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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하의도 생가터 흙 한줌 뿌리며… 유족들 눈물로 작별

    ■안장 김대중 전 대통령은 23일 오후 국립 서울현충원에서 파란만장한 이승에서의 삶을 접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인동초(忍冬草)의 ‘후회 없는 삶’이 산 자들에게는 새로운 과제로 남겨지는 순간이었다.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한 참석자들은 이별의 아쉬움과 유지(遺志) 계승의 각오를 눈물로 대신했다. 고인을 실은 영구차는 당초 예정 시간인 오후 5시 직전 서울현충원에 도착했다. 안장식은 고인을 태운 운구 차량이 국가원수 묘역에 도착한 뒤 곧바로 진행됐다. 장엄하고 차분했지만, 고인을 보내는 이들은 한결같이 안타깝고 침통한 표정이었다. 이희호 여사와 직계가족, 장의위원, 민주당 및 동교동계 인사, 국민의 정부 관계자, 전직 비서관, 김대중평화센터 관계자, 일반 시민 등 300여명이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국군 의장대의 조악 연주와 함께 고인과 이별하는 마지막 의식이 시작됐다. 고인에 대한 경례와 종교의식에 이어 헌화 및 분향, 하관, 흙을 관 위에 뿌리는 허토 의식이 순서대로 이뤄졌다. 종교의식은 천주교에 이어 기독교, 불교, 원불교 순으로 치러졌다. 천주교 의식은 고인과 각별한 사이인 함세웅 신부가 집전했다. 불교는 조계사 주지 세민 스님, 기독교는 이해동 목사, 원불교는 이선종 서울교구장이 집전했다. 하관식을 위해 고인이 이동하자 이 여사를 비롯해 유가족과 참석자들은 참았던 울음을 조금씩 토해냈다. 고인을 실은 향나무관이 아래로 내려가자 유족들의 울음 소리는 높아졌다. 이어 허토 의식이 진행되자 참석자들은 하나같이 오열하며 고인과의 이별을 안타까워했다. 허토 의식은 이 여사가 먼저 흙을 뿌리며 시작됐다. 이어 홍일·홍업·홍걸씨, 친인척, 고인의 전직 비서관, 장의위원 관계자, 민주당 인사, 국민의 정부 인사, 현 비서실 인사, 일반 조문객 순으로 진행됐다. 고인의 관에 흙이 뿌려질 때마다 참석자들은 마지막 인사를 건네며 영면을 기원했다. 고인의 고향인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 터에서 가져온 흙 한 줌도 고인과 함께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임하던 이 여사도 허토 의식을 마친 뒤 꾹꾹 눌러 왔던 감정이 터진 듯 눈물을 쏟아냈다.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으면서도 이 여사는 눈물이 범벅이 된 채 한참 동안 오열했다. 홍걸씨가 옆에서 이 여사의 등을 어루만지며 슬픔을 나눴다. 이어 군악대의 진혼곡과 조악 연주를 뒤로한 채 고인은 이승에서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정치권의 한 참석자는 안장식을 마친 뒤 “국장 기간 내내 고인의 생전 말씀과 인연을 떠올리며 하루하루 버텼지만, 끝내 이렇게 가시고 나니 이제야 ‘김대중’과 함께 ‘한 시대’를 보냈다는 사실이 엄청난 중압감으로 밀려온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참석자는 “그분의 마지막 길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주의와 남북화해의 과제를 엄중히 이어 가겠다.”면서 “그것이 ‘김대중’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몫”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김민희 허백윤기자 kjh@seoul.co.kr
  •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우리의 소원~” 울려 퍼진 서울광장

    [김대중 前대통령 국장] “우리의 소원~” 울려 퍼진 서울광장

    ■운구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러진 23일 오후. 막바지 여름햇볕은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열기만큼이나 뜨거웠다. 영결식이 치러진 국회 주변과 운구행렬이 지나간 서울 동교동 사저, 서울광장, 서울역은 오전부터 김 전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배웅하기 위한 추모 인파로 가득 찼다. ●동교동 사저 도착 사저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김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오후 3시47분쯤 운구차가 사저에 도착하자 고인이 평소에 다녔던 서교동성당 성가대 20여명이 ‘고통도 없으리라’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등 15곡의 성가를 이어 부르며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안숙선 명창은 사저 정원에서 이희호 여사의 마지막 편지를 토대로 만든 추도창을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사저 옆집에 살고 있는 주부 황영이(59)씨는 30년 이웃사촌을 떠나보내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황씨는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집 아저씨와 같은 이발소에, 나는 이희호 여사와 같은 동네 미용실에 다녔다.”면서 “소박하고 겸손한 이웃이었고 모든 동네 사람들이 존경했는데 이제 영영 떠나신다니 믿을 수가 없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대중·이희호라는 부부 공동문패가 붙은 대문이 열리며 손자 김종대씨가 영정을 들고 사저 안으로 들어가 고인이 주로 시간을 보냈던 1층 거실과 3만여권의 장서로 채워진 2층 서재, 투석치료실 등을 차례로 들렀다. 서재에는 ‘윤집궐중’(允執厥中·진실로 그 가운데를 취하라)이라는 백범 김구의 친필 휘호가 적힌 족자가 유리 액자로 걸려 있었다. 밖으로 나온 김 전 대통령의 영정은 사저 정원을 돌아 조금 떨어진 김대중도서관으로 향했다. 김대중도서관에는 고인의 파란만장한 85년의 삶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과 친필 원고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영정은 도서관 5층 집무실과 2층 전시실을 일일이 돌아본 뒤 서울광장으로 향했다. ●서울광장 도착 운구행렬은 오후 4시25분쯤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서울광장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이희호 여사는 국장 기간 내내 분향소를 찾아준 국민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 여사는 눈물 젖은 얼굴로 연단에 올라 “남편은 일생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피나는 고통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권력의 회유와 압력이 있었지만 한번도 굴하지 않았다.”면서 “남편이 평생 추구해온 화해와 용서,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며 살겠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라고 말했다. 약 1분간의 이 여사 인사말이 끝나자 시민들은 김 전 대통령의 평생 숙원이었던 남북통일의 마음을 담은 노래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김 전 대통령을 기렸다. 시민들은 운구차량이 서울광장을 떠나자 노란색 풍선을 일제히 날려 보냈다. ●국립현충원 도착 서울광장 분향소의 방명록이 놓여진 곳에 마련된 게시판에는 시민들이 달아 놓고 간 검은 근조 리본과 메모지에 적힌 추모 글귀가 빽빽이 달려 있었다. 이날 오후 5시 현재 서울광장 추모객은 누계 8만 6870명을 기록했고 방명록 700여권이 동났다. 서울역은 특히 고인이 야당 시절 여의도광장, 효창운동장과 함께 즐겨 찾았던 연설장소여서 각별한 추억이 서린 곳이다. 운구행렬이 별도 정차하지 않고 서울역을 그냥 지나치자 지켜 서 있던 시민들은 아쉬운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주부 정윤순(56)씨는 “72년 대선후보 연설 때 형형한 눈빛으로 서민 가슴을 적셔 주던 연설에 ‘김대중’ 석 자를 연호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김 전 대통령 운구행렬은 동작대교를 건너 오후 4시57분쯤 영면 장소인 국립현충원에 도착했다. 이재연 오달란기자 oscal@seoul.co.kr
  • ‘엠씨더맥스’ 전민혁 공군 입대…조인성 후임

    ‘엠씨더맥스’ 전민혁 공군 입대…조인성 후임

    그룹 엠씨더맥스의 드러머 전민혁(28ㆍ본명 전홍만)이 멤버 제이윤과 팬들의 배웅을 받으며 입대했다. 전민혁은 27일 오후 경남 진주시 공군 교육사령부에 입대, 6주간의 기초 군사훈련을 받고 4주간 군악대 훈련을 받은 뒤 자대 배치를 받게 된다. 전민혁은 공군 군악대에 지원, 조인성의 후임이 된다. 27일 오전 자택에서 부모님과 함께 훈련소로 출발한 전민혁은 매니저와 현장을 찾은 동료 멤버 제이윤을 만나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전민혁은 훈련소를 찾은 팬들에게 “이렇게 많이 와줄 줄 몰랐는데 고맙다. 군 생활 동안 성장해서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인사말을 남겼다. 한편 엠씨더맥스의 보컬 이수는 지난달 25일 입소했고 또 다른 멤버 제이윤도 올해 입소를 앞두고 있다. 엠씨더맥스의 멤버들의 입소를 앞두고 지난달 18일 스페셜 음반 ‘리와인드 앤 리마인드’를 발표했다. 사진제공 = 비타민엔터테인먼트 / 사진설명 = 전민혁(왼쪽) 이수(가운데) 제이윤(오른쪽)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千, 빗속 비공개 퇴장

    千, 빗속 비공개 퇴장

    기업인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인해 검찰총장 후보에서 낙마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이 17일 퇴임식을 마지막으로 24년의 검사생활을 끝냈다. 퇴임식은 곱지 않은 여론을 의식한 듯 차장검사 이하 부·과장 등 간부 40여명만 참석한 가운데 소회의실에서 비공개로 열렸다. 일반적으로 검찰 고위간부의 퇴임식이 대강당에서 전 직원이 모인 가운데 진행됐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퇴임식은 천 지검장이 “그동안 검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들께서 베풀어 주신 한없는 성원과 사랑 덕분이었다. 아울러 이번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과 검찰 조직에 심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하여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는 내용의 퇴임사를 읽고 간단히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퇴임식 직후 1층 로비로 내려온 천 지검장은 어둡지 않은 표정으로 “그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 차장검사 3명과 차례로 악수를 한 뒤 관용차에 올라 때마침 쏟아지기 시작한 장맛비 속으로 사라졌다. 전 직원이 기념촬영도 하고, 큰 박수로 보냈던 그동안의 관행과 달리 부장검사들만 청사 앞에 나와 박수로 천 지검장을 보냈다. 한편 이날 청사 앞에서 일부 부장검사들이 책 한 권씩을 들고 천 지검장을 배웅했다. 천 지검장은 직원들에게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신청받아 선물해 왔는데, 미처 주지 못한 부장검사들이 있어 이날 마지막으로 책을 증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 [굿바이 마이클] 황제의 ‘마지막 쇼’… 지구촌 팬 가슴에 묻다

    [굿바이 마이클] 황제의 ‘마지막 쇼’… 지구촌 팬 가슴에 묻다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서울 정서린기자│“잭슨의 죽음으로 내 영혼의 일부도 함께 떠났다.” ‘팝의 전설’ 마이클 잭슨의 장례식이 치러진 7일(현지시간). 전 세계 팬들의 가슴에 깃든 ‘음악의 영혼’도 함께 묻혔다. 마이클 잭슨 장례식 동영상 ’I’ll be there’ 보러가기 스티브 원더 보러가기 ’Gone too soon’ 보러가기 브룩 쉴즈 눈물 보러가기 ’Heal the world’ 보러가기 딸 패리스 보러가기 이날 오전 10시 장례식이 엄수된 미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스테이플스센터 주변에는 잭슨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려는 수십만 팬들이 애도의 물결을 이뤘다. 생전에도 최고의 쇼를 선보이려 애썼던 잭슨은 자신의 죽음까지도 ‘지상 최대의 쇼’로 마무리했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인 90분간의 장례식에서 스테이플스센터와 노키아 극장에 자리 잡은 2만명의 팬과 가족, 친구들의 얼굴에는 흥분보다 슬픔이 짙게 드리웠다. 장례식에 참석한 팬 마이너 그라시아(29)는 “우리 어머니는 엘비스 프레슬리를 사랑했다. 잭슨은 나의 엘비스였다.”고 했다. 잭슨이 영원히 잠들 곳도 정해졌다. 장례식을 끝으로 잭슨은 LA 포레스트론시의 공원묘지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게 됐다. 이곳은 클라크 게이블과 험프리 보가트 등 할리우드의 대배우들이 묻힌 장소다. ●리즈 “슬픔 가눌 길 없어” 참석 고사 이날 장례식에는 잭슨의 친구나 팬이었던 전 세계 톱스타들이 총집결했다. 스티비 원더, 머라이어 캐리, 라이오넬 리치, 어셔, 존 메이어, 제니퍼 허드슨 등 팝가수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음악으로 고인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잭슨의 옛 연인 브룩 실즈와 농구선수 매직 존슨, 코비 브라이언트,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아들 마틴 루터 킹 3세 등 유명 인사도 식장을 찾아 애도했다. 잭슨이 유언장을 통해 ‘제2의 후견인’으로 지정했던 다이애나 로스는 이날 장례식 개막 연설에 나섰다. 추도사는 잭슨의 절친한 벗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낭독할 것으로 예견됐다. 그러나 테일러는 “내가 느끼는 슬픔은 잭슨과 나만이 공유하는 것이지 공적인 이벤트가 아니다.”라며 비통함을 가눌 길이 없어 제안을 고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이날 보도했다. 잭슨의 두 번째 전처인 데비 로도 당초 참석하기로 했으나 “언론의 공세가 불필요한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며 결정을 번복했다. 이날 장례식 현장은 ABC, NBC 등 미국 지상파 등 수십개 방송사와 50여개 극장에서 생중계됐다. ●“골든 티켓 따냈어요!” 160만명이 경합을 벌였던 장례식 입장권은 사전 추첨을 통해 8750명에게 2장씩 미리 배포됐다. 그러나 일부 당첨자들은 무료 티켓으로 ‘돈벌이’에 나섰다고 AP 등이 보도했다. 6일 이베이나 크레이그리스트 같은 온라인 경매 사이트에 매물로 나온 티켓은 수백달러에서 수천달러를 호가했다. 최대 9999달러(약 12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티켓에 당첨된 팬들은 “골든 티켓을 따냈다.”며 감격에 겨워했다. 돈트 지어웨이(33)는 이날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잭슨의 대명사인 ‘문워크’ 춤을 췄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700달러를 들여 버팔로에서 LA까지 날아왔다는 그는 스테이플스센터 앞에서 처음 만난 스위스 여성 셀린 알타우스(27)에게 나머지 한 장을 건넸다. 알타우스는 잭슨의 장례식을 조금이나마 가까이서 보기 위해 스위스에서 미국까지 30시간 비행을 감수했다. ●LA시는 비상! 그러나 호재? 이번 행사로 재정 악화에 직면한 LA시가 예상치 못한 ‘경제특수’를 누리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전 세계 수십만명이 이 도시를 찾으면서 호텔과 식당 예약, 기념품 판매 등 관광 매출이 폭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내 호텔들은 일찌감치 만원 사례를 이뤘고 LA와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행 비행기도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잭슨이 사망한 지난달 25일 이후 지역내 호텔 예약은 이전에 비해 40% 급증했다. LA 관광사무국 대변인 로빈 맥레인은 “이번 장례식은 LA에선 전례없는 이벤트”라며 “400만달러의 수익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장례식 비용에만 250만달러가 들 것으로 추산되면서 누가 이 비용을 댈지가 이후의 관건으로 떠올랐다. rin@seoul.co.kr
  • 김보연 “선덕여왕 속 내 남편이 제일 섹시”

    김보연 “선덕여왕 속 내 남편이 제일 섹시”

    탤런트 김보연이 ‘내조의 여왕’을 자처했다.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의 정부로 맹활약 중인 전노민의 부인 김보연은 지난 1일 용인세트장을 찾아 스태프들에게 떡을 돌리며 응원했다. 이번 방문이 벌써 두 번째인 김보연은 평소 남편의 연기를 꼼꼼히 모니터 하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고. 김보연은 “한편도 빼놓지 않고 열심히 보고 있다. 시청자들이 우리 남편이 섹시하다고 해서 신이 난다.”며 웃었다. 한편 전노민은 지난 12회 촬영 중 미실이 다른 남자에 관심을 보이자 분노하며 술잔을 깨트리는 장면에서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네 바늘이나 꿰매는 부상을 입었다. 이에 전노민은 “NG 걱정에 아픔을 참고 촬영했다. 다행이 응급처치를 해서 큰 부상은 막았다.”고 말했다. 이를 본 아내 김보연은 “몸 잘 챙기라.”며 다친 손을 어루만졌으며 전노민은 무더위에 용인까지 달려와 준 아내를 배웅하며 잉꼬부부다운 모습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샀다. 사진제공 = MBC 서울신문NTN 우혜영 기자 wo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나눔 바이러스 2009] 매달 공짜 식권 1000장… 세상서 가장 맛난 칼국수

    [나눔 바이러스 2009] 매달 공짜 식권 1000장… 세상서 가장 맛난 칼국수

    충북 청주시 상당구 금천동 주민센터 인근의 한 칼국수집. 노인 5명이 들어오자 정택일(50)씨는 혼자서 구슬땀을 흘리며 칼국수를 만든다. 배가 고팠는지 노인들은 허겁지겁 먹은 뒤 돈 대신 쿠폰을 낸다. 한 노인은 아예 쿠폰도 내지 않는다. 하지만 정씨는 노인들에게 커피까지 주고 또 오시라며 배웅까지 한다. 카운터에는 돈은 없고 처음 보는 쿠폰만 수북이 쌓여 있다. ‘나누리장터’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 이 식당의 정체는 무엇일까. 가게이름이 말해주듯 이곳은 정씨가 사업체 운영을 통해 얻은 이득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며 지난달 초 문을 연 식당이다. 임대보증금에 인테리어 비용 등 가게를 마련하는 데 총 1500만원이 들어갔다. 이 식당에는 세 가지 운영원칙이 있다. ‘음식값은 최대한 저렴하게’, ‘비용은 최소한’, ‘수익금은 사회환원’. 그래서 칼국수값은 다른 가게의 절반도 안 되는 2000원이다. 음식만들기에서 서빙까지 정씨 혼자서 한다. 홀로 사는 노인들이나 저소득층 사람들이 공짜로 자주 이용하라는 뜻에서 지난달 20일에는 금천동 주민센터에 무료식권 2200장을 전달했다. 앞으로 매달 1000장을 지원할 예정이다. 정씨 가게 칼국수 맛이 좋다고 소문나 하루 평균 200여명이 식당을 찾고 있다. 정씨의 직업은 따로 있다. 7년째 아내와 함께 단체급식업체인 ‘맑은샘’을 운영하고 있는 어엿한 ‘사장님’이다. 그가 나누리장터를 시작한 것은 사업체에서 생기는 수입을 불우한 이웃들과 함께 나누기 위해서다. 그는 정신지체 장애를 겪고 있는 딸을 키우고 있어 누구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의 고통을 잘 알고 있다. 정씨는 “맑은샘은 돈을 벌기 위해 운영하는 업체다.”라며 “언제부턴가 조금 여유가 생기자 남을 돕고 싶었다.”고 했다. 그는 올해 말까지 청주에 나누리장터 2곳을 추가로 열 계획이다. 글 사진 청주 남인우기자 niw7263@seoul.co.kr
  • 이상득 “당무 관여 않겠다” …사실상 2선 후퇴

    이상득 “당무 관여 않겠다” …사실상 2선 후퇴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은 3일 “앞으로 당무에 관여하지 않고 정치 현안에서도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라며 사실상 2선 후퇴 의사를 밝혔다.  이 의원은 이날 최고·중진 연석회의에서 “요즘 나를 둘러싸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다.솔직히 말하자면 고통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18대 총선때 부터 국회의원 출마 여부를 놓고 많이 고민했다.”며 “자의든 타의든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한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대해 “내 부덕의 소치”라고 말하면서도 “대부분은 근거없는 소문”이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의원은 “앞으로는 내가 유일하게 당무에 참여하는 최고·중진연석회의도 참가하지 않고 지역구인 포항과 소속 상임위원회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회장을 맡고 있는 한일 의원연맹에만 충실할 것”이라고 덧붙였다.이어 “나는 어떤 경우든 대통령 친인척으로서 심려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당 화합에 동참하되 나는 경제·외교·안보에만 전념하겠다.”고 마무리했다.  발언을 마친 이 의원은 이어진 안상수 원내대표와 박순자 최고위원의 발언이 끝나자 회의 도중 자리를 떠났다.그가 일어서자 박희태 대표 등 참석자들은 잠시 회의를 중단하고 배웅했다.  이 의원의 발언은 당 쇄신특위가 제기한 지도부 책임론과 인적쇄신론을 의식한 것으로 해석된다.쇄신특위는 2일 기자회견에서 당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이상득 의원 2선 후퇴론’에 “현실적 지도부와 내용적 지도부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동의하면서 인적쇄신의 화살이 실제로 이 의원을 겨냥한 것임을 숨기지 않았다.이 의원은 그간 당·청 관계,당내 인사의 막후 조정역을 해왔다는 의혹을 여러 번 받아왔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노 前대통령 국민장] “해처럼 지셨지만 고결한 정신은 달처럼 빛날 것”

    29일 오전 10시48분쯤. 서울 경복궁 동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양쪽에 도열한 의장대가 ‘받들어 총’ 자세로 운구 행렬을 맞았다. 뒤이어 영구차와 유족들이 나타나자 장내는 일순 숙연해졌다. 군악대의 조악 연주에 맞춰 창백한 얼굴의 권양숙 여사가 아들 건호씨와 함께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건호씨의 아내 배정민씨와 딸 정연씨도 뒤를 따랐다. 역대 대통령 중 5번째 영결식이었다. 공동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와 한명숙 전 총리의 조사가 낭독됐다. 4개 종단의 추모의식도 이어졌다. 이날 오전 5시쯤 김해 봉하마을에서 차를 타고 상경한 유족들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권 여사를 비롯한 가족들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를 썼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모르는 어린 두 손녀만 천진하게 놀고 있었다. ●화면속 “바보 정신으로 정치…” 오전 11시50분쯤. 제단 옆 대형 스크린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생전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왔다. 화면 속 노 전 대통령은 “별명 중에서 (바보가)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바보 정신으로 정치하면 나라가 잘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냥 바보하는 게, 그게 그냥 좋아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던 유족과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의 흐느낌이 터져나왔다. 일주일 동안 표정 한번 변하지 않았던 이해찬 전 총리도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이미 눈시울이 붉어 있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격하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백원우 의원 “MB는 사죄하라” 이어서 유가족과 주요 인사들의 헌화가 시작됐다. 권 여사를 비롯, 유족들이 줄지어 흰 국화를 제단에 바쳤다.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헌화하려는 순간, 앞줄에 앉아 있던 민주당의 백원우 의원이 “사죄하라. 어디서 분향해.”라며 소리를 질렀다. 경호원이 입을 틀어막으며 제지했지만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백 의원이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간 뒤에야 이 대통령 내외는 헌화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분향소 앞까지 휠체어를 타고 이동한 뒤 고인의 영정에 국화꽃을 놓기 위해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헌화한 뒤 뒤돌아서 권 여사가 앉아있는 쪽으로 다가간 김 전 대통령은 권 여사의 손을 잡고 위로하다 슬픔이 북받치는지 큰 소리로 통곡했다. 영결식은 국립합창단의 ‘상록수’ 합창, 삼군(육·해·공군) 조총대원들의 조총 발사 의식을 끝으로 마무리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2500여명의 조문객이 참석했다. 추모사를 낭독한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의 주지 명진 스님은 “일락서산월출동(日落西山月出東), 즉 해가 서산에서 지면 달은 동녘에서 뜬다. 지는 해처럼 당신은 떠나가지만 당신의 고결한 정신은 떠오르는 달처럼 빛날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과의 마지막 이별을 애도했다. 김민희 허백윤기자 haru@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 前대통령 국민장]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유언대로 ‘한조각 자연’으로 돌아갔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44분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예상보다 3시간 늦어져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6분.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영구차가 연화장에 도착한 뒤 삼군 의장대 10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옮기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연화장에 모인 8000여명의 추모객들은 ‘노무현’을 연호했고, 일부 추모객들은 흐느꼈다. 권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특별히 승화원 건물 밖에 마련된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렸다. 태극기에 덮인 노 전 대통령의 관이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장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 앞으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권 여사는 고개를 숙인 채 한없이 울기만 했다. 딸 정연씨가 “엄마, 아빠 봐야지.”라고 몇 번이나 설득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후 6시31분쯤 송기인 신부가 기도를 한 뒤 대형유리의 커튼이 닫혔다. 관은 시뻘겋게 달아오른 화장로 안으로 들어갔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30여분간 화장됐다. ●고별 제례 올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장의위원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고별 제례’를 올렸다.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이때 보통의 유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이라고 추모객들은 입을 모았다. ●오후 8시50분 봉화마을 장지로 유골은 18분 정도 냉각과정을 거쳐 유족들에게 인계됐다.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곱게 빻는 분골 과정을 거쳐 향나무 유골함에 담겼다. 운구차는 오후 8시50분쯤 고인의 영원한 안식처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 장지로 향했다. 운구차 이동경로인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 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는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연화장은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다. 연화장측은 조례에서 정한 자치단체장 재량권 규정에 따라 화장료를 면제했다. 수원 김병철 남인우 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편히 가십시오” 봉하마을 2만여명 통곡의 배웅

    사자(死者)가 빈소를 떠나 묘지로 향하는 절차인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은 이날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 옆 분향소에서 엄숙하게 진행됐다. 발인에는 권양숙 여사와 노건호·정연씨, 형 건평씨 등 유족과 친인척,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참모, 이해찬 전 국무총리 등 각료, 봉하마을 주민, 광주 노씨 문중, 시민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석했다. 발인은 노 전 대통령의 영정을 선두로 육·해·공군 의장대 운구병 10명이 태극기에 싸인 고인의 관을 운구차에 옮기는 것으로 시작됐다. ●노 전 대통령 사위가 영정 모셔 이후 상주가 술과 음식을 올리고 절을 하는 견전(遣奠)과 축문 낭독, 유가족이 다시 절을 올리는 재배의 순으로 10여분간 진행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등 유족들은 깊은 슬픔에 잠긴 채 고인의 영정을 묵묵히 바라봤다. 시민들은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등을 외치며 통곡했다. 5시18분쯤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영정을 모시고 고인이 생전 에 머물던 사저로 향했다. 권 여사도 딸 정연씨의 부축을 받으며 뒤를 따랐다. 할아버지의 부재를 모르는 손녀 서은(5)양은 언론 카메라를 향해 ‘V’자를 그리는 등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여 주위를 더욱 안타깝게 했다. 의연한 모습을 보였던 권 여사는 사저에 들어서는 순간 쓰러지듯 휘청이며 몸을 가누지 못하기도 했다. ●운구행렬 오전 6시께 봉하 떠나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전 5시56분 시민 대표 한 명의 절을 받은 뒤 국화꽃으로 장식된 캐딜락 운구차에 실려 서울 경복궁 영결식장을 향했다. 당초 예정보다 30여분 늦은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났다. 경찰 오토바이 5대가 앞장선 운구 행렬은 선도차에 이어 영정차, 운구차, 상주 및 유족 승용차, 장의위원장 및 집행위원장 승용차, 친족 버스 5대, 장의위원 대표단 버스 5대 등이 긴 줄을 이었다. 후미에는 구급차 2대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 영구차, 경찰 사이드카 3대가 뒤따랐다. 장례 행렬 뒤로는 마을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오열하며 뒤따랐다. 진영읍에서 왔다는 오지은(31·여)씨는 “아직도 대통령께서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면서 “밤이 되면 한 줌 재로 돌아오실 텐데 그때까지 마을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운구 행렬은 길 양편에 늘어서 오열하는 시민들의 배웅을 받으며 서서히 이동했다. ●권 여사 한때 쓰러지듯 휘청여 시민들이 고인을 추모하기 위해 준비한 노란색 종이비행기도 여기저기 날아다녔다. 마을을 벗어나자 인도에 늘어선 진영중학교 여학생들과 시민 등 수백명이 “노 대통령님 편히 쉬세요.”를 외치며 고인을 배웅했다. 운구 행렬은 오전 6시20분 봉하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동창원나들목을 지나 남해고속도로에 올랐다. 이후 시속 120여㎞의 속도를 유지하며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칠원분기점(6시35분)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청원~상주간고속도로(7시56분)를 지나 청원분기점(8시50분)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입장휴게소(9시23분)에서 20여분간 휴식한 뒤 다시 출발, 10시20분쯤 궁내동 서울요금소를 지나 오전 10시48분쯤 영결식이 열리는 경복궁 앞뜰에 도착했다. 이날 운구행렬이 지나가는 육교나 휴게소, 도로가 등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손에 민들레를 들고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경기 용인부터 서울요금소까지는 시민들이 갓길에 차를 세우고 도열해 노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잠시 머문 입장휴게소에서는 광주노사모 회원 등 시민 50여명이 노 전 대통령 운구차 곁에 서서 고인을 기렸다. 김해 김승훈 이재연 박성국·수원 오달란·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 노란 물결…‘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추모객들은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운구행렬을 쉽사리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29일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인도에 있던 추모객들이 도로로 몰려들면서 걸어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 가는데 1시간 이상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설정했지만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운구 행렬이 서울광장에 도착할 무렵인 오후 1시20분쯤에는 세종로 네거리부터 숭례문 앞까지 도로 전체가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려는 18만여명의 시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시민 몰려 운구행렬 10분거리 1시간 걸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추모객들은 영구차에 노란 풍선과 노란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여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님 이 땅에 다시 오시어 다시 한번 대통령이 되소서’, ‘당신과 함께 미래를 오늘로 만들겠습니다, 걱정 버리십시오’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고시 준비생인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며 아쉬워했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소망했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40여분간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했던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 합창하면서 마무리됐다. 이때 건호·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이 울려퍼지는 애도의 거리를 따라 천천히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안치환·윤도현씨가 목 놓아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며 고인의 운구를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의 유족과 함께 운구행렬을 뒤따르던 민주당 의원들은 “대통령이 돌아가실 때까지 뭘 했냐.”는 시민들의 원망과 질타에 곤욕을 치러야 했다. ●노 전 대통령 지켜낸 광장 광화문 네거리~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게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으로,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로 넘쳐났던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노 전 대통령 역시 당시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이기도 하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서울광장 일대에는 오전 7시40분쯤부터 추모객들이 모여들기 시작, 고인의 굴곡 많은 인생을 눈물과 통곡으로 달랬다. 오전 9시쯤 접어들면서 거대한 노란 풍선, 노란 모자 등 온통 노란색으로 광장이 물들었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여명(경찰추산, 주최측 50만여명)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노란 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22·여)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강의를 휴강했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만장 2000여개 펄럭이며… 운구행렬이 노제가 치러진 서울광장을 벗어나는 동안 주변의 추모객들은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 박영선 의원 등에게 “살아 있을 때는 외면하더니 이제야 따라다니느냐.”며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행렬은 오후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3시쯤 2000여개의 만장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추모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당초 운구행렬은 오후 2시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흐름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인파가 몰려들어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추모객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1년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미소 지으며 걷던 서울역 계단과 광장은 이날 고인을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수가 6만 5000여명이나 됐다. 서울 화곡동의 직장에서 지하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 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대학생 원미라(22·여)씨는 “국장과 달리 국민장은 휴일이 아니어서 교수님들과 의논해 오늘 하루 휴강했다.”면서 “시대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사람은 아프지 않도록 힘을 모으겠다고 방명록에 썼다.”고 말했다. ●경찰 주차시도에 시민들 물병 등 던져 운구행렬을 떠나보낸 추모객들은 다시 서울광장에 삼삼오오 모여 노래를 부르며 고인과의 이별을 슬퍼했다. 오후 3시30분쯤 경찰 버스 4대가 서울 프라자호텔 맞은편 서울광장 가장자리에 주차를 하려 하자 일부 추모객들이 물통 등을 던지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버스 1대와 경찰 지휘차량 1대가 일부 파손됐고 세종로에서는 추모객들과 경찰의 신경전이 밤늦도록 계속됐다. 경찰은 밤늦도록 추모객들의 귀가를 촉구하는 안내방송을 내보냈고, 이에 맞서 추모객들은 차량 위에 설치된 마이크로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추모사를 쏟아내 고인의 서거를 안타까워했다. 서울 유대근·수원 오달란기자 hunnam@seoul.co.kr
  • “가지마세요”…떠나는 서울광장엔 노란 물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운집,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아쉬워 했다.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낮 12시10분쯤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경복궁 앞 동십자각을 거쳐 광화문으로 이동했다.경찰 사이드 카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영결식 참석자들도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운구차 뒤를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광장 주변에 설치된 대형 화면 등을 통해 영결식과 장례 행렬이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운구차를 따라 이동하면서 “미안합니다” “가지마세요” 라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유해가 이동하는 동안 서울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로 가수들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가수 안치환씨는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애잔한 추모곡을 부르자 많은 추도객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가수 양희은씨는 ‘상록수’를 불렀다.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곡.자리한 추도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이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록밴드 YB는 추모곡으로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YB의 윤도현씨는 공연 중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제목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그분은 떠났지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추모 공연은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광화문 연가’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의 추모사로 행사 종료를 알렸다.김제동씨는 추모사 도중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우리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남은 큰 짐은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그분은 우리 가슴 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선 뒤 공식적으로 진행됐다.노제에서는 노제의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혼을 부르는 초혼 순서가 진행된 뒤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인 안도현씨와 김진경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이어 시인 도종환씨의 사회로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가 이어져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노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는 끝났다.운구 행렬은 이어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가량 도보로 이동하며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가지마세요”…떠나는 서울광장엔 노란 물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노제가 열린 29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는 수많은 추도객이 운집,마지막 가는 운구행렬을 아쉬워 했다.시민들은 목이나 팔에 노란색 스카프를 두르고,노 전 대통령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 모자와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고인을 애도했다. 이날 낮 12시10분쯤 경복궁 앞뜰에서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경복궁 앞 동십자각을 거쳐 광화문으로 이동했다.경찰 사이드 카를 앞세우고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을 모신 승용차가 천천히 뒤를 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뒤따랐다.영결식 참석자들도 검은색 상복 차림으로 운구차 뒤를 따라 광화문으로 이동했다. 시민들은 광장 주변에 설치된 대형 화면 등을 통해 영결식과 장례 행렬이 이동하는 장면을 지켜봤다.운구차를 따라 이동하면서 “미안합니다” “가지마세요” 라며 오열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유해가 이동하는 동안 서울광장에서는 방송인 김제동씨가 사회로 가수들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가수 안치환씨는 통기타를 치며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등 애잔한 추모곡을 부르자 많은 추도객들이 흐느끼기도 했다. 이어 가수 양희은씨는 ‘상록수’를 불렀다.이 곡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광고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던 곡.자리한 추도객들은 노 전 대통령의 애창곡인 이 노래를 함께 따라불렀다. 록밴드 YB는 추모곡으로 ‘후회없어’와 ‘너를 보내고’를 불렀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던 YB의 윤도현씨는 공연 중 “노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 제목이 ‘사람사는 세상’이었다.그분은 떠났지만 이 노래를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추모 공연은 노래패 우리나라가 부른 ‘광화문 연가’로 마무리됐다. 마지막으로 사회자인 김제동씨는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유서의 내용에 대한 답변 형식의 추모사로 행사 종료를 알렸다.김제동씨는 추모사 도중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하다.우리 스스로를 원망하면서 남은 큰 짐은 우리가 운명으로 안고 반드시 이뤄 나가겠다.그분은 우리 가슴 속에 한줌의 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살아있는 열정으로 간직될 것이다.”라며 울먹이기도 했다. 노제는 노 전 대통령의 운구차가 서울광장에 들어선 뒤 공식적으로 진행됐다.노제에서는 노제의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혼을 부르는 초혼 순서가 진행된 뒤 국립창극단이 향로를 들고 ‘혼맞이소리’를 하며 영구차를 한 바퀴 돈 뒤 무대에 올랐다.고인의 넋을 달래는 ‘진혼무’가 진행되는 가운데 시인 안도현씨와 김진경씨가 고인을 추모하는 조시를 낭독했다. 이어 시인 도종환씨의 사회로 장시아 시인의 유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진혼무가 이어져 고인의 넋을 위로했다.노 전 대통령이 생전 좋아했던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합창하며 노제는 끝났다.운구 행렬은 이어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 가량 도보로 이동하며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오전 11시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오전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발인에서 안치까지… 마지막 여정 스케치

    서울광장 노란 물결… ‘상록수’ 등 들으며 먼 길 떠나 ●눈물 참던 건호·정연씨 끝내 오열 낮 12시23분쯤 영결식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오후 1시로 예정된 노제(路祭)를 치르기 위해 경복궁 앞뜰에서 동십자각을 거쳐 세종로와 태평로를 지나 시청앞 서울광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많은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걸어서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광화문에서 서울광장까지는 한시간 가까운 이상이 걸렸다. 당초 경찰은 장례행렬의 이동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인도 안쪽으로 폴리스라인을 형성했으나 추모객들이 몰리면서 이들에게 길을 내줘야 했다. 양쪽으로 운구행렬을 둘러싼 시민들은 영구차에 노란풍선과 노란비행기를 날리며 작별인사를 고했다. 장의위원회가 준비한 만장 2000개도 모습을 드러냈다. 만장에는 ‘내 아이가 태어나면 제일 먼저 가르칠 위인’, ‘약자의 편에 선 대통령’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오동길(27)씨는 “집안이 보수적이어서 임기 내내 노 대통령을 대변하느라 집안싸움을 많이 했는데, 막상 돌아가시니 부모님이 ‘큰 족적을 남기고 가셨다.’면서 아쉬워하셨다.”면서 “정쟁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기를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프레스센터 앞 서울신문 전광판을 통해 영결식을 지켜보던 ‘박쥐’의 박찬욱 감독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칸에서 들었는데 너무 안타까웠다.”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노제는 운구행렬이 도착한 오후 1시20분부터 40분여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노제는 총감독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행사 시작 선언과 고인의 영혼을 부르는 초혼 의식으로 시작됐다. 이어 국립창극단의 ‘혼맞이 소리’, 국립무용단의 ‘진혼무’, 안도현·김진경 시인의 조시 낭독, 안숙선 명창의 조창, 묵념, 고인의 유언 낭독 등 순으로 진행됐다. 노제는 오후 2시쯤 고인이 평소 좋아한 노래로 알려진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를 모두가 합창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때 노건호, 정연씨는 참았던 눈물을 흘리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후 고인의 영구차는 추모객들이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아침이슬’,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을 합창하는 가운데 장례행렬이 재정비되는 서울역으로 향했다. 노제 본 행사에 앞서 서울광장에서는 영결식이 끝나가는 낮 12시 무렵부터 방송인 김제동씨의 사회로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이 ‘상록수’ 등 고인을 추모하는 노래를 부르는 ‘여는 마당’이 열렸다. ●‘사랑으로’ 합창 부르며 노제 마무리 이날 추모객들로 가득 찬 광화문 네거리에서 서울광장 일대는 ‘정치인 노무현’을 전 국민에 알리고 ‘대통령 노무현’을 만들고 지켜낸 곳이었다. 1987년 6월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독재 타도, 호헌 철폐를 외치는 6월항쟁의 물결이 넘친 곳이다. 노 전 대통령 역시 이때 시민들과 함께 ‘독재타도’를 외쳤고 이듬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16대 대통령 당선 이후 2004년 탄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에는 지지자들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 그를 지켜낸 곳도 이곳이었다. 이런 추억 때문인지 이날 서울광장 일대는 경찰이 서울광장의 일반인 진입을 막는 차벽을 철수한 오전 7시40분부터 추모객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운구행렬이 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고 있는 오전 9시쯤에는 광장을 가득 메웠다. 오후 1시쯤엔 추모객이 18만명(경찰 추산, 50만명 주최측)으로 늘어났다. 추모객들은 노란색 햇빛 가리개 모자를 쓰고, 얼굴에는 노란색 스티커도 붙였다. 하늘로 떠오른 노란색 풍선들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그리움을 담아 멀리 떠나보내는 듯했다. 노랑귀걸이와 머리띠를 하고 온 대학생 김수진(여·22)씨는 “노제에 참석하라며 교수님이 휴강해주셨다.”면서 “인터넷에 떠도는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보고 젊은이들이 ‘노간지’라며 열광했었는데 이제 그런 소탈한 모습을 볼 수 없게 돼 안타깝다.”며 울었다. 경기도 성남에서 온 김시중(41)씨는 “민주화운동을 함께했던 동지였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386세대에 남다른 의미로 남는다.”면서 “노 전 대통령이 남기신 유지를 받들어 지역감정 등 분열을 넘어서 통합의 시대가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역 도착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 운구 행렬은 2시45분쯤 남대문을 지나 오후 3시쯤 2000여개 만장들을 펄럭이며 서울역에 도착했다. 서울역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이 보이자 ‘노무현’을 크게 연호하며 울먹였다. 운구행렬은 이곳에 오후 2시 도착 예정이었으나 남대문 주변 교통통제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어 예정보다 1시간이나 늦게 도착했다. 서울역에서 수원 연화장으로 향하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시민들은 서울역을 지나서도 운구행렬을 놓아주지 않고 하염없이 따라 걸었다. 고작 1년 4개월 전 임기를 마치고 노 전 대통령이 걸어오르며 미소지었던 서울역 계단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영원히 배웅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회사원 장진우(33)씨는 “지난해 배웅할 때는 우리가 계단 밑에 있었는데 이제는 대통령께서 계단 밑에 계신다.”면서 “눈물이 나서 더 이상 말을 못하겠다.”며 자리를 피했다. 한편 서울역 앞에 마련된 정부 분향소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누적 조문객 6만 4997명이 분향했다. 서울 화곡동 직장에서 전철을 타고 분향하러 온 김도경(43)씨는 “삶도 죽음도 한조각이라는 유서 내용이 가슴을 적셔 일부러 분향소에 들렀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 도착 노 전 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추모행렬의 아쉬움을 뒤로한 채 운구행렬은 오후 6시가 지나서야 수원 연화장에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지대로 화장이 이뤄진 수원 연화장 역시 온통 노란 물결이었다. 연화장으로 가는 길목에는 노란 풍선과 리본, ‘당신은 우리의 영원한 대통령입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바람에 나부꼈다. 오후 1시부터 노란색 모자를 쓰고 노란 스카프를 두른 1000여명의 시민이 연화장 내부 승화원(화장장)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시민들은 야외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으로 영결식과 노제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쳤다. 주부 박현선(41)씨는 “대통령께서 가시는 마지막 길이 외롭지 않도록 배웅하러 나왔다.”면서 “뜨거운 가마 속에서 계셨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김인규(56)씨는 “지난 7일동안은 슬픔의 힘으로 버텼지만 내일부터 무슨 힘으로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의 앞날도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화장은 2시간여에 걸쳐 마무리됐다. 향나무에 담긴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이날 연화장에서 4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려 이날 밤 봉하마을로 돌아갔다. 유골함은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됐다. 향후 사저 옆 장지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해 박정훈 김승훈 이재연·수원 오달란 서울 유대근기자 hunnam@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고단한 육신 벗고 한줌의 재로… 유족들 永別의 오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9일 오후 경기 수원시 연화장 하늘 아래서 자신의 육신을 불살랐다. 오전 영결식을 통해 하늘로 오른 영혼이 이 모습을 지켜봤으리라.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연화장에 도착해 유골 수습까지 2시간여 만에 한 줌의 재로 변했다. 유가족들은 고열의 화로에서 몇 개의 뼛조각으로 변한 노 전 대통령 모습을 보자 몸을 떨며 오열했다. ●전직 대통령으론 첫 화장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수원 연화장에 도착한 것은 이날 오후 6시쯤. 운구 행렬은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이동해 수원요금소를 빠져나온 뒤 국도 42번선 용인대로~원천로~용인 흥덕 택지개발지구~신대 저수지를 거쳐 수원 연화장으로 들어섰다. 당초 예상보다 3시간가량 늦어졌다. 연화장에 영구차가 도착하자 의장대 6명이 노 전 대통령의 유해를 이동대차에 안치하는 운구의식이 진행됐다. 이어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연화장 정문에서 20m쯤 떨어진 야외분향소에서 20분 동안 제례를 올리는 고별식을 가졌다. 일반인들은 실내 분양실에서 제례를 올리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야외분양소를 마련했다고 연화장측은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가 화장로 9기(예비화로 1기 포함) 중 가장 큰 8번 화로 앞으로 옮겨지자 유족들도 8번 분향실로 자리를 옮겨 숙연한 표정으로 대형유리창 너머의 화로를 지켜봤다. 유해는 섭씨 800~1000도의 고온에서 1시간20여분 동안 화장됐다. 유족들은 분향대기실에서 분향실 전광판을 통해 ‘화장중-냉각중-수골중’으로 표시되는 과정을 지켜봤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은 이날은 오전 8시와 10시 2차례로 단축됐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졌다. 또 일반인의 경우 승화원 분향실을 1곳만 제공했으나 예우 차원에서 8개 분향실을 모두 제공했다. 8번을 제외한 1~7번 분향실마다 30~40명의 장례위원들이 노 전대통령과 이별을 고하는 제례를 올렸다. ●유골함 인계받고 눈물 쏟아내 화장이 종료되고 화로에서 유골이 꺼내지자 분향대기실은 일순간 통곡의 바다로 변모했다. 이때 보통의 유가족들도 고인을 생각하며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곤 하는데, 당대 국가 최고 권력을 쥐었던 대통령의 유가족들이 느끼는 허무함은 보통 사람들의 것을 훨씬 초월했을 것으로 연화장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통상적인 분골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골상태에서 유골함에 담겨졌다. 정부가 마련한 유골함은 가로 35㎝, 세로 25㎝, 높이 20㎝, 두께 1.8㎝의 북미산 향나무로 제작했다. ●요금소~연화장 6㎞ 노란물결 운구차 이동경로인 수원시 연화장에서 경부고속도로 수원요금소까지 6㎞여 구간에서는 시민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한편 노 전 대통령 유가족들이 화장장을 수원 연화장으로 결정한 것은 장지인 봉하마을로 가는 동선(動線)으로 경부고속도로 수원 나들목과 6~7㎞ 거리에 있어 이동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병철 남인우오달란기자 kbchul@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노 前대통령 국민장] 서울광장~서울역 운구때 만장 2000여개 마지막 배웅

    ■ 행사장 차량통제 정오~오후 2시 광화문일대 통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엄수되는 29일 영결식이 열리는 서울 광화문 일대에 교통이 통제된다. 경찰은 갑호비상근무 체제를 가동하고 광화문 일대에 200개 중대를 배치한다. 경찰청은 “김해 봉하마을부터 경복궁, 서울광장, 서울역, 수원 연화장, 봉하마을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에 순찰대와 경찰력을 집중 배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결식과 노제가 이뤄지는 29일 낮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는 구간별로 차량이 통제된다.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동십자각 사이 사거리와 광화문에서 세종로 사거리 구간 등 양방향이 전면 통제된다. 오후 12시30분부터 2시까지는 세종로 사거리와 시청광장 사거리 사이의 차량 통행이 금지된다. 경찰청측은 “종로, 을지로, 퇴계로, 남대문로 등 주변 도로를 경유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교통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장례행렬에는 운구차를 중심으로 차량 10대가량이 동원되며 고속도로에서는 순찰차 13대가, 일반국도에서는 경호 오토바이 18대가 경호를 맡는다. 장례행렬은 봉하마을에서 국도를 타고 남해고속도로로 나와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 등을 오가다 양재 나들목을 통해 서울로 진입, 한남대교를 타고 경복궁 앞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은 “이동과정에서 교통정체나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이동 중에도 경로가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다. ●만장 깃대 대나무 대신 PVC 사용 한편 장의위원회는 국민장에 사용하는 만장 2000개를 대나무가 아닌 PVC파이프에 걸기로 했다. 장의위원회 김종민 대변인은 “정부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점을 감안, PVC파이프를 사용하기로 자체 결정했다.”면서 “만장은 서울역까지만 들고 가고 정부에서 수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박건형 강병철기자 kitsch@seoul.co.kr ■ 발인~안치 어떻게 진행되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에게 마지막 안녕을 고하기 위해 봉하마을을 나서는 시간은 29일 오전 5시. 약 30분간 발인식을 가진 뒤 고속도로 등을 이용해 서울로 향한다. 노 전 대통령 운구 행렬은 시속 80~90㎞로 빠르지 않게 이동하며, 휴게소에서 20분간 한 차례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운구행렬이 서울에 들어서면 경찰 사이드카 28대가 호위에 나선다. 운구 행렬 선두와 후미에 8대가, 운구차 양 옆에 각각 10대가 격식을 갖춘 채 영결식장으로 인도한다. 노 전 대통령의 대형 영정(가로 1.1m, 세로 1.4m)을 앞세운 영정차는 운구차 바로 앞에서 행렬을 이끈다. 영결식은 이날 오전 11시 노 전 대통령의 운구가 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군악대의 조악 연주로 시작된다. 송지헌 아나운서의 사회로 국민의례(1분)~고인에 대한 묵념(2분)~고인 약력보고(3분)~조사(12분)~불교와 기독교·천주교·원불교의 종교의식(12분)~노 전 대통령의 대통령 취임식 선서모습 등 생전 영상 방영(4분)~헌화(18분)~추모공연(10분) 순으로 진행되며, 삼군 조총대원들이 조총 21발을 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결식 도중에는 ‘영원한 안식’ ‘새같이 날으리’ ‘미타의 품에 안겨’ ‘오제의 죽음’ ‘장송행진곡’ 등의 추모곡이 연주된다. 추모공연에선 국립합창단이 ‘상록수’를 합창하고, 해금연주가 강은일씨가 노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아리랑’ 등을 연주한다. 영결식 장면은 공중파 TV 및 식장과 서울광장, 서울역 등에 설치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생중계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노제를 지낸다. 경찰청이 제공한 차량 4대가 대형 태극기(가로 5.4m, 세로 3.6m)를 펼친 채 운구차를 선도하며, 유족대표 등을 제외한 나머지 인사는 모두 걸어서 이동한다. 노제는 도종환 시인이 진행한다. 가수 양희은과 안치환, 윤도현의 ‘여는 마당’이 이어지고, 안도현과 김진경 시인이 조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생전 안 시인의 시를 특별히 좋아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김 시인은 노 전 대통령 밑에서 교육문화비서관을 지냈다. 조시 낭독이 끝나면 장시아 시인이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낭독한다. 노 전 대통령은 소녀가장인 장 시인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봉사활동을 펼친 경험을 담은 시집 ‘그늘이 더 따뜻하다’를 국무위원들에게 선물한 적이 있다. 이어 안숙선 명창의 조창, 진혼무가 펼쳐지고, 합창단과 참석자 모두가 ‘상록수’ ‘아침이슬’ ‘애국가’ 등을 반주 없이 합창하면서 30여분의 노제가 마무리된다. 노제가 끝나면 운구 행렬은 숭례문 앞 태평로를 거쳐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 도보 행렬에는 인터넷 공모를 통해 선발된 시민 2000여명이 장의위가 준비한 만장(輓章)을 들고 뒤따르면서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애도한다. 도보 이동 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서울역을 출발, 오후 3시 수원 연화장에 도착해 유가족과 집행·운영위원 등이 지켜보는 가운데 약 2시간 동안 고인의 유언대로 화장된다. 유족들이 수습한 노 전 대통령의 유골은 유골함에 담겨 오후 9시쯤 봉하마을에 도착,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 안치된다. 유족들은 향후 길일을 잡아 노 전 대통령 유골을 봉하마을 사저 인근에 안장할 예정이다. 임주형 박성국기자 hermes@seoul.co.kr ■ 화장 절차 분향실 고별제례 분골은 안 하기로 29일 오전 11시 영결식 이후 진행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화장 의식은 일반인과 특별히 다를 바 없는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28일 수원시 시설관리공단 장묘환경사업소에 따르면 노 전대통령의 화장의식은 화장장 전체가 당일 오후 반나절 내내 할애되고 화장료 100만원을 면제받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인과 크게 다를 바 없다. 29일 오후 3시쯤 수원시 연화장에 영구차가 도착하면 관을 이동대차로 옮기는 운구를 시작으로 이동대차에서 화장로 앞 전동대차로 옮겨 화장로에 넣는 화장절차,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분향실에서 제례를 올리는 고별절차가 이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화장로 9기 가운데 가장 큰 8번 화로에서 화장되고 권양숙 여사를 비롯한 유족들은 13㎡ 면적의 8호 분향실에서 제례의식을 진행한다. 평소 오후 2시까지 4차례 실시되는 일반 화장이 이날은 오전 8시, 10시 두 차례로 단축되고, 오후에는 노 전 대통령의 화장만 이뤄진다. 화장은 섭씨 800~1000도의 온도에서 1시간10분 정도 걸리는데, 관 재질이 두꺼울 경우 시간이 더 소요될 수 있다고 연화장 측은 설명했다. 화장이 끝나면 15분 정도의 냉각과정을 거쳐 유골은 분골실로 옮겨진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 유해는 유족의 뜻에 따라 통상적인 분골 과정을 거치지 않고 유골 상태에서 정부가 마련한 유골함에 담겨 유족들에게 인계될 것으로 전해졌다.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발인 마치고 노 전 대통령 서울로 출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치고 힘들었던 육신을 관 속에 누인 채 마지막 상경길에 올랐다.  29일 서울 경복궁 앞뜰에서 엄수될 국민장(國民葬)을 위해 노 전 대통령의 발인식이 오전 5시 김해 봉하마을에서 숙연한 분위기에서 치러졌다.발인제를 마친 운구 행렬은 예정보다 28분쯤 늦은 5시58분 서울을 향해 먼 길을 떠났다.  5시 정각에 군 의장대가 관에 태극기를 두르면서 발인식이 시작됐다.의장대는 관을 빈소였던 봉하마을 마을회관 밖으로 옮겨 앞마당에 미리 준비해둔 운구차에 실었다.특수제작하지 않고 보통 사람들이 쓰는 평범한 관이었다.이어 5시10분쯤 마을회관 앞마당에 차려졌던 분향소에 영정을 두고 견전제가 이어졌다.2분 뒤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사라반드’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맏상주 건호 씨가 엎드려 부친과의 긴 이별을 고했다.형 건평씨,부인 권양숙 여사,딸 정연 씨와 손주 등 유족들이 슬픔마저 마른 듯한 표정으로 지켜본 뒤 역시 바닥에 엎드려 마지막 예를 다했다.노 전 대통령의 미공개 사진과 동영상에 등장했던 손녀가 모습을 비쳐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견전제를 마치고 영정이 노제 형식을 빌어 사저로 향하자 발인식을 지켜보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운 많은 조문객들이 “대통령님 사랑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든 영정은 고인이 어린 시절 뛰어놀았던 골목길을 통해 산새들이 우짖는 새벽 공기를 뚫고 사저로 향했고 영정은 사저를 한 바퀴 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운구차가 5시25분쯤 마을회관 앞을 떠나 사저 쪽으로 이동하자 조문객들이 날린 수백개의 노란색 종이비행기가 허공을 날아 차체 위에 내려 앉았다.종이비행기에는 노 전대통령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운 심경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었다.  사저를 한 바퀴 돈 영정이 5시35분쯤 사저를 빠져나와 예정보다 20분쯤 늦은 5시50분쯤 운구차에 올라 국민장을 위해 서울로 향했다.한달 전 쯤에 검찰 수사를 받기 위해 서울로 떠날 때 걸어 내려왔던 길을 영정이 대신 걸어 내려온 것이라 조문객들이 오열할 만했는데 조문객들은 흐느낌마저 유족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참는 모습이 역력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는 조문객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고인의 시신과 영정을 실은 운구차는 선도차가 준비를 갖출 때까지 지체했다가 5시58분쯤 먼 상경길의 첫 바퀴를 굴리기 시작했다.1만명으로 추산되는 조문객들이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고인의 마지막 상경길을 따라 걸으며 배웅했다. ●11시 경복궁 영결식 3000여명 참석  영결식은 오전 11시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정·관계 주요 인사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국민장으로 엄수된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 행렬은 서울광장으로 이동, 오후 1시부터 약 30분간 시민들의 애도 속에 노제를 지낸다.경찰은 낮 12시부터 노제가 끝날 때까지 경복궁 앞뜰~서울광장에 폴리스라인을 설치,차량 진입을 전면 통제한다. 이어 만장 2000여개가 뒤따르는 가운데 서울역까지 30분간 도보로 이동한다.만장은 불상사를 우려한 정부측의 요청을 받아들여 불교 형식인 대나무 대신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이 때는 일부 차로만 통제한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오후 3시쯤 수원 연화장에 도착, 화장식을 치른 뒤 봉하마을로 옮겨져 봉화산 정토원 법당에 임시로 안치된다.밤 9시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늘 오후 5시까지 분향소 운영 한편 영결식을 하루 앞둔 28일 추모인파는 절정을 이뤘다.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 지금까지 100만명을 넘어섰고 전국적으로는 450만명을 돌파했다. 분향소는 새벽에만 잠시 한산했고 날이 밝자마자 추모객들이 장사진을 이뤄 헌화에 참여했다. 정부는 29일 오후 5시까지 전국 각지에서 분향소를 운영할 계획이다.봉하마을 분향소는 밤 12시까지 운영될 것으로 전해졌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29일 새벽 발인이 끝난 뒤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경복궁 앞뜰 영결식장으로 향한다. 발인제는 1시간 전인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진행된다. 운구행렬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올 것으로 보인다. 이동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봉하마을 근처인 동창원IC(남해고속도로)~칠원JC(중앙고속도로)~여주JC(영동고속도로)~신갈JC(경부고속도로) 등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운구행렬 중 영정을 모실 검은색 캐딜락은 보닛 정면에 V자 모양으로 꽃 장식을 한다. 또 경찰 순찰차량이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호위한다. ●종합청사서 대한문까지 교통통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서울에 도착하면, 사이드카 24대가 영정차량을 앞뒤에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훈장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를 위해 서울시청 앞~미국대사관~시민 열린마당과 정부중앙청사~대한문까지 폴리스라인을 칠 계획이다. 경찰은 또 갑호비상체제로 전환하고, 경복궁 인근 광화문 네거리 차도를 통제한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다. 뜰에는 4층 계단형 제단이 세워진다. 흰색 천으로 덮인 제단은 2000여 송이의 국화꽃으로 장식된다. 식장에는 삼부 요인 등 1000여명의 장의위원과 수천명의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낮 12시30분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행렬은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이동,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 광장과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태극기와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길엔 태극기·노란리본 물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수원시 연화장으로 운구돼 화장되며 화장과 분골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시 봉하마을로 향한다. 운구행렬이 봉하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봉하마을 사저 인근 사찰인 정토원에서 하루 머문 뒤 다음날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영면을 취할 곳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12 일대가 유력하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야산이다. 그러나 유족들이 따로 길일을 잡으면 안장이 며칠 늦춰질 수도 있다. 박건형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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