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배후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 드림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 주연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 나주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 성악
    2026-06-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129
  • [옴부즈맨 칼럼] 성역 타파한 외국인 조폭 탐사보도/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옴부즈맨 칼럼] 성역 타파한 외국인 조폭 탐사보도/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어느 사회나 조직에서도 금기시된 성역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우리 정치권의 ‘3대 성역’이라고 하면 ‘종교’, ‘성(性)’, ‘지역’ 문제이다. 정치인들은 이런 3대 금기사항을 피하느라 선거 유세 때 아슬아슬한 말의 곡예를 탄다. 그럼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를 중요시하는 한국 언론의 성역은 과연 어디일까? 아마도 ‘지역’, ‘종교’, ‘군대’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역’이라고 언급조차 할 수 없는 언론에서 오랫동안 금기시하는 분야는 조직폭력에 관한 기사일 것이다. 외국 언론은 오래전부터 조폭과 힘든 전쟁을 벌이고 있다. 기존의 공권력이 이미 조폭과 결탁해 불의에 침묵하고 있을 때 언론은 분연히 일어나 이러한 문제를 심층 파헤쳤다. 1976년 6월2일 미국 애리조나 리퍼블릭 신문의 돈 볼레스 기자는 이지역의 마약과 조폭과의 연관성을 취재하다 자동차 폭파테러를 당하게 된다. 안타깝게도 이 폭파사건이 있은 지 11일 후 그는 죽게 된다. 볼레스 기자를 암살한 배후를 밝혀내기 위해 미국 전역에 있는 250여명에 달하는 탐사기자들이 한곳에 모여 일명 ‘애리조나 프로젝트’를 결성하게 된다.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1977년 3월, 총 23회에 달하는 장기 프로젝트 보고서를 발간하고 애리조나 프로젝트는 마감을 한다. 이로 인해 ‘탐사보도협회’가 창설돼 현재 전 세계에 걸쳐 2000여명의 탐사언론인이 이 협회를 중심으로 금기시된 성역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볼레스의 조폭과의 싸움은 또 다른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이처럼 조폭에 대한 보도는 기자의 목숨을 담보로 한 매우 위험한 취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조폭에 대한 보도는 단편적이고 에피소드 중심인 보도가 주를 이뤄 왔다. 이러한 기존 보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폭 보도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한 탐사보도가 지난 10월7일부터 10일까지 서울신문 지면을 통해 선보였다. 취재원 보호뿐만 아니라 자칫 기자에게 가해질 위해요소를 차단하기 위해 이름 대신 ‘탐사보도팀’으로 표기하는 편집의 세심함도 돋보였다. 외국인 거주자 100만명 시대를 맞이했지만 그동안 외국인 조폭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점은 우리 언론의 국수주의적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서울신문의 외국인 폭력조직 문제를 진단하는 탐사보도는 나흘에 걸쳐 국내에 진출해 있는 주요 외국 조폭 활동과 인터뷰, 실제 명칭은 물론 국내 조직과 연계한 내용을 상세하게 취재해 그 내용이 한층 돋보였다. 해외 조직폭력까지 아우르는 기사내용을 종합하는 그래픽 전달도 훌륭했다. 10월7일 8면과 8일 4면, 그리고 9일 4면에 실린 외국인 폭력조직과 주요 활동지역과 국내 활동 중인 중국 흑사파 계보도 등은 앞으로 외국인 조폭 문제를 더욱 심층적으로 취재해야 할 여지를 남겨주는 대목이다. 내용에 있어서도 외국인 조폭을 국내조폭과의 연계 관점에서 보고 해외 조폭과의 연계를 파헤친 점은 보도의 지평을 한 차원 높인 분석이다. 또한 일본·중국·러시아를 축으로 하는 전통조폭과 베트남·필리핀·태국을 중심으로 하는 신흥조폭으로 상세하게 분석, 각 특징을 제시한 점은 조폭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전문가 인터뷰와 수사기관내의 불협화음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 점도 이 보도가 일회적 폭로성 보도가 아니라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는 의미 있는 탐사보도라는 점을 방증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조폭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취재하고 최근엔 ‘야쿠자: 일본의 지하범죄 세계’를 출간한 바 있는 데이비드 카플란은 조직범죄의 위험성을 지구 온난화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전 지구적 조직범죄에 대한 수사도 그렇듯이 이에 대한 취재도 국제적 협력과 공조가 필요한 시대다. 이민규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
  • 전북 동북아 식품클러스터로 뜬다

    전북 동북아 식품클러스터로 뜬다

    전북이 동북아의 식품산업 수도로 떠오르고 있다. 전북도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해 안정적인 예산확보와 사업추진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9일 밝혔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내년부터 2015년까지 익산시 왕궁면 일대 396만 7000㎡에 국비와 지방비, 민자 등 8100억원을 투자해 식품전문산업단지 등 11개 사업을 추진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국가식품클러스터 조성으로 자동차 시장의 3배 규모에 이르는 식품산업을 전북이 선점하게 됐다.”며 “식품산업을 앞으로 100년 동안 전북을 먹여 살릴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겠다.”고 말했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동북아의 식품시장 허브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내년부터 6년 동안 국가식품전문산업단지와 식품기능성평가센터, 식품품질안전관리센터, 패키징센터 등을 조성한다. 식품전문산단은 주거와 상업용지 등을 합해 396만㎡ 규모다. 이와 함게 국책 연구개발(R&D)기관, 글로벌 연구소 등 복합R&D 인프라를 구축해 국제경쟁력을 갖춘 식품산업을 육성한다는 전략이다. 전북도는 올 연말까지 사업시행자를 지정, 산업단지 개발계획 수립 등 각종 행정절차를 마치고 2012년까지 산단을 완공, 선도기업과 민간연구소를 유치할 계획이다. 전북도와 익산시는 식품산단에 150개 이상의 국내·외 유수기업과 연구소를 유치해 수출 위주의 클러스터로 육성한다는 복안이다. 식품클러스터는 직·간접적으로 7조 4000억원의 생산과 4만 1000명의 고용유발 효과가 창출될 것으로 전망됐다. 클러스터 기본계획 용역을 담당한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식품클러스터에 전통 발효식품, 기능성 식품 등 국내 농수산업과 연계해 성장과 수출할 수 있는 국내외 식품기업 145곳, 민간연구소 10곳 이상이 입주, 5조 5000억원의 생산유발 효과가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또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2만 3000명의 고용이 유발될 것으로 기대했다. 간접적 효과로 클러스터 주변에 형성되는 주거·상업지 등 배후단지에서 1만 8000여명의 고용과 1조 9000억원의 생산이 유발될 것으로 예측했다.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은 1차 타당성 관문을 통과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도 만만치 않다. 우선 기반시설이 조성돼도 민자유치가 안 될 경우 국가식품클러스터는 알맹이가 빠진 사업이 된다. 최근 국내 굴지의 식품회사를 대상으로 입주의향조사를 실시한 결과 적극적 의사를 표시한 기업은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클러스터가 들어설 익산시 왕궁면지역 한센인촌과 축산단지 이전도 시급한 과제다. 클러스터가 들어서는 지역은 축산단지와 직선거리로 4㎞밖에 떨어지지 않아 청정환경 조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치다. 클러스터 기획, 조정, 관리를 담당할 식품산업지원센터 설립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도시와 산] (32) 강원도 화천 용화산

    [도시와 산] (32) 강원도 화천 용화산

    강원 화천 용화산(龍華山)은 북으로는 파로호, 서로는 춘천호, 남으로는 소양호를 끼고 우뚝하다. 해발 853m의 중봉이지만 바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위용이 예사롭지 않다. 강원도 첩첩산중에 꼭꼭 숨은 산이지만 전국 100대 명산에 포함될 만큼 자태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북한강 상류 물줄기를 사이에 두고 화천읍내를 남으로 감싸안고 있는 화천의 진산이다. 산을 오르는 곳곳마다 상고(上古)시대 이전 고대 맥국(貊國) 성터와 절터 흔적이 남아 있고, 깎아지른 기암절벽마다 재미있는 구전 설화가 바람처럼 전해온다. ●춘천과 화천의 경계 갈라 용화산 정상은 춘천과 화천의 경계를 가른다. 남쪽 춘천방면을 바라보면 발 아래로 수십m의 아찔한 바위 절벽을 이루며 천혜의 요새를 이룬다. 멀리 춘천시내가 아스라이 보이고 맑은 날에는 춘천의 중심에 자리한 봉의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을 돌려 북쪽을 바라보면 화악산 등 준봉을 뒤로한 화천읍이 햇살을 받으며 오붓하게 형성돼 있다. 산세가 이렇다 보니 정상의 서쪽 사면에서 동쪽 팔부능선까지 북사면을 따라 돌을 이용한 용화산성의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띈다. 북사면 중간쯤에는 성문터로 짐작될 만한 돌들도 남아 있다. 삼국시대와 상고시대 이전 강원도의 전신으로 알려진 맥국 임금이 지금의 소양강댐 하류 춘천지역을 도읍으로 정하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성을 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성터 주변에는 주춧돌과 석불 등의 흔적이 남아 있어 한때 융성했던 성불사, 용화암자의 모습을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하게 한다. 이후 신라시대 김유신 장군이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첫 승리를 이끌어낸 비사성전투 격전지가 이곳 용화산성이었다는 주장도 역사가들 사이에 제기되고 있다. 화천문화원 정종성(48) 사무국장은 “용화산 인근의 간척리 볏바위에 새겨진 글자가 통일신라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고 김유신 장군이 이끄는 화랑들의 무리가 용화낭도였다는 점 등을 들어 사학자 일부는 용화산의 유래를 조심스레 이같이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강 상류지점 끝자락에 있어 청동기, 철기시대때는 160여가구가 모여 살 만큼 융성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서해에서 북한강 물줄기를 따라 오르다 육지가 맞닿는 지점에 있는 용화산은 신라, 고구려, 백제의 격전지였고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최근에는 화천댐의 전력 확보를 놓고 치열한 전투를 치른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한시도 조용한 날이 없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했다. 춘천에서 407호선 지방도로를 따라 달리다 화천읍을 지척에 두고 9번 군도로 접어 들어 도로 끝 지점까지 오르면 용화산 산행 초입에 이른다. 이곳에서 산 정상까지 40분 정도면 족하지만 초입부터 깔딱하다. 오르면서 10분쯤 간격으로 쉴 수 있는 바위들이 나타나 숨고르기를 도와 준다. 쉬면서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바위 사이에 자리잡은 소나무와 멀리 보이는 산들이 절경을 연출한다. 바위를 밟으며 오르는 산행 동안 발 아래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절벽이 발끝을 간지럽히고 기기묘묘한 바위들에 얽혀 전해 내려오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눈과 귀를 즐겁게 한다. ●심바위·칼바위·아들바위… 바위마다 전설 가득 효자가 산삼을 캤다고 알려진 심바위, 바위가 자리를 깐 듯이 생긴 너럭석바위, 행상 뚜껑처럼 생긴 행상바위, 앉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아들바위, 칼을 세워 놓은 것 같은 칼바위, 주전자 모양의 주전자바위, 어린이들이 앉을 수 있을 만큼 큰 장수발자국바위, 물 흐른 흔적이 남아 있는 마귀할범 오줌 싼 자리, 말등바위, 곰바위, 집바위, 논바위, 독바위 등 모양 따라 해학이 넘쳐나게 붙여 놓은 바위들에 얽힌 이야기가 끝도 없다. 특히 주전자바위에 얽힌 이야기는 흥미롭다. 바위 모양이 마치 주전자부리처럼 생긴 바위는 예부터 가뭄이 들면 개를 잡아 ‘개적심’이라고 이름 붙여진 기우제를 지내오던 곳이다. 개를 잡아 주전자 부리 모양의 바위밑에 기우제를 지내고 피를 주전자 부리에 바르면 산신령이 피를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린다는 전설 같은 얘기다. 실제로 1990년대 후반 가뭄이 크게 들었던 어느 해 마을주민들이 전해오는 얘기 대로 기우제를 지냈고 이튿날 비가 내렸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얘기까지 전해온다. 용화산 정상에 있는 꼭지바위에 전해오는 얘기도 재미있다. 바위의 끝(꼭지)이 춘천 쪽으로 향해 있어 이 지역의 재물이 바깥 마을로 흐른다고 여겨 마을에 살던 한 힘센 장사가 바위 꼭지를 떼어냈다는 전설이다. 함께 산행에 나섰던 춘천국유림관리소 정필원(48) 화천경영팀 직원은 “용화산 정상쯤에 펼쳐진 바위마다 전설같이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많아 금강산 만물상처럼 스토리텔링의 자원으로 활용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박진서(45) 화천민속박물관장은 “북한강 상류의 물길 끝자락에서 수천년 전부터 사람들을 품고 지낸 산이다 보니 농경문화와 어우러져 구전문화가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관광자원 보고 용화산 20년전 유황온천 발견 겨울 산천어 축제 백미 용화산은 온천관광단지로 지정됐다. 아직 개발되지 않아 미래의 관광자원을 간직한 곳이다. 산 아래 등산로 입구인 삼화리 마을에서 온천이 발견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7월 이 마을에서 유황 온천이 솟아나면서 일대가 관광특구로 지정됐다. 온천을 중심으로 휴가 등 여가활동을 위한 전원형 온천관광지로 조성해 화천지역의 관광중심지로 만들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20년 가까이 온천지역을 중심으로 땅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며 오히려 사업진척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00년 온천개발계획 승인 이후 민간투자자들의 발길은 여전히 이어지지만 사업진척은 지지부진하다. 주민들 사이에는 차라리 관광특구를 해제해 달라는 주장까지 일고 있다. 하지만 화천군이 용화산을 중심으로 온천개발까지 묶어 제대로 된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취지의 청사진은 아직 유효하다. 최근 겨울의 산천어축제와 여름의 쪽배축제, 토마토축제 등 각종 축제로 산촌마을 화천지역의 명성이 크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을 호재로 삼고 있다. 100만명 안팎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축제가 펼쳐지면서 용화산 온천관광지구도 더불어 개발에 탄력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더구나 수도권에서 춘천을 거쳐 화천에 이르는 교통여건이 좋아지면서 개발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내년 말 경춘선복선전철까지 개통되면 수도권 배후 관광도시로 각광 받을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온천개발 인근인 간동면 간척리에 스키장까지 추진되고 있어 가능성을 더하고 있다. 북한강 상류의 물길을 따라 자전거, 트레킹 코스가 새롭게 만들어지고 파로호 주변인 간동면 방천리 일대에도 관광단지가 만들어지면 용화산을 중심으로 한 온천관광 개발에도 민간인들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갑철 화천군수는 “용화산 일대가 지금은 등산객만 찾는 산이지만 수년내 온천지를 포함해 화천권의 관광개발 중심지로 각광을 받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휴대전화·인터넷 등 이동통신 어떻게 사회를 뒤흔들까

    2004년 3월11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3개의 교외열차가 폭발해서 192명이 죽고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 폭발은 원격조종으로 작동하는 이동전화에 의해 이뤄졌다. 스페인 국회의원 선거 나흘 전이라는 정치적으로 미묘한 시기에 발생한 폭탄테러였다. 당시 선거의 주요 쟁점은 스페인의 이라크 전쟁 참가 여부였다. 집권여당인 국민당 정부는 마드리드 폭탄 테러에 대해 어떤 증거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ETA라는 바스크 과격주의 단체가 폭발의 배후라고 발표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알 카에다의 소행일 가능성이 커지자, 스페인 국민의 67%는 정부가 정치적 이익을 얻고자 테러 공격에 관한 정보를 조작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스페인 국민은 파병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스페인 의회 조사위원회도 정부 측 편향을 보였다. 수천명의 시민은 3월12일과 13일 정보조작 실체를 확신했고, 이동전화의 문자메시지와 인터넷을 통해 전 국민에게 퍼뜨렸다. 선거를 이틀 앞둔 토요일 이동통신의 문자메시지 전송량은 평시보다 20% 증가했고, 하루 앞둔 일요일에는 평소보다 40%가 증가했다. 당시 국민은 정부의 직간접적인 통제하에 있던 주요 방송사와 신문·라디오를 신뢰하지 않고, 대안통신 채널을 이용했다. 선거 결과는 사회당이 77% 득표율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고, 사회당 정부는 즉각적으로 이라크에서 철군했다. ●이동통신이 정치·경제에 미친 영향 분석 스페인의 이 경험은 2001년 임기를 3분의1도 채우지 못한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사임을 이끌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커뮤니케니션 역사의 전환점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동전화를 갖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한 개인과 민중활동가들은 강력하고 광범위하며, 개인화된 즉각적인 통신망을 구축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과거 강력한 통신망을 확보하고 정보를 통제하는 것은 정부나 국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휴대전화가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동통신과 사회’(마누엘 카스텔·미레야 페르난데스-아르데볼 등 4인 지음, 김원용·성혜령 옮김,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는 이처럼 휴대전화와 무선 인터넷 등 이동통신이 현대 사회의 청년문화와 정치, 경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 흥미로운 책이다. 분석대상을 유럽이나 미국으로 국한하지 않고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 라틴아메리카 등으로 확장시켰다. 때문에 아프리카 최빈국에서 이동통신이 어떻게 유선 전화의 대체재로서 존재하는가를 통계와 함께 접할 수 있다. 4명의 저자들 중 마누엘 카스텔은 미국 서든캘리포리아 대학의 커뮤니케이션 학부 교수이자 바르셀로나 카탈루냐 개방대의 연구 교수이고, 잭 린추안 추는 홍콩 중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등으로 최첨단 정보통신(IT)이 어떻게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 같다. ●문자메시지로 ‘청년문화’ 발전 스페인이나 필리핀, 2002년 한국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당선사례만 보면 이동통신과 문자메시지가 마치 정치사회적 변혁을 쉽게 이끌어내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그 활용에는 본질적으로 제한적 성격이 있다는 것도 이 책은 함께 보여준다. 2003년 중국 광둥성 병원에서 사스가 출몰하자, 병원관계자와 희생된 가족, 친구들은 이런 이질적이고 낯설고 치명적인 질병에 대해 주위에 문자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그 문자메시지는 광둥성 도시 주민들은 물론 성 밖으로도 퍼져 나갔는데, 이때 중국 베이징 공공 위생 당국자들은 대중매체를 통해 역정보를 보내며 공식 캠페인에 들어갔다. 결국 휴대전화의 문자메시지를 통한 정보는 신뢰도가 낮은 정보로 인식돼 소문은 잦아들고, 국민은 정부를 신뢰했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고 나서 국민은 사스가 창궐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선통신과 정치권력 간의 관계를 사례로 소개했지만, 이 책은 문자메시지를 통한 각국의 청년문화현상이 대체로 비슷한 양상으로 발전하는 것도 보여준다. 모국어의 맞춤법 파괴 사례라든지, 젊은이들이 문자메시지를 통해 개인 네트워크를 확장시켜나간다든지, 세대 간 격차를 뛰어넘는다든지 하는 문화적 현상 말이다. 휴대전화로 시간과 공간적인 격차를 뛰어넘기 때문에 세계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평평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동통신의 보급과 확대는 또한 가난한 나라가 ‘건너뛰기식’ 경제발전을 할 가능성도 보여준다. 이동전화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개발도상국의 발전을 촉진하는 해법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저소득 국가에서 인구 100명당 평균 10명 이상이 이동전화가 있으면 1인당 국내총생산이 0.59%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선진국은 유선전화가 네트워크 효과를 수행하지만, 개발도상국은 이동전화를 통한 네트워크 효과가 훨씬 높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 국가 내에서도 이동전화가 유선전화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유용하다는 분석이 나타난다. 때문에 중국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는 ‘리틀 스마트폰’ 시스템이나, 인도 저소득층을 위한 ‘코텍’, 우간다의 ‘모바일 공중전화 시스템’과 ‘빌리지폰’,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모바일 공중전화 대리점’ 등은 선불카드와 저렴한 통신요금 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일자리에 접근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8장으로 구성된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요약본이 달려 있다. 어지럽게 읽고 요점정리를 읽으면 머릿속이 더 개운해진다. 2만 5000원. 이 책과 함께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쓴 한국사회에서 전화의 정치사회적 역할을 다룬 ‘전화의 역사’(인물과 사상사 펴냄)를 읽는다면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보이스피싱, 전화매춘, 휴대전화 만능시대 등 각종 사회문제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될 것이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그래픽 강미란기자 mrkang@seoul.co.kr
  • [사설] 타미플루 사재기 샅샅이 밝혀내라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 불법유통 양상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검찰과 식품의약품안전청이 그제 타미플루 수입사 한국로슈에 대해 압수 수색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로슈는 평소 거래하던 의료기관과 짜고 13개 기업의 직원 명의로 허위 처방전을 발급받아 타미플루 2만 7000 캡슐을 구해 공급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국로슈는 타미플루를 생산하는 스위스 로슈사의 한국 지사로, 현재 국내에 수입되는 타미플루의 상당 부분을 공급하고 있다.지금까지 식약청에 적발된 타미플루 불법유통량은 모두 7287명분에 이른다. 이 가운데 80% 이상이 HSBC은행, 한국노바티스 등 다국적 회사로 유입됐다고 한다. 이들 회사의 불법 사재기 배후에 한국로슈가 있었던 셈이다. 신종플루 ‘대유행’속에 항바이러스제 투약 시점을 언제로 할까 고민할 정도로 물량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판에 이런 사재기 행위가 벌어지다니 도덕적 패륜행위가 아닐 수 없다.식약청은 불법을 저지른 병·의원 10곳과 약국 4곳에 대해 각각 의료법과 약사법 위반으로 지방자치단체에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한국로슈의 타미플루 불법유통 경로 또한 철저히 파악해 엄정 조처해야 한다. 현행 약사법은 허위 처방전으로 약을 구입해 유통시킬 경우 형사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타미플루 수입업체와 의료기관, 다국적 기업의 검은 커넥션이 확인된 이상 당국은 일벌백계 차원에서 다스려야 한다. 인간의 생명을 장사 수단으로 삼는 ‘죽음의 상인’이 더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최대한의 제재 조치를 내려야 한다.
  • ‘탈레반 침투 의혹’ 아프간 경찰 총격에 영국군 5명 사망

    ‘탈레반 침투 의혹’ 아프간 경찰 총격에 영국군 5명 사망

    아프가니스탄에 주둔 중인 영국군이 아프간 경찰의 총격으로 숨지면서 영국의 아프간 전략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고 영국 텔레그래프 등 현지 언론이 4일(현지시간) 일제히 보도했다. 탈레반 세력이 경찰 조직까지 침투한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추가 파병을 반대하고 즉각적인 철군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는 이날 하원에 출석해 “현재 증거를 수집 중인데 탈레반이 배후를 자처하고 있다.”면서 “탈레반이 경찰을 이용했거나, 탈레반이 대원들을 경찰 조직에 침투시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유엔 아프간 대표부 부대표를 지낸 피터 갈브레이스는 “아프간은 경찰을 뽑을 때 많은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 3일 발생한 총격 사건으로 희생된 영국군은 모두 5명이다. 지난 6월 한달 새 22명이 숨진 것에 비하면 피해 규모 자체는 큰 것이 아니다. 문제는 외국군의 주둔 목표 중 하나가 철수 후 아프간 안보 자립을 위해 경찰 인력을 훈련시키는 것이라는 데 있다. 실제로 경찰 조직에 구멍이 뚫렸다면 아프간 주둔군의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BBC방송은 아프간 경찰은 군인에 비해 보수가 적은 탓에 부패했고 국가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진다고 전했다. 특히 영국군이 머물고 있는 헬만드주의 경우 경찰에 대한 신뢰도가 낮다고 덧붙였다. 2001년 이후 아프간에서 숨진 영국군은 이번에 사망한 5명을 포함해 229명이다. 이 가운데 92명이 올 한해 숨졌는데 이는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 이후 한해 전사자로는 최대 규모다. 이 때문에 가뜩이나 영국 내 파병 여론이 악화되고 있던 가운데 이번 사건은 영국민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정치권 대부분은 즉각적 철군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철군 계획을 명확히 밝히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닉 클레크 자유민주당 당수는 “아프간 정부가 정통성을 상실하고 서방 국가들이 신뢰할 만한 계획을 갖지 못하면서 영국군의 임무가 곤경에 빠졌다.”고 비판했다. 영국의 이 같은 상황은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유럽에서 유일하게 증파를 결정, 아프간 문제에 있어 미국에 가장 우호적인 국가로 꼽히는 영국에서 철수 의견이 더 커질 경우 미국의 아프간 전략도 힘을 잃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제프 모렐 미 국방부 대변인은 “이번 사건은 비극적이고 도가 지나친 것”이라면서도 “(나토) 군은 아프간군과 함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보안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겠다.”고 논평했다. 한편 지난달 28일 탈레반 대원이 아프간 카불 시내 유엔 숙소에 침입, 직원 5명을 사살한 사건으로 유엔은 아프간 상주 직원 600명을 대피시킬 예정이라고 AP통신이 전했다. 현재 아프간에 1100명가량의 직원이 살고 있지만 이 가운데 핵심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3~4주 내에 다른 곳에 배치한다는 것이다. 아프간 주재 유엔 특사인 카이 이드는 “철수가 아니라 안전을 위해 잠시 피신을 시킨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전북 30년 숙원 새만금신항만 2011년 착공 확정

    전북 30년 숙원 새만금신항만 2011년 착공 확정

    전북도민의 30년 숙원인 새만금 신항만 건설사업이 확정됐다. 전북에 국제항만이 들어서는 것은 처음이다. 전북도는 3일 새만금 신항(조감도) 건설사업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예비타당성 조사가 완료돼 2021년 4선석, 2023년 5선석 규모로 건설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토해양부는 올해 안에 기본계획에 착수해 2011년 군산시 옥도면 신시도~비안도 중간지점인 새만금 방조제 전면 해상에 새만금 신항만 건설사업을 착공할 계획이다. 새만금 신항은 서해안의 국제무역 전진기지 역할을 하게 될 전망이다. 새만금 신항만은 1단계 사업으로 8501억원(국비 5359억원, 민자 3142억원)이 투입돼 4선석 규모로 건설된다. 내년에 기본계획을 고시하고 실시설계를 완료한 다음 2011년부터 본격적인 공사에 돌입한다. 내년 예산에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비로 80억원이 반영된 상태다. 신항만은 잡화·자동차·컨테이너·관리부두가 각 1개선석 등 4선석이 우선 건설된다. 외곽에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 4.1㎞와 호안 5.59㎞가 건설되고 항만기능에 필요한 부지 34만 8000㎡가 조성된다. 2단계는 새만금 내부 물동량과 배후 세력권 물동량을 고려해 2023년까지 잡화부두 1선석과 부지 8만 4000㎡를 추가로 건설한다. 전북도 관계자는 “새만금 신항이 당초 계획보다 규모가 줄었지만 물동량이 증가할 경우 얼마든지 확대할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있다.”면서 “부산신항, 광양항, 평택·당진항, 목포 신항 등도 착공 당시에는 모두 3~4선석으로 출발해 물동량에 따라 규모가 확대됐다.”고 말했다. 새만금 신항 건설사업은 전북도가 지난 30여년 동안 추진해온 숙원사업이다. 특히 사상 최초로 국제항만을 유치하게 돼 전북경제가 내수 중심에서 수출 위주로 전환하는 획기적 계기를 맞게 됐다. 신항 건설은 1단계 사업 추진만으로도 생산유발 7767억원, 임금 1355억원 등 1조 2686억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고용과 취업 유발효과도 1만 518명에 이른다. 전북도는 새만금 신항이 2021년 개항과 함께 물동량이 크게 늘어 2030년에는 24선석 규모까지 확대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새만금 신항은 중국 등 동북아 물동량 증가에 대비한 물류거점, 최첨단 농업, 해양관광, 레저기능까지 포함한 서해안의 복합 거점항만으로 면모를 갖추게 될 것”이라면서 “신항 건설로 새만금지구가 국제경쟁력을 갖게 돼 국내외 투자유치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재선 카르자이 ‘산 넘어 산’

    재선에 성공한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서방국들은 카르자이가 분파간 이해관계 조정에 매달리면서 지난 정권의 부정부패를 그대로 답습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새 정부의 내각 구성 과정은 지역·종파간 실세들이 권력을 독점하는 ‘복마전’이 될 가능성까지 점쳐진다.차기 정부 구성에 관여할 막후 실세들은 대부분 서방 외교관계자들이 경계대상으로 꼽는 인사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친동생 아메드 왈리 카르자이는 남부 칸다하르 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특히 대통령의 의원지명권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방 정보당국은 그를 아프간 내 불법 양귀비 생산의 배후로 지목하고 있다. 차기 부통령 1순위로 꼽히는 무하마드 파힘 전 국방장관도 내각의 중심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그는 아프간내전의 대량학살을 자행한 반(反)인권적 인물로 악명이 높다. 그 역시 불법 마약 거래의 배후 중 한 명이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집권 당시 학정(虐政)을 자행했던 부르하누딘 랍바니 전 대통령 역시 아들의 인사권을 이유로 차기 정부에 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이들이 차기 정부 수립에 막후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서방이 기대했던 정통성 있는 정부의 구성은 더욱 요원할 수밖에 없다. 또 카르자이가 이들과의 권력 분할에 골몰할수록 대(對) 탈레반 전쟁은 후순위로 밀릴 우려도 크다. 압둘라 압둘라 전 후보가 새 정부와 지분을 나눠 지역·종족 간 이해관계를 조금이나마 조정해 주기를 바라는 시각도 있지만 실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한 고위급 외교관계자는 “압둘라는 내각에 참여하지 않을 것 같다.”면서 “그의 역할은 야권에 있다.”고 전했다. 미국과 영국 등이 아프간 정부의 부정부패 문제를 언급한 것도 일단 국정이 안정돼야 탈레반 소탕도 가능하다는 문제 인식을 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카르자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전쟁을 함께 수행하는 동맹국으로서 부패척결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축하보다는 내부 단속부터 해야 한다는 ‘강도 낮은’ 경고인 셈이다.안석기자 ccto@seoul.co.kr
  • 북한강변 5곳에 생태공원 조성

    경기 가평군은 2011년까지 491억원을 들여 북한강변 5곳에 생태공원을 조성한다고 29일 밝혔다. 군은 국토해양부, 경기도와 함께 4대강 살리기 사업을 지방하천까지 확대해 휴식과 레저를 즐길 수 있는 친수공간을 조성한다는 방침이다. 생태공원 대상지는 가평, 달전, 삼회, 대성 1·2 등 5개 지구 43만㎡다. 대성 1·2지구에는 강수욕장과 4륜 바이크 도로, 운동·놀이시설 등 종합관광타운이 조성되며 가평지구는 자라섬의 기존 오토캠핑장과 생태문화공원에 놀이시설과 수상레저 시설 등이 확충된다. 남이섬∼자라섬 간 달전지구는 자생초화원 등 생태습지 공원으로 개발되고 삼회지구는 핵심·완충·배후구역 등으로 구분해 식생을 고려한 수변 생태벨트가 만들어진다. 이번 생태공원 조성사업이 완료되면 가평지역 북한강변에는 7곳 124만㎡의 친수공원이 조성돼 수도권 시민에게 자연학습의 기회와 휴식공간을 제공하게 된다. 군은 정부의 4대강 정비사업과 경기도의 ‘강변 살자’ 프로젝트에 맞춰 올해 안에 생태공원 조성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군 관계자는 “북한강은 중첩규제에도 산업화와 도시화로 개발압력이 가중돼 난개발과 환경훼손으로 멍들고 있다.”며 “누구나 자연을 느끼고 쉴 수 있는 친수공간으로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아프간 유엔숙소 피습…직원 6명 사망, 파키스탄 올 최악의 테러 300여명 사상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100여명이 사망이 사망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와 파키스탄 정부군의 대대적인 탈레반 소탕작전, 미국의 아프간 증파 검토 등 여러 불안 요인이 겹치면서 무장세력의 테러 공격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아프간 탈레반 “결선투표 겨냥 첫 공격” AP통신 등에 따르면 28일 새벽 5시30분쯤 카불 중심가의 유엔 국제 게스트하우스에 경찰로 위장한 탈레반 무장괴한이 침입, 치열한 총격전을 벌였다. 총격전은 경찰의 진압으로 3시간 만에 종료됐지만 이 과정에서 유엔 직원 6명과 2명의 경비, 아프간 국적의 민간인 1명을 비롯해 경찰 진압 과정에서 사살된 3명의 무장괴한 등 12명이 사망하고 9명이 다쳤다. 아드리안 에드워즈 현지 유엔 대표부 대변인은 “이같이 끔찍한 상황은 처음”이라고 사태의 심각성을 알렸다. 탈레반은 이번 테러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자비훌라 무자히드 탈레반 대변인은 “우리는 대선 결선투표에 관여하는 자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경고했다.”면서 “이게 우리의 첫 번째 공격”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피해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같은 날 파키스탄에서는 올해 들어 가장 큰 규모의 테러가 발생했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역의 한 시장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가 발생, 최소 92명이 사망하고 217명이 다쳤다. 테러가 발생한 페샤와르 지역은 파키스탄 북서쪽에 위치한 도시로 알카에다가 활동하고 있는 아프간 국경 지역의 통로 역할을 하는 곳이다. 힐러리 장관이 방문 중인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자동차로 3시간 거리다. ●아프간·파키스탄, 테러 비상 이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에서 발생한 테러는 미국을 겨냥했다는 공통 분모를 갖고 있다는 분석이다. 탈레반이 직접 밝히고 있듯 무장세력이 유엔 숙소를 공격한 이유는 아프간 대선에 미국을 주축으로 유엔이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탈레반은 최근 새달 7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앞두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방해를 하겠다고 공표해 왔다. 지난 8월 1차 투표 직전에도 10여 차례의 테러를 감행, “미국과 결탁한 정권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확고히 했다. 하지만 탈레반이 유엔을 공격했다는 사실은 더욱 강력한 경고라는 분석이다. 탈레반이 1차 투표 전에 감행한 테러는 아프간의 경찰서나 초소 등을 노렸지만 새달 결선투표를 앞두고 유엔을 첫 번째 제물로 택했다. 테러의 범주가 국내 관공서에서 국제기구로 확대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파키스탄의 경우 반미 감정은 더욱 거셌다. 파키스탄 정부군이 미국의 지원 아래 연방직할부족지역(FATA) 와지리스탄에서 대대적인 탈레반 소탕작전을 벌이고 있는 까닭이다. 이날까지 정부군은 240여명의 탈레반 반군을 사살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저항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 보복 테러로 나타났다. 이번 페샤와르 테러의 배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힐러리 장관이 파키스탄을 방문하고 있는 와중에 테러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미국을 향한 탈레반의 강한 경고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AFP통신은 “아프간과 파키스탄에서 발생한 이번 테러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아프간 증파를 검토하고 있는 상황과 힐러리 장관의 파키스탄 방문이라는 미묘한 시기가 겹쳐 있다.”면서 “하지만 미국의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첨단·국제 신도시 마곡지구 첫 삽

    첨단·국제 신도시 마곡지구 첫 삽

    서울시내에서 마지막 남은 대규모 미개발지인 강서구 마곡지구(위치도)에 첨단산업·국제업무·주거단지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 27일 첫 삽을 떴다. 서울시가 2005년 마곡지구 개발 구상을 내놓은지 4년만이다. 서울시는 이날 마곡지구 전체 366만㎡ 중 1공구(주거·국제업무지구) 154만㎡의 공사에 착수했다. 이 사업은 2031년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과 가양동 일대 336만㎡에 지식 첨단산업단지와 국제업무지구, 배후주거단지, 워터프런트(수변공간) 등을 조성하는 서울시의 초대형 장기 도시개발 프로젝트다. 첨단산업단지(74만 2000㎡)와 국제업무단지(33만 9000㎡), 주거용지(66만㎡), 공원·도로·학교를 포함한 기반시설 용지(152만 3000㎡) 등으로 나눠 차세대 첨단 성장동력산업의 거점으로 육성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날 착공식에서 “마곡지구를 서울 서남권의 기반도시이자 세계적인 글로벌 도시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시는 특히 첨단산업단지를 연구·생산·교육 및 훈련·의료 등 지식기반의 집약지로 육성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국내 기업에 세제·금융 혜택을 주고, 해외기업에는 파격적인 법인·소득세, 취·등록세 감면 혜택을 제공할 방침이다. 국제업무지구는 동북아 연구개발(R&D) 및 비즈니스 네트워크의 거점 역할을 하도록 다국적기업 본부와 금융·법률·회계·고급호텔 등 비즈니스 시설을 유치할 계획이다. 주거지역에는 공동주택 15개 단지 총 1만 1353가구가 세워지며 2012년 말 입주가 시작될 예정이다. 마곡지구에는 또 한강물을 끌어들인 수로와 요트 선착장, 호수공원 등을 갖춘 워터프런트가 79만 1000㎡ 규모로 조성된다. 시는 2012년까지 마곡지구 내 도로와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 설치를 마치고, 민간분양과 SH공사의 자체 개발 등의 형태로 토지를 공급할 예정이다. 1단계로 2015년까지 전체 면적의 약 80%인 269만㎡, 2단계로 2023년까지 12%인 40만㎡, 3단계로 2031년까지 나머지 8%(27만㎡)를 공급한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아바스 사임카드 평화협상 득될까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사임의사를 나타냈다. 지난주 오바마 대통령과의 전화통화에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는 평화협상에 진전을 가져올 수 없다.’는 명분이다.아바스 수반은 오바마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수년간 평화 협상을 진행해 왔다. 무장정파 하마스가 협상을 끈질기게 반대했지만 지난달 3자 회담을 성사시켰을 정도로 논의는 꽤나 진척되는 듯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에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강행했다. 애초에 미국은 정착촌 문제가 평화로 가는 로드맵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이스라엘을 압박했지만 정작 3자 회담에서는 말을 아꼈다. 괜히 이스라엘의 심기를 건드려 평화회담을 깰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분노는 커졌고 아바스에 대한 신뢰도 바닥을 쳤다.특히 최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골드스톤 보고서에 대한 유엔인권이사회 표결을 연기하기로 결정하면서 주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유엔 조사팀은 가자 전쟁에서 두 나라가 모두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이 보고서를 마련, 유엔 총회에서 필요한 조처를 취하도록 표결에 부쳤지만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표결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다. 평화협상 진행에 전범 문제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판단, 팔레스타인 지도부를 압박한 결과다. 결국 아바스의 정치적 수세로 몰아간 서안지구 정착촌 문제나 골드스톤 보고서 모두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었던 셈이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바스도 미국에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주민들의 비난을 감수하고 미국에 협조를 했음에도 돌아오는 것은 여론의 뭇매였다. 즉 자신의 자리를 내놓는 모험을 통해 미국을 압박, 평화 협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아바스 자신이 유용한 존재라는 것을 각인시키려는 행동으로 분석된다. 미국 입장에서도 아바스의 퇴진은 부담스럽다. 아바스가 이대로 물러난다면 평화 협상의 판을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하는 부담을 안을 수 있다. 이란의 국영방송인 프레스TV는 “오바마는 취임 당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평화 정착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지만 아직 진전된 게 없다.”면서 “이렇게 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평가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안전 도시” 선언 6개월만에 치안공백

    이라크 바그다드 정부 청사를 겨냥한 폭탄테러 사망자가 150명에 육박했으며 부상자도 700명을 넘어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 국민을 상대로 한 극악무도한 공격”이라고 비난하는 등 국제사회가 들끓고 있다.26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전날 발생한 두 건의 테러로 법무부 직원 35명, 바그다드 주청사 직원 25명을 포함, 최소 147명이 희생됐다. 부상자도 500여명에서 721명으로 늘었으며, 이 가운데는 미 대사관 직원 3명도 포함돼 있다. 2007년 4월 183명이 목숨을 잃은 바그다드 시아파 거주지 테러, 같은 해 8월 500명이 사망한 북부 트럭 연쇄 폭탄 테러 이후 최악의 참사로 기록됐다. 초기 조사 결과 이번에 사용된 폭탄의 양은 각각 1500파운드 이상인 것으로 드러났다.피해 지역은 불과 6개월 전에 차량 통행이 허용된 곳이다. 이라크 정부는 이 같은 조치가 바그다드가 안전한 도시로 돌아가는 신호라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이번 테러로 또 한번 치안 공백이 드러나면서 내년 1월 총선을 앞두고 누리 알 말리키 총리의 정치적 입지에 타격을 주게 됐다. 한 시민은 “매일 우리 군대가 미군이 철수한 상황을 통제할 준비가 돼 있다는 내용의 정부 성명이 나오고 있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부 관계자들이 거짓말쟁이이거나 사무실 밖의 일을 모른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이날까지도 테러 배후를 자처하는 세력이 나오지 않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잇따라 비난 성명을 내놓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무고한 사람들을 살해하는 목적밖에 없는 테러였으며 이라크인 국민들이 미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하는 이들의 증오와 파괴적인 면을 드러낸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이 같은 비열한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은 안정과 자립을 향한 이라크의 발전을 훼손시키려는 의도”라면서 “하지만 그들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 나토 사무총장은 “죄 없는 시민들의 목숨을 빼앗은 테러를 강력히 비난한다.”면서 “이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한편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테러로 목숨을 건진 사람도 있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한 남자가 납치를 당해 트렁크에 실려가던 중 폭탄이 터졌고 납치범 3명 중 2명이 죽고 한 명은 다쳤다. 차에 혼자 남겨진 남자는 발로 자동차를 찼고 근처에 있던 경찰이 이 소리를 듣고 이 남자를 구해 줬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제주 모슬포 남항 해양관광지로

    제주 서귀포시 모슬포 남항이 어촌복합관광단지로 탈바꿈한다. 제주도는 모슬포 남항의 배후부지 매립공사가 올해 마무리됨에 따라 내년부터 2012년까지 50억원을 들여 제주 서남부권의 핵심 해양관광지로 가꾸겠다고 26일 밝혔다. 내년에는 국비 5억 5000만원 등 11억원으로 1000㎡ 규모의 여객선 대합실을 신축, 국토 최남단 섬인 마라도와 가파도를 다니는 여객선 부두로 활용한다. 2011∼2012년에는 39억원을 투입해 1만여㎡의 배후부지에 잔디광장을 비롯해 해양소년단 수련장, 해수 풀장, 전통 배 체험장 등을 설치한다. 모슬포 남항은 주변에 송악산관광지와 일제 당시에 구축된 군사시설인 격납고, 지하벙커, 진지동굴 등이 산재해 있어 관광객을 유인할 수 있는 여건이 충분한 것으로 분석됐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이라크 정부청사 겨냥 폭탄테러

    총선 노린 알카에다 소행 추정 25일(현지시간) 오전 9시30분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정부청사를 겨냥한 두 번의 차량 폭탄 테러로 136명이 숨지면서 도시가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이라크 경찰과 보건부 관리는 지금까지 136명이 죽고 520명이 다쳤으며 이는 올해 들어 최악의 참사라고 밝혔다. 이날 공격은 분주한 출근시간에 일어나 민간인 피해가 컸고 중상자들이 많아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폭발은 바그다드 법무부 건물 근처의 교차로와 주청사 건물 주변 주차장에서 발생했으며, 폭발 사이의 간격은 1분도 채 되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사고 현장은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관과 누리 알말리키 이라크 총리 집무실이 위치해 있는 특별경계구역 그린존에서 불과 수백미터 떨어진 곳이다. 이라크 정부관계자들은 이번 범행이 알카에다의 소행인 것으로 보고 있다. 외신들은 바그다드 거리에 불에 탄 시체와 찢겨진 팔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며 긴급뉴스로 참상을 전했다. 사고 발생 직후 이라크 정부 대변인인 알리 알다바그는 “이번 공격의 배후엔 내년 1월 열릴 총선을 겨냥한 알카에다나 사담 후세인 전 정권의 잔당인 바트당 추종자들이 있는 것으로 의심된다.”면서 “초기 분석 결과 알카에다와 바트당 일당들의 지문이 나왔다.”고 밝혔다. 철통 보안을 자랑하던 중심부가 뚫리면서 2011년말 미군의 전면 철수를 앞두고 이라크 정부의 자생력에 대한 회의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이란軍테러 ‘피의 보복’ 이어지나

    18일(현지시간) 42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란의 시스탄 발루체스탄 주(州) 테러가 무장단체인 ‘준달라(신의 군대)’의 소행으로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준달라는 시아파 페르시안이 다수인 이란 체제에 맞서 20년 넘게 반군 활동을 펴온 수니파 발루치족 무장단체다. 하지만 이란은 미국 등 서방국가가 준달라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 그간 핵협상으로 온난기류가 흐르던 서방과 이란의 관계가 다시 냉랭해지고 있다.일단 이란은 이번 테러에 미국과 영국이 개입했다고 비난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란군은 “이번 테러는 ‘거대한 사탄인 미국과 그 동맹자인 영국’의 지원을 받은 테러리스트들이 저지른 것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복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장과 국영방송 등도 미국과 영국이 테러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물론 미국은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하지만 이란의 괜한 트집잡기로만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미국은 지금까지 대(對) 중동정책의 일환으로 중동의 민족·종교 갈등을 교묘히 이용해 왔다. 예컨대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승리한 뒤 수니파 정권을 축출, 시아파 정권을 세워 두 세력 간의 격한 마찰을 야기시켰다. 이라크 국민들의 ‘반미통합’을 막기 위함이었다. 여기에 소수 민족인 쿠르드족을 지원하면서 이라크의 분열은 가속화됐다.이란도 내부 갈등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라크와 상황은 비슷하다. 수니파 발루치족은 시아파 페르시안이 주류인 이란 사회에서 1~3%에 불과, 상당한 차별대우를 받고 있다. 반미주의 국가인 이란 내부에서 준달라의 부상은 미국 입장에서 껄그러울 이유가 없다. 미국이 이들을 물밑에서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ABC방송은 지난해 “준달라가 테러 대상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미국의 도움을 비밀스럽게 받고 있다.”고 보도, 파문이 일기도 했다.하지만 이런 상황이 이란에 독이 된다고 말하긴 이르다. 이란 정권도 ‘준달라 테러’와 ‘미국 배후설’ 카드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 이란의 경우 시아파 페르시안이 90% 이상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 반미주의 통합이 다른 중동 지역에 비해 용이한 탓이다. 이런 까닭에 이란 정권과 공영방송은 준달라 테러만 터지면 미국을 거론했다. 특히 지난 6월 대선 시위로 입지가 좁아진 이란의 반미·보수세력에게 이번 테러는 반미의식을 통해 국민을 통합시키고 힘을 강화시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인 셈이다.문제는 이란이 1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미국,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서방과 갖는 2차 핵협상이다. 지난 1일 제네바에서 열린 1차 핵협상에서 이란과 서방은 핵시설 투명성을 강화하는 대가로 이란 농축 우라늄의 제3국 가공 방안을 추진한다고 합의했다. 이번 회의에서는 추진 일정 정도만 확정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란이 준달라 카드를 이용하려 한다면 핵협상이 답보상태에 빠질 공산이 크다. 이날 핵협상 직전 알리 시르자디안 이란원자력기구(IAEO) 대변인은 “핵 협상 결과가 어떻든 간에 우라늄 농축작업을 계속할 것”이라며 “우리 권리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협상이 순조롭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파키스탄, 탈레반 대규모 소탕작전

    파키스탄, 탈레반 대규모 소탕작전

    파키스탄 정부군이 17일(현지시간) 자국 탈레반 세력인 ‘파키스탄 탈레반운동(TTP)’에 대한 대규모 소탕작전을 단행했다. 파키스탄 정부군은 병력 3만여명을 투입해 이들을 ‘발본색원’하겠다고 자신하고 있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파키스탄軍-탈레반의 ‘최대 전쟁’ 친(親)서방 파키스탄 정부는 이라크 전쟁이 시작된 2003년부터 와지리스탄에서 무장세력 소탕작전을 펼쳐왔다. 와지리스탄은 2001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이래 탈레반과 알카에다의 핵심 세력이 이주해온 곳으로, 반(反)서구 테러의 배후기지 노릇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작전이 눈길을 끄는 것은 규모 면에서 최대이기 때문. BBC방송은 “정부군이 탈레반 세력의 주요 은거지인 남와지리스탄의 마켄 지역에 대해 세 방향에서 동시에 공세를 취하고 있다.”면서 “3만여명의 병력을 투입, 6년간 진행된 파키스탄 정부군의 공격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정부군이 전투기와 야포 등을 동원해 적진을 포격하자 무장세력 측도 로켓포와 방공포 등으로 응수하는 등 첫날부터 양측 간에 치열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파키스탄 정부는 18일 성명을 통해 작전이 시작되고 24시간 동안 탈레반 60명과 정부군 6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탈레반은 정부군이 패배했다고 자신하는 등 취재진의 접근이 금지된 가운데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전쟁의 직접적인 시발점은 지난 8월 파키스탄의 탈레반 지도자 바이툴라 마흐수드가 미군의 공격으로 사망하면서부터다. 이후 후임자 하키물라 마흐수드가 지난 4일 미군과 정부군에 대해 ‘피의 복수’를 선포하고 산발적 테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테러로 150여명의 희생자가 발생하자 파키스탄 정부는 탈레반 세력에 대한 ‘발본색원’을 선언, 작전을 개시했다. 하지만 정부군의 작전이 녹록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 정부는 그동안 이 지역에서 수차례 소탕작전을 펼쳤다. 이후 2000여명의 전사자를 내면서 평화협정이라는 ‘모래성’을 쌓았다 부수기를 반복했다. ●험난한 지형에 정부군 속수무책 정부군이 이렇듯 약세를 면치 못했던 것은 와지리스탄의 험난한 지형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무장세력이 험난한 산악도로를 통해 게릴라전을 펴게 되면 정부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BBC는 “공격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와지리스탄 지역의 도로가 모두 차단됐고 군수 물자 수송도 쉽지 않다.”고 전했다. 또 탈레반 세력이 이 지역 주민들에게 폭넓게 지지를 받고 있는 것도 문제다. 현지 최대 부족인 마흐수드 부족이 정부군과 평화협정을 맺은 바 있지만 실제로 협정을 지지하는 부족원은 소수다. 2대 부족인 와지르 부족도 표면적으로 중립이지만 상당수가 무장세력에게 우호적이라 정부군의 어려움은 크다. AFP통신은 파키스탄 전문가인 라히물라 유사프자이의 말을 인용, “와지리스탄에서의 전쟁은 간단하지 않다. 스와트 밸리와는 차원이 다를 것”이라면서 “설령 정부군이 전투에서 승리한다 해도 부족민들과 신뢰를 구축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이란 수니파 자폭테러… 軍간부 등 수십명 사망

    이란 남동부의 스시탄-발루체스탄 주에서 수니파 무장세력 준달라 배후의 자살 폭탄 테러가 발생, 이란 정부군 간부 등 수십명이 사상했다.18일(현지시간) 이란 정부군인 혁명수비대 등이 이란과 파키스탄 접경지대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중 폭탄이 터져 누르-알리 슈시타리 혁명수비대 육군 부사령관 등 간부 5명을 포함, 최소 35명이 숨지고 28명이 다쳤다고 AFP통신이 현지 언론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는 최근 수년간 혁명수비대를 상대로 이뤄진 테러 가운데 최대 규모다.사건이 발생한 지역은 수니파 이슬람교를 믿는 소수민족인 발루치족의 근거지다. 테러 배후를 자처하고 나선 준달라는 이곳에서 활동하며 시아파 무슬림이 주류를 이루는 정부를 상대로 무장 투쟁을 벌여왔다. 준달라는 ‘신의 군대’라는 뜻으로 압둘말릭 리기가 이끌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주도 자헤단의 시아파 사원에서 자살폭탄 테러를 감행, 25명의 희생자를 낳은 바 있다.자헤단의 모하메드 마르지아 검사는 이란 통신사인 ISNA와의 인터뷰에서 “아직까지 검거된 사람은 없지만 압둘말릭이 자신들의 소행임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사설] 시민운동인가 정치활동인가 분명히 해야

    진보성향의 시민사회단체 주요 인사들이 내년 지방선거 참여를 목표로 ‘희망과 대안’이라는 모임을 결성키로 해 주목된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진보적 시민운동을 이끌어온 각계 인사 100여명은 다음 주 창립총회를 열고 본격 활동에 들어간다. 그동안 낙천낙선운동이나 공약평가 운동 등 제3자적 감시역할에 그쳤던 데서 벗어나 직접 후보를 내고 지지운동을 벌이는 등 현실정치의 당사자로 나서겠다는 것이다. 냉소의 대상으로 전락한 우리 정치에 시민운동 본연의 청신한 기풍을 불어넣어 대안의 정치를 펼친다면 그것은 희망이다. 그러나 권력의 이해를 좇을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의 속성이고 보면 또 하나의 순치된 진보정파로 굴러떨어질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10년 만에 보수정권이 출범하면서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나름의 자성과 비판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 왔다. 그들은 결국 스스로 현실 정치세력이 되는 길을 택했다. 정치에 발을 담근 이상 불편부당한 감시자의 역할은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희망과 대안’ 모임에 참여하는 이른바 진보성향의 한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이 민주주의를 퇴보시켜 결국 과거 낙선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당선운동으로 나가게 된 것”이라며 모임의 배후는 이 대통령이라고 했다. 상생이 아니라 상극, 대화가 아니라 대결의 정치를 예고한 셈이다. 우려스럽다. ‘희망과 대안’은 “새로운 의미의 시민운동” 운운하며 국민을 호도해선 안 된다. 시민운동의 순수성이 정치투쟁의 제물이 될 순 없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