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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세종청사에선] 점심시간 ‘밥차’에 울고 웃고

    정부세종청사에는 공무원 전용 교통수단이 있다. 수도권은 물론 인근 대전, 공주, 세종 첫마을을 오가는 전용 출퇴근 버스가 운행된다. 대중교통 수단이 잘 갖춰지지 않은 탓에 정부가 무료로 운행하는 것이다. 지난 18일부터는 새로운 전용 교통수단이 생겼다. 점심 시간에만 운행하는 공무원 전용 셔틀 버스가 등장한 것이다. 공무원들은 이 버스를 ‘밥차’라고 부른다. 과천정부청사에도 청사와 식당을 오가는 승합차량이 있지만, 이는 식당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교통수단이다. 반면 세종청사 밥차는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행복청)이 운영한다. 청사 인근에 상가시설이 없는 데다 대중교통 여건이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공무원들을 배려한 것이다. 버스는 월~금요일 청사~인근 첫마을~대평리 식당가를 오간다. 오전 11시 40분 세종청사 2동에서 출발, 농림·국토부 앞을 거쳐 5~6㎞ 떨어진 식당까지 운행한다. 좌석이 모자라 일부는 서서 다닐 정도로 인기가 높다. 21일 밥차를 이용한 국토해양부 한 공무원은 “주변에 식당이 없고, 멀리 떨어진 식당들도 차량 운행을 꺼려 불편했는데 밥차가 등장해 편리해졌다”고 말했다. 점심 시간에 차량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천 스타일’에 익숙하지 않은 이 지역 상인들도 밥차 운행을 반긴다. 반면 지역 택시업계는 “출퇴근 버스, 업무용 버스에 이어 정부가 식당을 오가는 버스까지 운영하는 것은 지역 택시 영업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볼멘소리를 냈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82% “계층 갈등 심각”… 국회신뢰도 5.6% 최저

    82% “계층 갈등 심각”… 국회신뢰도 5.6% 최저

    국민이 가장 심각하게 여기는 갈등은 계층갈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갈등 해소를 위해 가장 많은 역할을 요구받는 주체는 정부였다. 21일 대통령직속 사회통합위원회의 2012년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사통위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전국의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를 한 결과 계층, 노사, 이념, 지역, 세대, 문화, 남녀, 환경갈등 등 8개 영역별로 갈등이 얼마나 심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계층갈등이 심하다는 응답이 82%로 가장 많았다. 그 밖에 갈등이 심하다는 응답이 많은 영역은 이념(63.8%), 노사(63.7%), 수도권-지방(56.1%), 세대(65.1%) 등의 순이었다. 우리나라가 가장 시급히 대응해야 할 갈등 역시 계층갈등이 57.5%로 1순위를 차지했다. 정부, 언론 등 각종 기관에 대한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국회에 대한 신뢰도가 5.6%로 가장 낮았다. 그 밖에 법원(15.7%), 정부(15.8%), 언론(16.8%), 금융기관(28.5%) 등의 순으로 신뢰도가 낮았다. 사회통합 강화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으로는 경제적 약자 배려(26.9%), 기회균등(25.8%), 시민의식(20.2%) 등의 순으로 꼽혔다. 갈등 해소를 위해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1순위 주체로 정부(65.2%)를 꼽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보고서는 “계층갈등의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는 인식이 이어지는 것을 보면 소득분배의 개선과 사회안전망의 강화 등 계층 간 격차를 완화시킬 수 있는 정책에 대한 수요가 계속 분출할 것”이라면서 “주요 갈등을 완화시키는 데 정부와 국회 등 공공영역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1999, 면회’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1999, 면회’

    1999년 겨울, 승준과 상원은 이등병 민욱을 면회하러 강원도 철원으로 떠난다. 재수생 승준이는 아버지의 차를 끌고 나왔고, 대학생 상원은 승준으로부터 졸업 후 벌어진 일들에 관해 알게 된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절친한 친구였던 셋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벌써 소원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민욱의 딱한 형편과 여자 친구 이야기를 뒤늦게 전해 들은 상원은 살짝 서운한 눈치다. 그래도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즐겁고 가슴 설레게 하는 무엇이 있기 마련. 오랜만에 재회한 탓에 흐르던 어색한 기운은 곧 가시고, 그들은 어느새 잘 웃고 잘 싸우던 시절로 되돌아간다. ‘1999, 면회’는 스무 살의 첫해를 다르게 출발한 세 친구가 어느 추운 겨울날에 함께 보낸 1박 2일을 다룬 영화다. 김태곤 감독이 두 번째로 연출한 장편영화다. 그를 생각하면 미안한 사건이 하나 있다. 이태 전, 나는 그의 데뷔작 ‘독’을 상영하는 곳에 갔다가 영화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출발 지점에 섰던 감독에게 왜 그렇게 독한 말을 했을까, 나는 이따금 후회하곤 했다. 그가 다음으로 연출한 작품은 옴니버스 영화 ‘환상극장’ 가운데 ‘천만’이다. 관객의 배려 없는 태도 탓에 당황하는 감독을 비춘 영화였고, 나는 또 미안했다. 그래도 영화가 너무 재미있어 소리 내 웃은 나는 김태곤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기로 했다. ‘1999, 면회’는 소년의 미소를 지닌 김태곤을 닮은 영화다. 그는 직접 겪은 일에서 비롯된 영화라고 밝혔다. 대학생 시절 노트에 적어 둔 시나리오가 십여년이 지나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1970년대의 청춘엔 ‘바보들의 행진’이 있다. 1980년대의 청춘엔 ‘고래사냥’이 있다. 그렇다면, 1990년대 혹은 2000년대의 청춘엔 무슨 영화가 있을까. 딱히 떠오르는 영화는 없다. 살기 어렵다고 징징거리는 청춘을 다룬 영화가 몇 편 떠오르기는 하지만, 그 시절 청춘의 싱그러운 기운을 품은 영화는 생각나지 않는다. ‘1999, 면회’는, 19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 뒤늦게나마 주어진 선물 같은 작품이다. 세 친구는 아직 철부지의 딱지를 완전히 떼지 못한 스무 살 나이. 영화는 갓 어른이 된 그들의 성장통을 삽입하는 걸 잊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불안, 마음대로 안 되는 현실, 첫사랑의 아픔’은 시린 겨울날보다 더 혹독하게 그들을 몰아세운다. 그래서 한바탕 웃음이 뒤로 가면서 어쩔 수 없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뀌지만, 그것은 쭈뼛대는 투정이라기보다 청년기의 솔직한 정서다. 이런 유의 드라마는 자칫 재연이나 회고 투로 빠질 위험성이 크다. ‘1999, 면회’는 그런 함정을 가뿐히 넘어선 작품이다. 푸릇한 출발점을 잘 포착한 만큼 미지의 도착점을 잘 지향한 덕분이다. 인물과 섬세하고 사려 깊게 소통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빤한 표준처럼 보이던 세 젊은이는 각자의 주머니에 든 사연을 때론 말로 때론 표정으로 드러내며 생생한 인물로 화한다. 초반에는 뻣뻣하고 무심했던 상원의 하룻밤 여정을 손가락 몇 개로 표현한 부분은 놀라움으로 떨게 한다. 그런 순간들을 모아 얻은 힘으로 20대를 통과했다는 사실을 나는 잊고 있었다. 그것을 다시 기억하게 해준 영화가 참 고맙다. 마지막으로, 자기 길을 잘 찾아가는 감독에게 박수를 보낸다. 21일 개봉. 영화평론가
  • ‘허창수호 2기’ 재계 맏형役 잘 할까

    ‘허창수호 2기’ 재계 맏형役 잘 할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허창수 2기’의 문을 열었다. 전경련이 그동안 제기된 비판과 불만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전경련은 21일 서울 중구 소공동 플라자호텔에서 정기총회를 열고 제34대 회장에 허창수 GS그룹 회장을 만장일치로 재선임했다. 또 상근부회장에 이승철 전무를, 부회장에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과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을 각각 선임했다. 이에 앞서 허 회장 1기의 전경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확대에 대한 열망을 무시한 채 대기업들을 옹호하는 데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회원사들 사이에선 전경련이 제때,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바람에 사회적으로 반기업 정서만 악화시켰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이 때문에 말만 ‘재계의 맏형’이지 차기 회장감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전경련의 위상은 말이 아니다. 대안 부재로 연임한 허 회장이 이번에는 ‘무색무취’ 행보에서 벗어나 정부·정치권 및 사회 각계와 가교 역할을 제대로 해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허 회장은 이를 의식한 듯 취임사에서 소통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경제의 지속 성장과 기업환경 개선을 위한 본연의 사명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라며 “국민이 경제계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도록 진심어린 소통에도 적극 나서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사회공헌활동도 강조하고 나섰다. 허 회장은 “지난 50년간 우리는 잘살아 보자는 신념으로 앞만 보고 달려왔다”며 “이제는 우리 기업이 사회적 배려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파할 때”라고 덧붙였다. 이날 전경련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내용의 ‘기업경영헌장’을 내놨다. 기업경영헌장 서문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국민 모두가 성장의 과실을 함께 누리는 것이 개인의 행복과 나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한 초석이며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기업경영헌장을 발표하고 실행에 옮긴다”고 다짐했다. 지난 1996년 기업윤리헌장 이후 17년 만에 나온 헌장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전경련으로 거듭나겠다”는 체질개선의 의지를 밝힌 것이기도 하다. 기업경영헌장은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행복 증진, 윤리경영 실천, 건강한 기업생태계 구현 등 7대 원칙과 준법 경영, 경영진의 솔선수범 등 21개 세부지침으로 이뤄졌다. 하지만 이 헌장도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구호들만 가득해 대기업 성토 분위기 속에 급조된 인상이 역력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총회 이틀 전 초안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청회를 진행해 이런 의혹을 짙게 만들었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도덕 교과서 같은 소리만 나열했을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없어 실망스럽다”고 꼬집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첼로영재, 경제학도, 음대교수… 고민의 음표로 채운 악보

    첼로영재, 경제학도, 음대교수… 고민의 음표로 채운 악보

    어릴 때부터 첼리스트가 될 생각은 없었다.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어머니가 새로 이사 온 아파트의 아랫집 학생이 첼로 연습하는 걸 듣더니 아들에게도 레슨을 시킨 것. 이강호(42)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또래들이 그렇듯 그도 연습을 싫어했다. 프로야구 TV 중계를 소리를 죽여 들으며 첼로 연습하는 흉내만 내다가 혼나기 일쑤. 그래도 이화·경향콩쿠르에서 초등학교 6학년 때와 예원학교 1학년 때 거푸 2위를 했으니 재능이 남달랐던 셈이다. 예원학교 2학년 때 터닝포인트가 찾아왔다. 내한 공연을 왔던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가 자신이 몸담은 학교 오케스트라의 첼로 주자를 물색하려고 예원학교에 찾아온 것. 단박에 눈에 띈 소년은 샌타모니카의 크로스로드스쿨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갔다. “일종의 스카우트였다. 하하하. 한국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앙드레 프레빈이나 사이먼 래틀 같은 거장들이 학교에 와서 마스터클래스를 열고, 학교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요요마가 올 만큼 실력을 인정받는 학교”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크로스로드스쿨에서 음악과 공부를 병행한 이 교수는 필라델피아의 스와스모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클래식 유학생들과는 다른, 생뚱맞은 선택의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음악과 공부 둘 다 잘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며 웃었다. 이어 “그때까지만 해도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대학 2학년 때 비로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선배가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선물했다. 시인 지망생이 릴케에게 자작시를 보내고 코멘트를 요청한 대목이 나온다. 릴케는 시인 지망생이 그 정도 고민을 했다면 이미 시인이라고 답했다. 나 또한 음악을 좋아하고 이 정도 고민을 한다면 음악이 운명이란 결론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경제학을 전공한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그는 “경제학은 재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경제학을 공부하면서 몸에 익힌 습관 덕분에 음악을 분석적인 눈으로 보고,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됐다. 학생들을 지도할 때 도움이 많이 된다”고 설명했다. 예일대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또 고민에 빠졌다. “음악을 하는 게 행복하지만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투어를 다니는 전문 연주자도 좋지만, 공부도 못 하는 건 아니니까 ‘홈베이스’를 두도록 교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공채를 통해 스물여섯 살에 서던일리노이대 교수가 됐다. 이후 코네티컷주립대에 재직하던 그가 국내로 유턴한 건 2010년이다. 한예종 음악원에서 교수 제의를 받고 단박에 승락했다. “정명화 선생님 같은 훌륭한 동료 선생님들과 좋은 학생들이 있는 한예종은 마다할 수가 없는 기회였다”고 했다. 여느 클래식 영재들과 다른 인생을 살아온 이 교수가 제자들에게 강조하는 점은 뭘까.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본인의 문제에 대해 질문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키우도록 도우려 한다. ‘무엇’도 중요하지만 ‘어떻게’가 더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클래식 영재교육은 너무 주입식으로 흐른다. 콩쿠르나 입시에서 완벽한 연주를 하려고 기계적인 반복을 하다 보니 테크닉은 훌륭할지 모르지만, 작곡가의 의도나 악보 이면의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단순히 외우고 반복해서는 상상력과 창조력 있는 아티스트가 될 수 없다.” 이 교수는 클래식 팬들에게 실내악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올해에는 금호아트홀에서 브람스와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에 나선다. 새달 7일에는 이경선·양고운(바이올린), 최은식(비올라)과 차이콥스키의 현악사중주 1번, 브람스의 현악사중주 3번을 들려준다. 7월에는 권혁주·이보경(바이올린), 강윤지(비올라)와, 9월에는 이경선·한경진(바이올린), 제임스 던햄(비올라)과 함께 무대에 오른다. 이 교수는 “실내악을 많이 하는 편인데도 현악사중주는 기회가 많지 않다. 각자 개성을 살리면서도 소리를 모으고 서로 배려하고 닮아야 하는 분야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 정성이 필요하다. 관객도 음악의 본질을 맛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 이어 “개인적으로 브람스의 현악사중주 3번은 처음 연주하는 곡이라 더 설렌다. 이로써 브람스의 모든 실내악곡을 연주하게 됐다”고도 했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서울광장] 박수받고 떠나는 김황식 총리/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박수받고 떠나는 김황식 총리/최광숙 논설위원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서 우산도 물리치고 장대비를 맞으며 흐느끼던 남자. 직원들과 함께 1박 2일 강원도 여행을 떠나 가수 김창완의 ‘창문 너머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를 멋들어지게 부르던 소탈한 남자. 그는 자신의 바람대로 ‘이슬비 총리’가 된 것 같다. 조용히 땅속에 스며드는 이슬비처럼 김황식 총리 또한 2년 5개월이라는, 1980년대 이후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우며 국민들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겼다. 능력이 출중하면 인품이 부족한 듯하고 인품이 좋으면 능력이 모자라는 지도자들이 많은 세태에서 김 총리는 드물게 인품과 능력, 정무감각까지 갖췄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총리로 임명된 지 한 달 뒤쯤 ‘김황식 총리께 드리는 편지’라는 칼럼을 쓴 것을 계기로 그의 진면목을 남보다 먼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필자는 칼럼에서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인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던 ‘행정규제의 피해구제 및 형평보장을 위한 법률’이 “기존 법령을 무력화하는 말도 안 되는 법이니 법 제정을 막아달라”는 당부를 했었다. 김 총리로부터 즉각 피드백이 왔다. 당시 총리실에서 규제 업무를 담당하던 규제개혁실장(1급)을 두 차례나 보내 필자로부터 칼럼에 다 담지 못한 법안에 대한 보충 설명을 듣도록 하고 자료 등을 챙겨갔다. 그리고는 법안을 손질하도록 했다. 그게 다가 아니다. 며칠 뒤 차관급 인사를 통해 수정 법안이 불가피하게 국무회의에 상정된다는 사실까지 알려왔다. 총리로 부임한 지 불과 한 달밖에 안 된 시점에 법안의 ‘진도’가 너무 많이 나가다 보니 법 제정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뜻으로 이해됐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언론의 지적에 최선을 다해 애쓰는 김 총리의 열성에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 법안은 2010년 11월 중순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이날 총리는 자신의 양복 저고리에서 직접 쓴 메모를 꺼내 읽었다고 한다. 법 시행 과정에서 이러저러한 부작용이 우려되니 관련 부처에서 잘 챙기라는 내용이었다. 총리실 관계자는 “보통 안건이 일사천리로 처리되는 국무회의에서 총리가 보충 발언을 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법안은 국회로 넘어갔지만 상임위에서 폐기됐다. 이 같은 김 총리의 ‘피드백 행정’은 유명하다. 조손(祖孫)가정 방문 등 민생 현장을 다니면 그 이후 어떤 행정 조치가 이뤄졌는지 꼭 챙긴다고 한다. 그에게는 무엇보다 ‘경청 리더십’이 돋보인다. 감사원장 시절 얘기다. 한 과장이 5분이면 족할 업무보고를 두서없이 한 시간가량을 하는데도 묵묵히 다 들었다고 한다. 배석했던 간부가 “후배 교육을 잘못시켜서 죄송하다”고 하자, 그는 “저 사람이 보고를 위해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보고를 잘 듣는 것도 감사원장이 할 일이라네”라고 했다고 한다. 바로 ‘소통의 출발은 경청’이라는 김 총리의 철학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의 이런 태도는 ‘따뜻한 리더십’과도 일맥상통한다. 아랫사람들에게는 물론 각종 회의의 참석자들에게 빠짐없이 발언 기회를 주는 바람에 예정된 시간을 훌쩍 넘기기 일쑤인 것도 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커서다. 그렇다고 그는 결코 무르지 않다. 국회에서 야당 의원들의 주장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강단을 보여준 것도 그다. 며칠 전만 해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한 야당의원의 일방적 정치 공세에 “이 정부에 공(功)도 있고 과(過)도 있다”며 소신 발언을 했다. 일각에서는 그가 결코 이명박 대통령과 ‘각’(角)을 세우지도, 적절한 ‘선’(線)을 넘지도 않았다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통령제에서 총리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그는 자신의 직분 내에서 최선을 다한 총리로 오래오래 기억될 듯싶다. 곧 맞이하게 될 새 총리 역시 국민들과 가까이하는 총리가 되길 기대해 본다. bori@seoul.co.kr
  • 사람 품은 주민센터로

    사람 품은 주민센터로

    성북구가 전국 자치단체 최초로 신축하는 공공 건물을 대상으로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했다. 김영배 구청장은 18일 서울시청에서 기자설명회를 열고 복합청사로 신축하는 안암동 주민센터에 대해 설계부터 준공, 운용까지 인권 기준을 적용하는 ‘인권영향평가’를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인권영향평가는 정책이나 사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주민 인권에 미칠 영향을 분석하고 평가해 인권 침해 요소를 사전에 방지하고 인권 친화적 효과를 유도하기 위한 평가제도를 말한다.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실행된 적이 없으며 광주광역시와 성북구가 인권조례를 통해 인권영향평가를 규정한 것이 전부다. 지금까지 실제로 신축 공공 건축물에 대해 인권영향평가를 시행한 곳은 성북구가 유일하다. 이를 가능케 한 근거는 ‘성북구 인권조례’에 있다. 조례 제·개정 등 5개 대상 사업에 대해 사전에 인권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행 주체도 못 박았다. 이에 인권활동가 등 외부 전문가를 포함한 ‘성북구 인권위원회’도 구성했다. 구에서는 앞으로 아리랑 시네센터와 구청 1층에 만들 예정인 어린이 장난감 도서관, 정릉 커뮤니티센터 등 공공 이용 시설에 대해서도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할 계획이다. 안암동 주민센터는 4월 공사에 들어가 내년 3월 준공될 예정이다. 구에서는 한국공간환경학회, 한국인권재단과 함께 인권영향평가를 실시하면서 설계·기획 단계에서부터 설문조사와 주민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설계 지침을 마련했다. 인권 개념에 근거한 설계 지침을 제공한 뒤 응모작을 심의할 때도 인권 전문가와 건축 전문가를 포함한 심사위원회에서 당선작을 선정했다. 58억원가량을 들여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짓는 새 청사(연면적 1921㎡)는 지상 공간의 80%가량을 주민 편의 시설로 꾸민다. 청사 1층에는 주민 카페를 설치해 주민들이 누구나 자유롭게 앉아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김 구청장은 “공공기관에서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것은 기본적인 과제이지만 단순히 단체장의 선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제도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주민들이 시혜가 아닌 권리로서 인권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권도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가야 할 길이 멀다”면서 “인권센터 설치와 인권 축제 개최, 성북인권선언 발표 등 다양한 인권 관련 사업을 통해 주민 생활 속에서 인권 보호를 실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아베 정권,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차관급 첫 파견

    한·일 관계 복원이 중요하다고 떠들던 아베 신조 정권이 오는 22일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행사에 처음으로 차관급 인사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져 양국 관계가 다시 경색될 전망이다. 17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신조 내각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현직 참의원(상원) 의원이자 차관급인 시마지리 아이코 내각부 정무관을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아이코 정무관 파견은 영토 문제에 단호하게 임한다는 정권의 기조를 보여 주려는 의도라고 일본 언론은 분석했다. 민주당의 노다 정권 시절인 지난해 4월 도쿄에서 열린 독도 영유권 주장 집회에 야마구치 쓰요시 외무성 부대신이 참석한 적은 있지만 시마네현이 주최하는 행사에 정부 고위 인사가 참석하는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2월 22일 시마네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는 정부 인사의 참여 없이 여당인 민주당 소속 2명을 포함해 국회의원 13명이 참석했다. 아베 정권은 오는 25일 한국의 대통령 취임식이 예정된 만큼 시마네현의 초청을 받은 총리가 직접 가거나 각료를 보내기보다는 그 아래의 정무관을 보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고 일본 언론이 전했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정무관을 보내는 것이 지난해 도쿄 집회에 부대신이 참석한 것보다 한국을 배려한 것으로 포장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부대신이나 정무관이나 같은 차관급이며, 더욱이 정부 고위 인사가 시마네현에서 열리는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日, 朴 취임식에 아소 파견 모리 전 총리 등도 함께

    일본이 오는 25일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제18대 대통령 취임식에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과 모리 요시로 전 총리,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을 특사로 파견하기로 했다. 아소 부총리는 아베 신조 총리에 이은 내각 서열 2인자이고, 기시다 외무상은 대한 외교를 책임지고 있다. 모리 전 총리 역시 최중량급 인사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의 한국에 대한 배려가 읽힌다. 14일 NHK와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주요 각료를 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함으로써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냉각된 한·일 관계를 개선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박 당선인이 양국 관계 개선에 의욕을 보이고 있는 데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긴박해진 한반도 정세를 고려할 때 한·일 관계를 개선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4일 누카가 후쿠시로 전 재무상을 특사로 보내 박 당선인에게 일본 방문을 요청하는 한편 자신이 직접 취임식에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한국 측이 대통령 취임식에 외국 정상 대신 각국 대사 등 주한 외교 사절을 공식 초청하겠다고 밝히자 부총리와 외무상을 파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열린세상] 가치를 섬기는 ‘잘 사는 사회’/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열린세상] 가치를 섬기는 ‘잘 사는 사회’/최영재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즈음에 언급한 ‘잘 살아 보세’ 발언이 묘한 여운을 남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룩한 잘 살아 보세 신화를 다시 이뤄보겠다는 부전여전 대통령의 역사적 연결고리를 연상케 하면서, 동시에 지금 시대에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만약 박 당선인의 잘 살아 보세가 박정희 시대의 의식주 문제 해결의 연장선상인 경제적 성장, 물질적 풍요, 개인의 행복 등에 국한하는 것이라면 시대적 흐름이나 과제와 엇박자를 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든다. 왜냐하면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 성장을 이룬 우리가 선진국처럼 잘 살아 보세 하려면 빠른 시간 안에 힘겨운 산업화를 이루느라 잊고 살아온 선진적인 가치들을 배우고 추구하고 섬기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최근의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낙마 과정은 이 시대에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본인들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없지 않겠지만, 큰 틀에서 보면, 의식주 문제를 넘어 돈과 명예·권력을 획득하며 성공적으로 잘 살아 오신 분들이 사회적 가치의 잣대를 들이대니 갑자기 그다지 잘 살아 오지 않은 분으로 판명난 꼴이다. 새 정부에서 중용할 만한 많은 사회적 명사들이 후보 검증 과정이 두려워 공직에 나서지 못한다고 하니, 잘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가치의 문제를 새삼 곱씹게 한다. 이 과정에서 박 당선인은 공직 후보자 검증이 지나쳐서 후보자들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발언을 했다. 관련 댓글을 봤더니 시민들의 비판과 비난, 분노와 야유, 심지어 욕설로 넘쳐났다. 2013년판 잘 살아 보세를 두고 권력자와 시민 간의 골 깊은 인식의 차가 느껴져 순간 아찔했다. 어느새 우리 사회도 정의·배려·사랑·봉사 등과 같은 사회적 가치를 구현하는 삶들이 모여 잘 사는 사회, 즉 선진국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에 공감대가 형성된 것일까. 사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잘 사는 선진국이 되지 못하게 하는 많은 문제들은 존재의 이유, 다시 말해 사회적 가치를 망각함으로써 발생하고 있다. 정치인을 포함한 공직자들은 공사 구별이 불분명하고 공적 가치보다 이기적인 행복을 추구할 때 후진적인 공직자로 처져 문제를 일으킨다. 대한민국 교육은 교육의 목적, 학교의 존재 이유에서 이탈하여 후진적인 입시 위주의 주입식 교육에 매몰돼 있다. 선진국 학생들은 다양한 과목을 학습할 때, 왜 이 과목을 배우는지 분명이 알고 느낀다. 학습의 가치를 실감하는 학생은 행복하다. 영문도 모르고 시험을 위해 과목을 외워야 하는 한국 학생들은 불행하다. 그래서 교육 개혁은 존재 이유와 가치문제의 천착과 성찰에서 출발해야 한다. 공영적 방송사와 신문사, 포털뉴스 등 언론이 망가지는 모습도 저널리즘 가치의 위기에서 비롯됐다. 낙하산 사장이 지배하는 공영적 방송사, 사주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신문사, 상업주의에 매몰된 포털뉴스 등은 저널리즘의 가치를 정치·경제적 이해관계에 종속시킴으로써 가치의 위기를 자초하고 있다. 많은 대기업들도 오너의 이기적 경영이 지나쳐 기업의 공적·사회적 가치를 망각함으로써 개혁의 대상으로 지목되곤 한다. 잘 살아 보세는 모든 분야에서 본연의 존재 이유, 사회적 가치를 성찰하고 추구하고 섬기는 사회를 만드는 일과 직결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가 가치를 추구할 때 행복해지고 잘 살 수 있는 것이지, 행복을 추구한다고 진정한 행복에 도달하고 가치가 추구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철학서의 많은 충고는 ‘돈을 추구하는 기업은 결국 망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만 돈을 번다’는 메시지로 요약되는 것과 같다. ‘삶의 작은 교훈서’로 세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미국의 잭슨 브라운은 “잘 사는 삶이란 자식들이 공정, 배려, 정직을 생각할 때 당신을 떠올리는 삶”이라고 했다. 곧 대통령에 취임하는 박 당선인의 잘 살아 보세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게 무엇이든, 가치를 섬기는 박 당선인의 마음이 우리 사회를 ‘진정 잘 사는 사회’로 만들기 바란다. 그런데 나는 오늘 삶을 이끄는 어떤 가치를 섬기며 사는 것일까?
  • [기고] 정부조직, 절반 아닌 온전한 성공이 되려면/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기고] 정부조직, 절반 아닌 온전한 성공이 되려면/김귀룡 충북대 철학과 교수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조직 개편의 핵심은 미래창조과학부와 해양수산부 신설, 식품의약안전청의 처 승격, 행정안전부의 안전행정부 전환이다.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을 외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지가 반영된 안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임시국회를 통과하면 새로운 정부조직의 기본 틀 역할을 할 것이다. 특히 미래창조과학부 신설을 통해 과학 기술력을 높여 산출된 국부를 복지 재원으로 투입하는 한편, 국민 생활 가운데 체감도가 가장 높은 먹거리와 치안 불안 등을 우선 고려하고자 하는 취지도 엿보인다. 인간 생활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먹고사는 문제와 안전성을 배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만하다. 그렇지만 당장의 현안에만 매달려 미래의 국격 향상을 위한 심모원려의 플랜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아쉬운 점이다. 국가 운영에서 국민의 먹거리 마련과 치안 유지는 기본이다. 그에 못지않게 국민 개개인의 존엄성도 소중하다. 곧 인간 삶의 중요한 두 측면인 몸의 보존과 아울러 정신적 성장도 담보할 수 있게 국가가 운영돼야 한다. 현대적 의미의 국가는 국민을 이끌고 가기보다는 국민 개개인의 발전적 성장을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인의 성장의 합을 통해 국가 발전을 이뤄야지 국가 발전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거나 인내를 강요해서는 곤란하다. 정부조직 개편안에서 볼 수 있는 우리 국가의 미래와 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과학과 기술의 발달을 통한 경제성장, 이의 재분배, 그리고 일상생활에서의 먹거리 안전과 일신의 안전이 민생이며 미래로 정의되고 있다. 여기까지만 하면 국민이 행복할까. 국가는 먹거리만큼이나 정신적 성숙도 고려해야 한다. 행복은 물질적 안정과 정신적 성숙의 조화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민생도 마찬가지다. 정신의 황폐화로 인한 생명 경시 풍조, 흉포해지는 성범죄, 청소년 게임 중독, 외모 지상주의, 물질 만능주의 등은 민생과 치안을 악화시키는 근본 요인이다. 경제적 안정과 치안에만 치중해서는 사회불안 요소들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어렵다. 인수위의 조직개편안이 개개인의 정신적 성숙을 아우르는 국민행복을 보장하는 안이 되기에 미흡한 이유다. 인간 개개인의 정신적 성숙은 바로 훌륭한 교육을 통해서 담보된다. 경제와 민생이 지금 우리의 문제라면, 교육은 우리의 미래인 자손과 관련된 문제다. 우리의 자손을 버려 둘 수 없는 것처럼 교육을 민생과 치안의 뒷전에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교육의 중추를 담당하는 대학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연구개발 수행 조직으로만 치부돼서는 온당치 않다는 말이다. 정부조직 개편의 후속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각 부처의 세부조직이 곧 결정될 것이다. 개편안의 큰 틀이 놓치고 있는 인간의 정신적 성숙을 보장할 수 있는 방향으로 업무 분담이 이뤄져야 한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적 성숙을 아우르는 국민행복의 성취를 이룰 수 있는 정부조직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야만 반쪽이 아닌 온전한 성공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 [세종로의 아침] 아베 시대 한일관계/이춘규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아베 시대 한일관계/이춘규 선임기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해 말 5년 만에 총리에 재취임한 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71%의 높은 여론 지지율도 있다. 강한 일본을 외쳐 온 아베는 취임 뒤 엔 약세와 2% 물가상승 목표를 밀어붙이고 있다. 최근엔 “엔저 과실을 근로자와 함께 나누라”며 재계에 임금 인상을 압박해 장기불황에 찌든 일본인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아베의 엔저 유도에 의한 가파른 원화 강세는 자동차나 전자 등 한국 수출 대기업들의 채산성을 위협하고 있다. 식민통치나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 관련 새 담화를 만지작거리고, 이웃 나라를 배려하는 근린제국 조항을 수정하려고 해 한국인을 자극한다. 북핵을 빌미로 우경화로 치달을 우려도 있다. 아베시대 한·일 관계가 한층 복잡해지고 있다. 아베(59)가 다시 총리가 된 배경에는 좋은 집안과 출신 지역도 작용한 것 같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지역구는 부친이 물려준 야마구치현이다. 야마구치현 출신 요시다 쇼인은 현대 일본의 틀을 짠 메이지유신 주역들의 정신적 지도자이다. 아베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서 정한론(征韓論)의 원조다. 극우의 본산 야마구치현은 이토 히로부미에서 아베까지 총리를 8명이나 배출했다. 광역단체 중 최다이다. 아베는 야구선수나 형사를 꿈꾸었지만 가풍 영향으로 정치인이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주변에 정치가 있었다”고 밝혔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 친조부는 중의원 의원, 부친은 외무상을 지냈다. 이런 지역·가문 출신의 아베는 강한 외교를 추구, 주변국과 충돌 가능성이 크다. 실제 아베노믹스는 미국이나 국제통화기금(IMF)이 지지하지만 실패를 경고하는 전문가도 많다. 아베와 비슷한 연배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오는 25일 취임한다. 두 사람은 모두 정치 명문가 출신이다. 지지기반도 보수이다. 북핵 상황의 변화는 한·일 협력의 촉진제가 될 수도 있다. 일본의 북한 관련 군사정보는 요긴해졌다. 그러나 일본 정부가 북핵을 구실로 핵무장으로 치달으면 한·일 관계는 최악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뒤흔들린 박 당선인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도 새 틀을 짜야 한다. 역시 북핵은 한·일 관계에 새롭게 떠오른 난제 중의 난제다. 환율 갈등도 한·일 관계 해법을 복잡하게 하는 변수다. 최근에는 변하고 있지만 1980년대 이후 엔고 때는 한국경제가 좋았고, 엔저 때는 나빴다는 실증적 분석이 있을 정도다. 박 당선인은 한 여론조사에서 48%의 낮은 지지율을 보였다. 인사 논란에 불통 지적까지 겹치며 지지율이 하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집권 초 낮은 지지율은 쓴 약이 될 수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은 취임 직후 지지율이 52%로 2차대전 뒤 재임한 미 대통령 중 최저수준이었다. 위기감에 국민과 소통을 강화, 퇴임 직전에는 63%로 빌 클린턴과 선두권을 다투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한다. 박근혜 리더십도 환율 리스크와 북핵 관리로 시험대에 섰다. 통합과 소통의 리더십이 요구된다. 한·일 관계의 긴밀한 대처에는 국민들의 지지가 절실하다. taein@seoul.co.kr
  • [김병일 사람과 향기] 정조가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보게 한 까닭

    [김병일 사람과 향기] 정조가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보게 한 까닭

    요즘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을 찾는 사람이 부쩍 늘어 필자도 수련원 숙소에서 자는 날이 잦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새벽에 숙소를 나와 퇴계 선생이 거니셨던 뒷산을 넘어 도산서원까지 갔다 돌아오곤 한다. 1시간 반쯤 걸리는 아침운동이다. 이때 어둠이 점점 밝아 오면서 시시각각으로 연출되는 풍광은 이곳이 선경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사방이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하늘색과 대비를 이룬 산들이 가장 먼저 윤곽을 드러낸다. 이어 그 산 그림자 밑에 칠흑으로 포개져 있던 온갖 사물들이 여명의 흐름에 따라 하나둘 자신을 내보인다. 시계열에 따라 펼쳐지는 도산서원의 새벽 풍광 가운데 가장 아끼는 것은 서원 건너편 낙동강변 백사장에 솟은 시사단(試士壇)이다. 특히 요즘처럼 강 안개가 잦은 날 희뿌연 새벽 안개 사이로 드러나는 시사단의 모습은 경외감까지 들게 한다. 이름 그대로 ‘선비를 뽑은 장소’라는 뜻을 지닌 시사단의 역사는 1792년까지 올라간다. 그해 재위 16년째를 맞은 정조는 3월 25일 도산서원에서 과거시험(도산별과)을 치르도록 명하였다. 한양을 벗어난 장소에서 처음 치러진 이날 과거에 응시한 사람은 무려 7228명이었고,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만도 3632명이었다. 그 가운데 강세백(姜世白, 1748~1824)과 김희락(金熙洛, 1761~1803) 두 사람이 급제하여 왕 앞에서 보는 최종 면접시험인 전시(殿試)에 나아갈 자격을 부여받았다. 시사단은 이때 치러진 별과를 기념하여 4년 뒤인 1796년 과거가 거행된 곳에 세워진 비와 비각이 있는 장소이다. 처음에는 도산서원과 마주 보는 강변 솔밭 안에 세워졌으나, 1970년대 중반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단을 10m 높이로 쌓아 올려 옮긴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시사단을 보면 의문이 하나 생긴다. 정조는 왜 하고많은 장소 가운데 도산서원에서 과거를 치르게 했을까? 표면적인 이유는 250여년을 먼저 산 퇴계 선생의 학덕을 기리게 위해서였다고 전한다. 그렇더라도 의문은 계속된다. 학덕을 기릴 선현이 어디 퇴계 선생뿐이었겠는가? 그럼에도 퇴계와 도산서원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극심하던 당쟁으로 나라가 분열되자 조정에 영남의 남인을 등용하여 보완함으로써 탕평 효과를 거두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다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런 견해보다 퇴계 선생이 후세에 남긴 학덕에 더 무게를 두고 싶다. 퇴계 선생은 평생을 낮춤과 배려로 일관했다. 자신에겐 엄격하고 남에겐 후한 ‘박기후인’(薄己厚人)의 삶을 몸소 실천한 분이다. 까닭에 퇴계 선생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이 떠나지 않았다. 정조는 퇴계 선생이 남긴 학덕에서 바로 이 부분, 즉 낮춤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배려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포용하는 치유의 코드를 읽어내고 마음으로 심복한 것은 아닐까? 정조는 재위 중 도산서원에 여러 번 제관(祭官)을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퇴계 종손이 평안도 영유현령으로 부임하는 길에 선생의 위패를 서울로 모시고 들어오자 예관에게 명하여 한강 부근 교외에 나가 맞이하게 하고, 그가 근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도 한강 교외까지 호송하게 했다. 위패가 지나는 길목에는 백성들이 “우리 선생님 지나가신다”며 엎드려 절을 했다고 기록은 전한다. 이를 감안할 때, 정조는 평생 낮춤과 배려를 실천하여 역사적으로 존경받는 퇴계 선생으로부터 자기 시대가 직면한 탕평과 통합이라는 과제의 해결책을 읽어냈을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움직이는 것은 거창한 담론이나 주의주장이 아니라 솔선수범의 실천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는 사례이다. 우리시대가 풀어야 하는 치유와 해결의 실마리도 앞서 사신 분들의 이 같은 선험(先驗)으로부터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새벽 안개 속에서 자태를 드러내는 시사단을 볼 때마다 드는 단상이다.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이사장
  • [김문이 만난사람] 조선백자 달항아리 맥 잇는 도예가 양구

    [김문이 만난사람] 조선백자 달항아리 맥 잇는 도예가 양구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정월에 뜨는 저 달은 새 희망을 주는 달~’ 일년 중 가장 큰 달은 언제일까. 정월 대보름에 뜨는 달이다. 그렇다면 달을 한번 유심히 살펴보자. 몸체는 풍만하고 굽은 입술의 지름과 다소 작은 모양을 하고 있다. 몸통 중간 부분에는 성형에 다소 어려움이 있는 듯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만든 후 붙인 이음자국이 있다. 여기에 투명한 우윳빛 유약(釉藥)이 발라지면서 휘영청 둥근 달이 된다. 두둥실 하늘로 솟구친다. 어찌 할 거나. 그냥 쳐다만 볼 거나 아니면 달려가 손을 뻗을 거나. 그래서 불러본다. ‘달항아리’라고 말이다. 둥그스름한 모양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백의 조선백자이다. 바라만 보아도 보름달과 같이 풍요롭고 두 팔 벌려 품으면 계수나무 은하수까지 가슴에 안은 듯한 느낌이다. 백자 달항아리는 서양인뿐만 아니라, 한국인이 보기에도 가장 한국적 정서가 풍기는 도자기이다. 둥근 몸체와 흰 때깔 등에서 오묘함이 절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화가 김환기(1913~74)는 유별나게 달항아리를 좋아했다. 골동품상을 기웃거릴 때마다 달항아리를 하나씩 들고 나올 정도였다. 그러면서 ‘둥근 하늘과 둥근 항아리와, 푸른 하늘과 흰 항아리와, 틀림없는 한 쌍이다’라고 읊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月光)으로 인해 온통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찌하여 사람이 이러한 백자 항아리를 만들었을꼬.’라고 했다. 그만큼 달항아리를 가슴에 꼭꼭 품고 작품 활동을 했던 것이다. 달항아리를 얘기할 때 흔히 백자대호(白姿大壺)라고 한다. 이유는 높이가 40㎝ 이상 큰 항아리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몸체를 위 아래 따로 만들어 붙여 완전한 원형이 아닌 부정형의 둥그스름한 달덩이 모양을 하고 있다. 조선 백자 달항아리는 조선 숙종때인 17세기 후반에서 영·정조 시대인 18세기의 것으로 짧은 기간 그 모습을 드러낸 ‘백자대호’를 말한다. 유백이 가지는 따뜻한 촉감과 비대칭의 조형은 언어를 초월한 그윽함이 있고 한국인의 순수한 미감을 가장 잘 표현해내고 있다. 이러한 달항아리의 맥을 잇는 도예가는 흔치 않다. 양구(46)씨는 달빛을 머금은 순백의 항아리를 온몸으로 품은 지 28년째다. 정월 대보름을 앞두고 지난 7일 오전 경기 이천에 있는 공방에서 그를 만났다. 백토를 꺼내 탁탁 두드리더니 물레를 돌리기 시작한다. 대충하는 듯이 보였지만 금세 모양을 갖춰나간다. 달항아리를 만들어나가는 손놀림과 눈빛이 간단치 않았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한다. “달항아리는 보름달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풍년을 빌고 팔월 한가위 풍년에 감사했던 그런 보름달이지요. 원래 달항아리는 위와 아래를 각각 따로 만들어서 이어 붙입니다. 그래서 굽다보면 조금 틀어지기 때문에 둥그렇다가 아닌 둥그스러한 모양이 나오지요. 두 개가 하나로 이어지는 달항아리는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녹아 있습니다.” 화해와 상생이 작업의 화두라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올 한 해도 달항아리처럼 다들 서로 아름답게 어울리고 배려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낸다. 물레작업을 하던 그와 마주 앉았다. 달항아리의 특징에 대해 먼저 물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달항아리는 둥그스러한 모양입니다. 때문에 어떠한 잣대로 규정짓지 못하지요. 유한이 아니고 무한이며 무궁무진과 깊은 한국적 미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식이 없고 솔직하며 시공을 초월한 우주적 표현과 자연스러운 미가 특징이지요.” 달항아리는 옛 조상의 소박하고 실용적인 그릇인 동시에 달과 같이 너그러움의 관용을 베푸는 미학의 결정체라고 거듭 강조한다. 달항아리의 역사에 대해서는 “17세기 중엽 관요로 시작됐으며 일제 강점기에 우리 고유의 것이 사라졌다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현재 달항아리에 전념하는 작가는 7~8명정도로 알고 있다고 설명한다. 아울러 아무런 장식도 없이 오직 둔중한 구체 하나만을 하얗게 보여주는 달항아리가 최근 들어 서서히 그 가치를 다시 인정받고 있다고 부연한다. 그런 까닭은 담백하면서도 고요하고, 과묵하면서도 넉넉함이 넘치는 그 자태에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매력 때문에 그동안 한눈 팔지 않고 달항아리 하나만을 고집해왔다. 자극과 수다스러움이 난무하는 시각적 무질서의 환경에서 절제된 미의식을 추구해왔고 ‘고도의 문명에 의해 상처받은 정신적 치유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스스로 달항아리라는 내면의 성찰을 찾으면서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사각 사각’ 고운 살결 보이려고 물레 위에서 춤추는 항아리를 좋아했다. 그 춤사위는 민요가 되고, 블루스가 되고, 때로는 세상을 울리고 웃기는 소리꾼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노동이 있더라도 그런 모습을 보면서 모양이 밉든 곱든 ‘달항아리 탄생’이라는 기대와 설렘으로 흙을 만졌다. “달항아리의 격식을 따진다는 것은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그러면 한 사람의 행위를 초라하게 만들어버리지요. 잘생긴 놈, 못생긴 놈, 길쭉한 놈, 넓적한 놈, 많은 관찰 끝에 나온 손놀림은 수고로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돌돌돌, 물레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나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흥이 생겨납니다. 그래서 달항아리라고 부르지요.” 전남 무안 출신인 그가 달항아리와 인연을 맺은 것은 고등학교 졸업 무렵이다. 지인의 권유로 여주로 건너간 그는 전승 도자의 요장에서 물레대장 등을 거쳤다. 이 무렵 평생 스승으로 여긴 도예가 정형선씨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달항아리에 빠졌다. 전국의 박물관과 도요지 탐방 등을 통해 흙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조선의 달항아리가 소박하고 따뜻한, 그리고 가식 없는 한국인의 성정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여러 문헌을 섭렵하면서 끈덕진 실험정신을 이어나갔다. 진정한 달항아리의 모습을 거울처럼 보여줄 수 없을까 하고 늘 고민했다. “조선의 백자를 공부하는 사람이 달항아리와 만나는 것은 필연적인 일입니다. 넉넉하고 풍성한 달항아리를 보면 마음이 저절로 따뜻해지고 경건해지기까지 하거든요. 흙과 유약, 불을 공부하면서 조선 백자의 자연스러운 감성을 되살리기 위해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어떨 때는 과연 조선의 백자가, 달항아리가 이 시대에 되살아날 수 있을지 한참 염려하기도 했지요.” 달항아리의 맛은 여러 요소가 통합될 때 나온다는 그는 20대 후반에는 역량이 부족해 형태만이라도 맛을 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만들다가 부수고, 수없이 그런 행위를 반복했다고 술회한다. 좋은 백토를 구하기 위해 소문을 들을 때마다 전국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이 과정에서 무기재료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단절된 감성과 때깔을 되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몇십t의 백토를 사들였다가 쓰지도 못하고 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달항아리의 형태를 만들 때는 입술의 추임새와 몸체의 당당함, 굽의 비례가 조화로울 때 가능해지는데 물레기능이 일류라고 자부하는 양씨 자신도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그 맛을 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 백자의 때깔을 살리려는 것은 모든 도예인의 소망입니다. 도자기 공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너무도 당연한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문헌을 찾고 도요지를 답사하면서 도자사학에 심취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드러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달항아리 연구에 정열을 쏟을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흙 주변에 흩어지는 보석 같은 파편들이었다. 이들을 보면서 다시 흙을 만지고 달항아리를 만들면서 마음에 들지 않아도 꾸준히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흙을 찾으러 다닐 때의 고달픔과 뙤약볕 아래에서의 곡괭이질도 달항아리가 주는 감동 앞에서는 모두 인내할 수 있었다. 그 영혼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은 물론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그에게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두근거린다는 말이 있지요. 어느 날 조선 백자에서 그 두근거림을 봤습니다. 앞으로도 단지 달항아리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따뜻한 피와 넉넉함의 온기가 흐르는 달항아리를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럴수록 연애하는 것처럼 마음은 더욱 두근거리겠지요”(웃음) 달항아리는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도 없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유산이라고 하면서 작업장에 흩어진 달항아리에 푹 파묻혀 환하게 웃는다. 그 모습이 보름달처럼 다가왔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도예가 양구는 1968년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졸업후 여주 도자 요장에서 물레대장 등을 거치면서 조선백자 달항아리에 입문했다. 1997년 이천에 전시장 ‘보인행’을 설립했고 2003년 서울 삼청동에 개인 전시장 ‘보인행’을 오픈했다. 2000년 ‘일묘(一妙) 양구 청자전’(인사이트센터, 인사동)을 시작으로 ‘한국의 도자기’(2005, 부산 롯데호텔), ‘한국의 명품전, 달항아리’(2005, 보인행, 삼청동), ‘한국·프랑스 작가 교류전’(2005, 세계 도자센터, 이천) 등을 거쳐 2006년 양구 도작(陶作) 20주년을 맞아 ‘청자와 백자전’(가나아트스페이스, 인사동), ‘고객 초대전’(보인행, 삼청동), ‘창작가마 초대전’(세계도자센터, 이천), ‘청자전’(보인행, 삼청동), ‘백두산과 달항아리’(서울갤러리, 프레스센터) 등의 전시를 열었다. 이 밖에 ‘양구 달항아리전’(2007), ‘양구 달항아리전-달이 휘영청’(2011), ‘양구의 달항아리전’(2012) 등이 있다.
  • 그냥, 화천 촌놈의 수더분한 이야기

    그냥, 화천 촌놈의 수더분한 이야기

    “시베리아에서 저 멀리 베링해협을 지나 알래스카까지, 왜 그런 혹독한 곳으로 사람들은 갔을까?” 3만년 전에 알래스카로 이동했다는, 황인종이 확실한 이누이트인들의 순박한 얼굴을 보면서 늘 생각해 왔던 질문이다. 고등학생이던 1984년 등단해 올해로 30년차 시인이 된 신동호(48)는 최근 펴낸 산문집 ‘분단아, 고맙다’(i&R 펴냄)의 서문에서 이런 질문과 함께 친절하게 답을 내놓았다. ‘정답’이라기보다 시인이 스스로 질문하고 스스로 답한 것이다. 신동호는 “양보, 협동, 배려 같은 자본주의 사회의 열성 유전자들이 거기서는 따뜻한 우성인자가 됐다”고 했다. 수년 전 남극 세종기지를 방문한 뒤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해소했다는 것이다. “추울수록 배가 고파서, 풍요에 대한 욕심이 많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절제에 익숙해졌다”면서 “인류가 빙하기에서 만난 건 이타심”이라고 강조했다. 신자유주의가 2008년 가을 천둥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붕괴하면서 인류의 이기심에 대한 비판과 마을공동체로의 복귀 등이 거론되는 가운데 그가 내놓은 답변에 귀가 솔깃했다. 같은 발상으로 통일에 대해서도 상상력이 필요하고, 분단으로 축소되고 제한된 상상력의 한계를 뛰어넘을 것을 주문하고 있다. 산문집 제목이 정치적인 어떤 지점을 툭툭 건드리지만, 수록된 글들은 강원도 화천 촌놈으로 살아왔거나 서울에서 둥지 튼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고단하게 살아가는 수더분한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연애편지를 대필해 주다가 시인이 된 이야기에는 웃음이 나오고, 문자 해독에 실패한 막내딸 이야기는 찡하다. 다만 ‘서울신문’을 비롯해 언론들에 다양한 형태로 연재했던 글 중 55편을 뽑아 놓은 것이라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기보다 살짝 눙치고 주저한 흔적들이 있다. 사회, 문화, 정치, 남북관계와 남극방문기 등 6개의 장으로 나눠 놓았다.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글이야 아무래도 표제작이겠지만, 3장의 표제작인 ‘아빠 직업이 뭐니?’가 마음속으로 휙 뛰어 들어왔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삽입해도 큰 손색이 없을 글 같다. 어른들이 의도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상처를 입을 수 있구나 하고 경계심이 생긴다. 자녀의 친구들이 방문하면, 부모들은 으레 아버지는 뭘 하시냐고 물어본다. 신동호 시인의 아버지는 ‘강원도 춘천시 조양동 3통 통장님이셨’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시인은 통장을 문턱 높은 동사무소에 들락거릴 수 있는 좋은 직장으로 이해했다. 1970년대 통장이면 그 나름대로 행세를 하지 않았을까 상상한다. 글과 그림에 소질을 보이던 초등학교 4학년 학생 신동호는 소년한국일보에서 주최한 사생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아 서울 장충체육관으로 첫 서울 나들이를 했다. 그것도 담임선생님과 함께. 상을 받고 춘천으로 돌아가기 전, 도시의 건널목에서 담임이 물어봤다. “아빠 직업이 뭐니?” 11살 소년은 당당히 답변했다. “우리 아버지는 통장님이셔요.” 담임의 얼굴은 실망으로 가득 찼고, 돌아오는 길은 재미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무엇이 담임을 실망시켰는지 소년은 몰랐다. 중학교 1학년 무렵 그는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됐다. 친구집에 놀러간 소년 신동호는 다시 아버지의 직업을 답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중학생 신동호는 답변을 피해 친구집을 박차고 나왔다. 신동호는 당시 담임선생님에게 눌려, 고등학교 첫사랑이 교사의 딸이라 포기했었다며 웃음을 던진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 그는 결국 교사 딸과 결혼에 성공했단다. 50세를 향해 가며 ‘386세대’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은 시인의 산문은 2005년부터 2012년까지 8년에 걸쳐 쓴 글인 만큼 ‘그때 그 사건’을 정리하는 느낌도 있다. 세월이 흐르는 물과 같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기고] 원자력 연구계의 새 모습을 기대한다/신정식 중앙대 석좌교수

    [기고] 원자력 연구계의 새 모습을 기대한다/신정식 중앙대 석좌교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 핵연료는 매우 다루기 어렵다. 강한 방사성물질과 함께 많은 열을 발생시키고 반감기가 1만년이 넘는 물질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때문에 관리를 위해 기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많고 사회적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으로는 재처리를 통해 재활용한 뒤 고준위 폐기물의 형태로, 또는 직접 처분하겠다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아직 최종 처분을 실시하고 있는 곳은 없다. 다만 핀란드와 스웨덴만이 부지를 선정하고 처분장 건설을 준비 중에 있어 성공사례로 꼽힐 정도다. 원자력 분야 최고의 기술력을 갖춘 미국·프랑스·영국은 아직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유카마운틴에 처분장을 건설하려다 주민 동의를 받지 못해 실패하고 2048년까지 마련하는 쪽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영국과 프랑스도 주민 반대에 대국민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장기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용후 핵연료의 관리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으나 사회적 갈등만 일으킨 채 9차례 넘게 실패한 경험을 갖고 있다. 원자력분야, 특히 사용후 핵연료 문제는 다양한 사회적 요구들을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기술적 관점에 국한해 연구하기에는 사회적 관심과 사안의 중요성이 너무 크다. 경제성은 물론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시민사회의 의구심, 핵비확산성에 대한 국제적 투명성, 관련 시설에 대한 지역 주민의 수용성 등 사회적 차원의 합의가 전제돼야 한다. 중단기 대책의 경우, 원전 운영국 대다수가 중간저장을 실시하고 있어 어느 정도 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최종적인 대책은 모호한 상황이다. 최종 관리방안은 500m 이하 심지층에 직접 처분하거나 플루토늄 등을 재활용해 양을 줄인 뒤 처분하는 것이다. 모든 결정에는 기술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원자력 연구계 일각에서는 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 등 핵물질을 분리해 내는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 5월에 실험시설 완공, 2025년 종합 파이로프로세싱 시설 완공, 2028년 파이로프로세싱 시설에서 나오는 연료를 사용하는 소듐냉각고속로 건설 계획을 각각 추진하고 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장기적으로는 지하에 처분하는 데 필요한 기술 개발도 진행 중이지만 사용후 핵연료 재활용 분야에 비해 투자 규모나 관심이 미약하다. 원자력의 미래기술을 찾는 노력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사실은 안전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회 각 계층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연구자들만의 시각을 벗어나 시민사회, 지역 주민 등과의 소통을 통한 투명성 제고가 사회적 합의를 위해 반드시 절실하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원자력 정책·연구개발 기능을 지식경제부의 새로운 이름인 산업통상자원부로 이관하기로 한 조치는 상당한 고민의 결과다. 원자력 연구계도 이제부터 마음을 열고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 과정을 중심으로 사회적 합의를 위해 다각적인 소통과 협력을 추진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 [열린세상] 생명의 시대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학장

    [열린세상] 생명의 시대 미래창조과학부의 역할/강대희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 학장

    2주 남짓이면 박근혜 정부의 개막과 함께 초대형 부처인 미래창조과학부가 탄생한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아픔을 딛고 지난 60년간 농경, 산업, 정보, 지식사회를 거쳐 미래 생명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생명의 시대가 될 대한민국의 ‘미래’를 ‘창조’하는 ‘과학’ 부처의 출범은 실로 반갑다. 그러나 미래창조과학부가 과연 생명의 시대를 준비하는 데 적합한지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대한민국의 오늘은 어떤 얼굴인가? 고용 없는 성장 단계에 진입한 지 수년째, 청년실업의 문제와 조기퇴직에 따른 경력 실업자들의 재취업은 바늘구멍이다. 경제 양극화는 건강 양극화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유례 없이 빠른 속도로 늙어 가는데 노령화 시대에 대비한 사회적 합의와 노력은 더디기만 하다. 2011년 건강보험에서 지급한 65세 이상 노인 진료비는 전체 진료비의 33%인 15조 3000억원이다. 이는 지난 7년 새 3배나 증가한 수치다. 2026년이면 65세 이상 노인 인구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다. 건강수명 100세 시대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어떤 역할을 담당해야 할 것인가. 미래는 생명의 시대이다. 생명의 시대에는 기본적인 인간의 권리와 존엄성이 최대한 구현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건강 민주화의 실현이 필수적이다. 건강 민주화의 전제 조건은 기초과학과 임상의학의 접목을 통한 ‘생명의학’이 국가 연구개발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정보통신(IT)을 기반으로 하는 융합의료연구를 발전시켜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대한민국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일자리 창출과 서비스산업의 총체인 의료산업을 국가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고 해외로 우리의 높은 의료기술을 수출한다면 경제적 이익은 물론 글로벌 한류의학(K-메디신)의 실현을 통한 국격 제고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생명의학 분야에 대한 충분한 투자와 지원이 보장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래창조과학부의 성공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가늠할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실패한 경험은 되새기고 지속가능한 장점들은 살려나가는 지혜와 용기가 필요하다. 기존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수행했던 연구개발 예산의 배정 및 조정 권한까지 갖게 되는 것은 타 부처 사업 예산을 검토하고 조율할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경우에 따라서는 정작 필요한 국가 단위의 중요 연구개발 사업이 소외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부처별 예산 나누어 먹기 식의 분배는 없어져야 하며, 미래 유망 산업에 대한 보다 과감하면서도 체계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비 지원이 필수적이다.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는 부서로서 장기적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방향도 재설정해야 한다. 가시적, 단기적 성과 도출이 가능한 분야에만 예산이 집중 배치됨으로써 장기간 인내심을 갖고 투자해야 하는 기초과학 연구에 대한 소외와 차별이 없도록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과학기술 전문 인력의 양성과 더불어 이들을 국가 핵심인재로 대접하는 일에도 힘을 써야 한다. 우수 인재들이 불안한 미래 때문에 과학도의 길을 포기하는 사례가 없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과학기술 인재에 대한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고,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가장 시급한 일이다. 최근 미래형 융합연구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개인 맞춤형 예방연구’가 대두되고 있다.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특성에 따라 개별 맞춤형 질병 예방정책을 수립한다는 개념이다. 국가의 운영도 이와 다르지 않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 다양해지는 사회적 요구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민첩하고 유연한 구조를 가진 부처를 구성해야 한다. 부처별 전문성에 기반한 맞춤형 정책도 구현해야 한다.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룡과 같은 거대 부처가 아니라 민첩하고 유연한 맞춤형 정부 부처로 거듭나 국가 연구개발(R&D) 사업에 대한 컨트롤 타워 역할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 나갈 성장 엔진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청년들이 2050년 세계를 이끌어 갈 창조적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 [기고] 평창이 내게 건넨 선물들/권석하 영국 런던 거주

    [기고] 평창이 내게 건넨 선물들/권석하 영국 런던 거주

    ‘그 나이에 한국까지 가신다고요?’ ‘다들 20대 젊은이들일 텐데….’ 주위에선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1980년대 초반 영국에 건너가 지금껏 살아왔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때 조국에서 오신 손님들을 도와드린 인연에다 평창 동계스페셜올림픽의 성공 개최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강원 평창에 도착한 게 지난달 23일이었다. 2500여 자원봉사자 중 61세인 내가 가장 나이가 많았다. 영어를 더 잘할 것 같은 젊은이들도 많았는데 ‘DAL’(대표선수 지원단) 단원으로 어떻게 선발됐는지 모르겠지만 난 대회 내내 ‘영국에서 날아온 아저씨 자봉’으로 통했다. 영국 선수 6명과 코치 등 임원 7명, 선수 가족 15명을 거드는 게 내 일이었다. 이제 성화는 꺼졌다. 해외에서 30여년을 보낸 ‘아저씨 자봉’은 평균 23세인 조국의 젊은이들과 부대끼며 아주 행복했다. 2주 남짓 자원봉사자들은 5~6명이 한 방에서 자는 열악한 여건에서도 자신의 일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대회를 치러냈다. 그러나 대회 초반 흠결도 적지 않았다. 중심으로 자리해야 할 조직위원회는 잘 눈에 띄지 않았고 겉돌았다. 충분한 예산도 확보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한마디로 자원봉사 없이는 대회가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봉사자들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부족했다. 나경원 조직위원장이 자원봉사자 모임에 직접 나와 해명도 하고 대책 마련을 약속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그래서인지 그 뒤 한결 나아졌다. 1분에도 수십 개 쌓이던 봉사자들의 카톡방 불평 문자도 사라졌다. 그러나 식사와 숙소에 대한 불평은 계속됐다. 장애인선수들에게 제공되는 도시락 점심은 정말 말이 안 됐다. 차갑게 굳어 목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선수들을 좁은 공간에 너무 많이 들여 스트레스가 쌓여 문제를 일으킨다는 코치들의 불만을 지나치다고 할 수가 없었다. 장애로 불편한 이들을 이렇게 소홀하게 대할 바에는 대회를 왜 치르느냐고 고개를 내젓는 봉사자도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은 착하고 단순해서 늘 밝게만 웃는 선수들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욕심을 부리다 잘 안 되면 속상해 하고 안타까워했다. 이렇게 착한 젊은이들에게 한국 사회는 또다시 큰 빚을 졌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선수들은 불평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런 대회가 열린다는 것과 거기 참여한 자신이 행운아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선수촌이든 경기장이든 얼굴을 찌푸리거나 무표정하게 지나치는 이들은 소위 ‘정상적인’ 이들이었다. 그런 게 익숙해지자 누군가 첫 인사에 뜨악한 반응을 보이면 ‘아차, 저이는 선수가 아니라 정상적인 사람이지’라고 여기고 서글퍼지곤 했다. 상대가 날 재지 않는다는 것이 이렇게 편안한지 처음 알게 됐다. 이번 봉사를 통해 얻은 것이 그들에게 배려하고 안겨준 것보다 훨씬 많아 참으로 고마웠다. 오랜만에 찾은 조국, 그것도 강원 평창에서 이렇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로부터 새로운 세상을 얻었다. 영국에 돌아가면 총리 초청으로 선수단과 함께 다우닝 관저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도 평창이 건넨 선물이다.
  • 서울 용산구 텃밭 609계좌 분양

    서울 용산구 텃밭 609계좌 분양

    서울시는 용산구 이촌동 노들텃밭과 용산동 용산가족공원 텃밭을 가꿀 도시농부를 13일까지 선발한다. 이번에 분양하는 텃밭은 609계좌 가운데 노들텃밭은 419계좌, 용산가족텃밭은 190계좌다. 1계좌당 넓이는 6.6㎡, 참여비는 2만원이다. 노들텃밭은 1만 100㎡ 규모로 1~7가족이 하나의 팀을 구성해야 신청할 수 있다. 다문화·다둥이·3대 이상·장애우가족, 복지시설 등을 서류심사를 통해 우선 선발하고 나머지는 공개 추첨한다. 최대 7가족이 팀으로 접수할 수 있기 때문에 팀 참여비는 최대 14만원이다. 용산가족공원 텃밭은 1계좌당 1가족이 신청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사회적 배려 대상을 우선 선정하며 나머지 신청자는 공개추첨을 통해 선발한다. 도시농부 참가 희망자는 13일까지 참여 신청서를 이메일, 우편, 직접방문을 통해 접수하면 된다. 두 텃밭에 중복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참여자 공개추첨은 15일 오전 10시 노들텃밭에서 진행된다. 자세한 사항은 서울의 공원 홈페이지(parks.seoul.go.kr), 노들텃밭 인터넷카페(cafe.naver.com/ndfarm), 용산가족공원 텃밭 인터넷카페 (cafe.daum.net/y.s.-parkfarm)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사설] 골목상권 지키되 자영업자 몰락 경계해야

    동반성장위원회가 어제 제과점과 외식업 등 16개 업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골목상권’을 위협하는 대표적 사례로 꼽혀온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는 연 2% 신규점포 제한과 동네빵집 500m 이내 출점 금지 대상이 된다. 전국적으로 파리바게뜨는 3200여개, 뚜레쥬르는 127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점포가 포화상태인 수도권 지역에서는 더 이상 늘어나기가 불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중소기업의 영역을 넘보지 말고 역지사지로 배려하라는 성장위 조치의 원칙은 옳다고 본다.다만 성장위의 결정은 사회적 합의를 결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겨두고 있다. 프랜차이즈 등의 업계 반발을 무릅쓰고 밀어붙인 탓에 경제단체의 반응이 엇갈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골목상권이 살아나고 대기업·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발판이 되어야 한다면서 환영했으나, 전경련은 제과산업과 외식산업 위축을 우려했다. 골목상권 보호 조치에 법적·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앞으로 논란이 증폭될 가능성이 많다. 외식업종에서 규제대상에 들어간 외국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는 놀부밖에 없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의 발이 묶인 사이에 동반성장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은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의 외국업체는 날개를 단 듯 확장공세에 나설 전망이다. 외국 외식업체들이 국제소송을 제기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골목 깊숙이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들어서 있는데 SSM에는 제과점을 허용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라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외식업 전문 중견기업인 새마을식당의 출점 제한은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동일한 잣대를 적용했다는 형평성 논란 여지를 안고 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매장의 95%는 자영 가맹점이어서 이들을 법적으로 중소기업으로 봐야 할지도 다시 따져봐야 할 일이다. 점포 증설이 제한되면 기존 점포의 기득권은 강화될 수밖에 없고, 이렇게 되면 프랜차이즈 업체의 위상 강화는 명약관화하다. 이는 프랜차이즈 업체에 비해 사회적 약자인 자영가맹점 점주가 더욱 열악한 지위로 내몰릴 것이라는 얘기 아닌가. 대기업 간판 밑의 자영업자나 이와 무관한 골목의 자영업자나 모두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영세 자영업자가 예상치 못한 피해를 보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장위는 부작용을 꼼꼼히 따져 후속조치를 강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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