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배신
    2026-06-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475
  • [新 여소야대] (1) 격랑 정국 어디로

    임동원(林東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3일 국회본회의에서 가결됨에 따라 향후 정국엔 격랑(激浪)이 몰아칠 것으로 예측된다. 실질적인 여소야대(與小野大)로 정치판이 재편되면서 여야관계의 본질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며, 지금까지 여권 정국운용의 큰 틀이었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자민련 김종필(金鍾泌·JP)명예총재의 ‘DJP 공조’에도 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여권이 국정운용의 원활화,그리고 대선구도의 정비를 위해 ‘보수 대 진보’로의 정계재편을 시도할지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다. ■여야 관계= 김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그리고 JP 등 여야 수뇌의 선택이 주요 변수지만 여야는 당분간 냉각기에 돌입,치열한 물밑 수싸움을 벌일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지방선거·대통령선거라는 내년의 큰 정치일정을 앞두고 김 대통령과 JP,이회창 총재의 운신의 폭이 크지않다는 점 때문이다. 실제 해임안 가결은 이 총재의 승리지만,제1당 총재로서의‘책임’도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졌기 때문에 여권을 강경일변도로 밀어부치기엔 부담스러울 것 같다.한나라당에서나오는 여야영수회담 수용 건의를 이 총재가 어떻게 받아들일 지도 현실적인 관심사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관계는 매우 유동적일 것 같다.이 총재와 JP가 보수층과 충청지역을 놓고 경쟁관계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해임안 공조로 상징되는 ‘한·자동맹’ 형성은 쉽지않을 것같다.JP와 자민련은 힘은 과시했으나 통치권자의 역린(逆鱗)을 자극하는 ‘결정적 카드’를 써버려 향후 여권의 정국구상에 이끌려다닐 수도 있다. ■DJP 공조와 정계재편= DJP 공조관계는 중대한 기로에 섰다.외형적으론 공조는 와해 위기다.여권 인사들은 이날 가결뒤 ‘배신’‘농락’이란 표현으로 자민련을 맹비난했다.“불편한 공조는 끝났다”는 격앙된 분위기로 돌변한 것이다. 자민련으로 이적했던 배기선(裵基善) 의원 등 4명이 가결직후 탈당을 선언한 것도 이같은 강경기류를 감지케 한다. 자민련 몫 각료들의 사의 시사 등 당장 공조가 깨질 분위기가 강한 것이다. 이로 볼 때 김 대통령의 결단 여하에 따라선 DJP 공조가급격히 붕괴된뒤 80년대말 여소야대 정국이 지속되다,민정·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이 이뤄졌던 식의 대규모 정계개편이 뒤따를 가능성도 없지 않다. 다만 여야 모두 해임안 가결이란 ‘30년만의 사태’에 대한 입장정리가 필요하고,급격한 변화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있는 게 변수다.이 경우도 보수 대 진보로의 정국재편을 압박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받을 것 같다. 이춘규기자 taein@. ■임동원장관은 누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DJP공조 붕괴를 감수하면서까지지키려고 한 임동원(林東源) 통일부장관은 ‘국민의 정부'가추진해온 ‘햇볕정책'의 상징인물이다. 김 대통령은 94년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임 장관을 삼고초려끝에 초빙,95년 아태평화재단 사무총장을 맡겨 ‘3단계 통일론’을 완성토록 했다.그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국가정보원장,두차례의 통일부 장관을 거치며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이끌었다.이 과정에서 북한의 대포동미사일 발사, 서해교전 등 역풍을 슬기롭게 극복하며 대북포용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왔다.특히 지난해 6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의 두차례 정상회담에 배석하는 등 6·15공동선언 탄생 과정에 깊이 참여했다.임 장관은 물러나더라도 현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조율과정에 적극 참여할 전망이다.이에 따라 대통령의 외교안보 특보를 맡을 것이라는관측도 나돈다. 진경호기자 jade@
  • [사설] 여전히 새나가는 국민성금

    감사원이 최근 국정감사 자료로 내놓은 국민성금 관리 실태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어 한숨만 나올 따름이다.백혈병등 난치병을 앓는 어린이들의 진료비로 지원해 준 돈을 관련 민간단체가 운영경비와 회장 개인의 생활비로 쓰는가하면,산불 피해를 복구하라고 국민이 거둔 성금 17억여원가운데 16억원 가까운 돈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해수욕장개발비 등 다른 사업에 멋대로 전용했다고 한다.아울러 민간단체가 성금을 빼돌려 쓴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사실까지 적발됐으니 국민의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국민성금이란 수재·화재·가뭄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때,대형사고로 희생자가 많이 생겼을 때,결식아동이나 난치병 어린이의 경우처럼 사회가 미처 제도적으로 해결책을갖추지 못했을 때 국민 개개인이 주머닛돈을 털어 힘을 모으는, 그야말로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의지가 담긴 소중한돈이다.구체적으로는 주부가 반찬 가짓수를 줄여서,어린이가 저금통을 깨어 내놓은 한푼 두푼이 모인 것이다. 그런국민의 귀중한 뜻이 지자체나 관련 민간단체의운영 과정에서 훼손된다니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더군다나이같은 성금 유출 현상이 어제오늘 생긴 것도 아니고 고질병처럼 이어져 온 일인데 여태껏 고쳐지지 않았으니 행정당국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각종 성금을 모으기가 예전같지 않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이를 두고 그만큼 인심이 각박해졌기 때문이라고들 풀이한다.그러나 우리는 그 까닭을 단순히 ‘이웃에 대한 정’이 사라진 데 있지만은 않다고 본다.이번 감사원 자료에서 보듯 국민성금 유용이 계속되는 데다,지난달 31일 공개된 사회복지 공동모금회의 결산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국민성금이 해마다 수백억원씩 통장에서잠자고 있다니 국민 누구라서 기꺼이 쌈짓돈을 꺼내들고성금 접수처를 찾겠는가. 앞으로는 국민성금을 걷고 집행하는 전과정을 투명하게공개해 일말의 의혹이라도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공신력 있는 시민·사회단체의 회원 등 시민대표를 그 집행 과정에 동참시켜 감시하게 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되리라고 여겨진다.아울러 이를 지휘·감독하는 기관에는 더욱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성금운영 과정에서 비리가 드러난 단체에는 형사책임과 함께성금 사용 자격을 박탈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 北·中 혈맹관계 9년만에 복원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중단됐던 두 나라 정상들이 상호 교환방문함으로써 그동안 냉각됐던 북·중관계를 이전의 혈맹관계로 올려 놓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원만하던 북·중관계는 92년 한·중 수교 이후 급랭했다. 옛 소련의 붕괴로 북한의 ‘가치’를 높여주던 중·소 경쟁관계가 종언을 고함과 함께 중국이 북한에 실용주의정책을 추구하면서 한·중 수교가 이뤄진 것.한·소 수교로 고립감에 빠져 있던 북한은 한·중 수교가 이뤄지자 중국에배신감을 느껴 정상간의 상호방문을 중단,양국관계가 ‘견원지간’으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중국이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는 유일한강대국인 데다,홍수 등 자연재해 등으로 경제난이 가중돼중국의 원조가 절실한 상황이어서 중국에 대해 불만 표현을 자제할 수 밖에 없었다.이때 94년10월 핵문제 타결로북·미관계가 협상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동북아 정세를 유리하게 이끌기 위해서는 ‘북한카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중국은 북한에 관계 회복을 위한 ‘신호’를 적극적으로 보냈다. 경제난과 외교적 고립상태에 빠졌던 북한으로서도 중국과의 장기적인 냉각상태가 지속되면 ‘체제 생존’에 위협이된다고 보고 99년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베이징에 파견,최고 지도자급 인사교류에 물꼬를 터 중국과의 관계개선 의욕을 보였다.특히 지난해 5월말과 올 1월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두 차례비공개 방문, 중국과의 관계를 동맹관계 수준으로 한 차원격상시켰다. 장 주석의 이번 북한 방문은 김정일 위원장의 2차례 방중에 대한 답방 형식을 띠고 있지만,북·중 관계는 물론 한반도 주변정세에 큰 변화 바람을 몰고올 전망이다.북한은양국간 전통적 혈맹관계를 복원,대미 협상력을 높여 조지W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경색된 북·미 대화가 이뤄지는계기로 삼으려 하고,중국도 한반도에 관한 영향력이 지대함을 대내외에 과시,동북아 주변정세에 대한 발언권을 높이는 발판으로 삼는다는 복안인 것이다. 특히 북·중 양국은 최근 경색된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돌파구 마련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지난 7∼8월 러시아 방문 이후 장 주석의 북한 방문을 십분 활용,‘미국이 추진중인 미사일방어(MD)체제에 대해 반대한다’는 북·중·러3국 공동연대를 통해 미국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중관계 일지. ■1990.3 장쩌민(江澤民) 중국 공산당 총서기 방북■91.3 리펑(李鵬) 중국 국무원 총리 방북■91.11 김일성(金日成) 북한 주석 방중■92.4 양상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 방북■99.6 김영남(金永南)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방중■2000.3 백남순(白南淳) 북한 외무상 방중■2000.5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 비공개 방중■2000.9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방북■2001.1 김 위원장 상하이(上海) 비공개 방중 ■2001.3 쩡칭훙(曾慶紅) 중국 공산당 조직부장 방북. ■2001.9.3∼5 장 주석 방북.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
  • 용인 성복지구 개발 주민갈등

    경기도 용인시 수지읍 성복취락지구 개발계획을 놓고 개발을 촉구하는 원주민과 개발계획 백지화를 요구하는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성복리 인근 지역 이장 26명을 주축으로 구성된 ‘성복리개발추진 공동대책위원회’는 27일 도청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갖고 “성복리 개발은 ‘선계획 후개발’의 모범적 사례”라며 “이같은 개발사업이 일부 아파트 주민들의 반발로지연 또는 백지화될 경우 원주민들의 엄청난 재산상 피해가 발생한다”고 주장했다. 공대위는 개발 반대운동에 나선 인근 일부 아파트 주민들에 대해 “그들이 입주하기 전까지 각종 피해를 참아온 지역 주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자신들의 이해욕구만 충족시키려는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9일 환경단체와 인근 지역 아파트 주민들은 ‘성복리 광교산녹지보존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한뒤 “성복지구 개발계획은 반환경적 주택개발사업으로 광교산 산림을 크게 훼손할 뿐아니라 공사가 진행되면 인근 지역 주민들에게 소음,분진 등의 피해가 우려된다”고 밝혔다. 양측 주민들의 갈등 속에 개발추진 공대위가 개발저지운동에 나선 주민들의 아파트단지 입구에서 다음달 초 개발 촉구 주민대회를 계획하고 있어 자칫 주민들간 충돌까지 우려되고 있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5)여인의 우정

    사랑이 시대와 사회와 민족성에 따라 달라진다는 건 스탕달의 ‘연애론’ 제2부에 나오는 유명한 화두다.식민지 시대의 연애는 어땠을까.한국 문단사에 등장하는 1920년대의연애는 기생과 문사의 사랑이었고,1930년대로 접어들면서민중운동성 연애가,그리고 일제 탄압이 강화되면서 보다 비극적인,그러나 다분히 불륜적인 연애의 유형이 등장한다.최정희를 둘러싼 세 여성,모윤숙과 노천명은 바로 이런 일제탄압기의 연애 유형을 실천한 여인상으로 부각된다.셋 다유부남과의 관계 때문에 고뇌하면서 문학과 인간과 사랑을함께 헤쳐나간 평생 동지적인 관계를 유지했다.그녀들의 애인은 셋 다 공교롭게도 납(월)북됐고,그 사실 때문에 우정은 더욱 공고해질 수 있었다.셋은 최정희를 가운데 두고 서로 여성적 독점욕의 질투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안되었다.1911년 9월 1일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난 노천명(盧天命·1911∼1957)의 아명은 기선(基善)이었으나 여섯 살 때 홍역을 너무 심하게 앓아 죽는 줄 알았다가 살아나자 하늘이 내린 명이란 뜻으로 오히려 시인에 더욱 걸맞는멋진 이름을 얻었다. 진명여고를 거쳐 이화여전 영문과를 졸업(1934)한 깡마르고 고적해 보이는 그녀가 일약 문단의 목이 긴 사슴으로 명성을 얻은 건 첫 시집 ‘산호림’을 내고 꽤나 호사스런 경성호텔에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하고서였다. 1938년 1월이었는데,이 해가 그녀에게는 길운이었다.조선일보 출판부 발행 ‘여성’지 기자로 취직이 된데다,극예술연구회에 가입,체호프 원작 ‘앵화원’의 여주인공인 라프네스카야(모윤숙扮)의 귀여운 딸 아냐로 출연했다. 보성전문 김광진(金洸鎭)교수는 무대 위의 노천명에 매료되었고,그들은 이내 깊고 심각한 관계로 빠져 들었다.유진오가 소설 ‘이혼’(‘문장’ 1939.3.창간호)에서 이들의연애사건을 다뤄 장안의 화제가 되어버린 건 문단 가십의하나다. 소설은 홍윤희란 여학교 교사인 영문학 전공의 27세 노처녀(당시로서는 이 정도가 노처녀였다)여주인공과,조혼으로 아내를 외면한 채 여급,유한마담 등과 빈번한 관계를 가진 상사회사 회계주임인 38세의 박재신이 열애에 빠진 사건을 다뤘는데,참고로 말하면 유진오는 김광진과 같은 보성전문(고려대 전신) 교수(1936∼1945.3월 폐교 때까지)였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은 나이나 성격 등이 비슷하여 입방아에 올랐는데,남주인공은 아내에게 논 열마지기를 떼어주고 서류상으로는 이혼했으나 언제든지 시댁에 와도 좋다는,한번시집간 여인은 영원히 그 댁의 귀신이라는 철칙은 지키는기묘한 형태의 헤어짐을 강박했다. 사실 신여성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이혼서류였으며,남자는 이걸 위해 고향에 장기 체류했다가 상경했는데,여주인공은 그새 삐쳐서 싸우는 장면에서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이 딱히 실제와는 다를지라도 노천명과 김광진의애정행로에 가로놓인 난관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데이트 중 여인은 주로 로렌스의 ‘차탈레이 부인의사랑’이 어떻고 계속 이야길 하지만 남자는 시큰둥하고,남자는 해군비행기가 중경(重慶)을 폭격했다는 등의 다분히 시사적인 화두를 끄집어 내는데,이에 대한 여인의 반응은 냉담 정도가 아니라 대륙의 지리에 대하여 너무나 무지하여 놀랄 지경이었다고 묘사하고 있다.사실 노천명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상당 부분은 이런 둘 사이의 여러 갈등을 하소연하고 있는데,이 소설이 좋은 참고가 됨직하다. 물론 소설대로 믿기어려운 대목도 있다.남자에게 춤을 가르쳐달라고 여자 쪽에서 먼저 접근해 간 것으로 묘사한 건 아마도 작가가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서 이 사건을 접근한 탓으로 보인다. 1902년 평남에서 태어난 김광진은 동경(東京)상대 졸업 후 보성전문에서 경제사를 강의했던 마르크시스트였는데,해방 직후부터 건준(建準) 평남지부의 무임소 위원이 되는 등이내 월북하여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노천명에게 더욱 큰 상처가 된 것은 김광진이 유명한 기생 왕수복과 관계를 맺어버렸다는 사실로,결혼까지도 고려했던 남성으로부터의 배신은 이 섬세한 여성시인에게 실의를 안겨 주었다.북한에서도 경제학 관계 연구활동을 계속했던 그는 1981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임대식 편 ‘식민지시대 한국사회와 운동’).편지도 일기장처럼 가장 고통스러울 때 길고 아름다워진다.워낙 고독한 노천명은 유부남과의 사랑의 아픔을최정희에게 서리서리 펴놓는다. 조선일보 근무 시절(1942년 사직)에 가장 많은 편지를 보낸 것으로 봐서 연애의 초기가 가장 괴로움과 기쁨이 충만했던 것 같다.아마 노천명이 최정희에게 보낸 첫 편지는 “웬 일이겠수.며칠 전부터 당신에게 괜히 자꾸만 긴 편지를보내고 싶어 겉봉을 써 가지고는 호주머니 속에다 이렇게넣고 다니는데 당신에게서 우연히 글이 왔구려”라는 것인듯하다.‘친전’이란 걸로 봐서 직접 전해줬는데,이건 그만큼 은밀한 사연을 담고 싶다는 욕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당신은 내 맘에 맞는 이--고운 여인이오.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얘기를 하므로써 내가 자랑을삼”는다는 말처럼 노천명에게 최정희는 마력처럼 다가섰다.이 편지는 시집 ‘산호림’이 출간되기 불과 며칠 전이니까 아직은 천진스런 처녀 시인의 감상적인 일면이 그대로드러나 있다.즉 김광진을 알기 직전이었다. 다음 편지의 “문외한 김선생이 ‘거울’을 몹씨 칭찬하는구려”에 등장하는 ‘김선생’은 김광진으로 초기 데이트단계로 보인다.“정희!”라고 시작하는 편지에 이르면 김광진과 사랑이 깊어져 환희와 고뇌가 공존하는 모습을 엿볼수있다.“내 마음은 옛날을 더듬어 오직 아픈 것을 어찌 하겠소.허나 이런 말을 해 무엇하오.그는 진실하고 유망한 청년이었소.언제나 내가 사랑할 수 있는 훌륭한 청년이었소. 그가 행복하기만 몰래 빌고 있을 뿐이오”란 대목은 종잡을 수 없는 열정의 회오리 속에서 방황하는 자세가 나타난다. 이 기간에 아마 노천명은 구미포,진주,합천 해인사,백천(白川)온천 등지를 여행하며 최정희에게 편지를 보냈는데,대개가 사랑으로 말미암은 고통을 호소한다. 자신의 사랑 이야기만 하기가 미안했던 그녀는 “당신은이제서야 안전한 배에 가 탔소.김선생(김동환)은 반드시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오.그는 죽도록 연애감정을 가질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았소.…해당화 같은 당신이 또 그분을 행복케 하고 남음이 있을 것을 내가 믿소.어서 잔치를 하자구나.내가 국수랑 말구 떡이랑 담으마.나는 아무 짓을 그날 해도 좋을것만 같다.어서 기쁜 날을 가져와다우 친구야”라는 편지에 이르러서야 파인과 최정희는 공개된 동거관계로 들어간 것 같다.그 뒤 파인과 최정희의 덕소 집 모습이 아름답게 묘사되는 편지와,출산,모윤숙의 모종의 험담으로 신문사를 그만 둬야 할 것 같다는 내용이 이어진다.그리곤 매일신보(노천명은 1943년 매일신보에 입사) 잡지부에앉아 ‘여류작가’들에게 “병정 얘기”,즉 “군국물(軍國物)”을 청탁하는 편지가 식민지 시기에 보낸 아름답지 못한 마지막 편지로 남는다. 광복후 노천명은 서울신문 문화부에 근무했다.이미 김광진은 월북해 버려 그녀에게는 친일행위와 함께 식민지 시기의 아픔은 이중의 상처로 저며왔다.종로구 동숭동에 최정희가 기거했던 시기는 1949년 1월부터 1957년까지 매우 긴 기간이었다. “언제 이 땅 그 남자들의 품격이 우리 여인들과 동등이 될는지 너무 한심한 상태요”란 구절은 문단 모임에 나갔다가 당한 모욕감에 대한 화풀이리라.노천명은 1946년 서울신문을 사직하고 엉뚱하게도 유학을 빙자하여 일본 밀항을 감행했는데(1947),가족들의 맹렬한 반대로 이듬해 귀국했다. 아무려면 김광진이 그리워 취했던 해프닝은 아닐 테지만 노천명답지 않은 돌출이었는데,그 상상 밖의 행위가 바로 6.25 때도 반복되었다.인민군 점령하의 서울에서 그녀는 문학가동맹에 가입,‘반동 문학인’ 체포에 협조한 혐의로 서울 수복 직후 체포돼 20년형을 선고받고 부산에서 복역했다. 이헌구.김광섭.모윤숙 등 문인들의 석방운동으로 1951년 4월 출옥한 그녀는 부산에서 최정희에게 외로운 자신의 처지를 하소연하는 편지를 보냈다.공군 종군작가단(1951년 1.4후퇴 직후)과 육군 종군작가단(1951.5.26)은 다 대구에서결성되었는데,최정희는 공군종군 작가단 소속으로 대구에서 지내고 있었다.이 무렵 노천명의 편지에 언급된 문인들은다 여기 소속이었다. 석방후 부산 중앙성당에서 가톨릭에 입교,베로니카란 세례명을 얻은 그녀는 공보실 중앙방송국에 근무하는 등 안정을 되찾았으나 이미 목이 긴 사슴으로서의 센티멘탈한 여성시인은 아니었다.그녀의 시에는 잡식성이 침윤되어 청순 단아하던 세계는시들어 버렸다.친일,친공,반공 행위를 두루 거친 이 목이긴 외로운 사슴 시인은 1957년 6월 16일,누하동자택에서 세상을 등졌는데,최정희는 문인장으로 치러진 그녀의 장례식에서 울먹이며 약력을 낭독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 (4)식민지 저항적 지식인

    근대 여성작가 중 가장 치마폭이 넓었던 최정희는 유파와연령을 초월하여 문우들과 교유했는데 그 중 소중한 것으로는 국제 입찰에 부칠만한 중량급 서간문도 포함되어 있다. 바로 김사량(金史良,본명 時昌,1914∼1950)의 편지이다.일본에서 더 유명한 김사량은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이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를 일깨워 준 근대문학사에서 보기 드문 한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평양에서 1914년에 태어난 그는 평양고보 재학 중 배속장교와 일본인 교사 및 그들에 동조하는 조선인 교사 배척을 위한 동맹휴학을 주도해 퇴학처분을 받고는 형 시명(時明,교토제대 법학부 졸업 후 사법·행정 양과 합격,홍천·평창 군수,조선인 최초의 전매국장,8·15 후에는 중앙산림조합연합회 이사장 등을 지냄)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했다.학창시절에는 연극에 관심이 많아 신협(新協)극단과 연계,장혁주(張赫宙)가 각색한 ‘춘향전’의모국 순회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많은 활동을 펼치다 여러이유로 경찰에 자주 구금 당했다. 결혼 직후 하이네에 관한 논문으로 도쿄제대 독문학과를졸업(1939)한 그는 잠시 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근무하면서 서울의 하숙집에서 출세작 ‘빛 속에서’를 썼다.이 무렵에 아마 서울의 잡지사와 문인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을것인데,최정희와의 인연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도쿄제대 대학원 입학허가를 받은 그는 6월 아내와 도일,일본과 한국 문단을 잇는 가교 역할을 맡게 된다.편지에서 김사량은 매우 조심스럽게 최정희의 ‘지맥’을 추천했으면 싶었으나,이미 일본의 다른 출판사(赤塚書房)가 추진하고 있던조선문학 선집에 관여하는 장혁주가 손을 댔기에 ‘흉가’로 하는 게 어떠냐고 묻는다.몇 차례 오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편지는 최정희가 자신의 소설을 일본에 소개되기를 희망한데 대한 답신 내용이 대부분이다. 장혁주는 누구였던가.김사량보다 먼저 등단한 그는 잡지사,문인 등을 후배에게 소개시켜 주는 역할을 했던 재일조선인 문단의 대선배였다.1905년 대구에서 출생한 그의 본명은 은중(恩重),창씨개명은 노구치 가쿠주(野口赫宙,첫 창씨명은 野口이었음)로,불륜사건에 연루되어 도일,본처와 이혼,일본여자와 재혼,8·15후 아예 일본으로 귀화해 버린 인물이다. 그는 초기의 민족적인 성향과는 달리 친일화 정도가아니라 아예 혈통까지도 일본인화 해야된다는 각오로 일본여자와 결혼을 감행한 친일문학인 가운데서도 발군의 활약을 보여주었다.1952년 10월,6·25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변장한 채 일본 ‘부인구락부’ 특파원 신분으로 입국하여 취재활동을 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 한국을 힐난하는 글을 써서 당시 문학단체가 법석을 떨게 했던 장본인이다.그는 아예 일본문학보국회에 가입하여 활동에 열을 올렸던 인물로한국을 영원히 등진 조국상실자가 되었다. 최정희의 ‘지맥’은 평론가 한식(韓植)이 번역을 맡은 것으로 드러나며,편지에 직접 쓰지는 않았지만 김사량은 ‘모던 일본’에다 이광수의 ‘무정’을 번역했는데,아마 이 사실은 고의로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김사량은 ‘조광’에장편 ‘낙조’(1940.2∼1941.1)를 연재하면서 모국어 문제에 대하여 매우 겸허하게 최정희의 조언을 구하고 있지만사실 그는 ‘양국어 작가’로 손색이 없었다.그가 ‘삼천리’에 발표한 글로는 잡문 ‘조선문학과 언어문제’(1941.1)와 소설 ‘지기미’(1941.4)인데,이 두 사실을 편지에 대입해 읽으면 그와 최정희의 교유가 대략 1939∼1941년임을 알 수 있다.중요한 사실 한가지를 짚고 넘어가자.‘문예춘추’는 1935년 일본최고의 아쿠다가와 (芥川)문학상을 제정했는데,조선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김사량이 이 상의 후보작으로 뽑혀 일약 일본문단의 유망주가 되었다(1940.2).1941년12월 9일 새벽 진주만 기습에 따른 사상범예방구금법으로감금당했고,유명세만큼 그에게 부하되는 역사적인 책무도커서 친일을 강요받았으나 거절했다. 일본 문학인들의 구명운동으로 이듬해 1월29일 석방된 그는 이내 귀향,조용히 지내려 했지만 강제동원을 피할 수 없었다.이효석(1942년 작고)이 있었던 평양 대동공업전문학교 교사가 된 건 1944년 4월.강제 친일에 동원되면서도 일본문인들과의 술자리에서 격렬하게 식민통치를 비판하던 이투사는 1945년 2월 조선출신학도병 위문단으로 중국에 파견,일정을 마친 뒤 탈출,화북조선독립동맹에 참여하여 떳떳하게 해방을 맞았다.이때의 탈출 투쟁기는 ‘노마만리(駑馬萬里)’란 제목으로 남아있다. 1945년 11월 서울에서 그의 희곡 ‘호접’이 단성사에서 공연되는 등 광복 후 한국 좌익문단의 정화에 일조했던 그는이듬해 평양으로 돌아가 6·25때 종군작가로 참가,후퇴 도중 원주 부근에서 지병인 심장병으로 낙오된 채 행방불명된 게 그의 최후다(안우식 지음,심원섭 옮김 ‘김사량 평전’ 참고).김사량은 자신의 친일행각이 강제에 의한 것임을 문학인들에게 공공연하게 실토했던 점과 모험을 무릅쓴 극적인 탈출로 민족해방투쟁에 나섰던 문학인이었다는 점에서식민지시대 저항적 지식인의 전형으로 세계 저항문학사에손색이 없는 작가이다. 극적인 생애는 한설야(韓雪野)도 마찬가지다.기생 이름 같은 낭만적인 필명과는 달리 1900년 함주(함흥)에서 태어난그는 1976년 북한에서 사망할 때까지 영욕을 두루 겪은 비극적인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남을 것이다.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인물인데,유명한 한의학자 이제마(李濟馬)의 제자로,홍범도(洪範圖)등의 의병활동을 무마시키라는 일제의 강요를 거절코 고향을 떠나 피신했다.한설야는 경성제일고보에다니다가 서모(庶母)와 불화로 귀향,함흥고보로 전학,3·1운동에 관련되어 구금 체험을 한다.중국,일본 등지를 떠돌거나 유학 한 뒤 ‘조선문단’으로 등단한 그는 서울에 머물렀다가(1925∼1926),아버지가 많은 빚을 남기고 죽자 중국 동북지방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1927) 귀국하여 카프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문학과 사상 연구회,‘한설야 문학의 재인식’).한설야가 조선일보에 입사한 것은 1932년경인데 함남지역에 특파됐다가 본사에 왔을 때는 경영권 문제로 매우 복잡 미묘할 때였다.창간 초기부터 경영진의 시국 순응 성향과 편집진의 민족의식 지향이 갈등관계를 유지했던조선일보는 계속 사주가 바뀌면서도 반일논조 때문에 정간과 필화가 잇따랐다.신간회(新幹會)운동으로 안재홍(安在鴻)사장이 구속되는 등 혼란을 틈타 고리대금업을 하던 채권자 임경래(林景來)가 조선일보 경영권을 주장하여 조병옥(趙炳玉)·주요한(朱耀翰)의 정통 편집팀과 대결,두 개의 조선일보 발행이라는 희극이 연출되다가 방응모(方應謨)가 참여,부사장을 거쳐 발행인이 된 것이 1933년 7월(사장은 조만식).이 혼란 속에서 한설야는 학예부에 근무하며 노동 현장소설의 신기원이란 평가를 받은 이북명(李北鳴)을 발굴하여 ‘질소비료공장’을 연재 중단 당하는 등 카프노선에 충실한 언론인으로 활동한 것 같다. 당시 정황을 한설야는 단편 ‘세로(世路)’에서 너무나 자세히 언급하여 한국언론사의 충실한 증인 역할을 해주고 있다.소설은 자신이 회사로부터 해직 통고서를 받는 장면부터 시작하여 왜 그렇게 됐는가에 대한 자초지종을 회상하고있다.등장인물은 모두 실명이지만 사정상 이니셜을 썼는데,쉽게 알만한 인물들이 그대로 나온다.새 경영진은 기구와인사 개편을 통하여 그때까지 신문사의 주류였던 M일파(투옥 경력자 등으로 묘사)를 약화 시키는데,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배신감과 사회적인 공분이 폭발한 한설야는 술자리에서 변절한 동료의 뺨을 후려친 게 화근이 되어 권고 사직을 당했다. 조선일보 사사(社史)에 의하면,1934년 1월 1일자로 대폭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는데,특히 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된 M(문석준)의 좌천도 바로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미뤄 볼 때 한설야의 퇴직도 이 무렵일 것이다.이 문석준은 1943년 함흥에서 한설야와 함께 보안법 위반으로 구속(한설야는 1944년 5월 석방) 당하는 주인공이다.1934년은 그에게 매우 불행한 한 해였다.해직 후 8월 그는 카프 2차사건으로 구속됐기 때문이다.달필인 한설야의 편지는 함흥에서보낸 것인데,아마 1941∼2년초 경 ‘삼천리’가 ‘대동아’로 개제하기 직전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최정희가 한설야에게 잡지에 재수록할만한 짧은 작품을 추천해 달라는 청탁에 대한 회답 형식인 이 편지에서 그는 ‘강아지’와 ‘능금’을 천거했다.앞의 작품은 ‘한설야 단편집’에 실려 있는데,그게 1941년 7월에 나왔으며,뒤의 것은 1940년 간행 단편집 ‘귀향’에 게재된 것으로 볼 때,그리고 ‘대동아’개제가 1942년 3월부터였음을 감안하면 이 편지가 씌어졌던 시기는 밝혀질 것이다.이 무렵 그는 함흥에서 서점·극장·인쇄소 등에 손을 대는 등 생업과 창작에 전념하면서 해방의 날을 준비하고 지냈다.여담이지만 한설야는 광복 후북한에서 ‘김일성장군 전기’를 비롯한 여러 작품을 쓴 한편 소련(1947),평화옹호 세계대회 참석차 프랑스(1949) 등지를 방문하는 등 중추적인 역할을 하다가 1962년 비판당한 후 불행한 최후를 마치고 작품도 판금,아직도 전면적인 해금이 안된 상태에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편지로 본 1940년대 문단秘史](3)지조와 훼절

    파인과 최정희의 연애가 무르익어 갈 무렵에 강력한 방해자로 등장한 인물이 시인 김종한(金鍾漢,1914∼1944,일부 문학사전에는 1916년 생으로 되어 있으나 착오임)이었다.‘문장’지를 통해 정지용으로부터 “경쾌한 코닥 카메라 취미”의 “명암이 적확한 회화”란 평을 들으며 그는 1939년 보무도 당당하게 등단했다.이미 그는 동아일보 등에 작품을 발표한 경력에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1937)이란 후광까지 입었던 터라 정지용 사단인 조지훈·박두진·박목월·이한직·박남수와 더불어 시인으로서의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였다.“조금 더,단 1년만이라도 오래 살았더라면 ‘청록집’은 4인 시집이 되었을지 모른다”(大村益夫 ‘윤동주와 한국문학’ 중 ‘김종한에 대하여’)고 할 정도로 암흑기 그의 시는 돋보였다.고향이 파인과 같은 함북 경성(鏡城)이었다는 사실을상기하면 필시 배신자는 고향에서 나온다는 말이 맞을까. 김종한은 최정희에게 끈질기고 추잡하며 노골적이고 야성적인 글을 끊임없이 보냈을 뿐만 아니라 신당동 집으로 찾아가기까지 했던근대 한국문단 ‘스토커’의 챔피언급이었다.그는 삼천리사와 신당동 두 곳으로 여러 형태의 편지를 보냈는데 그 사연은 노골적인 사랑의 고백이자,위협이고 유혹인데한글과 일어를 뒤섞어 썼다.“승녀(僧女)는 되지 마시기 바라오며”란 구절을 미망인에게 함부로 한 걸로 볼 때 그는진작부터 최정희에게 깊은 연정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나는 고독한 시계입니다.당신은 내 안의 진자(振子)입니다”는 고백은 그래도 점잖은 편이고,“두 번 주신 엽서에 의하면생존본능의 정력이 소모된 듯한 표정이 보이는 고로 근심하고 있습니다.피차 일반이기도 하려니와,나는 의식적으로 그것을 깨트려 가려는 자세를 강조하기로 결심했습니다.이것이 연애편질 수가 있다면 나는 좀더 행복자였을 텐데”에 이르면 매우 노골적이 된다.즐겁게 지낸다는 최정희의 편지에 대하여 애인이라도 생겼는지 걱정이라고 덤비는 김종한의 방자함은 한계가 없다.“좋은 동무를 얻었으니 반생이나 동반하려고 공상하지 않은 바도 아니었는데--벌써 절교의 자세를취하십니다 그려.크게 반성하시고 회신을 주시기 바라오며,동경은 오늘도 비가 옵니다.참,”이란 글로 미뤄 보면 어지간한 스토커였던 것같다. “애기(지원,어렸을 때 아란으로 부름.1942년)가 났다지요? 애기 어미는 아마 고양이가 낙태한 듯한 거룩한 표정을 짓고 있으리라 추측하오며,여하간 크게 축복지지(祝福之地).여무언야(餘無言也)”란 편지를 보낸 이 시인에게 아무리 사람 좋은 최정희인들 고분고분하진 않았을 터이다.이내 절교장을 받은 듯 “이제는 신사로 대접해 주세요”라는 애원조가되지만,“지금 떠나갑니다.명년 춘삼월,다시 뵈올 때까지,연애도 많이 하시고 소설도 많이 쓰시기 바라오며”란 야유가또 등장한다. 이렇게 끈질겼던 김종한은 대체 문학사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었던가.일본대학 예술과 학생 때부터 부인화보사(婦人畵報社)에 아르바이트로 나가다가 졸업(1939) 후 정식직원이된 그는 고구려 문인 을파소(乙巴素)를 필명으로 삼았다가‘달밭집’(月田茂)이라는 고향의 택호를 창씨개명으로 정한 괴짜였다.“순수하고 자아가 강한 만큼,서울에 나와서도 가는곳마다 충돌하여 문단 동료들로부터 백안시를 당했다.그는 1942년 도쿄로부터 귀국,‘국민문학’ 편집을 맡았는데,한 때(1943.5)는 경성일보 기자였던 유명한 재일동포 작가김달수(金達壽)와 종로구 사간동 같은 집에 하숙을 하며 가깝게 지냈다.친일파연구가 고 임종국은 김종한을 일언지하에 친일파로 몰아댔는데 오무라 교수는 그가 싱가포르 함락을찬양했던 친일시를 예술성이 없다고 몰아친 용기나,“조선의 옷을 입고 조선온돌에 누워 있어도 훌륭한 황민이 될 수 있다”(좌담 ‘국민문학의 방향’)고 한 말을 주시한다.‘국민문학’에 1년3개월간 근무하다 사직한 그는 정지용을 비롯한 토착적인 민족정서가 강한 홍사용·백석·김동환·주요한·유치환 등의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려 진력하다가 급성폐렴으로 죽었다.이루지 못한 연애처럼 그의 문학적 위상 또한아직도 중음신으로 떠돌고 있다. 시인이라고 다 김종한처럼 경박하지는 않다.그 반대편에 이육사(李陸史)의 편지는 무게를 보탠다.이 강철의 투지를 지닌 대륙적 남성 시인은 절친했던 이병각(李秉珏)시인 부부가 폐병으로 눕자 아예 동거하며 주위의 만류를 듣기는 커녕자신이 피하면 친구가 병이 더 심한 줄 알고 불안해 한다며오히려 가까이 지냈다.1941년은 그에게 액운의 해였다.이병각과 부인의 장례를 다 치른 그는 부친상까지 당했다.너무쇠약해 졌음을 느끼고 여기 저기 요양을 다닌 건 1942년이었는데,항상 바빴던 그에게 여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건강의 악화 때문이었다.최정희에게 보낸 ‘무량사(無量寺)에서’란 편지는 이 무렵의 글일 터인데,대체 무량사란어떤 절인가.김시습이 난세를 피해 돌아다니다가 마지막으로 의탁했던 곳이다.“백제란 나라는 어디까지나 산문적이란것을 말해줍니다”는 함의는 무엇일까.신라의 지배계급 문학이었던 향가와는 달리 백제의 전설들은 오히려 백성들의 설움을 일깨워 주고 있다는 뜻일까.“깨어져 와전(瓦)을 비치고 가는 가냘픈 가을 빛살을 이곳 사람들은 무심히 지나는모양”이라고 나라 잃은 몽매한 백성들을 안타까워 하면서,“무량사만은 오늘 저녁에도 쇠북 소리가 그치지 않고 나겠지요”라고 문학인의 사명을 쇠북소리에 빗대어 토로하는 이 행동주의 시인의 심경을 꿰뚫어 보라. 이 삭막해 보이는 민족해방투사 시인에게도 연인이 있었던가.모든 선진 사상을 흡수 실천했으면서도 정작 가풍을 좇아 조혼으로 결코 행복스럽지 못했던 부부생활이었던 이육사. 신석초는 “그에게도 단 한 사람의 비밀한 여성이 있었다는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다”(신석초 ‘이육사의 인물’)고 귀띔했지만 그게 누군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너는 무삼 일로 사막의 공주같아 연지 찍은 붉은 입술을내 근심에 표백된 돛대에 거느뇨 /오--안타까운 신월(新月)”(‘해후’)이라는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를 닮은 시가바로 그녀를 그린 작품이라 전한다.비밀결사 대원답게 그는영원히 자신의 연인을 철저히 숨긴 채 친구가 옮겨준 폐병으로 쇠잔해져 자신이 동양의 파리라며 동경했던 도시 북경에서 옥사했다.지조와 사랑은 일치하는 것일까. 이육사와는 사뭇 다른 사랑의 실천자에 이효석이 있다.“이효석씨 하고는 그가 결혼하기 전부터 가깝게 사귀었다.…수송동 그 방에다 살림을 꾸미고 여기서 먹고 자고 했는데,얼마 안돼서 부인이 친정으로 가고 그 방에서 나는 칼도마질이랑 하는 여자를 목격할 수 있었다.…이효석씨는 ‘칼도마 위의 여자’를 ‘넥타이 갈아매는 기분’으로 사귀었다고 나중에 부인에게도,내게도 말했다”(최정희 ‘조광·삼천리 시절’)는 대목은 유명한 문단 야사의 한 토막이다.자신의 바람기까지 익히 알고있는 최정희에게 이효석은 마음 놓고 편지로 모든 아픔을 털어 놓는다.경성제대의 수재였던 그가 18세의 이경원과 결혼하자 호구지책으로 총독부 경무국 검열계에 취직했는데 입 빠른 평론가 이갑기(李甲基)가 “너도 개가됐구나”라고 모독하자 파인의 고향 경성 농업학교 교사로내려갔다가 평양 숭실전문 교수로 자리를 바꾼 게 1934년.신사참배 거부로 숭실전문이 1938년 폐교당하자 대동공업전문학교로 옮겼는데,편지는 이 내역을 말해준다.메밀꽃 분위기보다는 장미,된장보다는 버터를 더 사랑했던 이 수재는 편지에서 보듯이 함북 주을(朱乙)온천을 끔찍히 좋아했다.길명지구대란 명승과 함께 68도의 라듐이 내뿜었던 전국 1위의 이휴양지가 이국취향의 유미주의자 이효석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였다.아내가 죽은(1940) 뒤 실의에 빠진 모습이 편지에 역력히 나타나있는데,그 자신도 1942년 세상을 떠나고말았다. 꼭 편지에 깊은 뜻이 담긴 것만이 중요하진 않다.화가 김환기(金煥基)의 풋감 그림이 싱싱한 편지는 내용에 못지 않게글씨 자체가 예술품이다.문인과 화가의 관계가 늘상 가깝듯이 김환기도 그림 재료를 사러 거리에 나갔다가 우연히 김동환·최정희를 조우했었는데,헤어져 전차에 올라 생각해 보니 최에게는 건강 안부를 놓쳤고,김은 화가 이종우(李鍾禹)로착각하고 인사를 했다는 고백이다.이 편지는 행간을 읽을 필요가 있다.김환기가 이종우로 알고 인사를 한 뒤 헤어져서곰곰이 생각해 보니 ‘김동환’이었다는 사실은 뇌리에 최·김 둘이 자주 어울린다는 ‘소문’을 들었을 개연성도 있다는 묘미가 느껴진다.사람을 몰라 봤던 데 대한 사과의 편진데 이럴 경우 대개는 어물쩍 넘기는 게 오히려 예의일 듯 하건만 굳이밝히면서 다음에 만나면 오토밀이라도 사 드리겠다는 화가의 진솔성이 애교롭다.김환기가 눈치를 챘든 않았든 이 무렵은 파인과 최정희가 꽤나 깊어졌던 때일 것 같다. 임헌영 문학평론가·중앙대 겸임교수
  • [기고] 아직 할말 있다는 친일파

    우리가 20세기에 못 푼 과제는 분단극복과 민주화이다.이과제를 못 푼 이유중의 하나가 일제잔재,친일파 청산이 좌초된 것 때문이다.이미 해방후 단죄받아야 마땅한 친일주구가 한국사회를 지배해 왔다.우리에게 일제식민지배는 해방이란 시점에서 마침표가 찍히지 않고 계속해 이어져 온 것이다.그래서 지금 친일파청산의 문제는 현재의 문제로서 민족자주의 문제이고,참된 나라찾기의 문제이다.이승만과 박정희 독재를 거치면서 우리는 민족지사나 민주인사의 암살과 모략중상에 의한 매장의 배후에는 늘 친일파의 그림자가어른거리는 것을 보아오고 있다. 비판의 자유와 민주화를체질적으로 가장 싫어해 음해하여 온 부패 기득권부류가 누구인가?친일 정상배와 모리배,졸부들과 친일관료,명망가라는 위선자들이 아닌가? 친일파문제는 결국 반민족적이고 반민주적이며 그래서 반통일적 세력의 청산 문제이다.해방이래 지금까지 친일파는반공주의란 간판을 걸고 매카시즘의 수법으로 반대파를 제거해 오고 있다.그들은 정·관계뿐만 아니고 사회 각계에서명망가로 행세한다. 친일파가 만든 구도 때문에 역사를 제대로 못배운 사람들은 민족문제에 색맹(色盲)이 되고 역사의식이 거세된 속물이 되어 버렸다.친일파의 우민정책이 성공한 것이다.친일파는 눈을 뜨는 백성을 두려워 해서 일찍이 ‘말이 많으면 빨갱이’라고 했다. 친일논쟁을 보면 친일파문제 자체를 김빼려는 것이 친일파쪽의 대응자세이다. 흔히 그들은 ‘일제하에서 세금내고 산사람치고 친일파가 아닌 사람이 있느냐?’고 호통을 치며친일파 문제를 싹쓸이식으로 배제하려 든다.민족문제에 대해 색맹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왜 지나간 과거만 따지느냐? 미래지향적이어야 하지 않는가?’하는 말을 그럴듯하다며듣는다. 과거가 없는 현재나 미래가 없다는 말은 싹둑 잘라버리고 딴전을 피우는 것이다.나아가서 친일파 편을 드는사람은 용서와 화해를 들먹인다.그렇지만 친일파가 언제 어떻게 용서를 빌고 참으로 사죄했는가? 이 사회의 윤리와 정의감을 깡그리 뭉그러뜨려 웃음거리로만든 것은 이 세상이 친일파 판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일행위가 용납되고 출세한 친일파와 부자가 된 친일파가 행세하는데 무슨 정신이 있는가?그런데도 친일인사의 문화예술을친일행위와는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는 얼빠진 소리를 하는이가 있다.여기서 물어보자.원래 글이나 예술 등 정신적 작품은 그 자체가 창조자의 인격이고 정신이다.그런데 민족반역의 매국노와 민족배신의 비열한 정신에서 나온 것이 어떻게 우수한 창작품인가? 니체는 ‘피로써 쓴 글’만이 참 글이라고 했다.말장난과 글자속임수 놀이가 시이고,예술이라면 그러한 예술은 쓰레기통에 집어넣어 버려라! 지금 우리 친일논쟁은 어느쪽으로 가고 있는가? 우리가 아직도 반민족적 ‘친일’을,그렇지 않은 ‘지일(知日)’과선의의 ‘교류’와 혼동할 정도인가? 아직도 친일파에 대한동정론이나 변호론을 지껄이고 있을 시기인가? 21세기에 살아남을 민족으로서 우리는 친일의 반민족성이 왜 반민주로되고, 반통일로 되어 왔는가를 바로보는 안목도 못가질 정도로 친일병에 오염된 환자인가? [한상범 동국대 법학과교수]
  • ‘인천공항’ 영장청구 안팎

    인천지검이 12일 이상호(李相虎) 전 인천공항공사 개발사업단장과 국중호(鞠重皓)전 청와대 행정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이번 수사가 ‘이 전 단장의 과장된 폭로’와 ‘참여업체의 로비’로 정리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검찰은 이 전 단장과 국 전 행정관,강동석(姜東錫) 인천공항공사 사장을 잇따라 소환,대질심문 등을 펼친 결과 이씨가 폭로한 내용이 상당부분 과장되고 자의적인 해석에따른 것임을 확인했다.오히려 이씨를 집중추궁한 결과 ㈜에어포트72보다 훨씬 낮은 토지사용료를 제시한 ㈜원익을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역(逆)특혜’의 실체를 확인했다. 지난 11일 이씨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을 실시한 결과 관련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은 특히 이씨가 토지사용계획서 제출마감 하루전인 지난6월 21일 평가계획안을 전결처리하면서 ‘토지사용료’항목 대신 ‘토지사용기간’을 포함시킨 것은 원익을 돕기위한 결정적인 배려로 보고 있다. 검찰이 국 전 행정관에 대해서도 사법처리를 결정한 배경은 이씨에게두차례나 청탁성 전화를 한 것을 직분을 벗어난 업무방해로 파악했기 때문이다.검찰의 조사결과는 지난9일 신광옥(辛光玉)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 전 행정관을 자체 조사한 결과) 압력의혹은 드러나지 않았다”고 발표한 것과 배치된다. 하지만 국씨는 “이씨가 원익컨소시엄 참여업체인 삼성의로비를 받고 장난을 치고 있다는 것을 친구로부터 듣고청탁이 아닌 공정한 심사를 부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이와관련 검찰은 “국씨가 에어포트72 컨소시엄에 참여한에이스회원권거래소 임원인 친구의 부탁을 받고 이씨에게전화를 한 것이지 스포츠서울21 윤 대표의 청탁을 받은 것은아니다”라고 말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국씨의 전화는 선처를 부탁하는 수준의 약한 로비였음에도 강 사장에게 ‘팽’당했다는 배신감에 휩싸인 이씨가 과장된 폭로를 한 것이 이번 사건의본질”이라고 말했다. 인천 김학준기자kimhj@. ■강사장·이씨 '애증의 7년'. 인천공항 유휴지개발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외압설을 제기했던 이상호(李相虎) 전 공항공사 개발사업단장은 공항건설 과정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강동석(姜東錫) 사장과 갈등을 빚었다. 이씨는 건설관리본부장으로 재직하던 지난 99년 11월 활주로 설계를 임의로 변경,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함으로써 감사실로부터 경고를 받았다.이씨는 2번 활주로가시정(視程) 200m에서도 항공기를 이착륙시킬 수 있는 ‘카테고리Ⅲa’로 계획됐던 기본설계를 무시하고 김포공항과마찬가지로 시정이 400m인 ‘카테고리Ⅱ’로 낮춰 공사를진행하다 “국책사업인 만큼 예정대로 시행하라”는 강 사장의 지적을 받았다. 이씨는 또 지난 4월 공항운영통합시스템의 핵심인 종합정보통신망(IICS)과 관련해 외부 전문업체에 컨설팅을 의뢰하면서 행정절차를 어긴 사실 때문에,지난 6월에는 공항에어몰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투자자를 개입시킨 것으로 알려져 각각 경고를 받았다. 94년 건설교통부 산하 신공항건설공단 이사장과 엘리트건축 사무관으로 만나 한때 부자지간(父子之間)을 연상케할 정도로 서로를 아꼈던 강 사장과 이씨의 인연은 이번사건으로돌이킬 수 없는 ‘악연’으로 매듭지어지고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
  • 17일 개봉 ‘더 홀’

    ‘더 홀’(The Hole)은 10대가 주인공이며 10대의 생활상을 담은 10대 공포물이다.하지만 역시 10대 공포물인 ‘스크림’과는 달리 칼날이 번뜩이거나 피가 튀지는 않는다.폐쇄 공간 속에 갇힌 4명의 10대들이 끔찍하게 변하는 과정은 오히려 ‘파리대왕’과 흡사하다. 방학 중 야외학습에 참여하기가 싫어서,구멍이라는 뜻의‘더 홀’에 스스로 숨어 들어간 4명의 사립고교생.여성의성기를 암시하는 은어적 의미도 가진 ‘구멍’속에서 사랑,증오,배신,질투가 난무한다. 구멍 속에서 18일 만에 유일하게 리즈(도라 버치)만이 살아 돌아온다.그녀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오는 진술은 경악스럽기만 하다.문제는 점점 그 내용이 의심스러워 진다는 것이다. 새로운 악녀상을 제시하는 도라 버치는 ‘아메리칸 뷰티’에서 “아버지를 죽여줘”라고 말하는 당돌한 딸로 깊은 인상을 남겼었다.모든 여성들을 사로잡는 잘생긴 남학생 마이크역의 데스몬드 해링턴,프랭키 역의 키이라 나이티,마틴역의 다니엘 브로클린 뱅크 등 모든 주인공들이 신선한 매력을 내뿜는다.나이티는 ‘스타워즈 에피소드1’,뱅크는 ‘셰익스피어 인 러브’에서 열연했었다. 게다가 10대들 그 자체가 가지는 자유롭지만 깨질 듯 위태하고,어디로 튈지 모르는 매력이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한다.리즈의 진술에 따라 할로겐 조명과 텅스텐 조명이 오가며바뀌는 홀의 분위기도 흥미롭다.여기에 젊은 음악인들이 대거 참여해 록으로 채워진 영화 음악도 영화의 열기를 더해준다.올 여름 제대로 된 공포영화를 만나지 못해 섭섭했다면 구멍 속을 한 번 들여다보면 어떨까. 윤창수기자 geo@
  • [김삼웅 칼럼] 모로 기는 게들의 슬픈 존재여!

    한때 사회주의를 신봉하고 페이비언협회를 설립했던 아일랜드의 극작가 쇼는 유머와 기지로써 사회의 결함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는 사회주의를 ‘삶은 게’에 비유했다. 게가 살았을 때는 파란색이지만 삶으면 빨갛게 변하듯이사회주의(공산주의)도 사멸할 때는 빨갛게 제 색깔을 낸다는 것이다. 철없는 색깔논쟁이 한바탕 휩쓸고 갔다. ‘논쟁’이랄 것도 없는 억지가 지면과 화면을 도배한다. 회오리바람 같은 1회성이 아니라 언제 또 닥칠지 모른다. 늘그랬다. 참으로 한가하달지 한심하달지, 이런 정치인들을믿고사는 국민이 한심한지 체념상태인지, 안타깝다. 현실적 공산주의는 이미 죽었다. 지구절반을 지배했던 그붉은 기상은 간데없고 낡은 이데올로기만, 혹은 변방에서겨우 잔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는 처음부터 모순과 한계를 안고 출발했다. 마르크스와 같은 천재도 미처 중산층의 존재를 예측하지 못했던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노사대립으로 붕괴되는 것이아니라, 오히려 발전과정에서 중산층이 생겨나고 이들에의해 자본주의가 수정을 거듭하면서 더 발전하게 된다는수정이론을 상상하지 못했다. 이때문에 공산주의는 한세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망신고를마쳤는데, 그 유령이 시도때도 없이 이땅에 나타나 활개치고 사회를 혼란시킨다. 요즘에 나타난 ‘유령’의 존재는한나라당 김만제정책의장이다. 김의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회주의적 집단이 전교조”“노사정위원회나 주5일근무제는 사회주의적 정책”“언론에서 정기간행물법을 고쳐 특정주주가 30%이상 주식을갖지 못하게 하는 것도 사회주의적 발상”등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닥치는 대로 ‘사회주의’딱지를 붙이고색깔론을 제기한다. 수구세력은 지난 반세기동안 색깔론을 우려먹으면서 기득권을 유지했다. 공산주의가 퍼렇게 살았을 때는 반공의 깃발을 들고 비판세력을 용공으로 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퍼렇던 게는 죽고 북쪽이 우리의 도움을 바라는 처지가 되면서 용공의 약발이 별로 먹히지 않게 되었다. 더욱이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주주의를 말살해온수구세력의 정체가드러나면서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게되었다. 그러나 아는 것이 ‘품바’라고 색깔공세 이외에는 달리 방법을 찾지 못한 그들은 약발떨어진 품바를 외쳐대는 것이다. 괴벨스는 히틀러가 행한 선전선동의 특질을 이렇게 요약했다. “끊임없이 반복해서 대중의 심리를 파악한다. 그러면 ‘네모꼴이 실제로는 원’이라고 논증하는 것도 어렵지않다.”히틀러의 주장은 더욱 지능적이었다. “추상적인관념따위는 피하라. 그대신에 감정에 호소하라. 몇마디 정해진 문구를 끊임없이 반복하라. 결코 객관적이지 않아도좋다. 즉 논의의 한 측면만 부각시켜 적을 격렬히 비난하되,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하라.” 히틀러는 선전선동의 귀재였다. 항상 ‘특정한 적’을 하나씩 정해서 끊임없이 ‘반복’하여 공략하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이런 방법으로 먼저 베르사유조약을 체결했던배신자들을, 다음으로 공산주의자를, 그 다음으로 유태인을 속죄양으로 정해 비난하고 낙인찍어 죽였다. 그리고 자신도 참혹한 전쟁을 일으키고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중세 암흑시절에 정치적 반대자나 종교적 비판세력을 이단자로 몰아 마녀사냥을 할 때나, 20세기초 미국에서 매카시선풍이 불 때 가해자들은 상대를 마녀와 공산주의자로몰았다. 증거를 대라는 사람들에게 마녀가 타고다녔다는낡은 빗자루와 공산주의자가 입었다는 헌 티셔츠를 ‘증거’로 제시했다. 통일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김구선생을 암살하고 평화통일론을 제시한 조봉암씨를 공산주의자로 몰아 사법살인한 이래 얼마나 많은 시민·학생과 지식인이 색깔론에 희생되었는가. 공산주의가 망하고 선진 각국이 수정자본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독일의 슈뢰더총리까지 시장경제와 사회주의 장점을 조화시키는 ‘제3의 길’을 걷고 있다. 이들이 공산주의자란 말인가. 앞을 모르고 모로만 기는 게들의 슬픈 존재여! [주필 kimsu@]
  • 이모저모/ 국민銀 “대주주에 당했다” 허탈

    ■김정태,겹경사= 김정태 주택은행장은 다음달에 임기가 끝난다.스톡옵션(40만주)으로 약 88억원을 챙기게 된다.새 일자리(합병은행장)까지 확보했으니 경사가 겹친 셈이다.김행장은 이날 오전 집으로 전화를 걸어 부인에게 “여보,나 됐어”라고 알려주는 자상함을 보였다.전날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보스톤팝스오케스트라 공연장에 부부동반으로 나타나 “좋은 소식을 감지한 데 따른 여유 아니겠느냐”는관측을 일찌감치 낳기도 했다. ■국민은행,골드만삭스에 배신감= 골드만삭스가 김상훈행장에 대해 시종일관 확고한 지지의사를 표명해왔기 때문에 국민은행 전 임직원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한 관계자는 “투자펀드의 속성을 다시한번 확인했다”며 “막판에 이렇게뒤통수 칠 줄 몰랐다”며 허탈해했다. ■옹색한 행선위= 김병주(金秉柱)행장선임위원장은 오후 1시10분경 기자회견장에 나타나 그간의 어려움에 관해 장광설을 펼쳤으나 정작 합병은행장 선정배경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기자들의 질문이 집요하게 이어지자 6인의 행선위원들은 도망치듯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갔고 이때문에 기자회견장은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김상훈행장,기자회견장에 안나타나= 합병은행의 후유증을최소화하기 위해 김상훈 국민은행장이 기자회견장에 나타나김정태 합병은행장 후보를 축하해줄 것이라는 관측도 돌았으나 김상훈행장은 끝내 기자회견장에 나타나지 않았다.국민은행 노조는 즉각 “반노동자적 CEO인 김정태행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뉴욕증시 상장및 주총 저지를 위해 총력투쟁하겠다고 밝혔다.하지만 흐름을 바꾸기는 역부족이라는게 내부의 전반적인 기류이다. 안미현 주현진기자
  • 종교인 1,000인선언 “”족벌언론에 보내는 경고장””

    ◎종교인 1,000인선언 주도 청화스님 . “우리 사회의 지상과제가 남북통일을 포함한 민족화해임은 그 누구도 인정하는 것이고 종교인들 역시 동감하고 있습니다.그동안 종교인들이 언론개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않았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입니다.그러나 작금의 상황을볼때 종교인들이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종교인들의 ‘언론개혁을 위한 종교인 1,000인 선언’에주도적인 역할을 한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청화 스님(대한불교 조계종 중앙종회 수석 부의장)은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종교인 선언을 발표하게 된 배경을 이같이 설명하고 “앞으로 종교계가 강력히 연대해 언론개혁 운동에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어 “그동안 언론의 불의와 횡포,민족에 대한 배신을 숱하게 겪었고 특히 무소불위의 족벌언론 권력으로인한 피해도 지켜봤다”면서 “언론개혁은 더이상 피할 수없는 준엄한 현실”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곳곳에서 족벌언론에 대한 불만이 분출하고 채찍이 가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하고 “족벌언론을 포함한 비리 언론사들로 하여금 언론개혁에 대한 사회적 열망을 깊이 인식시키기 위해 ‘1,000인 선언’을 추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특히 “비리 족벌언론들이 대국민 사과 등을 회피할경우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스님은 “이날 선언은 비리 족벌언론에게 종교계가 던지는심각한 통첩”이라고 규정한 뒤 “1,000인 선언이 사회에큰 반향을 일으켜 언론개혁이 반드시 성취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김성호기자 kimus@. ◎격앙된 '종교인 1,000인 선언' 회견장. 25일 서울프레스센터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언론개혁종교인 1,000인 선언’ 행사는 종교인 대표 40여명과 기자 등 모두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한 시간 동안 열렸다.기자회견은 선언 낭독에 이어 행사 개최 배경 설명,질의응답 순으로 이뤄졌다.배경 설명까지는 여느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차분하게 진행됐으나 질의응답때 조선일보 기자와동아일보 기자가 잇달아 가시돋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회견장 분위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답변에 나선 종교인대표들도 한때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먼저 조선일보 기자는 “종교인들이 언론사 세무조사가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법적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예단하는 것이 아닌가” “종교인들은 균열된 사회를 통합하는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이에 단상에 앉아 있던 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전 의장 이해학 목사는 “독재자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정의롭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비판적이었던 언론을 보면서 언론 개혁의필요성을 절감해왔다”고 받아쳤다. 이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인 김병상 신부는 “문제의 언론사들은 일제와 군사정권 시절 민중들의 어려움을 옹호하고 대변하기보다는 오히려 민중 폭압에 앞장선기사를 실을 때가 많았다”면서 “우리 몸의 병도 가장 중한 것부터 찾아내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답변이 끝나자마자 동아일보 기자가 나서 “종교인들이 방송매체 등을 제외한 채 특정 언론만 겨냥해 연대운동에 나선 이유가 무엇인지 해명해달라”고 따졌다.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장 문대골 목사는 이에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종교인들의 언론개혁 선언은 일반인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한 공동대응인 만큼 언론사들도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질의응답은 20여분간 계속됐고 더 이상 추가 질문은 없었다. 김성호기자. ◎‘종교인 1,000인 선언' 요약. ■비리 족벌 언론사·언론사주 대국민 사과문 발표및 자정입장 천명= 그간 사회지도층과 일부 기업의 불법과 탈세행각을 강도있게 비판해온 자신들의 행태를 언론사들 스스로잘 알고 있을 것이다.자신의 비리를 마치 ‘언론탄압’의형국으로 몰고 있는 것은 국민들을 현혹하는 행위이자,사회적 공기의 책임을 포기하는 행위이다.다행히 일부 족벌언론사를 제외하고 탈세혐의가 드러난 언론사들이 국민에게 솔직히 사과하고 새롭게 거듭날 것을 약속하고 있다는사실에 희망을 본다.족벌언론사 역시 국민에게 책임있는사과와 자정의지를 밝혀야 할 것이며 비리 언론사주 역시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한다. ■언론개혁에 대한 정치공방 즉각 중단=불법 비리 언론사에 동조,망국적 병폐인 지역주의와 색깔론까지 유포하는무책임한 정치행태에 우려를 표한다.색깔론이나 지역주의를 들먹이고 있는 일부 정치권의 행위는 언론개혁에 대한국민의 바람을 거부하는 행위이며 반역사적 행동임을 지적한다. ■검찰의 비리 언론사주 엄정 수사,법에 따른 후속조치 단행 =엄정한 법집행과 국민 앞에 바른 공개를 원칙으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비리 언론사주와 관계자에 대한 수사와사법처리를 놓고 정치적 타협을 하려한다면 국민의 저항에직면할 것임을 엄중 경고한다. ■모든 언론인들의 언론개혁 운동 동참 호소= 일부 언론사가 국민의 지탄과 개혁대상으로 전락되었지만 양식있는 기자들이 남아있을 것으로 믿는다.사주의 전횡과 독단에 맞서 경영과 편집의 독립을 확보하고 정론직필을 걷고자 하는 언론인의 목소리를 기대한다.
  • [씨줄날줄] 불량식품 리콜

    이름이 곧 돈이다.브랜드만 뜨면 물건은 어디서건 싼 데서 만들어 비싸게 팔아도 된다.소비자들도 이름난 브랜드를 선호한다.오죽하면 죽자사자 유명브랜드를 찾는 ‘브랜드 중독증’이 있겠는가. 또 이를 사려고 ‘명품계(名品契)’에도 드는 세태다. OEM(Original Equipment Manufacturer:주문자상표부착방식)은 다른 회사의 브랜드로 물건을 생산해내는 하청생산형태 또는 그 업체를 뜻한다.디자인과 시장통제력을 갖고있는 대기업이 발주하면 새 제품을 기획할 능력이나 마케팅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제품을 생산하는 것이다.중소기업이 반드시 당하는 것은 아니다.같은 시장을 놓고 상표로경쟁하는 대기업들에 물건을 더 팔 수 있는 것도 OEM의장점이다.다른 상표로 팔리는 라디오가 실제는 한 업체의생산품일 경우도 있다. 왜 브랜드를 선호하나.무엇보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허영심 때문이다.여기에다 ‘적어도 대기업이 파니까 속지는안겠지’하는 믿음도 작용한다.최근 롯데제과,해태제과,오뚜기와 웅진식품 등이 판매한 음료,빙과류와 과자를 산 소비자들은 배신감을 맛봤다.이 식품대기업들의 주문을 받아중소업체들이 만든 제품에 마시기에 부적당한 지하수를쓰거나 유통기한이 지난 원료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어린아이들이라면 적어도 한 두번씩 먹었음직한 식품이‘불량’으로 드러난 것이다.이에 대한 처벌은 기껏해야솜방망이 수준이다.대기업들은 제품별로 최대 24억원어치를 팔았는데도 “앞으로 하청 중소기업의 제조과정을 잘감독하라”는 시정명령을 받았을 뿐이다.제품을 직접 만든중소기업들은 15일∼1개월의 행정처분을 받는데 그쳤다. 식품의약품안전청 당국자는 ”건강에 유해한 물질이나 공업원료를 사용하지 않은 점에서 수거해서 폐기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자동차회사들이 결함있는 자동차를 종종 리콜(회수조치)하거나 아니면 정부가 리콜 명령을 내리는 것과는 대조적이다.식품은 자동차보다 건강에치명적일 수 있다.그런데도 처벌이 왜 그렇게 너그러운지모르겠다. 이 식품들을 먹고 피해가 생기면 어떡하려는가. 식품대기업들은 “판매했을 뿐”이라고 발뺌하지 말고 브랜드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문제있는 상품을 리콜해야 한다.식약청도 이를 종용해야 한다.그것은 대기업들이 소비자를 기만해 얻은 부당이득을 토해내게 하는 수단이기도하다. 이상일 논설위원bruce@
  • [매체비평] 社主간섭으로부터 독립을

    국세청의 세무조사 종결 이후 전개되는 상황에 민망스러움과 착잡함을 금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많은 불법 탈세를 한 것으로 밝혀진 일부 거대 신문사에 고용된 기자들이 보여주는 행태에 절망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여러 차례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 대다수가 세무조사나 부당내부거래조사가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언론인들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오늘’의 조사에서도 대다수가 세무조사를 정당한 법집행이라고 본다.언론탄압이라고 보는 기자들은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기자들의 발언은 이른바 기자총회를 통해서 나타난다.동아일보의 기자들은 1970년대 선배들이 수행했던 자유언론수호운동의 전통 덕인지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대응태도를 보여주었다.세무조사는 부당한 언론탄압일 수 있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다.반면 조선일보 기자들의반응은 복잡하다.이른바 조사결과 발표 이후 만들어진 기자성명서에서는 대정부 강경투쟁의 의지가 강력하게 드러났다.물론 지면에 나타난 기사들의 내용은 성명서에서 드러난단합된 목소리가사실의 왜곡이나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음을 드러내준다. 한편 조선일보 노동조합이 7월초 실시한 설문조사는 또 다른 희망의 불씨를 보여준다.세금 추징액의 적절성에 관한것으로 파악되는 질문에서는 부정적 의견이 92.4%에 달했다.그러나 다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일치단결된 투쟁을 지지하는 의견이 46.9%였지만 그 반대의견으로 해석되는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36.7%가 나왔다.한쪽으로 기울기는 하지만 약한 쪽도 그 비율이 만만치않다.추징액에 대해서 낼 것은 내고 법적으로 대응하자는데에도 31.1%가 동의를 표했다. 세무조사 결과에 대하여 극력 반발하는 일부 신문사들에 고용된 기자들은 사실인식능력도,양심도,자존심도 없는가 라는 의구심을 표현하는 사람들도 많다.그러나 필자는 결코그렇지 않다고 본다.조직분위기 때문에 세뇌상태에 이른 경우도 있지만,그 기자들은 높은 지적 수준을 갖고 있으며,알 것 다 알고 있다.다만 회사 내부에서 세무조사가 언론탄압이라고 외치는 목소리만 나오고 다른 목소리가 침묵의 심연으로 빠져든 상황에서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나설 만한 용기가 없어서일 뿐이다.바람직한 생각은 속으로만 갖고 있어서는 안되지만 상황이 그런 걸 어쩌랴. 회사와 소유주는 동일체가 아니다.경영진과 회사도 동일체가 아니다.회사는 회사대로,경영진과 소유주도 나름의 실체를 가진다.소유주가 회사에 피해를 끼치고 자신의 이익을도모하는 사례를 수없이 많다.회사는 망해도 사주는 망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많은 경우 사실이다.아마도 기자들은 동네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얼굴을 들고 다니기 어려울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자신이 거액을 부정탈세한 회사의 한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자존심 상하는 일인가.회사와 회사원을 배신한 사주 때문에 회사가 먹칠을 하고 종업원들까지 욕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그런 일을 저지른 사주가 잘못인가,아니면 국세청이 그런 사실을 밝혀낸 것이더 큰 잘못인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가 문제다.이제까지 언론이 보여준 모습에 대한 반성이 선행되어야 한다.기자들이 회사 내부의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말도 못하는 것은 곧 기자들이 회사의 소유주나 경영관리자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증명해준다.그에 대하여 엄중하게 비판해야 한다.모든 언론사에서 회사의 경영투명성 확보를 위해서,그리고 부정한행위와 언론자유를 일상적으로 억압하는 회사 내부의 비민주적 질서를 민주적 질서로 변화시키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해야만 한다. 기자는 사회의 정신적 지도자다.기자는 정치권력뿐만 아니라 회사의 사주와 경영진과 간부들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독립해야 한다.기자는 사회적 상식과 건전한 세계관에 기반하여 형성된 기자적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기자는 자신에게 언론의 자유를 위탁관리시키고있는 전체 국민들의 이익과 요구에 봉사하는 언론인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류한호 광주대 교수
  • [씨줄날줄] 베스트 셀러

    출판계의 치부 하나가 또 불거졌다. 한 중견 출판사 대표가 대형 서점들의 베스트 셀러 목록이조작되고 있다고 실명으로 밝힌 것이다.수법이야 어디 가겠는가.향응이나 선물 공세였다.일부 출판사들이 출간한 책을대형 서점의 베스트 셀러에 올려 놓기 위해 담당자들에게향응을 제공하고 선물을 바친다는 것이다. 베스트 셀러를 좋은 책으로 알고 서슴없이 선택해온 독서애호가들의 배신감 어린 분노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1997년이후 출판사들의 사재기 악몽에 시달려 온 터였다. 일부 몰지각한 출판사들이 대학생이나 아르바이트 주부 등을 시켜 서울의 대형 서점에서 자사 출간 책을 무더기로 사들여 베스트 셀러 순위를 조작해왔던 게 폭로됐었다.주식시장에서 ‘작전’으로 특정 주가를 띄워 거액을 챙기는 수법을 원용한 셈이었다. 대형 서점들의 추천 도서 목록은 읽을 만한 책을 소개하는참고자료에 불과할 수도 있다.그러나 어쩌다 책 한권 읽는현실을 고려하면 마땅한 책 한권 고르기란 쉽지 않다. 우리의 독서량은 어른들이 1년에 9권 정도에 불과하다지않는가. 베스트 셀러 목록은 참고서가 아니라 교과서 역할을 하기 십상이다. 공부를 업으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독서는 가치판단 자료의 업데이트 작업이기도 하다.한권 한권 정제된 내용의 책이 추천되어야 할 당위가 여기에 있다. 베스트셀러 조작 ‘작전’을 펼쳤던 출판사들은 좋은 책을만들기보다는 ‘책’을 팔아 횡재나 해보겠다는 얕은 상업성을 솔직히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출판은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다.세상이 어려울수록 뜻있는 분들이 저마다 양서출판에 혼신의 힘을 다했던 일을 기억하기 바란다. 국민교육을 위한 의미있는 자료를 제공한다는 긍지와 사명감을 잊어서는 안된다.때문에 국가도 나름대로 행정적,제도적 배려를 해주고 있지 않은가. 서적 유통의 우월적 입장을 이용해 출판사들을 호령해온대형 서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많이 팔린 책 순위 매김이나 진열대 배치 등을 빌미삼아 책값의 할인율 확대를 강요하는 등 횡포를 부려왔음은 이미 알려진 비밀이다. 조작된 자료로 독자를 현혹해서는 안된다. 인터넷 서점이하루가다르게 독서인들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다.출판계와 서점업계는 이번 파문을 독서인들의 최후 통첩으로 새겨 들어야 한다. 정인학 논설위원 chung@
  • ‘타인의 취향’…‘다름’을 인정할때 사랑은 온다

    식사자리에서 지저분한 농담을 즐기는 사장 아저씨가 연극배우에게 반한다.그런데 이 남자,꽤 열심이다.그녀의 취향을 좇아 연극,미술 감상에 문학서적을 읽고 급기야 콧수염까지 밀어버린다.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Le gout des autres·14일 개봉)은 젊은이들의 발랄한 사랑이야기뿐 아니라 중년의 미묘한 감정도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가 될 수 있음을 여성감독아녜스 자우이가 직접 연기까지 하며 보여준다. 천박한 부르주아가 세련되고 낭만적인 노처녀 연극배우에게빠져 점점 변하는 과정은 웃기면서도 잔잔한 감정의 물결을진실하게 전한다.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보디가드와 바텐더,여자친구에 채이는 운전기사,남편에게 배신당하는 우아한 부인 등 사랑과 취향에 관한 여러 에피소드가 얽힌다. 영화는 결국 타인의 취향을 인정할 때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얘기를 전한다.마지막에는 독일 영화 ‘파니핑크’에서도 인상적인 주제가로 쓰였던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난 절대 후회하지 않아’가 흐르면서 실연의 아픔을 극복하는 웃음을보여준다. 일상에서 인생의 맛을 표현하는 코믹 대사와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표정연기는 무더위 속에서 사랑의 의미를 찾기에 손색없다. 윤창수기자 geo@
  • 韓·日 교과서 갈등/ 日本내 양심의 소리

    [도쿄 황성기특파원] 일본 언론과 학계,시민단체들은 일본 정부의 역사 교과서 재수정 거부가 발표된 9일 대부분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언론=도쿄신문은 “일본의 교과서 검정제도에 따르면 당연한 회답이라고 하더라도 한국과 중국 양국에 있어서는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을 방문 중인 일본 여당의 간사장이 ‘선물’로 들고 간 ‘신세기 교류 프로젝트’는 오히려 (한국 국민의 감정이라는)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보도했다. 신문은 “역사 담당의 교과서 조사관에는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측의 출판사인 후소샤(扶桑社) 집필자의제자가 들어 있었다”고 검정 과정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앞으로 (한·일의)전문가끼리 학문적인 견지에서자유롭게 서로 지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교과서를 좋게 하는 지름길”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교도(共同)통신도 “한·일 관계의 냉각이 장기화될 수 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하고 “양국 관계는 교과서 문제 외에도 영주 외국인 지방 참정권 부여 법안에 대한 일본의 소극적인 자세,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남쿠릴 해역의 한국 어선 조업 문제 등이 겹치면서 한국측의 반발,불신감이 증폭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학계=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교수는 “역사를쓸 때 주변국을 배려한다는 ‘근린제국조항’이나 무라야마 담화,한·일 공동선언 등 일본 정부의 공약에 비춰 보더라도 정부의 대응은 국제적인 신의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정부의 최대 책임은 교과서 검정제도하에서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주도의 교과서를 합격시킨 데있다”면서 “이 교과서를 용인한 사실 그 자체로 일본 정부의 견해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어 “러·일 전쟁에서 한국 병탄에 이르기까지 역사 기술의 명확한 오류와 중·일 전쟁에 대한 사실은폐는 ‘역사관의 차이’로는 설명되지 않는 사실인식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새 교과서 모임’의 교과서 채택 저지운동을벌이고 있는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 21’의 다와라요시후미(俵義文)사무국장은 “한·중 양국 정부가 지적하고 있는 오류의 대부분은 일본 국내의 역사학자,연구자나역사연구단체들도 잘못된 기술이며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한 부분”이라면서 “이것을 해석이나 표현의 문제로서 수정의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은 중대한 잘못”이라고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교과서가 채택된다고 한다면 일본은 아시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면서 “일본 각지의 교육위원회 등은 이 교과서를 채택하지않도록 다시 한번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marry01@
  • [기고] 보호받지 못하는 어린 영혼

    대중가수 박진영의 새 앨범에 수록된 섹스표현 곡들을 놓고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시각과 청소년 등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를 들어 제재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대한매일은 제재론자인 유해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과,옹호론자인이동연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 사무차장의 기고를 통해상반된 견해를 비교하는 자리를 마련한다.이 사무차장의 글은5일자 지면에 싣는다. 성을 노래하는 박진영 가수의 음반을 청소년들에게 유통시키는 것에 대해 찬반양론이 진행되고 있다.물론 우리는 창조주가 인간에게 주신 선물인 성의 즐거움도 노래의 소재가 될수 있다고 본다.가수나 음반회사의 음반제작의 자유,그리고책임있는 성인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문화상품을 구매할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 박진영 가수는 그 음반이 청소년들에게 교육적인 내용이라고 하지만,교육적 효과가 있으려면,아니 적어도 반교육적인영향을 주지 않으려면 성에 대해 바로 묘사해야 한다. 이 음반은 “나 그대 음음음 오늘 우리둘이서 음음음”(성행위를 묘사하는 신음소리)처럼 강렬한 가사와 충동적인 리듬을 담아 쾌락,오직 쾌락으로서의 성만 묘사하고 있다.쾌락은 성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님에도 불구하고.인격적 배려가없이 이루어지는 성은 모욕과 배신감,실망감만 남기는 폭력이 된다. 더구나 “사랑하는 우리에겐 못할 놀이가 없어.어떤 것도괜찮아 철들기 전에 시험해 보는 거야”라고 속삭이며 성행위를 하라고 권유하고 있다.이 노래를 듣고 아이들이 혼전성관계를 한다면 음반제작사와 가수는 그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아이들에게 뇌손상을 주는 흡연을 권장하는 것과 무엇이다른가? 우리는 이 음반을 ‘문화예술작품’으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을 소재로 하여 돈을 버는 상품이기도 하다.산업은 공동체에 해악을 주면서도 이윤추구를 할 수 있으므로 공정거래위원회도 필요하고 영상물등급위원회도 필요하다.영화나 비디오는 등급이 있지만 가요에는 등급이 아예 없어서 청소년들의 보호받을 권리를 보장할 시스템이 없다. 이번 기회에 가요등급제를 만들어야 한다.영상물등급위원회는 이 음반에 대해 우리가 긴급히 연소자이용불가 판정을 내려 주기를 신청하였으나 단지 ‘가능’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초등학생에게도 이 음반이 팔릴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문화는 인간,특히 다음세대의 영혼과 정신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엄청난 창조적 힘을 만들 수도 있고 자연환경에 대한 난개발 이상으로 파괴적일 수 있다.아직 자신의 권리를스스로 주장할 수 없는 약한 계층인 어린이와 청소년의 인권을 어른들이 보호해야 한다. 학부모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바로 키우기 위해 건강한 문화환경을 만드는 일에 나서야 한다.박진영씨처럼 재능있는 음악가가 뒤틀린 우리 사회를 위해,특히 청소년들을 위해 건강한 삶의 진실을 멋있게 노래해 주기를 갈망한다. 유 해 신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
  • 바리공주의 지극한 아버지 사랑

    지난해 ‘한국형 뮤지컬’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우루왕’(총감독 김명곤)이 오는 13일부터 22일까지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다시 오른다.지난해 1만6,000명의 관객을 동원한 화제작답게 올해도 짜임새가 갖춰져 있다.국립극장측이 “‘국악뮤지컬’이란 수식어에 걸맞을만큼 음악적 완성도에 더욱 신경을 쏟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국립극단 국립무용단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등 4개 전속단체가 함께 꾸미는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에 전통 ‘바리데기 설화’를 섞었다.동서양을 넘나드는 독창적 이야기 얼개부터 곳곳에 개성이 나타난다.배경은 옛날 태평성대를 구가하던 어느 왕국.금쪽같이 아끼던두 딸의 배신으로 미쳐버린 우루왕과,그 아버지를 낫게 하려고 ‘천지수’를 찾아 헤매는 막내딸 바리공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바리공주 역에는 국립창극단 단원인 박애리와 신인배우 이선희가,우루왕 역에는 뮤지컬배우 김성기와 판소리 이수자 왕기석이 각각 더블캐스팅됐다.명창 안숙선이 바리공주의 갈 길을 인도하는 어머니 길대부인으로 나와 폭포수처럼시원한 창을 들려준다.단체관람을 간다면 토·일요일이나공휴일이 좋다.30명 이상의 단체관객을 위해 극장측은 공연장 로비에서 무료 다과회를 갖는다.(02)2274-3507. 황수정기자 sjh@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