 사수대 소속 학생과 취재진들에게 『부검에 들어갔느냐』며 관심을 표명. ○…병원을 사수하기 위해 학생들이 설치해놓은 바리케이드·모래주머니 등으로 긴장감이 감돌던 백병원 주변은 7일 김양의 부검이 실시되자 예전처럼 차량과 통행인이 오가는 등 차츰 정상을 되찾고 있다. 그 동안 경찰의 투입에 대비,병원 주변을 지키고 있던 1백여 명의 학생들은 이날 병원 양쪽 진입로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병원앞 도로에 널려진 쓰레기를 불태우기도. ○…김양의 사체가 이 병원으로 실려온 뒤 줄곧 최루탄 냄새와 학생들의 구호소리로 고통을 겪던 환자들도 김양의 부검이 실시된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의 한숨.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고 입원가료중인 이 병원 302호실 전연수씨(49)는 『그 동안 환자들과 보호자들이입은 정신적·육체적·물질적 피해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면서 『부검문제가 원만히 해결된 것과 마찬가지로 장례식도 아무런 충돌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부검이 진행되는 동안 백기완씨 등 「대책위」 관계자들은 영안실 바닥에 앉아 침통한 표정. 윤태일 「대책위」 부대변인은 『검찰이 우리가 요구했던 「선 수사 후 부검」을 들어주지 않은 상태에서 부검을 실시하게 돼 좋지 않은 분위기인 것은 당연하다』면서 『이번 부검에 의해 직접사인이 정확히 규명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측도 이날 부검집행을 위해 35개 중대 4천5백여 명의 병력을 투입,백병원 주위를 포위,학생들의 출입을 통제했으나 합의부검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병력을 제외하고 부검집행을 위해 투입된 대부분 병력을 현장에서 철수. ○…경찰과 학생들 사이에 자칫 유혈충돌도 일어날 수 있었을 김귀정양 부검문제로 인한 위기국면이 6일 밤 유족들의 부검동의로 극적인 반전을 이뤘으나 그 배경에는 비록 극적이지는 않더라도 꾸준히 경찰과 대책위 양측을 오가며 평화적 해결을 적극 모색한 숨은 중재자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져 관심. 경찰 관계자는 「합의부검」이 최종 결정된 뒤 김양의 사망 이후부터 검찰투입 직전까지의 비화를 털어놓는 자리에서 『아직 상황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단계이기 때문에 신원을 공개할 수 없으나 명동성당 관계자가 무던히 애를 쓴 덕분에 이번 합의부검이 가능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며 그에게 고마움을 표시.
  • 외언내언

    동구사회주의국가들이 차례로 붕괴되고 북한도 국제적인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엔가입의 백기」를 들 수밖에 없는 이 마당에 김일성 주체사상을 미화,찬양하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을 부르짖는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준동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자유민주주의체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폭력혁명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이 이 땅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최근의 시위현장에서는 이들이 뿌려대는 볼온유인물이 난무하고 있다. 극소수 좌경극렬분자들의 소행이지만 숫자의 적고 많음이 문제가 아니라 시대를 역행하고 우리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으려는 불순세력은 깡그리 잡아내야 한다. ◆어둠의 세력은 햇빛 밝은 데서는 기를 펴지 못한다. 박쥐처럼 컴컴한 구석을 찾아다닌다. 우리 사회에 기생하고 있는 불순세력도 그 동안 지하에서 암약해왔는데 시국이 다소 혼란해진 틈을 노려 어느 새 지상으로 올라와 활개를 치고 있다. 사노맹이 그 본보기.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란 이름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반국가단체이다. 대학가의 「주사파」란 것도 비슷한 성격. ◆이 단체들이 부르짖는 구호와 유인물의 내용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지고 있다. 「노동자·농민·학생들이 통일전선을 구축,폭력혁명을 통한 정권탈취와 미국타도」를 외치고 있는가 하면 「91년을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분기점으로,92년의 격변기를 혁명투쟁의 시발점」으로 정해놓고 있다. 또 김일성을 「민족의 태양」 「불세출의 영도자」 「불멸의 지도자」로 찬양하고 있다. 북한의 「남조선 해방전략」과 한치도 어긋남이 없는 섬뜩한 울부짖음.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지 성당과 병원이 반정부투쟁을 벌이고 있는 재야세력들의 성역(?)이 되고 있다. 지금도 서울의 명동성당과 백병원이 이들의 불법적인 강점 아래 놓여 있다. 우리는 이른바 「국민대책회의」를 좌경세력으로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강점하고 있는 성역들이 폭력혁명과 체제타도를 부르짖는 불순좌경세력의 온상지가 되고 있음을 알고나 있는지 묻고 싶다. 성당은 교인에게,병원은 환자에게돌려주어야 한다.
  • 5백여명 가두행진

    「범국민대책회의」는 26일 하오 6시 서울 중구 명동성당에서 문익환 목사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와 학생 등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김귀정양 사망을 규탄하는 집회를 갖고 김양의 시신이 안치된 백병원까지 가두행진을 벌였다.
  • 남북예멘 통일 1년의 교훈/정영태 민족통일연 책임연구원(특별기고)

    ◎「흡수통합」 아닌 「균등통합」 배울만/물가등 경제불안에도 정치적 갈등은 적은 셈 남북 예멘정부는 10여 년에 걸친 군사·정치적 대치에도 불구하고 평화적인 협상수단을 통하여 분단상황을 극복하고 90년 5월22일 통합선포라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것은 순전히 양국 정상간의 정치적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완전한 정치적 통합은 통합선포 후 30개월이라는 과도기를 두고 이루어질 것이지만 통합선포 후 1주년이 지난 현재 남북예멘의 분위기는 대부분의 예멘인들이 이러한 통일과정을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정치적으로는 과도기적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민간차원의 생활은 이미 남북이 완전히 하나가 되어있는 듯하다. 예멘 일반 국민들은 이제까지 정치적으로 강요되어 왔던 남북의 물리적 제한의 제 장애물들이 제거됨으로써 느끼게 되는 홀가분한 감정으로 통일선포 이전과 별 다름 없이 평소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제로섬 아닌 통일방식 통합정부는 현재 상존하는 예멘의 제 이질적 요소들을 제도적으로 통합 흡수함으로써 불안정의 소지를 제거하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다당제 도입준비가 바로 그것이다. 예멘 통합정부 자체가 현존 정당들의 성장 뿐만 아니라 새로운 정당들의 창설까지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그 결과 현재 약 50여 개의 정당이 난립하고 있다. 그 중에서 북예멘과 남예멘의 유일정당이었던 「일반 인민회의」와 「예멘 사회주의당」은 총선과 함께 신정부가 수립될 1992년을 대비하여 아덴과 사나에 지부 및 본부를 각각 새로이 설치하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정치권내의 갈등은 아직까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것은 통일협상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대부분의 자리가 남북에 대등하고 평등한 차원에서 분배되었기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독일의 통일과는 달리 남북예멘의 주요 관리들은 거의 한 사람도 배제되지 않고 모두 신정부에 흡수되었다. 다만 그 후유증으로 지나치게 비대해진 행정조직에 있어서 업무의 효율성과 업무교류상 소통의 어려움 등이 새로운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5월22일남북예멘 통합선포 후 지금까지 실질적인 통합작업의 진척은 매우 지지부진한 상태에 놓여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남북통화의 조절을 위해서 북예멘의 리얄과 남예멘의 디나르화를 20 대 1의 비율로 교환가능케 하였으며,남예멘의 임금수준을 북예멘 수준으로 상승시켜 놓았다. 그리고 남예멘의 토지 및 기업의 사유화 추진에 있어서는 매우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우선 외국인 소유토지나 대지주의 토지는 계속 국유화하면서 단지 소규모의 토지사유화를 점차적으로 허용해나가고 있다. 국방 측면에 있어서,먼저 남북예멘의 지휘체계가 통합되었다. 예멘 국방장관 자문위원인 모하메드 가넴 장군은 『군사계급의 분배가 남·북의 지역적 차별개념을 떠나서 어느 정도 능력과 경험 그리고 다른 요소들이 공정하게 반영되어 적합한 인물이 적절한 자리에 임명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면서,국방통합에 따른 남·북 요소들간의 큰 갈등은 없다고 말했다. 통합선포 이후 통일예멘군의 군복이라든가 무기 등은 이전과 전혀 변화없이 남북 양측 고유의 것이 각각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공항 혹은 관공서를 수비하고 있는 예멘군인들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남북예멘 각각의 고유의 복장과 무기를 그대로 간직한 채 나란히 근무에 임하고 있다. 이밖에도 통일예멘 신정부는 전신·전화·물·전기관련 부문의 통합을 위한 준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예멘통일 후 가장 심각하고 민감한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요소는 바로 물가앙등이다. 이러한 급격한 물가앙등은 통일작업에 크게 기인한 면도 있지만 실제로 잠재적,가시적으로 누적되어 온 예멘의 경제적 저발전의 연속현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통합 반대주의자들은 이 모든 경제적 궁핍이 통일의 여파라는 점을 크게 부각시킴으로써 통일 신정부의 입지를 크게 흔들고 있다. 남북예멘의 통일경험이 우리의 남북한관계의 개선에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남북한이 6·25전쟁을 치르는 등 상호불신이 심화되어 온 것과 마찬가지로 남북예멘도 2차례 이상의 국경충돌을 겪음으로써 상호불신의 벽은 매우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남북예멘 위정자들의 예멘통합 노력은 끊임없이 지속되어 왔다. 남북예멘의 대화가 대부분 정상회담 방식으로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은 우리가 크게 관심을 가져야 할 사항이다. 동일한 역사와 언어를 공유하고 단일민족성에 의한 높은 통일의지가 상존하고 있는 남북한이나 남북예멘의 경우 통일의 결정적 요소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결단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정치적 결단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정상회담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예멘은 수차례에 걸친 정상회담을 통해서 상호간의 불신을 해소시키고자 노력했으며 결국은 균등주의의 원칙에 입각한 권력분배 방식으로 과도 통일정부를 수립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비록 남예멘측 정권이 사회주의 정치의 실패를 인정하는 백기를 들었으나 북예멘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하는 방식의 통일을 생각하지 않고 서로의 대등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서로가 패배의식을 갖지 않도록 하는 통일방식을 도출해 낸 것이다. 그 결과 통합 후의 여러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예멘인들은 그들의 통합을 수호하는데매우 적극적이다. ○권력 균등분배 주목을 남북한의 경우에 있어서도 정치적 차원에 있어서의 통합의지와 결단이 가장 중요한 요소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있어서의 급선무는 예멘과 같이 정상회담을 통한 통합논의를 하루빨리 시작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통합논의 과정에서는 상호의 패배감을 부추기지 않는 형태의 통일구상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흡수통일 방식의 전형인 독일통일 과정에만 지나친 관심을 표하는 것은 우리의 통일협상 진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남북통일협상의 분위기마저 냉각시킬 수 있는 소지가 될지도 모른다.
  • 한밤까지 도심서 격렬시위/강군장례·국민대회등 전국서 20여만 참여

    ◎「노제공방」 5시간… 곳곳서 충돌/3백여명 명동성당서 철야농성/파출소등 잇단 피습… 학생·경찰 부상 속출 5월 셋째 주말은 온통 집회와 시위로 얼룩졌다. 광주민주화운동 11주년이자 강경대군의 장례가 치러진 18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는 시위군중과 경찰의 충돌로 돌과 화염병,최루탄이 난무하는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재야인사들이 주축이 된 이른바 「범국민대책회의」가 주도한 이날 시위로 서울 신촌 지역과 광주 금남로 등 도심지 상가는 거의 철시를 했으며 곳곳에서 극심한 교통체증이 빚어졌다. ▷강군 장례식◁ 「대책회의」측은 이날 상오 10시30분 세브란스병원에서 강군의 가족을 비롯,백기완씨·문익환 목사 등 재야인사와 이우재 신민당 최고위원 등 1백여 명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인제를 가졌다. 발인제를 마친 운구행렬은 「서총련」 소속 대학생 1천5백여 명의 경호를 받으며 상오 11시 영안실을 떠나 낮 12시 신촌로터리에 도착한 뒤 서울역에서 「노제」를 지내기 위해 이화여대 앞과 아현고가 차도를 거쳐 서울역으로 가려다 경찰이저지하자 하오 5시까지 밀고 당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대책회의」측은 경찰의 설득을 받아들여 결국 이날 하오 6시30분쯤 마포구 공덕동 로터리에서 2시간 동안 「노제」를 지냈다.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를 떠난 운구행렬은 용마루∼삼각지∼용산역∼제1한강교∼중앙대∼국립묘지∼고속버스터미널 앞을 거쳐 강군의 모교인 휘문고교에 잠시 들렀다가 하오 10시10분쯤 경부고속도로로 들어섰다. 운구행렬은 3백17㎞의 호남고속도로를 시속 80여 ㎞로 달려 19일 상오 3시쯤 광주시 북구 동운동 서광주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장의차를 앞세운 운구행렬은 이어 이날 전남도청 앞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가지로 진출하려다가 경찰 20여 개 중대 3천여 명이 저지하자 전날 밤 금남로에서 「국민대회」를 마친 학생 1천여 명과 합세,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운구행렬은 경찰의 원천봉쇄로 전남도청 앞 진출이 무산되자 이날 새벽 동광주인터체인지∼광주교도소를 거쳐 망월동 5·18묘역에 도착,강군의 시신을 안장했다. ▷가두시위◁ 서울에서는 이날 하오재야단체 회원 및 학생 등 4만여 명이 회현동 네거리에서 퇴계로2가 및 신세계백화점·남산3호터널 앞 등의 차도와 아현고가도로 등지를 점거하고 경찰과 맞서 화염병 수천개와 돌 등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이날 하오 1시40분쯤 시위학생 20여 명은 신촌로터리 부근인 마포구 노고산동 치안본부 분실에 몰려가 화염병 20여 개를 던져 수위실을 전소시키고 마당에 있던 승용차 2대를 불태웠다. 하오 2시40분쯤부터는 5천여 명의 시위대가 을지로 2·3가 6차선 차도를 점거해 시위를 벌일 것을 비롯,종로 2·3·4가,퇴계로 2가,을지로 6가 등지로 5백∼5천여 명씩 옮겨다니며 경찰과 쫓고 쫓기는 공방전을 벌였다. 이날 하오 4시10분쯤 시위대중 1천여 명은 퇴계로 2가 파출소 앞에 세워둔 경찰보급용 트럭을 탈취해 최루탄 4상자 등을 빼앗은 뒤 1시간쯤 끌고다니다 신세계백화점 앞에서 불태웠다. 이들은 또 하오 8시5분쯤 퇴계로2가 파출소로 몰려가 쇠파이프 등으로 현관셔터문을 부순 뒤 화염병을 던져 내부를 불태웠으며 안에 있던직원 6명은 대피해 인명피해는 없었다. 신촌로터리 일대에 집결해 있던 3만여 명은 하오 8시20분쯤 공덕동 로터리에서 운구행렬이 광주를 향해 떠난 뒤부터 장소를 옮겨 퇴계로의 시위대와 함께 합세,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들 가운데 5천여 명은 하오 10시쯤 명동성당으로 집결해 규탄집회를 가진 뒤 대부분 해산했으며 나머지 5백여 명은 철야농성을 벌였다. ▷국민대회◁ 강군의 장례식과는 별도로 하오 4시에 갖기로 했던 서울 시청앞 등 주요도시 도심지에서의 「국민대회」는 경찰의 봉쇄로 대부분 무산됐다. 「국민대회」가 무산되자 서울·광주 등 전국 44개 시·군에서 20만명이 넘는 인파가 가두시위 등을 벌였다. 이에 앞서 서울대·부산대·전남대·조선대 등 전국 32개 대학생 1만여 명은 이날 학교별로 출정식을 가진 뒤 「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도심지로 나가 밤늦게까지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부산=장일찬 기자】 부산지역 학생,근로자,재야인사 등 8천여 명은 18일 하오 3시 부산시 중구 남포동 부영극장 앞에서 개최키로 했던 「광주민중항쟁 계승 및 민자당 해체,현정권 퇴진을 위한 부산시민대회」가 경찰의 원천봉쇄로 무산되자 중구 대청동 국제시장과 카톨릭센터 일대에서 화염병과 돌을 던지며 밤늦게까지 격렬한 가두시위를 벌였다.
  • 내주 가시화될 노 대통령의 복안 예진

    ◎“시국수습 종합처방”… 청와대가 나섰다/각계 의견 수렴 뒤 내각개편 단안/야권 입지 살리되 체제부정은 엄단/5·18상황 주시… 국면 악화땐 미룰듯 노태우 대통령이 시국수습에 나섰다. 노 대통령은 지금 자신이 구상하고 있는 수습복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매우 신중하게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16일 하오 노재봉 국무총리와 단독면담을 가진 데 이어 17일에는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과 회동할 예정이다. 또 17일 낮에는 학계 법조계 언론계 여성계 등 각계 원로들과,18일 낮에는 이철승 이민우 유치송 이만섭씨 등 전직 야당 당수들을 초청,시국수습을 위한 의견을 청취한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노 총리 김 대표 원로 전직 야당 총재 등과의 잇단 회동은 그 동안 사태 진전상황을 면밀히 지켜봐오던 대통령 자신이 구체적인 행동을 보이기 앞서 최소한의 기본 수순을 밟아놓겠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노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복안을 섣불리 예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청와대 참모들이 현시국을 보는 인식과 이에 따른 「해법」의 기본방향을 유추해서 생각은 할 수 있다. 우선 당면 시국수습에 대한 기본처방의 방향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극렬세력과 제도권 야당의 분리전략을 구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폭력시위에 대해서만 아니라 현정부에 대해서도 냉담한 중산층의 민심을 위무하는 것이다. 극렬세력과 야당의 분리처방에는 ▲노 총리 퇴진을 포함한 내각개편 ▲보안법 개정에 따른 후속조치 ▲향후 정치일정에 대한 보다 명확한 입장 천명이 포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강군 사망사건으로 촉발된 현시국이 계속 증폭되고 난마처럼 얽혀온 것은 극렬세력의 체제전복 기도와 야당의 정략적인 현정권 무력화 추구가 혼재하여 강군사건을 연결고리로 하여 단단히 묶여 있기 때문으로 파악한 데서 이같은 진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신민당 등 야당에 대해서는 「탈출」의 명분을 주고 극렬세력 가운데 민중혁명정부 수립 등을 기도하는 핵심에 대해서는 엄단하는 등의 양면전략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총리의 퇴진문제에 대해 청와대 당국은 외견상 「불가」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표현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시간 현재 총리의 경질은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손주환 정무수석)는 것이다. 특히 15일 민자당 당무회의가 공개적으로 총리 퇴진을 제기한 이후에는 「시기선택 문제만 남았다」는 분위기가 청와대 주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일련의 수순을 밟고 있는 배경 가운데는 임명권자로서 노 총리의 경질이 폭력시위대에 백기를 드는 것으로 국민이 눈에 비쳐서는 안 되겠다는 고려와 함께 앞으로 남은 1년반 임기의 통치에 훼손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안 되겠다는 점이 깔려 있다. 보안법 개정의 후속조치는 내주초 석탄일 특사형식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이며 임수경양이나 문규현 신부에 대한 감형조치는 좌경세력의 엄단방식에 비추어 취해지지 않을 것 같다. 정치일정에 관해서는 『국민이 원하지 않는 개헌은 고려하지 않는다』는 원칙론 천명으로 내각제개헌 의사가 없음을 시사하고 6월 광역선거의 일정공표를 통해시위정국을 선거정국으로 전환시켜나갈 것으로 관측된다. 민심위무 처방으로는 경제사회 전반에 관한 꾸준한 개혁추진 의지를 밝히고 집값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대안들이 제시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부의 편중방지,분배정의의 실현,교육환경 개선,공직기강 확립 등을 위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표명도 수반될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수습복안이 언제,어떻게 공표될지는 5·18 시위상황과 여론의 향배 등에 따라 상당한 변수가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시국상황이 5·18시위를 고비로 일단 소강상태로 접어들 경우 노 대통령은 내주초부터 발빠른 수습행보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5·18을 계기로 다시 악화될 경우 상당기간 유보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수습복안의 구체화는 노 총리 경질→담화 발표의 수순을 따라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 분신자살 천군 장례식/마석모란공원 안장

    지난 3일 분신자살한 경원대학생 천세용군(20)의 장례식이 9일 상오 11시30분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경원대 운동장에서 유가족과 백기완씨 등 재야인사·학생·시민 등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천군의 유해는 장례식을 마친 뒤 학교에서 3㎞쯤 떨어진 성남시청 앞 광장에서 노제를 지내고 이날 밤 경기도 남양주군 마석 모란공원 묘지에 안장했다. 이에 앞서 대책위는 이날 상오 7시20분쯤 성남시 성남병원 영안실에서 발인식을 갖고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서울 중구 정동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으로 옮겨져 김재열 주임신부의 집전으로 1시간 동안 영결미사를 가졌다.
  • 「치사규탄」시위 소강상태로/어제

    ◎전국서 1만여명 참가… 광주선 평화행진/재야인사·신부 3백여 명 농성·단식 지난 1일 전국적으로 5만명까지의 인파를 보였던 강경대군 상해치사사건 규탄집회 및 시위가 2일에는 서울지역 대학생 2천여 명과 지방대생 1만여 명으로 줄어들어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노동계·종교계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재야단체들이 시국성명 및 항의농성에 들어가고 운동권 학생들이 앞으로도 계속 대규모집회를 계획하고 있어 당분간 시위가 그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날 가장 많은 군중이 모였던 연세대에서는 그 동안 농성을 계속해 온 학생 등을 제외하고는 연합집회가 열리지 않았으나 문익환·계훈제·백기완씨 등 재야 원로인사와 대책회의 소속 51개단체 대표 등 1백여 명은 상오 9시 이 학교 학생회관에서 강군 사건과 관련,안응모 전 내무부 장관의 구속과 노재봉 내각의 총사퇴를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또 「민교협」 서울지회 소속 교수 30여 명도 하오 10시부터 학생회관 4층에서 현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으며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35명도 하오 11시50분 농성에 합류했다. 한편 명지대·감리교 신학대·장로회 신학대 등 3개대생 1천여 명은 6일째 강군 치사사건을 규탄하는 교내시위를 벌였으며 명지대생 60여 명은 하오 3시30분쯤 서울 서대문구 미금동 치안본부 앞에서 치안본부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다 현장에서 연행돼 1시간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또 「범국민대책회의」는 서울과 부산 등 전국에서 이번 사건을 폭로·규탄하는 대규모 가두선전전을 벌였다. 지방에서는 부산대·동아대 등 부산지역 4개대생 3천여 명과 광주 전남대생과 시민 2천여 명이 소속대학에서 집회를 가진 뒤 일부는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으며 경북대·영남대·강원대·강릉대·한남대생들도 강군사건 규탄집회 및 시위를 벌였다. 전남대 학생들은 이날 하오 5시40분쯤 광주시 동구 서석동 광주공고운동장에 모여 2백m 떨어진 전남대병원 앞까지 평화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한편 부산대 등 부산·경남지역 4개대 교수 1백50여 명이 이날부터 4일까지 시한부농성에 들어갔으며 「광주 전남지역 교수협의회」 소속 교수 4백50여 명은 「제자들의 죽음과 분신에 즈음한 우리들의 입장」이라는 성명을 냈다. 또 천주교 안동교구청 사제단(대표 조창래 신부·40) 소속 신부 25명은 이날 하오 1시부터 안동시 목성동 목성 성당에서 폭력살인규탄 및 노 정권 퇴진을 위한 무기한 단식기도에 들어갔다.
  • 대책회의 구성키로

    「전민련」 「전노협」 「전농」 등 17개 재야단체와 문익환 목사·백기완씨 등 재야인사,신민·민주·민중당 등 3개 정당관계자 40여 명은 27일 상오 11시30분부터 연세대 학생회관 3층에 마련된 강경대군 폭행치사규명 비상대책상황실에서 회의를 갖고 범국민적인 대정부투쟁을 벌여나가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인사들은 오는 29일 하오 5시 연세대에서 범국민규탄대회를 갖는 것을 시작으로 전국적인 규탄집회를 갖기로 의견을 모으고 빠른 시일 안에 국민연합 업종별 노조회의,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등 재야단체와 신민당 등 3개 야당이 참여하는 범국민대책회의를 구성하기로 했다.
  • 백기완씨 출국금지

    법무부는 20일 「전노협」 고문 백기완씨에 대해 지난 12일부터 오는 10월11일까지 출국금지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법무부관계자는 서울시경 대공2과가 지난 89년 「범민족대회」와 관련,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백씨를 수사하기 위해 출국금지요청을 해왔으며 지난 15일 이 사실을 백씨에게 통고했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이름을 둘러싼 웃지 못할 사건들은 적지 않다. 그중에서도 많은 것이 동명이인의 경우. 같은 이름의 사람이 파렴치한으로 걸려들어 놀림감이 되기도 하고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친지들을 놀라게도 한다. ◆한자가 어려워 잘못 읽히기도 하는 이름. 변사사건의 조선대 이철규군의 경우 그래서 신원조회에 실패한다. 처음에 「이철계」로 했다가 안 되자 다시 「이철발」로 했으니 조회가 제대로 될 턱이 없었다. 그런가 하면 글자 뜻은 좋아도 읽을 때의 음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작년에 대법원의 개명허가를 받은 사람들의 이름 가운데 있는 다음과 같은 사례들이 그것이다. ­조지나·지기미·경운기·서동개·한시만·김치국… 등등. ◆이번에는 또 다른 유형의 이름 사건이 알려진다. 대구 동구의회 의장선거에서의 권영환 의원의 경우가 그것. 3차 투표까지 간 끝에 백기권 의원과 함께 13표씩 얻어 의회 규칙에 따라 나이 많은 백씨가 당선된다. 한데,문제는 「권녕환」으로 적은 표를 무효로 처리했다는 데 있다. 「영」을 「녕」으로 잘못 쓴 것인데 그래도그것이 유효하다면 물론 의장 자리는 권씨의 것. 권씨는 법정투쟁의 뜻을 비춘다. ◆맞춤법상으로야 「영」이 옳다. 그 맞춤법으로도 「녕」자는 재미있는 측면을 지닌다. 「안녕」의 「녕」이나 「영일」의 「영」이 아닌 「령」이 되는 경우. 의령·회령 등 속음을 허용하는 경우이다. 그래서 「효영대군」은 「효령대군」,문화부 장관 이어영씨도 「이어령」이 된다. 「권영환」을 「권녕환」으로 쓴 경우,맞춤법으로야 틀렸다해도 「권영환」을 가리킨 「뜻」만은 분명한 것 아닌가 싶다. ◆특급투수 선동렬은 「선동열」이라 쓴 유니폼을 입고 뛴다. 그래선지 「선동렬」이란 바른 표기를 외면한 채 「선동열」로 활자화하는 지면도 있다. 고유명사 존중의 뜻은 이해할 만하지만 그것은 권영환씨가 「권녕환」으로 쓰면 그를 인정하자는 논리. 「잘못된 것」과 「허용 약속」(유­류)은 구별해야 하는 것 아닐지.
  • 기초의회의원 당선자 명단(대구)

    ○중구 ▲동인1·2가동 박영재(55·회사대표) ▲동인3가동 김수경(52·약국대표) ▲동인4가동 김기려(38·신협이사장) ▲삼덕1·2가동 최준고(50·빌딩대표) ▲삼덕3가동 김상수(54·상업) ▲봉산동 조성우(55·금고상무) ▲동성동 채종필(60·금고이사장) ▲서성동 강현중(56·회사대표) ▲남성동 진재희(49·상업) ▲북성동 류근두(55·상업) ▲달성동 신현식(52·상업) ▲대신1동 진철수(40·상업) ▲대신2동 손진리(61·금고이사장) ▲남산1동 이훈(48·회사대표) ▲남산2동 박영보(54·한양업) ▲남산3동 김익근(51·회사대표) ▲남산4동 이기봉(57·약국) ▲대봉1동 김원기(52·주유소대표) ▲대봉2동 도기석(51·출판사지사) ○동구 ▲신암1동 이정호(39·상업) 이상도(51·상업) ▲신암2동 한해룡(38·상업) ▲신암3동 권영환(57) ▲신암4동 백기권(59·상업) 이재홍(45·상업) ▲신암5동 김문길(49·상업) ▲신천1동 권오현(51·공업) ▲신천2동 천성조(48·상업) ▲신천3동 박만권(44·상업) ▲신천4동 남영욱(56·운송업) ▲효목1동 조규학(52·상업) 서병길(53·상업) ▲효목2동 임창성(48·상업) 정성권(40·상업) ▲평광동 우희식(48·과수업) ▲불로봉무동 남종환(54·상업) ▲도동 손영수(48·사업) ▲지저동 박윤희(51·상업) ▲입석동 박상수(49·공업) ▲검사동 전춘식(51·사업) ▲방촌동 전영청(46·사업) 장재표(63·사업) ▲둔산부동 이태호(56·농업) ▲신평동 박완희(57·사업) ▲안심1동 강위태(49·상업) 정수만(45·건설업) ▲안심2동 배영수(56·계량증명업) ▲안심3동 김상규(57·농업) ▲안심4동 이종보(47·상업) ▲공산1동 나재수(59·공업) ▲공산2동 박종원(45·상업) ○서구 ▲내당1동 이태영(51·중기업) 윤상수(43·조합이사장) ▲내당2동 채상준(51·금고감사) ▲내당3동 김기숙(51·사업) ▲내당4동 김도석(56·건설업) 강주현(49·세차장) ▲비산4동 김판암(51·상업) ▲평리2동 이신조(49·상업) ▲평리4동 홍태환(50·상업) 허희도(44·건설업) ▲평리5동 강석열(44·회사 대표) 정하택(52·부동산업) ▲상이동 백화근(61·상업) ▲중리동 한명현(44·회사대표) 신봉식(56·금고이사장)▲비산1동 장태윤(48·사업) 김준우(62·약국대표) ▲비산2동 강신하(54·사업) ▲비산3동 홍달식(51·금고이사장) ▲비산5동 윤진(44·사업) ▲비산6동 이대철(42·사업) ▲비산7동 박성학(59·사업) 배우환(39·상업) ▲평리1동 배상두(57·사업) 강황(46·사업) ▲평리3동 최범준(49·사업) 김만석(52·사업) ▲원대1·2가동 신수경(66·사업) ▲원대3가동 심재춘(51·사업) ○남구 ▲이천1동 박종대(41·회사대표) ▲이천2동 하원호(62·회사대표) ▲봉덕1동 이정훈(42·상업) ▲봉덕2동 김상태(57·운수업) 정휘진(55·운수업) ▲봉덕3동 최일오(47·건설업) 양병화(54·회사대표) ▲대명1동 최동일(44·회사대표) ▲대명2동 이길웅(49·금고이사장) ▲대명3동 신상도(58·회사대표) ▲대명4동 백종교(41·약사) 이현규(44·제조업) ▲대명5동 김철환(58·회사대표) ▲대명6동 민태술(51·농업) ▲대명7동 조순제(55·직물업) ▲대명8동 이실근(60·회사대표) ▲대명9동 김대성(61·축산업) 김재철(43·회사대표) ▲대명10동 정응규(46·건설업) ▲대명11동 안용수(47·서비스업) ○북구 ▲고성동 김진술(52·회사대표) ▲칠성1가동 장경훈(46·상업) ▲칠성2가1동 박익기(50·회사대표) ▲칠성2가2동 이경남(58·금고이사장) ▲침산1동 신국근(52·공업) ▲침산2동 김창순(50·공업) ▲침산3동 진병룡(68·공업) ▲노원1·2가동 전무룡(52·공업) ▲노원3가1동 김창호(49·농장경영) ▲노원3가2동 이종열(58·공업) ▲산격1동 김상택(52·회사대표) 신양휴(62) ▲산격2동 김해룡(42·공업) ▲산격3동 김종업(55·사업) 김태달(41·회사이사) ▲복현1동 여오동(52·상업) ▲복현2동 김수욱(47·건축업) 여원기(46·회사원) ▲대현1동 박동소(63·상업) ▲대현2동 김규배(53·상업) ▲대현3동 박윤도(56·협동조합) ▲검단동 이석중(38·회사대표) ▲무태동 이재창(48·농장경영) ▲조야동 김규윤(41·사업) ▲노곡동 김재종(60·농업) ▲칠곡1동 이종림(50·한의사) ▲칠곡2동 황해봉(58·농업) ▲칠곡3동 민병호(46·상업) ○수성구 ▲범어1동 권영환(48) 박용하(55·회사대표) ▲범어2동 구일회(56·대서업) ▲범어3동 김영대(51) ▲범어4동 이관식(52·약국경영) 이정식(53·정비업) ▲만촌1동 최규해(53·사업) 이기웅(49·상업) ▲만촌2동 정영식(51·금고이사장) 김정식(43·국악협회) ▲수성1가 정태재(63·관광운수업) 전진근(60·상업) ▲수성2·3가 김진욱(51·사업) ▲수성4가 김진호(51·양곡상) ▲황금동 윤혁주(56·사업) 이부연(여·52·호텔이사) ▲중동 이장기(53·회사대표) 손정길(38·제조업) ▲상동 손방남(50) 박광헌(43·건축업) 김정광(47·체육관경영) ▲파동 박달식(54·회사대표) 김용희(52·제조업) ▲두산동 허수용(49·회사대표) ▲지산동 양구흥(56·상업) 여강수(48·치과기공소) ▲범물동 박윤용(57) ▲고산1동 양춘학(52·공업) ▲고산2동 장우석(53·제조업) ○달서구 ▲성당1동 한정수(52·금고이사장) ▲성당2동 박이찬(49·건축업) 이재영(45·공업) ▲두류1동 양종학(43·공업) ▲두류2동 하종수(54·건축업) 최학득(54·공업) ▲두류3동 시희준(40·상업) ▲성서1동 김영수(45·상업) ▲성서2동 이기도(54·농업) 류병노(36·건설업) ▲성서3동 박용갑(45·공업) ▲성서4동 류광현(52·공업) 김정해(53·축산업) ▲본리동 박병기(40·상업) 이종학(44·상업) ▲월배1동 이종택(51) ▲월배2동 우승기(44·금고이사장) 손영일(34·상업) ▲월배3동 이장우(47·목욕업) 권춘갑(49·상업) ▲월배4동 손성태(51·농업) ▲송현1동 김창식(47·공업) 배영칠(45·공업) ▲송현2동 김석봉(44·건설업) 전부진(47·신협이사장) ▲본동 박양헌(50·사업) ▲동구 검사 전춘식(51·사업) ▲수성구 고산2 장우석(53·제조업)
  • 오늘 5곳 합동유세/기초의회선거

    ◎무투표당선 560명으로 늘어 16일부터 개최키로한 기초 지방의회의원선거 합동연설회가 일부 지방에서 하루 앞당겨 15일부터 시작된다. 이날 합동연설회가 열리는 지역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하남시 신장국교(하오3시) △강원=속초시 교동 구속초중학교(하오2시) △충북=괴산읍 동인국교(상오10시) 청천면 청천국교( 〃 ) △전북=무주군 안성면 안성국교(하오2시) ○후보자 사퇴 속출 시·군 구의회의원 후보등록마감 다음날인 14일 서울 지역후보중 3명이 사퇴해 무투표당선자가 3개 선거구에서 5명이 늘어나는 등 전국 10개 선거구에서 13명의 무투표당선자가 더 늘어났다. 이에따라 전국에서 무투표 당선 확정자는 당초 4백41개 선거구 5백47명에서 4백51개 선거구 5백60명이 됐다. 추가로 무투표당선이 확정된 사람은 다음과 같다. ◇서울 △중랑구 묵1동=이석창(65·삼양개발대표) 이승우(35·풍산한의원장) △도봉구 창2동=박응서(60·화장품대리점) △강남구 삼성2동=강길수(51·상업) 김종길(55·회사원) ◇경기 △시흥시 매화동=함찬(63·평통자문위원) ◇대구 △동구 신암4동=백기권(60·공업) 이재홍(46·상업) ◇충북 △청주시 석교동=김동진(55·한의원) ◇전북 △군산시 명산동=이만수(39·제재업) ◇충남 △당진군 송산=신덕균(63·농업) △태안군 남면=문제동(58·농업) △아산군 인주=홍보선(58·군정자문위원)
  • 재야인사 20여명/3·1절 시국성명

    문익환목사 계훈제·백기완씨 등 재야인사 20여명은 1일 상오9시 서울 중구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3·1절 72주년을 맞아 성명을 내고 『3·1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어떠한 외세에 굴함이 없이 자주독립을 쟁취하자』고 말했다.
  • 지자제선거/“분리”·“동시” 팽팽한 대립

    ◎여야의 상반된 입장과 전략/선 기초선거로 「수서정국」 돌파/여/“광역선거 실종될라” 총력저지/야/내주초가 협상 시한… 타결 불투명 지방의회선거의 실시시기와 방법을 둘러싼 여야간의 입장을 최종 정리하기 위한 민자·평민 양당간의 절충이 1일 시작돼 내주초쯤이면 확실한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정부와 민자당은 지난 1월 임시국회에서 기초·광역지방의회 선거를 동시에 실시키 위한 지자제 선거법 개정 협상이 물건너가자 3월말 기초의회선거를 우선 실시키로 가닥을 잡았으나 지난달 28일 민자당 당무회의 결과 상당수의 당무위원들이 분리선거 반대론을 개진,당분간 대야 협상기간을 가져 여야 절충을 계속키로 신축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여권의 이같은 대야 유화제스처는 야권의 입장을 반영,여야합의에 따라 지자제선거 일정을 조정해 나가도록 최대한 노력하되 여야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분리선거라는 기존의 여권방침을 밀어 붙이기 위한 명분축적용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돼 3월 기초의회선거 강행설은 여전히 유효한느낌이다. ▷민자당◁ 기초·광역의회의 분리선거 또는 동시선거 등의 방법론에 대한 집착보다는 올 상반기내에 역사적인 지방의회선거가 이뤄질수 있도록 해야한다는데 체중을 싣고 있는 여권은 내주초까지 시한부 대야협상을 시도,선거법 개정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을 경우 독자적인 타임스케줄에 따라 선거를 강행키로 내부입장을 확정해 놓고 있다. 민자당은 특히 지난 1월 임시국회때 선거법 협상과 관련,야권에 제시했던 조건보다 더 까다로운 항목 등을 제시,야당측이 「백기」를 들지않는한 5·6월 동시선거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어 벌써부터 여야협상 비관론이 우세한 형편이다. 민자당이 이같이 강경입장을 보이고 있는데는 4월 임시국회에서 선거법처리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야권의 보다 확실한 「약속」이 없는한 행정상 선거관리가 가능한 분리선거 방법이라도 채택,집권당의 지자제 실천의지를 확인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민자당은 지난 국회상공위 뇌물외유 사건,수서파문 등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의 골이 깊어질대로 깊어진 상황에서 선거법 협상 등을 빌미로 지자제선거를 5·6월로 미룰 경우 재야 및 대학생 등 운동권세력의 춘투에 밀려 정치권 함몰현상을 초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만큼 조기에 승부수를 띄워 정면돌파를 시도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평민당◁ 지방의회선거 분리실시에 반대하는 표면적인 논리로 동시선거가 야권 합의사항이라는 점과 분리선거의 경우 선거인플레로 인한 물가불안 등을 내세우고 있다. 평민당측은 『분리선거를 실시하게 되면 약 2개월의 선거기간이 소요돼 통화팽창과 들뜬 분위기가 그만큼 확산된다』는 일견 여당식(?) 논리와 함께 미국·일본 등 많은 나라가 동시선거를 하고 있다는 등 외국사례까지 들며 동시선거에 집착하고 있다. 평민당측은 특히 여권의 3월말 기초의회선거 분리실시를 『수서의혹을 벗어나려는 여권의 정치적 술수』라면서 『만약 3월 분리선거를 강행한다면 전국을 수서규탄으로 뒤덮이게 하겠다』며 짐짓 장외투쟁의사까지 내비치고 있다. 물론 당소속 이원배·김태식 두 의원이 구속되는등 평민당도 수서비리의 한쪽 당사자라는 점에서 평민당 단독의 장외집회를 선뜻 선택하기에는 곤혹스런 대목도 있다. 그러나 평민당측은 『분리선거를 실시할 경우 동시실시를 합의한 물증을 제시해 「민자당의 정치사기극」을 폭로하겠다』 『동시실시에 대해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의 승인받은 문건을 갖고 있다』(김영배 총무)는 등 엄포를 놓고 있어 여권이 분리실시를 최종안으로 선택할 경우 수서규탄을 겸한 투표보이콧캠페인 등 모든 대응수단을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평민당이 동시선거를 고집하는 이면에는 기초·광역 선거운동을 벌일 경우 정당추천제가 배제된 기초의회선거도 사실상의 정당선거화로 몰아갈 수 있다는 「계산」과 3월 기초의회 분리실시에서 지자제 선거의 부작용만 과대노출 될 경우 정당추천제로 치르는 광역선거 상반기 실시 자체가 유실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 패전 이라크,이번엔 내란위기/「백기 든 이후」의 바그다드

    ◎학정에 시달린 시아파,정권탈환 노려/쿠르드족도 반감고조… 반정봉기 태세 걸프전 종전뒤 이라크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이에대한 답변은 사담 후세인의 장래와 연결지어서 풀어나가야 한다. 후세인의 앞날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과 가정이 소개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유럽언론들은 전쟁의 진행상황으로 미루어 그의 실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전쟁은 당초의 예상대로 후세인의 완패로 결말이 지어졌으며 후세인이 권좌를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라크 국민들에게 후세인의 제거를 공개적으로 부추겨온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8월2일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인들 스스로 후세인을 쫓아내길 고대해 왔었다. 종전후 이라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변화를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군부 쿠데타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후세인의 장기독재에 따른 몸서리 쳐지는 학정을 자각한 군장성들이 특히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쿠데타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않다. 왜냐하면 이라크 군지휘부는 후세인이 엄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세인의 충복중의 충복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후세인은 집권이래 군고위층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치만 보여도 숙청의 칼날을 뽑아 왔었다. 집권 초기에는 나세르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장교들을 무더기로 숙청했고 그뒤 얼마 안가서는 바트당 당원이 아닌 장교들이 당했다. 정권유지를 위한 무자비한 숙청은 걸프사태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쿠웨이트 침공 작전개시일 결정에 대한 의견 제시를 미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군지휘관 10여명이 처형됐으며 다국적군의 공습이 개시된 바로 다음날 방공포대 지휘관들이 공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것이다. 또 며칠 뒤에는 공군 지휘관들도 같은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이 군부는 솎아내고 걸러낸 친위조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키기는 어렵다는게 이에대한 신중론의 근거이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민간쿠데타 즉 시민혁명이다. 30여년간 줄곧 핏물 튀는 군부독재가 계속 되어온 탓에 이라크에는 언뜻 손꼽히는 정치엘리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영국 독일 또는 미국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게다가 이라크에는 후세인의 바트당이 일당독재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있으며 「3인1조」식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은 지역·기업 및 군대까지 파고 들어 반대정치 세력의 출현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바트당내의 지도층에 의한 쿠데타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기도 한다. 제2인자인 이자 이브라힘 알 듀리 제3인자인 타하 야신 알 지즈라위 부총리인 사돈 하마디 소장층의 대표주자인 하산 압둘 마지드 등의 당지도층을 대상으로 모반을 가정해 보지만 그동안의 후세인 통치스타일로 미루어 역시 가능성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종족간 대립이나 이슬람교내의 갈등이 이번 기회에 표면화되어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관심을 끌고있다. 이교간의 갈등 이상으로 집권층인 이슬람교도 수니파와 심한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는 시아파가 관심의 대상이다. 8백만명인 시아파는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쪽을 연고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며 집권 수니파에 눌려 오랫동안 학정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시아파는 항상 폭발직전의 불만에 싸여 살아오고 있으며 77년 2월 및 79년 6월 등에는 걷잡을수 없는 폭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는 정치지도자는 한명도 없으나 나자프 또는 게르발라와 같은 도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반정부 행동을 위한 군중동원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종교조직을 바로 정치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짜놓고 있다. 후세인에게 가장 도전적인 세력은 바로 쿠르드족이다.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항상 바그다드 정부에 적대적인 자세를 보여오고 있다. 그들은 특히 지난 87년 화학무기로 쿠르드 양민을 무차별 살상한 후세인을 증오,기회만 있으면 봉기의 횃불을 올릴 자세를 갖추고 있다. 5백만명의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지도자들은 이미 몇주일전에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대대적인 반후세인 봉기에 착수할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워싱턴에 알리기도 했다. 시아파나 쿠르드족은 그동안 뚜렷한 활동은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다. 시아파는 이라크 이슬람전선,이라크 이슬람교 혁명최고위원회,이라크 무자헤딘운동 등의 조직이 있으며 쿠르드족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전선,쿠르디스탄 민주당,쿠르디스탄 애국연합,쿠르디스탄 인민민주사회주의 등이 있다.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중앙집권 형태가 사라지고 수니파 시아파 및 쿠르드족 등 3개파가 조화있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게 전쟁에 참여했던 주요 국가들의 바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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