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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릭이슈] 법정 간 이중섭 위작 논란

    [클릭이슈] 법정 간 이중섭 위작 논란

    이중섭 화백 유작의 진위여부를 놓고 유족과 한국미술감정협회간의 법정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 화백의 아들 태성(56)씨가 25일 부친의 작품에 대해 가짜 의혹을 제기한 한국미술감정협회 관계자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를 하자 한국미술감정협회측도 26일 태성씨와 이 화백의 작품을 경매한 서울옥션 등을 상대로 무고죄로 고발하겠다고 맞대응을 하고 나섰다. 감정협회 최명윤 감정위원은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누가 누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이중섭 화백을 제대로 지키겠다는 차원에서 태성씨를 비롯한 관련자들을 무고죄로 검찰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이번 기회에 누가 이중섭화백을 폄하하고 있는지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엇갈리는 양측 입장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월 한국근현대미술품 경매를 앞두고 서울옥션측이 ‘물고기와 아이’의 감정을 의뢰하자 감정협회가 위작판정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하지만 서울옥션측은 경매를 단행했고 감정협회는 “서명이나 필선이 이중섭 화백의 것이 아니다.”고 거듭 의혹을 제기했다. 그러자 유족들은 “50년 이상 소장해온 것”이라고 맞섰고 감정협회는 “가짜 작품을 가지고 박수근 화백의 가족들에게 접근, 전시회를 갖자고 제의한 조직들이 있다.”며 배후 세력이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고서점에서 이중섭 화백 그림 뭉텅이로 사 이런 논란속에 ‘이중섭 50주기 기념 미발표작 전시준비위원회’를 이끄는 김용수씨가 자신이 소장중인 이중섭 그림 650여점 가운데 50여점을 25일 공개해 논쟁에 불을 붙였다. 한국고서연구회 명예회장인 김씨는 “유족을 통해 가짜 그림을 유통시켰다.”고 감정협회가 지목한 인물이다. 김씨는 서울 중구 신당동 자택에서 이중섭의 수채화, 연필 드로잉, 은지화 등 50여점을 내놓고 나머지 작품은 은행금고에 보관중이라며 ‘진품’임을 강조했다. 김씨는 “70년대 초반 인사동의 한 고서점에서 고서 사는 기분으로 뭉텅이로 구입했다.”며 “당시 이중섭의 그림이 그렇게 비싸고 중요한 것인지 몰랐기에 그런 값에 그만한 양을 산 것”이라며 이중섭 그림의 소장 경위에 대해 설명했다. 김씨는 유족이 50년간 소장한 작품과 김씨 소장품이 흡사하다는 지적에 대해 “이중섭의 그림은 똑같은 것이 많아 내가 일본에 가서 유족에게 그림을 보였을 때 그들도 놀라는 눈치였다.”고 했다. 감정협회가 김씨의 소장품 대부분이 가짜고 현재 경매와 화랑가에 나도는 이중섭 그림의 출처가 김씨라는 의견에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이중섭·박수근 화백 전시회 제의받은 화랑도 있어 강남의 A화랑은 지난해 가을 대구에 산다는 한 남자로부터 “이중섭 화백과 박수근 화백을 포함해 대가들의 그림 1000여점을 갖고 있다.”면서 “전시회가 끝나면 이중섭 화백이나 박수근 화백의 그림 한 점을 주겠다.”는 솔깃한 전시회 제의를 받았다. 이 화랑 사장은 26일 기자와 만나 “전시회에 드는 비용이 2000여만원인데 전시회가 끝난 뒤 적어도 수억원 정도 하는 이중섭·박수근 화백의 그림을 거져 주겠다고 해 의아하게 생각해 화랑협회로부터 감정서를 받고 전시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후 그 남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미술시장 위축시킬까 걱정 미술계에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가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은 “이중섭 화백의 작품 자체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몇십점, 몇백점의 작품들이 나타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서는 “일부 화가는 똑같은 작품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예술성이 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며 진짜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미술계에서는 이번 유작의 진위 공방은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위축된 미술시장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누가 값비싼 작품을 거래하려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번 기회에 제3의 감정반을 새로 구성, 이 화백 작품의 진위를 반드시 가려내자.”고 제안했다. 또 이번 사건이 검찰 소송으로까지 비화됐지만 양측의 주장을 뒷받침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기에 ‘오리무중’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있다. 미술감정이라는 것이 ‘과학감정’보다 ‘안목감정’이 더 중요한 예술분야의 특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할 때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미술 감정전문가는 40∼50명 정도. 이 가운데 권위 있는 감정가는 5명 안팎으로 손꼽을 만큼 적다. 그러다 보니 가짜 그림을 제도적으로 양산하는 시스템을 갖췄다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미술계는 열악한 환경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을 통해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화랑협회에서 지난 2002년 4000만∼5000만원의 예산을 투입, 작가 200여명의 작품 1만 5000여점을 데이터베이스(DB)화한 것이 고작이다. 그것도 지난 82년부터 2001년까지 주로 감정의뢰가 들어온 작품과 화가들을 중심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최 교수는 “화랑협회의 자체 예산이 부족해 화가들의 작품에 대한 DB화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하고 그마저 다 완성하지 못한 상태”라며 “정부 지원과 국가차원의 통합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술시장 활성화를 위해 작가들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지만 감정, 평론등의 분야에 대한 지원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환경 스페셜(KBS1 오후 10시)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주택과 아파트. 촘촘한 쇠창살이 둘러쳐지고,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꽂혔던 살풍경한 도시의 담장이 허물어지고 있다. 세상을 향해 낮추거나 아예 없애버린 담장은 도시와 도시인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가. 담장을 허물고 있는 마을을 5개월여 동안 관찰했다. ●오픈 스튜디오(SBS 오후 4시10분) 맛과 그윽한 향으로 만인의 사랑을 받는 커피. 좋은 커피를 고르는 방법, 특히 노년층에 좋은 커피의 종류를 알아보고 커피가 어른들의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눈으로도 커피를 즐긴다는 라테아트에 이르기까지 커피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박주현의 시사 업클로스(YTN 오후 3시5분) 초·중·고교생의 80% 이상이 학교폭력을 경험했을 정도로 학원이 심각한 폭력에 노출돼 있다. 이에 따라 각 부처별로 대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효과는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건강하고 밝게 자랄 수 있는 방안을 두고 강지원 변호사, 신의진 연세대 정신과교수가 의견을 나눈다. ●책, 내게로 오다(EBS 오후 10시50분) 책 자체가 하나의 놀이라 할 수 있는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을 통해 예술작품에 나타난 20가지의 놀이가 어떻게 상상력으로 연결되어 나가는지를 살펴본다.‘미학 오딧세이’를 비롯해서 ‘미학’에 관한 책들을 많이 써온 진중권씨와 함께 놀이를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이야기한다. ●사과나무(MBC 오후 7시20분) 78년 ‘희자매’로 데뷔해 경력 28년의 베테랑 가수가 된 인순이, 그를 줄기차게 따라다닌 꼬리표는 바로 혼혈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를 혼혈가수로 기억하기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가수라 칭한다. 힘들었던 시절을 겪으며 16집까지 낸 인순이의 인생이야기를 들어본다. ●해신(KBS2 오후 9시55분) 염장이 던진 비수에 중상을 입은 김명을 데리고 자미부인은 황도를 벗어나려 하나, 김양은 자미부인을 살려두면 후한이 될 것이라며 염장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처치하라 명한다. 한편 장보고는 창겸으로부터 김명을 죽이고 그를 따르던 귀족들을 잡아들인 배후가 김양과 김우징이라는 말을 듣는다.
  • [재건축은 ‘비리백화점’] (中)조합과 한통속인 시공사

    [재건축은 ‘비리백화점’] (中)조합과 한통속인 시공사

    재건축 비리를 저지르는 데는 조합·컨설팅사뿐 아니라 시공사도 한통속이다. 조합과 손잡고 건축비를 부풀려 분양가를 올리거나 하도급 비리를 저질러 비자금을 마련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재건축 사업의 모든 과정이 유리알처럼 드러나지 않는다는 허점을 노려 시공사와 조합이 배를 불리는 사이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과 일반 청약자들의 몫으로 돌아오고 있다. ●하도급 비리, 검은돈 창고 재건축 시공권을 따낸 대형 건설사들은 아파트 평당 건축비를 600만∼700만원으로 잡는다. 하지만 시공권을 따낸 대형사들이 직접 공사를 하지 않는다. 공사 종류별로 10여개로 쪼개 이를 작은 업체에 나눠준다. 겉으로는 계약서대로 공사비를 비싸게 쳐준 것으로 돼 있지만 실제는 이중계약서를 작성, 공사비를 후려친다. 수법도 교묘하다. 공사비를 제대로 지급해준 것처럼 꾸미기 위해 세금계산서를 원래 계약서대로 끊어준다. 하지만 추가 지급된 돈에 대해서는 별도의 비밀계좌로 되돌려받거나 돈세탁까지 해서 현금으로 챙긴다. 그러나 이런 과정은 여간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대형 업체에 매달려 일감을 따내야 하는 작은 업체들로서는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이를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건설업계에서는 관행으로 굳어졌다. 한 중견 건설업체 사장은 “주상복합 아파트가 아닌 서울 동시분양에 나오는 아파트의 단순 건축비는 평당 250만∼300원이면 뒤집어쓴다.”고 털어놓았다. 나머지는 분양가를 부풀리기 위해 홍보비, 브랜드 가치, 리스크 관리비, 시행사 이익 등이라고 핑계대지만 거품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만든 돈이 비자금이다. 검은돈은 각종 인·허가와 공사편의를 봐주는 이곳저곳 행정관청으로 들어간다.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조합을 움직이기 위한 기름칠로도 사용한다. 사업에 시비를 걸거나 반대하는 조합원들의 별도 입막음으로도 사용한다. 심지어 설계·감리비도 부풀려 비자금을 조성한다. 심지어 ‘함바’(공사현장 식당) 운영권을 주면서도 거액의 돈을 챙긴다. 한 건축설계사무소 소장은 “연면적 10만평 이상의 아파트 건축 설계비는 대개 평당 4만∼5만원을 받는 것으로 조합과 계약한다. 그러나 이는 세금계산서용이고 실제 건네지는 설계비는 1만 5000원 정도에 지나지 않고 나머지는 조합 간부와 시공사가 나눠가진다.”고 고발했다. ●고분양가 책정, 소비자 피해 최근 사회적 문제가 된 서울 송파 잠실2단지나 도곡2차 재건축 아파트의 분양가 부풀리기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이번 사건은 언론이 신랄하게 비판하고 건설교통부가 사업 절차상의 문제를 들어 칼날을 들이대자 마지못해 분양가를 내렸다. 하지만 업체들은 늘 그랬듯이 분양가를 내리는 시늉에 그쳤고, 구청은 그대로 분양을 승인했다. 분양가를 높이기 위한 수법으로는 건축비를 과다 책정하는 것이다. 아파트를 짓는 데 필요한 공종은 얼개만 그려도 70가지에 이른다. 일반인들이 복잡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악용, 단가를 높여 책정한 뒤 수차례의 하도급을 걸친다. 업체는 땅값과 투입된 건축비, 적정한 이윤을 붙여 분양가를 결정하지 않고 주변 시세에 먼저 맞춘 뒤 분양가를 결정한다. 비슷한 지역에서 건축비가 들쭉날쭉하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땅값을 높게 매기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분양을 시작한 잠실 주공아파트 재건축 분양가의 땅값 비중은 1년 사이에 평당 100만원 정도 차이가 난다. 건축비나 땅값을 시세에 맞춰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는 것이다. 건축비를 부풀리기 위해 동원하는 또 다른 수법은 설계변경. 평형을 조정하거나 없던 시설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토목공사를 하면서 암반이 나온다는 이유로 공사비를 추가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이는 시공사와 조합 간부의 결탁이 수반되고 사업승인권자의 묵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수주 과열전, 또 다른 비리 생산 올해 초 서울 압구정동이나 잠원동 일대 중층 아파트(12층 정도)값 폭등은 대형 건설업체들이 배후에서 무리하게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라는 지적이 많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는 당장 초고층 재건축이 불가능한데도 대형 건설업체가 재건축을 수주하기 위해 최고 60층 규모의 설계도를 그려 주민들에게 제시하면서 분양가가 급등했다. 강남구는 이와 비슷한 내용의 개발기본계획변경안을 서울시에 냈고, 초고층 재건축이 가능한 것처럼 비치면서 금세 값이 뛰었다. 잠원동 한신아파트도 업체들이 초고층 재건축이 가능한 것처럼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다가 마침내 건교부의 제재를 받게됐다. 서울 강남구 논현동 K아파트는 주민들이 재건축파와 리모델링파로 나눠져 있다. 주민들은 층고제한·소형의무비율·개발이익환수제 적용으로 사업성이 없다고 보고 리모델링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으나 D건설사의 배후조종을 받는 재건축조합이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는 후문이다. 류찬희 김성곤기자 chani@seoul.co.kr
  • “한국·양저우 2500년 교류역사 꽃필것”

    “잘 보존된 생태 환경과 특색있는 문화가 어우러진 품격 높은 첨단 국제 도시가 양저우(揚州)가 지향하는 모습이다.” 3000년 고도 양저우의 현대적 변신을 주도하고 있는 왕옌원(王燕文)시장은 25일 “양저우가 ‘대 상하이권’의 주요 배후 도시로서 전기를 맞고 있다.”며 이같이 소개했다. 한·중 여성지도자 포럼 참가를 위해 지난 20일 서울에 온 왕 시장은 중국 전역에서 7명뿐인 여성 시장중 한 명. 그 가운데서 가장 젊은 45세로 인구 470만명의 고도 양저우의 변신을 이끌고 있다.21세기 한·중교류협회(회장 김한규) 초청으로 전·현직 장·차관급 중국 여성 지도자 9명과 함께 방문한 왕 시장은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표적인 차세대 지도자. 중국 남부 거점 난징(南京)에서 대변인격인 선전부장, 공청단 서기 등 요직을 거쳤다.100만명이나 되는 난징지역 청소년 및 청년 공산당원의 조직 관리를 이례적으로 여성 서기가 맡은 점이 중앙정부의 시설을 끌었다. 짧은 커트 머리에 수수한 옷차림, 앳된 용모로 “시장 비서냐.”는 오해도 종종 받았지만 젊은이들과 호흡하며 군중 사이에 파고드는 행정과 지도력을 평가받고 있다. “다음달 양저우∼전장(鎭江)을 잇는 룬양대교가 완성되면 상하이가 2시간 거리내로 들어오고, 상하이∼난징∼양저우로 이어지는 공업벨트 구축이 가속화된다.”면서 “양저우는 상하이 경제권의 주요 도시로서 화동 경제권의 주축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원자재와 기술, 지방 정부의 전폭적인 서비스가 유기적으로 결합, 도약을 거듭하고 있다는 자랑이다. “양저우는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고향이다. 지금도 여러 통로로 장 전 주석이 지역 발전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남다른 고향 사랑과 자부심으로 알려진 장쩌민은 1991년 북한의 김일성 전 주석을,2000년엔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등을 직접 수행해 양저우에 가기도 했다. “양저우는 중국 경제의 중심이던 2500년 전부터 한국과 활발한 교류 관계를 이어왔다. 당나라 과거에 급제, 도지사 등을 지낸 대문장가 최치원이나 장보고, 청나라때 대상인 안치 등 적잖은 한국인들이 양저우에서 활약했다. 최치원 기념관도 있다.” 아시아에선 한국과의 교류를 가장 중요한 사업으로 여긴다는 왕 시장의 소개처럼 양저우는 여수, 제주, 대구 등 3개 도시와 우호도시 협정을, 용인과 자매도시 협정을 각각 맺고 교류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왕 시장은 오는 6월 양저우시 투자유치단을 이끌고 다시 한국에 온다. 이석우기자 jun88@seoul.co.kr
  •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볼프강 벤츠 지음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누구나 한 마디씩 초들 수 있을 정도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고정관념화돼 있다는 반증이다. 탈무드의 지혜로운 민족이니 수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뛰어난 민족이니 하는 찬사로부터 ‘미국 네오콘의 배후세력’ 등과 같은 비난성 지적에 이르기까지 그 이미지는 실로 다양하다. 그러나 유대인에 대한 이미지는 단연 부정적인 것이 주류를 이룬다. 반유대주의의 뿌리는 기독교에서 찾을 수 있다. 유대교도들이 기독교로의 개종을 거부하며 예수 이전의 신앙을 고집하자 기독교도들의 포교적 사명감은 증오로 돌변했다. 유대인에 대한 저주와 사회적 격리는 ‘개종의 열정’이 좌절된 데 따른 반작용인 셈이다. 나아가 19세기에 등장한 ‘근대적 반유대주의’는 인종주의에 기초해 인간의 우열을 규정하는 등 서구 사회의 근거없는 편견을 그대로 보여줬다. 독일 본 대학 반유대주의연구소 소장인 볼프강 벤츠의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윤용선 옮김, 푸른역사 펴냄)는 유럽사회의 유대인에 대한 잘못된 고정관념을 낱낱이 폭로한다. 책은 인종학살이라는 끔찍한 폭력으로 발전한 유대인 혐오가 사실은 별 생각없이 받아들인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준다. 종교적인 이유에서 출발한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교회, 민간에 유포된 이야기, 각종 조형물 등을 통해 전해지고 확산됐다. 이런 편견은 지배집단 사이에서도 별다른 비판없이 수용됐다. 이 책은 안네 프랑크의 ‘상품화된’ 신화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가 눈길을 끈다. 수용소에서 비참하게 죽어간 10대 소녀의 순수한 일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드럽게’ 이지화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한편 이 책은 역자(한국외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교수)도 지적하고 있듯이, 반유대주의 범주에 포함시키기엔 어울리지 않는 사례까지 반유대주의 유형으로 다뤄 의문을 남긴다. 국가 이데올로기로까지 발전한 반유대주의를 별 저항없이 받아들이는 유대인을 혐오한 독일의 유대인 작가 쿠르트 투홀스키의 경우가 바로 그것이다.1만 3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에콰도르 의회, 대통령 축출

    8년째 정정불안이 계속돼 온 에콰도르에서 대통령이 또 바뀌었다. 에콰도르 의회는 반정부 시위가 일주일째로 접어든 20일(현지시간) 직무유기 등의 이유로 루시오 구티에레스(48) 대통령을 축출하고 심장병 학자인 알프레도 팔라시오(66) 부통령을 새 대통령에 취임시켰다. ●8년새 대통령 3명 물러나 1997년 이래 구티에레스를 포함한 대통령 3명이 전부 의회 결의나 쿠데타로 임기중 물러나는 진기록을 세웠다. 구티에레스는 시위대로 둘러싸인 대통령궁에서 군용 헬기편으로 빠져 나와 키토 국제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했으나 시위자들이 공항 주변을 봉쇄, 출국에 실패했다. 브라질 정부는 구티에레스의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고 에콰도르 주재 브라질대사가 21일 밝혔다. 앞서 검찰은 시위대를 무력으로 진압하라는 명령을 내린 구티에레스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군부도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경찰은 무력진압을 포기했다. 의회는 구티에레스가 대법원을 해산하고 독단적으로 비상사태를 선포한 것은 위헌이라며 ‘대통령직 포기’를 위해 헌법 조항에 따라 그를 해임했다고 밝혔다. 구티에레스는 지난해 12월 부패 등으로 자신을 탄핵하려던 야당의 계획이 무산된 뒤 대법관들이 다시 조사하려 하자 이들을 면직했다. 이어 대법관 31명 가운데 27명을 자신에 동조하는 인물로 교체했다. 이후 법원은 구티에레스뿐 아니라 1997년 부패 혐의에다 ‘정신적 결함’으로 탄핵돼 망명중인 압달라 부카람 전 대통령에게도 면죄부를 줬다. 구티에레스는 대법관 해임과정에서 귀국을 바라는 부카람과 뒷거래를 했다는 거센 비난까지 샀다. 시민과 학생들은 13일부터 에콰도르 전역에서 구티에레스의 사임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구티에레스는 15일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시위가 격화되자 하루 만에 비상사태를 풀고 문제가 된 대법원도 해산했다. 시위대는 20일 의사당 건물로 난입, 창문과 의자 등의 기물들을 부쉈다. 이에 구티에레스 지지자들이 총기로 무장하고 의사당으로 몰려와 유혈충돌 일보 직전까지 갔다. 그러나 빅토르 우고 로세로 합참의장은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위 진압을 책임진 경찰청장도 에콰도르 국민과의 대치에 방관자로 있을 수 없다며 사임했다. ●측근비리·부정부패에 국민들 외면 육군 대령 출신인 구티에레스 대통령은 2000년 하밀 마와드 전 대통령을 축출한 군부 쿠데타 당시 배후의 핵심인물이었으나 전면에 나서지 않고 2002년 대선에서 승리, 이듬해 1월 대통령에 취임했다. 초긴축적인 경제정책과 친미정책으로 6%의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가족들과 측근들의 비리로 지지기반은 급격히 무너졌다. 미국은 “사태가 원만히 해결되고 에콰도르 국민들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고 말해, 구티에레스 정권을 외면했다. 팔라시오는 1년 6개월 남은 구티에레스의 잔여기간만 대통령직으로 남아 차기 선거를 준비할 예정이다. 그는 의회에서의 취임 직후 기자들에게 “독재와 오만은 끝났다.”고 말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사설] NSC 개입설로 번진 유전의혹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추진과 관련, 모든 과정이 의문투성이지만 지난해 8월의 행적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철도공사의 전신인 철도청에서 당시 사업을 기안했다. 한나라당 안상수 의원에 따르면 8월16일자 철도청 보고문서에 NSC 외교안보위(이광재 의원)가 사업을 제안했음이 언급되어 있다고 한다. 문서 내용이 맞다면 NSC가 이번 의혹의 배후가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 의원에 이어 NSC측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당시 철도청 차장이었던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은 “허문석 코리아크루드오일 대표의 말을 인용해 옮기는 과정에서 잘못 표기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국가안보를 다루는 최고기관인 NSC가 간여했다는 부분을 제3자 전언을 통해 공식문건에 남겨놓을 정도로 철도청이 어수룩한 기관이었다는 말인가.NSC나 이광재 의원의 항변이 맞다면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뿐 아니라 당시 철도청 고위간부들은 사실상 국민에게 사기를 친 셈이다. 그렇지 않고 정권 핵심을 보호하려고 입을 맞추었다면 더욱 큰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금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을 수용할 의사까지 밝혔다. 이제 몇몇이 은폐하려 한다고 덮어질 단계는 넘어섰다. 작은 거짓말이라도 쌓이면 걷잡을 수 없는 불신을 낳는다. 관련자들은 진실을 밝히고, 잘못이 있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사업입안때 철도청장이었던 김세호 건교부 차관도 본인은 억울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현직을 떠나야 한다. 검찰에 의해 자택 압수수색까지 당한 처지에서 업무가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검찰 수사 결과를 기다리기에 앞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옳다고 본다.
  • ‘트리플 X2:넥스트 레벨 29일 개봉 ’소총급 스토리, 대포급 액션

    29일 개봉하는 ‘트리플 X2:넥스트 레벨’(XXX2:The Next Level)은 액션 하나만큼은 완벽하게 보여주겠노라고 선언한 영화같다.“주인공은 잊어라, 중요한 건 액션!”이라고 외치는 화력 만점의 액션물이라면 일단 감이 잡힐까. 1편 ‘트리플 X’(2002년)를 본 관객에게라면 영화를 귀띔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새뮤얼 잭슨이 첩보국의 간부로 등장해 액션드라마의 배후를 조종한다는 설정은 전편과 마찬가지. 전편에서 신인이었던 빈 디젤에게 주인공을 맡겼듯이 무명 주인공을 기용해 액션을 부각시킨 전략 역시 같다. 주인공은 ‘쓰리킹즈’‘아나콘다’에서 얼굴을 비쳤던 흑인배우 아이스 큐브. 미국 첩보국 NSA의 비밀작전기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장세력의 공격을 받자 NSA국장 기븐스(새뮤얼 잭슨)는 반란음모를 감지하고 이를 캐기 위해 강력한 첩보원을 물색한다. 기븐스에게 발탁된 ‘해결사’는 한때 최고의 해군이었으나 명령 불복종 혐의로 9년째 수감 중인 다리우스(아이스 큐빅). 자유를 얻은 대가로 ‘트리플X’라는 첩보원이 된 다리우스는 국방장관 데커트(윌렘 데포)가 대통령 암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어지간한 액션마니아는 거뜬히 사로잡을 만큼 스크린의 ‘화력’이 막강하다.1분도 조용할 새 없이 이어지는 폭파장면들에 객석 열기도 따라 올라갈 정도다. 빡빡머리 근육질의 빈 디젤이 스키와 스노 보드를 타고 아찔하게 누볐던 스크린이 이번엔 명품 스포츠카의 무한질주와 수상(水上)화력전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전편보다 나은 속편이 나오기가 얼마나 힘든지, 영화는 또 한번 증명한 듯하다.‘007’‘미션 임파서블’류의 첩보물 아이디어를 경쾌한 호흡으로 빌려오기는 했으되 자극적 시각장치의 남발만으로 액션의 흥미강도를 높이기엔 역부족이다. 미 국회의사당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등 전복적 이미지를 심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역시 끝내 애국심을 자극하는 흔한 1인 영웅담으로 그쳐 ‘평균치’ 액션물로 머물고 말았다. 리 타마호리 감독.12세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5)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下)

    1733년 7월 전라도 남원성벽에 괴벽보가 나붙었다. 머지않아 영조 임금이 쫓겨나고 새 세상이 열린다는 내용이었는데 벽보를 직접 작성한 사람은 남원 부자 김영건의 아들들이었다. 이 벽보에는 김씨들의 숙적인 이유성 일가의 이름이 도용돼 있어 이씨들을 모함하기 위해 그랬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그처럼 단순하고 우발적이었을까? ●이여매와 이여진 형제의 이름으로 된 벽보 남원성벽에 내걸린 벽보는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와 숙부 이여진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이 형방은 문서를 읽고 나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에 이런 흉악한 문서에 제 이름 석자를 붙여 걸어둘 바보가 과연 있겠는가? 형방은 박 호장, 최 이방 등과 이 문제를 상의한 다음 이씨 집안과 다투고 있던 김영건 부자에게 혐의를 두었다. 일차로 김영건 부자를 연행한 다음 그 집안을 수색했다. 그 과정에서 벽보의 초안이 발견돼 사건은 싱겁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김씨들이 괴문서의 말미에 이여매 형제의 이름을 적어 놓았다면, 그것은 어처구니없는 실수였다. 그러나 원수의 이름을 빌려 반역의 의지가 명백한 벽보를 붙일 만큼 김씨들은 무지몽매했을까? 벽보를 손수 쓴 김원팔로 말하면 제법 공부를 많이 한 사람으로 그 정도 계산도 못할 만큼 청맹과니는 결코 아니었다. 김원팔 형제가 남문 옆 성벽에 벽보를 붙여두고 집으로 돌아간 직후, 세 사람의 괴한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둘은 좌우에서 망을 보았고 나머지 한 사람은 벽보의 맨 끝에 “이여매와 이여진 씀”이란 글귀를 추가했다. 그 글씨체는 영락없이 김원팔의 것이었다. 하지만 좀더 자세히 살펴 보면 왼쪽으로 좀더 비스듬히 올라간 것이 눈에 띌 만도 했다. 눈썰미가 남다른 이방 최정도는 그 점을 이미 정확히 짚고 있었지만, 그는 누구에게도 필체의 미세한 차이를 말하지 않았다. “사건은 이 정도로 마무리돼야 한다. 만약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다면 남원은 헤어날 길이 없는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려 들어간다. 지금 필요한 것은 사건의 근원적인 규명이 아니다. 확대 수사는 도리어 민심을 뒤흔들어 놓을 뿐이다. 여기서 종결시키자. 더 이상의 불필요한 잡음을 불러일으키지 말고 사적 원한에 근거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마무리하자. 그것이 모두에게 좋다. 어차피 이 세상은 그런 것이다!” 이것이 남원의 사정을 누구보다 꿰뚫고 있던, 아니 18세기 한국사회의 물정을 정확히 파악했던 최정도 이방의 생각이었다. ●김영건 일가를 저버린 지하조직 따지고 보면 그랬다. 조직은 김원팔 일가를 희생양으로 삼기로 작정했다.18세기에는 하삼도만 해도 남원 운봉 함양의 지리산, 부안의 변산, 충청도 계룡산과 오서산, 합천의 가야산 등지를 잇는 지하조직이 결성돼 있었다. 조직원의 수가 얼마나 됐고 조직의 구성이 어땠는지 전모를 정확히 파악할 길은 없지만, 수십 수백 명이 가담한 비밀결사가 존재했던 것만큼은 사실이었다. 그런 지하조직의 최종 목표는 조선왕조를 전복시키고 용화세계 또는 미륵세상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동학에서 말하는 지상천국, 후천세계의 원형이 이미 18세기에 형성되고 있었다. 지하조직은 ‘정감록’을 비롯한 각종 비결을 앞세워 민심을 선동했다. 조직은 나라를 원망하는 각양각색의 인사들을 점조직으로 편성했다. 조직의 활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각처의 부자들을 포섭하거나 도적질을 하기도 했다. 남원부자 김영건 같은 이는 지하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무척 쓸모있는 인물이었다. 김영건은 천민출신이라서 기존의 사회질서를 반대했으며 자금력도 어느 정도 충분한 데다 김원팔과 같이 유능한 아들이 있어 지하조직의 한 귀퉁이를 맡길 만했다. 김영건 자신은 아마 짐작도 못했을 테지만, 지리산에 근거지를 둔 지하조직은 오래 전부터 김영건 일가를 포섭하는 데 큰 관심이 있었다. 일찌감치 지하조직의 지도부는 김영건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남원, 운봉, 함양 일대를 제 손금 들여다보듯 훤히 아는 탁발승들이 바로 조직의 중추였는데,17세기 후반 영건의 어머니 분금이 무작정 노씨 집을 뛰쳐 나왔을 때 지리산에서 굶어 죽지 않고 무사히 남원으로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이 실은 어느 탁발 승려 덕택이었다. 그 인연은 영건이 모르는 사이에도 계속됐었다. 나중에 분금이 아들 영건에게 남긴 유언 가운데 부처님의 원력을 말한 것도 다 그런 사정이 있어서 나온 말이었다. 양반 정 노인의 신분시비 사건으로 김영건은 큰 충격을 받아, 현세를 지배하는 논리에 회의를 품게 된다. 하지만 그는 천품이 온화하고 조심성이 많으며, 이미 노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조직을 위해 물불 안 가리고 희생을 바칠 사람은 못 되었다. 지하조직은 그런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의 세 아들들에게 더더욱 큰 기대를 걸었다. 지하조직은 지도부에 속한 변산의 승려 태진과도 연줄이 있는 최봉희를 시켜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3형제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최봉희는 우선 비결을 가지고 그들을 설득하려 했고, 가장 먼저 그 먹이를 문 사람은 김영건의 막내아들 김원택이었다. 그 덕분에 김원팔과 김원하를 조직에 가담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런데 1732년 가을부터 김원택은 조직을 이탈할 기미를 보이고 있었다. 김원택은 지하조직이 추구하는 목적이 지극히 비현실적이라고 판단했고, 조직 활동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해 김씨 일가의 담당인 최봉희 보기를 꺼려했다. 그는 형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취하고 있었다. 조직은 김원택에 대해 다각도로 회유책을 폈으나 전혀 통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됐다. 조직은 마지막 수단을 고안했다. 김영건 일가에게 괴벽보를 작성해 남원읍성에 부착하도록 지시했다.3형제가 공동으로 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들을 묶어두지 않으면 장차 조직을 관리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게 상부의 판단이었다. 김원팔 형제가 벽보를 붙이는 순간에도 조직은 멀리서 그 광경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런데 현장에 나타난 것은 약속한 3형제가 아니었다. 김원택이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 담당책 최봉희는 상부와 긴급히 상의했고, 그 처방은 간단명료했다. 김씨 일가를 희생시켜라! 그리고 최봉희 넌 멀리 도망쳐라! 우리 조직의 남원 지부는 당분간 활동중지다! 그러나 이 벽보를 계기로 민심을 한 번 뒤흔들어 놓을 것이다. ●김원택과 최봉희의 머리싸움 거슬러 올라가 살펴 보면, 남원의 일부를 담당한 최봉희는 부자 김영건이 가장 사랑하는 막내아들 김원택에게 접근했었다. 최는 세상 물정에 두루 밝은데다 붙임성이 대단히 좋았다. 게다가 남원에선 손꼽히는 양반가문의 후예였다. 집이 가난한 것만 빼놓으면 도무지 나무랄 데가 없는 선비였다. 출신이 미천해 고민하고 있던 김원택 일가로선 그런 최봉희와 사귀게 된 것이 큰 영광이었다. 최봉희의 지식에 매료된 김원택은 장형 원팔과 중형 원하에게 차례로 최를 소개했다. 김원팔 등은 매일 같이 최봉희를 만났고 그 때마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후의를 베풀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마치 최봉희가 김원팔의 식객(食客)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처음엔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최봉희는 김씨 일가의 내면을 완벽하게 통제하기 시작했고, 김원택은 바로 그 점을 못마땅해했다. 그래서 원택은 최가 자기 형들과 함께 만든 필묵계에도 관여하길 거부했다. 그는 두 형과 아버지 김영건에게 최를 멀리하라고 몇 차례 간청하였으나 이미 소용없는 일이었다. 벽보를 붙이는 문제가 집안에서 거론되자 김원택은 최가 배후 인물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가장 충직한 종 남산을 성밖으로 내보내 최봉희가 숨을 만한 곳을 미리 수소문하라고 했다. 만일의 경우 관가에 연락해 최봉희가 즉각 검거되도록 손을 써둔 것이었다. 김원택은 장차 아버지와 형들이 벽보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멸문의 화를 당할 게 너무 억울했다. 만일 집안에 화가 닥치면 최를 비롯한 지하조직도 분쇄되어야 마땅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하조직은 점조직이라 최봉희 위에 누가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원택은 그동안 최봉희에게 들은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모두 정리해 보았다. 문득 변산 승려 태진의 이름이 뇌리에 떠올랐다. 가만히 생각할수록 태진과 최봉희의 관계는 예사롭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건이 터졌을 때 원택은 배후조종자로 태진을 고발했다. ●‘정감록’ 사건의 마무리 김영건 4부자를 비롯해 최봉희, 태진 등은 제각각 검거된 장소와 시각은 조금씩 달랐지만 모두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들은 창덕궁의 정문인 인정문(仁政門)에 설치된 특별수사본부에 끌려가 엄한 취조를 받았다. 때로 국왕 영조가 직접 심문에 나설 정도였다. 제1급 시국사건으로 취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에서 서울까지 끌려가 조사를 받은 사람이 삼사십 명이나 됐고, 전라도 각처에서 일시 검거돼 취조받은 사람은 수백을 헤아렸다. 인정문 앞에선 열흘 넘게 날마다 지독한 고문이 계속됐다. 몽둥이찜질은 기본이고, 인두로 몸 지지기, 정강이뼈 뒤틀기, 무릎 관절 부수기 등은 이를테면 선택사항이었다. 혐의자들은 차례로 단독 심리를 거쳐, 관련자와 대질 신문을 받은 뒤 다시 재심리를 받았다. 중간에 말이 바뀌면 모든 수사과정이 처음부터 되풀이됐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거듭된 고문과 그 중간에 잠깐 끼어든 달콤한 회유, 그리고 교활한 유도신문이 연달았다. 머리 좋고 경험 많은 의금부 관리들을 비롯해 조정대신들 그리고 국왕 영조까지 직접 심문에 나섰기 때문에, 그 자리에 끌려 나온 사람은 여간한 배짱과 지능으로는 조금도 숨기거나 속일 수가 없었다. 며칠만 닦달을 하면 고분고분 모든 사실을 실토하게 되었다. 특히 사건 심리의 초기 단계에는 가능한 모든 범위로 수사가 확대되었다. 털끝만큼이라도 혐의가 있어 뵈는 사람은 연일 추가로 체포돼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김원팔과 그의 아버지 김영건은 고문을 견디다 못해 판결도 내려지기 전에 형틀에서 죽고 말았다. 실상 벽보 사건에 전혀 가담하지 않는 김원택도 맞아 죽었다. 고문을 잘 견뎌 용케 살아남은 이는 김원하였다. 그는 역적의 아들이란 죄로 또다시 두들겨 맞은 다음 변방으로 유배되었다. 이럴 때도 고수는 따로 있었다. 지하조직의 하급간부 최봉희는 사형을 받아 마땅하다는 수사관들의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의 죄를 증명할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지 않아 외딴섬으로 귀양가는 데 그쳤다. 본래 점조직으로 운영된 조직이다 보니 김영건 부자는 최봉희의 윗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들은 수사과정에서 최봉희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했지만, 특수 훈련을 받은 최봉희는 노련했다. 최는 갖은 고문에도 불구하고 지하조직의 비밀은 하나도 노출시키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많은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제침으로써 수사본부를 피곤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수사본부는 최봉희를 미치광이로 규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수사를 매듭지었다. 조직의 거물이자 당시 전라도내에서 이름난 승려였던 변산의 태진은 자신을 변호하기에 충분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남사고 비결’을 소장했다는 점만 인정했을 뿐, 벽보 사건과 무관하다는 점을 끝까지 주장했다. 영조는 “태진의 대답이 범행을 자백한 것이나 마찬가지구나!”라고 하여 태진이 사건에 관련돼 있다고 보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확보하지 못했다. 결국 다른 방법이 없어 태진을 함부로 죽이지 못하고 섬으로 귀양보냈다. ●조정은 지하조직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가? 당시 도승지 홍경보는 영조에게 이런 조언을 했다.“지금 영남 하도(下道, 경상남도)와 호남의 인심이 매우 험악합니다. 만약 수사를 여기서 멈춘다면 괴수들이 비웃을 것입니다. 각별히 헤아려서 연루자를 체포해야겠지만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런 뜻으로 공문을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영조는 홍경보의 말이 옳다며 민심을 자극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수사를 계속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수사는 불가능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하조직에 음양으로 관련돼 있었던 데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사정이 조금만 더 악화되면 조직에 대거 참여할 기세였다. 이런 판국에 혐의자들을 함부로 붙들어다 고문하게 되면 조정이 정말로 우려하는 반란 또는 폭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그야말로 혹 떼려다 혹 붙인다는 말처럼 될 수도 있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관리들은 자신들의 임기에만이라도 그저 별일 없이 조용하기를 바랐다. 얼마나 애를 써서 얻은 벼슬자리인가. 아직 본전을 다 뽑지도 못했는데 만일 난리가 일어나 벼슬을 놓치게 되는 일이 생겨선 절대 안 될 일이었다. 그래서 그들 관리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 “엄히 조사를 해봤습니다만 별탈은 없는 듯합니다. 백성들이 불안해서 생업을 소홀히 하는 일이 없도록 이제 수사를 종결해야 됩니다. 이번 사건은 배후에 무슨 특별한 조직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저 시골의 무식하고 못돼 먹은 반역자 김영건 4부자가 사적인 원한으로 엉뚱한 짓을 벌인 것입니다.” ●영조의 선택 영조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그 또한 알고 있었다.“역적 놈들은 과인의 목을 요구한다. 놈들은 이 나라가 망하기만 바라고 있다.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사건을 축소해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처리하는 것이 제일이다. 이것은 일부 몰지각한 놈들의 소행이라고!” 결국 왕의 생각이나 조정대신들, 지방관들의 뜻은 남원 이방 최정도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렇게 둘러대긴 했지만 왕의 마음은 께름칙했다. 하필 왜 남쪽 지방, 그것도 전라도에서 이런 고약한 무리들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왕은 자기의 친어머니가 전라도 출신의 미천한 나인인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더욱 산란했다. 그는 불편한 심기를 완전히 눅이지 못한 채 목청을 돋워 각도의 관찰사들을 독려했다. “전라도는 우리나라에서 잡술을 가장 숭상한다고 들었다. 근래 태진이란 중놈의 예언서를 보면 그 폐해의 심각성을 알만 하다. 예언서를 엄금해야 한다. 너희들 휘하의 지방관들에게 명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이 일체 그런 불온서적에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라. 삿된 경전(邪經)을 버리고 성리학에 힘쓰게 하라.” 왕은 ‘정감록’에 대한 이데올로기 전쟁을 선포했다. 그러나 낡은 성리학으로 ‘정감록’을 이길 수 있을까.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영종도 570만평 개발 힘겨루기 2R

    영종도 570만평 개발 힘겨루기 2R

    공영개발이 추진중인 인천시 중구 영종지구 570만평에 대해 주민들이 다시 민간개발을 주장하고 나서 파란이 일고 있다. 지난 2003년 개발방법을 놓고 한차례 마찰이 있었으나 공영개발 사업시행자인 토지공사가 최근 토지주들로부터 비축토지 매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들이 반발, 개발방식을 둘러싼 힘겨루기‘2라운드’가 전개되고 있다. ●민간개발서 공영개발로 전환 인천시는 2001년 영종도 중산·운서·운남동 570만평에 대해 토지주들이 조합을 구성해 민간개발을 하도록 권유했다. 인천국제공항 개항에 맞춰 주로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이 일대를 주거·상업중심지로 조성하기 위해서였다. 공항 배후지역과 신도시 등이 당국 주도로 개발이 추진되는 만큼 원주민 지역마저 공영개발하기에는 재원 등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3개 동 11통 800여가구 주민들이 거주하는 이 지역은 논·밭과 구가옥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에 따라 토지주들은 지역별로 16개 조합을 구성하고 개발추진을 위한 용역을 실시하는 등 자체개발에 돌입했다. 하지만 2003년 영종도 전체가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시는 돌연 기존 방침을 번복하고 공영개발로 전환했다. 민간개발시 난개발과 주민간의 갈등 등 각종 부작용이 우려되고,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기에 전문기관에 의한 체계적 개발이 필요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따라서 토지공사와 시 산하인 인천도시개발공사가 9대 1의 지분으로 공영개발을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조합을 결성해 인가 직전까지 절차를 밟은 주민들은 당연히 반발했지만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에 묻혀버렸다. 주민들 사이에는 불확실성이 있는 자체개발보다는 공신력있는 공공기관에 의한 개발이 차라리 낫다는 심리도 엿보였다. ●비축토지 매입으로 논란 재개 사그라든 ‘불씨’는 토지공사가 비축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비축토지 매입이란 토지를 보상을 통해 정식 수용하기에 앞서 사거래 형식으로 우선매입하는 것이다. 국내 첫 사례로 토지확보의 거점을 마련하고 돈줄이 마른 토지주들을 배려한다는 차원이다. 지난달 21일부터 3월말까지 신청을 받은 결과 44건 77개 필지 16만 8000평이 응했다. 자금사정이 좋지 않거나 금리 증가를 우려한 외지인이나 법인이 주로 신청했다는 것이 토공측의 설명이다. 주민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비축토지 매입가다. 토공측이 매입가격을 감정가로 적용하려 하자 주민들은 “비축토지를 헐값에 사들인 뒤 나중에 있을 보상의 기준으로 삼으려 한다.”고 의심한다. 오는 5월쯤 나올 감정가는 공시지가(평당 30만∼40만원)에 50% 정도를 더 얹어주는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주민들은 추정한다. 주민들은 내심 평당 150만원 선의 보상을 기대해 왔다.1989년 영종도가 옹진군에서 인천시로 편입된 이후 건축규제를 받아왔고, 당국이 2002년 난개발 방지를 위해 시가화조정구역으로 지정한 이래 토지거래 제한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 정도는 되어야 그동안의 손실을 보상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민간 조합에 의해 환지(換地) 방식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운서지구(10만평)의 경우 체비지(토지구획정리사업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환지에서 제외한 땅) 공개입찰에서 주거지가 평당 300만원 선에 팔린 것도 기대심리를 부추기고 있다. 보상이 늦어지고 있는 것에 대한 불만도 대단하다. 박모(48·중산동)씨는 “당초 오는 10월 보상을 실시한다고 해 놓고서 내년 말로 미루더니 이제는 2007년 얘기까지 나온다.”고 불평했다. 이에 따라 토지주들로 구성된 ‘영종지구 570만평 개발주민대책위원회’는 조만간 민간개발로 전환할 것을 요구하는 건의서를 인천시 및 관계기관에 보내기로 했다. 주민들은 지난달 21∼25일 토지공사 인천본부를 찾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주민들은 오는 8월 영종도 금산으로의 이전이 예정된 송도미사일기지에 대한 반대운동도 이와 연계해 다시 부각시킬 방침이다.‘영종발전협의회’ 채기석(50) 회장은 “주민들간에 ‘더이상 속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면서 “전에 조합을 결성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민간개발도 무리없이 진행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주민들의 요구는 선수치기 토공 및 인천시는 주민들의 민간개발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미 관련법을 토대로 사업시행자까지 정해져 국가사업 차원으로 공영개발이 진행되는 상황에서 민간개발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토공은 이번에 불거진 주민들의 불만을 일종의 ‘전략적 시위’로 보고 있다. 즉 보상을 앞둔 시점에서 목소리를 높임으로써 보상협의시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으로 판단한다. 아울러 비축토지 매입가격 논란과 관련, 보상과 비축토지 매입은 평가기준 및 시점이 다름에도 지레 보상가가 낮을 것이라고 짐작하는 것은 속단이라는 것이다. 토공 관계자는 “올해 공시지가가 30% 가량 오르는 등 공시지가가 상승 추세에 있고, 정부 차원에서 토지수용가를 시세에 근접시키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주민들이 불이익을 입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절충점 찾겠다 하지만 토공측은 민원 해소 차원에서 부분적인 환지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즉 전체적인 개발은 공영개발 방식으로 추진하되 일부 토지에 한해 토지구획정리사업에 적용하는 환지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지 방식이란 토지주가 소유한 부지면적에서 체비지와 공공용지(도로·공원 등) 지분을 제외하고 나머지 땅을 토지주에게 돌려주는 제도. 반환율이 대략 50% 수준이나 개발로 인해 토지가치가 크게 높아져 토지주는 이익을 보게 된다. 토지공사 인천본부 관계자는 “환지 방식은 경제자유구역 사업시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의 절충점이지 민간개발로 전환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토공측은 ‘환지개발방식 관련용역’ 결과가 나오는 대로 관련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도입 여부를 올 연말까지 결정할 계획이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中정부, 시위대 방조… 외교카드 활용”

    외신들은 중국에서 3주째 계속된 주말 반일시위를 배경과 함께 비중있게 다뤘다. 일부 외신들은 중국이 통제사회인 점을 지적하며 정부의 ‘방조’는 지역 패권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속내를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18일 “중국 전역에서 일어난 반일시위는 과거 같았으면 계획만으로도 체포감”이라며 “때문에 (중국)정부가 배후에서 시위를 조종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동시에 시위가 폭력화하는 것은 중국 정부가 고조되는 주민들의 반일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일지 모른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면서 중국 정부가 반일시위를 지역 외교주도권 쟁탈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공영 ARD방송은 “중국인들의 격렬한 반일시위는 일본의 전쟁범죄 규명 미흡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지만, 배경에는 중·일간 아시아 패권 다툼이 자리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프레드 하이야트 주필은 18일자 기명 칼럼에서 오히려 과거 역사에 대한 중국의 이중잣대를 비난했다. 하이야트는 “중국은 자국 교과서에 대약진운동 당시 3000만명이 굶어 죽었고,1989년 톈안먼사태 때 사망자가 발생한 사실은 물론 티베트 침공(1950년), 베트남 공격(1979년)을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뒤 역사에 대한 공개 논쟁이 불허된 중국보다는 공개 토론이 허용된 일본에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한편 반일시위가 휩쓸고 간 뒤 상하이에 사는 외국인들이 동요하고 있다. 한 미국인 강사는 “국가간에 신경전을 펼 수는 있지만 이를 빌미로 자국에 사는 외국인들을 공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했다. 김균미기자 외신 kmkim@seoul.co.kr
  • “박동선 배후는 갈리 전총장”

    유엔의 ‘석유-식량 프로그램’ 비리 의혹에 연루된 박동선(70)씨 배후에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이 있는 것으로 미국 검찰이 보고 있다고 16일 뉴욕 포스트가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미 검찰은 박씨가 지난 1993년 제네바에서 갈리 전 유엔 사무총장과 타리크 아지즈 당시 이라크 외교장관의 만남을 주선한 것이 이번 비리 사건의 단초가 된 것으로 보고 있다. 신문은 주 초 연방 대배심이 작성한 기소장을 인용, 이라크 정부로부터 대가를 받은 유엔 고위 관리는 모두 2명으로, 이중 ‘넘버 원’으로 명명된 한 사람이 박씨와 이라크계 미국인 사미르 빈센트가 주선했던 제네바 모임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기소장은 이 제네바 모임이 경제제재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비밀스러운 노력’에 있어 ‘뼈대가 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신문은 또 검찰이 ‘넘버 원’ 관리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93년 6월21일 갈리 당시 유엔 사무총장이 제네바에서 아지즈 장관을 만나 이라크에 인도적 필요에 따라 16억달러의 석유를 팔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이라크의 유엔 제재 준수 문제를 함께 협의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또다른 유엔 고위 관리 ‘넘버 투’의 아들이 운영하는 캐나다 회사에 이라크로부터 건네받은 100만달러를 투자했다 손실을 본 것으로 기소장에 기재돼 있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한편 국내 체류설과 말레이시아 출국설이 돌았던 박씨는 지난 14일 오후 출국, 현재 일본 도쿄에 체류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박씨는 국내 한 언론과 회견에서 “미국 검찰의 수사는 부패한 유엔 관리를 겨냥한 것이지 나를 겨냥한 것은 아니다.”며 자신은 미국 검찰로부터 제의받은 유죄 인정 플리바게닝을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⑥- 현대백화점

    현대백화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3남인 정몽근(63) 회장이 이끌고 있다. 9남매(8남 1녀) 가운데 작고한 몽필씨를 제외하면 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에 이어 두번째 ‘큰 형님’이지만 MK(몽구),MH(몽헌),MJ(몽준) 등 이른바 3M으로 불리는 화려한 다른 형제들에 가려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이 거의 없다. 원래 나서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인 데다 처음부터 전문경영인 체제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이래저래 세간에서 멀어진 ‘황태자’가 됐다. 하지만 현대백화점의 역사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친의 후광으로만 생각하지 못할 정 회장의 ‘몫’이 있다. 역시 ‘왕 회장’의 아들답게 때로는 부친과의 담판을 통해 새 사업을 추진하고, 때로는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경영상의 문제들을 다른 형제들과 대화로 풀어내며 회사를 일궈왔다. 그가 1974년 현대백화점의 전신인 금강개발산업주식회사를 맡을 당시 회사는 현대그룹 주력사인 현대건설의 외곽 지원업체에 불과했다. 개발시대에 쭉쭉 뻗어나가던 현대건설이 진출하는 국내외 현장에 식품과 의복 등 잡화류를 공급하고 동부이촌동 등 6개의 금강슈퍼마켓 등을 운영하던 작은 회사였다. 하지만 현대백화점그룹은 현재 주력사업인 백화점외에 홈쇼핑, 지역케이블 방송사업 등 계열사 20개를 거느린 유통그룹으로 우뚝 섰다. 지난해 매출이 5조 2500억원, 영업이익은 3300억원에 이른다. ●부친 설득해 한강가에 세운 명품백화점 현대백화점 사람들은 정 회장을 사실상의 창업자라고 말한다. 다른 형제들이야 자동차, 중공업 등 부친이나 삼촌들이 키워온 중후장대한 기업을 물려 받았지만 정 회장의 출발은 그들과 다르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한 임원은 “기껏해야 현대건설의 하청업체 수준이었던 회사가 그룹사로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한 것은 바로 1985년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을 지으면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그룹의 모태가 된 압구정 본점을 짓고 그 이후 이윤을 남겨 1988년 무역점을 짓고 또 다른 백화점을 문여는 등 새 점포가 늘어나면서 지금의 그룹사로 발전된 것이라는 얘기다. 70년대 중반 이후 압구정동은 대규모 현대아파트단지가 들어섬에 따라 건축법상 근린상가를 의무적으로 지어야 했다. 당시 현대아파트의 건설주체인 한국도시개발(현대산업개발)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업체에 백화점 진출 의사를 타진했으나 반응은 시큰둥했다. 당시 아파트만 덩그러니 서 있고 배나무 밭으로 황량했던 이 곳은 상권이 형성되지 않아 누가 봐도 백화점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았다.“현대가 백화점 사업에 성공하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극언을 서슴지 않던 기업인이 있을 정도였다. 이 때 정 회장은 백화점 진출 의사를 밝혔다. 예상대로 그룹 안팎의 반대에 부딪혔다.“현대가 유통경험이 없는 데다 아파트 단지 배후에 한강이 흐르고 백화점 옆에 고가도로(동호대교 연결)가 가로지르는 등 사업 타당성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일본 도쿄에 있는 다카시마야 백화점 후다코다마가와점의 성공을 예로 들며 부친을 적극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 백화점은 현대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주변에 강이 흐르고 부촌에 자리잡고 있어 입지 여건이 비슷했다. 정 회장은 청운동 본가를 찾아가 사업 보고서를 보이며 백화점 사업을 고집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왕 회장도 아들의 집념 어린 설득에 결국 사업 참여를 결심했다. 현대가에서는 이를 두고 “몽근이한테도 이런 사업에 대한 의지와 추진력이 있었느냐.”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는 후문이다. 1997년 외환위기때 정 회장의 뚝심이 발휘된다. 다른 유통업체들이 구조조정을 하며 신규 출점을 주저하고 저가 정책을 추진할 때 정 회장은 오히려 거꾸로 가는 정책 결정에 손을 들어줬다.98년 부도위기에 놓인 서울 신촌 그레이스백화점을 인수해 신촌점으로, 울산 주리원 백화점 2곳을 인수해 울산점으로 탄생시키고, 서울 천호점도 문 열었다. 최고급 인테리어와 상품을 앞세워 ‘명품 백화점’임을 일반에 각인시키며 고급화 전략을 폈다. 이같은 정 회장의 역발상 기조에 대해 당시 유통의 흐름을 거슬렀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부에서는 이런 정 회장의 정면 돌파형 리더십이 현대백화점의 성공 기반이 됐다고 평가한다. ●삼국지 꿰뚫는 ‘리틀 왕회장’ 정 회장의 이런 일면은 평소 삼국지 등 각종 전략 서적을 즐겨 읽는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는 신규 백화점 출점후 임원들과 갖는 자리에서 ‘적벽대전’ 등 삼국지에 나오는 얘기들을 즐겨 인용한다. 중국 삼국시대 양쯔강 남안에 있는 적벽에서 위나라 조조가 오나라의 손권, 촉나라의 유비 연합군과 치른 전투 내용을 줄줄이 꿰며 승전 전략을 소개한다. 현대백화점의 한 임원은 “정 회장은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 이름과 전투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한다.”고 전했다. 그는 실제로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 형상이다. 골격이 큰 몸집에 굳게 다문 입, 솥뚜껑처럼 큰 손과 발은 여지없이 현대가의 혈통을 지닌 남자임을 보여준다. 나이 들면서 얼굴에 돋아나는 검버섯과 걸음걸이를 보면 부친인 왕 회장과 흡사하다.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는 스타일도 마찬가지다. 세간에는 한때 ‘건강 이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매일 오전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내에 있는 백화점 본사 4층 회장실에 출근, 굵직한 사업의 방향타 역할을 한다. 서울 시내 6개 백화점과 중동점 등 7개 백화점 가운데 하루에 2∼3군데의 백화점을 순시하는 이른바 ‘점 순회’도 마다하지 않는다. 한 점포당 30분 정도 걸린다. 비슷한 시간대에 항상 나타나는 정 회장을 보고 매장 직원들이 인사하면 “어잇!”하며 꼭 화답을 한다. 매일 출근하다시피하니 직원들도 정 회장을 낯설어 하지 않는다. 매장을 지나다 고객들을 만나면 먼저 지나가도록 자신은 비켜 서는 서비스 정신도 몸에 배었다. 정 회장의 현장 중시 스타일도 부친과 닮은 꼴이다. 백화점 신축 공사 현장에는 늘 그의 발걸음이 닿는다. 공사장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안전모를 쓰고 있는 그의 모습은 마치 ‘왕 회장’을 보는 듯하다고 현대백화점 맨들을 말한다. 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항상 대화로 풀 것을 강조한다. 한번은 건설 현장에서 이뤄진 브리핑 도중 간부들간에 이견이 생기자 정 회장은 “여러 사람의 의견이 함께 반영되는 것이 최선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정 회장은 투박한 외모와 달리 자상한 편이라고 주변 사람들은 얘기한다. 백화점을 둘러보아도 상품이 진열돼 있는 멋진 매장보다 주차장, 식품 작업장 등 구석진 곳을 먼저 찾는다. 어려운 여건속에서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봉투에 넣지도 않고 자신의 지갑에서 20만∼30만원씩 꺼내 “소주에 삼겹살이나 하라.”며 격려금을 건넨다. 다음날 이들을 만나면 “회식 잘 했냐.”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지난해 정 회장 생일에는 시내 모음식점에서 전·현직 임원들을 초청, 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이날 정 회장 부부는 물론 장남 지선씨 부부도 나서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또 ‘주차장 제일론’을 갖고 있다. 임원들이 상품과 서비스, 매장 환경을 중요시한다면 정 회장은 임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설은 주차장”임을 내세운다. 현대백화점 목동점·미아점의 주차장 진입로 폭이 다른 백화점과 비교해 훨씬 넓은 것은 여성 고객들을 위해서다. 주차장 하나에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라.”는 정 회장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셈이다. ●황산덕가(家) 손녀 며느리로 맞아 경복고, 한양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정 회장은 현대그룹 회장 비서실에서 평사원으로 있던 우경숙(54)씨와 결혼, 슬하에 지선(33), 교선(31) 등 2남을 뒀다. 부친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여성스러우면서도 야무진 외모에 차분하고 깔끔한 성격의 우씨를 내심 며느리감으로 점찍었다는 후문이다. 우씨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으로 부친은 우호식 전 현대그룹 고문이다. 우씨는 중앙여고를 졸업했다. 장남 지선씨는 경복고와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현대가 3세들이 대부분 미국 유학파이듯 그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촌형제들 가운데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외아들 의선(35)씨와 가깝다. 아무래도 지선씨가 손아래 동생이다보니 의선씨로부터 사업상 조언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사업외에 여러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다. 지선씨는 고교 동창의 소개로 만난 동갑내기 황서림씨와 2001년 10월 정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에서 결혼, 장남 창덕(1)군을 두고 있다. 서림씨는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로 서울예고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성격이 활달하고 대인관계가 좋아 선후배와 교수들 사이에 인기가 많았다.”고 기억했다. 지난 97년 삼성문화재단이 선정한 문화예술인재로 뽑혀 장학금을 받으며 미국 뉴욕대에서 미술관 경영을 전공했다.99년부터 1년간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인 뉴욕 근대미술관 뉴미디어 부서에서 부지배인을 맡았고,2000년 3월부터 5개월 동안 세계적인 일본 멀티미디어 작가 마리코 모리의 스튜디오 조교를 지냈다.2000년 7월부터 뉴미디어와 교육 인터넷사이트에서 웹 프로듀서로 근무하기도 했다. 지선씨는 서림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아내로 맞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특히 밝고 쾌활한 성격을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서림씨 역시 정 부회장의 과묵하고 남자다운 면이 좋았다고 한다. 교선씨는 경복고, 외국어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뉴욕 아델파이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땄다. 대학시절 청바지와 면티를 입고 다니는 등 소탈하게 생활해 같은 학과 친구들조차 그가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현대가의 3세라는 사실을 몰랐을 정도다. 같이 학교를 다닌 친구들에 따르면 지갑에 돈도 별로 없이 구내식당에서 밥먹고 버스를 몇번씩 갈아타고 통학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했다. 부드러운 성격에 논리도 갖춰 친구들 사이에 이견이 생기면 중재역할을 맡곤 했다. 한때 미대 진학을 고려 했을 정도로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2녀 중 장녀인 승원(30)씨와 결혼식을 올렸다. 승원씨는 이화여대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치과대에 다녔던 재원이다. 교선씨와 승원씨는 학교가 같은 미국 뉴욕에 있어 유학시절 자연스럽게 1년6개월 정도 사귀었다. 현대가와 사돈을 맺은 허 부회장은 32년간 스프링과 차량 시트 등 자동차 소재의 국산화에 앞장선 자동차 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의 오너겸 전문경영인이다. 연 매출 3600억원 정도다. ●현대백화점 이끄는 파워 엘리트 하원만 현대백화점사장은 1978년 입사해 기획·관리·영업·구매·마케팅 등 백화점 업무를 두루 거쳐 2003년 1월 현대백화점 사장에 오른 백화점통이다.“백화점은 물건을 파는 곳이 아니라 생활문화를 제안하는 곳”이라는 철학을 갖고 있다. 다른 업체들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라이프 스타일리스트 현대백화점’을 새 전략으로 내걸고 있다 부드러운 외모이지만 승부욕과 추진력을 갖췄다는 평이다.“음식재료나 요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식품 책임자를 할 수 있냐.”며 지난해 식품 책임자 전원을 요리학원에 다니게 했다. 또 여성 심리를 모르고는 유통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며 직원들에게 여성 심리를 알 수 있는 책 읽기와 ‘엄마를 잡아라’나 ‘왓 위민 원트’와 같은 영화 감상도 권하는 섬세한 스타일이다. 지난해 백화점협회장으로 취임, 일본백화점협회와의 68년 만의 교류방문 등을 펼치고 있다. 경청호 현대백화점 기획조정본부 사장은 영업·관리·기획 등 백화점의 주요 포스트를 두루 거쳤다.2003년 부사장을 달고 현대백화점그룹 경영지원실장을 맡아오다 지난 1월 경영지원실의 기능과 역할이 대폭 강화되면서 기획조정본부 사장을 맡고 있다. 기획조정본부는 그룹내 투자·인사 등 주요 핵심 업무를 조정, 통합하는 조직으로 다른 대기업의 구조조정본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최근 경기침체로 인한 유통업계 불황 타개를 위해 구조조정의 중추적 역할을 맡기도 했다. 회사내 권위, 형식, 온정주의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 사장은 평소 메모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기억력이 비상해 보고하는 임직원들이 땀을 흘릴 정도다. 열가지 사안을 한가지로 압축해 신속정확히 처리하는 업무방식과 건강 및 체력관리 등 자기관리가 워낙 치밀해 빈틈이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간부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는 회식자리에서는 위트나 유머로 웃음바다를 만들곤 해 인간적 매력도 있다는 평이다. 김태석 현대백화점 H&S·현대푸드시스템 사장은 78년 현대백화점에 입사해 경리·회계·재무 등 관리 및 지원업무를 거쳤다. 지난해 말까지 백화점 영업본부장직을 맡다가 올부터 현대백화점H&S와 현대푸드시스템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맡고 있다. 김 사장은 일, 생활 모든 면에서 폭이 넓은 CEO이다. 특히 진솔한 대화를 통한 친화력있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일본 전국시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야기를 다룬 ‘대망’을 임직원들의 필독서로 권한다. 김 사장은 임직원들이 자기 업무에 자긍심을 가질 것과 직무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 취득을 독려하는 등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광균(부사장) 한국물류 대표는 74년 현대그룹에 입사, 현대백화점 천호점장·무역센터점장·현대백화점 H&S 대표이사를 거쳤다. 낙후된 물류 시스템을 바꿔 유통 경쟁력을 높이는 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반백의 머리와 걸쭉한 목소리로 처음 만나는 사람도 오랜 지기처럼 느껴지게 하는 친화력을 갖고 있다. 홍성원(부사장) 현대홈쇼핑 대표는 현대그룹 종합기획실 출신으로 ‘열린 CEO’라는 의견수렴 제도를 운영, 현대홈쇼핑의 무형상품 경쟁력을 높이는 데 성공했으며, 홈쇼핑업계의 후발주자로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매일 새벽 집 근처 산 바위에 앉아 하는 명상으로 하루를 연다. 명상에서 얻은 업무 관련 아이디어를 감성적으로 표현한 일일쪽지를 이메일 형태로 아침마다 전직원에게 보내 새로운 업무 활력을 제공한다. 최신 유행가도 따라 부르고 패션 감각을 갖고 있으며 젊은 직원들과도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눈다. bori@seoul.co.kr ■ 장남은 백화점, 차남은 H&S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의 후계 구도는 마무리 수순을 밟고 있다. 정 회장은 이미 오래전부터 두 아들에게 백화점 관련 주식을 증여하며 자신의 지분을 계속 축소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장남 지선(33)씨는 현대백화점 지분 15.72%에 현대푸드시스템의 현대백화점 지분 4.3%를 더해 사실상 20.02%의 백화점 지분을 확보, 최대 주주가 됐다. 차남 교선(31)씨도 지난해 처음으로 부친으로부터 현대백화점 H&S의 주식 56만주(10%)를 증여받아 2대 주주가 됐다. 지선씨는 현대백화점, 교선씨는 현대백화점 H&S로 형제간에 경영권 관할이 가시화된 것이다. 현대백화점 H&S는 여행사 현대드림투어와 기업들의 명절 선물사업을 하는 백화점 특수판매 회사로 이뤄져 있다. 지선씨는 2001년 현대백화점 기획실장(이사)으로 기획·인사·재무·조직관리 등 핵심 업무를 두루 맡아왔다.2003년에는 그룹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부회장 직함을 달면서 지선씨는 전문 경영인 체제로 운영되던 백화점 경영에 점차 자신의 목소리를 내며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백화점 등 계열사들을 세차례에 나눠 한달에 한번씩 경영전략회의를 직접 주재하고 계열사의 투자·인사는 물론 업무 조정·통합 역할까지 진두지휘한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여전히 경영수업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 부회장은 실질적으로 그룹 경영 전반에 걸쳐 부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선씨는 부회장이 되자 마자 어려움에 처했다. 경기침체로 백화점 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현대백화점은 다른 유통업체와 달리 할인점이 없는 사업구조와 신규사업 진출 부진으로 미래 성장성이 약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정 부회장은 최근 회사의 미래성장 엔진 발굴에 적극적인 자세를 강조한다.“유통이든 유통이 아니든 수익을 내 회사에 도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신사업에 대해 적극적으로 검토하자.”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회사 역량 강화를 위해 외부 자문도 구하라.”는 제안도 했다. 그렇지만 “사업을 하다보면 구름도 끼고 햇볕도 드는 것”이라면서 자신감을 보이기도 한다. 또 지난 1월 조직개편을 단행, 기존의 경영지원실을 기획조정본부로 승격시키며 조직 장악에 나섰다. 사회공헌 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최근 경영전략회의에서 ‘매칭그랜트’제도 도입을 지시하기도 했다. 임직원이 매달 봉급에서 일정 금액을 자발적으로 기부하면 회사에서도 그만큼의 금액을 출연해 사회공헌기금을 마련하는 이 제도는 유통업계에서는 처음 시도됐다. 정 부회장은 사내에서 “과묵하면서도 매우 꼼꼼하고 생각이 깊다.”는 평을 듣는다. 주요 회의에서도 다른 임원들의 의견을 경청한 뒤에 소신껏 자기 의견을 제시한다. 소수의견이라도 타당성이 있으면 흔쾌히 수용하고 정책방향을 수정하는 합리적인 스타일이다. 정 부회장은 가장 존경하는 사람으로 아버지를 꼽는다. 올해 계열사별 신년 업무 브리핑 이후 간부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버님은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상대방의 얘기를 듣는 스타일로 나도 아버지처럼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웬만해서 지치지 않는 강인한 체력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자산이다. 동생 교선씨는 지난해 1월 경영지원실 산하 경영관리팀장(부장)을 맡은 데 이어 올해 기획조정본부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 수업을 하고 있다. 일을 배우는 단계여서인지 매사에 열심이다. 형 지선씨보다 선이 굵고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이라는 얘기를 듣는다. 이들 형제는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사 사무실 4층에서 나란히 근무하고 있다. bori@seoul.co.kr ■ ’숨은 실세’ 우경숙 고문 정몽근 회장의 부인 우경숙(54) 고문은 현대가의 다른 며느리들과 달리 회사 경영에 참여한 활동파다. 현대가의 딸과 며느리들이 대부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지시로 소리없이 문밖 출입을 했던 집안 분위기를 감안할 때 상당히 이례적인 케이스다. 훗날 고 정몽헌 회장의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경영전면에 나선 것과도 사뭇 다르다. 우 고문은 사실 정 회장과 결혼후 현대가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남편을 내조하는 전형적인 주부에 머물렀다. ●비서실 근무하다 며느리 낙점 현대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현대가에 시집와서인지 우 고문은 시부모를 극진하게 모셨다고 한다. 본격적인 백화점 사업을 하기 전인 70년대 후반 울산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시절, 우 고문은 수시로 울산 방어진 수산시장에서 ‘참전복’을 공수해 청운동 본가로 보냈다.“정말 복 덩어리 음식이 참전복인 만큼 어른들 건강에 좋다.”며 살이 통통한 자연산만 고집했다. 잘 익은 제철 과일을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처럼 가정사에만 신경쓰던 당시 우 고문의 대외 활동이래야 1985년 백화점사업을 시작하기 전 서울 압구정동 본사의 작은 건물 직원식당에서 창립기념일 등에 참석하는 수준이었다. 우 고문은 회사 행사에서 시어머니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임직원들에게 직접 떡과 과일 등을 담아주는 일을 했다고 당시 직원들을 기억한다. 그러던 우 고문은 백화점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96년까지 우고문은 상무 직급을 달고 현대백화점의 신상품 개발 담당 업무를 맡았다. 유통업계 후발주자인 현대백화점으로서는 롯데, 신세계백화점과 경쟁하기 위해 고급화·차별화 전략이 절실했던 시기다. 그래서 백화점 PB(자체브랜드)개발에 주력했다. 상품개발부 직원 30여명과 함께 그가 개발한 자체브랜드는 ‘시그너스’‘벨라지’‘아르모니아’ 등이다. 특히 아르모니아는 강남의 전문직 여성들 사이에 한때 붐을 일으킬 정도로 히트를 쳤다. 96년에는 전세계에 10개의 매장만 운영할 정도로 신규 매장 출점에 까다로운 이탈리아 하이패션 브랜드 ‘지비에르돈나’를 압구정점에 유치하는 수완을 발휘하기도 했다. ●명품 브랜드 유치 수완도 당시 상품개발 부문에서 같이 일했던 직원들로부터 우 고문은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패션을 보는 안목과 미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평을 들었다. 계절에 앞서 주력 상품을 고르는 과정에도 직접 참여하고 의견을 내놓아 담당 바이어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틈틈이 집에서 그리는 서양화 실력은 수준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나면 미술전이나 각종 전시회를 찾는 것도 우 고문의 패션 센스와 맥을 같이 한다는 게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그는 최근 몇년사이 점포수 확대와 홈쇼핑 등 사업 다각화가 이뤄지고, 현대백화점이 현대백화점 H&S와 분할되는 과정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계열사간 투자, 인사에 관한 업무조정 및 중재가 필요한 시기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역할이 부각됐던 것이다. 때문에 그룹 안팎에서는 ‘우씨’집안에서 백화점 경영을 섭정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2003년 장남인 지선씨가 그룹 부회장을 맡으면서 우 고문에게 쏠리던 시선은 상당 부분 거두어졌다. 온화한 성품이지만 장남의 후계구도를 굳히는 과정에서 우 고문의 역할이 다소 과장되면서 실제 이미지와는 다르게 알려지기도 했다. 그는 두 아들이 경영에 적극 참여하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다만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사무실을 두고 이곳에서 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백화점 분위기도 살핀다. 가끔 백화점 영업이나 환경에 대해 세심한 조언을 해 매장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다.500평 규모의 현대백화점 본점 옥상을 잔디공원으로 바꿔 고객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토록 한 것도 그의 아이디어다. 지난해부터 백화점 직원과 협력사원이 함께 하는 지역 사회단체 봉사활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우 고문이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bori@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中 IADB가입 日방해로 좌절”

    일본의 방해로 중국의 미주개발은행(IADB) 가입이 2008년 이후로 늦춰졌다고 파이낸셜 타임스(FT)가 IADB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해 13일 보도했다.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으로 불붙은 두 나라 간 갈등은 더욱 격화할 전망이다.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그동안 공개적으로는 중국의 IADB 가입을 찬성해왔지만 배후에서 방해 공작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12일 오키나와에서 열린 IADB 연례총회에서 한국은 정식으로 회원 승인 절차를 무사히 통과했지만 중국은 실패했다. 일본의 방해 때문에 중국은 빨라야 2008년에나 회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IADB 관리가 말했다고 FT는 전했다. 중국은 당초 한국과 더불어 올해 IADB에 가입할 것으로 예상됐다. 회원이 되면 IADB가 브라질 등 남미에서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중국은 남미로부터 철광석과 구리·콩 등을 대량으로 수입하는 등 남미와의 교역이 나날이 급증,1999년 이후 교역 규모가 5배가 증가해 400억달러(40조원)에 이른다. IADB에 신규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기존 주주의 75%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브라질 등 주요 남미 국가들이 찬성한 가운데 30%의 지분을 가진 최대 주주 미국이 중국의 가입에 반대한 데에는 일본의 방해 공작이 있었다는 것이 FT의 분석이다. 일본의 지분은 5%이다. 이와 관련, 저우샤오촨(周小川)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이번주 베이징과 상하이를 방문하고 있는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IADB 총재와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황장석기자 surono@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4) 변산 태진스님과 정감록 사건(中)

    뜻밖에도 ‘정감록’에 경도됐던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가 적지 않았다. 영조 때 남원의 부자 김영건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평소 유복해 보였던 김씨 일가가 비결에 쏠리게 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남원의 벽보 사건을 좀더 밀도 있게 그려보면 그 답이 보일 것 같다. ●남원성에 나붙은 벽보 영조9년 7월 하순. 그믐날이 가까워 달빛조차 희미한 깊은 밤, 김영건의 두 아들은 괴문서를 남원성벽에 붙였다. 장남 원팔이 문서를 내거는 동안 아우 원하가 망을 보았다. 출입이 가장 빈번한 남문 근처에 한 장의 대형 벽보를 붙이는데 실제 소요된 시간은 극히 짧았지만, 그들 형제에게는 견딜 수 없이 긴 시간이었다. 당시 남원은 호남 굴지의 대도회라서 날마다 성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수백 명이 성안을 드나들었다. 그들의 눈에 띈 벽보 내용은 삽시간에 호남 일대로, 그리고 지리산 너머 영남 지방으로도 퍼져나갈 것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튿날 오전 남원부중은 괴문서 이야기로 들썩였다. 그날따라 몸이 불편해 좀 늦게 출근한 최정도 이방(吏房)은 이미 사령들이 수거해온 벽보를 훑어본 다음 한숨을 길게 내뿜었다. 조정대신을 강도 높게 비난한 구절도 그랬지만 ‘자미진주(紫微眞主)’ 운운한 것이 영락없는 반역자의 소행이었다. 이방이 알기로, 자미성(紫微星)은 자미원(紫微垣)에 속한 큰 별이다. 그것은 북두칠성의 북쪽에 있는데 천제(天帝) 또는 국왕을 상징한다. 그런데 벽보에 ‘진주’라고 했으니 한양성안 구중궁궐에 엄숙하게 앉아계신 상감께선 왕도 아니고, 자미성 정기를 받은 진짜 왕이 곧 나온다는 얘기다. 벽보엔 상감이 무도하다는 둥 동궁(사도세자)이 미쳤다는 둥 흉악한 언사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핀 이방은 새파랗게 질렸다. 잠시 후 어느 정도 마음을 가다듬은 이방은 도호부사 조호신에게 긴급사태를 보고하는 한편, 많은 정탐꾼을 풀어 성 안팎에 떠도는 온갖 소문을 즉각 수집토록 했다. 평소 성품이 침착하고 판단력이 있는 이방이었다. 그는 엄하기로 이름난 이 형방, 실무경험이 가장 풍부한 박 호장 등과 함께 수사본부를 구성했다. 그들은 시시각각으로 들어오는 소문들을 비교 종합해 믿을 만한 것을 추려내어 계통별로 분류했다. 범인을 바로 잡아들이지 않으면 어떤 변고가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는 일이라, 수사는 신속히 진행돼야 했다. 최 이방은 진행중인 수사에 관해 남원부의 우두머리인 조 부사에게 여러 차례 보고했다. 그러나 서울 명문대가 출신인 부사는 실무에 워낙 어두워 한숨만 내쉴 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많은 정보를 비교분석해 보니 성안에 거주하는 김영건과 세 아들이 용의선상에 떠올랐다. 이방은 사령들을 급파해 우선 그들을 잡아들이고, 김씨 집안에 소장된 모든 문서(文書)를 철저히 수색했다. 그날 해질 무렵 김씨의 문갑에서 두 장의 수상한 문서가 발견됐다. 큰아들 원팔의 필체가 분명했는데, 놀랍게도 벽보의 초안이었다. 두 장 가운데서도 큰 종이에 적힌 문건은 벽보보다 언사가 훨씬 과격했다. 반역자만이 쓸 수 있는, 대역무도한 ‘불온문서’였다. ●정 노인이 일으킨 해프닝 김영건에 대한 남원 사람들의 평판은 무척 좋았다. 그는 성품이 부드럽고 공손하고 단정한 데다 재산도 많았다. 여느 부자와는 달리 가난한 이웃은 물론, 집 앞을 지나는 거지들에게까지 후했다. 최 이방은 소문으로 그런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기 때문에 섣불리 김영건에게 혐의를 둘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문수사 결과를 무시할 수 없어 망설이다가 사령들을 내보냈던 것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영건의 집에서 결정적인 단서가 나오는 바람에 이방은 기가 막혔다. 김영건에게는 김원팔, 김원하, 김원택 등 세 아들이 있었는데 셋 다 글 잘하고 글씨도 잘 쓴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모두 아버지를 닮아 인물도 훤칠했다. 특히 큰아들 원팔은 과거시험에도 여러 차례 응시했을 정도다. 그는 남원은 물론 호남의 수부(首府) 전주를 비롯해 각지의 선비들과 두루 사귀고 있었다. 최 이방은 사실 김영건 일가와 친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음속으론 늘 김영건의 유복함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김영건 일가에게는 말 못할 고민이 하나 있었다. 수사에 동참한 이 형방이 들려준 이야기에 따르면, 김영건의 ‘근본’ 즉, 신분을 둘러싼 의혹이 있다고 했다. 형방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나서 이방은 여러 해 전에 있었던 정 노인 사건을 다시금 뇌리에 떠올렸다. 하루는 남원 성 밖에 사는 가난한 양반 정 노인이 읍내에 시장구경을 나왔다가 만취한 상태에서 김영건을 노비의 자손이라고 비방하는 시비가 벌어졌다. 그러나 문제의 정 노인은 평소 행동거지가 단정하지 못해 세인의 평판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인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그 뒤 정 노인은 다시 그런 ‘망령된’ 말을 꺼내지 않아 사건으로 비화되진 않았다. 기억력이 비상한 최 이방조차 이 사건을 까마득히 잊어버리게 된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그때 정 노인이 입을 다문 것은 김영건이 적절한 조치를 취해서 그런 것이었다. 영건은 노인과 다투지 않고 도리어 그를 살며시 회유했다. 그는 노인을 정중히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약주를 대접했다. 싫은 노릇이었겠지만 그 뒤에도 길가에서 노인을 마주치면 먼저 반색을 했다. 남원 사람들의 눈엔 마치 도량 있는 김영건이 철없는 주정뱅이 노인을 너그러이 용서한 것으로 보였다. 이 사건은 영건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몇 년 뒤에 일어났는데, 적어도 아들인 그만은 진실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김영건의 비밀 사실 김영건은 노비나 별 다름 없이 천한 사람이었다. 남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경상도 함양에 노씨 성을 가진 한 양반이 살았는데, 그 집에 막산이란 사내종이 있었다. 그 아내는 이름을 분금이라 했다. 본래 가난한 농사꾼의 딸이었다. 그리고 김영건으로 말하면 분금의 아들이 분명했다. 분금은 어릴 적부터 유달리 영리했고 행실도 조심스러웠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그녀의 미색이 너무 뛰어났다는 점이다. 노씨네 행랑것이었던 그녀를 주인양반은 물론 그 집에 드나든 여러 양반들이 다투어 탐을 냈다. 분금은 물론 영건도 이런 집안내력을 꽁꽁 숨기며 살았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영건은 어머니가 세상을 뜨기 직전에야 그 내력을 알게 됐다. 종 막산은 영건이 아직 젖먹이였을 때 돌림병에 걸려 갑자기 죽었다. 그러자 양반들은 아예 마음 놓고 분금에게 집적거렸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대체로 취미삼아 그런 불륜을 저질렀다. 분금은 자신이 노리갯감으로 전락하는 것이 너무 원통했다. 엄밀히 말하면, 분금은 본래 노씨 집안의 여종이 아니었으므로 종살이를 계속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공연히 노씨네 종으로 간주되는 실정이었다. 한탄으로 나날을 보내던 분금은 남편을 묻은 지 1년 만에 젖먹이 영건을 등에 업고 몰래 주인집을 빠져나와 지리산 쪽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이틀 동안 산길을 헤매던 분금은 지리산의 서쪽 자락에 있는 운봉을 지나 대도시 남원성으로 들어갔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옛말도 있지만, 뼈대 있는 양반집에서 수년 동안 종 아닌 종살이를 한 분금은 양반들의 예의범절에 거의 통달한 편이라 누구도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녀는 질병으로 온 가족이 몰살한 어느 한미한 시골선비의 청상과부라고 했다. 영건의 성은 김씨가 됐다. 마침 그 얼마 전 역질이 남원성을 강타했던 탓에 성안엔 주인 없이 텅 빈 집이 여럿이었다. 분금은 그 가운데서도 시장 쪽으로 얌전히 앉은 초가집 하나를 골라 거처로 삼고서 오직 삯바느질에만 매달렸다. 분금은 나이 일흔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원체 부지런해 해마다 조금씩 재산이 늘어났다. 과부 허리춤엔 은이 서 말이란 속담 그대로였다. 영건이 스무 살쯤 됐을 때 어머니 분금은 논을 네댓 마지기나 장만했다. 영건은 어려서 서당을 몇 년 다녀 까막눈은 아니었다. 그는 홀로 고생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일찌감치 공부를 그만두고 농사일에 전념했다. 잘 모르는 것은 이웃의 경험 많은 노인에게 물었고, 가끔 시장에 들러 쌀, 콩, 면화, 무명 등의 가격을 조사해 비망록에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만일 콩 한 되라도 팔라치면 반드시 시세가 가장 비쌀 때 내놓았다. 이런 식으로 살림을 하다 보니 영건은 곧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자가 됐다. 그런 아들인데도 늙은 어머니는 영건에게 늘 하는 말이 있었다.“누구에게든지 공손해라! 가난한 이웃을 잘 보살펴 주고, 검소하게 살아야 한다. 우리가 이만큼이나 살게 된 것은 모두 부처님의 크신 원력 덕택이다. 절간에 시주를 게을리 하지 말라!” 영건은 그 가르침을 묵묵히 따랐고, 이웃사람들이 모두 영건을 존경했다. 어머니는 세상을 뜨기 전날 밤, 아들을 머리맡에 불러 앉혀 놓고 나직이 말했다.“지금까지 네 아버님의 기일(忌日)이라 믿어온 것이 실은 함양 양반 노씨네 종 막산의 제삿날이다. 나는 그 아내 분금이다. 네 아버지는 경상도 하동 사는 김 선비인데, 이름도 모르고 아무 것도 더는 모른다. 부디 죄 많은 이 어미를 용서해라. 이제 비밀을 네게 털어놓으니 내 가슴이 후련하구나!” ●김영건과 예언서의 만남 김영건은 아무에게도 자신의 비밀을 말할 수가 없어 혼자 그저 답답한 심정이었다. 그랬는데 정 노인 사건까지 터져 마음을 안정시키기가 어려웠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천도를 핑계 삼아 절간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 동안 뭐든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던 것인데, 갑자기 하늘이 무너진 것도 같고 인생과 세상에 대한 회의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나는 과연 전생에 무슨 큰 죄가 있어 평생 아버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는가. 종 아닌 종이 되어 제 근본을 숨기고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되는 내 인생은 도대체 얼마나 불쌍한가. 언젠가 이 비밀이 세상에 알려질 경우 자식들의 장래는 또 어찌 될 것인가. 이 놈의 세상이 아주 송두리째 바뀌어야 한다. 나같이 천한 사람도 가슴 펴고 떳떳이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와야 된다. 도무지 세상이 원망스럽기만 하구나!” 김영건이 제기한 질문들은 누구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정 노인 사건 이후 영건은 사람이 달라졌다. 그의 왕성했던 식욕은 오간데 없어졌고, 일할 마음도 사실은 거의 사라졌다. 세상이 허무하다는 한 생각만이 온종일 영건의 머리에 가득했다. 영건은 그런 자기의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해 더욱 고민이었다. 그나마 큰 다행은 그가 가끔은 절간에 들러 스님들과 문답을 나눌 수 있었다는 점이다. 영건은 태연한 척 여러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스님들 가운데는 더러 영건의 깊은 고민을 눈치 채는 경우도 없지 않아 찻잔을 마주한 승방 문답이 해질 때까지 오래 이어지기도 했다. 절간을 오가는 횟수는 점점 많아졌고 영건은 새로운 세계를 만났다. 인연설은 물론 장차 미륵부처가 다스릴 용화세계가 지상에 실현된다는 신기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밖에 승려 태진이 소지했던 것과 같은 ‘남사고비기’라든지 ‘정감록’에 관해서도 말을 많이 들었다. 정말 그 비결의 내용처럼 세상이 뒤집어져 상놈이 양반도 되는 그런 세상이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만 해도 좋았다. 하지만 과연 그런 세상이 올지는 여전히 미지수였다. 당시 조정에선 일체의 ‘위험한’ 비결의 독서, 소장, 유포 및 출판을 엄금했다. 금지가 심할수록 비결은 더욱 유행해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내용을 알게 됐다. 영건도 절간에서 객승이 소지한 ‘남사고’를 한두 번 구경한 적이 있었다. 영건은 비결을 베껴 곁에 놓고 자세히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강렬해졌다. 그는 점차 비결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비결을 직접 소장하지 못했고, 비결대로 세상을 바꾸려는 ‘불온한’ 사람들의 무리에 섞이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영건의 성격이 너무도 소극적이었고 그는 이미 늙었다. 하지만 큰아들 원팔은 달랐다. 영리한 아들은 아버지의 불안과 고민을 대강 눈치 채고 있었다. 아들에겐 최봉희란 약빠른 친구도 있었는데, 그 친구는 이미 ‘남사고’를 소장하고 있었다. 아들은 최의 책을 필사해가지고 아버지에게 드렸다. 아들은 위험천만한 ‘비결’ 조직에 점차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남원 양반 이유성의 문제제기 김영건 일가에 정체성의 위기가 다시 찾아온 것은 1733년이었다. 이미 칠순에 접어든 정 노인과 다시 문제가 생긴 것인데, 정확히 말하면 정 노인의 외손녀사위인 이유성과 다툼이 벌어졌다. 어느 날 술 취한 정 노인이 이유성이 듣는 데서 김영건의 비천한 출신에 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정 노인의 친구 가운데는 젊은 시절 분금을 유독 탐낸 양반이 하나 있었다. 그 양반이 참으로 우연히 남원 읍내 길가에서 이미 노인이 다 된 분금을 마주친 것이 화근이었다. 친구로부터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 노인은 김영건을 노씨네 종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김영건의 비밀을 들은 이유성은 반드시 그것을 폭로하겠다고 별렀다. 스스로 양반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혈기 방장한 양반 이유성에게는 신분이 뒤섞이는 것이야말로 나라의 근본을 뒤흔드는 범죄행위였다. 그는 가짜 양반 김영건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이유성의 적의를 느낀 김영건 일가는 극도로 긴장했다. 양측의 대립은 갈수록 심각해져 마침내 상대방을 관가에 고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제출된 양측의 문건을 검토한 이 형방은 그들의 주장에 애매한 점이 많은 데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사건들이 많은 관계로 그에 대한 심리를 뒤로 미뤄놓고 있었다. 김영건의 큰아들이 남원성벽에 붙인 벽보에는 게시자가 이유성의 아버지 이여매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들은 자기들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이유성 집안에 역모 죄를 뒤집어씌울 계산이었던 모양이다. 정말 그런 단순한 계산에서 김원팔 형제는 위험천만한 벽보를 붙였을까. 아니면 혹시 어떤 비밀집단이 그들의 배후에서 벽보사건을 기획했던 것일까. 도승 자명과 변산 승려 태진, 최봉희, 김원팔 등의 관계는 정확히 무엇인가. 다음 호에서 따져볼 것이다. (푸른역사연구소 소장)
  • [사설] 유전의혹 수사, 특검소리 안 나오도록

    감사원이 어제 철도청(현 한국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 투자의혹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김세호 건교부 차관,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 등 6명을 검찰에 수사요청했다. 검찰은 김종빈 총장 체제 출범 후 처음으로 권력형 비리로 의심되는 사건을 맡았다. 이번 수사를 보고 국민들은 ‘김종빈 검찰’을 판단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 판단을 배제하고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감사원은 사건을 잘못 다뤄 왔다. 지난해 말 의혹을 인지했으면서 물의가 커질 때까지 제대로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그 사이 허문석 코리아크루드오일 대표, 전대월 하이앤드 대표 등 핵심 관련자들이 출국하거나 잠적하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민간인 수사권이 없어서 조사가 어려웠다면 검찰에 빨리 수사를 의뢰하는 게 나았다. 야당과 일부 언론이 여러 의혹을 제기했는데도 소극적 태도를 취했고, 이광재 의원을 막판에 형식적으로 조사함으로써 권력비리 의혹을 감싸려 한다는 오해를 불렀다. 감사 결과도 부풀대로 부푼 의혹을 해소하기엔 부족했다. 감사원은 철도청이 사업범위를 벗어나 유전 투자에 뛰어든 것 자체가 잘못이며, 내부 심의절차와 자금조달, 계약금지급 및 계약해지 과정에서 졸속·불법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런 일이 관료 차원에서 모두 이뤄졌다고 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권력실세 개입’‘범여권 기획작품’ 의혹이 나오는 것인데, 감사 결과는 의혹을 풀지 못하고 있다. 검찰 스스로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허문석·전대월씨의 신병을 확보해 이들과 일부 공직자간 단순 사기사건인지, 아니면 권력 배후가 있는지 가려내야 한다. 오는 30일에는 재·보궐 선거가 예정돼 있다. 여당은 그전에 해명성 결과가 나오길 기대할 것이고, 야4당은 특검법 제출 등 공세를 강화할 것이다. 첨예한 정치쟁점이 된 상황에서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본다면 특검과 국정조사 도입 목소리는 더욱 높아진다.“이 정도면 특검이 필요없다.”는 얘기가 나오도록 해야 한다.
  • 도시계획재정비안 마련…안성시 술렁인다

    도시계획재정비안 마련…안성시 술렁인다

    안성 부동산 시장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안성시가 도시지역을 확대하고 지역 중심 생활권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도시계획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안성시 도시계획 재정비 추진안에 따르면 기존 도시계획구역보다 5배 이상 커진다. 당초 도시계획구역은 안성, 원곡, 양성, 죽산 4개 구역 27.8㎢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말 2011년을 목표로 한 도시지역이 155㎢로 확장됐다. ●도시지역·중심 생활권 대폭 확대 현재 안성 도심은 38번 국도주변을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나마 도시 힘이 분산돼 발전을 가로막고 있으며 지역 중심기능이 미약하다. 그러다 보니 서쪽은 평택 생활권에 끌려가고, 동부지역은 이천 장호원권에 의존하는 도시공간구조를 지녔다. 도심 세력이 집중되지 않고 주변으로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안성 도심지역과 서남부는 성장관리권역으로, 죽산·일죽·삼죽면 일대는 자연보전권역으로 이원화돼 지역별 불균형을 초래하고 상호연계체계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안성 중심의 방사성 가로체계 때문에 도심 교통체증이 심하다. 개발이 국도 38호선을 축으로 집중됐고 그나마 체계적인 도시개발이 이뤄지지 않아 난개발이 눈에 드러나고 있다. ●안성·죽산 양극 생활권으로 개발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안성생활권과 함께 동부지역을 대표하는 죽산 생활권으로 나뉜다. 도시발전 기본 전략은 밖으로 빠져나가던 도시 확산축을 2개의 생활권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평택·아산지역 신산업지대 확산과 수도권 개발압력을 흡수해 도심세를 키우는 것이다. 안성생활권으로 불리는 중서부지역에는 대규모 공단 조성에 따른 유입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배후도시를 건설한다. 지속적인 도시 발달을 예상하고 공도택지지구를 개발 중이다. 작은 지방산업단지도 여기저기 들어섰다. 동부지역은 언뜻 보기에 시골처럼 보인다. 작은 공장과 농산물 유통단지, 기업들의 물류기지가 많이 들어섰다. 사통팔달의 육상교통여건을 지녔다. 안성처럼 십자형 고속도로망을 갖춘 곳도 드물다. 남북으로는 경부·중부고속도로가 안성을 지난다. 경부와 중부고속도로 사이에 끼어 있는 도시다. 서울과 중부권을 잇는 허리 역할을 한다. 그러나 동서를 연결하는 광역도로는 아직 미미하다. 안성을 동서를 잇는 대표적인 도로는 38번 국도. 왕복 4차로이지만 물동량이 많아 하루종일 붐비는 도로다. ●평택~음성 고속도로 2009년말 완공 하지만 서해안 평택항과 내륙(음성)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도심을 통과하던 교통량이 분산될 것으로 보인다. 평택에서 서안성IC까지는 개통됐다. 나머지 안성∼음성구간은 2009년 말 완공 목표로 공사가 한창이다. 서안성IC가 미양면 재건리에 들어서 23번 지방도로와 물리고 중부고속도로에 연결되도록 설계됐다. 장차 충주까지 연결된다. 경부·중부고속도로를 연결, 수도권의 교통량 증가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고 물류비 절감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해 안성지역 땅값 상승률은 6.65%. 그러나 녹지·관리지역은 8% 안팎 올랐다. 택지지구 개발과 도시확산을 기대한 투자자들이 많이 찾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서부권은 공도지구 주변, 남안성IC 주변이 투자 유망지다. 기존 도심에서 벗어나 석정·아양·옥산동 일대로 도심이 뻗어나갈 가능성이 크다. 행정·업무·상업시설을 중심의 새로운 도심형성을 기대할 수 있다. 흠이라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거래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공도지구 주변·일죽면등 투자 유망 홍영환 원곡부동산 사장은 “공도택지지구 주변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면서 “아파트를 지을 수 있게 된 승두리 일대 투자가 유망하다.”고 말했다. 이곳 전답은 평당 100만∼150만원을 호가한다. 장기적인 투자자라면 죽전생활권으로 불리는 동부권을 노리는 것이 좋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를 나와 일죽·죽산면 일대에 묻어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땅값이 상대적으로 싸고 토지거래허가구역에서 빠져 외지인들도 살 수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농촌마을 같지만 곳곳에서 개발붐이 불고 있다. 작은 규모의 공단, 농산물 유통단지 등이 여기저기에 건설되고 있다. 이 지역 중개업소들은 일죽면 일대에 땅을 사둔 기업들이 많다고 전한다. 도심지보다는 331,318번 지방도로 주변인 화봉리, 금산리 산업단지 인근을 권한다. 관리지역 도로에 가까운 땅은 평당 40만∼50만원을 부른다. 도로에서 들어간 땅도 30만∼40만원을 호가한다. 안성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野 ‘오일게이트’ 특검안 12일 제출

    4월 임시국회 대정부질문 첫날인 11일 여야는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의원총회·본회의 등에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한나라당은 이번 의혹을 ‘권력형 비리’로 규정, 진상 규명을 위해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12일 야3당과 공조 여부를 논의한 뒤 국회에 제출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구체적 물증 없이 의혹을 부풀리지 말고 검찰에 수사를 맡겨야 한다고 맞섰다. 이날 한나라당 상임운영위에서 맹형규 정책위의장은 “핵심측근들이 차례로 부패에 연루된 권력형 측근비리인 만큼 특검을 통해 조사하고 동시에 국정조사도 벌여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표도 “엄청난 국가예산이 수반되는 사업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며 “진상을 철저히 밝혀 이런 정책결정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은 상임중앙위에서 “4월30일 재·보선을 앞두고 정치쟁점화하지 않나 하는 의심이 드는 상태”라면서 “일단 검찰에서 조사한 뒤에 (의혹이 해소되지 않으면)국정조사·특검을 해도 된다.”고 밝혔다. 문 의장은 이어 “이광재 의원이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야당이)정치적 공세를 거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11월 ‘나를 팔고 다닌다.’는 소문이 나돌아 철도공사에 확인한 지 불과 며칠만에 계약이 해지됐다.”면서 “철도공사측이 이번 사업의 배후에 제가 있다고 생각해 사업을 밀어붙였다가 뒤를 봐주지 않는 것임을 알자 (러시아업체와의) 계약을 파기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감사원은 이르면 13일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 의혹 사건 관련자에 대한 징계수위 등에 대한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종수 문소영 강충식기자 vielee@seoul.co.kr
  • [서울광장] 유전의혹 김종빈검찰 지켜본다/김경홍 논설위원

    [서울광장] 유전의혹 김종빈검찰 지켜본다/김경홍 논설위원

    희대의 사기사건이냐, 권력형 비리사건이냐. 철도공사의 사할린 유전개발사업 투자의혹 사건은 이제 상식으로 판단하기는 너무 복잡해졌다. 철도공사측은 사업실패는 시인했지만 권력의 배후는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반면 야당에서는 권력의 배후가 없고서야 어떻게 이런 황당한 투자가 있을 수 있겠느냐며 몰아붙이고 있다. 정치공방으로까지 비화된 사건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법적 판단이 나오지 않은 사건에 대해 예단하거나 개인의 생각을 묻는 것은 자칫 ‘여론재판’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건의 수사나 마무리 과정에서 참고해야 할 부분도 없지는 않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단순한 사기사건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반응과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반응은 혼재하고 있다. 여기에는 국가기관을 못 믿겠다는 체념과 불신이 깔려 있다. ‘오일 게이트’라고 표현될 정도로 의혹이 부풀려진 것은 일반시민이나 야당의 탓이 아니다. 철도공사와 감사원,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측의 해명이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철도청이 생판 관련도 없는 해외 유전개발에, 그것도 단시간에 은행융자를 받아 계약을 했다가 파기한 과정은 누가 봐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실무책임자였던 당시 왕영용 사업개발본부장은 모두 자신의 책임이며 “이광재 의원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철도청장과 간부, 이광재 의원은 전혀 몰랐다는 왕씨의 해명을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그가 정책토론회에서 이광재 의원을 거론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계약금만 70억원이나 되는 사업을 실무책임자만 알고 추진할 정도로 국가기관이 허술한가. 이광재 의원의 해명도 의혹을 부풀리기는 마찬가지다. 이 의원은 “내가 뒤를 봐주지 않는 것임을 알자 급하게 파기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철도청이 대통령의 핵심측근이 봐준다고 속아서 사업을 추진했다면 더 한심한 일이 아닌가. 감사원은 조사할 의지도 보여주지 않았고 시간도 놓쳤다. 감사원이 지금까지 내놓은 것은 이광재 의원은 무관하다는 것뿐이다. 철도공사를 끌어들여 유전개발사업을 추진한 민간인 전대월, 권광진, 허문석씨 가운데 허씨는 해외로, 전씨는 국내에서 잠적하고 말았다. 실세를 보호하려 한다는 의심과 관련자 조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받지 않는다면 더 이상할 노릇이다. 야당이 국정조사나 특별검사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공세가 분명하지만 야당으로서는 당연히 앞장서야 할 공세다. 국가기관의 황당한 사업과 권력 실세의 연루의혹이 있는 사건에 대해 야당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만 있으라는 것은 정당의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같다. 청와대와 여당이 검찰수사에 맡기자고 나섰다. 늦었지만 당연한 순서다. 공은 검찰로 넘어갔다. 정치공방으로까지 번진 사건을 맡는다는 것이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검찰이 진실을 밝혀낸다면 당연한 일이고, 조금이라도 의혹을 남긴다면 고스란히 검찰이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것이다. 지난 정권 시절 옷로비 사건 때는 검찰수사뿐 아니라 특별검사, 국회 청문회, 대검의 재수사가 이어진 전례도 있다. 검찰의 부담은 오히려 기회가 된다. 대선자금 수사 이후 검찰은 상당부분 위상을 회복했고, 그 결과 검찰권 견제라는 역풍을 맞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기회에 검찰이 누구나 납득할 만한 진실에 접근한다면 국민들은 검찰을 믿게 될 것이다. 사건을 서울지검에 배당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오히려 대검 중앙수사부가 맡는 것이 신뢰를 높이는 길이다. 김종빈 검찰총장 체제의 유전의혹 수사를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김경홍 논설위원honk@seoul.co.kr
  • “김형욱 분쇄기에 넣어 닭모이로”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1979년 파리에서 납치돼 파리 근교의 양계장에서 분쇄기에 넣어져 죽음을 당한 뒤 닭모이로 처리됐다는 증언이 나와 충격을 주고 있다. 11일 발행된 시사저널은 ‘김형욱은 내가 죽였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김형욱 암살 실행조였다고 주장하는 이모씨의 증언을 통해 이같이 보도했다. 중앙정보부가 양성한 특수 비선 공작원이라고 밝힌 이씨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자신과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 파견돼 특수 암살 훈련을 받은 곽모씨가 한 조가 돼 김형욱을 암살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을 1979년 10월7일 밤 파리 시내의 한 카지노 근처 레스토랑에서 납치했다. 김형욱이 한국 여배우와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에 레스토랑 입구를 지키고 있다가 그 여배우가 보낸 안내자 행세를 하며 납치하는 데 성공했다.”며 “캐딜락 승용차 안에서 김형욱을 마취시킨 다음 밤 11시께 파리시 서북 방향 외곽 4㎞ 떨어진 외딴 양계장으로 가서 분쇄기에 그를 집어넣어 닭모이로 처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암살지시 배후와 관련, 차지철 경호실장이나 김재규 중정부장 연관설을 강력 부인하며 1979년 초 밤 청와대 별관으로 불려간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나쁜 놈이로구나, 내가 믿었던 김형욱 이놈이 나쁜 놈이로구나.”하고 통탄하는 것을 보고 자발적으로 암살을 결심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없지 않다.”면서도 “그는 아직까지 중간 지휘라인에 대해 함구하고 있으나 그가 암살을 시행하기까지 거친 수많은 경로에서 그를 도운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누군가 해외 현지를 지휘하는 공작이 뒤따랐음을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시사저널은 그러나 암살 증언의 진실성에 대해선 “그의 증언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결코 알기 어려운 침투 루트며 지형지물, 살해 방법 등을 자세히 담고 있었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 있었다.”고 밝혔다.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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