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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개봉 앞둔 유승호, 김동욱 주연 단편영화 ‘3일’ 포스터 공개

    3월 개봉 앞둔 유승호, 김동욱 주연 단편영화 ‘3일’ 포스터 공개

    유승호, 김동욱, 서정연이 주연으로 나서며 감동적인 스토리로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게 할 단편영화 ‘3일’이 3월 CGV 단독 개봉될 예정인 가운데, 배우들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공식 포스터가 공개됐다. 영화 ‘3일’은 돌아가신 엄마의 3일장을 아들이 치르며 엄마가 남긴 마지막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이를 통해 희망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린 가족 감동 영화로, 러닝타임 27분의 숏 콘텐츠로 제작됐다. 대명소노그룹의 라이프 서비스 전문기업 대명스테이션이 처음으로 제작 투자한 스낵무비로써 전 연령대가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짧은 영화 형태로 만들어져 고인을 추모하는 새로운 문화를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개봉 소식과 함께 공개된 ‘3일’의 공식 포스터는 엄마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한층 성숙해 나가는 아들 ‘태하’역의 배우 유승호와, 특별한 장례식을 이끌어 가는 장례지도사 ‘하진’역의 배우 김동욱의 모습이 담겨 시선을 사로잡는다. 포스터에 담긴 ‘꼭 전하고 싶은 진심이 있습니다.’, ‘그 일..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는 문구는 두 인물의 관계성을 암시하게 하여 전개될 스토리에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특히 포스터의 메인 카피인 ‘당신의 마음을 울릴 단 하나의 이야기’는 두 인물의 표정연기와 더해져 예비 관객들의 감동을 자아낸다. 단편영화 ‘3일’은 3월부터 2주간 CGV에서 만나 볼 수 있으며, 티켓 가격은 1천 원으로 많은 관객이 부담 없이 영화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 “하늘이법 만들어주세요”…교사 흉기에 딸 잃은 아버지의 호소

    “하늘이법 만들어주세요”…교사 흉기에 딸 잃은 아버지의 호소

    “제2의 하늘이가 나오지 않게 ‘하늘이법’을 만들어주세요. 그리고 하늘아 어른들이 미안해, 사랑해.”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에게 살해당한 김하늘(8)양의 아버지는 11일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 모여든 취재진에게 몇 번이나 이렇게 말했다. 비눗방울을 들고 환히 웃는 영정 사진 속 딸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오열하기도 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를 호소하면서 “정부가 심신미약인 선생님들의 치료, 하교하는 저학년생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하늘이가 죽지 않았다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범행의) 대상이 됐을 것”이라며 “며칠만이라도 좋으니 학교에 대한 책임을 기사로 써달라”고도 했다. 그는 근무 중 ‘아이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고 하늘이 이름을 목놓아 부르며 아파트는 물론 학교를 샅샅이 뒤졌다. ‘거긴 아니겠지’하며 혹시나 찾아갔던, 항상 ‘안전한 곳’이라고 말했던 학교 안에서 하늘이가 발견됐다. 김양의 아버지는 “창고에 들어간 경찰관들이 저한테 딸을 보지 말라고 했다”면서 “보기가 너무 힘들어서…”라고 말을 채 잇지 못했다. 김양의 아버지는 “하늘이가 수십 번을 칼에 찔려 얼마나 아팠을까”라며 “그 소리에 누군가 잠깐만 귀 기울여줬어도 하늘이는 지금처럼 별이 되진 않았을 거다”고 흐느꼈다. 그는 “하늘이에게 엄마, 아빠와 학교 선생님은 너희를 지켜주는 슈퍼맨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며 “그런데 그런 학교 선생이 (아이를) 죽였다. 저희 딸은 선생님이 부르니 당연히 따라갔을 것”이라고 했다. 김양은 가족들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그는 “하늘이는 제가 오전 7시에 출근하면 꼭 20분 일찍 일어나 문이 닫히는 순간까지 손을 흔들었다”며 “그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처럼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처럼 되는 게 꿈이었던 하늘이는 애교 많고 해맑은 딸이었다. 하루아침에 딸을 떠나보낸 아버지는 말했다. “하늘이가 2월 10일에 죽었습니다. 하늘이 동생 생일이 전날인 2월 9일인데, 앞으로 동생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자신이 없어요. 그래도 하늘이 동생을 위해 살아보려 합니다.”
  • “손수 지어준 이름 ‘하늘’…순수했던 첫 손녀” 대전 초등생 할아버지 ‘눈물’

    “손수 지어준 이름 ‘하늘’…순수했던 첫 손녀” 대전 초등생 할아버지 ‘눈물’

    대전의 한 초등학교에서 교사가 휘두른 칼에 8살 김하늘양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잘 성장하길 바라며 첫 손녀인 하늘양의 이름을 손수 지어준 할아버지는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11일 대전 서구 건양대병원 장례식장에는 하늘양의 빈소가 마련됐다. 이날 장례식장에는 하늘양의 마지막을 배웅하려는 교직원과 학부모, 어린아이들의 줄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영정사진 속 하늘양은 그 나이대 어린아이답게 티 없이 맑게 웃는 모습이었다. 하늘양의 할아버지 역시 손녀를 욕심 없고 순수했던 아이로 기억했다. 하늘양의 할아버지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지만, 제가 가진 것을 다 내어주곤 하던 아이었다”고 전했다. 은퇴 전 목사였던 그는 첫 손녀인 하늘양에게 사랑과 축복의 의미를 가득 담아 이름을 지어줬다. 하늘에 초점을 맞추며 살라는 뜻이다. 할아버지는 “미술을 했던 나를 닮아 그림 그리는 걸 참 좋아했다”며 첫 손녀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이렇게 빨리 하나님 품으로 갈 줄을 몰랐는데…”라며 울먹였다. 이어 “미술학원에 등록하면서 돌봄교실에 마지막까지 혼자 남게 된 게 이 사건으로 이어졌다”며 “아들이 미술학원 보낸 걸 후회하며 자책 중이다”라고 씁쓸해했다. 그는 하늘양을 살해한 교사 A씨와 학교 측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할아버지는 “우리가 제일 염려하는 건 교사가 심신미약을 주장해 4~5년을 살다 나오는 것”이라며 “비록 우리 아이는 갔지만 다른 아이들이 피해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날 오후 5시 50분쯤 대전 서구 한 초등학교 건물 2층 시청각실에서 흉기에 찔린 하늘양과 이 학교 교사 A씨가 발견됐다. 하늘양은 심정지 상태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고, A씨는 의식이 있는 상태로 수술 후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그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 경찰에 자신의 범행을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교사 신분인 A씨는 우울증 등의 문제로 휴직했다가 지난해 12월 복직했다. 복직 후 교과전담 교사를 맡은 그는 하늘양과는 평소 관계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가 건강을 회복하는 대로 정확한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한편 피살 사건이 발생한 초등학교 앞은 이날 오전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학교 정문 울타리 밑에는 시민들이 챙겨온 국화꽃과 인형, 과자가 놓여 있었다. 꽃과 인형 사이에는 ‘아가, 아프지 말고 편히 눈 감으렴. 미안해’라고 적힌 쪽지도 눈에 띄었다. 인근 주민들은 주변을 오가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학교를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어린 학생들도 오가며 초조한 표정으로 학교를 바라봤다.
  • “쨍하고 해뜰날” 희망 부른 故송대관 영면…태진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 잘 가”

    “쨍하고 해뜰날” 희망 부른 故송대관 영면…태진아 “영원한 나의 라이벌, 잘 가”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단다~” 후배 가수들이 도열해 가수 송대관의 대표곡 ‘해뜰날’을 조가로 합창하자 영결식장 곳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희망찬 노래 가사에도 노래를 부르는 후배들은 슬픔에 잠겨 먹먹한 표정이었다. 50년 넘는 세월 노래로 대중과 호흡한 고(故) 송대관의 영결식이 9일 오전 9시 30분쯤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 영결식에는 유족과 동료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배우자는 식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북받친 감정에 눈물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생전 고인의 라이벌이자 막역한 후배였던 가수 태진아는 눈물을 참으며 추도사를 낭독했다. 태진아는 “형님은 항상 저에게 멘토였다. ‘형이 가는 길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길래 정말 따라갔다”며 “지난 3일 동안 밥을 안 먹고 술로 배를 채웠다. 형님이 하늘나라 가서 사시면 제가 방송하는 것도 큰 재미가 없을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특히 태진아는 송대관과 라이벌 디너쇼를 계획 중이었다고 밝혀 안타까움을 더했다. 그는 “(디너쇼) 세트리스트 정리 중이었는데 그다음 날 돌아가셨다”며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치매를 앓는 제 아내 ‘옥경이’가 대관이 형을 기억하는 모습을 보며 아내를 끌어안고 울었다. 대관이 형이 그만큼 우리하고 가깝게 지냈으니 기억해주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추도사 말미 “대관이 형 잘 가. 영원한 나의 라이벌이여”라며 고인의 영정에 손을 흔들며 슬픔을 삼켰다. 설운도는 “가수는 결국 무대에서 시작해 무대에서 생을 마감한다”며 “마지막까지 무대에서 하고 싶은 일을 웃으면서 하시다 가셨기에 마음은 아프지만 위안이 된다. 형님 빈자리를 사랑으로 채워주기를 바란다”고 애도했다. 이어 태진아, 설운도, 강진, 김수찬 등 동료 가수들이 고인의 대표곡 ‘해뜰날’을 조가로 합창했다. 생전 고인이 아꼈다는 후배 김수찬은 ‘해뜰날’ 모창과 성대모사로 웃음과 눈물을 함께 자아냈다. 영결식은 동료 가수들의 작별 인사로 마무리됐다. 이후 유족과 가수들이 관을 운구하고 식장을 떠났다. 고인은 컨디션 난조로 최근 병원을 찾았다가 치료 도중 심장마비로 지난 7일 7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장례 기간 태진아, 설운도, 하춘화, 현숙, 김흥국 등 동료 가수와 연예인들이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송대관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해 ‘해뜰날’, ‘유행가’, ‘네박자’ 등 다수의 히트곡을 발표했다.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 서민의 마음을 대변하는 노래로 희망을 안겨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0년대부터 꾸준한 활약을 바탕으로 태진아, 설운도, 고(故) 현철과 함께 ‘트로트 사대천왕’으로도 불렸다. 고인은 경기도 안성 유토피아추모관에서 영면에 든다.
  • 마지막 검색어는 ‘성추행’…수의대생 윤희씨는 어디에 [사건파일]

    마지막 검색어는 ‘성추행’…수의대생 윤희씨는 어디에 [사건파일]

    “딸아이가 어디 있는지,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라도 알고 싶습니다.” 2006년 여름,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당시 29세)씨는 종강 모임을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간 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있던 그날 이후, 19년이 흘렀지만 그의 행방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실종 당시 졸업을 단 한 학기 앞둔 윤희씨는 미래에 대한 열망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화여대에서 통계학과와 미술을 복수전공한 후 2003년 전북대 수의대 3학년에 편입해 학업을 이어가던 중이었다. 이윤희씨는 2006년 6월 5일,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의 한 음식점에서 교수와 동기 40여명과 함께 종강 모임을 가졌다. 모임 후 남학생 A씨의 배웅을 받으며 오전 2시 30분쯤 금암동 자취방으로 돌아온 윤희씨는 2시 59분부터 약 1시간 동안 컴퓨터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가 검색창에 입력한 단어는 ‘112’와 ‘성추행’. 오전 4시 21분, 컴퓨터가 꺼지고 이때부터 윤희씨의 흔적이 사라졌다. 실종 이틀 뒤 친구들이 찾아갔을 때, 어질러진 원룸에는 홀로 남겨진 반려견만이 그의 부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사건 초기, 경찰은 실종 현장을 제대로 보존하지 못했다. 친구들이 방을 치우는 것을 허용하면서 결정적 증거를 확보할 기회를 잃었다. 또한 실종 나흘 전 윤희씨가 휴대전화와 지갑이 든 핸드백을 날치기당한 사건조차 철저히 조사되지 않았다. 경찰은 실종자 주변 인물과 동선을 철저히 조사하고, 전북대 인근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했다. 이후 면식범의 가능성, 우발적 사건, 생존 가능성까지도 열어두고 조사를 이어왔으나 사건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 있다. 아버지 이동세(88)씨는 “행정심판을 통해 얻은 정보에 따르면 딸의 컴퓨터에서 메신저 대화 내용이 삭제된 정황이 있다”면서 윤희씨를 자취방에 데려다줬다는 동기 A씨를 최근 고소했다.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A씨는 ‘진실’ 판정을 받았지만, 이동세씨는 여전히 의혹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윤희씨의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해 19년간 전국을 누비고 있다. ‘이윤희를 아시나요?’라는 문구가 적힌 셔츠를 입고 작은 명함을 나눠주며 딸의 행방을 묻는 그의 발걸음은 오늘도 계속된다. “이제 나이가 90살이 다 되어 딸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경찰의 초동 수사 부실을 지적하며 딸의 사건이 영구 미제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편집자 주 매일 예기치 못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일어납니다. [사건파일]은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잊지 못할 사건사고를 전합니다. 드러나지 않은 사건의 전말, 짧은 뉴스에서 미처 전하지 못했던 비하인드스토리를 알려드릴게요.
  • 尹대통령 호송차, 헌재 도착… 지지자들 “석방하라”

    尹대통령 호송차, 헌재 도착… 지지자들 “석방하라”

    尹, 탄핵심판 두 번째 출석…김용현 증인 예정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내란 우두머리(수괴) 혐의로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탄핵심판 변론기일 두 번째 출석을 위해 헌법재판소에 도착했다. 윤 대통령이 탄 법무부의 호송용 승합차는 이날 오후 12시 23분쯤 경호차량 호위를 받으며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 정문을 출발해 오후 12시 47분쯤 서울 종로구 재동 헌재 앞에 도착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2시 윤 대통령 탄핵심판 4차 변론을 연다. 윤 대통령이 헌재 탄핵심판에 출석하는 것은 지난 21일에 이어 두 번째다. 이날 변론기일에는 윤 대통령과 함께 비상계엄을 계획한 것으로 지목되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탄핵 심판이 준용하는 형사소송법(163조 1항)에 따라 윤 대통령은 김 전 장관 신문에 직접 나설 수 있다. 이에 따라 30분간 예정된 김 전 장관 주신문에 윤 대통령이 나설지 주목된다. 한편 윤 대통령이 탄 호송차가 서울구치소를 나설 때 구치소 입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지지자들이 윤 대통령을 응원하며 배웅했다. 윤 대통령이 헌재에 도착했을 때도 헌재 앞에 모여 있던 지지자들은 “대통령 석방”을 외치기도 했다. 경찰은 헌재 주변에 기동대 54개 부대 3500명을 배치해 우발사태에 대비했다. 경찰버스는 160여대 투입돼 헌재 주변으로 차벽을 겹겹이 쳤다.
  • 챙 넓은 모자·감색 코트… 화제 된 멜라니아 ‘마피아 미망인’룩

    챙 넓은 모자·감색 코트… 화제 된 멜라니아 ‘마피아 미망인’룩

    모자에 막혀서 트럼프 ‘허공 키스’ 바이든 배웅 땐 바람에 날아갈 뻔美 신진 디자이너 의상 택해 눈길8년 전엔 ‘랠프 로런’ 하늘색 정장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짙은 감색의 코트와 같은 색깔의 모자를 쓴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의 패션은 단연 눈길을 사로잡았다. 멜라니아 여사는 미국의 신진 디자이너들이 만든 의상을 선보였는데, 애덤 리페스가 제작한 코트와 치마에 크림색 블라우스를 받쳐 입고 에릭 자비츠가 만든 챙이 넓은 모자를 썼다. 멜라니아 여사의 모자는 취임식 내내 ‘신스틸러’로 화제를 모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태우고 떠난) 헬리콥터 바람이 강하게 불어 모자를 쓴 그녀는 거의 날아갈 뻔했다”고 말했다. 자리에 앉아 남편의 농담을 듣던 멜라니아 여사는 고개를 살짝 절레절레 흔들었다. 장녀 이방카도 녹색 베레모를 착용해 트럼프 가족은 공식 행사에서 모자를 쓰는 영국 왕실의 관례를 따른 듯한 모습도 보였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 재클린 여사는 하늘색 필박스 모자를 착용하는 등 미국 영부인이 취임식에서 모자를 쓴 사례는 종종 있다. 하지만 재클린을 포함해 매미 아이젠하워, 낸시 레이건 등은 얼굴을 가리지 않는 필박스 형태의 모자를 썼다. 챙이 넓은 보터 스타일의 멜라니아 여사 모자는 그녀에게 향하는 시선뿐 아니라 주변인들의 대화까지 가로막았다. 바이든 전 대통령은 모자를 가로질러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을 건네야 했으며, 심지어 모자챙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멜라니아 여사에게 입맞춤하려다 모자챙에 걸려 허공에다 키스를 하고 말았다. 멜라니아 여사의 모자를 제작한 자비츠는 “멜라니아 여사가 몇 년 전 여름 웹사이트에서 우리 모자를 산 인연으로 그녀의 스타일리스트와 작업하게 됐다”고 밝혔다. 대통령 부부의 키스 불발에 대해서는 “모자챙은 영역을 만들게 된다”면서 일반적으로 챙이 있는 모자를 쓰면 입맞춤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모자챙 때문에 얼굴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 멜라니아 여사를 두고 ‘마피아 미망인’ 같다고 지적했다. 2017년 첫 취임식에서 멜라니아 여사가 입은 하늘색 정장은 미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랠프 로런의 작품으로 당시 트럼프 반대 세력은 불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에 로런은 백악관을 떠나는 질 바이든 여사의 보라색 코트를 제작했다. 민주당의 상징인 푸른색과 공화당의 상징인 붉은색을 합한 보라색은 화합을 나타낸다. 트럼프 대통령도 취임식에서 붉은색과 푸른색이 교차하는 색깔의 넥타이를 맸다. 이방카가 입은 짙은 녹색 치마 정장과 모자는 모두 프랑스산 디올 제품이다. 디올을 소유한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의 최고경영자이자 프랑스 최고 갑부인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도 의회 의사당 중앙홀(로툰다)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했다.
  • 친구 넷 구하고 숨진 중학생, 의사자 지정 추진

    친구 넷 구하고 숨진 중학생, 의사자 지정 추진

    물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숨진 중학생에 대해 대구 달성군이 의사자(타인을 구하려 생명을 희생한 사람) 지정을 추진한다. 의사자 지정 제도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을 구하다 숨진 사람의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 급여, 취업 지원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달성군은 경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보건복지부에 박모(14)군에 대한 의사자 지정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대구시와도 ‘의로운 시민’ 지정을 협의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는 박군의 발인이 엄수됐다. 발인에는 가족과 친구, 학교 관계자, 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고인의 영정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유족 등은 눈물을 흘리며 박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13일 오후 5시 19분쯤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의 한 저수지 빙판이 깨지면서 이곳에서 놀던 중학생 11명 중 5명이 순식간에 물에 빠졌다. 빙판 위에 있던 박군은 친구 4명을 물에서 건져낸 다음 친구 1명을 더 구하려다 변을 당했다.
  • 물에 빠진 친구들 구하고 숨진 중학생…지자체 “의사자 지정 추진”

    물에 빠진 친구들 구하고 숨진 중학생…지자체 “의사자 지정 추진”

    물에 빠진 친구들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숨진 중학생에 대해 대구 달성군이 의사자(타인을 구하려 생명을 희생한 사람) 지정을 추진한다. 의사자 지정 제도는 ‘직무 외의 행위’로 위험에 처한 다른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을 구하다 숨진 사람의 유족을 지원하는 제도다. 의사자로 지정되면 유족에게 법률에서 정한 보상금, 의료급여, 취업지원 등의 예우가 주어진다. 달성군은 경찰 수사가 끝나는 대로 보건복지부에 박모(14)군에 대한 의사자 지정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16일 밝혔다. 대구시와도 ‘의로운 시민’ 지정을 협의하고 있다. 이날 오전에는 박군의 발인이 엄수됐다. 발인에는 가족과 친구, 학교 관계자, 주민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고인의 영정과 함께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았다. 유족 등은 눈물을 흘리며 박군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13일 오후 5시 19분쯤 대구 달성군 다사읍 서재리의 한 저수지 빙판이 깨지면서 이곳에서 놀던 중학생 11명 중 5명이 순식간에 물에 빠졌다. 빙판 위에 있던 박군은 친구 4명을 물에서 건져낸 다음, 친구 1명을 구하려다 변을 당했다. 현장에 출동한 119구조대가 박군 등 2명을 구조했지만, 박군은 끝내 숨졌다. 최재훈 달성군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위급한 상황에서도 남을 먼저 생각한 학생의 숭고한 희생과 소중한 마음을 잊지 않겠다. 유가족 여러분께 도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 김장환 목사 ‘50년 인연’ 카터 前대통령 마지막 길 배웅했다

    김장환 목사 ‘50년 인연’ 카터 前대통령 마지막 길 배웅했다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91) 목사가 대한민국 대표 자격으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장례식에 참석하면서 ‘민간 외교의 표상’으로서의 역할이 새삼 주목받았다. 미국 역대 대통령 중 최장수이던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10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그의 국장은 현지시간으로 9일 워싱턴DC의 워싱턴 국립 대성당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 버락 오바마·조지 W 부시·빌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전현직 대통령 5명이 집결한 가운데 치러졌다. 유가족의 뜻에 따라 현지 주재 공관장 외에 카터 전 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는 인사들만 장례식에 초청된 가운데 한국에서는 김 목사가 명단에 포함됐다. 제이슨 카터 전 조지아주 상원의원이 조부인 카터 전 대통령의 병환이 깊어졌을 때부터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일이 생길 경우 꼭 와줬으면 한다’고 알렸고, 우리 외교부 또한 공식 요청한 끝에 김 목사가 한국 대표로 장례식에 참석했다. 6·25전쟁 당시 미군 하우스보이로 일했던 김 목사는 미군 상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떠나 목사 안수를 받았고, 1970년대 초반 카터 전 대통령이 조지아주 주지사였을 때부터 인연을 이어 왔다. 침례교 목사와 침례교 집사로 같은 교단이라는 점이 가교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이 39대 미국 대통령 신분으로 1979년 방한, 박정희 당시 대통령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놓고 논쟁을 벌였을 때 카터 전 대통령의 의전을 맡았던 김 목사는 물밑에서 위기의 한미 관계를 개선하는 데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카터 전 대통령 별세 직후 녹음한 특별 대담에서 “미국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명의 신앙인으로서 매우 겸손했으며 일평생 성경대로 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며 “카터가 떠나기 전 ‘이제 아내와 하나님 곁으로 간다’며 즐겁고 행복하게 눈을 감았다고 한다”고 애도했다. 이번 장례식에선 트럼프 당선인과의 만남은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목사는 ‘트럼프 1기’ 때 핵심 측근이었던 프랭클린 그레이엄 목사와 인연이 깊어 트럼프 당선인과의 접촉 여부에 촉각이 쏠렸다. 원래 트럼프 당선인의 정치적 기반은 미국 남부의 기독교 백인이고 그 중심에 빌리그레이엄전도협회가 있다고 한다. ‘미국 개신교계 대부’였던 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장남인 프랭클린 목사가 현재 대표다. 김 목사는 1973년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 대회’에서 통역을 맡아 널리 이름을 알렸으며 2023년 프랭클린 목사를 초청해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50주년 기념 대회를 열기도 했다. 김 목사는 이러한 인맥을 바탕으로 2016년 말 당시 미국의 45대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트럼프 당선인과 한국 탄핵 국면에서 유력 대권 주자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의 통화를 주선한 것을 비롯해 이후 정상회담 성사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대신 김 목사는 이번 장례식에서 마이크 펜스 전 미국 부통령 부부 등을 만나 안부를 나눴다. 2022년 3월 펜스 전 부통령의 방한 때 김 목사는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조찬 면담을 주선하고 배석해 통역하기도 했다. 11일 귀국한 김 목사는 오는 20일 열리는 트럼프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는 참석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 “후회도 없다, 훈아답게 갈 거다”… ‘가황’도 울컥한 마지막 무대

    “후회도 없다, 훈아답게 갈 거다”… ‘가황’도 울컥한 마지막 무대

    58년 마무리 공연 첫 곡은 ‘고향역’ 카리스마·특유의 퍼포먼스 등 압권‘아름다운 이별’ 부르자 관객들 눈물무릎 꿇고 가슴 치며 관객에게 감사“구름 위서 내려와 이젠 땅에서 살 것”강추위에도 사흘간 7만여명 몰려 “저는 그동안 구름 위를 걷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니까 하늘의 별로 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땅에서 걸으면서 살려고 합니다.” 박수 칠 때 떠나는 ‘가황’의 뒷모습은 아름다웠다. ‘트로트 황제’ 나훈아(78)가 58년 동안 잡고 있던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그는 10~12일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에서 ‘2024 나훈아 고마웠습니다 라스트 콘서트’를 열고 마지막으로 팬들과 만났다. 영하의 날씨에도 사흘간 7만여명의 팬이 몰렸고 공연장은 입추의 여지가 없이 들어찼다. 이번 콘서트는 1967년부터 반세기 넘게 서민들의 애환과 고단한 일상을 노래로 위로했던 나훈아의 가수 인생을 총망라하는 자리였다. ‘고향역’의 기적 소리로 막이 오르자 관객들은 그의 노래와 함께 옛 추억에 빠져들었다. 흰색 두루마기를 입고 무대에 오른 나훈아는 ‘고향으로 가는 배’, ‘체인지’, ‘남자의 인생’ 등을 연이어 부르면서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와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로 관객을 압도했다. ‘18세 순이’를 부를 때는 객석 아래로 내려와 공연장을 뛰어다니는가 하면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특유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6곡을 내리 부른 뒤 나훈아는 “오늘 아침에 연습하는데 가슴이 좀 먹먹하더라”면서 “어렵게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이 본전 생각 나시지 않도록 곡마다 옷을 갈아입었다”고 말했다. 그가 2023년 발표한 앨범 ‘새벽’의 수록곡 ‘아름다운 이별’을 오케스트라 반주에 맞춰 부르자 객석 곳곳에서 일부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나훈아는 “대한민국에서 뒤집고 꺾는 것은 내가 만든 것인데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시범을 보였고, 기타 연주를 하면서 자신이 작사·작곡한 ‘무시로’를 부르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데뷔 후 발표한 약 2600여곡의 노래 가운데 1200곡 이상이 자작곡이다. 팝송 ‘마이웨이’를 부를 때는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는 듯 그의 눈가는 촉촉이 젖어 들었다. 특히 그의 노래 중에는 ‘살다 보면 알게 돼/버린다는 의미를’(‘공’),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테스형!’)처럼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철학적인 가사가 담긴 곡들이 적지 않다. 나훈아는 “여러분 귀가 까다로워서 웬만큼 만들면 듣지도 않아서 언제부터인가 책을 가까이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면서 “그래서 ‘홍시’, ‘테스형!’ 같은 노래는 여러분이 만든 곡이고 팬들이 저에게는 스승”이라고 말했다. 공연 때마다 팬들에게 자신의 속내를 밝혀 온 그는 과거 항간에 떠돌았던 ‘신체 절단설’을 언급하며 “지금은 웃지만 그때 제 속이 어땠겠냐”고 반문했고, 최근 정국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소신을 밝혔다. 지난해 2월 은퇴 발표 배경에 대해서도 “제 공연은 힘이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다”면서 “5~6년 전부터 은퇴를 생각했고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마이크를 놓는다는 결심”이라고 솔직하게 심경을 털어놨다. 마지막 곡 ‘사내’의 가사를 “후회 역시도 없다/훈아답게 갈 거다”라고 개사해 부르던 그의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고 약 150분 동안 20여곡을 열창한 뒤 합창단의 ‘올드 랭 사인’이 흐르자 무대에서 무릎을 꿇고 왼쪽 가슴을 치면서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번 공연을 직접 기획하고 연출한 나훈아는 드론에 마이크를 실어 보내고 거수경례를 하는 퍼포먼스로 대미를 장식했다. 무대 뒤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관객들은 아쉬움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은 가황의 마지막 무대를 배웅했다. 이순이(72)씨는 “야성미 넘치는 모습으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인데 너무 빨리 은퇴하는 것 같아 아쉽지만 박수 칠 때 떠나는 모습도 멋있다”고 전했다. 이소연(29)씨는 “가족들이 모두 팬인데 마지막 무대를 함께해 감격스럽다. 유종의 미를 잘 거두신 것 같다”고 말했다.
  • “입대를 명 받았습니다!”…새해 첫 육군 탄생 18개월간 국토수호

    “입대를 명 받았습니다!”…새해 첫 육군 탄생 18개월간 국토수호

    집 떠나와 열차 타고 훈련소로 간 대한의 건아들이 6일 올해 첫 현역병 입영행사를 마치고 군복을 입었다고 육군이 밝혔다. 육군은 이날 충남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2025년 첫 현역병 입영행사가 성황리에 마쳤다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는 1500여명의 입영 장정과 이들을 배웅하러 온 가족과 친지 등 총 30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개식사, 국민의례, 입영 장정 선서, 육군훈련소장 인사말씀, 부모님께 대한 경례, 폐식사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육군은 “새롭게 시작되는 군 생활에 대한 입영 장정들의 설렘과 가족·친지들의 격려가 어우러져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며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입영한 장정들은 6주 동안 정신전력, 제식, 개인화기, 수류탄, 핵 및 화생방 개인보호, 전투부상자처치, 각개전투 등 다양한 교육훈련을 이수하고 정예병사로 거듭날 예정이다. 이날 입대한 청년들은 앞으로 18개월 동안 나라와 국민을 지키며 군 생활을 수행하게 된다. 육군훈련소 교관인 고준호 상사는 “새해 첫 훈련병들을 맞이해 기초와 기본에 충실한 교육이 진행될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훈련을 준비했다”면서 “훈련병들이 육군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들이 입고 먹고 자는 모든 시간을 부모와 형제의 마음으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류승민 육군훈련소장은 “안전한 교육환경과 실전적인 교육 훈련을 통해 입영 장정들이 위국헌신, 책임완수, 상호존중의 가치를 알고 실천하는 정예신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육군훈련소의 전 장병과 군무원이 한마음 한뜻으로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육군은 이날을 시작으로 올해 육군훈련소와 16개 사단 신병교육대대에서 총 20만여명의 정예신병을 양성할 예정이다.
  • 제주항공 승무원 “대놓고 울 수도 없다…최선 다했을 동료들 마지막 존중되길”

    제주항공 승무원 “대놓고 울 수도 없다…최선 다했을 동료들 마지막 존중되길”

    현직 제주항공 승무원이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며 “마지막까지 승객을 안심시키며 탈출 준비를 했을 동료들의 마지막이 존중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자신을 제주항공 승무원이라고 한 작성자 A씨는 “항상 마주하던 동료를 잃었다. 그리고 승객을 잃었다. 어떤 게 원인인지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모두 쉬이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현 상황이 힘들고 가슴 아프다. 슬픔이 어떤 건지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 A씨는 이어 “그럼에도 오늘도 승객을 맞이한다”면서 “조금만 건드려도 주저앉아 울 것 같지만 이를 악물고 이 상황에도 저희를 믿고 비행기에 탑승한 승객을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최선을 다한다. 정비사님들은 내 소중한 동료들이 탑승하기에 여느 때처럼 최선을 다한다”며 자기 자리를 지키며 최선을 다하는 동료들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저희는 대놓고 울 수도 없다. 비행이 끝나야 손님이 하기해야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혹여 스케줄로 인해 내 떠난 동료를 배웅하지 못할까 봐 또 애가 탄다”고 했다. A씨는 “정비사님들이 너무 힘들어하시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늘 최선을 다하셨다. 우리는 정비사님들을 믿고 탑승한다. 기장님들이 그 무거운 책임을 가지고 다시 조종실로 들어간다. 기장님들의 선택을 믿고 존중한다. 떠나신 기장님의 최선을 저희는 믿는다”고 했다. 그는 “마지막까지 승객을 안심시키며 탈출 준비를 했을 내 동료들을 존경한다”면서 “내 동료들의 마지막이 존중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하며 언론을 향해 “정제된 기사를 써달라. 그 어느 권력을 바라보지 말고 진짜 기사를 써달라”고 했다. 한편 소방 당국 등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태국 방콕에서 출발해 무안국제공항으로 향한 제주항공 여객기가 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다 공항 시설물과 충돌해 기체 대부분이 화염에 휩싸였다. 이 사고로 승객 175명 전원과 조종사·객실 승무원 각 2명 등 179명이 현장에서 사망했다.
  •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폴리 사운드/홍성구[서울신문 2025 신춘문예 - 소설]

    텔레비전과 비디오가 결합된 제품이었다. 이름은 비디오 비전. 검고 매끈한 TV 수상기 밑에 VHS 투입구가 달린 모델이었다. VHS 투입구에 손을 넣었다 빼면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관문처럼 마구 펄럭였다. 나는 그게 마치 누구의 손짓 같아서 그 문이 금세 닫힐 것 같은 조바심에 손을 넣었다 뺐다 넣었다 뺐다, 반복했다. 하지만 매번 편지 한 통 없는 우편함처럼 미지의 그곳은 텅 빈 공백으로 열렸다 닫힐 뿐이었다. 비디오테이프를 밀어 넣으면 어딘가 멋진 곳으로 안내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집에는 어린이용 비디오테이프는커녕 호환 마마보다 무섭다는 불량·불법 비디오테이프 하나 없었다. 그래도 나는 끈질기게 그 일을 멈추지 않았다.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었으니까. 그날은 평소에 뽑혀 있던 케이블이 비디오 비전의 본체와 콘센트 사이에 연결돼 있었다. 미지의 세계 관람권인 비디오테이프는 없었지만, 입장권을 들고서 문 앞에서 돌아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TV 전원을 켰다. 리모컨을 든 나는 놀이공원 앞에 서 있던 게 분명하다. 그러나 환해진 직사각 화면에는 기대와 다르게 회색의 담벼락이 펼쳐졌다. 황량한 공장의 경계를 드러내는 콘크리트 담. 공장 담벼락 같아서였을까. 소음이 들렸다. 치이이-익. 치이이—익. 11번으로 9번으로 7번으로 채널을 바꿔도 소용없었다. 방송이 송출되지 않는 낮 시간대였다. 실망을 금치 못한 나는 리모컨 버튼을 이것저것 만지작거리면서도 전원 버튼 근처는 누르지 않았다. 은밀한 일탈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색 소음이 진동하였다. 나는 속수무책으로 멍해져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들어 버렸다. 회색 소음과는 다른 소음을. 삐-------이. 삐—————————익. 회색 소음보다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었다. 귀에 거슬려 TV를 끄려다 소음의 정체에 의문이 생겼다. 회색 소음은 회색 화면에 어울리는, 공중에 스크래치가 그어지는 소리였다. 그러나 높고 날카로운 소음은 회색 스크래치와 이질적이었다. 저 소음을 방송국에서 보낸 것일까. TV 스피커에 귀를 갖다 대고 나서야 알아차릴 수 있었다. TV 스피커에서 높고 날카로운 소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모기가 귓가를 스치는 정도로 시작되는 데시벨은 금세 한여름 매미 떼의 데시벨로 거세지고는 했다. 나는 당연히 아버지와 누나도 소음에 시달릴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TV를 볼 때 별다른 말이나 반응이 없었다. 소음을 듣지 못하는 건 수리기사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하게 생긴, 그리 크지 않은 귀를 스피커에 갖다 댄 수리기사는 고개를 몇 번 갸웃했다. 수리기사의 고갯짓에 아버지는 그것 보라는 눈빛을 나에게 던졌다. 나는 초조해져서 열 손가락을 움직이다가 매미 떼가 맹렬히 힘줄을 튕길 때 지금이라고 외쳤다. 수리기사는 평범한 귀를 다시 스피커에 밀착했고 아버지도 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소음을 듣지 못했다. 아버지는 나를 예민한 아이로 치부하며 미안하다고 말했고, 수리기사는 공구함 한 번 열지 않았다며 출장비를 사양했다. 거실에 혼자 남은 나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매미의 합주를 들었다. 이렇듯 분명히 울리는 소리를 나만 듣는다는 게 답답하거나 억울하기보다는 어쩐지 서글펐다. 그때였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처음으로 명백히 혼자라고 느꼈다. 사운드 디자이너라고 하면 고민 없이 부풀어 오른 질문들이 날아든다. 음악하세요, 아니 디자이너니까 미술 쪽인가. 사운드를 디자인화하나요, 디자인을 사운드화하나요.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공감각의 예술인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고요한 공중에서 날개를 퍼덕이는 잠자리를 몰래 잡아채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포획의 목적은 잠자리가 아니다. 잠자리의 소리다. 그물망에 든 잠자리를 조심히 빼서 사각의 채집통에 넣어 두고 귀를 연다. 잠자리의 날개끼리 충돌해서 나는 타닥타닥 소리. 그 소리는 점점 허물을 벗어 잠자리에서 탈피한다. 사운드 디자이너는 잠자리의 소리를 다른 무언가의 소리와 연결하는 사람이다. 대개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사람들은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대체 뭘 어떻게 한다는 거예요. 사실 뭘 어떻게 인위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사물에 있는 것을 튀어나오도록 하면 된다. 숨어 있는 물성이 드러나도록 상황을 마련하는 게 나의 일이다. 적막한 설산을 걸을 때는 굵은 소금이 뿌려진 바닥을 밟으며 밀가루 포대를 손으로 주무른다. 수풀이 바람에 휘날릴 때는 릴테이프 더미를 양손 사이에 놓고 비빈다. 중세 시대의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열릴 때는 콘크리트 벽돌들을 포개어 놓고 두 벽돌을 맷돌 돌리듯이 간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다. 있는 것을 끄집어내면 된다. 채집하고 발견하는 셈이다. 순서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채집하려면 발견이 우선 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채집이 먼저이다. 채집한 후에야 발견할 수 있다. 조선시대 사극에 매달려 있던 때였다. 그 작업은 현대에서는 접하기 힘든 소리의 연속이었다. 그중 가장 힘든 것은 활시위가 당겨지는 소리였다. 적을 물리치겠다는 일념하에서 적장을 향해 팽팽해진 활시위의 탄력과 긴장을 어떻게 해야 소리로 튀어나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활시위와 연결할 수 있는 사물이 떠오르지 않아 활 자체로 가능할지 시도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눈을 밟는 것보다 소금을 밟는 소리가 사람들 머릿속의 눈 발자국 소리에 더 가깝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수풀보다 릴테이프가 더 실감 나는 것이다. 활을 아무리 팽팽히 당겨도 소용없었다. 내가 당긴 활시위에서는 음률이 없는, 맥 빠진 거문고 줄 소리가 났다. 가죽가방과 고무장갑 따위를 비틀고 늘려도 소득은 없었다. 뭘, 그렇게 발길질당한 강아지마냥 낑낑대요? 고무장갑의 탄성 한계 때문에 경련을 일으키는 두 팔을 채아가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스튜디오에서 녹음과 믹싱 작업을 맡고 있는 채아는 내 입에서 난다는 소리를 자주 타박했다. 힘을 쓸 때나 뭔가에 몰두할 때나 밥을 먹을 때도 개 같다고 했다. 선배에게 개 같다니 참 맹랑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소리를 낸다는 게 더 신경 쓰였다. 남의 소리는 그렇게 잘 들으면서 어떻게 자기 소리는 못 들을 수 있어요. 무슨 소리를 내냐고 반문했을 때, 채아는 내 직업적 소양이 의심된다며 따졌다. 가벼운 발길질이 아냐. 늘씬하게 얻어맞은 것 같아. 무심결에 또 어떤 소리를 냈을까. 궁금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숨 꼴딱거릴 것처럼 혀 내밀고 있지 말고 수분 보충 좀 해요. 선배를 계속 개 취급하는 못된 버르장머리에 대해 한마디 하려다가 채아가 건네는 맥주캔을 넙죽 받았다. 거절하기에는 맥주캔의 표면이 얼음장처럼 시원했다. 나는 모래가 쌓여 있는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게, 이럴 때는 백사장 같네. 나는 손으로 모래를 뒤적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모래 옆에는 나무 옆에는 대리석 옆에는 소금 바닥이 있었다. 왜요? 휴가 못 가는 삶이 처량해요? 채아가 자신의 맥주를 들고 옆에 앉았다. 채아는 엉뚱하게 넘겨짚는 구석이 있었지만, 캐묻지 않고 넘겨짚는 포즈를 취한다는 점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파트너였다.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맥주를 마셨다. 알코올의 독성이 빈속을 찔렀다. 불법을 저지른 듯한 짜릿함. 백사장이 아닌 모랫바닥에서라도 잠시 쉬고 싶었다. 나는 금세 침묵에 이르렀고 내 마음을 넘겨짚었는지 채아도 보조를 맞췄다. 창고라고 불리는 작업실에는 철가방, 문손잡이, 깡통, 톱, 바이올린 활, 구두, 로프, 용수철, 자동차 문짝이 나름의 질서 속에 존재했다. 스스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물성을 깨우는 힘에 연주하는 악기들. 악기들은 지휘자가 없다는 듯 고요했다. 소리에 민감한 사람에게 고요는 휴식 또는 죽음과 같다. 스르르 눈이 감겼다. 그러나 곧 수면의 문턱을 넘다 정강이가 쾅, 부딪혔다. 뭐야. 미안해요. 블루투스가 꺼진 줄 모르고 볼륨을 키웠네. 끌게요. 아니야, 끄지 마. 본능적으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가가자 채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내밀었다. 채아가 무안할 만큼 거친 손길로 스마트폰을 뺏어 들었다. 화면 속 영상에서 판다 한 마리가 죽순을 맛있게 뜯고 있었다. 선배도 얘 알아요? 선배가 알 정도면 푸바오가 인기긴 인긴가 보네. 나는 스마트폰을 던지듯이 채아에게 떠넘기고 진열장을 뒤적였다. 구석에 처박혀 있던 것을 찾아 꺼낼 때는 낮게 탄성이 배어 나왔다. 갑자기 죽도는 왜 꺼낸 거예요? 나는 채아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샷건마이크 앞에 섰다. 대나무로는 텅텅, 비어 있는 소리만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판다의 날카로운 이빨과 단단한 턱은 예상치 못한 대나무의 물성을 깨우고 있었다. 판다가 씹는 게 죽순이 아니라 겉과 속이 단단한 뼛조각처럼 느껴졌다. 죽도를 두어 번 바닥에 내려쳤다. 탁탁. 대나무를 다른 사물에 부딪치는 것으로는 부족했다. 나는 죽도를 감싸고 있는 줄을 칼로 끊어 버리고 붙어 있는 네 쪽의 대나무에 칼집을 내어 서로 떨어뜨렸다. 그러고는 떨어진 대나무들을 한 손에 감싸고 가볍게 비볐다. 부드득. 귀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죽도를 샷건마이크에 더 가까이 대고 온 힘을 다해 두 손으로 대나무들을 비볐다. 부드드드드드드득. 대나무에서 소리가 튀어 올랐고, 활시위를 당기는 팽팽한 팔뚝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사물의 성질은 마찰에 의해 드러난다. 우리가 외부와 마찰을 빚을 때 나를 인식하는 것처럼. 소리를 발견한 쾌감에 대나무를 비비는 나의 팔뚝은 한껏 부풀어 오르는 것 같았다. 사극 작업이 끝나고 몇 개월 뒤에 스튜디오를 그만두었다. 사극은 흥행에 성공했고 입소문이 났는지 작업 물량이 컨베이어벨트처럼 이어졌다. 줄지어 운반되는 의뢰를 수하물로 적재하고 물품을 의뢰서에 맞게 포장한 후에 다시 컨베이어벨트로 출하하는 기계적인 시간이 계속됐다. 과로나 질식이 원인은 아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소리를 단순 제조하는 업자가 되리라는 두려움이 찾아들었다. 납품 기한을 맞추기 위해 기존에 녹음해 둔 파일들을 대강 믹싱하는 일들이 빈번해졌다. 나는 발자국 소리에도 캐릭터가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인을 만나러 달리는 그리움이 실감되도록 수십 번을 달리고 또 달리고, 도회적인 세련 아찔한 피로 흔들리는 일상이 전해지도록 하이힐을 신고 균형을 잡던 시간이 떠올랐다. 당분간 멈춰야 했다. 휴가를 가랬더니 휴식에 들어가네. 채아는 내가 내민 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물끄러미 보았다. 채아의 눈에서 흔히 볼 수 없는 머뭇거림이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뭔가를 넘겨짚었는지 다가와서는 자신의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쌌다. 나는 계획하지 않고 쉬는 계획을 세웠다. 눈이 감길 때 자고 눈이 떠질 때 일어나고 때가 이르거나 늦게 식사하고 술을 가볍게 또는 취하도록 마시고 느릿느릿 산책하고 레고 블록으로 별이 빛나는 밤을 조립했다. 집 근처를 돌거나 여행을 떠나서 풀벌레, 지하 터널, 경운기, 야적장, 항만, 오일장, 밤바다에 붐마이크를 갖다 댔다. 녹음 파일들을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았고, 녹음한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 시간은 왜곡 없이 흘렀고 나는 날짜와 요일 감각을 잃었다. 일상에 파동이 없었다. 파동이 없으므로 외부에 닿는 주파수도 없을 터였다. 송신하지 않고 수신하지 않는 생활. 나는 자유로이 고립되었다고 느꼈다. 누나에게서 연락이 오기 전까지는. 돌아가셨다. 누나의 말에 잠시 정적이 돌았다. 누나와는 일 년에 한 번 연락할까 말까 하는 사이였으므로 액정 화면에 뜬 두 글자에 나는 이미 예감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내가 한 말은 고작 알겠다, 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은 조촐했다. 친척은 남보다 못한 사람들이어서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아버지가 은퇴한 지 십여 년쯤 지나서 대표이사가 보내는 화환조차 없었다. 나는 주로 국화가 장식된 제단 옆에 앉아 있었고, 한 번쯤 봤거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맞절했다. 둘째 날 오후, 누나가 식탁으로 나를 불렀다. 주변 식장은 조문객들로 붐볐지만 장례 도우미를 제외하고는 누나와 나만 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누나는 대뜸 앉으라고 말했다. 누나는 군말하는 법 없이 할 말만 하는 사람이므로 나는 군말 없이 누나와 마주 앉았다. 일 미터쯤의 간격조차 어색한 사이였지만 누나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기억 속 어느 날에는 없었을 주름과 기미가 보여 열 살의 터울이 새삼스러웠다. 미처 상의하지 못한 장례 절차에 대해 말하겠거니 생각하고 있던 내게 누나는 구겨진 편지 봉투를 내밀었다. 반으로 접힌 편지 봉투는 살짝 불룩했다. 너한테 필요할 거다. 누나의 단정에 나는 편지 봉투에 든 것을 꺼냈고, 내 손에 쥐어진 것은 카세트테이프였다. 겉면 라벨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고 손때와 볼펜 얼룩이 낀 낡은 상태였다. 카세트테이프를 보자마자 나는 그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었고, 누나의 말처럼 내게 필요하리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나는 일산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단지로 개발되지 않은 땅에 창고가 딸린 농가주택이 비어 있었다. 창고를 작업실로 쓰면 되겠다는 심산에 덜컥 결정을 내렸다. 파동 없는 삶의 관성에서 벗어난 것이다. 벗어나려고 했다기보다는 벗어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아버지의 죽음이 빚은 진동이 나를 다시 작업실로 이끌었다. 나는 일산의 공사장, 분리수거장, 고물상을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물건들은 모두 채집하였다. 농기구와 농약, 비료 포대 등이 있었을 창고는 각목, 글러브, 밥솥, 스케이트보드, LP, 유리컵, 프라이팬, 사기그릇, 고무 팩 등이 있는 작업실로 탈바꿈되었다. 작업실의 윤곽이 자리잡힌 날, 양쪽에 테이프 플레이어가 장착된 더블 데크 카세트 플레이어를 진열장에서 꺼냈다.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발견한 괜찮은 매물이었다. 예상외로 쓸 일이 없다가 이사 오기 전에 쓰고 이번이 두 번째였다. 편지 봉투에 담긴 테이프가 자리를 바꿔 플레이어에 담겼다. 달칵, 버튼이 눌리면서 테이프는 돌아가고 슥삭슥삭, 과도에 사과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큼큼. 부스럭 부스럭. 이게 맞나. 탕. 텅. 아, 아. 아버지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통기타를 쳤다. 장롱 위에 뿌연 먼지를 덮어쓴 커버에 담겨 있던 통기타이리라. 나는 아버지가 통기타를 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어린 나는 연주되지 않고 진열되지 않은 채 장롱 위에 방치된 통기타의 존재성이 의아했다. 통기타의 쓸모를 알 수 없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의 연주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으면서 나는 통기타는 방치되었던 것이 아니라 안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짐작하였다. 가슴에 묻어 둔 열망이 장롱 위에 놓이는 방식으로 드러난 게 아닐까. 눈에 보이면 마음이 근질거리고 눈에 안 보이면 마음이 서걱여서 대강의 형태로 보이게 놓아둔 것은 아닌지. 동그란 스피커에서 가리워진 길이 울려 퍼졌다. 아버지의 노래는 후렴에 이르러 그대를 애타게 불렀지만, 핸드폰 벨소리가 울려 길을 터 줄 그대를 더 호출하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는 여기까지 들었다. 나는 마음먹은 대로 더 듣기로 한다. 여보세요. 아버지의 음성이 저랬구나. 아버지가 스피커에서 멀리 떨어졌는지 통화 내용은 잘 들리지 않았다. 1분도 지나지 않아 통화는 끝났고 아버지는 다시 통기타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줄 한 번 튕기지 못하고 통기타를 놓쳤다.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통기타는 소음을 일으켰지만, 뒤이어 터져 나온 소리에 소음은 배경음으로 밀려났다. 격렬한 기침 소리. 콜록콜록, 쿨룩쿨룩 따위로는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진동하였다. 숨이 차고 흉통에 경련하는 병색이 선명하게 들렸다. 아버지의 생전에는 들은 기억이 없는 소리였다. 아버지의 기타 소리를 들었다면 아버지의 기침 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까. 아버지는 다감하지 않았고 나는 살갑지 않았다. 그렇다 해도 나는 왜 그리 아버지의 소리에 둔감했을까. 일시 멈춤 버튼을 눌렀다.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끝났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이 남았다. 휴지(休止)가 필요했다. 커피를 끓이러 싱크대 쪽으로 향하는데, 양은 주전자가 발에 차여 시끄러웠다. 주전자가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째그랑 일을 벌여 놓고, 뭐하는 거야 째쟁쨍. 작업실에 쌓인 도구들이 매립지에 버려진 고물처럼 낡아 보였다. 이대로 뒀다가는 달걀 썩는 듯한 매립지 냄새가 진동할지 모를 일이었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아, 이게 누구신가요? 나를 헌신짝으로 만든 그분 아닌가요? 채아와 거의 일 년 만의 통화였다. 가끔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서로 생존을 확인하는 용도일 뿐이었다. 버려지긴 누가 버려져. 내가 도망친 거지. 그럼, 멀리 가버릴 것이지 웬일로 연락했어요? 나, 얼마 전에 일산으로 이사했어. 일산? 왜? 거기로 왜 갔는데요? 이제는 잭을 다시 만나 볼까 하고. 누구요? 잭? 아, 난 또 누구라고. 잭 폴리? 내 말뜻을 알아들은 채아는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이제는 도망가지 말아요. 나는 그럴 일 없을 거라고 답했다. 앞으로는 도망가지 않겠다는 것, 그것이 채아에게 연락한 첫 번째 이유였다. 채아에게 알리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하면 또 프리하게 때려치우지 말란 법이 없으니까.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일감 때문이었다. 나는 일을 할 때 의뢰인과의 소통은 채아에게 맡겼었다. 소리만 잘 만들면 그만이라는 게 대외적인 사유였지만, 인맥이라든지 비즈니스적 관계에 반응하는 알레르기 때문이었다. 채아는 메신저로서 역할을 잘했고 사교적이어서 업계 관계자들과 친분이 있었다. 나이가 들어서 때가 묻은 것인지, 생계의 절박함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채아를 통하면 일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다행스럽게 채아는 나를 넘겨짚었다. 채아의 주선으로 맡은 첫 복귀작은 돌침대 광고였다. 별 다섯 개가 돌침대에 박히는 효과음을 내 주세요. 광고 제작사 측에서 보내 준 영상에 등장한 돌침대 사장은 이마에 별 다섯 개를 달고 손가락 다섯 개를 좍 펴고 있었다. 별이 돌침대에 박히는 일은 당연히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사람들의 관념에 있을 법한 소리를 뽑아내야 했다. 별이라는 거대 물질이 흔들림 없이 단단한 돌침대와 부딪치는 상황이었다. 자동차 문짝을 해머로 치고 외날의 서양톱을 바이올린 활로 켜서 고음부를 녹음했고, 샌드백에 아령을 두들기고 대리석 바닥에 모래주머니를 떨어뜨려서 저음부를 녹음했다. 녹음된 고음과 저음을 믹싱하니 별이 우주에서 날아와 돌에 꽂히는 듯한 효과음이 완성되었다. 광고는 마케팅 비용의 한계로 공중파에서는 송출되지 못하고 케이블TV의 프리미엄 시간대가 아닌 아침과 낮에 방영되었다. 하지만 빨간 별 다섯 개를 이마에 박은 돌침대 사장이 인터넷상의 밈이 되어 제품의 매출이 대폭 올랐다. 그 덕분에 돌침대 하나가 작업실의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광고 이후로 어린이 애니메이션과 단막극 등의 의뢰가 들어왔고, 지루하거나 지치지 않을 정도의 딱 알맞은 속도로 작업이 이어졌다. 내게 맡겨지는 작업이 폭설로 쌓이거나 진눈깨비로 흩날리지 않고 사람들이 오가는 길의 잔설로 덮이던 즈음의 어느 날,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다. 스팸이겠거니 무시하려는데, 부재중 통화가 2건 찍히고도 벨은 멈추지 않았다. 광고성 전화라고 하기에는 상도덕이 없다고 할 정도의 집요함이었다. 보이스 피싱도 이렇게 한 번호를 공략하지 않을 텐데. 집 나간 가족을 찾는 연락인가. 죄송합니다. 이채아 디자이너님이 이렇게 해야 받으실 거라고 하셔서. 젊은 여자는 사과부터 했다. 문자는 언제 확인할지 모르니 받을 때까지 전화를 걸라고 하는 채아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그럼, 채아를 통해 연락하면 되지 않나. 회장님께서 직접 연락드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회장이라는 말에 묘한 호기심이 일었다. 요새는 낯 모르는 아무 행인에게 선생님이라고 한다는데, 회장님이야 등산회, 친목회 등 각종 모임으로 인해 길거리에 널린 직위가 된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여자의 절제된 말투와 주변의 정제된 소음이 여자가 말하는 회장이 TV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던 회장을 지칭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하필, 왜 저인가요. 회장님은 사극 마니아이십니다. 사극이라면 영화든 드라마든 가리지 않는 회장이 내가 디자인한 활 소리에 감탄했고, 수소문한 끝에 내가 일하던 스튜디오를 알아내고 채아를 통해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사연의 개연성은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있을 만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회장이 의뢰한 작업은 수긍하기 어려웠다. 회장이 투자하는 사극 영화에 사운드를 디자인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면 금세 납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은 사극과 관련이 없고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만한 사운드를 디자인하기를 바랐다. 작업은 간단했고 받는 금액은 과도했다. 이 정도의 일로 그 정도의 돈을 받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 뭔가 대단한 꿍꿍이가 있지 않고서야 그런 제안을 할 리가 없을 텐데.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상상력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회장 비서의 말은 곧이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몇 차례 거절하다가 일을 맡기로 했다. 결국 회장이 거부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액수가 아니었다. 회장은 왜 그렇게 큰돈을 들여서까지 이 작업을 성사하려는 것일까. 회장에게 필요한 소리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진 게 문제였다. 영상은 3분 30초 정도로 짧았다. 그것은 20대 초반의 여자가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브이로그처럼 보였는데, 별다른 촬영이나 편집 기술이 동원되지 않은 평범한 영상이었다. 여자의 브이로그는 시종일관 무성(無聲)으로 진행되었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촬영할 때 음소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었을 것이다. 소거된 음(音)은 일상적이고 보편적이었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지고 헤어드라이어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옷장 속 옷을 뒤적거리다 여러 벌에서 한 벌을 꺼내는. 실감 나게 소리를 입히는 일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였고, 도대체 어디에서 상상력을 펼쳐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반나절 만에 작업을 끝냈고 바로 보내기가 민망해 이틀 묵혔다가 보냈다. 소리가 빈 부분이 있다고 하십니다. 비서의 말에 뭔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소리가 비어 있다? 알맹이가 드문 과자 봉지를 질소로 과포장했다는 비난처럼 들렸다. 사실, 과포장이라는 말은 적합하지 않다. 비서를 통한 회장의 의사는 내가 과포장하는 성의조차 없이 볼품없고 납작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화가 났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아티스트로서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만한 도발이었다. 몇 번이나 비서에게 연락해서 계약금을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이대로 그만두는 건 어딘지 모르게 찜찜했다. 회장의 말은 자존심을 긁었지만, 작업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오히려 마음을 돌려놨다. 다른 급한 작업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나는 이 일을 끝내기로 했다. 브이로그를 여러 번 돌려 봤다.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심정으로 세부를 살폈다. 내가 놓친 게 무엇일까에 초점을 맞췄지만, 어디가 비어 있다는 것인지 그 공백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영상에서 일어나는 충돌, 마찰 등의 물리 작용에는 그에 합당한 소리-내 판단으로는 그렇다-가 들렸다. 회장은 인식하는데 나는 인식하지 못하는 소리는 무엇일까. 내가 영상을 보고도 인식하지 못한다면, 그 소리는 화면 밖에서? 의자에 앉아 있던 나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나 곧 주저앉았다. 무성으로 촬영된 영상의 화면 밖 소리를 듣는 게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회장은 무엇을 지적한 걸까. 혹시 비어 있다는 것은 있어야 할 소리가 없다는 게 아니라 소리에 부족함이 있다는 것 아닐까. 영상 속 여자, 누굽니까? 대뜸 던진 말에 비서는 평소와 다르게 뜸을 들였다. 질문하지 않는 데에 동의하신 것 아니었나요? 그랬다. 계약서에 있던 내용이다. 그랬죠.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어요. 제 소리가 실감 나지 않는다는 거잖아요. 소리의 주체를 모르고 만들었는데 소리에 어떻게 실감이 있겠어요. 그렇다고 해도 회장님의 뜻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빈 소리를 메꿀 방법은 없겠죠.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이틀 후에 비서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 질문에 대한 회장 측의 답은 이랬다. 그녀는 수백 개의 딤플로 뒤덮인 골프공 같습니다. 겉은 매끄러우면서 울퉁불퉁합니다. 속은 타이어를 만드는 고무처럼 질기고 튼튼합니다. 그녀는 가볍지만 단단합니다. 간단히 한 손에 올릴 수 있지만 그 세계는 견고해서 함부로 부술 수 없습니다. 그녀의 본질은 공이어서 굴릴 수 있고 던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혀도 농구공처럼 통통 튀기지는 않습니다. 드라이버를 풀 스윙하면 그녀는 멀어집니다. 드라이버와 마찰을 일으키고 그 반발력으로 멀어지는 그녀는 딤플의 수만큼 더 멀리 날아갑니다. 수많은 딤플로 비거리는 늘어납니다. 주인공을 알고 싶다는데 웬 골프공 타령이람. 초보자를 위한 골프 교본도 아니고 무슨 저의로 알쏭달쏭하게 의미를 엮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계약서 조항을 어긴 데 대한 장난성 조롱으로 읽혔다. 그러나 몇 번씩 읽으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그녀는 왜 공일까. 많고 많은 공 중에서 왜 하필 골프공일까. 골프공을 뒤덮고 있다는 딤플이 무엇인지 찾아봤다. 딤플은 골프공 표면에 오목하게 파인 홈으로 일반적으로 골프공에는 300~500개의 딤플이 파여 있다. 드라이버 스윙으로 날아가는 골프공에는 공기 저항이 생기는데, 공기 저항은 골프공 앞뒤 표면의 압력 차에 의해 발생한다. 이때 딤플은 주위에 작은 회오리를 일으키고 이로 인해 공기가 뒤섞여 공 뒤쪽 압력이 떨어지지 않아 비거리를 늘린다. 흠집이 난 골프공의 비거리가 늘어난다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나서 골프공에 흠집을 내어 사용한 것이 딤플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골프공의 겉과 속. 가벼움과 단단함. 딤플과 비거리. 비로소 나는 비서의 말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상상력이 필요했다. 나는 그녀 캐릭터에 집중했다. 골프공 같은 그녀를 수없이 떠올렸다. 작지만 단단하고 가볍지만 통통 튀지 않는. 캐릭터가 머릿속에 그려지자 그녀에게 합당한 소리가 튀어나오는 듯했다. 그러나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입에서 계속 딤플이 맴돌았다. 딤플은 보조개라는 뜻이 있지만 외모의 특징을 표현한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흠집이 많다는 뜻일까. 하지만 딤플은 비거리를 늘린다고 했으므로 결함의 의미로 쓰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목하게 파인 흠집이 결함이 아니라면, 떠오르는 단어는 하나밖에 없었다. 상처. 나는 상처의 비거리를 생각했다. 그녀는 문을 (힘없이 덜컥 탁) 여닫으며 방에 들어선다. 암막 커튼이 처진 방에 (딸깍) 빛을 부른다. 그녀의 손이 화장대 의자를 (그윽) 끌어당기고 다른 손에 들고 있는 스마트폰이 흔들린다. 초점 없는 화면이 360도로 돌아가고-슬픔이 블랙홀로 빠져드는 것 같다-스마트폰을 (드득) 거치대에 고정시키고 다시 돌아온 화면에서 수건이 (스르르) 풀리면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이 보인다. 그녀는 화장대의 거울을 응시하다가-그녀의 얼굴은 뒤통수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헤어드라이어 버튼을 (틱탁) 누른다. (경쾌함 없이 심란하고 무거운 위이잉) 헤어드라이어는 돌아가고 그녀의 손길에 머리카락이 부서진다. 이윽고 헤어드라이어의 작동은 (탁) 멈추고 상반신을 거울 쪽으로 수그린 그녀의 손길이 분주하다. 그러다가 (툭) 아이섀도 브러시가 화장대에 떨어진다. 그녀는 브러시를 집다가 다시 (툭) 떨군다. 화장을 멈춘 그녀는 뭔가를 결심한 듯 (드윽) 의자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트특) 거치대에서 뽑아 손에 든다. 옷장을 (탕) 열고 (드르륵) 옷을 휘적이다가 고른 하나를 침대에 (툭) 던져 놓는다. 나는 그녀의 영상에 소리를 입혔고 소리에 그녀의 상처가 묻어나도록 노력하였다. 볼륨과 톤을 조정하여 모든 음은 낮고 둔탁하였다. 그녀가 찍은 영상에 대한 작업은 끝났지만, 작업이 모두 끝나지는 않았다. 회장 측에서 보낸 파일에는 부가 영상이 있었다. CH 02 2023/10/30 11:27:11 그녀가 잔디밭 위 돌길을 걷는다. CH 01 2023/10/30 11:27:15 ~ 11:28:07 그녀가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CCTV 화면이었다. 그녀의 마지막 모습일 듯한 장면이었다. 그런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나는 CCTV 화면에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소리가 있지 않을까, 궁리하였다. 특히, 대문의 화면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번 채널의 카메라에서 그녀는 잠깐 나타났다가 대문을 열고 나간 뒤로 볼 수 없다. 대문 위에 포치가 있어 그녀는 흔적 없이 사라진 것 같다. 여기에서는 그녀의 멀어지는 발소리만 남게 될까. 1분이 채 되지 않는 마지막 부분을 돌리고 또 돌려봤다. 그러다가 영상이 끝나기 몇 초 앞두고 그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회장으로부터 연락이 온 건 작업을 마친 지 2주가 지나서였다. 이번에는 비서를 통하지 않고 직접 나와 통화하였다. 회장은 정중하게 집으로 초대하면서 감사의 의미임을 분명히 했다. 회장 집 대문 앞에 도착한 나는 벨을 누르려다가 경사진 이면도로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몇 발짝 걸은 후에 뒤를 돌아 위를 올려다봤다. ㄱ자 형태 집의 가로획에 해당하는 곳 벽면에 CCTV가 부착되어 있었다. 노트북으로 봤던 1번 채널 화면의 각도가 한눈에 들어왔다. CCTV 쪽에 고정한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데, 옆으로 그녀의 멀어지는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해의 시선이 거둬지는 시각이었다. 나는 그녀를 배웅하듯이 잠시 서서 그녀의 비거리가 얼마쯤이었을지 생각했다. 2번 채널 화면에서 그녀가 걷던 잔디밭 위 돌길의 끝에 현관문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집 안으로 들어섰다. 회랑 같은 널따란 복도의 끝 오른편에 낮은 계단이 놓여 있었다. 아래로 깊고 편평하게 펼쳐지는 공간이 높은 층고와 어우러져 새로운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을 자아냈다. 정면으로 보이는 통유리창을 왼편에 둔 소파에 회장이 앉아 있었다. 회장은 나를 통유리창을 마주 보고 있는 소파에 앉게 했다. 벨로드미코프, 좋아하시나요? 꽤 긴장했던 탓인지 실내에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회장의 말로 깨달을 수 있었다. 언젠가 들어 본 적 있는 운율의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클래식에는 문외한에 가깝습니다. 회장은 의외라는 듯 팔걸이에 올려 둔 손을 턱에 대고 입을 오므렸다. 입 주변의 주름이 엷게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가요? 나는 벨로드미코프를 들으려고 저런 짓도 한 사람이오. 회장은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정원의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전봇대가 서 있었다. 나만을 위한 전봇대를 설치한 거요. 공동 전봇대는 남들과 전기를 공유하는 탓에 아무리 좋은 오디오에서도 이런저런 노이즈가 들리길래 정원에다 저렇게 세워 놨어요. 그랬더니 벨로드미코프가 내 앞에서 연주하는 것 같더구려. 화구 박스가 매립된 벽난로 옆에 오디오, 앰프, 스피커가 양쪽으로 놓여 있었다. 얼핏 봐도 고가의 장비임을 눈치채게 하는 것들이었다. 회장은 오디오와 벨로드미코프에 관한 말을 늘어놓았다. 사운드에 대한 회장의 마니아적 열성은 순수한 애호와 성공한 자의 과시 사이를 오고 가는 듯했다. 어색함을 눅이는 커피가 잔 바닥에 엷은 띠를 남기고 있을 즈음 회장은 저녁 식사를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급한 작업이 있다며 한사코 거절했다. 의뢰인을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게 나에게는 예외적인 일이었고, 차 한잔 마시는 정도가 예외의 한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회장은 이번 초대의 메인을 거절하면 어떡하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고 나서 사업가답게 상대방이 거절하기 힘들도록 다시 제안하였다. 그럼, 식사 후 대접하려던 위스키 한 잔쯤 구경하시는 게 어때요. 과실향이 은은히 퍼지다가 끝에 스모키향이 감도는 위스키였다. 회장은 위스키 애호가이기도 한 듯했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설파하면서 자신만의 리듬으로 위스키를 마셨다. 어느덧 회장은 세 번째 잔에 접어들었고 내 위스키 잔도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마지막 화면의 철 덜그럭거리는 소리, 덜그럭대다 쿵쿵거리는 소리, 그건 뭡니까? 굳게 닫혀 있던 가게 문에 철제 셔터가 열릴 때처럼 회장의 표정이 빗장을 푼 듯했다. 거래와 계약으로 묶여 있는 관계성을 술이 허물어뜨렸는지 말투도 다소 부드러워졌다. 마지막 영상 속의 여자는 대문을 나서는데, 화면에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영상의 49초 지점에서 그녀가 나타납니다. 그림자로 나타난 그녀는 3초 뒤 모습을 감춥니다. 대문을 열고 나가는데 2초, 대문에서 CCTV가 보이는 지점까지 3초, 그림자로 보이는 부분이 3초, 영상의 총길이가 52초니까 그녀는 대문 앞에서 44초를 머물렀을 겁니다. 회장은 들고 있던 위스키 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유리들이 따깍, 울렸다. 그 머무름은 머뭇거림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는 멀리 떠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아마 미련이 조금 남았겠죠. 대문을 손으로, 발로, 툭툭, 그래서 덜그럭거리고 쿵쿵거리지 않았을까요. 회장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느슨해진 상반신을 바로잡았다. 집의 창고를 수리하는 날이었소. 대문 앞에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있길래 인부 하나가 부주의했구나, 생각했지. 그런데 대문에 누가 시멘트 묻은 발로 찬 것 같은 자국이 있었소. 그것도 인부 잘못이라고 생각해서 업체 사장을 나무란 기억이 나오. 그 애의 흔적일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소. 냉정히 떠난 줄 알았지. 머뭇거렸을 줄은. 이제부터 그 애가 집을 떠나기 전에 미련이 남아 머뭇거렸다고 생각할 거요. 그래야 나 자신을 더 나무랄 수 있을 거 아니오. 나는 소리에 예민한 사람이오. 하지만 그 애가 떠날 때까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나는 그 애의 소리를 듣지 못했소. 마지막 위스키 잔은 다 비워지지 않았다. 회장 집을 나서려고 할 때, 각얼음들이 녹으면서 달그락. 달그락. 천장 높은 거실을 울렸다. 아버지가 남긴 카세트테이프의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을 들은 다음날, A면인지 B면인지 모를 면의 다른 면을 들었다. 테이프에는 아무것도 녹음되지 않은 듯 한동안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그러다가 의외의 인물이 등장했다. 아버지, 지금 뭐하세요. 누나였다. 녹음하면 들릴까 해서. 아들내미 예민한 거 하루 이틀이에요. 걔가 지금 시위하는 거라니까요. 자기만 힘든 줄 아나. 그래도 혹시 모르잖니. 아버지와 누나의 대화는 거기에서 끝났다. 다시 테이프 감기는 소리만 들렸다. 아버지는 TV 스피커에 카세트를 대고 TV에서 나는지 모를 소리를 녹음한 것이다. 나에게 들렸던 TV 소음을 아버지와 누나는 듣지 못했다. 당시 인기 TV 프로그램에서 10대만 들을 수 있는 고주파 영역의 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만 들을 수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이다가 열아홉 살인 누나는 왜 못 듣나, 의아했다. TV 스피커에서 나오는 고주파 소음을 나만 들은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와 누나의 생각처럼 나의 마음이 단단하지 못해 환청이 들린 것일까. 나는 그때도 지금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왜 하필 그날 이전에는 들리지 않던 소음이 그날부터 들렸을까. 그날은 어머니가 영영 집을 떠난 날이다. 나는 마치 들을 수 있기라도 한 듯 카세트 플레이어의 스피커에 귀를 가까이 댄다.
  • 제주항공 참사 광주 합동·사이버분향소에 ‘추모 물결’

    제주항공 참사 광주 합동·사이버분향소에 ‘추모 물결’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사흘째인 31일 광주 합동분향소와 사이버분향소에는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광주시는 이날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을 온라인 공간에서 추모할 수 있도록 광주시 누리집에 ‘사이버분향소’를 개설, 운영을 시작했다. 사이버분향소는 장소와 시간의 제약 없이 온라인에서 헌화하며 고인을 기릴 수 있는 공간이다. 헌화는 로그인 없이 가능하다. 추모글을 남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됐다. 이날 오후 8시 기준 헌화 1291명, 추모글 491개가 달렸다. 시민들은 추모글에 “여행의 좋은 기억들만 가지고 가셨으면 좋겠다”, “유가족분들의 슬픔과 고통을 헤아릴 순 없겠지만, 가슴 깊이 애도한다”며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었다. 동구 5·18민주광장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도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광주시는 전날인 30일 5·18민주광장에 ‘합동분향소’를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합동분향소는 광주시를 비롯해 광주시의회, 광주시교육청, 더불어민주당, 광주시민사회단체 등 17개 기관이 공동 운영한다. 이들 기관은 조문객 안내와 헌화꽃 배부, 방명록 작성 등 합동분향소를 관리·운영하며 애도기간 동안 상주 역할을 하게 된다. 합동분향소 운영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0시까지다. 합동분향소에는 강기정 광주시장을 비롯해 신수정 광주시의회 의장, 5개 자치구 구청장, 구징치(顧景奇) 주광주 중국총영사, 옥현진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시민 등 5000여명이 조문했다.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찾아왔다는 강현지(28) 씨는 “예기치 못한 참사에 주말부터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합동분향소가 마련됐다는 뉴스를 보고 출근길에 들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같은 반 친구가 희생자 명단에 있다는 이모(15) 양은 “같은 반에서 이야기하며 놀던 친구가 이번 참사로 돌아오지 못했다”며 “우선 합동분향소 조문을 통해서라도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합동분향소가 설치되자 근조화환을 보내고 중국영사관에 조기를 게양한 구징치 중국총영사는 “중국총영사관을 비롯해 광주에 살고 있는 중국 국민들도 모두 슬픔에 잠겨있다”며 “참사 희생자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광주시민과 유가족들에게도 진심 어린 위로를 전한다”고 밝혔다. 옥현진 대주교는 “고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드리겠다”고 전했다. 조문객들은 합동분향소 방명록에 “정말 에너지 같은, 비타민 같은 언니가 더 행복한 곳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이렇게 빠르게 갔나 싶네. 거기선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있어!”, “좋은 곳에서 근심없이 지내길 기원할게” 등의 추모글을 남겼다. 합동분향소에는 자원봉사자들의 온정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 사회봉사단, 광주남구자원봉사센터 등 여러 봉사단체가 합동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에게 따뜻한 음료와 어묵 등을 제공하고 있다.
  • 미래지향적 모습으로 진화한 ‘더 뉴 K8’… 상품성도 높여

    미래지향적 모습으로 진화한 ‘더 뉴 K8’… 상품성도 높여

    기아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K8이 더욱 고급스럽게 진화했다. 기아는 지난 9일 ‘더 뉴 K8’(이하 K8)의 사양과 가격을 공개하고 본격적인 계약에 돌입했다고 26일 밝혔다. K8은 기아가 2021년 4월 첫 출시 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상품성 개선 모델로, 디자인을 더욱 고급화하고 차급에 걸맞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 및 신규 편의 사양을 추가로 적용했다. K8의 디자인은 기아의 최신 디자인 정체성을 반영해 미래지향적인 모습으로 진화했다. 전면부는 기아의 새로운 패밀리룩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을 반영한 주간 주행등과 정교한 수직적 조형으로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센터 포지셔닝 램프가 시각적으로 연결되며 차폭을 강조한다. 후면부는 신규 범퍼 디자인으로 풍부한 볼륨감을 구현했으며, 하단부 크롬 장식과 스타맵 시그니처 라이팅과 램프 중앙부 수직 조형이 적용된 리어 콤비 램프로 전면부와 일체감 있는 디자인을 완성했다. 아울러 K8에는 구입자가 선택할 수 있는 3가지 패턴의 ‘다이내믹 웰컴 라이트’와 헤드램프 에스코트 기능에 패턴 점등을 더한 ‘다이내믹 에스코트 라이트’가 적용돼 차량 승하차 시 빛의 움직임으로 탑승객을 맞이하고 배웅한다. K8의 실내는 새로운 소재로 고급감을 높이고 수평적인 공간감과 우아한 조형미를 강조했다. 탑승객의 손이 닿는 크래시 패드 상단부와 무릎이 닿는 콘솔 하단 측면부에 부드러운 느낌의 소재를 적용했다. 파노라믹 커브드 디스플레이 양쪽에 적용돼 실내 공간을 더 넓어 보이게 하는 다이내믹 앰비언트 라이트는 과속 안내, 어린이 보호구역 진입, 음성인식, 웰컴·굿바이 등 다양한 상황에서 운전자와 교감하듯 점등된다. 콘솔에는 ▲스마트폰 무선충전 시스템(듀얼) ▲지문 인증 시스템 ▲이중 사출 인쇄 방식 컵홀더 커버 ▲열선 및 자외선(UV-C) 살균 기능이 포함된 양문형 콘솔암레스트 등을 신규 적용했다. 아울러 쿠션과 시트백의 공기주머니를 제어해 최적의 착좌감은 물론 컴포트 스트레칭 기능으로 편안한 이동을 돕는 에르고 모션 시트가 동승석에도 적용됐다.
  • 책처럼 펼쳐진 공간, 미술의 숲… 글 옆에 흐르는 선율, 음악의 성[박상준의 서행]

    책처럼 펼쳐진 공간, 미술의 숲… 글 옆에 흐르는 선율, 음악의 성[박상준의 서행]

    의정부미술도서관BTS의 RM 기증 도서·글 3층 전시열린 평면 구조… 편안·친근한 예술 의정부음악도서관독서 테이블에 음악 감상용 헤드폰이달 ‘한강 작가’ 플레이리스트 구성 2024년은 여러분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그리고 2024년의 12월을 어떻게 지나고 계시는지. 경기 의정부미술도서관에 앉아 안녕을 바라며 안부를 묻는다. 12월은 한 권의 책으로 치면 마지막 단락이다. 얼마 안 남은 페이지가 넘기기 아깝거나 반대로 지루한 졸음과의 사투 끝에 다다른 종착일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건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 끝을 장담할 수 없다. 어떤 책들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제일 뒷장에 숨겨두기도 하는 법이니까. 우리의 12월에도 아직 끝나지 않은 희망의 페이지가 남아 있을 것이다. ●미술이 편하고 친근하게 의정부미술도서관은 2019년 우리나라 최초 미술 전문 공공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 지난 11월 29일은 꽉 채운 5년이었다. ‘오픈빨’이 끝이 나고 온전히 제 모습이 드러나는 시기. 의정부미술도서관의 올해는 그리고 지난 5년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시간은 어떻게 맞이할 것인지? 그런 궁금증이 뒷북 치듯 의정부미술도서관을 찾게 했다. 이는 한해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스스로에게 건네는 질문이기도 하다. 실마리는 3층 ‘기증 존’에서 얻는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지역민 못지않게 여행자가 많이 찾는다. 개관 초기 방문객 가운데는 방탄소년단(BTS)의 RM이 있었다. 기증 존은 기관과 개인이 기증한 미술 전문 도서로 채워진 서가 방이다. 그곳에 RM이 기증한 몇 권의 책과 그가 남긴 글이 있다. 장식 같은 인사말이 아니라 짧은 편지글이어서 좋다. 이렇게 시작한다. “정말이지 책만큼 무언가를 쉽고, 깊게 알아갈 수 있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5년이 지나도 그 말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BTS의 RM이라서가 아니라 책은 정말 그러하다. 그걸 눈치챈 그가 반가울 따름이고. 그리고 이렇게 끝난다. “그림은 어렵지 않아요. 바로 저희 곁에 있습니다.” 의정부미술도서관에 대한 ‘기증’의 응원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올해 6월에는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미술 분야 희귀도서 등 9000권을 기증했다. 그가 전한 말도 비슷하다. “미술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하고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그들의 말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이 하고 싶은 말, 지난 5년 동안 일관되게 하고 있는 일이다. 미술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미술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길잡이가 되겠다는 선언. 그래서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여느 공공도서관과 달리 회원가입 대상을 지역으로 한정 짓지 않는다. ‘대한민국 국민과 외국인 등록자’ 모두가 회원 가입이 가능하다. ●5년 만에 다시 백영수 그럼 개관 5주년을 맞아 어떤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을까? 가을밤 영화음악회 ‘무비 뮤직 라디오’(Movie Music Radio)가 있었다. 금관 오케스트라 ‘코리안 아츠’가 연주하는 영화음악이 도서관 안에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은은하게’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있다. 그 장소 때문이다. 의정부미술도서관은 조도연 건축가(디엔비건축사사무소)가 설계를 맡았다. 2020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 건축이다. ‘펼쳐진 책처럼 열린 평면’을 구상했다고. 여기서 ‘열린’은 평면에 그치지 않는다. 도서관 1층부터 3층까지는 중앙의 원형 계단으로 연결된다. 탁 트인 하나의 공간이다. 입구 반대편은 3층 높이의 전면 유리창이다. 자연광이 넉넉하게 내린다. 개방감이야말로 ‘열린’ 도서관의 상징이다. 그러니 오페라하우스의 아트리움 같은 구조를 활용해도 좋았을 터. 하지만 공연은 도란도란 둘러앉을 수 있는 1층 ‘스테이지A’에서 소박하게 열렸다. 그럼에도 음표들이 그려내는 선율은 공간을 가득 채워 물들였다. 도서관 곳곳에서 책을 읽던 사람들이 독서를 멈추고 잠시 귀를 열어 음악에 귀 기울이는 장면은, 장엄하거나 거창하지 않아서 좋다. 아마도 음악은 책과 커피의 온기처럼 번져나갔을 것이다. ‘예술은 어렵지 않다’는 말은 그렇게 ‘편안하고 친근’하게 퍼졌겠다. 그 작지만 큰 공연에 함께하지 못했다 아쉬워할 건 없다. 도서관의 1층 전시실에서는 5주년 기념 전시 ‘백영수 화백 특별전: 함께 그리다’가 한창이다. 백영수 화백은 의정부미술도서관의 뿌리다. 김환기, 유영국, 이중섭 등과 더불어 신사실파를 대표하는 작가로, 2011년 프랑스 파리에서 영구 귀국해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의정부에서 그림을 그렸다. 덕분에 의정부의 미술도서관이 뜬금없지 않을 수 있었다. 2019년 의정부미술도서관 개관기념전의 주인공 역시 그였다. 2025년 3월 31일까지 열리는 특별전은 백 화백의 예술 세계 전반을 조망한다. 그의 그림을 상징하는 ‘모자상(母子象)’ 시리즈는 12월 그리고 겨울이라 더 따스하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그림을 처음 접한 이들조차 편하게 다가서고 소통한다. 그 밖에도 백 화백이 파리 아틀리에에서 사용했던 이젤과 화구, 관객이 직접 ‘나만의 모자상’을 그려볼 수 있는 체험 공간도 마련했다. 겨울 찐빵처럼 따스한 온기가, 함께 그리는 그리움이 전시장 구석구석에 번진다. ●언젠가가 아닌 여기 함께 특별한 공연과 전시뿐일까. 5년을 지속한 의정부미술도서관의 힘은 사서다. 층마다 한 달에 한 번씩 바뀌는 사서들의 컬렉션(큐레이션) 역시 흥미롭다. 특히 ‘사사책’(‘사서가 사서 읽은 책’의 앞 글자를 딴 줄임말)은 마치 ‘내돈내산’(내 돈으로 내가 산 물건) 후기처럼 독특한 제목이 눈길을 끈다. 사서가 사서 읽은 책을 짧은 평과 함께 소개하는데 12월의 첫 칸에는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한여진, 문학동네)가 놓였다. 도서관 입구에는 ‘아트북크’(Art+Book+Walk) 책 꾸러미가 기다린다. 건축, 인상주의 등 10개의 예술 키워드로 나눠진 꾸러미 안에는 사서들이 추천하는 주제 책과 자료, 그리고 증정품이 들어 있다. 꾸러미 채로 대여해 선물을 열어보는 듯한 기쁨을 누리는 책 서비스다. 의정부 시민들 역시 사서와 컬렉션 대결을 펼친다. 한 달 전 시민들이 추천한 책은 이달의 ‘시민 컬렉션’으로 또 다른 선택지를 제공한다. ‘필사의 숲’에도 시민들의 추천 책이 있다. ‘필사의 숲’은 책을 옮겨 적는 작은 방이다. 도서관 5주년을 맞아서는 시민들이 추천한 필사 도서 외에 추천의 편지가 더해졌다. 필사 도서 추천 코너 앞에서 독서가들의 편지를 읽으며 나의 취향을 저격할 책을 고른다. 겨울의 한가운데서 읽고 쓸 오늘의 책은 ‘소설보다 여름 2021’(서이제·이서수·한정현, 문학과지성사)이다. 출판사에서 분기마다 ‘이 계절의 소설’을 선정해 엮은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먼저 읽은 독자 ‘hye’는 “그것은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이었다. 하지만 그런 여름을 사람들은 사랑이라 부르는 듯했다”를 기억에 남는 문장으로 꼽았다. 그의 인사말처럼 ‘안온한 저녁’이 가까워져 오는 시간, 내가 고른 소설은 그 가운데 서이제 작가의 ‘#바보상자스타’에 실린 닐 암스트롱에 관한 내용이었다. “닐 암스트롱은 언젠가 인간이 달에서 살 수 있는 날이 오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인류가 여기 지구에서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언젠가가 아닌 여기, 내일이 아닌 오늘, 그리고 함께. 처음의 들뜬 마음을 잃고 비틀거리는 것이 아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하게 해나가는 것, 가까운 이들과 그렇게 나란히 걸어가는 것. 2024년의 남은 시간 우리에게 남겨진 희망이자 과제는 아닐까. 도서관을 나오는 길, 아이에게 가만히 고개를 기울인 백 화백의 엄마 조각이 배웅한다. ●이곳은 도서관인가? 레코드숍인가? 의정부미술도서관을 다녀간 이들은 백영수 화백이 궁금할 테다. 그는 1973년 도봉산 안말 언덕에 반해서 손수 집을 짓고 작업실을 꾸렸다. 그리고 의정부 호원동 골목의 집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두 달 전인 2018년 4월 백영수미술관으로 문을 열었다. 미술관 외관에는 모자상이 보인다. 하얀 벽은 순백의 눈밭 같지만 그 위에 수놓은 엄마와 아이의 모습은 세상 무엇보다 따뜻하다. 자그마한 정원을 지나 들어선 미술관 역시 마찬가지다. 백 화백이 옛집 어딘가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을 듯하다. 의정부에는 의정부미술관 외에 여행지 삼을 도서관이 또 있다. 의정부음악도서관은 의정부 시내 장암 근린공원 내에 있는 3층 건물이다. 책은 물론 CD, LP 등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도서관이다. 문을 열자 음악이 흐른다. 1층 북스테이지는 일반 도서와 음악 도서를 갖췄다. 아직은 도서관 느낌이다. 2층부터 서서히 본색을 드러낸다. 악보 서가를 지나고, 독서 테이블에는 음악 감상용 헤드폰과 태블릿이 놓여 있다. 12월의 사서컬렉션은 ‘한강 작가의 곁에 있어 준 노래들’이다. 음악도서관다운 발상이다. 2021년 문학동네에서 진행한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인터뷰에 기초한 플레이리스트로, 조동익의 ‘럴러바이’, 필립 글래스의 ‘에튀드 No. 5’와 악동 뮤지션의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등은 작가가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곁의 소설가라는 걸 느끼게 한다. 3층은 도서관보다 레코드숍이라거나 작은 공연장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턴테이블 옆에 가방을 내려놓은 채 LP 음반을 고르는 직장인의 모습이 보이고, 스튜디오에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이용객도 보인다. 오디오룸에서는 매일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상영한다. 12월 21일에는 스팅의 ‘어 윈터스 나잇 : 라이브 프롬 더럼 캐더럴’, 22일에는 J.S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등이 크리스마스의 분위기를 돋운다. 뮤직홀의 자동 피아노 연주나 ‘사서와 함께하는 도서관 투어’ 역시 도서관을 특별하게 즐길 방법이다. ●희망은 힘이 세다 서울을 출발점 삼아 의정부미술도서관에 갈 때는 도봉산역에서 버스를 환승한다. 도봉산역에는 1980년대 민주화의 산증인인 고 김근태 전 의원을 기려 지은 김근태기념도서관이 있다. 도봉산역에서 500m 거리다. 김근태기념도서관은 도서관과 전시관을 갖춘 라키비움((Library+Archive+Museum) 형태다. 크게 생각곳(열람실)과 기억곳(전시실)으로 나뉘는데 생각곳은 서가 분류를 눈여겨볼 일이다. 한국십진분류 옆에 김근태 전 의원의 말과 글을 별칭처럼 붙였다. 100철학은 ‘도덕적 가치’, 700언어는 ‘평화가 밥이다’, 800문학은 ‘희망은 힘이 세다’ 등이다. ‘근태생각곳’과 산바람길도 추천한다. 근태생각곳은 그의 사상과 철학을 읽을 수 있는 책들의 방이다. 그리고 도서관 3층과 4층에 위치한 산바람길은 옥외 공간으로 서쪽 도봉산과 동쪽 수락산의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겨울 추위가 무색할 만큼 수려한 전망이다. 한해를 마감하거나 새해를 ‘함께’ 맞이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도서관을 나오기 전에는 그의 발자취가 깃든 기억곳에 들린다. 그리고 입구에 적힌 글 앞에서 멈춘다. “최선을 다해 참여하자. 오로지 참여하는 사람들만이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력이 세상의 방향을 정할 것이다.” 그의 삶을 고백하는 말이겠다. 그리고 그가 생전에 쓴 마지막 글이다. ■여행 수첩 ● 의정부미술도서관 -오전 10시~오후 9시(화~금요일 자료열람공간), 오전 10시~오후 6시(토~일요일 자료열람공간), 오전 10시~ 오후 6시(전시관, 화~일요일), 월요일, 일요일을 제외한 법정공휴일 휴관 누리집 www.uilib.go.kr/art
  • 146일 만에 물러난 한동훈… “탄핵 찬성 후회하지 않아”

    146일 만에 물러난 한동훈… “탄핵 찬성 후회하지 않아”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16일 “대표직을 내려놓겠다”며 사퇴했다. 지난 7·23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지 146일 만이다.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대통령실과 다른 목소리를 내왔고 12·3 비상계엄 해제 결의를 이끌어 냈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인한 갈등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한 대표의 사퇴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 출범 후 다섯 번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게 됐다. 한 대표는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최고위원들의 사퇴로 최고위원회의가 붕괴해 더이상 정상적인 임무 수행이 불가능해졌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비상계엄 사태로 고통받은 모든 국민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한 대표는 “우리 국민의힘은 12월 3일 밤 당대표와 의원들이 국민과 함께 제일 먼저 앞장서서 우리 당이 배출한 대통령이 한 불법계엄을 막아 냈다”며 “헌법과 민주주의를 지켰다. 그것이 ‘진짜 보수의 정신’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 대표는 윤 대통령을 겨냥한 듯 “우리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 극단적 유튜버 같은 극단주의자들에게 동조하거나 그들이 상업적으로 생산하는 공포에 잠식당한다면 보수의 미래가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탄핵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것에 대해서 그는 “우리 지지자분들 생각하면 참 고통스럽지만, 여전히 후회하지 않는다”며 “저는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과 주권자 국민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대표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계엄이 잘못이라고 해서 민주당과 이 대표 폭주와 범죄 혐의가 정당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며 “(이 대표는) 얼마 남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짧은 기자회견을 마친 한 대표는 권성동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과 친한(친한동훈)계 서범수 사무총장, 박정하 대표 비서실장, 한지아 수석대변인 등의 배웅을 받으며 국회 본관을 떠났다. 한 대표는 지지자들 앞에서 차를 멈추고 “저를 지키려 하지 말라. 제가 여러분을 지키겠다”며 지지자들을 달랬다. 이들은 친한계 의원들을 향해 “다 지옥 불에 갈 것”, “배신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거쳐 지난해 12월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여의도 정치를 시작한 한 대표는 지난 4월 총선 참패, 비상계엄과 탄핵 심판 등 굵직한 정치 경험을 압축적으로 쌓았다. 4월 총선을 지휘했으나 참패했고 이후 두 달간의 휴식기를 거쳐 7·23 전당대회로 조기 복귀했다. 이후 김건희 여사 명품백 수수 의혹, 이종섭 전 호주대사 임명 등에서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대통령실 및 친윤(친윤석열)계와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에 ‘윤한 갈등’이 불거졌고 비상계엄 직전에는 ‘당원 게시판’ 논란 등으로 소속 의원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한 대표는 최근 추락한 지지율과 차기 대권 주자로서의 경쟁력 회복을 시도한 후 재등판을 노릴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가 이날 지지자들에게 “저는 포기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향후 정치 행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평가된다. 한 대표는 이날 친한계 일부 의원과 고별 만찬도 했다. 탄핵 인용 시 대선에 도전할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이번 탄핵 사태로 당장은 보수층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계엄 관련 수사와 탄핵 심판 진행 과정에서 여론의 변화가 생길 수도 있다.
  • 부친상 당일 국회로 간 의원…장례식장 ‘특별한 화환’ 눈길

    부친상 당일 국회로 간 의원…장례식장 ‘특별한 화환’ 눈길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이 진행된 지난 14일, 부친상을 당한 이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상복을 입고 국회 본회의장에 참석해 탄핵안 가결에 한 표를 보탰다. 표결 후 이기헌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아버지 장례를 치르러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일산에 돌아간다”고 적었다. 이어 “열흘 넘게 국회 비상대기로 의원회관 소파와 본회의장 책상 아래에서 선잠을 자며 병환 중인 아버지 곁에 머무르지 못한 것이 무겁고 죄스러웠다”고 전했다. 이기헌 의원은 1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경기 고양시 일산에 마련된 아버지 빈소에 놓인 근조화환 사진을 공개했다. 화환 왼쪽 리본에는 ‘아드님께서 민주주의를 지킵니다’ 오른쪽에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통상 화환에는 보낸 이의 이름과 직함이 기재되지만, 해당 화환에는 이러한 정보가 없었다. 이기헌 의원은 “아침에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배웅하고 오후 탄핵 표결을 마친 뒤 빈소로 돌아오니 이 화환을 발견했다. 큰 위로를 받은 듯 울컥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문을 와주신 분들뿐만 아니라 SNS, 유튜브, 기사 댓글로도 넘치는 위로를 받고 있다. 아버지께서 오늘 하루 수고한 아들을 보며 기뻐하시며 떠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여정에 함께해주신 시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이기헌 의원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지원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다 석방 후 사망했다. 아버지 고(故) 이종율 씨는 강원도에서 중국집을 운영하며 자녀 3남 1녀를 키웠다. 이기헌 의원은 “(큰아들인) 저도 학생운동으로 2년의 수감생활을 했지만, 둘째도 대학에 진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긴 수배 기간과 구속을 겪었다”라며 “아버지는 파출소 한 번 가본 적 없으신 분이지만, 자식들 때문에 경찰서와 병원을 자주 드나들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 93세 할아버지가 네일숍 단골?…“손톱 깎아달라” 이유 보니

    93세 할아버지가 네일숍 단골?…“손톱 깎아달라” 이유 보니

    6·25 참전용사인 90대 할아버지가 네일숍을 찾아온 사연이 온라인을 통해 확산되며 훈훈함을 안겼다. 11일 여러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손톱 깎으러 네일숍에 찾아오신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최근 경기 안양의 한 네일숍 사장이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올린 영상들이 공유됐다. 네일숍 사장 A씨는 지난 10월 ‘손톱 깎아 달라는 할아버지’라는 제목으로 처음 관련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는 A씨가 할아버지 손님 B씨의 손톱을 정성스럽게 다듬는 모습이 나온다. 그는 자막을 통해 “손이 떨려서 못 깎으신다고 지하철 타고 오셨다더라. 우리 할아버지가 생각났다”고 했다. B씨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손톱을 보고 “예쁘다”고 감탄하며 가격을 물었고, A씨는 “30분 미만이라 돈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B씨는 “그냥 가면 안 된다. 내가 주고 싶은 대로 주겠다”며 5000원 지폐 한장을 꺼냈다. A씨가 거듭 만류하자 B씨는 “다음에 또 오겠다”며 한사코 돈을 건넸다. A씨는 “세 번 하러 오실 수 있는 돈이다. 다음에 또 오셔야 된다. 감기 조심하셔라”며 B씨를 배웅했다. 이 영상은 94만회 이상 조회되며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후 네티즌들은 할아버지 손님의 근황을 궁금해 했고, A씨는 지난달 21일 B씨의 두번째 방문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할아버지 연세는 93세”라며 “6·25 참전용사셨던 할아버지는 지나갈 때마다 손님이 왜 없냐고 오늘도 제 월세 걱정을 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첫 방문에서 5000원 주시고 두 번 더 공짜로 깎을 수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또 1만원을 주고 가셨다”며 “혹시 발톱은 부끄러워서 말 못 하실까봐 발톱은 왜 안 깎으시냐고 여쭤봤더니 발톱은 아직 괜찮다고 하셔서 다음에는 발톱도 깎아드린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도 B씨는 지폐를 건넸다. A씨가 “10분도 안 하고 돈 받으면 사람들이 욕한다”고 만류했지만 손님은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다. 노인네가 주는 건데 누가 뭐라고 그러냐”며 돈을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어 지난 5일 B씨 관련 3번째 영상이 공개됐다. 따뜻한 계란빵을 품에 안고 가게에 들어온 B씨는 A씨에게 빵을 나눠줬고, A씨도 가지고 있던 떡을 나누며 훈훈한 대화를 나눴다. 이날은 손톱 정리를 마친 뒤 발톱 정리까지 들어갔다. 할아버지 손님은 “이런 호강을 다해본다”며 웃었고, 깔끔해진 발톱을 보며 만족스러워 했다. A씨는 “할아버지 댁은 20분 정도 거리인데 매주 목욕 나오실 때 우리 가게를 지나신다”며 “그때 눈이 마주치면 제가 들어오셔서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시라고 말씀드린다. 수줍게 들어오셔서 6·25 전쟁 이야기 보따리 한참 풀고 가신다”고 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할아버지 근황 물어본다고 늘 말씀드린다”며 “오래오래 건강하게 우리 가게 다니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덧붙였다. 이 영상은 101만회 이상 조회됐고 수만개의 공감과 수백개의 댓글이 달렸다. 네티즌들은 “가슴이 따뜻해진다”, “우리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해드릴 수 있는 유일한 것중 하나였다.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밤이다”, “사장님도 천사 같고 할아버지도 따뜻하고 멋있는 분 같다”며 나이를 초월한 우정에 훈훈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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