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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범 암살 배후 없다/안두희씨 거듭 주장(조약돌)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씨(75·인천시 중구 신흥동)는 11일 자신을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위해하려한 권중희씨(55·서울 서대문구 북가좌1동 384의 10)에게 『백범 암살의 배후는 없다』면서 『자신은 군입대전 서북청년당 총무부장이었으며 당시 미 정보기관인 OSS소속 중위의 부탁으로 정치정보를 수집했다』고 말했다. 안씨는 또 백범 살해동기는 자신이 정보를 수집한 결과 여순반란사건,국회 프락치사건등에 한독당 좌익세력들이 많이 가담한 사실을 알아내고 한독당 당수인 김구선생을 찾아가 『좌익세력들과 함께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며 따지자 김구선생이 『지금은 그런 것을 논할때가 아니며 좌·우익 모두 힘을 합쳐 통일을 위해 노력할 때』라며 자신을 꾸짖은데 격분,김구선생을 살해했을 뿐 『배후는 없다』고 주장했다.
  • 일 새 총리 미야자와 확실/다케시타파,“곧 공식지지” 시사

    ◎간사장·장관등 주요포스트 요구할듯 일본의 새 총리에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전부총리가 확실시되고 있다.차기 총리선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집권 자민당의 최대파벌 다케시타(죽하)파가 미야자와 지지를 사실상 결정한 것이다. 다케시타파는 10일 긴급총회를 열어 지지후보를 공식결정할 예정이다.그러나 대세는 이미 미야자와 지지로 굳어지고 있다.실질적인 파벌총수인 가네마루(김환)도 오자와(소택)를 자파 독립후보로 옹립하려는 시도가 오자와의 반대로 무산되자 미야자와 지지를 시사했다.가이후(해부)총리가 속해있는 고모토(하본)파와 미쓰즈카(삼총)파의 일부도 다케시타파가 지지하는 후보를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정치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가네마루는 사실 미야자와와는 관계가 좋지 않다.그러면서도 미야자와를 지지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은 여론과 자파내의 미야자와 지지가 높다는 면도 있지만 자파실리의 극대화를 위해 우세한 후보를 지지하는 가네마루 특유의 정치스타일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일본 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한다.미야자와는 이달말로 임기가 끝나는 가이후총리가 재출마포기를 선언한후 차기총리로 유력시돼왔었다.그는 부총리,대장상,외상,자민당 총무회장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뿐만아니라 학식도 풍부하고 외국지도자들과도 폭넓은 교류를 갖고 있으며 재계와 관계에서도 여론이 좋은 편이다. 미야자와가 새총리가 된다해도 일본정치의 생리상 기본적인 정책방향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것이다.다케시타파에 의해 배후 조정되었던 가이후총리와는 물론 차원이 다르겠지만 미야자와도 다케시타파의 지원으로 총리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다케시타파와의 정책협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평화유지활동(PKO)법안에 대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온 다케시타파의 정책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야자와는 최근 가네마루를 방문,당과 내각 인사에서 다케시타파의 의사를 전면 수용하겠다고 밝혔다.이는 미야자와가 총리가 되어도 당과 내각에서는 여전히 다케시타파가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다.가장 중요한 자리인 자민당간사장과 주요 장관직에 다케시타파가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고 정치분석가들은 전망한다. 그러나 일부분석가들은 미야자와가 자민당내 양대세력중의 하나인 미야자와파의 지도자인데다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갈 것이라고 예상한다.때문에 다케시타파와의 미묘한 갈등이 노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것이다. 미야자와는 친아시아적 성향을 가진 일본의 많은 정치지도자들과는 달리 서구지향적이다.미야자와는 특히 친미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미야자와는 한국과의 특별한 관계는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그는 다케시타와 같이 친한적인 정치지도자도 아니다.그러나 미야자와의 등장으로 우호적인 한일관계에 어떤 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한 일본주재 아시아외교관이 말했다.
  • 임수경양 입북 조종/수배 박종렬씨 검거

    【청주】 청주서부경찰서는 지난 2일 하오 4시쯤 시내 사직동 시외버스터미널 부근에서 임수경양의 밀입북사건 배후조종 혐의로 수배중인 전「전대협」정책실장 박종렬씨(25·연세대 경제학과4년)를 검거했다.
  • 도로·항만 확충,경쟁력강화 뒷받침/「33조5천억」 내년예산안 분석

    ◎UR대비,농업 구조개선에 중점 투자/통화 18%선 고수,안정기조 유지 방침/세수 추계 현실화로 추경편성은 배제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됐다. 총33조5천50억원(일반회계)으로 편성된 내년예산안은 도로·항만적체등 성장애로요인을 해소하고 농어촌구조개선을 통해 농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강력한 재정의지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경부고속전철과 영종도 신공항건설이 내년에 착공되고 주요 고속도로의 공기가 1∼2년씩 앞당겨진다.또 농수산물 시장개방에 대비,농어촌 구조개선을 돕기 위해 1조1천억원 규모의 특별회계가 신설되며 전동차 기지와 광양만 배후수송시설,한강수계 치수사업등 굵직한 사업들이 새로 시작된다. 「공약사업을 위한 정치성 예산」 「팽창예산」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처럼 당초 안을 그대로 선택한 것은 사회간접자본의 부족 등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부분과 개방을 앞둔 농어촌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성 때문으로 풀이된다.따라서 내년도 예산안은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올해보다 19.2%가 늘어난 4조2천3백억원을 투입하고 농어촌 지원에 38.3%가 는 2조3천6백54억원을 들이는등 정부가 사회간접자본 확충과 농어촌구조개선에 최대의 역점을 두고 있다. 80년대 초반에는 물가안정을 위해,80년대 후반에는 불어나는 흑자관리를 위해 통화환수기능을 하느라 그동안 정부재정이 현실화되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 인식이다.89년 이후 재정규모가 커져왔으나 실제 재정의 대GNP비율은 92년 14.8%로 82년(17.6%)수준에도 못미치는등 재정이 제역할을 하지 못해왔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부터는 추경편성관행을 없애기 위해 세수추계를 현실화하고 세계잉여금이 나더라도 양곡관리기금의 결손보전등에 쓸 계획이어서 대규모 추경편성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같은 다짐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세수추계가 보수적이어서 세계잉여금의 발생소지는 여전히 높다는 지적이다.정부가 올 예산을 편성하면서 잡은 90년 조세부담률(17.6%)이 실제 19.7%로 2.1%포인트 높아졌고 올 조세부담률 역시 당초 예상(18.1%)을 웃도는 19.6%에 이를것으로 전망돼 세수추계의 보수성은 여전하다. 물가불안등 경제가 어려운 때에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출을 꾀함으로써 인플레를 증폭시키고 있다는 우려도 높다. 정부는 지난 19일 국제수지 개선과 물가안정을 위해 건축동결 등 강력한 내수억제책과 함께 통화를 18%수준에서 안정적으로 운용키로 했다.그러나 고속도로와 철도·항만건설등 각종 대규모사업을 대대적으로 벌이면서도 경제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운영해나갈지가 큰 과제로 남는다. 특히 내년에는 14대 총선과 지방자치단체장선거,대통령선거 등 각종 선거가 꼬리를 물고 있어 통화증발우려가 어느해보다 높을 것으로 걱정된다.
  • 장애자 강제 수용… 구걸 강요/상습 갈취 폭력조직 수사

    ◎장애자협 고발 따라… 경찰,전원 구속 방침 경찰청은 24일 장애인들을 구걸시켜 구걸한 돈을 가로채는 폭력조직을 모두 검거하도록 전국 경찰에 지시했다. 경찰청의 이같은 지시는 사단법인 한국지체장애자협회 장기철회장(50)이 최근 경찰청을 방문,장애자 갈취조직이 있음을 고발,수사해 줄 것을 요청한데 따른 것이다. 경찰은 이에따라 우선 일선 경찰서별로 관내에 있는 구걸장애인의 실태를 파악하는 한편 배후에 폭력갈취 조직이 있는지를 철저히 가려내 모두 구속 수사하기로 했다. 한편 장회장은 경찰에서 『최근 서울 명동·남대문시장등 전국 대도시 중심가에 구걸을 하는 중증장애인이 크게 늘어나 협회회원등을 동원해 조사해 보니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강제수용돼 구걸을 강요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 노 대통령 CNN TV 회견 내용

    ◎“북한의 유혈없는 민주화 희망”/북한은 핵 협정 조인·사찰에 응해야/유엔 동시가입은 통일 위한 잠정 조치 노태우대통령은 22일 미 CNN­TV와의 인터뷰에서 김일성 사후 북한의 변화 가능성에 언급,『북한이 민주주의를 향해 순조롭게 나아가게 되기를 희망하며 설령 이 과정에 시간이 소요되더라고 북한내에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CNN의 마이크 치노이 북경특파원과 가진 이 회견에서 『북한이 김일성 사후에 급속한 변화속에 유혈사태를 겪을 것이라는 견해와 현 체제가 얼마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은 모두가 일리가 있다』고 전제,이같이 말했다. CNN은 노대통령 회견을 20여분짜리 일요 특집물로 제작,이날 상·하오 수차례에 걸쳐 미전역에 방영했다. 노대통령과 CNN­TV와의 일문일답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르바초프의 소련이 남북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소련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한반도의 장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배후세력의 붕괴로 아마도 위기감을 느끼고 있을 북한은 그 문호를 자유세계에 개방치 않을수 없을 것이다』 ­북한의 유엔 가입이 한반도에 미칠 영향은. 『남북한의 유엔 가입은 통일에 이르기 위한 잠정적 조치다.이제 남북한이 모두 유엔의 회원이기 때문에 한반도의 대립과 갈등의 관계가 상호 신뢰와 협력의 관계로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이는 통일을 향해 또 하나의 발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얼마나 우려하고 있는가. 『북한의 핵은 한반도뿐 아니라 한반도를 둘러싼 중국 일본등 동북아 전반에 위협을 조성하고 있다.북한은 IAEA(국제원자력기구)협정에 즉각 조인해야 하며 모든 핵시설의 국제사찰에 응해야 한다』 ­김일성 사후의 북한 변화 가능성은. 『북한의 변화 가능성은 보는 시각엔 두가지고 있다.하나는 김일성 사후 급속한 변화를 겪게될 것이며 이는 대립적이고 유혈사태로 번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다.또 다른 견해는 현 체제가 얼마동안 지속될 수 있을 것이란 주장이다.본인은 두 가능성이 다 일리가 있다고 본다.본인은 북한이 민주주의를 향해 순조롭게나아가게 되기를 희망하며 설령 이 과정에 시간이 소요된다 할지라도 북한내에 유혈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는 점진적인 통일정책 추진을 말하는가. 『한국민은 평화통일이 조속히 이루어지기를 갈망하고 있다.그러나 이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불행한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통일은 신중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주한미군계속주둔 필요성에 대한 견해는. 『동북아엔 냉전구조가 아직 존속하고 있으며,특히 북한이 구조적인 변화에 이르기까지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이러한 이유로 미군의 계속적 주둔은 한반도의 안정과 동북아지역을 위해 긴요하고도 필수적이다. ­한국의 민주화가 통일에 어떤 역할을 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6·29선언이래 한국의 민주화는 엄청난 진전을 이룩해 왔으며 본인은 그간 이룩된 성과에 만족하고 있다.소련과 동구권에서 민주주의는 공산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이러한 논리가 한반도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믿는다.보다 완전한 민주주의는 통일을 향한 확고한 기반이 되어줄 것이다』
  • 한 어머니의 용기(사설)

    이른바 「주사파」대학생 1백20명의 검거령이 내려진 가운데 수배되어 은신중이던 한 대학학생회장이 검거되었다.현상금이 5백만원이나 매겨진 이 운동권학생은 홀어머니의 피눈물나는 신고때문에 잡힌 것으로 알려졌다.보통의 어머니라도 어미가 되어 자식을 감옥에 보내기 위해 발고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법조차도 직계 비속에 대해서는,범인 은닉죄에서 정상이 참작된다.그 아들은 아버지도 없이 어머니 혼자 청소원도 하고 파출부도 하면서 온삶을 다바쳐 길러온 외아들이다.수배되어 숨어있는 동안에도 온갖 노력을 하며 들키지 않게 뒷바라지해온 그 아들을 자기손으로 손목잡아다가 경찰에 넘긴 것이다. 이 어머니가 이 어려운 일을 결심하게 된 것은 무엇때문인가.수배뒷바라지가 힘들고,속썩이는 아들이 지겨워서 포기한 것이겠는가.그렇지가 않다.피를 토하도록 병든 몸으로 숨어 사는 「운동권자식」을 구원하기 위해 그 어려운 결심을 한 것이다.이 어머니의 용기에 우리는 옷깃여미는 표경을 한다.당장 몸이 망가져 가고 있는 것도 큰일이지만,숨어사는 방법으로 사회에서 유리되고 소외되어 버리는 자식의 장래는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알았던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든 빛앞에 떳떳이 서서 자신을 되찾지 못한다면 영영 돌이킬수 없이 먼곳으로 던져져 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어머니는 깨달은 것이다.진정으로 자식을 살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판단하고 그 판단을 행동에 옮긴 어머니에 대해 아들도 깊은 반성과 함께 감사를 드리게 될 날이 오리라고 확신한다. 특히 이 어머니의 행동이 돋보이는 것은 많은 운동권 부모들이 자식들보다도 더 극렬한 「운동권집단」이 되어가는 현실과 대조되기 때문이다.같은 처지에서 가슴을 앓는 부모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고통을 나누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기는 하다.한이 오죽하면 그 모임들의 행동들이 그토록 과격해지겠는가 하는 연민도 들고 이해하려는 심경도 든다.그러나 이미 그 자체가 운동권 세력이 되어 투쟁의 선봉이 되어가고 있는 이들 집단은 「자식의 일에 가슴아픈 부모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법정소란에서과격시위에 이르는 운동권의 일정을 주동적으로 이끌어가는 중이다. 이런 일은 자녀를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하물며 국가의 민주화를 위해서도 아무런 기여를 못한다.보이지 않는 배후세력에 조종되어 깊은 함정으로 빠져드는 결과를 부를 뿐이다. 한 어머니가 가질 수 있는 진솔한 사랑의 눈으로 보면 자식을 신고한 그 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것이야말로 자식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고 되살릴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그 어머니의 참뜻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들이다.그 아들은 잡혀가면서 『형기를 마치면 억척같이 돈벌어 어머니께 효도하고 그 뒤에 이상을 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고 한다.어머니의 용기가 마침내 아들을 혼미의 수렁에서 구했음을 알게 한다.모든 운동권 부모가 이 어머니의 용기에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전대협 배후 「활동가조직」 적발/중앙위·정책위등 조종

    ◎주사파 핵심 4명 송치/대학별 반정투쟁 방향 제시/북과 연락,성군·박양 밀입북도 관여/「연방제 통일투쟁」 표면화 앞장/안기부 발표 국가안전기획부는 16일 학생운동권을 주도하고 있는 「전대협」을 이끌어온 「정책위원회」가 이른바 「주사파」의 지하혁명조직인 「활동가 조직」에 의해 조종돼온 사실을 밝혀내고 「전대협」정책위원 송규봉군(23·경희대 총학생회장)과 경북대 「활동가 조직」정책국장 신동완군(22)등 4명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발표했다. 안전기획부는 이와 함께 「활동가 조직」을 이적단체로 규정,수사를 확대하는 한편 「전대협」정책위원장 이명곤군(26·부산대 중문학과)등 「주사파」대학생 90명을 추적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기부는 그동안의 수사에서 「주사파」학생들의 지하혁명조직인 「활동가 조직」이 각 대학의 총학생회를 장악한뒤 「전대협」의 최고의결기구인 「중앙위원회」를 주도적으로 구성하고 핵심조직원을 「정책위원회」및 각 집행국에 침투시켜 「전대협」을 실제로 조종해온 것으로 밝혀냈다. 이와 함께 이 조직이 「전대협」을 실질적으로 이끌어 가고 있는 「정책위원회」를 조종,북한의 대남심리전 공작기구인 「한민전」(한국민족민주전선)의 지도지침에 따른 「전대협」의 투쟁계획을 수립하도록 해 이를 전국대학총학생회에 시달,폭력시위와 통일투쟁을 선동해온 사실도 밝혀냈다. 수사결과 「전대협」을 장악해온 「주사파」학생들의 지하조직으로는 「자민통」「조통그룹」「자주그룹」「반제청년동맹」등 4대조직이 있으며 이들 조직원들이 이른바 「활동가 조직」을 재결성,「한민전」의 지도지침으로 사상을 무장한뒤 각 대학 총학생회와 「전대협」정책위원회·선전국·연대사업국및 「서총련」까지 장악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따라 올해 학원가에서는 그동안 지하유인물을 통해서만 주장돼왔던 「연방제 통일투쟁」이 표면화 됐으며 「연방제통일방안 합의를 위한 청년학생 통일대축전」의 공동개최등을 주장하며 북한의 「조선학생위원회」와 통신연락을 해 성용승군(22·건국대 행정학과4년)등 2명을 북한으로 보내기에 이르렀다고안기부는 설명했다. 안기부는 지난달 검거한 송군등 4명에 대한 수사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들은 「전대협」이 올해 하반기 투쟁방향을 「한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위한 반미·통일투쟁」과 현정부에 대한 지지기반을 약화시키기 위한 「반민자당투쟁」으로 설정했다는 것이다. 구속 송치된 사람은. ▲송규봉 ▲신동완 ▲최정봉(21·전대협 정책위원) ▲금동현(23·전대협 정책위원)
  • 전대협 배후 「활동가조직」은

    ◎89년 결성… 「한민전」 전위로 암약/대학선거 조직적 지원,학생회 장악/북 「구국의 소리」 방송따라 전술 제시 「전대협」을 실질적으로 배후조종하고 있는 지하조직이 「주사파」그룹인 「활동가 조직」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6일 안기부에 따르면 이 조직은 한국외국어대 경희대 한양대등 서울 동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자민통」,연세대 서강대등 서부지역의 「조통그룹」,서울대 경북대 영남대등의 「자주그룹」,고려대가 중심이 된 「반제청년동맹」등 4개 그룹으로 되어있다. 「활동가조직」은 이들 4개 주사파 지하혁명조직의 지도책들이 89년 김일성의 주체사상과 「한민전」의 지도지침에 따라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구현하기 위해 구성된 것으로 안기부는 밝히고 있다. 이 조직은 운동권학생들을 비밀리에 접촉,1∼2학년생으로 「예비대오」를,「주사파」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3∼4학년생으로 「활동가 대오」를 각각 구성해 매년 학기초에 「전체 활동가 대회」를 개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비대오」및「활동가 대오」가 되면 김일성주체사상등을 장기적이고 조직적으로 학습하도록 하는 한편 「한민전」의 전위대원으로 양성하기 위해 「파쇼정권을 타도하고 사생의 자유를 쟁취한다」「국군통수권을 탈환하고 자주적 민족군대 건설을 위해 투쟁한다」는등의 「한민전」10대 강령으로 무장하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이 조직은 특히 「전대협」을 장악하기 위해 자파 조직원이 총학생회장 후보가 되면 즉각 「선거대책본부」를 구성하고 선배조직원등으로부터 1천여만원의 자금을 모으는등 당선을 위해 조직을 총동원해 왔다. 예컨대 송규봉군(23·경희대 총학생회장)이 지난해 경희대 총학생회회장 후보로 출마하자 경희대 「활동가 조직」인 「경희 애학」중앙위원회는 「주체혁신,멸사헌신의 각오로 제22대 총학생회장 파견자로서 전망을 밝힌다」는 「주체전망서」를 제출하도록 한뒤 조직의 전폭적인 지원아래 학생회장으로 선출되게 했다고 안기부는 밝혔다. 이 조직은 또 「전대협」을 실질적으로 조종하고 있는 「정책위원회」에 자파조직원 가운데 이론과 투쟁력이 탁월한 조직원을 들여보내 「정책위원회」를 주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조직원은 「정책위원회」에 들어 가서도 다른 정책위원들과 치열한 사상논쟁을 벌여 「주사파」의 이념과 투쟁방향을 관철시켜 왔다. 안기부는 이 조직이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고 있으며 「한민전」의 전위조직이라는 사실이 구속된 송군등의 진술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진술에 따르면 「정책위원회」는 매년초 「한민전」신년사 내용을 기초로 투쟁방향을 수립하고 사회적인 이슈가 있을 때는 「한민전」의 「구국의 소리」방송을 통해 하달되는 투쟁지침에 따라 전략전술을 수립해 각대학 총학생회에 지시한다는 것이다. 「정책위원회」는 집회·시위나 총학생회간부들이 모일 때에는 「한민전가」「수령님을 따라 천만리,우리당을 따라 천만리」등 북한의 혁명가를 공공연히 부르고 이를 테이프에 수록,전국 대학에 보급까지 한 것으로 나타났다.
  • 「주사파」 대학생 1백20명 검거령/대검

    ◎“전대협등 운동권 폭력 시위 배후 조종” 대검공안부는 15일 김일성 주체사상을 추종하는 이른바 주사파 소속 대학생 1백20여명에 대한 일제검거에 나섰다. 검찰관계자는 『검찰과 경찰,안기부등 공안유관기관으로 구성된 「공안합동수사본부」가 설치되기 직전인 지난 89년4월 이후 금년 8월말까지 구속된 주사파 대학생은 모두 2백39명』이라고 밝히고 『당국의 단속에도 불구,NL(민족민주주의)계통의 주사파 세력들이 전대협등 학생운동권을 배후 조종하면서 폭력시위를 획책하고 있어 그동안 당국이 주사파 소속 대학생으로 분석한 1백20여명에 대한 일제 검거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구속된 주사파 대학생들을 기간별로 보면 ▲지난 89년4월부터 같은해 12월말까지 1백5명 ▲90년 한햇동안 82명 ▲91년1월부터 8월말까지 52명등이다.
  • 남아공서 총격 사태/「인카타」 흑인 18명 사망

    【요하네스버그 AP 연합】 남아프리카 공화국 수도 요하네스버그 부근에서 8일 수 미상의 괴한들이 아프리카 민족회의(NNC)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흑인 단체인 인카타자유당(IRP)지지자 행렬을 향해 총격을 가해 18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했다고 경찰이 발표했다. 한 경찰대변인은 요하네스버그 동남방 20㎞에 위치한 토코자읍에서 이날 군중집회를 갖기위해 운동장으로 향하던 IFP지지자들에게 수 미상의 괴한들이 총기를 난사해 이같은 사상자가 났다고 말하고 이번 총기난사사건의 배후세력은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 수십억대 히로뽕 밀매 15명 구속/3명 수배/부산·대구 무대로

    ◎유흥가·운전사등에 공급/검찰,수사 확대 【부산=장일찬기자】 삐삐등 무선호출기를 이용,부산·대구·울산등지에서 수십억원어치의 히로뽕을 밀매하며 이를 투약해온 히로뽕 밀매조직 일당 15명이 무더기로 검찰에 구속됐다. 부산지검 강력부 마약전담부사반 오세헌·정동민검사는 28일 부산·경남일대를 무대로 히로뽕을 공급해온 히로뽕 밀매조직 총책 윤해진씨(45·부산진구 범천동 159)와 부산지역 판매책 김도술(31·경남 울산시 남구 장생포동307),대구지역 판매책 이태기(41·대구시 서구 비산동207),울산지역 판매책 이상걸씨(34·경남 울산군 청량면 개곡리 306의2)등 지역밀매조직원과 세포조직원 우국희씨(37·북구 감전동105)등 모두 15명을 향정신성의약품관리법 위반혐의로 구속하고 달아난 김희수씨(34·가명·부산진구 가야동)등 3명을 수배했다. 밀매조직 총책 윤씨는 지난 4월 서울지검에서 구속한 서울지역 공급책 윤경수씨(40)로 부터 히로뽕 1백60g을 1천만원에 구입,부산·경남북의 지역 공급책등을 통해 5억여원에 밀매하는등 지난4월초부터 히로뽕 3백10g(시가 10억원)을 21차례에 걸쳐 밀매해온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주로 대도시의 트럭운전사·술집주인 등을 상대로 히로뽕을 공급하면서 자신들도 투약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의 조직이 대규모인데도 거래량에 대해 함구하고 있는 점등을 미뤄 전국을 무대로 한 밀매조직으로 보고 배후조직에 대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구속자명단은 다음과 같다. ▲윤해진 ▲김도술 ▲이태기 ▲이상걸 ▲우국희 ▲박종렬(39·대구시 남구 대명동457의7) ▲홍순엽(30·부산진구 양정동 378의46) ▲유해근(31·동래구 연산5동 707의4) ▲장태석(37·밀양시 교동933) ▲김재복(50·북구 구포동373) ▲최균철(37·사하구 괴정동412) ▲최원영(39·대구시 남구 봉덕동 129의215) ▲전갑식(35·동래구 온천2동 1017의13) ▲고흥식(28·남구 대연6동 1726의13) ▲김태전(34·김해시 부원동)
  • 「반제 PD그룹」 13명 구속/6명 조사

    ◎공단침투,“사회주의 국가 건설” 획책 경찰청은 26일 「지하 사회주의노동당」을 결성해 폭력혁명에 의한 「민중민주정부」를 수립하려 한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 혁명그룹」 중앙위원 박성인씨(32·연세대사회학과 3년 중퇴)등 13명을 국가보안법위반(이적단체 구성등)혐의로 구속하고 3명을 입건하는 한편,3명은 계속 조사하고 있다. 이날 구속된 박씨와 고민택씨(31·서울교육대 4년 제적),고춘원씨(30·여·동덕여대 약학과졸),이창우씨(27·서울대 기계과졸)등은 지난 1월 사회주의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 혁명그룹」을 결성한 뒤 서울 구로구 개봉동·시흥동·난곡동 등지에 비밀 아지트를 구축하는 한편,구로공단등 전국 공단지역에 침투,노동자들을 선동한 혐의를 받고있다. 이들은 또 각종 시위현장에 조직원을 동원해 「천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민중권력 수립을 선포하라」는 등의 각종 불온 유인물을 제작,배포해 왔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들이 「전노협」「서노협」「전국노련」등 재야 노동단체에 조직원을 침투시켜 강경투쟁노선을 걷도록 배후조정한 것으로 보고 이들 침투자를 색출하기 위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 검거된 「반제 PD그룹」의 실체

    ◎서울등 대도시 노동자에 의식화 교육/「강군 치사집회」등 불법 시위 배후조종 찰에 검거된 「반제·반파쇼 민중민주주의 혁명그룹」은 마르크스·레닌사상을 혁명의 지도이념으로 삼아 무장봉기를 통해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려 한 이적단체라고 경찰은 밝히고 있다. 이들은 지난 1월초 박성인등의 주동아래 올해의 상황이 혁명적 시기가 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서울 구로구 개봉동·시흥동·난곡동등 3곳에 비밀 아지트를 구축한 뒤 부산·울산·서울 구로공단·부천등 공장지대에서 노동자를 선동하는등 지하활동을 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4월 강경대군의 치사사건 뒤에는 각종 집회와 시위에 조직원을 총동원,「천만 노동자의 이름으로 민중권력 수립을 선포하자」는 등 폭력혁명을 선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전노협」「전국노련」등 재야 노동단체의 조직원들을 침투시켜 전국 총파업등 강경투쟁노선을 취하도록 배후 조종하고 서울 성수공단에서는 「동부민주노동자연합」이라는 조직을 결성,노조 간부및 노동자들을 의식화시켜 왔다는것이다. 이들은 「노동자 계급의 주도아래 민중과 연대,무장봉기를 일으켜 민중권력을 수립한 뒤 북한과 연공 통일을 실현한다」는 목표아래 좌익 지하조직들을 규합,「한국사회주의노동당」의 창당을 위한 강령안을 마련하는 등 체제전복 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이들에 대해 지난 6개월동안 지속적으로 수사를 펼쳐 온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광역지방의회선거 뒤 「민족해방계열(NL)」이 주도하는 운동권이 위축된 반면 「민중민주주의 그룹」이 최근 소련 보수파의 쿠데타를 지지하는등 운동권내에서의 세력확장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 때 지난21일 외국어대와 26일 고려대에 나붙은 소련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지지하는 대자보와 옐친을 비난하는 대자보가 주목되고 있다. 이들 대자보는 공산당 강경보수파의 쿠데타를 『제국주의와 소련내 부르주아에 대한 사회주의의 승리』라면서 『소유스 그룹을 중심으로 한 당과 군부세력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옐친은 소수에불과한 부르주아및 프티 부르주아의 이익만을 위해 소련사회주의체제를 서방제국주의에 팔아 넘겼다』고 억지를 썼다. 따라서 소련공산당과 연방마저 해체·붕괴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아직도 허망한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꿈꾸는 이들이야말로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까운 존재들이라는 것이 당국의 견해이다.
  • 새 권력구조 어떻게 짜여질까(크렘린 대지진:5)

    ◎개혁파가 권부 전면에 등장한다/의회등 요직에 신진학자등 대거 등용/군부·KGB의 권한 대폭 제한할듯 실패로 끝난 쿠데타의 여파로 대규모 숙청과 함께 소련 권력구조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게됐다.쿠데타 주도세력인 연방총리와 KGB의장 및 국방·내무장관의 해임은 엄청난 개편작업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 권력구조개편은 KGB와 군부 등 과거 냉전시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핵심기구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파블로프전총리를 중심으로 했던 경제팀도 시장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주장했던 학자와 관료들로 교체되는 등 신진 개혁파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공산당의 위상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이러한 개편과정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비롯한 각공화국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집무복귀 직후 쿠데타 주도세력인 3개부서의 책임자를 해임,잠정적인 후임자를 임명했다.그러나 하루만에 또다시 이들 3개부처의 책임자를 온건개혁파로 교체하면서 옐친의 의견을 따랐다.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했던 KGB와 군부의 권한과 역할을 법률에 의해 명백히 제한하는 입법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후임자 인선과정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옐친은 고르바초프와 23일 회담을 갖고 KGB의장과 국방장관 등 요직의 정식인선문제를 논의했다.옐친은 이자리에서 「연정」을 제의,쿠데타 저지에 공로가 큰 러시아공화국의 인사들을 연방정부에 많이 참여시켜줄 것을 요구,고르바초프의 수락을 얻어냈다. 요직인선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연방대통령과 옐친을 비롯한 각공화국 지도자들간에 어느정도 갈등이 예상됐으나 의외로 수월하게 해결됐다.오히려 연방과 공화국간의 위상정립과정에 더 큰 마찰요인이 도사리고있다.지난 20일 조인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이 조만간 정식으로 조인되면 그렇지않아도 공화국들의 권한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옐친이 독자적인 러시아공화국 군대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되는데 대해고르바초프의 반발이 예상된다. 어쨌든 물갈이는 대폭이 될 수 밖에 없다.루키아노프최고회의의장이 이번 쿠데타의 배후인물로 지목됨에 따라 인사태풍은 연방정부에 국한되지않고 의회를 포함한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개편의 바람은 공산당에도 밀어닥칠 수 밖에 없다.이번 쿠데타에 동조한 인사들이 상당수 숙청되고 온건 개혁파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산당의 향후 위상정립방향은 아직도 불확실한 상황이다.대부분의 소련국민들은 공산당이 이번 쿠데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며 격분하고있고 일부에서는 공산당 폐기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산당의 입지가 약화될 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공산당이 개혁정당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혁파 인사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리는 가운데 유명무실한 3류정당으로 전락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개혁신당 합류 가능성이 반반으로 예측돼오던 고르바초프는 복귀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1의 과제는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나는 아직도 공산주의자이며 공산당은 앞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한다』고 말해 혁신적인 메스를 가하면서 공산당과 운명을 같이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전외무장관과 야코블레프전보좌관 등 개혁파 핵심인사들이 이미 상당수 공산당을 떠나 민주적인 개혁신당창당작업에 열을 올리고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가 앞으로 더해갈 것으로 보여 공산당이 환골탈태를 거쳐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대통령도 겸직하고있던 공화국공산당 제1서기직을 포기하는 등 연방전역에 걸쳐 반공산당 분위기는 확산일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공산당이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있는데다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며 이제와서 공산당을 버리고 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길 경우 남들이 차려놓은 잔치에 손님으로 끼어드는 결과밖에 안돼 결국 스스로 정치생명의 목줄을 끊는 셈이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대적인 권력구조개편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과거 70여년간 권력주변에서 맴돌던 보수파들을 완전히 거세시키기는 어렵다.극심한 경제난이 지속될 경우에는 또다시 극적인 상황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소련은 이제 본격적인 다원화사회로 접어드는 셈이다.새로운 다원화시대로 전환하는 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를 단정짓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점이다.
  • “쿠데타 관련 전원 철저수사”/고르바초프 기자회견 일문일답

    ◎“KGB군인 권력이양문서 서명 강요/당시상황 담은 테이프·서류 갖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2일 하오(현지시간) 쿠데타발생후 처음으로 외무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연금된 경위와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 회견에서 지난 6년간의 개혁이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이번과 같은 불법적인 쿠데타가 다시는 있어선 안될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회견내용은 다음과 같다. ­지난 72시간동안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해달라. ▲나는 지난 6년동안 다른지도자들과 함께 소련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그러나 이번 쿠데타는 소련역사에서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될 비극이다.우리는 가장 어려운 경험을 했다.이번 쿠데타는 본인의 신뢰를 받았던 일단의 무리들에 의해 일어났다.쿠데타는 페레스트로이카·민주화·헌정질서및 소련이익에 반하는 행동이다.나는 8월18일 4시경 KGB의 일부 군인들로부터 쿠데타 소식을 들었다.당시는 상황판단이 불가능했다.그러나 나는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즉시 친척·동료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통보하고 아내와 가족들에게도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말했다.나는 또 어떤 압력과 위협도 나의 신념과 결정을 바꿀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대통령권한을 부통령에게 넘기라며 나를 맨처음 찾아온 군인들의 요구에 나는 『배후가 누구냐.당신들이 내 입장이라면 권한을 넘기겠느냐』고 반문했다. 소련국민들이 위기에 처해있음을 직감한 나는 『그같은 일이 일어나면 소련시민들이 지도부를 믿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소련국민들의 생활과 민주 자유를 염려한 나는 또 『소련문제는 단지 한두명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관련된 것』이라고 밝히고 『군지도부의 이같은 행위는 전국민에 대한 배반행위』라고 말해주었다. ­외부세계와의 접촉이 가능했는가. ▲나는 불법적인 쿠데타 세력에 대해서 매우 분개했으며 지난72시간동안 외부세계와 완전히 차단되었다.나는 매일 아침·저녁 외부와의 접촉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나는 전화로 외부와의 접촉을 여러번 시도했으나 전화선은 불통이었다.그러나 나는 영국의 BBC방송을 통해 외부상황을알수 있었으며 미국의 소리방송과도 접촉이 가능했다.나는 소련시민과 다른 국가들에게 그들의 결연한 쿠데타 저지에 감사드린다.특히 러시아공화국과 옐친대통령에게 찬사를 보낸다. ­쿠데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쿠데타관련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번사건으로 우리가 외국지도자들과 대화를 통해서 소련국민의 입장이 자명해졌다.소련국민과 군부가 지난10년간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온 사실을 확인하게 해주었다.나는 지금까지 12명의 각국대사들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쿠데타를 통해 나와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수 있었다.따라서 이번 쿠데타는 원시적이며 토속적인 것이었다. 나는 여기에 쿠데타가 진행됐던 상황을 담은 테이프를 갖고 있다.또 그들이 나의 사임을 강요한 문서도 갖고 있다. 나는 20일 문서에 서명했으나 나의 요구를 계속 내세웠었다. 현재 가장 중요한건 나에게 주어진 권한안에서 쿠데타와 관련됐던 장관과 군부인사들을 해임시키고 수사와 그에따른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오늘이미 일부조치가 취해졌으며 이에대한 것은 계속 추진해 나가겠다. 그리고 내일 15개 공화국지도부와 대화를 갖는등 예정된 계획에 따라 현안사항을 처리해 나가겠다. ­공산당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공산당은 완전히 개편돼야 한다. 지도부는 여러가지 면에서 시대에 뒤떨어져 있는 면이 있다. 나는 공산당에서 반동세력을 모두 몰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공산당은 활성화될 것이며 공산당도 페레스트로이카가 지지세력으로 변해야 한다.
  • 「비상위」 강경파 3인 권력전면에/크렘린 실세는 누구인가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푸고 내무/권력중추장악… 「파워트리오」 부상/「대행」야나예프는 「얼굴마담」 인듯 소련 개혁의 기수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몰아내고 최고권력을 차지한 것으로 보이는 「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8인 가운데 누가 실세일까. 고르바초프 실각 이후 서방세계는 잠정적으로 권력장악에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 「비상사태위원회」의 실체 파악에 분주하다. 지난 19일 쿠데타 직후 비상사태위원회는 겐나디 야나예프부통령(54)이 헌법에따라 대통령 직무를 수행한다고 밝혀 일단 야나예프가 소련의 얼굴을 대표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야나예프는 급진개혁주의자인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등 고르바초프의 복귀를 주장하는 개혁지향세력들의 반발과 분리독립을 거세게 요구하고 있는 공화국들의 움직임을 제어,「비상위」가 지키고자 하는 연방체제를 형성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러시아태생인 그는 법률·역사학자 출신으로 지난해 12월 고르바초프에 의해 부통령직에 임명되기 전까지는 중앙정치무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당시 그를 부통령으로 승인했던 인민대표회의는 1차투표에서는 과반수이상이 그를 거부하기도 했을만큼 정치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인물이다. 야나예프가 명목상이지만 대통령직무를 수행하게 된것은 이번 쿠데타의 대외적 모양새를 고려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추측되는 주도세력들이 온건적인 야나예프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이러한 점은 「비상위」가 쿠데타 직후 밝힌 성명에도 드러난다.「비상위」는 성명에서 쿠데타의 정당성을 고르바초프의 무리한 개혁정책으로 인해 피폐화된 경제회복과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공화국들로 인해 무너지는 연방체제 고수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 성명의 내용은 그동안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입지가 상당히 약화된 군부등 보수강경파들이 일관되게 주장해온 것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이번 쿠데타의 실세가 누구인지 엿볼 수 있게 한다. 즉 크류치코프 KGB의장(67),드미트리 야조프 국방장관(67),보리스 푸고 내무장관(54)등 이른바 「보안 트리오」가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으며 앞으로 소련의 대서방정책과 국내경제정책등을 추진하게 될것으로 추측된다. 지난 87년 서독의 루스트군이 소련방공망을 뚫고 모스크바 광장까지 경비행기 세스나기를 몰고와 인책경질된 스콜로프에 이어 국방장관에 오른 드미트리 야조프는 중앙아시아군관 사령관과 극동사령관을 역임했다. 지난해 12월,내무장관직에 오른 푸고는 공산당내 강경파의 선두주자로 지난달 미·소양국의 START(전략무기감축)협정체결과 때를 맞춰 리투아니아공화국 수비대원 7명을 사살한 사건의 배후에 내무부가 개입됐다는 설이 나돌 정도로 과격파로 알려져있다. 크류치코프 KGB의장은 워싱턴 포스트지가 CIA정보를 인용,소련 권력서열 2인자로 부상했다고 보도한 인물로 지난 67년 이래 줄곧 KGB에 몸담아 왔다. 이들 「보안트리오」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인물로 발렌틴 파블로프 총리(53)를 들 수 있다. 재정통으로 보수강경파인 그는 G­7회담에 참석,서방원조를 요구했던 고르바초프를 비난해 서방기업인에게는 요주의 인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들 「보안트리오」외에 이번 쿠데타의 핵심배후세력으로 올레크 바클라노프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거론되기도 한다. 바클라노프는 우크라이나 태생으로 지난 83∼89년 동안에는 우크라이나 하르코프에서 미사일 부품을 만드는 군수공장 책임자 역할을 하기도 했던 군·산복합체의 대표격인 인물. 일본 외무성은 그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군·산복합체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이번 쿠데타의 실세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밖에 바실리 스타로드브체프 농민동맹위원장(59)과 국영기업및 산업시설협회장 티자코프는 농민들과 광공업 종사자들의 동요를 막기위해 이번 「비상위」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보안트리오」등 보수강경파가 주도세력인 이번 쿠데타세력은 군·경찰등 물리적인 힘을 가지고 있지않아 속수무책인 옐친을 비롯한 개혁주창세력을 누르고 당분간은 계속 소련을 장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경제정책에 따라 나타난 경제난을 빌미로 쿠데타를 벌인 만큼 「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쿠데타의 성공여부는 판가름될 것이다.
  • “세모에 「5공특혜」없었다”/검찰,오대양 수사발표

    ◎유 사장 상습사기로 기소 【대전=박국평·최철호·진경호·최용규기자】 「오대양 사건」을 수사해온 대전지검은 20일 주식회사 세모사장 유병언씨(51)와 개발실차장 김기형씨(41)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 기소하고 집단 변사사건을 비롯한 이번사건의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사채 모집책 송재화씨(45·여),개발실차장 안효삼씨(37),사채 모집책 오수형씨(40)등 3명을 같은 혐의로 수배했다. 검찰은 이날 하오3시 담당 검사들이 배석한 가운데 송종의검사장이 발표한 종합수사 결과를 통해 『유씨등이 지난82년 8월부터 84년 6월20일까지 「구원파」신도등을 상대로 고리와 종교적 구원을 미끼로 모두 11억9천6백95만원을 빌린뒤 갚지 않아 상습사기 혐의를 적용,기소한다』고 밝혔다. 검찰은 유씨에 대한 수사에서 5공화국에서의 특혜금융및 한강유람선운항권등 권력층의 비호설에 대해 대검중앙수사부의 협조로 공조수사를 했으나 위법사실이 발견되지 않고 배후로 지목할 만한 세력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발표했다. 또 오대양 집단변사 사건은 법의학 관계자의 소견및 관계자들의 진술·현장사진·정황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피라미드식 자살로 추정되며 자살에 이르게 된 것은 박순자씨등이 채권단의 빚 독촉,채권단 폭행에 따른 경찰의 수사및 직원 암매장사건이 밝혀질 것을 두려워한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 박기평피고 논고문 요지

    피고인은 89년 11월 노동자계급해방투쟁동맹 내에서 사회주의정권 수립을 주장하는 백태웅등 소위 소수파와 함께 노동자계급의 주도하에 무장봉기를 통하여 혁명의 방법으로 현 정부를 전복하고 임시정부를 수립한 뒤 국가기구를 장악하여 민주주의 민중공화국을 수립한 다음 토지 및 생산수단의 국유화등을 통하여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할 것을 목적으로 소위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이라는 반국가단체를 결성,중앙상임위원에 취임하여 그 수괴로 활동했다. 89년12월부터 90년11월까지 사이에 사회주의 폭력혁명을 선동하는 내용인 「1990년 남한사회주의자의 8대 과제」등 유인물·책자를 저술하거나 이를 자체 인쇄소에서 인쇄한 다음 조직망을 통해 전국에 배포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본 사건은 조국의 운명과 발전을 외면하고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힌 피고인등이 정권탈취의 수단으로 공산주의자들의 수법에 따라 국가체제의 전복을 꾀한 사건이다. 특히 피고인등은 공산주의자들의 상투적 조직이론과 투쟁방법을 답습하여 불과 1년이라는 단기간내에 3천여명의 조직원을 포섭하여 전국적인 방대한 규모의 철저한 비밀조직체계를 구축하는 한편,파출소방화등 각종 극렬시위 및 현대중공업파업등 노사분규를 배후조종함으로써 국가체제 전복을 획책했다. 피고인은 법정을 정치선전장으로 활용하라는 사회주의자들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여 본 사건 재판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사회주의를 찬양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안전기획부의 고문에 못이겨 자살을 하려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터무니 없는 주장을 하면서 공권력에 흠집을 내어 공권력을 무력화 시키려고 획책하고 있다. 피고인의 성행에 관하여도 전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습니다.피고인은 그동안 비폭력 노선은 민중에 대힌 테러라고 하면서 폭력사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민중정부수립을 위해 무장봉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서도 당 법정에 이르러서는 자신은 폭력을 가장 증오하는 평화주의자이고 무장봉기는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등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을 늘어놓고 있다. 혁명자금모금 과정에서는 조직원들에게 사기·공갈나아가 강도의 방법까지도 사용하도록 하고 또한 자신이 이를 일부 실행하는 등 비도덕성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사생활에 있어서도 조직원들로부터 거두어 들인 돈으로 혼자서 호화로운 의식주 생활을 하는 등 이미 벌써 사회주의의 필연적인 병폐라고 하는 관료주의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과 같이 피고인의 성행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한 교정을 도모하기 보다는 피고인을 이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킴으로써 더 이상의 사상적 오염을 방지하고 국가의 존립기반을 안정시켜 국가의 보위와 대다수 선량한 국민의 안위를 보장토록 함이 더욱 절실한 요구라고 아니할 수 없다.
  • 국제질서 파장과 크렘린의 진로/긴급대담

    ◎모스크바 정변… 동북아엔 새 변수로/계획된 시나리오… 개혁은 지속전망/세계질서에 또 「불확실성시대」우려/국제무대 영향력행사 한계에 봉착/세계여론 무시 못해 서방과 경협은 계속될듯/군부집권땐 북한과 관계강화 예상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갑작스런 실각은 「신데탕트」로 함축되는 신국제질서의 대변화의 가능성을 예고하고 있다. 지금 전세계는 충격속에서 모스크바의 긴박한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사태는 특히 유엔동시가입을 계기로 한 남북한교류확대및 통일전망에 대해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사단법인 평화연구소 김남식연구위원과 외교안보연구원 서병철교수와의 긴급좌담을 통해 이번 사태가 세계질서와 동북아역학구조및 남북한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진단해 본다. ▲김남식위원=고르바초프대통령에 대한 소련내 보수세력의 제동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소련은 85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집권해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면서 6년여만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습니다.이전까지의 기본노선을 전환해야 할 정도였습니다.사회주의와 상반되는 요소들이 강화되면서 연방국가가 지탱키 어려울 정도의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그러나 이같은 변화가 고르바초프가 원했던 개혁·개방노선이었는가에 대해서는 대부분 소련사람들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것입니다. 소련내부에서는 고르비의 개혁이 애당초 국민적 합의도출에 의한 것이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소련사람들에게 불리한 상태로 간다는데 대해 불만이 팽패해 왔습니다.특히 소련정권이 수립된 이후의 기득권 세력에게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고르비는 개방과 개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다시피 추진해왔습니다.갈등속에서라도 합의과정을 거쳤더라면 괜찮았겠지요. ▲서병철교수=보도가 사실이라면 현 국제질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엄청난 사태라고 하겠습니다.우리가 가장 두려워했고 기피하려 했던 사태라는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고르바초프는 동서긴장완화와 신데탕트의 산파역으로 전인류의 평화정착에 기여했습니다.그의 정책이 완전한 결실을 보기전에 이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세계질서를 또다시 「불확실의 상태」에 빠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고르비가 의욕적으로 추진해 온 개혁·개방정책은 그 이전까지의 강경한 공산주의 이념과는 본질적으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그만큼 저항세력도 많을 수밖에 없었습니다.특히 군부와 KGB는 강력한 억압정치를 통해 소련을 사실상의 초강대국으로 유지시켜 왔으나 그같은 위치마저 흔들리게 된 현실에 직면해서는 보이지 않는 반발을 보여왔습니다.그같은 반발이 이번에 표면화됐다고 하겠습니다.어쨌든 국제질서 뿐 아니라 동북아나 한반도에 대해서도 역학관계의 변화를 점치게 하는 큰 사건입니다. ▲김위원=그러나 보수세력이 주도해 이루어진 사건이라고 하더라도,또 누군가 정권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소련의 대외정책이 근본적인 궤도수정을 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집니다.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책에 맞물려 일어난 동구사태등 탈냉전을 통한 평화질서의 큰 흐름은 거부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이제까지 소련의 개혁·개방정책은대서방 특히 미국과의 관계와 뒤엉켜 추진돼 왔기 때문에 보수세력이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갑자기 변경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태가 소연방의 존속에 대한 위기감과 불투명한 경제·사회발전 전망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사태를 주도한 보수세력도 연방내의 정치적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또 어떻게 하면 소연방을 지켜나가겠느냐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이점에서 고르바초프를 중심으로한 개혁파가 추진해 온 계획에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동감입니다.소련의 개혁정책은 근본적으로 국민생활의 질을 향상시키는데 근본목적이 있었습니다.보수강경파가 정권을 장악하더라도 다른 방법을 통해 국민적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가능성이 없습니다.따라서 고르바초프가 추진해 온 신사고에 의한 대서방협력및 경제개혁정책등은 설사 속도는 늦어질망정 그대로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소련국민들도 강경보수세력에 의한 중앙통제식 경제체제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김위원=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국가들은 종전까지 모든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이를 합리화시키는 이론제시를 선행했습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는 군부등 극우 보수세력들의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개혁·개방에 대한 충분한 설득을 하지 못했습니다.이 과정에서 불만세력들은 무언중 조직화될 수 있었습니다.이번 사태가 신연방헌법 조인을 앞두고 일어났다는 점에서 그동안 참고 참았던 세력들이 오래전부터 계획한 시나리오에 의해 일으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권력을 승계한 야나예프부통령은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생각입니다.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헌법상 절차에 따라 직책을 이어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보수세력들 특히 8인연방위원회는 당분간 내부혼란 극복에 주력할 것입니다.이 점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게도 손을 대지 못할 것으로 봅니다. ▲서교수=군부에 의한 쿠데타라고 하더라도 현재 소련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고려할 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소련이 군비강화쪽에 주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소련은 현재의 군사력을 유지하기 위한 경비조달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또 바르샤바조약기구마저 해체된 현상황에서 소련은 과거 브레즈네프독트린과 같은 방식으로 동구권국가들에 대해서도 간섭할 위치에 있지도 않고 그럴만한 힘도 없습니다.앞으로 소련은 국제정치에 있어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깊은 딜레머에 빠질 것입니다. ▲김위원=이번 사태를 맞고보니 남북한 유엔가입문제가 고르바초프 집권시에 실현된 것만은 무척 다행스럽다는 생각입니다. ▲서교수=그렇습니다.남북교류의 물꼬가 트인 점이라든지 소련과의 국교수립도 마찬가지입니다.아직도 소련내에서는 독일통일에 대해 불만여론이 많다지 않습니까. ▲김위원=동서냉전이 해체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이번 소련사태가 지금까지의 국제적 흐름을 근본적으로 역류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다만 국제적 추세에 비해 평화정세로 바뀌는 상황이 굼뜬 캄보디아·한반도등 아시아지역에 이번 사태가 어떤 영향을 미칠지 크게 주목됩니다. 우선 아시아의 집단안보체제를 통한 평화유지라는 소련측 입장이 고르바초프시대에 정립된 것이 아니라 브레즈네프시대에 마련된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에서 아시아 자체의 상황변화가 없는한 크게 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중국과의 협력관계,특히 안보적 차원의 협력관계는 과거보다 깊숙이 연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같은 맥락에서 소련내 보수세력과 북한과의 관계는 일단 더 가까워질 것으로 보아야 하겠지요. 따라서 만약 소련내에 군부가 주도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혹은 군부가 배후조종하는 정권으로 바뀐다면 소련은 한국보다 북한과의 관계를 중시할 것이므로 남북관계나 아시아안보환경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치리라 봅니다. ▲서교수=소련이 강경노선으로 선회할 경우 과거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일단은 노력할 것으로 봅니다.그러나 대다수 사회주의권 국가들이 이미 공산당 유일체제를 버렸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형태의 소련과의 주종관계는 재현되기 어려울 것입니다.특히 동유럽에서의 대소관계는 고르바초프시대에 방향전환한 그런 상태가 계속 지속될 전망입니다. 한반도문제로 국한해 본다면 북한은 그동안 소련의 신정치의 영향을 받아 총리회담 등을 통해 화해 제스처를 써온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계기로 북한은 지금보다 더 보수·강경입장을 내세울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위원=대소수교를 비롯해 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으로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한소관계의 발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 사태가 터져나왔습니다.우리의 북방정책의 성공은 소련의 대한반도정책이라는 소련측의 요구와 일치됐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정치에 제동이 걸리게 된다면 한반도 정책에도 일정한 변화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서교수=소련내에서는 지금까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대해 반기를 들고 쿠데타를 일으킬 가능성을 갖고 있는 군부를 중심으로 한 반대세력이 엄존한 것도 사실입니다만 소련이 제2·3류의 낙후국으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개혁을 추진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도 또한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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