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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 KT “민주당 사수에” 전력

    ◎자파결속 강화·관망파에 “잔류” 설득/「DJ신당」과 총선서 한판승부 준비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창당행보가 기정사실화 하면서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하던 민주당 이기택총재의 「당사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김이사장의 민주당 의원 「빼내기」에 맞선 「지키기」 작업과 함께 대응전략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이와 함께 김이사장의 정계복귀를 겨냥한 본격적인 포격에 앞서 전열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이총재는 11일 아침 자택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이사장이 국민과의 약속을 쉽게 어길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김이사장의 「약속위반」에 대한 소회를 피력했다.일말의 진한 「배신감」이 배어 나왔다.이총재는 이어 『김이사장에 대해 할 얘기가 많다』면서 『주말쯤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해 김이사장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를 예고했다. 이총재는 이어 이날 낮에는 핵심 측근 의원들을 북아현동 자택등으로 불러 자파 의원들에 대한 단속활동을 벌였다.강창성·이장희 의원 등이 나서 관망파 의원들과 접촉을 갖고 민주당 잔류를 설득하고 있다. 이와함께 신당창당의 명분을 최대한 약화시키는 방안도 강구 중이다. 12일 자파지구당위원장들과 함께 갖기로 했던 「당수호 결의대회」를 18일 김이사장의 회견 이후로 미룬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총재 진영은 그러나 이같은 자파단속에도 불구하고 결국 이총재와 운명을 함께 할 의원은 10명선을 넘기 어려울 것이라는 「냉정한」 결론을 내려놓고 있다.당장은 전국구 의원들의 잔류로 30명선을 유지하겠지만 한시적일 뿐이라는 인식이다. 때문에 이총재측은 이번 기회에 민주당을 새롭게 재건한다는 각오아래 분당이후의 대응책을 모색하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당장 15대 총선을 목표로 서울 등 중부권과 경북 등에서의 지지기반을 확대,김이사장의 신당과 한판승부를 겨룬다는 방침이다. 당내 잔류의원들의 면면이 결코 신당의 구성원들에 비해 뒤지지 않고 법적으로는 민주당이 정통야당의 맥을 잇고 있는 만큼 15대 총선에서 충분한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자신한다. 당분위기 쇄신과 관련해 이총재측은 이부영·노무현 부총재와 김정길전최고위원을 부총재로 임명,「3인부총재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와 함께 당의 개혁성을 높이기 위해 신진인사의 영입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이를 위해 최근 발족시킨 사조직 「민탑」을 본격 가동하고 있으며 정치자금도 새롭게 마련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 충북지역 상호신용금고 에금인출 사태

    【청주=김동진 기자】 충북상호신용금고의 예금 불법유용과 부정대출 사건을 수사중인 청주지검은 8일 법원으로부터 이 회사의 본점과 충주지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예금 출납관계 서류와 전산자료를 압수,조사하고 있다. 정이사는 이날 회사로 전화를 걸어 『민회장 등에게 배신감을 느낀다』며 자신의 결백함을 주장한 뒤 『민씨의 은닉재산을 찾아낸 뒤 검찰에 자진출두 하겠다』고 말했다. 실사작업을 주도하는 신용관리기금의 장내찬 부장은 『민회장이 청주와 충주 등지에 보유한 35억원의 부동산을 추가로 압류했다』고 밝혔다. 또 지금까지 밝혀진 6백10억원대의 횡령액 가운데 부동산 압류와 대출금환수 등을 통해 회수가 가능한 금액은 1백50여억원 정도라고 밝혔다. 한편 충북신용금고의 사고로 제2금융권에 대한 예금주들의 불안심리가 커지며 충북도내 상호신용금고들마다 평소보다 2∼3배나 많은 예금이 인출되는 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지구촌 칼럼)

    ◎미­러 밀월관계 깨지고 있/러­“경제개혁 실패는 미국탓”/미­국제문제 독자행보는 배신” 미국과 러시아 두나라간의 밀월관계는 확실히 끝났다.그리고 갖가지 크고 작은 문제들이 이 두 나라의 밀월을 해치고 있다.관계를 해치는 요인들은 무엇인가.그리고 앞으로 이 두나라 관계는 어떻게 발전될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들의 국내정치적 요인들을 체크해봐야한다.러시아에서는 소위 「쇼크요법」식 급진경제개혁이 실패함에 따라 크렘린내 권력핵심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보수주의,전통주의 정치인들이 진출해있다.물론 이들은 과격 반대파 정치세력에 의해 점차 많은 압력을 받고 있다.극단주의자들은 소연방의 해체,강대국 지위의 상실,그리고 친서방 일변도의 정책에 대해 크렘린내 민주세력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이들은 지난 10년간 러시아가 겪은 재난들이 모두 미국에 의해 계획되고 저질러진 것으로 믿는다.사회,경제,민족문제등에 시달리는 국민들은 이러한 선동에 쉽게 휘말린다.이런 분위기에 과감히 제동을 거는 정치인도 없고 대외정책도 점차 보수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국 역시 러시아에 대해 점차 덜 우호적으로 돼간다.이는 부분적으로는 러시아국내 문제 탓이지만 크게는 미국내 사정 탓이다.차기 대통령 선거를 앞둔 민주·공화 두 세력간 경쟁관계가 첨예화된데서 파생되는 현상이다. 두나라 관계를 해치는 또다른 요인으로는 수년에 걸친 협력관계 모색이 별 결과를 낳지 못했다는 실망을 들 수 있다.처음 러시아 민주세력들은 미국을 러시아의 개혁을 도와줄 이념,정치적 동맹관계로 보았다.미국 지도자들 역시 러시아의 개혁을 지지했다.그러나 최근 러시아의 대내외 정책 기조가 변하면서 미국의 관심은 급격히 퇴조했다.그러자 러시아 정치인들은 이를 미국의 배신으로 받아들였다.양측 모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원조문제만 해도 그렇다.1992년에 미국은 러시아를 주 원조대상국으로 간주했다.새 러시아에 필요한 물품,재정적 지원을 베풀 태세가 돼있는 듯했다.하지만 지금 러시아는 미국의 차관,원조가 불충분하다고 욕한다.투자 역시 미미하다.필요한 투자 대신 미국은 쓸데없고 유해한 물품(예를들면 껌·담배등)들만 러시아에 실어나른다.법적 제약 때문에 기술이전도 되지 않고 미국은 러시아가 제3국에 기술을 팔아 돈을 버는 길마저 막고 나선다.러시아와 이란간 핵기술 판매협정 건이 바로 그런 예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대해 쏟아내는 이런 불평불만이나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갖는 불만들 모두 합당한 논리를 갖지 못한다.러시아에 주는 차관·물품은 관료,범죄조직의 주머니로 사라진다.러시아의 투자환경은 너무 열악하다.그리고 러시아 수입업자들 스스로가 그런 무익한 물품들만 골라서 사간다.그리고 극단적인 나라들에 대한 러시아의 기술판매는 세계의 평화와 안보에 위험을 초래한다. 러시아 역시 미국 모델을 따라 보겠다고 한 개혁이 실패로 끝난 데 대해 실망감을 느낀다.이들은 미국인 경제학자들이 자기들에게 잘못된 처방을 해주었다고 욕한다.물론 미국학자들은 이에 대해 러시아가 새로운 개발모델을 소화할 능력을 못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반박한다. 양자 관계를 해치는 또하나의요인은 국제무대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시간이 갈수록 러시아는 안보·경제·민족문제등 여러 면에서 옛소련방 공화국들이 반드시 다시 뭉쳐야한다고 믿는다.러시아는 소위 「가까운 외국」으로 일컫는 옛연방 공화국들도 이에 동감한다고 말한다.하지만 미국은 이를 러시아제국주의의 재등장 조짐으로 해석한다.그래서 미국은 이들 옛소련 공화국들에게 소련의 영향권을 벗어난 독자적인 정책을 펴고 다른 외국과의 관계강화를 추구하라고 부추긴다. 동구에서도 양국간 이해는 충돌한다.러시아가 보기에 과거 자기의 동맹국들이 나토에 가입한다면 이는 유럽대륙에서 자기들만 고립돼 러시아의 평화,안보를 위협할 것이라고 말한다.하지만 미·러 관계가 악화되고 러시아의 장래가 불안해질수록 미국은 동유럽국들의 희망대로 이곳에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지금 러시아에서는 미국이 자기들을 2등 파트너로 대한다는 불만이 높아간다.주요 국제문제들을 독단적으로 처리하면서도 러시아의 대내외 문제에사사건건 간섭한다.그리고 러시아국민들의 미국여행에 온갖 제약을 다 가하면서 저질 팝 문화로 러시아를 오염시키고 또한 러시아의 언론들을 마음대로 주무른다.강대국 러시아의 옛영광을 되찾자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은 미국의 이러한 횡포를 도저히 참지 못한다.이제 더이상 미국의 입장을 무조건 추종하지 말자고 이들은 주장한다.그래서 이들은 최근 들어 모든 주요 국제분쟁에 개입해 독자적 입장을 제시하려고 한다. 미국은 러시아의 이런 태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미국은 러시아를 손 아래 파트너로 취급하는데 익숙해 있다.우선 크렘린은 국내정적과의 투쟁에서 번번히 미국의 지원에 신세를 졌다.그리고 미국은 경제원조를 제공했고 러시아는 사회,교육,행정,환경등 거의 모든 문제에서 미국의 도움과 자문을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독자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은 미국이 볼 때는 일종의 배은망덕이다. 이런 여러 문제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국 관계가 완전 회복불능은 아니다.최악의 시나리오로 설사 러시아에극우 민족주의 독재정권이 등장하더라도 양국관계가 완전 끝장나지는 않을 것이다.우선 러시아가 군사적,지정학적으로 그런 대결을 감당할 힘이 없다.그리고 아무리 독재정권이라도 군사력,나아가 국민생활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수적이다.그리고 무엇보다 양국관계를 떼놓을 이념대결이 없다.러시아가 현대사회를 건설하는데 미국·서유럽 모델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그리고 어떤 독재자가 나와 세계강대국이 되겠다고 호언해봤자 러시아국민들이 이를 지지할 리가 없다.러시아국민들은 이미 그런 슬로건에 식상해있고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보다 나은 삶뿐이다.미국 역시 오랜 냉전대결로 힘이 소진돼 새로운 냉전대결을 벌일 입장이 아니다.따라서 미·러 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지만 완전히 판이 깨지지는 않는 미묘한 관계가 계속될 것이다.
  • 일 연립여당 「종전 50년」결의안

    일본 연립여당이 전후(전후)50년에 즈음한 국회결의안이란 것을 마련했다.작년 6월 자민·사회당등의 연립정권 발족당시 채택키로 합의한지 1년만의 일이다.그러나 「과거의 침략전쟁을 반성하고 미래의 평화결의를 다짐한다」는 당초 취지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일본은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확인하는 결의안 같다는 것이 우리가 받는 인상이다. 우선 이결의안 채택을 둘러싸고 지난 1년동안 일본에서 전개된 우여곡절은 한마디로 불쾌하고 실망적인 것이었다.누구의 요청에 따른 것이 아니라 스스로 시작한 일이었다.그럼에도 사회당본부 화염병투척 등 우익들의 반대는 완강했으며 결과적으로 마련된 결의안은 내용이 없는 형식적인 것으로 후퇴하고 말았다.자민당을 비롯,일본정계에 일제)와 침략전쟁이 정당했다고 신봉하는 우익세력이 얼마나 뿌리깊게 남아 있는가를 재확인하는 역설적인 기회였다. 물론 우리는 처음부터 기대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그동안 국왕과 총리등의 입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수없이 해왔으며 그 이상이 나올 수 없는일본의 속성과 한계를 알기 때문이었다.그럼에도 우리가 배신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은 그것이 그동안의 수준에서도 후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 결의안 내용은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한 반성·사죄 및 다시는 않겠다는 다짐보다는 한마디로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변명과 정당화에 급급하고 있다.그당시 식민지지배와 침략전쟁은 세계열강 모두가 추구한 보편적 시대상황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간접적인 자기변명과 정당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결의라면 왜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 정도다.그것은 한국 등 아시아 이웃들의 지난 상처를 달래고 공존공영의 미래를 함께 개척해 나가자는 일본국회의 전후 50주년 결의안에 걸맞는 내용은 아니다.와타나베망언과 함께 일본제국주의·패권주의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말라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 1948년 남북연석회의(새로쓰는 한국현대사:20)

    ◎김구 도착전 개최… 북서 분위기 일방적 주도/명목뿐인 대표 내세워 각본대로 인공수립 □특별취재반 ▲황규호(문화부부국장급) ▲이용원( 〃 기자) ▲김성호( 〃 〃) ▲김용운(조사부 〃) 「전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남북연석회의)」는 19 48년 4월 19일 하오6시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막을 올렸다.김구는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아침 평양으로 떠날 예정이었으나 군중의 저지에 부딪쳤다.그의 거처인 경교장 뜰에 새벽부터 몰려든 학생·청년들은 김구에게 『북행은 김일성에게 이용당하는 것일 뿐』이라며 맹렬히 반대했다. 김구는 몸소 베란다에 모습을 드러냈다.『독립운동으로 내 나이 칠십여년(72살)이 되었다.마지막 독립운동을 허락해 달라.이대로 가면 조선은 분단될 것이고 서로 피를 흘리게 될 것』이라고 절절하게 호소했다.그러나 군중은 끝까지 김구의 평양행을 만류했다.그는 어쩔 수 없이 뒷담을 넘어 북행길에 나섰다. ○김규식은 참석 망설여 김구의 북행에는 아들 김신과 비서 선우진이 동행했다.김구 일행은 자동차편으로 개성,여현(지금의 판문점)을 거쳐 밤늦게 평양에 닿았다.한편 김규식은 이틀 늦은 21일 서울을 떠나 다음 날 새벽 평양에서 합류했다. 김구와 김규식이 북행을 결심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이들이 민족통일을 이루고,또 민족상잔을 피하기 위해 어렵게 평양행을 결심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하지만 일부에서는 다른 요소들이 작용했다는 시각의 분석이 나오고 있다. 김구의 경우 당시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았다는 것이다.당시 그가 북행을 결심할 무렵 한국문제는 유엔 결의에 의해 「남한에서의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쪽으로 굳어져 있었다.이는 이승만의 의도이기도 했다.이에따라 이승만은 그 세력을 급속히 넓혀간 반면 경쟁관계에 있던 김구는 궁지에 몰리는 판이었다.결국 김구는 남북협상을 하나의 정치적 돌파구로 여겨 모험을 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이에 비해 김규식은 끝까지 연석회의 참석을 망설인 것으로 전해진다.그는 나름대로 남북협상의 한계를 예상했지만 자신이 그동안 주도해 온 남쪽에서의 좌우합작이라는 명분의연장선상에서 부득이 평양행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김구가 도착하기 몇시간 전인 19일 하오6시에 남북연석회의는 시작됐다.개회사에 이어 김일성이 「북조선 정치정세 보고」를 하고 잇따라 박헌영·백남운·허 헌이 등단해 연설하는등 회의는 북쪽의 일방적인 주도 분위기로 이어졌다.마지막 날인 4월 23일 연석회의는 「조선 정치정세에 대한 결정서」「(미·소)양군 철퇴 요청서」「전조선 동포에게 격함」등 여러가지 결정서·성명서가 채택됐다. 이 회의에서는 남북의 56개 정당·사회단체 대표 6백95명이 참가했다고 공식 발표됐다.남쪽에서 참가한 단체는 41개,주요인사는 김구·조소앙·엄항섭·조완구(이상 한독당),김규식·여운형·원세훈(이상 민족자주연맹),그리고 홍명희 민주독립당 당수등 50여명으로 파악됐다. 연석회의에 이어 26∼30일에는 「전조선 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남북 지도자협의회)」가 열렸다.이 때 비로소 김구·김규식은 북쪽의 김일성·김두봉과 합동으로,또는 개별적으로 여러차례 회합을 가졌다.이 네명이 실질적으로 합의한 사항은 30일 공동성명서 형태로 발표됐다.4개 항의 내용은 ⓛ외국군대를 즉시 동시에 철거 ②외국군대 철거이후 내전이 발생할 수 없음을 확인 ③조선인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민주주의 임시정부 수립 ④남조선 단독선거 반대 등이다.특히 각 정당은 성명서 말미에 「남조선 단독선거의 결과와 이 선거로 수립하려는 단독정부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지지하지 않겠다」고 결의했다. ○해주서 2차모임 갖자 남한 대표들은 북에 잔류를 희망한 홍명희 등 70명을 남겨두고 5월 4일 귀경했다.남북연석회의는 대단한 성과나 거둔 듯이 보였다.김구·김규식은 5월 6일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단선 반대」입장을 재천명했다.5월 8일에는 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전평)주도로 총파업이 단행됐고 각급 학교가 동맹휴학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들의 반대의사에 상관없이 총선거는 무난히 치러졌다.「총선 거부」로 공식적인 정치의 장에서 밀려난 남한의 남북협상파들은 급격히 몰락한다.「5·10 선거」가 실시된 뒤 김구·김규식을 비롯한 남북협상파 정치인이나 정당들은 「단독선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성명을 다시금 발표하지만 이미 메아리없는 공허한 울림이 되고 말았다. 한편 평양에서는 5월 25∼26일 「남북조선노동당 정치위원회 연합회의」가 열렸다.여기서 총선저지가 실패했음을 자인하고 제2차 「전조선 제정당 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 소집을 결정한다.6월 11일 북한측은 남쪽의 남북협상파 인사,정당에게 6월 23일 해주에서 제2차 회의를 갖자고 전격 제의했다. 그러나 김구·김규식 등 초청을 받은 인사들은 선뜻 제의를 받아들이지 못했다.첫째 그동안 남한정국이 변해 공개적으로 해주에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만약 비공식으로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면 이제는 남한 당국의 법률 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게 돼 있었다.결국 김구·김규식은 불참을 통고했으며 북조선노동당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6월 29일부터 7월 5일까지 제2차 대회를 평양에서 강행했다.이 회의는 남한에서의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일방적으로 통일정부로서의 인민공화국 수립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남로당 지하선거 실시이 해주회의에서는 김구·김규식을 이용해 「5·10선거」를 방해하려 한 북한의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났다.자신들의 참여없이 이처럼 엄청난 결정을 내린데 대해 김구·김규식을 비롯한 남쪽의 남북협상파 정치인들은 심한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하지만 이미 「쏘아버린 화살」꼴이 됐다. 이후 남북협상의 흐름은 철저히 북한측 의도대로 잡혀갔다.명목상 「통일된 인민공화국」을 수립하기 위한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가 8월 21일 해주에서 열렸다.이 자리에는 남로당이 지하선거에서 선출된 이른바 「남한 대표」1천여명이 나왔다.거의가 남쪽에 근거를 둔 공산주의자들이었고 일부 정당인사가 구색용으로 들어있었다.이들은 북한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울 때 남한 주민을 대표하는 것으로 선전한 것은 물론이다. 남북협상의 기운은 이로써 실질적인 막을 내렸다.남북협상의 전과정을 돌아보면 남쪽의 정치인들이 북한측에 철저히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김일성의 김구·김규식 초청­연석회의 개최­5·10선거 반대 결의­제2차 대회의인민공화국 수립 결정­해주의 「남조선인민대표자회의」­북한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수립등의 계획된 수순을 밟아나갔던 것이다.이 모든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남쪽의 남북협상파들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킬 기회는 한번도 얻어내지 못했다.모든 것은 북한쪽의 뜻대로 진행됐을 뿐이었다. ◎UNTCOK 보고서/김규식 등 남대표 불러 융숭한 대접/“남에 전기공급”약속후 1주뒤 끊어 북한은 1948년 4월 19∼25일까지 열린 평양 남북연석회의를 정치적 선전기회로 철저하게 활용했다.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입수한 당시 주한미군사령부의 「평양 연락장교 보고서」(1948년 4월 16일)등의 여러 자료는 이를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이 보고서는 남한의 방문자들에게 감명을 주려고 북한 당국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밝혔다.평양시내의 도로를 보수하고 연일 시민들을 동원,청소를 하는 한편 길가의 건물에 페인트를 발랐다고 보고했는데 당시 유엔한국임시위원단(UNTCOK)의 평양방송 청취기록도 이를 뒷받침했다.UNTCOK 평양방송 청취기록은 「남한 대표들이국영공장 근로자들의 열성과 한 마을의 생활상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는 내용을 적었다.여기에는 「국영공장 휴게실에서 노동자의 피아노 반주에 놀랐다」는 대목도 나온다. 이어 UNTCOK 기록을 보면 연석회의 일정이 끝난 4월 25일에는 40만명이 모인 평양시민 군중대회에 참가한 뒤에 메이데이 기념 인민군 열병·분열행사도 참관한 것으로 되어있다.어떻든 남한 대표들은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4월 30일에는 대동강 쑥섬에서 낚시·보트놀이와 함께 어죽잔치를 즐긴 이들은 조만식의 남한 동행을 제의만 하고 적극 매달리지는 않았다.이 물놀이는 하오4시까지 계속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통상적인 시찰여행과 대접은 김구와 김규식에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이 UNTCOK의 당시 분석이다.그래서 김규식은 김일성의 4월 25일 저녁초대 연설에서 「남쪽은 망하는 집안 같고 여기는 새로 잘 되는 집안 같다」고 북한을 극찬했다.김규식은 또 「우리 민족은 누구를 막론하고 소련의 제의를 불가하다고 말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는 식으로 미·소 양군 즉각철수안을 지지하고 나섰다.이같은 미·소 양군 즉시 철수론은 지극히 비극적이었다는 사실은 1950년 6월 25일의 한국전쟁이 증명하고 있다. 한편 돌아온 김구와 김규식은 5월 6일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는데,그 안에는 북한이 남한에 계속 전력을 공급키로 약속했다는 내용도 들어있다.그러나 주한미군사령부 「정보개요」(1948년 5월)에 따르면 북한은 평양방송을 통해 그날 저녁 전력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으며 14일 실제 전력이 끊겼다.
  • 「공천헌금」 철저히 규명하라(사설)

    지방자치단체 후보공천과 관련된 금품수수설이 정치쟁점화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3명의 야당의원에 대해 내사에 착수했다는 사실은 야당의 자체조사 결과발표 내용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검찰은 심증만 있고 아직 증거를 확보한 것은 아니라지만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 신분에 관계없이 관련자를 모두 사법처리 한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진다.이와는 별도로 서울의 모 구청장 공천과 관련,거액이 오갔다는 소문에 대한 사실여부도 가리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우리는 여야가 정치적 개혁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만장일치로 마련한 정치관계법이 그들 스스로에 의해 외면된채 지방선거 공천을 둘러싸고 거액의 금품수수설이 간헐적으로 터져나오는 사실만으로도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돈 안드는 깨끗한 선거를 위해 법정선거비용을 3분의 1로 줄인 당사자들이 앞장서 공천을 조건으로 헌금을 강요한 사실은 아직도 우리 정치가 시대를 앞서가는 국민의식의 빠른 변화를 외면하고 구태만 답습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그뿐 아니라 우리는 선거자금 조달명목의 「공천경매」등 부조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명분아래 국고보조금 지출한도를 평년의 3배가 넘는 8백여억원씩이나 국민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이번 4개 지방선거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할 필요는 없다.다만 공명하고 깨끗한 선거를 표방하는 통합선거법이 최초로 적용되는 선거에서 부정한 금품거래 등 어떠한 경우의 불법행위도 발을 붙여서는 안된다.특히 「공천매매」는 정치의 타락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다. 검찰이 여야를 막론하고 공명선거 분위기를 해치는 공천헌금 등 어떠한 형태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도 엄단 의지를 밝히는 것은 당연하다.사직당국은 정치적 파문에 구애됨이 없이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관행에 대한 흑백을 철저히 가려야 한다.또 정치부패를 자초한 사례가 드러나면 그 진상을 소상히 밝히고 관계법에 따라 예외없는 사법처리로 적극 대처해 주기바란다.
  • “남한에 북 암살요원 상당수”/자수간첩 한병훈씨

    ◎북은 주사파발언 박홍 총장 미워했다/네차례 밀입북… 지하철·댐 폭파 지령/92년 국민당 입당 기도… 군미필로 무산 서강대 박홍 총장의 암살지령을 받고 국내에 잠입했던 유학생출신 자수간첩 한병훈(32)씨는 23일 『현재 남한에는 나와 같은 임무를 띠고 활동중인 북한 공작원이 상당수에 이른다』고 폭로했다. 한씨는 이날 하오 2시 서울 마포구 도화동 마포가든 호텔 무궁화홀에서 박총장과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폭로하고 『북한으로부터 박총장을 제거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한씨는 북한의 구체적인 지령날짜와 장소는 『94년 7월 덴마크 코펜하겐공항』이라면서 『당시 북한 공작원은 박총장을 제거해 조국에 충성을 바치라는 지령을 내렸다』고 말했다. 한씨는 북한이 박총장을 제거하려는 이유에 대해 『박총장의 주사파 발언으로 한총련의 활동이 위축된데다 이 발언이 김일성 사망직후에 터져나와 북한 지도층 사이에 박총장에 대한 배신감이 깊어진 게 복합적으로 작용한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한씨는 또『92년 5월초 민족통일·노동자와 자본가통일·인간과 자연통일등 「3통주의」를 새로운 정책방향으로 역설하면서 국민당에 입당해 남북경협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라고 했지만 병역문제로 무산된 적이 있다』고 토로하고 『이를 위해 국민당 최고위층 등을 만나 집요한 공작을 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한씨는 『북한에서 밀봉교육을 받기위해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88년 처음으로 밀입북했으며 그뒤 89,90,92년 세차례나 밀입북했다』고 말하고 『교육장소는 평양에서 승용차로 2시간정도 떨어진 산골』이라고 전했다. 한씨는 『밀봉교육을 받으면서 지도원으로부터 남한에 많은 수의 공작원들이 이미 활동중이라는 말을 들었다』며 『민족적 양심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내 신분을 밝혀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혀 남한에 파견되어 있는 공작원들의 활동이 매우 대담해졌음을 암시했다. 한씨는 밀봉교육 내용과 관련,『밀봉교육 당시 대남사업부 지하당조직부에 소속돼 「백두산 권총」·「AK소총」 사격훈련등 기본적인 교육과 함께 지하철,도시가스,전력센터,댐등 주요시설 파괴교육도 함께 받았다』고 털어놨다.
  • 광복 50년/양국 유학생들이 본 「갈등의 골」 극복 방안

    ◎“세계화시대… 한일 「협력의 폭」 넓히자” 올해는 광복 50주년과 한·일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 그동안 한·일간에는 과거사문제등 많은 현안을 두러싼 갈등과 대립이 반복돼 왔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과거에만 집착하지 말고 미래지향적 우호관계를 정립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오늘의 한국과 일본및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일본에 유학하고 있는 한국 학생들과 한국에 와있는 일본 유학생들에게 들어본다. ◎서울의 일본 학생들/「과거사」에 얽매여 대일비난 하는데 당혹감/일은 진정으로 과거청산… 양국우호 힘쓸때 ▲요리타 다케시(33·서울대 보건대학원·교토대 교육심리학과졸)=한국은 일본의 이웃에 있지만 특별히 의식하지 않고 그저 지구상에 있는 하나의 국가라고 처음에 생각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나병실태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관심이 높아졌다. 한국사람들은 정이 깊고 활력과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솔직한 표현에서는 인간미를 느낄수 있다. 한국사람들은 또 일본을 감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물론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고 경제·기업관계자들중에는 일본을 배워야 한다며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지난 여름 독립기념관에 갔을때 어린이의 손을 잡고 온 어른들이 일본을 격렬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고 한일간에는 여전히 많은 과제가 남아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절망감까지 느꼈다. ▲고무라 가오리(31·한양대 국악과대학원·한양대 국악과졸)=한국의 판소리,사물놀이,창극등이 너무 매력적이어서 국악을 공부하고 있다. 한국은 알수 없는 힘을 갖고 있다. 국악속에는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영적인 힘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은 활기찬 나라이며 자신의 주장이 강하고 사소한 일에는 신경을 쓰지않는 대륙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특히 일본에 대한 라이벌의식이 강하며 지고 싶지 않다는 오기를 느끼게 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지나치게 비난 할 때는 속이 상할 때도 있다. 일본은 물론 과거청산을 하여야하지만 한국도 지나치게 과거문제에만 매달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경우스스로를 약하게 하고 결국은 지게될지도 모른다. 한국이 보다 강한 나라가 되기위해서는 대범해져야하며 넓은 세계적 시각으로 양국관계를 보아야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우치 아키라(27·서울대 체육교육과 대학원·와세다대 인간과학대졸)=중학교때 재일한국인에 대해 알고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신문·방송등을 통해 한국을 알았고 어른에 대한 공경심이 강한 전통적인 유고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실제 한국에 와보고 조금은 실망했다. 어른들에 대한 공경심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약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음을 느낀다. 같은 사실이라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나 히로시마 아세안게임 보도를 볼때 마치 일본과 「전쟁」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일본을 꺾었다는 등 일본과의 대전을 중심으로 쓰고 있었다. 일본에 대한 감정적인식이 강한 것 같다. ▲고가 사토시(31·연세대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주오대 사회학과졸)=국민학교 6학년때 옆반에 있던 재일한국인을 친구로 사귄후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게됐다. 한국에 온후 많은 친구도 사귀고 한국문화도 접할수 있어 하루하루가 재미있다. 한국사람들은 개성적이며 친구가 되면 매우 친절하다. 한국은 21세기에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욕을 하는 것들을 보며 거칠다는 인상을 받았다. 한국인들은 또 일상생활에서 많은 일들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으며 자기비판이 조금은 약한것 같다. 물론 일본도 과거문제를 말끔히 청산하지 않은 점이 있으며 그것을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양국간의 우호관계가 필요하며 그것이 양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가세타니 도모오(32·고려대 사회학과 대학원·고베대 경영학과졸)=백제의 관계가 깊었던 나라현에서 자라며 한국및 중국등에 관심이 많았다. 한국은 처음에 완고한 유교국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직접와보니 한락가가 있는등 어느면에서는 성에 대해 노골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은 사람을 사귈때 일본사람들과는 달리 거리를 두지않고 지낸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을 어떤 나라라고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른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는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보고 유감스러웠다. 일본의 부정적인 면을 강조한 그책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썼다면 하나의 좋은 충고가 될수 있으나 한국인이 일본을 이해하는데는 나쁜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물론 일본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과거청산을 하여야하며 개인보상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일본에는 과거침략행위에 대해 진심으로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등 여러부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도쿄의 한국 학생들/감정적 일본혐오 벗어나 객관 인식 바람직/문화·경제장점 서로 배워 공동이익 창출을 ▲채원호(33·도쿄대 대학원 행정학과졸)=올해는 한국으로서는 해방 50년,일본으로서는 패전 50년이 되는 해다.일본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아도 이웃한 나라라는 숙명적 관계에 있는 나라다.앞으로 국제화·개방화·지역경제의 블록화등으로 일컬어지는 상황은 양국의 교류 및 협력관계를 더욱 요구할 것이다.과거의 식민통치 경험이 일본의 한국에 관한 지식의 축적을 가져 왔다면 해방후 일본은 연구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빨리 잊고 싶은 망각의 대상일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객관적 인식과 객관적 인식에서 비롯돼야 하는 일본연구는 지체될 수 밖에 없었다.그러나 새로운 인식의 틀에서 활발한 일본연구가 필요하며 양국의 정치·경제적 이해가 맞물리는 분야에서는 공동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창조적인 모델이 만들어져야 한다. ▲박종문(31·와세다대 경제학과 대학원·연세대 경영학과졸)=대학시절 민주화를 둘러싼 학생들과 정권의 주장이 맞서고 있을 때 진짜와 가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유학을 선택했다. 어려서부터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보다 열등한 나라다』라고 배워왔기에 그 말이 사실인 것같은 착각을 느꼈다.7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선진국이고 한국은 개발도상국일 뿐』이라는 현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일본이 정신적인 면에서 한국에 못미친다는 말은 거짓이다.정신적인 선진성없이 경제의 선진화는 이룩될 수 없다. 물론 한국인으로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그러나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시 한번 생각하고 이해해야 한다.이유없는 반일감정,이유없는 일본 멸시언행은 우리를 영원히 일본과 같은 선진대열에 끼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김기석(34·와세다대 경영학과 대학원·동아대 화공과졸)=일본식 경영법을 만들어 낸 일본의 사회·문화·윤리를 직접 보고 배우고 싶었다.일본은 여러가지 면에서 한국보다 질서가 잘 잡혀 있고 사회가 안정돼 있다는 인상을 받고 있다. 한일관계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으로 한일관계를 보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역사문제·종군위안부 문제등은 물론 일본이 원인제공을 했지만 처리과정에서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대응한 면이 없지 않다고 본다. 최근 한국에서는 일본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일본은 없다」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확실히 일본에도 부정적인 면이 많지만 부정적인 면보다는 아직 보고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이성보다 한국인의 감정에 호소한 이런 책은 일본에 대한 편견을 가져와 일본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바람직한 한일우호관계를 위해서는 지도층의 교류보다 최근 활발해진 시민단체등의 상호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신경순(27·여·조지대 신문학과 대학원·추계예술대문예창작과졸)=한국은 오랜 역사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현대 일본에 대한 연구나 인식이 빈약하다고 느껴진다. 일본에 대한 인상은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외국인에 대한 차별등이 엄존한다.지나친 풍요로움에 때론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본의 저력은 막강하다.일본은 외국문화의 흡수력이 대단하며 외래어를 단순하게 일본어화하는 것을 보면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일본은 또 공공교통수단이 잘 발달돼 있어 시간계산을 잘하면 효율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더욱이 정보화·산업화 과정은 과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을 깨우쳐 준다.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같은 문화권안에 있지만 너무도 다른 문화가 존재하고 있다는 점을 보다 적극적으로 인식하는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양국간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인재육성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사회적인 조직·구성의 마련이다. ▲김정준(35·도쿄대 공학부 대학원·서울대 공업화학과졸)=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우선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국민의 감정을 부추기는 기사보다는 이성적 보도가 필요하다.반복되는 일본 지도층의 망언에 대해서도 매번 흥분할 것이 아니라 배경과 진원지를 분석해 주면 좋겠다. 양국간에는 직접적인 경험과 교류를 통한 상호이해와 함께 문화교류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김치를 먹고 치마저고리를 입는 분단된 나라」,「스시(생선초밥)와 기모노의 나라」라는 정형화된 이미지를 벗기 위해서도 생활양식 정서를 느낄 수 있는 문학작품·음악·연극등 문화교류가 필요하다.우리 젊은이들이 아무 생각없이 일본문화에 빠져들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그러나 일본에 와서 우리나라의 너무 많은 책들이 일본 책을 그대로 베낀 것을 보고 기성세대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한국은 일본에 대한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며 국제화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감각을 가져 상대방에게 매력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식료품 사범 엄벌에 처하라(사설)

    부정 불량식품 유통과 식품 허위 과대광고가 여전한데 모두들 분노 한다.더구나 이름난 대기업이 광고내용과는 달리 유통기간 지난 건강보조 식품을 날짜 고쳐 팔고 함량미달 저질 장유식품 육가공식품을 완벽한 상등품같이 표시 선전해온 것에 용서하기 어려운 배신감을 느낀다. 감사원이 발표한 저질식품 제조및 과대광고 업소 77개사 적발,조치 내용은 그 단속 시기가 6월15일부터 한달간이고 지역이 서울시와 경기도 일부라 해도 항상 계속되고 있는 식품제조 유통의 전국적 현상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식품행정 전반과 단속에 대한 불만또한 높지 않을 수 없다. 단속에서 노출된 실태는 시장 판매업소에서 유통기간 지난 식품을 진열 판매하는 것에서부터 식품에 제조업소명·성분함량·기간을 표시하지 않거나 허위표시한 것,품질검사 없이 「자체검사필」증을 마구 붙인것 등 천태만상이다.제조업체와 백화점등에서 수거한 식품에서도 대장균과 세균이 기준초과 검출되고,저질원료와 부적합원료 및 허가되지 않은 첨가물 사용등 사례도 많았다.그동안 기본적인 식품 제조 유통 관리와 단속이 얼마나 소홀했나를 입증하는 것이다. 특히 서울 경기지역 식육·어육·면류 제조업체들 42%가 허가받은 성분 원료는 적게 넣고 값싼 저질 원료를 다량 사용 하면서도 허가된 원료를 규정대로 넣은 것같이 표시 판매해 왔다는 것은 당국이 제조업소에 대해 정기 점검도 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소시지제조 업체가 허가된 닭고기 대신 값이싼 칠면조 고기를 많이 넣고도 닭고기 함량을 규정대로 넣은 것처럼 표시한 것도 있을수 없는 일인데 유통기간 지나 수거 폐기 처분해야 할 미국산 치킨후랑크 소시지를 원료로 하거나 버려야할 쌀떡을 넣어 만든 부대고기라는 육가공품 적발에 이르러서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소시지 같은 육가공품은 신선하지 않으면 부패 변질도 빠르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세균과 독성이 엄청나서 허약한 사람이 먹게되면 치명적이 되는 사고도 생기며 요행히 식중독 사고 없이 넘어갔다 해도 그 독성이 인체에 쌓여 여러 장해,질환 유발등 해를 입히는 것이다.변질을 막기위한방부제,첨가물은 또 얼마를 넣었겠는가. 식품은 생명과 직결된다.유해식품 제조 유통은 간접살인 행위와 다를것 없다는 인식을 가져온지도 오래된다.60년대 후반부터 부정불량식품 근절이 정부의 연례 시정 목표의 하나였고 중앙과 시도의 특별단속도 정기적으로 실시되어 왔는데 아직도 잠깐의 시범단속에서 이런 사례가 노출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좀더 사명감 가진 요원을 투입하고 벌칙도 높여 엄히 다스려야 한다.
  • 각목전당대회(외언내언)

    우리 야당에는 전당대회가 반당대회가 되는 부끄러운 전통이 있다.당권싸움의 결전장이 전당대회인데 주류와 비주류가 자기들끼리 따로 대회를 해서 당수를 뽑는 경우다.그리고 나서는 법통을 가려달라는 소송을 내 법정싸움을 벌이는 순서를 밟는다.72년의 유진산계와 김대중계 사이의 당권싸움이 그 예다. 그 과정에서 청년당원들과 폭력배들까지 동원해 각목을 들고 패싸움을 벌여 유혈이 낭자하게 된 예도 있다.76년 5월의 구 신민당각목대회는 아직도 권위주의정치시대의 불행한 유물로 기억에 남아있다. 20년전에 있었던 야당의 폭력충돌과 반쪽전당대회가 어제 63빌딩에서 재연됐다.그때도 신민당이더니 이번에도 신민당이다.다른 점은 우선 구 신민당이 제1야당이었던데 비해 이번 신민당은 교섭단체도 못만드는 제2야당이라는 점,정보정치의 작용을 의심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만큼 시대가 달라졌다는 점도 꼽을수 있다.부상자도 적고 깨진것도 63빌딩모형 유리뿐이었으니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반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허탈감은 결코 적지않다.도무지 싸우는 명분과 이유를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번 작태가 자기네들의 이권을 더 많이 가지려는 이전투구인지는 몰라도 국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희생과 봉사가 결코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다.지방자치선거를 앞둔 공천권과 내년에 배정될 1백10억원의 국고보조금이 젯밥이라고 보고있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이권다툼이라면 회사간판을 걸면 되지 굳이 정당간판을 걸 이유가 무엇인지 알수 없다. 더구나 싸움의 주역들이 어떤 사람들인가.한쪽은 양김시대 타파를 내걸고 무균질 정치인이 되겠다고 틈만 나면 되뇌는 차세대요,다른 한쪽은 일찍이 낚시론과 새정치를 내세워온 교수출신이다.그들의 새정치라는게 20년전의 폭력행사와 언행불일치의 헌 정치라면 낚시는 누가 가야하는지 자문해봐야겠다.
  • 신민당 내분 갈수록 악화/10일 전당대회 앞두고 대립

    ◎지구당 93곳 요구… “현실 인정해야”/박대표/“정당한 절차무시”… 일전불사 태세/김 대표 신민당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박찬종공동대표가 5일 기자회견을 통해 양순직최고위원과 손을 맞잡자 김동길공동대표는 이들에 정면대응할 뜻을 밝혔다. 박대표는 이날 상오 서울가든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오는 10일 전당대회를 열어 자신을 단독대표로 추대하기로 한 양최고위원측의 결의를 「인정하겠다」고 말했다. 김대표와 양최고위원 사이에서 불분명한 태도를 취해오던 그동안의 행적에서 벗어나 양최고위원쪽에 설 것임을 선언한 것이다. 박대표는 『당원의 총의를 따르는 것이 책임있는 대표로서의 자세일 것』이라는 말로 이같은 행보의 변을 밝혔다. 옛 신정계와 양최고위원측 인사 2백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회견에는 김대표측과의 몸싸움에 대비,건장한 청년 50여명이 완장을 차고 회견장 안팎을 지켜 내홍이 극에 이른 신민당의 분위기를 잘 말해줬다. 박대표는 『1백29개 지구당 가운데 93곳의 위원장들이 김대표의 퇴진과 10일 전당대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이것이 현실이니 만큼 김대표도 이를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각서파동·사퇴파동등으로 김대표는 더이상 당내의 신뢰를 얻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도 덧붙였다.그는 이어 「전당대회 대의원들이 단독대표로 추대하면 이를 수락할 것이냐」는 질문에 『93개 지구당위원장들의 의사를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말로 수락의사를 밝혔다. 한편 김대표측은 같은 시간 여의도 당사에서 당무회의를 열고 『오는 10일 전당대회는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았기 때문에 원천무효』라고 지적하고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저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김대표는 『몸을 던져서라도…』『죽기 아니면 살기로…』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이들에 대해 강력 대응할 뜻을 밝혔다.박대표에 대한 배신감도 숨김없이 나타냈다. 양측의 이같은 대립은 대체로 세갈래의 전망을 가능하게 한다.우선 양측이 10일 전당대회전에 타협점을 찾는 길이다.김·박대표 모두 만나는 데는 긍정적이므로 대화의 길은 열려있다.그러나 서로가 자기 주장만 펴다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 다음은 전당대회 강행으로,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물리적 충돌로 치달을 공산이 크다.그리고 전당대회를 통해 박대표가 단독대표로 추대된다 하더라도 김대표가 당권의 법통을 둘러싸고 법정투쟁을 벌이는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그러나 어떤 식으로 귀결이 되든 이번 사태로 박대표는 정치적 도덕성에,김대표는 정치적 지도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
  • 의대설립 무산에 반발/강릉대교수 보직 사퇴

    【강릉=조성호기자】 강릉대학 보직교수 21명은 최근 강원대에 의대 설립이 확실시되고 있다는 언론보도와 관련,지난 26일 강원지역의 의대 설립에 따른 현 정부의 무원칙·무대접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대학측에 보직 사퇴서를 제출했다. 문흥안법학과장 등 보직교수들은 성명에서 『언론보도를 통해 의대 신설문제에 관한 내용에 접하면서 심한 배신감을 느낀다』며 『영동지역 86만 주민들은 헌법이 보장하는 보건과 관련,국가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권리를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박탈당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 은퇴교육(외언내언)

    기업들이 리엔지니어링,연봉제채택을 내걸면서 「분노증후군」증세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동네에서는 큰소리 없던 집에서 고함이 들리고 병원 내과에는 가슴답답하다는 환자가 늘고있다.난데없이 대학 교수에게 상담을 신청,눈물을 보이는 중년도 있다.거의가 40대후반에서 50대후반들.『내직위가 부장급인데 차장 과장밑에 있다.나는 책상도 없이 한쪽에 있다.나가라는 소린데,나가야하는지,무얼해야 될지,취직을 다시 해야될지』등.갑자기 당한 환경에 소외와 배신감 분노 절망을 호소한다.개중에는 얼마안가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축복의 연령」,「늙는다는 것은 권위와 성취를 더하는 것」등 서양에는 퇴직을 축복하고 노년을 여유있고 넉넉한 삶의 시작으로 보는 말도 많지만 실제 걱정없이 퇴직하고 정년을 맞는다.국가보장 연금이 있고 직장에서 들어놓은 개인연금과 사회가 짜놓은 갖가지 복지서비스로 일상을 건강하고 즐겁게 보낼수있고 여행도 자주 한다.그런데도 얼마전 유럽공동체 시행 전유럽 노인들 여론조사에서 『늙은 인생 자체보다 돈부족 건강 외로움이 문제』라는 답이 많았다. 우리는 공무원이나 사립학교교직원 연금해당자,퇴직금많은 몇몇기업체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큰 준비없이 퇴직한다.갑작스러운 기업환경 변화로 인한 돌연스러운 조기퇴직 말고도 많은 직장이 55세에서 58세 정년제이다.자식들 대학교육도 다 끝내지 못한채 밀려나는 경우도 많다.봉급은 그달그달 생계에 바쁜것이 우리네 현실이다.부인이 알뜰해 다행히 얼마 목돈을 장만한 경우도 용돈 타쓰려면 그전같지 않다.수명은 길어져 이제 우리도 은퇴후 20∼30년을 노후기간으로 보고 새로운 인생설계가 있어야 한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이 은퇴준비교육과정을 이번 가을부터 연다.은퇴를 자신있게 받아들이도록 사전 마음준비부터 노후 재정 건강 여가운용에 대해 교육한다고 한다.사회의 노령자대책도 있어야 한다.
  • 박보희씨의 이상한 언동(사설)

    시절이 수상해서인가 별일도 많다.박보희 통일교실력자의 언동은 참 맹랑하다.조문객중 「제일 큰 꽃다발」을 들고 대한민국 국법 같은 것은 안중에 없는 듯 허겁지겁 김일성을 조문하러 달려가는 것부터 이해하기가 어렵더니 다녀나와서 하는 언동은 더욱 해괴하다.자신의 위법적인 행각을 생각해서도 그가 북한을 벗어나 맨먼저 했어야 할 일은 국가에 대해 자신의 행동을 소명하는 노력이었어야 한다.그러나 그가 처음 한 일은 북경에서의 내외신기자회견이었다. 김정일을 깍듯이 「비서각하」로,북한을 「DPRK」(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로 표현하는 기자회견이었다.그리고 한국을 의도적으로 「남한」으로 부르는 기자회견이었다.「남한」이란 호칭은 국호가 아니다.이 호칭은 그것이 부득이한 경우라도 한국인을 불쾌하게 만든다.그는 대한민국 국적이 이제 필요치 않아진 것일까.「개인적으로」 「각하」로 섬기는 맹세를 한 셈인 김정일의 「DPRK」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그는 굳힌 것일까. 문선명교주와 김일성이 맺은 형제지의를 존중하는 일이 국법보다 우위에 있는 것같은 논지를 펴는 그를 보면 대한민국은 그에게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지구상에 마지막 공산주의라고 할 수 있는 북한을 조국보다 더 소중히 섬기기로 다짐한 그가 「승공론」을 펴는 것 또한 이해가 안된다. 그의 「언론인자격」론도 어불성설이다.국법에 저촉되는 언동까지 정당화되는 것이 언론인의 「특권」은 아니다.그는 또 김정일의 「방미 클린턴회담」이니 「남북정상회담」 「구두메시지」를 운위했다.누가 그런 자격을 부여했는가.만약에 그런 사실이 있다면 북경기자회견 같은 것은 더구나 이상하다. 의도적인 북경기자회견을 끝내고 그는 사법처리를 「피해」 미국으로 가버렸다.우리국민은 이런 그와 그가 속한 집단에 대해 대단히 불쾌한 느낌을 맛보고 있다.「영주권」이라는 편리한 도피카드를 들고 훌쩍 날아가버리면 고만이라고 처음부터 계산했을 그의 교지에 배신감이 드는 것이다. 세련된 국제감각으로 통일교가 당면한 위기들을 처리해온 그의 고수를 아는 우리로서는 그의 북행이 개인 내지는 그가 속한 단체의 어떤이권과 관계가 깊을 것이라는 분석도 한다.북녘땅에 남 먼저 이로운 고지를 점령하기 위하여 자신의 대한민국과 국민을 무참히 깔아뭉개는 일을 서슴지 않는 그의 행적을 사람들은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일은 그가 훌쩍 떠난 것으로 끝난 일은 아니다.그가 속한 단체나 기관은 그런 오산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당국은 당국대로 단호한 사법권을 행사해야 할 것이고 그가 속한 집단에서는 그나름의 소명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 반대한민국 언동 용납못한다(사설)

    김일성사망에 대한 조문파문이 확대되고 있다.우리는 이과정에서 국가관이라고 하는 개념이 지도층에 의해 너무나도 소홀히 다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조문론에 함축된 친북한,반국가적 사고와 행동이 논의의 초점이 되어야한다고 본다. 국회에서 조문론을 제기한 야당의원들이 비판론에 대해 한국판 매카시즘이라고 공격하고 나서고 한총련이 독자적인 조문단파견을 선언한것이나 22개대학에서 애도대자보가 나붙고 분향소까지 설치한 대학까지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는 국민들의 정서는 한마디로 배신감일 것이다. 세계일보의 박보희사장이 우리정부와 사전논의없이 평양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먼저 떠오르는 느낌은 국민으로서 그럴수가 있느냐 하는것이다.우리나라,제정부는 우습게 만들고 대결관계에 있는 북한측과 어울려 춤을 추는 애정과 신뢰의 편향에 대해 분노와 충격을 금할수가 없는것이다.이사람들의 국가관은 무엇이냐하는 질문이다. 때를 맞추어 북한이 외국의 조문사절을 받지않겠다던 당초발표와는 달리 남한의 각계인사들의 조문방북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낸것이 조문론의 실체를 명백하게 한다.남북정상회담합의와 김일성사망이후에 처음으로 나온 우리에 대한 북한의 행동으로서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한가닥 변화를 기대했지만 대남교란의 저의로밖에 볼수없는 구태의연한 자세다. 한심한것은 본의든 아니든 북한을 도와주고 이용당한 일부 야당국회의원들과 재야와 운동권,그리고 일부지도층의 행동이다.그중에서도 야당의원들의 조문론을 순수하게만 보기 어려운것은 이들이 어떤 명분을 내걸든간에 그들의 상습적인 친북일변도의 성향과 태도때문이다.그들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해서 정부의 조의표명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지만 북한도 그런 조건을 내걸지 않는데 어째서 미리 안달을 하는건지 알수가 없는 것이다.북한에 대해서는 그처럼 호의적이면서도 어째서 대한민국정부에 대해서는 그처럼 악의적이고 적대적인가.남북간의 신뢰구축을 위하는 충정에서 이번에 우연히 조문의 발상을 했다면 그럴수도 있다고 이해할수도 있겠지만 북한핵문제에 관한 입장도 우리정부입장보다는 북한입장에 가까운 것이었다. 조문론자들에게는 이처럼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보이지 않는다.국가관이 그러니까 북한의 역사적 죄과에 대한 명백한 분별도 발견할 수 없다.국민이면 누구나 알고 실천하는 공동체에 대한 도리도 실천 못하는 야당의원들이나 지도층이 이렇게 쓸데없는 문제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가관의 위기상황이 아닌가하는 느낌이다.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인 조문논쟁을 그만두고 국가관의 재정립이라는 근본과제부터 서둘러야 하겠다.
  • 파유학중 귀순 동영준씨가 만난 김정일/수기

    ◎“상대하기 껄끄럽겠다” 첫인상/디스코 등 일부 서구유행 허용… 젊은충 따라/김일성보다 강경하지만 훨씬 현실·개방적 김일성 북한주석의 사망소식을 들은 것은 갓 돌이 지난 아들녀석이 아파 병원으로 가던 9일 점심 때이었다.라디오 뉴스를 함께 듣고 있던 아내가 대뜸 『이젠 시부모님을 뵐 수 있겠네요』라고 흥분했다.통일이 멀지않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웬지 착잡했다. 김주석의 사망소식을 듣는 순간 제일 먼저 지난 79년 박정희대통령 피격당시 수업까지 전폐하고 「통일됐다」고 기뻐했던 일이 생각났다. 50년동안 신처럼 우상화돼 왔던 김일성.그 김일성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고 정권을 이어받게 된 김정일.나는 지난 89년 6월 한국으로 귀순하기까지 김정일을 모두 세번 만났다. 내가 김정일을 처음 본 것은 평양기계대학 수산기계학과 1학년이던 지난 82년 5월이었다.내가 다니던 대학이 북한에서는 처음으로 「명태할복기」라는 기계를 개발했을 때였다.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으로 김일성·김정일 부자가 직접 「현지지도」를 나올 정도였다. 생전 처음 「민족의 태양」과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를 직접 가까이서 보는 자리였기 때문에 일거수 일투족도 놓치지 않으려고 긴장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김일성 뒤에 서 있던 김정일에 대한 첫인상은 「상대하기 껄끄럽겠다」는 한마디로 「간단치 않다」는 것이었다.김정일이 나중에 최은희·신상옥을 만났을때 자신을 「난장이 똥자루만하지요」라고 표현했던 것처럼 작달막한 키에 다부진 체격이었다.한쪽 머리카락이 모두 위로 치솟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그래서 당시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이런 모습을 두고 좋게는 김정일의 기상이 하늘로 솟았다고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릴때부터 부모사랑을 모르고 자라 사납고 괴팍하게 보인다는 말이 나돌았다. 어쨌든 상당히 호탕해보였고 솔직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았다.특유의 헐렁한 바지에 굽높은 신발,잠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됐다. 두번째로 김정일을 본 것은 1년뒤인 정권 창건일(9·9절)35주년 행사준비가 한창이던 83년 9월8일이었다.백만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로 김정일이 직접 총지휘를 맡고 있었다.김정일은 총연습이 한창이던 8일 낮과 밤 두번씩이나 직접 현장으로 나와 학생들과 당원들을 격려했다. 김일성이 신격화된 존재였다면 김정일은 「인민의 자애로운 지도자」로서 인간적인 면이 강조됐었다.특히 김정일은 서모아래에서 설움을 받으며 자랐다는 「흠집」이 오히려 인간적이라는 동정을 불러일으켰다.또 서구영화와 디스코·장발·통바지등 서구의 유행등을 어느 정도 허용하고 금강산과 남포·청진시등 4개 도시를 관광지대로 개방하자고 주장하는등 젊은층의 기호·취향을 어느 정도 알아줬기 때문에 김일성보다 가깝게 느껴졌었다. 그는 대학생과 청년단체,신진 엘리트,3대 소조를 자주 만나 「나와 함께 일할 동지들」이라고 신임과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그래서 젊은층이 김정일을 미래의 지도자라는 생각에서 더 따랐던 것 같다.그리고 지금도 이런 정서가 북한의 젊은층 사이에 퍼져있으리라고 믿기 때문에 김정일에 대한 북한주민,특히 테크노크라트들의 지지기반을 얕봐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물론 나의 김정일에 대한 생각은 폴란드 유학및 한국생활을 통해 73년이후 20여년동안 계속됐던 세뇌교육에 의해 왜곡·조작된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속고 살았다는 배신감과 허탈감이 컸다. 그렇지만 최근 한국에서의 김정일에 대한 평가가 분분한 것을 보면서 북한체제의 경험자로서 한마디 하고 싶다. 김정일은 김일성보다 강경하고 즉흥적이어서 예측하기 어렵지만 훨씬 현실적이고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김일성과 비교해 친화력과 지도력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뒤집기 위해 무척 애쓸 것이다.또 「군사에 약하다」는 열등감을 갖고 있어 핵문제등 현안문제를 통해 그렇지 않음을 안팎에 과시하려 할 것이다. 또한 정권을 잡은 뒤에는 경제난과 피폐한 주민생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자신을 반대하는 혁명 1세대를 몰아내는 계기로 삼을 지도 모른다. 김일성 사후 북한사회를 정확하게 전망하기 위해서는 김일성보다 훨씬 인간적인 존재로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된 김정일에 대한 정확한 연구가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동영준씨(28)는 지난 89년6월 폴란드 그다니스크종합대학에서 유학중 귀순,지난 92년 결혼해 아들을 두고 있으며 현재 고려대 경제학과 4학년에 재학중 기 자 입 력 가제목:내가 본 김정일 기자명:김정열 부서명:문화부 김정일은 과연 어떤 성품의 인물일까.그를 가까이에서 오랫동안 지켜 본 문화·예술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영화계에서는 지난 78년 홍콩에서 납치된 뒤 86년 북한을 탈출한 영화배우 최은희씨와 신상옥감독이 거의 유일하다.이들 부부가 지켜본 김정일은 이렇다. 1백65㎝의 키에 85㎏으로 비만한 편이며 작은 키를 의식해 굽이 높은 구두를 즐겨 신는다.머리는 상당히 명석한 편이다.김은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할 때는 사투리를 잘 쓰지 않지만 자기들끼리 얘기할 때는 「…하구래」 「…라요」라며 평안도 어미를 많이 붙인다.또 술과 담배,마작·블랙잭을 좋아하고 승부 근성이 강한 것으로 들었다. 연극·영화·음악 등 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상당한 조예를 갖고 있다.김일성대학을 졸업한 뒤 당 선전선동부장과 예술분야 전반을 관장하면서 능력을 발휘,아버지 김일성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특히 김정일이 주도한 가극 「피바다」는 김일성도 감명시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 대해서는 광적인 취미를 갖고 있다.「영화예술론」이라는 초보적인 영화이론서를 내기도 했으며 거의 매일 영화문헌고의 필름을 가져다 감상하기도 한다. 영화문헌고는 그의 광적인 관심 덕분에 1만5천여편의 필름을 보관하고 있는 등 세계적인 수준이다. 남한의 대중가요도 상당히 알고 있다.패티김의 「이별」 최희준의 「하숙생」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등을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연회석 상에서 흥이나면 자신이 직접 지휘봉을 잡기도 해 음악 전반에 꽤 지식이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연회석상에서 자신을 찬양하는 행사가 진행되자 『신선생,저건 다 가짜야,거짓으로 하는 소리요』라고 말해 현실을 보는 눈이 있음을 보여주기도. 또 자신의 면전에서 아첨을 하는 사람들의 속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당간부나 원로급 간부,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인물의 생일이나 환갑에는 선물도 보내고 생일잔치도 그럴듯하게 차려주는 자상한 면도 있다.
  • 한 「영웅」의 비극(임춘웅칼럼)

    OJ심슨이란 이름을 알고있는 한국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미국에 얼마나마 거주한 경험이 있다거나 장기간 여행만 한 사람이라도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건장한 체구에 카리스마적인 목소리로 텔레비전 화면을 꽉 채우는 그의 수려한 모습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올해 46세인 그는 한마디로 미국의 국민적 영웅이다.70년대에 미국의 국기라 할 수 있는 미식축구의 스타로 등장해서 그후 줄곧 광고모델로,영화배우로,텔레비전 해설가로 매일같이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나는 친근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흑인빈민가에서 태어나 연간 수백만달러를 벌어들이는 스타로 매일같이 텔레비전 화면에서 그를 대하게 되니 대중의 영웅이 될 수밖에 없다.그런 심슨이 지금은 이혼한 전부인과 그의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됐다.살인사건이 난 후인 지난 17일 경찰의 검거를 피해 친구의 차를 타고 도주하는 심슨과 이를 추적하는 경찰과의 2시간여에 걸친 숨가쁜 드라마가 헬리콥터를 통해 그대로 텔레비전에 생중계됐는데 이 장면을 무려 1천9백만명의 미국민이 시청했다고 한다. 심슨은 아직도 살인사실을 부인하고 있으나 경찰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하고있어 혐의는 굳혀져 있는 듯하다. 문제는 그토록 많은 국민적 사랑을 받았으며 거의 완벽해 보이는 이미지를 유지해온 몇 안되는 흑인중 한사람인 그가 왜 이처럼 끔직한 종말을 자초했느냐 하는 데 있다.본인이 범행을 부인하고 있고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진상을 알 수는 없으나 그가 마약을 사용해왔으며 우발적인 범행이었다고 경찰은 밝히고 있다. 엄마와 함께 사는 아홉살난 딸의 무용공연을 함께 구경하고 저녁을 먹은 후 전부인과 애들을 바래다 주러 전부인 집에 왔다가 때마침 찾아온 전부인의 애인을 보고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지금까지 알려진 대충의 줄거리다. 이 사건이 나고 쏟아져나오는 각종 자료중에 충격적인 통계가 하나 있다.남편의 손에 죽은 아내,아내의 손에 죽은 남편의 숫자가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다.연방 법무부가 밝힌 자료를 보면 92년의 경우 미국에서 남편이아내를 죽인 케이스가 9백13건,아내가 남편을 죽인 경우가 3백83건에 이르고 있다. 이밖에 남자가 여자친구를 살해한게 5백19건,여자가 남자친구를 살해한 케이스가 2백40건이나 돼서 1년간 일어난 치정살인이 자그마치 2천55건이나 됐다. 어느 노랫말처럼 사랑이 미움이 돼버린 경우들이다.이런 류의 범죄사건은 최근 더욱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템플대학의 범죄사회학교수인 짐 파이페교수는 올해의 경우 치정살인이 전체살인사건의 35∼45%까지 육박하리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울한 이야기다.애증의 폭이 커지고 그 애증을 표현할 기회와 수단이 많아졌기 때문이리라.우리나라에도 이런 통계가 나와있는지 모르겠다.미국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미국민들은 「이 시대 최고의 스포츠 스타」에 대한 배신감과 그들의 「영웅」을 잃은 좌절감으로 해서 적지아니 당혹하고 있는 것같다.
  • 수입 바가지(외언내언)

    80년대초쯤 미국이나 유럽을 여행하던 한국인들은 현지 백화점에서 국산품을 외제로 알고 사들고 오는 사례가 빈번했다.근사한 바바리코트,멋진 가죽가방을 사서 집에 돌아와 자세히 살펴보니 「메이드인 코리아」딱지가 붙어있는 것이다.그러나 「속았다」든가 「억울하다」는 생각보다는 대견하고 자랑스러웠던 느낌이 앞섰다.『국산품이 외국 백화점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다니…』그런 감동마저 맛보게 해주었다. 이제 세상은 많이 달라져 수입자유화와함께 외제상품들이 홍수처럼 쏟아져들어오고 있다.서울시내 유명백화점의 매장은 온통 수입상품으로 채워지고 있다.화장품·의류·주방용구·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그 바람에 국산품의 영토는 자꾸만 잠식당하고 있다.H백화점의 아동복매장은 18개,그중 수입상품매장은 11개나 된다.S백화점의 화장품코너는 7개이나 국산품코너는 단 한곳밖에 없다.온세계 유명브랜드 제품들이 현란하게 군림하고 있는것이다.수입상품은 값이 비싼데도 잘 팔린다고 한다. 현대백화점 본점의 경우 지난 1∼2월 수입의류판매고가작년대비 31.1%가 늘었고 수입화장품은 무려 88%나 폭증했다니 놀라운 신장세이다.농수산물아닌 상품에도 「신토불이」를 외쳐대야 할판이다.수입자유화의 참뜻은 질좋은 상품을 싼 값으로 소비자에게 공급한다는데 있을것이다.그런데도 국내 유명백화점들은 소비자의 얄팍한 허영심을 노려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다. 한 소비자단체의 조사에 의하면 서울시내 일류백화점에서 팔리고있는 수입상품들의 값은 대체로 원가의 5배나 된다.심한 경우 최고 7.6배의 폭리를 취하는 상품도 있었다고 한다.수입가 1만3천원짜리 진바지의 판매가가 8만9천5백원으로 둔갑한다. 아무리 장사라지만 해도 너무한다.일류백화점에서 자행되는 일이라 배신감과 충격은 더욱 커진다.소비자들이여! 언제까지 악덕 수입상과 판매업자들의 「봉」으로 남아있을 것인가.
  • 연변조선족의 「모국갈등」/최두삼 북경특파원(현장)

    ◎“왜 잘사나” 시기심… 한탕주의 만연 『다같은 조선민족인데 너희들은 왜 이리 잘살아! 왜 이렇게 돈이 많은가 말이다!…』이는 최근 북경의 한 한국인 아파트에서 일하는 조선족 가정부가 피를 토하듯 쏟아낸 말이다.그 가정부는 주인의 돈과 귀금속을 조금 훔쳤다가 발각되자 식칼을 쳐든채 몸을 부르르 떨며 이렇게 항변했던 것이다. 바깥세계를 구경해보지 못한 일부 조선족들은 도대체 「한국인」과 「조선족」이 왜 생활수준이 엄청나게 다른지에 대해 이해를 하지 못한다.중국내에서는 회사사장이나 사원의 의자 크기가 똑같고 기관의 국장이든 말단직원이든 그들이 사는 주택규모에 별다른 차이가 없다.이같은 평등구조에 익숙해 있는 그들로서는 왜 한국사람들과는 이토록 하늘과 땅처럼 차등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최근 한국인 사업가 서인석씨가 몇몇 조선족동포들의 꾐에 빠져 장춘시의 한 아파트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피살된 것도 중국내의 한탕주의 만연과 더불어 조선족동포들의 한국인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갈등,원한같은게 쌓여온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족들은 요즘 세사람만 모이면 한국가서 돈번 얘기와 한국에 들어갈 궁리들을 화제로 삼는다고 이곳 신문들은 전하고 있다.조선족 동포사회에 갑작스런 한국의 등장은 하나의 무지개 꿈의 출현과 같다.그래서 『부자가 되려거든 한국인을 잡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을 정도다.그러나 그들이 한국인을 통해 얻은 좌절과 배신감 그리고 피맺힌 원한 역시 날로 팽배해지고 있다. 그들은 김포공항이나 인천부두에서 동료 조선족들이 세퍼드까지 동원한 짐수색­몸수색을 당했다는 얘기에 울분을 느끼며,공사판에서 막노동으로 번 돈을 출국장에서 벌금으로 모두 빼앗긴뒤 빈털털이가 되자 자살했다는 얘기에는 다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매정한 나라 한국」을 원망한다.한국인 관광객들이 1백달러 지폐를 흔들며 『이 돈이면 너희들 월급 몇달친가?』라며 처녀들을 농락하고 정조를 짓밟았다는 얘기에는 『한국놈들 걸리기만 해라.가만두지 않겠다』며 두 주먹을 불끈쥐기도 한다. 한국인들은 조선족들이 땀흘릴 생각은 않은채 부자될 꿈만꾸고 있다고 나무라는 반면 조선족들은 『우리는 북한동포들이 오면 몇달치 월급도 아까워하지 않고 쥐어줘 돌려보내지만 한국인들은 우리가 찾아가면 귀찮은듯 겨우 양말 몇 켤레나 던져주며 돌아가라 한다』고 익숙지 못한 자본주의사회의 메마른 인정을 개탄한다.
  • 독 콜총리 집권 12년 종막 예고/기민당 지방의회선거 참패 파장

    ◎통독후 경기침제 대응못해 국민들 반발/신선한 이미지 사민당에 기대… 변화 모색 오는 10월 독일총선거의 향방을 가늠할 풍향계로서 관심을 끌었던 13일의 니더작센주 주의회선거에서 집권기민당이 참패,독일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최종집계 결과 기민당은 90년의 42%보다 크게 떨어진 36.4% 지지 획득에 그친 반면 제1야당인 사민당은 90년보다 조금 올라간 44.3%의 지지를 얻어 1백61석의 주의회의석중 절대과반수를 획득할수 있게 됐다.또 기민당과 함께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당은 의석획득 하한선인 5% 득표에 실패,의석을 얻지 못하게 됨으로써 콜총리의 인기하락으로 재집권 전망이 어두워진 기민당에 또다른 어려움을 안겨주었다. 기민당의 참패는 통일에 걸었던 기대가 4년의 세월에도 불구,전혀 실현되지 않는데 대한 국민들의 배신감이 통일의 주역이었던 콜총리와 그가 이끄는 기민당에 대한 실망,그리고 집단반발로 이어진 결과라고 할수 있다.이같은 반발은 구동독지역에서 더욱 심해 기민당의 구동독지역 참패는일찍부터 점쳐져 왔다.그러나 기민당이 구서독지역인 니더작센주에서조차 지난 59년이래 최대의 참패를 당함으로써 통일을 실현한 「위대한 총리」에서 이제 온갖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한 콜총리에 대한 반발이 구서독에서도 거셈을 입증한 결과가 됐다. 콜의 인기하락은 통일후 독일을 강타한 경기침체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데서 비롯됐다.그러나 구동독지역의 경제재건에 투입되는 막대한 재정투자등을 감안하면 현재 독일이 처한 경기침체는 사민당이 집권했더라도 뾰족한 대안을 찾기 어려웠을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기는 하다.그러나 집권 12년째에 접어든 콜총리 내각이 이미 오래전부터 경직성과 노쇠화를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이다.콜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사민당의 루돌프 샤르핑 당수가 비교적 신선한 이미지로 부각되면서 보수성향의 독일국민들 사이에 「이제 변화를 택해야 할 시점이 왔다」는 분위기가 서서히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것이 13일 니더작센 주의회선거에서 기민당을 참패시킨 요인이라는게 일반적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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