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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기업 글로벌 파고 넘어라] “삼성·애플, 특허 공유로 연내 합의 이를 듯”

    지난해 세계 정보기술(IT) 분야의 최고 이슈는 단연 삼성전자와 애플이 벌이고 있는 ‘특허전쟁’이었다. 지난 4월 애플의 소 제기로 시작된 소송전은 아직 상대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지 못한 채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면 올해 두 회사의 특허전은 어떤 식으로 진행될까. 업계에서는 물론 삼성, 애플 내부에서도 이 소송전이 끝까지 갈 것으로 보지 않는다. 늦어도 올해 말까지는 합의에 이를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애플은 지난 8월 미국 소송에서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2000억원)의 배상금 평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는 1200억 달러가 넘는 애플 보유현금의 1%도 되지 않는 데다, 삼성전자의 지난 3분기 영업이익(8조 1000억원)의 15%에 불과하다. 이후 소송에서 애플이 계속 이겨도 배상금이 삼성을 압박할 만큼 의미 있는 액수가 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역시 애플을 압박하는 데 써 온 통신특허 침해 소송이 이렇다 할 성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되레 유럽연합(EU)을 자극해 반독점 제재를 받게 될 위기에 놓이는 등 역풍도 우려된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과 크로스라이선스(특허 공유)를 체결해 다양한 특허를 저렴하게 이용하려는 게 애플의 속내”라면서 “본안소송 1심 최종 판결이 나오면 이를 기준으로 삼아 서로 합의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애플코리아 관계자도 “한국에선 이런 대규모 소송이 처음이지만, 미국이나 유럽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라면서 “당사자들이 아무리 격하게 다퉈도 마지막에는 합의로 사건을 깔끔히 끝내는 게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한국기업 글로벌 파고 넘어라] “원천기술 늘리고 기업·대학·정부 기술클러스터 활성화를”

    [한국기업 글로벌 파고 넘어라] “원천기술 늘리고 기업·대학·정부 기술클러스터 활성화를”

    전문가들은 한국 수출을 가로막는 보호무역주의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1980년대 일본 기업이 미국시장에서 겪었던 홍역이라며 체계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전문가 4명으로부터 한국 수출이 풀어야 할 과제를 지상대담 형식으로 들어본다. →한국 기업에 대한 견제가 어느 정도인가. 이태인 센터장 최근 특허 소송이 급증하고 있다. 그동안 무역 분쟁에서는 반덤핑, 상계관세 등이 많았는데, 이제는 브랜드 특허와 관련된 것이 많다. 김종기 연구위원 뒤따라가던 우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선도기업으로 부상하면서 견제가 심화하고 있다. 휴대전화에서 삼성이 노키아를 제쳐 1위에 오르고 애플의 공세를 잘 극복하니 집중적인 견제를 받는 식이다. 김문섭 교수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만으로 견제한다고 보는 건 과잉 해석이다. 미국의 삼성-애플 소송에 참여한 배심원 가운데 삼성전자가 한국 기업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만 ‘자국 기업이 쟤들 때문에 우리가 죽을 것 같다’며 애국심에 의지한 소송에 나서자 배심원들이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모양이다. →최근에는 특허소송이 심각한데, 견제의 유형은. 안병수 교수(수입업협회 연구소장) 첨단제품일수록 소재, 구조, 메커니즘, 디자인, 사용방법 등 모든 부품적 요소에 각각의 특허가 출원됨으로써 경쟁기업의 진입을 아예 막고 있다. 설사 경쟁기업이 진입해도 소송을 통해 상대의 판매 비용을 높이고, 또 판매 시점을 놓치도록 하는 게 견제 유형이다. 특허소송이 늘어나는 것은 우리 기업들의 수출이 노동집약적 상품에서 첨단 기술과 디자인이 적용된 상품을 발전한 측면도 있다. 특허 소송은 승패를 떠나 이미지 실추와 마케팅 실기 등 타격이 크기 때문에 제소당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아울러 신흥국들은 느닷없는 인증제도 등을 제정,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고 있다. 김 연구위원 예전에는 특허의 목적이 자기 기술혁신을 목적으로 했는데 지금은 경쟁기업의 견제 수단, 시장 우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것 같다. 요즘 기술적 요소인 디자인, 소프트웨어로 특허 소송이 확대되고 있고, 특히 애플이 전체적인 분야에서 특허 지식재산권을 내세우는 등 심한 것 같다. →삼성-애플 소송은 어떻게 전망하는가. 김 연구위원 이런 경우 보통 중간에 협상으로 끝나고 하는데, 지금은 애플이 끝장을 보려는 듯하다. 그런데 애플이 핵심으로 내세운 특허 3건이 미국 특허청에서 무효 처리가 되면서 그 힘이 축소될 것 같다. 삼성으로선 배상금이 축소될 수도 있다. 당분간 이런 특허전 추세는 계속될 것 같다. 김 교수 서로 법정에서는 결사항전을 외치지만, 뒤에서는 변호사들이 만나서 논의하며 주판알을 튕길 것이다. 삼성이나 애플이나 부품을 공급하고, 받는 입장에서 거래를 끊기가 힘들다. 다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자리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에 성과를 보여줘야 할 입장이라 실리보다 명분 싸움으로 흐를 수도 있다. →왜 이 지경이 됐나. 그 원인은. 안 교수 우리나라는 세계 7위 수출국이며 8위 교역국가이다. 반면 세계는 지금 재정위기, 금융위기로 다른 외국을 배려해줄 여력이 없다. 따라서 우리 무역분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미국, 터키, 인도 등 한국에 수입규제를 취하고 있는 국가들은 만성적 무역적자국이지만 한국과 중국, 일본, 독일 등은 만성적 흑자국이다. 이 센터장 ‘특허괴물’들은 삼성, 애플, LG, 팬택 등 정보통신 분야 기업들을 노린다. 매출이 많아야 손해배상을 많이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일본이 국제특허 소송에서 어려움 겪었는데, 지금은 한국과 타이완이 타깃이다. 우리 수출 의존도가 120%이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내수보다 수출 비중이 훨씬 높다. 미국처럼 특허 분쟁을 대비한 포트폴리오가 짜여져 있으면 좋은데 삼성은 그런 점에서 약한 게 사실이다. 김 연구위원 한국이나 삼성이 특허에 대한 중요성을 간과했다. 한국 기업은 보유 특허가 많은데 핵심적 특허는 많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게 표준특허인데, 이 부분의 체계가 약하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또 전망은. 이 센터장 지재권 대응은 창출, 활용, 보호 등 3단계로 접근한다. 창출 단계에서부터 특허를 잘 만들어야 한다. 또 활용을 잘해야 한다.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 기업, 공공연구소, 국책연구소 등이 현장에서 쓸 수 있는 리딩 제품을 특허로 쓰도록 활용하고 보호도 잘해야 한다. 방어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잘 짜야 하고 전문가도 많아야 한다. 전문가와 돈이 부족한 중소기업은 자체적으로 대응체계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 CEO의 의지도 중요하다. 수출이 계속되고, 또 자국 보호정책 시류에 따라 소송은 늘 것이라고 본다. 안 교수 정보획득을 통한 사전대응과 시장다변화가 현실적 방안이라고 본다. 해외 현지생산 전략도 법적으로 수입규제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해외 투자에 따른 위험 부담이 문제다. 꾸준한 신기술 개발 등으로 품질과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것도 원론적 해결 방안이다. 아울러 이런 장벽을 넘는 과정에서 우리의 체질 강화와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최근 원화의 강세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 김 교수 장기적으로 원천기술 확보에 노력해야 한다. 기업과 대학, 정부가 하나가 된 기술인력 클러스터를 활성화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기업들이 ‘싸워야 할 때와 화해해야 할 때’를 냉철히 파악해 상황에 맞게 현명하게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에서 나서야 할 일은. 안 교수 기업이 필요로 하지만 할 수 없는 일이 정부가 할 일이다. 앞서 언급한 해외 시장(규제) 정보의 획득과 전파, 시장 개척을 위한 마케팅 지원, 연구개발 지원이 정부가 할 일이다. 또 기술인증 등과 관련해 외국 정부와 상호인정협정(MRA)을 확대하는 것도 필요하다. 아울러 현저하게 수출이 초과된 국가에는 수입사절단을 파견, 균형 무역의 노력을 표시해야 한다. 보호무역주의는 세계 경기의 침체와 더불어 지속될 현상이다. 홍혜정 기자 jukebox@seoul.co.kr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2년간 투신자살 직원 10여명 ‘공포의 회사’서 또…

    2년간 투신자살 직원 10여명 ‘공포의 회사’서 또…

    2010년 부터 직원들의 잇딴 투신으로 물의를 빚었던 팍스콘 중국공장에서 또 직원 한 명이 투신해 사망했다. 23일 중국 언론보도에 따르면 지난 10일 선전의 팍스콘 공장에서 일하는 18세 이씨가 호텔에서 투신했다. 이씨는 팍스콘에서 일한 지 40일 된 신입 직원으로 이날 공장을 결근하고 한 호텔 4층에 투숙한 후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유족들에 따르면 이씨는 투신 전날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팍스콘에서 일하고 싶지않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살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유족들은 팍스콘에 60만 위안(약 1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한 상태다. 팍스콘은 애플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을 하청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주문자상표부착생산 회사로 중국에는 선전과 청두에 공장을 두고있다. 중국내 직원은 120만명이며 지금까지 10여명이 투신 자살해 문제가 되고있다. 사진= 팍스콘 공장 자료사진 인터넷 뉴스팀
  • 삼성-애플, 특허소송 ‘치고받기 혼전’

    삼성-애플, 특허소송 ‘치고받기 혼전’

    삼성전자와 애플이 미국 법원에서 벌이고 있는 특허 소송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식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삼성의 공세가 거세진 반면 애플은 다소 수세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먼저 삼성전자가 애플의 영상통화 서비스인 ‘페이스타임’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법원에 추가 제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21일 특허전문 블로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에 아이폰의 페이스타임이 자사의 ‘원격 비디오 전송 시스템’ 관련 특허를 침해했다고 제소했다. 페이스타임은 아이폰, 아이팟터치, 아이패드와 맥 컴퓨터 등 애플 제품 사용자들이 화상으로 통화할 수 있는 애플의 대표적인 ‘킬러 애플리케이션’(시장을 주도하는 응용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다. 삼성전자는 페이스타임이 디지털화, 압축, 호스트 컴퓨터와의 데이터 교환 방식 등에서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현재 삼성전자와 애플은 각각 ‘아이폰5’와 ‘갤럭시S3’ 등 상대 회사의 최신 제품들이 자사 특허를 침해했다고 캘리포니아 연방지법에 제소했다. 페이스타임의 특허 침해 여부는 최신 제품의 특허 침해 여부를 다투는 2차 소송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2차 소송의 첫 기일은 2014년 3월로 예정돼 있다. 삼성전자의 추가 제소 사실은 애플이 지난 19일(현지 시간) 법원에 삼성전자의 관련 특허 구입 시점과 문제제기 시점에 대해 비판하는 문서를 제출하면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이 특허와 관련해 제소하기 불과 6개월 전인 2011년 10월 미국의 발명가들에게서 이 특허를 구입했다. 해당 특허는 19년 전 등록된 것이다. 삼성으로선 애플을 공격하기 위해 특허를 구입한 것으로 비춰질 수 있는 상황이다. 애플 역시 미국법원에서 삼성전자 스마트폰을 영구 판매금지해 달라는 신청을 기각한 것과 관련해 20일(현지시간) 항고했다. 애플은 지난 17일 캘리포니아 연방지방법원의 루시 고 판사가 삼성전자 스마트폰 26종을 미국 시장에서 영구 판매금지해 달라는 자사의 신청을 기각한 것을 취소해 달라며 항고 취지를 밝혔다. 항고심은 연방 제9항소법원에서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애플이 삼성을 상대로 낸 1차 소송에서 배심원단은 삼성 스마트폰이 애플의 특허 6건을 침해했다고 인정하고 삼성이 배상금 10억 5000만 달러(약 1조1200억원)를 애플에 지급하라고 지난 8월 판단했다. 이후 애플은 여세를 몰아 특허침해가 인정된 삼성 제품 26종의 영구 판매금지를 신청했으나, 루시 고 판사는 “애플이 삼성의 특허침해로 인한 판매 손실을 입증하지 못했다.”며 기각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애플 상용특허 잇따라 무효… 삼성 배상액 줄 듯

    애플의 상용특허가 미국 특허청(USPTO)으로부터 잇따라 무효 판정을 받으면서 삼성전자가 향후 법정 공방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됐다. 미 특허청은 19일(현지시간) 애플의 ‘핀치 투 줌’ 특허에 대해 선행 특허가 있다는 이유로 잠정적인 무효 판정을 내렸다. 이 특허는 지난 8월 삼성전자에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1400억원)의 배상 결정을 내린 미 캘리포니아 북부연방법원 새너제이 지원의 배심원 평결에서 삼성전자의 침해가 인정된 6건의 특허 가운데 하나다. 당시 배심원단은 애플의 상용특허 3건, 디자인특허 3건에 대해 삼성전자의 침해를 인정했다. 특허청은 침해 결정이 난 상용특허 가운데 바운스백 관련 특허에 대해서도 지난 10월 잠정 무효 판정을 내린 바 있어 배심원단이 침해 사실을 지적한 상용특허 3건 중 2건이 무효 판정을 받은 셈이다. 배심원단으로부터 침해 지적을 받은 나머지 1개의 상용특허는 두 차례 두드려서 화면을 확대하는 ‘탭 투 줌’ 관련 특허다. 새너제이 지원의 루시 고 판사는 최근 공판에서 “모호하며 (배상금 산정에 문제가 있다는) 삼성 측의 논증이 설득력이 있다.”고 말한 바 있기 때문에 삼성에 유리한 상황이다. 만약 법원이 2건의 특허에 대한 특허청의 무효 판정을 인정하고 탭 투 줌 특허와 관련해 삼성전자의 논리를 받아들인다면, 삼성전자는 상용특허에 대한 배심원단의 침해 판정 모두를 무력화할 수 있다. 이 경우, 배심원단이 산정한 배상액 10억 5000만 달러 가운데 상당 부분이 법원의 배상금 산정 판결에서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성폭행 살해범에 “2251년까지 죗값 치러라” 판결

    성폭행 살해범에 “2251년까지 죗값 치러라” 판결

    연쇄 성폭행 살인범에게 2251년까지 교도소에서 죗값을 치르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최소한 6명을 성폭행하고 잔인하게 살해한 멕시코 남자에게 바린토스의 법원이 징역 240년을 선고했다. 세사르 아르만도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젊은 여자들을 성폭행한 뒤 살해했다. 살인동기에 대해 그는 “신고가 두려워 후한이 없도록 살해한 뒤 시신을 버렸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공격을 받은 여자 중 유일한 생존자는 성폭행 후 살인이 미수에 그친 사건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사망한 줄 알고 시신을 내버렸지만 여자에겐 기적처럼 목숨이 붙어 있었다. 법원은 남자의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피해자 1명당 40년 꼴로 형량을 계산해 선고했다. 수명이 허락한다면(?) 남자는 2251년까지 교도소에 갇혀 지내야 한다. 징역과 함께 남자는 25만4000페소(약 2200만원)의 벌금과 56만7000페소(약 5000만원)의 피해배상금을 물게 됐다. 남자는 2월 말 경찰에 검거됐지만 며칠 뒤인 3월 3일 수갑을 차고 경찰서에 잡혀 있다가 탈출했다. 한편 남자는 멕시코시티에서 발생한 또 다른 살인사건과 피해자가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성폭행사건으로도 또 재판을 받을 예정이라 형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사진=에페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스칼렛 요한슨 나체사진 유포男, 무려 징역 10년형

    스칼렛 요한슨 나체사진 유포男, 무려 징역 10년형

    할리우드 유명 여배우인 스칼렛 요한슨의 나체 사진을 해킹해 유포한 남성이 징역 10년 형을 선고받았다고 영국 일간지 더 선이 19일 보도했다. 크리스토퍼 체니(36)라는 이름의 남성은 최근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재판에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생활을 몰래 염탐하는데 중독이 돼 해킹을 저질렀다.”고 인정했다. 일명 ‘할리우드 해커’라 불리기도 한 그는 2010년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 유명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생활이 담긴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다. 특히 지난 9월 그는 스칼렛 요한슨의 휴대전화를 해킹해 그녀의 나체 사진을 인터넷에 유포, 전 세계에 사진이 퍼져 파장을 일으킨 바 있다. 미국 연방수사국은 연예인을 포함 50여 명의 유명인사가 해킹 피해를 당하자 11개월간 수사를 펼쳤고, 결국 지난해 10월 체니를 체포했다. LA연방법원은 “요한슨 본인이 직접 찍은 나체 사진 등 사생활이 담긴 사진을 몰래 해킹에 올림으로서 피해자가 매우 큰 부끄러움과 당황함을 느끼게 했다.”며 “뿐만 아니라 이메일 해킹과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징역 10년 및 7만 6000달러의 배상금을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당초 법원은 체니가 총 26건의 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들 모두를 유죄로 판명할 경우 최대 121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체니가 법정에서 “나의 혐의를 모두 인정하는 대신 감형해달라.”고 요구했고 법원 측은 이를 받아들여 10년형을 선고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자기 집에 불 나면 두배로 손해

    자기 집에 불 나면 두배로 손해

    불이 나면 본인 피해금액보다 근처에 위치한 시설의 피해를 보상해주는 손해배상액이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 낸 사람이 옆집의 손해까지 배상하도록 3년 전에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실화법)이 개정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6일 보험개발원의 ‘장기손해보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9~2011년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동안 화재사고로 타인에게 손해를 끼쳐 물어준 화재대물배상책임금이 평균 8632만원으로 본인 재산에 대한 피해 보상액인 화재손해금(3932만원)보다 2배 이상 더 많았다. 건물 용도별로 보면 공장의 배상책임금이 5166만원으로 가장 높았고 상업시설을 포함한 일반 건물이 1908만원, 주택이 1558만원으로 뒤를 이었다. 화재손해금은 공장(2278만원), 일반(904만원), 주택(750만원) 순이었다. 모두 배상액이 손해액의 2배를 넘는다. 보험개발원 관계자는 “불이 나면 다른 곳으로 옮겨붙어 2차 피해를 발생시키는 경우가 많다.”면서 “실화법이 개정되고 배상책임 범위가 중과실에서 실수나 경과실까지 넓어져 배상금액이 늘어난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성원기자 lsw1469@seoul.co.kr
  • 삼성 ‘특허 배상금’ 대폭 줄어드나

    삼성 ‘특허 배상금’ 대폭 줄어드나

    6일(현지시간) 미국 법원에서 열린 삼성전자와 애플 간 특허소송 1심 최종 심리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마무리되면서 이르면 다음 달 발표될 최종 판결에 업계 및 소비자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가 평결을 뒤집거나 손해배상액을 크게 줄이는 등 역전을 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 연방북부지방법원 새너제이지원의 루시 고 판사는 “사안이 너무 많고 복잡하기 때문에 질문할 것이 많다.”면서 “이달에 모든 사안에 대해 판결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삼성에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2000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물린 배심원단의 지난 8월 평결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최종 심리 과정에서 사안별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특히 고 판사는 애플 측에 “배심원 평결에서 결정된 삼성의 손해배상액이 과도하지 않다는 사실을 납득시켜 보라.”고 명령했다. 이는 손해배상액이 과도하다는 삼성전자의 주장에 힘을 싣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현재 삼성 측은 배상금 10억 5000만 달러 가운데 9억 달러 정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애플은 거꾸로 삼성이 5억 3600만 달러를 추가로 물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미국 민사소송에서는 상대방이 의도적으로 특허를 침해했을 경우 배심원 평결의 3배까지 배상금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내에서는 고 판사가 손해배상액을 줄이려는 의도를 내비친 만큼 애플의 주장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고 있지만 반대로 미국에서는 애플의 주장이 인정될 것으로 보는 견해도 많다. 현재 양측은 막판 합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엇갈린 입장을 보이고 있다. 애플은 “삼성이 10억 달러가 넘는 평결에도 불법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면서 합의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은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법정싸움을 정말 싫어한다.”면서도 “삼성전자와의 문제에 대해 소송전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자신들의 홈그라운드인 미국에서의 소송인 만큼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다는 자신감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삼성 측은 “우리는 합의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한편, 삼성전자는 이날 심리를 통해 효과적으로 배상금 감액 요구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삼성전자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실제 판결에서 판사가 배심원 평결을 뒤집는 평결불복판결(JNOV)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삼성의 최근 행보가 사실상 2심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배심원단, 삼성 배상액 계산 실수”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소재 연방 북부지방법원은 6일(현지시간)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소송 1심 최종 판결 첫 심리에서 지난 8월 배심원단이 평결한 삼성전자의 배상액 계산에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삼성의 배상금이 줄어들 가능성이 커졌다. 최종 판결에서는 배심원단 평결 때와는 다른 결정이 나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7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루시 고 담당 판사는 양 사의 변호인단에 “배심원들이 삼성전자의 특허 침해 범위를 잘못 계산한 것 같다.”고 밝혀 삼성전자의 배상액을 조정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배심원단은 삼성전자가 애플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특허를 침해했다면서 삼성전자가 애플에 10억 5000만 달러(약 1조 2000억원)를 배상하라고 평결했다. 배심원단의 실수가 확인되면 삼성전자가 지불해야 할 배상액은 줄어들게 된다. 이날 최종 심리에서 양 사의 변호인들은 특허의 효용성과 배상금 산정 기준 등을 놓고 격렬하게 맞섰다. 특히 삼성 측은 그동안의 수세적인 입장에서 벗어나 “모호한 부분이 있는 만큼 재판을 다시 열어야 한다. 배심원단이 여러 부분에서 실수를 저질렀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삼성 측은 평결 당시의 배상금 중 대부분인 9억 달러 정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애플 측은 “배심원단이 특허 침해를 인정한 스마트폰 26종에 대해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고 판사는 “오랫동안 (합의에 대해) 말해 왔다. 언제 이 사건을 해결할 것이냐. 합의하는 것이 소비자에게도 좋고 산업계와 삼성, 애플 등에도 좋은 것”이라고 설득했다. 고 판사는 심리를 마친 이후의 재판 일정과 관련해 사안이 많고 복잡한 점을 감안해 사안별로 판결을 내릴 계획이며 이달 중에는 일부 사안에 대해서만 판결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애플 ‘둥근모서리 사각형 디자인 특허권’ 일부 포기 왜

    애플 ‘둥근모서리 사각형 디자인 특허권’ 일부 포기 왜

    애플이 삼성전자와의 스마트폰 특허 소송에서 ‘둥근 모서리 사각형’ 디자인 특허 2건이 중복됐다는 삼성전자의 주장을 일부 받아들였다. 이는 절차적 하자를 미리 없애 삼성이 주장하는 ‘이중 특허’ 논란을 피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삼성이 애플에 지불해야 할 배상금 규모가 줄어들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27일(현지시간) 독일 특허전문 블로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애플은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연방지방법원 세너제이지원에 ‘D618677’(이하 D77) 특허의 유효기간을 ‘D593087’(D87) 특허의 기간과 같도록 조정하겠다는 내용의 문건을 제출했다. D77은 애플이 삼성과의 소송에서 10억 5000만 달러의 배상액을 이끌어 내는 데 사용한 특허들 가운데 하나로, 아이폰의 외관 디자인을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둥근 모서리 ▲좌우는 좁고 상하는 넓은 베젤(테두리) ▲윗부분 가운데 둥글고 가느다란 모양의 스피커 슬롯 등이다. D87 역시 디자인 면에서 D77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애플이 삼성 공격에 대한 핵심 무기의 특허 유효기간을 스스로 줄인 것은 삼성전자가 ‘두 특허가 중복된다.’며 평결불복법률심리(JMOL)를 냈기 때문이다. 그간 삼성은 애플과의 재판 과정에서 D77이 D87과 중복되는 만큼 이중특허여서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미 특허법 101조에 따르면 두 개의 특허권이 같은 내용을 담고 있으면 앞선 특허를 보호하기 위해 나중에 출원한 특허권을 거절해야 한다. 애플은 D87 특허권을 2009년 5월에, D77 특허권을 이듬해 6월에 받았다. 미국에선 보통 출원일로부터 15년 동안 특허권이 부여된다. D87의 특허권 만료 시한은 2023년, D77은 2024년까지다. 따라서 삼성의 이중 특허 주장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애플이 나중에 출원한 D77은 무효가 된다. 미국에서는 중복 특허 논란이 불거지면 나중에 취득한 특허권의 일부를 포기해 기존 특허와 유효기간을 맞추는 게 일반적이다. 이렇게 하면 두 특허권의 존속기간이 같아져 후순위 특허도 남은 기간 동안 권리를 인정받게 된다. 애플이 D77에 대한 존속포기서를 제출한 것은 이 특허를 무효화시켜 재판을 뒤집겠다는 삼성의 시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것이다. 이에 대해 포스페이턴츠 운영자인 특허 전문가 플로리언 뮐러는 “(법원이 삼성의 주장을 받아들여) 새롭게 피해 보상액을 산정할 경우 8월 재판에서 애플이 워낙 크게 이긴 만큼 배상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많다.”고 평가했다. 반면 정보기술(IT) 전문매체 아스테크니카는 “애플이 존속기간 포기서를 제출해 중복특허 위험을 해결한 만큼 특허 소송 최종 판결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상반된 견해를 내놨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애플, 갤노트2 등 삼성 6개 제품 추가 제소

    애플이 미국 법원에 삼성전자의 최신 제품들인 갤럭시 노트2와 갤럭시S3 미니 등 6개 제품을 추가 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자인 특허를 이용한 애플의 소송 승리가 산업 혁신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비판 여론도 쏟아졌다. 25일 독일의 특허전문 블로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23일(미국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연방북부지방법원에 갤럭시 노트2, 갤럭시S3미니, 갤럭시S3(젤리빈 버전), 갤럭시탭 8.9, 갤럭시탭2 10.1, 럭비 프로(4인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를 삼성과의 2차 본안소송 대상에 포함한다는 내용의 소장을 제출했다. 갤럭시S3는 이미 소송 대상에 포함됐지만 구글의 최신 안드로이드 운영체재(OS)인 ‘젤리빈’을 탑재한 버전으로는 새로 추가된 것이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지적재산권 전문가 플로리안 뮐러는 애플의 소송 제기가 최근 삼성이 추가로 제소한 아이패드 미니 등에 대한 ‘맞불’ 성격이라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아이폰4, 아이폰4S, 아이패드2와 ‘뉴아이패드’ 등을 대상으로 양사의 2차 본안소송을 제기했다. 지난달 2일에는 아이폰5를, 이달 21일에는 아이패드 미니와 4세대 아이패드, 5세대 아이팟 터치를 소송 대상에 포함시켰다. 뮐러는 소송 대상을 늘리면 손해배상도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국 플로리다 주 일간지 ‘올랜도 센티넬’의 브라이언 지머만은 24일(현지시간) 칼럼을 통해 지난 8월 미국 법원이 디자인 특허 등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삼성전자에 10억 달러 이상의 배상금을 물린 것과 관련, 애플이 주무기로 삼은 디자인 특허는 기능적 측면을 보호하는 상용특허와 달리 장식적 요소를 보호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지머만은 “애플이 권리를 갖고 있는 얇고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 전자기기의 특징을 가진 제품을 최소 20개는 사용해봤다.”고 반박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쇼핑몰 제품’ 제조·원산지·유통기한 명시

    앞으로 온라인 쇼핑몰이나 홈쇼핑에서 파는 제품에 제조자와 원산지, 유통기한 등의 정보가 명시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상품정보 제공 고시’를 시행한다고 18일 밝혔다. 통신판매업자는 의류와 영화관람권, 화장품, 식품, 전자제품 등 34개 품목을 팔 때는 반드시 소비자의 상품 선택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보기 쉽도록 제공해야 한다. 통신판매업자에는 온라인 쇼핑몰과 홈쇼핑, 카탈로그 판매 등이 포함된다. 의류는 소재·제조국·제조자, 식품은 제조 연월일·유통기한·원산지·영양성분, 전자제품은 안전인증 여부·애프터서비스(AS) 책임자 등이 표시돼야 한다. 34개 품목에 해당하지 않아도 원산지, 제조자 등의 기본 정보는 제공돼야 한다. 상품 정보 외에 배송방법과 기간, 교환·반품·보증조건, 반품비용, 소비자 피해 보상,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등의 관련 정보도 제시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시정명령이나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시정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영업정지나 형사고발 조치도 당할 수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한국 고교생 30여명 술취해 中편의점 집단 절도 파문

    한국 고교생 30여명 술취해 中편의점 집단 절도 파문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한국 고교생 30여명이 베이징의 한 편의점에 들러 물건을 집단적으로 강탈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특히 학생들 중 일부는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같은 짓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으킨 이 사건은 지난 15일 오후 7시경 베이징 차오양구의 한 편의점에서 발생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이날 한국인 고교생 30여명은 식사를 마치고 버스로 이동 중 사건이 일어난 편의점에 들렀다. 그러나 이들 고교생들은 맥주와 담배, 과자 등을 그대로 들고 도망쳤으며 일부 학생만 물건 값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종업원 황씨는 “가게를 보던 중 한국말을 하는 학생들이 시끄럽게 떠들더니 그대로 물건을 들고 도망쳤다.” 면서 “‘도둑이야’라고 외치고 공안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출동한 공안 측은 수학 여행단이 타고 있던 버스를 수색해 훔친 1740위안(약 30만원)어치의 물건을 찾아냈다.   이에 인솔 책임자는 학생들이 술에 취해 실수한 것 같다고 사과하고 훔친 물건을 돌려주고 2000위안(약 35만원)에 배상금을 지불했다. 또한 점원 황씨에게도 정신적 피해 보상으로 2달치 월급과 3천위안(약 53만원)을 주고 합의했다. 이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뒤늦게 알려지자 인터넷을 중심으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됐다.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인이 만약 이같은 짓을 벌였다면 조용히 끝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한국 학생들의 수준이 이 정도냐?” 며 비난했다. 한편 집단 절도 사건을 일으킨 고교생의 학교와 신원은 알려지지 않았다.   인터넷뉴스팀
  • 부천 생활쓰레기 시설 100억 소송전

    경기 부천시와 시공사가 생활쓰레기 연료화시설(MBT) 준공 지연 책임을 놓고 법정 다툼을 벌이고 있다. 14일 부천시에 따르면 생활쓰레기를 고체연료로 재활용하기 위한 MBT 공사를 141억원에 발주, 대우건설이시공을 맡아 2008년 12월 착공했다. 2010년 5월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시운전 중 고장이 자주 발생하고 성능이 기대치에 크게 미치지 못하자 보수공사를 거쳐 4년 만인 지난 4월 준공됐다. 이에 부천시는 지난 6월 공사 지연에 따른 배상금 98억원 중 시가 지급하지 않은 공사대금 68억원을 제외한 30억원을 납부할 것을 요구했다. 또 준공 지연으로 쓰레기를 제때 처리하지 못해 발생한 손실보상금 90억원도 부과했다. 하지만 대우건설은 준공 지연에 책임이 없다며 부천시를 상대로 공사대금 미지급금 68억원을 지급해 달라고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제기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부천시와 협의해 지난 4월 최종 준공하게 됐기 때문에 시는 나머지 공사대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는 시정조정위원회를 열어 5명의 고문변호사 가운데 1명을 책임변호사로 선정하는 등 대우 측의 소송에 정면으로 대응하고 나섰다. 시는 오는 21일까지 입장을 정리, 재판부에 제출할 예정이어서 100억원대의 소송전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32) 개항초 희비 가른 ‘소금’

    [선택! 역사를 갈랐다] (32) 개항초 희비 가른 ‘소금’

    ●소금의 격동기 : 쓰러진 사람과 뜬 사람 소금이 넘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소금의 중요성을 잘 모른다. 그러나 60여년 전만 하더라도 소금 1석에 쌀 1석이 맞교환되던 때가 있었다. 소금을 구하기가 어렵고 비싸다 보니 소금에 울고 소금에 웃는 자들이 생겨났다. 특히 구한말은 소금 시장을 둘러싸고 극한 변동이 있었던 시기였다. 개항 이후 일본의 소금과 청나라의 값싼 천일염이 밀려왔고, 일제는 우리나라 소금을 재원으로 하여 식민지 경영 자금을 확보하려 하였다. 이러한 염업사의 격동기는 온몸으로 저항하다 쓰러진 사람과 시류에 편승하여 뜬 사람을 갈라놓았다. 삶의 선택이 자유로운 만큼 역사의 평가가 냉혹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과연 알았을까. ●이토 통감 마차 가로막은 꼿꼿한 소금장수 김두원 1907년 10월 15일자 ‘대한매일신보’는 다음과 같은 기사를 싣고 있다. “원산항에 사는 김두원씨가 일인에게 소금값을 찾으려고 여러 해를 호소하더니 일전에 경시청에 잡히어 갇혔다더라.” 소금값을 받으려는 김두원을 경시청에서 잡아 가둔 까닭은 무엇인가? 김두원은 비록 항일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일제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이었다. 좀처럼 변하지 않고 단단한 육각형의 결정체인 소금처럼 그는 일관되고 굽힘 없이 일제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그 저항 방식은 조선을 집어삼키려는 핵심 인물을 찾아서 호통을 치는 일이었다. 구속되기 불과 3개월 전인 7월 10일에도 그는 오른손에는 직소(직접 호소한다)라고 쓴 종이를, 왼손에는 편지를 들고 초대 통감인 이토 히로부미의 마차 앞을 막았다. 일곱 번이나 시도를 하였지만, 한국통치를 위한 일제의 우두머리 이토 히로부미와의 직접 대화는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환갑을 몇 해 앞둔 노인을 이렇게 꼿꼿한 집념의 사나이로 만든 자는 일본인 사기꾼이었다. 때는 8년 전인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함경남도 원산에서 소금을 대규모로 매매하는 거상이었다. 함경도에도 영흥·문천과 같이 소금 생산지가 있었지만, 원산의 거상들은 경상도를 넘나들었다. 강원도와 영남 일대를 통틀어 최고의 소금 생산지는 경상도의 김해와 울산이었다. 김두원은 이곳에서 소금을 사서 원산에서 파는 방식으로 엄청난 차익을 남겼다. 당대의 소금 시장에서는 파는 자나 사는 자 모두가 신뢰를 기반으로 하였다. 믿음이 한 번 깨진 사람은 다시 상대하지 않았으니 소금 매매는 정말 짜디 짠 상거래였던 것이다. 이런 신뢰의 공동체에 금이 가기 시작한 때는 개항 이후였다. 개항 이후로 일제의 전오염(우리나라의 자염처럼 끓여서 만드는 소금)이 부산과 원산 등 개항지로 유입되었고, 일본인 상인들도 조선의 소금 시장에 직접 나섰다. 속칭 포대가리가 생긴 것도 이때였다. 일본인 상인들은 간수가 많은 일본의 저질 소금을 조선의 가마니에 담은 뒤에 조선 소금이라 속여 팔았다. 이런 일본인들을 믿은 것은 김두원의 큰 실수였다. 1899년 5월에도 김두원은 동해안과 낙동강을 오가면서 소금을 매입하여 한 포구에 모아두었다. 이렇게 모은 소금이 자그마치 1088석이었다. 당시 시세로 따지면 약 5100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다. 이 소식을 들은 기무라라는 성을 가진 일본인 형제가 객줏집에 머문 김두원에게 다가섰다. 고기 절이는 데 소금이 급하게 필요하여 소금값을 후하게 줄 테니 자신들의 배에 소금을 싣고 울릉도까지 가자고 속였다. 보름간의 항해를 거쳐 울릉도에 도착하자 기무라 형제는 김두원에게 소금 짐은 다음 날 하역하고 뭍에 내려 푹 쉬라고 하였다. 순진했던 김두원이 깊은 잠에 든 사이에 사기꾼 형제는 배를 띄워 유유히 동해를 건너 시무라 현으로 사라졌다. 희대의 ‘소금 먹튀’ 사건에 김두원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분통이 터져 참을 수 없었던 그는 조선의 외부대신에게 청원해 보았지만 이미 쇠멸해 가는 조선 정부는 자국민의 피해 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이후 김두원은 직접 일본 정부를 상대로 투쟁을 벌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사기꾼들이 이미 징역을 살고 있고, 소금값을 물어낼 형편이 못 된다는, 어이없는 답변을 내놓았다. 분기탱천한 김두원은 1903년 일본 공사인 하야시를 직접 찾아가서 소금값을 내놓으라고 고성을 질렀다. 인력거를 타고 가다가 놀란 하야시는 그만 종로의 땅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렇게 김두원은 일본 공사뿐만 아니라 조선 통감, 일본 총리, 중의원을 상대로 청원하고 투쟁하였지만, 일제는 소금값을 지불해주는 것이 아니라 구휼금 얼마를 주겠다며 그를 회유하려 하였다. 김두원에게 불쌍한 사람을 돕는다는 구휼금은 가당치도 않은 것이었다. 그는 경시청 총감에게 유명한 말을 남기고 이를 거절하였다. “일본 선박이 홍주군 바윗돌에 부딪혀 파손된 것을 그 바윗돌이 조선에 있다 하여 우리나라 정부로부터 배상금 3000원을 받아가고, 공주군에 있던 일본인이 조선의 군인과 시비하다 구타를 당하였다고 치료비로 5000원을 받아간 즉, 전례와 같이 나의 소금값도 일본 정부에서 물어내는 일이 당연하다.” 참으로 논리정연하고, 당당한 말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장장 20여년에 걸친 배상 투쟁에도 불구하고, 그가 일본 정부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그가 정당히 받아야 할 소금값은 식민지의 역사 속에서 ‘소금이 물에 녹듯이’ 사라져 갔을 것으로 보인다. ●탁지부 대신 고영희, 소금세 높여 염민에 큰 고통 1907년 10월 김두원이 영문도 모른 채 경시청에 잡혀간 이유는 일본 황태자의 조선 방문 때문이었다. 일제는 언제나 그랬듯이 김두원이 황태자의 앞을 가로막고 ‘소금값 배상하라.’고 외칠 것이라 여겼다. 김두원이 일제에 의하여 불법 구금된 동안, 일본 황태자를 극진히 모시고 환영행사를 주관한 자가 있었으니 바로 탁지부 대신 고영희이다. 1849년생인 고영희와 김두원은 서로 나이도 엇비슷했으나 황태자 방문 앞에서 전혀 다른, 반대편의 삶에 서 있었다. 차가운 유치장에서 지내야 했던 김두원에게 그해 10월은 지옥과 같은 반면, 황태자 방문 행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일제로부터 훈1등 욱일대수장(旭日大授章)까지 받은 고영희에게는 천국과 같았다. 1867년 역과에 합격한 고영희는 일제의 부상으로 호기를 맞았다. 1876년 김기수 수신사 일행으로서 일본어 통역을 맡아 일본을 시찰한 이후로 그는 순탄한 등용의 길을 걸었다. 1885년 연천 현감에서 사직하면서 잠시 가시밭을 만나는 듯하였으나 1895년 주일공사로 화려하게 복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고관대작의 지위를 한껏 누렸다. 특히 국가의 재정을 담당하는 탁지부 관리로서 승승장구하였다. 1907년 5월에 출범된 이완용 내각에서 국가 재정을 총괄하는 탁지부 대신에 임명된 것도 그간 쌓아온 탁지부 스펙 때문이었다. 탁지부 대신인 고영희의 주요 임무는 일제가 식민지 재정을 수립하기 위하여 파견한 고문들을 충실히 돕는 일이었다. 그중 하나가 조선의 소금을 가지고 식민지 경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1907년 9월 22일자 ‘대한매일신보’를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명일에 총리대신 이완용, 농상대신 송병준, 내부대신 임선준, 탁지대신 고영희 4대신이 인천 주안리에 나가서 소금 굽는 마당을 시찰한다더라.”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던 친일파 4대신이 당시 한적한 어촌인 인천 주안리에 행차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이 행사를 주관한 자는 탁지부의 고영희와 탁지부 소속의 재정고문이었던 메가타 다네타로였다. 1907년 우리나라의 인천 주안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천일염 시험장이 건설되었다. 수천년간 바닷물을 끓여서 소금을 생산해 왔던 조선에서 바람과 햇볕으로 결정되는 천일염업의 등장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천일염 시험장을 건설한 내막에는 ‘불편한 진실’이 깔렸었다. 일제가 조선에서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재원이었다. 일제는 자국에서 담배, 소금 등의 전매제도를 통해서 침략전쟁의 군비를 마련했고, 식민지 타이완에서도 아편, 소금 등을 전매시켜서 재원을 확보했다. 그런데 이렇게 상품을 전매하여 톡톡히 재미를 본 일제에 늘 위협적인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동아시아를 휘젓고 다니는 청나라의 값싼 천일염이었다. 중국산 천일염에 대항하는 방법은 천혜의 갯벌이 깔린 조선의 서해안에서 직접 천일염을 생산하는 길밖에 없었다. 염화나트륨 함유량이 높은 천일염은 화학공업과 무기산업의 원료가 되었으므로 군사대국을 지향하는 일제에는 반드시 필요한 재료였다. 이때 고영희와 메가타 다네타로는 서로 합심하여 주안에 최초의 천일염전 시험장을 건설함으로써 일제의 고민을 해결해 준 것이다. 또 하나, 고영희는 일제의 의도대로 충실히 소금세를 걷어줌으로써 재원 확보에 도움을 주었다. 일제는 소금세가 궁내부에 귀속되어 왕실의 금고로 들어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조선의 금고를 빼앗기 위해서 먼저 왕실의 금고에 들어가는 소금세를 국가의 금고로 들어가게 했다. 소금세를 많이 매기기 위하여 탁지부를 시켜 염세 규정도 치밀하고 까다롭게 바꾸어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고영희의 취임은 일제에는 희소식이었지만 소금 생산자인 염민들에게 큰 악재였다. 소금세가 갑자기 늘어나자 여기저기서 백성의 시위가 일어났다. 일본 순사들이 염민들을 잡아들이자 대규모 시위가 뒤따랐고, 이내 일본 군인들의 총칼 진압이 시작되었다. 일제와 탁지부의 강압적 소금세 징수로 인하여 결국 수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당했다. ●매국노 고영희 후손, 친일재산 환수 반환소송 나서 고영희는 일제에 수많은 재원을 넘겨 준 덕에 한평생 영화를 누렸다. 탁지부 대신으로서 한일합병조약의 체결에 앞장선 그는 이후 중추원의 고문이 되어 매년 1600원의 연금을 받기도 했다. 1916년 고영희가 사망하자 일제가 준 자작 작위는 장남인 고희경에게 세습되었다. 고영희 집안이 대를 이어서 호의호식할 때 소금장수 김두원은 여전히 소금값을 받지 못하고 허망한 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런데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난해 뜬금없는 소식이 들려왔다. 고영희의 증손자가 국가의 친일재산 환수에 반발하여 반환소송을 냈다는 것이다. 반환 소송이라면 억울하게 1088석의 소금을 일인에게 강탈당한 김두원의 후손들이 일본 법정에 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역사 앞에 부끄러운 자는 떠들고, 당당한 자는 조용하니 세상은 정말 요지경이란 말인가. 유승훈(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
  • 회사돈 횡령해 유기동물 돌본 女, 유죄? 무죄?

    회사돈 횡령해 유기동물 돌본 女, 유죄? 무죄?

    공금 수 천 만원을 횡령해 유기 동물을 돌봐 온 중국의 50대 여성을 두고 처벌여부와 관련된 논란이 일고 있다. 중국 광저우시 일간지인 양청완바오의 보도에 따르면 베이징에 사는 50대 여성 A씨는 2009년 6월부터 2012년 2월까지 재직하던 회사의 공금 22만 위안(약 3870만원)을 횡령해 유기동물을 키워온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A씨는 2003년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딸을 키워왔으며, 평소 동물에 관심과 애정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는 버려진 고양이나 개 등을 쉽사리 지나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오기 일쑤였고, 수용 공간이 부족해지자 매월 800위안의 월세를 내고 유기동물 전용 공간을 마련했다. 70마리가 넘는 유기견과 유기묘가 아플 때마다 동물병원에 데려갔고 이때마다 수 천 위안의 치료비가 소요됐다. 유기동물들을 돌볼 돈이 부족해지자 회사 공금에 손을 댔고 최근 이 사실이 회사 측에 발각되면서 고소를 당했다. A씨의 딸은 어머니가 체포된 뒤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재판비용 및 손해배상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다.”며 “어머니는 매우 착한 사람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선량한 마음으로 한 행동이니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바란다.”며 인터넷에 글을 올리자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이 쏟아졌다. 네티즌들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유기동물들을 돌보느라 한 행동이니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며 돈을 보내기 시작했고, 2800여 명의 네티즌이 모은 성금은 22만 위안을 넘어섰다. 그러나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횡령한 돈으로 무엇을 했든지 간에, 행위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유기동물 보호는 선량한 마음에서 한 행동이지만 법률적 선을 뛰어넘을 정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일부 네티즌 역시 “그 많은 돈으로 동물이 아닌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이들을 도왔다면 좋았을 것”, “마음은 이해하지만 방식은 분명 잘못됐다.”고 비난했다. A씨의 재판 결과는 다음 달 공개될 예정이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부자 아빠… ’ 저자 기요사키 파산

    ‘부자 아빠… ’ 저자 기요사키 파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의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65)가 최근 미국 법원에 기업 파산 신청을 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기요사키가 소유한 기업 중 한 곳인 ‘리치 글로벌’이 지난 8월 20일 미 와이오밍주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다고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리치 글로벌’은 기요사키의 강연을 지원해온 강연 전문업체 ‘러닝 아넥스’와의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2370만 달러(약 263억원)의 배상금을 물게 돼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됐다. ‘러닝 아넥스’ 창업자인 빌 젠커는 “기요사키가 강연료 수입 일부를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않아 소송을 냈다.”면서 “그가 배상금을 물지 않으려고 일부러 파산 신청을 냈다.”고 비난했다.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비록 ‘리치 글로벌’이 파산을 신청했지만 기요사키는 ‘리치 대드’를 비롯 10여개의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개인 자산도 8000만 달러(약 888억원)에 달해 그의 책 제목처럼 ‘가난한 아빠’가 된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선택! 역사를 갈랐다] (29)박영효 vs 유길준(하)

    1895년 봄 동아시아의 국제정세는 요동치고 있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후 시모노세키 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과 랴오둥 반도, 타이완 등을 확보하였다. 그러나 곧 이어 러시아, 독일, 프랑스 삼국의 간섭에 굴복하여 랴오둥 반도를 반환하였다. 이러한 사태의 진전은 러시아가 동아시아 문제에 본격적으로 개입을 시작 하겠다는 것과 일본이 아직 그에 맞설 만한 힘을 갖지는 못했다는 것을 확실하게 노출했다. 이러한 정세의 변화는 조선의 왕실과 개혁관료들이 힘을 합하여 일본의 간섭을 배제한 근대개혁도 가능한 상황이 왔음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이 택한 방법은 왕실을 무력화시키거나 일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왕실의 반격으로 박영효와 유길준은 권력에서 쫓겨나 오랜 일본 망명생활을 했다. 박영효는 삼국간섭 이후의 정세변화를 이용하여 일본 측의 반대에도 김홍집을 총리대신에서 몰아냈다. 그리고 박정양, 이완용과 같은 친미근왕적 관료들과 함께 박정양-박영효 연립내각을 출범시켰다. 한편, 일본이 강요했던 차관교섭에 대해서도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히고 있었다. 이때 박영효는 왕실과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개혁을 주도할 기회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그는 조선협회를 조직하여 개화세력의 정치조직화를 시도하기도 하였다. ●박영효, 왕실 무력화 계획 드러나 ‘몰락’ 그러나 여기서 그는 과욕을 부리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1895년 6월 말 박영효는 당시 궁궐을 지키던 시위대를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던 훈련대로 교체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왕실마저도 자신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던 것이다. 고종은 이를 단호하게 거부하였으나 박영효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모종의 과격한 조치’를 취하려 하였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최소한 무력으로 왕실을 제압하고 왕비를 폐비시키는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사전에 일본인 장사의 편지가 유길준에게 입수되어 고종에게 보고되었고, 7월 6일 궁정회의를 통해 박영효의 체포가 결정되었다. 결국, 박영효는 일본 공사관의 협조를 얻어 다시 일본으로 망명하였고 하늘을 찌르던 그의 권력은 8개월 만에 좌절되고 만다. 이후 왕실은 본격적으로 왕권 회복을 시도하였다. 근왕세력들을 내각에 포함하는 한편, 유길준을 의주부 관찰사로 좌천시켰다. 왕실 측근 홍계훈을 훈련대 연대장에 임명한 것도 일본의 지휘를 받는 훈련대를 장악하려는 시도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은 보호국화 정책을 포기하는 대신 무력을 이용한 권력의 재탈환을 위해 외교 경험이 전무했던 군 출신의 미우라 고로를 공사로 파견했다. 그가 중심이 되어 일본군과 민간인이 주도하고 조선의 훈련대가 협력하여 왕비를 시해하고 김홍집-유길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한 것이 바로 을미사변이었다. 유길준이 여기에 직접 개입했다는 흔적은 찾기 어렵지만, 그는 왕비를 폐서인시키는 일에 앞장서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이 사건과 관계가 없다고 정당화시켜 주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왕비를 ‘세계 역사상 가장 나쁜 여자’라고 하면서 시해를 정당화하는 편지를 미국의 모스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이런 점에서 그는 왕비 시해사건의 방조자로서 공범이나 다름없었다. ●유길준, 단발령 반대 의병운동 부딪쳐 ‘추락’ 이후 유길준은 내부대신으로서 김홍집 총리대신과 버금가는 권력을 누리며 개혁을 주도하여 이 시기를 김홍집-유길준 내각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불과 1년 만에 주사에서 대신으로 파격적인 승진을 하였다. 그러나 그가 주도했던 단발령의 시행은 결국 갑오개혁은 물론 그 자신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단발령에 반대하여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유길준은 한성을 수비하고 있던 병력을 지방으로 출동시켜 진압하려고 하였다. 이 상황을 이용하여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일어난 것이었다. 유길준은 체포의 위기에서 겨우 벗어나 일본으로 망명길을 떠났다. 결국, 박영효를 왕실에 고발하여 몰락시킨 유길준은 왕실에 의해 자신도 역시 몰락하고 말았다.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일본 망명 시절에도 계속해서 정변을 일으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당시 일본 측 정보문서에 의하면 두 사람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유지하였다. 이들은 고베에서 회동을 한 적이 있었으나 망명 기간 내내 별개로 활동하였다. 박영효는 독립협회 활동을 이용하여 권력을 되찾으려 시도하였다. 그는 핵심 측근세력을 귀국시켜 만민공동회를 과격화하고 이를 통해 조성된 정치적 위기를 틈타 정권을 장악하려 시도하였으나 일본정부의 제지로 실패하였다. 이때 독립협회 내의 추종세력들이 중추원에서 투표를 통해 대신으로 임명할 만한 인물을 추천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박영효가 포함돼 있었고 이는 그동안 참고 있었던 고종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 고종은 결국 군대를 동원하여 만민공동회를 해산시키고 말았다. 한편, 유길준은 박영효와 별개로 일본 육사에 유학했던 장교들을 통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혁명일심회 사건을 주도하였다가 1902년에 발각되었다. 이로써 그는 일본의 외딴섬에서 유배생활을 4년 정도 경험해야 했다. 고종은 망명자들을 소환하기 위해 여러 차례 교섭을 벌였으나 일본은 고종의 요구에 응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이용해 고종이 추진하는 자주적 개혁에 제동을 걸었다. 두 사람은 모두 대한제국이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이후에도 바로 돌아오지 못하다가 1907년 고종의 강제퇴위를 전후하여 일본의 주선으로 귀국하였다. 박영효는 고종의 강제퇴위 이전에 1907년 6월 비밀리에 귀국하였는데 이토 히로부미가 그의 특별사면을 주선하여 이완용 내각의 궁내부 대신으로 복귀했다. 하지만, 그는 이완용을 암살하려 했다는 이유로 제주도 유배생활을 하기도 했다. 강제병합 후 박영효는 후작 작위를 받고 조선귀족회 회장이 되었으며 일제의 지배 아래서 대표적 친일파로 활동하다가 1937년 79세로 생을 마쳤다. 한편, 유길준은 고종이 강제로 퇴위된 이후인 1907년 8월 순종의 특사령에 따라 귀국한다. 그는 귀국 후 일본이 보호조약을 맺은 진의는 평화에 있고, 대한제국이 자초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리고 통감정치는 한국외교의 대변이며 내정의 지도라고 옹호하였다. 또한, 헤이그 특사사건은 경거망동이었고 의병운동은 시국을 오해한 오합지졸이라 비난하였다. 그는 철저히 일본의 통감정치에 협력하였다. 유길준은 다시 관직에 나가지 않고 계몽활동에 주력하면서 친일적 활동을 계속하였다. 한성부민회를 조직하여 일본 통감의 부임 환영행사에 학생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안중근에 의해 이토 히로부미가 사살되자 이완용 등과 함께 중국까지 가서 조문하였고, 이토의 국장에 참석하기 위해 도쿄까지 찾아갔다. 하지만, 그는 대한제국이 강제병합을 당한 후 주어진 작위를 반납하였다. 그가 지향한 것은 일본의 지도로 자강을 이룩하는 것이었지 식민지배까지 원한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1914년 59세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나마 부끄러움을 알았던 그의 처신은 오늘날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 결과로 나타났다. ●朴 끝까지 친일·兪 식민지배 반대 박영효와 유길준 두 사람은 당대에 가장 깊이 있는 문명개화론을 바탕으로 갑오개혁을 주도했던 개화파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막상 현실개혁을 주도했던 시기는 각각 1년 내외에 불과했고 나머지 세월은 대부분 망명과 유배생활로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권력의 핵심에 서게 된 것도 일본의 절대적 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일본을 모델로 근대국가를 수립하려고 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왕권과 대립하게 된다. 그 이유는 명목상의 군주였던 일본의 천황과 달리 조선의 국왕은 국가권력의 실체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왕권을 조선 근대화의 걸림돌로 생각하여 끊임없이 무력화시키려 하였고 전복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힘에 의존하여 왕권을 제약한다는 것은 곧 일본의 침략이 확대됨을 의미했다. 따라서 그들의 개혁시도는 친일매국으로 치부되었고 몰락을 초래했던 것이다. 당시 대한제국이 자주적 근대국가를 수립하여 국권을 유지한다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따라서 왕권과 개혁관료들이 일치단결하여 외압에 맞서면서 근대개혁을 추진하였다 해도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박영효와 유길준은 서로 끊임없이 반목하면서도 공통으로 왕권과 대립하고, 일본에 의존한 근대개혁을 선택하였다. 그 결과는 대한제국의 개혁사업 실패와 보호국화 그리고 식민지로 전락하는 역사를 가져왔다. 근대지상주의가 민족의식과 유리되었을 때 국가는 물론 개인들에게 어떤 비극이 나타나는지를 박영효와 유길준의 삶이 잘 보여주고 있다. 주진오(상명대 역사콘텐츠학과 교수) 서울신문·푸른역사 아카데미 공동기획
  • [美법원서 날아 온 낭보 2제] 램버스와 싸움… SK하이닉스 일단 웃고

    SK하이닉스가 미국의 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인 램버스와의 특허 소송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 연방지방법원은 지난 21일(현지시간) 램버스가 소송 증거자료 파기 행위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하이닉스가 램버스에 지급해야 하는 로열티에 관한 모든 증거를 기록에서 삭제하라고 판결했다. 로널드 M 화이트 담당판사는 2009년 1심에서 램버스가 받기로 한 약 3억 9700만 달러(약 4430억원)의 로열티가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액수를 초과했다.”며 하이닉스와 램버스 양측에 로열티를 다시 책정하기 위한 제안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는 램버스가 특허를 침해당했다며 관련 업체를 잇따라 제소하자 선제 대응하는 차원에서 2000년 8월 새너제이 법원에 램버스 특허에 대한 비(非) 침해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09년 3월 법원이 하이닉스에 3억 9700만 달러의 손해배상금과 로열티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리자 하이닉스는 즉각 고등법원에 항소했다. 결국 고등법원은 지난해 5월 램버스의 소송 증거자료 파기 행위가 불법이라고 판결하며 사건을 1심으로 파기환송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프랜드’ 조건에 따라 인피니온과 엘피다, 삼성전자가 램버스에 지불하는 로열티 수준으로 결정될 것으로 보여 SK하이닉스의 손해 배상금은 원심 결정보다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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