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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죄하라, 사죄하라… 소리없는 외침 ‘소녀들의 기억’

    사죄하라, 사죄하라… 소리없는 외침 ‘소녀들의 기억’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직접 자신의 삶을 화폭에 담은 그림 전시회가 열린다.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은 오는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성동구청에서 ‘소녀들의 기억’ 그림 전시회와 영화 ‘에움길’ 상영회를 연다고 4일 밝혔다. 2006년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여가 프로그램과 미술 심리치료 과정 중에 그린 그림을 ‘고향-고통-바람’의 순서로 7일부터 전시하게 된다. 이번에 전시하는 그림들은 2016년 5월 유네스코 기록유산 등록을 신청한 300점 중 26점이다. 전시되는 작품들엔 할머니들의 되돌릴 수 없는 아픔과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린아이처럼 삐뚤삐뚤하게 그려진 그림이지만 어릴 적 고향 전경, 단란했던 가족 얼굴, 엄마와 헤어져 울면서 끌려가던 모습, 일본군에 당한 치욕적인 기억들을 담았다. 이들의 그림은 곧 아픔의 증거이자 역사의 한 장면이다. 할머니들은 기억 속 잔상들을 힘겹게 끄집어내어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했다.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할머니들이 처음 미술치료를 위해서 미술재료와 도구를 접할 땐 낯설고 어색해하며 부담스러워했지만 꾸준히 시도해 보면서 자신의 속마음과 생각을 드러내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전시회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그림을 아물지 않은 상처의 증거이자 법적 효력을 지닌 역사적 기록으로 널리 알림으로써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기 위해 마련했다”면서 “이번 전시회가 올바른 역사의식과 인권의식을 함양하는 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91) 할머니의 삶을 다룬 이승현 감독의 영화 ‘에움길’도 6일 오후 7시 성동구청 3층 대강당과 7일 오후 3시 2층 온마을체험학습센터에서 2차례 상영된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땅콩회항’ 박창진 사무장 “불이익 받아”vs 대한항공 “아니다”

    ‘땅콩회항’ 박창진 사무장 “불이익 받아”vs 대한항공 “아니다”

    2014년 발생한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때문에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이유로 박창진 전 사무장으로부터 소송을 당한 대한항공 측이 불이익을 준 적이 없다며 반박했다.서울서부지법 민사합의12부(이원신 부장)는 4일 박 전 사무장이 대한항공과 조현아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전 대한항공 부사장)을 상대로 낸 소송의 첫 변론을 열어 양측 입장을 확인했다. 재판부에 따르면 대한항공 측은 지난 2월 14일 서면을 통해 “박 전 사무장의 인사는 징계를 받은 것이 아니라 평가를 받았을 뿐이며 불이익한 변경을 주지 않았다”는 의견을 전했다. 대한항공 측은 또 서면에서 “박 전 사무장이 라인 팀장을 맡지 못한 것은 땅콩 회항 사건이 발생하기 전인 2014년 3월 한·영(한글-영어) 방송능력 재평가에서 A 자격을 취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사무장 측은 대한항공에 방송능력 재평가와 관련된 서류를 제출해달라고 신청하는 한편 대법원에 조 사장의 형사사건 관련 문서들을 신청했다. 재판부는 박 전 사무장 측이 요구하는 자료를 제출하라고 대한항공 측에 당부하고, 올해 6월 20일 2회 변론기일을 열기로 했다. 이날 재판에 박 전 사무장과 조 사장은 출석하지 않고 대리인들만 출석했다. 땅콩 회항 사건은 2014년 12월 5일 이륙 준비 중이던 대한항공 기내에서 당시 이 항공사 부사장이었던 조 사장이 땅콩 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으며 난동을 부리고 비행기를 되돌려 박 전 사무장을 내리게 한 사건이다. 박 전 사무장은 이 사건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다가 2016년 5월 복직한 뒤 영어 능력을 이유로 팀장에서 일반 승무원으로 강등됐다고 주장하며 부당징계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박 전 사무장은 또 조 부사장으로부터 강요행위를 받아 정신적 피해를 봤다며 2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도 냈다. 아울러 사건 조사 과정에서 대한항공으로부터 ‘자진해서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허위 진술하도록 강요받았다며 회사 측에도 1억 원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했다. 한편 박 전 사무장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후두부에 양성종양이 발병해 수술을 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최근 병원에서 퇴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흥국 지인 A씨 “월드컵 당시에도 여성 추행…지켜보기 힘들었다”

    김흥국 지인 A씨 “월드컵 당시에도 여성 추행…지켜보기 힘들었다”

    “지켜보기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나 실망해 연을 끊으려 했습니다” 최근 가수 김흥국의 성폭행 의혹이 불거졌다. 한 여성은 2년 전 김흥국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주장했고 이에 대해 김흥국은 해당 여성이 의도적인 접근을 했다며 부인했다. 양 측은 진실 공방을 벌이며 첨예한 입장 차를 보이고 있다.이와 관련해 30년 이상 김흥국과 함께했던 지인 A씨는 스포츠서울에 김흥국의 또 다른 성추행에 대해 증언했다. A씨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됐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이 목격한 김흥국의 성추행에 대해 전했다. 이하 A씨와의 인터뷰 - 과거 김흥국과의 술자리에서 여성들과 어떤 일이 있었나.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축구 국가대표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시기다. 경기장에서도 서로 기쁘니 얼싸안는 분위기였다. 특히 김흥국은 유명 연예인이기도 하고 당시 축구장에서는 우상인 분위기였다. 광주의 한 호텔에 술집이 있었는데 김흥국과 일행들은 여성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그 당시는 축구가 워낙 잘 돼 뭘 해도 기분 좋은 분위기였다. 김흥국은 그 낌새를 포착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찍어서 추행을 했다. 이건 아니라고 하니 나가있으라 하더라. 말릴 수 없었다. - 그 이후에도 유사한 일이 있었는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독일 월드컵 응원차 현지에 갔는데 한국에서 온 여성들과 술을 마셨고 결국 추행을 했다. 나중에 피해 여성들의 부모님들이 알고 김흥국을 끝장내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흥국 측에서 오히려 부모님들에게 딸들의 장래가 촉망되고, 시집도 가야 하는데 문제가 된다면 어떡하냐며 앞으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할 거냐고 했다. 그랬더니 되려 부모님들이 겁을 먹었고 결국 그렇게 마무리됐다. - 김흥국은 술자리에서 주로 어떤 모습을 보이나. 술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다면 술을 먹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도수가 높은 담금주를 가져와 술을 먹이기도 했다. 취하게 한 뒤 여성이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가 되면 추행을 했다. 상대방이 원치 않는데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며 이건 아니라 생각했다. - 또 다른 김흥국의 추행 사건을 목격했는지. 지난 2012년 경 카페를 운영했는데 김흥국이 새로운 아르바이트생을 보게 됐다. 카페 안쪽에 방이 있었는데 자꾸 거기서 다른 손님이 갔냐고 묻더라. 결국 손님들이 모두 간 뒤 김흥국이 남아 그냥 술 좀 마시다 가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방 안에서 “사장님!”이라 외치는 비명 소리가 났다. 김흥국이 문을 잠그고 아르바이트생을 추행한 것이었다. 어떻게 하려 했지만 미수에 그쳤다. 나중에 아르바이트생의 부모님이 찾아왔고 내가 죄송하다고 사정했다. - 해당 사건 이후 김흥국의 반응은 어땠나.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해당 사건에 대한 사과도 없었다. - 김흥국의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해 다른 지인들도 아는지.너무 많은 사람들이 안다. 김흥국의 측근들도 상황을 알 것이다. - 현재 한 여성이 김흥국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하며 고소했고, 김흥국 측은 이를 반박하며 맞고소했다. 지켜보며 어떤 생각이 드나. 정말 터무니없더라. 그 여성분이 어떤 사람이던, 강제로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나는 (술자리에서의) 그런 수법을 숱하게 봤다. - 김흥국의 오랜 지인이었는데 성추행 의혹에 대해 폭로하는 이유가 궁금하다.도의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김흥국에게 실망해 전화도 받지 않고 몇 번이나 인연을 끊으려 했다. 이것은 아닌 것 같았다. 대한가수협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만약 경찰 조사에 있어서 발언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한편, 김흥국은 지난달 한 여성으로부터 강간·준강간·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피소됐다. 검찰 측은 해당 사건을 서울광진경찰서로 내려 보내 수사하도록 했다. 경찰 측은 지난주 해당 여성의 조사를 마친데 이어 오는 5일 김흥국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한다. 의혹에 대해 김흥국은 해당 여성이 소송 비용을 빌려 달라 하는 등 의도적인 접근을 했다며 부인했다. 또한 김흥국은 해당 여성을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맞고소했고 정신적, 물리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스포츠서울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김흥국, 평소 여성에 담금주 먹이고 추행”…지인의 폭로

    “김흥국, 평소 여성에 담금주 먹이고 추행”…지인의 폭로

    가수 김흥국이 월드컵 당시 수차례 성추행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제보가 나왔다.4일 스포츠서울에 따르면 김흥국 지인이라고 밝힌 A씨는 “2002년 월드컵, 2006년 월드컵 등 수차례 김흥국의 성추행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2002년 월드컵 때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 팀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시기라 경기장에서도 서로 기쁘다 얼싸안는 분위기였다. 김흥국은 유명 연예인이기도 하고 당시 축구장에서는 우상인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흥국은 뭘 해도 기분 좋은 분위기 그 낌새를 포착하고 (마음에 드는 여성을) 찍어서 추행을 했다. 이건 아니라고 하니 나가있으라 하더라. 말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A씨는 “김흥국은 술자리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다면 술을 먹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특히 도수가 높은 담금주를 가져와 술을 먹이기도 했다. 취하게 한 뒤 여성이 거의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가 되면 추행을 했다”고 김흥국의 평소 행실을 지적했다. 그는 이같은 제보를 한 이유로 “도의적으로 너무 힘들었다”며 “김흥국에게 실망해 전화도 받지 않고 몇 번이나 인연을 끊으려 했다. 대한가수협회 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데도 이렇게 하는 것은 잘못된 것 같다. 경찰 조사에 있어서 발언이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흥국은 이같은 보도에 “사실 무근이며 지인 A씨가 누구인지 짐작이 가는데 개인의 이해관계와 감정에서 나를 무너뜨리려고 나온 음해이다. 이 정도로 위험한 주장을 하려면 본인 신분을 밝히길 바란다.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지난달 30대 여성 B씨는 강간, 준강간,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김흥국을 고소했다. 김흥국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이미지 손상으로 인한 물질적 피해는 물론 정신적 피해까지 상당하다”면서 서울중앙지법에 B씨를 상대로 2억원 지급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경찰 측은 지난주 해당 여성의 조사를 마친데 이어 오는 5일 김흥국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 할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文대통령 “4·3은 역사적 사실”… 폄훼 용납 않겠다는 의지

    국가권력에 의한 양민학살 규정 “평화는 진실 위에서만 설 수 있어” 명예회복·유해발굴·배상 등 약속 보수·진보에 낡은 이념 탈피 촉구 “이젠 정의·공정으로 평가받아야”“이 땅에 봄은 있느냐? 여러분은 70년 동안 물었습니다.” “여러분, 제주에 봄이 오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제주 4·3 사건 제70주년 추념사는 ‘제주도의 봄’이 시작과 끝을 장식했다. 문 대통령은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추념식에서 4·3 사건의 ‘완전한 해결 의지’를 공식 천명하고 살아남고자 70년간 상처와 아픔을 묻고 살아온 제주 도민들에게 진정한 봄을 약속했다. 추념사를 관통한 핵심 메시지는 ‘진실’이다. 문 대통령은 “평화와 상생은 이념이 아닌 오직 진실 위에서만 바로 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4·3 사건을 단지 불행한 과거사로만 치부하지도 않았다.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 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4·3 사건의 명예회복 없인 미래도 없다는 의미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4·3 진상규명특별법을 제정해 진실 규명과 피해 보상의 길을 열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10월 제주를 찾아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제주 도민들에게 4·3 사건을 공식 사과했다. 그러나 두 번의 보수 정부를 거치면서 정부 사과의 진정성은 후퇴했다. 문 대통령의 4·3 추념식 참석은 4·3 사건을 바로 세우고,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에 대한 국가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4·3 흔들기’를 더는 용납지 않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4·3 사건의 성격을 ‘국가 권력에 의한 양민학살’로 규정했다. 추념사에 나타난 제주 4·3은 이렇다. 1947년부터 1954년까지 남로당 무장대와 토벌대 간 무력충돌과 유혈 진압으로 당시 제주 인구의 10분의1인 3만여명의 양민들이 희생당했다. 좌우 양쪽에 의해 무차별한 학살이 이뤄져 가해자가 어느 쪽인지도 명확지 않다.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4·3은 아직 이름이 없다. 정부는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히고, 명예회복, 유해발굴 사업, 유족과 생존 희생자들의 상처 치유, 배상과 보상, 국가트라우마센터 건립도 약속했다. 보수 진영 일부는 4·3 사건을 ‘친북·좌파 세력의 무장폭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70년 전 제주 도민의 삶과 죽음 갈랐던, 지금도 대한민국을 가르는 낡은 이념을 벗어 던지자고 했다. 문 대통령은 “좌와 우의 극렬한 대립이 참혹한 역사의 비극을 낳았지만, 4·3 희생자들과 제주 도민들은 이념이 만든 불신과 증오를 뛰어넘었다”고 했다. 구체적인 사례도 들었다. “고(故) 오창기님은 4·3 당시 군경에게 총상을 입었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해병대 3기’로 자원 입대해 인천상륙작전에 참전했다, 아내와 부모, 장모와 처제를 모두 잃었던 고(故) 김태생님은 애국의 혈서를 쓰고 군대에 지원했다. 4·3에서 ‘빨갱이’로 몰렸던 청년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조국을 지켰다. 이념은 단지 학살을 정당화하는 명분에 불과했다.” 이념이 있던 곳에 자리할 새로운 시대적 가치로 ‘정의’와 ‘공정’을 제시했다. 문 대통령은 “이제 대한민국은 정의로운 보수와 정의로운 진보가 ‘정의’로 경쟁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공정한 보수와 공정한 진보가 ‘공정’으로 평가받는 시대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의롭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면 보수든, 진보든, 어떤 깃발이든 국민을 위한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 대목에 특히 공을 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탈(脫)이념으로 적대적 그늘을 걷어 내고 화해와 상생, 평화와 인권이란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나라로 발돋움하려면 제주 4·3 사건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 대통령은 추념식 직후 제주도 한 호텔에서 유족·희생자들과 오찬하면서 “앞으로는 누구도 4·3을 부정하거나 폄훼하거나 모욕하는 일이 없도록 4·3의 진실이 똑바로 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진실규명을 강조했다. 또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가 똑바로 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고 있다는 희망을 유족들과 희생자들이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며 “문재인 정부가 책임 있게 해 나가겠다, 만약 우리 정부가 다 해내지 못한다면 다음 정부가 이어 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홍성수 제주 4·3실무위원회 부위원장은 “국회가 4·3특별법 개정안 처리에 더욱 힘을 실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안희정 아들, 김지은에 전화 걸고 끊어…잘못 누른 실수”

    “안희정 아들, 김지은에 전화 걸고 끊어…잘못 누른 실수”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아들이 안 전 지사를 성폭행 혐의로 고소한 전 수행비서 김지은씨에게 실수로 전화를 건 것으로 알려졌다.3일 YTN에 따르면 안 전 지사 아들은 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전 지사 측 법률대리인은 “안 전 지사의 아들이 실수로 전화를 걸었으나 받기 전에 곧바로 끊은 적이 있다. 잘못 누른 실수였다”고 해명했다. 이날 방송에 출연한 손정혜 변호사는 “안 전 지사 측은 아들이 실수로 전화를 잘못 누른 것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피해자 측 입장에서는 아들이 전화를 시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압박이 되고 불안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 경찰학과장 역시 “내용도 없이 잠깐 누르고 끊었다고 하면 그 자체만으로 굉장히 압박이 크다. 안 전 지사 아들이 실수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결과 자체는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에게 직접 통화한 것 이상으로 충격이 클 수 있다. 실수였다면 조심해야 하고 의도했다고 하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무현 비하’ 호두과자 업체 비난 누리꾼에 “5만원씩 배상”

    ‘노무현 비하’ 호두과자 업체 비난 누리꾼에 “5만원씩 배상”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호두과자 제품을 만든 업체 대표가 자신을 비난했던 누리꾼들을 상대로 낸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했다.천안시에서 호두과자점을 운영하는 A씨는 2013년 7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하하는 이미지를 담은 호두과자를 일부 고객들에게 제공해 논란을 일으켰다. 포장박스에는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비꼬는 의미의 ‘고노무’라는 이름을 붙이고 ‘추락주의’ 등의 이미지를 담았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얼굴을 코알라와 합성해 만든 문구용 스탬프도 함께 팔았다. 당시 이런 내용은 ‘어느 호두과자점의 소름 돋는 마케팅’이라는 제목으로 알려지며 수많은 이들의 비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A씨는 홈페이지 등에 자신을 비난한 누리꾼 150여명을 2014년 11월 무더기 고소했다. 처음 논란이 됐던 직후 발표했던 사과문도 취소했다. 고소당한 이들 중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 이들은 모두 6명이라고 3일 중앙일보가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호두과자를 XXX(입)에 집어넣어 질식사시키고 싶다” “저런 것 만든 XX들은 다 고X를 만들어 버려도 시원찮다” “망해서 빚더미에 앉아라” “짐승새X니 저런 짓을 한다” 등의 내용이다. 구체적인 내용 없이 “X까 제발 XX녀석”이라고 욕설만 쓴 사람도 똑같이 손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수원지법 안양지원 민사3단독 이동호 판사는 지난달 15일 “이들은 공연히 A씨를 모욕했고 이로 인해 A씨는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A씨의 손해배상 청구의 타당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동호 판사는 A씨가 1인당 청구한 금액 400만원 중 5만원씩만 인정했다. 청구금액의 약 1.25%만 인정된 것이다. 이동호 판사는 “댓글을 올린 장소, 내용, 이 사건에 이르게 된 경위, 댓글을 올린 횟수, A씨가 형사고소도 했지만 모두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점” 등을 고려해 손해배상금을 5만원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A씨는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빨갱이로 몰아 학살, 그 불명예… 제주의 봄은 여전히 시리다

    빨갱이로 몰아 학살, 그 불명예… 제주의 봄은 여전히 시리다

    1949년 1월 17일 제주 조천 북촌마을. 한 무리의 군인들이 마을을 덮쳤다. 집집이 총구를 겨누며 남녀노소 주민들을 끌어내 북촌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내몰았다. 어린 학생들에게 빨갱이 가족을 찾아내라고 채근하던 군인들은 주민 수십명씩을 인근 너븐숭이로 차례로 끌고 가 400여명을 학살했다. 가옥은 모두 불태웠다. 이날 북촌마을을 지나던 군인들이 무장대의 기습 공격으로 2명이 사망하자 보복한 것이다. 북촌리 양민 집단학살 사건은 4·3 최대의 참극이었다.제주 4·3이 3일 70주년을 맞는다. 70년 전 해방정국의 좌우 이념 혼란기, 제주에서는 수만명의 주민이 무자비한 폭력에 희생당했다. 4·3은 서슬 퍼런 독재 권력에 눌려 오랜 세월 금기였으며 진실은 은폐되고 왜곡됐다. 발단은 1947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발생한 경찰의 발포 사건이다. 기마 경찰의 말발굽에 어린아이가 다쳤지만 경찰이 그냥 지나쳤다. 군중이 돌멩이를 던지며 항의하자 경찰이 발포, 민간인 6명이 사망했다. 제주도민들은 같은 달 10일 민관 총파업으로 항의했고, 미군정은 파업 참여자를 잡아 가두는 등 탄압에 나섰다.급기야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 350여명이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 등을 외치며 경찰지서 12곳을 습격하는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5·10 총선거가 무산됐고, 11월 17일에는 제주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다. 이후 토벌대와 무장대의 무력 충돌로 7년간 학살극이 벌어졌다. 토벌대는 무장대에 협조한다며 양민들을 학살했고, 무장대도 협조하지 않은 마을 주민들을 살해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뒤로는 보도연맹 가입자나 입산자 가족 등을 잡아들인 뒤 집단 수장하거나 총살, 암매장하는 일이 잇따랐다.4·3의 광기는 멈췄지만 연좌제가 도민들의 숨통을 조였다. 침묵의 금기는 1978년 소설가 현기영이 북촌리 학살 사건을 다룬 소설 ‘순이 삼촌’을 발표하면서 깨졌다. 4·3의 참혹함이 드러나자 제주에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 차원의 진상 규명은 1990년대 말부터 시작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취임한 후 1999년 12월 ‘제주 4·3 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03년 10월 4·3 진상보고서가 확정되자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처음 사과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9년여간은 달랐다. 이명박 정부는 4·3 진상조사보고서 수정 등을 시도했고 2011년부터 국비 지원을 끊어 유해 발굴 사업을 중단시켰다. 박근혜 정부는 4·3 추념일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했지만 보수단체 등의 반발에 2015년 희생자 재심사에 나서기도 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추념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제주 4·3의 완전한 해결’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희생자와 유족 추가 신고가 지난 1월 시작됐고, 유해 발굴 작업도 다음달부터 학살 현장이었던 제주공항 등에서 재개된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달 28일 대국민 담화에서 “4·3은 분단과 정부 수립 과정에서 수많은 제주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대한민국의 아픈 역사”라며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과거사 아픔을 치유하고, 제주가 세계 평화와 인권의 중심으로 거듭나는 4·3의 역사적 행보에 국민들이 함께해 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4·3의 완전 해결을 위한 우선 과제는 4·3 특별법 개정이다. 유족과 제주도 등은 개정안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요구한다. 개정안에는 ▲공권력에 의한 억울한 희생에 대한 배상과 보상 ▲정당한 절차를 밟지 않은 군사재판의 무효화 ▲수형인에 대한 명예 회복 ▲트라우마 치유센터 건립 등이 담겼다. 제주도는 3일 제주시 봉개동 4·3 평화공원에서 열리는 70주년 추념식에서 4·3의 고통을 노래한 ‘잠들지 않는 남도’를 합창한다고 2일 밝혔다. 2016년과 지난해 정부 측 요구로 추모 합창곡에서 제외됐었다. 오전 10시 도 전역에 1분간 추모 묵념 사이렌이 처음 울린다. 도는 추념일을 지방공휴일로 지정했다. 현재 4·3 공식 희생자는 1만 4232명(사망자 1만 244명, 행방불명자 3576명, 후유장애자 164명, 수형자 248명)이며 유족은 5만 9426명이다. 2003년 발간된 정부의 4·3 진상보고서는 “인구 동향 등의 자료를 고려하면 4·3으로 인한 인명 피해는 총 2만 5000~3만명이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4·3은 7년간 당시 제주도 인구의 10%가량이 희생된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퍼블릭 IN 블로그] “적폐 공직자, 기관장으로 슬그머니”… 출판계 블랙리스트 책임도 슬그머니

    “대통령, 장관이 바뀌면 출판계가 확 달라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대통령, 장관만 바뀌면 뭐합니까. 적폐 기관장과 그 밑의 사람들이 그대로인데.” #윤태용 前 문체부 실장, 저작권보호원장 부임 논란 지난달 13일 서울 용산구 문화체육관광부 서울사무소 앞에서 열린 범출판인대회에서는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대학출판협회, 한국출판인회의를 비롯한 출판계 10개 단체 회원들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한 관계자는 “출판인들이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이라며 “출판사 대표 200여명이 한번에 모인 것은 이 업계에서 굉장히 특이한 일이다. 오죽하면 나왔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회의 표면적인 이유는 신학기 개강을 맞아 기승을 부리는 대학가 불법 복제였다. 그러나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은 이들은 하나같이 적폐 인사를 성토하기에 바빴다. 한 참가자는 “대학가에 불법 복제가 판을 치고 있지만, 단속을 해야 할 한국저작권보호원이 예산 부족과 권한 문제를 핑계로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한국저작권보호원장에게 화살을 돌렸다. 그는 “전임 대통령 탄핵 사유의 핵심 사건에 책임이 있는 윤태용 전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산업실장이 슬그머니 자리를 옮겨 원장으로 앉아 있다”고 어조를 높였다. 윤 원장은 실장 재임 시절 미르재단 설립 허가와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 등을 담당했다. 그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자 2016년 12월 사표를 내고 물러났으나 3개월 뒤 초대 원장으로 부임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 ‘블랙리스트 실행’ 이기성 출판진흥원장 후임 감감 이처럼 박근혜 정부가 드리운 그림자는 길고도 짙다. 문체부 산하기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대표적인 사례다. 출판진흥원은 출판사를 지원하고 국민에게 독서를 권장하는 문체부 정책을 총괄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문체부의 부당한 지시를 받아 ‘출판계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기성 원장이 지난해 12월 사퇴한 뒤 후임은 감감무소식이다. 이 전 원장은 현재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등과 함께 ‘블랙리스트’ 피해를 받은 11개 출판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대상에도 포함됐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이 전 원장이 자신의 제자들을 전자출판용 서체개발·배포사업의 운영위원으로 대거 임명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운영위원회 전체 12명의 위원 가운데 전자출판학계 위원 3명과 출판계 이모 위원 등 4명이 이 전 원장의 동국대 제자다. 이들 위원 4명은 또 진흥원 내 다양한 사업들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고 신 의원은 지적했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이 전 원장에게만 관심이 쏠렸지, 그와 관계된 사람들이 어떤 처벌을 받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진상조사위, 예산 부족·野 반발로 활동 유야무야 민간위원 17명 등이 참여해 지난해 7월 발족한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이런 적폐를 뿌리 뽑을 수 있을지 출판계가 여전히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진상조사위는 그간 블랙리스트 피해 건수가 무려 2700여건에 이른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피해자 수는 문화예술인 1012명과 문화예술단체 320곳에 달했다. 특검 공소장에서 드러난 436건과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서 나타난 444건보다 7배 정도 많은 수치다. # 출판인들 “정권만 바뀌고 일하는 사람은 그대로” 3개 소위원회를 둔 진상조사위는 백서발간소위원회만 남기고 이달 말 진상조사소위원회, 제도개선소위원회 활동을 접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예산 부족’과 ‘야당의 반대’ 때문이다. 앞서 진상조사위는 지난 1월 활동 시한을 3개월 연장했다. 한 번 더 연장하고자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를 설득했지만, 야당이 반대하면서 무산됐다. 한 출판계 관계자는 “진상조사위가 블랙리스트 피해를 찾아내면 이에 관한 책임을 강력하게 물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정부의 추진 상황을 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며 고개를 저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성폭행 피소’ 김흥국, 5일 경찰 조사 받는다

    ‘성폭행 피소’ 김흥국, 5일 경찰 조사 받는다

    경찰이 성폭행 혐의로 30대 여성에게 고소당한 김흥국(59)씨를 이르면 오는 5일 소환 조사한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지난주 고소인 A씨를 불러 조사를 마쳤으며, 오는 5일이나 6일 김씨에게 경찰에 출석해 조사받을 것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1일 밝혔다. 다만 김씨의 상황에 따라 출석 일정은 변동될 수 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A씨는 지난달 21일 김씨를 강간·준강간·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소했다. 검찰은 지난달 25일 이 사건을 광진경찰서로 넘겨 수사하도록 지휘했다. 앞서 한 방송에서 A씨는 보험설계사로 일할 당시 지인 소개로 알게 된 김씨에게 2016년 말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성폭행을 당한 장소가 광진구에 있다고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성폭행 의혹을 전면 부인하며 지난달 26일 무고와 명예훼손 혐의로 A씨를 서울중앙지검에 맞고소했다. 검찰은 김씨의 맞고소 사건을 강남경찰서로 내려 보냈다. 또한 김씨는 지난달 20일 A씨를 상대로 정신적·물리적으로 피해에 대해 2억원을 지급하라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경찰, ‘약촌오거리 억울한 옥살이’ 18년 만에 직접 사과

    경찰이 18년 전 발생한 전북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돼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최모(34)씨를 직접 만나 사과의 뜻을 전했다. 지난 27일 대법원이 살인사건의 진범에게 유죄 판결을 확정 짓자 뒤늦게 최씨를 찾아간 것이다. 30일 경찰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50분쯤 전북경찰청 형사과장과 강력계장이 전주 완산구 효자동의 한 커피숍에서 최씨를 만나 “경찰의 잘못한 부분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리고 깊이 반성한다”면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만남은 전날 이철성 경찰청장이 형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최씨를 찾아가 사과하라”고 지시하고, 최씨가 이에 응하면서 성사됐다. 경찰은 최씨의 무죄가 확정된 2016년 11월 사과문을 발표하는 등 이날까지 3차례 사과문을 내놓았지만 직접 찾아간 것은 처음이다. 최씨는 사건 당시 현장을 지나갔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려 감금과 구타를 당했다. 경찰이 최씨로부터 거짓 자백을 받아내면서 그는 유죄판결을 받고 징역 10년을 복역한 뒤 출소했다. 최씨는 이날 “경찰이 찾아와 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면서도 “가해 경찰관 중 일부는 사과를 하지만 다른 분들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헷갈린다”면서 서운한 감정도 내비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최씨는 현재 국가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 중이다. 최씨의 무죄를 입증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경찰이 너무 긴 세월 동안 잘못을 부인하다가 모든 법적 판단이 끝난 상황에서 사과를 한 것에 대해 진정성이 얼마나 있는지 의문”이라면서 “사과문 내용도 피상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을 대표해서 사과를 하는 것”이라면서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찰관에게 ‘잘못을 인정하라’고 강요할 순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위안부 할머니 ‘증거’로 절규하다

    위안부 할머니 ‘증거’로 절규하다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1·2/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연구팀 집필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기획/푸른역사/314~320쪽/각권 1만 5000원“열여섯이 되는 1940년 가을 어느 저녁이었다. 친구 집에서 놀다 돌아가는데 일본인 헌병, 조선인 헌병, 조선인 형사가 나를 불러 세웠다. 대구역에서 기차에 태워졌다. 꼬박 사흘간 달려 도착한 곳은 북만주 동안성이었다. ‘군폴’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민가에 들어갔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젊은 조선인 여성들이 있었다. 열네, 다섯 살 되는 사람도 있었다. 매일 20명에서 30명 정도 일본인 군인이 찾아왔다. 나는 매일매일 울었다. 그러나 울어도 울어도 남자들이 왔다.”(‘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본문 109쪽) 1924년 봄 대구에서 태어나 위안부로 끌려갔던 문옥주 할머니의 증언이다. ‘아버지가 길에 떨어진 보석을 줍는 꿈’을 꿔 이름이 ‘옥주’였던 귀한 딸은 영문도 모른 채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문 할머니는 그렇게 북만주에서 1년을 지내고 외출 허가를 받아 가까스로 한국으로 도망쳤다. 1년 뒤 “일본군 식당에 일하러 가자”는 친구들을 따라 1942년 7월 마쓰모토라는 조선인 남자의 인솔을 받아 미얀마 랑군 만달레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군인은 그와 친구들을 보고 불쌍하다는 듯 말했다. “너희들 속아서 왔구나. 불쌍하게도. 너희는 잘못 안 거야. 여기는 ‘삐야’(위안소)야.” 울다 지쳐 잠든 밤이 밝자 군인들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테(‘방패’의 일본어) 8400부대’에 소속된 그녀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또다시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다.‘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는 문 할머니와 같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6명의 이야기를 모은 사례집이다. 서울시가 2016년 시작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관리 사업’의 결과물이다. 책은 위안부 할머니를 ‘나’로 내세워 생생한 경험을 여과 없이 전하는 구술 생애 방식으로 서술했다. 피해자의 증언에 사진과 관련 자료를 덧붙여 고통스러운 경험을 구체화했다.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사회학과 교수) 연구팀은 지난해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과 태국, 영국을 방문해 ‘위안부’ 자료들에 대한 발굴 조사를 펼쳤다. 정 교수는 “자료가 있을 만한 곳을 사전에 조사하고 현지에서 타깃을 좁히는 방식으로 미·중 연합군 공문서, 포로 심문 자료, 기록 사진, 지도 등 300여건의 가치 있는 자료들을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책에 수록된 노수복, 문옥주 할머니는 지금껏 ‘증언’만 존재했지만 이번 사례집을 통해 구체적인 증거들도 제시했다. 기존 증언집이 피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초점을 뒀다면, 이번 기록은 피해자들이 끌려가고 귀환하는 과정, 귀환 이후의 삶까지 담았다. 각 위안부 피해자들의 이동·귀환 경로를 지도로 확정하면서 일본군이 운영한 위안소가 중국, 일본, 싱가포르, 미얀마 등 아시아·태평양 전 지역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걸 확증했다.책은 정부에 피해 등록을 하지 않은(혹은 ‘하지 못한’) 피해 할머니들 이야기도 포함했다. 이들 가운데 작고한 피해자, 중국에 살면서 국적 회복을 포기했거나 국적 회복 중 작고한 피해자, 뒤늦게 피해를 드러내고 정부 등록 과정을 진행하다 작고한 이들도 수록했다. 배봉기, 홍강림, 하복향 할머니 사례다.고(故) 김학순 할머니에 이어 1991년 12월 정부에 두 번째로 위안부 피해 신고를 한 문 할머니는 “친구들은 위안부였음을 밝힌 나를 비난했다”며 “이를 계기로 친구를 잃었고, 또 친구를 얻었다”고 했다. 위안부였던 사실이 알려지며 주변의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미얀마에서 지내던 당시 저금했던 돈을 일본 정부에서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하면서, 그리고 일본에 사죄와 배상 요구를 하면서 활동가들과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나 친구가 됐다. 문 할머니는 “위안부 일을 알면서도 친구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친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국내 최초로 위안부 피해를 증언한 후 공식적으로 등록된 한국인 ‘위안부’ 피해자는 239명이다. 30일 안점순 할머니가 별세했다. 생존자는 29명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 앞에 서 있는 그들을 돌아볼 마지막 때임은 분명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박훈 변호사 “곽도원과 10억 내기 철회하고 참회한다” 왜?

    박훈 변호사 “곽도원과 10억 내기 철회하고 참회한다” 왜?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 의혹을 두고 김비오 더불어민주당 부산 중·영도지역위원장과 온라인 설전 중 ‘1억 원 베팅’을 벌인 박훈 변호사가 자신의 행동이 경솔했다며 곽도원과 설전 중 10억 원을 운운한 것에 대해서도 사과했다.박훈 변호사는 30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려 “경솔했다. 돈 가지고 장난치는 것이 아니었다. 받을 마음도 줄 마음도 없었다. 그런 거액의 돈을 누구도 쉽게 마련할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변호사는 “반성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예상하고 했던 것은 아니다. 정봉주 변호인 측이 사진 780장을 가지고 있다면서 ‘무죄 밝혀졌다’는 보도 자료를 보다 순간적으로 욱했다”며 “을지병원 간 시간대를 알면 렉싱턴 호텔 간 시간을 금방 추론할 수가 있었기에 11시54분만 공개하지 말고 다 공개하라고 압박하기 위해 제안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나 상대방이나 잘못 판단을 했으면 공개사과 하고 용서를 빌면 사태가 종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대중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또는 짜증나는 표정으로 이런 돈 내기에 집착하고 있었다. 저의 잘못된 행위로 인한 것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참회한다. 앞으로 이런 행위를 다시는 하지 않겠다. 곽도원 배우의 저에 대한 1억 도발을 응징한다고 10억 운운했던 것 역시 같은 연장선상이었는데 철회하고 참회한다”며 “그러나 곽도원 배우와 임사라 씨는 이 사태에 대해 냉정하게 판단하고, 피해자들을 꽃뱀 취급한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김비오 님이 1000만 원을 어떤 곳에 기부하겠다며 동의를 구해오기에 바로 수락하기는 했지만 전혀 마음이 편치 않았다”며 “자신의 말에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었지만 저 때문에 생긴 일이기에 죄송할 따름이다. 이제 그것에 얽매이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뿐”이라고 전했다. 앞서 17일 박 변호사는 페이스북에서 정 전 의원 측을 향해 “당신들의 이야기가 맞는다면 바로 공개 사과하고 손해배상액으로 빚을 내서 ‘1억 원’을 정봉주 전 의원님께 지급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정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김 위원장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저는 정봉주의 결백을 입증할 수 있다는 것에 1억 원을 베팅한다”고 받아쳤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은 자신의 카드 결제 내역에서 사건 당일 렉싱턴 호텔 방문 사실이 확인되자 28일 기자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고 서울시장 출마를 철회했다. 이로 인해 난감한 상황에 처한 김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재차 글을 올려 “누구보다 고통을 받았을 A 씨와 박훈 변호사를 비롯한 미투 관련 피해자분들께도 사죄의 마음을 전한다”며 “우선 국가폭력 앞에 희생되고 상처받은 분들과 소외된 사회적 약자 등을 위해 1000만 원 기부부터 시작하겠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약속을 지켜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편 박훈 변호사는 임사라 대표가 이윤택 성폭력 피해 고소인단 중 4인으로부터 곽도원이 금품요구 및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글을 게재한 것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이후 곽도원은 SNS에 임 대표의 말이 사실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박훈 변호사에게 진실 여부를 두고 1억원 내기를 제안했다. 이에 박훈 변호사는 “더하기 10억원”이라고 대응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금호타이어 ‘운명의 날’ 엎친데 덮친 勞勞 갈등

    최종구 “해외매각이 유일 대안” 노조 “국내기업 인수 보장” 강경 일반직 “청산땐 노조에 손배소” 투자 밝힌 ‘S2C’ 실체 논란도 법정관리와 중국 더블스타로의 매각 갈림길에 선 금호타이어의 운명이 30일 결정된다. 이와 관련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9일 ‘해외 자본 유치가 유일한 대안’이라고 못 박았지만 금호타이어 노조는 해외매각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법정관리에 이은 청산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금호타이어) 노조가 해외 자본 유치와 자구계획에 동의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대안도 없다”며 “채권단은 물론이고 정부도 (노조 동의 외에는)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자율협약 종료일인 30일까지 노조가 해외매각 관련 자구안에 합의하지 않으면 법정관리를 신청할 수밖에 없다고 ‘최후통첩’을 한 상태다. 최 위원장은 “(금호타이어가) 법정관리로 가면 회사 재무나 경영 상태로 봐도 청산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타이어뱅크가 지난 27일 금호타이어 인수를 제안한 데 대해 “인수 제안이 얼마나 허황하고 비현실적인지는 누구나 다 알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타이어뱅크는 자금 조달 계획 등 구체적인 인수 제안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하지 않아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다. 또한 최근 금호타이어에 6억 달러를 투자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재무적투자자(FI) ‘S2C 케피탈’의 경우 매각을 반대하는 생산직 중심 노조 측 인사들이 투자자 행세를 한 게 아니냐는 ‘자작극’ 의혹도 제기됐다. 그러나 금호타이어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해외매각·법정관리를 반대하고, 국내 기업의 인수를 보장하라”며 30일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밝혔다. 산은이 제안한 전체 조합원 대상 해외매각 찬반 투표도 거부했다. 여기에 일반직 근로자들이 법정관리가 결정되면 노조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에 나설 것으로 보여 ‘노노(勞勞) 갈등’도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
  • 정부, 1987년 외교문서 1420권 공개

    미국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둔 1987년 한반도 긴장 완화를 위해 이른바 ‘시거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에 의해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연방제 중립국 제안’으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노렸지만 한·미는 남북 대화가 먼저라며 거부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 사건으로 6월 항쟁이 발생했고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와 같이 지각변동이 일었던 ‘격동의 시대’였다. 외교부는 29일 이런 내용을 담은 ‘30년 이상 경과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공개했다. 문서 대부분은 1987년에 작성됐다.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당시 미국이 직접 남북 및 북·미 대화를 견인하려 했다는 점이다. 1986년 11월 7일 방한한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는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시거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 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에게 북한 관리와 인사 교환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줄이고 남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실제 미국은 1987년 2월 말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 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개최, 5월 중 북·미 외교 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하며 북·미 직접 대화를 요구했다. 하지만 한국이 ‘남북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는 주장을 하면서 의미 있는 북·미 접촉은 없었다. 결국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면서 미국은 88년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북한은 이 시기에 미국에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 방안은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전달됐다. 이 방안에서 북측은 남북이 각각 10만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하자고 주장했다. 또 남북이 불가침 선언에 서명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남북의 군(軍)을 ‘민족군’으로 통합하자는 제의도 들어 있었다. 이 외 남북이 연방공화국을 창설하고 이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을 채택한 뒤 단일 국호로 유엔에 가입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남북 대화 재개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향한 선결 조건이라고 믿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서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지난달 9일 평창동계올림픽 특별사절단으로 방남했던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7년 12월 11~15일에 88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하기 위해 우간다 특사로 파견됐다. 그는 당시 외교부장으로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외교 문서에는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문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한국의 비협조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무세베니 대통령은 올림픽 참가 문제는 관계 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의 보조를 맞추어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참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회답을 회피하였다고 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1987년 1월 14일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 고문 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최장수 당시 외무장관은 5일 뒤인 19일 방한 중인 존 포터 미 의원에게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던 경찰이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박 열사에 대한 가혹 행위를 시인한 날이었다. 이 외 1986년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기물 파손을 이유로 1만 2034 달러(약 1280만원)를 변상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20여명이 연행됐는데 대사관 측이 카펫, 문, 소파 등의 교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외교부는 초기에는 전액 배상을 검토했지만 결국 ‘국가 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끼친 때로 한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날 공개된 외교 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원문 요약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 5000여권(340만여쪽)의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 전·현직 의원들 무죄 확정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발생한 이른바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의원들이 약 4년 만에 무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는 29일 공동감금 혐의로 기소된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 같은 당 강기정·김현 전 의원, 바른미래당 문병호 전 의원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고인들이 피해자로 하여금 오피스텔에서 나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거나 심히 곤란하게 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원심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 의원 등은 민주통합당 소속이던 2012년 12월 11일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선거 관련 불법 댓글을 올린다는 제보를 받고 국정원 여직원 김모씨의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을 찾아가 35시간 동안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 혐의로 2014년 6월 기소됐다. 1, 2심은 “피고인들에게 감금의 고의가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감금 상태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당시 오피스텔 주위엔 상당한 경찰력이 배치돼 있었고, 피해자도 경찰과 연락을 주고받은 점 등에 비춰 보면 안전하게 밖으로 나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선고 직후 김현 전 의원은 “더 늦기 전에 자유한국당, 국가정보원, 검찰은 사과해야 한다”며 “민사상 배상, 국가에 대한 배상도 요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정원 여직원 김씨는 대선 개입 혐의로 구속기소 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 등에 증인으로 나와 선거 개입 정황을 위증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26일 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정부, 1987년 외교문서 1420권 공개

    미국이 88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시거 구상’을 내놨지만 북한의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 사건으로 무산된 것으로 드러났다. 또 북한은 ‘연방제 중립국 제안’으로 북·미 간 직접 대화를 노렸지만 한·미는 남북 대화가 먼저라며 거부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사실은 외교부가 29일 격동의 1987년을 담은 외교 문서를 중심으로 30년 이상 경과한 외교문서 1420권(23만여쪽)을 공개하면서 확인됐다. 외교부가 공개한 문서에서 평창동계올림픽에 특별사절단으로 왔던 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88올림픽 보이콧을 요청하기 위해 우간다 특사로 파견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현재와 같이 지각변동이 일었던 시대였던 셈이다.  국내적으로는 외교 당국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에 대해 “우발적 사건”이라고 외빈에게 주장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북한은 1987년 12월 미·소 정상회담에 나선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통해 ‘한반도 완충지대 및 중립국 창설 방안’을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 대통령에게 제안했다. 남북이 각각 10만명 미만의 병력을 유지하고 핵무기를 포함한 모든 외국 군대를 철수하자는 게 주요 내용이다. 또 남북이 불가침 선언에 서명하고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자고 했다. 남북의 군(軍)을 ‘민족군’으로 통합하자는 제의도 들어 있었다. 북한은 남북 연방공화국을 창설하고 이 공화국이 중립국가 및 완충지대임을 선언하는 헌법을 채택한 뒤 단일 국호로 유엔에 가입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미국은 “한국 정부가 다뤄야 할 문제”라며 “남북한 대화 재개가 한반도의 평화공존을 향한 선결 조건이라고 믿는다”고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한국도 “거창하고 현실성이 없으며, 구체적인 내용에 있어 새로운 것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보다 앞선 1986년 11월 7일 방한했던 레이건 정부의 개스턴 시거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는 최광수 외무장관 등을 만나 소위 ‘시거 구상’을 제안했다. 북한 인사와의 접촉을 일절 금지한 미국의 외교 지침을 ‘제3국 공관 주최 행사에서 미국 관리에게 북한 관리와 인사 교환을 허용한다’는 내용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북한이 초조한 나머지 무력도발을 자행할 가능성을 줄이고 남북 대화를 이끌어 내려는 의도였다. 미국은 실제 1987년 2월 말 재외공관에 ‘대북한 관리 접촉에 관한 개정 지침’을 하달했다. 이에 북한은 북·미 양자회담 또는 남·북·미 3자회담, 5월 중 북·미 외교 당국자 회담 개최, 올림픽 남북 공동주최 등을 미국에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한국은 ‘남북한 당사자 간 회담만이 한반도 문제의 해결 방안’이라며 미국이 이에 응하지 않도록 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북한도 한국보다 미국과 직접 대화를 고수하며 출구는 마련되지 않았다. 결국 북한이 1987년 11월 29일 KAL 858기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자 미국은 88년 1월 ‘시거 구상’을 철회했다. 이 시기 김영남 상임위원장은 88올림픽 참가국에 대회 보이콧을 요청하는 특사로 나섰다. 당시 외교부장이던 그는 1987년 12월 11~15일 ‘김일성 특사’로 우간다를 방문해 요웨리 무세베니 대통령을 면담했다.  당시 외교 문서에는 “(김영남이) 서울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 문제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및 한국의 비협조로 실현이 어렵게 되었음을 설명하고 올림픽 보이콧을 종용했다고 보고했다. 이에 대해 무세베니 대통령은 올림픽 참가 문제는 관계부처 간 협의를 거쳐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의 보조를 맞추어 결정하겠다고 말하고 참가 여부에 대해 직접적인 회답을 회피하였다고 함”이라고 기술돼 있다.  1987년 1월 14일 국내에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이 벌어졌다. 최장수 당시 외무장관은 5일 뒤인 19일 방한 중인 존 포터 미 의원에게 “금번 학생 변사 사건은 무척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이번 사건은 하나의 고립된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이날은 당초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고 주장했던 경찰이 박 열사의 사망 원인이 ‘경부 압박에 의한 질식사’라며 박 열사에 대한 가혹 행위를 시인한 날이었다. 이 외 1986년 5월 21일 부산 미국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한국 정부에 기물 파손을 이유로 1만 2000여 달러를 변상하라고 요구한 사실도 파악됐다. 이 사건으로 대학생 20여명이 연행됐는데 대사관 측이 카펫, 문, 소파 등의 교체 비용을 청구한 것이다.  외교부는 초기에는 전액 배상을 검토했지만 결국 ‘국가 배상은 공무원의 직무상 불법행위 등으로 손해를 끼친 때로 한정된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봤다. 이날 공개된 외교 문서의 원문은 서울 서초구 외교사료관의 외교문서열람실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원문 요약 내용은 외교사료관 홈페이지(http://diplomaticarchives.mofa.go.kr)에서 검색할 수 있다. 외교부는 매년 자체 심사를 거쳐 1994년부터 25차에 걸쳐 총 2만 5000여권(340만여쪽)의 외교 문서를 공개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배우 이경영, 12년 전 폭행 사건 손해배상금 미지급 “처리된 줄 알았다”

    배우 이경영, 12년 전 폭행 사건 손해배상금 미지급 “처리된 줄 알았다”

    배우 이경영이 12년 전 폭행 사건과 관련 손해배상금을 아직까지 지급하지 않아 구설수에 올랐다.29일 한 매체는 배우 이경영(59)이 폭행 관련 손해배상금 450여만 원을 지급하지 않아 법원으로부터 재산명시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지난 15일 이경영에게 4월 30일까지 법원에 출석할 것을 요구, 재산 내역을 공개하라고 통보했다. 이경영은 지난 2006년 6월 경기도 일산의 한 식당에서 무명배우인 후배 A씨를 폭행, 모욕해 그해 9월 법원으로부터 1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A 씨는 법원 선고와 별개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이에 2010년 7월 서울지방법원은 이경영에게 “A 씨에 손해배상금 450여만 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경영은 이에 항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경영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 A 씨에게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았고, 이에 배상금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1200만 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이와 관련 A 씨 측은 “이경영이 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기분이 나쁘다며 배상금 지급을 미뤄왔고, 단 한 차례 사과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상황이 이렇자 법원은 이경영에게 재산명시명령을 내린 것. 재산명시명령이란 채무자가 금전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채권자 신청으로 법원이 채무자 본인의 재산 관계를 명시한 재산 목록을 제출하게 하고, 만일 제출하지 않거나 허위로 제출하면 형사처벌을 내리게 하는 절차다. 또 법원이 요구한대로 채무자 본인이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않은 경우에는 20일 이내 감치에 처해질 수 있다. 거짓 재산목록을 제출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형사처벌을 받는다. 이에 이경영 소속사 더피움 측은 이날 다수 매체를 통해 “오래된 일이라 어느 시점부터 인지하지 못한 것 같다”며 “최근 회사로 고소장이 왔다. 이경영과 고소인이 연락이 잘 안 됐던 것 같다. 450만 원이 1200만 원이 됐는데 알았다면 당연히 냈을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이어 소속사 측은 “오해가 있었던 것으로 마무리 된 사안”이라며 “변호사가 처리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처리가 안 된 것을 몰랐고, 지난 주 이 사실을 알고 처리하기로 했다. 이경영이 드라마 ‘미스티’ 포상 휴가 후 이를 직접 해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한편 이경영은 1987년 영화 ‘연산일기’로 데뷔, 30여 년 동안 배우 생활을 해왔다. 다수 드라마, 영화 등에 얼굴을 비친 그는 출연 영화만 100여 편이 넘을 만큼 다작했다. 이경영은 지난 24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미스티’에 출연, 26일 포상휴가 차 베트남 다낭으로 떠났다. 포상휴가는 29일까지로 예정돼 있다. 사진=영화 ‘강철비’ 연예팀 seoulen@seoul.co.kr
  • 김흥국, 성폭행 의혹 제기한 여성 맞고소 “진실 밝혀지길”

    김흥국, 성폭행 의혹 제기한 여성 맞고소 “진실 밝혀지길”

    가수 김흥국(59) 씨가 자신을 강간 등의 혐의로 고소한 30대 여성 A씨를 맞고소했다.김흥국의 소속사 들이대닷컴은 “A씨를 명예훼손 및 무고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고 26일 밝혔다. 김씨는 “연예계에서 30년 넘게 쌓아온 위치를 한순간에 잃을 위기에 처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 간의 오해에서 오는 고통은 더욱 힘들다. 팬들에게도 너무 죄송하다”면서 “수사기관의 모든 조사에 성실하게 임해서 하루빨리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A씨는 지난 14일 한 방송에 출연해 2016년 말 김씨에게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에는 김씨를 강간·준강간·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김씨는 이런 의혹을 강하게 부인하면서 지난 20일 A씨를 상대로 2억원 지급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김흥국 성폭행 고소사건’ 수사 착수…“피해여성 이번주 접촉”

    경찰, ‘김흥국 성폭행 고소사건’ 수사 착수…“피해여성 이번주 접촉”

    경찰이 가수 김흥국(59)의 30대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고소 사건을 수사한다.서울동부지검은 서울 광진경찰서에 해당 사건을 넘겨 수사하도록 지휘했다고 25일 밝혔다. 사건을 넘겨받은 경찰은 이르면 이번 주 고소인 조사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주부터 피해자 접촉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피해자 조사와 증거자료 분석을 마치는대로 김씨를 소환할 방침이다. 앞서 30대 여성 A씨는 지난 21일 김씨를 강간·준강간·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A씨는 지난 14일 한 방송에 출연해 2016년 말 김씨에게 두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A씨가 소송비용 1억 5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하는 등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자신에게 접근했다며 이런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김씨는 A씨를 상대로 2억원 지급을 청구하는 손해배상 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으며, 무고 혐의로 A씨를 맞고소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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