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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이 무슨 죄인가(사설)

    철도는 국가의 대동맥이며 지하철은 시민의 발이다.어떤 이유에서든 운행이 중단되어서는 안된다.그런데도 철도와 지하철의 파업사태로 교통대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든 대단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전국 기관차협의회(전기협)와 지하철노조가 파업을 단행할때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하는 국민의 입장은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한 노릇이다.철도가 마비되면 국가경제는 타격을 입게 되고 지하철이 멈추면 해당지역시민의 생활은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고통을 당하고 피해를 입는 것은 철도나 지하철당국도 노조도 아닌 국가와 국민이다.지금 당장 우리는 그것을 보고있지 않는가.파업 주도의 전기협이나 지하철노조 지도부는 이번 파업사태가 가져올 그러한 파국적인 결과를 생각이나 해보았는지 묻고 싶다. 파업은 극한적이고 최후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사려깊고 신중하게 선택되어야 한다.그러나 이번 사태의 분규쟁점만을 놓고 볼때 과연 그것이 파업까지 강행할만한 것인가 하는의문을 갖게 된다.노조가 파업을 단행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명분과 절박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전기협은 근무형태의 변경을,지하철노조는 임금인상(15.4%)을 요구하고 있다.이들 요구가 관철되지 않는다고 해서 국가경제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극한적인 방법을 동원하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철도와 지하철은 사기업이 아니다.철도는 국가기간산업이며 지하철은 공기업이다.더구나 철도기관사들은 공무원 신분으로 파업이나 태업이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노동부는 전기협이 법외 단체임에도 법의 테두리안에서 그들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겠다는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외면 당했다.철도청의 신중치 못한 강경대응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둘러 파업에 돌입함으로써 온 나라와 국민을 혼란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성급한 행동에 나서야 한단 말인가. 지하철노조의 요구도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을만큼 명분이 있거나 절박하다고 보지 않는다.파업은 공익을 저버린 무책임한 일이며 국민을 배신하는 행동이란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철도와 지하철은 정부의 것도 노조의 것도 아닌 국가와 국민의 것이다.근무자들의 임금인상과 근무조건개선 투쟁의 수단이 될수는 없다.감정을 극복하고 이성을 되찾아 협상테이블에 다시 앉아주기 바란다.노조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하고 정부당국도 가능한 최선을 다해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그리고 철도와 지하철의 운행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그 모든 것에 앞서 해야 할 제1의 급선무다.
  • 바그다드·암만/“신의 도시” 바빌론(아랍서 지중해까지:5)

    ◎시간도 멈춰선 「2천5백년전 왕국」/거대한고 장엄한 이슈타르게이트… 네자르왕의 위엄 보는듯 고고학자들은 로맨티스트들이다.바빌론 궁전의 유명한 「행진의 거리」복판에 섰을때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그들은 역사의 미궁속으로 끊임없이 잠입을 시도하고 있다.마치 현대의 어린이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속으로 여행을 꿈꾸듯이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90㎞,차로 한시간 남짓 걸리는 이 고속도로를 달리는동안 나도 그 비슷한 공상을 하면서 가슴이 설레었다. 신의 도시,고대 인류가 만든 불가사의 중의 하나,이같은 수식어로 바빌론은 역사의 문외한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그 이름이 주는 매력과 신비감 때문에 나는 갑자기 엉뚱한 「증발의 유혹」에 빠졌는지 모른다.영화 「타임머신」에서 인간은 첨단기계를 이용해서 「과거와 미래로의 여행」을 자유롭게 하고 있다.최근 대전엑스포에서 시승해 본 「미래의 서울로 가는 자동차」는 이보다 한층 단순하고 솔직했다.이것은 고속으로 전개되는 대형 멀티비전 화면을 이용한 것이다.그러나 바빌론에서 시간여행을 하는데는 그런 구차스런 문명의 이기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여기에는 고대 바빌로니아 왕국의 공간이 완벽하게 갖춰져 있을뿐 아니라 이 공간에서는 시간도 잠을 자고있다. ○외성은 흔적 없어 먼저 우리앞을 막아선 것은 청색으로 채색된 거대한 이슈타르 게이트였다.이슈타르는 사랑의 여신이란 뜻이다.이 문은 본래 바빌론내성의 출입문인데 외성의 흔적이 모두 사라진 지금 바빌론 궁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출입구 구실을 하고 있었다.우리 눈에 거대하게 보이는 이 문도 복제품으로 원형의 절반 규모밖에 안된다고 한다.이슈타르 게이트의 전면에는 이상한 동물의 모양이 무늬처럼 일정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그 형태는 말과 개의 중간쯤이라고 할까.이것은 상상의 동물로 바빌로니아의 수호신이었다.상상의 동물은 궁안의 여러군데 벽에서도 발견되었다. 입구를 통과하자 오른쪽에 뜻밖에 소규모의 현대식 건물이 보였다.이 건물은 바빌론박물관으로 1899년 이도시가 처음 발굴될때 발견된 여러가지 유물을 보관하고 있었다.박물관을 지나약간 오르막진 언덕으로 올라가자 눈앞에 행진의 거리와 왕궁의 웅장한 성벽들이 나타났다.행진의 거리는 철책으로 가장자리를 둘러쌌는데 그 길이가 수백m는 될것 같았다.성벽들은 행진의 거리 좌우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다.거리의 바닥에는 단단한 흙벽돌이 깔려 있는데 이것은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였다.행진의 거리는 「적들은 절대로 통과하지 못하는 곳」이란 뜻이 있고 이곳에서는 매년 신에게 영광을 돌리려는 축제가 열렸었다.그러나 네부카드 네자르가 죽고(BC605∼562) 불과 2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이 승리의 거리에 페르시아의 정복자들이 말발굽소리를 울리며 행진했다는 사실(BC539)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2500년전의 길바닥 위로 뜨거운 햇볕이 작렬하고 있었다.성벽으로 에워싸인 행진의 거리는 정적이 가득했다.문득 이 공간에는 시간이 정지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그렇다면 저 성벽들 사이로 걸어들어가서 네부카드 네자르의 병사들과 신하들을 당장 만나볼 수도 있지 않을까?거리 복판에 서서 나는 잠시 이런 공상에 빠져들었다.그러나 이 공상은 금방 깨지고 말았다.성벽을 쌓은 벽돌들마다 네부카드 네자르 대신 사담 후세인의 이름을 새겨놓고 있었던 것이다. ○벽돌엔 후세인 이름 사실 이 거대한 왕궁은 후세인의 지시에 의해 최근 복원된 하나의 무대세트에 불과한 것이다.후세인은 2500년전 이 도시를 수복하고 예루살렘을 정복했던 네부카드 네자르의 후계자를 자처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수백만달러를 들여 바빌론을 복원시켰고 왕궁의 성벽을 쌓은 벽돌에는 네부카드 네자르의 이름대신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은 것이다.후세인은 자기 이름이 다시 2500년 뒤에 위대한 정복자의 이름으로 회자되기를 바라는 것일까. 9월에 열리는 바빌론축제도 옛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사담의 의지에 따른 것이다.이 축제가 열리는 주무대인 그리스 극장은 바빌론성에서 수백m 떨어진 한적한 들가운데 외롭게 버려져 있었다.일종의 야외극장인 이 무대가 그리스극장이란 이름을 갖게된 것은 BC300년경 바빌론에 수도를 정하고 이곳을 통치했던 그리스의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건축되었기 때문이다.얼핏 봐서 무척 현대적으로 설계된 이 야외무대를 건립하는데 사용된 벽돌이 모두 바벨탑의 잔해에서 거둬들인 것들이란 사실이 흥미로웠다. 궁전의 성벽을 조금 벗어나 옆뜰로 나서면 넓은 공터의 복판에 커다란 사자상이 버티고 있다.높이 2m,폭2·5m의 이 용맹한 사자상은 그러나 지금은 보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무척 쓸쓸하게 보였다.이 사자상은 사랑의 여신 이슈타르를 상징한 것이란 얘기도 있고 적들을 제압하는 상징물이란 얘기도 있으나 어느쪽인지 확인할 수는 없었다.다만 자세히 관찰해보면 사자밑에는 사람이 누워있고 사자는 앞발로 인간을 찍어누르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이것을 보면 침략자를 제압한다는 왕궁의 수호신 역할을 하지 않았나 짐작되기도 한다. 그 유명한 바벨탑의 유적은 바빌론성에서 거의 1㎞쯤 떨어진 외딴 언덕위에 있다.바벨탑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전설이 있을 뿐이다.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실제로도 그랬다.그러나 바벨탑은 희미하게 존재하고 있었다.이 구약의 불가사의 중의 하나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쨌든 의심하기 좋아하는 이방인을 잠시나마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우리는 그것을 육안으로 확인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밋밋하고 먼 언덕길을 올라갔다. 거대한 분화구가 나타났다.미사일이나 큰 폭탄이 떨어져 거대한 웅덩이를 만든 것 같았다.벽돌조각이나 건축물의 다른 잔해조차 흔적이 없었다.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이 대역사를 벌였다는 느낌은 쉽게 받았다.웅덩이의 넓이나 깊이로 미뤄볼 때 그 규모가 엄청났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바벨이란 말에는 「하느님의 문」이란 뜻과 「혼돈」이란 뜻이 함께 있다.거대한 웅덩이 잔해를 봤을때 한마디로 혼돈이란 말이 생각났다. 백성들은 하느님에 대한 종교적 열정,하느님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열망으로 이 제단을 쌓아올라갔다.그러나 여호와께서 내려와서 보시고 이것은 백성들이 자기를 두려워하지 않을뿐 아니라 자기네끼리만 뭉치면 무슨 일이든 해치울 수 있다는 교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판단하고 탑의 건축을 중지시켰다.창세기 11장에는 바벨탑에 관해 대강 이런 얘기가 나와있다.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한 백성들의 열정을 왜 배신으로 오해했을까?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뜻을 신에게 올바로 전하는 일은 그처럼 힘든 것인가? ○탑문화 크게 발달 이라크 남부에는 구약의 표적물이 유난히 많다.바벨탑을 위시해서 아브라함의 고향이라는 「우르」,쿠르나의 에덴동산 등이 그것이다.「노아의 방주」는 바빌론에 끌려온 유태인들이 수메르인들의 홍수얘기를 전해듣고 훗날 돌아가서 신화로 꾸며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분명한 것은 유프라테스 평원에는 탑이 많다는 사실이다.유프라테스 뿐아니라 나일강 유역도 마찬가지다.평원에는 산악지대와 달리 하늘로 높이 솟은 탑문화가 유독 발달되어 있다.사람들은 수직으로 솟아오른 탑에 의지해 자기의 권력의지와 신에 대한 갈망까지 모두 표출하고 있는 셈이다.바벨탑의 잔해는 인간의 그 끝없는 욕망의 허망감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바빌론성 외곽을 멀리 벗어난 곳에 인류최초의 성문법전을 만든 함무라비 대왕의 석상이 있었다.법전을 새겨놓았다는 높이 2.5m크기의 돌기둥도 있었는데 이것은 모형이었다.원형은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바빌론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들도 자연 보잘것이 없었다.귀중한 유산들이 열강의 손으로 넘어가버린 탓이다.박물관 진열대에는 고작해야 문자가 새겨진 돌조각들,작은 토기 몇점만 뒹굴고 있었다. 그곳에서 눈길을 끈것은 1899년 독일인 콜데베이에 의해 처음 발굴이 시작되기 직전의 바빌론성의 전경과 발굴이 진행되는 현장의 사진들이었다.발굴직전의 바빌론 성은 짙은 안개에 싸인 고성의 모습처럼 아름답고 신비로 가득했다.내 입에서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그런가하면 발굴현장 사진은 시장바닥처럼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아,귀중한 유물을 훔쳐가기 위해 발굴이라는 이름으로 이 신비의 고도는 얼마나 잔인하게 파괴되었던가,나는 탄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수입 바가지(외언내언)

    80년대초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던 한국인들은 현지 백화점에서 국산품을 외제로 알고 사들고 오는 사례가 빈번했다.근사한 바바리코트,멋진 가죽가방을 사서 집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메이드인 코리아」딱지가 붙어있는 것이다.그러나 「속았다」든가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던 느낌이 앞섰다.『국산품이 외국 백화점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다니…』그런 감동마저 맛보게 해주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져 수입자유화와함께 외제상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들어오고 있다.서울시내 유명백화점의 매장은 온통 수입상품으로 채워지고 있다.화장품·의류·주방용구·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그 바람에 국산품의 영토는 자꾸만 잠식당하고 있다.H백화점의 아동복매장은 18개,그중 수입상품매장은 11개나 된다.S백화점의 화장품코너는 7개이나 국산품코너는 단 한곳밖에 없다.온세계 유명브랜드 제품들이 현란하게 군림하고 있는것이다.수입상품은 값이 비싼데도 잘 팔린다고 한다. 현대백화점 본점의 경우 지난 1∼2월 수입의류판매고가작년대비 31.1%가 늘었고 수입화장품은 무려 88%나 폭증했다니 놀라운 신장세이다.농수산물아닌 상품에도 「신토불이」를 외쳐대야 할판이다.수입자유화의 참뜻은 질좋은 상품을 싼 값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데 있을것이다.그런데도 국내 유명백화점들은 소비자의 얄팍한 허영심을 노려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 한 소비자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내 일류백화점에서 팔리고있는 수입상품들의 값은 대체로 원가의 5배나 된다.심한 경우 최고 7.6배의 폭리를 취하는 상품도 있었다고 한다.수입가 1만3천원짜리 진바지의 판매가가 8만9천5백원으로 둔갑한다. 아무리 장사라지만 해도 너무한다.일류백화점에서 자행되는 일이라 배신감과 충격은 더욱 커진다.소비자들이여! 언제까지 악덕 수입상과 판매업자들의 「봉」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 연변조선족의 「모국갈등」/최두삼 북경특파원(현장)

    ◎“왜 잘사나” 시기심… 한탕주의 만연 『다같은 조선민족인데 너희들은 왜 이리 잘살아! 왜 이렇게 돈이 많은가 말이다!…』이는 최근 북경의 한 한국인 아파트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정부가 피를 토하듯 쏟아낸 말이다.그 가정부는 주인의 돈과 귀금속을 조금 훔쳤다가 발각되자 식칼을 쳐든채 몸을 부르르 떨며 이렇게 항변했던 것이다. 바깥세계를 구경해보지 못한 일부 조선족들은 도대체 「한국인」과 「조선족」이 왜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다른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중국내에서는 회사사장이나 사원의 의자 크기가 똑같고 기관의 국장이든 말단직원이든 그들이 사는 주택규모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이같은 평등구조에 익숙해 있는 그들로서는 왜 한국사람들과는 이토록 하늘과 땅처럼 차등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최근 한국인 사업가 서인석씨가 몇몇 조선족동포들의 꾐에 빠져 장춘시의 한 아파트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피살된 것도 중국내의 한탕주의 만연과 더불어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인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갈등,원한같은게 쌓여온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족들은 요즘 세사람만 모이면 한국가서 돈번 얘기와 한국에 들어갈 궁리들을 화제로 삼는다고 이곳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조선족 동포사회에 갑작스런 한국의 등장은 하나의 무지개 꿈의 출현과 같다.그래서 『부자가 되려거든 한국인을 잡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그러나 그들이 한국인을 통해 얻은 좌절과 배신감 그리고 피맺힌 원한 역시 날로 팽배해지고 있다. 그들은 김포공항이나 인천부두에서 동료 조선족들이 세퍼드까지 동원한 짐수색­몸수색을 당했다는 얘기에 울분을 느끼며,공사판에서 막노동으로 번 돈을 출국장에서 벌금으로 모두 빼앗긴뒤 빈털털이가 되자 자살했다는 얘기에는 다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매정한 나라 한국」을 원망한다.한국인 관광객들이 1백달러 지폐를 흔들며 『이 돈이면 너희들 월급 몇달친가?』라며 처녀들을 농락하고 정조를 짓밟았다는 얘기에는 『한국놈들 걸리기만 해라.가만두지 않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쥐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이 땀흘릴 생각은 않은채 부자될 꿈만꾸고 있다고 나무라는 반면 조선족들은 『우리는 북한동포들이 오면 몇달치 월급도 아까워하지 않고 쥐어줘 돌려보내지만 한국인들은 우리가 찾아가면 귀찮은듯 겨우 양말 몇 켤레나 던져주며 돌아가라 한다』고 익숙지 못한 자본주의사회의 메마른 인정을 개탄한다.
  • 표류하는 하타호… “조기침몰”위기감/일 「2기 연정」 어디로 가나

    ◎사회당,“탈퇴” 확고… 자민과 연대 모색/“여소야대는 막자” 모든 카드 동원태세 일본정국이 혼란에 빠져있는 가운데 연립여당은 사회당의 연정복귀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그러나 사회당은 자민당과의 연대 기미를 보이고 있고 이에따라 자민당이 정권탈환 공세를 준비하는등 정국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연립여당은 27일 당수·대표자회의를 갖고 사회당이 연정에 다시 돌아오도록 최대한 설득하기로 결정했다.연립여당의 이러한 결정은 사회당을 제외하고 소수연립내각을 발족시킬 경우 6월 예산안 통과후 무너져버리는 단명정권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연립여당은 이에따라 사회당의 연정탈퇴선언의 직접 동기가 됐던 원내교섭단체 「개신」의 결성을 백지화하고 현재 6명인 사회당몫 각료수도 그대로 둔다는 「타협안」을 마련하고 아울러 일련의 사태에 대해 하타총리가 사과키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사회당쪽 반응은 냉담하다.무라야마 위원장은 27일 『개신결성을 백지화하더라도 사회당은 연정에 복귀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잘라 말했다.사회당은 연정유지를 위해 그동안 쌀시장개방문제등 중요 정책결정과정에서 많은 양보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을 빼돌리고 연정내 최대 원내교섭단체를 만들려 한 배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강경입장을 견지하고 있다.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 노선에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중도·우파까지도 정치적 신뢰관계가 무너졌다며 이미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는 입장이다. 사회당의 이러한 강한 반발은 「개신」이 보수정당으로 발전할 경우 일본정국은 양대정당제로 재편되며 사회당은 설땅을 잃게될 것이라는 우려에 바탕을 두고 있다.사회당내에는 연정에 복귀하기보다 「각외협력」을 결정한 신당사키가케및 자민당과의 연대를 모색하여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자민당도 사회당및 신당사키가케와의 연대를 강화할 태세다.자민당의 모리 요시로 간사장과 사회당의 구보 와타루서기장은 27일 회담을 갖고 예산편성,정국운용등에서 연대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자민당은 특히 26일 『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책임정당에 정권을 맡겨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정권탈환」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자민당과 사회당은 오는6월 예산편성후 내각불신임안을 제출,「국회해산­총선」을 유도할 가능성도 있다.자민당(2백6석)과 사회당(74석)이 손을 잡으면 중의원 과반수(2백55석)를 확보할수 있게된다.양당은 정치개혁법에 따른 소선거·비례대표제보다는 현행 중선거구제가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중선거구제에서의 총선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하타총리는 사회당이 연정에 복귀하지 않을 경우 자민당 일부와의 제휴를 시도하는등 소수연립내각을 피하기위해 막판까지 모든 카드를 동원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28일까지 별 진전을 보지 못해 「하타정권」이 소수내각으로 출범하게될 경우 일본정국은 심각한 불안정을 드러내며 정계재편이란 종점을 향해 갈지자행보를 하게될 전망이다.
  • 사회당 연정탈퇴 이후(정치개혁 일본/하타정권의 진로:중)

    ◎「소수내각」 불가피… 불안한 “첫발”/6월 예산 통과뒤 총선 가능성/「제2의 정계개편」 가속화 예고 「일본의 에이스 카드 하타총리」.새로운 일본을 만들고 있는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신생당대표간사가 말하는 「하타총리론」이다.그는 에이스 카드를 내는한 하타정권을 안정된 장기정권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오자와의 이러한 구상에 따라 25일 하타 쓰토무(우전자)총리가 탄생한 직후 연립여당의 최대 원내교섭단체 「개신」이 전격적으로 만들어졌다.하타정권의 안정과 정계개편 제2막의 주도권을 잡기위한 구상이었다.그러나 이 과정에서 완전 배제된 사회당이 배신행위라며 예상보다 강력하게 반발,연립정부로부터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하타총리는 출범초부터 대혼란과 위기를 맞고 있다. 개신은 신생·민사·자유·일본신당과 「개혁의 회」등 5개 당·파로 구성됐다.전체 중의원수는 무소속 1명을 포함해 1백30명.공명당(52명),신당미래(5명)도 참가할 것으로 보여 개신은 1백87명 이상의 거대 세력으로 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신은 25일 오우치 게이고(대내계오)민사당위원장의 제의로 결성됐다.그러나 그 뒤에는 일본정계의 최대 실력자이며 전략가인 오자와가 있다.오자와와 오우치위원장은 지난주말 극비회담을 갖고 개신결성을 추진했다.그러나 사회당에는 일체 알리지 않았다. 오자와는 연정내 최대 세력을 만들어 사회당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했다. 그러나 오자와의 전략은 일단 「큰 오산」이었다.사회당의 연정 이탈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것 같다.오자와는 용의주도하지만 이번에는 사회당의 대응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예상하고 너무 서둘렀다는 지적이 많다. 사회당의 탈퇴로 연립정부는 그 구성원이 바뀌고 소수내각으로 출범할 가능성이 높아 정권기반이 매우 불안정할 것으로 보인다.「하타정권」은 중의원이 2백여명 정도로 자민당의 2백6명보다도 적을 뿐 아니라 사회당(74)이 자민당과 손을 잡을 경우 아무것도 할수없게 된다.사회당은 예산편성까지는 책임있게 대응하겠다고 밝혀 예산안은 통과시켜 줄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대 과제인 소비세 인상등 세제개혁·북한핵문제대응등과 관련,하타정권은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이때문에 6월 예산안이 통과된후 국회를 해산,총선을 실시할 가능성도 있다.사회당과 자민당내에서도 국회를 해산하여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하타정권」은 이같이 출범부터 대파란을 겪고 있다.이러한 파란은 일본이 냉전후 국제환경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국가관을 둘러싼 갈등의 한단면이며 제2차 정계개편 움직임을 가속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 22년 「충남맨」… 2단계 파격승진/신임 박중배 충남지사

    ◎“지역 발전·지방행정 쇄신 앞장” 박중배신임충남도지사는 16일 『일선 자치단체가 안고 있는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는데 행정력을 모으는 한편 불합리한 관행이나 제도를 꾸준히 개선하는 변화와 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부임소감을 밝혔다. 「이사관(2급)에서 도백으로」 행운을 잡은 박지사는 전문행정관료답게 ▲지방행정구역개편 ▲광역행정 확대실시 ▲단체장선거준비등을 지방행정의 현안으로 꼬집어 냈다. 내부행정의 요직을 두루 거친 박신임지사는 공직생활 28년중 22년을 충남과 대전에서 보낸 「충남맨」. 이번 박지사의 임명은 내무부 국장자리에서 도백으로 나간게 지난 76년 손재식씨이래 18년만에 두번째라는 점에서도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박신임지사는 지난 66년 제5회 행정고시를 통해 공직사회에 첫발을 디뎠다.그후 정통내무관료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내무부와 지방의 주요 부서에서 일했지만 그의 공직경력은 고시동기는 물론 후배들보다 늘 두걸음이상 뒤지는 「늦깎이」였다. 고시 1기위인 행시 4회출신중에서 장관이 탄생했을때 박지사는 국장이었고 현직 시도지사중에는 까마득한 후배인 10회에서 3명,8회에서 각각 1명이 포진해 있을 정도이다. 「늦깎이」가 평소 굽히지 않는 소신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소신공직자의 대표로 꼽히는 박지사.그는 『이번 도지사임명을 공직생활의 마지막 기회로 삼아 지역발전과 지방행정의 새로운 풍토를 만들어 보겠다』고 체득한 행정관을 일선행정현장에서 실천해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지방기획국장으로 국회 정치특위에 정부측 책임자로 참여하면서 지방자치법 개정작업을 소신있게 추진해 최장관으로부터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는 소신있는 공직자』로 두터운 신임을 받은게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부인 김송자씨와의 사이에 1남1녀. ▲충남 태안출신(55) ▲중앙대 법대 ▲충남·대전감사실장 ▲충남 기획관리실장 ▲내무부감사관 ▲대전부시장 ▲충남부지사 ▲지방기획국장 ▲지방행정국장
  • 북이 대화 원하게 하라(사설)

    정부는 미·북한간 3단계회담에 앞서 남북한특사교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른바 「선특사교환」의 원칙을 무조건철회키로 했다.탈북벌목공들의 망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정과 함께 잘 내린 결단이라 생각한다.대북정책의 현실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변화다 선특사교환은 당초 북한의 제의였다.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자 북한은 터무니없는 새 조건들로 실무회담을 지연시키면서 미국과의 대화에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실무회담의 개최만으로 미국과의 3단계회담으로 가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그에 대한 대응이 선특사교환의 전제조건이었다.그러나 북한은 특사교환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그것을 핵사찰거부의 정당성 선전명분으로 악용하려는 경향까지 보였다. 결국 선특사교환조건의 효용성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됐으며 북핵해결지연의 엉뚱한 구실이 될 가능성마저 보였다.정부의 결정은 그러한 구실의 사전제거란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더욱이 이같은 양보로 북한은 핵사찰수용을 지연시킬 명분을 더욱 잃게 될 것이다.대북 핵사찰수용촉구의 새로운 압력도 될 것이다. 이번 결정을 놓고 일관성이 없다는 일부비판이 있을 수 있다.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어떤 정책이건 형식보다는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가 중요한 것이다.선특사교환조건의 궁극적 목표도 결국은 북핵투명성보장에 있는 것이었다.그러한 목적을 위한 효용성이 약해졌을뿐 아니라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는 판단이 섰다면 과감히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목적의 일관성을 지키는 태도일 것이다. 다만 선특사교환조건의 포기가 곧 3단계 미·북대화의 무조건적인 재개와 북핵문제에 대한 한국배제의 의미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미·북대화와 합의에는 한국의 동의가 전제가 되도록 철저한 한·미공조를 다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번 북탈벌목공 망명수용과 선특사교환조건철회는 적극적인 대북 강온양면정책의 동시추구를 통해 형식이나 명분에 구애되지 않고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의사표시라 할 수 있다.그동안 우리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생각만으로 너무 끌려다닌 것이 사실이다.그리고 결과는 불바다협박의 배신이었다.줄 것은 주는 동시에 챙길 것은 챙기고 할말도 하는 변화가 필요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북탈난민의 망명수용과 북한인권에 대한 우리의 적극적 관심은 백마디 말보다 효과적인 대북압력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개혁과 개방을 거부하고 핵을 고집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는 경고가 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북한이 스스로 한국과의 대화를 간청하게 만들 수단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K­TV 「추적 60분­충격프로…」를 보고(TV주평)

    ◎「선정적 측면」에 초점… 신뢰성 실추 지난 10일 시사다큐물의 간판격인 KBS­2TV 「추적 60분」에서는 방송시작과 동시에 1분30초동안 자막과 함께 이례적인 사과방송을 했다. 지난 3일 방송된 「충격르포­어른이 모르는 그들만의 세상」중 「지방 캠퍼스 계약동거 유행」이 관동대 학생,학부모,교수,학교 당국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한데 깊이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사과문에서는 「당초 기획의도는 지방 캠퍼스 학생들의 숙식 실태와 문화시설 등 전반적인 교육환경을 점검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나 취재도중 남녀 대학생들이 계약결혼이나 계약동거를 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례에 대한 제보를 받고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는 제작 배경도 밝혔다. 「충격르포…」는 서울에서 내려간 일부 지방대 남녀 대학생들의 동거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것을 폭로한 것이다.극히 일부 학생들의 계약동거를 마치 일반적인 것처럼 과장해 선정적인 면에 초점을 맞춘 점이라든가,주제가 무엇인지 모르게 짜깁기된 수준미달의 편집과 구성등 이 프로그램은 질책받아야 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가장 비난받아야 할 부분은 방송의 본질을 망각한채 제작됐다는 점이다.바로 내용의 「조작」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요 무대는 전교생의 80%가 외지 학생인 관동대였다.자취촌의 가게에서 같이 장을 보고 다세대 주택으로 함께 들어가는 남녀 대학생의 모습들이 비쳐졌고 이어 실제로 지난 해 11월부터 동거해 왔다는 남녀 대학생의 얼굴을 특수 영상처리해 인터뷰했다. 관동대 학생회측에 따르면 이들은 실제로 동거하지도 않고 있으며 더구나 여학생은 제작진이 데려온 인물이라는 주장이다. 사실과 다른 내용을 꾸며 불특정 다수에게 명예를 크게 훼손시킨 점은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다.학생들의 주장대로 내용 일부가 「조작」된 것이 사실이라면 담당 연출자뿐 아니라 그런 내용이 방송되도록 방치한 KBS측도 마땅히 책임을 져야한다. 공영방송임에도 연출자가 시청률을 지나치게 의식,선정적인 프로를 만들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첫째 잘못이고 자체 심의기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끼워맞춘것이 눈에 보이는 내용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내보낸 점도 묵과할수 없다.KBS는 방송의 생명인 신뢰도를 땅에 떨어뜨리고 시청자를 배신한 셈이다. 방송은 언제나 사려깊고 신중한 자세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물론 다른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 「사자」 캐릭터/완구·아동복시장서 “불티”

    ◎미 디즈니 만화영화 「라이언 킹」 7월 개봉 앞두고/미서 4백만불이상 주문 쇄도/「쥬라기공원」 공룡 인기는 시들 완구 및 아동복 시장에 「공룡시대」가 퇴조하고 「사자시대」가 다가온다. 미국의 디즈니 시리즈 만화영화 「라이온 킹」이 오는 7월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동시 개봉되는 것과 때를 맞춰 완구·아동복·가방 등에 사자의 캐릭터 제품 및 로고개발이 한창이다.국내 업체에도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미국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이 늘고 있다. 디즈니 캐랙터류의 수출에 주력하는 국내 C&H사는 『최근 미 디즈니 스토아들로부터 4백만달러의 사자로고 완구를 주문받아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는중』이라며 『지난 해 디즈니 영화 「알라딘」 로고 상품의 경우 1백만달러의 수출에 그쳤으나 올해에는 수주량이 4배나 된다』고 말했다. 국내 완구 업체에도 마찬가지이다.디즈니 한국지사는 『지난 해부터 국내 완구·아동복 업체들의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 라이선스 거래선을 선정하고 있다』며 『디즈니사가 몇년 전부터 이 영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빅 히트를 예상한다』고 전망했다. 완구·아동복 업체에서는 영화감독 중 귀재로 꼽히는 스필버그가 만든 「쥬라기공원」이 지난 해 대 히트를 치면서 공룡 그림과 무늬를 넣은 완구 및 유아복이 한국을 비롯,세계 시장의 40∼50%를 석권한 것으로 보고 있다.완구나 아동복업계의 흥망은 그 해 세계적으로 성공한 아동 만화나 영화에 좌우되는 사례가 많다. 영화 「라이온 킹」은 아기사자 심바가 삼촌인 하이애너로부터 배신을 당해 밀림의 권자에서 밀려난 뒤 천신만고 끝에 다시 왕좌를 찾는다는,사랑과 모험을 그린 휴먼스토리이다.
  • 독 콜총리 집권 12년 종막 예고/기민당 지방의회선거 참패 파장

    ◎통독후 경기침제 대응못해 국민들 반발/신선한 이미지 사민당에 기대… 변화 모색 오는 10월 독일총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풍향계로서 관심을 끌었던 13일의 니더작센주 주의회선거에서 집권기민당이 참패,독일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종집계 결과 기민당은 90년의 42%보다 크게 떨어진 36.4% 지지 획득에 그친 반면 제1야당인 사민당은 90년보다 조금 올라간 44.3%의 지지를 얻어 1백61석의 주의회의석중 절대과반수를 획득할수 있게 됐다.또 기민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은 의석획득 하한선인 5% 득표에 실패,의석을 얻지 못하게 됨으로써 콜총리의 인기하락으로 재집권 전망이 어두워진 기민당에 또다른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기민당의 참패는 통일에 걸었던 기대가 4년의 세월에도 불구,전혀 실현되지 않는데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 통일의 주역이었던 콜총리와 그가 이끄는 기민당에 대한 실망,그리고 집단반발로 이어진 결과라고 할수 있다.이같은 반발은 구동독지역에서 더욱 심해 기민당의 구동독지역 참패는일찍부터 점쳐져 왔다.그러나 기민당이 구서독지역인 니더작센주에서조차 지난 59년이래 최대의 참패를 당함으로써 통일을 실현한 「위대한 총리」에서 이제 온갖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한 콜총리에 대한 반발이 구서독에서도 거셈을 입증한 결과가 됐다. 콜의 인기하락은 통일후 독일을 강타한 경기침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그러나 구동독지역의 경제재건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투자등을 감안하면 현재 독일이 처한 경기침체는 사민당이 집권했더라도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기는 하다.그러나 집권 12년째에 접어든 콜총리 내각이 이미 오래전부터 경직성과 노쇠화를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사민당의 루돌프 샤르핑 당수가 비교적 신선한 이미지로 부각되면서 보수성향의 독일국민들 사이에 「이제 변화를 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분위기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것이 13일 니더작센 주의회선거에서 기민당을 참패시킨 요인이라는게 일반적 시각이다.
  • 홍 여인,검찰에 장문의 편지

    ◎원고지 20매 분량… 박철언씨에 대한 배신감 등 토로/재판자료로 법원제출 국민당의원 박철언피고인의 재판에 증인으로 신청됐으나 미국에 체류중인 홍성애씨(43·사진)가 지난 14일 검찰에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장문의 편지를 보내왔다. 홍씨는 서울지검 홍준표검사에게 보낸 원고지 20여장 분량의 편지를 통해 재판과정에 대한 불만과 법정에 출두하지 않는 이유,국교생인 아들과 함께 미국으로 떠난 배경등을 장황하게 설명했다. 미국 뉴저지에서 보내온 이 편지는 홍씨가 이 사건의 충격으로 신경쇠약증에 걸려 손이 마비되는 바람에 오빠 덕현씨가 대필했으며 편지끝의 서명만 홍씨가 직접 했다. 홍씨는 편지 곳곳에서 박피고인에 대한 배신감을 나타냈으며 특히 항소심 재판과정에서 변호인측 요청으로 예금계좌가 추적당하고 자신이 정치인 등 중요인사들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것처럼 보도된 것에 대해 극도의 불만을 표시했다. 한편 홍검사는 이 편지의 내용으로 보아 박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자료가 될 수 있다며 서울형사지법 항소2부(재판장 이흥복 부장판사)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홍씨가 자기 입장을 담당검사에게 해명한 사신에 불과하므로 참고자료로서 채택했을 뿐 증거로서의 효력은 없다』고 밝혔다.
  • 미,팀스피리트 준비령/WP지 보도/사찰시한 넘기면 1천병력 발진

    ◎북선 전면사찰 거부 재확인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방부는 북한핵협상이 실패로 끝날 가능성에 대비,이미 미본토의 일부 예비병력에 대해 팀스피리트훈련에 참가할 준비를 갖추도록 통보했다고 워싱턴포스트지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빈발 기사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가 열리는 오는 21∼22일이 사실상 북한핵사찰문제의 시한이나 마찬가지이며 이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그동안 「인내를 통한 외교적 해결방안」을 추구해오던 워싱턴의 기류가 바뀌어가면서 새로운 군사적 대비책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트지는 1천명이상의 미본토병력및 예비병력을 한국에 파견하는 내용의 팀스피리트훈련참가명령이 오는 22일에 대비한 것이라고 말해 북한이 그때까지 7개핵시설에 대한 전면사찰을 수용하지않을 경우 곧바로 팀스피리트훈련이 재개될 것임을 시사했다. 이 신문은 미관리들의 말을 인용,북한이 22일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을 경우 클린턴행정부는 패트리어트미사일의한국배치계획을 공식 발표할 것 같다고 전하고 미국방부는 북한의 연례 동계군사훈련이 최고조에 이르는 3월하순까지 패트리어트의 이동을 완료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제임스 울시 CIA국장은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비,▲미첩보위성에 대해 북한영토의 움직임을 더욱 추적토록 명령하는 추가 경계조치를 취하고 ▲군사정보를 기민하게 주한미군에 제공할수 있는 「국가정보지원팀」을 처음으로 가동했다고 이 신문이 전했다. ◎“미 고의적 배신” 【내외】 북한은 7일 미국이 순수담보의 연속성 보장을 위한 사찰약속을 뒤집고 전면사찰·특별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고의적인 배신행위』라고 주장하면서 북한은 『신의없는 자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이날 노동신문 논평을 통해 『순수담보의 연속성 보장을 위한 사찰은 핵확산금지조약(NPT)탈퇴효력을 일시 정지시킨 상태에 있는 우리의 특수한 지위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전면사찰을 요구하는 것은 『고의적으로 사태를 복잡하게 만들어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가로막으려는 행동으로 밖에 달리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미·북 접촉 주내 재개 【워싱턴=이경형특파원】 미국과 북한은 교착상태에 빠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북한간의 핵사찰협상을 타개하기 위해 빠르면 금주중에 뉴욕에서 비공식실무접촉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 미서 전면핵사찰 계속 요구땐 「NPT탈퇴유보」 철회

    ◎북외교부대변인 경고 【내외】 북한은 미국의 전면 핵사찰 요구가 지난해 12월29일의 미·북 합의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만약 미국측이 이를 계속 요구할 경우 NPT(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유보결정을 철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31일 내외통신에 따르면 북한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성명을 통해 『지난 연말 뉴욕에서의 미·북 실무접촉에서는 핵문제 타결을 위해 쌍방이 팀스피리트훈련 중지와 한정된 범위에서의 사찰수용 등에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측은 시한까지 정해 놓고 국제원자력기구가 제기한 전면사찰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는 대화 상대방에 대한 파렴치한 배신행위』라고 비난했다.
  • 중국삼(외언내언)

    인삼은 우리 선인들에게 오랫동안 신비의 영약이요,만병통치의 대명사였다.특히 산삼에 이르러서는 단순한 약초가 아니라 신앙의 대상이었다. 성인병·고혈압·항암제로서 인삼의 탁월한 효과는 약이적으로 입증된지 오래다.14가지 각기 다른 구조식을 가진 사포닌이 주성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인삼」은 일찍부터 민간에서 불로장생·만병통치의 보약으로 알려져왔다.중국인들은 우리나라를 진단이라 불렀는데 이는 「불로초」또는 「인삼의 나라」라는 뜻이라고 한다.중국에서도 고려인삼은 그만치 명성을 날렸다. 그런데 요즘은 중국에서 값싼 인삼이 대량 밀수입되어 어엿이 고려인삼행세를 하고 있다.지난 91년부터 93년9월까지 세관에 적발된 밀수중국인삼은 29t(시가 4억7천여만원어치)이나 된다. 중국산 인삼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농약이 많이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져 물의를 빚었다.지난해 담배인삼공사의 조사에는 PCNB라는 맹독성농약이 기준치의 1백69배나 검출된 일이 있다.이쯤되면 보약이 아니라 독약인 셈이다. 최근 소비자보호원에서시판중인 8개업체의 인삼농축액(에끼스)을 조사한 결과 담배인삼공사제품 2종을 제외하고 모두 농약이 잔류허용치를 훨씬 초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문제의 농약은 지난 79년 사용이 중지된 벤젠핵사클로이드(BHC). 고려인삼,특히 에끼스는 우리가 세계에 자랑하는 「한국의 얼굴」이다.「옥빛 하늘에서 건져낸/한 뿌리 맑은 고려의 정신」이라고 표현된 고려인삼에 대한 배신이요,모독이 아닐수 없다.같은 소비자보호원조사에서 중국산 홍삼·백삼 5종중 4종에서도 BHC가 다량 검출되었다. 그동안 우리인삼에서 볼수 없던 잔류농약이 에끼스에 나타나고 있음은 매우 수상쩍다.제품업자들이 값싼 중국산 밀수인삼을 원료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앞선다.
  • 1회용 의식구조가 더 문제다(박갑천칼럼)

    내가 이 샘물 다시 마시랴 하면서 침을 뱉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목이 말라 그물을 마신다는 말이 있다.그는 그물을 마시면서도 전에 침뱉은 일을 잊은 듯이 사뭇 태연하다.이게 바로 「논어」(논어:헌문편)에 보이는 대언불참이다.말로 떠들어놓고 실천하지 못하면서도 부끄러운지조차 모른다는 뜻이다.한번 보는 것으로써 끝이며 다시는 보지 않을 듯이 구는 얄팍한 심보아닌가. 이게 1회용 의식구조의 본보기이다.이 1회용 의식구조는 물론 옛날에도 있었다.하지만 오늘날에는 1회용품의 사용이 확대되면서 더욱 더 번져나는 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멀쩡한 물건을 한번 쓰고 버리는 사이 의식구조도 차츰 1회용으로 굳어져 간것 아닌가 싶다는 말이다.사람들은 그렇게 귀접스러워져 간다.이악스러워져 간다.낯두꺼워져 간다. 일제시대를 거쳐 6·25등 어려운 시대를 살아나온 세대들은 한번 쓰고 버리는 숱한 1회용품들이 그렇게 아까울수 없다.기계에서 빼내어 마시고난 커피 종이컵하며 면도기·칫솔등이 다 그렇다.그걸 버리면 꼭 천벌을 받을 것만 같다.그의 눈앞에는 떨어뜨린 밥알도 주워먹으라시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어른거린다.『집안을 일으킬 아이는 똥오줌 아끼기를 금과 같이 하고 집안을 망쳐놓는 아이는 돈을 똥처럼 천하게 없앤다』고 하는,어린날 읽은 「명심보감」(명심보감:성심편)의 글귀도 떠오른다. 그같은 세대들로서는 1회용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자녀들의 낭비생활에 기가 막힌다.화장실 휴지는 뭣때문에 그리 둘둘 말아서 듬뿍 쓰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뭣이건 먹다가 싫으면 버려버린다.전기를 켜놓은채 외출하는가 하면 라디오·텔레비전도 켜놓은채 잠들어 버린다.아무리 일러도 우이독경이다.아낄 줄을 모르는 것이다. 생각하자면 일을 용두사미로 만드는 것도 앞서 말한 대언불참과 다를바 없다.그 또한 1회용 의식구조의 산물이다.제가 한말을 까맣게 잊어버리는 경우나 의식적으로 잊어버린 체하고 뒤엎는 식언 또한 1회용 의식구조에서 출발되는 악덕이다.그 1회용 의식구조 속에는 배신도 있고 사기도 있다.우리사회의 모든 허위가 이 1회용 의식구조라는 판도라의 상자 속에서 탄생한다.「두번 다시 보랴」하는 1회용 사고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보사부는 음식점·목욕탕등 각급 위생업소에서의 1회용품 사용을 오는 10월부터 전면 금지할 것으로 알려진다.그럴 때는 위생문제에 대한 감시의 눈길이 더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1회용품은 그렇다 치자.1회용 의식구조는 금령으로 없어질 것도 아니잖은가.
  • “발암물질을 마셨다니…”/부산·경남주민

    ◎악취소동 이은 충격에 경악·분노/환경단체,수도료 거부운동 조짐/솔직한 발표에 “용기있는 행동” 【부산·창원·대구=이기철·강원식·남윤호기자】 1천만 부산·경남주민들의 식수원인 낙동강에 벤젠·톨루엔등 발암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박윤흔환경처장관의 공식발표가 있자 부산·경남 주민들은 경악과 분노를 금치못하는등 커다란 충격에 빠져있으며 수돗물에 대한 불안과 불신분위기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주민들은 그동안 수돗물이 안전하다는 당국의 발표는 국민들을 우롱한 처사였음이 드러났다고 배신감을 나타내며 오염관계자들에 대한 엄중문책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이와함께 주민들은 이제까지 정부가 지방주민들을 위한 수자원보호에 소홀히 다루어 왔음을 이번 기회에 반성하고 항구적인 근본대책을 세워 곧바로 시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환경운동단체들은 자체조사를 실시한뒤 당국의 중대과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계해 수도요금납부 거부운동등을 펼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낙동강 오염파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될 조짐이다. 부산·경남 환경운동연합 구자상사무국장(36)은 『수돗물에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주부 김미선씨(43·창원시 명서동 미니아파트)는 『수돗물을 식수로 사용해 왔으나 이번 식수파동뒤 생수를 구입,사용하고 있다』면서 수돗물에 발암물질이 들어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 박청길부산수산대교수(53·환경공학)는 『지난 91년 3월 발생한 「페놀사태」때 정부당국이 발표한 대책이 그동안 하나도 이뤄지지 않아 이러한 수돗물사고가 다시 일어났다』고 말했다. 낙동강환경연구소(대구시 남구 대명동)이사장 정석교씨(41)는 『상수원인 낙동강에 벤젠 등의 발암물질을 유출시켰다는 것은 간접적인 대중 학살』이라면서 『사건 발생 열흘이 지난 이제야 이같은 사실이 밝혀졌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말했다. 회사원 정상철씨(38·부산시 중구 영주동)는 『수돗물에대한 불신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발암물질이 함유돼 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이라면서 『그러나 숨기지 않고 신속하게 발표한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라면서 문민정부에 대한 신뢰감을 피력했다. 주민들의 이같은 경악과 분노가 계속되는 가운데 부산시 경남도와 창원·마산시·경북도와 대구시 및 환경청등 관계기관에는 이날 하오부터 발암물질 검출에 대한 주민들의 항의와 문의전화가 잇따랐다.
  • 전·노씨 밝은 표정…흉금 털날 멀지 않다/오찬회동이후 연희동 기류

    ◎계기 성숙… 전씨도 긍정적 반응/노씨 방문형식으로 앙금 풀듯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의 화해가 임박한 듯한 분위기이다.10일 낮 김영삼대통령의 주선으로 마련된 전·현직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은 그 가능성을 진하게 예고하고 있다.전·노 두 전직대통령이 단둘이 마주 앉아 흉금을 터 놓고 묵은 감정을 털어버릴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양측 인사들은 물론 정가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현재로선 화해의 고리를 풀 수 있는 당사자는 전전대통령이다.그는 노전대통령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하고 있다.친구의 「은공」을 「백담사」로 갚았다고 여겨왔다.노전대통령은 불가피했던 상황을 내세우면서도 사과할 의사를 여러차례 비쳐왔다.한마디로 화해가 이루어 지려면 전대통령이 노전대통령의 사과를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다. 전전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연희동 자택으로 돌아와 기자들에게 이례적으로 직접 회동 내용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여러가지로 언급했다.전전대통령은 노전대통령과의 화해 얘기가 나왔느냐는 질문에『김대통령이 회동 마지막에 두분이 화해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고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고 스스럼 없이 밝혔다.그는 언제쯤 화해할 것이냐는 물음에 『그 사람(노전대통령)이 잘못한 것도 없고…』라면서 『대통령까지 지낸 사람이 화해할 것이 있나.오늘 분위기가 좋았는데 이렇게 자주 만나면 화해가 되는거지』라고 「구원」에는 얽매이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노전대통령의 표정도 무척 밝았다.그는 그러나 말을 아꼈다.청와대 회동 내용에 대해서는 측근 인사를 통해 짤막하게 전하도록 했다.이 측근은 전전대통령과의 화해 가능성에 대해서도 『내가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피했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의 또 다른 측근 인사는 『지난 연말 이쪽에서 찾아뵙겠다는 뜻을 전했으나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노전대통령이 전전대통령을 찾아 가 사과하겠다는 의사를 전했으나 전전대통령이 거절한 셈이다. 그대신 전전대통령은 정초 세배객들에게 노전대통령에 대한 섭섭한 심정을 여과없이 털어놓았다.노전대통령이 너무 심하다고 할만한 말도 거의 공개적으로 했다.『마누라 보다 더 아꼈던 사람이 배신했다면 보고 싶은 사람이 있겠느냐』『그 사람은 대통령이 되더니 완전히 달라지더라.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옛날엔 안 그랬는데…』등의 말을 여러사람에게 반복했다. 노전대통령측은 이에 대해 일체 반응을 삼갔다.당연히 할 소리를 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여겨질 정도였다.다만 한 측근 인사는 전전대통령이 새해들어 의도적으로 많은 말을 하는 것 같다고만 조심스럽게 말했다.전전대통령이 우회적으로 노전대통령에 대해 한풀이를 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시각인 것이다. 일단 전대통령이 마음속 앙금만 풀면 문제는 간단해 진다.이날 청와대 회동으로 분위기는 상당히 무르익기 시작했다고 양측이 생각하고 있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더군다나 김대통령도 이날 두사람의 화해를 권유했다.새정부 출범이후 양측이 화해의사가 있으면서도 일반의 시선을 의식해 시기를 늦춰 온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확실한 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해 온 것이다. 화해는 노전대통령이 전전대통령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전전대통령이 언젠가 언급한 것처럼 오랜 친구가 술 한병을 들고 찾아가면 「5·6공」간의 감정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 “평양은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밖에서 본 한반도정세/러시아시각

    ◎최악 경제·사회여건속 도처에 붕괴징후/핵카드로 대서방 접근… 체제유지 “안간힘”/통일한국은 5∼7년 과도기 거쳐 안정권 진입 수십년간 북한정권은 공산주의의 위대한 성공을 선전해 왔다.그런데 최근들어 이 선전의 톤이 다소 누그러졌다.경제난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고 북한당국도 이를 더 이상 감출수 없는 지경이 됐다.단적으로 말해 북한경제는 바닥에 다다랐다.93년도 산업생산량은 또 다시 10% 감소됐고 석유,전기는 공장의 75%가 가동을 중단할 정도로 심각하다.만성적인 비료부족에 일기불순까지 겹쳐 기초농업품 생산량도 극도로 떨어졌다. ○이념의 고삐 “느슨” 사회적 여건도 최악이다.모든 소비재가 배급제이고 그 양도 극소이고 일반시민의 경우 사치품은 구경하기 힘들다.반면 간부층의 사치는 여전해 사회계층간 위화감이 점차 커지고 있다.특권층과 서민,군과 민,평양거주자와 지방주민간의 위화감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반면 이념의 고삐는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당이 선전하는 공산주의 도그마와 현실의 괴리 때문에 국민들은 이제 당의 선전을 곧이 곧대로 믿기 힘들게 됐다.이런 여러 국내여건들은 외부세계에서 들어오는 정보들과 함께 북한정권의 벽을 조금씩 잠식하고 주민들의 불만과 좌절감을 점차 키워가고 있다.특히 젊은층과 지식인층은 심각한 회의에 빠져들고 있다.정부가 주민에 대한 이데올로기 통제력을 상실해가고 있다는 징후들이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김일성 부자의 권력토대도 이전과 같이 견고하지가 못한 것 같다.엘리트간부들은 김정일을 「위대한 지도자」로 인정하려들지 않고있다.그의 별로 화려하지 않은 경력,개인성격에 대한 불만들 때문이다.개혁에 대한 필요성을 역설하는 관리들의 수가 늘고 있다.이들은 국가의 상황이 위기수준에 이르렀다고 보고 기회만 되면 개혁을 시작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김일성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 역시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북한은 이제 정치적,이념적으로 기댈 곳은 중국 밖에 없게 됐다.하지만 중국의 지원 역시 전폭적이지 못하고 여러 조건들이 달려있다.남한을 침공한다든가 핵무기개발 같은 군사적 모험주의에 대해서는 전세계가 반대한다. 이같은 상황하에서 북한정권은 개방쪽을 택하기 보다 오히려 권위주의,공포정치를 강화하고 있다.그나마 산업,농업분야에서 생산이 이루어지는 것은 주민들에 대한 강압정책 탓이다.주민들의 노동여건은 현대국가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하다.하지만 빈곤계층의 불만과 사회적 소요의 징후는 가차없이 억압되고 반정부 세력이 형성될 길은 철저히 막혀있다.설사 반대집단이 만들어진다 해도 지도부에 대적할 길은 없다.군대와 보안부의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시아에 마지막 남은 이 스탈린식 독재정권의 앞날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현재 러시아학계와 기타 북한을 연구하는 국제학술계에서는 국제정치의 일반적인 잣대로 북한을 예측할수 없다고 믿는 학자들이 있다.북한은 나름대로 독특한 역사를 갖고있고 당분간 그 독특한 방식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필자는 이같은 가설에 동의하지 않는다.최근 수년간 이루어진 동구 공산정권의 변화와 몰락은 세계사의 도도한 흐름이다.그 흐름이 북한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헝가리·몽고·러시아·아르메니아·폴란드·세르비아인들은 역사·문화·기질등 모든 면에서 다른 민족들이지만 그들이 유지해온 공산정권은 같은 흥망성쇄의 길을 걸었다. ○중과 러에 배신감 북한의 경우 김일성이 죽기 전에 정치적으로 큰 변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억압적인 체제가 구축돼있기 때문에 엘리트그룹은 물론 일반국민들 사이에서 그에 대한 도전은 감히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김일성 자신은 지금껏 해온 방식 때문에,그리고 결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현 경제·정치질서에 대한 변혁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다.다만 외교적으로 그는 미국등 서방국의 지지를 받고 싶어할 것이다.그는 자신의 정권유지를 위해,그리고 경제지원을 얻기 위해 서방의 지원을 필요로 한다.그리고 자기를 「배반한」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서방에 접근하려고 한다. 그러는 한편 북한은 핵문제 같은 중대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강경한 자세를 고수할 것이다.김일성은 적대국들에 대한 위협용으로 핵카드를 필요로 한다.핵카드는 내부통제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그는 핵카드가 미국을 협상테이블로 끌어내 북한을 승인토록 하는데 유용하다는 계산을 하고있다. 단언하건대 김일성 생존시 북한정권의 행동양식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사후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본다.우선 권력투쟁이 벌어질 것이다.지도부에서 개인적으로 혹은 그의 정책노선에 대해 김정일에게 호감을 갖지 않는 인사들은 그를 밀어내기 위한 노력을 시도할 것이다.김정일로서는 이러한 도전에 살아남을지라도 각분야의 다각적인 압력으로 일단 변화를 시도할 것이다.변화에 대한 압력은 정부내에서,국민들로부터,그리고 외부세계로부터 가해질 것이다.다른 공산국가의 예에서 볼수있듯이 지도부자체에서 특히 강력하고 중요한 변혁욕구가 제기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객관적·주관적인 제요인들이 김정일에게 변화를 요구할 것이다.만약 그가 권력을 지킨다면 이 변화는 다소 느리게 진행될 것이고 그가 물러난다면 변화는 훨씬 빠르게 진행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김정일외에는 이러한 변화에 저항할 인물이 없다.어쨌든 김일성 사후 변화는 불가피하다.그리고 경제개혁,외부세계로의 개방등 이미 다른 공산국가들의 경우에서 목격한 유사한 사태가 북한에서도 벌어질 것이다. ○공포정치 더 강화 주민들에 대한 통제체제가 이완되고 정권의 권위가 떨어질 것이다.그리고는 범죄율의 급격한 증가,부패,타락현상이 전사회를 휩쓸게 된다.체제반대 세력이 늘어나며 지도부에 대한 공개적인 비난이 가해지고 지방각지에서부터 경제·사회적 불만에서 야기된 시위,폭동이 확산된다.아울러 지도부내에서는 권력투쟁과 노선투쟁이 첨예화 된다. 북한사회의 변화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면 남한은 자동적으로 여기에 개입되지 않을수 없다.남북한 양쪽에서 휴전선을 통한 왕래가 시작될 것이고 북한정부,사회단체 등에서 남한정부에 대해 원조요청이 잇따를 것이다.남한사회가 이를 끝까지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다.그 결과 사태는 보다 복잡하게 진행된다.우선 북한지도부가 무력으로 더 이상의 변화를 막으려 시도할수 있다.하지만 한번시작된 변화는 무력으로도 막기 어렵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이다.중국의 지원도 이를 막지는 못할 것이다.중국이 그런 일을 해줄지도 의문이지만.시간이 문제지 북한공산정권은 결국 무너지게 돼있다. ○권력투쟁 불보듯 그 다음 시작될 한국의 새역사는 보다 고통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수십년간 상이한 이념·정치·사회·경제적 여건하에 살아온 남북한의 통합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수백만에 달하는 북한공산주의자들과 그의 가족들에게 새출발할수 있는 기회가 부여돼야 하고 경쟁을 원리로 하는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할 준비가 안된 일반북한주민들은 통일국가에서 또 다른 불만을 겪게될 것이다.일부는 과거 김일성체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되살릴 것이다.북한경제에 대한 부담으로 남한은 물질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고 남한주민들 사이에도 이에 대한 불만이 일시 고조될 것이다. 통일한구구이 완전히 안정돼 경제·사회적 발전을 향해 다시 궤도를 잡기까지 이러한 과도기는 5∼7년 정도 지속될 것으로 본다. 이 과도기를 어떻게현명하게 넘기느냐는 문제는 전적으로 한국민들의 지혜에 달려있다. ▷약력◁ ▲모스크바 국제관계대졸업 ▲러시아 동방학연구소 정치학박사.현선임연구원 ▲주요저서:「북한의 대외경제」「한국과 러시아」「기로에 선 북한경제」
  • 갑오경장 1백주년… 그 개혁운동 재평가와 역사적 교훈

    올해는 갑오경장 1백주년을 맞는 해다.갑오경장은 1894년7월부터 1896년2월까지 약 1년반동안 지속된 제도개혁운동이었다.이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구시대의 질서에서 신시대의 질서로 편입되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지난해 새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또다른 개혁의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왔다.1백년만에 다시 변혁의 기회를 맞이한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갑오경장이 제도의 변혁이었다면 지금은 당시의 엄청난 변화에 비견될 의식의 개혁이다.올해는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수 있는 중요한 시점.「외세에 의존한 정권탈취 및 유지책」이라는 시각에서 「기반이 확보될 때까지 시한부로 일본의 후원을 기대한 자율적인 개혁운동」으로 재정립된 갑오경장을 재조명하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역사적 교훈을 찾아본다. ◎재평가 작업/민중지지 못얻은 미완의 제도개혁/농민 염원 수용… 국정에 새바람/민주·자립 등 근대적 이념 표명/“일제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추진으로 실패” 갑오경장은 조선조를거치며 쌓인 민중들의 원성이 1894년 동학농민봉기로 나타나자 새로 들어선 정권이 그 불만을 아우르기 위해 시도한 제도개혁운동이었다.그로부터 1백년뒤,제3공화국 이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문민정부의 등장을 가져오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갑오개혁의 주체들은 일본이라는 외세의 무력의 도움을 받아 집권했고 「잠정적」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그들의 지원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여기에 갑오경장 주역들의 「개혁은 곧 서구화 내지 일본화」라는 소신은 그것이 비록 역사적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갑오경장이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또 갑오경장이 그동안 그 역사적 비중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해왔던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혁명적 이상추구 그러나 갑오경장이 재평가되고 있는 시점에서 되돌아 본 갑오개혁파의 개혁정책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이상의 변혁을 추구했음을 알수있게 해준다. 갑오경장을 주도한 개화파 관료들은 집권하자마자 외무아문을 신설해 근대적 자주외교를 펼칠 준비를 갖추었다.이어 국호를 대조선제국으로,국왕을 대조선황제로 부르고 1896년부터 건양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채택해 국가적 자주 독립을 내세웠다. 이들은 민주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몇가지 참신한 정치제도개혁도 실시했다.개혁추진의 핵심인 군국기무처를 입법·자문기관인 「의사부」로 만들어 행정부에 대치시키는 의회설립안을 만들었던 것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또 조선협회라는 일종의 정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지방제도 일원화 이들은 8도·5유수부로 대표되는 종래의 지방행정체제도 23부·3백37군으로 개편했다.지방제도를 일원화함으로써 행정의 합리화를 기함과 동시에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해 근대관료적 색채가 농후해졌다.또 「향회조규」와 「향약변무규정」을 발포해 초보적인 지방자치제를 실시코자 했다. 경제분야에도 힘을 기울였다.개혁파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재정정리와 민간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근대적 자립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은 경인철도 건설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외에 왕실재정을 정리해 정부수입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세수의 결손을 줄이며 민간상공업을 진흥한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능력본위의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개화파의 사회개혁 의지도 중요한 대목이다.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사민동등지법」을 확립해 전통적 신분제도의 철폐에 착수했다.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같은 양반에서도 문반과 무반의 차별을 없앴다.공사노비를 풀어주고 인신매매를 금했으며 역정 광대 백정도 모두 면천케 했다.이밖에 죄인에 대한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하고 너무 이른 결혼과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등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해외유학 적극적 개화파는 과거제도 중심의 교육제도가 조선을 쇠퇴케 한 근본원인이라 생각해 합리성과 실용 위주로 교육제도를 개선코자 했다.이에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본국문,즉 한글의 사용을 장려해 정부의 공문과 관보도 국한문 혼용체나 순한글로 쓰도록 했다.또 적극적인 유학정책을 펴 1895년에는 약2백명을 국비로 도쿄에 유학시켰고 미국인 선교사가 경영하는 배재학당에 2백명의 관비장학생을 입학시켜 신학문을 배우게 할 계획도 마련했었다. 갑오개화파의 이 모든 정책 대부분은 물론 일본과 관련한 부정적인 해석이 있어왔다.또 대부분이 민중의 의사를 도외시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대항해 온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시각의 존재가 필요해졌다.권위주의 시대에 역사에서 필요한 교훈이 한방향으로 귀결되었다면 문민시대에 필요한 역사적 교훈은 다양하기 때문이다.갑오경장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개혁의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또 갑오경장을 일방적인 예속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은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대목이다. ◎발단·경과/대원군추대,친일내각 수립/20개월간 전반적 혁신 단행 민씨정권은 1884년 갑신정변을 수습하고 나름대로 서구의 기술을 도입하는등 근대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열강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다.또 지배층 위주의 개혁이었기에 농민층과의 충돌은 불기피했다.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자력진압이 불가능한 민씨정권은 청에 응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농민군의 요구를 일정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협상을 시도했다.그러나 민씨정권의 요청에 따라 청군이 아산만에 들어오자 일본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곧 이어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민씨정권은 청·일양군공동철병론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조선의 개혁에 대한 청·일공동지도론을 제의했다.이에 청이 내정간섭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침략을 위한 독자적인 개혁의 원칙을 제시했다. 민씨정권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농민군의 폐정개혁요구를 반영하는 선에서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 했으나 일본은 7월23일 경복궁을 기습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대원군을 추대했다.이어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계와 중립계로 정부를 개편했다. 1894년7월에서 1896년2월에 이르는 갑오경장기간 정계에서 부침하던 정파는 다섯 그룹으로 대별된다.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등 갑오경장파와 박영효 서광범등 갑신정변파,박정양 이완용 윤치호등 미국·러시아등 외국공관을 배경으로 하던 정동파,대원군 이준용 이태용등 대원군파,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둘러싼 홍계훈 이도철 이학균등 궁정파등이었다. 이 가운데 갑오경장 전기간에 걸쳐 가장 오래 정권을 장악하고,따라서 개혁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세력은 갑오경장파였다. 이들은 처음에 대원군파와의 제휴로 집권해 제1개혁기(1894년7월27일∼12월17일)에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을 주도했다.이어 제2개혁기(12월17일∼1895년5월21일)에는 갑신정변파와 연립내각을 구성해 공동으로 개혁을 추진했다.제3개혁기(5월31일∼7월6일)에 갑오파는 갑신파와의 알력으로 김홍집과 조희연이 내각에서 사퇴했지만 다른 멤버는 남아 박영효가 주도하는 개혁에 동참했다.갑오파는 제4개혁기(7월6일∼8월28일)와 제5개혁기에는 정동파와 궁정파의 합세로거세될 위기를 맞았으나 제6개혁기(10월8일∼1896년2월11일)에 궁정파가 실권하자 다시 득세,집권하여 개혁운동을 재개했다. 갑오경장은 그러나 과격한 개혁조치에 불만을 품어오던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대일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사이 1896년2월에 러시아공사관으로의 망명(아관파천)으로 개혁정권이 붕괴되고 친러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민의따른 개력이 최상의 통치”/폭넓은 지지속 군사·재정 뒷받침 필수/“외세의존땐 성공 못한다” 역사의 명제 갑오경장이란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 1894년에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던 획기적인 근대화운동을 뜻한다.이 개혁운동을 통해 종래의 중국적인 우리나라 통치·행정구조 및 외교·재정·군사·경찰·사법제도 등이 일본 내지 서구식으로 크게 바뀌었다. 갑오경장때 추진된 일련의 「혁명적」개혁조치는 그후 많은 수정을 거치면서도 보존되어 오늘날 한국 사회 및 문화의 일각을 이루고 있다. 갑오경장은 1894년 봄의 제1차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서울에 불법적으로 침략해온 일본군이 7월23일 경복궁을 강점한 상황하에서 개시되었다.이때 (흥선)대원군을 받든 일군의 친일개혁관료들이 신정부를 구성하고 군국기무처라는 초정부적 입법기구를 만들어 그 곳에서 2백여개의 개혁안을 심의,채택함으로써 역사적인 「대경장」의 막을 올렸던 것이다. 이 개혁운동에는 처음부터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였다.즉,갑오경장에는 「타율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갑오경장을 전적으로 일본의 지도와 후원에 힘입은 개혁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혁운동 초반에 개혁을 주도했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 유길준등 20여명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1880년대 초반에 외교사절단원 혹은 유학생으로서 일본·청국·미국 등에 건너가 세계정세를 파악하고,특히 명치일본의 「문명개화」운동과 청국의 양무운동 등을 조사,연구한 끝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개화,자강의 방안을 고안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던,나름대로 애국심이 강한 개명관료들이었다.그들은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치면서 청국이 종주권을 내세워 대한간섭을 강화하자 정치적으로 실세하여 국내외에서 망명내지 유배생활을 강요당하가나 정부요직에서 소외당하였다.따라서 그들은 반청·독립사상이 강한 반면에 친일적 성향을 띠었으며 또 친청보수세력인 민씨척주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대원군에게 호의적인 세력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개화·자강정책을 연구·실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개혁을 스스로 추진할 능력과 의욕이 있었다.과연 초기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대원군의 지도하에 동학농민군이 요구한 폐정개혁안을 수렴하면서 제도개혁을 거의 완전히 자율적으로 추진했다.갑오경장 중반에 내각 대신 혹은 협판으로서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던 박영효·서광범·윤치호 등은 갑신정변(1884)때 자신들이 겪은 일본정부의 배신을 귀감으로 삼되 미국·일본에서의 망명생활,유학에서 스스로 터득한 개혁사상을 기초로 자율적 개혁추진을 도모했다.이러한 점에서 갑오경장은 조선인 개화파 관료들의 「자율적」 개혁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조선의 개혁관료들은 우선 국민 상하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데 필요한 위신이 부족한 데다,자기들의 권력을 뒷받침해 줄 독자적인 군사력과 개혁의 실현에 필요한 자긍력이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일본의 후원 내지 지원을 받으려 하였다.결국 이러한 그들의 대일본 의존정략이 갑오경장을 중도반계의 실패작으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갑오경장은 왕조의 유신과 중흥을 도모했던 조선왕조 최후의 개혁운동이었다.이 운동에서 원래 기대되었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중흥되었을 것이고,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적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근원적으로 따져 볼 때,갑오경장은 오랫동안 축적된 조선민중들의 불만이 동학농민봉기라는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다음 정부가 서둘러서 개시한 개혁운동이다.만약 조선정부가 민중들의 불만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적시에 필요한 개혁을 축적해 나갔더라면 외세의 간섭도 면하고 또 갑오경장 같은진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집권자가 국민들의 요망을 미리 미리 알아차려 시의적절하게 작은 규모의 개혁들을 하나 하나 펼쳐나가는 것이 최상의 국가경영 철학임을 깨닫게 된다.이것이 갑오경장에서 우리가 얻는 최대의 역사적 교훈이다.아울러서 우리는 개혁사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을 뒷받침해 줄 튼튼한 군사력과 재정이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하며,나아가 민중을 도외시한 외세의존적인 개혁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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