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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병자호란 다시 읽기] (13)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Ⅴ

    누르하치의 푸순 점령 직후, 명 조정의 신료들은 당장 병력을 동원하여 이 ‘괘씸한 오랑캐’를 공격하자고 했다. 하지만 명의 내부사정은 간단치 않았다. 만력제의 태정(怠政)과 황음(荒淫)에서 비롯된 난맥상은 명의 발목을 잡았다. 환관(宦官)들의 발호가 심각했고, 당쟁은 격화되었다. 재정은 고갈되었고, 그것을 타개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증세(增稅) 조처가 취해졌다. 민원(民怨)이 높아지고, 반란을 꾀하는 분위기가 퍼져갔다. 우여곡절 끝에 누르하치를 치기 위한 원정군은 편성했지만 영 미덥지 못했다. 명은 결국 조선과 예허에 손을 내민다. 병력을 내어 원정에 동참하라고 요구했다. 누르하치의 도전으로 촉발된 불똥이 조선으로 튀기 시작했다. ●광세( 稅)의 폐단, 명을 병들게 하다 만력제가 오랫동안 조정에 나오지 않고, 신료들을 접견하지 않으며, 그들의 상소나 건의에도 답하지 않자 자연히 환관들이 득세하게 되었다. 황제의 생각이나 명령이 오로지 환관을 통해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만력제는 향락과 토목공사에 필요한 재원(財源)을 환관들을 시켜 긁어 모았다. 환관들에게 흠차태감(欽差太監)이란 직함을 주어 전국으로 파견했다. 광감( 監), 세감(稅監), 염감(鹽監), 주감(珠監) 등 다양한 명칭의 태감들은 각지에서 백성들에게 명목도 없는 세금을 마구잡이로 강탈했다. 영세한 상인과 수공업자들에게 상세(商稅)를 긁어내고, 약간의 은화를 빼앗기 위해 민가를 철거했으며 무덤까지 파헤쳤다. 반항하는 백성들에게는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둘렀다. 환관들이 각지에서 참혹한 수탈을 자행하고 있다는 소식은, 베이징에 갔던 사신들을 통해 조선에까지 알려질 정도였다. 백성들은 아우성을 쳤다. 분노는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호북(湖北)에 파견되었던 환관 진봉(陳奉)의 패거리가 폭력을 휘두르며 수탈을 자행하자 백성들은 궐기했다. 그들은 진봉의 부하 16명을 붙잡아 강물에 던져버렸다. 운남(雲南)에서는 성난 백성들이 환관 양영(楊榮)의 숙소를 습격하고, 폭력을 자행한 양영의 패거리 200여명을 살해했다. 환관들의 발호는 요동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1603년 환관 고회(高淮)는 부하 수백명을 이끌고 요양(遼陽), 진강(鎭江), 금주(金州), 복주(復州) 등 요동 일대를 휩쓸었다. 그들은 민간에서 수십만냥의 은화를 강탈했고, 그 때문에 여염이 텅 비어버렸다. 17세기 초, 만력제가 환관들을 시켜 자행했던 수탈을 보통 ‘광세( 稅)의 화(禍)’라고 부른다. 무자비한 수탈 때문에 전국 각지의 상공업은 위축되고, 국가의 공적 세입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심은 조정으로부터 떠나고, 민변(民變)이라 불리는 저항운동이 각지를 휩쓸게 되었다. ●명, 고민 끝에 이이제이(以夷制夷)를 꾀하다 푸순의 함락과 장승음의 패전 소식이 알려진 직후부터 명 조정에서는 누르하치를 응징하기 위한 원정군 편성 문제를 논의했다. 하지만 ‘광세의 폐’로 말미암아 나라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여의치 않았다. 나라의 공식 금고인 태창(太倉)이 비어버린 상태에서 병력을 징발하고 군수를 조달하려면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만력제는, 내탕을 풀어 군자금에 보태라는 신료들의 거듭된 요청에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1618년 4월27일 직예순안(直隸巡按) 왕상항(王象恒)은 이미 일선에서 물러난 장수들 가운데 가정(家丁)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총병(總兵), 부장(副將) 등의 직책을 주어 요동으로 보내자고 했다. 가정이란 국가에 소속된 정규병력이 아니라 장수 개인이 사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군사를 말한다. 일종의 사병(私兵)인 셈이다. 임진왜란 당시 명군 사령관인 이여송(李如松)도 다수의 가정을 이끌고 조선에 들어 왔었다. ‘퇴역 지휘관’들이 거느린 가정을 활용하자는 왕상항의 주장은, 정규군 병력을 신속하게 동원하는 것이 어려웠던 명의 실정을 잘 보여준다.16세기 후반의 척계광(戚繼光)처럼 의지할 만한 현직 지휘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미 물러난 장수들이라도 불러들여야 했다. 윤 4월이 되자, 물러나 있던 지휘관들을 불러들이라는 만력제의 조칙이 내려졌다. 양호(楊鎬), 유정(劉綎), 이여백(李如栢), 왕국동(王國棟), 시국주(柴國柱) 등이 줄줄이 불려와 다시 기용되었다. 양호는 정유재란 당시 명군 사령관이었고, 유정과 이여백도 조선에 참전했던 장수들이었다.‘어제의 용사’들이 전투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같은 달 17일 호과급사중(戶科給事中) 관응진(官應震)이 ‘오랑캐를 제어하기 위한 세 가지 방책(禦奴三策)’을 내놓았다. 그가 제시한 방책의 핵심은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해 조선과 예허를 끌어들이자는 것이었다. 관응진은 후금이 북으로는 예허와, 남으로는 조선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사실을 중시했다. 그는 예허가 과거부터 누르하치와 첨예하게 대립해 왔던 사실, 조선이 임진왜란 당시 명으로부터 ‘구원받았던’ 사실을 상기시키고 두 나라를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예허로부터 군사들을 빌려 후금의 오른쪽을 치고, 조선으로부터 조총수(鳥銃手) 3000명을 징발하여 후금의 왼쪽을 공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형적인 이이제이책(以夷制夷策)이었다. ●조선과 예허는 고분고분한 오랑캐로 지칭 이이제이란 ‘오랑캐를 이용하여 오랑캐를 견제한다.’는 것이다. 요코야마 히로아키(橫山宏章)에 따르면 이이제이책은 중화(中華)가 와해될 위기에 처할 적마다 어김없이 나타났다고 한다. 막강한 북방민족의 공격에 시달렸던 송(宋)의 왕안석(王安石)과 사마광(司馬光), 서구와 일본의 군사적 도전에 쩔쩔맸던 청말(淸末)의 이홍장(李鴻章)은 물론 2차 대전 이후 소련을 이용하여 미국을 견제하려 했던 마오쩌둥(毛澤東)에 이르기까지 이이제이책은 중국의 전통적인 위기탈출 전략이었다. 관응진은 ‘어노삼책’에서 조선과 예허를 가리켜 ‘고분고분한 오랑캐(順夷)’라고 지칭했다. 명에 ‘고분고분한 오랑캐’를 이용하여 ‘도전을 일삼는 사나운 오랑캐’를 응징하자는 것이었다. 그같은 발상은 관응진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1618년 푸순 함락 이후, 명 조정에는 조야(朝野)의 지식인들로부터 누르하치를 제압하기 위한 방책들이 빗발쳤다. 그 내용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 오늘날 전하는 ‘주요석획(籌遼碩)’이다.‘요동을 도모하기 위한 큰 계책’ 정도의 뜻을 지닌 이 책에서도 적지 않은 지식인들이 조선을 이용하자고 강조했다. 이윽고 1618년 윤 4월27일 조선 조정에는 병부좌시랑(左侍郞) 왕가수(汪可受)가 보낸 격문이 도착했다. 왕가수는 먼저 명나라와 조선 사이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조선이 사람의 몸이라면 명은 그 머리이고, 조선이 나무라면 명은 그 뿌리’라고 했다. 이어 임진왜란 시기 명이 조선에 군대를 보내 일본군을 격퇴시킨 ‘은혜’가 있음을 상기시켰다. 임진왜란이 끝나갈 무렵부터 조선의 식자들과 명의 인사들 가운데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명군이 원군을 보냄으로써 ‘망해 가던 조선을 다시 살린 은혜’를 베풀었다는 것이다. 왕가수는 ‘재조지은’을 상기시킨 뒤, 본론을 이야기했다. 명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누르하치를 공격하는 데 동참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격문을 받는 즉시 군병을 정돈시켜 대기하다가 기일에 맞춰 나아가 토벌하는 데 실수가 없도록 하십시오.”라고 했다. 겉으로는 ‘요청’인 것 같지만 사실상 ‘명령’이었다. 왕가수의 격문을 받은 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고민에 빠졌다. 임진왜란이 끝난 지 20년, 광해군이 즉위한 지 10년 만에 찾아온 ‘위기의 순간’이었다. 왜란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은 상황에서 조선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명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 악연을 맺을 것인가? 거부하여 ‘재조지은’을 배신할 것인가? 푸순성을 삼켜버린 누르하치의 불길이 바야흐로 조선까지 밀려왔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블랙북

    블랙북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여성, 강철 같은 조국에 대한 충성심과 운명적 사랑에서 갈등하는 존재, 그리고 역사에 희생되는 숙명적 운명…. 매력적인 여성 스파이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들이다. 신분적 애매모호함이 주는 신비함과 섹시한 여성이라는 성적 코드가 결합한 여성 스파이는 항상 재미난 이야깃거리였다. 때문에 그녀들은 수많은 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블랙북’은 한때 ‘토탈리콜’,‘원초적 본능’으로 이름을 날리던 폴 버호벤(69)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그린 비극적인 전쟁이야기다. 전쟁은 기구한 운명을 낳고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특히 전쟁, 스파이, 유대인 학살의 삼중주를 이룬 2차 세계대전은 반세기를 넘긴 지금까지 세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폴 버호벤 감독은 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에서 끈질기고 모진 삶을 이어간 인물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가슴 졸이는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었다. 영화는 쫓고 쫓기는 긴장감과 섹시한 미인을 훔쳐보는 평범한(?) 첩보물이다. 하지만 블랙북은 선과 악의 도식적인 경계를 허물어 뜨렸다. 인간의 폭력성과 전쟁의 비참함에 초점을 맞춘 감독은 애초에 선과 악, 우군과 적군에 대한 도덕의 겉치레를 걷어내 차별화를 이루려 노력했다.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이른 시기. 네덜란드에 사는 전직 유대인 가수 레이첼(캐리슨 밴 허슨)은 쾌활하고 적극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낙천적인 그녀도 ‘대량학살’의 압박이 신변을 위협하자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곧 음모에 빠져 가족을 모두 잃고 만다. 네덜란드 반군의 도움을 받아 가까스로 살아남은 레이첼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어느덧 적군에 침투하는 스파이로 다시 태어난다. 뛰어난 미모의 레이첼은 적군 장교 문츠(세바스티안 코치)의 총애를 받으며 성공적인 스파이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임무에 앞서는 사랑의 감정은 어떤 것도 막을 수 없었다. 레이첼은 문츠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문츠 또한 그녀의 실체를 알지만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블랙북’은 전쟁이 끝난 시점에 만들어지는 새로운 폭력에도 시선을 보낸다. 저항군 안의 배반자와 독일군의 계략으로 레이첼은 되레 배신자가 돼 쫓긴다. 문츠는 더 악랄한 독일군 장교에게 덜미가 잡히는데, 이를 연합군은 합법적으로 용인해준다. 또한 10년 세월을 훌쩍 뛰어 이스라엘에 정착한 레이첼을 보여준다. 그 모습 위로 공습경보를 알리는 사이렌 소리가 퍼지고 이스라엘 군인들은 총을 든다. 전쟁이 인간의 본성인 듯 세대와 주체를 바꿔가며 쳇바퀴를 도는 이 시대를 시니컬하게 바라보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전체적인 구성은 보통의 첩보 영화 수준으로 평범해 긴박감이 다소 부족하고 레이첼 또한 머리를 쓰기보다는 옷 벗기에 치중해 보는 재미는 있어도 남는 것은 별로 없다.29일 개봉.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손학규 ‘중도 새판짜기’ 성사될까

    한나라당을 벗어나 고립무원의 동토(凍土)로 뛰쳐나간 손학규 전 경기지사는 탈당명분으로 내건 ‘중도·개혁세력 대통합’을 실현시킬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쉽사리 돌파구가 열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친정인 한나라당에선 ‘배신자’ ‘배은망덕한 철새 정치인’으로 몰아세우고, 탈당만 하면 환호를 보내며 몰려들 줄 알았던 범여권 인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냉담하다. 뿐만 아니라 그를 믿고 따랐던 캠프 측근들마저 등을 돌리거나 우물쭈물하고 있다. 경선준비위 대리인이었던 정문헌 의원과 비서실장으로 일했던 박종희 전 의원은 한나라당 잔류를 택했고, 최측근이던 김성식 전 경기도 정무부지사마저 거취 문제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정치권의 현실을 감안하면, 중도 성향의 오피니언 리더그룹이나 시민·사회단체 인사들과 연대하는 길밖에 없어 보인다. 손 전 지사측이 ‘선진평화연대’ 기치를 내건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진평화연대는 ‘수구 보수와 무능한 진보’가 아닌 대한민국의 선진화와 한반도 평화체제를 주도할 탈(脫)이념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세력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한다. 연대 전략도 과거처럼 특정 거물급 정치인과 그를 따르는 현역 의원 등이 신당의 깃발을 들고 세를 불리는 것이 아니라 비(非) 정치권인 시민사회·문화계·종교계·재계 등 각계 오피니언 리더들을 먼저 규합해 세력화한 뒤 정치권 인사들은 그 뒤에 합류토록 하는 방식이다. 한편 “손 전 지사와 함께하기 힘들다.”던 열린우리당 김근태 전 의장은 27일 “손 전 지사가 범여권과 협력하는 것을 배제할 필요는 없다.”고 입장변화를 밝혔다. 같은 당 김부겸 의원도 “손 전 지사의 결단이 좌절되지 않도록 여러 노력을 할 각오가 돼 있다.”고 힘을 실었다.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25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1985년 열렸던 ‘힘전’과 1987년 ‘반고문전’에서는 전시회를 봉쇄하려는 경찰들과 그림을 지키려는 작가들이 대치했다. 신촌, 정릉, 안성의 건물과 담벼락에 그려졌던 벽화들은 하룻밤 사이, 흰색 페인트로 지워지기도 했다.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 때문에 옥고를 치르기도 하고, 화가로서의 자격이 정지되기도 했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인천 계양구 효성동 ‘우리두리 지역아동센터’를 찾아간다. 학습 전문가인 정찬호 박사와 함께 공부방 아동들의 기초학력을 진단한다. 초등학교 4학년임에도 아직 한글을 익히지 못한 김준복 학생을 비롯, 학습태도의 개선이 시급한 5명의 아동을 선정하고 기초학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해결책을 알아본다.   ●연개소문(SBS 오후 8시45분) 드디어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로 향한다. 백제 윤충 장군은 김춘추의 부패한 사위 품석이 지키는 대야성으로 향한다. 고구려군은 당항성으로 진군한다. 주색에 빠져 있던 신라 품석은 부하들의 배신으로 성을 내주고, 품석과 김춘추의 딸 고타소는 참수된다. 김춘추는 소식을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하는데….   ●케 세라세라(MBC 오후 9시40분) 백화점 이벤트 홀에서 행사를 진행하던 태주는 자신의 실수로 팩 모델 한 명이 부족한 것을 알게 된다. 태주는 특설매장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은수를 생각해 낸다. 은수는 저녁을 사주면 하겠다고 말한다. 얼굴에 팩을 붙이고 쇼를 하던 은수는 얼굴이 아파도 태주를 생각하며 참고 견딘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부모의 이혼으로 큰아버지댁에 더부살이를 하게 된 훈은 최강의 학교로 전학을 간다. 차갑지만 잘 생긴 외모에 공부는 물론 까칠한 성격까지 두루 갖춘 최훈은 단번에 여학생들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훈의 일거수일투족이 강의 눈에 가시가 돼버리고, 둘의 관계는 꼬여만 가는데….   ●역사기행(KBS1 오후 11시) 17세기, 한 척의 배를 탄 제주도민 24명이 ‘호이안’에 표류한다. 이들은 당시 베트남 지배자인 우옌 푹 떤왕을 알현하고,21명이 생존해 1년 만에 귀국했다.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베트남 참전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하얀 전쟁’의 안정효 작가와 함께 호이안의 역사를 제주도민의 흔적을 따라 추적한다.
  •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병자호란 다시읽기] (11) 누르하치, 명(明)에 도전하다 Ⅲ

    누르하치가 만주의 패자(覇者)로 등장하기 전까지, 명이 상대하기에 가장 버겁고 까다롭게 여긴 대상은 예허였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누르하치가 하다, 호이파, 울라를 멸망시킴으로써 예허는 고립되었다. 명은 이제 예허를 다독여 누르하치의 후금을 견제하려 했고, 위기에 처한 예허도 명에 의지하여 생존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었다. 흔히 누르하치를 청 태조(太祖)라고 부르지만, 그가 애초부터 명에게 도전하려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명과 후금 사이의 현저한 국력 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명과 맞서는 것을 애써 피하려 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명, 예허와 결탁해 만주 견제 누르하치에게 복종과 배신을 거듭했던 부잔타이는 1613년 울라가 망하자 예허로 망명한다. 같은 해 9월, 누르하치는 예허에 세차례나 사자를 보내 부잔타이를 송환하라고 요구했다. 예허가 자신의 요구를 일축하자 누르하치는 4만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예허 정복에 나섰다. 다급해진 예허의 국주 긴타이시(錦台什)는 명에 사자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누르하치가 예허를 정복하고 나면 랴오양(遼陽)을 쳐서 수도로 삼고 개원(開原)과 철령(鐵嶺)을 목초지로 만들 것’이라는 ‘경고’까지 곁들였다. 명은 누르하치에게 사자를 보내 예허를 공격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한편, 병력 1000명을 예허로 파견했다. 누르하치를 견제하기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한 것이다. 황제의 ‘명령’을 접한 누르하치는 명에 보내는 국서에서, 과거 예허가 주동이 된 해서(海西)연합군이 자신을 먼저 침략했던 것과 부잔타이가 배신을 거듭했던 사실을 적고 자신의 예허 공격은 정당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명이 예허만 편드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누르하치가 국서를 들고 명군 주둔지인 푸순성(撫順城)까지 직접 가서 전달했던 점이다. 당시 누르하치는 명에게 여전히 공손한 자세를 보였던 것이다. 명과 정면으로 부딪히지 않으려는 누르하치의 바람과는 달리 명의 견제와 압박은 갈수록 커져갔다. 1615년, 명의 광녕총병(廣寧總兵) 장승음(張承蔭)은 시하(柴河), 무안(撫安), 삼차(三 ) 등지에 대대로 살았던 만주의 농민들을 내쫓고, 수확을 금지하는 조처를 취했다. 허투알라와 푸순 사이에 위치한 세곳은 누르하치가 공들여 경작하고 있던 땅이었다. 명은 경작과 수확을 막아 경제적 기반을 차단함으로써 누르하치의 숨통을 조이려 했던 것이다. 누르하치는 격렬하게 반발했다. 사실 그는 격분할 만했다. 누르하치는 1608년 푸순 지역의 명군 지휘관들로부터 과거부터 대대로 살아온 자신의 거주영역을 존중해 준다는 약속을 받아낸 바 있다. 당시 백마를 잡아 하늘에 맹서하고,‘만일 약속한 경계를 침범하면 침입자를 죽일 수 있고, 침입자를 그대로 두면 묵인한 사람이 재앙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웠다. 누르하치는 명의 사자를 만난 자리에서 장승음이 맹서를 어겼다고 성토하고,“대국이 소국이 될 수 있고, 소국이 대국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하늘의 이치”라며 ‘뼈 있는’ 말을 남겼다. 명과의 정면 대결을 암시하는 발언이었다. ●‘공격´ 주장 신료 말리며 역량 키워 1615년, 명이 일방적으로 예허의 편을 들고 경작까지 금지하는 조처를 취하자 누르하치의 신료들은 격앙됐다. 그들은 당장 명을 공격하자고 주장했다. 누르하치는 신중했다. 그는 신료들에게 ‘명을 치려면 하늘이 우리를 인정하여 도울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충분한 저축이 없기 때문에 명을 공격하여 약간의 승리를 얻어봤자, 백성들만 고달프게 될 뿐’이라고 공격론을 일축했다. 스스로에 대한 냉철한 진단이자 평가였다. 당시 아무리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해도 명은 여전히 대국이자 강국이었다.‘썩어도 준치’라고 했던가? 명의 인구는 만주보다 수백배나 많았고, 명의 대군은 만주가 갖추지 못한 화포(火砲)로 무장하고 있었다. 장승음의 ‘견제 조처’가 나온 직후의 ‘만주실록(滿洲實錄)’을 보면, 내실(內實)을 다지기 위해 애쓰는 누르하치의 모습이 부쩍 많이 나타난다. 만주의 각 니루(牛 )에서 장정 열명과 소 네 마리씩을 내게 하여 둔전(屯田)을 설치하고 경작에 힘쓰도록 한 것, 창고를 세워 식량을 저장하고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전담관원을 임명한 것, 신료들에게 쓸 만한 인재를 추천하라고 강조한 것, 백성들이 소송(訴訟)을 제기한 사안을 공정하게 처리하여 억울함을 없애라고 강조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 무렵 국가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누르하치가 보인 행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몽골과의 동맹관계를 더욱 굳게 했던 점이다.1614년 4월부터 1615년 1월까지 10개월 남짓한 기간 만주는 몽골과 모두 다섯 차례나 혼인관계를 맺는다. 1614년에는 홍타이지를 비롯한 누르하치의 네 아들들이 몽골의 자루트( 特)와 코르친(科爾沁) 부족의 딸들을 아내로 맞았다.1615년에는 누르하치가 코르친 부족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1617년 1월, 누르하치의 장인인 코르친 부족의 밍간(明安) 국주가 자신을 찾아온다는 소식이 오자, 누르하치는 왕비와 모든 신료들을 대동하고 허투알라에서 100리나 떨어진 곳까지 마중을 나갔다. 밍간은 누르하치의 극진한 대접을 받으며 허투알라에서 한달을 머물다가 돌아갔다. 이렇게 중첩된 사돈관계를 통해 우호를 유지했던 것은 만주에게 큰 힘이 되었다. 실제 1618년 누르하치가 명에게 선전포고하고 푸순을 공략할 때, 원정군 가운데는 그의 몽골인 사위들도 끼어 있었다. 당시 몽골은 남쪽으로 명, 동쪽으로 만주 사이에 위치한 전략 요충이었다. 누르하치가 명에 대한 섣부른 공격 대신 몽골을 회유하고 우대하는 정책을 취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7대 원한´ 내걸고 명에 선전포고 누르하치는 명과의 격돌을 피하면서 내실을 다지려 했지만 상황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가 후금(後金)의 건국을 선포하고, 칸(汗)으로 즉위했던 1616년. 명 조정은 광녕 순무(巡撫)로 이유한(李惟翰)이란 인물을 임명했다. 광녕 순무는 사실상 요동의 군사업무를 책임지는 자리이자, 누르하치 등 여진 부족들과 교섭하는 최고위급 ‘채널’이었다. 누르하치는 이유한이 새로 부임한다는 소식을 듣자 신료 강구리(綱古里)와 팡기나(方吉納)를 인사차 파견했다. 그런데 이유한은 강구리를 비롯한 후금의 사절 11명을 쇠사슬로 묶어 구금해 버렸다. 이어 사자를 보내, 누르하치가 경계를 넘어온 한인(漢人)들을 죽인 것을 질책하고 ‘한인 살해’에 가담한 자들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누르하치는 과거 ‘월경한 자들을 죽이지 않으면 재앙이 자신에게 미친다.’고 비석에 새겼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사자를 설득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결국 광녕에 억류된 강구리 등을 살리기 위해 편법을 쓴다. 후금이 구금하고 있던 예허의 포로 10명을 ‘한인 살해자’로 이유한에게 넘겼던 것이다. 강구리 등은 약속대로 풀려났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누르하치는 명을 공격할 결심을 굳히게 된다.1618년 4월13일. 누르하치는 신료와 장수들을 모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누르하치는 그 자리에서 명을 공격해야만 하는 ‘일곱가지 원한’, 이른바 칠대한을 제시했다.1583년, 이성량이 자신의 부조(父祖)를 살해했던 것이 첫 번째 원한이었다. 나머지 여섯 가지는 명이 예허를 편든 것, 맹서를 어기고 한인들의 월경을 방조한 것, 만주인들을 세 주거지에서 내쫓고 경작과 수확을 금지한 것 등이 골자였다. 명이 자신과 후금을 능멸하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이윽고 제천의식이 끝나자 기병과 보병 2만명으로 편성된 원정군이 푸순성을 향해 진격했다. 바야흐로 동아시아 전체를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던 명청교체(明淸交替)의 서막이 올랐던 것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꽃차로 봄을 마셔요

    꽃차로 봄을 마셔요

    기자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활짝 핀 봄꽃 내음을 앞서서 느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봄 내음을 가득 담은 꽃차를 마시는 것. 그윽한 향기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꽃차를 한 모금 입 안에 머금으면, 어느덧 내 안에 봄이 찾아와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블로그 서핑을 하던 중에 꽃이 피는 차를 보고 너무 예쁘고 신기해서 바로 구입했다는 직장인 서미숙 씨(28세). 투명한 유리 티포트에 차를 한 송이 넣고 끓는 물을 부으니 차가 우러나면서 안에 감춰져 있던 꽃이 피어났다. 천천히, 잎이 벌어지고 그 속에 있던 붉은 꽃잎이 피어나는 모습에 그만 반해버렸단다. 피로가 찾아오는 오후 시간, 꽃차를 앞에 놓고 그 향기를 맡다 보면 뻣뻣했던 몸도 이완되고 그 향만큼의 여유가 찾아온다.꽃차는 시각, 후각, 미각을 모두 만족시키는 차이다. 꽃차를 마실 때는 먼저 눈으로 꽃을 즐긴 다음, 코로 향기를 음미한다. 코로 향을 마시는 동안 꽃잎이 밑으로 가라앉으면, 이때 혀끝을 차로 가져간다. 혀끝을 통해 온몸으로 향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 시각과 후각을 거쳐 마지막에 미각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로 꽃차의 묘미이다. 야생차 전문가 송희자 씨는 <마음 맑은 우리 꽃차>라는 책에서 꽃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맨처음 꽃차를 우릴 때는 화려함으로 마시고, 두 번째는 그윽함으로 마시고, 세 번째는 빛바랜 아름다움으로 마신다. 네 번째는 순수함으로 마시고, 마지막으로 자연이라 생각하고 마시게 된다.”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만 마시지 말고 여러 번 우려 꽃이 변하는 과정과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라고 당부한다. 꽃차를 집에서 제대로 즐기려면 꽃이 우러나면서 피는지 잘 알아보고 구입하는 것이 좋다.찔레꽃, 국화꽃, 매화꽃 등은 맛과 향, 색이 모두 있어 좋으나, 향이 안 나는 꽃차도 있기 때문이다. 꽃차는 두세 번까지 우려 마실 수 있는데, 뜨거운 물을 부으면 더욱 잘 우러난다. 워머 위에서 온도를 떨어뜨리지 말고 데우면서 우리면 더욱 맛있는 차를 마실 수 있다. 꽃차는 잎녹차와 달리 거름망이 따로 필요하지 않으므로 눈으로 보면서 즐길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유리 티포트를 권한다. 티포트를 들어올려 아래에서 봤을 때 꽃차가 우러나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고. 일은 많은데 손에 잘 잡히지 않고 머리만 복잡한 날, 인스턴트 커피나 티백 녹차 대신 꽃차 한 잔으로 소박하지만 화려한 삶의 여유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 복잡하고 긴 문장 속의 쉼표처럼, 우리 삶의 아름다운 쉼표 하나가 되어줄 것이다. 참, 몸이 차가워서 녹차가 잘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꽃차가 더욱 좋다. 널 향한 내 마음이야_ 꽃이 피는 차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을 때, 꽃이 피는 차를 함께 마셔보는 건 어떨까. 잎이 벌어지고 그 속의 꽃잎들이 하나 둘 피어날 때, 이렇게 말해보자. “널 향한 내 마음이야.” 이 차는 공예차라고도 부르는데, 꽃을 녹차잎 등으로 둥글게 말아놓아, 물을 부으면 꽃이 피어나도록 한 것이다. 쟈스민, 참나리꽃, 한련화, 황국화 등 구성이 다양한데, 그 배합에 따라 금상첨화, 단계표향, 한련만화, 말리백화, 백화쟁염이라 부른다. 과음한 다음날 해장국 대용_ 매화차 술 먹은 다음날 물을 마시고 마셔도 속이 풀리지 않을 때, 매화차를 마시자. 매화차는 갈증을 해소하고 숙취를 없애며 기침, 구토 증세를 다스린다. 황사 때문에 기관지가 답답하거나 신경과민으로 소화가 잘 안될 때, 목에 이물질이 걸려 있는 것 같은 증상에도 효과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_ 백화차 면접에서 떨어졌을 때, 가까운 이에게 배신 당했을 때, 하는 일마다 잘 풀리지 않을 때, 내 안의 화가 불쑥불쑥 솟아오를 때 이 차를 마셔보자. 백화차는 봄의 동백꽃과 매화로 시작해 개나리, 진달래 온갖 과수의 꽃과 긴 여름의 붉은 홍화, 가을의 노란 국화, 겨울 문턱의 녹차꽃으로 마무리하는 100여 가지의 꽃을 배합한 차이다. 사계절 피고진 꽃들이 모두 모여 내는 오묘한 맛과 향은 달면서 쓰고, 매우면서도 시원한 삶의 맛을 닮았다. 또 손으로 집을 때마다 비율이 달라지니 그 맛을 예측할 수 없는 것도 닮았다.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해 피로 회복과 혈액 순환, 피부 미용, 면역기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차다. 미녀는 장미를 좋아해_ 장미꽃차 장미꽃차는 어혈을 풀어주고 간과 위의 통증을 완화시켜 준다. 향이 좋을 뿐 아니라 어혈성 생리통에 좋다고 하니 여성들에게는 딱 좋은 차다. 장미는 비타민 C가 레몬의 17배나 된다. 장미꽃차는 몸 안의 활성산소와 스트레스를 동시에 해소시켜 주고 공복에 마시면 변비에 효과적이다. 내여자의 두통을 없애고 싶다_ 국화차 ‘내 여자의 두통을 없애고 싶다’면 약국으로 달려가는 대신 정성껏 우린 국화차 한 잔을 내어주자. 국화꽃은 몸을 가볍게 하고 위장을 평안하며 하고 감기, 두통, 현기증에 좋다. 말린 국화꽃을 베갯속으로 하는 것은 두통에 좋아서다. 또한 혈압을 낮추고 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서 한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월간[샘터]2007.3
  • [손학규 탈당이후] 한나라 “먹던 우물에 침 뱉어”

    “15년 동안이나 마시던 우물에 침을 뱉고 나갔다.”,“단물 빨아먹은 뒤 등에 칼을 꽂고 나갔다.” 한나라당은 20일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격한 어조로 맹비난했다. 전날 손 전 지사의 탈당 선언에 당혹해하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특히 손 전 지사가 탈당의 변을 통해 한나라당을 구태정치의 온상이자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주인 행세를 하는 정당으로 폄훼한 데 대해 “배신감을 넘어 인간적 자괴감까지 느낀다.”고 몰아세웠다. 한나라당이 ‘손학규 때리기’를 본격화한 것은 손 전 지사에 대한 배신감뿐 아니라 초기에 ‘싹’을 자르지 않으면 ‘대권 3수’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단일후보로 부각되기 전에 ‘배신자’ 내지는 ‘철새’의 굴레를 씌워 단호히 응징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날 한나라당 고위당직자회의는 손 전 지사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는 “손 전 지사의 탈당은 명분도, 납득할 이유도 없으며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면서 “한나라당에서 장관, 경기지사를 한 분이 떠나면서 남아 있는 사람들의 등에 칼을 찌르고 나간 데 대해 참으로 비통한 심정을 금할 길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손 전 지사는) 군정의 잔당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가 주인 행세를 한다고 했는데 그게 누구인지 분명히 밝히라.”고 요구했다. 심재철 홍보기획본부장은 “‘내가 주인이고 강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 분이 열흘 만에 말을 뒤집고 왜 나갔느냐. 손 전 지사 발언은 열흘도 못 가는 ‘손언십일변’인 것 같다.”고 비꼬았고,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은 “대권 욕심만을 위해 정치 도의를 저버리는 사람에게 하늘은 대권을 주지 않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힐난했다. 유기준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상황이 불리하면 탈당하는 것이야말로 낡은 정치의 전형”이라며 “15년 동안 먹던 우물물에 침을 뱉는 비신사적 행위에 대한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한나라당은 또 손 전 지사가 ‘말바꾸기’와 ‘식언(食言)’을 통해 당을 기만했다며 그간 손 전 지사의 발언을 조목조목 정리해 공개했다. 한편으론 범여권의 ‘손학규 편들기’가 공작적 차원에서 비롯됐다는 식의 경계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 원내대표는 “손 전 지사의 탈당에는 국민적 의심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서 “범여권의 지도부라는 사람들이 즉각 환호작약하고 나서는 태도야말로 공작정치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연어가 고향에 돌아온 듯 행복”

    “5년 만에 스튜디오 녹화를 하니 마치 연어가 고향에 돌아온 느낌처럼 행복합니다.” 케이블TV 토크쇼로 방송을 재개하는 서세원(51)이 20일 연예정보 케이블채널 YTN STAR의 2007년 상반기 개편설명회에서 복귀 소감을 밝혔다. 서세원은 이 채널에서 오는 29일부터 매주 목∼토요일 오후 1시 ‘서세원의 生쇼’를 진행한다. 서세원은 “오랜만에 시작하는 방송이라 긴장했는데 막상 녹화를 해보니 예전과 느낌이 똑같았다.”면서 “그동안 방송하던 시절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깨달았으며, 고난을 딛고 다시 시작하는 만큼 가벼운 웃음보다는 깊은 생각을 전달할 수 있는 방송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2002년 이른바 ‘연예계 비리사건’으로 방송활동을 중단했던 서세원은 지난 연말에도 자신이 대표로 있던 회사의 공금횡령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등 구설수에 시달렸다. 2005년에는 SBS 라디오를 통한 복귀설이 퍼지기도 했으나 여론의 질타로 무산된 바 있다. 이와 관련, 그는 “현재 사업은 모두 정리한 상태이며, 그동안 적자도 많이 나 스스로 사업가로서는 자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요즘도 여기저기서 동업 제안이 들어오지만 앞으로는 오직 방송활동에만 전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통 물의를 빚은 연예인은 6개월에서 1년이면 복귀하는데 나는 5년이 지났는데도 부정적 여론이 많다.”며 “하지만 그만큼 시청자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배신감도 커서 그런 것이라 생각해 앞으로는 방송 외적인 일에는 연루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자신에 대한 몇몇 언론사 보도를 거론하며 “사실무근인 기사들 때문에 소송을 하는 것도 이제 지쳤다.”며 “잘못이 있었다면 용서해 주시고 앞으로는 연예부 기자만 만나게 됐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손학규 탈당 이후 호남 민심 “한나라 대항마”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을 바라보는 광주·전남 민심은 ‘호의적’이다. 전북지역은 ‘기대반 우려반’이라는 반응이다. 먼저 전남·광주지역 주민들은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한나라당에 맞설 마땅한 후보가 드러나지 않아 침묵해 오던 터라 이러한 움직임은 더욱 확연해 보인다. ●광주·전남선 판도변화 예상 ‘참여정부=호남정권’이란 생각이 사라진 현재 손학규 전 경기지사를 ‘대안’으로 보는 분위기이다. 차기정부 탄생에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전통적으로 진보성향을 보여온 이 지역은 한나라당 후보보다는 손 전 지사를 심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끼고 있다. ‘참여자치21’ 김상집 대표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한나라당을 뛰쳐나온 것은 신선한 충격”이라며 “손 전 지사가 구태정치를 벗어나 민심을 헤아리는 큰 인물이 됐으면 한다.”고 지역 민심을 전했다. 전남 장성군 황룡면 월평리 김동우(44) 이장은 “한겨울에 땀을 뻘뻘 흘리며 농민들과 아픔을 함께한 그가 대선에 출마한다면 팔을 걷어붙이고 돕겠다.”고 말했다. 지역 신문사의 한 편집국 간부는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지지율이 가장 앞섰으나, 손 전 지사의 부각으로 판도 변화가 예상된다.”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전북지역 분위기는 광주·전남과 비슷하다. 고건 전 총리 불출마 선언으로 갈 곳을 잃고 방황했던 민심이 어느 정도 가닥을 잡고 있다. 그러나 갈 길이 멀고 변수도 많다는 시각이다. 그동안 전북지역에는 ‘참여정부의 전북 홀대’ 분위기가 팽배해 있었다. 이에 따라 이명박 전 시장에 대한 지지율이 예상 외로 높다. 그러나 손 전 지사가 탈당과 함께 범여권 후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일단 한나라당에 맞설 대항마가 출현했다는 데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손 전 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한나라당 주자와 맞붙게 되면 동서대결 구도로 가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다는 성급한 예측도 나오고 있다. ●“미래세력 결집할것” 자영업자인 윤모(40)씨는 “김진명의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가 절반은 맞아 들어가는 것 같다.”며 “젊은 층들은 반기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하지만 손 전 지사가 노무현 대통령의 후계자로 비쳐지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는 없다는 인식도 있다. 한 번 배신 당했으면 됐지 두 번 당하지는 않겠다는 논리다. 여권이 계파에 따라 핵분열을 계속하고 있어 손씨가 범여권 후보가 되기까지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한다.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손 전 지사가 개혁, 평화, 미래세력을 결집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도 경선을 통과할지에 대해서는 우려하기도 했다. 전주 임송학기자 광주 최치봉기자 shlim@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세계 세계인(YTN 오전 10시40분) 5000년의 역사를 지닌 중동의 전통 화장술인 헤나 문신이 아랍에미리트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헤나 문신은 영구적이지 않아 부담이 없고 독특한 아랍문화도 체험할 수 있다. 도형, 꽃, 동물 등 디자인이 다양하고 신체 어디에나 가능하다. 헤나 문신은 이제 당당한 패션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큐10(EBS 오후 9시50분) 비잔틴제국의 정신적 토대가 된 그리스정교가 어떻게 발전했고 또 어떤 문화유산을 남겼는가를 살펴본다. 비잔틴제국의 초기 6세기쯤에 지어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원 가운데 하나인 카타리나 수도원을 방문, 수도사들이 어떻게 주변의 이슬람 세계와 공존해 왔는지도 알아본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SBS 오후 6시50분) 특별 프로젝트 소아비만편. 열두 살 장원이와 열한 살 선경이. 이들의 정확한 몸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검사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도대체 얼마나 많이 먹기에 어린 나이에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비만을 불러온 충격적 원인과 그 해결을 위한 비법을 알아본다.   ●나쁜여자 착한여자(MBC 오후 7시45분) 소영은 말자에게 저녁을 사겠다며 건우와 서경이 식사를 하고 있는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말자는 건우가 서경의 옛 연인이며 요즘도 만나고 있다는 소영의 말에 놀란다. 배신감에 주저앉고 만 말자는 어쩔 줄 몰라하고, 소영은 웃는다. 한편 넋이 나간 세영은 무작정 길을 걷다가 여관으로 들어간다.   ●놀라운 아시아(KBS2 오후 8시55분) 몽골 고비사막에서 1년에 단 한번 열리는 낙타축제. 몽골 낙타와 함께하는 흥겨운 축제의 한마당을 소개한다. 일본에는 지금 초미니 열풍이 불고 있다. 조리공간이 30㎝ 밖에 안 되는 도쿄의 네 평짜리 스테이크 하우스에서부터 공중전화부스 크기의 초소형 쌀집까지 일본 초미니 하우스를 공개한다.   ●생로병사의 비밀(KBS1 오후 10시) 아무런 증상 없이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질환인 대동맥류. 어느 날 갑자기 파열돼 생명을 위협하기 때문에 ‘몸속의 시한폭탄’이라 불린다. 파열되기 전까지는 통증이 없어 숨겨진 대동맥류 환자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대동맥이 부풀어 오르는 원인과 그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 [열린세상] 300/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의 왕 크세르세스의 수십만 대군을 테르모필(뜨거운 문)의 협곡에서 저지했던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와 300인의 전사.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침공을 맞았을 때, 레오니다스는 “스파르타가 멸망하거나, 아니면 스파르타의 왕이 죽을 것”이라는 신탁을 받았다고 한다. 헤라클레스의 후예는 물론 후자를 운명으로 선택한다. ‘300’은 바로 이 전설적인 전투를 다룬 영화다. 아니나 다를까, 페르시아의 후예들이 이 영화를 보고 발끈했다고 한다. 이란 대통령의 문화정책 보좌관은 “이 영화가 역사적 진실을 왜곡했을 뿐 아니라 이란을 모욕하고 있다.”고 말했고, 이란의 유력한 신문들 역시 “할리우드가 이란에 전쟁을 선포했다.”거나,“미국의 대외정책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하며 격앙된 입장을 보였다. 사실 이 영화를 보며 나 역시 비슷한 인상을 받았다.“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대사는 미국의 전투적 우익들이 즐겨 사용하는 어법. 스파르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런 대사들의 바탕에 ‘가상의 적을 향해서는 선제적, 공격적으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깔려 있음을 모르고 이 영화를 보려면 정치의식이 어지간히 무뎌야 한다. “파병을 해야 한다.”는 왕비의 대사는 수렁에 빠진 이라크 미군을 위해 병력을 증파하라는 주문일 수도 있고, 크세르세스의 후예들을 혼내주기 위해 페르시아만에 군대를 보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전쟁 대신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는 이는 적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테론 의원이 되고, 자국 군대가 밖에서 싸우는 상황에서 반전운동을 하는 이들은 페르시아군에게 우회로를 알려준 배신자 에피알테스가 될 판이다. 영화 ‘300’에 깔려 있는 멘탈리티는 이라크전 4주년을 맞아 워싱턴 거리로 몰려나온 찬전론자들의 피켓 위에 고스란히 적혀 있다.“힘을 통한 평화를”,“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자유주의자들은 적을 돕고 있다”. ‘300’의 바탕에 깔려 있는 무의식은 이 전투적 우익들이 들고 나온 피켓 위에 적혀 있다. 대한민국의 어느 모자라는 평론가는 이 영화에 “병역 기피자들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는 평으로써 우울하던 내게 오랜만에 폭소를 선사해 주었다. 페르시아 전쟁을 ‘동양의 전제주의에 대한 서양 민주주의의 승리’로 해석하는 틀은 역사가 깊은 편견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민주주의 역시 노예제에 기초해 있었다. 거기서 자유민들 사이에서나마 민주주의가 존재했던 것은 역사적으로 선진적 현상이라기보다는 문자문화의 도입이 늦어 구술문화 단계에 있었던 그리스 사회의 후진성의 결과였다. 그게 나중에 운 좋게 인류의 훌륭한 문화유산이 된 것일 뿐. 영화 속에 스파르타인들이 아테네인들을 ‘게이’라고 무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사를 들으며 전쟁으로 지켜야 한다는 미국의 그 ‘자유’가 과연 아테네를 닮았나, 스파르타를 닮았나 하는 물음이 떠올랐다. 약한 아이를 죽여 버리는 스파르타의 관습은 나치 독일의 우생학을 닮았고, 일곱 살부터 전투훈련을 시키는 스파르타의 제도는 유치원 아이들에게 소총 들고 달리게 하는 북조선 군사문화를 닮았다. ‘자유’를 생명으로 한다는 미국이 이제 와서 스파르타의 전체주의를 국가의 이상으로 여기게 된 것은 매우 이상한 역설이다.‘300’은 컴퓨터 생성 이미지로 된 새로운 유형의 정치의식, 즉 역사와 신화가 한데 어우러진 디지털 시대의 ‘판타지형 정치의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 그냥 백인우익 마초 근성을 비웃으며 디지털 기술의 미학성을 즐기면 될 일이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병자호란 다시 읽기] (10) 누르하치,명(明)에 도전하다 Ⅱ

    건주여진을 통일하고, 해서여진과 몽골의 연합군마저 물리친 누르하치의 기세는 멈추지 않았다. 누르하치는 하다, 호이파, 울라 등 해서의 여러 부족들을 강온(强穩), 양면으로 통제하여 가장 강한 예허부(葉赫部)를 고립시키는 정책을 취했다. 당시 해서여진이 누르하치에게 맞서려면 4부 사이의 단결이 절실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 사이의 알력 때문에 누르하치에 대해 연합전선을 펼 수 없었다. 하다, 호이파, 울라는 차례대로 누르하치에게 각개격파되었고, 혼자 남은 예허는 결국 명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누르하치는 예허의 그 같은 전략을 꿰뚫었다. 그는 해서여진을 공략하는 동안, 자신을 견제했던 명에 몸을 낮추었다. 명의 견제를 받아들이는 태도를 취하여 명분을 축적하고, 내실을 다졌다. 결정적인 기회를 엿보기 위해 숨고르기를 했던 것이다. ●하다와 호이파를 멸망시키다 1599년 하다의 국주(國主) 멩게불루는 예허와의 갈등으로 전쟁을 하게 되자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멩게불루가 셋째아들을 볼모로 보내자 누르하치는 2000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하다를 원조하려 했다. 다급해진 예허는 개원(開原)에 주둔한 명군 지휘부를 움직여 멩게불루를 질책했다. 누르하치와 동맹을 맺은 것을 철회하라고 요구하고, 한편으로는 멩게불루에게 자신을 딸을 아내로 주었다. 멩게불루는 예허의 요구를 받아들여 누르하치와의 동맹을 철회했다. 누르하치와 예허, 명 사이에 끼여 있는 약소국의 ‘눈치보기’였다. 격분한 누르하치는 하다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멩게불루를 사로잡았다. 그러자 명이 개입했다.1601년 명의 만력제(萬曆帝)는 사신을 보내 누르하치를 질책하고, 하다의 유민들을 멩게불루의 아들 우루구다이(武爾古岱)에게 반환하라고 강요했다. 누르하치는 명의 요구에 따라 유민들을 송환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예허가 하다를 공격하여 우루구다이를 자신의 세력권에 편입시켰다. 누르하치는 명에 서신을 보내 항의했다. 자신이 하다를 격파한 것은 문제삼고, 예허의 침략은 그냥 넘어가는 이중적 태도를 따졌다. 하지만 명에 대해 정면으로 반발하는 것은 삼갔다.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호이파를 정벌하는 과정도 하다의 경우와 유사했다.1607년 9월, 호이파의 신료들이 모반하여 예허로 귀순하자, 국주 바인다리는 누르하치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면서 7명의 볼모를 보내왔다. 그러자 예허는 바인다리에게 “누르하치에게 볼모 보낸 것을 취소하면 귀순한 자들을 송환하겠다.”고 제의했다. 바인다리는 예허에게 속아 누르하치에게 다시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누르하치는 결국 정벌에 나서 바인다리 부자를 살해하고, 호이파를 병합했다. 예허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 ●울라 격파와 조선에 미친 파장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해서 부족 가운데 가장 늦게까지 살아남았던 것은 울라였다.1596년, 울라에서 내분이 일어났을 때 누르하치는 자신이 억류하고 있었던 부잔타이(布占泰)를 송환하여 국주로 즉위시킨 바 있다. 부잔타이는 누르하치의 은혜에 감사하여 혼인 관계를 맺고 동맹을 유지했다. 하지만 그는 수시로 향배를 바꾸어 배신과 복종을 반복했다. 부잔타이는 국주가 된 이후 모두 7차례나 누르하치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누르하치 또한 자신의 딸을 포함한 세 명의 여인들을 부잔타이에게 아내로 주어 다독였다. 부잔타이는 끝내 누르하치와 예허 사이에서 양단을 걸치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누르하치가 압박하여 곤경에 처하면, 그것을 벗어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조선에 손을 내민 것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1610년, 누르하치의 압박 때문에 위기에 처하자 부잔타이는 조선에 사신을 보내 직첩(職帖)을 하사해주고 교역을 허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울라의 세력은 두만강 너머까지 미치고 있었는데 광해군(光海君)은 부잔타이의 요구를 일부 수용했다. 그에게 직첩을 주고, 관복을 하사했다. 광해군의 의도는 그들을 회유하여 두만강 너머에서 벌어지고 있던 상황을 탐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해군의 의도는 맞아떨어졌다.‘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를 보면 당시 조선 조정은 누르하치와 해서 부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던 격변의 추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1610년 2월14일의 경우,‘이 오랑캐가 겉으로는 누르하치와 화해하고 있으나 속으로는 사이가 좋지 않은 형상이 있다. 예허와의 중간 길이 끊기고, 교역의 통로가 막혔기 때문에 우리나라 변방에서 교역하기 위해 우리의 의도를 떠보는 것이다.’라는 대목이 있다. 참으로 정확한 정세 판단이었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이 같은 정보를 기초로 누르하치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했다. 나아가 곧 닥쳐올 ‘누르하치와 명의 대결’이라는 파장에 대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팔기제(八旗制)를 완성하다 누르하치는, 향배가 무상했던 부잔타이를 공격하여 1613년 마침내 울라부를 멸망시켰다. 예허만 빼놓고 해서여진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누르하치는 이윽고 1616년, 국호를 아이신(金)으로 고치고, 칸(汗·한)으로 즉위했다. 바야흐로 12세기 한족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아구다(阿骨打)의 위업을 계승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제 지배하는 종족이 다양해지고, 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통치 체제가 필요했다. 주목되는 것은 바로 팔기제(八旗制)였다. 팔기제는 니루(牛)라는 만주족 고유의 조직에서 기원했다. 만주인들은 수렵 등을 나갈 때 10명을 한 조로 삼고 그 가운데 한 사람을 우두머리로 뽑아, 그를 니루라고 불렀다.‘니루’란 ‘큰 화살’을 뜻한다. 누르하치는 성년 남자 300명을 1니루로,5개의 니루를 1자란(甲喇)으로, 다시 5개의 자란을 1쿠사(固山)로 편제했다.1쿠사는 결국 7500명인 셈인데 그것을 한자로는 기(旗)라고 했다. ‘기’는 군사조직이자 정치, 사회조직으로 모든 만주인은 예외 없이 여기에 소속되었다. 각 기에는 고유한 깃발이 있는데 황색, 백색, 홍색, 남색만으로 제작된 것을 정기(正旗), 황색, 백색, 남색 깃발에 홍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과 홍색 깃발에 백색의 테두리를 두른 것을 양기(旗)라고 한다. 1616년 누르하치는 본래 4기였던 것을 8기로 확충했다. 해서여진을 통합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귀순해 오는 한족과 몽골족이 늘어나면서 한군팔기, 몽골팔기가 등장했다.“나가면 병사가 되고 들어오면 인민이 되는(出則爲兵 入則爲民)” ‘군민일체’,‘군정일체’의 팔기제의 효용성은 엄청났다. 평소 일상 생활과 전쟁에 동시에 대비할 수 있게 편제된 팔기제 아래서 후금(後金)의 백성들에 대한 통제력과 전투 능력은 획기적으로 향상되었다. 당시 쇠망의 조짐이 뚜렷했던 명군이, 조직화된 팔기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실제 팔기는 1644년, 청이 베이징으로 입성한 뒤에도 중원(中原)을 제압하고 통치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중원 장악 이후, 팔기에 소속된 사람들을 기인(旗人)이라 불렀는데 그들은 별도의 호적에 편입된 특수 신분이 되었다. 그들은 기지(旗地)라 불리는 토지를 하사 받고, 그들만을 위한 독자적인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렸다. 중원 입성 이후 기인들은 오로지 만주어를 익히고 궁술(弓術)을 연마하여 관리나 군인으로 등용되었다. 다른 농공상의 직업을 갖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특권도 컸지만 의무도 명확했다. 기인들에게 만주어를 익히게 하고, 궁술을 연마시킨 것은 결국 만주족이 지닌 정체성과 야성(野性)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수십만에 불과한 만주족이 1억 이상의 한족을 270여년이나 통치할 수 있었던 비책이기도 하다. 요컨대 1616년, 팔기제를 완성하면서 누르하치는 명과 일전을 겨룰 수 있는 확고한 기반을 마련했던 셈이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0) 고려 태조의 사당 숭의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0) 고려 태조의 사당 숭의전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훗날 조선의 태종이 되는 이방원에게 개성의 선죽교에서 참살된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정몽주는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는 의창(義倉)을 정비하여 빈민을 구제하고, 함경도에 침입한 왜구를 격퇴시키는가 하면, 긴장상태이던 명나라와의 외교관계를 정상화시킨 유능한 관료이자 뛰어난 시인·학자였지요. 하지만 정몽주에 대한 세상의 존경심이 깊을수록 역성혁명(易姓革命)을 도모하던 이성계 일파가 느끼던 위협도 커졌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정몽주는 이성계를 추대하려는 모의가 감지되자 그 일파를 숙청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고 하지요. 새로운 왕조를 여는 데 걸림돌이었던 정몽주는 결국 제거됐습니다. 하지만 조선왕조가 세워진 다음 정몽주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왕조라지만, 출범하는 순간 ‘기존 왕조’가 되어버리는 것이 섭리이니까요. 조선에도 왕조를 지키고자 목숨까지 버리는 충신을 높이 받드는 분위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입니다. 경기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숭의전(崇義殿)에는 자신들의 손으로 무너뜨린 전 왕조에 대한 조선 지배층의 복잡한 심사가 담겨있습니다.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옛 마전(麻田) 땅 아미산 끝자락에 자리잡은 숭의전은 고려의 태조·현종·문종·원종과 복지겸·신숭겸·서희·강감찬·윤관·김부식·정몽주 등 16공신을 제사지내는 사당입니다. 조선왕조가 이곳에 고려 태조 왕건의 사당을 처음 세운 것은 태조 6년(1397년)입니다. 왕건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이었던 앙암사(仰巖寺) 자리였다지요. 이성계가 조선왕조를 개창한 지 불과 6년만의 일입니다. 당시엔 옛 왕조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겠지요. 게다가 왕조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사람이 얼마든지 뒤엎을 수 있다는 것을 이성계 일파가 확인시켜준 상황입니다. 조선왕조 쪽에서 보면 불온하기 이를데 없는 이런 분위기를 일신해야 했겠지요. 섭섭해하는 이들을 아우르는, 요즘 말로 사회통합이 급선무였을 것입니다. 정몽주에게 영의정부사를 증직하고, 문충공이라는 시호를 내린 것도 다름아닌 그를 살해한 태종이었습니다. 조선은 문종 원년(1451년) 이곳에 숭의전이라는 이름을 사액(賜額)한 이후 역대 시조의 사당에 차례로 같은 지위를 부여했습니다. 단군과 고구려 동명왕을 모신 평양의 숭령전과 신라의 혁거세왕을 제사하는 경주의 숭덕전, 백제의 온조왕을 추모하는 경기 광주 남한산성의 숭렬전이 그것입니다. 가야의 시조 김수로왕과 왕후 허씨의 신위를 모신 김해의 숭선전도 그렇습니다. 모두 숭(崇)자 돌림으로 조선왕조의 역사적 정통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였을 것입니다. 숭의전은 주변의 풍광도 뛰어나지만 배신청, 이안청, 전사청, 고직사 등 부속건물도 갖추고 있어 그 자체로도 제법 볼 만합니다. 여기에 가장 말석이라고는 해도,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면서 편치 않았을 조선 초기 지배층의 심기를 짐작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입니다. dcsuh@seoul.co.kr
  • [시론] 미국의 대북정책 왜 변했나/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시론] 미국의 대북정책 왜 변했나/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북·미 수교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런 변화에 미국의 네오콘과 한국의 보수세력은 충격을 받은 듯하다. 한국의 보수세력이 느끼는 충격은 거의 패닉에 가깝다.‘미국의 배신 때리기’에 적지 않게 당혹하고 있다. 보수 논객들의 글에선 ‘반미감정’마저 느껴진다. 이들의 딴죽 걸기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반전하기 어려울 만큼 급진전되고 있다. 단순히 협상하는 시늉만 내는 전술적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변화의 배경에는 북한과 미국 양 지도부의 전략적 결단이 숨어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핵무기를 조기에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수교를 통해 체제안전을 확보한다는 전략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 역시 대북 강경정책을 접고 북한과 양자협상을 통해 북한핵문제를 해결한다는 전략적 결정을 내린 듯하다. 부시는 자신의 임기내에 북한과 수교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는 놀라운 장면들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부시 대통령이 극적으로 북한을 방문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와 같은 국제회의에 김 위원장을 초청해 남북한과 미국, 중국 등 4개국 정상이 손을 맞잡는 극적인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변화의 직접적인 추동력은 두말할 나위 없이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변화다. 부시의 입장에서는 이라크와 이란문제가 조기에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북한핵문제라도 풀어 외교적 성과를 내야 할 형편이다. 네오콘의 퇴조와 북·미 양자협상을 주장해온 민주당의 의회 장악이 한 몫을 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미국의 정책 변화를 이것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하다. 부시 행정부가 줄곧 대북 강경정책을 추진해온 배경은 중국견제와 일방주의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명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위협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이 소멸되고 북한과 수교를 하게 된다면, 이런 북한위협론이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다. 우선 ‘북한붕괴론’이 비현실적임을 깨달은 것이다. 또 미사일방어체제(MD)가 상당부분 진척됨에 따라 중요한 명분이던 북한위협론에 매달릴 동기도 약해졌다. 게다가 대북 강경정책이 가져온 부정적 결과도 충분히 목격했다. 북한에 대한 압박은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성과 중국의 대북 영향력 강화를 가져올 뿐임을 인식했다. 미국으로선 동북아 정세변화에 대비한 장기적 포석도 필요하다. 한국은 점차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가 돼 갈 것이다. 북한과 수교는 오히려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북한을 중국으로부터 떼어놓는 데도 유리하다. 2000년 10월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해서 꼭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북한이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해 줄 수 있는가였다. 북한은 이미 90년대초부터 북한에 적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면 주한미군을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추진에 따라 이런 조건은 더욱 충족될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는 ‘네오콘식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정책으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철기 동국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 [길섶에서] 타인의 삶/황성기 논설위원

    살면서 얼마나 많은 타인을 만날까. 수천? 수만? 스쳐 지나간 사람까지 친다면 수십만, 수백만에 이를까. 숫자를 헤아리기 힘든 게 타인과의 조우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타인이라고 한다면 가족은 가장 가까운 타인일 터. 그러나 자식이나 부모조차 제대로 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2007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타인의 삶’은 도청을 통해 타인을 엿보는 동독 비밀경찰을 다룬 작품이다. 미모의 여배우와 동거하는 극작가의 체포 단서를 잡기 위해 24시간 감시하는 주인공. 도청이 거듭될수록 냉혹함을 버리고 여배우한테 사랑의 감정을 느껴 인간애를 회복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렸다. 타인의 삶을 몰래 들여다보면서 자신을 바꿔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극작가의 반체제 행위를 눈감아준 조직배신의 대가로 비밀경찰의 옷을 벗고 우편검열자로 전락하지만 말이다. 수많은 타인들과 얽혀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 내 삶을 돌아보게 해주는 타인의 삶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진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한반도 정세 美·中 전문가 진단

    한반도 정세 美·中 전문가 진단

    북한과 미국의 관계정상화를 위한 뉴욕 실무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등 북·미관계 진전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북·미가 50년 동안의 적대관계를 풀고 정상 국가관계로 돌아갈 수 있을까. 최근 북·미관계 진전이 한반도와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미국과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을 통해 회담 결과 및 향후 진전방향을 진단해 봤다. ■ “북-미 북-일 수교 진전 따라 6者회담 향방·속도 달라질것” 이번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회담은 두 나라간 신뢰감 형성에 상당히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된 계기였다.50년동안 적대 상태를 유지해 온 두나라가 관계 개선의 기초를 놓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기초가 아무리 좋더라도 당장 중요하고, 실질적인 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많은 전망과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적어도 공개된 것들을 보면 이번 실무회담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하긴 어렵다.‘2·13합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전제로 하고 있어 기본적으로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미국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북한을 지우기에 앞서 북한의 구체적인 조치를 반드시 기다릴 것이다. 원칙적인 문제에서 아직 근본적인 성과와 변화를 기대하긴 이르다. 북한이 연락사무소 단계를 건너뛰고 바로 대사관 설치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는 단계별로 가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관계 진전의 걸림돌이 됐던 금융 제재는 앞서 북·미간 베를린 회의에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됐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진전 속도와는 별도로 북·미간의 관계 개선모색 움직임은 한반도 남북관계를 더 빠르게 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있다. 한편 현재 빼놓을 수 없는 주요한 변수중 하나는 북·일 관계정상화 문제다. 일본이 납치 문제를 집중 거론해 북한이 먼저 회의를 결렬시켰다. 북·일 관계는 북·미 회담과도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일본의 태도는 앞으로 상당히 부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선 북·일 회담이 속도를 내지 못할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나아가 6자 회담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주의깊게 봐야 할 것은 6자 회담의 각 주체들이 서로 각각 상호 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련 국가들이 국익의 최대 확보를 위해 움직이고 있고 ‘글로벌 차원´의 틀속에서 북한 핵 문제의 해결 및 한반도문제의 해결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앞으로 진행될 중국과 일본간 관계 개선 모색도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작용하게 될 것이다. 중국과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북한과 미국이 오랜 대치 속에서 해빙(解)을 시도한 일 자체의 의미는 퇴색될 수 없을 것이다.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뿐 아니라 전체적인 국제 정세가 북·미, 북·일 수교와 6자 회담 전체의 향방과 속도를 결정할 것이다. 정리 베이징 이지운특파원 jj@seoul.co.kr ■ “북핵 완전히 포기 않는 한 美·中 모델 따르기 어려워” 미국과 북한의 관계정상화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부시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북한이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서두르려 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북·미 관계의 개선이 미·중이나 미·베트남 관계 복원의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북·미 관계 정상화에는 반드시 해결돼야 할 몇가지 어려운 문제들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뉴욕에서 북·미 관계정상화 실무그룹 회의를 마친 뒤 가진 브리핑에서 “핵을 가진 북한과의 관계정상화는 상상하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해 북한은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해야 하며, 그 과정은 몇년이 걸릴 것이다. 또 북한은 테러지원국 명단에서도 빠져야 하며, 일본인 납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이와 함께 북한은 위조 지폐 제작과 유통, 돈세탁, 마약 밀수 등의 불법행위도 완전히 중단해야 하며, 인권에 대한 우려도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모든 핵 프로그램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을까?핵 무기 보유가 북한의 중심적인 안보 목표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평양 당국이 이를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또 북한은 과거에도 국제적인 약속을 위반해온 전례가 있다. 만약 북한측이 이런 의혹들을 해소하려면 북 영토를 샅샅이 뒤져볼 수 있는 사찰단의 방문을 허용해야 한다. 예를 들어, 북한이 신고하지 않은 시설을 사찰단이 통보 즉시 방문해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부시 대통령의 대북 정책에 변화가 온 것은 이라크 전에 대한 지지가 떨어지고,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민주당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외교 분야에서의 성공을 얻기 위해서 협상에 커다란 유연성을 발휘해야만 했다. 또 미 정부는 이란의 핵 개발에 좀더 강력하게 대응하기 위해 북한 핵 문제를 안보 어젠다에서 털어내고 싶었던 측면도 있다. 한국은 6자회담의 재개와 북·미간의 양자협상 착수를 대북 포용정책 재가동의 신호탄으로 삼으려 할 것이다. 한국 정부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고, 남북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유엔의 대북 제재를 완화해 보려 할 것이다. 일본은 미국이 납치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북한과의 관계를 정상화한다면, 동맹국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또 중국은 북·미 양자협상이 시작됨에 따라 핵무기를 놓고 북한과 직접 충돌하지 않는다는 전략이 먹혀 들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리 워싱턴 이도운특파원 dawn@seoul.co.kr
  • 주몽 떠난 안방극장 여인천하

    주몽 떠난 안방극장 여인천하

    방송가 월·화 드라마의 지존 MBC ‘주몽’이 안방을 떠난 자리는 누가 메울까. 시청률 50%를 넘나들며 10개월 동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아성을 구축했던 ‘주몽’.MBC에 드라마 왕국이란 명예를 안겨주었지만 KBS,SBS에는 재앙과 같은 존재였다. ‘주몽’의 부재로 월·화 밤 드라마 시장은 다시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만큼 시청자들은 골라 보는 재미가 생긴다.●여인을 위한, 여인에 의한 드라마 시대 지난해에는 주몽, 대조영, 연개소문 등 사극 열풍이 불면서 선 굵은 남자 연기자들이 주목을 받았다. 반면 ‘포스트 주몽’ 시대에 패권을 잡기 위해 선두에 뛰어든 것은 여전사들이다. MBC ‘히트’의 고현정,SBS ‘내 남자의 여자’의 김희애·배종옥,KBS의 ‘헬로 애기씨’의 이다해. 방송 3사가 월·화 영토전쟁의 새로운 카드로 모두 여성 연기자를 택했고 남성 연기자의 비중은 적어졌다. ‘주몽’의 종영과 ‘봄바람’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감성을 자극하는 멜로, 코믹물로 트렌드가 바뀌고 있다.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데 남성 시청자들의 역할이 절대적이기 때문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멜로에만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 코믹, 액션 등이 가미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고현정이 주몽을 잇는다 MBC는 오는 19일부터 고현정과 하정우를 앞세운 20부작 드라마 ‘히트’를 꺼냈다. 또 ‘올인’의 유철용 PD와 ‘대장금’ ‘서동요’의 김영현 작가가 뭉쳐 눈길을 끈다. 살인범을 추적하는 형사들의 활약을 그리는 작품으로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미국 수사드라마 ‘CSI’와 비슷한 형식으로 꾸며진다. 고현정은 머리를 단발로 자르며 여성 강력반장 차수경으로 연기 변신을 보여준다. 상대역은 중견배우 김용건의 아들이자 ‘구미호 가족’ ‘숨’ 등의 영화에 출연했던 하정우(본명 김성훈)이다. 서울지검 강력부 신입 검사 김재윤 역을 맡아 여성 형사반장과 대립각을 세우는 역할이다. 헬기까지 동원해 홍콩에서 해상 추격장면을 촬영하는 등 화려한 영상과 빠른 이야기 전개로 ‘미드’(미국 드라마)에 빠져 있는 20∼30대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흥행 보증수표 김수현 카드 뽑다 ‘독신천하’ ‘101번째 프러포즈’ ‘눈꽃’ 등 SBS의 많은 드라마도 ‘주몽‘ 때문에 쓴맛을 보았다. 다음달 2일부터 ‘김수현표’ 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로 그동안의 빚을 한번에 갚으려고 칼을 빼들었다. ‘사랑과 야망’에 이어 김수현 작가가 4개월여 만에 집필에 나서는 작품이라 화제를 모았다.30대 후반 중년부부를 중심으로 한 멜로극으로 젊은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MBC와 KBS에 비해 중장년층의 눈길을 사로잡을 것으로 보인다. 배종옥이 남편(김상중)에게 배신당하는 천사표 여자 ‘김지수’역을, 김희애는 이성보다는 감정에 충실한 여자 ‘이화영’역을 맡는다. 두 사람은 친구이자 연적으로 대립각을 이룬다. 김희애, 배종옥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이 벌써부터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코믹에 멜로를 가미하다 KBS도 안재욱의 ‘미스터 굿바이’, 현빈-성유리의 ‘눈의 여왕’, 박건형의 ‘꽃피는 봄이 오면’ 등 야심작들이 ‘주몽’의 화살에 쓰러졌다. 그래서 오는 19일부터 유쾌, 상쾌, 발랄한 드라마 ‘헬로 애기씨’를 선보인다. ‘마이걸’에 출연해 인기몰이를 한 이다해(이수하 역)와 ‘빌리진 날 봐요’ 등에서 ‘완소남’으로 인기를 모은 이지훈이 함께 호흡을 맞춘다. 특히 그룹 ‘파란’의 매력남 라이언이 가세해 극의 재미를 더한다. 이지환의 소설 ‘김치만두 다섯개’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무너져가는 종갓집 ‘화안당’의 주인 ‘이수하’와 머슴 출신 재벌손자 ‘황동규’와의 위험천만한 러브스토리를 코믹하게 그린다. 여기에 날라리 재벌 3세 ’황찬민‘(하석진)과 광녀의 딸 ’서화란‘(연미주)이 맛깔스러운 연기를 더한다. 스펙터클한 영상과 빠른 전개의 ‘히트’, 정통 멜로의 ‘내 남자의 여자’, 귀엽고 발랄한 ’헬로 애기씨’가 펼치는 삼국지. 과연 누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지 궁금해진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새영화] 300 - 300인 전사, 100만 대군과 맞붙다

    [새영화] 300 - 300인 전사, 100만 대군과 맞붙다

    영화 ‘300’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왕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한다. 그리스 연합군의 결성이 늦어지고 부패한 의회가 전쟁에 반대하자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300명의 최정예 전사들을 이끌고 테르모필레 협곡을 지키러 나선다. 이 협곡은 산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좁은 길로 페르시아가 그리스를 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곳. 스파르타 전사들은 이곳의 지형을 십분 활용하며 뛰어난 전술로 페르시아 군을 번번이 격퇴시킨다. 그러나 배신자로 인해 샛길이 알려지고 궁지에 몰린 레오니다스 왕을 비롯한 전사들은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장렬하게 전사한다. 이 간단한 이야기를 118분간 끌고 가는 힘은 화려한 영상이다. 영화 ‘300’의 원작은 프랭크 밀러의 동명 만화(그래픽 노블). 독특한 스타일을 자랑하는 그의 작품이 영화화된다는 것은 새로운 볼거리를 얻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총 제작 지휘까지 맡아 ‘씬 시티’와는 또 다른 차원의 영상미를 선보여 기대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역사적 사실에 기초했지만 만화가 원작인 만큼 영화 ‘300’에서 재현된 스파르타는 초현실적이다.‘글래디에이터’나 ‘트로이’ 같은 기존의 전쟁 서사물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인 것. 감독 잭 스나이더는 원작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크러쉬 기법(특정 이미지가 가진 어두운 부분을 뭉개서 영화의 콘트라스트를 바꿔 색의 순도를 향상시키는 방법)’을 고안했고 결과는 대성공. 마치 그림 하나하나가 살아 움직이는 듯한 영상은 시적이고 비장미가 넘친다. 슬로 모션이 빈번하게 사용되지만 적절한 강약 조절로 오히려 역동성이 강조돼 시종일관 시선을 붙잡는다. 캐릭터들도 상상력이 넘쳐 난다. 크세르크세스 왕은 위용에 걸맞게 거인처럼 묘사됐고,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페르시아 정예군 ‘임모탈’을 비롯한 괴수와 동물들도 기기묘묘하기 그지없다. 전쟁 영화인 만큼 유혈이 낭자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는 것은 물론 목이 잘려나가는 등 신체 훼손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회화체적인 영상 때문인지 정서적 충격은 그리 심하게 느껴지지 않는다.15일 개봉,18세 관람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돈 안갚고 잠적한 친구에 분노 치밀어

    Q둘도 없는 친구가 제 돈을 떼먹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적은 돈도 아닌 데다 배신감 때문에 죽이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 친구 생각만 하면 잠도 안 오고 소화도 안 되고…. 제 성질을 아는 아내는 그 돈 없어도 사니까 빨리 잊어 버리라고 하지만 1년이 다 돼가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욱하는 성격이 있어 무슨 사고를 칠지 집사람은 불안해합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요. -최병남·가명·52세- A분노가 나를 망가뜨리는 덫이라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그 덫에서 빨리 벗어나지 못하면 내 건강만 해치고 일상 생활에도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부인의 말씀대로 그 돈 없어도 살 수 있는 형편이라면 빨리 잊으시고 손해를 최소화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친구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처음부터 돈을 떼먹을 의도는 아니었을 수도 있고 무슨 일 때문에 도저히 돈을 갚을 수 없는 사정이 있는지도 모르고요. 그 친구 역시 무척이나 절친한 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래서 더 친구 앞에 나타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1년이 다 돼가는 일로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니 그것 또한 현명한 태도는 아닙니다. 친구는 두 번, 세 번 내 돈을 떼먹은 것도 아닌데 그 일로 아직도 고통스러워하신다면 그 친구 때문이 아니라 내가 오히려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남의 돈은 갚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친한 친구가 여유가 있다면 빌린 돈 안 갚아도 된다. 좀 천천히 갚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욱하는 성격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 욱하는 성격 때문에 그동안 내가 치른 대가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십시오. 한국의 국민 타자로 칭송받던 이승엽 선수가 일본에서 2군으로 밀려났을 때 그 수모를 오히려 도약의 계기로 삼아 일본에서도 톱스타로 자리매김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런가 하면 개인적인 분노를 이기지 못해 음주나 흡연, 폭력이나 기물 파손, 방화나 살인 등으로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 사람도 있습니다. 똑같이 분노할 상황에서도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본인의 선택 사항입니다. 누군가의 행동이나 말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마시고 생산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을 냉정하게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감정이란 대단히 순간적인 것이어서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감정적인 대응을 하게 되는 법이지만 왜 내가 화가 나는지 어떤 일에 대해서 내가 화를 잘 냈는지를 되돌아보고 끊임없이 분노를 다스리는 연습을 하면 끔찍한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친한 사이일수록 돈거래를 삼가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생각하십시오. 형편이 닿는 범위 내에서라면 빌려 주면서도 받겠다는 기대를 아예 하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이고요. 적어도 배신감 때문에 두고두고 괴로워하는 일은 예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현명하게 거절하는 지혜도 연습하시기 바랍니다. 이미 일어나 버린 일,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려 나의 삶을 분노로 채우지 마시고 누군가에게 내가 돈을 빌려줄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분노를 다스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나를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부인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데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으시기 바랍니다. <가정경영연구소장>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서울시 ‘공동세’ 진통 예상

    서울시 ‘공동세’ 진통 예상

    서울시내 각 자치구가 2년에 거둬들이는 재산세의 일정부분을 떼어내 이를 25개 자치구에 균등하게 나눠주는 ‘공동세 도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올해 국회 업무보고에서 공동세 50% 도입을 추진키로 한 데다 국회에서도 4월 중 이를 본격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강남·서초·송파·중구 등은 공동세 도입에는 찬성하면서도 비율이 높다며 반대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행자부의 야당안 수용 배경 지방세제 개편과 관련, 한나라당은 공동세를, 열린우리당은 세목교환을 각각 당론으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행자부는 지난해 8월 열린우리당과 세목교환에 합의하고, 이를 추진했다. 하지만 여야간에 입장차를 좁히지 못한 채 평행선을 그었다. 이런 행자부가 올해에는 공동세 50%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물건너 갔던 지방세제 개편안이 부활했다. 행자부가 열린우리당을 배신(?)하고 공동세로 선회한 데에는 정부·여당의 부동산 정책이 한몫했다. 정부·여당이 부동산에 과세를 강화하면서 재산세 세수가 급증, 세목교환의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세목교환은 세수가 많은 담배소비세, 주행세 등 광역세를 재산세와 바꿔 구청에 혜택을 준다는 것인데 재산세가 광역세를 웃돌면서 실익이 없어진 것이다. 실제로 올해 서울시에서 거둬들이는 재산세(구세)는 모두 1조 2200억원으로 추산됐고, 반면 담배소비세, 주행세 등 광역세(시세)는 1조 1900억원으로 역전현상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여기에다 서울시와 25개 전 구청이 세목교환에 반대하고, 세목교환시에도 담배소비세 등으로 빠져나간 교육세 등은 다시 채워줘야 하는 등 문제가 복잡하다는 점도 공동세 전환의 배경이다. 지난해 9월 서울시에서 열린 구청장 회의에서 서울시와 25개 구청은 공동세 도입에 찬성한다는 서명을 했다. 강남·북 균형 발전을 위해서다. ●“비율 점진적 확대해야” 문제는 공동세의 비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오세훈 시장은 지방선거 때 공동세 비율로 50%를 약속했다.50% 정도 돼야지만 공동세의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강남·서초·중구 등은 구청간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산세의 일부를 재정이 약한 구청에 지원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50%라는 비율은 과도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강남구는 50% 대신 재산세 증가분을 모아서 나눠주든지 아니면 초기에 15∼20%로 시작해 점진적으로 늘려가자는 입장이다. 서초구나 송파구, 중구도 비슷한 입장이다. 이들 구청은 도입시에도 주민들의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민들이 50%에 대해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서울시는 자치구 및 주민들의 반발을 감안해 자치구가 재산세를 걷어서 시에 주고, 시가 이를 다시 배분하는 형태가 아닌 거꾸로 시가 재산세를 걷어 50%를 자치구에 나눠주는 방식을 강구하고 있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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