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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인에서 안치까지… 마지막 여정 스케치

    서울광장 노란 물결… ‘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눈물 참던 건호·정연씨 끝내 오열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많은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는 한시간 가까운 이상이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형성했으나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시민들은 영구차에 노란풍선과 노란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아쉬워하셨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운구행렬이 도착한 오후 1시20분부터 40분여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가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노건호, 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추모객들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는 가운데 장례행렬이 재정비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 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영결식이 끝나가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이 ‘상록수’ 등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는 ‘여는 마당’이 열렸다. ●‘사랑으로’ 합창 부르며 노제 마무리 이날 추모객들로 가득 찬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이었다.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6월항쟁의 물결이 넘친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이때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이날 서울광장 일대는 경찰이 서울광장의 일반인 진입을 막는 차벽을 철수한 오전 7시40분부터 추모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구행렬이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 오전 9시쯤에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명(경찰 추산, 50만명 주최측)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하늘로 떠오른 노란색 풍선들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멀리 떠나보내는 듯했다. 노랑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여·22)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휴강해주셨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역 도착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운구 행렬은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오후 3시쯤 2000여개 만장들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운구행렬은 이곳에 오후 2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고작 1년 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걸어오르며 미소지었던 서울역 계단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영원히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회사원 장진우(33)씨는 “지난해 배웅할 때는 우리가 계단 밑에 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께서 계단 밑에 계신다.”면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편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6만 4997명이 분향했다. 서울 화곡동 직장에서 전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일부러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 도착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행렬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운구행렬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화장이 이뤄진 수원 연화장 역시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연화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풍선과 리본,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오후 1시부터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 스카프를 두른 1000여명의 시민이 연화장 내부 승화원(화장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다. 주부 박현선(41)씨는 “대통령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웅하러 나왔다.”면서 “뜨거운 가마 속에서 계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김인규(56)씨는 “지난 7일동안은 슬픔의 힘으로 버텼지만 내일부터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의 앞날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화장은 2시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향나무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날 연화장에서 4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려 이날 밤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유골함은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해 박정훈 김승훈 이재연·수원 오달란 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 행사장 차량통제 정오~오후 2시 광화문일대 통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29일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 교통이 통제된다. 경찰은 갑호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하고 광화문 일대에 200개 중대를 배치한다. 경찰청은 “김해 봉하마을부터 경복궁, 서울광장, 서울역, 수원 연화장, 봉하마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 순찰대와 경찰력을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결식과 노제가 이뤄지는 29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구간별로 차량이 통제된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동십자각 사이 사거리와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 구간 등 양방향이 전면 통제된다. 오후 12시30분부터 2시까지는 세종로 사거리와 시청광장 사거리 사이의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경찰청측은 “종로, 을지로, 퇴계로, 남대문로 등 주변 도로를 경유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장례행렬에는 운구차를 중심으로 차량 10대가량이 동원되며 고속도로에서는 순찰차 13대가, 일반국도에서는 경호 오토바이 18대가 경호를 맡는다. 장례행렬은 봉하마을에서 국도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등을 오가다 양재 나들목을 통해 서울로 진입, 한남대교를 타고 경복궁 앞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이동과정에서 교통정체나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동 중에도 경로가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장 깃대 대나무 대신 PVC 사용 한편 장의위원회는 국민장에 사용하는 만장 2000개를 대나무가 아닌 PVC파이프에 걸기로 했다. 장의위원회 김종민 대변인은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점을 감안, PVC파이프를 사용하기로 자체 결정했다.”면서 “만장은 서울역까지만 들고 가고 정부에서 수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건형 강병철기자 kitsch@seoul.co.kr ■ 발인~안치 어떻게 진행되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나서는 시간은 29일 오전 5시. 약 30분간 발인식을 가진 뒤 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서울로 향한다.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시속 80~90㎞로 빠르지 않게 이동하며, 휴게소에서 20분간 한 차례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운구행렬이 서울에 들어서면 경찰 사이드카 28대가 호위에 나선다. 운구 행렬 선두와 후미에 8대가, 운구차 양 옆에 각각 10대가 격식을 갖춘 채 영결식장으로 인도한다.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가로 1.1m, 세로 1.4m)을 앞세운 영정차는 운구차 바로 앞에서 행렬을 이끈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노 전 대통령의 운구가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된다.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1분)~고인에 대한 묵념(2분)~고인 약력보고(3분)~조사(12분)~불교와 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12분)~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모습 등 생전 영상 방영(4분)~헌화(18분)~추모공연(10분) 순으로 진행되며, 삼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결식 도중에는 ‘영원한 안식’ ‘새같이 날으리’ ‘미타의 품에 안겨’ ‘오제의 죽음’ ‘장송행진곡’ 등의 추모곡이 연주된다. 추모공연에선 국립합창단이 ‘상록수’를 합창하고, 해금연주가 강은일씨가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아리랑’ 등을 연주한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 및 식장과 서울광장, 서울역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노제를 지낸다. 경찰청이 제공한 차량 4대가 대형 태극기(가로 5.4m, 세로 3.6m)를 펼친 채 운구차를 선도하며, 유족대표 등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는 모두 걸어서 이동한다. 노제는 도종환 시인이 진행한다.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의 ‘여는 마당’이 이어지고, 안도현과 김진경 시인이 조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안 시인의 시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김 시인은 노 전 대통령 밑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조시 낭독이 끝나면 장시아 시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소녀가장인 장 시인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친 경험을 담은 시집 ‘그늘이 더 따뜻하다’를 국무위원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이어 안숙선 명창의 조창, 진혼무가 펼쳐지고, 합창단과 참석자 모두가 ‘상록수’ ‘아침이슬’ ‘애국가’ 등을 반주 없이 합창하면서 30여분의 노제가 마무리된다. 노제가 끝나면 운구 행렬은 숭례문 앞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 도보 행렬에는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시민 2000여명이 장의위가 준비한 만장(輓章)을 들고 뒤따르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한다. 도보 이동 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서울역을 출발, 오후 3시 수원 연화장에 도착해 유가족과 집행·운영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 2시간 동안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된다. 유족들이 수습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유골함에 담겨 오후 9시쯤 봉하마을에 도착,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된다. 유족들은 향후 길일을 잡아 노 전 대통령 유골을 봉하마을 사저 인근에 안장할 예정이다. 임주형 박성국기자 hermes@seoul.co.kr ■ 화장 절차 분향실 고별제례 분골은 안 하기로 29일 오전 11시 영결식 이후 진행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 의식은 일반인과 특별히 다를 바 없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장묘환경사업소에 따르면 노 전대통령의 화장의식은 화장장 전체가 당일 오후 반나절 내내 할애되고 화장료 100만원을 면제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29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연화장에 영구차가 도착하면 관을 이동대차로 옮기는 운구를 시작으로 이동대차에서 화장로 앞 전동대차로 옮겨 화장로에 넣는 화장절차,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분향실에서 제례를 올리는 고별절차가 이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화장로 9기 가운데 가장 큰 8번 화로에서 화장되고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13㎡ 면적의 8호 분향실에서 제례의식을 진행한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이 이날은 오전 8시, 10시 두 차례로 단축되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진다. 화장은 섭씨 800~1000도의 온도에서 1시간10분 정도 걸리는데, 관 재질이 두꺼울 경우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연화장 측은 설명했다. 화장이 끝나면 15분 정도의 냉각과정을 거쳐 유골은 분골실로 옮겨진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유해는 유족의 뜻에 따라 통상적인 분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골 상태에서 정부가 마련한 유골함에 담겨 유족들에게 인계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자신의 육신을 불살랐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여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가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전직 대통령으론 첫 화장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쯤.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당초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연화장에 영구차가 도착하자 의장대 6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안치하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이어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연화장 정문에서 20m쯤 떨어진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리는 고별식을 가졌다. 일반인들은 실내 분양실에서 제례를 올리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야외분양소를 마련했다고 연화장측은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창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20여분 동안 화장됐다. 유족들은 분향대기실에서 분향실 전광판을 통해 ‘화장중-냉각중-수골중’으로 표시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또 일반인의 경우 승화원 분향실을 1곳만 제공했으나 예우 차원에서 8개 분향실을 모두 제공했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30~40명의 장례위원들이 노 전대통령과 이별을 고하는 제례를 올렸다. ●유골함 인계받고 눈물 쏟아내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모했다. 이때 보통의 유가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당대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가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으로 연화장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통상적인 분골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골상태에서 유골함에 담겨졌다. 정부가 마련한 유골함은 가로 35㎝, 세로 25㎝, 높이 20㎝, 두께 1.8㎝의 북미산 향나무로 제작했다. ●요금소~연화장 6㎞ 노란물결 운구차 이동경로인 수원시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서는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유가족들이 화장장을 수원 연화장으로 결정한 것은 장지인 봉하마을로 가는 동선(動線)으로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어 이동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철 남인우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29일 새벽 발인이 끝난 뒤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경복궁 앞뜰 영결식장으로 향한다. 발인제는 1시간 전인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진행된다. 운구행렬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올 것으로 보인다. 이동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봉하마을 근처인 동창원IC(남해고속도로)~칠원JC(중앙고속도로)~여주JC(영동고속도로)~신갈JC(경부고속도로) 등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운구행렬 중 영정을 모실 검은색 캐딜락은 보닛 정면에 V자 모양으로 꽃 장식을 한다. 또 경찰 순찰차량이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호위한다. ●종합청사서 대한문까지 교통통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서울에 도착하면, 사이드카 24대가 영정차량을 앞뒤에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훈장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를 위해 서울시청 앞~미국대사관~시민 열린마당과 정부중앙청사~대한문까지 폴리스라인을 칠 계획이다. 경찰은 또 갑호비상체제로 전환하고, 경복궁 인근 광화문 네거리 차도를 통제한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다. 뜰에는 4층 계단형 제단이 세워진다. 흰색 천으로 덮인 제단은 2000여 송이의 국화꽃으로 장식된다. 식장에는 삼부 요인 등 1000여명의 장의위원과 수천명의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낮 12시30분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행렬은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이동,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 광장과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태극기와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길엔 태극기·노란리본 물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수원시 연화장으로 운구돼 화장되며 화장과 분골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시 봉하마을로 향한다. 운구행렬이 봉하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봉하마을 사저 인근 사찰인 정토원에서 하루 머문 뒤 다음날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영면을 취할 곳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12 일대가 유력하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야산이다. 그러나 유족들이 따로 길일을 잡으면 안장이 며칠 늦춰질 수도 있다. 박건형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면목 없습니다… 대통령이 무슨 잘못 있기에”

    구속수감됐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보석과 구속집행정지 등으로 풀려나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수 있게 됐다. 대전지법 형사합의11부(부장 위현석)는 횡령 및 탈세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뇌종양 치료 등을 이유로 청구한 보석을 26일 허가했다. 재판부는 “강 회장의 건강상태에 대해 병원 2곳에 사실감정을 의뢰한 결과 ‘악성 뇌종양이 발견됐고 시급히 조직검사와 항암치료가 필요하다.’는 답신이 왔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곧바로 보증금 1억원을 공탁하고 대전교도소에서 석방됐다. 강 회장은 오후 8시40분쯤 봉하마을에 부인과 함께 도착, 곧바로 조문하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했다. 강 회장은 “면목없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대통령님이 돌아가셨다. 화요일에 내가 나오는 것을 그렇게 기다렸다는데…. 대통령이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럴 수가 있느냐.”라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역시 이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민주당 이광재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노 전 대통령 장례에 참석할 수 있게 해달라며 낸 구속 집행 정지 신청을 받아들였다. 법원이 가족이 아닌 지인의 상을 치를 수 있도록 구속 피고인의 형 집행 정지를 허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들의 석방 기간은 27일 낮 12시부터 영결식이 치러지는 29일 오후 5시까지이고, 이 기간 동안 자택과 노 전 대통령의 장례절차가 이뤄지는 장소를 벗어나선 안 된다. 재판부는 구속 집행 정지 결정에 앞서 검찰의 의견을 듣겠다고 했지만 검찰은 별도의 의견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이날 재판부에 구속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유지혜기자·김해 박성국기자 wisepe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전날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낮 최고 29도까지 오르는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향소 입구부터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렸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20만명 넘게 다녀가는 등 3일간 40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경남 통영시에서 왔다는 제천모(39) 목사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북한이 조전을 보내 놓고, 한편으론 핵실험을 했다.”며 “나라가 상중인데 어이가 없다는 말밖에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조문, 불미스러운 상황 우려 장의위원회 고문을 맡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이날 봉하마을 임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서 조문하는 것이 맞지만 밖의 상황이 장례위가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이 대통령은 영결식날 서울에서 조문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영결식을 하게 된 것은 장례가 국민장으로 됐고, 추모객의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종일 무거운 침묵만 흐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저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외에는 접근이 철저하게 차단됐다. 간간이 사저와 빈소를 오가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는 눈이 퉁퉁 부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상주 건호씨는 분향소 설치와 제례의식 등을 거행하며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한 측근은 “유가족이 모두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심한 충격을 받은 데다 자책감도 상당한 실정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장례는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상 악으로 버티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벌써 장례 후에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른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형 건평씨가 구속되자 그때부터 많이 우울해했고, 건강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며 “유서에 나온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는 말을 그때도 하셨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0여년 전 김해영농경영회장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조문객들, 부엉이바위도 찾아 봉하마을 안내센터 인근에 있던 방명록 작성 장소는 조문객들이 급증하자 분향소 인근과 행렬 주변 곳곳에 마련됐다. 부산에서 왔다는 전종찬(55·자영업)씨는 “큰형님을 잃은 것 같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전에 (문상)하고 출근하려고 아침 일찍 찾아 왔다.”며 “1시간 이상 줄서 기다린 끝에 조문하고 돌아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흔적을 찾기 위한 듯 부엉이바위를 찾는 조문객들도 부쩍 늘었다. 현장을 찾은 추목객들이 간간이 눈물을 훔쳤으며,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담배를 두기도 했다. 일부는 사진을 찍거나 손으로 바위 등을 가리키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자갈치 아줌마, 민주열사 부모도 조문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맡은 부산 자갈치시장 이일순(65)씨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으로 불린 이씨는 영정에 국화꽃 한송이를 바쳤다. 그는 “지난 23일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데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처음에는 거짓말로 넘겼지만 뉴스를 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씨도 빈소를 찾았다. 임씨는 “노 전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인연이 좀 있고, 최근엔 제가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데 대통령 내외분이 위로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빈소를 찾았다. ●자원봉사자 사흘째 조문객 지원 자원봉사자와 마을주민 등 500여명은 조문객을 맞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황순선(62·여·김해시 진영읍)씨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해 내느라 힘들지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오는 문상객들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고 이렇게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전 의원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도착하기 직전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전 의원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조문을 끝냈고, 이같은 소식을 알게 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김 전 의원을 배웅하며 위로의 뜻을 깍듯하게 전했다. 한편 박희태 대표를 비롯, 정몽준·허태열·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낮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김해 김정한 김상화 유대근기자 jhkim@seoul.co.kr
  • [쓰촨 대지진 1년] 베이촨현 건물더미 속 아직도 1만5000여명이…

    [쓰촨 대지진 1년] 베이촨현 건물더미 속 아직도 1만5000여명이…

    ┃베이촨ㆍ두장옌ㆍ한왕(쓰촨성) 박홍환특파원┃하늘도 그날의 슬픔을 되새기려는 듯 낮은 구름을 잔뜩 깔아놓고 가는 비를 뿌리고 있었다. 쓰촨(四川)대지진 1년, 시간은 그대로 2008년 5월12일 오후 2시28분에 정지돼 있었다. #장면1. 멈춰선 시계탑의 증언 지난 9일 오후 쓰촨성 성도 청두(成都)에서 북쪽으로 100여㎞, 자동차로 1시간30여분 만에 도착한 몐주(綿竹)시한왕(漢旺)진의 둥치(東汽)시계탑 광장. 진앙지인 원촨(汶川)에서 동쪽으로 40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중학생 200여명 등 3000여명 이상이 몰사한 이곳의 시계는 비스듬하게 기운 채 ‘그날그시간’ 이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시계탑 주변과 북쪽 읍내는 온통 무너지고, 부서진 건물 잔해 투성이다. 대형 관광버스를 포함한 한 무리의 자동차들이 비상등을 켜고 도착했다. 쏟아져 나온 람들은 빗줄기에 아랑곳 않고 시계탑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셔터를 눌러댔다.주민 왕거거(王哥哥·37)는 “지난 1년간 반복되는 풍경”이라고 무표정하게 말했다. 왕씨는 “지난해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3번, 후진타오(胡錦濤)주석이 1번씩 다녀갔지만 새 집에는 내년 말에나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고 힘없이 내뱉은 뒤 “시간을 1년 전으로 되돌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헛웃음을 지었다. 돌이킬 수 없으면 맞설 수밖에. 생활전선은 더욱치열해졌다. 곧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운 가게 건물 앞에 짚 등을 엮어 임시가게를 마련한 상인들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발버둥쳤다. 작은 잡화점을 운영하는 판위안(范媛·30·여)은 “하루 몇 십위안(몇 천원) 벌이지만 그래도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니냐.”며 “가족들이 무사한 우리는 그나마 행복한 축에 속한다.”고 말했다. #장면2. 짙은 향에 담긴 슬픔 피해 지역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베이촨(北川)현은 도시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덤이었다. 3만여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 넘는 사람들이 무너진 건물 더미에 아직도 그대로 묻혀있다. 새 학교를 짓기 위해 마련했던 부지는 어느새 공동묘지로 변해 있었다. 도시는 봉쇄된 채 무너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 곳곳에 마련된 분향단에서 피어오르는 분향 냄새와 연기가 탕자산(唐家山) 아래 분지에 자리잡은 베이촨으로 낮게 깔리고 있 었다.  베이촨 시내로 내려가는 고갯마루에 위치한 옛 베이촨 중학. 3000여명의 학생과 교사 가운데 1000여명이 희생된 이곳에 마련된 임시 분향단에서도 향은 그칠 줄 모르고 피어올랐다. 교사였던 남동생이자 처남을 잃었다는 노 부부는 향을 태우다가 결국 눈시울을 붉혔다. 청두에서 이른 새벽 떠나 도착했다는 가오쥔(高俊·23·여)은 “현장을 직접 보니 당시희생자들이 얼마나 큰 고통 속에 죽어갔을지 눈에 선하다.”며말을잇지 못했다.  졸지에 현사무소에서 잡부로 일하던 남편을 잃은 류(劉·53)모씨는 집 입구 정중앙에 남편 영정을 세워둔 채 연신 주문같은 독백을 외워댔다. 시체도 찾지 못해마지막길도배웅못했다고 글썽였다. #장면3. 크레인으로 길어올리는 희망 류씨를 비롯, 베이촨에서 간신히 살아남은주민6000여명은 새로 건설될 도시로 이주하게 된다. 이웃 안(安)현의 안창(安昌)진에 ‘신(新) 베이촨’을 세우는 공정은 벌써 시작됐다. 산으로 둘러싸인 옛 베이촨과는 달리 탁 트인 평지다. 아직 터닦기 공사에 불과했지만 진도 6~7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 는튼튼한 건물을 짓겠다는 게 중국 정부의 다짐이다.  고대 수리시설로 유명한 두장옌(都江堰) 역시 몐양(綿陽) 등과 마찬가지로 곳곳이 신도시 건설현장처럼 활기찼다. 3100가구를 수용할 수 있 는 아파트 건설 계획인 ‘행복한 가정’(幸福家園) 공정은 이미 절반 정도 완성됐다. 내년 2주기때는 파란색 지붕의 판팡(板房·이재민용 임시가옥)을 전부 철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시 간부는 전했다. 아파트 건설 현장 옆 판팡에 거주하는 후자이룽(胡再蓉·41·여)은 “지난 1년은 정말 악몽같았다.”며 “이런재앙은 두번 다시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stinger@seoul.co.kr 두장옌 의료센터 9월 완공… 외곽은 여전히 폐허 ■복구공사 지역별 큰 차이 ┃두장옌ㆍ몐양ㆍ몐주(쓰촨성) 박홍환특파원┃쓰촨(四川)성 정부가 설명하고, 보여주는 ‘복구 및 신설현장’은대단했다.  특히 두장옌(都江堰)시의 경우, 상하이시의 지원을 받아 ‘속도전’양상으로 건물이 올라가고 있었다. 지상 11층, 지하 1층에 600병상을 갖춘 초현대식 의료센터는 벌써 8층까지시공이끝났다. 올 9월이면 완공된다. 6억 7000만 위안(약 1300억원)을 투입해 짓고 있 는3000여가구의 영구임대주택 공사도 내년 이맘때면 입주가 모두 끝날 것이라고 시 간부는 설명했다. 지난해 지진당시 신축 중이던 두장옌 고등학교는 보강공사를 거쳐 진도6의 강진에도 끄떡없는 새 학교로 재탄생했다. 3000여명의 전교생을 기숙사에 수용하고 있다.  몐양(綿陽)에서 베이촨(北川)으로 통하는 길목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특히 베이촨현 입구의 창(羌)족 거주지는 대부분 깨끗하게 복구가 끝나 있었다. 복구공사에 필요한 시멘트 등 건설자재를 현장에서 자급하기 위해서인지 대규모 시멘트 공장도 건설 중이다.  하지만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여전히별진전이 없었다. 몐주(綿竹)에서 한왕(漢旺)에 이르는 도로는 패고 깨진 상태로 방치돼 건설장비 등이 제 속도를 내지 못했고, 무너진 다리도 이제야 복구가 시작됐다. 복구가 늦어지면서 판팡(板房·이재민용 임시가옥) 거주 이재민들의 불만도 속출하고 있다. 몐주에서 만난 셰(謝·45)모씨는 “정부는 관공서나 공장 먼저 복구작업을 하고있다.”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비만오면 질퍽거리는 판팡에서 살아야 하느냐.”고 하소연했다.   stinger@seoul.co.kr “학교 보강공사만 했어도… 정부는현장접근막아” ■외동딸 잃은 어머니의 절규 ┃두장옌(쓰촨성) 박홍환특파원┃“몇 십년된 주택도 멀쩡했는데 왜 학교가 무너지나 부모들의 지적을 받고, 보강공사만 했어도 우리 아이가 그렇게 비참하게 가진 않았을 거예요. 며칠만 지나면 졸업이었는데….” 지난해 지진당시두장옌(都江堰)시 쥐위안(聚源)중학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외동딸 장옌(張燕)을 잃은 우쿤췬(吳坤群·사진·38)은 1년이 지난지금까지 딸의 옷이며 학용품이며 인형 등을 소중하게 어루만지며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쥐위안 중학에서는 지난해 지진으로 240여명의학생이 희생됐다. 철근을 빼먹은 부실공사 소문이 그치지 않아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교실 베란다에는 나가지 말라.”고 지시했고, 학부모회의에서도 보강공사 요구가 그치지 않았지만 결국 무시했다가 참사를 빚었다. 당국은 참사 이후 철저하게 피해 학부모들을 감시하고 있다. 한 두명이라도 모일라치면 금세 누군가 찾아왔다. 지난달 청명절때는 폐허가 된 학교에서 향을 피우려다 두들겨 맞기까지했다.   실제 폐허가 된 쥐위안 중학은 철저하게 봉쇄돼 있었다. 8일 오후 현장을 방문, 취재에 나서자 즉각 공안(경찰)이 나타나 저지했다. 그는 “당국의 지시”라고만 말했다. 몐주(綿竹)시한왕(漢旺)진 등 곳곳에는 집회금지를 알리는 공고문이 나붙어 있었다. 중국 정부가 공식 발표한 피해학생 규모는 5335명. 중국 주택건설부 고위간부는 9일 “학교 붕괴 원인은 매우 복잡해 결론내기 힘들다.”며 조사결과 발표가 늦어지는 이유를 밝혔다. stinger@seoul.co.kr
  • [노무현 소환 이후] 새벽 5시55분 사저 도착… 하루종일 휴식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로 침통한 하루를 보냈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은 1일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55분쯤 봉하마을 사저에 도착한 뒤 하루종일 휴식을 취하는 듯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은 출두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저 옆 주차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머리를 조금 숙이고 말없이 걸어서 사저로 들어갔다.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 등 100여명은 사저 앞 도로 양편에서 현수막과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귀가하는 노 전 대통령을 환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 앞에 멈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사저 대문에서 귀가하는 노 전 대통령에게 목례를 했다. 전날 검찰에 출두하는 남편을 눈물로 배웅했던 권양숙 여사는 냉정을 되찾은 모습으로 현관 입구에서 맞았다. 한 측근은 권 여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출발할 때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냉정을 찾은 것 같더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 내외와 주변 인사들은 사저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뒤, 노 전 대통령 내외는 내실로 들어갔고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돌아갔다.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께서 많이 피곤해하신다.”며 “오늘은 일단 쉬고 앞으로의 상황은 천천히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 동행했던 김 비서관도 일찌감치 사저를 나와 퇴근했다.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대로 다 했다.”며 “오늘은 경황이 없고 노 전 대통령도 쉬어야 하니 (앞으로 대응 방향은) 추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와 귀가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국내외 수백명의 취재진도 이날 오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盧 전대통령 소환] 끝내 눈물 뿌린 권양숙 여사

    [盧 전대통령 소환] 끝내 눈물 뿌린 권양숙 여사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출두한 30일 부인 권양숙 여사는 사저를 나서는 남편 노 전 대통령을 울면서 눈물로 배웅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한 한 비서관은 “권 여사께서는 (노 전 대통령을 배웅하면서) 우시기만 하고 별 말씀이 없었다.”며 출두 직전 사저 안의 침통하고 착잡한 분위기를 전했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권 여사는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다고 마음 아파하는 것 같다.”며 “자책감이나 미안한 마음이 매우 강한 것 같다.”고 권 여사의 심경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7시57분쯤 사저 현관을 나오다 뭔가 잊은 게 있는 듯 현관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잠시 뒤 나왔다. 주변에서는 눈물을 보인 권 여사를 위로하기 위해 들어갔던 것으로 짐작한다.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은 “권 여사는 평소 책을 보는 등 사저에서 조용히 지내신다.”며 “권 여사가 검찰에서 조사를 받은 뒤 지치고 힘들어 하셨지만 심신을 회복해 가는 상태”라고 밝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사과문을 발표한 뒤 권 여사는 지난 11일 부산지검에서 비공개 소환조사를 받았다. 권 여사는 자신이 돈을 받았다고 했는데도 검찰이 남편만 겨냥하는 것에 불만스러워하며 남편에게도 미안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을 눈물로 배웅한 권 여사는 복잡하고 착잡한 심경 속에 이날 남편의 무사 귀가를 빌며 길고 긴 하루를 보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盧 전대통령 소환] 정치권 반응

    정치권은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초점은 달랐다.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이 자연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여권 실세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한나라, “ 진실 밝혀야”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아닌 국민에게 진술하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재임기간 중 ‘구 시대의 막내’라고 했던 만큼 불미스러운 일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이번이 마침표가 되기를 염원한다.”고 논평했다. 조 대변인은 “검찰은 최대한 증거에 의해 수사해야 하고, 노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나 변호사 신분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광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던 노 전 대통령이 그와 똑같은 죄목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고 하니 슬프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이상 우리나라에 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없다.”며 아예 언급을 삼갔다. ●민주, “살아있는 권력도 견제를” 민주당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권 실세에 대한 수사를 외면하는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4·29 재·보선의 수도권 승리를 자화자찬하며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김유정 대변인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고 전제한 뒤 “오늘 소환조사를 끝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하며 무엇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모든 의혹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살아 숨쉬는 권력 실세들에 대한 수사에도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여러가지로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말씀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가 여당 시절에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민심 전달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한다.”면서 “지금 현상도 마찬가지다. ‘죽은 권력’은 난도질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에는 재갈을 물리는 현실을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대통령제에 대한 제도적 모순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국민적인 의혹을 남김없이 모두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노, “졸렬한 정치 보복” 친노 인사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 들렀다가 기자들과 만나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되살리는 이명박 대통령은 어리석은 대통령”이라면서 “증거가 있으면 법정에 내놓고 기소하면 되지, 확정되지 않은 사실들을 언론에 흘리며 모욕주는 것은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유 전 장관은 이어 “옛날에는 군인들이 정치를 했는데 요즘은 검사들이 정치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나라가 어려운데 국민들 마음을 찢어 놓고 이런 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盧 전대통령 소환] 檢 “조사 협조를” 盧 “서로의 입장 존중을”

    30일 오후 1시33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본관 703호 중앙수사부장실. 우전녹차의 여유로운 향과 달리 날선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피의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마주 앉은 이인규 중수부장은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 대통령님을 소환조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그럼요.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가득한 검찰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겠죠.”라고 답했다. 듣기에 따라 검찰을 비꼬는 말로도 들릴 법했다. 이 중수부장과 그 옆에 앉은 홍만표 수사기획관의 표정은 순간 굳어졌다. 반면 노 전 대통령 옆에 앉은 문재인· 전해철 변호사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어 노 전 대통령은 “어쨌든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른 것에 면목이 없군요.”라고 말했다. 11층 특별조사실로 가야 할 시간이 가까워오자 이 중수부장은 “이 수사를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고, 조사시간도 많지 않으니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잘 협조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사과정에서 검찰의 프레임과 제가 말하는 사실이 다를지라도 서로의 입장을 존중했으면 좋겠네요.”라고 말했다. 검찰의 시나리오와 노 전 대통령의 진술이 다르다면,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내 놓으라는 말이다. 만약 증거가 없다면 “상식적으로 몰랐을 리 없다.”고 우기지 말라는 것이다. 분위기가 다시 어색해지자 노 전 대통령은 “자 이제 가야 할 것 같네요. 차 잘 마셨습니다.”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 중수부장은 노 전 대통령을 배웅한 뒤, 바로 임채진 총장에게 ‘티 타임’에서 오간 이야기를 보고했다. 수사에 적극 대응하겠다던 홈페이지의 글이 빈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홍 수사기획관과 이 중수부장은 폐쇄회로(CC)TV를 통해 조사실 상황을 지켜보며 조사 진행이 막힐 때마다 시시각각 총장에게 보고하고, 노 전 대통령을 조사하고 있는 우병우 중수1과장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이날 대검 수사라인은 숨가쁜 모습이었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유시민 “정권과 검찰이 졸렬한 정치보복”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검찰 출두를 위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기에 앞서 사저를 찾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을 싸잡아 비난했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출발하기 1시간 전인 오전 7시쯤 사저 입구로 통하는 골목길에서 선 채로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여정부 시절 측근들이 주위에 서있었다. 유 전 장관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왔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나 어리석은 대통령 아니냐.왜 의미없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되살리려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옛날엔 군인들이 정치했는데 요새는 검사들이 정치하는 것 같다.나라가 어려운데 국민들 마음 찢어놓고 이런 식으로 국가를 운영해서 대체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이런 것들에 대해 이 대통령도 그러시고 검사들도 다시 좀 생각해 보자,이런 말 드리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특별히 메시지를 준비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유 전 장관은 “잘 다녀오시라고 배웅하고,피의자로서 가시는 거니까 피의자로서 잘 대처하시고 그렇게 오셔야겠지요.”라고 말한 뒤 “검찰이 증거가 있으면 법정(에) 내놓고 기소하면 되지,이렇게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모욕 주고 소환하고 이런 것들은 법률가로서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끝으로 그는 “졸렬한 정치보복인데 이런 보복을 노 (전) 대통령이 잘 이겨내시고,갔다 오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회초리/김성호 논설위원

    20년 전쯤 피터 위어 감독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국내에서 크게 흥행했다. 그 영화속 주인공 키팅(로빈 윌리엄스분) 선생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영어교사로 부임, 권위와 전통으로 똘똘 뭉친 교풍에 맞서 ‘다양한 생각으로 오늘을 살라.’며 학생들이 참다운 삶에 눈뜨도록 만들어 가는 인상적인 캐릭터이다. 엄한 분위기의 학교 생활에 익숙한 탓에 독특한 교수법을 이해하지 못하던 학생들. 결국 학교에서 추방당하는 키팅 선생에게 ‘캡틴 마이 캡틴’을 외치며 눈물의 배웅을 하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대학 진학을 겨냥한 입시준비의 치열한 경쟁공간쯤으로 바뀐 우리 학교며 교사들과 클로즈업돼 전해지는 울림이 강하다. 영화속 미국 교사, 키팅처럼 참교육과 이른바 ‘죽은 교육’의 틈새에서 갈등하는 일선 교사들은 우리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키팅이 서클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해 학생들을 이끌었던 것처럼 교육의 참 가치를 펴기 위한 교사들의 힘겨운 노력과 갈등은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런데 키팅의 인내와 사랑 방식과는 다르게 우리네 일선 교육현장에서 교사들이 자주 쓰는 체벌은 선(善)보다는 악(惡)에 가까운 방편으로 통한다. 제자들을 바로 이끌려는 교사 자신들의 의식과 숨가쁘게 쳇바퀴 도는 일선 학교현장 틀의 간극에서 손쉽고 급하게 제재를 가하는 ‘못된 수단’으로 눈총받는다. 최근 어떤 교사는 여학생에게 치마를 벗게 하는 수준 미달의 체벌을 가하기도 했다. 무질서와 혼돈의 학교를 회초리로 다스려 일으켜 세운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한 초등학교 교장 이야기가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 최근호에 실려 눈길을 끈다. 대부분이 저소득층인 학생들을 못 이겨 교사가 떠날 만큼 난장판이던 학교를 회초리를 든 지 3년 만에 학교설립 35년 이래 처음으로 주정부 교육당국이 수여하는 상을 3개나 받는 학교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보다 체벌에 대한 반대가 거센 미국에선 흔치않은 일이다. 학부모들이 이젠 회초리 체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고 한다. 우리 교사들은 회초리를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유시민 “정권과 검찰이 졸렬한 정치보복”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검찰 출두를 위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기에 앞서 사저를 찾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이명박 대통령과 검찰을 싸잡아 비난했다.  유 전 장관은 노 전 대통령이 사저를 출발하기 1시간 전인 오전 7시쯤 사저 입구로 통하는 골목길에서 선 채로 짤막한 인터뷰를 가졌다.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최민희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등 참여정부 시절 측근들이 주위에 서있었다.  유 전 장관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왔다.”며 “이명박 대통령이 너무나 어리석은 대통령 아니냐.왜 의미없는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되살리려는지 안타까운 심정”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옛날엔 군인들이 정치했는데 요새는 검사들이 정치하는 것 같다.나라가 어려운데 국민들 마음 찢어놓고 이런 식으로 국가를 운영해서 대체 국민에게 무슨 도움이 되는지,이런 것들에 대해 이 대통령도 그러시고 검사들도 다시 좀 생각해 보자,이런 말 드리고 싶다.”라고 덧붙였다.  노 전 대통령을 응원하기 위해 특별히 메시지를 준비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유 전 장관은 “잘 다녀오시라고 배웅하고,피의자로서 가시는 거니까 피의자로서 잘 대처하시고 그렇게 오셔야겠지요.”라고 말한 뒤 “검찰이 증거가 있으면 법정(에) 내놓고 기소하면 되지,이렇게 확정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에 흘리고 모욕 주고 소환하고 이런 것들은 법률가로서 행위가 아니라 정치 행위”라고 날을 세웠다.  끝으로 그는 “졸렬한 정치보복인데 이런 보복을 노 (전) 대통령이 잘 이겨내시고,갔다 오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NOW포토] 김장훈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한일 팬들

    [NOW포토] 김장훈을 배웅하기 위해 모인 한일 팬들

    그룹 UN 출신 연기자 김정훈(29)이 28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306보충대 현역 입소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정훈은 이날 오후 1시 경기 의정부 306보충대에 입소, 5주간의 신병교육을 받고 현역병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의정부)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김정훈씨 배웅하러 왔어요”

    [NOW포토] “김정훈씨 배웅하러 왔어요”

    28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306보충대대를 통해 입소하는 가수 겸 배우 김정훈을 보기위해 500여명의 한중일 팬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모여 있다. 서울신문NTN(의정부)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한일 팬들 ‘김정훈을 찍어라’

    [NOW포토] 한일 팬들 ‘김정훈을 찍어라’

    그룹 UN 출신 연기자 김정훈(29)이 28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306보충대 현역 입소에 앞서 포토타임을 하는 가운데 500여명의 한일 팬들이 김정훈을 배웅하고 있다. 김정훈은 이날 오후 1시 경기 의정부 306보충대에 입소, 5주간의 신병교육을 받고 현역병으로 복무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의정부)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NOW포토] “김정훈씨 2년후에 만나요”

    [NOW포토] “김정훈씨 2년후에 만나요”

    28일 오전 경기도 의정부 306보충대대를 통해 입소하는 가수 겸 배우 김정훈을 보기위해 500여명의 한중일 팬들이 그를 배웅하기 위해 모여 있다. 서울신문NTN(의정부) 한윤종 기자 han0709@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日팬 인터뷰] 김정훈, 열광하는 이유 “동안외모에 브레인스타”

    [日팬 인터뷰] 김정훈, 열광하는 이유 “동안외모에 브레인스타”

    김정훈(29)의 입대 현장 만큼 많은 해외팬 인파가 몰려든 경우도 드물었다. 이토록 많은 해외 팬들이 그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28일 김정훈은 일본, 중국 등에서 건너 온 약 500여명의 해외팬들의 배웅을 받으며 어떤 한류스타 보다 화려한 입소식을 치뤘다. 김정훈은 지난 3년간 일본에서 더욱 활발한 활동을 펼치다 갑작스레 입대를 발표한 케이스다. 때문에 현장에 모인 팬들도 약 80-90% 이상이 해외팬에 해당돼 경호원들은 현장 통제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김정훈을 보기 위해 일본 도쿄에서 4일 전(지난 24일)부터 한국에 건너왔다.”고 밝힌 ‘김정훈 일본 공식 팬클럽’ 회원 16명을 취재했다. 그들은 “김정훈을 2006년작 MBC 드라마 ‘궁’을 통해 알게 됐다.”고 밝히며 그의 3대 매력으로 동안 외모, 달콤한 목소리, 브레인 스타인 점을 꼽았다. [ 다음은 일본 팬 16명과 가진 일문일답 ] - 일본 어디에서 언제 왔는가? 16명 중 일부는 도쿄, 일부는 후쿠오카 출신이며 김정훈의 입대 모습을 보기 위해 지난 24일 밤 비행기로 한국에 도착했다. 오늘 입대 현장에는 오전 9시 반에 도착했다. - 입대 현장에 나온 심정이 어떤가? 슬프고 2년 동안 (김정훈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 일본에서 김정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언제,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가? 2006년 한국 드라마인 ‘궁’을 통해서다. 김정훈은 이 드라마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 일본인들은 김정훈의 어떤 매력에 열광하는가? 첫 번째 귀엽고 동안인 외모다. 특히 큰 눈망울이 예쁘다. 두 번째 목소리다. 달콤한 목소리가 노래 부를 때 더욱 듣기 좋다. 세번째 브레인 연예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일본 방송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 ‘스마트 스타’로 인정받았다. - 예전 일본에서 김정훈을 만난 적이 있는가? 콘서트와 팬미팅 등을 통해 6번이나 만나봤다. 그는 일본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 김정훈은 데뷔 초 UN으로 활동했다. 아는가? 당연히 알고 있다. 같은 멤버였던 최정원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다. - 실례지만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30대에서 40대까지 있다. 일본에서는 주부 층이 드라마를 즐겨 보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연령대가 높긴 하지만 부끄럽지 않다. - 마지막으로 김정훈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2년 뒤에도 오직 김정훈을 기다리겠다. 슬프지만 돌아와서 더 좋은 활동을 보여줄꺼라 믿는다. 일본에서 다시 활짝 웃는 모습의 김정훈을 보길 바란다. 한편 김정훈은 28일 오후 1시 30분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306보충대에 입소해 2년 간 현역으로 군복무에 임하게 됐다. 지난 2000년 최정원과 함께 2인조 보컬 그룹 UN을 결성해 5년간 가수로 활동한 김정훈은 이후 연기자로 변신,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영역을 넓혔다. 입대 직전까지 한일을 오가며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던 그는 입대 후 빈 자리를 솔로 앨범과 영화로 대신한다. 오는 6월 부터 일본에서 싱글 앨범 2장과 정규 앨범 1장 등 총 3장의 음반이 발표될 예정이며 국내에도 싱글 앨범이 공개된다. 영화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정훈은 입대 전 한일합작 영화 ‘카페 서울’의 촬영을 마쳤으며 이 작품은 오는 7월 일본 전역에 개봉된다. 국내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의정부 경기도)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30살 입대’ 김정훈 “노장 말 안듣도록…” (일문일답)

    ‘30살 입대’ 김정훈 “노장 말 안듣도록…” (일문일답)

    남성듀오 UN 출신 가수 겸 배우 김정훈(29)이 입대 직전 소감을 밝혔다. 김정훈은 28일 오후 1시 30분 경기도 의정부시 용현동 306보충대에 입소해 2년 간 현역으로 군복무를 하게 된다. 이날 현장에는 약 500여명의 한중일 팬들이 몰려들어 그를 배웅했으며 김정훈은 입소 전인 1시 께 짧은 팬미팅을 가졌다. 취재진의 요청에 따라 캡 모자를 벗던 그는 쑥쓰러운 듯 두 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김정훈은 입대 전 가장 생각나는 사람으로 어머니를 꼽으며 “입대 직전 어머니와 식사를 했는데 인사도 제대로 나누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털어놨다. ’엄친아’라는 별명에 대해 “민망하다.”고 답한 그는 군대에 가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에 대해 총쏘기와 수류탄 던지기를 언급했다. 또한 늦은 나이에 군대를 가게 된 상황에 대해 “노장이라 많이 봐준다고 들었다.”고 재치를 말한 후 “나이 때문이란 얘기를 듣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고 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 다음은 김정훈과 나눈 일문일답 ] - 입대 전 소감이 어떤가? 한국에서는 2-3년 밖에 활동하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가게 됐다. 나름대로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재미있는 경험을 쌓았다. 2년 후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더 나은 모습으로 서겠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 현역병으로 지원한 이유는? 훈련소 생활을 마친 후 연예병사로 복무하게 될 지 결정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 음반 발매를 앞두고 입대하는데? 한국 활동이 너무 없었던 것 같아 국내 팬들께 사죄드리는 마음으로 열심히 만들었다. - 입대 전 격려해 준 연예인은? 홍경민 씨가 녹음실에서 만나 많은 격려의 이야기를 해줬다. - 면회 오기로 한 연예인이 있는가? 들어간 후 통화를 해봐야 알 수 있다. - 연기 생활을 끝까지 열심히 했는데 아쉬움이 없는가? 담담한 심정이다. 누구나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다. 2년간 내공을 쌓은 후 돌아왔을 때는 더욱 즐기며 활동할 수 있는 제가 되겠다. - 군대에서 가장 해보고 싶은 훈련은? 총쏘기와 수류탄 던지기를 해보고 싶다. - ‘엄친아’ 로 불렸는데 군생활에 영향이 있나? 그런 얘기를 들어 민망하다. 하지만 그런 시선 때문에 더욱 나쁜 짓을 하지 못하고 열심히 해왔던 것 같다. - 누가 제일 생각 나는가? 어머니다. 입대 전 어머니 앞에서 식사를 하고 왔는데 인사도 잘 나누지 못하고 왔다. 아버지와 친구들도 생각난다. - 나이가 다소 많은데 걱정되지 않는가? 노장은 많이 봐준다고 들었다.(웃음) 나이 때문이 아니란 얘기를 듣도록 더욱 열심히 할 생각이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경기도 어렵고 많이 힘드실텐데 건강하시길 바란다. 2년 후 더 나은 김정훈이 되어 돌아오겠다. 감사드린다. 한편 김정훈은 지난 2000년 최정원과 2인조 보컬 그룹 UN을 결성해 5년간 가수로 활동한 후 연기자로 변신, 다수의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자로 영역을 넓혔다. 입대 직전까지 한일을 오가며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했던 그는 입대 후 빈 자리를 솔로 앨범 및 영화로 대신한다. 김정훈은 오는 6월 부터 일본에서 싱글 앨범 2장과 정규 앨범 1장을 포함해 총 3장의 음반을 발표할 계획이며 국내에는 싱글 앨범이 공개된다. 영화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정훈은 입대 전 한일합작 영화 ‘카페 서울’의 촬영을 마쳤으며 이 작품은 오는 7월 일본 전역에 개봉된다. 국내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의정부 경기) 최정주 기자 joojoo@seoulntn.com / 사진 = 한윤종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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