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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년전 결혼배신에 앙심/50대 옛남자 찾아가 행패(조약돌)

    ○…서울 노원경찰서는 13일 김모씨(44ㆍ여ㆍ상업ㆍ서울 노원구 월계2동)를 상해혐의로 입건했다. 김씨는 12일 상오10시30분쯤 서울 노원구 월계동의 한 중학교 교무실에서 이 학교 김모교사(52)에게 『왜 나를 버렸느냐』며 손톱으로 얼굴을 할퀴어 전치 10일의 상처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다. 김씨는 『김교사가 20년전 나와 결혼식을 올리고도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채 결혼 6개월만에 나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 그동안 1천만원의 위자료를 요구해왔으나 이를 주지않아 앙심을 품고 학교로 찾아가 김씨에게 봉변을 가했다』고 말했다.
  •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한ㆍ소 새 출발:3ㆍ끝)

    ◎「하나의 조선」 빗장 풀릴 날 멀지 않다/남방외교 펴려면 「교조」굴레 벗어야/냉각기간 거친 후 대화활성화 예상 한소 수교는 필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 및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나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의 질서를 평화와 안정구도로 재편하는 데도 상당한 기여를 할 것 같다. 그만큼 한소 수교는 「하나의 조선」 논리를 체제근간으로 하고 있는 북한에게는 충격파를 던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소 수교는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국제적으로 널리 알리는 확실한 계기가 되고 있으며 바로 이 점은 북한의 심각한 「외교적 고립감」으로 연결된다. 더욱이 자신들의 영원한 이념적 맹방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믿었던 중국마저도 이미 영사기능이 부여된 무역사무소를 교환설치하는 데 합의하는 등 빠른 속도로 대한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북한의 이같은 위기감은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북한은 자신들의 체제를 생존시키기 위해서는 냉엄한 국제현실을 직시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찾는 길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및 일본을 비롯한 대서방 진영과의 관계개선이 여기에 해당된다는 게 남북 문제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일본과의 관계개선 조짐은 11월중에 일ㆍ북한간 수교협상을 개시하기로 합의하는 등 이미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소 수교는 그러나 단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에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예정된 일이었지만 그래도 상당한 충격을 받은 북한으로서는 한소 양국에 대한 맹렬한 비난을 체제유지 차원에서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측면은 최근의 북한 관영 언론매체의 보도동향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5일자 노동신문에서 「달러로 팔고 사는 외교관계」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한소 수교를 배신이라는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라며 강한 분노감을 표시하면서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행동』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소련도 타스통신 등 언론매체를 통해 상당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타스통신은『북한이 지난달 초 사상 최초의 남북총리회담이 열린 이후에도 한반도내 또다른 국가의 존재를 계속 무시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혀 북한외교의 유치성을 통렬히 비판했으며 정치주간지 노보에 브레미야(신시대)는 『대북 우호관계와 김일성 정권 지원은 명확히 구별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소ㆍ북한 관계는 당분간 급속 냉각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렇더라도 북한은 경제ㆍ군사적으로 대소 의존도가 크다는 점에서 양국간 외교관계를 대사대리급으로 격하시키는 등 「어리석음」을 범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따라서 오는 16일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얻는 것은 기대난이란 지적이 많다. 그러나 한소 수교가 장기적으로 남북 관계개선에 긍정적인 지렛대로 작용할 것이란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 같다. 북한도 대세를 인정하고 적극적인 대응책을 모색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 앞에 체제개방과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호의적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런바탕에서 북한의 대미ㆍ일 접근은 오히려 당연하다고 볼 수 있다. 남한의 북방외교 결실을 상쇄하고 자신들이 처한 심각한 경제난을 해결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성이 너무나도 강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남북 관계는 이같은 동인에 힘입어 남북한 당국간의 직접대화가 실질적으로 진전되는 등 호전될 것으로 판단된다. 미일이 대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하나같이 남북 대화진전을 요구하고 있는 사실적 측면과 함께 한반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가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북한측의 발상의 전환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남북 관계개선 수준에 발맞춰 북한도 유엔 가입문제에 상당한 가닥을 잡아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단일의석 공동가입안에 대한 국제적인 냉대 속에 대외적으로는 유연한 입장을 표명하면서도 아직까지 대남전략에 있어서는 불변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북한이지만 남한의 유엔 가입 분위기가 계속 고양된다면 어쩔 수 없이 유엔 동시가입방안의 합리성을 수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북한은 이같은 현실론을 수용하면서그동안 철옹성의 논리로 지켜왔던 「하나의 조선」정책을 전면 폐기하는 운명을 맞을 것 같다. 이와 관련,지난 85년 취임 이후 한번도 북한에 가지 않았던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내년 3,4월쯤 방한하게 될 경우 이는 남북 관계개선의 행보를 보다 빠르게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또한 남한의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총선이 있고 김일성의 80회 생일과 제8차 노동당전당대회의 개최가 예상되는 오는 92년이 남북 관계개선의 획기적인 분수령이 될 것으로 관측하는 전문가가 많다. 결국 한소 수교는 남북 관계의 실질적인 진전과 한반도 긴장완화 및 평화구도 정착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되며 나아가 한반도 주변 4대 강국인 미ㆍ일ㆍ중ㆍ소에 의한 남북한 교차승인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 “소는 실익 앞세워「동맹국」도 배신”/북한로동신문,한ㆍ소수교 비난

    ◎“「두개 조선」 고착화… 통일역행 처사/미와 손잡고 사회주의 와해 시도” 북한은 5일자 로동신문 논평을 통해 한소국교수립은 소련의 배신행위이며 한반도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책동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다음은 로동신문논평 내용이다. 역사의 전진 협정에는 나라와 민족들의 흥망성쇠와 이합집산 과정이 항상 동반되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영광과 영예로 빛나는 때도 있고 또한 추문과 오점으로 얼룩진 사건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소련이 자기입장을 1백80도 전환하여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한것은 이 후자의 부류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외신들이 전하는데 의하면 지난 9월30일 미국 뉴욕에서는 소련과 남조선사이에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공동코뮈니케가 발표되었는데 이것은 그동안 끊임없이 유포되어온 여론이 현실적으로 나타났을 따름이고 별로 신기할 것은 없다. 냉정하게 관찰하면 도리어 물이 재골수로 흐르는 셈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소련의 얼굴에 스스로 먹칠하는 이 외교관계 설정은 소련이 개편바람의 자국과 혼란에 빠져 쇠퇴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때에 산생된 현상이란 것이다. 지난 9월초 평양에서 있은 조소외교부장 회담때 소련측은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키로 결정하게 된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지금의 소련은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국가 새로운 사회로 되었다는 것을 애써 강조하였다. 그후 소련측은 여러 경로를 통하여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소련의 이익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며 자주국가인 소련자신이 결정할 문제이므로 그 누구의 승인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이말들을 종합하여 보면 지금의 소련은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를 견지하던 그 전날의 소련이 아니고 그 어떤 다른 성격의 국가로 변질된 것 만큼 그에 상응하게 새로운 벗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른나라 다른민족 심지어는 동맹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주저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오늘에 와서 소련이 이 엄연한 공약들을 다 휴지통에 집어던지고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기로 하였으니 이것이 배신이란 말 이외에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는가? 소련으로 말하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과 함께 조선을 38선으로 분열시킨데 책임이 있는 나라이며 동시에 조선을 맨 선참으로 조선민족의 유일한 합법적 국가로 인정한 나라이다. 소련이 이제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인정의 구실을 붙이건 말건 결국은 조선에 두개 조선이 존재한다는 것을 법적으로 인정함으로써 자기들의 공약을 완전히 뒤집어 엎고 조선의 통일에 역행하는 분열주의 행동을 하는 것으로 된다. 하기야 오늘 소련에서는 10월혁명 후 소련인민이 걸어온 간고분투의 영광스러운 역사자체를 하나의 암흑시대로 규정하면서 투정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들에게 있어서 그 전날에 우리와 한 언약들을 집어던지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한 것을 다른 측면에서 고찰해 본다면 주관적 의도야 어떻든간에 결과적으로는 두개조선으로 분열을 고착시키고 우리를 국제적으로 고립시키며 소위 개방에로 유도하여 우리나라에서의 사회주의제도를뒤집어 엎으려는 미국의 기본 전략에 공공연히 가담하는 것으로 밖에 달리 될 수 없다. 이것은 조선을 둘러싼 미국 소련 남조선의 3각 결탁관계의 형성을 의미하게 되며 평화적 이행 조약에 따라 아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와해하기 위한 포위망 형성의 일환으로 되게 될 것이다. 오늘 분열된 나라들이 통일되는 것은 막을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다. 조선에서도 통일에 대한 북남 전체인민들의 열망은 어느때 보다도 높아가고 있다. 바로 이러한 때에 소련이 시대적 추세에 역행하여 남조선을 국가로 인정하고 조선의 두개 국가가 존재한다면서 통일을 방해하고 분열을 고취하는데로 방향전환한 것은 오직 미국과의 보조 일치를 위해서라고 밖에 달리 해석될 수 없다. 소련측이 평양에 와서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것도 한가지 불가피한 사정에 대하여 설명한데 의하면 지금 소련 경제가 다 파괴되는 위기에 직면하였기 때문에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갖지 않을 수 없다는 처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 설명을 듣고 보면 물에 빠진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더니 세상에는 실지로 이런 일도 있구나 하는 허무감마저 없지 않다. 보도에 의하면 소련이 남조선과 외교관계를 설정하기로 하였다는 소식과 때를 같이 하여 남조선이 소련에 경제협력자금으로 23억달러를 주기로 했다는 것이 발표되었다. 소련은 사회주의 대국으로서의 존엄과 체면,동맹국의 이익과 신의를 23억달러에 팔아먹은 것이다. 사회주의 경제체계를 시장경제체계로 넘긴다고 하면서 자본주의 경제운영 방법에 기초지식을 습득하는데 애쓰고 있는 소련의 학자들로서는 외교관계설정이라는 무형의 상품을 비싼 값으로 팔아먹은 것이 아주 수지가 맞는 자본주의적 상거래 행위라는 것을 배우게 되어 흡족해 할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남조선의 형편에서는 그 막대한 돈을 낼 원천도 없거니와 아마도 그것은 사회주의를 와해시키기 위한 미제의 특별기금에서 나올 것이 뻔하다. 우리는 아무리 우여곡절이 심하다고 하더라도 부닥치는 암초를 외도리면서 자기가 갈길을 끝까지 갈 것이다. 역사는 배신과 변절,부정과 전횡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그럴 것이다.
  • 한반도에 「교차승인」 기운 감돈다/북한·일본 급속접근의 파장

    북한이 27일 일본에 국교정상화 협의를 제의,일본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가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과의 수교는 「2개의 조선」을 인정,분단을 고착화시킨다는 이유로 반대해온 북한이 갑작스레 태도를 돌변,수교협상을 제의하고 나온 데 대해 갖가지 추측이 쏟아지고 있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접근하고 있는 데서 오는 고립감 탈피가 가장 중요한 이유로 꼽히고 있으나 그렇다면 과연 북한이 「2개의 조선」 반대정책을 포기했느냐는 점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을 정리해본다. ◎도쿄의 반응/“수교 앞세워 경협흥정 치중” 의구심/한·소 수교 견제 전술적 전환 시각도 북한의 전격적인 대일 수교제의는 일본에도 큰 충격파를 던졌다. 전혀 「예상밖의 사태」로서 각계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번 제안의 배경에는 어떤 판단이 작용했는가,일본 외무성을 비롯한 관계전문가들은 그 저의 분석에 골몰하고 있다. 외무성은 자민·사회 양당 북한방문단과 동행한 가와시마 유타카(천도유) 아시아국 심의관으로부터 상세한 귀국보고를 들은 뒤 대응책을 결정할 방침이다. 27일 평양에서 개최된 북한·일본간의 사상 첫 정부레벨 접촉인 외교 실무담당자 협의에서의 제안 당시 상황은 다음과 같다. ▲천용복(북한 외교부 부부장)=곧바로라도 국교정상화 교섭을 개시하자. ▲가와시마 유타카=그렇다면,(북한의) 방침이 변했다는 것이냐. ▲천=그렇다. ▲가와시마=지금까지 한반도에 2개의 국가를 인정하는 것은 분단을 고착화시킨다고 반대해오지 않았는가. 동·서독은 분단국가이면서도 통일국가가 되었다. 게다가 북과 남을 2중 승인하고 있는 국가가 84개국이나 되지 않는가. 일본 외무성은 이같은 북한의 대일정책 전환의 요인으로서 다음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한국의 활발한 북방정책에 의한 소련·동구제국과의 눈부신 관계진전에 압도되어 있는 점. 둘째 어린이들의 영양부족마저 지적되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궁핍. 셋째 지난 9월 초순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으로부터 한국과의 국교수립방침을 통고받고 충격을 받았다는 점 등이다. 북한의 정책전환에 대해 일본 외무성 수뇌는 27일 밤 『북한의 지금까지의 공식발언으로 미루어볼 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주체사상을 기초로 자주·자립노선을 견지하고 있으며,일본 정부의 한반도정책에 대해 『한국 일변도로 북한에 적대정책을 취하고 있다. 분단고착화를 위한 한·미군사동맹에 가담하고 있다』는 등 격렬하게 비판해왔다. 이번 일본의 북한방문단이 평양에 도착한 당일인 지난 24일 밤 조선 로동당 주최 환영연에서도 국제부장인 김용순은 인사말을 통해 「2개의 조선」을 합법화하는 것에 의한 한반도 분단고착화는 결코 허용할 수 없다며 종전의 원칙론을 고수하고,한국과의 국교수립을 서두르고 있는 소련을 격렬히 비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일 국교정상화 제안이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같은 북한이 일본측에 대해 국교정상화 교섭을 제의한 것은 더이상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없다고 판단을 내린 한편,『통일의 깃발은내리지 않지만 당분간 정책을 변경,경제중심으로 힘을 쌓아 한국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여기에 김일성 주석의 78세라는 나이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신이 건재해 있을 때 정책을 전환하겠다는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김 주석이 이달 중순 중국을 방문했던 것도,한국과의 경제관계를 착실하게 확대해나가고 있는 중국에 대해 『최소한 중국만은 배신하지 않도록 못을 박아두려 했던 것』(외무성 간부)이 아닌가 보고 있다. 북한에 있어서 「2개의 조선」 불인정은 「국시」와 같은 것이다. 그 근간에 영향을 미치는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문제와 대일 국교정상화는 응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북한은 남북대화가 진행되고 있던 다나카(전중) 내각시절인 지난 72년을 계기로 『한·일기본조약의 파기가 북한·일본 국교정상화의 전제』라는 방침을 완화,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유연한 자세를 취했던 일도 있다. 그러나 그후 관계개선은 기대했던 것 만큼 진전되지 않았으며,78년 일본 사회당의 아스카다 이치오(비조전일웅) 위원장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는 국교정상화를 거부,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이제와서 느닷없이 국교정상화를 제의한 배경에 대해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한·소 국교수립을 앞두고 한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전술적 전환」이라는 것이다. 30일 뉴욕에서 개최될 예정인 한·소외무장관회담에서 양국의 국교수립은 결정적인 사실로 되어 있으며,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과의 경제교류도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상황에서 어느 정도의 「균형감각」을 취해 서방측과의 관계개선에 나서지 않으면 국제적 고립은 더욱 심화되고,후계자인 김정일에의 정권이양이 원활하게 될 수 없다는 고도의 정치판단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라는 견해도 유력하다. 또 외무성에는 『북한측에는 제18후지산마루(부사산환)호 석방과 때를 맞춰 일본측으로부터 배상·청구권 문제 등 경제협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조속히 끌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차가운 시선도 없지 않다. 게오(경응)대오고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 교수는 이렇게 분석한다. 『북한의 진의는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교섭을 시작함으로써 배상을 빠른 시일내 받아내려는 것이 아닌가. 일본은 국교정상화가 안된 상태에서는 북한에 보상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으며,정상화 교섭 없이는 대규모 경제협력을 얻기도 힘들다. 따라서 우선 국교수립을 목표로 한다는 형식을 내놓았다고 본다. 그러나 북한이 통일을 전제로 하지 않고 일본과 국교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한편 시즈오카(정강)대학 이즈미 겐(이두견원)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북한은 지난 연초부터 줄곧 일본과의 관계개선 준비를 해왔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당시 안정되지 못해 시간이 걸렸던 것뿐,의외성은 없다. 북한측은 배상 문제를 해결하려면 국교수립이 전제가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북한의 논리로는 일본과 국교를 수립하더라도 「2개의 조선」을 인정하는 것으로는 되지 않는다. 일본이 북한을 적시하지 않고 한반도 통일에 반대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라도 국교를 맺는 것은 가능했다.북한은 기본자세를 변치 않고 있다. 일본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다는 「오해」가 풀린다면 분단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을 위한 국교수립이라는 것이 된다. 다만 교섭은 쉽사리는 진전되지 못할 것이다. 우선 배상 문제에 대해 일본 국내의 합의조성이 필요한데,거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일본 정부는 또 한국의 반응에도 배려하며 교섭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울의 대응/핵협정 가입 등 평화보장장치 선결/남북한 대화 고려,속도조절을 희망 한소 양국이 30일 외무장관회담을 갖고 양국 수교 문제를 공식 협의하는 등 한소 수교가 임박한 가운데 북한이 일본측에 오는 11월 국교정상화 협의를 공식 제의함으로써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질서에 새로운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또한 방북중인 일본의 가네마루(김환신) 전 부총리 일행이 『북한과 수교 전이라도 배상 문제를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하겠다』고 발언하는 등 일·북한 관계개선이 급진전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 급진전 관련보도에 대해 깊은 우려의 뜻을 일본 정부측에 전달하는 한편 이 보도가 사실로 밝혀질 경우 강력한 대일 대응조치를 강구할 방침이어서 일·북한 관계개선 문제는 한일간 외교마찰을 불러일으킬 소지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가 일본의 대북한 관계개선에 반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일·북한 접근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범위내에서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남북대화와 관계진전이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7·7선언에서 북방정책 추진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킬 여건조성을 위해 북한이 미국·일본 등 우리 우방국과 관계를 개선하는 데 협조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정부는 북한이 대남 적화통일노선을 포기하거나 핵안전협정에 가입하지 않고 남북 관계개선이 진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일·북한간 급속한 접근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도리어 해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일·북한이 접근하게 된 근본 동인은 한소 수교인 것으로 외교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즉 한소 수교로 인해 일본과 북한의 「충족욕구」가 맞아떨어졌다는 것이다. 과거 독점적인 동맹국이었던 소련을 잃게 된 북한은 일본을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게 됐으며 일본은 동북아의 주도권을 소련에 뺏기지 않기 위해 「북한카드」를 이용하게 됐다고 관측된다.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이 남북대화를 통해 남북간 경제협력을 모색하지 않고 일본과 긴밀한 경제협력을 하게 되면 결코 남북 문제 개선과 한반도 평화정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관계자의 공통된 지적이다. 일본이 경제적 활로를 찾고 있는 북한을 이용,핵안전협정 가입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한일관계에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일본이 대북접근에 적극적인 이유로는 또 ▲미·중국 수교의 닉슨쇼크(70년초) 이후 북한과의 수교는 미국보다 먼저 하겠다는 내부방침 ▲경제력에 상응한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데 대한 압박감도 들 수 있다. 더욱이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한반도 4강중 내심 한반도 통일에 가장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 일본인 점을 감안할 때 「북한 카드」를 활용해 정치대국으로 운신하고 한반도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겠다는 속셈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일·북한 관계개선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북한의 개방과 개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일·북한 관계 급진전과 관련,우려하고 있는 핵심은 현상황에서 북한에 일본의 돈이 들어가면 중단기적인 면에서 북한의 대화·개방에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소련의 원조 중단,중국의 대북 경제협력 한계성에 비추어 북한은 지금 상당한 경제적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이런 때에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돈이 들어가면 오히려 전반적인 대외개방보다는 김일성 노선의 고수 강화쪽으로 기울어질 공산이 큰 것이다. 우리 정부가 불쾌하게 생각하는 대목도 없지 않다. 가네마루 전 부총리가 북한과 수교전 배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언한 것은 지난 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에서 보상 문제를 오랜동안 어렵게 처리했던점을 감안할 때 한일 관계를 고려치 않은 처사라는 지적이다. 북한측은 일본과의 국교정상화 제의에 대해 『그동안 견지해온 「1개의 조선」 정책의 변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북한이 교차승인과 2개의 조선 정책으로 전환했는지는 오는 10월16일 제2차 평양총리회담에서 그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지를 보면 그 허구여부가 확연히 드러날 것으로 관측된다. 앞으로 일·북한 관계개선 속도조절 문제는 한일 양국간 첨예한 외교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이 우호적인 한일 관계를 계속 유지하려면 대북 관계개선 속도를 상당히 늦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이미 북한의 조속수교 의사를 읽은만큼 일단 대북관계 속도를 조절한 뒤 한소 수교 진전과정을 지켜보면서 대북 관계개선을 추진할 것으로 외교관계자들은 관측하고 있다.〈박정현 기자〉 ◎일 자민·사회당 대표 방북 4박5일/수교원칙엔 접근… 배상액수 등 난제/예상밖 성과로 되레 큰 짐 떠안은 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너무 많은 것을 안고 돌아왔다.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부총리와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을 각각 단장으로 하는 일본의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출발 당시의 계산은 제18후지산(부사산)호 선원 2명의 석방과 쌍방의 연락사무소 설치만 합의되면 대성공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4일부터 28일까지 4박5일간의 짧은 교섭과정에서 대표단은 스스로 당황할 만큼 많은 것을 얻었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던 「국교정상화」 교섭 문제가 공동성명에까지 포함됐다. 가네마루 단장은 묘향산 초대소에서 이틀밤을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3차례의 회담을 가졌다.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외교적 성과」로 치부한다는 것은 피상적 관찰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성과로 볼 수 없다. 오히려 북한측의 치밀한 「전술적 전환」에 타케트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욱 정확하다. 「성과」란 하나의 목표를 놓고 대등한 입장에서 일진일퇴의 공방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한쪽이 다른 목적을 갖고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은,아무리 상대편이 원하고 있던 사항이라 하더라도 성과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상대방 전략에 대한 「대응의 필요」라는 짐만 지는 셈이다. 북한은 종래의 대일 파이프라인이었던 일본 사회당을 제치고 집권 자민당의 최고실력자 가네마루 전 부총리를 조준,전략의 카드를 마음껏 펼쳤다. 국제적 고립상황의 탈피,경제적 핍박의 해소,한국에 대한 견제 등 필요에 의한 카드였다. 어쨌든 이번 자민·사회 양당 대표단의 북한 방문결과는 엄청났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물론 국교정상화 제의였다. 김일성 주석을 비롯한 북한당국자들이 27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본과의 수교를 제의해온 것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때 당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으나 『원칙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다만 『한반도 전체의 안정,긴장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한국·미국과도 의견을 교환해가며 교섭을 진전시킨다』는 입장이다. 이번 북한 방문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자민당의 첫번째 대표단 단장으로서 김일성 주석과 회담했다. 이 자리에서 가네마루 전 부총리는 과거 식민지 지배를 사죄하는 가이후(해부)총리의 자민당 총재 명의 서한을 전달하고 충분히 보상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으며,북한·일본 쌍방은 전면적으로 관계를 개선,새로운 우호관계를 수립한다는 데 인식의 일치를 보았다. 28일 하오 발표된 북한 로동당과 자민·사회 3당의 공동성명에는 국교정상화 교섭을 양쪽 정부에 요청한다는 것을 비롯,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일본측의 사죄와 반성을 명기했으며 보상의 실현을 위해 정부간 교섭을 개시한다는 사실이 포함되어 있다. 또 일본 정부발행 여권에 북한 제외조항을 삭제한다는 사실,도쿄∼평양간 직행편 개설,연락사무소 설치,통신위성의 이용 등 현안도 명기됐다. 전문 8장으로 된 이 공동성명은 당초 28일 상오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보상 문제에 의견이 엇갈려 난항을 거듭,이날 하오 5시 넘어 조인됐다. 기초작업은 자민당의 이시이(석정) 대표단 사무총장,사회당 야마하나(산화) 부서기장 및 북한 로동당 김양건 국제부 부부장 등 사이에 27일 밤부터 28일 상오 8시에 걸쳐 철야로 진행됐으나 결론을 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가네마루 다나베 양단장과 로동당 김용순 서기가 대표자회의를 열어 조정했다. 이날 문제가 된 보상 문제에 대해 자민당측은 『앞으로 양국 정부간의 교섭을 개시,하루라도 빨리 실현에 노력한다』는 취지로 표현하자는 데 대해 북한측은 『실행해야 할 것은 당장 해야 한다』며 직접적 표현을 고집,가네마루 전 부총리의 정치적 결단을 요구했다. 북한측은 대일 국교정상화를 제안해놓기는 했으나 교섭의 본격화로부터 국교수립까지의 타임테이블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보상 문제의 조기타결과 확약을 받으려 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가네마루 북한방문단」은 많은 과제를 안고 돌아왔다. 특히 한일관계에 새로운 과제를 안겨주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들은 『몇년 전 같았으면 한국으로부터 맹렬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는 그런 일은 없겠으나,한국에 대한 배려 때문에 「황신호」의 서행운전을 해야 할 것은 틀림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일본·북한 관계의 급속한 접근은 한국과의 관계는 물론,한반도 정세에 커다란 영향력을 갖는 미국·소련·중국 등 주변제국의 주목을 끌 것은 틀림없으며,일본 정부 자체로서도 일·소 관계 등과 관련되어 극히 어려운 외교교섭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 내언외언

    뱀을 보면 누구나 놀라 움찔한다. 자벌레를 보면서도 섬뜩함을 느낀다. 그렇건만 고기잡이는 그 뱀과 같은 장어를 서슴없이 쥐고 여자는 자벌레와 같은 누에를 거침없이 잡는다. ◆인간관계 전반을 이해관계의 얽힘이라는 시각에서 보는 「한비자」(설림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할 때 그와 같이 두려움과 섬뜩함을 잊고 용자로 변모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것은 군사관계든 신하와 신하의 관계든 다를 것이 없다는 것. 『부모까지도 사내가 태어나면 좋아하고 계집애가 태어나면 실망하는 것』(육반편)도 그 때문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이해관계에 따라 배신도 하고 화합도 하며 싸움도 한다고 보고 있다. ◆이런 「한비자」의 생각은 세월이 흐른 다음 서양의 마키아벨리에게서 많은 유사점을 보게 된다. 그의 「군주론」은 「한비자」의 영향 아닌가 하는 말이 나오게 할 정도로. 그 「군주론」(18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인간이란 본디 사악한 존재이기 때문에 당신에 대한 신의를 충실히 지켜주지 않는다. 당신 역시 남에게 신의를내세울 필요가 없다』. 이 말의 밑바닥에도 이해관계의 얽힘이 깔려 있다. ◆인간 대 인간의 관계뿐 아니라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도 이해관계는 민감하게 작용한다. 그래서 어제까지의 적과 오늘은 손을 잡고 오늘에 손을 잡았다가도 내일에 적이 될 수가 있는 것. 조약도 휴지 조각일 뿐이다. 이란과 이라크는 얼마 전까지 앙숙이었다. 그런데 후세인의 쿠웨이트점거 이후 「한편」이 된다. 한편이 되기 전까지 서방측에 가까웠던 이란은 반서방으로 돌아서고. 그런데 이번에는 시리아가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털고 친미로 선회한다. 이 모두가 내편의 이익 때문이다.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내편도 없는 것이 인간세상의 기미. 우리와 중소 관계만 생각해도 그렇잖은가. 『적은 차라리 높은 의미에서 가장 좋은 벗이라 할 것이다. 적은 차라리 좋은 자극제이다』­카를 힐티.
  • 가짜 선글라스 양산/7억어치 해외 팔아

    서울시경은 1일 배신규씨(39ㆍ대구시 수성구 자신동 761)를 상표법 위반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인쇄업자 최돈문씨(39ㆍ대구시 남구 대명동 104)를 같은 혐의로 입건했다. 배씨 등은 지난88년 1월초 대구시 북구 노원동1가 263에 우진산업사라는 안경제조공장을 차려놓고 선글라스를 만든뒤 Ray­Ban이라는 미국제품 상표를 붙여 지금까지 2만3천여개(시가 7억원어치)를 국외에 불법판매해온 혐의를 받고있다.
  • 「불공정거래」가 몰고온 대붕괴/이재웅 성균관대 교수

    ◎「폭락증시」 무엇이 문제인가 주가지수 6백선이 크게 무너진 절박한 상황에서 아직도 증시를 탈출하지 못하고 묶여있는 투자자들을 보면 딱하기 짝이없다. 그들은 아마 큰손이나 대주주들은 아닐듯하며 증권관련기관 주변에서 얼쩡거리면서 눈치꽤나 있는 사람들도 아닌성 싶다. 그저 얼마전에 장바구니를 들고 나섰거나 경운기를 몰고 증권회사를 찾아왔던 별볼일 없는 투자자들이 대부분이 아닐까 싶다. 남들이 증권해서 쉽게 떼돈을 번다고 하자 뒤늦게 욕심을 부려서 뛰어들었거나 어설프게 주식이란 어느정도 장기로 갖고있는 것인줄 알았던 사람들이 아닐까. 최근에는 설상가상으로 이라크사태까지 터져서 주가의 하락세가 이래저래 연중 최저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금년초까지만 해도 주가지수는 9백을 넘었으나 그후 3분의1이나 떨어졌다. 작년봄까지만 해도 주가는 천정부지로 무한상승할 듯한 기세였다. 그러나 이제는 주가가 5공말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요즈음 일반투자자들의 매수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증시안정기금으로 대폭락사태나 막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 고작이다. 이같은 증시이탈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증시주변에서는 최근의 국내정국의 불안과 사정한파가 특히 큰손들을 불안하게 해서 증시이탈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좌우간 그동안 증시에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이 증시침체의 원인이라면 이것은 역시 정치권과 무슨 관련이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게다가 인플레 불안때문에 요즈음은 뾰족한 증시부양책도 쓸게 없다.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기본적으로 정치ㆍ경제 등이 안정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정부가 공연히 총체적난국이니 위기니 하면서 불안감을 조성해온 것도 무시못할 원인이 되겠다. 한동안은 금융실명제 실시우려가 증시위축의 원인이었다. 또한 유상증자ㆍ기업공개ㆍ국민주보급 등으로 주식공급이 지나치게 많았던 것이 수급불균형을 몰고왔다는 주장도 있다. 아울러서 정부의 정책실태및 정책부재도 증시침체를 부채질 했다는 것이다. 돈 잃고나면 할 말이야 많을줄 안다. 이러한 주장들이 나름대로 그럴듯하지만 역시 무엇인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구태여 따진다면 우리나라 정치가 언제 제대로 된 적이 있는가 정책당국의 규제나 개입도 항상 그 타령이었으니 언제나 문제를 삼자면 그럴수 있는 이야기이다. 한편 경제는 금년들어 놀랍게도 9.9%의 GNP성장률을 기록하고 수출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래도 증시는 침체일색이다. 그동안 정부가 내놓았던 수많은 부양조치에도 불구하고 백약이 무효가 됐다. 또한 한소수교 가능성 등 제아무리 엄청난 호재가 나와도 주가를 조금도 부추기지 못했다. 이러한 문제의 해답은 이제 결국 증시내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왜 투자자들은 기회만 오면 주식을 처분하고 증시에 등을 돌리려 하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증시가 구제불능 상태에 빠진 가장 주된 원인은 뭐니뭐니해도 증시에서 끊임없이 발생하는 파렴치한 불공정거래 행위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 결과 일반투자자들이 피해를 보고 염증과 배신감을 느낀 나머지 증시에 대해서 더이상 기대를 갖지 못한다면 어떠한 부양책이나 호재도 그들을 증시에 붙들어두지는 못할 것이다. 최근 몇년사이에 우리 증시가 양적으로 팽창하면서 불법거래및 불공정행위도 크게 늘었다. 증권거래소와 증권회사의 일부 임직원들이 각종 비리와 변칙거래를 해서 투자자에게 큰피해를 끼치는 일이 허다했지 않은가. 상장사의 대주주나 경영자들이 내부정보를 이용해서 과도한 물타기 증자를 하거나 자사주를 매입 또는 매각함으로써 막대한 부당이득을 챙긴다. 그대신 물색모르는 일반 투자자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불성실한 공시를 해서 일반투자자들을 속인다. 또한 큰손들은 그들의 경제력을 이용,미발표정책이나 기업의 내부정보를 은밀하게 빼내어서 초단기매매를 한다. 정책이나 정보가 일반에게 공개될 때에는 이들은 이미 이익을 챙겨서 증시를 빠져나가고 뭘 모르는 소액투자자들만 울리는 불법행위도 많다. 우리 증시는 마치 서부 개척시대의 무법천지를 방불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증권투자는 자기책임 아래에서 하라는 정책당국의 주장은 웃기는 얘기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일반투자자들은 증시를 떠나라는 충고가 보다 솔깃한 것이다. 이러한 각양각태의 불공정거래행위를 정부가 막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적인 정책실패라고 하겠다. 하기야 정부가 어디 강도ㆍ절도인들 제대로 잡고 민생치안을 유지하고 있는가. 정부가 증시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유지하지 못하는한 증시부양책은 대주주및 협잡꾼들의 호재로나 이용될 뿐 일반투자자들에게는 오히려 실의와 좌절만 더하게 할 것이다. 증권투자는 한마디로 정보수집능력에 승패가 달렸다. 누가 더 정확한 정보를 남보다 먼저 얻느냐에 따라서 큰 돈을 벌수도 있고 낭패를 보기도 한다. 그런데 시장에서 정보가 독점ㆍ편재될 경우 문제는 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남의 것을 훔치듯이 큰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에서든지 경제정의와 형평상 정보편재,남용및 불공정행위에 대해서 정부가 규제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 증시에서 이같은 불공정행위가 그치지 않는것은 이에대한 정부의 규제와 감독이 극히 미흡하기 때문인듯하다. 증권시장을 투자자들이 어느정도 노름판으로 여기는 것은 어쩔수 없다. 그렇더라도 노름판에는 거기에 따르는 질서나룰이 있는 법이다. 계속 속임수나 쓰고 있는 증시에 투자자들이 한없이 속아서 덤벼든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다. 따라서 불공정거래에 대한 감독과 처벌을 시급히 보완 강화해서 투자자들이 시장과 정부정책을 신뢰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정한 시장질서를 유지하려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대책이 절실하다. 아울러 증시관련기관ㆍ증권사ㆍ기업ㆍ큰손들도 증시정상화를 위해서 자제하고 소액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 정치ㆍ사회적 안정이 전제돼야함은 물론이다.
  • “페만 진화” 소련의 선택

    ◎미의 무력해결 안바라 다국군창설 촉구/이라크 군원 책임느껴 봉쇄로 타결 희망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지난 17일 『이라크가 소련이 제공한 무기로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합병한 것은 소련에 대한 배신행위』라고 과거의 동맹국 이라크를 격렬히 비난하고 『이라크에 무기를 제공한 소련으로선 현 중동위기해결에 특별한 책임을 져야한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고르바초프의 발언은 소련의 대 중동정책이란 한 단면을 통해 소련외교정책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소련외교정책의 변화에 대해 발렌틴 팔린 소련공산당 국제부장은 과거의 전쟁이나 분쟁에서 벗어나 이익의 상호균형과 선린관계의 원칙에 입각,모든 문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해결한다는 게 소련외교정책의 기본방향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난 16일 소련이 이라크에 제공한 소제무기에 대한 정보를 미국에 제공하기 위해 주미 소련대사관 무관이 미국방부를 방문한 사실도 국제조류의 새로운 흐름을 보여주는 것으로 주목된다. 소련의 중동정책변화에 대해 소련의 중동문제 전문가로 크렘린의 싱크탱크역할을 하고 있는 세계경제 국제관계연구소의 게오르기 밀스키 주임연구원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중동은 과거 미소간의 세계적 대립구조하에서 소련엔 중요한 교두보였다. 그러나 냉전과 대립이 끝남에 따라 중동의 전략적 중요성도 점차 감소하게 됐다. 더욱이 소련에 무기공급자의 역할을 기대해 온 이라크가 이제 무기체계의 상당부분을 서구제로 대체,이라크의 대소의존도도 약해졌고 과거의 동맹관계도 변하고 있다. 지난 72년 체결된 소ㆍ이라크간 우호협력조약도 비록 폐기된 것은 아니지만 종래의 의미를 잃게 됐다』 이같은 밀스키의 설명은 이라크에 대한 소련의 태도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밀스키씨는 미국이 군사력을 사용,후세인대통령을 굴복시킬 수 있겠지만 이는 소련의 이익에는 부합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는 또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계속 지배하는 것 역시 소련의 이익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면서 결국 경제봉쇄만으로 후세인정권이 전복되는게 소련으로선 가장 바람직한 해결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미소 대결은 끝났다고 하면서도 미군사력에 의한 중동위기해결은 소련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는 밀스키의 말은 외교정책의 변화과정에서 소련이 겪는 고민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현위기의 해결에 특별한 책임을 져야할 소련으로선 무언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만 할 입장이다. 소련이 유엔 깃발하의 다국적군창설을 거듭 촉구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재벌의 부동산 선호와 규제(사설)

    48대 재벌사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 가운데 35%가 업무와 관련이 없는 부동산이라는 사실은 재벌의 부동산에 대한 선호와 투기의 심도를 확인해 주고 있다. 재벌들이 생산성 향상이나 기술개발을 위한 투자의 확대보다는 부동산투기에 열중했다는 것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재벌들의 부에 대한 일반의 부정적 시각이 팽배한 상황에서 부동산투기로 부를 축적했다는 사실이 재확인되어 안타깝기도 하다.중소기업도 아닌 재벌그룹 기업들이 그토록 부동산투기에 열중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강력한 의문과 함께 아연스러운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부동산투기는 망국병임을 모르는 국민이 없고 그것에 대하여 여기서 재론이 전혀 필요치가 않다. 더구나 투기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과 지탄을 모를 리 없는 대기업들이 누구보다도 투기에 집착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은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국세청이 대기업들에 대한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여부를 가리는 조사를 펼치자 재벌그룹 경제단체인 전경련은 비업무용 판정기준을 완화하고 제3자명의부동산에 대하여 증여세 부과를 면제토록 건의하는 이기주의적 사고와 행동을 서슴없이 드러내었다. 19조원의 은행 빚을 갖고 있는 재벌들이 그 많은 비업무용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데 대하여 자기반성은 커녕 자기합리화에 급급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이유야 어떻든 소유부동산 가운데 3분의1이상이 비업무용이라는 객관적 수치는 무슨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음이 분명하다. 심한 경우는 그룹의 비업무용 부동산 비율은 92.9%에 달했다. 이 재벌의 본업이 부동산투기가 아닌지 착각할 정도이다. 또한 이번 국세청 발표는 금융기관의 여신관리기업에 대한 부동산 취득심사가 얼마나 부실했었는가를 일깨워 주고 있다. 국세청의 조사로는 비업무용 비율이 35.3%인데 은행감독원의 자료로는 2%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는 현행 여신관리규정으로는 재벌들의 부동산투기를 막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새로운 법적 뒷받침이나 제도의 개선이 없이는 재벌들의 부동산 선호현상을 차단할 수 없다는 판단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여러번강조한 바와 같이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를 근본적으로 금지하는 특별법의 제정이 없이는 대기업들의 부동산투기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난 6월 차관회의를 통과했으나 어떤 영문인지 몰라도 국무회의 심의가 보류된 기업의 부동산 취득등에 관한 여신운용법을 이번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기를 촉구한다. 지난번 임시국회의 일정이 촉박하고 보완점이 필요해 국무회의 심의를 보류했다는 정부의 공식해명을 우리는 믿고 싶다. 만약에 이번 정기국회에도 이 법안이 제출되지 않는다면 정부가 재벌들의 로비에 밀렸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정부의 부동산투기 척결의지가 퇴색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 밝혀진 비업무용 부동산은 현행의 여신관리규정대로 6개월내 자진매각토록 유도하고 기업이 이에 불응할 때는 대출금 회수등의 적법절차를 진행시켜 나가야 한다. 이번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처리과정을 많은 국민들은 지켜보고 있다.
  • 후세인의 딜레마/부시의 “파병도박”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 진입,이라크의 사우디 위협 등으로 중동사태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인 강경입장과는 달리 양측이 모두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딜레마에 빠져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8일자 뉴욕 타임스지가 소개한 「부시의 도박」을 요약하고 후세인의 어려움을 정리해 본다. ◎승부수 던진 「미 모험」/후세인 축출 않고는 불안 여전/「위협제거」 목적달성은 미지수 부시 미대통령은 사우디에 미군을 파병,미국의 경제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단호한 조치를 취했으나 부시는 이로 인해 결과가 분명치 않은 중동위기에 미국과 그 자신의 운명을 함께 하는 도박을 하는 결과가 됐다. 부시대통령의 결정 뒤에 있는 이해관계는 원유의 원활한 공급 및 가격억제라는 점에서 분명하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이제는 사우디를 위협하고 OPEC를 지배할 위치에 이르렀다. 부시대통령은 세계경제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미치는 원유에 대한 주도권이 사우디와 다른 OPEC회원국들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판단하고 이를 성취하기 위해 사우디에 대한 이라크의 위협을 제거하기로 결정했다. 부시는 단계적으로 후세인과 대결하는 상황이 됐다. 후세인이 미국에 도전하고 세계원유 비축분의 반을 삼켜버릴 소모전에 미군을 끌어들인다면 미국은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이랍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외세와 동맹관계를 맺지 않을뿐 아니라 다른 국가를 파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라크가 먼저 이 규칙을 위반,쿠웨이트를 침공했기에 사우디도 이라크의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아랍세계의 비난을 각오하고 외세인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중동사태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4가지의 가능성을 예상할 수 있다. 첫째는 후세인이 미군을 자극하지 않은 채 쿠웨이트점령을 계속하는 경우이다. 후세인은 아랍세계를 그의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악의적인 반사우디 캠페인을 벌일 것이다. 둘째는 후세인이 사우디에 군사행동을 하거나 미군에 발포하는 경우이다. 후세인은 미사일과 독가스 및 이란과의 8년전쟁에서 숙달된 1백만군을 보유하고 있다. 셋째는 이라크에 대한 국제적인 제재가 이라크를 질식시켜 후세인이 협상을 제의하는 경우이다. 넷째는 이라크군부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후세인을 축출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미국정부가 가장 바라는 희망사항으로 이렇게 된다면 중동위기가 빨리 해결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군의 조속한 철수를 가져오게 된다. 사우디에 파견된 미군의 임무는 쿠웨이트를 원래상태로 하는데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비록 후세인이 쿠웨이트로부터 당장 철수하더라도 그는 사우디를 위협하는 강력한 세력으로 남을 것이며 아랍세계를 통한 반사우디 캠페인을 선동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이유로 부시는 이라크에 정권이 교체되지 않는한 목적을 달성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갈림길에 선 이라크/“확전이냐 협상이냐”… 선택 고심/아랍권 외면ㆍ내정 불안에 초조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국제압력에 굴복해 상황을 다시 쿠웨이트 침공 이전으로 되돌린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선택일 것이다. 그러나 국제압력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낼 여력을 지금 이라크가 갖고 있는가가 바로 후세인의 고민이다. 후세인으로선 아랍의 일원으로서 미군의 주둔을 허용한 배신자(?) 사우디까지 응징하고 싶겠지만 현 중동위기의 불똥을 사우디에까지 확산시키기엔 이라크가 치러야할 대가가 너무 크다. 후세인의 어려움은 ▲이라크에 일제히 등을 돌린 아랍권의 외면 ▲서방의 경제제재가 미칠 타격 ▲예상외로 신속한 대응을 보이는 서방 군사력의 위협 ▲이라크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반후세인 세력의 도전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후만 해도 상황전개를 주시하며 미온적 대응을 보이던 아랍권은 위기사태가 사우디 침공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을 보이고 이라크가 쿠웨이트 합병을 선언함에 이르자 사우디와 이집트를 축으로 한 반이라크 전선이 형성돼 아랍형제들에 대한 후세인의 기대를 무너뜨렸다. 이란과의 8년 전쟁으로 파탄직전인 이라크경제에 국제적인 경제제재조치가 남길 타격은 후세인의 목을 조이기에 충분하다. 수입의 대부분을 원유수출에 의존하는 이라크로선 원유수출의 봉쇄는 곧 생명선의 차단이나 다름없다. 또 원유수출이 이뤄지지 않으면 막대한 전비조달이 불가능해 이라크가 자랑하는 군사력도 무용지물로 전락할 우려마저 있다.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에 맞서 미ㆍ영ㆍ불ㆍ소 등 선진국들이 보인 신속한 군사적 대응도 이라크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이들 선진강국은 이미 페르시아만지역에 전함들을 파견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전력을 증강시킬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이라크가 아랍내의 군사대국이라고는 해도 이들 선진강국의 연합세력과 정면대결을 벌이기엔 역부족이 아닐 수 없다. 자칫하면 이라크 나라전체가 초토화할지도 모르는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면 이들과의 정면대결에 나서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라크 북부에서 오래전부터 반후세인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준동,82년 이후 끊임없이 나돌고 있는 후세인에 대한 암살기도설과 쿠데타위협 등 내정불안도 후세인으로선 간단히 보아넘기기 어려운게 사실이다. 후세인은 자신에 대한 암살기도를 피하기 위해 매일밤 거처를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현 위기의 장기화로 경제사정이 더욱 악화될 경우 국민의 55%를 차지하는 시아파가 집권수니파에 반기를 들 가능성도 충분히 점칠 수 있는 상황이다.
  • 아랍국,겉으론“형제”속으론“남남”/이라크침공사태이후 겉도는 회교권

    ◎대책보다“불똥튈라” 전전긍긍/세계비난 일자 뒤늦게 소극적 제재만/원유가 논의때도 이해따라 이합집산 아랍형제국들이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태를 맞아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제각기 자국의 이해타산에만 급급한 나머지 불똥이 튀어 넘어오지 않도록 눈치만 보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81년 이란회교혁명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쿠웨이트와 함께 페르시아만협력협의회(GCC)를 결성,상호방위협정까지 맺어놓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ㆍ카타르ㆍ바레인ㆍ오만ㆍ아랍에미리트연합 등 5개왕국들은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 직후 방위협정에 따른 대이라크 선전포고를 하기는 커녕 침공사실을 보도하는 것조차 기피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GCC는 이라크를 비난하는 국제여론이 들끓게 되자 침공 48시간 뒤에야 이라크를 규탄하고 나섰으나 규탄성명 외에는 이렇다할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들 5개 회원국이 경제적으로는 부유하지만 군사력면에서는 모두 합해봐야 1백만대군을 거느린 이라크의 20% 수준에도 못미치기 때문에 이라크의 제2의 침공목표가 되지 않으려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GCC의 리더격인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파드국왕이 사태발생 직후 거의 공식석상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 등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다가 이라크의 쿠웨이트점령군이 사우디국경으로 배치되고 체니 미 국방장관이 전격 방문해 미군의 주둔을 허용하고 이라크의 송유관을 폐쇄해 주도록 요청하는 등 사태가 급진전되자 마지못해 미군의 잠정주둔만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라크 송유관 폐쇄요청에 대해서는 이라크에게 침공구실을 주지 않을까 우려한 나머지 아직까지 결정을 미루고 있다. GCC는 8년간의 이란ㆍ이라크전쟁때 이란의 회교혁명이 확산돼 자국의 왕정이 흔들리는 사태를 방지할 목적으로 이라크를 전면지원했고 전후복구비용까지 합해 총4백억달러이상을 지원했으나 오히려 「호랑이」를 키운 셈이 됐다. 이라크와 함께 아랍협력위원회(ACC)를 구성하고 있는 이집트 요르단 예멘 등 3개국의 대응자세도 제각각이다. 지난달 18일 이라크가 쿠웨이트의 원유도굴과 산유쿼타위반을비난하며 석유분쟁을 일으키자 곧바로 이라크 쿠웨이트 사우디 등을 오가며 중재역을 자임했던 이집트의 무바라크대통령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과 만난뒤 지난달말 『이라크의 쿠웨이트침공은 없다』고 공언했으나 사태가 정반대 방향으로 진전됨에 따라 모멸감을 느낀 나머지 아랍권지도자중 처음으로 이라크를 규탄하고 나섰다. 1백만명의 이집트인이 이라크에서 일하고 있는 현실과 이라크와의 화해를 통해 아랍권내의 중재자 지위를 추구했던 점을 감안할 때 무바라크에게는 어려운 결단이었으나 후세인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이 워낙 컸기 때문에 모로코와 함께 자국군을 다국적군에 파견키로 결정했다. 이에 반해 이스라엘과 인접해 있으면서 경제ㆍ군사적으로 이라크의 지원을 받고 있는 요르단의 후세인국왕은 이번 사태에 대한 서방세계의 개입을 경고하고 예멘 리비아 수단 등과 함께 아랍연맹 및 회교회의기구(ICO)의 이라크 침공규탄 결의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쿠웨이트 임시 정부(괴뢰)에 대한 승인은 거부하는등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랍국지도자들과의 접촉을 활발히 하며 사태의 추이를 관망하는 태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경우 사우디와 쿠웨이트등으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제까지 분쟁이 있을 때마다 전통적으로 온건아랍국들을 지지해왔으나,이집트 중재하에 추진돼온 미ㆍPLO간 대화가 부진한 데 대한 실망과 아랍권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는 이라크와의 유대필요성 때문인지 이번 ICO의 이라크침공규탄 결의에 반대했다. 아라파트 PLO의장은 파드 사우디국왕 등과 접촉하며 중재를 시도하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와 함께 이라크의 송유관을 자국영토내에 두는 대가로 연간 4억달러의 재정수입을 올리고 있는 터키는 사태초반까지 이라크에 대한 직접적인 비난을 자제하고 미국의 이라크 송유관 폐쇄요청을 거절해 왔다. 그러나 UN의 이라크제재결의가 나오고 국제여론이 거세지자 이에 힘입어 7일 뒤늦게 이라크 송유관 폐쇄를 결정했다. 이라크와 경쟁관계에 있는 이란과 시리아도 이라크군 철수를 촉구하는 것 외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라크와의 화해를 선도했던 라프산자니 이란대통령은 이번 사태로 인해 국내강경파들의 입지가 강화되지 않을까 우려하며 원유 증산채비를 갖추고 있다. 리비아 튀니지 모리타니 알제리 등 아랍마그레브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아프리카지역의 아랍국가들도 아직 태도표명은 유보한채 눈치를 살피고 있다. 이같은 아랍국가들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합집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다트 전이집트대통령이 지난 70년대 후반 이스라엘과의 화해정책을 촉구했을 당시 나머지 아랍국가들은 즉각적인 반발을 보였으나 사우디 등 온건국들이 점차 이집트 동조로 돌아섰으며 이란ㆍ이라크전쟁 당시에는 리비아와 시리아 등 극소수국가를 제외하고는 모든 아랍국들이 이라크를 적극 지원했다. 유가정책에 있어서도 사우디등 온건국들은 「지나친 유가인상은 원유수입국들의 에너지절약을 유발시켜 오히려 원유수입감소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저렴한 가격에 충분한 원유공급을 주장하는 반면 이라크 이란 리비아 시리아 등은 고유가정책과 원유무기화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다. 그러나 지난달 26일 제네바에서 열린 석유수출국기구(OPEC)각료회의에서는 이라크 등 강경국들의 주장이 먹혀들어 공시유가를 배럴당 18달러에서 21달러로 인상하는데 성공,모처럼 합의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정치분야의 이집트,경제분야의 사우디아라비아,군사분야의 이라크 등 분야별 리더들이 완전한 아랍세계의 주도권을 따내기 전까지는 이슈에 따라 이들 맹주들의 눈치를 살피는 주변국들의 이합집산은 끊임없이 반복될 전망이다. 이같은 사분오열 때문에 이번사태가 아랍권내에서 자체해결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직접적인 피해의 우려가 없는 아랍산유국들은 이번사태로 인해 유가가 급등하는데 대해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 군과의 갈등ㆍ정치적 미숙이 “불씨”/부토총리 왜 별안간 실각됐나

    ◎대통령ㆍ군 견제로 개혁의지 실현못해/부패ㆍ종족분규 미해결로 민심도 이탈 지난 88년 12월 파키스탄국민들의 「피플스 파워」에 힘입어 회교국 최초의 여성총리에 취임하면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를 이끌 새 기수로 세계의 이목을 끌었던 베나지르 부토 총리가 6일 집권 20개월만에 넘어지고 말았다. 부토총리를 전격해임시킨 굴람 이샤크 칸대통령은 해임원인으로 부토의 족벌정치와 정부의 부정부패,정치적 무능력을 지적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직도 파키스탄내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군부와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부토는 88년 군부와 칸대통령사이에 이뤄진 타협아래 총리에 임명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군부가 권력을 공유하는 삼두체제가 이뤄짐으로써 부토정부는 취임초기부터 많은 취약점을 안은 허약한 정부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이같은 취약점은 부토의 정치적 미숙과 겹쳐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로 비화됐다. 부토는 집권 후 지아 울 하크 전대통령치하에서 자신과 함께 고난을 받았거나 친인척,자신과 친밀했던 측근들을 고위직에 대거 임명,족벌정치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것이 『부토정부의 비효율성을 증대시키고 있다』고 지적돼 왔는데 이같은 비효율성은 부토 스스로 야당측에 반격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는 부정부패문제. 파키스탄공직자들이 부패해 있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타격은 지난 4월 부토총리의 남편인 아시프 자르다리가 파키스탄 최대의 독직사건이라 할 수 있는 부하리공갈ㆍ사취사건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게 된 일이다. 이 사건에 자르다리가 관련됐음이 명백하게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파키스탄국민들은 이미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취임 한달후인 89년 1월 54%에 달했던 부토총리의 인기도가 이 사건 후인 지난 6월 34%로 급락한 것만봐도 이 사건이 부토의 이미지에 얼마나 큰 타격을 가했는지 알 수 있다. 부토의 정치적 무능력에 대한 비판은 부토가 물려받은 해결과제들이 너무 많았던데다 총리의 권한행사를 제한하는 파키스탄의 독특한 2원적 정부체제에기인한 것이다. 파키스탄은 내각책임제를 기초로 하면서도 대통령에게 총리해임권 및 의회해산권을 부여한 2원적 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같은 제한속에 부토의 개혁노력은 사사건건 제동이 걸려 지난 20개월간 부토정부가 한 일이라곤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외엔 야당으로부터의 공격을 막는데 급급해왔다. 부토가 취임전 민주화개혁을 위해 내세웠던 수많은 선거 공약들은 결국 공약으로 그치게 됐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 부토정부의 정치적 무능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게 됐다. 더욱이 부토총리의 정치적 기반인 남부 신드주에서 인도출신 모하지르족과 토착 신디족간에 발생한 종족간 대립은 올해에만도 1천1백87명의 사망자와 2천4백91명의 부상자를 내는 등 파키스탄 최대의 위기로 지칭될 만큼 악화되고 있다. 이에 군이 동원돼 질서유지에 나섰지만 군이 「범법자」들을 체포하면 뒷전에선 정치적 압력을 받은 경찰이 이들을 다시 석방하는 악순환이 계속돼 군의 불만이 고조돼 왔다. 때문에 군은 군사재판소를 설치,범법자들에 대한 재판권을 군에 부여할 것을 요구했지만 부토총리는 그럴 경우 사실상의 계엄령상태가 되며 민간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킨다며 이를 거부,군부와의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신드주의 종족간 대립진압에 대한 군의 강경방침과 부토총리의 온건방침이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충돌하고 만 것이다. 부토는 취임이후 인도 캐슈미르주의 분리운동을 둘러싸고 매우 공격적인 대인도외교정책을 폄으로써 인도와의 마찰을 계속 증폭시켜왔는데 신드주의 내우에 대인도마찰의 외환까지 겹쳐 「국가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한 군부가 이번 부토축출에 나선 것이다. 칸대통령이 군부의 동의 없이는 부토총리를 해임할 수 없었음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미르자 아슬람 베그 파키스탄 군참모총장은 군이 권력을 잡을 생각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오는 10월 새 총선의 결과와 관계없이 앞으로 파키스탄 군부의 입김이 한층 강화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파키스탄의 민주화노력은 한걸음 후퇴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 통일의 길에 좌절은 없다/방북희망 신청행렬을 보고/박순녀 소설가

    벌써 수십년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크리스머스밤에 서독 국민들이 촛불을 켜들고 통일을 기원하는 사진이 우리 신문에 실린 일이 있다. 나는 그때 그 사진을 보면서 눈알이 아팠다. 가슴은 찡하게 울리고 결국은 눈물을 흘렸다. 동독국민도 그 사진을 보았다면 서독국민과 한가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지랄하네」하고 서독국민을 비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독일이 이제 합쳤다. 우리가 통일 운운했다가는 감옥에나 가기 십상인 그때에 독일에서는 통일을 위해서 촛불을 켜들고 기원하는 그런 광경이 벌어졌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우리네도 7ㆍ4남북공동성명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그리고 남북의 대표들이 통일을 의논하기 위해서 서울과 평양을 오갔다. 통일 통일,통일의 염원을 가슴앓이 같이 속에 품고 살아오던 우리가 제일 환희했던 것이 그 공동성명이 나왔을 때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첫새벽에 빗자루를 들고 나와서 우리 대표들이 북으로 가는 그 길을 쓸었다고 한다. 그렇게라도 해서 통일을 돕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7ㆍ4공동성명은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그 단순하고 순수했던 많은 사람들이 심한 좌절감을 느껴야 했다. 아니,그것은 배신감이었다. 사람을 그렇게 가슴 부풀게 했다가 단 한마디,없던 일로 할 수 있는가. 통일의 길은 다시 보이지 않게 되고 우리는 우리의 대표가 북으로 가는 길을 쓰는 그 조그만 정성을 바치는 기회도 잃었다. 그리고 민주주의 속에서도 가장 고약한 민주주의를 하는 곳이 남한이고 사회주의 속에서도 가장 몹쓸 사회주의를 하는 곳이 북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시인되어 왔다. 그 책임을 우리는 위정자에게 돌리고 싶어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을 가능케하는 우리들,국민에게도 많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위정자와 싸웠다. 국민에게는 힘이 있었다. 세상은 바뀌어지고 이제 북방외교니 북방정책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듣게 됐다. 판문점에서는 무슨무슨 회담이 잦아지고 우리는 통일,통일까지는 못가더라도 남북교류에 대해서 다시 기대를 갖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쩌면 모든게 다 우리들의 기대를 저버리기만 하는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제법 무엇이 될 듯 싶게 몇번이나 서로 만나고 몇번이나 서로 양보했다고 하고,어느 쪽이 더 하고 덜 하고,그런 보도가 되풀이 되다가는 아무 것도 성사된 것은 없이 끝장이 났다. 무슨 정치회담,무슨 적십자회담,무슨 체육회담,서로 따지고 트집을 잡다가는 등을 돌리고 서로 헤어졌다. 서로 뭔가를 할 의향은 있는 것인가. 지금은 우리 정부가 북을 다녀오고 싶어하는 사람을 무제한 보낸다고 희망자를 접수하고 있다. 어떤 사람은 선착순으로 보내는 줄 알고 접수처에 첫 새벽에 나왔다고도 한다. 저것이 가능할까. 남한사람들이 물밀듯이 북으로 가보고 싶다는데 북에서 어서 오라며 문을 열어줄까. 어렵지,하다가 나는 다시 머리를 흔든다. 남과 북의 이산가족이 서로 한번씩 다녀간 일이 있다. 그때는 2차 3차… 계속 서로 다녀갈 것 같았는데 한번만 서로 다녀가고 그만이 됐다. 그러나 세상만사 무엇이 어떻게 되어갈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요는 무엇이든지 시도해 보는 것은 해보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도 우리가 정책을 세우는 사람들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충분한 자신을 가지고 국민에게 신의있게 행하라는 부탁이다. 언젠가 이남에 심한 수해가 있었을 때 북에서 쌀과 천을 배에 실어서 우리에게 보내왔다. 그때 그 쌀과 천이 어떻게 분배됐는지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 쌀을 조금 분배 받았다는데 그 소리를 듣고 그 쌀을 한줌 얻어다가 제사를 지냈다는 실향민의 얘기를 나는 들었다. 우리의 마음이 그렇다면 그 쌀을 종로나 시청앞에 갖다 놓고 한알씩 이라도 갖고 싶은 사람은 갖게할 수 없었을까. 쉬쉬,간단간단하게 뚝딱 처리해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물은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게 마련인데 우리가 경제적으로 잘 산다면 그 물은 어디로 흐르게 되어 있는가. 또 그들의 주석ㆍ지도자 숭배는 세계가 다 아는 일인데,그래서 일본에 온 북의 어느 학자가 자기의 학설도 김일성주석의 주체사상 운운하는 것을 듣는 사람들이 다 이해해 줬다는데 우리도 이젠 그들을 이해해 줘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어느 기업이 북에 몇가지 물건을 무상으로보낼 때 그 사실이 신문에 보도됐다. 그러자 아니나 다를까 북에서는 그것을 도로 실어 보냈다. 우리가 진정 통일에의 길을 다질 마음이 있다면 이런 일에 신경을 써야 하리라. 솔직히 말해서 북에 가보겠다고 지금 신청서를 접수시키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이 다시 좌절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 가슴 아프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좌절의 역사가 우리 세월속에 묻혀가야만 그 어느날 통일의 관문이 열리는게 아닐까. 수많은 사람들의 절망과 좌절과 슬픔… 을 딛고 통일은 온다고 믿어보자. 그래야만 단순하고 순수한 사람들의 오늘에 보답이 되리라는 생각이 든다. ■1928년 함남 함흥태생 ■서울대 사대졸 ■196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케이스워커」당선 데뷔 「사상계 」지에 「외인촌입구」로 신인상 수상 「어떤 파리」「칠법전서」등 작품다수.
  • 야권통합 갈수록 “안개속”/평민·민주 방법론 갈등의 언저리

    ◎주도권 잡으로 「선 통합」 고수 평민/「당대당」 겨냥,시간벌기 작전 민주/양당 견해차 커 9월국회이전까진 난망 평민·민주 양당의 야권통합에 대한 견해차가 크게 벌어져 통합전망이 더욱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같은 통합노선의 차이는 3일 평민당이 당무지도회의에서 「선 통합선언 후 이견조정」 원칙을 결의한 반면 민주당은 이날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선 협상·이견조정 후 창당선언」 원칙을 재확인함으로써 극명하게 드러났다. 평민당측은 「의원직사퇴 정국」의 분위기를 최대한 활용,평민당 중심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올코트프레싱」 전법으로 민주당에외압을 가하고 있는 반면 민주당측은 당대당의 대등한 통합을 이루기 위해 「시간벌기」 작전을 펴고 있는 형국이다. 야권통합을 둘러싸고 흐르는 양당의 미묘한 기류차이는 최근 양당의 행보와 당 분위기에서 충분히 감지된다. 평민당측은 당초 김대중총재가 공언한 8월중 조기통합성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조윤형국회부의장·정대철총재특보·김원기 통합협상대표간사 등 중진들을 총동원해민주당측에 「총체적 설득공세」를 펴고 있다. 다시 말해 김원기간사가 지난 1일에 이어 4일 민주당의 김정길간사와 접촉하는등 공식협상채널 이외에 2일 조부의장이 민주당의 이기택총재·박찬종부총재 등과 만난 데 이어 정대철특보가 민주당의 이철사무청장및 김광일·노무현의원 등과 접촉하는 등 비공식협상 채널까지 총동원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평민당측은 민주당에 비해 상대적으로 교감의 폭이 넓은 재야를 끌어들여 우회적으로 「선 통합선언」의 외압을 가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달 31일 통추회의의 김관석상임공동대표가 이기택총재와 만난 자리에서 「선 통합선언 후 지도체제정비」 방식을 제시하면서 3자회담을 촉구한 것이나 3일 부산 국민연합의 박순보공동대표와 친평민당 성향의 부민련측이 통합열기를 지속키 위해 조기 장외집회 개최를 민주당측에 요청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같은 평민당의 속전속결전략은 9월 정기국회직전 야권의 국회등원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비등할 때까지 통합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진퇴양난의 곤경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입장에 기초하고 있다. 이에비해 민주당측은 원외 위원장들이 김대중총재 2선후퇴론을 전면에 부각시킨 지난달 26일 지구당위원장단회의를 기점으로 「선 이견조정 후 통합」 노선으로 선회하면서 통합협상보다는 당사 이전·하위당직 인선 등 창당 뒷마무리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총재는 평민당측의 김총재나 통추회의의 김대표의 3자회담 제의에 대해 『15인 통합추진기구부터 가동하자』며 단호히 거절하고 있다. 또 재야측의 부산·광주 등에서의 장외집회 요구에 대해 『8월의 폭염을 피해 민자당 단독국회등 쟁점이 부각되는 9월 정기국회 개원을 전후한 시기가 옥외집회의 적기』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따라서 오는 8일 첫 모임을 갖는 「통합정당 15인 추진기구」에서의 협상도 이같은 양당의 현격한 입장차이로 적어도 9월 정기국회 전까지는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민주당의 세대교체론과 평민당의 김총재 2선후퇴불가론은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입장인 데다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동등지분에 의한 실질적 경선」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뿐더러 평민당측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또 창당기간 뿐만 아니라 창당기간후의 3자 공동대표제를 전제로 통합선언을 할 경우는 우선 민주당의 상당수가 잔류를 선언해 결국은 「부분통합」으로 그칠 공산이 크다. 이밖에 다른 대안으로 이철의원등 민주당의 통합적극론자들이 거론하고있는 잠정기간 동안의 「제3자 대표추대론」은 평민당쪽에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창당후 내분이 증폭될 소지가 크다는 지적들이다. 민주당은 70개 원내외 지구당위원장들이 공동대표제라면 괜찮다는 입장에서부터 김총재의 완전한 2선퇴진이 없는 한 절대불가라는 「통합스펙트럼」상의 극심한 편차를 보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같은 민주당의 사정과 김총재가 차기 대권레이스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대전제를 함께 고려한다면 향후 야권통합논의는 「부분통합」으로 전락하거나 아니면 차기 총선이후로 이월되는 것으로 판가름날 수밖에없을 것 같다. 그리고 이같은 갈림길에서 가장 큰 변수는 한때 「경상도에서 배신자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를 그만둔다는 각오로」 야권통합을 추진하겠다면서 적극성을 보이다가 다시 통합신중론으로 「U턴」한 이총재의 「계산」이라고 볼 수 있다. 이총재가 일찍부터 양김 이후를 노려온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평민당과 제휴를 통해 향후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느냐 아니면 줄곧 세대교체론을 주창하면서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을 발판으로 부상을 노릴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구본영기자〉
  • 「투기인사」와 아르바이트 대학생(사설)

    아름답고 다재다능한 여의사로 부귀와 영화가 겸전해 있던 저명인사가 수의차림으로 쇠고랑을 차고 뉴스 화면에 등장한 모습은 보기에 무척 괴로웠다. 기품있게 늙어가기 시작해야 할 인생의 원숙기에 와서 이런 참담한 지경을 당한다면 그건 결코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수 없다. 출가한 딸까지 못할 짓을 시켜가며 온 집안이 우세를 당한 것이 결국은 물욕때문인데 그 엄청난 부는 그들의 수모를 덜어주는 데 아무런 역할도 되어주지 못하고 있다. 거기 비하면 사고에 대한 합의금이 없어 구속되었던 한 아르바이트 대학생이 밀물처럼 몰려온 온정에 힘입어 한나절 만에 석방되는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아르바이트로 트레일러를 몰다가 미끄러져 마주 오던 택시를 들이받고 사고를 낸 대학생의 사고가 결코 잘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살인적인 복더위속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아우의 등록금까지를 마련하기 위해 벅찬 중장비 운전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열심히 고난을 극복해 가는 젊은이가 합의금이 없어 구속된 채 좌절하게 되었더라면 근면하고 성실한 장차의 좋은 인재를 잃게도 되었겠거니와 사회를 향해 부정적이고 냉소적인 젊은이를 한 사람 이상 더 만들어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젊은이가 그렇게 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회라는 것을 많은 「온정들」은 웅변하고 있다. 실제로 아르바이트 대학생 최진환군은 자신의 심경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합의금 마련을 못해 세상이 야속하다는 생각을 난생 처음 했었는데 생각을 잘못했던 것 같아 부끄럽다고 말했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한편에서 이렇게 혹독한 역경속에서 인생을 헤쳐가고 있는 사람들이 수두룩한데 사회에 의한 최고의 수혜자이기도 한 이른바 지도층이 그 혜택받은 조건과 지능을 이용하여 법질서를 철저하게 유린해가며 아르바이트 젊은이는 상상도 하기 어려울 재물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것은 배신과 좌절을 맛보게 하는 악덕이다. 그런 방법의 부동산투기를 하지 않아도 그는 상당한 부자일 수 있는 사람이다. 전성기의 산부인과 의사노릇으로,지명도 높은 여류인사로 품위를 유지해가면서 정당하고 합법적인 축재를 얼마든지 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혜택받고 잘 살게 해준 사회를 위해 건전하게 기여를 하는 것이 그가 해야 할 최선의 도리인데 그렇게 하지 못한 그가 딱하고 한심스럽다. 아마도 목영자씨의 투기행각은,재력이 있는 그를 둘러싼 몇몇 부동산투기범들의 공모에 의해 조직적으로 획책된 합작품일지도 모른다. 법의 맹점을 이용해가며 부추겨 갔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잇속이 자기 차례가 되듯이 마침내 책임져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다. 유혹에 눈이 멀었건,충동에 마음이 약했건 그건 모두 자신이 저지른 것일 뿐이다. 결국 재앙으로 연결될 호강이라면 없는 편이 백배 낫고,역경을 거쳐 얻어낸 땀의 가치는 어떤 부귀로도 견줄 수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절묘한 두가지 사건이 같은 시기에 일어났다는 일이 신기하다. 어떤 섭리의 가르침만 같아 예사롭지가 않다.
  • 민자의원ㆍ원외 지구책회의 안팎

    ◎「장외투쟁」에 대응논리 마련/조기총선의 법리적 허구성 공박/“논란만 벌였다면 종이호랑이 됐을 걸” 18일 상오 서울 가락동 민자당 중앙정치교육원에서 열린 당소속의원및 원외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는 여야간 격전을 치렀던 지난 1백50회 임시국회 당시 여권의 입장에 대한 대국민 홍보방향및 하한정국의 귀향활동,지역활동지침 등이 폭넓게 제시돼 야권의 장외투쟁에 대한 역대응전략을 논의하는 성격을 띠었다. 따라서 이날 모임은 지난 5월말 의원세미나가 3당통합이후 3계파의 결속을 다지는 단합대회의 성격을 지녔던 데 반해 범야권의 반민자당 투쟁움직임에 정면대응하고 그들 주장의 허구성을 적시하는 적극적인 대야 공격논리 전개에 초점을 두었다. ○…이날 참석자들에게 배포ㆍ시달된 귀향활동대책에는 지난 임시국회의 성과와 민자당이 주요안건을 단독으로 처리한 배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평민당의 속셈과 국회해산,조기총선 주장의 부당성을 집중 소개토록 강조. 김동영원내총무는 원내보고를 통해 『지난 임시국회는 평민당의 주투쟁ㆍ종대화라는 비의회ㆍ반평화적인 선언에서 확인할 수 있듯 순탄치 않을 것으로 예상,원만한 국회운영을 위해 참을 수 있는데까지는 참고 양보할 수 있는데까지는 양보하려 했으나 결과적으로 시끄럽게 끝나 국민들에게 죄송하다』며 총체적인 책임이 원내 사령탑인 자신에게 있음을 지적. 김총무는 그러나 『흑백논리와 계획적인 파괴공작으로 무정부상태를 유도,이를 3당통합의 탓으로 전가하고 민자당을 종이 호랑이로 만들려는 평민당의 저의를 알면서도 회기내내 현안에 대한 결론없이 논란만 벌였다면 여당의 존립가치는 상실했을 것』이라며 현안법안의 강행처리가 소수의 횡포에 대응,집권여당의 책무를 다하기 위한 불가피한 전략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 김총무는 특히 이번 국회에서 헌정사상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여당상을 보인 실례로 △소수야당에 상임위원장 4석 할애 △국무총리의 과거잘못에 대한 사과 △국군조직법ㆍ방송법 등의 야 주장 대폭수용등을 지적하면서 의회민주주의를 포기한 평민당의 집단적 조직적 의사방해,유혈폭력 유발 등이 없었다면 모범적인 국회가 됐을 것이라고 해석. ○…주요당무 보고에 이어 열린 자유토론에서 당내 법이론가로 손꼽히는 이진우의원(포항)은 야당측이 내세우고 있는 조기총선 주장에 대해 『현행 헌법상 국회해산은 불가능하며 국회의원의 임기가 헌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에 국회의원 전원이 사퇴하더라도 총선이 아닌 보궐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면서 법이론에 입각,야당측을 공박. 이의원은 『야당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법을 무시하고 국회를 해산할 경우 앞으로 여당도 자신의 편의에 따라 국회를 해산할 수 있는 잘못된 관행을 남기게 된다』면서 『3당통합을 국민의 의사에 반한 야합이라고 주장하던 야당이 국민의 의사를 무시하고 의원직을 사퇴하면 이것이야말로 직무유기이며 선거구민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논리로 귀향활동을 해달라』고 주문. 또 3당통합이후 민정계 소장파의원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김중위의원(서울 강동을)은 민자당의 법안 일방처리에 대한 비난여론을 의식,『꼭 그런 식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는지 자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전제한 뒤『토론문화가 정착될 수 있고 폭력이 배제되고 순조로운 의사진행이 될 수 있는 제도장치가 강구돼야 한다』고 주장. 한편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국민의 절대다수가 조기총선을 원치 않는다면서 『야당이 사퇴한다 하더라도 조급하게 생각할 것 없이 우리의 길을 당당하게 나아가면 된다』고 역설. 김대표는 이어 이날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노태우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온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처럼 급변하는 국제정세속에서 노대통령이 국정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굳게 단결하자』고 호소.
  • 남로당총책 박갑동씨의 「체험적 6ㆍ25론」

    ◎“공산주의로 잘 산다는건 꿈” 뒤늦게 자각/휴전 임박해서 박헌영과 함께 연금생활/후퇴길에 평양보고 “거지공화국” 실망 6ㆍ25 동란당시 38선 이남지역 남로당 지하총책이던 박갑동씨(72)가 27일 한국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병형)주최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6ㆍ25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6ㆍ25체험담을 발표했다. 박씨의 체험담 요지는 다음과 같다. 50넌 6월 25일은 일요일이어서 나는 남로당 비밀아지트에서 쉬고 있었다. 아지트를 경비하는 사람이 외출후에 돌아와 전쟁이 터져서 피난민들이 미아리고개로 넘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순간 『김일성 이놈이 죽일놈』이라고 말하고 전신에 힘이 모두 빠져나갔다. 28일 새벽에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서울시내에 들어왔다. 나는 서대문 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지들을 구하기위해 나서며 비서에게 지하당원은 소공동 조선정판사빌딩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교도소에 갔다가 정판사빌딩에 가보니 비서 혼자 서있으면서 이승엽이 평양에서 전권을 가지고 서울시청에 와 당의 명령을 듣지않는 박갑동을 총살시키겠다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이승엽을 만나러 서울시청에 가서 정태식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이가 매우 화를 내고 있어 주위사람들이 말리고 있으니 잠깐동안 몸을 피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때부터 김일성과 이승엽에게 밉게 보여 지위가 점점 낮아져갔다. 나는 복간된 해방일보 논설위원으로 명맥을 유지해가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자 북으로 쫓기게 되었다. 유엔군이 북쪽에 가기도 전에 북쪽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인민위원회를 습격하고 약탈하고 있었다. 10월이 되자 북쪽은 상당히 추웠는데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이 얇은 여름옷을 입고 이불도 못덮고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이놈의 나라가 인민공화국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거지공화국이 아니면 간부공화국』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일성이 5년동안 사회주의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의 실상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평양에 도착해서 소위 인민시장에 가보았다. 국영상점 이외에 협동조합상점과 개인상점도 있었는데 생필품이 부족했다. 고무신점에 가보니 여자고무신이 두 종류 있었는데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회색인데 주인이 흰색은 남한제품이라며 품질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포목점에 가보니 옥양목은 짜지 못하는지 조악한 광목밖에 없었다. 국영정육점에 가보니 점원이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과 손으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개인정육점에 가니 20세가량되는 처녀아이가 쇠고기1㎏을 정확히 한번에 잘라주는 것을 보고 국영상점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개인상점은 매일 매일 무거운 과세를 함으로써 국영상점을 우대했다. 국영상점 점원은 공무원이기때문에 손님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많이 판다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니 성의가 전혀없었다. 사회주의 경제는 상품생산과 유통시장이 존재하는 경제가 아니었다. 상품이란 소비자가 소중한 돈을 주고 사고싶은 물품을 사는 상행위가 기본이어야 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저 최소의 생필품을 국가가 배급을 해주는것이 현실이었다. 휴전이 가까워지자 북한은 남로당계 인사를 출당하는 대대적인 숙청을 해 나는 박헌영과 함께 체포되어 56년 3월까지 감금생활을 했다. 56년 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비판을 한뒤 석방되어 북경을 경유,공산권에서 탈출했다. 57년에 북경에 갔다. 중국은 사회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대국주의ㆍ제국주의였다. 조선인민을 자기들이 도와서 미제국주의를 타도했다는 자부심으로 전국이 덮여있었다. 유엔군이 중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국경을 지키기 위해 출병했다는 것이다. 세계강대국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지구상에는 하루도 전쟁이 그칠날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약소민족의 서러움과 비애를 느꼈다. 모택동의 소수민족정책이라는 것도 자세히 보면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을 통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소련은 명목적이나마 공화국을 수립해주고 연방으로 묶어 통치하지만 중국은 소수민족의 공화국은 금지하고 직접 통치하고 있었다. 50년대 후반의 중국 공산주의는 정말로 「독점」「독선」「배신」의 연속이었다. 나는 공산주의가고상한 도덕이며 인도주의라고 믿어왔는데 실제로 공산주의가 실천되는 현장을 보니 정치적으로는 중세기 암흑세계이고 경제적으로는 기술이 낙후하여 자본주의 생산성에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하에서 독립을 해서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기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었는데 공산주의 국가 북한과 중국에 가서 앞날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자신이 부끄러워서 일본에 망명하여 성명을 바꾸고 일개 노동자로 일평생을 살아가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일본에 망명하여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속이고 고무공장 노동자를 몇해 하면서 숨어서 살아왔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점령하에 있어 일본경찰이 본적을 조회할 수 없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나와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선조가 남겨주신 유산으로 일본유학까지 해서 당시로서는 조선최고의 인텔리의 한사람이 그 능력을 옳게 발휘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뉘우치는 바이다.
  • 재벌의 부동산선호와 투기(사설)

    국내 5대재벌이 업무와 관련이 없는 부동산을 대규모로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재벌기업의 부동산 선호현상을 단적으로 예증해 주고 있다. 5대재벌이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가운데 18.2%가 비업무용이라는 데 놀랍고 충격적이기도 하다. 다른 기업도 아닌 국내 상위 5대랭킹의 대재벌이 그토록 부동산투기에 열중해야만 하는가에 대하여 강력한 의문과 함께 아연스러운 생각이 앞선다. 부동산투기는 망국적 병원균임을 모르는 국민이 없고 그것에 대하여 여기서 재론이 전혀 필요치가 않다. 더구나 투기에 대한 국민들의 비난과 지탄을 모를리 없는 대기업들이 누구보다 앞장서 투기에 열중했다는 사실에 많은 국민들이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국세청이 대기업들에 대해 비업무용 부동산 소유여부를 가리는 조사에 착수하자 전경련은 비업무용 판정기준을 완화하고 제3자명의 부동산에 대하여도 증여세부과를 면제토록 건의하는 이기주의적인 행동을 버리지 않고 있다. 정부의 비업무용 판정에 대해 일부의 사례까지 지적하며 반발하고 있다. 물론일부의 판정에 대하여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판정이 모호한 부문은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국세청 조사결과 밝혀지고 있다. 결국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재벌총수들이 정부의 부동산투기억제시책에 호응하여 재계가 앞장서 업무용부동산까지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것이 얼마나 허구이고 진실이 결여되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번 조사는 금융기관의 여신관리기업에 대한 비업무용 판정이 얼마나 부실한가를 일깨워주고 있다. 국세청의 조사로는 비업무용 비율이 18.2%인데 반하여 은행감독원의 자료는 2%에 불과한 것으로 되어 있다. 현행 여신관리규정은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이 적발되면 주거래은행은 해당기업에 6개월내 처분을 촉구하고 이에 불응시에는 대출금에 대한 연체금리 적용과 신규대출 중단등 제재를 가하도록 되어 있다. 이 여신관리규정이 규정대로 적용되었다면 대기업들이 그토록 많이 비업무용을 소유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이 규정이 사문화되어 왔다는 사실은 은행이 대기업들의 비업무용 토지에 대한 규제를펴기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비업무용 토지해결에 있어서 최상의 방법은 해당 기업 스스로가 그 토지를 매각하는 것이다. 5·10부동산 매각발표때 재벌총수들이 국민들에게 약속한대로 비업무용 부동산은 물론 매각하겠다고 발표한 부동산 모두를 처분시한 6개월이내 매각을 완료하기 바란다. 국민들은 재벌총수들의 결의와 다짐을 지켜보고 있다. 이번에도 구두선으로 그친다면 일반의 재계에 대한 사시적 관망이 실질적 표현과 행동으로 바뀔지도 모른다. 제도적으로는 기업이 필요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적 조치가 수반되어야 한다. 금융기관이 아닌 정부기관이 기업의 부동산 소유를 규제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하여 5·8조치가 초법적 조치라는 반론을 불식시켜야 한다.
  • 동북아 새기류… 세계의 시각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의 통일등 한반도의 장래를 진단하는 많은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북한은 이미 무너진 동독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최악의 요소」만 갖추고 있어 체제존속이 어려울 것』이란 마이클 윌리엄스 미코넬대객원교수의 전망(8일자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이나 「한국 성큼 걸어 나오다」라는 제목아래 『공산국가들은 남한의 경제력으로 보아 통일한국은 남한이 지배하게 될 것』으로 분석한 9일자 영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들이 바로 그것이다. 두 기사의 내용을 간추린다.〈편집자주〉 ◎미교수,「상항랑데부」이후 예진/“김일성 사후 북한붕괴 가능성”/무너진 루마니아의 최악 요소만 지녀/미 인터내셔널 트리뷴 한소 관계의 발전은 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만남으로써 극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이 만남이 미국 땅에서 이뤄졌기 때문에 북한으로선 더욱 뼈아픈 상처를 입게 됐다. 이번 회담은 한국전쟁이 끝난 이후 동북아 정정에 가장 중요한 변화라 할 수 있다. 이 회담은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에까지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지난 50년 북한이 한국을 침공한지 꼭 40년만에 이뤄진 노ㆍ고 회담은 한국의 정치ㆍ경제적인 우위를 반영한 것이다. 이 회담은 또한 지난 48년 이후 지속돼온 북한 김일성체제가 계속 지탱할 수 있을지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노ㆍ고 회담은 한소 관계를 또다른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이 회담으로 한소간 완전한 국교수립과 대사의 교환은 이제 단지 시간문제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소의 접근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지난 7일 북한은 한국 대통령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배신적인 협상」을 했다고 고르바초프를 맹렬히 비난했다. 그러나 북한은 경제ㆍ군사원조의 대부분을 여전히 소련으로부터 얻고 있기 때문에 사실 소련에 대해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는 형편이다. 공산세계에서 유독 북한만이 정치개혁은 물론 경제적 변화까지도 거부하고 있다. 소련학자들은 올해 78세인 김일성의 사후에도 현북한공산정권의 존속 가능성에 대해 공공연히 의문을 제기하고 있으며 이미 무너진 동독과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최악의 요소만 함께 갖춘 북한정권이 존속할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 개최로 북한이 그동안 소련과 중국사이에서 벌여온 줄타기 외교가 더이상 먹혀들지 않게 됐다. 중국으로서는 크메르 루주만큼 「국제적으로 이미지가 아주 나쁜」 북한의 유일한 지지국으로 남아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기 때문이다. 원칙적으로 보면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회담이 주변지역 긴장을 완화한다는 점에서 기뻐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이니셔티브는 일본이 새롭게 일고 있는 대소협력물결에 합류해야 한다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 일본기업인들은 잠재적으로 거대한 소련시장에 한국과 미국이 침투하는데 대해 점차 불편한 심기를 보이고 있다. 항시 날카로운 타이밍 감각을 발휘해 온 고르바초프는 이번 방미기간 중에도 자신이 1991년에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라고 확인했다. 도쿄는 그가 아직까지도 찾아가지 않은 유일한 세계 주요도시이다. 소일관계는 일본에서 북방영토로 불리는 쿠릴열도내 4개섬을 둘러싼 양국간의 오랜 분쟁으로 마비돼 왔다. 미소 관계가 극적으로 개선되고 모스크바 당국이 최근 한국에 접근함에 따라 소련에 대해 행사할 수 있는 일본의 경제적 지렛대 기능은 크게 손상되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일본의 경제원조대가로 소련이 4개섬을 반환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고르바초프로서는 한국에 문호를 개방하고 소일 정상회담을 늦춤으로써 소련이 일본에 대해 어떤 중대한 영토 양보조치도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계산을 해온 것 같다. ◎영 경제지,남북한의 장래 전망/“통일한반도 한국이 지배한다”/경제력 절대우위… 유엔가입 장애없어/영 이코노미스트지 한반도의 교착상태가 흔들리고 있다. 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상면하게 됨에 따라 일견 극복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한반도 문제가 탄력성을 보이게 된 것이다. 이들 두사람의 만남은 고르바초프에 의해서 부시대통령과의 회담후 귀로에 갖는 것으로 짜여졌고 회담시간도 불과 1시간밖에 안되었으나 그 결과는 눈부신 것이었다. 이로써 소련은 사실상 과거 동맹국인 북한을 버린 것이다. 지난 88년 12월까지만 해도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남한과 외교관계를 가질 의향이 없다고 공언했으며 그후로 북한은 공산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엄청난 변화에 눈과 귀를 막고 지냈다. 88년 서울올림픽은 한국의 경제적 성공을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산국가들에 있어서는 한국이 그들에게 줄 것이 많은 나라로 떠오른 것이다. 88년에 3억달러였던 한소 무역은 89년에 6억달러로 늘었으며 금년에도 늘어날 것이다. 공산국가들은 남한의 경제력으로 보건대 통일이 되더라도 남한이 지배할 것으로 믿고 있는 것 같다. 두나라의 경제는 서로 잘 어울리는데 소련은 북한이 필요로 하는 원료를,그리고 한국은 비교적 덜 정교하긴 하지만 소련에게는 필요한 기술을 제공할 수 있다. 한국은 서방의 대공산권수출통제기구인 코콤(COCOM)의 멤버가 아니며 코콤 또한 금지규모를 완화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므로 한국과 소련간에는 괜찮은 거래가 가능한 입장이다. 한국전쟁이 끝난지 37년이 되는 한반도의 긴장은 팽팽하다. 주로 소련무기로 무장한 북한군은 남한을 2대1로 압도하고 있으며 직접대화는 잘 나가는듯 하다가도 실패로 끝나곤 한다. 지난 11월 남한이 북한의 문화교류 제의를 거부한 일이 있기는 하지만 남북대화 파탄의 책임은 주로 북한측에 있다. 남한이 다음에 성취할 큰 일은 유엔회원국이 되는 일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한국의 유엔가입안을 물리치는데 소련과 중국의 거부권을 믿어왔으나 이제 소련은 더이상 거부권을 행사할 것 같지 않다. 그럼 중국은 어떠한가. 과거에 김일성은 소련이 까다롭게 나오면 중국과 포옹함으로써 소련을 협박하곤 했다. 이러한 포옹은 이제 더 이상 일어날 것 같지 않다. 중국도 그동안 계산을 다시 해오고 있는 중이다. 한중간에 외교관계는 없지만 두나라의 무역거래량은 작년 경우 26억달러에 이르렀는데 이는 중국과 북한무역의 4배나 되는 것이다. 남한은 유엔가입안을 신중히 다루고 있다. 지난 4월 노대통령은 유엔주재 한국외교부를 교체했다. 정치인이며 노대통령의 측근인 현홍주 신임대사는 북경과 모스크바를 비밀리에 방문한 일이 있다. 남한의 무역ㆍ기술ㆍ투자 등은 중국에게는 매력적인 것들이다. 북경과의 외교관계전에 남한은 대만과의 관계를 격하시켜야 되는데 대만측이 반발하더라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현재 극소수에 불과한 「이념국」인 북한을 버리기 전에 재고 삼고를 하고자 할 것이다.〈연합〉
  • 북한,고르바초프 비난/“한국과 배신적 거래했다”

    【도쿄 로이터 연합】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7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증오하는 한국의 지도자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배신적인 거래」를 했다며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도쿄에서 청취된 이 통신은 이날 북한의 지원을 받는 「한국민족민주전선」(구통혁당)의 명의로 된 성명을 통해 이같이 비난하면서 노태우대통령은 「파시스트 군부독재자」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독재자 노태우는 어제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적이었던 일본왕실을 방문,굽신거리더니 오늘은 미국에 인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소련에게까지 무릎을 꿇어 간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함께 이 성명은 『한국민족민주전선은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장래운명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노태우집단의 비굴하고 복종적이며 배신적인 방일,방미에 항의하는 모든 인민과 연대투쟁할 것』이라면서 『우리 민족은 그같은 한국 독재자와 얼굴을 마주한 크렘린 당국의 태도에 대해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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