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배회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동박새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연락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동해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아리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750
  • 영리 위한 온라인 담배 홍보 못 한다

    앞으로 영리 목적으로 담배 사용 경험이나 제품을 비교하는 글·영상 등을 온라인에 올리거나 퍼뜨릴 수 없다. 담배회사가 전자담배를 피우는 데 필요한 전용기구를 이용해 사실상 전자담배의 판매 촉진을 도모하는 것도 금지된다. 보건복지부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 법률안’이 21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고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담배뿐 아니라 니코틴을 포함해 니코틴 중독을 유발하는 ‘담배 유사 제품’, 전자담배를 피울 때 사용하는 ‘흡연 전용기구’ 등을 제조·판매하는 사람 등은 소비자에게 금품을 제공하거나 제공할 것을 광고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소비를 유도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할인권이나 초대권 등을 통해 담배 등의 사용 기회를 제공하거나 체험·시연 등으로 사용 방법을 직접 보여주는 행위도 금지 대상이다. 이를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담배 유사 제품을 담배로 표시·광고하거나 담배로 오인할 우려가 있는 표시·광고를 하는 행위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하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현행법은 담배 제조사 등이 소매인을 대상으로 하는 판촉행위만 제한하다 보니 규제를 피해 신제품 무료체험, 전자담배 기기 할인권 제공 등으로 우회적 판촉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지난해 8월에는 영국계 다국적 담배회사 BAT코리아가 새로운 액상 전자담배를 국내에 선보이면서 청소년들에게 인기가 많은 가수를 등장시킨 홍보용 뮤직비디오를 공개해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알츠하이머 뇌’에 빛 쏘면 기억 개선…캐나다 연구진 임상 개시

    ‘알츠하이머 뇌’에 빛 쏘면 기억 개선…캐나다 연구진 임상 개시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신경퇴행성 뇌질환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에 특정 빛을 직접 비추면 기억력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 등 외신에 따르면, 캐나다 토론토대 연구진은 현지 생명공학회사 비라이트의 LED 헤드셋이 실제로 많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증상을 호전하는데 도움이 되는지 기능을 확인하는 임상시험에 들어갔다.‘뉴로 RX 감마’(Neuro RX Gamma)라는 이름의 이 헤드셋은 별도의 코 클립과 한 세트로, 이를 머리와 콧구멍에 착용하고 작동하면 감마선 펄스가 뇌의 기억 중추 해마를 자극한다. 이런 장치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초기 임상시험에서는 경증 내지 중증 알츠하이머 환자 5명을 대상으로, 3개월간 진행됐는데 이 질환의 모든 증상이 호전한 것으로 확인됐었다. 특히 기억력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나온 약물이 증상을 완화하는 데 그친 것과 달리 호전되게 했다. 이밖에도 수면 상태가 좋아지고 화를 내거나 불안에 떨고 배회하는 행동이 줄어들었다. 또 뇌를 조영한 결과에서도 뇌 신경세포인 뉴런의 연결부위인 시냅스와 뇌 혈류가 개선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후 시험을 중단하자 이들 환자는 다시 증상이 나빠지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됐다.반면 본격적인 임상시험은 캐나다와 미국의 의료기관 8곳에 등록된 알츠하이머병 환자 228명을 대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들 환자는 두 집단으로 분류돼 절반은 매주 6일 하루 20분씩 총 12주간 LED 헤드셋을 사용한 치료를 받는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가짜 LED 헤드셋을 착용하게 해서 치료 효과를 비교할 예정이다. 이번 임상시험은 수많은 알츠하이머병 환자와 그 가족에게 희망을 준다. 왜냐하면 현재의 치료는 고작해야 증상을 늦추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LED를 사용한 치료는 이미 계절적인 흐름을 타는 우울증으로 주로 겨울철에 나타나는 계절정서장애(SAD)를 치료하는 데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분비를 촉진해 잠을 더 잘 자게 하고 손상돼 정지된 뇌 영역을 자극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사진=비라이트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獨 동물원 역사상 최악의 날…화마에 희생된 무고한 동물들

    獨 동물원 역사상 최악의 날…화마에 희생된 무고한 동물들

    새해 첫날인 1일(현지시간) 독일 크레펠트 동물원 유인원관에 화재가 발생했다. 불은 침팬지와 오랑우탄, 고릴라, 원숭이 등 유인원을 비롯해 박쥐와 새 등 동물 30여 마리의 목숨을 앗아갔다. 크레펠트 동물원장 볼프강 드레센은 “1일 자정 무렵 난 불로 유인원관이 완전히 불에 탔다”라면서 “크레펠트 동물원 역사상 최악의 날”이라고 침통해 했다. 이번 사고로 서아프리카에서 온 침팬지와 보르네오 출신 오랑우탄, 중앙아프리카 태생의 서부고릴라 등이 희생됐다. 48살 실버백고릴라 ‘마사’ 등 다른 동물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화재 현장에서 살아남은 건 40살 암컷 침팬지 ‘발리’와 어린 수컷 침팬지 ‘림보’가 전부다. 동물원 측은 구조된 두 마리의 침팬지 모두 화상을 입긴 했지만 대체로 안정적인 상태라고 밝혔다. 동물원장은 “지옥 같은 불길에서 침팬지들이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불이 난 유인원관 옆 다른 우리에 있던 ‘키도고’ 등 다른 고릴라 7마리도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했다. 특히 2018년 12월 31일 태어난 새끼 고릴라 '보보토'의 생일 다음 날 불이 나면서 걱정의 목소리가 나왔지만, 다행히 무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화재 원인은 새해 기념 풍등 경찰은 새해를 기념하기 위해 누군가 날린 ‘풍등’이 이번 참사의 원인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경찰은 1일 0시가 조금 지난 시각 동물원 인근을 낮게 날던 풍등이 불타기 시작하는 것을 봤다는 신고를 접수했으며, 현장에서 완전히 타지 않은 풍등을 발견했다. 독일에서 새해맞이 불꽃놀이도 아닌 풍등 행사를 접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며, 크레펠트를 비롯해 대부분의 지역에서 풍등 사용이 법으로 금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원 존폐 논란으로 확산 예기치 않은 사고이긴 하지만 우리에 갇혀 불길을 피하지도 못하고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수십 마리의 동물을 생각하면 동물원이 꼭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에 다다른다. 우리나라에서는 2018년 9월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 한 마리가 사살되면서 동물원 존폐 논쟁이 불거졌다. 당시 사육사가 실수로 열어놓은 문을 통해 우리를 탈출한 퓨마 ‘뽀롱이’는 인근 야산을 배회하다 몇 시간 만에 사살됐다. 이후 청와대 게시판에 동물원 폐지 청원이 올라오는 등 논란이 확산됐다.동물원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인간의 이기심을 가장 크게 부각시키고 있다. 인간에게 동물을 가둘 권리가 있는지, 평생 갇혀 살아야 하는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돌고래쇼, 원숭이쇼, 코끼리쇼 등에 동원된 동물의 학대 문제도 심각하다고 꼬집는다. 동물원을 존속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희귀·멸종동물 보호와 생태 연구 차원에서 동물원은 꼭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또 훼손된 지금의 야생은 동물이 살아가기 어려운 환경이라는 입장이다. 2013년 서울대공원이 쇼돌고래 ‘제돌이’를 방류할 당시에도 야생에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를 제기했다.2009년 제주 앞바다에서 그물에 걸린 ‘제돌이’는 서울대공원으로 옮겨져 낮에는 돌고래쇼를 하고 밤에는 수족관에서 생활했다. 방류가 결정된 후 야생성 회복에 대한 걱정이 있었지만 바다로 돌아간 제돌이는 1년도 채 되지 않아 무리에 완벽 적응했으며, 우두머리 역할까지 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동물원을 유지하되 ‘관람’이 아닌 ‘동물복지’에 초점을 맞춘 생태공원 형식으로 운영하는 절충안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2020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균열 아카이브즈

    [2020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 균열 아카이브즈

    목캔디가 담긴 플라스틱 상자 겉에는 다른 관객들을 위해 두 개 이상은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공연장 로비 내의 누구도 그 경고문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른 남자가 플라스틱 상자에 팔을 욱여넣고 한줌 크게 쥐었다. 왁스를 먹인 캔디의 껍질에서는 부드러운 소리가 났다. 살라는 저것들을 협찬해준 사측의 직원을 만나본 적이 있다. 여자는 성마르게 생겼지만 웃을 때는 잇몸이 모두 보이도록 입을 벌렸다. 여자의 치아는 살라가 여자를 만날 때마다 점점 미묘하게 비뚤어졌기 때문에, 그녀는 여자가 치아교정을 했었고 지금은 유지 장치도 제대로 끼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여자에게는 종종 불소 냄새가 났다. 여자의 가방은 치과에 다녀온 날이면 평소보다 무거워 보였다. 이른 아침의 기상일보는 오늘이 겨울 들어 가장 춥고 눈 내리는 날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살라는 문득 그녀가 집의 수도꼭지를 너무 꽉 조이고 나왔음을 깨달았다. 동파되고 말 거야. 살라가 당황해하는 것과는 별개로 공연장 내부는 점차 소란스러워졌다. 로비 안에 들어온 관객의 수보다 그들의 발자국이 더 많았다. 입구부터 길게 깔아 놓은 붉은색의 카펫도 눈 젖은 발자국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공연 시간이 가까워 오자, 관객들이 어셔에게 그들의 겉옷과 소지품을 맡기기 시작했고 근처에 두꺼운 프로그램 북을 사기 위한 줄이 세워졌다. 아이들은 프로그램 북으로 서로의 머리를 가격하고 놀았다. 관객 몇몇은 공연장 입구 옆에 위치한 음반 가게에서 미리 음악을 들어 보기도 했다. 어떤 관객은 다른 독주회를 중계해주는 모니터 앞에 서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러나 살라는 알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의 관객들은 저런 독주회에 일말의 관심도 없다. 저들은 카라얀을 보러 왔다. 카라얀이 마지막으로 지휘하는 오케스트라였기 때문에 티켓 값은 끔찍할 정도로 비쌌다. 모든 좌석이 매진되었기 때문에 티켓을 사지 못한 사람들은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모니터라도 차지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것이다. 살라가 그녀의 발치를 맴도는 남아를 보호자에게 보내고 나니 독주회 홀에서 관객들이 빠져나오고 있었다. 이윽고 오케스트라 홀의 문이 열렸고 어셔들이 재빨리 줄을 정리했다. 홀의 내부는 조금 어두웠다. 남자들이 여자보다 앞서 걸음을 재촉했다. 홀에는 남자인 네가 먼저 들어가야 한다. 그곳은 어둡기 때문이야. 그들은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살라가 아는 어셔와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뭔가 쏟아지고 엎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라는 반사적으로 몸을 돌려 소음의 근원지를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목캔디를 담은 박스가 엎어져 모조리 쏟아져 있었다. 무리하게 까치발을 들어 팔을 집어넣었던 것이 분명한 아이가 빨개진 얼굴로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두꺼운 바지를 입었다. 바닥에 엎어진 무릎이 아픈 게 아니었다. 바닥에 미끄러진 것을 부끄러워할 나이였다. 아이의 보호자가 아이를 안아 달랬다. 살라는 목캔디를 주워 담을 수 없었다. 그녀가 이런 상황을 정확히 교육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살라의 상식으로도 잘 벗겨지는, 왁스를 먹인 공연장용 목캔디가 구정물이 묻은 바닥에 굴러다닌다면, 그것은 절대 주워 담아서는 안 되는 물건이 되어버린다. 사정이 어떻게 되었든 입장은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전해 들은 청소부가 바닥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공연이 시작하기 삼십분 전이었다. * 살라가 홀 뒤편인 음향조절시설로 들어갔을 때는 모든 것이 준비된 상태였다. 붉은 의자에 앉은 관객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돌아다니는 아이를 붙잡아 앉혔다. 헤드셋을 쓴 관리자들이 음향시설을 조절했고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저마다 악기를 만지작거렸다. 요란하게 울리는 금관악기 소리와 낮게 웅성이는 관객들의 목소리는 돌림노래처럼 이어졌다. 서로 알은체하며 악수하는 관객 두세 명이 크게 웃었다. 난 악기 조율소리가 제일 좋더라. 관객들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었다. 살라는 잠시 관객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가장 익숙한 버튼을 눌렀다. 살라가 버튼을 누름으로써 그녀의 월급에 작은 수당이 더해질 수 있다. 그것은 휴대폰 벨소리를 재생하는 역할이었다. 관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바지춤을 뒤졌다. 휴대폰을 보관하고 온 관객들도 마찬가지였다. 휴대폰을 소지하고 온 관객들은 황급히 휴대폰을 끄거나, 정말로 꺼졌는지를 확인했다. 초대석에 앉은 어떤 남자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살라는 그 남성관객의 옆모습을 얼핏 목격할 수 있었다. 찡그린 것 같았다. 그러나 잘 보이지 않았고, 남자가 다시 앉기도 전에 홀 내부의 조명들이 어두워졌다. 이윽고 카라얀이 입장했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박수소리를 들으며 살라는 파이프를 떠올렸다. 집의 수도관들은 지금쯤 단단히 얼었을까? 균열처럼 연속되는 성에들이 물을 막고 있을까? 카라얀은 박수를 갈무리하고 뒤돌았다. 그리고 지휘봉을 치켜들었다. 현악기와 목관악기가 가장 첫마디를 시작했고 이어 피아노가 보조선율로 들어왔다. 현악기의 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오케스트라 가장 앞쪽에 앉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정지했다. 악보를 넘기는 행동도 하지 않았고 목관악기 파트가 주선율을 장악할수록 카라얀의 팔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곧 피아노와 목관악기의 역할이 바뀌고 현악기가 자리를 차지했다. 겨울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은 겪은 적 없는 쓸쓸함을 선사한다고, 어떤 음악평론가가 주장한 적이 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은 단조에서 빛을 발하지 않겠습니까? 혹자는 차이콥스키를 러시아 최고의 음악가로 꼽지만 그건 라흐마니노프의 정서를 전혀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이나 하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광고가 반을 차지하는 프로그램 북을 살라는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 끝난 후, 바로 차이콥스키의 심포니 5번을 지휘한 카라얀을 보면 그 음악평론가가 단숨에 새로운 평론을 써내려갈 것을 알았다. 예정에 없는 곡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지니고 있던 프로그램 북을 넘겨보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겨울의 공연장 홀 안에서는 아무도 소음을 내선 안 됐다. 그건 공연 시간에 늦은 사람이 마음대로 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이어 살라가 유일하게 제목과 음악가를 모두 알고 있는 라벨의 볼레로가, 그리고 익숙하지만 제목은 알 수 없는 곡들이 연주되었다. 살라는 인터미션이 다가오자 조용히 홀 밖으로 나갔다. 살라가 가장 먼저 마주한 것은 중계 모니터에 밀도 높게 붙어 있는 관객들이나, 새 독주회에 입장하는 관객들이 아닌, 캔디를 채우러 온 여자였다. 여자의 무채색 코트는 녹은 눈 탓에 비루할 정도로 젖어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은 넘기면 넘길수록 여자의 이마에 달라붙었고 여자는 외양을 정리할 새도 없이 빈 캔디 박스에 새 캔디들을 쏟아부었다. 플라스틱 통에서 작은 벼락소리가 났다. 그리고 여자가 살라를 바라보았다. 날씨가 좋지 않네요. 여자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여자가 발갛게 붓고 젖은 손가락을 코트 주머니에 밀어넣었다. 그리고 주먹 쥔 손을 내놓았다. 사탕 좀 드시겠어요? 여자의 손에는 갖가지의 사탕이 담겨 있었다. 기침을 예방하는 공연장용 캔디는 아니었다. 살라는 여자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사탕을 받았다. 여자의 치아는 저번보다 더 뒤틀려 있었다. 살라는 짙은 색의 껍질의 캔디를 까서 입에 넣었다. 예상대로 인공적인 맛이었기에 도저히 어떤 과일 맛인지 추리할 수 없었다. 그녀가 사탕을 입 안에서 굴리는 것과 동시에 오케스트라 홀 문이 열렸다. 살라가 여자에게 사탕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할 틈도 없이 그녀의 어깨가 빠르고 강하게 붙잡혔다. 여자의 얼굴이 빙글 돌았다. 당신이지요? 중년의 남성이었다. 살라가 대답하지 않자 남자는 살라의 어깨를 붙든 손에 힘을 더욱 강하게 실었다. 어셔들이 황급히 남자를 말렸지만 남자는 듣지 않았다. 당신이 벨을 울렸어. 겨우 살라에게서 남자를 떼어낸 어셔들이 숨을 골랐다. 매니저가 달려와 살라에게 눈빛을 보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따위의 물음이 확실했지만 그녀도 알지 못했다. 살라의 입 안에서 사탕이 굴러갔고 달콤한 즙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매니저는 남자를 사무실로 데려가기 위해 살라와 그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이야기 하실까요? 벨을 울렸다고, 당신이. 남자는 매니저 어깨 너머에 있는 살라에게 검지를 치켜들었다. 당신이 울린 거야. 남자는 매니저와 함께 사무실로 향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그는 중간중간 살라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는 그때마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들 것만 같은 제스처를 취했다. 살라가 침을 삼켰다. 작아진 사탕과 함께. * 세면대의 물은 나오지 않았다. 온수를 틀어보기도 하고, 언 수도관에 끓인 생수를 붓기도 해봤지만 헛수고였다. 살라는 생수와 그것으로 끓인 물을 섞어 세수했다. 윗물은 너무 뜨거웠고 아랫물은 너무 차가웠다. 물기를 채 닦지 않은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살라는 거울을 바라본 상태로 잠깐 생각해야 했다. 왜 내 얼굴이 빨갛지? 그리고 몇 초 후 깨달았다. 코피가 나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세면대에 박은 상태로 숨을 내뿜었다. 고기의 핏물을 빼고 난 그릇이 이런 모습이었다. 살라는 뒤집힌 양말을 다시 뒤집어 원상태로 만들었다. 공연장에서 일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옷장이 단조로워진다는 뜻일지도 모른다고, 살라는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기꺼운 일에 가까웠다. 아무도 그녀의 옷차림을 지적하지 않는다. 모두가 유니폼을 입고, 비슷한 색의 양말을 신었다. 그녀는 세탁물을 정리한 후 고지서 봉투를 뜯기 시작했다. 거주자님께, 로 시작하는 봉투는 뜯지 않았다. 그것은 고지서를 빙자한 기부금 홍보물일 가능성이 높았다. 코피는 멎었지만 살라는 여전히 약간 어지러웠다. 그녀는 계산기를 두드렸다. 월세와 공과금을 지불하고 나면 그녀에게는 겨우 최소 생계비가 남아 있었다. 살라는 반사적으로 공연장 구석구석의 아름다움을 떠올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곳의 조각품이나 장식품들, 심지어 바닥에 깔린 마감재 한 조각의 가치를 알아채기 어려웠다. 글쎄, 아름답다는 건 비싸다는 뜻 아닐까. 그녀의 동료 중 하나는 쾌활하게 말했었다. 살라는 필사적으로 그 역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침내, 그녀가 계산기에 마지막 숫자를 두들겼을 때 그녀는 떠올리고 말았다. 살라는 꼭 그런 움직임으로 공연장 내부에 벨소리를 울려왔었다. 벨을 재생하는 버튼은 부드러웠지만 동시에 묵직했다. 살라가 버튼을 누를 때면, 그녀는 그녀도 모르는 기쁨에 살짝 빠져들곤 했다. 누구보다 잘 교육받은 관객들이 살라의 손짓 한 번에 당황했다. 맡겼거나 챙겨오지도 않은 휴대폰을 찾느라 빈 허벅지를 찰싹 때리기도 했다. 안전한 유리창 너머로 살라는 그들을 천천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관객이 살라의 어깨를 붙잡았을 때 그녀는 아무런 생각도 행동도 할 수 없었다. 살라는 계산기를 제자리에 집어넣었다. 계산을 마저 하기가 꺼려졌다. 그녀는 두려움 때문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월급은 일정했고 지불해야 할 돈도 일정할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해야 할 일을 했다. 반듯하게. 매니저는 살라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살라는 휴대폰을 쥔 상태로 잠들었지만 아침까지 그녀에게 온 메시지나, 부재 중 전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별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가 공연장으로 출근하자마자, 그녀는 느꼈다. 그녀의 추론은 어딘가 잘못되었다. 하지만 벨은, 벨을 울리는 건 규정에 있잖아요? 그래도 하필 그 벨이었어. 살라, 넌 그 벨을 울린 거야. 매니저는 살라를 맞은편에 앉힌 후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벨은 늘 같은 걸 써왔어요. 기억 안 나세요? 살라, 제발. 그냥 가서 죄송하다고 해. 내가 바라는 건 그게 전부야. 이해가 안 되는데요…. 네가 관객에게 피해를 입혔어. 그렇게만 알아둬. 나가도 좋아. 살라는 입을 잠깐 벙긋거렸지만 곧 일어나야 했다. 매니저는 서류를 들춰보고 있었다. 그녀가 사무실을 나왔을 때 그녀는 사기를 당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관객에게 사과를 할 때까지 살라는 공연장 일을 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맡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프로그램 북조차 만질 수 없었고 그녀와 면식이 있던 어셔들은 어색하게 웃었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조금 쉬어도 좋잖아. 모두가 비슷한 말을 했다. 살라는 가끔 길 잃은 관객들을 제자리로 돌려보내곤 했다. 그게 전부였다. 목캔디는 주기적으로 채워졌고 여자는 목캔디를 두고 와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헛발걸음을 몇 번 했다. 살라는 아주 멀리서 공연장 내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제 몇 개 남지 않은 사탕을 까서 입에 넣었다. 여전히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었으나 이제는 궁금하지도 않았다. 살라는 그녀 곁을 지나가는 어셔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 어셔는 금방 그녀의 눈을 피했다. 그러고는 자신이 이끌고 온 신입 어셔들을 교육하는 것에 열중했다. 여러분 모두 공연장 지리를 외워야 합니다. 신입 어셔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그것이니까요. 신입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를 기억하려는 듯 두리번거리던 신입이 살라를 쳐다보았다. 말간 눈이었다. 살라는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살라는 길을 잃지 않는다. 그녀가 신입 티를 벗기 전부터 그녀는 길을 잃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살라는 지금 그녀가 어디를 향해 걷는지 알 수 없었다. 검정색의 굽 낮은 단화가 뒤꿈치를 사정없이 찔러올 때까지 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살라는 많은 동료들을 지나쳤다. 가장 처음 얼굴이 뭉개지고 그다음은 목소리가 흐려졌다. 살라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살라를 부르거나 알은체하지 않았다. 겨우 걸음을 멈췄을 때, 그녀는 익숙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디에서나 목캔디를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리 나지 않는 목캔디는 공연장에서만 만날 수 있습니다. 살라가 빠르게 중얼거렸다. 기억하고 계시네요. 다정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다고, 살라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에서 굳이 빠져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여자가 잇몸을 내보이며 활짝 웃었다. 오늘은 누가 무슨 공연을 하지요? 여자가 주머니를 뒤적이며 물었다. 눈 탓에 흠뻑 젖었던 그 코트 같았다. 그러나 오늘의 코트는 아주 잘 말라 있었고 어쩐지 좋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살라는 입을 벙긋거렸다. 오늘은, 어. 그러니까, 오늘은…. 아, 사탕을 모두 먹어버린 것 같아요. … 모르겠어요. 의사가 그렇게 먹지 말라고 했는데도요. 어쩌면 좋지? 모르겠어요…. 여자는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옆구리에 끼고 온 공연장용 목캔디 박스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한 주먹만큼의 캔디를 꺼냈다. 살라는 손을 펼치지도, 여자에게 다가서지도 않았다. 여자는 넉살 좋게 살라의 손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 안에 목캔디를 가득 담아주었다. 여자는 살라에게 인사했다. 다음에는 꼭 드릴게요. 새 사탕이요.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살라에게서 멀어졌다. 살라는 한참이나 목캔디를 받든 자세로 서 있었다. 누군가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처럼 낮은 자세였다. * 그다음날도 살라는 공연장 근처를 맴돌았다. 달라진 것이라고 더이상 그녀가 공연장 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신입 어셔임이 분명한 이들이 홀 안을 배회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라고는 길 잃은 고객 관리였지만 신입들은 모두 특유의 빛나는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꾹 깨문 입술에서는 약간의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살라가 신입과 눈이 마주치면 신입은 멋쩍게 웃었다. 마치 살라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녀는 얼른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신입이 고객을 잘못된 방향으로 안내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살라는 나서야만 했다. 분명하게 느껴지는 콧잔등의 땀이나 빨개진 귀, 떨리는 목소리. 살라는 그것을 뒤로하고 고객을 올바른 장소로 안내하기 위해 발걸음을 뗐다. 그리고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순간 그녀는 내장이 아래로, 더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오싹해졌다. 저희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살라의 어깨를 두드린 것은 고객도, 매니저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 번 식은 피가 데워질 때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다른 어셔가 고객을 데려갔고 살라는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할 수 있었어, 따위의 말이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그것보다 더 단순했다. 살라, 쉬어야 하는 거 아냐? 어셔가 물었지만 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에 있으면 안 돼. 그는 사람 좋게 웃어 보였다. 여기는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이야. 그렇지? 살라는 그의 태도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그녀도 그런 말투나, 몸짓을 직접 실행해야 했다. 무릎을 굽히고 눈을 마주치고 주머니에서는 사탕이나 껌을 꺼냈다. 아니면 프로그램 북을 펼쳐 가장 사진이 많은 페이지로 상대방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살라는 말했었다. 울지 마. 엄마를 찾아줄게. 아빠를 찾아줄게. 그러나 살라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넌 내 매니저가 아니야. 모두가 네 매니저야. 살라, 정신 차려. 그녀의 말에 그가 대답했다. 그의 말에는 어떠한 대꾸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냥 사과하면 끝날 일을. 그는 그대로 뒤돌아 갈 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무겁고 눅눅한 히터바람이 살라의 머리카락 몇 올을 흔들었다. 공연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살라는 알 수 있었다. 어떤 일은 관성처럼 작용했다. 관객들의 발소리나 웅성거림 외에도 그녀가 공연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릴 방법은 많았다. 겉옷과 소지품을 맡긴 관객들이 오케스트라 홀로, 독주회 홀로 입장했고 잠시 후 단발성적인 소란이 홀을 뒤덮었다. 어셔 중 하나가 벨소리를 재생했으리라. 살라는 두꺼운 문 너머로 지휘자가 보인다고 생각했다. 어떤 공연인지, 누구의 지휘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가 카라얀만큼 유명하지 않다면 그는 꽤 예의 바르게 인사했을 것이다. 불쾌한 관객 탓에 연주를 멈추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가벼운 목례 후에 멋지게 뒤돌아 지휘봉을 치켜들 것이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고…….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모니터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모니터 앞을 떠나는 사람, 젖은 손을 바지춤에 비비는 사람. 어떤 아이는 보호자의 엉덩이에 끊임없이 자신의 머리를 박았다. 그러나 보호자는 아이에게 신경 쓸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보호자는 성가신듯 아이의 머리를 밀어냈다. 하지 말라니까. 하지 말랬지. 하지… 그리고 살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물었다. 저기요. 지금 연주하는 곡이 뭐예요? 살라는 입을 조금 벌렸다. 당장 발음이 샐 것처럼 흉부에 공기가 들어차기 시작했지만 도저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게요. 모르겠네요. 살라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뭔지 몰라요? 보호자는 살라의 차림새를 다시 한번 살폈다. 살라의 차림새는 어셔가 분명했다. 보호자는 그녀의 대답을 더 기다리기 싫다는 듯이 프로그램 북을 판매하는 곳으로 걸음을 돌렸다. 아이는 이제 보호자의 손가락을 잡아당겼다. 아파. 아프다고. 볼레로, 라벨의 볼레로요. 살라가 찢어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나 보호자는 듣지 못했다. 볼레로로 말할 것 같으면, 글쎄요. 저는 라벨의 음악을 딱히 선호하는 편은 아닙니다만, 수학자들의 기호에는 딱 들어맞은 셈입니다. 우리는 수학의 기원으로 올라가는 무모한 행동은 하지 않겠습니다. 볼레로는 구조입니다, 이 음악에는 주선율이 흐릅니다. 이제부터 그것을 A라고 지칭하겠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편곡하여 반복한 선율을 A’ 라고 부를 것이고요. 볼레로는 기본적으로 A와 A’ 선율의 반복입니다. 형태와 악기만 조금씩 바꿔서 끊임없이 반복됩니다. 그것이 볼레로의…. * 주말이 찾아오자 살라는 여분의 돈을 더 지불한 후 수도관 수리공을 불렀다. 수리공은 수도관이 아주 꽝꽝 얼었기 때문에 수도관을 모두 들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수리공에게 몇 개의 전화번호를 얻은 후, 그녀는 시장에서 채소 몇 종류와 붉은 고기를 사왔다. 그녀는 그것들을 모두 끓여 먹었다. 그다음주에 살라는 그 관객에게 사과하기로 결심했다. 매니저는 기꺼이 관객에게 연락을 넣겠다고 대답했다. 살라는 말끔한 카펫이 깔린 공연장을 배회했다. 캐나다의 거장 건축가가 설계하고 건축을 지도했다는 공연장은 신문기사를 인용하자면, 모던했다. 그 누구도 거스르지 않을 만한 곡선은 매끄러웠고 바닥은 차가웠다. 내부는 반짝이거나, 반짝이지 않았다. 그게 모던이었다. 살라는 현대적인 소파에서 시간을 죽였다. 마침내 그 관객이 사무실로 들어갔고 살라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따라 들어갔다. 관객은 매니저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매니저는 공식적인 서류 작업을 위해 함께 있겠다고 했지만 관객은 그것을 정중히 거절했다.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매니저는 사무실을 떠났다. 살라는 아침에 발톱을 깎고 오지 않은 것을 약간 후회했다. 단화 안의 발톱이 유독 무거웠고 거슬렸다. 발톱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었지만 살라는 사과를 잊지 않았다. 사과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벨을 울린 것 말입니까? 네. 벨을 울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제가 울렸습니다. 그게 고객님께 피해를 입혔다면…. 제가 무슨 피해를 입었는지 아십니까? 살라는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보았다.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은 남자의 얼굴은 저번에 봤던 것보다 훨씬 늙어 있었다. 노골적인 자연광 탓일지도 몰랐다. 살라는 매니저에게 그가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에 대해 들은 바가 없으므로, 말을 얼버무려야 했다. 포괄적인 사과에 대해 배운 적이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기억나지 않았다. … 어떤 사과로도 복구가 안 될 피해로 알고 있습니다. 그녀의 대답에 남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순간 살라는 그를 기억해냈다. 그는 그녀가 홀에 벨을 울리자마자 화가 나 일어났던 그 남자였다. 그 옆모습이 확실했다. 당신은 전혀 모르는군. 남자는 그대로 사무실을 나갔다. 그가 문을 세게 닫았기 때문에 문고리, 경첩, 책상 위의 액자, 모든 것이 흔들렸다. 살라가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리고 조용히 울었다.
  • [이호준의 시간여행] 도시락이 있는 교실 풍경

    [이호준의 시간여행] 도시락이 있는 교실 풍경

    눈발이 희끗희끗 날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느닷없이 떠오른 옛 풍경 속에 한참 머물렀다. 딱히 슬플 것도 없는, 특별히 행복할 것도 없는, 그렇지만 뼈에 새겨진 듯 세월 가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었다. 오래된 서가를 정리하다 낡은 책갈피에서 툭! 하고 떨어진 흑백사진처럼 숱한 이야기를 품은…. 그렇게 소환된 추억 속에는 수십 년 전의 교실 풍경이 덩그러니 들어앉아 있었다. 겨울방학이 시작되기 전이었을 것이다. 4교시쯤 되면 아이들의 신경은 온통 난로로 쏠렸다. 조개탄에 불이 붙어 후끈한 열기를 토하는 난로에는 도시락이 층층이 쌓여져 있었다. 쉬는 시간에 올려놓은 것들이었다. 도시락은 아래에 놓을수록 따끈해졌다. 늘 동작이 재빠른 아이들 차지였다. 뚜껑을 열고 물을 살짝 뿌려 놓으면 따뜻한 밥은 물론, 부수입으로 누룽지도 먹을 수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밥 익는 냄새에 반찬 냄새까지 교실을 헤집고 다녔다. 거기에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섞이고는 했다. 난감한 표정의 선생님은 종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수업을 마쳤다. 선생님 도시락도 교무실 난로 위에서 데워지고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제 도시락을 찾는 시간, 도시락이 없는 몇몇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1960~70년대, 아니 80년대까지도 겨울이면 볼 수 있었던 교실 풍경이다. 도시락보다 ‘벤또’라는 이름이 익숙하던 시절이었다. 급식이 보편화된 지금은 학교에서 도시락을 보기 어렵지만 그 시절에는 ‘책보다 중요한’ 게 도시락이었다. 도시락 검사라는 것도 있었다. 쌀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혼식을 강요하던 때였다. 자식 사랑이 지극하던 부잣집 엄마들은 쌀밥만 싸 줬다. 보리밥을 싸 달라고 해도, 그깟 보리밥을 먹고 무슨 힘을 쓰느냐고 막무가내였다. 결국 도시락 검사를 하는 날에는 진풍경이 벌어지곤 했다. 부잣집 아이가 가난한 집 아이에게 보리알을 빌리러 다녔다. 젓가락만 가져와 십시일반을 외치며 아이들의 밥을 공출해가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도 있었다. 도시락을 싸갈 수 없는 가난한 집 아이들은 점심시간이면 늘 겉돌았다. 도시락 하나를 쌀 분량의 양식에 시래기를 넣고 죽을 끓이면 온 가족이 한 끼를 먹을 수 있었다. 도시락 대신 감자나 고구마를 싸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봄이면 하루 두 끼 먹기도 힘든 집이 많은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는 산처럼 높았고 꺼진 배는 바다처럼 깊었다. 도시락을 못 싸온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운동장을 배회하거나 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해바라기를 했다. 사는 게 고만고만하다 보니 도시락 반찬도 비슷해서 김치나 장아찌가 대부분이었다. 김치 국물이 흘러 배어든 책은 늘 퀴퀴한 냄새를 풍겼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형편이니 특별히 흉이 될 것도 없었다. 콩장이나 멸치볶음 정도면 비교적 괜찮다고 할 수 있었다. 밥 위에 달걀부침이 얹혀져 있거나 장조림이라도 가져오는 애들은, 그야말로 부잣집 아이들이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렀다. 세상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바뀌었고 그 시절의 도시락은 흔적을 찾기 어렵다. 물론 지금도 도시락은 넘쳐난다. 집에서 싸는 게 아니라 주문해서 먹는 도시락이다. 게다가 한 끼를 때우기 위한 대용품을 지나 식도락가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는 데까지 발전했다. 육류나 해물 등의 반찬은 차치하고라도 건강도시락이니 영양밥이니 나물밥이니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배고픈 시절을 건너온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여전히 보리밥과 김치가 있는 도시락이 ‘옹이’처럼 남아 있다.
  •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새해 삭풍이 불어도

    [신가영의 장호원 이야기] 새해 삭풍이 불어도

    삭막한 바람이 마당을 채우는 날. 여전히 고양이들은 쥐를 쫓고 개들은 고양이 보면 짖어 대기 바쁘다. 매해 조금씩 자라는 나무들은 온 잎을 떨군 채 삭풍을 맞고 있다. 걷는 걸음마다 뽀드득뽀드득 내는 소리. 녹지 않은 눈 밟는 소리만은 아니다. 풀이 자라는 것도 아닌데 남은 흔적들 밟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문득 큰 키를 자랑하는 은행나무를 보고 있자니 상상의 나래가 성긴 나뭇가지마다 매달린다. 저 나무가 잭과 콩나무처럼 구름을 뚫고 끝없이 자란다면 어떨까? 고양이는 빨리 달리지만 지속력이 떨어져 오래 달리지 못한다는데 그 한계가 없다면 어떨까? 늘 주변을 배회하는 새들이 끝없이 날기만 한다면? 볼 가득 도토리를 물고 가는 다람쥐 그 주둥이에 한없이 담을 수 있다면? 집을 지키는 개가 끝없이 짖기만 한다면, 한없이 먹는 것이 가능하다면? 더이상 할 수 없을 지점이 없다면 주변을 채우는 것은 상상으로 만나던 괴물이겠다. 살면서 흔히 듣는 말 중 하나가 한계를 뛰어넘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온당한 말일까 생각해 본다. 고양이는 보통 뛰지 않는다. 느릿느릿 걷는 모습이 일상이다. 기분 좋아 뛰는 모습은 바쁘지 않아 공중에 떠 있는 모습으로 보일 정도다. 최대치를 뛰는 일은 영역 다툼을 하거나 사람이나 큰 동물에게 쫓겨 도망칠 때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들과 달리 길고양이들에게 영역 싸움은 생존의 문제라 그 싸움이 격렬하다. 싸우지 않아도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넉넉하게 사료를 챙겨 주지만 여전히 싸움은 그치지 않고 있다. 그래도 괴물은 아니다. 우리들은 어떠한가. 힘을 믿고 이익만을 좇아 끝없이 한계를 넘어 버리고 싸우고 파괴하는 군상들. 굳이 전쟁이 아님에도 삶을 접어야 하는 많은 사건이 비일비재하고, 무소불위 힘이 무엇인지 여전히 보게 되고, 거침없이 쏟아 내는 말들은 살아 있는 창이 돼 읽는 이들은 상처투성이다. 그래도 괴물은 아닐 수 있을까? 가끔 딱따구리가 찾아와 나무에 붙어 있는 벌레를 제거하느라 따닥따닥 소리를 낸다. 그 덕에 마당이 따스해진다. 보이지 않아도 늘 그들과 함께하는 마당. 마지막 달력을 떼어 내며 한숨이 아쉬움 속에 절로 새어 나오지만 그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어서 고마운 한 해였다. 따뜻한 한 해였다.
  • 이웃의 ‘안녕’을 책임진다… 살맛 나는 세상 만드는 작은 영웅들

    이웃의 ‘안녕’을 책임진다… 살맛 나는 세상 만드는 작은 영웅들

    ‘자원봉사’라는 단어에 붙는 수식어는 다양하다. ‘세상을 밝히는 작은 등불’, ‘이웃과 지역사회를 지키는 힘’, ‘작은 기적을 일으키는 행동’ 등이 있지만 이를 행하는 자원봉사자들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바로 ‘영웅’이다. 일상 속 작은 실천들로 이웃과 지역사회, 나아가 국가와 지구촌을 ‘안녕’하게 하는 이들이야말로 바로 ‘일상 속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약 중인 자원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행정안전부 주최 ‘안녕 캠페인 우수사례 경진대회’에 46개 지역 뽑혀  ‘안녕 캠페인’은 주민 주도성과 네트워크의 확장, 사회문제 해결을 주요 기제로 삼아 ‘안녕한 사회’로 나가기 위해 전 국민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자원봉사센터·단체, 기업 등 다양한 파트너 참여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는 사업이다. 지난 10월 행정안전부는 ‘안녕 캠페인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개최해 총 46개 지역(대상 7건·최우수상 13건·우수상 26건)을 우수 사례로 뽑았다.  먼저 서울 관악구의 ‘마마식당‘은 맞벌이 등으로 바쁜 부모를 대신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따뜻한 식사와 놀이, 돌봄을 지원하는 주민주도의 어린이 식당이다. 지역주민 30명으로 구성된 마마봉사단은 식단 구성부터 장보기, 조리, 귀가 봉사까지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민·관·학 협력체계를 구축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했다는 평가와 함께 한국형 어린이 식당의 모범사례로 인식되고 있다.  강원도 강릉시는 학교와 군부대, 기업 등과 연계해 고지대에 사는 사회취약계층의 안전한 보행을 위해 안전시설물(안전바·폴딩체어)과 야광 이동방향지시등 설치, 혐오시설물 제거와 같은 활동을 전개해 자원봉사를 통한 삶의 질을 변화시킬 예정이다.  충청남도 서천군에서 실시한 ‘안녕한 우리 마을 서천’은 지역사회 문제 발굴부터 해결에 이르기까지 주민의 주도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천군은 읍면별로 설치된 자원봉사거점을 활용, 지역별로 특화된 자원봉사활동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있으며, 자원봉사거점 상담가 및 지역주민 간담회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전라북도 김제시의 안부 묻는 발걸음 ‘실버벨 딩동’은 김제시의 인구 고령화, 관계 단절로 인한 독거노인 우울증, 자살 및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해 추진하고 있다. 핵심 인력인 ‘안녕 지킴이(한국야쿠르트 프레쉬매니저·전문봉사팀)’는 지속적인 방문과 안부 묻는 활동을 통해 전문적인 서비스 제공과 정서적 교감 형성을 통해 고독사 위험군을 대상으로 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는 성과를 냈다.  경상북도 경산시의 ‘마주 여는 이웃, 마주 여는 마을’은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발생한 개인주의의 극복과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민·관이 결합한 주민주도형 사업이다. 마을 내 문제 발굴과 해결을 위해 정기적 주민협의체를 운영하고, 청소년 및 아파트 봉사단과 연계한 프로그램 기획·진행, 기업 사회공헌으로 추진한 ‘안전공원 조성’ 등 지역별 특성에 맞춰 프로그램을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제14회 전국자원봉사자대회’에 훈·포장과 표창 272점 선정  자원봉사자의 날(매년 12월 5일)은 자원봉사자에게 경의를 표하고 자원봉사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1985년 국제연합(UN)이 지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도 2005년 ‘자원봉사활동 기본법’ 상 기념일로 지정해 올해로 14회째를 맞았다. 지난 5일 서울 건국대 새천년관에서는 ‘제14회 전국자원봉사자대회’가 열렸다. 대회에서는 전국 각지에서 오랜 기간 헌신적으로 이웃 사랑을 실천해온 개인과 단체·기업·지방자치단체에 훈·포장과 표창 275점이 수여됐다.  (사)국제가족제주도연합회 송인호(58) 회장은 22년간 장애인 행사지원, 인권상담, 활동 보조 등 중증장애인 지원 봉사활동과 심야 배회 청소년 귀가 조치, 소년가장 가정 연탄배달 등 청소년 선도보호 활동을 펼치는 등 불우 소외계층의 복지와 인권 신장을 위해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이날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사랑실은교통봉사대 김형주(65) 정읍 지대장은 1988년 전북 정읍에 사랑실은교통봉사대 지대를 발족한 후부터 모금 활동을 해 관내 심장병 어린이 186명의 수술비를 지원했다. 또 무연고자 장례를 지원하고 자장면을 직접 만들어 나누어주는 등 활발한 봉사활동을 펼친 노고를 인정받아 역시 국민훈장 석류장을 받았다.  국민포장을 받은 삼성청소년선도119 김병기(51) 사무국장은 33년 10개월 동안 봉사활동을 해왔다. 청소년기부터 봉사활동을 시작한 그는 10대가 인생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에 청소년을 위한 선도 활동을 오랜 기간 해왔다고 알려졌다. 그는 지금도 청소년을 위한 심리상담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관한 특강, 사람책 도서관 활동, 지역 환경 정화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이날 참사랑나눔봉사회 김남복(65) 회장도 국민포장을 받았다. 시각장애인인 그는 1999년부터 의용소방대 청학지대 방호부장으로 활동하며 산불 진압, 주택 화재 진압, 봉사자 운송 등에 활발하게 참여했으며, 자신이 운영하는 목욕탕에 관내 중증 장애인과 고령의 노인 등을 초대해 목욕 봉사 등을 했다. 또한 2012년 참사랑나눔회를 설립해 이동지원, 활동 보조, 행사지원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이그나이트 대회’… 지역사회 바꾼 자원봉사자들 이야기  이그나이트는 ‘불을 붙이다’는 뜻이다. 5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직접 자신의 삶과 이웃, 그리고 지역사회를 바꿔낸 자원봉사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자원봉사 ‘이그나이트 대회’다.  대회에 선정된 주요 사례 중 경남의 ‘신가네 가족 봉사단’은 김해에서 유명한 가족 봉사단이다. 신영만(40대) 씨와 그의 아들 현빈(10대) 군, 동생 영복(30대) 씨가 구성원이다. 거실 한쪽에 월별 봉사 달력이 걸려 있고, 가훈이 ‘숨 쉬듯 봉사하라’일 정도로 자원봉사에 관심이 많다. 2012년부터 김해시 지역행사, 축제는 물론 소외이웃 돕기, 마을 환경 정화 활동 등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면 장소와 내용을 불문하고 참여하고 있다.  대전의 ‘호국철도동상지킴이’ 김영철(50대) 씨는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주위로부터 받았던 도움에 대한 감사를 탈북민으로 구성된 가족봉사단과 함께 되갚고 있다. 매주 토요일 호국철도 동상을 닦고 환경을 정화하는 활동은 물론, 매월 탈북민 가족을 지원하는 생필품을 구매해 전달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5살 어린 딸을 소아암으로 잃어버린 전북 ‘아빠봉사단’의 회장 오승옥(40대) 씨는 자녀 세대의 행복을 위해, 공동체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나눔과 봉사라는 두 단어를 실천하는 멋진 아빠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교통안전, 지역축제, 다문화가정, 생활환경개선 봉사활동 등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늦더라도 올곧은 길’을 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공유하는 삶을 살고 있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 [길섶에서] 야생견/오일만 논설위원

    요즘 동네 야산이나 둘레길을 걷다 보면 가끔 주위를 배회하는 야생견들과 마주친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아픔 때문인지, 으르렁대는 폼새가 인간에 대한 적의감이 가득하다. 버림받은 개들은 혼자가 됐다는 두려움에 가장 먼저 숲으로 간다고 한다. 그곳에서 같은 처지의 개들과 무리를 지어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기억 저편에 숨어있던 야생성이 살아난다. 도처에 야생견이 출몰해 인간을 공격했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나오는 까닭일 것이다. 대략 1만 5000년 전 안팎, 인간이 농경 생활을 시작한 이후 가축으로 만든 첫 동물이 개다. 늑대가 인간이 먹다 남긴 찌꺼기를 먹으려고 인간 주거지 가까이에 접근하다가 길들여진 것이다. 생존 전략으로 야성을 버리고 스스로 진화과정에서 DNA를 바꿔 인간과의 동거를 택했다는 것이 과학적 설명이다. 사람 사이의 신뢰는 깨지기 쉽지만 충직한 개는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개 스스로 인간을 배반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0만명이 넘어섰다고 한다. 외로운 인생길을 함께한다는 의미에서 애완견 대신 ‘반려견’으로 부른 지도 꽤 오래다. 반려견과 야생견의 갈림길은 결국 인간의 몫일 수밖에 없다. oilman@seoul.co.kr
  • “흡연 최소 연령 올리자” 美 담배회사들의 꼼수

    미국에서 담배 구매 최소 연령을 기존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할 예정인 가운데 미국 담배회사들이 찬성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AP통신은 17일(현지시간) 미국의 담배 회사인 알트리아와 최대 전자담배 제조업체인 줄랩스가 미 국회의 일명 ‘담배21법’의 주요 지지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 9개월간 줄랩스의 로비 자금은 310만 달러(약 36억원)였고, 알트리아는 740만 달러(약 86억원)를 담배21법 로비 활동에 썼다. 담배 업체들이 이런 이율배반적 로비에 나선 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가향담배의 전면 퇴출을 공언했다가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담배 구매 연령 상향’으로 후퇴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즉 가향담배 전면 금지라는 더 큰 타격을 막기 위해 연령 상향에 따른 일부 피해를 감수한다는 전략이다. 게다가 청소년들이 연령 기준을 피해 담배를 구매할 수 있는 편법도 많아 연령 상향의 피해는 예상보다 제한적일 수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미국, 전자담배 구매연령 3년 상향으로 끝날까

    미국, 전자담배 구매연령 3년 상향으로 끝날까

    미국 담배구매 최소연령 18→21세담배회사들 해당법 찬성하고 나서가향담배 전면금지 막으려는 취지뉴욕 판매금지 조치, 각국 우려 퍼져인명피해 있어 추가 조치 가능성도“대마유래성분 없다” 국내선 반발도 미국이 담배구매 최소 연령을 기존 18세에서 21세로 상향할 예정이다. 미국 담배회사들은 이를 찬성하고 나섰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동에는 ‘가향담배 전면 판매 금지’라는 더 큰 타격을 막겠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문제는 가향담배에 대한 미국 의회의 조치가 이대로 끝날지 여부다. AP통신은 17일(현지시간) 미국의 담배 회사인 알트리아와 최대 전자담배 제조업체인 쥴랩스가 미 국회의 일명 ‘담배21법’의 주요 지지자가 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올해 들어 9개월간 쥴랩스의 로비 자금은 310만 달러(약 36억원)였고, 알트리아는 올해 740만 달러(약 86억원)를 담배21법 로비 활동에 썼다. 가향담배는 액상담배 중 하나로 민트향, 풍선껌향 등을 첨가해 이용자의 접근성을 높인 상품이다. 미국 정부는 고등학생 4명 중 한 명이 주기적으로 전자담배를 피운다는 자료를 발표하는 등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 이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9월 가향담배의 전면 퇴출을 공언했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발에 ‘담배구매 연령상향’으로 후퇴하는 태도를 보였다. 미국 담배회사 입장에서 연령 상한을 3살 올리는 것은 소위 ‘선방’이 될 수 있다. 완전 퇴출을 면할 수 있는 데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구매 연령 제한을 피하는 수가 미국에도 꽤 있기 때문이다.문제는 각종 제재가 여기서 끝나겠냐는 점이다. 우선 주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빌 드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전날 가향 전자담배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례안이 통과되면서 내년 7월부터 판매가 전면 금지된다고 밝혔다. 또 피해 규모가 너무 크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최근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자담배 흡연과 관련한 원인불명의 폐질환 환자는 2291명이다. 사망자는 48명이었다. CDC는 ‘비타민E 아세테이트’를 유력한 폐손상 의심물질로 보고 있다. 게다가 전자담배 유해성에 대한 우려는 세계 곳곳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달 중국이 온라인 전자담배 판매 중단 조치를 발표했고, 필리핀도 전자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캐나다, 호주, 이스라엘, 인도 등도 판매금지 또는 사용 자제 권고 조치를 내린 상태다. 한국 식품의약안전처도 비타민E 아세테이트 성분과 가향물질이 일부 제품에서 미량 검출됐다고 발표하고 인과관계 나올 때까지 사용자제를 권고했다. 일부 편의점 등은 액상형전자담배를 퇴출키로 했다. 반면 전자담배 업계는 대마유래성분(THC)이 직접적인 문제지만 국내 제품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데스크 시각] 볼모 정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이창구 정치부장

    [데스크 시각] 볼모 정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이창구 정치부장

    “만성화를 넘어 화석화된 정파 간의 극단적인 대립 구조 속에 있으면서 ‘실망ㆍ좌절ㆍ혐오ㆍ경멸’로 이어지는 정치 혐오증에 시달려 왔음을 고백합니다. 자유한국당은 존재 자체가 역사의 민폐입니다. 생명력을 잃은 좀비 같은 존재라고 손가락질 받습니다.”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지난달 17일 내놓은 총선 불출마 선언문은 근래 본 정치인의 글 가운데 가장 솔직해 보였다. 한국당의 퇴행적인 정치 행태를 바라보는 유권자들의 속마음을 제대로 꿰뚫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우린 적어도 좀비 소리는 듣지 않지 않느냐”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듯했다. 민주당은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한국당만큼 민주당에서도 마음이 떠난 이들이 적지 않다. 한국당과 민주당이 김 의원이 정확하게 읽은 민심에 둔감한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믿는 구석은 바로 상대방이다. 한국당은 “우리를 안 찍고 문재인 좌파 정권의 폭주를 끝낼 재간이 있느냐”며 유권자를 윽박지르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20대 국회를 이처럼 고사시킨 배짱을 설명할 길이 없다. 민주당은 “우리를 안 찍으면 황교안 대통령 시대가 온다”며 유권자를 윽박지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개혁의 완벽한 퇴보를 설명할 길이 없다. 거대 양당이 유권자를 볼모로 잡고 있는 꼴이다. 유권자들은 내년 총선에서 ‘볼모 정치’를 탈출할 수 있을까. 조짐은 보인다. 우선 ‘민주 vs 반민주’, ‘보수 vs 진보’라는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유권자들의 요구가 넘쳐 난다. 공정 이슈를 놓고도 기회의 평등이냐 결과의 평등이냐를 따질 정도로 담론의 수준이 성숙해졌다. 젠더, 노동, 생태에 대한 민감도도 어느 때보다 높다. ‘민주·진보’ 또는 ‘애국·보수’라는 큰 우산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20~30대가 유권자의 주류가 됐다. 서복경 서강대 연구교수는 “2016년 총선과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여론조사가 완전히 틀렸던 가장 큰 이유는 유권자들의 다양성을 측정할 수 없는 고리타분한 설문 문항 때문”이라고 했다. 한국당이냐 민주당이냐를 묻는 방식으로는 더이상 민심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거대 양당은 유권자의 ‘볼모 정치’ 탈출 욕구를 제대로 읽지 못하거나 애써 눈감고 있다. “내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에 실소를 보내면서도 “내가 조국이다”라는 구호에도 결코 동의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흘려보낸다. 유권자를 볼모로 잡아 놓고 상대방의 자살골만 기다린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는 이를 ‘생각의 아비투스(버릇)’라고 했다. 몸의 습관처럼 정치권의 생각도 볼모 정치에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볼모 정치에서 탈출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길은 제3, 제4의 신진세력이 국회에 진입할 수 있도록 비례성이 강화된 선거제도를 실시하는 것이다. 시민사회에서 밀어올리는 뜨거운 어젠다는 소선거구제라는 병목에 막혀 국회로 들어가지 못한 채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요구가 커질수록 병목 현상은 심화되고, 시민들은 너나없이 거리로 나갈 수밖에 없다. 정당 득표율대로 전체 국회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면 태극기 부대나 극단적 종교 집단까지 원내에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국회에 들어가면 지금처럼 광화문에서 “대통령을 단두대에 세우자”고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에도 병목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유권자들은 대거 투표를 포기할 것이다. 투표를 포기한 유권자들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볼모 정치를 끝장내기 전에 거대 양당은 결단을 내려야 한다. window2@seoul.co.kr
  • 동국제강 인터지스 박동호 부사장으로 재영입

    동국제강 인터지스 박동호 부사장으로 재영입

    동국제강그룹은 박동호 인터지스 상무를 부사장으로 영입하는 등 승진 6명, 신규 선임 3명의 정기 임원인사를 13일자로 한다고 6일 밝혔다. 동국제강그룹의 모기업 겸 지배회사인 동국제강은 최삼영 상무를 전무로 올리는 등 4명을 승진시키고 11명의 보직을 변경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영환경에 대비하고 내실경영 기조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물류계열사인 인터지스는 조직 강화와 인적 쇄신을 위해 퇴임한 박동호 부사장을 재영입했다. 박 부사장은 2011~2017년 인터지스 이사, 상무로서 연합물류담당, 경인지사장을 역임했다. 정보기술 계열사인 DK UNC는 신규 성장동력의 사업화를 추진하고자 ‘네트워크 사업실’을 신설했다.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KT, 평창 등 인구감소지역에 ‘5G 서비스’

    KT, 평창 등 인구감소지역에 ‘5G 서비스’

    KT가 지난 18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 의야지마을에서 행정안전부의 인구감소지역 통합지원사업 1호인 ‘횡계2리 지역활력센터’ 개소식을 갖고 5G(세대 이동통신) 기반 서비스 고도화를 선언했다. 개소식에는 조봉업 행정안전부 지역발전정책관, 김민재 강원도 기획조정실장, 송기동 평창군 부군수, 지역주민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의야지마을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KT가 5G빌리지를 조성한 곳으로, KT는 올림픽 이후에도 지역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 참여해왔다. KT가 평창군, 강원도와 함께 행안부 인구감소 문제 해결을 위한 ‘인구감소지역 통합지원사업’에 선정돼 전국 최초로 개소하게 된 ‘횡계2리 지역활력센터’는 이 같은 참여의 결과물이다. KT는 ‘횡계2리 지역활력센터’ 내 5G 네트워크에 기반한 ICT 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솔루션들을 적용해 문화와 관광의 거점 시설로서 이 지역의 농촌인구 감소 문제를 해소하고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계획이다. 센터에서는 KT의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을 통해 방문객들에게 관광정보와 다양한 체험을 제공한다. 5G의 초저지연성을 활용한 보컬 사운드 기술이 결합된 5G멀티라이브 노래방인 ‘싱스틸러’, 4K 고화질 VR로 미디어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KT 수퍼 VR’, 가족단위 관광객들이 환경보호와 바다생물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AR 아쿠아리움’ 등을 구축했다. 또 기가아이즈 영상보안솔루션을 적용해 출입상황을 통제하고 범죄예방을 위한 배회자 추적, 도난방지 감지로 주민의 안전한 일상생활을 지원할 예정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美서 39명 죽음 부른 전자담배… “문제는 액상형 아닌 THC”

    美서 39명 죽음 부른 전자담배… “문제는 액상형 아닌 THC”

    미국발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이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지난 1일 기준 전자담배 흡연자 중 39명이 폐질환으로 사망했고, 연관된 폐질환자가 2015명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는 학계의 연구보고서가 발표됐고, 또 미국의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사망자와 환자 대부분이 THC(대마 중 환각을 일으키는 주성분)가 함유된 비정상적인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후폭풍도 거세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전자담배의 시장 점유율이 치솟으면서 이를 우려한 담배회사의 로비 등이 작용하고 있다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전자담배 견제 담배회사의 로비” 음모론도 지난 9월 11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가향 전자담배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공언하면서 전자담배 유해성 논란에 불씨를 댕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부인 멜라니아와 알렉스 에이자 보건복지부 장관, 노먼 샤플리스 식품의약청(FDA) 청장대행 등과 같이한 자리에서 가향 전자담배 퇴출을 전격 선언했다. 당시 뉴욕타임스 등은 포도 슬러시, 딸기 코튼 캔디, 풍선껌 등 10대 청소년들을 겨냥한 달콤한 맛의 첨가제는 물론 멘톨·민트가 첨가된 가향 전자담배까지 전면 금지될 것이라고 전했다.이는 미 고교생 중 전자담배 흡연자가 2017년 11.7%에서 지난해 20.8%로 껑충 뛰었고 올해는 27%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13살의 막내아들을 둔 트럼프 대통령 부부가 청소년의 전자담배 흡연 급증을 크게 우려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전자담배 유해성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현재까지 전자담배 관련 폐질환 사망자와 환자의 발병 원인을 구체적으로 밝혀내지는 못했고, 발병 원인을 여러 복합적인 물질 때문으로 추측하고 있다. 현재 많은 다른 물질과 제품 출처는 여전히 조사하고 있으며 밝혀진 한 가지 사실은 모든 발병 환자들이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CDC에 현재 보고된 환자 대부분이 불법 내지 편법으로 THC가 함유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CDC에 따르면 지난 10월 15일 기준 환자 867명 중 86%가 THC 성분이 포함된 제품을 이용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CDC가 피지 말 것을 권하는 건 액상형 전자담배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THC 성분이 함유된’ 액상형 전자담배다. 또 암시장에서 파는 인증받지 않은 액상형 전자담배류(특히 THC 포함)를 사거나 정식 판매제품에 임의로 다른 물질을 추가하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CDC와 FDA는 “일반담배를 끊기 위해 액상형 전자담배를 피는 성인은 궐련형 담배로 돌아가지 말고 FDA에서 허가한 다른 니코틴 대체 요법을 고려해 볼 것”을 권하고 있다. 정치전문매체 워싱턴이그재미너는 “액상형 전자담배로 인한 폐질환 사망은 합법적인 액상형 전자담배와 연관성이 없다”면서 “아직 FDA가 승인한 합법적인 액상형 전자담배 제품과 관련된 사망이나 질병은 한 건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전했다.●“일반·전자담배 모두 건강엔 해로워” 지난 19일 미 심장학회지에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공개됐다. 제이콥 조지 영국 던디대 교수와 연구진이 ‘일반담배에서 액상 전자담배(베이핑)로 전환하면 잠재적으로 심장마비와 뇌졸중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11월 초 학계에서 발표된 ‘전자담배가 혈관 기능을 손상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연구를 책임진 조지 교수는 “일반담배에서 전자담배로 전환하면 한 달 이내에 혈관 기능이 크게 좋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11월 초 발표된 전자담배의 혈관 손상 연구는 규모가 작고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지 교수 연구팀은 114명의 성인을 3개 그룹으로 나눴다. 114명은 최소 2년 동안 하루에 최소 15개비의 담배를 피운 성인으로 구성됐으며 모두 심장 혈관 질환 징후가 없었다. 이들 중 40명으로 구성된 한 그룹은 일반담배를 끊고 싶어 하지 않는 이들로만 구성됐다. 일반담배를 끊고 싶어 한 나머지 74명 중 절반인 37명에게는 니코틴이 함유된 전자담배를, 나머지 37명에게는 니코틴이 포함되지 않은 전자담배를 사용하도록 했다. 이들 114명을 한 달 동안 조사한 결과, 일반담배를 계속 피운 그룹은 혈관 기능에 거의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전자담배를 사용한 이들은 니코틴 유무에 관계없이 혈관 기능이 20% 이상 상대적으로 좋아졌으며 일부는 비흡연자와 동등한 수준으로 혈관 기능이 향상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한 달 만에 나온 이 개선이 장기적으로 이어진다면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던디대 연구팀은 또 “이번 연구 조사 결과가 일반담배에 비해 베이핑이 혈관 기능과 관련, 덜 유해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지만 전자담배가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흡연자가 베이핑으로 전환할 경우 혈관 건강이 한 달 내에 향상된다는 것을 보여 줄 뿐이라는 의미다. 연구팀 관계자는 “비흡연자가 베이핑을 시작하는 것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이번 연구 결과는 혈관과 관련해서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유해하다는 사실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베이핑이 심장마비와 암 등 심혈관 질환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려면 더 장기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미국과는 달리 영국 공중보건국은 일찌감치 전자담배를 ‘금연의 징검다리’로 활용하고 있다. 공중보건국은 연간 최소 2만명이 전자담배로 금연에 성공하거나 상당한 건강 혜택을 얻는다고 분석했다. 또 보건국은 2015년 외부 전문기관의 검토 등을 거쳐 전자담배가 일반담배에 비해 95% 덜 해롭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반면 미 보스턴대 연구팀은 액상 전자담배가 심장질환에 위험도를 높인다고 경고했다. 보스턴대 연구팀은 전자담배와 심장질환 위험도 간 연관성을 알아보기 위해 평소 심장에 문제가 없던 21~45세 성인 476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LDL콜레스테롤(저밀도 콜레스테롤, 혈관을 막히게 하는 나쁜 콜레스테롤) 수치가 일반담배 사용자(86.1㎎/㎗)보다 전자담배 사용군(97.7㎎/㎗)에서 11.6㎎/㎗ 높게 나타났다. 연구팀 관계자는 “LDL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쌓이면 혈액순환을 방해해 심장마비, 뇌졸중 등 치명적인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 의학계 관계자는 “일반담배나 전자담배 모두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과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라면서 “전자담배의 유해성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빨리 FDA나 CDC에서 정확한 조사 결과를 발표해야 한다. 이것이 소모적인 논란을 막고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안양시, 만안 이어 동안치매안심센터 개소…치매환자와 가족위한 체계 완료

    경기도 안양시가 지난 4월 만안치매안심센터에 이어 이번달 동안치매안심센터를 개소했다. 만안, 동안 2개 구에 치매안심센터가 운영을 시작해 치매환자와 가족들을 위한 체계를 모두 갖췄다. 시는 지난 19일 동안치매안심센터를 개소하고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고 22일 밝혔다. 이번 개소한 동안치매안심센터는 연면적 890여㎡의 지상 3층 건물로 사업비 15억원이 들어갔다. 프로그램 운영실, 치매환자 쉼터, 환자가족을 위한 가족카페 등의 시설을 갖춰 갖췄다. 전문인력 12명을 배치해 치매 진단부터 돌봄까지 체계적 통합서비스를 제공한다. 낮시간 치매환자를 돌보는 ‘기억모음교실’, 인지훈련을 교육하는 ‘기억키움교실’, 인지훈련기회를 제공하는 ‘기억배움교실’ 등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치매선별 및 진단검사, 배회노인 지문등록과 인식표 발급도 한다. 치매예방 또는 치매가 의심되거나 경증치매를 앓는 동안구 거주 60세 이상이 대상이다. 지난 4월 개소한 만안치매안심센터는 치매 예방과 치유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만안구보건소에 자리잡은 만안치매센터는 사업비 10억원이 들어갔다. 면적 406㎡로 검진실, 사무실, 프로그램실, 진료실, 쉼터, 가족카페 등의 시설을 갖췄다. 이곳에는 간호사, 작업치료사 등 전문인력이 상주한다. 이들은 치매조기검진과 치매환자 치료관리비 및 조호물품 지원, 인지 재활프로그램 쉼터운영을 담당한다. 또 치매가족 1 대 1 상담과 자조모임을 통한 가족을 대상으로 한 예방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한편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치매환자는 75만명에 이르며 안양 지역 60세 이상 치매환자는 7700여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대호 안양시장은 “치매는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에게도 신체적·정신적·경제적으로 큰 부담”이라며 “치매안심센터가 치매예방과 치유에 중추적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미성년자 성매매’ 엡스타인 감방서 자살할 때 교도관들은...

    ‘미성년자 성매매’ 엡스타인 감방서 자살할 때 교도관들은...

    오랜 기간동안 미성년자 등을 제물로 성폭행, 성매매와 성접대를 한 혐의로 지난 8월 구속 수감 중이던 미국의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자살한 날 그를 담당했던 교도관 두 명이 19일(현지시간) 기소됐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엡스타인의 상태를 거의 8시간 동안 확인하지 않았지만 30분마다 확인한 것처럼 기록을 조작했다. 검찰이 제시한 감시카메라 영상에 따르면 당시 해당 구역 담당은 뉴욕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 소속 토바 노엘과 마이클 토머스였지만, 엡스타인이 자살한 날 밤 그가 수용된 구역에는 아무도 출입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엡스타인의 감방에서 약 4.6m 떨어진 곳에 앉아 온라인쇼핑으로 가구와 오토바이를 구입하고 감방 공용구역을 배회했다. 2시간 동안은 두 명이 동시에 자고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이 영상 자료는 엡스타인 타살설을 일축하는 증거가 되기도 한다. 앞서 엡스타인 유가족이 고용한 법의학자는 그의 부상 중 일부는 자살보다는 살해 정황에 가깝다고 판단한 바 있다.두 교도관은 이날 법정에서 무죄를 주장했으며, 보석금 10만 달러(약 1억 1700만원)를 내고 풀려났다. 메트로폴리탄 교정센터는 테러리스트와 마약 카르텔 두목 등을 수감하며 보안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교도관들에게 매일 야근을 강요하는 등 만성적인 직원 부족 문제가 불거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사설] “택배노조 합법” 법원도 인정한 플랫폼 노동권

    택배기사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된다는 법원 판결이 처음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택배기사는 개별 사업자라며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택배노조)의 교섭 요구에 응하지 않았던 CJ대한통운 대리점들에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다. 택배기사가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노조가 합법이라고 법원이 인정한 것이다. 2017년 고용노동부는 택배노조에 노조 설립 신고증을 발급하면서 ‘노조할 권리’를 인정했다. 택배노조는 사측에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을 제안했지만, 대리점들은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라며 교섭에 응하지 않았을뿐더러 교섭 요구 사실 자체도 공고하지 않았다. 이에 택배노조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시정 신청을 했고, 택배회사와 대리점주들은 행정소송으로 맞섰다가 2년 만에 패소했다. 이번 판결은 열악한 환경의 택배노동자 등 플랫폼 노동권에 새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하지만 근로기준법상 택배기사들이 근로자에 해당한다는 판단은 아니어서 이들이 연차수당, 산재보상 등 직접적인 처우 문제를 제기할 법적 권리는 여전히 없다. 노동조합법으로는 근로자이면서 근로기준법으로는 근로자가 아닌 애매한 위치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국회가 어서 마련하길 바란다. 배달 서비스, 대리운전 등 디지털 플랫폼을 매개로 한 플랫폼 산업의 급성장으로 국내의 관련 종사자는 50만명을 웃돈다. 최근에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배달원들의 근로자 지위를 처음 인정한 노동부의 결정이 나오기도 했다.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자가 급증하는 현실이라면 이들의 노동권 보호는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플랫폼 노동권을 보호하는 정책이 적극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 ‘억울한 옥살이’ 윤씨측 당시 신문조서 공개

    ‘억울한 옥살이’ 윤씨측 당시 신문조서 공개

    경찰이 화성연쇄살인 8차사건의 범인을 이춘재(56)로 잠정 결론 내린 가운데 15일 이 사건의 범인으로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윤모(52) 씨 측이 당시 경찰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공개했다. 윤씨의 재심을 돕는 법무법인 다산은 이날 오후 윤씨가 이 사건 범인으로 검거된 1989년 경찰이 작성한 진술조서 2건과 피의자신문조서 3건,윤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언론에 배포했다. 조서에는 사건 당일 윤씨가 기분이 울적해 집을 나선 뒤 배회하다가 피해자인 박모(당시 13세) 양의 집 담을 넘어 침입해 자고 있던 박양을 목 졸라 살해하고 강간하고선 집으로 돌아왔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이는 앞서 알려진 윤씨가 과거 경찰 수사 과정에서 자백한 내용과 일치하지만, 이날 경찰이 이춘재를 진범으로 사실상 특정한 이유로 꼽은 이춘재의 구체적인 범행 상황에 대한 자백과는 다른 부분이 많다. 피의자신문조서에는 윤씨가 박양이 입고 있던 속옷 하의를 무릎 정도까지 내린 상태에서 범행하고 그대로 다시 입혔다고 적혀있지만, 이춘재는 박 양이 입고 있던 속옷을 완전히 벗기고 범행한 뒤 이 속옷으로 현장에 남은 혈흔 등을 닦고 새 속옷을 뒤집어 입혀놓고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자백했다. 중학생이던 박양이 애초 속옷을 뒤집어 입은 채 잠을 자고 있었을 가능성이 적다는 점을 고려하면 진술의 신빙성은 이춘재의 것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이밖에 박양의 집과 방에 침입하는 과정, 방 안 모습 등에 대해 묘사한 부분이 차이가 나는데 경찰은 남아있는 수사기록 등을 토대로 이춘재의 자백이 과거 윤씨의 자백보다 실제 현장상황과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윤씨 측 박준영 변호사는 윤씨의 조서 내용이 이처럼 현장 상황과 다르게 기재된 이유는 현장 상황을 잘 모르는 경찰이 준 정보대로 윤씨가 진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박 변호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서상의 윤씨 진술은 경찰이 사건 관련 정보를 담아 만든 것인데,조서를 작성한 경찰이 사건에 대한 정보를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모순이 생긴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윤씨가 자필로 작성한 진술서를 본 뒤에 이 조서들을 보면 윤씨가 조서에 담긴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풍부한 진술을 일목요연하게 했을 리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당시 경찰은 참 무서운 수사를 했다”고 덧붙였다. 화성 8차사건’은 1988년 9월 16일 경기 화성군 태안읍 진안리 집에서 박양이 성폭행당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범인으로 지목된 윤씨는 같은 해 10월 수원지법에서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대법원에서도 형이 확정돼 20년을 복역한 뒤 2009년 가석방 됐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의 피의자로 특정한 이춘재가 8차사건을 포함한 10건의 화성사건과 다른 4건 등 모두 14건의 살인을 자백하자, 윤씨가 지난 13일 억울함을 주장하며 수원지원에 재심을 청구한 상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유세미의 인생수업]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유세미의 인생수업]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야구는 9회 말, 축구는 전후반 다 끝나고 추가 시간이 하이라이트다. 홈런이 터지든 느닷없이 차 넣은 공이 골문을 가르든 드라마는 거기서부터 시작이고 완성인 법. 인생도 비슷하면 오죽 좋은가. 그러나 그런 막판 역전극은 로또 당첨 확률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기운이 쭉 빠진다.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없어. 요즘 애들 말마따나 노답이야.” 숙명씨는 오늘도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며 땅이 꺼지나 내가 꺼지나 내기 중이다. 올해 초 야심차게 문 열었던 매장을 정리한다. 말이 정리지 백기투항이라는 쪽에 훨씬 가깝다. 장사가 이렇게까지 안 될 줄 몰랐다. 한참 인기 있는 흑설탕 아이템이라 모든 인맥을 동원해 먼저 줄 선 예비 사장들을 젖히고 오픈한 가맹점이었다. 그러나 빛 좋은 개살구는 꼭 이때를 위해 생겨난 표현이 아닌가. 권리금에 임대료, 초기 오픈 비용을 모두 따지면 주말에만 북새통 이루는 매출로는 어림없는 노릇이었음을 왜 진작 몰랐을까. 눈에 콩깍지가 쓰이고, 내 발등 내가 찍은 꼴이다. 숙명씨는 오늘도 가슴을 치며 인생에 가장 만만한 친구 J에게 한탄을 늘어놓는다. 그녀가 일을 시작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연년생 애들 살뜰히 건사하고 손끝 맵게 살림하던 숙명씨가 생활전선에 투입된 것은 온전히 남편 문제 때문이었다. 저런 아들이면 열도 키운다는 시어머니 자부심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남편은 큰소리 한 번 내지 않는 온순한 사람이다. 크게 잘못하는 일도, 반대로 뜨겁게 열정 내는 일도 없이 무덤덤한 그와의 결혼 생활은 그저 미지근한 물에 몸을 담그고 꾸벅꾸벅 조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성격만큼이나 조용하게 주식 사고를 치는 바람에 달랑 하나 있던 아파트가 느닷없이 날아갔다. ‘내 아들 구박 못 하게’라는 이유를 들어 시어머니가 두고두고 유세 부리며 사준 아파트로 들어간 날 그녀는 처음으로 경제 독립을 선언했다. 그 아파트로 대출을 받아 동네에서 화장품 매장을 시작한 것이다. 경험 없이 시작했지만 운 좋게 승승장구, 다음 단계로 사업 확장 욕심을 부린 그녀는 그만 유행하는 음료 프랜차이즈에 덜컥 발목이 잡혔다. 결국 몇 년 야무지게 번 돈을 단지 일 년 만에 동전 하나까지 탁탁 털어버린 꼴이 됐다. 더 기가 찬 것은 만년 부장인 남편이 타이밍도 절묘하게 퇴직하며 얼마 남지도 않은 퇴직금을 그녀에게 쥐여 줬다. “아등바등 애쓰고 사는 게 전부가 아닌가 보다.” 그녀의 그치지 않는 푸념에 지치지 않고 응수하던 J가 “그걸 이제 알았냐?”며 입을 뗀다. “실패도 경험이고 재산이지.” “그런 재산이라면 노땡큐다.” “어떻게 사람이 실패도 한 번 없이 살까.” “남편 덕에 손에 물 한 방울 적시지 않는 여자들은 실패할 기회도 없지 않더냐.” “겉으로 보기에 그렇지, 속사정은 누가 다를까.” “득도했구나. 아주 공중부양하거라.” 남편은 도를 닦는지 종일 방에 들어앉거나 산으로 배회한다. 하나뿐인 딸은 몇 달 후 대학 졸업인데 입사 지원하는 회사마다 낙방의 고배를 마신다. 불땀 나게 몇 년을 뛰었지만 내려다보니 다시 빈손이다. 하지만 숙명씨는 다시 일어설 궁리를 시작한다. 당장은 우산 뒤집히는 비바람 속이더라도 언젠가 폭풍우는 잦아들기 때문이다. 한창 일할 나이에 은퇴하고 허망해하는 남편과 취직이 안 된다 사회를 향해 삿대질하는 딸을 다시 일으킬 사람도 그녀뿐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일어설 기회는 또 있다. 그 확률을 몇 만분의 일이라 생각하면 미리부터 쫄보가 된다. 그러나 되거나 안 되거나 둘 중 하나, 어차피 확률이 반반이라 생각하면 사는 게, 다시 해 보는 게 훨씬 만만해진다. 인생이 빡세긴 하지만 그런 묘미가 있다. 물론 그 반반 확률 중에 되는 쪽에 걸어 본다. 그녀의 이름처럼 무조건 되는 쪽이 숙명이라 믿으며.
  • 외할머니 무참히 살해한 손녀 징역 25년형 선고 받아

    외할머니 무참히 살해한 손녀 징역 25년형 선고 받아

    외할머니를 흉기로 살해한 20대 손녀가 중형을 선고받았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제1형사부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20)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고 12일 밝혔다. A씨는 부모가 외출한 사이 군포시 자신의 집에 온 외할머니를 흉기로 수십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해 대학에 입학한 A씨는 재학 당시 성희롱으로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학기를 마치고 자퇴했다. 이후 취업준비로 심한 압박감을 받아오던 A씨는 이른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접하고 살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관련 내용을 검색하고 외할머니를 범행 대상으로 정해 흉기와 목장갑을 준비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범행 후 A씨는 방에 있는 거울에 립스틱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려 했다’는 내용의 글을 써놓고 집을 나가 길거리를 배회하다 귀가한 부모의 신고로 경찰에게 붙잡혔다. 재판에 넘겨진 A 씨는 당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상태였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조현성 성격장애, 조기 정신증 등의 증상이 의심된다”면서도 “피고인은 사전에 범행도구를 미리 구입하고, 피해자가 잠을 자러 들어가는 것을 기다렸다가 범행한 점을 미뤄보면 피고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설명했다. 또 패륜적이고 반사회적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에게 중형을 선고함이 마땅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