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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반기 흑자인데…” 현대 이유있는 항변

    “상반기 흑자인데…” 현대 이유있는 항변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의 재무구조 개선약정(MOU) 교환이 지난 25일 세 번째 무산되면서 주채권 은행인 외환은행을 중심으로 현대그룹에 대한 제재방안 논의가 구체화되고 있다. 44년간 이어온 현대그룹과 외환은행의 ‘인연’도 파국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1967년 한국은행에서 분리돼 출범한 외환은행은 현대그룹과 ‘외환위기’ 등 역사의 굴곡을 함께 해 왔다. 현대그룹으로선 배신감을 느끼는 표정이다. 27일 금융권과 현대그룹에 따르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을 중심으로 14개 채권기관들은 은행업 감독규정에 따라 현대그룹에 신규여신 중단은 물론 만기여신에 대한 연장거부를 검토하고 있다. 반면 현대그룹은 “외환은행에서 빌린 대출금 1600억원을 모두 갚아 주채권은행을 변경한 뒤 재무구조 평가를 다시 받겠다.”는 입장이다. 만약 국책은행이 주채권은행을 맡을 경우 외국계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외환은행보다 공정한 평가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금융권에 따르면 외형적으로 산업은행이 현대그룹의 전체 여신 1조 5000억원 가운데 1조원을 갖고 있다. 이어 외환은행(1600억원), 농협(1200억원), 신한은행(1000억원) 등의 순이다. 그룹 측은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직후 외국계로 주인이 바뀐 외환은행은 자금지원에 인색했다.”고 주장했다. ●“재무구조 평가 다시 받겠다” 현대그룹은 외환위기 이후 흔들림 없이 정착한 채권단 주도의 ‘기업 평가’에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평가가 정교해졌다지만 여전히 비계량요인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룹 입장을 정리하면 ▲주채권은행 변경의 전례가 있는데도 외환은행이 이를 거부하고 있고 ▲현대상선의 하반기 ‘어닝서프라이즈’ 가능성 등 비재무평가 항목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으며 ▲외국계 사모펀드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이 매각 절차 중에 있어 과단성 있는 업무추진이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5월 재무구조평가 진행 중 결과가 유출되면서 ‘기밀유지’원칙이 깨졌다는 점도 불만이다. 주채권은행 변경은 채권단 설명과 달리 2002년 SK그룹(제일→하나), 롯데(한빛→조흥), 동부와 동국제강(서울→산업) 등 전례가 많다. ●“비재무부분도 평가 제대로 안 돼” 현대상선의 경영수지 개선도 아쉬운 대목이다. 그룹 측은 “올 1·4분기 116억원의 영업이익을 실현한 데다 2분기 역대 최고 실적을 거둘 전망인데 외환은행은 비재무평가 부분을 합리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약정교환을 밀어붙이려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상선 관계자는 “재무약정 얘기가 나온 뒤 해외 거래처로부터 부도나는 것 아니냐는 문의전화가 빗발쳤다.”고 우려했다. 약정교환은 무엇보다 현대그룹이 ‘절치부심’ 준비해 온 현대건설 인수를 어렵게 만든다. 약정을 맺으면 부실계열사 정리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이 이어져 덩치 큰 새식구를 맞이하는 데 장애가 된다. 그룹 모태인 현대건설은 그룹 매출(금융계열사 제외)의 약 80%를 차지하는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해 인수전은 향후 그룹 경영권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5월17일 시장에 현대그룹 재무약정 교환 가능성이 유포된 뒤 19일 정책금융공사에서 현대건설 매각을 언급,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까지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공부의 왕도(EBS 오후 5시50분) 전국 1% 우수한 아이들과의 경쟁, 나만의 내신 영어 공부법을 찾아라. 전주 상산고 3학년 전예린양의 내신영어 6등급 탈출비법은 ‘영어지문 필사노트’. 좋은 문장을 필사하면서 정확성과 문장 활용력까지 키웠다는 예린양. 필사노트 제작부터 복습 노하우까지, 예린양만의 필사노트 영어공부법을 공개한다. ●녹색충전 일요일(KBS2 오전 8시10분) 전북 김제 유기농 채소의 선두주자라 불리는 김병귀씨. 1990년, 1500평의 농지에서 유기농 채소 재배를 시작해 현재 6만평의 농지에 40여종의 채소들을 재배하며, 연 매출 30억원을 올리고 있다. 비옥한 땅에서, 건강하고 정직한 먹거리만을 생산한다는 김병귀씨의 자부심 강한 성공비법을 살펴본다. ●다큐멘터리 3일(KBS2 오후 10시25분) 삼청동과 가회동, 계동, 재동을 포함해 11개의 동이 모인 종로의 윗동네를 일컫는 ‘북촌’. 도심 속 시골 동네 같은 이곳은 서울 사람에게도 관광 명소가 될 만큼 유명해져 2004년부터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한옥 게스트하우스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고유한 향기를 간직한 한옥 게스트하우스에서 3일을 함께한다. ●신비한TV 서프라이즈(MBC 오전 10시45분) 일본 아키타현, 어느 날부턴가 마을 사람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죽은 사람들은 모두 죽기 전 항아리 속의 무언가를 보았다고 하는데 과연 무엇 때문이었을까. 마녀로 오인 받아 화형에 처해진 프랑스의 영웅, ‘잔 다르크’. 그런데 잔 다르크가 화형에 처해진 것은 ‘바지’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인생은 아름다워(SBS 오후 9시35분) 태섭은 조부모에게 절을 하고 일어나 무릎 꿇고 앉으며 제주시로 이사한다고 말한다. 온 가족들에게 인사를 한 태섭은 병걸에게 죄송하다고 말하고 떠난다. 한편, 민재는 호섭에게 일곱시에 아나운서와 소개팅을 해야 한다며 시간을 비워두라고 말하고, 호섭은 싫다며 자기가 좋은 사람을 찾겠다고 말한다. ●돌아온 판관 포청천(OBS 오후 10시20분) 사해전장을 조사하던 장용과 조호가 새로운 동전을 발견하자 당진은 조찬을 관아로 끌고 온다. 포대인이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확인한 조찬은 비밀장부를 줄 테니 형량을 줄여달라고 요청한다. 이곤은 조찬이 자신을 배신했음을 감지하고 엄동에게 그를 죽이라고 한다. 조찬을 죽인 엄동은 전장의 비밀장부와 동전 주형을 그의 몸 위에 던진다. ●일요시네마 무모한 순간(EBS 오후 2시40분) LA에 있는 낡은 호텔을 찾아가는 하퍼 부인은 딸의 애인인 테드 다비를 만나 딸을 만나지 말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다비는 돈을 요구한다. 하퍼 부인은 딸인 베아트리스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만 이미 다비의 전화를 받은 베아트리스는 엄마의 말을 믿지 않고 화만 낼 뿐이다.
  •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實錄, 한국전쟁] 이승만 휴전반대·북진통일 주장… 美 친위쿠데타 검토

    한국전쟁의 발발과 전개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남한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으며, 어떻게 평가받을까. 북진통일을 외친 이승만은 한국전쟁 발발을 논하는 장에서 반짝 등장하지만, 한국전쟁 과정에서는 언급이 미미하다. 존재감이 없다. 러시아나 중국, 심지어 미국 자료들도 한국전쟁의 주역으로 이승만을 취급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반도의 남쪽을 지배하고 있던 남한 정부와 이승만은 단지 전쟁을 획책한 북한 김일성과의 비교 대상으로 등장할 뿐이다. 그러나 휴전협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된다. 이승만의 극렬한 휴전반대가 주요 변수로 급부상했다. 이 시기 평양과 모스크바, 베이징 그리고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 오간 각종 자료를 분석해 보면 ‘이승만’이라는 이름 석 자의 등장 빈도가 갑자기 높아졌다. 특히 1953년 6월18일 반공포로 2만 7000명의 전격적인 석방이 준 충격파는 컸다. 휴전협정 당사자인 미국과 중국은 물론 평양이 발칵 뒤집혔다. 영국의 처칠 총리는 아침에 면도하다 이 소식을 보고받고 얼굴을 벨 정도였다. ●‘미국의 남자’ 이승만 美와 애증 미국은 진퇴양난이었다. 미국 국내의 들끓는 휴전여론과 달리 중국과의 휴전협상은 평행선을 긋고 있었다. 한국정부와의 관계는 이승만의 휴전반대로 말미암아 담벼락 위를 걷는 아찔한 상태였다. 미국 합동참모본부가 간행한 ‘한국전쟁’에 따르면 “예측할 수 없고, 변덕스러운 이승만 정부의 자세와 행동이 특별히 어려웠다. 이러한 것들은 회담에 역기능적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협상을 불필요하게, 복잡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떤 점에서 이 대통령의 조치는 유엔군사령부의 군사적 입장을 위태롭게 하기도 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승만은 어떤 종류의 휴전협정도 반대했다. 협상 자체를 거부했다. 오로지 남한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원했다. 그는 ‘중국군의 완전한 철수, 북한 공산당 해체, 인민군 무장해제’ 등을 협상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승만은 1951년 7월 “유엔군이 한국의 분할에 동의하지 않는 것을 보장해 달라.”라는 서한을 트루먼 대통령에게 보냈다. 트루먼은 이 대통령을 비난하면서도 협조를 요청하는 답신을 보냈다. 요구 사항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합참보고서는 1952년 초 뉴욕 출신의 저명한 천주교 인사인 스펠만이 한국을 방문, 무초 미 대사와 벤플리트 8군 사령관이 함께한 자리에서 이승만이 “미국의 모든 천주교인이 한국에 휴전이 없도록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정보를 싣기도 했다. 미국입장에서는 수용 불가능한 무리한 요구였다. 미국이 한국의 지도자로 선택한 ‘가장 미국적인 한국인’인 이승만은 그를 키워준 미국을 거역하고 있었다. 소련이 김일성을 북한지도자로 지목한 것처럼 이승만도 미국에 의해 선택되고 키워졌다. 이 시기 이승만을 묘사한 미국 측 자료는 온통 노회, 변덕, 아집, 독선 같은 단어로 도배돼 있었다. 전쟁발발 이전 이승만을 접촉한 한국주둔군 사령관 하지는 “솔직하지 않고, 정서적으로 불안하며, 야비하고, 부패하고, 예측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악평했다. 이승만을 바라보는 미국의 우려가 오래됐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승만은 ‘미국의 남자’였다. 1905년 영어를 잘한다는 이유로 선발돼 백악관으로 루스벨트 대통령을 방문해 인연을 맺었다.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중단할 수 있게 도와주길 바랐지만, 그때 이미 미국은 일본과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맺으려고 작업 중이었다. 서로 필리핀과 대한제국에 대한 재량권을 인정하는 조약이었다. 이승만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하고 나서 프린스턴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훗날 대통령이 된 윌슨의 제자가 됐다. 윌슨은 이승만을 ‘미래 한국의 독립을 위한 구세주’라고 부추겼다. 이승만은 윌슨이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한 파리평화회의에 참석하려 했으나 미 국무부로부터 여권을 발급받지 못했다. 이승만과 미국은 애증의 관계였다. 미국 지도부는 민족주의자인 동시에 기독교인인 이승만이 미국식 종교와 정치 기조를 따를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승만의 마음속에는 미국에 대한 배신과 위선, 불신의 불씨가 자라고 있었다. ●이승만 ‘북진통일’ 정치적 구호 이승만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인 ‘북진통일’은 남한주민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득보다 실이 컸다. 김일성의 남한공격 본능을 자극하는 구실로 작용한 측면이 있다. 스탈린으로부터 원조받은 무기와 군수물자로 완전무장한 북한 인민군과 비교하면 남한의 군사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전쟁발발 당시 한국군은 자신을 지키기에도 역부족인 상태였다. 전쟁 열흘 전인 1950년 6월15일 미 국방부에 보고된 군사고문단 보고서에는 ‘한국군은 가까스로 군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장비와 무기 대부분은 쓸모가 없었고, 방어능력도 기껏 보름 정도’라고 기술돼 있다. 실제 인민군이 보유한 소련제 T34전차의 위력 앞에 한국군은 맥없이 무너졌다. 구형 바주카포는 무용지물이었다. 치밀하게 계산하고 준비한 김일성의 남침에 비해 이승만의 북진통일은 정치적 구호에 불과했다. 한국전쟁은 이승만의 의도와는 달리 종결을 향해 달려갔다. 미국 공화당이 1952년 7월 아이젠하워를 대통령후보자로 지명하면서 대세는 군사적 종결이 아닌 정치적 종결, 즉 휴전 쪽으로 기울었다. 대통령 후보자 아이젠하워는 같은 해 10월 디트로이트 연설에서 “명성을 걸고 한국전쟁을 조기에 명예롭게 종결짓겠다.”고 천명했다. 그는 “새로운 행정부의 정책은 한국전쟁을 끝내는 일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젠하워가 당선됐다. 그는 12월2일 극비 한국방문길에 올랐다. 미 행정부 수뇌부는 남한의 정치적 위기는 전적으로 이승만으로 말미암아 일어났다고 여겼다. 이 같은 위기가 휴전협상뿐만 아니라 38도 상에 진행되고 있는 군사작전마저도 위협한다고 보았다. 실제 이승만은 1952년 국회 간선을 통한 재선이 어렵게 보이자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는 이른바 ‘발췌개헌’을 꾀했다. 임시수도인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반대파를 제거했다. 한국군 전투부대를 철수시켜 계엄군으로 사용하려 했다.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이 나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개인의 군대로 사용하는 것”을 반대했으나 이승만은 막무가내였다. 전쟁을 끝내고 싶은 미국에 이승만은 골칫거리였다. 1953년 미국과 중국의 협상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지만, 미국과 이승만 정부와의 사이는 또 다른 고비를 향해 뒤틀려 갔다. 이승만은 4월5일 “판문점에서 무엇이 일어나든 관계없이 우리의 목표는 똑같다. 우리의 변함없는 목표는 한국을 남으로부터 압록강까지 통일시키는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승만은 아이젠하워에게 “유엔군사령부가 중국군이 압록강 이남에 잔류하는 것을 허용하는 데 동의한다면, 우리는 한국군을 유엔군사령부에서 철수시킬 것이며 단독으로 싸울 것”이라는 내용의 최후 통첩장을 보냈다. ●아이젠하워 한때 李 제거 계획 워싱턴은 이승만을 휴전협상의 훼방꾼이자 위협세력으로 간주했다. 특유의 허세라고 판단하면서도 극단적인 조치로까지 몰고 갈 것으로 예측했다. 달래기에 나섰지만 이승만은 클라크 사령관과의 회담에서 “당신들은 모든 유엔군, 모든 경제원조를 철수시킬 수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주의가 우리를 도울 것이라고 의존한 것이 우리의 실수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협력하겠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면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승만은 6월6일 ‘선(先) 한미방어조약 체결, 후(後) 유엔군과 공산군의 상호철군’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면서 “우리는 반쪽 휴전이나 평화보다는 싸움을 택한다.”라는 예의 벼랑 끝 외교전을 펼쳤다. 클라크 사령관은 “이 대통령은 송환 불원 한국인 포로를 경고 없이 석방할 수 있다.”는 예언에 가까운 메시지를 워싱턴에 보냈다. 포로경비부대 대부분이 한국군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군은 이를 막을 수단이 없었다. 클라크 사령관의 예언대로 이승만이 반공포로를 석방하자 아이젠하워는 이승만 제거를 검토했다. 미국 수뇌부는 당시 한국에 임시군사정부를 수립하는 극비의 군사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반공포로 석방 다음날인 6월19일 자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에 따르면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없애는 가장 빠르고 유일한 길은 쿠데타”라면서 “이는 확실히 고려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의 군사자문 기구인 합참은 1952년부터 쿠데타 계획을 세워 놓았다. 합참으로부터 지시를 받은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은 6월27일 벤플리트 장군에게 이 계획을 통보했다. 한국육군과 참모총장은 유엔군사령부에 충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밀해제된 미국 합참보고서에 따르면 “이 대통령을 어떤 구실을 붙여 서울로 초대한다. 유엔군사령부가 부산으로 이동하여 주요 지지자들을 체포하고, 주요시설을 방호하며 한국육참총장을 통하여 기존 계엄령을 장악한다. 이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종결토록 요구한다. 만일 거부하면 외부와의 통신을 차단한 채 연금하고, 요망되는 포고령은 협조적인 것으로 예상하는 국무총리가 발표하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李 재선 이후 美와 화해모드 다행히 워싱턴의 친위 쿠데타계획은 불발됐다. 현실론을 내세운 참모들의 설득으로 강력한 경고수준에서 그쳤다. 한국 국회도 대통령 직선제 헌법개정을 승인했다. 계엄령은 해제됐고 이승만은 제2대 대통령으로 재선에 성공하면서 화해모드로 전환됐다. 미국은 손을 들었다. 미국은 휴전동의를 얻고, 이승만은 그 대가로 한·미상호방위조약이라는 보호우산을 제공받는 선에서 양국의 갈등은 마무리됐다. 아이젠하워는 “한국의 통일을 정치적인 수단으로 계속 추구한다. 휴전협정 수락 직후에 상호방위조약을 협상한다. 전후 경제원조를 계속한다.”라는 세 가지 조치를 약속했다. 이승만은 극단적인 휴전반대와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을 이끌어냈다. 허물도 컸지만, 오늘의 한국이 있게 한 주춧돌을 놓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한국전쟁의 산물인 한·미동맹은 단순한 양자동맹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지역동맹”이라고 평가했다. 러시아를 저지하고, 중국을 봉쇄하면서, 일본을 견제하는 복합적이고 다층적인 동맹이라는 것이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기자 joo@seoul.co.kr
  • [메디칼럼]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인조 미인’이라면

    [메디칼럼]사랑하는 여자 친구가 ‘인조 미인’이라면

    [메디칼럼]여자가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 조건중 하나는 미모다. 이를 위해서 여자들은 자신의 얼굴을 개조하기 위해 수술대에 눕는 것은 이미 사회적으로도 자연스러운 현상 중 하나가 되었다. 때문에 최근에는 성형 수술을 하지 않은 ‘자연미인’보다 성형을 한 ‘인조미인’이라는 단어가 더욱 친숙해 질 정도다. 과거에는 여자가 성형 수술을 한 사실이 밝혀지면 이혼을 당하거나 여자 연예인들은 자신의 지지도가 떨어지는 등 사회적으로 냉대를 받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조금씩 사회적으로 많이 허용되는 분위기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연예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하면서 성형 수술 진위에 대해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아직 대다수 남자들이 허용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이는 내 애인이 ‘인조 미인’이 아닌 ‘자연 미인’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어 사전 예문 중에서 ‘Faint heart never won fair maid.’(용감한 자만이 미인을 차지한다.)란 문장이 있듯이 미인은 흔하지 않은 희소성을 의미하며 이러한 희소성을 남자가 차지하는 것은 남과 다른 뛰어난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애인이 과거에 미인이 아닌 만들어진 ‘인조 미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차지할 수 있는 희소성 가치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남다른 능력 상실’을 의미한다. 이에 따른 좌절감을 경험하게 되어 ‘인조 미인’을 거부하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인간 심리는 크게 ‘본능(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의 개념으로 설명하게 된다. 이중에서 초자아는 사회 윤리관과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하며 이중 가치관에서 포함된 것은 자신의 배우자상 즉 이성관이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이성의 부모를 차지하고 싶어 하나 같은 동성의 부모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 이를 포기한다. 그러나 이를 보상하기 위해서 자신을 키워준 이성 부모의 인격과 모습을 내재화하면서 미래 배우자상을 형성하게 된다. 청소년들은 심리적으로 성숙하지 않았지만 육체적으로 성인과 같은 수준으로 성숙한 상태이며 이에 따른 성적인 본능(이드)이 분출하기 위한 한 수단으로 연예인과 같은 슈퍼 히어로를 동경하고 사모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과거 부모와 관계에서 형성한 이성관이 보다 발전하게 되고 자신만의 성적 환상을 형성하면서 보다 성숙한 이성관을 만들어 간다. 자신이 좋아하는 연예인이 ‘인조 미인’이였다는 것을 알게되면 자신이 만들어 낸 이성관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진 것. 이에 따른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 것을 의미한다. 나아가 자신의 여자 친구가 ‘인조 미인’이란 것을 알게 되고 실망하게 된 것도 현실에서 자신의 이상형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남녀 관계에서 헤어지고 만나면서 이성 상대가 바뀌어가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이성관은 대부분 변화하지 않는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여자가 성형을 했다는 것은 사랑하는 이성의 얼굴이 과거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한 것이 아닌 어느 순간에 갑자기 변화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어려서부터 같이 성장한 이성상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자신의 이성관에 대한 배신감이 들게 되면서 무엇인가 속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화가 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부분 사람들이 여자가 성형할 수 있지만 내 여자는 성형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여자가 성형하는 것은 보편적인 현상이고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없는 여자임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가 사귀는 여자는 내 자신과 사랑이란 감정을 나누는 사이임으로 나의 이성관에 상처를 받을 수 있으므로 성형은 안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랑샘터 소아정신과 원장 김태훈
  • [서울광장] 정세균 대표와 수경 스님/박대출 논설위원

    [서울광장] 정세균 대표와 수경 스님/박대출 논설위원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무진장’으로 통한다. 원래 지역구에서 따왔다. 전북 무주·진안·장수를 일컫는다. 지금의 지역구는 임실이 추가됐다. 무진장에서 얻은 표는 ‘무진장(無盡藏)’하다. 18대 총선 때는 3만 5566표. 득표율이 무려 74%다. 무주·진안·장수는 전북에서 가장 내륙지방이다. 산세가 험해 사람의 접근이 힘들다. 그래서 예로부터 무진장 지역으로 불려왔다. 주민들은 4년마다 험한 산세를 넘어 투표소로 달려갔다. 정세균을 위해. 그것도 네 번씩이나. 정 대표는 지난해 7월 그 자리를 버렸다. 김형오 당시 국회의장에게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총선 1년3개월 만이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를 이유로 댔다. 사퇴 각오는 비장했다. 11개월이 흘렀다.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참패했다. 민주당은 축배를 들었다. 정 대표는 개선장군이 됐다. 떠밀리듯 의원직에 복귀했다. 사퇴할 때도, 복귀할 때도 3만 5566명에게 묻는 절차는 없었다. 정 대표 얘기만 아니다. 걸핏하면 의원직 사퇴다. 18대 국회도 줄을 이었다. 이강래·천정배·최문순·장세환 의원 등. 이 의원은 원내대표로서 정 대표와 함께 사퇴를 선언했다. 이틀 만에 뒤집었다. 천·최·장 3인은 다섯달 만에 번복했다. 집안싸움까지 벌어졌다. 조경태 의원은 ‘국민 사기극’, ‘쌩쇼’라고 비판했다. 집단 사퇴극도 예사다. 자유선진당 의원 17명은 전원 사퇴서를 냈다. 국회의장이 아닌 당 총재에게 냈다. 처리될 리가 없다. 헌정사에 사퇴 파동은 많다. 거의가 정치쇼로 끝났다. 수경 스님이 얼마전 잠적했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라는 짤막한 글을 남긴 채. 화계사 주지 자리도, 조계종 승적도 버린다고 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왠지 믿어진다. 돌아올 기약이 진짜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소유를 따르는 불자여서 그런가.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스님이 그려온 삶의 궤적이 신뢰로 이어진 것일 게다. 의원직 사퇴와는 다르게 와 닿는다. 수경 스님은 불심(佛心)으로, 의원들은 불신(不信)으로 인식된다. 진정성의 차이다. 의원들이 자초했다. 국회의원이 되면 좋은 게 한둘이 아니다. 헌법 기관으로 명예가 따른다. 4년 임기 보장은 명예를 더욱 빛내는 옥(玉)이다. 요즘처럼 불안한 구조조정 시대에선 큰 특권이다. 그 특권을 얻으려는 노력은 눈물겹다. 그들은 선거 때만 되면 한표 한표에 생사를 건다. 그런데도 걸핏하면 버린다고 한다. 특권을 진짜로 포기하면 충격을 주는 결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런 경우는 별로 없다. 거의가 시늉으로 끝난다. 의원직을 버린다는 건 십중팔구 거짓이다. 사퇴카드는 여러모로 무용(無用)하다. 상대방이 겁먹거나 동요하면 유용해진다. 문제는 그럴 가능성이 전무에 가깝다는 점이다. 사퇴의 진정성을 믿는 이는 별로 없다. 설령 믿는다고 해도 그만이다. 국회엔 보따리를 싸들고 말릴 동지도, 적도 없다. 혼자만 악을 쓰는 꼴이 된다. 속된 말로 약발이 안 먹힌다. 효과 없는 정치투쟁의 기법이다. 정치 불신만 더 깊게 할 뿐이다. 4년짜리 특권엔 의무가 따른다. 4년간 성실한 입법활동에 임해야 한다. 그런 의무를 깨는 건 약속위반이다. 지역주민에 대한 배신이다. 헌법기관의 공백은 직무유기다. 정 대표는 11개월간 직무를 유기했다. 당 대표의 직무만 수행했을 뿐이다. 3인방이 직무를 버린 기간은 5개월이다. 이마저 번복해 정치쇼를 자인한 셈이 됐다. 얻는 건 없고, 잃기만 했다. 국회법을 고쳐야 한다. 국회법상 의원직 사퇴 처리는 두 가지다. 회기 중에는 본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고, 폐회 중에는 국회의장이 허가해야 한다.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다. 그것도 선출직이다. 퇴진은 스스로 결정하면 된다. 국회의장이나 동료 의원들이 허락할 일이 아니다. 굳이 물으려면 지역주민에게 물어야 한다. 국회법은 꼼수다. 사퇴 쇼를 멋대로 부려도, 자리를 보전케 하는 술수다. 사퇴서를 내면 자동 처리되도록 국회법을 바꿔야 한다. 의원직 사퇴 쇼는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dcpark@seoul.co.kr
  • 정대세 “포르투갈전 패배, 브라질전보다 쇼크”

    정대세 “포르투갈전 패배, 브라질전보다 쇼크”

    ‘인민루니’ 정대세(가와사키)가 포르투갈전 대패에 대한 속내를 드러냈다.정대세는 24일(한국시각) 자신의 블로그에 “포르투갈전 패배는 브라질전보다 몇 십 배의 심리적 쇼크였다.”고 밝혔다.그는 “1:2로 패한 브라질전은 선전했다고들 하지만 내게 있어서 패배는 패배다.”면서 “패배로 인한 쇼크로 그 경기를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아 블로그를 하기 힘들었다.”며 그동안 블로그를 통해 소식을 전하지 못한 이유를 얘기했다.이어 정대세는 “포르투갈전은 여러분도 아시는 대로 참패. 브라질전 선전으로 많은 기대를 모았지만 오히려 흉한 모습을 보였다.”고 말한 후 “브라질전 때보다 몇 십 배의 심리적 쇼크로 하루종일 멍한 눈으로 지냈다.”며 0:7 대패에 대한 충격을 전했다.또 그는 “모두의 기대를 배신했지만 그런 우리들을 응원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우리들의 월드컵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라면서 25일 코트디부아르와 최종전에서 선전을 다짐했다.한편 정대세는 같은 날 올린 다른 포스팅에서 “한국의 결승 토너먼트 진출을 축하한다.”면서 “일본의 16강 진출도 기대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진 = SBS ‘2010 남아공 월드컵’ 중계방송 화면캡처 서울신문NTN 김민경 인턴기자 co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조권 VS 닉쿤, 섹시한 근육 대결 승자는?

    조권 VS 닉쿤, 섹시한 근육 대결 승자는?

    2AM 조권과 2PM 닉쿤이 섹시한 근육을 뽐냈다. 조권은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으아~~~ 힘들었음 ㅋ 오늘도 열심히 운동을~! 권 & 쿤(Kwon & khun)”이라는 글과 함께 헬스장에서 닉쿤과 함께 팔에 힘을 주고 근육을 자랑하는 모습의 사진을 공개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진 속 조권과 닉쿤은 어리고 소년 같은 이미지와 달리 강인하고 남성미 넘치는 근육을 선보여 여성팬들 사이에서 ‘반전돌’이라 불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조권과 닉쿤의 사진을 본 네티즌들은 “얼굴은 베이비 페이스 인데 몸은 화내고 있네요.”, “근육 너무 멋져요. 여자들이 꿈꾸던 이상형이예요.”, “남자가 봐도 매력지수가 팍팍 올라가네요.”, “얼굴을 배신한 몸... 반칙이예요.” 등의 댓글을 남기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사진 = 조권 트위터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몬주익영웅’ 대전청사에 왜?

    정부대전청사 입주기관들이 공동으로 진행하는 ‘3청사 아카데미’가 21일 오후 4시 대전청사 3동 204호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이번 아카데미에는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감독이 초청돼 ‘땀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를 주제로 강연한다. 평소 “선수시설은 물론 지도자가 된 지금도 소중한 땀의 가치를 절실하게 느낀다.”고 강조하는 황 감독은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출전, 몬주익 스타디움에 태극기를 휘날리기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3청사 아카데미를 주관한 특허청 김시형 행정관리담당관은 “3청사 아카데미는 공무원뿐 아니라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다.”면서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한번 되새기는 자리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3청사 아카데미는 대전지역에 있다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고 사회변화의 흐름 등을 따라잡기 위해 월 1회 사회·경제·리더십·자기계발 등 각 분야의 명사들을 초청, 강의를 듣고 있다. 그동안 산악인 엄홍길씨와 홍수환 전 복싱 세계 챔피언,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 세계적인 암 전문가인 이진수 국립암센터 원장 등이 초청됐다. 윤순호 문화재청 고도보존팀장은 “특강 주제가 시기와 잘 맞고 관심분야도 있어서 수강신청을 했다.”면서 “청사 공동 프로그램이라 그런지 자유롭고 편안하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월드컵 복근녀’ 한우리, 가수 연습생? 네티즌 ‘발끈’

    ‘월드컵 복근녀’ 한우리, 가수 연습생? 네티즌 ‘발끈’

    ‘월드컵 복근녀’의 정체가 걸그룹 연습생 한우리인 것으로 밝혀지자 네티즌들이 “또 마케팅이냐”며 발끈하고 나섰다. 지난 15일 각종 포털사이트에는 ‘월드컵 복근녀’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게재됐다. 동영상 속 여성은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가수 비의 ‘널 붙잡을 노래’와 걸그룹 포미닛의 ‘허’(Huh) 댄스를 선보였다. 특히 동영상 속 여성은 가수 비가 흰 민소매 셔츠를 걷어 올리는 안무를 완벽하게 재현하며 선명한 ‘식스팩’을 드러내 네티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동영상을 본 네티즌들은 ‘그녀가 누구인지’에 대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마침내 이 여성이 ‘스타스쿨’ 소속 연습생 한우리 양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에 네티즌들이 발끈하고 나섰다. 대부분의 네티즌들이 인터넷 포털 게시판을 통해 “연예인 지망생들이 ‘응원녀’를 통해 얼굴을 알린다는 자체가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 스포츠를 응원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니 배신감이 든다.”는 입장이다. 한편 가수 보아를 ‘롤모델’이라고 밝힌 한우리는 현재 정식 데뷔를 위해 안무, 보걸 트레이닝에 매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 = ‘월드컵 복근녀’ 동영상 캡처 서울신문NTN 이효정 인턴기자 hyojung@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씨줄날줄] 욕망의 괴물/김성호 논설위원

    인간의 원천적 본성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대의 고금과 양의 동서를 관통해 발전해온 철학, 인문학의 요체도 인간본성의 천착이다. 고대 중국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은 본성을 선과 악으로 명쾌히 구분한 대척의 사상. 당대엔 정치·사상과 연결돼 치열한 논리싸움이 있었을 터. 하지만 본성의 선하고 악함을 떠나 수양을 통해 도덕적 완성을 이루라는 공동의 논지는 탁월한 울림으로 전한다. 성악설과 닮아 보이는 기독교의 원죄설도 운명적인 숙죄의 해제를 강조하는 신학설. 출생과 더불어 짊어진 죄를 털기 위한 사함과 구제노력은 신학의 교리를 떠나 인류공동의 목표로 자리잡아왔다. 성선·성악설이건 원죄설이건 바탕엔 욕망이란 공통의 단초가 자리한다. 누구나 태어나 죽을 때까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몸을 실어 부대끼는게 삶이다. 욕망을 제어할 근기를 타고 난다는 성선설이나, 감성적 악에 치우치기 마련이라는 성악설도 모두 욕망에 대한 경계일 것이다. 타력구제의 신학설인 원죄설도 욕망의 경계와 응징에선 다르지 않을 터. ‘삼계(三界)가 모두 불타는 집(火宅)’이라는 불교경전에서도 탐진치(貪瞋痴) 삼독(三毒) 중 가장 경계할 으뜸의 해악은 욕망(貪)이다.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을 어찌 선과 악의 간결한 이분 잣대로만 구분할 수 있을까. 우리 주변엔 양의 탈을 쓴 이리도 많고,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린다는 모순의 악어도 숱하다. 로마신화 속 전쟁과 평화를 상징하는 두 얼굴의 신 야누스며, 선인과 악한을 오가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도 역시 헷갈리는 인간 본성의 고발과 다름없을 것이다. ‘내 속에 욕망의 괴물이 있다.’ 최근 초등학생을 납치, 성폭행한 피의자 김수철이 현장검증서 남겼다는 말. 끔찍한 범행 이후 사죄와 회한치곤 철학적이다. 욕망의 끝에 뱉어낸 말의 진의가 알쏭달쏭하기만 한 것이다. ‘내 속에 살아온 욕망의 괴물’은 남의 것일까, 자신일까. 불교계의 환경운동을 이끌다 최근 잠적한 수경 스님.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더라.’며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는 일갈이 회자된다.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의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는 말의 속내를 알기엔 시간이 꽤 걸릴 것만 같은데. 욕망에 휘둘리는 세상을 향한 고언인지, 세상에 속고 나 자신을 배신했다는 뒤늦은 발견인지. 두 사람이 세상을 향해 던진 욕망의 화두가 어렵기만 하다. 내 안에 살고 있는 욕망의 괴물은 어떤 것일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한국전쟁 60주년 기획] 中 초기 피말린 권력투쟁… ‘對美전쟁’을 돌파구로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은 절대로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마오쩌둥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고 동이 틀 때까지 줄담배를 피웠다.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듯 중국과 한국 지도를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하지만 갈수록 중국이 참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뚜렷해졌다. 타이완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미군과 정면충돌을 피하고 싶었다. 그는 이번 전쟁의 승패가 가져올 정치적 여파를 꼼꼼히 계산했다. 미군이 참패를 맛볼 것이라고 확신했다. 국공내전을 치르느라 쇠약해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이자 역사가인 미국의 데이비드 핼버스탬이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를 속속들이 파헤친 ‘콜디스트 윈터’에서 묘사한 중국 참전결정의 전야(前夜)이다. 중국 주력부대의 압록강 도하 시간은 1950년 10월19일 오후 5시30분이었으니 18일 밤 상황인지도 모른다. 진위를 떠나 핼버스탬은 마오쩌둥의 번민을 마치 소설의 한 장면처럼 묘사했다. 중국군 개입은 한반도 내전을 순식간에 제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시킬 수 있는 도화선이었다. ●마오 결정은 중국을 위한 선택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마오쩌둥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숱한 해석과 이론이 난무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중국을 위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이 내세우는 한국전쟁 참전의 대의명분은 ‘미국에 대항해서 북한을 돕는’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제7함대를 파견해 타이완해협을 봉쇄하고, 프랑스의 베트남 지배를 지지한다는 내용의 6월27일 미국 트루먼 대통령의 성명에 정면대항하는 이른바 ‘미·중 전쟁’의 선전포고였다. 중국을 목표로 한반도, 타이완, 베트남 등 3개 루트를 통해 침투하려는 미국의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 전략에 맞서려는 의도였다. 마오쩌둥은 미국이 이들 3개 지역을 차지하고 나서 궁극적으로는 중국본토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의 참전 배경과 결정과정은 그동안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스탈린과 김일성의 설득에 따라 공산진영을 지키려는 마오쩌둥의 고독하고 영명한 결정이라는 정도밖에. 그러나 최근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 측 비밀자료를 보면 마오쩌둥은 신생 중화인민공화국과 자신의 운명을 건 주사위를 한국전쟁을 향해 내던졌음을 알 수 있다. 전쟁은 마오쩌둥의 독단적 선택이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중국은 이 같은 사실을 오랫동안 공개하지 않았다. 전쟁의 명분과 결과만 얘기했다. 중국의 한국전쟁 개입의 실마리는 ‘조선인 사단’의 귀환 동의에서 찾을 수 있다. 개전 초 김일성이 파죽지세로 낙동강 전선까지 공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해방군에서 귀환한 3만 5000명 규모의 조선인 장병의 공이 컸다. 마오쩌둥은 1949년 중국 동북 3성 거주 조선족으로 구성된 2개 사단(2만명)을 통째로 북한에 넘겼다. 이들은 인민군 5, 6사단으로 편성됐다. 1950년에는 나머지 부대원 1만 5000명을 또 귀환시켰다. 이들은 국공내전에서 실전을 쌓은 백전노장들, 인민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마오쩌둥, 스탈린과 한국전쟁’을 쓴 화동 사범대 선즈화 교수는 “북한에 대한 마오쩌둥의 동정과 지지를 보여준 조치”라고 분석했다. ●조선인 해방군 3만여명 北에 넘겨 본격적인 참전준비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7월부터 치밀하게 이뤄졌음이 중국 측 자료에 의해 새롭게 드러났다. 참전이 최종 결정된 10월19일까지 넉 달 가까이 피 말리는 내부투쟁이 중국 지도부 사이에서 벌어졌다. 7월7일 ‘미국의 조선 무장침략 후의 정세분석과 중국의 국방 증강대책’이라는 국방군사 회의가 열렸다. 13일에는 한국에 투입될 30만명 규모의 동북변방군 창설이 결정됐다. 가상 적국은 미국이었다. 8월4일 당 중앙 정치국회의에서 마오쩌둥은 “미국은 한반도와 타이완, 베트남에서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한반도에서 미국과 교전할 작정이다. 미국이 계획하고 있는 전투규모가 크든 작든 혹은 원자폭탄을 사용하든 우리는 최후까지 싸울 수밖에 없다.”라고 결사항전의 비장한 선언을 했다. 동북변방군은 출동할 때 ‘의용군’이란 명칭을 사용했다. 조선인민군 복장을 착용하며, 인민군의 깃발을 내걸고, 주요 간부의 이름도 조선인 이름으로 바꿨다. 해방군 정예부대인 제4야전군이 주축이 된 의용군은 ‘준비된 군대’였다. 참전 초기 연합군을 무서운 속도로 밀어내며 연전연승한 것은 연합군의 실책도, 운이 좋아서도 아니었다. 매복, 위장 등 한반도 북부 산악지형에 맞는 전술을 훈련을 통해 몸에 익혔기 때문이었다. 30만 의용군이 오로지 인해전술로 북진 중이던 13만 연합군을 물리쳤다는 건 냉전시대 교육의 산물이다. 9월 참전 구상이 세워졌지만 시기는 계속 연기됐다. 마오쩌둥도 저우언라이 총리와 린뱌오 등 지도부의 거센 반대를 모른 체할 수 없었다. 중국의 문서보관소인 당안관(?案館)자료와 내부적으로 발간된 ‘건국 이후 마오쩌둥의 문고(文矯)’ 등에 따르면 중국 지도부는 혼란을 겪었다. 린뱌오는 “중국 자체의 존립이 위협받을지도 모르고, 승리 가능성이 작다.”라는 이유로 출병을 반대했다.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일본 도요가쿠엔대학 지안롱 교수는 저서 ‘모택동의 한국전쟁’에서 10월4일과 5일 정치국 회의 참가자 중 찬성과 반대의 세력분포에 대해 재미있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찬성자는 마오쩌둥 혼자뿐이었고, 불명확한 사람은 저우언라이 총리와 펑더화이 사령관 두 명이었으며, 나머지 7명은 반대했다는 것이다. ●中 독자출병 소식에 스탈린 눈물 그러나 마오쩌둥은 10월5일 정치국 회의에서 “어떤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어떤 곤란이 있더라도, 미군이 평양을 점령하기 전에 출병해야 한다.”라고 밀어붙였다. 펑더화이를 의용군 총사령관에 추천한다고 발표해 버렸다. 세 번이나 번복된 참전이 최종 결정됐다. 이후 냉전체제가 해체돼 한국전쟁의 주역인 스탈린과 마오쩌둥, 그리고 김일성 사이에 오간 극비문서들이 공개되기 전까지 중공군 참전과정의 진실은 서고 속에 묻혀 있었다. 김일성에게 베이징의 개입은 유일한 희망이었다. 크렘린은 계속 베이징 지도자에게 미루고 있었다. 중국의 참전소식은 나흘 뒤인 10월8일에야 평양에 전해졌다. 초대 평양 대리대사를 지낸 차이청원은 회고록에서 ‘김일성은 “그것 잘됐다, 잘됐어.”라고 몇 번이나 말했다. “마오 주석과 당 중앙에 나와 조선 당, 인민의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해 달라.”라고 기뻐했다고 적고 있다. ’ 앞서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 이후 북으로 패주하면서 중국 망명정부 수립을 준비 중이던 김일성은 10월1일 ‘경애하는 마오쩌둥 동지’ 앞으로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이 위험상태를 극복할 수 없다. 중국인민해방군이 직접 출동해 지원해 달라.”라고 애걸복걸하는 편지를 보낸 상태였다. 중공군의 참전결정이 차일피일 늦어진 것은 소련군의 공군지원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서였다. 보병은 중국, 공군은 소련이 맡는다는 것이 애초 양측의 합의사항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마오쩌둥은 저우언라이 총리를 모스크바에 보내 공군지원을 요청했으나 ‘준비 불충분’을 이유로 거절당했다. 중국 측 연구자들은 이를 ‘스탈린의 배신’이며 추후 중·소 갈등의 뿌리가 되었다고 본다. 또 소련공군의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중국의 독자출병소식을 들은 스탈린은 눈물을 흘렸다고 중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몇 년 뒤 마오쩌둥은 “스탈린은 나를 (자국이익만 생각하는) ‘유고슬라비아의 티토’로 의심했지만 항미원조전쟁이 시작된 1950년 겨울부터 이 의심은 사라졌다.”라고 회고했다. 마오쩌둥은 한국전쟁에 러시아어 통역장교로 자원입대한 장남 마오안잉(28)을 미 공군기의 폭격으로 잃었다. 마오안잉의 묘는 평남 회령군 ‘지원군 열사능원’에 있다. 36만명에 이르는 중국군 전사자들과 함께 묻혀 있다. 마오쩌둥은 만류하는 측근들에게 “내 아들이 가지 않는다면 인민 누구도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 또 전쟁이 끝나고 나서 “전쟁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중국과 북한 양국의 우의는 혁명열사들의 선혈로 맺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中, 3년간 500만명 병력 투입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 의용군의 규모는 어느 정도였을까. 중국 측 자료에 따르면 79개 보병사단과 12개 공군사단, 16개 포병사단, 10개 공병사단, 10개 전차연대 등 모두 합치면 200만~300만명에 이른다. 최고조에 이른 1953년 4월부터 7월까지는 일시에 130만명의 병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3년 동안 연인원 500만명이 동원됐다는 서방 측 자료도 있다. 중공군 희생자는 공식적으로 36만 6000명이지만 비전투 사상자를 더하면 사실상 60만~90만명으로 추정된다. 미군 전사자 3만 3000명과는 비교 불가한 엄청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이 됐다. 우리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중국의 일방적인 북한 편들기를 비판하지만, 중국 지도부의 생각은 60년 전에 비해 크게 바뀌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미국- 일본-타이완-한국전선에 대항하고 완충지대를 갖기 위해서는 설령 사고뭉치라고 하더라도 북한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는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김일성의 우상은 스탈린에서 마오쩌둥으로 바뀌었다. 결정적인 순간 소련이 아니라 중국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전쟁 전 소련 위주의 북한정책이 전쟁 후 중국위주로 전환됐다. 지안롱은 “정전협정 뒤 중국과 북한 수뇌는 언제라도 서로 털어놓을 수 있는 특수한 관계가 계속됐다.”라고 설명했다. 집단지도체제를 유지하던 마오쩌둥에게 한국전쟁은 터닝 포인트였다. 한국전쟁에 개입함으로써 소련과의 동맹을 공고히 했고, 북한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미국이 함부로 못하는 위협적 존재가 됐다. 인도차이나반도 문제 등에 대한 국제적 지위를 부여받았다. 1971년 타이완을 내쫓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하는 발판이 됐다. 비록 ‘비기는 전쟁’으로 끝났지만 마오쩌둥의 도전과 모험은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마오쩌둥은 1953년 스탈린 사후 자신이 사망한 1976년까지 중국과 공산진영에서 ‘살아있는 신’으로 군림했다. 노주석 논설위원·윤샘이나 기자 joo@seoul.co.kr
  • “너를 위해… 이 한마디에 안중근역 맡았죠”

    “너를 위해… 이 한마디에 안중근역 맡았죠”

    “겨레와 나라가 뭐기에 가족들을 왜 다 버렸냐는 아들 준생의 물음에 안중근이 ‘너를 위해서’라고 대답했어요. 그 대사 한마디에 꽂혀서 하게 됐습니다.”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 송일국이 안중근 의사를 다룬 연극 ‘나는 너다’에 출연한다. 뮤지컬 ‘영웅’이 영웅으로서 안중근을 조명한다면, 연극은 인간 안중근에 초점을 맞춘다. 이는 송일국이 안중근과 그의 둘째 아들 준생 1인 2역을 맡았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안 의사의 가족 얘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안 의사의 장남 분도는 7살 때 죽었다. 일제의 독살설이 나돌았다. 둘째 준생은 더 비극적이다. 1939년 총독부는 중국 상하이에서 어렵게 살던 준생을 불러들여 이토 히로부미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행동은 잘못이었다.”고 사과하도록 했다. 배신자 낙인이 찍힌 것. 광복 직후 김구 선생이 중국 정부에 아비 이름을 더럽힌 준생을 죽여달라고 요청했을 정도다. 준생은 1952년 사망할 때까지 ‘호부견자’(虎父犬子·호랑이 아비 밑에 태어난 개 같은 자식)라는 욕을 들어야 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살아온 송일국이 ‘너를 위해서’라는 대사에 꽂힌 이유다. 지난 9일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송일국은 “극 중 대사에는 준생을 친일파, 배신자라 부르는 대목이 나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나 역시, 그리고 누구라도 그 시대를 살았다면 그렇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저는 그렇지 않았지만, 독립운동 때문에 되레 집안은 참으로 많은 고생을 했고, 그런 얘기들을 쭉 듣고 보면서 자랐다.”면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어떤 꼬리표가 달라붙을지 뻔히 알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준생을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안 의사가 더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는 게 아니겠나.”라고 덧붙였다. 송일국 개인으로서는 연극 무대 첫 도전이다. 첫 도전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을 넘어서게 한 것도 작품의 이런 성격 덕분이다. 연출을 맡은 윤석화의 협박(?)도 통했다. 윤석화는 “처음 출연을 제안했을 때 연극 무대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얘기했지만, 네가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니 이런 역할을 맡을 책임도 있다고 설득했다.”면서 “가난한 연극판의 적은 개런티에도 흔쾌히 출연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나는 너다’는 새달 27일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막을 올린다. 배우 박정자가 안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역을 맡고, 한명구·배해선 등이 출연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브리트니스피어스, 남친 양다리에 충격 ‘두분물출’

    브리트니스피어스, 남친 양다리에 충격 ‘두분물출’

    남자 복 없는 브리트니가 전 남편에 이어 또 한 번 남자친구로부터 ‘배신’을 당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결혼설이 오가던 오랜 남자친구 제이슨 트래윅이 양다리를 걸친 사실에 충격을 받아 현재 자택에서 두문불출 중인 것. 할리우드 연예매체 ‘스타 매거진’은 지난 10일 “스피어스의 남자친구 제이슨 트래윅이 자신의 전 여비서와 밀애를 즐기고 있었다.”라며 “연인의 양다리 사실을 알게 된 스피어스가 현재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라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스피어스의 측근은 “현재 스피어스는 누구도 만나지 않은채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며 “트래윅과의 관계 지속여부에 대해 큰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트래윅의 외도 상대는 스피어스도 이미 잘 아는 트래윅의 전 여비서이자 배우로 활동 중인 제시카 스테인도프. 스피어스와는 트래윅의 소개로 서로 인사도 나누고 종종 식사도 함께 하는 사이였다. 충격적인 것은 트래윅과 스테인도프의 외도 시점이 브리트니와 이미 연애를 시작한 2007년부터였다는 것. 스테인도프 측근에 따르면 “트래윅은 스테인도프에게 ‘스피어스와 헤어질 것이다’라고 말하며 관계를 지속했다.”고 알려졌다. 한편 스피어스는 자신의 보디가드에게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할 위기에 처한 데 이어 연인의 양다리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또 한번 시련의 계절을 맞고 있다. 사진 = 영국 더 선(the sun)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리틀 이영애’ 조정은, ‘제빵왕’ 통해 연기호평

    ‘리틀 이영애’ 조정은, ‘제빵왕’ 통해 연기호평

    ‘제빵왕 김탁구’ 명품 아역들의 연기에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6월 10일 방송된 KBS 2TV ‘제빵왕 김탁구’(극본 강은경/연출 한준서) 2회에서는 주인공 아역들의 연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졌다. 어린 김탁구의 모습이 주로 그려진 가운데, 김탁구가 짝사랑하는 인물인 신유경역을 맡은 아역이 어쩐지 낯이 익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술집을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어두운 어린 시절을 보낸 신유경역은 2003년 MBC 사극 ‘대장금’에서 이영애의 아역으로 출연해 인기를 모았던 조정은. 당시 어린 장금역으로 출연해 “홍시 맛이 나서 홍시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이온데 왜 홍시 맛이 나냐 하시면...”이란 깜찍한 대사를 유행시키며 국민적 인기를 모은 장본인이다. 조정은은 지난 세월과 훌쩍 자란 키만큼 외모가 많이 달라졌지만 눈에 익은 인상으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했다. 눈썰미가 좋은 시청자들은 2회 방송 후 해당 드라마 게시판을 찾아 “어린 장금이가 잘 자라줬다.”며 반가움을 표하기도 했다. 주인공 신유경(유진 분)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조정은은 ‘대장금’ 당시보다 키가 훌쩍 자란 만큼 얼굴도 한층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대장금’에서 보여줬던 연기력도 여전히 녹슬지 않아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벽히 소화했다. 한편 조정은이 연기하는 신유경역은 김탁구를 사랑하지만, 돈과 권력 앞에서 그를 배신하고 이용하는 등 야심으로 가득 찬 여자로 변해갈 예정이다. 사진 = KBS 2TV ‘제빵왕 김탁구’ 캡처, 조정은 팬카페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폭시 한장희, 또 잠적..소속사 “강력대응 할 것”

    폭시 한장희, 또 잠적..소속사 “강력대응 할 것”

    여성듀오 폭시의 멤버 한장희가 또 팀을 무단이탈하고 연락이 두절된 가운데 소속사 측이 강경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소속사에 따르면 한장희는 열흘가량 전 소속사를 무단으로 이탈하고 변호사를 통해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소속사에 보냈다. 소속사 측은 연락을 취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 중이지만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이는 팀 동료인 다함도 마찬가지다. 한장희가 팀을 무단이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소속사 측은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소속사 측은 “한장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도 여름으로 가계약을 맺고 폭시 멤버로 활동을 준비했다.”며 “당시에도 녹음을 한참 진행하고 앨범 준비가 거의 끝났을 무렵 장희는 갑작스럽게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고 전했다. 그런 한장희가 다시 폭시 멤버로 합류한 것은 동료인 다함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다. 다함은 2008년 한장희를 우연히 다시 만났고 다시 폭시로 활동을 하자고 제안한 것. 소속사 측은 반대했지만 다함의 요청과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라는 한장희의 약속에 다시 전속계약을 맺게 됐다. 소속사 측은 “한장희가 과거 본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차후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과 이해를 구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한 번 더 믿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장희의 무단이탈로 그간의 투자비용과 예정된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등 소속사 측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소속사 측은 “금융위기로 투자회사와의 계약체결이 불발되면서 금전적인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한장희에 대한 트레이닝 비용은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활동에 차질이 생겨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무법인 한림을 회사의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한 뒤 변호사를 통하여 한장희측 변호사와 의견조율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이상 연예활동은 힘들다는 말 뿐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소속사 측은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강력대응 한다는 방침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뉴스팀 nt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송일국 “일제시대 친일파, 시대적 아픔 이해해”

    송일국 “일제시대 친일파, 시대적 아픔 이해해”

    배우 송일국이 “일제 시대 때 힘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배우 송일국은 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열린 연극 ‘나는 너다’(윤석화 연출)의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시대적 힘에 무릎을 꿇은 이들을 이해한다.”고 전했다.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 삶과 그의 아들 안준생을 재해석해 만들어진 이 작품에서 송일국은 안중근과 그의 아들 안중생 1인2역을 맡았다. 그는 “안중근보다 안중생이 제게 더 어울린다.”고 운을 뗐다. 송일국은 “안중생을 친일파 배신자 변절자라고 부르는데 그렇게 생각 안 한다.”며 “그 시대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그랬을 거다. 나도 아마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그랬을 것”이라며 시대적 상황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어 “일제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의거한 영웅들의 가족들이 당시 시대에서 떳떳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 역시 이해한다.”고 언급했다. 송일국은 독립운동가의 백야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로서 안중근역을 맡은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할아버지가 떳떳해서 현재를 자랑스럽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송일국의 이같은 발언 사실을 접한 네티즌들은 “본인 배역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서인진 모르겠지만 너무 경솔한 말이다.”, “장군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느냐?”며 강하게 분노하고 있다. 한편 연극 ‘나는 너다’는 안중근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닌 그의 삶과 거사의 의미,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들을 되짚어 보기 위해 제작됐다. 다음달 27일부터 8월 29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KB하늘극장에서 공연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 / 사진=현성준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엘프녀’ 한장희, 또 폭시 ‘무단이탈’..소속사 ‘분노’

    ‘엘프녀’ 한장희, 또 폭시 ‘무단이탈’..소속사 ‘분노’

    여성듀오 폭시의 멤버 한장희가 또 팀을 무단이탈하고 연락이 두절된 가운데 소속사 측이 강경대응 하겠다고 밝혔다. 소속사에 따르면 한장희는 열흘가량 전 소속사를 무단으로 이탈하고 변호사를 통해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소속사에 보냈다. 소속사 측은 연락을 취하려고 백방으로 수소문 중이지만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이는 팀 동료인 다함도 마찬가지다. 한장희가 팀을 무단이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소속사 측은 큰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소속사 측은 “한장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2005년도 여름으로 가계약을 맺고 폭시 멤버로 활동을 준비했다.”며 “당시에도 녹음을 한참 진행하고 앨범 준비가 거의 끝났을 무렵 장희는 갑작스럽게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고 전했다. 그런 한장희가 다시 폭시 멤버로 합류한 것은 동료인 다함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서다. 다함은 2008년 한장희를 우연히 다시 만났고 다시 폭시로 활동을 하자고 제안한 것. 소속사 측은 반대했지만 다함의 요청과 다시는 불미스러운 일 없을 거라는 한장희의 약속에 다시 전속계약을 맺게 됐다. 소속사 측은 “한장희가 과거 본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일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고 차후 문제에 대해서도 조언과 이해를 구하는 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 한 번 더 믿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한장희의 무단이탈로 그간의 투자비용과 예정된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는 등 소속사 측은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다. 소속사 측은 “금융위기로 투자회사와의 계약체결이 불발되면서 금전적인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한장희에 대한 트레이닝 비용은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데뷔하자마자 활동에 차질이 생겨 난감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무법인 한림을 회사의 소송대리인으로 선임한 뒤 변호사를 통하여 한장희측 변호사와 의견조율을 시도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더 이상 연예활동은 힘들다는 말 뿐이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소속사 측은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강력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정병근 기자 oodless@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현대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이 온다

    ‘현대연극의 거장’ 피터 브룩이 온다

    ‘현대 연극계의 신화’ 피터 브룩(85)의 작품이 처음으로 한국 무대에 오른다. 17~20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 오르는 작품 ‘11 그리고 12’다. 제목에서 드러나는 ‘한 끗 차이’가 얼마나 무모한 결과를 낳는지 보여줌으로써 인간에 대한 철학을 고민케 하는 작품이다. 배경은 1930년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서부에 있는 말리 지역. 수피교를 믿는 신도들은 ‘완벽의 진주’라는 기도문을 여러 차례 암송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어느 날 문제가 발생한다. 원래 기도문을 11번 외워야 하는데 예배시간에 늦은 스승이 무안할까봐 한번 더 외우는 바람에 12번 외우는 것이 전통으로 굳어진다. 이를 안 다른 교도들, 그러니까 11번 외우는 전통을 고수하는 교도들은 이를 바로잡겠다며 들이닥치고, 이 지역을 식민통치하고 있던 프랑스 당국은 11번 외우는 것을 고집하는 것이 식민지배에 대한 저항의식이 아닌지 추궁하기 시작한다. 이런 혼란 와중에 기묘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두 파벌의 화해를 모색하던 티에르노 보카는 배신자로 낙인찍힌 뒤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다.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연극적 장치를 모조리 배제해 버리는 연출 때문이다. 무대는 극도로 간소화돼 빨간 카펫 하나에 모래 조금 얹어둔 정도가 전부다. 배우들 역시 감정에 몰입해 관객의 심금을 울리기보다, 무미건조한 연기와 선문답 같은 대사만 선보인다. 여기다 아프리카 작가 아마두 함파테 바가 쓴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서야 연극이 시작된다. 브룩이 쓴 책 제목이 하필 ‘빈 공간’이고, 여기서 “우리가 연출이라고 부르는 것, 연출의 효과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잘 알고 그 풍부함도 안다. 그러나 나는 연출 효과를 버렸을 때 뭔가 더 큰 가치를 지닌 다른 것이 나타난다고 믿는다.”고 언급하는 뜻이 여기 있다. 브룩의 이 같은 말은 67년에 이르는 긴 연출 인생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18살의 나이로 연출한 ‘닥터 파우스트’에 대한 호평 덕분에 21살에 이미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전신인 셰익스피어 기념극장 연출가 자리를 꿰찼다. 영화감독도 했다. 국내팬들에게는 ‘파리대왕’(19 68년작)이 알려져 있다. 15일 프랑스문화원 주최로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에서 열리는 ‘씨네 프랑스’ 행사 때 브룩의 1960년작 ‘모데라토 칸타빌레’도 만날 수 있다. 브룩은 1970년 ‘한여름밤의 꿈’을 통해 “이 작품 외에 아무것도 한 게 없어도 연극사에 길이 남을 것”이라는 평과 함께 세계적 명성을 거머쥔다. 이어 프랑스에서 연극실험집단인 국제연극연구소(CIRT)를 차리고 파리의 뷔페 뒤 노르 극장을 인수한 뒤 인도의 대서사시를 9시간짜리 연극으로 만든 ‘마하바라타’ 등 숱한 걸작과 화제작을 쏟아냈다. ‘11 그리고 12’는 뷔페 뒤 노르 극장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뒤 무대에 올리는 첫 작품. 연극팬들의 기대감이 어떨지 상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3만~7만원. (02)2005-011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진재영 “‘골미다’하차 후 남자친구 생겨” 고백

    진재영 “‘골미다’하차 후 남자친구 생겨” 고백

    배우 진재영이 ‘골드미스가 간다’에 깜작 출연해 남자친구를 공개했다.진재영은 지난 6일 방송된 SBS ‘일요일이 좋다-골드미스가 간다’(이하 ‘골미다’)에 지난해 6월 하차 후 오랜만에 출연해 멤버들과 반가운 만남을 가졌다.진재영은 “‘골미다’ 하차 후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해 멤버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에 신봉선은 진재영에게 배신감을 드러내며 “진작 하차했어야 했다.”며 억울해 했다.진재영이 현재 만나고 있는 상대는 진재영보다 4살 연하인 골프강사 J씨로 두 사람은 1년 전 첫 스승과 제자로 처음 만나 사랑을 키워온 것으로 전해졌다.한편 이날 최종회 방송에서 신봉선은 맞선남 노현석씨와 두 번째 만남에 성공을 거두며 커플이 됐다.사진 = SBS서울신문NTN 강서정 인턴기자 sacredmoon@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유세윤 고백 “개그콘서트 출연못하는 3가지 이유”

    유세윤 고백 “개그콘서트 출연못하는 3가지 이유”

    개그맨 유세윤이 ‘개그콘서트’에 출연하지 못하는 것은 ‘유상무’때문이라고 폭로(?)했다. 유세윤은 지난 5일 방송된 KBS 2TV ‘연예가 중계- 윤형빈의 조금 더 불편한 인터뷰’에서 ‘개그콘서트’를 쉬고 있는 이유가 ‘유상무의 배신’때문이라고 폭탄 발언했다. 이날 유세윤은 3가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며 “먼저 아이디어의 고갈 문제와 내부적인 사정이 있다.”고 밝히며 이어 “세 번째는 유상무의 배신이 KBS에 큰 타격을 줬다.”고 언급했다. 또 윤형빈이 최근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쿨하지 못해 미안해’의 수익에 대해 묻자 “즐기다 집 사겠다.”며 너스레를 떨어 좌중을 폭소케 했다. 끝으로 유세윤은 “어르신, 저 방송하고 있어요. 방송 잘하고 있고 돈 많이 벌어갈 테니 건강 하세요.”라고 연상의 아내에게 독특한 영상 편지를 남겨 스튜디오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사진 = 서울신문NTN DB 서울신문NTN 오영경 인턴기자 oh@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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