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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갈비 이르면 이번주 국내 상륙

    새로운 한국 수출용 품질평가시스템(Q SA)에 맞춰 가공된 ‘LA갈비’ 등 미국산 쇠고기가 빠르면 이번 주말을 전후해 국내에 들어올 전망이다. 14일 육류수입업계에 따르면 일부 수입업체들은 시장 선점 차원에서 배편에 앞서 항공기 편으로 미국산 ‘뼈 붙은 쇠고기’를 수입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미국산 ‘LA갈비’의 국내 반입은 2003년 12월 이후 4년7개월 만이다. 수입업체 ‘네르프’사 관계자는 “이번 주 중 미국 수출업체 ‘크릭스톤 팜스’와 계약해 미국산 ‘LA갈비’ 2t 안팎을 항공기에 실어 수입할 계획”이라면서 “배편으로 대량 수입되는 물량은 내달 중순 이후 도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천국이 있다면 이곳, 뉴 칼레도니아죠”

    “천국이 있다면 이곳, 뉴 칼레도니아죠”

    “피지, 타히티 등 남태평양의 섬들은 모두 가봤지만, 이곳처럼 아름다운 곳은 없었어요.” 천국을 좇아 뉴 칼레도니아를 찾은 사람이 있다. 누메아에서 청백투어란 여행사를 운영하고 있는 우승천(47)씨가 주인공. 국적은 일본이지만, 절반은 한국인이다. “도쿄에서 살다가 스쿠버다이빙을 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어요. 바쁘게 살던 일본으로 돌아가기 싫어 눌러앉았는데, 벌써 24년이나 흘렀네요.” 천국을 찾아온 그의 과거는 그러나 지옥과 같은 고통스러운 나날로 점철돼 있었다. “일본군이었던 할아버지는 2차대전 와중에 중국에서 할머니와 결혼해 어머니를 낳으셨어요. 일본 패망 후 고국으로 돌아가는 배편에 오른 조부모께서는 일본에 돌아간다 해도 살아갈 길이 막막하자, 중간 기착지인 전남 목포에 무작정 내리셨어요. 그리고는 생면부지의 한국인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떠나셨지요. 언젠가 꼭 찾아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요.” 어른이 된 어머니는 한국인 선생과 결혼을 했고, 우 사장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일본 내 한국인학교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일본으로 떠난다. 하지만 생활은 여전히 궁핍해 그만 홀로 다른 집안의 양자로 들어가야 하는 아픔을 겪는다. 그에게 천국을 찾았냐고 물었다. 그는 1960년대 일본 여류 소설가 모리무라 가쓰라(森村桂)의 작품 ‘천국에서 가장 가까운 섬’의 내용을 빌려 완곡하게 자신의 심정을 표현했다.“어릴 적 아빠에게 들어온 남국의 한 섬에 대한 이야기가 소녀의 뇌리에서 떠날 줄을 몰랐죠.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어른이 된 소녀는 우연히 광고간판에서 뉴 칼레도니아란 이름을 보고 혹시 아빠가 말한 천국이 이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섬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소녀는 자신이 원하던 곳은 아니었지만, 아빠가 말한 천국이 이곳이었구나 생각하고 섬을 떠나죠. 전 이 섬을 떠나지 않을 거지만요.”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6) 남한산성과 강화도

    [병자호란 다시 읽기] (76) 남한산성과 강화도

    남한산성은 천험(天險)의 요새였다. 성곽의 가장 높은 누대에서는 도성과 살곶이(箭串場)가 한눈에 들어왔다. 더욱이 인조가 들어갔던 무렵은 눈보라가 몰아치고 기온이 몹시 떨어져 성으로 오르는 길이 온통 얼어 붙었다. 청군의 선봉이 제 아무리 ‘강철 같은 기마대(鐵騎)’였다고 할지라도 어찌 할 수 없는 험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방어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황망한 와중에 갑작스레 들어온 터라 수비할 군병도, 그들을 먹일 군량도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고립된 성 위험” 강화도행 주장 나와 일부 신료들이 남한산성에 들어오자마자 강화도로 가자고 주장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산성을 사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았다. 특히 김류와 이식(李植)이 날카롭게 대립했다. 김류는 고립된 성에 계속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유로 강화도 행을 강조했고, 이식은 오히려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면 적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의견 대립은 서로에 대한 인신 공격으로까지 이어졌다. 이식이 먼저 “김류는 문재(文才)로 발신한 사람이라 일을 도모하는 것이 시원찮다.”며 자극했다. 김류는 발끈했다.“이식은 서생(書生)이라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다.”며 맞받아 쳤다. 강화도로 들어갈 시간적 여유를 앗아가 버린 장수들을 원망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장령(掌令) 이후원(李厚源)은 도원수 김자점을 군율로 처단하라고 요구했다. 그가 적과 접전 한 번 제대로 시도하지 않고, 보고조차 소홀히 하는 바람에 적이 서울로 직행할 수 있었다고 비난했다. 사헌부 신료들은 적을 막는데 실패한 부원수 신경원(申景瑗), 평안병사 유림(柳琳),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 등과 도원수 김자점을 싸잡아 비난했다. 하지만 인조는 김자점 등을 군율로 다스리라는 요구를 거부했다. 전쟁이 터지기 전, 적과의 싸움을 회피하는 장수는 엄벌하겠다던 엄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도성을 겨우 빠져 나와 어렵사리 산성으로 들어 왔던 후유증 때문인지 인조는 몹시 지쳐 있었다. 인조는 김류 등의 강청에 못 이겨 15일 새벽, 강화도로 가기 위해 산성을 나섰다가 발뒤꿈치에 동상까지 걸렸다. 수행하던 신료들은 부랴부랴 인조를 털방석으로 감싼 채 남문을 통해 성으로 돌아왔다. 인조는 남문에서 교자를 타고 행궁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인조가 동상이 걸린 이후, 강화도로 가자는 주장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하지만 고립된 산성에 대한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일부 신료들은 세자라도 강화도로 보내야 한다고 했고, 일부는 강화도 대신 남쪽으로 내려가자고 주장했다. 채유후(蔡裕後)는 국가의 회복은 오로지 영남과 호남에 달려 있다며 동궁(東宮)을 양남으로 보내라고 촉구했다. 동궁이 내려가면 군사를 모으는 것은 물론 사대부들의 민심을 얻을 수 있다며 호남으로 가는 것이 상책, 영남으로 가는 것이 중책, 강화도로 가는 것이 하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인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청군의 의도를 오판하다 최명길이 마부대를 만난 뒤 올린 장계가 산성에 도착하자 조정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앞서 언급했듯이 마부대는 최명길에게 자신들이 깊숙이 들어온 이유를 조선과 화친을 다시 맺기 위해서라고 말한 바 있다. 김류는 최명길의 장계를 토대로 상황이 정묘호란 당시와 비슷하고 ‘청군의 의도는 서약을 다시 맺는데 있는 것 같다.’며 낙관론을 폈다. 김신국(金藎國)은 “그들 뒤에 후군(後軍)이 없는 것으로 보아 오로지 화친에 뜻을 두고 있는 것 같다.”며 김류의 의견에 동조했다. 마치 화약을 맺기 위해 선봉대만 내려온 것처럼 가장하려 했던 마부대의 기만책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인조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최명길이 마부대에 속은 것 같다며 김류 등의 낙관론에 대해 찜찜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주변에서 ‘화친’을 운운하자 청군의 사자(使者)가 올 경우, 그들을 산성 안으로 들일지의 여부를 물었다. 사자 이야기가 나오자 이경증(李景曾)은 “청사(請使) 접대에 필요한 소는 구할 수 있는데 술을 구할 수 없어 고민”이라며 그들과의 화친을 아예 기정사실로 여기는 발언을 했다. 청군의 침략 의도와 관련하여 이성구(李聖求)만이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명을 공격하려는 홍타이지의 의도가 바뀌지 않았다면 청군이 평양 이남까지 내려올 이유가 없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1636년 12월15일 저녁, 청군의 사자가 산성 근처에 나타났다. 분위기가 바뀌었다. 적이 코앞에 와 있다는 현실을 비로소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김류는 인조에게 강화도로 피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했다. 이성구도, 신료들을 산성에 두고 대장 10여인을 거느리고 빠져 나가면 남양(南陽)에서 배를 탈 수 있다고 인조에게 강화도로 가라고 채근했다. 인조의 표정은 어두웠다.“경들은 모두 어진 사대부들인데 국사가 이 지경에 이르니 개탄스럽다.”며 탄식을 내뱉었다. 잠시 후 신경진이 새로운 정보를 들고 나타났다. 청군이 이미 한강을 건너와 봉은사(奉恩寺) 근처에 진을 쳤다는 소식이었다. 인조는 갑자기 ‘국운이 이미 다했으니 치욕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올바르게 죽고 싶다.’며 결연한 자세를 보였다. 어느 순간 강화도로 가자는 논의는 다시 가라앉고 있었다. ●김경징의 ‘멸공봉사(滅公奉私)’ 신료들 가운데는, 영의정이자 도체찰사(都體察使)인 김류가 산성으로 들어온 이후에도 강화도 행을 계속 고집하는 것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자들이 적지 않았다. 실제 12월15일, 사간 김홍욱(金弘郁), 주서 이도장(李道長) 등은 ‘김류는 가족들이 모두 강화도에 있기 때문에 대가를 옮기자고 청하는 것’이라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2월13일, 강화도를 책임질 검찰사(檢察使)로 김류의 아들 김경징(金慶徵)이 추천되었을 때 인조는 김류에게 의견을 물었다. 김류는 자신의 아들이 직책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인조는 김경징을 검찰사로 임명했다.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인조는 인조반정의 원훈(元勳)이자 영의정인 김류의 말을 신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조의 이 결정은 엄청난 비극의 씨앗이 되고 말았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무렵, 도성 안팎의 모든 사람들은 강화도로 들어가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고 여겼다. 당시 강화도로 가려면 양화진 등지에서 배를 타고 김포까지 간 다음 다시 배를 타고 갑곶 등지로 상륙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강이 얼어 있던 상황에서 배를 이용하여 김포로 가는 것은 여의치 않았다. 자연히 육로를 통해 김포로 피난민들이 몰려들었다. 문제는 이들을 강화도로 실어 나를 배편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김경징은 검찰사로서 배를 차출하고 그 배에 누구를 먼저 태울 것인지를 결정하는 권한을 거머쥐었다. 당시 상황에서는 그것이 생사여탈권이나 마찬가지였다. 김경징은 도성을 출발할 때부터 철저히 ‘멸공봉사(滅公奉私)’의 자세를 보임으로써 인조의 기대를 저버렸다. 그는 자신의 모친과 처를 옥교(屋轎)에 태우고 집안의 재물을 운반하기 위해 인부들을 동원했다.‘양구기사(陽九記事)’등에는 김경징 집안의 가솔과 50개나 되는 재물 궤짝을 운반하기 위해 경기도의 마부들이 거의 모두 동원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김경징은, 말을 타고 가던 자기 집안의 비녀(婢女)가 말에서 떨어지자 노상에서 마부에게 매타작을 퍼부었다. 강화도로 가는 배에도 당연히 가족들을 비롯하여 자신과 친한 사람들을 먼저 태웠다. 왕세자빈조차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루에서 대기해야만 했다. 하물며 일반 사족이나 백성들은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려야 했다. 김경징은 강화도의 방어와 그 섬으로 들어간 왕실 인척들의 안위를 책임질 그릇이 아니었다. 만몽한(滿蒙漢)의 정예들을 끌어 모아 침략해 온 청군 앞에서 국가의 안위를 책임졌던 당국자들 가운데는 김자점이나 김경징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비극이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보령, 여객선 감축운항 논란

    “기름유출 사고로 줄었던 관광객이 늘어나기 시작하는데 무슨 여객선 운항 감축이냐.”(섬 주민들) “기름값이 지난해보다 두배나 올라 매일 적자를 보고 있어 불가피하다.”(여객선사) 충남 보령시 육지와 섬을 오가는 여객선 감축운항 계획이 추진되자 섬지역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12일 신한해운과 섬 주민들에 따르면 오는 16일부터 대천항에서 ▲삽시도∼장고도∼고대도 ▲안면도∼원산도∼효자도 ▲호도∼녹도∼외연도를 오가는 3개 노선의 여객선 운항을 2∼5회에서 1∼3회로 줄일 계획이다. 회사 관계자는 “기름값이 지난해에 비해 두배 오른 반면 손님은 20∼30% 줄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 ℓ당 499원이던 면세유가 991원으로 올라 하루 200만원 들던 3개 노선의 운항비용이 400만원 가까이 돼 적자가 커지고 있으나 이용자는 100명이 채 안 된다는 것이다.하지만 섬 주민들은 불편과 함께 관광객 유치에도 어려움이 많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원산도 주민 박윤규(53)씨는 “주말 관광객 수는 예년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배편이 불편하면 다시 안올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박씨는 “6000여명의 보령시 오천면 주민 가운데 3700명 이상이 섬에 사는데 주요 교통수단인 여객선을 줄이는 것도 문제”라고 비난했다. 회사측은 본격적인 피서철에는 운항횟수를 다시 복원시키겠다고 밝히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피서철이 끝나면 횟수를 또 줄여야 하는데 기름값이 그대로이고 지자체 보조가 없으면 요금인상 등이 뒤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들은 “기름사고로 지역경제가 침체된 마당에 여객선사 측이 이득만 취하려고 한다.”면서 감축운항을 강행하면 여객선의 섬 접안 및 피서철 증편 등의 저지에 나서겠다고 밝혔다.보령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현지인과 일하며 이국의 낭만도 함께”

    “현지인과 일하며 이국의 낭만도 함께”

    여름방학을 앞두고 현지에서 일하며 여행도 할 수 있는 ‘워킹 홀리데이’가 대학생은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을 끌고 있다.‘워홀’을 계획하고 있는 이들을 위해 서호주 퍼스(Perth)에서 ‘워홀러’로 지내고 있는 최영준씨의 생활기를 소개한다. 호재야, 잘 지내고 있니? 퍼스로 워홀을 온다는 너의 이메일을 접하고 무척이나 반가웠다. 예전 대학시절엔 유럽 배낭여행이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생각됐었는데, 이제는 워홀이 그 자리를 채운 것 같다. 호주에서 ‘워홀러’를 체험하고 있는 선배입장에서 몇 가지 조언을 해주려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워홀을 떠나는 목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거야. 내 경우 영어실력은 부족하지만, 성실하고 유쾌하게 일하자는 마음가짐으로 일했더니 외국 동료들과 더 친해지더라. 이런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얻었다는 것이 가장 큰 수확이었어. 호주로 워홀을 떠났을 때 처음엔 동부쪽에 정착했어. 이곳저곳 여행하다 퍼스에 도착했는데, 온화한 날씨와 분위기 있는 도시 풍경, 서호주인들의 여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은 진정한 호주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줬어. 게다가 일자리 여건도 다른 도시에 비해 너무 훌륭했다. 서호주에 있는 동안 일식당에서 근무했는데, 호주 동부 지역의 한식당에서 일하는 친구에 비해 시간당 4달러 정도 더 수입이 많았어. 덕분에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지. 저축도 할 수 있었어. 내 경우엔 그 돈으로 친구와 함께 중고차를 사서 서호주 남부를 여행하기도 했단다. 퍼스로 떠나기 전 열심히 정보를 모으고 있겠지?인터넷 온라인 카페에서는 전, 현직 워홀러들이 올리는 다양한 정보들을 찾아볼 수 있을 거야. 뿐만 아니라 서호주정부에서도 한국인 워홀러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해. 정부 차원에서 이들을 위한 프로모션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 현재 서호주는 광산업 덕에 전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어. 그런데 대다수 인력이 광산업에 몰리다 보니 관광업계는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해. 너도 알다시피 한국 사람들이 성실하고 쾌활하잖아. 서호주 내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 리조트 등의 관광업계에서 인력난을 해소할 대체 인력으로 한국인 워홀러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하는군. 서호주관광청에서 배포하는 워홀 안내서에 준비사항과 일자리를 소개하는 주요 사이트, 한국인 워홀러들을 반기는 업체들의 연락처를 알 수 있어. 구인사이트 담당자에게 이메일로 이력서를 보내거나, 혹은 나처럼 직접 이력서를 들고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아는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 호주에 가서 첫날밤을 어디서 보내야 하나 걱정이 많겠지? 내 경우 처음 퍼스에 도착해서는 백패커(여행자 숙소)에 이틀 정도 묵으면서 살 집을 구했어. 백패커는 도시마다 많이 있어.backpackers.com 등 인터넷 사이트에 가면 다양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단다. 백패커에 머무는 동안 한국인 상점에 가서 하우스메이트를 구하는 광고를 찾아 보면 어렵지 않게 숙소를 구할 수 있을 거야. 외국 친구들과 함께 살고 싶다면 시내 여행사의 알림판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는 취업을 통해 돈을 벌게 하려는 목적보다, 호주 곳곳을 여행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이 보다 쉽게 여행경비를 마련할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의 프로그램이야. 너도 1년간 호주에서의 취업에만 신경쓰기보다,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함으로써 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로 생각하길 바란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는 서호주 남부쪽을 여행했어. 그 중 로트네스트 섬(Rottnest Island) 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크리스마스 때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놀러가서 바비큐 파티를 즐긴 곳이거든. 퍼스에서 배편으로 30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퍼스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야. 멋진 풍경 속에서 즐거운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아. 아쉬운 점은 서호주 북부를 여행하지 못했다는 것. 인도양이 시작되는 브룸을 비롯해 불과 20여년 전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 벙글벙글레인지(Bungle Bungle Range), 그리고 여러 국립공원을 둘러보며 하이킹과 캠핑을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쉬워. 협곡에서 마음껏 수영을 즐기다가 밤에는 모닥불에 마시멜로를 구워먹었던 경험담을 많이 들어서 언젠가는 꼭 가보고 싶은 곳들이야. 제아무리 한국에서 철저히 준비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어. 직접 호주에서 부딪치다 보면 좌절할 때도 있고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고생도 하겠지. 하지만 네 현실을 직시하고 너의 강점을 발견하는 유익한 일년이 되길 바라.‘난 영어가 부족해서 안 돼.’란 생각보다는 ‘영어는 부족하지만 성실하고 성격이 좋지.’라는 긍정적인 방식으로 너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했으면 해. 1년 후 부쩍 성장하게 될 호재를 기대하며…. 서호주에서 최영준 ■ 서호주 워킹홀리데이 이렇게 호주는 한국과 ‘워홀’ 협정을 맺고 있는 국가 중 유일하게 인원제한 없이 연중 비자를 발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부동의 1위였던 영국을 제치고 호주 워홀 비자 발급 최대국가로 부상했습니다. 만 18∼30세의 부양가족이 없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서호주는 현재 최고의 경제성장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서호주에서 일할 경우 시간당 임금이 13∼16달러 정도로 다른 주에 비해 월등히 높습니다. 지중해성 기후로 연중 따뜻한 날씨는 가벼운 옷이 필수인 워홀러들에겐 중요한 요소겠지요? 서호주관광청에서는 호텔 인력 담당자 연락처 등 실제 정보가 수록된 휴대용 안내서 국문판을 배포중입니다. 이메일(korea@westernaustralia.com)로 신청하면 됩니다. 워홀 한국어 웹사이트도 곧 오픈할 예정입니다.6월6∼22일 서울 홍익대앞 상상마당에서는 서호주 사진전이 열립니다. 놓치지 마시길….(02)6351-5156. 서호주정부관광청 한국 대표사무소 김연경 이사
  • 필리핀 보홀섬 보석처럼 빛나다

    필리핀 보홀섬 보석처럼 빛나다

    스페인의 탐험가 마젤란이 처음 발을 디뎠다는 필리핀 제2의 도시 세부를 출항한 배가 하늘빛을 훔쳐 풀어 놓은 듯한 잉크빛 바닷물을 가르며 달려간다. 필리핀을 구성하고 있는 7107개의 섬 가운데 ‘숨겨진 보석´이라는 보홀섬을 찾아가는 길이다. 필리핀에서 열 번째로 큰 섬. 원주민들이 싣고 가는 닭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뱃전에서 꾸벅꾸벅 졸던 여행자 머리 위로 몽실몽실 꿈이 피어난다. 산호초 바다 위를 두둥실 떠다니며 한없는 자유를 만끽하는 그런 꿈이다. 느닷없이 솟아오른 돌고래가 튀긴 바닷물에 눈을 떠보니 닭 울음소리만 요란하다. # 돌고래의 고향 파밀라칸 타그빌라란 항구에 내려서자 열대지방 특유의 풍경이 여행자를 반긴다. 도시 곳곳에서 운동회라도 열리는 듯 삼각형 깃발들이 펄럭인다. 홈커밍 시즌을 알리는 깃발이다. 우리네 명절처럼 가족들이 모일 기회가 없는 필리핀 섬주민들은 5월1일∼6월 초 외지에 나갔던 사람들이 고향을 방문하는 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돌고래가 살고 있다는 파밀라칸섬까지는 보홀섬에 내려 연륙교로 팡라오섬까지 간 다음, 원주민 배를 얻어 타고 40분가량 더 들어가야 한다. 참치, 오징어 등 좋아하는 먹이가 많아 스핀 돌고래 등 11종의 돌고래가 아예 이 부근 해역을 집 삼아 살아간다.3∼6월 사이엔 간혹 거대한 고래가 출몰하기도 한다. 돌고래는 취식 시간인 아침 6∼8시 사이에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멀리 파밀라칸섬의 야자수가 흐릿하게 보일 때쯤 돌고래 무리가 보이기 시작했다.30∼40마리는 족히 넘어 보인다. 녀석들은 물 위로 나오는 순간 “푸우∼” 하며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내쉬었다. 배고픈 소가 허겁지겁 여물을 먹으며 내뿜는 가쁜 숨소리를 닮았다. 귀찮다는 듯 슬금슬금 배를 피하는 어른 돌고래와 달리, 어린 녀석들은 신이 났다. 경주하자는 듯 배 옆쪽으로 바짝 달라붙어 달리는데, 절대 배에 뒤지는 법이 없다. 수면 바로 아래를 빠른 속도로 유영하다, 어느 순간 꼬리지느러미를 힘차게 흔들며 대기중으로 솟구쳐 오른다. 자유를 만끽하는 듯도 하고, 자신이 속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의 몸짓으로도 보인다. 영화 속 ‘프리 윌리´처럼 환상적인 점프는 아니었지만,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서 야생을 느낀다는 것은 이방인에겐 짜르르한 감동이었다. 파밀라칸 인근 어류보호지역에서 즐기는 스노클링도 각별한 재미다. 연한 연둣빛 바다에서 놀고 있는 강렬한 원색의 작은 물고기들과 만날 수 있다. 간간이 만화영화 ‘니모를 찾아서´의 주인공 흰동가리의 모습도 눈에 띈다. 잠수가 목적이라면 성에 차지 않겠지만, 처음 스노클링에 도전한 사람이라면 그 작고 앙증맞은 것들의 유희에 넋을 놓게 된다. # 작고 앙증맞은 맹수-타르시어 원숭이 보홀섬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야생 동물이 타르시어 원숭이다. 원주민들은 ‘마오막´이라고 부른다. 우리에겐 안경원숭이란 이름이 더 친숙하다. 몸길이가 13㎝에 불과한 데다 눈 하나가 머리 전체 크기보다 커 붙은 별명이다. 원주민들이 화전을 일구기 위해 서식지를 파괴한 데다, 사람들이 키우는 집고양이들에게 잡아먹히는 등 수난을 겪다 현재 1000여마리 정도가 보호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수명은 20년 정도.11∼3월 사이 짝짓기를 한 다음,6개월 임신기간을 거쳐 한 마리의 새끼만 낳는다. 인위적으로 서식지를 옮기면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리는 탓에 보홀섬 일부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 ‘타르시어´란 이름은 뒷다리에 붙은 ‘타르살´이란 작은 뼈에서 비롯됐다. 메뚜기 뒷다리를 닮은 이 뼈 덕에 녀석은 자기 체구보다 몇 배 높이 뛰어올라 메뚜기, 나비 등 곤충들을 사냥할 수 있는 것. 사냥꾼으로서 갖춰야 할 요건들은 빠짐없이 갖췄다. 포식자와 피식자의 구분은 눈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피식자의 경우 대부분 눈이 머리 양쪽에 붙어 있다. 사방에서 들이닥치는 천적들을 살피기 위해서다. 포식자의 눈은 이와 반대. 일렬로 나란하다. 피식자의 움직임에만 주목하기 위해서다. 선해 보이는 녀석의 눈 또한 마찬가지. 직선으로만 보는 단점은 유연한 목이 뒷받침해 준다. 좌우 180도, 모든 방향으로 목을 돌릴 수 있다. # 전설 품고 명소로 거듭난 초콜릿힐 보홀 지역을 소개하는 책자에는 거의 예외없이 맨 앞장에 등장하는 명소가 초콜릿힐이다. 우리나라 경주의 고분군 모양을 한 언덕들이 보홀섬 중앙 대평원을 에워싼 채 수없이 솟아나 있다. 그 수가 무려 1268개에 달한다는데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다. 건기(12∼5월)가 되면 녹색의 풀이 짙은 갈색으로 변한다. 그 모습이 ‘키세스 초콜릿´을 닮았다 해서 ‘초콜릿힐´이라고 부른다. 거인 ‘아로고´에 잡혀온 ‘알로야´라는 여인의 눈물이라는 전설도 전해져 온다. 현지 관계자는 고대 산호초 퇴적물이 융기와 부식, 풍화작용을 거쳐 생성됐다고 전했다. 가장 규모가 큰 해발 550m짜리 언덕 위에 전망대를 마련해 뒀다.214개의 계단을 따라 정상에 오르면 사방으로 초콜릿힐이 펼쳐진다. 정상 가운데 종을 울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 그 밖의 관광명소 초콜릿힐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로복강은 ‘보홀의 아마존´으로 불린다. 많은 주민들이 이 강에 기대어 살아간다. 총길이는 21㎞. 로복강 선상투어는 로아이대교 선착장부터 3㎞ 구간에서 이뤄진다. 배가 원시림을 지나는 동안 밴드 공연을 들으며 느긋하게 식사할 수 있다. 단, 맛은 기대하지 마시라. 이밖에 필리핀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 교회건물 중 하나인 바클레욘 성당, 거대한 마호가니 숲인 맨메이드 포레스트, 스페인 총독과 보홀 족장이 피를 나눠 마셨다는 혈맹기념비 등이 있다. 글·사진 보홀(필리핀)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 : 필리핀항공이 인천공항에서 세부까지 수·목·토·일요일 주 4회 운항(4시간)한다. 세부에서 보홀까지는 페리(1시간40분 소요)를 이용한다.2등석 400페소. 시설이용료 20페소. ▶현지 교통 : 지프니와 오토바이를 개조한 트라이시클, 택시 등이 있다. 지프니는 기본 6페소, 거리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트라이시클도 기본 6페소,1㎞마다 1페소를 더 내야 한다. 대개 흥정을 통해 요금을 정한다. ▶비자 및 화폐 : 비자 없이 21일간 체류할 수 있다. 화폐는 페소. 원화에 20을 곱하면 계산이 편하다. 소액권을 많이 환전해 가야 여러모로 유용하다. 달러는 통용되지 않는 곳이 많다. ▶기후 : 평균 기온 27도로 후텁지근하다.6∼10월은 우기라 스콜이 내리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여행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쇼핑 : 보홀은 물가가 싸지만, 살 것이 많지 않다. 대부분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는 세부의 SM몰을 이용한다. ▶숙소 : 알로나 팜 비치, 팡라오 아일랜드, 에스카야 풀 빌라(이상 5성급), 보홀 비치 클럽, 플로싱 메도(이상 4성급), 아마렐라 부티크(3성급) 등이 있다. ▶여행상품 : 온필(www.onfill.com)은 마닐라·보홀 패키지 투어(마닐라-보홀 항공 포함)를 89만원(4일),96만원(5일)에 판매하고 있다. 왕복항공권, 호텔(조식 포함), 초콜릿힐, 안경원숭이 등이 포함된 보홀 데이투어와 파밀라칸 돌고래 관람, 가이드 및 기사팁, 현지 공항세 등이 포함돼 있다. 세부를 경유해 보홀로 가는 패키지는 왕복 배편을 포함해 85만원부터. 보홀 지역에서만 운용하는 여행상품도 판매 중이다.1544-0008.
  • [한국의 대표기업] (18) 한진해운

    [한국의 대표기업] (18) 한진해운

    한진해운이 5대양 바닷길을 넓히고 있다. 한진해운이 연간 실어나르는 뱃짐은 무려 1억t이 넘는다.1950년 대한해운공사로 출범, 연안 물류 수송에 급급했던 회사가 지난해에는 컨테이너 수송량 기준으로 세계 8위 글로벌 해운 물류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진해운이 지난해 실어나른 컨테이너(362만TEU)를 한 줄로 세우면 얼마나 될까.2만 1743㎞에 이른다. 이는 경부고속도로(428㎞)를 25회 왕복한 거리와 같다. ●수송보국… 세계 8위 컨테이너 수송 한진해운의 본격적인 해상 운송은 1977년 한진해운이 설립되면서부터다. 때맞춰 불어닥친 산업화와 수출 물량 증가는 한진해운이 글로벌 해상운송업체로 성장하는 데 디딤돌이 됐다. 그래서 경영이념도 ‘수송보국(輸送報國)’으로 정했다. 하지만 창업 초기 배편이 형편없어 대규모 국제 해상 수송에 한계가 따랐다. 당시 보유한 선박이라곤 고작 컨테이너선 한진 정석호가 전부였다. 이 배로는 연간 5만t을 실어나르기도 벅찼다. 갈림길에 섰다. 이대로 안주하느냐, 아니면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투자를 확대하느냐 중대 기로에서 한진은 투자확대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먼저 대형 선박을 사들이는 데 집중 투자했다. 수송량도 점점 늘어났다. 동시에 세계 주요 항구에 물류 거점 기지를 세워 세계적인 해운업체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다. 한때 세계 4위 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하고 호황을 누렸다. 탄탄대로만 달린 것은 아니다.1997년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엄청난 시련을 안겨줬다. 업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적으로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정책에 어쩔 수 없이 어렵게 사들인 배를 20여척이나 팔아야 했다. 해운사에서 선박은 제조업체의 공장과 같은 존재다. 배를 파는 것은 생산 원동력인 공장을 처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한참 뻗어나갈 시기에 한진은 투자 의욕이 꺾였고, 그사이 세계 경쟁 해운업체들은 저만치 달아났다. ●투자 확대… 중대형 선박 210척 운영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다시 배를 사들이고 물류 거점 기지 확보에 나섰다. 버는 돈은 배를 구입하는 데 모두 쏟아부었을 정도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컨테이너선은 6000TEU이상 초대형 8척을 비롯해 모두 84척. 벌크선은 88척을 띄우고 있다. 단기간 사용하는 벌크선까지 더하면 운영 선박은 모두 210척에 이를 정도다. 가장 큰 배는 8000TEU급이다. 투자 확대는 운송 시장 점유율 제고로 이어졌다.1996년 연간 컨테이너 수송량 100만TEU를 기록한 지 불과 4년 만에 200만TEU를 돌파했다.2006년에는 300만TEU, 지난해에는 362만TEU를 실어나르는 기록을 세웠다. 올해는 컨테이너 화물 366만TEU, 벌크 운반 3700만t을 실어나를 계획이다. 특히 아시아에서 미주로 운송하는 컨테이너 화물 수송량 가운데 한진해운의 시장 점유율은 8.37%로 세계 3위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운송하는 컨테이너 화물 수송 시장 점유율도 5%로 세계 6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진해운은 수입의 90%를 3국간 영업으로 벌어들인다. 국내 소비 시장에 연연하는 기업이 아닌 글로벌 기업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수치다. 5대양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거미줄 영업망도 갖췄다. 해외지점 200여개와 현지 법인 30개는 글로벌 해운기업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한다. 컨테이너선은 35개 나라 90개 항구를 누빈다. 정기 항로만 60개에 이를 정도다. 벌크선은 정기적으로 호주·인도·캐나다 등을 오가며 석탄과 철광석 등을 실어나르고 있다. 포스코와 한전 등이 주요 고객이다. 카타르·인도네시아 등을 오가는 LNG선과 세계 각국을 오가며 원유와 LPG를 운송하는 탱커도 있다. ●글로벌 서비스 강화로 시장 확대 투자는 계속 이어진다. 대형 선박 구입과 물류기지 확충, 신규 항로 개척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특히 중국 시장의 선두주자다. 중국∼미주간 노선에 8000TEU급 컨테이너선 5척을 투입하고 항로를 확대했다. 아시아∼유럽간 항로도 늘리고 있다. 글로벌 해운 물류기지도 넓혀가고 있다. 아무리 뱃짐을 많이 확보해도 원활한 선·하적이 이뤄지지 않으면 서비스는 엉망이 돼버린다. 전용 터미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1986년 시애틀 전용 터미널 개장을 시작으로 롱비치, 오클랜드 등 미국 서안 3대 주요 물류기지에 전용 터미널을 확보했다. 롱비치 터미널은 46만평에 이를 정도다. 미국 동부 잭슨빌에도 전용 터미널을 건설 중이다. 일본 오사카, 도쿄 등 세계 주요 항만에도 전용 터미널을 갖췄다. 올 하반기 로테르담 전용 터미널을 개장하면 유럽 항만 물류 수송 서비스도 훨씬 나아진다. 전략적 제휴도 눈에 띈다.2001년부터 중국∼타이완∼일본∼독일의 내로라하는 해운업체를 끌어들여 ‘CKYHS’그룹을 주도적으로 결성했다. 그룹사인 대한항공이 ‘스카이팀’을 이끌고 있다면 한진해운은 CKYHS그룹으로 세계 물류 시장에서 당당히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 시장 물동량이 폭증할 즈음에 국제 동맹체를 결성해 중국∼미주 노선을 장악할 수 있었다. 장기 비전도 세웠다. 이원우 전무(기획·관리그룹장)는 14일 “새로 발주한 대형 선박을 인수하는 2011년에는 세계 7위 해운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2017년에는 보유 선박이 800척, 연간 매출액 25조원, 영업이익만 2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8000TEU급 보스턴호는 갑판넓이 상암축구장 2배·길이 300m 한진해운이 갖고 있는 8000TEU급 한진 보스턴호는 얼마나 큰 배일까. 컨테이너선 크기는 20피트 컨테이너를 얼마나 실을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한다.8000TEU급이라면 20피트 컨테이너 7500개를 실을 수 있는 배다. 컨테이너 1개 높이가 2.6m이므로 이 배에 실을 수 있는 컨테이너를 한 줄로 세우면 1만 9500m나 된다. 에베레스트산(8848m) 높이의 2배가 넘는다. 배 길이만 300m다. 배를 세운다면 남산(262m)보다 높다. 갑판 넓이만 서울 상암 월드컵 축구장 면적의 2배에 이를 정도로 큰 배다.20평 아파트를 1579가구를 지을 수 있는 면적이다. 이 배에 쌀을 싣는다면 서울시민이 한 달간 먹을 수 있는 양이다. 그렇다면 대형 선박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한진해운이 발주한 1만 3000TEU급 컨테이너선은 1억 6000만달러나 된다. 배 한 척을 구입하면 1600억원짜리 공장을 짓는 것과 같다.LNG선은 2000억원이 넘는다. 해운업체들이 대형 선박 투자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형 선박일수록 운송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장거리를 수송이 가능하다. 많은 짐을 싣고 떠나는 것이 연료 소비를 줄이고 화물 선적, 선원 고용 등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해운 연계 신규 사업은 3자 물류·배 수리·해외 터미널 운영 해운은 서비스업이다. 단순히 뱃짐만 많이 실어나른다고 일류 기업은 아니다. 빠르고 안전하고 정확한 수송이 해운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좌우한다. 한진해운이 해운 서비스 사업에 진출하는 것도 시너지 효과를 거두기 위한 포석이다. 대표적인 것이 3자 물류 사업과 수리 조선소 사업, 해외 터미널 운영 사업이다. 3자 물류 사업을 위해 2005년 중국∼미주간 시범 서비스를 시작으로 뉴욕, 상하이 및 선전에 물류 법인을 설립했다. 미주와 중국을 중심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는 자체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고객 서비스 능력을 높였다. 아시아와 유럽에 물류 법인을 추가 설립하고, 주요 거점에는 자체 법인을 설립해 영업을 활성화할 방침이다. 해운 업체와 밀접한 것이 배를 수리하는 사업이다. 선박은 2∼3년에 한번씩 점검을 받아야 한다. 한진해운은 중국의 순화해운과 합작으로 중국 저장성 취산도에 안벽 길이 1900m에 이르는 대규모 전용 선박 수리 조선소를 건설하고 있다. 올해 중으로 15만t급과 30만t급 도크가 각각 건설된다.40만t급 도크도 추가로 건설할 계획이다. 이쯤 되면 8000TEU급 이상의 대형 컨테이너 선박 수리도 가능해진다. 수리 조선소 건설로 자체 보유 선박의 안정적인 유지·보수가 가능해지고 다른 선사 선박 수리 물량을 확보해 수익 창출도 기대된다. 해외 터미널 운영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2006년부터 호주 매쿼리 은행의 인프라 펀드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타이완과 일본, 미국에서 전용 터미널 운영 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다. 벨기에 앤트워프항에 전용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12월에는 CKYH 얼라이언스 공동으로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전용 터미널을 만들고 있다. 베트남 물류사업에도 진출, 탄깡까이멥 컨테이너 터미널을 짓고 있다. 지난 2월에는 지중해 전략 거점인 알헤시라스 전용터미널 개발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Metro] 인천 팔미도 등대 8월 개방

    [Metro] 인천 팔미도 등대 8월 개방

    국내 최초의 등대가 세워진 인천 옹진군 팔미도가 오는 8월1일 개방된다.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은 4일 8억원을 들여 팔미도 등대 홍보관과 야외 문화공간을 갖춘 뒤 개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인천해양청은 이를 위해 ‘팔미도등대 해양 문화공간조성 방안’을 공모, 다음달 10∼11일 작품을 접수한 뒤 같은 달 16일 당선작을 선정한다. 팔미도로 가는 배편이 없어 월미도나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편도 1시간 코스의 유람선 운항을 추진하고 있다. 인천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5) 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조선후기 신지식인 한양의 中人들] (45) 세계일주 나선 역관들

    세계가 둥글다는 지식이 보편화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서양에서는 세계일주가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세계일주에 나선 귀족들이 많았으며, 누가 더 빨리 세계일주를 하는지 내기를 걸기도 했다. 그런 소재로 1870년대에 쓴 작품이 바로 쥘 베른이 쓴 동화 ‘80일간의 세계일주’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관들도 1880년대부터 세계일주 여행길에 올랐으며, 일기나 시집, 기행문 등의 작품을 남겼다. 세계 각국의 언어는 저마다 달라서 세계일주를 하려면 당연히 여러 명의 통역이 필요했다.1883년에 보빙사로 미국에 파견된 민영익은 변수(일본어), 고영철(중국어, 영어) 등의 통역과 퍼시벌 로웰(미국인), 우리탕(吳禮堂·중국인), 미야오카 쓰네지로(宮岡恒次郞·일본인) 등의 외국인 수행원들을 데려갔다.1896년에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참석한 그의 사촌아우 민영환은 김득련(중국어), 김도일(러시아어), 윤치호(영어)를 데려갔다. ●청계천 해당루에 모였던 역관들의 ‘육교시사´ 청계천 주변에 모여 살았던 역관들은 아들이 10여세가 되면 가정교사를 모셔 역과 시험준비를 시켰다. 역관 변진환(邊晋桓·1832∼?)은 광교 옆에 해당루(海棠樓)를 짓고 자기 아들 변정(邊 ·1861∼1892)과 조카 변위(邊·1857∼?)의 시험공부를 위해 위항시인 강위(姜瑋·1821∼1884)를 초청하였다. 원주 변씨는 대대로 역관으로 이름난 집안인데, 변진환은 1855년 역과에 합격한 뒤에 한학 역관으로 압물주부가 되어 많은 재산을 모았다. 강위는 평생 집 하나 없이 떠돌아다니던 시인인데, 가을 소리를 듣기 위해 상상 속에 집 하나를 세우고 자신의 호를 청추각(聽秋閣)이라 하였다. 그럴 정도로 마음은 언제나 넉넉한 시인이었다. 강위가 청계천 해당루에 입주해 역관 자제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자, 의원 변태환의 아들인 변위는 17세 되던 1873년 역과에 합격하고, 변정만 계속 공부하였다. 이 일대에는 변위의 위당서실을 비롯해 김석준의 홍약관, 김경수의 인재서옥, 박승혁의 용초시옥, 김한종의 긍농시옥, 황윤명의 춘파시옥, 이용백의 엽광교사 등이 잇달아 있어 자주 오가며 시를 지었는데, 강위의 시집 ‘육교연음집(六橋聯吟集)’의 제목을 따서 이들의 모임을 육교시사(六橋詩社)라고 부른다. 광교가 청계천에서 여섯 번째 다리이기 때문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 벼슬까지 했던 이원긍(李源兢)도 육교시사에 자주 드나들었는데, 양반이었던 그가 아들 이능화에게 영어, 중국어, 프랑스어 등을 배우게 하여 국학자로 활동하게 했던 것도 이 시절 역관들과 가깝게 지내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육교시사에는 역관들이 많아서 그들이 중국이나 일본에 갈 때마다 송별회가 열렸는데, 추사 문하의 동문인 김석준이 중국으로 갈 때에 강위가 홍약관에 찾아가 이런 시를 지어주며 전송하였다. 노당(김석준)은 천하의 선비라서 옛책을 탐독하여 갈고 닦았네. 젊은 나이부터 북학에 뜻을 두어 나라 바깥을 마음껏 달렸네.(줄임) 지난번 내가 다시 중국에 갈 때 처음으로 수레를 나란히 했었지. 나그넷길 밤 새워 이야기 듣노라고 몇 차례나 외로운 등불을 밝게 켰었지. 우리 함께 완당선생의 문하에서 나왔지만 그대 혼자 칭찬받을 만큼 뛰어났었지. 중국을 드나들면서 서양 제국의 침략 아래 신음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고 위기를 느낀 강위는 이제 청나라를 통해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자고 주장하는 북학파의 시대가 다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김옥균 등의 개화파와 어울렸으며,1880년에 수신사 김홍집이 일본에 갈 때에 김옥균의 소개로 따라갔다. 스승격인 강위까지 중국과 일본을 다 돌아보고 돌아오자 육교시사의 역관 동인들은 거의 모두 개화파가 되었다. ●서재필보다 2년 먼저 美 대학 졸업한 변수 강위는 중국에 두 차례, 일본에 세 차례 다녀왔는데, 벼슬이 없던 그는 언제나 비공식 수행원이라 친지들이 여비를 마련해 주었다. 김옥균이 1882년에 일본으로 가게 되자, 강위도 따라나서며 제자 변수에게 여비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변수(邊燧)는 호가 양석(養石)인데, 변정이 고친 이름이다. 변수는 스승과 함께 일본을 여행하게 된 것이 기뻐서, 변진환이 예전에 빌려 주었던 돈을 돌려 받으러 대구까지 내려갔다. 대구감영에 있던 채무자가 마침 서울로 올라가버린 바람에 빚을 받지 못하자, 다른 제자에게 융통해 부산까지 가서 김옥균 일행을 만났다. 강위는 이때 기록한 ‘속동유초(續東遊艸)’에서 “변수는 내가 그의 집에 머물면서 5년 동안이나 글을 가르쳤던 제자”라고 밝혔다. 김옥균 일행의 일본 방문은 3월 중순에서 8월 하순까지 다섯 달 걸렸다. 변수는 그동안 교토에 남아서 화학과 양잠 기술을 배우고 있었는데, 고국에서 임오군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중도에 급히 귀국하였다. 군란이 가라앉고 제물포조약이 체결되자 조정에서 다시 수신사를 일본에 보냈는데, 김옥균과 변수가 정사 박영효를 수행하고 갔다. 변수는 김옥균과 함께 도쿄에 남아서 차관교섭을 하였다. 1883년 7월에 보빙사 민영익이 최초의 사절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하게 되자 변수도 육교시사의 동인인 고영철과 함께 수행하게 되었다. 아더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하는 공식적인 일정이 10월 중에 끝나자, 변수는 민영익을 따라 유럽여행을 떠났다.12월 1일에 뉴욕에서 배편으로 떠난 이들은 그 이듬해인 1884년 5월에야 조선으로 돌아왔다. 갈 때에는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으니,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것이다. 일본과 미국을 돌아보며 견문을 넓힌 변수는 갑신정변의 주역으로 나서서 외국 공관과의 연락을 맡았는데, 삼일천하로 끝나게 되자 일본을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였다. 베어리츠 언어학교를 마친 뒤에 1887년 9월 메릴랜드주립농과대학에 입학하여,1891년 6월에 이학사 학위를 받았다. 최초의 미국 유학생은 보빙사의 수행원으로 함께 미국에 왔던 유길준인데, 그는 거버너 더머 아카데미(대학예비학교)에 다녔다. 그러나 갑신정변 때에 귀국했으므로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다. 변수는 컬럼비아의과대학(현 조지워싱턴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서재필보다 2년 앞선 최초의 대학 졸업생이다. 미국 농무성에 취직해 공무원까지 되었지만,4개월 만에 모교 앞에서 열차에 치여 죽었다. 개화의 의지를 펼쳐보지 못하고 32세에 세상을 떠난 것이 아쉽다. ●고씨 역관 4형제 중국어 역관 고진풍의 네 아들 고영주, 고영선, 고영희, 고영철이 모두 역과에 합격해 역관으로 활동하였다. 중국어 역관인 세 아들은 육교시사에 참여해 시를 지었고, 왜어에 합격한 고영희는 독립협회 발기인 14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참여하며 개화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다가, 일본세력을 등에 업고 법부대신이 되었다.1910년 이완용내각의 탁지부대신이 되어 한일합병조약에 서명하고 일본정부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다. 변수와 함께 첫 번째 세계일주를 한 사람은 넷째 아들인 고영철(高永喆)이다.1876년 한어 역과에 합격한 고영철은 1881년에 영선사 김윤식을 따라 중국 천진에 유학했는데,25명 가운데 7명이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수사국(水師局)에 있는 중서학당(中西學堂)에 입학시험을 치렀다.3명이 합격했지만 2명이 곧 자퇴하였고, 고영철만 끝까지 남아 열심히 공부했다.1883년에 보빙사를 파견하게 되자, 영어와 중국어에 능통한 그가 자연스럽게 수행원으로 합류했다. 한·미 교섭에서 주로 사용한 언어는 일본어였으므로, 미국인 로웰은 영어에 유창한 일본인 미야오카 쓰네지로를 개인 비서로 채용했다. 조선어를 일본어로 통역하면, 일본어를 다시 영어로 통역하는 식으로 의사를 소통했다. ●세계일주 시집을 일본에서 출판한 김득련 1896년에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한 민영환은 세계일주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 ‘해천추범(海天秋帆)’이라는 기행문을 정리했는데, 실제로는 2등참서관으로 동행했던 역관 김득련(金得鍊·1852∼1930)이 중국·일본·미국·영국·네덜란드·독일·폴란드·러시아·몽고 등의 9개국을 거치며 기록한 것이다. 이때 세계일주를 같이 했던 일행 가운데 민영환과 김득련은 한문으로 기록을 남겼고, 윤치호는 영어로 기록을 남겼는데, 민영환과 김득련의 기록은 거의 비슷하다. 수행원 김득련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전권공사 민영환의 이름으로 정리된 것이다. 김득련은 역관을 93명이나 배출한 우봉 김씨 집안 출신으로,21세 되던 1873년 역과에 합격하였다. 육교시사에 드나들며 강위의 지도를 받았는데, 모스크바 공관에서 시를 지으면서도 육교의 모임을 그리워했다. 러시아어를 모르던 중국어 역관 김득련이 민영환을 따라가게 된 것은 공식 기록을 한문으로 남기기 위해서였으며, 민영환과 한시를 주고받기 위해서였다. 러시아 사람들과의 대화는 김도일이 맡았기에, 그는 상대적으로 한가하게 시를 지을 수 있었다. 그는 지구를 한 바퀴 돌며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감회를 한시 136수로 읊었는데,‘환구음초(環 艸)´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지구를 한 바퀴 돌며 읊은 시집”이라는 뜻이다.‘환구음초’에 그려진 신세계의 모습은 다음 회에 소개하기로 한다. 허경진 연세대 국문과 교수
  •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정국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은 당내 예선을 치르느라 바쁘다. 대선 정국인 지금, 대통령들이 꿈을 키웠던 생가(生家)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하고 있을까.‘명당(明堂)’으로 불리지만 업적과 인기에 따라 발길 빈도가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큰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에 나서면서 발길이 크게 잦아졌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한창 복원 중이다. 대통령 생가라면 단연 박 전 대통령 집이다.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최고의 대통령으로, 민주화를 억압한 장본인으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다. 박 대통령 생가를 6년째 청소하고 있다는 김영순(56·구미시 사곡동)씨는 “생가를 찾는 연세 드신 많은 분이 박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곡을 한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눈물 쏟는 관람객들 이곳에는 연간 4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생가보존회 김재학(82·전 초등학교장)옹은 “관람객들이 초라한 생가를 보고 ‘이건 아니다.’ ‘너무 했다. 심하다.’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구미시 박 대통령기념사업단 박경하 계장은 “홍보를 안하는데도 찾는 사람이 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도 발길이 잦은 편이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는 외지인들이 연간 1500∼2000명 가량 찾고 있다. 이승현 하의면사무소 직원은 “여름방학 때는 하루 30∼40명, 방학이 끝나면 10명 안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포항에서 하의도까지 2시간20분이 걸리는 데다가 배편도 하루 2∼3번밖에 안돼 방문객이 갈수록 줄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를 향한 배’에 동승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조금 낫다. 요즘 하루 30∼40명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의 생가를 찾고 있다. 방학 때면 학부모가 자녀들을 동반한다. 지난해 7만 3000명이 다녀갔고 올해 6만 4000여명이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반면 ‘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발길이 뜸하고 썰렁하기까지 하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도로변 전 전 대통령 생가는 대문을 열어 놓아 오가는 행인들이 간간이 들른다. 대구 동구 신용동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생가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훼손이 많이 됐다. 전형적인 시골 촌집으로 2∼3년 전만 해도 주민들에 의해 청소 등 관리가 이뤄졌으나 이후에 방치되고 있다. 한 주민은 “관광객이 가끔 찾기는 하나 전직 대통령의 생가 관리에 정부도, 자치단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전 전 대통령 생가는 84년 경남도가 2800만원에 사들여 합천군으로 소유권을 넘겼다. 군은 매년 11월 이엉을 엮어 초가 지붕을 보수하고 있다. 강원 원주에 있는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는 현재 없다. 터만 있었지만 2000년 원주시립박물관이 들어서 흔적조차 사라졌다. 박물관에도 유품이나 생가에 대한 자료가 없어 박물관이 최 전 대통령의 생가 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원주에서조차 최 전 대통령은 잊혀져 가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다. 주민 임승희(54)씨는 “한달에 100명 정도는 구경을 온다.”고 말했다. 특히 풍수가 뛰어난 명당이란 소문이 퍼져 지관 등이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생가는 마을 노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年 2000여명 발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구미시는 생가 주변 7만 7600여㎡를 성역화하고 있다.2020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추모관과 생가 원형복원, 연대별(1920∼70년) 시대촌, 내자(內子)의 공원 등을 조성한다. 현재 생가에서는 서거일(10월 26일)과 출생일(11월 14일)에 매년 2차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거제시는 김 전 대통령 생가 옆에 기록전시관을 건립한다.19억원을 들여 738㎡에 2층 규모로 만들어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와 소장품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마당 왼쪽에 청동 흉상이 설치돼 있다. 이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참관한 뒤 휘호를 써준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림이 기증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신안군에서 관리인을 두고 제초비와 비품비 등으로 연간 120만∼150만원을 대주고 있다. 추수 후에는 초가지붕 보수비 등으로 700만원을 더 지원한다. 이장 이형열(60)씨는 “대통령 생가가 너무 초라하다는 여론이 있어 생가와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려고 최근에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 자주 개입하면서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생가보다 묘가 위치한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달 22일 자발적으로 1000여만원을 모아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탄신 110주년 추모행사를 갖고 ‘대통령 마을’로 선포했다. 마을 이장 이성복씨는 “생전에 1주일에 한번씩 내려와 마을에 나무와 꽃을 심고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음덕을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그들의 생가 형태와 규모 대통령 생가 중 가장 큰 집은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다.‘아흔아홉칸’이라고 하나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등 4동뿐이다. 기와집에 총건평 352㎡에 이른다.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2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진다.1984년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중부지역 가옥형태로 윤 전 대통령 장남이 소유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58㎡의 초가집과 안채(114㎡), 분향소(119㎡)로 돼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금오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현월봉 아래 자리한 명당 중의 명당으로 ‘대통령이 날 만한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1993년 2월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다. 이 집은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살았다. 대구사범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전시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돼 있다. 목조 기와집이지만 본채는 76㎡, 사랑채는 26㎡로 보잘것 없는 규모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초년생때부터 대통령 당선때까지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1950년 공비가 침입, 모친을 살해했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거제시에서 2명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연간 관리비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가, 관리동, 헛간, 소금전시관, 화염(불에 구운 소금) 제조공장 등 5채로 초가집이다. 김 전 대통령은 4학년 1학기까지 이 집에서 살다가 목포로 전학을 갔다.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8000여만원을 모아 생가를 복원했다. 대통령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 12개, 붓글씨 액자 2개, 책상과 20여권의 책, 벽시계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안채, 행랑채, 대문 등 초가 건물 3채이다. 총건평은 251.5㎡이다. 당초 5채였으나 2채는 1988년 11월 방화로 소실됐다. 군과 면사무소 직원이 수시로 들러 제초작업 등 보수를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생가, 우사, 창고로 꾸며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경북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국풍’이라고 하는 풍수학자들은 연기산·윗도덕산 등 생가 앞에 큰 산이 많아 인물이 났다고 얘기한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머물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지어지고 있다. 생가 뒤편이다. 시공 업체가 공사현장에 펜스를 치고 작업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공사현황을 알 수 없다. 김해시 관계자는 “작업현장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정확한 진척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준공 예정일을 감안하면 공정률이 90%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사저는 다음달 말 준공될 예정이다.3991㎡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총건평이 933㎡에 이른다. 지난 1월15일 기공식이 열렸다. 노 대통령의 생가는 사저 앞쪽 463㎡의 터에 목조 슬레이트 건물로 지어져 있다. 본채와 20㎡ 남짓한 헛간이 있다. 마당은 40㎡쯤 된다. 이 집에는 하모(65)씨 부부가 살고 있으나 지난 2월 강모(61)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씨는 연말까지 집을 비워 주기로 했다. 강씨는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로 경남 창원에서 자동차부품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강씨가 생가를 매입한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친형인 건평씨가 생가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저가 생가 바로 뒤에 건립되고 있어 조만간 생가를 복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퇴임 후 강씨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거나 증여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도 휴일이면 200여명씩 찾고 있다. 훗날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업적을 어떻게 평가받고 인기를 얻어 어떤 대통령 생가를 닮아갈지 궁금하다. 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독도 탐방기] 독도가 예사 섬이던가

    [독도 탐방기] 독도가 예사 섬이던가

    삼대에 걸쳐 덕을 쌓은 후, 하늘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그 섬에 오를 수 있다 했다. 독도 얘기다. 누가 독도를 국토의 막내라 했나. 본토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혹은 크기가 작다는 이유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중국의 기서 ‘금병매’에 등장하는 무대가 동생 무송보다 체격이 월등히 커서 형이었던가. 나이로 보나-독도의 생성시기는 460만년 전으로 울릉도(250만년 전)나 제주도(120만년 전)보다 앞선다는 것이 정설이다-국민 정서로 보나 내 나라 섬들 중 맏형임이 분명하다. 성지를 찾는 순례자의 심정으로 6시간 남짓 독도를 둘러보았다. 글 독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독도 도착까지 30분 남짓 남았을 무렵 선내 안내방송이 시작됐다. 평소라면 감정에 북받친 웅변조의 격한 목소리에 실소를 터뜨리는 이도 없지 않았겠지만, 독도가 예사 섬이던가, 선객 모두가 또렷한 눈망울로 방송을 경청했다. 선실 위쪽에 올라 독도를 처음 마주하는 순간, 정수리에서 시작된 짜릿한 흥분이 온몸을 휘감고 나가는 듯했다. 독도는 그리 쉽게 발디딜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험한 뱃길은 제쳐 놓고 너울파도가 1.5∼2m만 돼도 방파제가 없는 접안시설에 배를 대기가 어렵다. 독도관리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배편이 전혀 없는 12월과 1,2월을 제외하고 올 6월 말 현재 여객선이 울릉도에서 96일 출항해 64일가량 독도에 입도한 것으로 나타났다.3∼4월 날씨가 험했던 것을 감안하면 관광객들이 5∼6월에 대부분 몰렸던 셈이다.64일 중 하루 한두 차례만 입도한 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독도는 이름과 달리 동도와 서도 2개의 큰 섬과 주변 89개의 부속섬으로 구성된 화산군도. 동도와 서도의 거리는 110∼160m, 수심은 10m 정도 된다. 난류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8월 평균기온이 24℃를 초과하지 않아 시원한 편이고,1월의 평균기온은 1.0℃로 온화하다. 안개가 많고 흐린 날은 연중 160일 이상. 연평균 강수량은 1240㎜로 계절차는 별로 없지만, 겨울에 폭설이 자주 내린다. 부족했던 식수문제는 6월 국내 한 대기업이 2기의 담수설비를 조성한 이후 거의 해소됐다. 독도경비대원과 등대관리원 등이 상주하고 있는 동도에는 1일 24t(하루 70명 사용 가능), 김성도씨 부부가 살고 있는 서도 어민숙소에는 1일 4t의 물이 공급되고 있다. 현재 독도의 주민등록상 거주자는 모두 4명. 서도에 김성도 이장과 부인 김신열씨, 이예균 시인, 동도에 등대지기 하임락씨 등이 각각 등재돼 있다. 독도를 호적지로 한 사람은 모두 623호 2105명이다. 배에서 내린 승객들을 가장 먼저 맞은 것은 삽살개 ‘몽’이. 괭이갈매기 알을 훔쳐 먹거나, 심지어 잡아 먹기도 해 환경단체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녀석이다. 하늘을 뒤덮을 듯한 괭이갈매기의 환대를 기대했지만,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서도가 동도보다 더 크고 봉우리도 높지만 경사가 급해 독도경비대와 독도등대, 접안시설 등은 모두 동도에 자리잡았다. 관광은 동도 내, 그것도 선착장 주변에서만 30분 남짓 가능하다. 특별한 사유가 있는 경우, 독도관리사무소(054-790-6646)에 사전허가를 얻어 몇 시간 정도 체류할 수 있다. 접안시설에서 독도를 밟은 뒤 산책로를 따라 동도 정상을 향했다. 산책로 주변에 무시로 피어난 술패랭이와 박주가리 등 들꽃들의 모습이 반갑다. 계단 중간 오른쪽으로 바다전망대가 조성돼 있다. 비록 한쪽 풍경이지만 대양과 마주한 동도의 우람한 모습이 두 눈 가득 들어온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얼굴바위. 다른 암석들과 달리 거무튀튀한 것이 꼭 머리띠 질끈 동여맨 투사의 옆모습과 닮았다. 그 아래로는 천길 단애. 험한 바람과 파도에도 끄덕없는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유람선으로 섬을 한 바퀴 돌면 동쪽으로 해식아치 형태의 독립문바위, 우리나라 지도를 닮은 한반도 바위 등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독도에서는 강한 해풍과 부족한 토양, 급경사를 이루는 지형 때문에 약간의 식물이 자랄 뿐 나무를 찾아보기 힘들다. 독도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대부분 울릉도에서 바람에 실려 온 것들. 국화과(왕해국, 방가지똥, 구절초 등)나 백합과(날개하늘나리, 참나리 등), 볏과(돌피, 강아지풀 등) 등의 식물이 대부분이다. 육지에서 들여온 삽살개 4마리를 제외하면 포유류는 없다. 집단으로 번식하는 괭이갈매기나 바다제비, 슴새 등 희귀조류를 보호하기 위해 1982년에 천연기념물 제336호로 지정됐다. # 배편과 요금 삼봉호가 하루 두 차례(오전 7시, 오후 2시30분) 도동∼독도를 운항한다. 접안 시간 포함해 왕복 6시간.㈜대아는 씨플라워호와 한겨레호를 각각 하루 한 차례씩 운항한다. 왕복 3시간 남짓. 배삯은 모두 왕복 3만 7500원.(054)791-8111∼2,(031)223-2671∼3. # 각종 변수들 2005년 독도관광 자유화로 동도에 하루 1880명까지 상륙할 수 있다. 당일 날씨는 가장 큰 변수. 상륙을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때는 선회관광으로 대체된다. 승선인원이 70명 미만이면 삼봉호 운항이 취소된다.
  • 지방도로 승격 1500억원 지원 받는 울릉도 일주로 ‘씽씽’

    지방도로 승격 1500억원 지원 받는 울릉도 일주로 ‘씽씽’

    단절된 울릉도 일주도로가 이어질 전망이다. 일주도로 확장·포장 공사는 1963년 착공됐으나 총길이 43.6㎞ 중 내수전∼섬목간 4.4㎞는 끊어져 있다. 경북도 이철우 정무부지사는 8일 “울릉 사동재 터널공사 개통식에 참석, 울릉도 일주도로가 올해 말 국가가 사업비를 지원하는 지방도로 승격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부지사는 국가지원 지방도로로 승격되면 국비 지원이 가능해져 울릉도 일주도로 공사의 최대 걸림돌인 공사비가 해결된다고 밝혔다. 일주도로의 끊어진 구간은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지대다. 환경 훼손이 우려돼 해안도로를 닦을 수도, 바다가 깊어 교량을 놓을 수도 없다. 터널 공사가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터널 총공사비는 1500억원. 경북도와 울릉군은 공사비 마련이 어려워 2001년을 끝으로 도로 개설 공사를 중단했었다. 경북도와 울릉군은 “울릉군의 특수 상황을 감안해 요건이 미달되더라도 국가 지원 지방도로로 승격해 국비를 투입해 달라.”며 수차례 건설교통부에 건의했다. 이 건의에 건교부는 “일주도로를 국도로 승격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국가지원 지방도는 가능하다.”며 “늦어도 내년에 승격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릉도 일주도로 개설이 늦춰지면서 그동안 주민의 이동 불편은 물론 관광객들도 섬 일주에 큰 불편을 겪어왔다. 내수전∼섬목을 오가는 배편도 2002년부터 끊겨 인근 주민의 생활도 불편하다. 울릉군은 일주도로 개통에 대비해 새로운 관광지 개발 등을 구상을 하고 있다. 바위 3개가 절경을 이루는 삼선암과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죽도 등을 볼 수 있는 전망대를 일주도로 인근에 세울 계획이다. 또 섬목에 항구를 건설하는 방안도 갖고 있다. 울릉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유네스코 고맙수다”

    제주는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국민 관광지에서 세계인의 관광지로 발돋움할 전망이다. 제주는 한 해 500여만명의 관광객이 찾아오지만 외국인은 50여만명,10% 수준에 불과하고 인접 국가인 중국, 일본, 타이완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제주는 일약 세계인이 주목하는 관광지로 부상하게 된다. 또 화산섬 제주가 가진 학술적 가치 등으로 지질학자 등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도 제주로 쏠리게 된다. 베트남 하롱베이는 1994년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뒤 2년 후인 1996년 관광객 23만 6000여명에서 2005년에 150만명으로 늘어나는 등 세계유산 등재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최주락 제주관광대 교수는 “세계 유명 여행사들의 주력 관광상품은 대부분 세계자연유산”이라며 “세계자연유산 등재로 제주는 돈으로 환산하기 어려운 관광홍보 효과를 누리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자연유산 등재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제주도 전체 면적의 10% 정도가 포함된 세계유산지구를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특히 자연유산지구 핵심지역에 1.46㎢(1.5%), 핵심지역으로부터 500m 이내의 완충지역에 29.13㎢(32.1%)의 사유지가 포함돼 행위제한에 따른 갈등은 언제든지 불거져나올 수 있다. 유네스코는 자연유산 등재후 보존·관리가 미흡하면 자연유산 목록에서 제외하는 등 세계적인 기준의 철저한 보존·관리를 요구하고 있다. 또 관광객 증가에 대비해 항공편, 배편 등 접근성 확대를 위한 제주공항 확장과 항공기 야간운항 허용도 풀어야 할 숙제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세계유산 등재로 제주는 제주만이 아닌 세계인의 유산이라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인승 자전거로 10년간 88개국 일주

    2인승 자전거로 10년간 88개국 일주

    |도쿄 박홍기특파원|10년전 자전거로 세계일주를 시작한 일본인 부부 우쓰노미야 가즈나리(39)와 도모코(40)가 88개국의 대장정을 타이완에서 마무리한다. 이들이 일주한 거리는 8만 1301㎞나 된다. 이들의 세계일주 여행 경로와 자세한 일정은 부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홈페이지(www.pedalian.net/tandem)에 소개돼 있다. 교사 출신인 우쓰노미야는 회사원이었던 부인과 함께 지난 1997년 6월 앞뒤로 앉는 2인승 자전거를 타고 북미를 첫 출발지로 삼았다. 북미를 누빈데 이어 뉴질랜드·호주·남미·유럽·중동·동남아시아를 거쳐 지난 5일 필리핀에서 타이완에 도착했다. 국가를 이동할 땐 자전거를 분해, 배나 항공기의 화물로 수송했다. 도모코는 “엄청나게 힘든 여행이었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고 보람있었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아름다운 곳도 많이 가봤다. 남편과 길 위에 있을 때 행복했고 모든 어려움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회고했다. 이 부부는 하루에 10달러로 생활했다. 미국을 여행하는 6개월 동안 호텔에 묵은 건 단 한번뿐이었다. 아침과 점심은 빵으로 때우고 저녁에는 통조림만 먹기도 했다. 특히 티베트의 해발 5000m 고원에서는 지독한 감기에 걸렸는가 하면 나미비아 사막의 숨막히는 열기도 견뎌냈다. 슬로베니아에서는 영하 15도의 혹한 속에 텐트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10년간의 여행 동안 4차례 일본으로 돌아와 2∼3개월간 휴식을 취했다. 도모코는 “여행을 통해 일본에서와 같은 바쁜 일상과 스트레스에 시달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배웠다.”면서 “여행은 스트레스에 찬 도쿄 생활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고 말했다. 타이완을 마지막 코스로 삼은 이유는 다름아닌 1999년 뉴질랜드에서 만난 타이완 모험가이자 교사 부부인 린쑨칭와 치앙산칭의 초청 때문이다. 현재 린과 치앙 등 현지 10여명의 사이클리스트와 타이완 중부와 남부를 여행하고 있다. 타이완 여행이 끝나면 다음달 5일 기륭항에서 배편으로 일본으로 돌아간다. hkpark@seoul.co.kr
  •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0)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오지로 떠나는 시간여행] (20) 인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해안 먼바다 깊고 깊은 곳, 섬은 그대로인데 마을은 영광의 시대를 뒤로 하고 명맥만 유지한 채 나날이 쇠잔해가고 있다. 인천에서 배편으로 덕적도까지 간 뒤 다시 배를 갈아 타고 두 시간 남짓 더 가야 하는 섬. 행정명은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리. 험한 파도를 헤치고 문갑도와 굴업도, 백아도를 거쳐 울도항에 배가 도착하자 오랜만에 들어오는 생필품을 기다리던 주민들이 반갑게 맞이한다. 작은마을과 큰마을로 형성된 울도엔 모두 16가구 3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해질녘 작은 어선에서 어망을 내려 생선을 털어내자 양동이에선 주먹만한 우럭과 놀래미들이 팔딱거린다. 황량하고 바람부는 부두에는 아낙 홀로 길고긴 어망을 수선하고 있어 보는 이의 가슴을 쓸쓸하게 한다. 비탈진 곳에 위치한 어민의 작은 집 마당에는 한 노인이 금방 앞바다에서 채취한 홍합을 손질하고 있다. 갯벌에 뿌리박은 그물닻에는 굴딱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주인 잃은 폐선은 흉물스러운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 섬은 1960년대 중반까지만해도 민어·조기·새우잡이가 한창이었고 호황일 때는 파시(波市)가 열렸다. 외지인들이 수백명씩 들어와서 작은마을에는 객주점(客酒店)이 즐비할 만큼 흥청거렸다. 이후 꽃게잡이가 번성할 때는 주민들도 20여척의 꽃게잡이배를 부리며 남부럽지않게 돈도 만졌다. 근해에서 조업하는 꽃게잡이배들도 섬으로 몰려들어 아낙들도 어구손질만으로 한 해 천만원씩 소득을 올렸다. 40명이 넘는 아이들이 10년전 폐교된 덕적초등학교 울도분교를 웃음소리로 가득 메웠고, 마을은 선주들이 고용한 외지 어민들의 가족들로 북적거렸다. 어부들은 너나없이 인천에 별도의 집을 장만할 수 있었다. 평생동안 바닷속만 들여다 보고 살았다는 한 늙은 어민은 기자에게 그 옛날의 영광을 들려주었다. 지금 섬에는 바람과 파도를 피해 들어온 몇척의 배와 어구 적치장을 가득 메운 어망만이 주인인양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대대로 이 섬에 살았다는 정광성(72) 할아버지는 “한때 2척의 꽃게잡이배를 가지고 5가구나 고용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회상하면서 “어선들이 대형화되고 물고기를 남획하면서 5년전부터 게가 잡히지 않아 지금은 마을주민이 소유한 꽃게잡이배가 단 1척에 불과하며 그나마 꽃게잡이하는 주민도 거의 없다.”고 아쉬워했다. 부인과 함께 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정병우(40·전도사)씨는 “본적과 주소지를 아예 울도로 옮겼다.”면서 “바깥 세상과 거의 단절된 채 살아가는 주민들이 너무나 순하고 착하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응급환자가 발생하거나 아플 때는 대책이 없어 불편하다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현재는 갯벌에서 간간이 채취하는 고둥이나 홍합 굴에다, 소형 배를 이용한 낚시잡이 외에는 어족자원이 고갈되어 뾰족한 소득원이 없지만 주민들은 그래도 희망에 부풀어 있다.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섬을 찾겠다는 문의전화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사중인 준설작업과 항만공사가 끝나고, 인천에서 갈아타지 않고 올 수 있는 객선이 취항을 하면 관광객들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한다. 게다가 종패를 뿌려 놓은 바지락과 굴 양식장이 수확을 시작하는 2년 뒤쯤이면 섬은 점차 활기를 찾게 된다며 들떠 있다. 뭍에서 멀어서 울면서 들어가고, 나올 때는 훈훈한 인심에 떠나기 섭섭해서 울고 간다는 울도, 살기가 어려워 섬 주민치고 울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울도라는 유래가 생겼다는 섬. 바람과 안개에 며칠째 발이 묶였던 이방인은 주민들의 소망이 이루어져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맞게 되기를 기대하며 섬 울도를 떠났다. 사진 글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산이좋아 산으로] 제주도 한라산

    [산이좋아 산으로] 제주도 한라산

    섬이 산이고, 산이 섬이다. 이 말은 제주도 한라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약 120만년 전, 이 땅의 남쪽 끝자락에서 불기둥이 솟았다. 아직 제주는 세상에 없었다. 북쪽 백두산에서 용솟음친 대륙의 기운에 화답이라도 하듯 남쪽 끝에서 끓어오르던 거대한 용암덩어리. 육지와 한몸이었을 그 땅은 온몸으로 불꽃을 뿜어 올리며 들끓었을 것이다. 첫 폭발 이후 한라산은 네 번이나 크게 몸을 떨었다. 처음 두 번에 걸친 폭발이 펑퍼짐한 용암대지로 굳어 기반을 다졌고, 섬이 제모습을 갖춘 다음에는 그간의 응축된 힘을 모아 한가운데서 크게 솟구쳤다. 한라산을 멀리서 살펴보면 전체가 다소 완만한 삼각형 모양을 이룬다. 등산길은 이 경사면을 따라 동쪽의 성판악 코스와 서쪽의 영실 코스와 어리목 코스, 북쪽의 관음사 코스, 그리고 남쪽의 돈내코 코스 등 총 5개의 등산로가 나 있는데 돈내코 코스는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지정되어 현재는 출입할 수 없다. 한라산의 산길은 산행기점이 다소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산행 거리가 짧고 등산로가 잘 나있어 길을 잃거나 조난당할 우려는 적지만, 기상변화가 심하고 바람이 세차 철저한 준비 없이 산행에 나섰다가 위험에 빠질 수 있으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성판악 코스와 관음사 코스를 이용하면 동릉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백록담을 볼 수 있다. 정상보다 17m 낮은 이곳은 현재 한라산에서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이다.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 동쪽 코스로 경사는 완만한 반면 거리는 가장 길다. 서어나무 등 활엽수가 우거져 있어 철마다 변화하는 한라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를 잇는 5·16도로 중간 지점에 있는 성판악휴게소(064-722-0509)에서 시작해 속밭∼사라악 약수∼사라악 대피소∼진달래밭 대피소∼동릉 정상으로 이어지는 9.6㎞를 오르는데 4시간30분여가 걸린다. 관음사 코스는 8.7㎞ 거리에 편도 5시간이 소요된다. 한라산 북쪽에서 오르는 코스로, 관음사 야영장부터 구린굴∼탐라계곡∼개미목∼용진각대피소∼왕관릉∼동릉정상으로 이어진다. 동릉 정상까지 해발고도 차이가 크고 산행시간이 길어 일반 등산객보다는 전문 산악인들이 많이 찾는 코스다. 야영장에서 3시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용진각대피소 서쪽 사면 장구목은 해외 원정 훈련장으로 즐겨 찾는 곳. 눈사태로 인한 사고가 빈번한 지역이다. 한라산은 규모가 크고 대피소에서 숙박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시간제한을 두고 각 지점에서 더 이상 등산을 하지 못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성판악을 기점으로 출발했을 경우 오전 9시에 등산로 입구에서 더 이상 출입을 막는다. 진달래밭 대피소에서는 정오가 되면 정상까지 가는 길이 통제된다. 관음사 코스도 입구에서 오전 9시부터 출입이 통제된다. 정상을 거치지 않을 것이라면 윗세오름 대피소까지만 개방되어 있는 영실 코스와 어리목 코스로 올라도 된다. 윗세오름 대피소부터 정상까지는 자연휴식년제로 막혀있다. # 여행 정보 제주도와 한라산 여행은 비행기나 배를 이용할 수 있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배편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매주 월·수·금요일 오후 7시 출항하는 ㈜청해진 해운의 오하마나호를 이용하면 된다. 제주까지는 13시간이 걸린다. 배 안에는 식당과 이벤트홀, 매점, 샤워실 등의 시설이 되어있고 저녁시간에는 노래 공연 등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금요일 출발하는 배는 탑승객이 많아 복잡하므로 토요일 아침식사까지 미리 준비해 가는 것이 비용도 줄이고 선내 식사를 위해 기다리는 불편함이 없다. 배삯 3등실기준 편도 5만 3500원. 글 이영준 김범수(월간 마운틴 기자)
  • 北 고려항공, 평양-中 다롄 첫 전세기 운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북한의 고려항공이 평양과 중국의 다롄(大連) 노선에서 처음으로 전세기를 운항했다.고려항공 여객기가 다롄 국제공항에 착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이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만경봉-92호의 입항을 불허하자 배편 대신 항공편으로 대규모 인력 수송을 하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중국의 민용항공당국 등에 따르면 고려항공은 지난달 22일,이달 1·10일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평양∼다롄 노선에서 전세기를 운항했다. 이번에 투입된 전세기는 러시아제 투볼레프(TU)-154로 최대 180명까지 승객을 태울 수 있다. 고려항공 선양(瀋陽)지사측은 “다롄을 거쳐 입국하는 일본의 총련계 동포를 태우기 위해 전세기를 운항했다.”고 밝혔다. 고려항공측은 일본에서 다롄을 연결하는 항공편 일정을 감안해 다롄으로 전세기를 취항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재일 총련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고려항공의 전세기 운항은 일본이 만경봉-92호의 입항을 불허한 데 따른 것이다.도쿄 등 간토(關東)지방에 소재한 민족학교 학생 200여명의 방북을 위해 따로 비행기를 전세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기 운항이 예외적인 것이긴 하지만 방북단의 규모가 클 경우 이번처럼 전세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이 대북 제재 일환으로 만경봉호의 입항을 막자 전세기를 이용,항공편으로 북한 입국자들을 실어나르는 일이 상당기간 관행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일본은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대북제재 조치의 하나로 만경봉-92호의 입항을 불허하는 조치를 내렸다. 만경봉호 운항이 중단되면서 개인 자격 혹은 소규모 대표단을 꾸려 북한을 방문하는 총련계 동포들은 먼저 일본에서 비행기편으로 중국 베이징(北京)이나 선양에 도착해 평양에서 들어오는 고려항공 정기편으로 갈아타고 입북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고려항공은 매주 화·목·토요일에 평양∼베이징,매주 수·토요일에 평양∼선양 정기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jj@seoul.co.kr
  • 평양~中 다롄 北 전세기 운항

    |베이징 이지운특파원|북한의 고려항공이 평양과 중국의 다롄(大連) 노선에서 처음으로 전세기를 운항했다. 고려항공 여객기가 다롄 국제공항에 착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이 대북제재의 일환으로 만경봉-92호의 입항을 불허하자 배편 대신 항공편으로 대규모 인력 수송을 하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26일 중국의 민용항공당국 등에 따르면 고려항공은 지난달 22일, 이달 1·10일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평양∼다롄 노선에서 전세기를 운항했다. 이번에 투입된 전세기는 러시아제 투볼레프(TU)-154로 최대 180명까지 승객을 태울 수 있다. 고려항공 선양(瀋陽)지사측은 “다롄을 거쳐 입국하는 일본의 총련계 동포를 태우기 위해 전세기를 운항했다.”고 밝혔다. 고려항공측은 일본에서 다롄을 연결하는 항공편 일정을 감안해 다롄으로 전세기를 취항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재일 총련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고려항공의 전세기 운항은 일본이 만경봉-92호의 입항을 불허한 데 따른 것이다. 도쿄 등 간토(關東)지방에 소재한 민족학교 학생 200여명의 방북을 위해 따로 비행기를 전세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전세기 운항이 예외적인 것이긴 하지만 방북단의 규모가 클 경우 이번처럼 전세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이 대북 제재 일환으로 만경봉호의 입항을 막자 전세기를 이용, 항공편으로 북한 입국자들을 실어나르는 일이 상당기간 관행화될 것이란 설명이다. 일본은 지난 7월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직후 대북제재 조치의 하나로 만경봉-92호의 입항을 불허하는 조치를 내렸다.jj@seoul.co.kr
  • 히말라야 과일 ‘고지’ 인기 폭발

    할리우드의 ‘늘씬녀’들은 무얼 먹나. 히말라야가 원산지인 과일 ‘고지’가 탁월한 건강식품으로 소문나 서구인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고 영국 BBC가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고지는 베리의 일종(일명 울프베리)으로 붉은 건포도처럼 생겼다. 건강식품 ‘전도사’들에 따르면 고지는 비타민C가 오렌지보다 더 풍부하고 심장병 예방에 좋은 베타카로틴은 당근보다 많으며 철분은 스테이크 고기보다 많다. 또 18가지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고 비타민B, 항산화제도 풍부하다. 더욱이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고 가벼워 매일 10∼30g만 먹으면 된다. 특히 마돈나와 여배우 엘리자베스 헐리, 미샤 바튼 등 유명인들이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는 입소문이 돌아 찾는 사람이 늘고 있다. 유통업체 테스코는 기적의 슈퍼 음식이라며 판촉전을 펼치기 시작했다. 정력에 좋다는 ‘과일 비아그라’,‘셀룰라이트(여성의 둔부 등 피하에 쌓인 지방 축적물) 분쇄기’라는 과장된 별명도 얻었다. 그러나 영국 카디프 대학병원 자크 로든 박사는 “완전히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일 쪼가리 하나로는 결코 당신의 삶을 바꿀 수 없다.”고 지적했다. 조너선 포맨(40)은 “리비도(성욕)를 자극한다고 해서 먹었는데 전혀 못 느꼈다.”고 툴툴거렸다. 고지는 중국과 몽골, 티베트에서 주로 재배된다. 수천㎞를 배편으로 운송되는데 영양소가 그대로 보전될지도 의문이다.박정경기자 olive@seoul.co.kr
  • 독도 무제한 입도 추진

    경북도가 독도 관람객 무제한 입도를 추진하기로 했다. 취임 후 울릉도·독도를 초도 순시차 찾은 김관용 경북지사는 25일 “경북도가 독도를 관할하는 광역자치단체이면서도 그동안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면서 “도는 앞으로 독도에 대한 무제한 입도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이날 배편으로 독도의 서도에 거주하고 있는 김성도씨 부부를 찾아 ‘대한민국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20-2번지 김성도·김신열’이 새겨진 문패를 건넸다. 이어 독도 우편번호(799-805)와 태극기가 새겨진 우편함을 달아 주고 숙소에 게양할 태극기와 경북도기를 선물하기도 했다 김 지사는 입도 인원과 관련,“일반인에 대한 독도 입도 규정이 하루 400명으로 제한돼 대한민국 국민이면서도 접근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면서 “입도 인원 제한조치를 풀면 누구나 쉽게 접근이 가능한 데다 독도의 실효적 지배 또한 강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독도 문제 등 지방외교 역량 강화를 위해 1∼2급 상당의 국제 자문대사를 임용하는 등 지방의 외교적 역량을 한층 더 높여 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독도 입도객 증원 등을 위해 지난달 독도 현지조사를 실시한 해양수산부, 환경부, 문화재청, 경북도, 울릉군 등은 이달 말까지 입도객 1회 470명, 횟수 무제한으로 확대하는 방안 등을 최종 마무리할 방침이다. 경북도는 2007년까지 독도에 사업비 36억원을 들여 ▲어업인 숙소시설 유지, 관리 ▲물골∼어업인 숙소 상수도 연결 타당성 조사 ▲새 독도관리선 건조 등을 추진한다.울릉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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