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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근로정신대 첫 배상 판결, 남은 징용피해 재판 서둘러야

    대법원 2부는 어제 양모(87)씨 등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일본의 전범 기업인 미쓰시비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1억~1억 5000만원씩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또 정모(95)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800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원심을 확정했다. 두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다고 해서 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이 소멸하지는 않는다는 지난달 30일 전원합의체의 ‘신일철주금의 1억원 배상’ 판례를 인용해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지연된 정의이지만 사필귀정이다. 이번 판결은 근로정신대 소송에 대한 최초의 확정판결이며 강제징용 배상의 경우 신일본제철에 이어 두 번째 확정판결이다. 두 판결은 일제강점기 법률관계 중 반인도적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는 우리 헌법 정신을 재확인하고 인간 존엄의 가치를 바로 세운 것으로 주권국가의 사법부에서 내린 당연한 판결이다. 근로정신대는 일제가 전범 기업 사업장 등에 강제로 노동자로 동원한 우리나라 여성들을 일컫는다. 그동안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일본군에게 성적 착취를 당한 위안부라는 오해를 받으며 가슴에 억눌린 한을 안고 살아야 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4~15세 때인 1944년 5~6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의 꼬임에 속아 나고야의 미쓰비시중공업 항공기 제작소로 끌려가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했다. 일본에 끌려가 이날 10여초의 판결 주문을 듣기까지 74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그사이 많은 피해자가 세상을 떠나 반인도적 불법행위 단죄를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다. 이번 판결로 한·일 간 외교 마찰은 불가피하다. 당장 일본 정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한·일 청구권협정에 분명히 반한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다. 정부는 실제 손해배상이 이뤄지도록 나서되 미래 한·일 관계가 악화되지 않도록 외교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경우 2000년 소 제기에서부터 확정판결까지 18년이나 걸렸다. 검찰은 재판 지연에 대한 진상 규명을 서두르고 각급 법원에서 심리 중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제기한 10여건의 손해배상 청구 재판도 이번 대법원 판결 취지대로 신속하게 해야 한다.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에서 드러나고 있듯이 양승태 사법부와 박근혜 정부가 짜고 재판을 지연시켰다는 의혹만으로도 사법부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주노총 끊임없는 혁신·반성 통해 국가경영 주체돼야”

    [논설위원의 사람 이슈 다보기] “민주노총 끊임없는 혁신·반성 통해 국가경영 주체돼야”

    “국민 여러분,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저는 정리해고 당한 노동자들, 농가부채만 늘어나는 농민들, 전세금 폭등에 시달리는 서민들의 고통과 억눌려 왔던 목소리를 대변하고자 여기 섰습니다.” 2002년 16대 대선,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던 대선의 경제 분야 TV 토론에서 이름조차 낯선 한 후보의 모두발언은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IMF 환란은 극복했지만, 정작 서민 중산층의 삶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 뼈아픈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원한 노동자이자 진보 정치인’ 권영길(77)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 겸 민노당 전 대표는 그해 대선 후보로 나서 95만표 남짓의 득표를 올리는 데 그쳤지만,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진보정치 정책과 노선을 성공적으로 알렸다. 이후 17·1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며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등과 함께 진보정당이 한국에서 자리잡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그는 2013년 정계 은퇴 뒤 암 투병을 딛고 최근 사단법인 ‘평화철도와 나아지는 살림살이’(이하 평화철도) 이사장으로 남북철도 연결 등 남북화해와 평화통일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진료차 경남 창원 자택에서 서울로 올라온 권 이사장을 지난 28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남북철도운동에 대해 설명해달라. -2012년 18대를 마지막으로 국회의원(경남 창원성산, 노회찬 전 의원이 같은 지역구에서 20대 의원으로 당선)직을 그만뒀다. 평등 평화 통일이라는 신념을 범국민운동으로 전개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하고 의원직을 마감했다. 그러나 2014년 6월 지방선거가 끝난 직후 자가면역체계 이상이 발견됐다. 합병증으로 설암 수술 등을 받고 아직 회복 단계다. 평화철도는 남북철도를 연결하는 실사구시적인 평화운동이다. 평화가 이뤄져야 통일이 이뤄지고, 통일이 돼야 영구평화 체계가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의 지원 등은 퍼주기 논란이 벌어진다. 하지만 철도를 깔자는 건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 위해 휴전선 철조망을 걷어내 평화의 철도를 우리 손으로 만들자는 취지다. 철도 건설에 쓰이는 아스팔트 침목은 1개 10만원이다. 여기에 한 사람이 1만원씩 내서 내 손으로 평화의 침목을 깔자는 것이다. 100만명이 참여하는 ‘침목깔기 1만원 기증운동’을 펼칠 계획이다. 평화철도 공동대표는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과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이 맡는다. 한반도 평화를 만드는 남북철도 연결에 노동계가 앞장선다는 것이다. 경남 창원의 현대로템은 열차를 만드는 회사다. ‘우리 손으로 제작한 열차가 북녘을 넘어 유럽까지 달린다’는 취지에 공감해 노조 조합원들이 모두 동참했다. 개신교와 불교, 가톨릭 등 종교계도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 →남북 경제교류 확대는 한계에 봉착한 우리 경제의 돌파구도 된다. -집이 있는 경남 창원은 조선과 기계공업이 주력 산업이다.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 중이라 지역 경기가 엉망이다. 얼마 전 목욕탕에 갔더니 어떤 분이 ‘문재인 정부는 통일 정책은 잘 하는데…’라며 얼버무리더라. 그래서 현재의 경제 난국은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겪고 있고, 산업 경쟁력 약화라는 구조적인 문제라 현 정부를 마냥 탓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한국 경제는 돌파구가 안 보인다. 수출의존형이라는 특성은 그대로인데 해외에서 물건이 안 팔리는 걸 어쩌겠나. 더구나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은 앞으로도 확전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더이상 중국의 부상을 용인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미국과 중국이라는 고래 싸움에 ‘새우등’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지속가능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고, 이는 남북 경제공동체가 될 것이다. 남북철도 연결 혜택의 8할은 우리 쪽에 돌아온다. 금강산이나 개성 등 각종 관광이나 물류 등 경제적 효과가 막대하다. 남북철도를 막는 건 대북제재가 아닌 대남제재가 되는 게 결국 이런 이유에서다. →어느 철도를 연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나. -경의선은 이미 연결돼 있고, 동해선 복원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평화철도는 경원선 복원에 집중할 생각이다. 경원선은 서울에서 백마고지까지 연결돼 있다. 북쪽은 평강 이북까지는 이어져 있다. 백마고지와 평강을 연결하면 된다. 거리도 27㎞ 정도로 비교적 짧다. 침목 설치 비용으로 50억원이면 충분하다. 북한의 원산 갈마관광단지 등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접근성이 갖춰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경원선 복원이 가장 바람직하다. 다만 남북 다 군사적 요충지를 지나야 한다. 갈마관광단지를 살리는, 경제부국을 만들기 위한 지름길이라고 북측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평화의 길을 앞당기는 것이다. 몸이 좀 추슬러지면 북한도 방문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불참 등을 놓고 논란이 많다. -경사노위는 사회적 대화를 하기 위해 마련된 기구다. 그러나 사회적 대화의 목표와 방향 설정 등이 제대로 되지 않은 채 출범한 게 문제다. 최저임금이나 탄력근로제 등 단편적인 의제에만 매달리니 정상적인 논의가 되기 어렵다. 독일, 네덜란드 등은 우리보다 앞서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복지제도 확충, 무상교육 무상보육 등 사회보장 정책을 합의했다. 이들 국가에서는 노조가 국가 권력과 함께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러나 우리는 ‘노조는 그런 걸 하는 조직이 아니다’라고 여긴다. 정부도 사회도 심지어 노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게 근본적인 문제다. 예를 들어 무상보육에 대한 합의가 없기 때문에 아동수당만 하더라도 국회에서 예산 싸움만 하고, 그러니 정치권이 신뢰를 얻지 못한다. 우리는 경제 규모 10위권의 국가이지만 교육이나 의료 등은 60위권 국가들만도 못하다. 중산층 서민들이 내는 세금이 제대로 쓰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합리적인 재원의 배분까지도 사회적 대화에서 논의가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사회적 대화의 틀을 만들고 풀어가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는 아직 절반 이상 남아 있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귀족노조를 대변한다는 비판도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0년 내란음모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호주와 영국의 노조들이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는 파업을 결의했다. 그러나 호주와 영국에서는 ‘당연히 노조가 할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노조는 자국은 물론 외국의 민주화와 인권 상황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민주노총이 출범 당시부터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 및 인권 신장 등 사회개혁 투쟁을 내걸었던 것도 그런 취지에서였다. 언론노조나 사무금융노조, 금속노조 등 모든 산별노조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개별 노조들이 어느 순간 단위노조 투쟁에 주력하고, 그게 중점적으로 부각된 측면이 있다. 한 대기업 노조 간부가 ‘수십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조합원 자녀 대학 학자금 지원을 따낸 것이다. 개별 회사의 학자금 재원들을 모아 우리나라 전체 대학생의 개별 학자금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민주노총이 움직였어야 했다’고 말하더라. 민주노총 역시 개별 사안에 몰두하다 보니 사회적 역할은 묻혀버렸다. 탄력근로제만 해도 (대기업 중심인) 민주노총 조합원이 아닌 중소기업의 비조합원 노동자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노조가 없는 전체 일하는 사람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조가 탄력근로제를 반대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만 하더라도 일부 조합원의 불만을 설득해가면서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이런 과정은 생략되고 민주노총이 조직 이기주의로 비춰지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언론 탓을 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혁신과 자기 반성을 통해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단순히 정부에 반대만 하는 게 아닌 국가 경영의 주체가 돼야 한다. 자기 희생을 통한 대안을 공격적으로 제시해야 민주노총도 살고 대한민국도 살 수 있다. →현 정부와도 노동계가 각을 세우는 분위기인데. -과거에 차령산맥 이북의 노동 관련 손해배상 사건은 김선수 변호사(현 대법관)가, 이남은 문재인 변호사가 가장 많이 맡았다. 대한민국에서 문 대통령만큼 노동자와 함께 싸웠던 이가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노조에 대한 개념 정의가 부족한 것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톨릭 신자인 문 대통령에게 “멈추지 말고, 두려워 말라”고 당부했다.(권 이사장도 가톨릭 신자다) 그러나 촛불정신에 따라 국가를 건설하겠다는 대국민 약속이 분기점에 서 있는 듯하다. 촛불의 주체는 서민과 노동자 등 지금껏 차별을 받아왔던 사람들이고, 이들을 위한 정치가 현 정부의 역사적 소임이다. 소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정권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 우리나라에서 지금까지 대과 없이 임기를 마친 대통령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통해 당선된 문 대통령은 그래서는 안 된다. 지지율에 연연하는 대신 앞날의 국가 발전에 기여하는 정책을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정치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일까. -진보정당은 철저히 민생정치에 주력해야 한다. 정의당 등도 민생정치는 무엇인가, 국가는 무엇인가 등을 종합적으로 통찰해 서민 중산층의 희망이 돼야 한다. ‘소득의 평준화’라는 경제 민주화는 사회적으로는 노조가 분위기를 형성하고, 진보정당이 국회에서 현실화해야 한다. 그게 진보정당의 갈 길이고 한국 정치 개혁의 길이다. ‘민주노총과 민노당은 내 영혼’이지만, 지금은 어느 당 소속도 아니다. 진보진영이 다시 통합돼야 한다는 게 변함없는 신념이다. 새롭게 하나가 된 진보정당이 출범하면 다시 당적을 갖겠다. douzirl@seoul.co.kr ●권영길은 누구 1941년 일본에서 태어났다. 경남 산청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부산으로 이주해 경남중과 경남고를 거쳐 서울대 농과대학 농잠학과를 졸업했다. 1971년 서울신문 기자로 입사해 파리특파원 등을 지냈다. 부친이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는 가정사가 그를 진보운동으로 이끌었다. 안락한 언론인의 자리를 박차고 1988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초대위원장을 맡은 데 이어 1995년 출범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이듬해 김영삼 정부 시절 ‘노동법 날치기 사건’에 맞서 민주노총 위원장으로 총파업을 이끌어 법안 철회를 이끌어냈다. 이후 진보 정치인으로 살았다. 민주노동당의 전신인 국민승리 21에 입당해 1997년 15대 대선 후보에 출마하고, 1999년 민노당 창당 뒤 2002년 16대 대선 후보로 나섰다. 민노당 당대표이자 경남 창원에서 2004년 17대, 2008년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고용·노동 전문가인 권혜원 동덕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딸,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사위다.
  • ‘정년·보험료 좌우’ 육체노동 가능나이, 60세→65세 될까

    ‘정년·보험료 좌우’ 육체노동 가능나이, 60세→65세 될까

    “55세→60세로 상향 판결 나온 지 29년 평균수명 급증 등 달라진 현실 반영해야 취약계층 외 전문직 등 정년은 이미 높아” “건강수명·月평균 노동일은 오히려 줄어 생산성에서도 차이… 과도한 배상 우려” 손보협 “車 보험료 1%이상 인상 요인”보험료·배상금 지급의 법적 기준으로 삼는 육체노동자 정년(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조정하는 문제를 두고 대법원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이 열렸다. 198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가동연한을 55세에서 60세로 상향한 지 29년 만에 변화 논의가 본격화됐다. 대법원이 가동연한을 변화시키는 판례를 세운다면, 기존과 다른 하급심 판결들이 나올 뿐 아니라 근로자 정년·각종 보험료 산정률 변화와 같은 사회적 변화가 뒤따를 전망이다. 29일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공개 변론엔 2개의 사건이 회부됐다. 수영장에서 사망한 4세 아이의 유가족들이 아이의 가동연한을 60세에 맞춰 보험료를 지급한 보험사를 상대로 “가동연한을 65세까지 계산해 보험료를 지급하라”고 상고했다. 또 난간에서 추락해 49세에 사망한 전기기사 유족들에게 65세까지 일했을 것을 가정해 배상금을 산정한 원심에 불복해 지방자치단체가 상고한 사건도 심리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가동연한을 60세로 정한 판례가 성립된 뒤 29년 동안 평균 수명·경제수준·고용조건 변화가 있었고, 하급심에서 가동연한을 65세로 보는 판결이 여러 건 선고돼 가동연한 쟁점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심리한다”고 설명했다. 법정에 출석한 원·피고 측 변호사와 인구·보험·연금 관련 전문가들은 ▲실제 고령 근로가 늘고 60세 이후 수입 변화가 있는지 ▲65세까지 가동연한을 늘리는 논의와 더불어 가동연한 개시 시점(19세)을 바꾸거나 가동일수(월평균 일하는 날)를 재계산해야 하는지 ▲가동연한 판례 변경이 정년연장·연금지급 시기 등을 변경시킬 사회적 압박이 될지 등을 논쟁했다. 법정에선 모두 평균수명이 2016년 기준 82.4세로 최근 30년간 급증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지만 건강수명(평균수명-유병기간)이 길어졌는지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가동연한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김재용 변호사는 통계청 자료를 인용, “건강수명은 2012년 65.7세에서 2016년 64.9세로 줄었다”며 고령근로의 생산성과 보상이 60세 미만일 때 근로와 구별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참고인으로 출석한 이상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사는 “고혈압처럼 약을 먹으면 통제되는 만성질환도 유병 기간에 산입하는 게 통계청 건강수명 통계”라면서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으로 한국인의 건강기대수명은 73.2세로 65세를 월등히 뛰어넘었다”고 지적했다. 이동원 대법관은 “가동일수가 과거보다 줄었단 지적이 있다”며 가동일수를 그대로 둔 채 가동연한만 높이면 과다한 배상이 이뤄지는 게 아니냐며 의문을 표시했다. 이에 가동연한 65세 상향을 주장하는 노희범 변호사는 “그런 문제가 있다고 해도 가동일수는 가동연한과 별도로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가동연한 판례 변경 뒤 사회적 파급 예측에선 양측 입장 차가 뚜렷했다. 손해보험협회는 “(가동연한이 높아지면) 최소 1.2%(1250억원)의 자동차보험료 인상 요인이 발생한다”고 전망했다. 현행유지를 주장하는 김 변호사는 “1989년 판례 변경 뒤 7년 정도 지나 자동차보험료 정관의 정년(가동연한) 기준이 60세로 바뀌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가동연한 상향을 주장하는 노 변호사는 “이 사건에서 다루는 육체노동자는 사회적 취약계층으로 이들을 제외한 전문직·자영업자의 정년은 이미 높게 정해졌다”면서 “오히려 정책법원인 대법원이 육체노동자 가동연한을 더 빨리 상향조정하지 않은 게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한·일 ‘대사 초치’ 맞대응… 갈등 고조

    고노 외무상 “韓 조치 없으면 대책 강구”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 결과를 예상했던 일본 정부는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한듯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 초치를 비롯, 주요 관계자들이 릴레이식의 비난 행진을 이어 갔다. 한국 정부도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초치로 맞대응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29일 판결이 나오자 담화를 통해 “이번 판결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구축해 온 양국 우호 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한국의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으면 일본은 일본기업의 정당한 경제활동 보호라는 관점에서 국제재판 및 대응조치를 포함해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의연하게 대책을 강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브리핑에서 “한국은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 시정 등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 외교부는 이날 나가미네 일본대사를 청사로 불러 강제징용 판결 등에 대한 일본 측의 과격한 발언에 대해 항의의 뜻을 전했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신일철주금 배상 판결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한국 정부에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서 이번 미쓰비시 판결과 관련해서는 좀 더 강경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기류가 일본 정부 내에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강제징용 판결에 관한 한 보수·진보 할 것 없이 한국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 온 일본 언론도 한국 대법원 판결을 신속하게 보도하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NHK는 “지난달 신일철주금 배상 판결에 대해 일본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시정을 요구하는 가운데 똑같은 내용의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한·일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서울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강제징용 남은 12건 속도 붙어도 ‘지연된 정의’… 日배상 안갯속

    대법원 한달새 두번째 日기업 배상 판결 같은날 항소심도 신일철주금 책임 인정 하급심 속도에도 피해자들 고인 또는 고령 미쓰비시 “잘못된 판결 극히 유감” 반발 박근혜 정부 ‘재판 지연’ 회복 아직 먼 길 1944년 당시 13~15살에 불과한 소녀들은 국민학교 일본인 교장으로부터 “여학교에 다니며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여자 근로정신대에 지원해 모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74년 만에 허리가 다 굽어서야 일본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비슷한 시기 강제징용돼 청춘을 잃은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서 패소한 뒤 2000년 국내 법원에 강제동원 관련 첫 소송을 제기했다. 확정 판결을 받는 데 19년이 걸렸다. 피해자 6명이 시작한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한 강제징용 소송의 최종 판결문은 유일한 생존자인 정창희(95)씨만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됐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과 똑같은 대법원 판결 2건이 29일 나오면서 다른 강제징용 소송도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미 많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생존자들도 대부분 구순을 넘겨 건강이 많이 악화된 상태다. 패소 판결을 받은 미쓰비시중공업 등 전범기업들은 배상은커녕 “잘못한 판결”이라고 한국 대법원의 판단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눈치를 살피느라 재판을 연기해 발생한 ‘지연된 정의’가 회복되려면 아직 먼 길이 남은 셈이다. 이날 원고 승소가 확정된 미쓰비시 강제징용 사건은 지난달 30일 선고된 신일철주금(신일본제철) 강제징용 사건과 더불어 박근혜 정부가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일부러 재판을 지연시킨 대표 사건이다. 정씨와 지금은 고인이 된 이병목(1923년생)·김돈영(1923년생)·정상화(1923년생)·이근목(1926년생)씨와 당시 이미 고인이었던 박창환(1923년생)씨는 일본 법원에서 패소하자 2000년 부산지법에 처음 소송을 냈다. 1심에서 패소한 뒤 김돈영씨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이 항소했고, 다시 2008년 부산고법에서 패소해 상고했다. 2012년 5월 24일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가 “불법 식민지배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 법원의 판결은 국내 효력을 갖지 않는다”며 미쓰비시·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었을 때는 비로소 68년 만에 한이 풀리게 됐다고 기뻐했다. 일본 기업의 재상고로 시작된 대법원 재판은 2013년 9월 시작됐지만, 5년 2개월이 지나서야 결론이 났다. 재판이 장기화한 데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행정부와의 교감 아래 재판을 지연시키려 했다는 의혹이 있다. 그 사이 원고 5명 중 4명이 사망했다. 2012년 대법원의 판단을 지켜본 뒤 소송을 내 1·2심에서 잇달아 승소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도 대법원 최종 판단을 받기까지 3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법정에 직접 나온 사람은 휠체어에 몸을 실은 김성주(89) 할머니뿐이었다. 양금덕(87)·박해옥(88)·이동련(88) 할머니는 병원에 있다. 하급심에서는 12건의 강제동원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2부(부장 김한성)도 강제징용 피해자 김모(사망)씨의 유족 3명이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 항소심에서 신일철주금의 항소를 기각하고 1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급심 판결이 속도감 있게 이어져도 일본이 배상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이날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은 대법원 선고 결과에 대해 “극히 유감”이라면서 “일본 정부와 연락을 취하며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겠다”며 판결에 불복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정신대 손가락질에 숨어 산 74년” 89세 김성주 할머니, 통한의 눈물

    “정신대 손가락질에 숨어 산 74년” 89세 김성주 할머니, 통한의 눈물

    변호인 “한국서 재판만 19년… 만시지탄”“정말 고생을 했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아직도 (정신대에 끌려갔던)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하고 있고, 그러다가 죽은 사람도 많습니다. 그래도 여기 계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29일 대법원이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의 배상 청구권을 처음 인정한 직후 소송 당사자로 기자회견에 나온 김성주(89) 할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거듭 “감사합니다”는 말을 반복했다. 다른 한 명의 소송 당사자였던 양금덕(87) 할머니는 병원에 입원해 회견장에 나오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떨리는 목소리로 74년 전을 되짚었다.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은 1944년 5월 ‘공부도 시켜주고 돈도 벌게 해주고 맛있는 밥도 주겠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을 듣고 일본 나고야로 간 뒤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김 할머니는 “남동생이 죽었다는 전보를 받았는데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던 게 가장 한이 된다”면서 계속해서 눈물을 닦았다. 광복 후 돌아온 모국 땅에서도 수십년을 숨어 살아야 했다.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로 남편이 거리를 두고 맞기도 많이 맞았다”는 김 할머니는 “(정신대라고) 손가락질 받지 않으려고 모자 쓰고 숨어 다녔는데도 뒤에서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무서웠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이날 대법원의 주문은 ‘상고를 기각한다. 소송 비용은 피고가 부담한다’였다. 기자회견 사회자로 나선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상임대표는 “단 10초도 되지 않는 그 말을 듣기 위해 74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탄했다. 강제징용·근로정신대 소송대리를 맡아온 이상갑 변호사도 ‘만시지탄’이라는 한마디로 이날 선고를 평가했다. 이 변호사는 “일본 현지 재판을 제외하고도 우리나라 법원에서만 19년이 걸렸는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는 게 법학도들이 기본으로 듣는 말”이라면서 “대법원 재판부는 지금까지 소송이 지연된 점에 대해서 별도로 입장을 밝혔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근로정신대 恨도 풀렸다… 바로 선 ‘정의’

    근로정신대 恨도 풀렸다… 바로 선 ‘정의’

    강제징용 5명도 8000만원씩 지급 확정 日 “매우 유감… 못 받아들여” 격앙대법원이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에 이어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에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법원에서의 패소 판결은 국내에서 효력이 없고, 한·일 청구권협정이 있었다고 해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는다고 판결한 것을 그대로 따른 결론이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는 29일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돼 일본 나고야 항공기제작소 등에서 임금 한 푼 없이 노동을 강요당한 양금덕(87)씨 등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들에게 1억~1억 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승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근로정신대에 대해 일본 기업에 배상책임을 묻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다. 10년간 이어진 일본에서의 법정 다툼에서 지고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낸 지 6년 만에 일본 기업에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이날 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본 김성주(89) 할머니는 “평생 한을 품고 살았다”면서 “뼈가 튀어나온 채로 살고 있다. 그렇게 한이 많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또 이날 강제징용으로 미쓰비시중공업의 히로시마 기계제작소와 조선소 등에서 일한 정창희(95)씨와 이미 사망한 피해자 4명의 유족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에서도 피해자 5명에게 800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파기환송 후 원심을 확정했다. 일본 법원에서 패소한 정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2000년 국내 법원에서 소송을 시작했지만 1·2심에서 잇따라 패소했다. 2012년 5월 24일 당시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에서 신일철주금 피해자들과 함께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며 전향적인 판단을 했지만, 박근혜 정부의 ‘재판 지연’으로 처음 소송이 시작된 지 18년 만에 확정 판결을 받았다. 한 달 만에 또다시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더욱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담화를 내고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고 일본 기업에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으로 매우 유감이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본 외무성은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청사로 초치해 “한국 정부는 국제법 위반 상태를 즉각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서울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미쓰비시 “한국 대법원의 일본 패소 판결, 극히 유감”

    미쓰비시 “한국 대법원의 일본 패소 판결, 극히 유감”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이 미쓰비시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에 패소한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이 29일 판결에 대해 “극히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이날 자사 홈페이지에 ‘오늘의 한국 대법원 판결(2건)에 대해’라는 제목의 입장문에서 “한일 양국 사이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서 완전하고 최종적으로 해결돼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일본 정부와 연락을 취하면서 적절하게 대응해 가겠다”며 사실상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을 방침을 밝혔다. 지난달 30일 한국 대법원은 일본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일본 정부는 한국에서 비슷한 소송을 당한 자국 회사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었다. 일본 정부는 이들 회사에게 배상과 화해에 응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패소한 미쓰비시중공업도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나카니시 히로아키 게이단렌(일본의 대표적 재계 단체) 회장은 이날 서울에서 열린 ‘유엔 SDG와 일본의 소사이어티 5.0 특별대담’에 참석해 “일본 측에서 보면 놀랄 내용인 만큼 악영향이 나오지 않도록 부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 대사도 “최근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있어서 관계가 (다시) 곤란해진 상황”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한국 대법원은 이날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각각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모두 원고 승소를 확정 짓는 판결을 내렸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일본 외무상, 미쓰비시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매우 유감…수용 불가”

    일본 외무상, 미쓰비시 강제동원 배상 판결에 “매우 유감…수용 불가”

    우리 대법원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이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을 강제동원한 데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에 대해 일본 외무상이 유감을 표하며 “수용 불가”라고 말했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29일 우리 대법원의 판결 뒤 발표한 담화를 통해 “매우 유감이다.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이번 판결은 한일 청구권협정에 명백히 반하고, 일본 기업에 대해 한층 부당한 불이익을 주는 것이자,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구축해 온 양국의 우호 협력 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부터 뒤집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노 외무상은 “일본은 한국에 일본의 이런 입장을 재차 전달하고 한국이 즉각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해, 적절한 조치를 강구하길 거듭 강력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즉각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으면 일본은 일본 기업의 정당한 경제 활동 보호라는 관점에서, 계속해서 국제 재판 및 대응 조치를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두고 의연하게 대응을 강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우리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9일 정모(95) 할아버지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이수훈 주일 한국대사를 불러 이번 판결에 항의할 예정으로 전해졌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대법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에 배상하라” 최종결론

    대법 “미쓰비시, 강제징용 피해자에 배상하라” 최종결론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도 대법원이 미쓰비시의 책임을 인정했다. 이는 한 차례 대법원 파기 환송을 거쳐 2013년 대법원에 재상고된 후 5년 만에 내는 최종결론이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29일 박모(75)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5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를 확정했다. 박씨 등은 1944년 9∼10월 강제로 징용돼 일본 히로시마 구 미쓰비시중공업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서 일했다. 이로 인한 손해배상금과 받지 못한 임금을 합친 1억 1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지난 1·2심은 “불법행위가 있는 날로부터는 물론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부터 기산(특정 시점을 기준으로 계산)하더라도 소송 청구가 그로부터 이미 10년이 경과돼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청구권이 소멸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했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신의 성실의 원칙(상대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면 안 된다는 원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며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다시 열린 2심에서는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봤다. 또 1965년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더이상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거나 미쓰비시중공업이 ‘구 미쓰비시중공업’과 다른 기업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은 피해자에게 각각 8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 같은 2심 판단이 옳다고 보고 이날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곽혜진 기자 demian@seoul.co.kr
  • 대법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 오늘 잇따라 선고

    대법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배소송 오늘 잇따라 선고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된 피해자들이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미쓰비시)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의 상고심 선고가 29일 잇따라 열린다.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낸 손배소송 재상고심에서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해 이날 상고심에서도 미쓰비시에 배상 책임을 묻는 선고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는 이날 오전 박모(72)씨 등 강제징용 피해자 6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을 연다. 1944년 9∼10월 강제징용돼 일본 히로시마 구(舊) 미쓰비시 기계제작소와 조선소에서 일한 피해자들은 불법행위인 강제징용에 따른 손해배상금, 그리고 지급받지 못한 임금을 합친 1억 100만원을 각각 지급하라며 미쓰비시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1·2심은 “불법행위가 있는 날로부터는 물론 일본과의 국교가 정상화된 1965년부터 기산하더라도 소송청구가 그로부터 이미 10년이 경과돼 손해배상청구권이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현행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의 소멸시효는 범죄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범죄 발생일로부터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2년 5월 “청구권이 시효 완성으로 소멸했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해 허용되지 않는다”면서 2심 재판을 다시 하라고 결정했다. 다시 열린 2심은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손해배상청구권이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더이상 손해배상 청구권을 행사할 수 없다거나, 미쓰비시가 구 미쓰비시와 다른 기업이라는 미쓰비시 측 주장도 모두 받아들이지 않고 피해자에게 각각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단했다. 이 사건 선고 직후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는 양모(87)씨 근로정신대 피해자 4명과 유족 1명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을 선고한다. 피해자들은 아시아·태평양 전쟁 말기인 1944년 5월 일본인 교장의 회유로 미쓰비시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로 동원돼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중노동을 했다. 피해자들은 1999년 3월 1일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일본 법원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2008년 11월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패소 판결이 확정됐다. 이후 2012년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고, 1심은 피해자 4명에게 각각 1억 5000만원씩, 유족 1명에게 8000만원 등 총 6억 8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2심도 2015년 6월 “일본 정부의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강제동원 정책에 편승해 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로 13~14세 소녀들을 군수공장에 배치해 열악한 환경 속에 위험한 업무를 하게 한 것은 반인도적 불법행위”라며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배상액을 일부 조정해 피해자 3명에게 각각 1억 2000만원씩, 다른 피해자 1명에게 1억원, 유족에게 1억 208만원 등 총 5억 6208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단독]백화점 진열 재봉틀에 다친 아이…법원 “부모도 30% 책임”

    엄마와 함께 백화점에 간 아이가 의류매장에 진열된 재봉틀 바늘에 찔려 손가락을 다쳤다. 부모는 바늘을 제거하지 않은 재봉틀을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둔 매장에 잘못을 따졌고, 매장 측은 아이가 장난을 못 치게 보호하지 않은 부모 책임도 있다며 맞섰다. 청구 금액이 400만원대의 소액 사건이었던 재판은 양측의 치열한 다툼으로 1년 넘게 진행됐다. 결국 법원은 매장과 부모의 책임을 7대3으로 구분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1003단독 성기문 원로법관은 8세인 A군과 부모가 의류업체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24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지난해 2월 초등학교 1학년이던 A군은 어머니와 할머니 등과 함께 서울의 한 백화점에 있는 여성복 매장을 찾았다. A군은 매장 앞 바닥에 놓인 재봉틀을 만지다 재봉틀 바늘에 오른쪽 검지손가락 첫 마디가 관통되는 사고를 당했다. A군의 부모는 아이가 2주간 치료를 받은 뒤에도 뾰족한 물건을 보면 겁을 내는 등 정신적 트라우마에도 시달렸다며 치료비와 위자료를 요구했다. A군의 부모는 재판 과정에서 의류업체가 사고를 막기 위한 방호조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구급차가 오는 동안 매장 직원은 다른 손님을 응대했고 업체로부터 진심 어린 사과도 받지 못했다”며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업체 측은 “매장을 운영하는 6~7년간 한 번도 이런 사고가 없었다”면서 “사람 손이 쉽게 닿지 않게 마네킹 뒤로 전시했는데 A군이 굳이 옷을 비집고 들어가 재봉틀을 만지고 장난을 쳤다”고 반박했다. 골동품시장에서 산 고가의 재봉틀이라 사람들이 만져서 고장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는 것이다. 성 원로법관은 “피고가 매장 관리인의 과실에 대해 사용자로서 책임이 있다”면서도 “A군의 과실과 부모들의 보호감독 의무를 게을리한 과실도 참작했다”며 업체 책임을 70%로 제한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가입하세요” 뻔질나더니…‘먹통 인터넷’ 피해 조사는 불통

    “가입하세요” 뻔질나더니…‘먹통 인터넷’ 피해 조사는 불통

    소상공인연합회 직접 피해 신고 접수나서 “주말 매출 40% 줄어” “PC방 5일 문 닫아” 콜센터 마비에 지역 프랜차이즈도 피해 문의 전화 빗발… “전국적 해지 운동 검토”“인터넷 결합상품을 홍보할 때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연락하더니 화재 피해 관련해서는 전화 한 통 없습니다.”지난 24일 서울 서대문구 KT 아현지사 지하 통신구 화재로 인한 ‘통신 불통’ 사태로 영업에 타격을 입은 자영업자들의 피해 규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전화 주문, 카드 결제가 막히면서 매출이 반토막 나거나 하루 50만~150만원가량 피해를 입었다고 추정했다. 그런데도 피해 보상은커녕 KT 측으로부터 위로 한마디 전해 듣지 못했다며 집단행동에 나설 뜻을 내비쳤다. 28일 소상공인연합회에 따르면 전날 낮 12시부터 이날 오후 6시까지 ‘KT 불통 사태 피해 소상공인 신고’ 창구를 통해 접수된 피해 건수는 16건이었다. 외식업이 11곳으로 가장 많았고 미용실 2곳, 편의점 2곳, PC방 1곳 순이었다. 피해 신고 문의 전화는 60통이었다. 마포구에서 맥줏집을 운영하는 A씨는 “카드 결제가 안 돼 화재 당일 매출이 131만 5000원으로 토요일 3개월 평균 매출(238만원) 대비 약 45% 줄었다”고 신고했다. 서대문구에서 한방통닭집을 운영하는 B씨는 “주문 전화를 못 받고 카드 결제도 안 돼 150만원가량 손해를 봤다”고 밝혔다. 같은 지역의 한 PC방 주인은 “5일째 문을 닫고 있다”며 “하루 100만원씩 손해를 보는 중”이라고 했다. 이틀 동안 전화와 메일을 통해서만 피해 현황을 접수했던 연합회는 29일부터는 화재 현장에서 직접 신청을 받기로 했다. 현장 접수가 시작되면 더 많은 인근 자영업자들이 피해 신고를 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회가 서대문구와 마포구 일대에서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영업자들의 매출액은 평소보다 40%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이재광 전국가맹점주협의회 공동의장은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열린 ‘KT 불통 사태 피해보상 촉구 기자회견’에서 “자영업자·중소상인에게 주말 장사는 매우 중요한데 카드 결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손님은 물론 상인들도 큰 불편을 겪었다”며 “배달 주문이 많은 업종은 주말 오후 시간을 통째로 날리면서 매출이 3분의1 가까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피해 지역에 콜센터를 둔 일부 프랜차이즈 업체의 피해 규모는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한 피자 업체 가맹점주협의회 관계자는 “전국 각지의 주문이 서울 콜센터로 들어가는데 통신이 마비되면서 전국 280개 매장에서 평균 100만원씩 손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손해배상 소송을 해도 이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게 그간의 판례이지만 이번 사태를 엄중하게 본다”면서 “KT가 성의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으면 전국 소송위원들이 나서서 KT 해지 연대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KT 관계자는 “소상공인이 입은 영업 손실에 대한 보상에 대해서는 관련 법률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아동 성폭력 손배소 소멸시효 폐지하라”

    법무부 ‘피해자 만 22세’로 유예 추진 “보통 25~30세 소송 결심… 시효 없애야” “가해자가 유죄 판결을 받았는데도 민사소송을 하려니 ‘꽃뱀’이라는 시선을 받을까 두려웠습니다. 소멸시효라는 벽 앞에서 1000만원대의 패소 비용까지 계산하고서야 결정을 내렸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테니스부 코치에게 성폭력을 당했고 17년 만에 가해자에게 형사처벌을 받게 한 뒤 다시 민사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김은희(27)씨는 결국 눈물을 쏟았다. 28일 한국여성의전화 등의 주최로 열린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에서다. 이날 전문가들은 아동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에게 피해를 배상받기 위한 과정에서 가장 먼저 부딪히는 벽으로 ‘소멸시효’를 꼽았다. 2001~2002년 성폭력을 당한 김씨는 어렵게 당시 상황들을 입증했고, 가해자는 1심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험난한 과정이었지만 그나마 아동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가 폐지돼 가능했다. 그런데 현행 민법상 손배 청구권의 소멸시효인 ‘손해 및 가해를 안 날로부터 3년,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10년’은 이미 지났다. 김씨는 피해를 입은 지 10년여 만에 가해자와 다시 마주친 것을 계기로 뒤늦게 자신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겪고 있다는 진단을 받았고, 이를 소멸시효의 기산(시작)점으로 삼아 소송을 냈다. 박윤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성폭력 피해자의 후유증은 일반 범죄와 달리 정신적 피해가 크고 2차 피해의 후유증도 크다”면서 “후유증을 발견한 때로 기산점을 새로 적용하고, 시효를 연장하는 근거로 신체 피해 외에 정신적 피해도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재희 변호사는 “법무부가 ‘성년 직후 3년’으로 소멸시효를 유예하는 개정안을 냈지만, 아동 성폭력 피해자가 성인이 돼 소송까지 결심하는 것은 대학 졸업 후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한 25~30세 사이가 가장 많다”며 만 22세까지의 유예기간이 너무 짧다고 지적했다. 국민대 전해정 교수도 “아동기 성적 학대에 대해선 손배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피해배상 요구하면 “의도 있냐” 의심받는 성폭력 피해자들

    피해배상 요구하면 “의도 있냐” 의심받는 성폭력 피해자들

    ‘피해자다움’, ‘돈이 목적’ 프레임 씌우는 사회소멸시효·배상책정은 성폭력 특수성 반영 못해“소멸되지 않는 성폭력 고통엔 시효도 없어야”피해자는 20년 전 초등학생 때 학교 테니스부 코치 A씨로부터 수차례 성폭력을 당했다. 끔찍한 기억을 지우려고 오랫동안 애썼지만, 최근 자신의 피해 경험과 유사한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그때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피해자는 지난 3월 A씨를 고소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갔지만 “공소시효가 지나 처벌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한 달 뒤 피해자는 A씨가 여전히 학교에 재직 중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관할 교육청에 신고했고, A씨는 곧바로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A씨는 학교를 떠나더니 자신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부인했다. 관리 책임이 있는 학교는 A씨가 이미 교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했다. 오래 전 일이라 민사소송 과정도 쉽지 않다. 피해자는 “성폭행은 당사자가 스스로 용기내서 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알 수 없는 범죄”라면서 울먹였다. “당시 성폭행과 구타를 당한 트라우마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판정까지 받았지만, 우리나라는 성범죄에 대해 터무니없이 짧은 소멸시효를 적용하고 있어 죄를 물을 수가 없습니다. 저 같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일이에요.” 범죄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는 피해자의 당연한 법적 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들은 사회적 편견과 법의 한계 등 현실의 여러 장벽들로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와 국회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 주최로 28일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에서 열린 ‘성폭력 피해자, 민사소송을 제기하다’ 토론회에서는 무엇이 성폭력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 어렵게 만드는지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피해자를 끊임없이 의심하는 문화가 피해자들이 직면하는 장벽 중 하나다. 김재희 변호사는 “우리 사회는 유독 성폭력 범죄에 대해서만 피해자가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면 ‘돈을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만들어 고소했다’는 프레임이 작동한다”면서 “‘성폭력 피해자는 범죄에 대한 진상규명 외에 피해에 대해 어떤 보상도 요구하면 안 된다’는, 완전무결한 피해자상을 요구하는 사회적 편견으로 성폭력 피해자들은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선혜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장도 “성폭력이라는 위법행위를 통해 입은 손해를 배상하고자 하는 노력은 ‘가짜’ 성폭력 피해자의 다른 의도로 해석된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 피해자의 배상 요구는 심지어 성폭력 무고 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각오가 필요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어렵게 민사소송 제기를 결심해도 성폭력 피해자들은 소멸시효라는 벽에 부딪힌다. 현행 민법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소멸시효를 범죄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 범죄발생일로부터 10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소멸시효는 ‘범죄발생일로부터 20년’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성폭력 피해자들이 범죄 발생 후 즉각적인 형사고소나 손해배상 청구보다는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20~30년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피해사실을 인지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도가니 사건’으로 알려진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는 1985년부터 2005년까지 교사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뒤 2011년 PTSD와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소멸시효가 지났다면서 소를 기각했다. 김 변호사는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는 보완되고 있지만 “민사상 소송에 있어서 소멸시효 제도는 전혀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면서 “형사소송에서 중형이 확정돼도 소멸시효가 지나 민사상 피해배상을 한푼도 받지 못하는 모순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부터 개정·적용된 성폭력 관련 법률은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의 경우 피해자가 성년이 된 날부터 공소시효를 적용한다. 13세 미만 아동·청소년과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 그리고 모든 연령에 대한 강간살인죄는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이렇게 형사소송상의 공소시효는 조금씩 개선되고 있지만 민사소송상의 소멸시효는 여전하다. 낮은 손해배상액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상해나 사망으로 이어진 성폭력을 제외한 다른 성폭력 사건 손해배상액은 정신적 고통에 따른 위자료와 치료비 등이 전부다. 일반적으로 적게는 100만원, 많아야 4000만원 정도다. 박윤숙 한국성폭력위기센터 소장은 “성폭력 피해로 인한 시간적·물리적 피해뿐만 아니라 수치감과 자책감으로 시달린 시간, 주변인을 경계하고 긴장하면서 불안감에 휩싸인 시간, 두통과 불면, 좌절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지만 아직 사회적 합의는 미흡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그대로 노출되는 현실도 민사소송 제기를 어렵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다. 성폭력 범죄 형사소송 과정에서 피해자는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도록 하는 등 보호규정이 있지만, 민사소송 절차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보복범죄가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런 이유로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피해자가 가해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을 때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그대로 가해자에게 노출되는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올라왔다. 이 외에도 소송의 장기화에 따른 비용 부담, 또 가해자가 재판 중에 이미 재산을 처분해 형사소송 이후 민사소송을 제기해도 손해배상액을 받을 수 없는 점도 피해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PTSD나 우울장애, 불안장애 등을 진단받은 시점부터 소멸시효를 산정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고, 피해에 부합하는 손해배상액을 책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성폭력 피해자들의 소멸되지 않은 고통과 배상받을 권리를 법이라는 이름으로 소멸시키는 것 자체가 법의 권리남용”이라고 주장했다. 글·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파주 탁상행정 ‘한심’…수출 유망기업 ‘한숨’

    경기 파주시의 ‘나사 빠진 행정’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27일 파주시 등에 따르면 봉일천 미군 반환기지(캠프하우스) 일대에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해 온 T사와 주민들로 구성된 조합원들은 파주시가 최종환 시장 취임 후인 지난 9월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하고 재공모 절차에 들어가자 반발하고 있다. 지난 22일 행정소송을 제기한 T사는 “실시계획인가 완료 직전 사업시행자를 바꾸려는 건 이례적”이라고 주장했다. 조합원들은 “행정소송에서 T사가 승소하면 사업시행자가 2곳이 될 수 있어 분쟁이 생길 수 있고 사업자를 다시 공모하면 인허가 절차를 밟느라 또다시 수년을 기다려야 한다”며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파주시 관계자는 “분담금 납기일 등을 어겨 사업시행자 지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반박했다. 파주 D사는 치과에서 사용하는 석션(침액 등을 빨아들이는 기구)용 펌프 등을 만든다. 20개국에 수출하고 수출액도 해마다 급증, 지난해 ‘수출유망중소기업’과 ‘경기도 유망중소기업’으로 인증받았다. 잘나가던 회사가 올 들어 위기에 빠졌다. 수출 감소가 아닌 파주시 탁상 행정 때문이었다. 시가 2016년 9월 “운정역~능안리 간 도로 확·포장공사 구간에 공장건물 일부가 포함된다”며 수용보상 공문을 보냈다가 지난해 12월 “업무착오”라며 취소하면서부터다. D사는 파주시가 당시 보상계획 알림 등 공문을 잇달아 보내자 수십 차례 시에 문의, 확답을 받고 인접지역에 50억원 빚을 내 공장 신축 공사에 들어갔다. 보상금이 나온 뒤 공사하면 납품일정을 맞출 수 없어서다. 하지만 보상금 지급 3개월을 앞둔 지난해 12월 파주시는 “2015년 12월 설계변경돼 수용보상에서 제외된 사실을 몰랐다”고 알려왔다. 경사지에 옹벽을 쌓는 방법으로 2년여 전에 수용을 백지화해 놓고도 공무원 간 ‘불통’으로 보상금 수령 공문이 나갔다고 해명했다. 이후 파주시 공무원들의 태도는 더 큰 문제였다. D사 관리이사는 “지난 5월 경기도토지수용위원회에 재결신청을 했으나 공장이전이 도로공사 때문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다며 기각결정했다”며 “이는 파주시 공무원들 거짓진술 때문”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담당 공무원이 “공장이전을 만류했다”는 등 허위 주장을 했다는 것이다. 파주시 관계자는 “같은 부서에 나란히 앉은 설계담당과 보상담당 공무원이 설계변경 사실을 공유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며 부분 보상할 용의가 있다”고 해명했다. D사는 “파주시가 공장설비 이전에 따른 손실 등 무형의 손실은 배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라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미국, 중국 등의 유명 유통업체와 제휴를 맺어 곧 수출을 앞둔 G사는 2년 전 법인설립 당시 감면받은 지방세 1억 3000만원을 최근 내라고 해 깜짝 놀랐다. 목적대로 토지 등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다행히 공사할 때 찍은 기념사진이 있어 1억원은 감면받았지만 3000만원은 아직 해결이 안 됐다. 이 업체 세무대리인은 “현장을 한번 보면 금방 알 수 있는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고지서를 보낸 것 같다”고 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법원 위상 이 정도일 줄이야… 판사도 피습 대상 되는 것 아니냐”

    “법원 위상 이 정도일 줄이야… 판사도 피습 대상 되는 것 아니냐”

    사법농단과 무관한 70대 민사소송 불만 법관 탄핵·수평 리더십 비판 속 초유 사태 판사들 “고통스러운 심정”개탄 속 우려 경호 허점 드러나…경찰 인력 증원·강화사법부 수장인 김명수 대법원장 차량을 습격한 1인 시위자는 사법농단과 무관한 개인 소송과 관련해 시위를 벌여 온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초유의 대법원장 차량 습격이 감행된 배경을 최근 실추된 사법 신뢰와 연결 짓는 해석이 많다. 법관 탄핵 논쟁 국면에서 김 대법원장의 수평적 리더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차량 습격이 벌어지자 사법부 권위 실추를 개탄하는 반응도 나왔다. 27일 대법원 정문에서 김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화염병을 던진 남모(74)씨는 지난 석 달 동안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해 왔다. 돼지 농장 운영자인 남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직원이 2013년 위법하게 친환경 인증 갱신 불가 판정을 내려 손해를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2년에 걸친 1·2·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지난 8월 시작된 3심(상고심)은 지난 16일 심리불속행 기각됐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법률심인 상고심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사건에 대해 심리 없이 사건을 기각하는 판결을 이른다. 재판 결과에 불만을 품고 판사를 공격한 예는 과거에도 있었다. 2007년 1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가 학교를 상대로 낸 재임용 불복 항소심에서 패소하자, 재판장인 박홍우 당시 고법 부장판사에게 석궁을 쏴 부상을 입힌 이른바 ‘석궁 테러’가 대표적이다. 2010년엔 보수 시민단체 회원들이 후보매수 혐의로 기소된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김형두 당시 지법 부장판사(현 고법 부장판사) 아파트 앞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곽 전 교육감에게 징역형을 선고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김 부장판사 아파트에 계란을 던졌다. 2010년 1월 보수 시민단체는 대법원장 공관 근처에서 이용훈 당시 대법원장 출근 차량에 계란을 던졌다. 이들은 당시 무죄 선고된 ‘PD수첩 광우병 보도 명예훼손 사건’ 판결을 비난했다. 앞서 2008년 2월 채종기씨는 재판에서 패소한 뒤 분풀이를 국보 1호인 ‘숭례문’에 했다. 토지 보상액을 놓고 건설사와 갈등을 겪던 채씨는 건설사를 상대로 낸 재판에서 패소했다. 숭례문을 태운 죄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던 채씨는 지난 2월 만기 출소했다. 이 같은 선례에도 불구하고 45명의 보안관리대 경찰력이 배치된 국가주요시설인 대법원에서, 경호를 받으며 출근하던 대법원장 차량이 습격 대상이 된 것은 초유의 사태로 꼽힌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에 대한 검찰 수사에 연루 법관 탄핵 논쟁이 제기된 와중에 대법원장 차량 습격이 발발하면서 법원 구성원들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판사들 사이에선 “법원의 위상이 이 정도로 떨어졌는지 고통스러운 심정”이라거나 “판사들 역시 피습 대상이 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번졌다. 대법원장 경호의 허점도 지적됐다. 대법원장은 차량 이동을 할 때 1대의 경호차량과 함께 이동하지만, 신호통제 등은 이뤄지지 않는다. 대법원장 차량이 청사 정문을 지날 때 남씨는 너무나 쉽게 차량에 접근했다. 경찰은 앞으로 대법원과 대법원장 공관 주변 경력을 증원하고, 대법원장 등 경호대상 요인에 대한 경호·순찰 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대법원장 겨눈 화염병…테러당한 ‘법의 권위’

    대법원장 겨눈 화염병…테러당한 ‘법의 권위’

    김명수 원장 출근길 승용차 습격당해 재판 앙심 품은 70대 “화나서” 투척 청원경찰들 진화…인명 피해는 없어 “독립성 훼손한 사법부가 자초한 일”김명수 대법원장의 출근 승용차가 대법원 앞에서 화염병에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과거 대법원장의 차량에 계란을 던지는 일은 있었지만 대법원장에게 직접 테러를 가하려고 한 사건은 처음이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27일 김 대법원장이 탄 승용차에 화염병을 던진 남모(74)씨를 붙잡아 특수공무집행방해, 현주건조물등방화, 화염병 사용 등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했다. 이날 오전 9시 10분쯤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남씨는 김 대법원장 차량이 청사로 들어오는 순간 인화물질이 든 500㎖ 페트병에 불을 붙여 던졌다. 불은 대법원장의 승용차 오른쪽 뒷바퀴와 남씨 손에 옮겨붙었으나 현장에서 근무하던 청원경찰들이 소화기로 진화하고 남씨를 제압했다. 경찰은 인화물질이 들어 있는 500㎖ 페트병 4개를 더 발견해 압수했다. 경찰은 28일 남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남씨는 경찰 조사에서 “민사소송 사건과 관련해 (법원이) 내 주장을 받아주지 않아서 화가 났다”고 진술했다. 남씨는 취재진에 “권익을 찾기 위해서”라고 답하기도 했다. 강원 홍천에서 유기축산물 사료를 제조·판매하던 남씨는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친환경 부적합 처분을 내려 손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지만 1·2심에서 패했고, 대법원도 심리불속행기각 처리했다. 대법원은 김 대법원장 신변에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에 수원지법 안산지원을, 오후에 수원지법을 방문하는 등 예정됐던 전국 지방법원 방문 일정을 소화했다. 법조계에선 초유의 대법원장 습격 시도가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증폭된 사법 불신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는 “화염병으로 대법원장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면서도 “헌법에 의해 부여된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하고 청와대와 재판거래를 한 의혹을 받는 사법부가 이번 테러를 자초했다는 해석도 있다”는 성명을 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유영재 기자 young@seoul.co.kr
  • ‘하늘에서 떨어진 개’에 맞아 중태에 빠진 여성

    ‘하늘에서 떨어진 개’에 맞아 중태에 빠진 여성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길을 지나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개에 맞아 목숨이 위태로워진 여성의 황당한 사연이 알려졌다. 광저우르바오 등 현지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47세 여성은 광둥성 광저우시의 대로변에 있는 건물 앞을 지나던 중 건물에서 갑작스럽게 떨어진 개에 머리를 세게 맞았다. 개는 충돌 후 시간이 흐르자 스스로 일어서서 걷는 모습을 보였지만, 개와 충돌한 여성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조사 결과 개가 떨어진 곳은 해당 건물의 2층 발코니였다. 머리를 세게 맞은 여성은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마비 판정을 받았다. 이후 이 여성의 남편과 아들은 직장도 그만둔 채 병간호에 매달리고 있다. 마비된 여성의 근육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 2시간에 한 번씩 보호자가 전신 마사지를 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엄청난 치료비만큼이나 큰 문제는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피해 여성의 가족은 사고 직후 개를 떨어뜨린 사람이나 개의 주인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개가 떨어진 건물주와 건물의 임차인들은 해당 사건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진술했고, 누구의 개인지도 알지 못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광저우하급법원은 해당 개에 대한 정보를 가진 사람이나 주인은 법원에 나와달라고 요청했지만 현재까지 어느 누구도 관련 정보를 제보하지 않고 있다. 이번 사건에서 피해 여성의 변호를 맡고 있는 변호사는 해당 건물의 건물주 및 임차인 전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겠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법적 책임을 물을 상대가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이미 해결된 거 아닌가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종지부 의미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이미 해결된 거 아닌가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종지부 의미

    지난 23일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이사가 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와 가족들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 백혈병 분쟁이 11년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된 건데요. 삼성과 노동자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삼성의 사과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분쟁의 시작은 2007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 기흥공장 반도체 라인에서 반도체 판을 불산, 황산암모늄 등 화학물질 혼합물에 세척하는 일을 하던 황유미씨가 급성 백혈병에 걸려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해 6월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근로복지공단에 “삼성반도체 근무하다가 내 딸이 병에 걸렸으니 유족에게 보험금을 지급하라”고 산업재해 신청을 합니다. 그런데 2009년 근로복지공단이 “백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며 황상기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죠. 그 다음해 황씨는 다른 백혈병 피해자 4명과 근로복지공단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에 들어갑니다. 그렇게 소송을 제기한 5명 중 황씨를 포함해 2명은 2014년 “산재가 맞다”는 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습니다. 법적으로는 업무와 질병의 연관성을 인정 받게 된거죠. 물론 삼성은 법원 판결에 반발했고요. 그럼 법적인 승리와 함께 딸을 위한 아버지의 싸움은 끝난 걸까요. 결론부터 말하면 아닙니다. 황상기씨를 비롯한 수많은 피해자들이 속한 대책위원회 ‘반올림’은 삼성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제 없는 보상’, ‘재발방지 대책’ 등 3대 요구를 했는데 수많은 협상에도 재발방지 대책을 제외하고는 삼성과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거든요. 삼성과 싸움을 계속 해나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삼성 백혈병 문제 이미 해결된 거 아녔어?’라고 의아하신 분들도 있을 텐데요. 그게 제가 아까 언급한 재발방지 대책에 대한 합의부분입니다. 2016년 1월에 있었던 일인데요. 당시 언론이 타결이라는 말을 쓰며 모두 해결된 것처럼 보도를 한 겁니다. 그 당시 삼성, 반올림 등 대화 주체들은 조정위원회를 통해 재발방지대책에만 합의했습니다. 앞서 설명한 보상과 사과 부분은 아니었던거죠. 보상과 사과는 삼성과 반올림 간 여전히 해결해야할 문제로 남아있었습니다. 사과 부분에 대한 입장차부터 살펴보면 2014년 5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사과를 하긴 하는데요. 첫 공식사과였죠. 처음 산업재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냈지만,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의 인과관계를 인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피해자들은 진정성 있는 사과라고 받아들이기 힘들었죠. 두 번째는 보상 부분인데요. 같은 해에 이들의 입장차를 줄여보고자 조정위원회가 만들어지는데, 위원회에서 2015년 조정권고안을 내놓습니다. “1000억 원 규모의 공익법인을 설립하고, 보상절차를 수행하라.”, “보상범위는 백혈병을 비롯해 희귀암, 난소암 등 12종으로 잡아라.” 뭐 이런 내용들인데 삼성이 조정안을 거부하고, 반올림과 생각이 다른 일부 유가족, 가족대책위원회, 일명 가대위라고 하는데요. 이들 100여명을 대상으로 자체 보상에 나서죠. ‘배제 없는 배상’을 요구했던 반올림이 2015년 말부터 지난 7월까지 1000여일간 천막농성을 한 이유입니다. 이번 합의가 의미가 있고, 비로소 타결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게 된 건 앞서 설명한 보상과 사과 부분에서 삼성, 반올림 모두가 비교적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사과 부분에서는 김기남 대표가 “삼성전자는 과거 반도체 및 엘시디(LCD) 사업장에서 건강유해인자에 의한 위험에 대해, 충분하고 완벽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며 관리 책임을 못했다는 걸 인정했고요. 보상도 조정위의 2차 권고안을 보면 대표적으로 질병 범위를 백혈병 등 16종의 암을 포함한 40여 종의 질환과 유산, 차세대(자녀) 질환까지 포함했습니다. 암만 떼어놓고 봤을 때 12종에 불과했던 1차 권고안보다 범위가 확대 된 거죠. 그런데도 삼성이 무조건적으로 안을 받아들인 겁니다. 당연히 반올림도 찬성했고요. 삼성의 적극적인 백혈병 문제 해결 노력은 그만큼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로 세상이 달라진 것을 보여준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몇 년 전만 해도 삼성과 반올림의 백혈병 문제 타결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꽉 막힌 문제였거든요. 앞으로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지원보상위원회가 보상 절차에 들어가는데 갈등이 재연되지 않고 원만하게 진행됐으면 합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이범수의 시사상식설명서> 팟캐스트는 ‘팟빵’이나 ‘팟티’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팟티 접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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