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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책 어때요/공자의 식탁-4000년 중화요리 역사 탐구

    ‘땅에서 네 다리 달린 것 가운데 안 먹는 것은 책상이요,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가운데 안 먹는 것은 비행기 뿐’이라는 중화요리.그 종류는 5000종,역사는 4000년에 이른다.이 책은 중화요리가 중국의 풍토,왕조와 지배민족의 잦은 교체에 따라 어떻게 변모해 왔는가를 살핀다.공자는 뭘 먹었을까. 황제가 하늘에 바치던 제물이자 일상적으로 먹던 육류인 개고기가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중화요리의 진수 상어 지느러미 요리가 산해진미가 총등장하는 소설‘홍루몽’엔 왜 나오지 않을까 등의 테마가 흥미롭다. 1만1000원.
  • 北 이산가족 상봉후보자 명단/ 서울·인천

    ●강대진 남,69,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박순이(어머니),대숙·대성·대표·대선(형제)●김건태 남,72,서울시 종로구 사간정 10번지,인순·규태·병태·덕순·영자(형제)●김광보 남,62,서울시 마포구 중림동,광훈·광유·광선·경자(형제)●김용휘 여,73,서울시 종로구 안국동,용훈·석순·용성(형제)●김정례 여,68,서울시 황금정 7정목,정렬·정길(형제)●김정순 여,65,서울시 중구 태평동 1가,한영희(어머니),정숙·의환·영환·서환·종환(형제)●리덕임 여,68,서울시 성북구 돈암동,준히·성임·명자(형제)●리봉태 남,72,서울시 마포구 마포동 68번지,근숙·근태·은태(형제)●리영재 남,71,서울시 종로구 종로1가동,정재·은재·화재(형제),정임숙(형수),배민자(제수),강하(삼촌),최봉섭(숙모),남재(사촌)●리홍구 남,70,서울시 영등포구 흑석동,각주·완구·순구·충구·정구(형제)●박상설 남,70,서울시 종로구 경운동,성은(형제),전순학(매부),전애자(조카)●박태윤 남,69,서울시 중구 태평로 1가,태원·태희·태임·태한·태순·태종(형제)●박충원 남,69,서울시 종로구 재동 72번지,정원(형제)●안혜승 여,68,서울시 종로구 사직동,리임희(모),안욱(형제),리해영·리송자·일승·옥승(이복형제)●오학배 남,68,서울시 동대문구 숭인동,현배·선희(형제),송옥남(계수),영진·성진(조카)●최기영 남,74,서울시 중구 을지로 5가,기숙·기동·기삼(형제)●최정심 여,67,서울시 마포구 현석동,영학·치자·영자(형제)●황경순 여,63,서울시 마포구 아현동,기용·덕영(형제)●리철수 남,73,인천시 화수동 32,철환·옥자(형제),채분(고모)●리창민 남,75,인천시 부평구 갈산동,허순덕(아내),복자(자),창배·창자·창제(형제)●신용철 남,71,인천시 동구 화수동,리순애(아내),신달순(사촌)
  • [음악] 최현수 ‘겨울 나그네’ 전곡무대

    바리톤 최현수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를 부른다.9일 낮12시여의도에 있는 영산아트홀이다.‘방송음악의 한국화’를 추구하는 KBS 제1FM의 ‘KBS음악실’이 매달 한차례씩 공개방송 형식으로 마련하는 ‘정오 음악회’프로그램의 하나인만큼 연주실황이 그대로 생중계된다. 최현수는 잘 알려진대로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우승함으로써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한국의 대표적인 성악가.전곡 연주에 80분 안팎이나 걸리는 ‘겨울나그네’는 적지않게 부담스러운만큼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써온 일본말 번역 가사를 이번에는 버리고,‘KBS음악실’담당작가가 새로 번역한 가사를 선보일 예정.전곡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 중간중간 이영조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의 해설도 곁들인다.피아노는 독일 칼스루에음대 대학원에서 가곡반주를 전공한 배민수. 초대권은 KBS본관 2층 시청자상담실(02-781-1300)과 영산아트홀 매표소(02­761-1587)에서 무료로 나누어준다. 서동철기자 dcsuh@
  • 司試 최종합격자 명단

    가영현 강경표 강길연 강남수 강대권 강동원 강동혁 강명수 강민성 강범구강석원 강석훈 강선령 강성모 강성용 강승희 강영신 강용섭 강윤미 강인규강인석 강재원 강정재 강종률 강주헌 강지현 강태헌 강 한 강현구 강희석 고경단 고성규 고영신 고용기 고은설 고창우 고필형 고형곤 고환경 공태구공태용 공호선 곽원곤 곽윤경 곽지환 구민승 구승모 구자승 권 규 권대식 권순열 권영국 권영빈 권영식 권오성 권용일 권재칠 권재환 길기관 김강산김경준 김경진 김경희 김관영 김규혁 김균태 김기태 김길량 김남호 김대욱김대현 김덕곤 김도완 김도요 김동아 김동원 김명수 김명종 김민규 김민형김배정 김보성 김보현 김봉선 김봉현 김상규 김상연 김상일 김석담 김석범김석수 김석현 김성동 김성욱 김성주 김성진 김성흠 김세용 김세한 김소영김소원 김수엽 김수정 김수현 김 신 김신희 김애영 김양진 김양훈 김영규 김영기 김영만 김영숙 김영일 김영주 김영훈 김영희 김용두 김용수 김용재 김용택 김우석 김원학 김원형 김유랑 김윤희 김윤희 김은심 김의래 김의환김인숙 김일순 김재식 김재하 김정곤 김정길 김정수 김정아 김정현 김정화 김종민 김종복 김종철 김종호 김종훈 김주석 김준형 김준호 김지연 김지혜 김진선 김진우 김찬겸 김창진 김채윤 김태관 김태균 김태선 김태완 김태호 김평수 김평호 김학성 김학웅 김한규 김한조 김 현 김현섭 김현성 김현옥 김현철 김현철 김형록 김형석 김형완 김형욱 김형원 김호삼 김호진 김훈장 김희경 김희철 나상훈 나창수 남기욱 남기헌 남선미 남승한 남태우 노미은 노진영 노현미 도규창 도춘석 류경진 류국량 류동호 류석환 류승필 류정석 문건영 문경식 문상석 문성윤 문양수 문영권 문형승 문홍주 민경철 민소영 민지현 민진국 민창식 박갑동 박강균 박계덕 박광직 박광현 박권의 박금낭 박노수 박노창 박덕희 박미화 박민재 박사랑 박상길 박상용 박상진 박상호 박상화 박성민 박성윤 박성준 박성준 박성준 박성훈 박세진 박승헌 박신호 박영욱 박영운 박영재 박영진 박재현 박재형 박정대 박정삼 박정해 박정호 박정희 박종범 박종수 박종태 박종훈 박종흔 박주현 박준연 박준오 박준현 박준희 박지연 박지환 박진웅 박진현 박진홍 박찬석 박창수 박철규 박치범 박태기 박태원 박태호 박하영 박혁수 박현민 박현수 박현주 박현철 박혜경 박혜준 박홍규 박흥준 배민경 배상근 백대용 백상우 백수회 백승복 백승재 백영화 백중현 백진규 변대중 변옥숙 변희경 부상일 서문채 서병률 서봉조 서봉하 서수정 서영효 서인선 서정민 서정식 서정원 서창원 서향희 석준협 선구완 설광호 성소영 성종규 소병진 소정임 손영은 손용진 손우근 손우창 손지혜 손한규 송각엽 송난근 송대한 송민경 송영승 송영욱 송중호 송진호 송호창 신동영 신명희 신미용 신민우 신보섭 신성희 신신호 신용무 신재환 신종수 신태호 신희철 심규황 심보문 심영진 심정희 심주은 안병수 안선영 안영은 안찬식 안창삼 안창주 안철현 안효상 안희길 양동운 양민호 양성태 양승은 양진호 양환승 엄기표 엄 철 여운승 오동균 오민석 오성욱오세영 오연수 오영상 오원찬 오인섭 오재길 오준화 오창섭 오창윤 오치석오해진 오현석 옥창식 왕해진 우양태 원종찬 위대영 위은진 유동규 유정호유창식 유천열 유현재 유현정 유희선 윤강식 윤경원 윤기창 윤대영 윤병준윤상구 윤석진 윤성인 윤성일 윤성현 윤신승 윤영환 윤용준 윤재남 윤정인윤중현 윤춘주 윤학채 윤홍배 이건령 이경권 이경석 이경아 이경희 이계정이광민 이광숙 이광우 이광진 이광훈 이규영 이규호 이규훈 이근영 이기영이덕진 이덕환 이덕희 이도형 이도형 이동렬 이동욱 이동욱 이동재 이동헌이문세 이미화 이민종 이병욱 이병일 이병주 이병주 이병창 이병희 이봉수이상권 이상묵 이상아 이상원 이상헌 이상형 이상호 이석재 이선혁 이성일이성호 이성환 이세영 이세진 이세창 이소영 이소희 이 순 이순자 이승수 이승준 이승호 이여진 이연주 이영남 이영진 이영철 이예슬 이완형 이용운이은정 이인재 이재권 이재범 이재성 이재숙 이재훈 이정구 이정규 이정수이정원 이정형 이정호 이정환 이정훈 이정희 이제식 이제혁 이종순 이종운이종찬 이준범 이준식 이준영 이지선 이지철 이진수 이진우 이진욱 이진호이창경 이창섭 이창열 이창우 이창현 이창현 이철호 이충우 이탁헌이태일이한진 이현석 이현아 이현정 이형걸 이형석 이홍배 이홍원 이홍주 이화종이환기 이효진 이흥우 이흥주 임경섭 임광호 임대호 임상준 임성실 임성훈임소연 임수현 임승철 임영심 임우석 임정근 임주용 임주혁 임준환 임창국임치영 임혜진 장경수 장래아 장선영 장성학 장성훈 장수영 장윤선 장은용장재혁 장정애 장정언 장준희 장현우 장호재 전경능 전무곤 전성한 전영준전완규 전재혁 전준철 전현민 전현철 전형배 전호성 정경일 정경진 정광일정남기 정다주 정동원 정동혁 정두성 정민성 정병운 정병원 정봉기 정상진정상철 정새봄 정성균 정성원 정수근 정수연 정수용 정승일 정영태 정영훈정우식 정욱도 정원일 정유철 정은숙 정인섭 정일배 정재웅 정재훈 정재훈정재희 정종국 정찬삼 정찬우 정 철 정철승 정해영 정현석 정희도 제갈창 조동현 조명순 조범제 조병학 조성천 조수정 조영봉 조영선 조영수 조용래조용훈 조원경 조장혁 조재돈 조정희 조찬만 조홍래 조효정 주강원 주경태주진우 주진태 지귀연 진정길 진철민 진형혜 차순길 채규달 채성용 채인경채정원 채형석 채휘진 천관영 최계영 최광업 최두천 최문환 최민호 최병선최보영 최상종 최성수 최성일 최수진 최승욱 최애숙 최우진 최웅선 최윤상최윤정 최윤철 최재원 최정미 최정식 최종구 최종진 최지석 최지선 최진복최진영 최찬욱 최철민 최춘구 표극창 표종록 하신욱 한낭규 한명옥 한상인한상호 한원교 한정석 한종훈 해덕진 허금탁 허인석 허 정 현두륜 현의선 홍보가 홍성원 홍성탁 황금천 황선웅 황성조 황성택 황인영 황정엽 황희석
  • [義烈 독립투쟁] (1-1) 역사적 의의와 성과 전문가 좌담

    대한매일은 광복 54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에 의열투쟁에 몸바친 의사·열사들의 독립투쟁 활약상과 애국정신을 되새기는 ‘의열 독립투쟁’을 주간 특집기획물로 연재한다.의열투쟁은 주로 개인차원에서 전개됐으나 중국의 장개석이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두고 ‘중국 군인 30만이 못하는 일을 고려청년한 사람이 해냈다’고 할 정도로 그 성과는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의·열사가운데 상징적인 몇 분을 제외하고는 낯선 이름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연재에 앞서 전문가 좌담을 통해 의열투쟁의 의의,성과 등을 짚어보기로 한다. 김삼웅 주필 지난해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꾼 이래 민족사 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본지는 친일파들의 반민족행위를 고발한 ‘친일의 군상’에 이어이번에 새로 일제강점기 의열투쟁에 몸바치신 의사·열사들의 일대기와 항일정신을 되새기는 연재물을 기획하였습니다.그동안 이 분야에 대한 학계의 연구성과는 더러 있었다고 생각됩니다만 언론매체에서 이를 집중 조명한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이번 좌담모임은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의열투쟁사 연재에 앞서 의열투쟁의 성과나 역사적 의의 등을 짚어보기 위해 마련하였습니다.먼저 역사학계에서 내리고 있는 의사·열사의 용어 정의부터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동양의 고전에서는 열사는도덕적 행위,의사는 사회적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조동걸 교수 우선 ‘의열투쟁’이라는 용어나 개념은 1975년 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에서 ‘의열투쟁사’를 편찬해낸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의·열사를 정의한 것을 보면,의사는 ‘정의를 위해 목숨을 던져 행동으로 실천한 분’으로 대표적으로 안중근,윤봉길 의사같은 분을 들 수 있겠지요.반면 열사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자결로 저항한 분’으로 이준 열사가 대표적인 분이라고 할수 있죠. 채영국 연구원 의·열사 구분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보이는 특이한 형태가 아닌가 합니다.중국에 갔을 때 ‘혁명열사기념탑’ 같은 것은 봤습니다만 ‘의사’라는 용어는 거의 사용치 않는 것으로 압니다.두 용어를 구분하는것은 우리만의 특이한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신용하 교수 의암 유인석 선생이 선비의 저항정신으로,첫째 무기를 들고적과 싸우는 유형,둘째 외국으로 망명,몸을 깨끗이 보존하는 유형,셋째 국내에서 자결,자정(自靖)하여 지조를 지키는 유형 등 세 유형을 들고는 그 가운데서 가장 바람직한 것은 첫번째 유형이라고 하였습니다.바로 이 저항정신이 의·열사의 정신으로 계승됐다고 봅니다.그 중에서도 의사는 개인차원이나혹은 집단적으로 특공작전을 한 분으로 개인 차원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안중근 의사를,집단적인 차원으로는 의열단,한인애국단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김 주필 그러면 이같은 의·열사들의 의열투쟁은 언제,무슨 사건을 계기로 시작됐으며 어떠한 행태를 띠고 있었는지,또 의병과는 어떤 점에서 차이가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어떤 책에서는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격분을 참지 못해 현지에서 자결한 주영공사 이한응(李漢應)선생의 순국을 의열투쟁의 효시로 보는 견해도 있더군요. 조 교수 1904년 ‘한일의정서’가 체결된 이후부터 의열투쟁이 산발적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습니다.의열단체로는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이후에 등장한 ‘오적(五賊)암살단’이 최초라고 봅니다.본격적으로 의열투쟁은 1908년 전명운·장인환 의사의 친일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한 것이며 본 궤도에 오른 것은 아무래도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부터라고 봅니다. 신 교수 의열투쟁의 계보는 1906년 나철(일명 나인영)·오기호(일명 오혁)등이 ‘오적’ 암살을 모의한 것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물론 이들의 오적 처단계획은 도중에 발각돼 좌절됐지만 이를 계기로 1909년 민족종교인 대종교가 탄생하였죠.전명운·장인환 두 의사의 의거는 국내의 민족지 ‘대한매일신보’는 물론 미국 신문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돼 당시 세계적인 반향을불러 일으켰습니다.흔히 일제하 의사들의 의거를 ‘테러’로 규정하는 경우가 없지 않은데 이는 옳지 못하다고 봅니다.왜냐하면 제국주의 하에서 약소민족이 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행한 의열투쟁은 일종의 ‘특공작전’으로 봐야한다고 봅니다. 조 교수 미국이나영국 같은 나라들이 약소국의 그런 행위를 ‘테러’로규정하는 것은 온당치 못합니다.미군의 OSS작전 같은 것도 그렇게 따진다면‘테러’지요.주임무가 주요기관 파괴·요인 처단 아니었습니까? 채 박사 의열단이나 한인애국단의 ‘선언서’나 ‘격문’ 등에 나타난 의열투쟁 정신은 근본적으로 생존권 획득과 인류의 자유·행복추구를 목적으로 했다는 차원에서 피지배민족으로서는 정당한 투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제가 한국인 독립운동가를 ‘불령선인(不逞鮮人)’이라고 불렀듯이 우리입장에서 보면 일제는 ‘강도(强盜)’나 다름없었지요. 김 주필 일제하 의열투쟁은 개인차원에서 결행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독립진영에 미친 그 성과는 대단했다고 생각됩니다.안중근 의사의 의거나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요.의열투쟁의 전개양상과시기별 특성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신 교수 무기를 사용한 의열투쟁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으며 ▲전쟁적 성격 ▲유격전 성격 ▲특공작전 등 세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의병전을 전면전이라면 유격전은 전쟁중 적을 기습공격한 후 재빨리 빠져나와 계속 작전을 하는 방식입니다.반면 특공작전은 강대한 적의 목표물을 공격,치명타를 입힌 후 특공대원 자신도 자폭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조 교수 의열투쟁의 원칙 가운데 하나가 특공대원 자신의 죽음을 전제로결행한다는 신 교수의 주장에 동의합니다.반면 일제말기 ‘가미가제(神風)’의 경우 자기의 의사와 무관하게 죽음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이는 학살로 봐야 한다고 봅니다. 신 교수 의열투쟁의 경우 거사의 성공여부에 관계없이 효과가 있다는 점이 또 하나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여러 의사 가운데는 의거에 성공한분도 있지만 더러는 사전에 정보가 누설돼 거사 전에 좌절됐거나 또 거사는결행했지만 실패한 분들도 있습니다.그러나 ‘살신성인’의 정신은 어느쪽할 것 없이 모두 파급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채 박사 1910년대에 작성된 한 문건에 따르면,안중근 의사의 의거 이후 간도지역에서는 조선동포들이 안중근 의사의 위패를 만들어 모시고 아침 저녁으로 절을 하면서 신(神)처럼 받들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시기별 의열투쟁의 특징으로는,우선 1910년 경술국치 이전에는 대개 ‘국권수호’를 내걸었습니다.1910년대의 의열투쟁은 의병의 세력이 쇠퇴한 상황에서 만주에서 의열투쟁을 준비한 기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본격적인 의열투쟁은 1920년대 들어 의열단 결성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3·1의거후 고조된민족의식과 의열투쟁의 여건이 성숙됐기 때문으로 분석됩니다.독립운동이 전반적으로 침체기에 있던 1930년대에는 중국을 무대로 활동한 임시정부 산하한인애국단의 활동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겠죠. 김 주필 끝으로 의열투쟁이 독립운동사 측면에서의 의의나 평가 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일제강점기를 통틀어 보면 의열투쟁은 독립운동이 침체기에 빠져있거나 또는 일제의 통치가 전환점을 맞을 때마다 주로 터져나왔습니다.이로써 일제에게는 큰 타격을 준 반면 우리 민족진영에는 활력과 생명력을 불어넣는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보여집니다. 조 교수 일제하 독립운동은 처음에는의병이나 계몽운동의 형태로 출발했다가 점차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는데 의열투쟁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그런데 의열투쟁은 개인차원의 독립운동치고는 성과가 컸고 또 다른 형태의 독립운동에 활력을 제공하였다는 점에서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독립운동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후 외국인들이 한국인을 가리켜 ‘안중근과 같은 나라 사람’이라고 부른 경우라든지 또 윤봉길 의사의거후 중국의 장개석 정부가 임정을 주목,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수 백명이 일본군과 맞서 싸운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큰 것이었지요.백범김구 주석이 환국후 그 복잡한 정치상황 하에서도 의·열사들의 유해봉환을중대사업으로 취급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 교수 안의사와 윤의사 두 분의 의거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안의사가이토(伊藤博文)를 처단한 후 일본과 러시아의 만주분할 계획이 좌절되자 중국의 언론과 지사들은 안의사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였고 이것이 인연이 돼만주와 중국땅이 우리 독립운동가들의 활동무대가 됐습니다.또 ‘만보산사건’으로 생겨난 한·중 간의 적대감은 윤의사의 의거후 곧바로 봄눈 녹듯이사라지고 말았으며 당시 장개석은 ‘30만 중국군대가 못한 일을 고려청년 한 명이 해냈다’며 극찬했습니다.‘김구-장개석회담’이 바로 윤의사 의거 직후에 처음으로 성사됐으며 중국측의 지원도 이 때부터 공식 시작됐지요.제국주의자들의 이론을 극복하고 의열투쟁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이론정립이필요하다고 봅니다. 김 주필 일제하 선열들의 의열투쟁정신은 해방후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일부 계승된 점도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은 요즘과 같은 어려운 시기일수록 의열투쟁의 정신이 더욱 값진 교훈으로 다가온다고 하겠습니다.오늘 좌담에 참석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정리=정운현기자 jwh59@
  • 장애인·홀로노인에 ‘민원택배제’

    관악구(구청장 金熙喆)는 장애인과 홀로사는 노인등을 위해 ‘민원택배제’를 시행한다. 장애인,홀로사는 노인,소년소녀가장 등 5,098명을 대상으로 하며 구청,동사무소,보건소 등에서 발급하는 22종의 서류가 해당민원이다. 민원인이 전화 또는 구두로 구청 동사무소 보건소 등에 민원서류 발급을 신청하면 해당기관에서는 서류를 발급,동사무소로 보내고 동사무소에서는 행정차량으로 하루 2회씩 지역을 돌며 배달해준다.비용은 무료이며 수수료만 내면 된다. 구는 민원택배제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각 동사무소에 택배민원담당자를1명씩 지정하고 택배민원처리부를 비치해 배달여부를 확인하도록 했다.
  • “강간이 전쟁무기로 널리 이용”/유엔 전시 성범죄 보고서

    ◎정책수단으로 허용… 군서 조직적 자행 여성들에 대한 강간이 전쟁의 무기로 널리 이용되고 있으며 이같은 강간은 인류에 대한 범죄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2일 제네바에서 발표된 유엔 보고서가 밝혔다. 유엔이 전시 성범죄 특별 조사관으로 임명한 미국의 린다 차베즈여사는 27쪽짜리 보고서를 통해 특히 전시중 많은 경우 군인들에게 강간을 허용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조직적인 강간이 「정책의 한 수단」이 되어왔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특히 무력 분쟁지역에서 여성에 대한 강간이 조직적으로 나타나 전 유고연방,르완다,아이티,페루 및 방글라데시와 이라크의 점령하에 있던 쿠웨이트에서 광범위하게 저질러졌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전 유고 연방에서 지난 92∼94년 사이 최고 2만명의 부녀자들이 강간을 당했다고 밝히고 여성을 강제 임신시키는 것이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의 인종청소 정책의 중요 요소」였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르완다에서는 군인과 민병대원들이 가택,병원 및 집단수용소 등을 뒤지고 다니며 여성들을 찾아 내어 집단적으로,그리고 때로는 공개 장소에서 강간을 자행했다고 밝혔다.희생자가운데는 5살의 어린 소녀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고서는 덧붙였다. 보고서는 또 2차 대전중에는 약 20만명의 여성이 일본군의 「위안부」 역할을 강요 당했으며 독일군은 「그들의 지배민족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고 열등 국민을 파괴하기 위해」 강간을 이용했다고 밝혔다.〈제네바 AP DPA 연합〉
  • 재외문화재 반환돼야 한다/황규호 문화부 부국장급(오늘의 눈)

    우리의 문화재가 해외에 많이 나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그러려니는 했지만 문화체육부가 최근 파악한 해외소재 문화재 실태(서울신문 2월14일자 2면보도)는 충격을 안겨준다.자그마치 6만4천8백여점이 귀환의 기약도 없는 타국살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우리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이른바 해외유출문화재라는 미명을 쓰고 남의 나라 박물관이나 개인 수장고 속 깊이 갇혀있다.모두가 정중한 예우를 받고 자연스럽게 건너간 것이 아니다.대부분 정당한 절차가 무시된 채 해외로 흘러들어갔다.다시 말하면 눈을 부라린 강자의 약탈문화재가 상당량을 차지하기 때문에 곱게 가져간 물건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일찍이 식민지를 거느리고 열강의 위세를 떨쳤던 국가들은 피지배민족의 문화유산을 약탈하는데 서슴지 않았다.문화재 약탈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할 수 있다.남의 민족의 거대한 석조신전까지 자국의 박물관으로 옮겨 복원해 놓았을 정도니까….그러고 보면 자그마한 유물들을 약탈한 것은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이 박물관은 현재 우리 문화재 4천여점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해외소재 문화재 이야기만 나오면 우리는 우선 일본을 주목하게 된다.무력으로 한반도를 강점,36년동안 잔혹통치를 해온 일본이야 말로 한국문화재 최다보유국이다.이번 문체부 실태파악에서도 일단 2만9천6백여점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되었다.그러나 실제는 그 보다 훨씬 많은 5만여점을 상회한다는 것이 학계의 추정이다. 문체부는 이번 실태조사 수치를 근거로 약탈문화재와 비약탈문화재를 분류할 계획이라고 한다.분류 결과가 나오면 그 실상이 밝혀지겠지만,일본쪽으로 많은 문화재가 약탈되었다.1910년대 경주군청에 근무한 주임서기 기무라(목촌정웅)의 상부 보고문서는 이같은 정황을 잘 전해주고 있다.「석굴암 이감불이 일본으로 들어갔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일본은 한일협정에 따른 「문화재반환과 문화협력에 대한 합의사항」가운데 문화재부문에는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우리가 청구한 문화재의 44%를 겨우 돌려주었을 뿐이다.그나마 권고사항으로 명문화 한 개인소장품 반환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강제 반출된 문화재를 불법으로 보는 유네스코의 협약이 있기는 하나 일본은 물론 프랑스와 영국도 미가입국으로 남아 있다. 이제라도 약탈국은 제국주의적 패권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그리고 「본래의 자리에 있을 때 정당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문화재 존재개념을 인식해주기 바란다.
  • 사법부 거듭나기 “몸부림”/소장판사 28인 「성명」왜 나왔나

    ◎“과거청산 통한 개혁이 급선무” 인식/「정치판사」 문제등 싸고 갈등증폭 우려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 28명이 30일 사법부의 진정한 개혁을 촉구하는 강도높은 성명서를 발표,법조계에 커다란 충격과 파문을 을 던져주고 있다. 일선에서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소장판사들의 이번 집단의사표시는 지난 71년 서울형사지법 이범렬부장판사 구속을 둘러싸고 검찰과의 미묘한 갈등에서 빚어졌던 「제1차 사법파동」과 88년 김용철대법원장의 사퇴를 몰고온 「제2차 사법파동」에 이어 「제3차 사법파동」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장법관들이 발표한 성명은 또 법원수뇌부를 비롯한 중견법관들과 자칫 감정대립을 살만한 대목들이 많아 앞으로 어떤 식으로 매듭이 지어질지 주목되고 있다. 소장법관들과 중견법관들의 이번 갈등은 「사법부의 개혁」에 대해 접근방법이 달라 빚어진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새정부 출범 이후 지난 5월 3일과 6월 7일 두차례에 걸쳐 전국법원장회의를 열고 법관인사제도개선,검사의 판사실 출입제한,법관회의신설등구체적인 개혁방안을 논의했다. 이같은 개혁논의에 대해 소장법관들은 궁국적으로는 찬성하면서도 그보다 앞서 사법부개혁의 근본원인에 대한 검토와 자기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법원장회의에서 논의된 제도개혁은 사법부개혁의 일부이고 시작일 뿐이라는 시각이다.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은 『사법부의 부끄러운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법원수뇌부가 공식적인 반성을 보여야 하는데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법원수뇌부의 현실인식부재론을 지적하며 강도높게 비판하고 있다. 이들은 국민의 편에 서지 못한 부끄러운 판결들에 대해서는 법원의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그같은 판결을 내린 법관의 인책론도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이번 성명은 이러한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라는 게 이들의 변이다. 서울민사지법 판사들은 이같은 뜻을 이원배민사지법원장에게 전달했으나 그동안의 법원장회의에서 전혀 반영되지 않아 개혁촉구성명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이원장은 『과거의 판결 몇개가 잘못됐다고 해서 사법부자체가 내부갈등를 겪고 있는 것처럼 비쳐질까봐 우려된다』면서『제도개선을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고 있는 마당에 무턱대고 반성을 하라면 어떡하느냐』고 이들의 성명을 꼬집었다. 대법원도 이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면서 이를 진화시키는 방안을 찾기 위해 크게 고심하고 있다. 서성법원행정처기획조정실장은 『단독판사들이 발표한 개혁방안은 대부분 이미 최근 두차례에 걸쳐 가진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이라며『특히 성명서 내용중 판결이라는 방패뒤에 숨어 진실에 등돌리기도 했다는 등의 일부 표현은 수긍할 수 없다』고 유감을 표시했다. 대법원은 무엇보다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의 집단행동이 다른 지방법원등으로 번질지 우려하고 있다. 이 경우 사법부 전체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또 이날 성명을 발표한 서울민사지법 단독판사들의 대표성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일부 판사들의 소수의견일 뿐 전체 법관의 의견은 아니라고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는 것이다.
  • 김명호 신임총재 프로필/34년간 요직 두루거친 한은맨

    김총재는 지난 57년 한은에 입행한후 1년5개월동안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으로 외도를 한 것을 빼고 34년여동안 한은에서 잔뼈가 굵은 정통 한은사람이다. 또 지난 70년 당시 김성환 은행감독원장이 곧바로 총재로 영전한뒤 23년만에 뒤를 이은 두번째 인물이 됐다. 영국신사를 방불케하는 매너와 언어구사로 좀처럼 흠을 잡히는일이 없으며 제주지점장시절 1주일만에 직원67명의 이름을외워 주위를 놀라게 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나다. 대학시절 테니스대표를지낼 정도로 운동에 소질이 있다. 김광호 삼성반도체부회장이 친동생이며 이경식부총리·나웅배민자당의원·이상근한미은행고문 등과 한은 입행동기. 중학시절 문학친구의 여동생이던 송혜인씨(53)와의 사이에 1남1녀를 두고있다.
  • 오늘 새 내각 발표/안기부장·서울시장 포함/내일 첫 국무회의

    김영삼대통령은 26일 상오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통일원장관등 새정부의 24개부처장관과 안기부장,서울시장의 명단을 일괄 발표한다.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에는 한완상서울대교수,안기부장에는 이병대 주호놀룰루총영사(예비역중장·육사17기),법무부장관에는 박희태 민자당대변인,교육부장관에는 박영식 전연세대총장,외무부장관에는 신동원 주독대사,국방부장관에는 박희도전육참총장,정무1장관에는 김덕용민자당의원이 유력시되고 있다. 안기부장이 유력시되는 이총영사는 24일 하오 급거 귀국했다.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에는 강경식전재무,내무장관에는 민자당 김용태총무의 기용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가운데 최인기차관의 승진가능성이 엿보인다. 공보처장관에는 남재희전민자당의원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남전의원은 최창윤전민자당총재비서실장과 함께 문화체육부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재무장관에는 서상목민자당의원과 홍재형전외환은행장이,상공장관에는 김기배민자당의원,강진구삼성전자회장,김철수무역진흥공사 사장이 오르내리고 있다.건설부장관에는 김재기주택은행장과 김한종 전건설부차관,농림수산부장관에는 조익래 전경남지사,과기처장관에는 이면우서울공대교수,노동부장관에 오린환 전민자당총재정치특보,총무처장관에는 최창윤 전민자당총재비서실장,정무2장관에 황산성변호사와 이인호서울대교수 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서울시장에는 김명윤대한무역진흥공사이사장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은 이날 하오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수여한뒤 27일 상오 새정부 첫 국무회의를 주재할 예정이다.
  •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전연구:5)

    ◎서열4위 김형직을 회장으로 날조/조선국민회 실제 주도자 이름 삭제/“일제에 투옥” 주장 사실 아닐 가능성 김일성의 부친 김형직의 우상화에는 조선국민회가 불가결이었다.그는 조선국민회의 결성자로 활약하게 되는 것이다. 일제의 경찰기록을 보면 조선국민회의 조직경위는 다음과 같다. …1914년 9월에 장일환이 하와이의 박용만을 찾아 가 같이 싸울 약속을 했다.그는 귀국하여 총독정치의 상황과 민심을 살피고 이를 박용만에게 통보하여 청년단체를 조직하며 국권회복운동을 하기로 하였다. 장일환은 1915년에 조선으로 돌아와서 1909년에 먼저 돌아와 있었던 전하와이 국민회회원 강석봉과 만났다.이해 겨울 그는 또 만주 안동현의 백세빈을 만나 조선국민회를 조직하도록 합의하였다.이들은 간도에 이주할 계획까지 하였으나 그 계획은 실현하지 못하였다. 1917년 2월.배민수,김형직이 조선국민회에 가입하여 장일환의 자택에서 회합하였다.거기서는 평양 장로파신학교에 조선각도 청년들을 모아 국민회를 조직할 것을 협의하였고 3월23일 13명이 모이도록 결정되었다. 그러나 결성 당일에는 6명이 결석하였다.이 때문에 9명이 이보식의 집에서 회합하고 장일환을 회장,배민수를 통신겸서기,백세빈을 외국통신원으로 선출하여 조선국민회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장일환이 우두머리 1917년6월,회원 배민수,김형직,노선경 등은 각기 자기의 식지를 잘라 「대한독립」이라고 혈서를 썼다.다른회원들 중에는 「결사」라고 혈서하는 이도 있었다.이 때 배민수는 중국의 무관학교에 입학할 뜻을 밝혔다.또 국민보를 발간하여 회원에서 보내는 계획도 있었다. 17년 7월,노선경은 간도의 동지들과 연락하는 통신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서간도로 갔다.그리고 김은현,조옥소는 양경수에게 돈 일만원을 내게 하며 그 일부로 권총을 구입하려고 하였다. 그후 조선국민회 회원은 일제경찰에 체포되었다.평양의 회원은 1918년 2월 장일환 이하 12명이 신병송검되고 기타 13명은 석방되었다…. 이상이 일제 경찰기록의 요지이다.이기록을 보면 조선국민회는 2년반동안 갖은 고생을 다한 장일환이 17년 3월 23일에 세운 결사이다. 그는 조선에서 강석봉,백세빈,배민수,김형직,이보식 등을 차례로 동지로 삼아 그중 백세빈,배민수를 간부로 뽑았다.나머지는 회원이 되어 각각 자기 맡은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이러한 일제자료를 입수한 후 착수한 것은 김형직을 제외하고는 자료에 나오는 인명을 모조리 은폐하는 작업이었다.은폐하기 위해서는 일본측 자료를 개찬하여야 하는데 개찬한 결과는 북한에서 발간된 조선전사16에 사진 판으로 실려 있다. 이를 참작하면서 변조과정을 밝혀 본다. 일제자료에는 조선국민회 회원의 본적·주소·직책·이름을 회장 장일환(32세)외국통신계 백세빈(25세),서기 배민수(22세),서당 교사 김형직(34세),회원 서광조의 순으로 밝히고 있다.그러나 조선전사16은 이 일제기록 중에서 순번 제4위인 김형직의 본적과 주소,이름만을 사진판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책에 실었다. 일,회원씨명 본적‥평안남도 대동군 고평면 남리 주소‥평안남도 강동군 정읍면 동삼리 서당교사 김형직 당삼십사년… 이와같은 기록은폐작업으로 당시 강동군 고읍면 동삼리 내동부락이란 시골에 있었던 김형직은 평양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다른 간부를 제쳐놓고 일약 「회장」으로 「출세」하는 것이다. 동지들을 없애 치운 이유는 그들이 기독교신자이고 대부분이 후에 상해임정과 연계를 가지게 되는 민족주의자였기 때문에 김일성체제의 의사와는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회고록에는 여태까지 그렇게도 철저하게 삭제하고 은폐한 이름을 일부 복원시키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버지는 장일환 배민수 백세빈 등 애국적인 독립운동자들과 함께 1917년 3월 23일,평양 학당골에 있는 리보식의 집에서 조선국민회를 결성하였다.조선국민회에 망라된 청년투사들은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결사」라는 혈서를 썼다』 일본기록에 의하면 김형직은 「대한독립」을 혈서한 인물인데 이 혈서는 아마도 회장 장일환 앞에서 썼을 것이다.그러나 김일성은 맹원 김형직의 입장을 은폐하고 이상과 같이 그를 장일환을 지도하는 인물로 올려 놓았다.그러나 김일성이 한 말의 내용은 일본경찰기록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그는 지금도 여전히 경찰기록 이상으로는 조선국민회에 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일제기록 이상 몰라 조선국민회 회원은 1918년 2월 이전의 어느 날,25명이 일제경찰에게 체포되어 그중 12명이 감옥생활을 하였다.북한에서는 이것도 체포자가 백여명이었다고 과장하고 있지만 문제는 감옥에 간 12명중에 김형직이 들어 있었는가 어떤가이다.필자는 이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①52년 전기에서는 김형직이 3·1운동이후에 평양감옥에 들어갔다 하였다. ②1961년에 발간된 「조선근대혁명운동사」로부터 3∼4년은 그가 1916년에 투옥되었다고 변경하고 있었다. ③그랬던 것이 조선국민회 자료를 입수한 후부터는 투옥이 1917년 가을부터 18년 가을까지로 다시 변경되었다. 김형직은 만경대에서는 그 부친 보현의 장남이었다.따라서 그 「혁명적가정」에서는 많은 일가친척들이 그의 일거일동에 주목하고 있었다.그런데도 그들은 김형직이 3·1운동 이후에 투옥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그들이 그의 투옥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된다.투옥의 해가 세번이나 변경되는 추태를 보면 김일성 자신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사자료25,37면 같은책 38면 같은책 동면 조선전사16,22면 같은책 동면 세기와 더불어1,26면 1952년 4월 20일자 로동신문의 「김일성장군의 전기」참조 「조선근대혁명운동사」,북한 과학원역사연구소간 일본번역판,2백92면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15면
  • “중국의 한인은 성공적인 소수민족”

    ◎한족보다 교육수준 높고 자긍심 대단/NYT지,동포생활상 소개 미국의 뉴욕타임스지는 중국에 사는 한민족이 중국의 한족보다 교육수준이 높으며 민족적 자긍심도 대단한 중국내에서 가장 성공적인 소수민족이라고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7일 「중국에 빛나는 한민족의 광채」라는 제목으로 연변지역 한인들의 생활상·전통 등을 소상히 소개했다.이 신문은 한국인들은 다른 소수민족과는 달리 머리가 좋고 사업적 능력이 뛰어나며 예의범절이 바르다고 지적하고 한국인은 중국의 지배민족인 한족보다 교육수준이 높으며 대학진학률도 앞서 있다고 밝혔다. 중국내 55개 소수민족은 전반적으로 한족보다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으나 한국인만은 예외여서 한족이 다른 민족보다 우월하다는 우월감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한국인들은 한족보다 우월하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이 신문은 썼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같은 우수성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능력만큼 성장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도 맛보고 있다면서 병참최고지휘관으로 군부의 실력자중 한 사람이 한국인이고 가장 유명한 「로큰」가수도 한국인이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특히 문화적 자부심이 커 다른 민족과 결혼하는 경우가 1천명당 1명 정도이며 결혼풍습도 한복을 입는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가시밭길의 토초세/구본영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택지소유 상한제·개발이익환수제와 더불어 토지공개념 확대도입 정책의 핵심인 토지초과 이득세 집행을 앞두고 만만찮은 조세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국세청이 지난 10일 해당자들에게 토지초과이득세 예정통지서를 발송한 이후 민자당등 정치권에 집단 민원이 급증,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후문이다. 토초세 부과대상지역인 대구 수성구 지주 2백여명이 22일 수성구청에서 개별 지가가 지나치게 높게 산정돼 과다한 토초세를 물게 됐다고 항의농성을 벌였다는 소식도 들린다. 또 22일 열린 민자당 확대당직자회의에서 서정화의원(인천 중·동구)이 새국제공항 건설로 토초세 적용대상자가 된 영종도 및 용유도 토지소유자중 투기꾼으로 볼 수 없는 순수한 농민들은 보호한다는 차원에서 토지초과이득세법 시행령 개정필요성을 제기해 눈길을 끌었다.서의원을 『지가가 급상승한 지역에 토초세를 부과해 불로소득을 억제하고 땅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전제,『그러나 유휴지 판정의 기준이 불명확하고 더욱이 토지이용이 법적으로 규제되는 바람에 순수 농민들이 엄청난 세금을 부담하는 억울한 사례가 생기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나웅배민자당정책위의장은 23일 『토초세가 시행상 부분적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일단 시행해 보고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말해 당정협의를 통한 토초세법과 시행령 개정 가능성을 부인했다. 16세기 영국의 작가 토머스 모어는 「이우토푸스」(아름다운 곳)와 「오우토푸스」(없는곳)이라는 두 회랍어를 합성,우리가 흔히 이상향으로 번역하는 「유토피아」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말하자면 유토피아의 본뜻은 「아름답지만 이 세상에는 없는 곳」이라고 할 수있다. 마찬가지로 사회·경제적인 관점에서도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토피아적인 정책이란 애시당초 있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이같은 맥락에서 본다면 일부 불만이 제기된다고 해서 부동산투기와 볼로소득 억제를 위해 여야정치권이 어렵사리 만든 토지초과 이득세법등을 시행해보기도전에 경솔하게 고쳐 개혁의지가 퇴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일부 억울한 점이 있다면 고시가 책정등행정상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방법으로 부작용을 극소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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