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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양균 ‘신정아 해명’ 거짓말

    변양균 ‘신정아 해명’ 거짓말

    변양균(58) 청와대 정책실장이 그동안의 주장과 달리 가짜 박사학위 파문 비호 의혹의 당사자인 신정아(35) 전 동국대 교수와 빈번하게 연락했고, 지난 7월 초 노무현 대통령의 과테말라 방문을 수행하던 중에도 장윤 스님과 간접 연락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에 따라 변 실장의 ‘신정아씨 비호’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청와대는 신정아씨 파문과 관련한 변 실장의 해명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나자 10일 변 실장의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변 실장의 거짓말에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비리 연루 의혹까지 겹쳐 임기말 참여정부의 도덕성이 훼손되고 국정운영이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청와대는 10일 정성진 법무부장관으로부터 “변 실장이 본인 해명과 달리 신정아씨와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이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에서 밝혀졌고, 검찰 수사나 조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전날 통보받았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이날 변 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고 전해철 민정수석이 공식 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이 정 장관에게 연락을 받은 직후 변 실장에게 사실 관계를 확인한 결과 ▲신씨와 예일대 선후배 관계로 알고 수 년 전부터 잘 아는 사이로, 빈번한 연락이 있었으며 ▲지난 7월8일 저녁 장윤 스님을 만났을 때 신씨 문제를 언급한 사실이 있고 ▲노 대통령의 과테말라 방문을 수행하던 중에도 친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장윤 스님과 연락한 사실이 있다는 사실을 변 실장이 인정했다고 전 수석은 밝혔다. 문제의 ‘친구’는 변 실장과 장윤 스님을 모두 잘 아는 사람이지만, 공직자나 불교계 인사는 아니라고 전 수석은 설명했다. 변 실장은 간접 통화에서 “과테말라에서 귀국하는 대로 장윤 스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변 실장은 귀국 바로 다음날인 7일 장윤 스님을 만나 신정아씨 문제를 거론했다. 이 같은 사실은 지난달 24일 일부 언론에 ‘신정아 비호’의혹이 제기된 이후 변 실장과 청와대의 항변이나 해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 수석은 “개인적인 관계였기 때문에 본인 해명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변 실장은 비서실 차원의 사실 확인과정에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날 아태경제협력체(APEC)정상회의 참석을 위한 호주 시드니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뒤 문 실장으로부터 이 같은 사실을 보고 받고 “원칙적으로 철저히 조사 내지 수사하고, 신분을 유지할 경우 조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사표를 수리하라.”고 지시했다고 전 수석이 밝혔다. 하지만 변 실장의 거짓말과 청와대의 ‘변 실장 감싸기’, 전격적인 사표 수리 등이 ‘신정아 비호’사건의 몸통을 보호하기 위한 처사가 아니냐는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어 검찰 수사 결과가 주목된다. 한나라당은 이와 관련,“국민들은 또 한 번 속았다.”며 맹공에 나섰다. 박형준 대변인은 “이 상황에서 청와대와 검찰의 사전조율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변 실장이 과연 ‘신정아 게이트’의 끝인가. 더 큰 손, 더 큰 배후는 없는가.”고 따져묻고 “꼬리자르기는 결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과 관련된 위기관리 라인의 책임을 물어 민정 부문의 문책인사를 단행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중이다. 한편 검찰은 변 전 실장이 신씨의 동국대 교원 임용과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임에 개입했을 정황이 있다고 판단하고 외압 의혹을 밝혀 사실로 드러나면 직권남용 혐의로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검찰은 조만간 변 전 실장을 불러 외압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하기로 했다. 검찰은 변 전 실장의 소환에 앞서 신씨 의혹 제기와 함께 변 실장의 외압 의혹에 대해서도 언급한 장윤 스님과 교내의 반대에도 신씨의 교원 임용을 강행한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을 참고인 자격으로 먼저 소환해 조사할 계획이다. 검찰 관계자는 “장윤 스님이 출석하겠다는 뜻을 밝혀 곧 조사가 이뤄질 것”이라면서 “장윤 스님과 홍 전 총장은 변 전 실장의 의혹과도 관계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박찬구 이경주기자 ckpark@seoul.co.kr
  • [사설] 변양균씨 사퇴로 끝낼 일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의 사표를 수리했다. 신정아씨 가짜학력 사건과 관련한 변씨 해명이 거짓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변씨와 신씨는 사적인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 받을 정도로 아주 가까운 사이임이 밝혀졌다. 또 변씨가 장윤 스님과 만나 신씨를 비호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잘못된 처신과 거짓 해명 등 고위공직자로서 변씨의 윤리의식 부재를 개탄하면서 변씨 옹호에 앞장섰던 청와대 역시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 이번 사건에 변씨가 연루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뒤 청와대는 덮기에 급급했다. 변씨의 개인 행적에 대해 청와대 대변인이 해명에 나섰고, 노 대통령은 “(검찰 수사대상의) 깜이 되지 않는다.” “언론이 소설을 쓰고 있다.”고 화를 냈다. 의혹이 있으면 면밀히 조사한 뒤 입장을 밝혀도 되는데 청와대가 미리 성급한 결론을 내려 이렇듯 의구심을 증폭시키고 있는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언론이 잠잠하고, 검찰 수사가 진척되지 않으면 진실을 묻고 가려 했던 것인가. 변씨뿐 아니라 그동안 자체 검증에 소홀했던 청와대 참모들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청와대의 공식사과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덮을수록 커지는 게 의혹이다. 신씨 사건을 둘러싼 시중의 의혹은 변씨 스캔들을 넘어선다. 실세 배후설에 대권주자 연루설까지 나도는 등 의혹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있다. 장윤 스님,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 한갑수 전 광주비엔날레 재단이사장 등 관련 인사들은 알고 있는 진실을 밝혀 권력형 로비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협조하길 바란다. 변씨 연루 사실은 청와대 자체조사가 아닌 검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 검찰은 관련자 전원에게 소환을 통보하는 등 뒤늦게나마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진한 수사결과를 내놓으면 특검, 국정조사가 거론되고 차기 정부에서 재수사 요구가 거세질 것이란 사실을 검찰은 명심해야 한다.
  • 부산 친노·M고 7인방 외압 역할 분담?

    부산 친노·M고 7인방 외압 역할 분담?

    부산의 건설업자 김상진(42)씨가 추진하는 부산 수영구 민락동 콘도 건립사업에 ‘외압과 특혜’ 의혹이 꼬리를 물고 있다. 서울신문의 취재 결과 김씨의 배후에는 부산의 ‘친노 인맥’과 경남 출신 ‘M고 7인방’으로 통하는 일부 인사들이 얽혀진 채 역할을 분담, 지원한 정황이 새롭게 드러났다. ●친노-금융권 7인방-용도변경 앞장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C씨 등 부산상고 출신과 부산 출신 386 그룹으로 형성된 친노 인맥은 금융계에 포진한 동문 등을 동원, 부산은행 대출 문제를 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7인방은 부지 용도변경에 앞장선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2∼3명은 대출 과정에 보증을 서는 등 직접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확인돼 이를 뒷받침했다. 민락동 콘도 건립 사업의 최대 걸림돌인 부지 용도변경 및 대출 문제 해결과 관련, 시중에는 부산시와 부산은행 고위 인사의 연루설이 나오고 있으며,C씨의 이름도 거명되고 있다. 부산시 고위 인사는 7인방 멤버이고, 부산은행 고위 인사는 부산상고 출신이다. 부산시는 2005년 10월 국민고충처리위원회가 미월드 부지에 대한 용도변경 여부를 타진하자 ‘불가’라고 회신했다. 그러다 지난해 5월 ‘공공기관 이전 및 투자개발 기획단’의 용도변경 요청에 일사천리로 추진, 그 배경에 의문이 이어졌다. ●‘고충위 권고´ 내세워 용도변경·허가설 이 과정에서 7인방 멤버들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됐다. 시 고위 인사에게 고충위 권고를 수용하라고 설득했을 개연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시가 고충위 권고를 수용, 골치 아픈 민원을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이를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온다. 최모(58)씨는 “미월드측이 행정소송을 한다고 소문낸 것은 쇼였으며, 친노 인맥이 중앙도시계획위원회 통과를 돕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고 전했다. 토지 소유주 김모(58)씨는 7인방 일부 인사와는 과거 사회정화위원회 시절부터 교분을 쌓아 왔으며, 지난 2월 실시된 부산시 교육감선거에 출마한 다른 멤버의 선대본부장을 맡기도 했다. 지난 1월 부산시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한 ‘2020년 도시기본계획 변경안’은 건설교통부 중앙도시계획위 심사를 기다리고 있다. 미월드는 부산시가 유치한 도심 놀이공원이다. 김모(61)씨가 부지(3만 8000㎡)를 제공하고, 권모씨가 50억원을 투자해 놀이기구를 설치,2004년 문을 열었다. 주변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하면서 소음 등으로 민원이 끊이지 않자 부산시가 영업시간을 단축, 불이익 처분을 당하자 고충위에 진정했다. 미월드 부지 매매와 관련, 부산은행에도 의혹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모씨가 이 땅을 매입하려고 하자 채무 승계를 거절, 계약을 파기시켰다. 토지 소유주 김씨는 지난해 10월 이 땅을 350억원에 팔기로 하고 이모씨로부터 계약금 35억원과 중도금 30억원을 받았다가 이 바람에 80억원의 위약금을 물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스카이시티 대출은 누가 봐도 특혜 부산은행은 지난 5월 김상진씨가 이 땅을 매입할 때 채무 승계를 해주고,685억원의 대출 승인까지 해줬다. 달라진 것이라고는 땅 매입자가 김상진씨라는 것뿐이다. 더구나 겉핥기식 대출서류 심사로 김상진씨가 제출한 엉터리 서류를 보고 용역비 27억 5000만원을 내준 사실도 밝혀져 특혜의혹을 부풀렸다. 은행 측은 “개발 사업은 사업성을 보고 돈을 빌려 준다.”고 강변하지만 아무도 이를 믿지 않는 분위기다. 부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변양균 사퇴 파장] 속도내는 ‘신정아 의혹’ 검찰 수사

    [변양균 사퇴 파장] 속도내는 ‘신정아 의혹’ 검찰 수사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임용을 둘러싼 외압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사건의 핵심으로 거론되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신씨와의 연결고리가 드러남에 따라 ‘신정아 미스터리’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검찰의 1차 수사 초점은 신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 과정과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 선임, 미국 도피 등에 변 전 실장이 개입했는지에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 장윤 스님과 홍기삼 전 동국대 총장, 한갑수 전 광주비엔날레 이사장의 역할, 이들과 변 전 실장과의 관계, 변 전 실장의 배후 등이 수사 대상이다. ●장윤스님·홍기삼·한갑수씨등 줄소환 검찰은 그동안 장윤 스님 등이 잠적하거나 출두를 미룸에 따라 수사가 지지부진했으나 변 전 실장의 사표 수리를 계기로 수사가 활기를 띨 것으로 보고 있다. 변 전 실장이 신씨의 동국대 임용과정 등에 외압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특히 변 전 실장의 개입 정황이 파악되면서 검찰로서는 정권 실세가 연루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될 것을 우려해 몸을 사렸다는 항간의 지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부지검 구본민 차장검사는 10일 브리핑에서 “신씨와 관련한 압수수색 결과, 신씨와 변 실장과의 관계를 유추할 만한 내용이 있었다.”면서 “변 실장에 대한 혐의를 두고 있으며 만약 외압을 가했다면 직권남용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변 실장의 계좌추적 및 출국금지 여부는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 “변 실장의 소환 시점은 장윤 스님과 홍 전 총장을 소환한 이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임용부터 美잠적까지 규명해야 검찰이 변 전 실장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규명해야 할 의혹은 3가지다.2005년 9월 당시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재직하던 변 전 실장이 신씨의 동국대 교수 임용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다. 변 전 실장의 직위를 감안하면 다른 인사를 통해 외압을 행사했을 수 있다는 추측도 제기된다. 당시 동국대 내부에서는 동양미술사 만을 가르치는 학교에서 서양미술사 전공의 신씨를 무리하게 임용하는 데 대해 반발이 거셌다. 미술계 일각에서도 이미 신씨의 학력 위조 소문이 돌고 있었지만 동국대는 비상식적으로 임용을 강행했고, 이 과정에 ‘거물급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두 번째는 지난 7월 광주비엔날레 공동예술감독으로 신씨가 발탁되는 과정 및 신씨의 학력위조 파문을 잠재우는 데 변 전 실장이 적극 개입했는지 여부다. 당시 예술감독선정소위원회가 압축한 2명의 후보 중 1명이 고사하자 한갑수 이사장은 복수 추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결국 소위원회는 신씨를 포함한 9명의 기존 후보를 다시 추천했고, 유력후보들이 갖가지 사유로 탈락한 뒤 신씨가 깜짝 발탁됐다. 지난 7월 초 신씨의 학력위조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던 상황에서 변 전 실장이 장윤 스님에게 전화를 건 점도 의혹이다. 사실상 신용불량자나 다름없는 신씨가 그동안 ‘에르메스의 여인’으로 불릴만큼 통 큰 씀씀이를 뽐내고 지난 7월 중순 미국에서 잠적한 뒤 50여일 이상을 버티는 동안 재정 지원을 한 배후인물이 누구였는지도 검찰이 밝혀내야 할 대목이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일상적 폭력의 다양한 실체

    혹시 2003년 2월15일을 기억하시는지. 이 날은 세계 곳곳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는 대규모 반전 시위가 벌어진 날이다. 그렇지만 그런 일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기억해야 하는 역사의 일부로는 각인돼 있지 않다. 따라서 대다수는 이 물음에 “무슨 날이지?”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첫사랑, 마지막 의식’(1975)으로 영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서머셋 몸 상을,‘암스테르담’(1998)으로 부커 상을 수상한 영국의 중견작가 이언 매큐언에게 이 날은 매우 불확실하고 위험한 날이었다. 스스로가 현재 진행중인 세계사, 이를테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나 이 전쟁에 영국이 참전한 일 따위와는 무관하다고 믿는 한 시민이 어떻게 일상의 폭력에 노출되며, 그 폭력이 자신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위협인지를 그는 소설 ‘토요일’(문학동네 펴냄)을 통해 고발한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현대인은 일상적 폭력에 갇혀 산다. 그것이 배후에 권력을 업은 거대한 폭력이든, 가정이나 마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폭력이든, 폭력은 항상 우리의 생활과 의식 속에서 생존의 기제로 작동하도록 구조화되어 있다. 매큐언은 바로 이 폭력성에 주목한다. 그는 작품에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라는 거대한 폭력과 개인의 사적인 폭력을 통해 일상적인 폭력의 다양한 실체를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자신의 일에 열정적이고 건강하며 정직한 신경외과 의사 헨리 퍼론은 이라크 전쟁을 규탄하는 대규모 반전시위가 벌어진 날 저녁, 집에서 뒷골목 건달의 끔찍한 폭력과 마주한다. 사소한 자동차 접촉사고로 빚어진 일이 급기야 건달의 주먹에 장인의 코뼈가 내려앉고, 아내의 목에 섬뜩한 칼이 겨눠지는가 하면, 다 자란 딸이 알몸을 드러내야 하는 사태로 발전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에게 이라크 전쟁은 타자의 문제였다. 학정을 일삼는 후세인 정권을 힘 센 미국이 거세하러 나섰다는 정도의 인식이 고작일 정도다. 그런 그의 일상이 연쇄적 상관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폭력에 고스란히 노출되고, 덩달아 그의 의식 속에 잠재해 있던 ‘폭력의 공포’는 현실, 즉 ‘나의 일’로 환치된다. 그러나 폭력에 의해 더 불확실해지고, 또 훨씬 더 위험해진 일상의 시비에 대해 ‘모든 갈등이 해결된 평화와 비무장의 세계를 위해, 언제든 죽고 죽일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세계’라는, 등가적 의미를 부여한 작가의 현실인식에 한계가 있다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예컨대, 폭력은 그 자체가 악이면서 동시에 항상 가해와 피해의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라크 문제와 관련, 미국은 가해국인가 피해국인가. 또 그의 인식처럼 사담 후세인의 제국이 독재와 학정을 거듭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선의 축’에 의해 징벌을 받았다면 아주 강한 나라인 미국이나 영국의 악행은 누가 징벌할 것인가. 작가는 작품에서 9·11테러와 알 카에다, 홀로코스트 등 거대한 폭력의 기층에 주먹돌처럼 쌓여 하나의 인과적 유기체를 이루는 사적 폭력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한 개인에게 공허한 이미지이거나 따분한 거대담론일 뿐인 비일상적이고 거대한 폭력이 어떻게 ‘나의 일’로 구체화될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그러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되묻는다.“당신의 토요일 밤은 과연 얼마나 안전한가?”라고.1만 3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김상진씨 긴급 체포

    김상진씨 긴급 체포

    부산지검은 6일 정윤재(45) 전 청와대 비서관의 비호의혹을 받고 있는 부산의 건설업자인 김상진(42)씨를 허위서류를 작성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지난 7월4일 부산 수영구 민락동 재개발사업과 관련, 가짜 용역계약서를 제출해 부산은행으로부터 27억 5000만원을 빼돌린 혐의(사기)다. 김씨는 또 지난 6월30일 연제구 연산동 재개발사업과 관련, 이위준(63) 연제구청장에게 용적률을 높여달라는 부탁과 함께 현금 1억원이 든 가방을 건넨 혐의(뇌물공여)도 받고 있다. 검찰은 이날 오후 늦게 김씨를 소환, 조사를 벌인 끝에 김씨의 추가 범행을 확인해 긴급체포했으며 7일 중으로 정식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 검찰의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김상진 발 사정폭풍’이 휘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가 구속됨에 따라 이번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갈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조사에서는 김씨가 지난 2003년 총선 때 정 전 비서관에게 거액의 정치후원금을 준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나 검찰은 이 돈이 합법적인 정치 후원금으로 영수증 처리까지 했다는 김씨의 주장과 공소시효가 지난 점을 감안해 정 전 비서관을 무혐의 처리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이때부터 김씨와 정 전 비서관 간에 거액의 정치자금이 오간 점으로 미뤄 이후 정 전 비서관이 김씨 배후에서 후견인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추가 연결고리를 캐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김씨는 이에 앞서 한나라당 김희정(부산 연제구) 의원에게도 500만원의 후원금을 낸 것으로 밝혀졌다. ●부산시, 연제구청 등에 전방위 로비의혹 김씨는 연제구 연산8동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관할 구청과 부산시 등에도 금품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김씨의 형 효진씨는 지난달 27일 등 최근까지 여러 차례 부산시 주택국을 방문, 관련 공무원들을 만난 것으로 드러났다. 효진씨가 부산시를 상대로 연산동 주택개발사업을 위해 로비를 벌였다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부산시 윤여목 주택국장은 이날 “지난달 초 효진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거제동 주상복합아파트 신축사업의 심의를 잘 좀 챙겨달라.’고 부탁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윤 국장은 “효진씨의 방문이 여러번 있었지만 로비는 없었다.”고 로비설을 강력 부인했다. 김씨는 이에 앞서 지난 6월 말 재개발사업지구의 관할 구청인 연제구 이 구청장에게 1억여원으로 추정되는 돈가방을 전달했으나 이 구청장은 이틀 후 이를 되돌려줬다. 검찰은 이 시점이 김씨가 연산8동 16만 7000㎡ 부지에 1440가구 규모의 아파트를 짓겠다며 부산시에 제출한 지구단위계획안에 대한 검토 의견을 구청에 제출한 때라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또 연제구는 김씨의 아파트 건설사업 신청건을 심의하는 과정이었고, 김씨의 회사인 ㈜일건측의 의견을 대폭 수용, 심의를 통과시켰다. 김씨가 당시 이 구청장에게 거액을 준 점과 연제구가 원안을 소폭 조정하는 의견을 제시한 점 등으로 미뤄 구청 관련 부서 공무원들에게도 금품 로비가 있었을 것이란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부산 김정한 강원식기자 jhkim@seoul.co.kr
  • [현장 행정] 구로구 ‘가리봉동 개명작업’

    [현장 행정] 구로구 ‘가리봉동 개명작업’

    구로공단역, 공단로에 이어 가리봉동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전망이다. 구로구의 공단 잔재 털어내기 행보의 하나이다. 디지털단지 조성과 대규모 재개발 사업에 이어 ‘공돌이’,‘공순이’,‘쪽방촌’ 등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가리봉동의 명칭 변경 작업이 한창이다. 구로구는 5일 과거 구로공단의 회색 이미지와 낙후되고 영세한 가리봉동의 지역 이미지를 근본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가리봉동의 명칭 변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주민 의견을 수렴한 이후 구의회 지명위원회가 조례안을 만들어 의회를 통과하면 명칭 변경은 마무리된다. 구 관계자는 “가리봉동이라는 이름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어 함부로 없앨 수는 없지만, 가리봉동이 도시환경정비사업으로 디지털단지를 지원하는 첨단 배후도시로 바뀌는 데다 명칭 변경을 바라는 주민들도 많아 명칭 변경 절차를 밟게 됐다.”고 말했다. 가리봉동의 유래는 ‘가리’에서 찾고 있다. 가리는 갈라졌다는 뜻으로 구로구의 전체 땅 모양이 바짓가랑이처럼 갈라져 있는 것과 연관된 이름으로 보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낙후지역으로 손꼽히는 가리봉동은 그동안 ‘쪽방촌’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지역간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는 서울시 방침에 따라 2003년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개발 청사진이 그려졌다. 사업시행자인 주택공사가 현재 세부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계획에 따르면 기존 가리봉동은 전면 철거된다. 개발이 완료되면 29만㎡ 규모에 호텔과 컨벤션센터, 연구개발(R&D)센터, 주상복합시설 등이 들어서 인근 디지털단지를 지원하는 배후도시의 역할을 하게 된다. 구는 16일까지 공모전 홈페이지(www.planin.kr)와 우편으로 가리봉동의 새 이름을 공모하고 있다. 지역 주민에게 호감이 가며, 가리봉동의 인문·사회·문화적 환경 등이 반영되는 이름을 추천했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는 공단로(구로3동 디지털단지 일대)도 ‘디지털단지로’로 명칭이 변경됐다. 공단로는 구로공단의 형성과 함께 붙여진 이름이다.1967년 수출산업공업단지로 출발해 얻은 구로공단이라는 이름에 사실상 마침표를 찍은 것이다. 첨단 디지털단지로 변신을 추진해온 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는 2000년에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이 바뀌었다.2004년에는 지하철역(1호선)의 이름도 ‘구로공단역’에서 ‘구로디지털단지역’으로 바꿨다. 공단에서 디지털단지로 변한 이곳은 현재 첨단 기업 7000여개가 입주해 대한민국의 ‘실리콘 밸리’로 불려지고 있다. 구는 디지털단지로의 명칭 변경을 기념해 다음달 ‘구로문화축제’ 프로그램의 하나로 축하행사를 연다. 구 관계자는 “주민 대부분이 가리봉동의 명칭 변경을 희망하고 있어 조사 대상 주민의 3분의2가 찬성해야 하는 변경 절차를 통과하는 데에 별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구로구의 명칭 변경 -2000년 12월 수출산업공업단지(구로공단)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명칭 변경 -2004년 4월 지하철 역명 변경(구로공단역→구로디지털단지역) -2007년 7월 공단로가 ‘디지털단지로’로 개명 -2007년 9월 가리봉동 개명 추진
  • [靑 ‘이명박 고소’ 파장] 검찰 “정치적 이용될라” 곤혹

    검찰이 또다시 정치권 공방으로 곤욕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가 최근 한나라당이 ‘이명박 후보 죽이기’를 위해 국정원·국세청을 동원한 정치공작이 진행되고 있다며 공작의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데 대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이 후보를 비롯, 한나라당 인사들을 검찰에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 이어 또다시 이 후보를 조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 데다 청와대가 유력 대선 후보를 직접 겨냥한 고소는 이번 처음이어서 더욱 난처해하고 있다. 대검의 한 간부는 “매번 선거철마다 넘쳐나는 고소·고발 사건이지만 올해 대선처럼 치열한 적도 없는 것 같다. 특히 유력 대선 후보가 직접 고소를 당한 사례도 없는 것 같다.”면서 “대선 전에는 수사를 끝내야 할 텐데 그동안 검찰이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을지 걱정이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고위 간부는 “요즘 벌어지는 정치인 관련 의혹 사건이나 학력위조 논란 등을 보면 우리 사회에 검증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면서 “그렇다보니 문제가 생기면 검찰에 검증을 요청할 수밖에 없고 검찰도 촉박한 시간이지만 결과물을 내놓아야 하는 악순환이 되는 것이다.”고 말했다. 대선 후보 관련 의혹 사건은 각당 검증위원회나 인사청문회에서 충분히 조사가 되고 걸러져야 하고, 정치권도 논란이 있고 의혹이 있다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자체적으로 검증하고 조사해서 따져 보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靑 “이명박 고소”…대선정국 파란

    17대 대선을 3개월여 앞두고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정치공작 논란’으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르면 6일 중으로 문재인 비서실장 명의로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후보를 검찰에 고소하기로 했다고 5일 밝혔다. 사실상 현직 대통령이 야당후보를 고소하는 것으로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한나라당은 “야당탄압이며 정치테러”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사실상 현직 대통령 사상 첫 野후보 고소 대선 정국이 ‘이명박 대 노무현 대통령’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지적과 함께 검찰 수사 방향에 따라 범여권 경선 등 대선 정국에 일대 파란이 예상된다. 청와대는 이날 한나라당의 이 후보를 비롯해 이재오 최고위원, 박계동 공작정치분쇄 범국민투쟁위원장, 안상수 원내대표 등 4명을 이르면 6일 검찰에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한나라당이 ‘이명박 후보 죽이기’를 위해 국정원·국세청을 동원한 정치공작이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하며, 그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데 대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문 비서실장은 “진실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 아직도 거짓과 술수로 승리하려는 선거 풍토와 정치 풍토를 바로잡기 위해, 정부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지키기 위해 이 후보등을 금명간 고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 실장은 “이 후보가 아무 단서나 근거도 없이 청와대를 겨냥해 거짓 주장을 계속하는 의도는 분명하다.”면서 “자신에게 쏟아지는 도덕성 검증요구와 불법 의혹을 물타기하려는 선거용 술수로 이것이야말로 비겁하고 낡은 정치공작”이라고 비판했다. ●한나라 “야당탄압·정치테러”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정권이 나서서 정치공작을 하더니 이제 야당 후보를 고소하겠다는 것은 적반하장”이라면서 “대통령이 검찰을 이용해 노골적으로 대선에 개입하겠다는 것으로 명백한 야당탄압, 정치테러”라고 주장했다. 나 대변인은 이어 “야당 후보의 입을 막고 연일 계속되는 정윤재 게이트 등 노 대통령 측근 비리에 대한 정국전환용으로 보인다.”면서 “한나라당은 결코 좌시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투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이낙연 대변인은 이에 대해 “청와대가 대통령 후보를 고소한다는 것은 일반 국민의 감각에 맞지 않고, 자칫 대통령 선거판도를 왜곡할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박현갑 박찬구기자 eagleduo@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병자호란 다시 읽기] (35) 명과 후금의 정세 Ⅲ

    1626년(인조4, 천계6) 1월23일 누르하치는 영원성으로 들이닥쳤다. 그가 이끄는 병력은 20만이라는 설도 있고,13만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든 누르하치의 대병력이 나타나자 영원성의 전면에 머물던 명의 관민(官民)들은 경악했다. 대릉하(大凌河), 소릉하(小凌河), 행산(杏山), 탑산(塔山) 등지의 명군 지휘관들은 가옥과 곡식을 불태우고 도주했다. ●영원대첩(寧遠大捷)의 실상 누르하치는 영원성에 대한 공격에 앞서 자신이 데리고 온 한인(漢人) 포로를 풀어 성안으로 들여보냈다. 그를 통해 누르하치는 원숭환에게 항복할 것을 요구했다.“우리는 20만의 대군이다. 성은 분명히 함락될 것이다. 여러 관인들이 항복한다면 높은 관작을 주겠다.”고 했다. 원숭환의 회답은 간단했다.“그대는 무슨 까닭으로 갑자기 공격해 왔는가? 나는 성을 사수할 것이다.” 1월23일, 누르하치는 공격을 명령했다. 후금이 자랑하는 철기(鐵騎)의 돌격이 시작되었다. 방패를 손에 쥔 경보병(輕步兵)들을 비롯하여 후금군 병사들이 성을 향해 개미 떼처럼 몰려들었다.20만이라고 큰 소리치는 대병력이었다. 영원성의 원숭환 병력은 대략 1만 정도에 불과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병력 수만 보면 승패는 이미 끝난 셈이었다. 성으로부터 홍이포의 포격이 시작되었다. 사격은 정확했다. 포탄은 벽력같은 굉음을 내며 돌격해 오는 누르하치 병사들의 대열 중간으로 떨어졌다. 사방으로 피가 튀었다. 성벽을 기어오르던 병사들도 쏟아지는 화살 앞에 나가 떨어졌다. 후금군의 사상자가 속출했다. 1월24일, 누르하치는 전차(電車)를 투입해 다시 총공격에 나섰다. 포격을 피하기 위해 참호를 파야 했지만 날은 춥고 땅은 꽁꽁 얼어 있었다. 다음날에도 후금군은 희생을 무릅쓰고 돌격을 계속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누르하치는 흥분했다. 그는 병사들의 선봉에 서서 전투를 독려했다. 홍이포의 포탄은 누르하치라고 해서 피해가지는 않았다. 굉음이 들리는가 싶더니 누르하치는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스물 다섯부터 전장을 주유했던 누르하치였다. 그동안 누르하치는 명군보다 몇 배나 많은 병력을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연전연승했다. 거기에 철기의 기동력이 더해지면서 명의 오합지졸들은 후금군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1619년 사르후 전이 그러했고, 이후 줄곧 마찬가지였다. 이번에는 달랐다. 홍이포의 가공할 위력 앞에서는 후금군의 신속한 기동과 병력의 집중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더욱이 원숭환은 그동안 상대했던 명군 지휘관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인물이었다. 그 스스로 영원성을 점찍어 성벽을 수축하고 군량을 비축해온 ‘준비된 지휘관’이었다.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 전, 여러 장수들과 혈서를 써서 수성(守城)을 맹세했다. 원숭환의 탁월한 영도 아래 만계(滿桂), 조대수(祖大壽) 등 부하 장수들도 선방했다. 연이은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자 누르하치는 병력을 거둬 심양으로 철수 길에 올랐다. 청실록에서는 유격(遊擊) 2명, 비어(備禦) 2명이 전사하고 500명의 병사들이 죽었다고 적었다. 영원성의 승리가 남긴 영향은 컸다. 이후 후금은 함부로 산해관을 넘보지 못했다.1641년(崇禎 14) 홍승주(洪承疇)가 송산과 행산전투에서 무너질 때까지 산해관 앞의 영원을 거쳐 금주(錦州)에 이르는 요새와 성채들은 후금의 서진(西進)을 차단했다. ●전투 부상 후유증으로 누르하치 사망 1626년 8월, 누르하치는 영원성에서 입은 부상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윽고 후금의 버일러(貝勒)들은 홍타이지(皇太極)를 새로운 한(汗)으로 옹립했다. 그는 누르하치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여덟 번째 아들이 최고 권력자로 즉위했다는 사실 자체가 명이나 조선의 눈으로 보면 이채로운 것이었다. 무조건 장자가 계승하는 관행으로 보면 말이다. 홍타이지(1592~1643)는 잘 알려진 것처럼 훗날 제위에 올라 태종(太宗)이 되고, 병자호란을 일으켜 인조에게서 치욕적인 항복을 이끌어냈던 인물이다. 그의 모친은 몽골족 여자였다. 누르하치가 1615년 황(黃), 홍(紅), 남(藍), 백(白) 등 사기(四旗)를 확대하여 팔기(八旗)를 창설했을 때, 스물 두 살의 홍타이지는 정백기(正白旗)를 관할하는 버일러가 되었다. 그는 이 무렵부터 다이샨(代善), 아민(阿敏), 망굴타이(莽古爾泰) 등 그의 형들과 더불어 ‘사대 버일러(四大貝勒)’로 불리면서 정무에 공동으로 참여했다. 홍타이지는 누르하치를 수행하여 전장을 누비면서 탁월한 전공(戰功)을 쌓았다. 특히 1619년 사르후 전투에서 그가 세운 전공은 혁혁하여 누르하치는 ‘내 아들 홍타이지는 사람들이 의지하기를 인체로 치면 마치 눈과 같은 존재’라고 찬양했다. 홍타이지는 무략(武略)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여진족의 지도자로서는 드물게 한문에도 능통했다. 홍타이지가 개인적으로 탁월한 인물이고, 추대에 의해 한으로 즉위했지만 즉위 직후 그의 위상은 보잘것이 없었다. 일견 만장일치에 의해 옹립이 이루어진 것처럼 보였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즉위 직후 당장 그의 사촌형 아민이 삐딱하게 나왔다. 아민은, 홍타이지를 한으로 인정하지만 자신은 소속 기인(旗人)들을 이끌고 독립하겠다고 통보했다. 홍타이지는 긴장했다. 아민의 독립을 허락하면 나머지 각 기들도 전부 이탈하려 들 것이고, 그럴 경우 후금의 연맹 조직이 붕괴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즉위 직후 그는 아민을 설득하는 데 진땀을 흘려야 했다. ●권력강화를 위한 홍타이지의 노력 아민을 겨우 설득했지만 홍타이지의 앞길은 첩첩산중이었다. 누르하치 시대 만주족은 분권(分權), 합의제(合議制)에 기초한 전통적인 부족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누르하치의 권력이 강화될수록 각 버일러들은 자신의 권력이 왜소해지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당연히 누르하치를 견제하려 들었다. 부족제의 전통이 강한 상황에서 홍타이지는 더욱이 서열상 사대 버일러 가운데 맨 꼴찌였다. 나머지 버일러들이 누르하치의 후계자로서 막내인 홍타이지를 옹립한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한의 권력을 억제하고 전통적인 부족제 본래의 통치체제로 돌아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즉위 직후 홍타이지는 백관들로부터 조하(朝賀)를 받을 때 세 명의 형들과 나란히 앉아 남면(南面)했고, 제례(祭禮)를 거행할 때도 그들과 동렬(同列)에 섰다. 그것은 사실상 공동 집정이었다. 홍타이지는 이름만 한일 뿐 실제 가지고 있는 권력 면에서는 세 명의 버일러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홍타이지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나섰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인(漢人)과 몽골인들에게 주목했다. 당시 후금 사회에는 많은 한인과 몽골인들이 있었다. 정복 과정에서 포로로 획득하거나 귀순해 온 사람들이었다. 누르하치는 한인들을 좋게 봐주지 않았다. 그들을 복속시키려고 위해 탄압을 일삼았다. 만주인들이 그들에게 약탈을 자행해도 그다지 문제삼지 않았다. 자연히 만주인들과 한인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졌다. 한인들은 침학을 피해 도망치는 것은 물론, 만주인 관인들을 암살하거나 우물에 독을 풀기도 했다. 무리를 지어 반란을 일으켰다. 홍타이지는 한인들을 안정시키기 위해 정책을 바꾸었다. 만주인 귀족이나 관원들이 한인들을 함부로 약탈하는 것을 금지했다. 한인과 만주인들을 분리시켰다. 한인들의 거주 지역에 만주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한인 관리들을 시켜 그들을 통제하도록 했다. 능력 있는 한인들을 발탁하여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려 했다. 홍타이지의 포용정책에 힘입어 많은 한인들이 관직에 진출했다. 한인 관료들의 경륜과 지식을 활용할 수 있게 됨으로써 홍타이지의 권력은 강화되었다. 1627년 무렵, 홍타이지는 산해관을 향한 서진을 잠시 멈추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힘썼다. 동시에 배후의 위협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조선에게 위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한국인 피랍사건 탈레반 배후 사살

    아프가니스탄 보안군이 한국인 납치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탈레반 사령관 등 16명의 무장대원을 사살했다고 AFP통신이 4일 아프간 정부 소식통을 인용, 보도했다. 아프간군은 한국인 23명이 납치됐던 가즈니주 카라바흐 지역에서 전날 밤 탈레반 소탕작전을 벌였으며, 수시간에 걸친 교전 끝에 납치 사건을 배후에서 조종한 인물로 지목된 물라 마틴을 사살하는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알리 샤 아마드자이 가즈니주 경찰서장은 “이 지역 탈레반 사령관인 물라 압둘라 잔과 함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 인물로 꼽히는 물라 마틴 등 모두 16명의 무장대원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제메라이 바샤리 아프간 내무부 대변인도 “마틴은 한국인 납치사건을 주도한 배후 인물”이라며 그가 사살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미군 주도 연합군 측은 반군 “몇 명”이 사망했다고만 밝혔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중국군 펜타곤 뚫었다

    중국군이 지난 6월 미국 국방부 전산망을 해킹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해커들의 독일 정부 전산망 공격 여부를 둘러싸고 최근 양국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여서 중국의 조직적 해커 양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4일 중국군이 미 국방부 전산망을 해킹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로 인해 국방부는 1주일 넘게 전산망을 차단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발생 당시 국방부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집무실로 연결되는 전산망을 신속히 차단해 기밀자료가 유출되는 것은 막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문은 미 국방부가 해킹의 배후가 누구인지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국방부 전·현직 관리들을 인용,“중국군으로부터 침입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내부 조사에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한 전직 관리는 “중국군은 우리 시스템을 불능화하는 사이버 공격을 감행할 수 있는 능력과 함께 분쟁 상황에서 전산망에 재침입, 대규모로 시스템을 와해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우려했다. 지난 5월 미 국방부가 발간한 ‘중국 군사력 보고서’도 “중국이 미군과 미국의 민간 컴퓨터 네트워크를 공격할 수 있는 많은 수의 컴퓨터 해커부대를 훈련시키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중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해킹 같은 범죄행위는 사라져야 하며 중국은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중”이라며 혐의를 부인하고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그러나 중국군은 걸프전 직후 인민해방군 산하 군사과학협회 등을 통해 사이버 전사를 양성하기 시작했으며,1997년 해커부대를 창설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은 최근 독일 정부의 전산망을 해킹했다도 의혹도 받고 있다. 독일 언론들은 지난달 25일 중국측이 스파이 프로그램을 설치해 독일 정부 컴퓨터를 침투한 흔적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장위(姜瑜) 중국외교부 대변인은 이튿날 기자회견에서 이같은 보도를 부인했다. 최근 중국을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원자바오 중국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문제를 비공식 의제로 꺼내면서 재발 방지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해커들은 지난해 10월 미국 상무부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해 컴퓨터 수백대를 한달 이상 마비시켰으며,11월에는 미 육군정보 시스템 엔지니어링 등을 우주전략방위시설 등을 차례로 해킹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2004년 4월 원자력연구소와 외교부 등 10개 기관이 중국 해커들에 의해 공격당한 바 있다. 또 2006년 6월에는 주요 언론사와 웹사이트들이 무더기로 공격당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李 “권력 중심세력이 정치개입 강요”

    李 “권력 중심세력이 정치개입 강요”

    한나라당 이명박(얼굴) 대선후보는 3일 “국정원과 국세청 할 것 없이 정부기관이 정권 연장을 목표로 하는 전략을 세우고 정치에 개입하는 것은 만천하가 다 안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이날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권력 중심세력에서 강압적으로 지시하기 때문에 (해당기관 공무원들이)본의 아니게 (정치에)참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국정원, 국세청 등이 이 후보 자신에 대한 뒷조사를 했다는 의혹과 관련, 그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주장으로 해석된다. 이 후보는 다만 “모든 기관의 공무원들이 다 나쁜 것은 아니다.”면서 “‘이래서는 안 되는데….’라며 국가에 대한 걱정을 하는 직원들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뒤 “참여정부 들어 검찰, 국정원, 국세청, 경찰 등과 같은 권력기관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정치 개입을 안 하는 과제가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한편 이 후보는 17대 국회 마지막으로 이날 개회된 정기국회 대책과 관련,“범여권은 정권 연장을 목표로 여러 전략을 세울 것이고, 한나라당은 정권교체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전략을 세울 것”이라면서 “내년도 예산은 한나라당이 집행한다는 생각으로 관심을 갖고 알뜰하게 짜는 노력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김상진씨는 ‘바지사장’ ?

    김상진씨는 ‘바지사장’ ?

    정윤재(43)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비호를 받고 있는 건설업자 김상진(42)씨는 ‘바지 사장’일까. 김씨는 형 효진(44)의 지시에 따라 심부름만 하고 있을 뿐이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으며, 정 전 비서관에게 김씨를 소개한 점 등 이를 뒷받침하는 정황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검찰도 최근 보완 수사에 착수하면서 수사의 칼끝을 김씨의 형쪽으로 향하고 있어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검찰은 그동안 김씨가 각종 사업을 추진하면서 탈세와 횡령·배임, 뇌물공여 등을 저지른 배후에 효진씨가 깊숙이 개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우선 김씨 형제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3개 회사가 같은 날 같은 이름으로 변경, 의혹을 부풀렸다. 지난달 10일 김씨 소유로 알려진 연산동 재개발사업 추진 업체인 ㈜일건은 ‘㈜유씨디(UCD)’로, 민락동 개발사업을 추진하는 스카이시티는 ‘유씨디파크’로 변경신청을 했다. 같은 날 김씨의 형 소유로 알려진 하늘개발은 ‘유씨디인터내셔널’로 회사명 변경신청을 했다. 이는 이들 회사의 소유주가 효진씨라는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다. 효진씨가 굳이 횡령·배임 등 혐의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김씨와 같은 회사명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는 지적이다. 회사명을 변경 신청한 날은 공교롭게도 정 전 비서관의 사표가 수리된 날이며, 법원은 같은 달 16일 회사명 변경을 승인했다. 그리고 김씨 형제가 소유한 회사의 주소지가 모두 부산 부곡동 애플타워로 같은 것도 효진씨가 실질적인 사주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 건물은 효진씨가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하늘개발의 소유다. 2005년 5월 김씨와 효진씨는 각각 자신의 명의로 ㈜일건과 하늘개발을 설립하고, 상대 회사에 이사로 참여했다. 실제로 효진씨의 소유인 하늘개발(유씨디인터내셔널)은 지난해부터 진행된 연산동 재개발사업 철거공사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민락동 개발사업 추진배경에서 나타난 의문점도 효진씨가 실질적인 사주임을 가늠케 한다. 지난해 국세청 특별세무조사를 받고, 직원으로부터 내부 비리 고발에 시달리다 검찰의 수사를 받던 김씨가 신규 사업을 추진할 수 없었음에도 무리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효진씨가 배후에서 용도변경과 은행 대출 문제 등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고, 김씨는 대외 활동만 했다는 ‘바지 사장’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자본금 3억원짜리 회사가 용도 변경이 결정되지 않았고, 사업계획이 승인되지 않은 상태로 680억원을 대출받은 배경에는 효진씨가 아니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실력자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연산동 재개발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한 하청업자는 “김 사장의 형(효진씨)이 정치권 인사와도 두루 친분을 유지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업자는 “로비를 했다면 김 사장의 형이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효진씨는 최근 “지난 1월 애플타워 재산권 문제로 동생과 심하게 다툰 뒤 전화연락도 안 할 정도로 사이가 멀어졌다.”며 김씨와의 관련설을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부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검찰 재수사서 풀어야 할 의혹

    검찰 재수사서 풀어야 할 의혹

    검찰이 정윤재(43)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부산 한림토건 대표 김상진(41)씨 국세청 로비사건 연루 의혹과 관련, 보강 수사에 나서기로 한 배경에는 ‘여론의 압박’이 크게 작용했다. 검찰은 지금껏 정 전 비서관이 현재 공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사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또 서울의 한정식집에서 김씨가 국세청 간부에게 1억원을 건넨 자리에 동석한 정 전 비서관의 그동안 행보도 이 사건을 시원하게 풀어주기에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무조사 연루설´ 여론압박 부담 검찰이 재수사를 결정한 데는 여론의 압박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국세청의 조직적 비호는 물론 재개발사업, 금융대출 등에서 다양한 특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나 ‘정·김 커넥션’을 초월한 정권차원의 배후 존재 유무에 국민적 관심이 쏠렸기 때문이다. 우선 구속된 정상곤(53) 당시 부산지방국세청장과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나선 건설업자 김씨를 잇는 연결고리가 정 전 비서관이라는 점은 다양한 의혹의 진원지다. 정 전 비서관이 노무현 대통령의 ‘386’ 최측근으로 영향력을 펼쳐왔다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키우고 있다. 검찰의 앞선 수사가 미흡하다는 지적도 검찰 수뇌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정 전 청장이 지난해 8월 김씨에게서 받은 1억원의 용처가 지금껏 밝혀지지 않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번 사건이 제대로 해명되지 않을 경우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점도 수사재개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부산지검이 수사 재개 의견을 올린 뒤 검찰 수뇌부가 이를 추인하는 형식으로 재개됐다는 해석이다. 한나라당 등 정치권이 9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특검을 요구하는 등 검찰을 압박해온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수사 재개 이유로 보인다. 이같은 배경으로 미루어 청탁의혹을 받는 정 전 비서관에게 일차적인 초점이 모아질 전망이다. ●정 전 비서관 2004년 총선 비용도 의문 정 전 비서관의 저간의 행보에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은 정 전 청장이 정 전 비서관으로부터 단 한 차례 전화만 받고 김씨의 세무조사 무마 청탁에 응했다는 점이다. 국세청 조사팀 간부를 시켜 세무조사에서 빠져나가는 방법까지 조언한 배경도 궁금하다는 것이다. 정 전 비서관은 김씨가 정 전 청장과 통화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를 알았는지에 대해서 밝히지 않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은 김씨와 정 전 청장이 서울에서 가진 저녁자리에 대해서도 김씨가 나오는 줄 모르고 갔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뇌물이 건네진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건설업자 김씨는 300억원 사기혐의로 7월16일 구속됐다가 27일 부산지법 구속적부심에서 보증금 3000만원을 내고 풀려났다. 피해액을 다 갚고 피해자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지만 수사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이라는 의견이다. 더구나 기술신용보증기금 등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받은 62억원을 당시 신용불량상태였던 김씨가 구속돼 풀려나기까지 짧은 시간에 다 갚을 수 있었던 배경도 의혹이다. 부산 정가에서는 2004년 총선 당시 부산 사상구에서 출마했던 정 전 비서관의 선거비용 등 재정적 능력에 대한 의혹도 나오고 있다. 당시 특별한 재력이 없었고 후원회를 열 수 있는 현역의원도 아니었던 정 전 비서관이 월 임대료가 평균 400만∼500만원에 이르는 번화한 지역에 사무실을 내고 선거를 치른 것과 관련해 궁금한 부분이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설업자 김씨의 후원설도 나돌고 있다. 부산 강원식·서울 오상도기자 kws@seoul.co.kr
  • “내 이름 거론땐 50억 손배소”

    동국대 교수 임용과 광주 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을 둘러싼 신정아씨 배후로 범여권의 대선후보가 거론돼 대선정국에 일파만파의 파장을 낳고 있다.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31일 브리핑에서 “신씨 관련 의혹 조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날 강재섭 대표의 의혹 제기를 재상기시킨 것이다.강 대표는 전날 당 연찬회에서 신씨의 가짜 학위파문에 대해 “동국대에서는 허위학력과 관련된 여러 비리혐의가 있고 이 문제에 청와대 수석, 더 나아가 대권후보까지 관련돼 있다는 설이 들리는데 이런 게 국민을 분노케 한다.”면서 “수사가 미진하면 당력을 기울여 특별검사를 둬서라도 (진상을) 파헤치겠다.”고 밝혔다.박계동 한나라당 전략기획본부장도 “대선주자가 한 명이 얽혀 있는 것으로 안다.”고 거들었다. 이를 두고 한나라당이 “9월 정기국회를 이명박 검증국회로 하겠다.”는 범여권을 상대로 “선제공격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법조계에서도 대선주자 연루설이 화제다.범여권 모 대선주자가 E대학 김 모교수로부터 청탁받아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다시 부탁했다는 것이다. 배후자로 거론되고 있는 대선주자는 발끈했다. 그는 기자들에게 “신씨와는 일면식도 없다. 나는 10년 전부터 의원회관 내 방으로 찾아오는 사람들 이외에는 명함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관리를 해왔는데 말도 안 된다.”며 배후설을 전면 부인했다. 이어 “그러잖아도 경선을 치르면서 캠프에 돈이 없는데 정치권이나 언론에서 내 이름을 거론하면 바로 50억원의 손해배상을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자칫 대응을 잘못했다간 대권가도에서 낙마할 수도 있음을 감안한 발언이다. 한편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날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저출산·고령화 대책 연석회의 제3기 협약체결 격려 오찬에 앞서 기자들에게 “나는 공무원으로 재직한 30년 동안 바르게 한 사람”이라며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면서 “지난주말 변호사를 만났고, 이번 주 다시 만난다.”며 법적 대응방침을 거듭 확인했다.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시론] 다인종·다문화 공생사회로 가는 길/이철승 목사 전국 외국인이주·노동 운동협의회 대표

    [시론] 다인종·다문화 공생사회로 가는 길/이철승 목사 전국 외국인이주·노동 운동협의회 대표

    우리 사회가 외국인 체류 100만명 시대를 맞았다.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지닌 소수 민족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거리와 일터에서 타 인종을 만나는 게 일상화됐지만 우리에게 여전히 그들은 외국인이요, 이방인일 뿐이다. 반면 “미국 국적자로 살아가는 동포들과 2세들이 과연 한국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정반대의 태도가 나타난다. 비록 국적이 달라도 피가 섞이고 생김새가 같은 동포들은 당연히 이웃이요, 한국인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우리사회의 관념과 집단의식의 배후에는 단일민족이라는 배타적 혈통민족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급기야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가 한국 사회는 다민족 사회가 된 현실을 직시하고 ‘단일민족’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단일민족이라는 순혈주의 전통 속에 담겨있는 인종적 우월성의 관념이 인종차별적 사회통념을 부추김으로써 다인종으로 살아가는 한국사회의 미래가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최근 우리사회에선 소수인종 일부가 사회구성원으로 섞여 살아간다고 해서, 이를 빌미로 수천년의 전통과 문화유산인 혈통민족주의를 문제 삼는 건 지나친 지적이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순수 혈통민족주의를 지키려는 집단적 의지 자체가 아니라, 배타적 혈통민족주의가 인종차별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란 우려다. 우리 혈통의 순수성을 자랑과 긍지로 여긴다면 마땅히 타 인종에 대한 순수성의 긍지 또한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 배타적 혈통민족주의를 넘어선 ‘다인종·다문화 공존’이라는 문명사적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그 결과는 지독히 혹독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체류 외국인들의 절반은 10여개 국가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고, 이들은 3년이상 체류를 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불법체류자’로 낙인 찍힌 22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 문제이다. 이는 정주화 금지라는 우리 사회의 불문법의 성역을 허물지 않고는 해결할 수 없다. 독일은 50여년 지켜온 혈통주의 국적법을 2000년 수정하며 이를 사회통합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부담의 교훈으로 삼았다. 최근 한 재미동포 교수로부터 이민생활 체험담을 들었다.10대에 이민 가서 중·고·대학을 거쳐 주립대 부교수에 오른 그는 한국의 이주노동자들도 미국에서 동일한 경험을 겪었다고 한다. 이민자들이 겪는 음식, 언어, 종교 등 문화적 갈등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동화되고 극복되지만 인종에 대한 정체성 갈등은 여전히 남는다고 한다. 미 사관학교 출신인 그는 각종 장학금 혜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외국 출신 이민자에게도 시민으로서 평등한 기회와 권리를 부여하는 경험을 누리며 미국 사회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소외받고 살아온 경험들도 있지만, 자신이 미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와 권리를 주인된 입장으로 지켜 나가야겠다는 정체성을 지니게 됐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살아가는 소수민족 출신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발적 주체의식을 형성하고 있을까? 지금의 정치·사회·문화 영역의 정책은 우리사회의 소수인종 출신자들과 2세들에게 20∼30년 후 스스로 대한민국 구성원이라는 자발적 정체성을 지니도록 열린 민족주의 정책을 배려하고 있는지 반문해 보길 바란다. 이철승 목사 전국 외국인이주·노동 운동협의회 대표
  •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 명과 후금의 정세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34) 명과 후금의 정세 Ⅱ

    천계 연간 격렬한 당쟁이 빚어지고 결국 위충현을 비롯한 엄당이 국정을 장악하게 되자 그 불똥은 곧바로 산해관 바깥으로 튀었다. 요동, 요서(遼西)의 방어를 책임진 최고위 지휘관들 또한 당쟁의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어느 당파에 속하느냐가 경략(經略), 순무(巡撫) 등의 운명을 결정했다. 설사 뛰어난 전공이 있더라도 엄당의 눈밖에 나면, 비명횡사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동림당과 연결되어 있던 웅정필(熊廷弼)과 원숭환(袁崇煥)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였다. ●당쟁에 희생된 웅정필과 원숭환 웅정필(1569∼1625)은 1619년 명의 대군이 사르후 전투에서 참패한 이후 요동경략으로 흐트러진 요동 지역의 방어태세를 수습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친히 무순 지역까지 순시하면서 요동의 형세와 후금의 동태를 파악한 뒤, 후금군의 서진(西進)을 막기 위해 이른바 삼방포치책(三方布置策)을 제시했다. 산해관 지역의 방어를 굳건히 하고, 천진(天津)과 등래(登萊) 등지의 수군을 활용하고, 조선의 도움을 받아 후금을 배후에서 견제한다는 복안이었다. 웅정필의 계책은 광녕순무(廣寧巡撫) 왕화정(王化貞)의 반대에 밀려 실현될 수 없었다. 왕화정은 병부상서 장학명(張鶴鳴)의 지원을 받았고 엄당 쪽에도 줄을 대고 있었다. 웅정필과 왕화정의 대립은 결국 동림당과 엄당의 대립이었던 셈이다. 두 사람의 불화 속에 1622년 광녕이 함락되었다. 패전의 책임을 지고 두 사람 모두 체포되었지만 1625년 웅정필만 사형이 집행되었다. 참수된 웅정필의 목은 변방으로 조리돌려졌다. 광녕이 함락된 데는 왕화정의 과오가 훨씬 컸음에도 정작 웅정필만 처형된 것은 엄당의 농간 때문이었다. 당쟁, 그리고 엄당의 전횡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였다. 웅정필이 사라진 이후 나타났던 영웅이 원숭환(1584∼1630)이다. 원숭환은 명과 후금 사이의 군사적 대결, 궁극에는 명청교체(明淸交替)라는 격동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빼 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천계 연간 명이 엄당의 전횡에 휘말려 안으로 휘청거리고 있을 때, 밖에서 후금의 군사적 위협을 막아냄으로써 국가안보를 책임졌던 동량(棟樑)이었다. 승승장구하던 누르하치도 원숭환이 버티고 있던 영원성(寧遠城·오늘날 요녕성 興城市 소재)을 넘지 못했고, 끝내는 패전의 후유증으로 죽었다. 원숭환이 1626년 영원성에서 승리를 거두자 명의 조야는 감격했다.1619년 사르후 전투 이후 연전연패했던 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원숭환은 일약 ‘하찮은 여진 오랑캐’ 때문에 구겨진 중화(中華)의 자존심을 살린 민족의 영웅이 되었다. 하지만 이 ‘중화의 영웅’ 또한 1630년 비명횡사했다. 전장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명 조정이 스스로 죽였다. 후금의 반간계(反間計)와 명 조정의 당쟁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나타난 결과였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사학자 옌충녠(閻崇年) 등이 중심이 되어 원숭환을 추모하고 그의 시대를 재조명하려는 분위기가 자못 활발하다. 일찍이 마오쩌둥(毛澤東)도 민족의 기절(氣節)과 애국주의를 선양하려는 차원에서 원숭환 관련 사적을 정비하라고 직접 지시했을 정도였다. ●영원성에 방어의 거점을 마련하다 원숭환은 호(號)가 자여(自如), 자(字)가 원소(元素)로 광동성(廣東省) 출신이다. 그는 1597년(만력 25) 수재(秀才)가 되고,1606년(만력 34) 향시(鄕試)에 합격하여 거인(擧人)이 되었다. 원숭환은 36세 때인 1619년(만력 47) 북경에서 과거에 최종 합격하여 벼슬에 진출했다. 그가 조정으로부터 처음 임명된 관직은 복건(福建) 소무현(邵武縣)의 지현(知縣)이라는 자리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의 군수급 관직이었다. 일개 지방관에 불과했던 원숭환의 운명이 바뀐 것은 1622년이었다. 지현 재직 시의 근무 성적에 대한 고과(考課)를 위해 북경에 왔는데, 그의 능력을 알아본 어사 후순(侯恂)이 원숭환을 천계제에게 추천했던 것이다. 후순은 동림당 계열이었다. 천계제는 원숭환을 병부 직방주사(職方主事)로 발탁했다. 지방관에서 일약 중앙관으로 변신시킨 파격적인 인사였다. 1627년까지 승진을 거듭한 원숭환은 이후 요서 지방의 방어 대책을 마련하여 북경과 산해관의 안전을 지키는 최일선에서 활약하게 된다. 산해관 방어를 위해 고심하던 원숭환은 영원을 주목했다. 영원은 산해관에서 200리 정도 떨어져 있는 ‘산해관의 현관’이었다. 요동, 요서 지역에서 육로로 산해관이나 북경으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야만 했던 전략 요충이었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동쪽으로는 발해만에 접해 있어 방어에 용이했다. 더욱이 해안에서 15리 정도 떨어진 바다에 각화도(覺華島)라는 섬이 자리잡고 있어서 배후의 지원 기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원숭환은 산해관을 지키려면 영원에 제대로 된 중진(重鎭)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명 조정의 관인들 가운데는 산해관 바깥의 방어를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았다.1618년 이래 거듭되었던 요동에서의 패전 때문에 병력이 격감하고 성지(城池) 등 방어 시설이 퇴락한 데다, 주민들이 이산했기 때문이었다. 영원을 방어해야 한다는 원숭환의 주장은 왕재진(王在晉) 등의 반대에 밀려 채택될 가능성이 별로 없었다. 반대를 무릅쓰고 황제를 설득하여 원숭환의 손을 들어준 사람은 대학사 손승종(孫承宗)이었다. 손승종의 지원을 얻어낸 원숭환은 1623년 영원성 수축에 감독관으로 직접 참여했다. 그는 조대수(祖大壽)와 만계(滿桂) 등을 지휘하여 담장을 높이고, 포대(砲臺)를 개수하는 등 성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1624년 9월, 영원성의 수축 공사는 완료되었다. 원숭환은 이후 성 외곽의 유민들을 불러모아 농경지를 개간토록 하고, 산해관과 해로를 통해 상인들도 끌어들여 성에 대한 물자 공급도 원활하도록 조처했다. 버려졌던 영원성은, 사람들이 돌아오고 물자가 활발하게 유통되면서 아연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살상력 뛰어난 홍이포(紅夷砲)를 거치하다 영원성을 정비한 이후 원숭환이 가장 신경을 썼던 것은 명군의 화력을 증강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주목한 것이 바로 홍이포였다. 명 조정에는 일찍부터 서양의 새로운 화포인 불랑기(佛狼機)나 홍이포 등을 활용하여 후금군을 제압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관료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선구자는 유명한 서광계(徐光啓·1562∼1633)였다. 일찍이 예수회 선교사 마테오 리치를 통해 천주교에 입교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에 눈을 떴던 그는 서기(西器), 그 가운데서도 서양식 화포의 활용을 열렬히 주장했다. 천계제는 서광계 등의 건의를 받아들여 포르투갈 상인들의 근거지였던 마카오(澳門)로부터 30문의 홍이포를 구입하여 북경의 도성과 산해관 등지에 배치했다. 홍이포는 기존의 중국식 화포에 비해 사정 거리가 길었을 뿐 아니라 살상력이 월등했다. 영원성 전투 이전에 요동에서 벌어진 후금군과의 전투에서도 명군은 화포를 사용했지만 그 위력은 신통치 않았다. 처음 사격 후, 두 번째 포탄을 발사하기 전에 후금군의 날쌘 기마대는 이미 명군 진영을 덮쳤다. 그런 전철을 뒤풀이하지 않으려면 훨씬 강력한 위력을 지닌 화포가 필요했다. 원숭환은 손승종과 상의하여 산해관에 배치되어 있던 홍이포 11문을 영원성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그것들을 성밖이 아닌 성루(城樓) 위로 옮겨 배치했다. 원숭환은 병사들에게 홍이포를 조작하는 기술을 숙달시키기 위해 손원화(孫元化) 등을 불러들였다. 훗날 등래순무(登萊巡撫)로 활약했던 손원화는 당시 손꼽히는 화기 전문가였다. 그는 일찍부터 포르투갈 기술자들에게 홍이포를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손원화는 영원성의 포병들을 훈련시켰다. 원숭환의 혜안과 손원화 등의 노력을 통해 영원성의 방어 태세는 일신되었다. 1626년 1월, 누르하치는 팔기군을 이끌고 요하(遼河)를 건너 영원성을 향해 진군했다.1618년 이후 거침없이 승전을 구가해 왔던 누르하치였다. 하지만 곧 그의 머리 위로 홍이포의 불벼락이 날아든다. 누르하치의 운명이 종착역에 이르렀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신정아 파문’ 어디까지] 범여 실세 L씨 모종의 역할설

    [‘신정아 파문’ 어디까지] 범여 실세 L씨 모종의 역할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위 위조와 동국대 교수 임용,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임명과 관련,‘권력형 커넥션 의혹’으로 비화될지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변양균 청와대 정책실장이 청와대 대변인을 통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신씨의 가짜 학위 파문과 관련해 의혹을 제기한 전 동국대 이사회 이사 장윤 스님과 지난 5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만난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변실장이 청와대-불교계 가교역” 변 실장은 미술에 관심이 많아 신씨를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는 하지만 각종 의혹이 뒤따를 것이 뻔한 위험스러운 인물과 왜 접촉했는지, 말 못할 사연(?)이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동국대 재단에 신씨의 임용을 부탁하거나 가짜 학위 파문이 더 커지지 않도록 무마하려고 했는지, 검찰이 2004년부터 내사를 벌여온 동국대의 각종 재단 비리 등과 관련해 내사가 확대되지 않도록 협조 요청을 하지 않았는지 등의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변 실장의 배후에 또 다른 권력 실세가 있을 것이란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변 실장의 행보에는 범여권 실세 L씨가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나돈다. 범여권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L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예일대 박사 출신의 모 대학 교수로부터 신씨의 어려운 사정을 전해듣고 변 실장한테 부탁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독실한 불교신자인 변 실장이 청와대와 불교계의 가교 역할을 맡고 있어 재단 등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장윤 스님과의 만남 등도 그런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그러나 권력 실세의 개입이 조직적이거나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지인의 부탁을 들어준다는 차원에서 이뤄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불교계와 가까운 변 실장이 신씨를 보호하기보다는 재단의 화합을 위해 중재에 나서려 했던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따라서 신씨 사건의 실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가짜 학위 의혹을 폭로한 장윤 스님에 대한 조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각종 의혹을 제기했고, 권력 실세 가운데 한 명인 변 실장과 만나 대화를 나눈 유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교계에서도 장윤 스님의 직접적인 해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 등은 그동안 신씨 사건에 대해 학내 문제로 선을 긋고 관망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 문제가 종단 내부의 파벌간 알력설에 초점이 맞춰지는 등 파문이 확산되자 빨리 진화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다. 장윤 스님의 측근들도 ‘사태 장기화는 좋지 않다.’고 보고 빠른 시일 내에 입장을 표명하도록 장윤 스님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윤스님이 신씨 사건 실체 알 것 일각에서는 신씨 사건이 불거진 것은 조계종단 내부의 고질적인 권력 다툼에서 비롯됐다는 비난이 거세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조계종단 내에는 특정 사찰, 강원(講院) 등이 중심이 된 종단 정책을 연구하는 모임이 여럿 있다. 이 모임들이 총무원장 및 종회의원 선거, 동국대 운영 문제 등을 놓고 끊임없이 경쟁해왔다. 총무원에서 ‘여당’으로 분류되는 장윤 스님은 이른바 ‘직지사 문중’으로 동국대의 현 이사진 내에서는 비주류에 속한다. 장윤 스님이 2004년 서울 중구 필동에 있는 중앙대 부속병원 인수 과정과 관련해 계약금 과다 지급 등의 문제를 제기한 데 이어 이번에 신씨의 가짜 학위 문제를 주장하며 현재 동국대 주류측과 끊임없는 갈등을 겪어왔던 것도 이같은 세력 다툼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따라서 가짜 학위 사건에 대한 1차적인 의혹은 장윤 스님이, 신정아씨 동국대 임용과정과 가짜 학위 무마 여부를 둘러싼 권력형 커넥션 여부는 검찰이 밝혀야 할 대목이다. 검찰이 장윤 스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병철기자 bcjoo@seoul.co.kr
  • 되살아나는 제노포비아 망령

    유럽에서 ‘제노포비아(Xenophobia·외국인혐오증)’의 악령이 사라지기는커녕 더욱 설쳐대고 있다. 러시아, 독일 등에서 스킨헤드(Skin head)를 비롯한 극우민족주의자들의 외국인에 대한 무차별 폭행사건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조직 폭력의 양상까지 띠고 있어 대책이 시급한 상황에서 이참에 아예 유럽에서 극우정당을 불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정도다. 지난 19일(현지시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동쪽으로 45㎞ 떨어진 뮈겔른에서 열린 마을축제에서는 약 50명의 독일 젊은이가 인도사람 8명을 집단 폭행해 12명이 다쳤다. 작센주 경찰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해 외국인 혐오 범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폭행한 독일 젊은이들이 외국인 혐오 구호를 외쳤다고 보도했다. 같은 날 독일 서부 마인츠에서도 아프리카계 외국인 2명이 극우파 청년들에게 맞아서 1명은 중상을 입었다. 26세의 수단사람은 와인 축제 장소에서 와인병으로 머리를 맞는 등 집단 폭행을 당했다.39세의 이집트사람은 이 수단사람을 도우려다 구타를 당했다고 현지 경찰이 전했다. 러시아에서는 악명높은 극우단체 스킨헤드가 툭하면 외국인을 겨냥, 잔인한 폭력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한국인도 예외없이 이들의 타깃이 되고 있다. 지난 2005년 2월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는 음악을 전공하던 조모(당시 16세)씨가 스킨헤드의 공격을 받아 11군데 자상을 입고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극우주의자들까지 스킨헤드의 범죄행위를 답습, 외국인에 대한 조직적인 폭력행위를 가하고 있다. 이처럼 외국인 폭행 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배후에는 극우 정당들이 젊은이들을 선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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