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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과후 공부방서 지덕체 길러요”

    종로구가 저소득층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형태의 공부방을 운영해 화제다. 종로구는 지난 3일부터 교남주민센터에서 방과후 교실 ‘티치미’를 운영하고 있다. 티치미는 단순히 학과 공부만 가르치는 곳 이상이다. 생활에 바쁜 부모를 대신해 어린이들의 올바른 학습지도와 인성교육도 한다. 새로운 형태의 지역 아동복지 사업이다. 종로 티치미에는 수영, 영화관람, 자율탁구 등 생활체육 프로그램도 도입했다. 또 저녁 식사와 노래방 시설도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수업이 없는 토요일(놀토)에는 지역 역사문화 탐방이나 주말캠프 등도 운영한다. 사회성과 여가활동까지 책임지는 등 생활에 쫓기는 부모 역할을 도맡았다. 지역내 기초생활수급자, 편부모 가정 및 저소득 장애인 가정 등의 어린이 15명을 대상으로 시작했다. 교남동주민자치위원장이 원장으로, 자치위원들은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들은 담당제 및 일일교사 활동 등 어린이들과 일대일 결연으로 아이들을 직접 돌본다. 또 주민자치위원회 적립금과 주민 후원금으로 학습교재와 간식도 지원한다. 학습 지도 교사로는 우수한 행정인턴을 배치했다. 학습도우미는 이화여대 사범대 자원봉사자들이 맡았다. 티치미는 일반 학습은 물론 정서 상담을 통해 어린이들의 고민을 해결하는 시스템도 갖춘 셈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오후 1~8시까지 운영한다. 김충용 구청장은 “시범 실시하는 티치미는 사회적으로 소외된 어린이들을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 특징”이라면서 “앞으로 종로구 18개 주민센터에서 확대 시행할 수 있도록 행정적 지원을 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대한민국 극&극]47억 경주마 씨수말 VS 270만원 퇴물 경주마

    [대한민국 극&극]47억 경주마 씨수말 VS 270만원 퇴물 경주마

    ‘천둥이’를 기억하시나요. 영화 각설탕 이야기입니다. 어디 사람뿐이겠습니까. 미련하다는 소들도 죽음을 앞두곤 슬피 운답니다. 짐승이라고 해도 살아 있는 생물인 바에야 다를 게 뭐 있겠습니까. 언뜻 생각하면 승부에 집착하는 듯한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묵묵히 달리는 천둥이는, 말 못하는 동물을 바라보더라도 교감(交感)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줍니다. 천둥이는 달렸습니다. 그리고 1등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엄연히 먹고 먹히는 승부에서 순위는 결정되기 마련이고, 딴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주인의 마음에 쏙 들지 못한다는 게 마음 아팠을 테지요. 질주 본능을 지녔다는 말(馬)의 세계에도 가장 잘나가는 녀석과 그렇지 않은 녀석이 존재합니다. 3년 전 천둥이를 떠올리며 그들의 세상으로 한번 살짝 들어가 봤습니다. ■타고난 상팔자 대한민국에서 뛰는 경주마 가운데 가장 비싼 놈은 1억 2780만원입니다. 부산에서 활약 중인 ‘골딩’이 바로 놀랄 몸값을 뽐내는 주인공입니다. 현재 통산 전적 34전 15승으로 승률 44.1%에 이르러 명마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죠. 2착도 여덟차례여서 골딩에 승부를 건 사람들에게 복승률(1등과 2등을 순위에 관계없이 맞히기) 67.6%라는 기쁨까지 안겼습니다. 더 욕심을 부려 100%면 좋겠습니다만, 이 정도라도 팬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는 얘기가 됩니다. 몸값의 6배 넘는 돈을 벌었기 때문이죠. 통산 상금에서 7억 7000만원으로, 2700여마리 가운데 단연 1위에 올랐어요. 그러나 진짜 비싸기로는 씨수말이 한참 앞섭니다. 뛰어난 경주마 씨를 퍼트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포레스트캠프’는 우리 돈으로 약 47억원이나 됩니다. 한국마사회 윤재력 팀장은 “경마에는 혈통이 매우 중요한 터여서, 잘 뛰었던 말들의 경우 현역에서 퇴역한 뒤부터 가격은 오히려 훨씬 뛰어오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몸값이 높으니 당연히 귀한 몸입니다. 특별한 대우를 하는 게지요. 한 마리씩 2000~3000평(9918㎡)이나 되는 방에 모십니다. 같은 우리에 넣으면 서로 싸우다가 다칠 수도 있어서랍니다. 캐나다 등 외국에서 최고급 인테리어 재로로 쓰는 적삼목으로 집을 만들고 한약재와 가시오가피 등 몸에 좋다는 것들은 죄다 먹입니다. 한 병에 7만원이나 하는 홍삼 가루 등 최고급 사료를 돈으로 치면 한달 200만원 가깝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자손을 퍼뜨리는 교배가 전부입니다. 교배가 끝나면 먹고 자면서 몸을 만들기만 하지요. 그야말로 상팔자라고 하겠습니다. 전북 장수에 위치한 경주마 목장에서 씨수말 관리를 맡은 김만진 과장은 “씨수말은 아침과 점심, 저녁, 밤을 합쳐 모두 네 차례 교배가 가능하다.”면서 “말들이 스트레스를 받거나 부상을 입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귀띔합니다. 포레스트캠프와 300만달러(약 45억 4800만원)에 이르는 ‘메니피’ 등 수십억대 씨수말들은 짝짓기 계절에 정력 증강을 위한 홍삼 및 마늘 분말과 부족한 영양성분을 공급하는 현미유, 관절질환 예방 및 치료를 위한 영양제, 면역력과 소화력을 늘리기 위한 체력증진 및 임신율 향상을 위해 특수사료를 줍니다. 연간 사료비 예산만 약 1억 3000만원에 이르지요. 가장 최근인 지난 26일엔 21억원짜리 고액 몸값을 뽐내는 열살배기 ‘비카’가 오전에만 두 차례 사랑을 나눴습니다. 체력단련도 흥미를 끕니다. 제주 경주마 목장에서 근무하는 유병창씨는 “보통 3~6월 집중되는 교배 시즌을 앞두고 10주일간 체력단련 프로그램을 마련해 씨수말의 연령·체력·질병 등 건강상태에 따라 운동량 및 강도를 조절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어 “씨수말에 따라 신체상태지수(BCS) 측정을 통해 적정 체중범위를 산정하고 주기적으로 체중체크 및 건강상태를 점검한다. 또 적당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개별 운동관리 시스템을 도입하고 워킹머신을 이용하기도 한다.”며 웃었답니다. 이름은 동물병원이지만 말을 전문적으로 맡는 곳도 있습니다. 물론 최신 시설입니다. X선과 CT촬영 시스템 등 사람들이 대하는 것들 대부분을 갖췄습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아름다운 꼴찌 세상엔 빛 너머 그늘도 짙습니다. 인간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늘 좋으라는 법은 없지요. 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천둥이처럼 힘차게 뜀박질하던 녀석이 죽거나 큰 부상을 입으면 도리가 없습니다. 척추골절, 심장마비, 폐출혈 등 사고나 질병으로 죽은 말은 화장(火葬)됩니다. 여기엔 말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려는 뜻이 깃들었습니다. 단순한 동물이 아니라 한 식구로 여기기 때문이에요. 말은 다리만 부러져도 고통이 워낙 심해 안락사를 시키는 것입니다. 어림잡아 평균 키 170㎝에 몸무게 450~500㎏인 말 체격에 딱 맞는 가로 2m, 세로 1.8m 크기의 침대 비슷한 곳에 올려 불구덩이를 통과시킵니다. 호이스트(작은 기중기)가 동원됩니다. 바로 옆 마혼비(馬魂碑) 앞에선 위령제를 올려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한 넋을 달랩니다. 한 마리를 태우는 데 4시간이나 걸립니다. 몇 줌의 재로 변하면 커다란 통에 넣었다가 90일 지나 매립장으로 옮깁니다. 하필 한 주일이 출발하는 월요일인 지난 23일에도 네살배기 암말 ‘스피드레이디’가 사흘이나 배앓이를 호소하다 죽어가 태울 수밖에 없었답니다. 호텔 같은 곳에서 자라는 씨수말에 견주면 그 삶은 처참한 지경입니다. 폐사 원인이 뚜렷하지 않으면 부검을 하고 사람처럼 기록도 꼭 남기도록 돼 있습니다. 그들 역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싼 말로 기록된 불쌍한 ‘광속구’와 ‘만불산’도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싼 몸값만큼 경주에서도 초라한 성적을 남겨 후손을 남기기란 아예 눈꼽만 한 기대도 걸지 못한 채 말입니다. 광속구는 13차례 출전해 5위만 단 한번 했을 뿐이고 만불산 역시 18차례 경기에서 4위 세 번과 5위 네 번에 그쳤지 뭡니까. 소각장 담당 김소년씨는 “특히 내장의 피가 엉키는 배앓이로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귀띔합니다. 각설탕 주인공 천둥이도 이렇게 앓다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2006년 영화가 나온 이듬해 4월 초 일입니다. 당시 천둥이를 유골함에 고이 모시기도 했답니다. 다행히 가벼운 부상이면 민간 목장으로 팔려 승용으로 활약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마저 아니면 끝내 식용으로 팔리거나 동물원에 보내져 맹수들의 먹잇감이 되지요. 은빛여왕, 과천대로, 나주산성 등 한때 경마장을 누빈, 세상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말들도 소각장을 거쳤습니다. 말을 태울 때 30평 남짓한 소각장 온도는 적어도 850도, 1200도까지 올라가기도 합니다. 9년째 소각장에서 일하는 박광철씨는 “지난해만 모두 서른아홉 마리가 이곳에서 죽음을 맞았다.”면서 “천둥이를 태우고 집으로 가니 TV에서 각설탕을 방영하고 있었는데 자꾸 눈물이 쏟아져 머리를 돌리고 말았다.”며 고개를 내저었습니다. 천둥이가 스러진 2007년은 56두나 저 세상으로 보내 가장 잔인한 해였다고 되돌아봅니다. 김만진 과장은 “지구 온난화 탓이라는데 말 교배기간이 예년에 비해 보름 가까이 앞당겨져 지난달 20일 이미 시즌에 들어갔다.”면서 “말 후예들이 늘어나는 것은 다행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씁쓸한 웃음을 짓습니다. 그나마 몸값이 엄청난 아빠의 핏줄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경주장에서 잘 뛰어 이름값을 해낸다면 쓸쓸히 세상을 등지는 말들에게도 그나마 기쁜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MMORPG ‘아이온’, 내달 4일 새단장

    MMORPG ‘아이온’, 내달 4일 새단장

    MMORPG(온라인모험성장게임) ‘아이온’의 업데이트가 오는 3월 4일 실시된다. 이번 업데이트는 천계, 마계의 숨겨진 새로운 지역이 공개되고 레벨 제한이 45에서 50으로 상향 조정된다. 초보 게임 이용자를 배려한 ‘휴식의 기운’ 시스템과 신규 커스터마이징(자신의 게임 캐릭터를 개성에 맞게 만들 수 있는 시스템) 및 신규 아이템 등이 새롭게 추가된다. 업데이트를 기념해 2월 23일부터 4월 1일까지 파워이용권을 결제한 고객에게 캐릭터 커스터마이징을 변경할 수 있는 ‘외모 변경권’ 혜택이 주어진다. 이외에 ‘캐릭터의 변신은 무죄’ 이벤트를 통해 주 단위로 외모 변경권과 성별 변경권도 제공될 예정이다. 서울신문NTN 최승진 기자 shaii@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우리들의 바보’ 잠들다] “사랑, 용서… 그 분이 남긴 귀한 유산”

    ●명진스님(봉은사 주지) 종교인으로서뿐 아니라 인간적인 소탈함이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고 배타적이지 않은 자세가 타종교인들의 머리도 숙이게 했다. 김 추기경이 마지막으로 남긴 “고맙다”는 말씀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그분의 전체 삶을 보여준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메시지이자 물질만 추구하는 시대에 대한 엄중한 경고다. ●박형규 목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고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지만, 언제나 가장 낮은 자리에 관심을 뒀던 분이다. 고생하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곁에 항상 머물고자 한 그의 삶은 우리 사회 전체를 향해 “낮은 곳으로 가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덕(성균관장·한국종교인평화회의 대표회장) 참다운 종교인이면서 종교간의 벽을 허물었던 분이다. 다종교사회인 한국이 별다른 종교분쟁 없이 지내온 것도 따지고 보면 그분의 덕이 크다. 종교간 화합을 위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를 창립하는 데 실질적인 역할을 했으며, 자신의 종교보다 이웃종교를 더 배려한 마음은 종교인은 물론 모든 국민이 배워야 할 귀중한 정신적 자산이다. ●김남조(시인) 명동성당으로 조문을 갔다 왔는데 추위에 몇시간씩 떨면서 많은 조문객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을 보면서 민중의 아름다움을 봤다. 사람들 마음 속에 더 많은 공감과 더 좋은 유대가 이뤄지게 한 것도 그 분의 유산이다. 고인의 큰 뜻이 후세까지 전달돼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데에 언제나 조언을 제시하는 귀한 유덕(遺德)이 됐으면 한다. ●정호승(시인) 결국 인간은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온몸으로 남겼다. 종교의 벽을 넘어서는 추모열기를 보면서 추기경이 종교인 차원이 아니라 한 시대를 이끌어 온 하나의 구심점 또는 우리 삶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우리가 그의 소중함을 너무 뒤늦게 깨닫는 것 같아 안타깝다. ●유안진(시인) 내 삶이 어떠했는가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빈 손으로 와서 빈 손으로 갈 정도로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삶을 추구한 그의 모습이나 “고맙다.”나 “사랑하라.”는 마지막 메시지는 물질이나 명예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것이다. 종교인의 삶이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이장무(서울대 총장) 그의 선종은 우리 모두에게 큰 슬픔으로 다가온다.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사회적 약자를 위해 희생과 사랑을 몸소 보여준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은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또한 마지막까지 실천한 그의 사랑의 메시지는 앞으로 우리 사회의 갈 길을 제시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이석연(법제처장) 사분오열된 우리 사회에 진실과 관용에 기초한 공동체적 유대가 필요하다. 추기경은 하느님의 나라로 떠나면서도 그 유대를 복원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공동체적 유대를 회복하고 정부나 국회는 통합과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는 국민들 마음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 국가가 어려울 때 떠난 그의 정신을 생각해 국정에 임해야 할 것이다. ●강지원(전 청소년보호위원장) 우리 민족이 어려울 때마다 희망의 등불이 돼 줬고 불의에 대해 가차없이 질책했던 분이다. 그러면서 약자에게는 따뜻한 손을 내밀어 준 데 대해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앞으로도 우리들 마음의 등불이 돼 주기를 기원한다. 국민들이 그의 정신을 깊이 새겨 서로 화목하고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현정은(현대그룹 회장) 개인적으로 김수환 추기경은 외할아버지의 장례미사를 직접 집전해 주신 인연이 있기 때문에 가깝게 느껴진다. 나도 언젠가 김 추기경께서 직접 대중가요 ‘애모’를 부르는 것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다. 한국 사회를 위해 애써 오신 그의 선종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아주 커다란 손실이며, 정말로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김수환 추기경 추모] 추기경이 남긴 가르침

    ■ 최종태 조각가 병 중에도 남 배려한 휴머니스트 김수환 추기경님을 처음 만난 것이 40년 전인 69년 말입니다. 나는 이화여대 가톨릭학생회의 지도교수였는데, 학생들의 일부 행사가 관행에서 벗어났습니다. 당황해 하는데, 행사장인 이화여대 중강당에 추기경님이 장익 신부님과 함께 행사 5분 전에 나타났습니다. 모든 염려가 물안개처럼 사라지고 행사는 잘 마무리됐습니다. 그 때 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저 분만 만나면 모든 것을 풀 수 있겠다!’ 이후 열 살 위 큰 형님하고 노는 것처럼 추기경님이 그냥 좋았습니다. 그 분이 서울교구장직을 놓으시고 혜화동에 계실 때입니다. 동서남북 이야기가 번지다가 문득 마음 비우는 데로 이어졌습니다. 마음 비우는 일이 잘 안되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웃으시면서 “나도 그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죽어야 돼.” 하시고 또 “(사람이 죽은 뒤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15분이 지나야 돼.” 그래서 모처럼 시원하게 웃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그 시절의 비서 수녀님이 오라 해서 여의도성모병원에 갔습니다. 추기경님은 옷을 깨끗이 입고 반듯이 앉아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다. 30분 내내 방문객을 즐겁게 해 주셨습니다. 추기경님은 며칠 전 아침 미사를 빠뜨렸다고 했습니다. 문제의 핵심인 즉 ‘한국의 추기경께서 늦잠 자다가 아침미사를 빠뜨렸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병실이 폭소판이 됐는데 추기경께서 내게 속삭이는 말씀이 “밖에 나가서는 얘기하지 마!” 하십니다. 그래서 “말로가 아니라 내가 만천하에다 글로 쓸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고서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저 분이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를 기쁘게 해 주려고 그러셨구나 싶어서 가슴이 울컥하였습니다. 인천 소래의 사르트르 성바오로 수녀원 피정의 집 바깥 산에 14처 조각을 설치할 때입니다. 현장에는 전날 오신 추기경께서 나오셨습니다. ‘예수 사형선고를 받으심’ 제1처의 예수님의 이마에 월계수 가지를 만들었습니다. 추기경님이 돌작품을 꼼꼼히 보고 계시는데 당황스러웠습니다. “이 이마에 원래는 가시관을 만들었는데 어쩐지 마음에 안 들어 지우고 월계수 가지를 붙였습니다. 혹 잘못된 것이 아닐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추기경님 말씀이 “아니다. 이 사형수에게는 이미 승리가 예고된 집행이기 때문에 승리의 월계관을 미리 붙인들 무어가 잘못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그 때 용기를 얻어서 나는 한국의 교회미술 개척의 탄탄대로를 갈 수 있었습니다. 만약 고치라고 하셨다면 오늘의 최종태는 있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누가 있어 세상에다 그 큰 사랑을 또 쏟으실까요. 파도를 잠재운 큰 강물 같은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의 어깨에는 너무도 큰 짐이 실려 있었습니다. 다 벗으시고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 추기경 구명운동으로 사형 면한 양동화씨 “억울한 사람들의 든든한 성벽” “엄혹했던 시절, 추기경님은 스스로 고난을 감내하는 길을 택함으로써 큰 어른의 표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양동화(51)씨의 목소리에는 그리움이 어렸다. 1986년 그가 전두환 정권 최대의 간첩조작사건인 ‘구미(歐美)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김수환 추기경은 든든한 버팀목이 돼줬다. 그에게 견진성사(堅振聖事·가톨릭 교회의 7성사 가운데 세례성사 다음에 받는 의식)를 주러 온 것을 계기로 적극적인 구명운동을 펼침으로써 1988년 무기징역 감형, 1998년에는 광복절 특사로 나올 수 있게 도와 준 이가 김 추기경이었다. 양씨가 기억하는 그 시절의 김수환 추기경은 힘없고 억울한 사람들이 기대는 곳, 성경에 나오는 ‘돌아온 탕아’가 지친 몸을 의탁하는 곳이었다. 양씨는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직후인 1989년부터 출소 전까지 김 추기경과 120여통의 편지를 주고 받았다. 모든 내용이 당시 안기부(현 국가정보원)에 보고돼 자세한 얘기는 쓰지 못했다. “고생하고 있으니 좋은 일 있을 거다. 고통은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이다.”가 전부였다. 양씨는 “그 말을 거듭 새기며 수감 생활을 견뎠다.”고 회고했다. 편지를 주고 받다 보니 10년간 양씨의 옥바라지를 해온 연인 민연자씨에 대해서도 김 추기경은 알고 있었다. 1998년 양씨가 출소한 직후 찾아간 자리에서 김 추기경은 다짜고짜 “결혼은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물었다. “이제 해야죠.”란 대답에 추기경은 “주례는?” 했다. 조심스레 부탁을 하니 추기경은 기다렸다는 듯 “날짜를 잡아 봐라.”고 말했다. 그렇게 김 추기경은 양씨의 결혼식 주례까지 자청했다. 출소 4개월 뒤 양씨는 결혼식을 올렸다. 지난 16일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들은 양씨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했다. “은연 중에 추기경님은 오래 사실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생전에 추기경님과 ‘인중이 길어 장수하실 것’이라는 농담도 주고 받았습니다.” 18일 명동성당을 찾아 김 추기경의 시신을 보고서야 양씨는 가슴 속에 큰 구멍이 뚫리는 것을 느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날 빈소를 방문하는 것을 보며 김 추기경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고 그는 말했다. 양씨는 “추기경님은 그동안의 고난을 피할 길이 있으셨는 데도 온몸으로 묵묵히 받아 내셨다. 그분이 오래 앓아 오신 불면증은 그분의 남모를 고통의 방증”이라면서 “그래서 많은 분들이 추기경님을 기억하고, 그분의 부재(不在)를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희기자 haru@seoul.co.kr
  • 재정열악 區 더 배정…격차 해소 기여

    재정열악 區 더 배정…격차 해소 기여

    강서구가 올해 서울시 조정교부금으로 1010억원을 받는다. 지난해보다 36%(268억원)가량 늘어난 것이다. 25개 자치구 가운데 전년 대비 상승률이 가장 높다. 이는 13년 만에 전면 손질된 ‘자치구 재원 지원조례’ 덕분이다. 서울시는‘2008 서울 창의대상’에서 강남·북의 재정격차를 합리적으로 줄인 ‘자치구 조정교부금 제도 개선책’을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취득·등록세의 50%로 이뤄진 조정교부금은 서울시가 각 자치구의 부족한 재원을 채워주는 돈이다. 1995년에 만들어진 기존 조례는 예산 산정이 당시 기준에 맞춰져 있어 최근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올해부터 조정교부금은 재정 상태가 어려운 자치구에 더 많이 배정된다. ●교부금 열악한 구 재정에 숨통 25개 자치구 가운데 최대 수혜구는 재정자립도가 40% 이하인 강서구, 노원구, 은평구, 중랑구, 강북구 등이다. 강서는 268억원, 노원 183억원, 은평 149억원, 중랑 136억원, 강북 112억원을 지난해보다 더 받는다. 이들 자치구는 재정 형편이 넉넉지 않아 저소득층 지원과 사회보장비에 대한 부담이 컸다. 교부금 증가분은 지지부진했던 저소득층 문화·생활·복지 분야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강서구는 도로·교통 등 도시기반시설 정비에 120억원, 문화복지 사업에 50억원을 투자하는 등 그동안 예산 부족으로 유보했던 사업을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노원구도 상계2동 문화복합 청사과 공릉청소년 문화정보센터, 상계1동 도서관, 상계5동 보육시설 건립 등에 교부금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병목 강서구 행정관리국장은 “재정이 열악한 지역을 배려한 서울시의 이번 조정교부금은 구 재정 주름살을 펴는 데 큰 힘이 된다.”면서 “예산이 부족해 지원이 미흡했던 주민들의 생활복지 서비스를 높이는 사업에 유용하게 쓰겠다.”고 말했다. 권영규 서울시 경영기획실장은 “조정교부금 제도의 개선은 서울시와 자치구의 상호 협력과 배려 속에 이뤄진 역사적인 결실”이라면서 “자치구 사이의 빈부격차 해소와 서울의 고른 발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新) 도시계획 체계 최우수작 서울시는 또 도심지역에 미개발 상태로 남아 있는 1만㎡ 이상의 대규모 부지 개발을 활성화하는 ‘신(新) 도시계획체계 도입’을 최우수작으로 뽑았다. 아울러 저소득층이 매월 20만원씩 3년간 720만원을 저축하면 1700여만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서울형 복지정책, 희망 드림프로젝트’를 우수작으로 선정했다. 이밖에 경제난 극복을 위해 모두 19만 5000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일자리 창출 종합대책’을 장려상으로 뽑는 등 총 4개 부문 54건을 수상작으로 정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나가노 온천 여행

    나가노 온천 여행

    온천 체험은 겨울철 일본 여행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뜨끈한 온천물에 느긋하게 몸을 담그고 있노라면 일상의 스트레스는 한순간에 날아가고 온몸에 쌓였던 피로도 말끔히 사라진다. 일본 전통 숙박시설인 료칸(旅館)에 묵으며 온천 체험을 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금상첨화가 아닐까. 아주 특별한 일본 여행을 원한다면 온천 료칸이 제격이다. │글 사진 나가노(일본) 함혜리특파원│해발 3000m가 넘는 웅대한 산들이 병풍처럼 이어지는 북알프스를 중심으로 아사마, 도비라, 가미스와 등 유명한 온천 마을들이 즐비한 나가노현은 다양한 스타일의 온천 료칸을 체험할 수 있어 매력적인 겨울철 여행지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 문화의 압축판 온천 료칸 다다미가 깔린 방, 뽀송뽀송한 유카타(浴衣),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즈넉한 실내 온천탕과 노천탕, 시각적 즐거움과 맛을 동시에 선사하는 호사스러운 정찬(가이세키 요리), 기모노를 입은 종업원들의 사려깊은 서비스…. 이렇듯 일본 특유의 문화와 정서, 생활 양식을 압축해 놓은 공간이 바로 온천 료칸이다. 일본 여행을 제대로 즐기고 싶어하는 사람들, 일상을 떠나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사람들은 이런 이유에서 다소 비용이 부담되더라도 온천 료칸을 찾는다. 기분좋은 편안함과 지극히 비일상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온천 료칸에 머무는 것 자체가 여행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연 속에서 온천을 즐길 수 있는 노천탕은 온천 료칸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시냇물 소리와 새들의 지저귐 속에 물위를 스치는 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온천욕을 하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대부분의 료칸들이 노천탕을 갖추고 있으며 노천탕이 딸린 객실을 구비한 곳도 많다. 화산열도인 일본에는 전국 각지에 3000군데 이상의 온천이 있다. 지역마다 온천수의 특징도 다양하다. 일본 열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나가노현 지역 온천은 신경통과 류머티즘, 피부병, 부인병에 효과가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가노현에서는 전통적인 목조 건물을 고수하는 유서깊은 료칸부터 현대적 호텔 시설에 전통식 시설과 서비스를 접목한 스타일까지 다양한 온천 료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최근에는 전통적 분위기에 현대적인 안락함과 디자인을 접목시킨 디자인 료칸들이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국보 마쓰모토 성에서 멀지 않은 아사마 온천에 있는 ‘기쇼안’은 건물 자체는 현대식으로 설계됐지만 전통을 접목시켜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온천 리모델링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는 호시노 그룹이 소유하고 있는 이곳은 현관부터 문, 창문, 표지판까지 군더더기 없이 세련된 디자인으로 젊은 연인과 여성 고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마쓰모토시에서 동쪽으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40분 정도 가면 산골짜기의 도비라 온천이 나온다.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는 첩첩산중에 일본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고급 온천 료칸 ‘묘진칸’이 있다. 세련된 감각과 전통을 접목시켜 고급스럽고 품격이 넘친다. 다테시나 고원지역에 있는 ‘다테시나 아이’는 쪽빛 염색 작업을 모티브로 실내 장식을 한 것이 독특한 디자인 료칸이다. ●일상을 벗어난 완벽한 휴식공간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한시간 거리인 가루이자와는 한여름에도 선선한 기후, 풍요로운 자연과 더불어 일본 유명 인사들의 별장지로 유명하다. ‘호시노야 가루이자와’는 젠 스타일의 품격있는 온천 료칸으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100년 전통의 료칸인 호시노 온천을 미래적인 감각으로 리뉴얼한 곳이다. 체크인을 마친 뒤 전용차를 타고 5분 정도 가야 프런트와 빌라형 객실이 나오는데 이동하는 동안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77개의 빌라형 객실은 산 쪽에 위치한 ‘야마로지’, 강을 볼 수 있는 ‘미즈나미’, 정원을 볼 수 있는 ‘니와로지’로 나뉜다. 객실에는 텔레비전이 없고 대신 새 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와 같은 자연의 소리만 들린다. 빛의 탕과 어둠의 탕으로 구분해 경이로운 마음이 평화를 느끼게 하는 명상 온천욕장은 호시노야의 가장 큰 자랑거리. 은은한 음악을 들으며 따뜻한 물 속에 몸을 절반 담그고 명상을 하며 마음의 평온함을 찾는다. lotus@seoul.co.kr
  • [오늘의 눈] 서울시 장애인 정책 ‘장애 많다’/백민경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서울시 장애인 정책 ‘장애 많다’/백민경 사회2부 기자

    얼마전 ‘블랙’이라는 제목의 인도영화 한 편을 봤다.현대판 헬렌 켈러(1880~1968년·미국 교육가) 이야기였다.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소녀 ‘미셀´,그녀를 정상인처럼 성장하도록 돕는 특수학교 교사 ‘사하이´.이들의 좌절과 성공을 보며 가슴이 먹먹했다.장애인의 세상살이가 얼마나 고된지 새삼 느꼈다. 최근 서울시가 8000억원을 투입해 ‘장애인 행복도시’를 만든다는 야심찬 청사진을 제시했다.“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두가 편리한 도시”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하지만 장애인들은 그런 거창한 말보다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배려를 더 원하고 있는 것 같다. 기존 복지카드에 교통카드 기능을 추가한 ‘장애인 무임(無賃) 카드’에 대해 말이 무성하다.장애인을 배려한 시정이었지만 일부에서는 오히려 “더 복잡해졌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한 장애단체는 서울시를 ‘장애인 차별 행위자’로 인권위원회에 진정서까지 냈다. 왜 장애인을 배려해 만든 정책이 불편을 초래하고 따돌림을 받을까.수요자인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고 공급자인 공무원의 눈높이에서 배려 방안을 만든 까닭이다. 우선 중증장애인을 돌보는 동행자를 감안하지 않았다.제도상 1~3급 장애인의 거동을 돕는 동행자도 대중교통 요금을 내지 않는다.문제는 내년부터 매표소 무인화가 이뤄지는 탓에 예치금을 미리 내고 환불을 받는 등 여러 절차를 거쳐야 비로소 동행자 무료 탑승이 가능하다는 것이다.꼭 동행자가 있어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 중증장애인을 서울시가 한번이라도 생각해봤는지 의심스럽다. 환승 할인도 무의미하다.서울시와 경기도 사이의 논의가 늦어지면서 지하철과 버스간 환승 연계가 안 됐기 때문이라고 한다.결국 동행자는 버스-지하철-버스를 오가면 일반인보다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할 수도 있다.서울시가 장애인을 위해 만든 교통정책이 마음에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닌지 되새겨 본다. 백민경 사회2부 기자 white@seoul.co.kr
  • [단독] 강원도 민통선 2.5㎞ 북상

    [단독] 강원도 민통선 2.5㎞ 북상

    금강산·개성관광이 중단되는 등 남북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강원도와 지역주둔 군부대가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의 북상과 동해안 철책선 일부의 철거에 합의해 관심을 끌고 있다.어려운 지역경제를 감안한 결단으로 평가된다.  30일 강원도에 따르면 지역 농가의 불편을 덜고 바다를 찾는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새해부터 민통선을 2.5㎞ 북쪽으로 끌어 올리기로 했다.또 동해바다 해안선을 따라 설치된 군 철책선 길이 29.4㎞도 철거하기로 했다. ●민통선안 농지 90㏊ 자유 통행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18개 시장·군수,김근태 육군 제1야전군 사령관과 예하 부대장 등은 지난 28일 강원도청에서 열린 ‘지역 군·관 협의회’에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휴전선과 비무장지대(DMZ)의 남방한계선 아래인 민통선이 평균 2.5㎞ 북상한다. 이는 몇년 전부터 고성군 현내면 제진검문소를 북상시켜 통행에 불편을 덜어 달라는 고성군과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또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오작교 습지생태지구에 대한 연구와 안동철교~백암산 일대 평화생태특구의 원활한 사업 추진도 가능해졌다.  민통선 부근 주민들은 “민통선 안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여러 절차를 밟아 군 검문소를 통과하며 수십년 동안 불편을 겪고 있다.”며 볼멘소리를 해 왔다.민통선을 통과하려면 입·출입 시간 등을 통제받아야 한다.  고성군도 “남북출입국관리소(CIQ) 등이 민통선 안쪽에 있어 금강산 관광객들은 법무부뿐만 아니라 군의 통제를 받는 불편을 겪고 있다.”고 검문소 이전 등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군부대측은 ‘군사안보적 측면에서 문제가 될 것이 없다.’며 민통선을 현재의 제진검문소에서 2.5㎞ 북상시켜 CIQ 등의 북쪽 지점으로 옮기는 데 합의했다. 단 통일전망대는 여전히 민통선 안에 남았고,DMZ박물관에 대해서는 더 협의하기로 했다.고성지역 농민들은 민통선 안의 90㏊에 이르는 농지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사천,연곡,용촌천 등 명승지관광 기대  이와 함께 강원 동해안 바닷가를 따라 설치된 군부대 철책선도 내년에 29곳의 29.4㎞가 철거된다.관광지인 동해바다의 긴장된 이미지를 개선하고 바다를 찾은 외지인들이 해안을 자유롭게 거닐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특히 강릉시 사천·연곡 해수욕장과 고성군 용촌천 일대,속초 장사동 지역 등 주요 명승 관광지가 이번 철책선 철거 대상에 포함돼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올 여름에는 불경기 속에도 ‘가뭄에 단비’처럼 관광수입 증대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구체적인 철거 지역과 시기는 해당 시·군과 단위 군부대가 실무 접촉을 가진 뒤 최종 결정하기로 했다.  최동용 강원도 자치행정국장은 “5개월 가까이 금강산 관광길이 끊겨 민생경제가 어려운 때에 군부대가 주민과 관광객을 위해 쉽지 않은 결정을 했다.”면서 “민통선 안에는 명승지가 많아 동해안 관광이 되살아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고성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아름다운 간판 2008] 간결한 공공시설물… 쾌적한 공간 창출

    [아름다운 간판 2008] 간결한 공공시설물… 쾌적한 공간 창출

    가용 토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이렇다 할 자원도 보유하지 못한 네덜란드는 공간 활용 측면에서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안겨준다.부족한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도시 건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시경쟁력 확보와 경제 활성화의 수단으로 공공디자인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좁은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반영돼 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이를 통해 네덜란드는 공간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끊임없이 ‘창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네덜란드를 대표하는 도시들 속에 녹아들어 있는 다양한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ㅣ암스테르담 글 사진 장세훈특파원ㅣ 네덜란드 도시들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간을 구성하는 다양한 시설물에 대한 ‘통합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이를 통해 도시경쟁력 향상은 물론,경제 활성화에도 톡톡히 기여하고 있다.  인구 75만명의 네덜란드 최대 도시인 암스테르담 주변에는 부족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 수도권처럼 신도시가 조성돼 있다.암스테르담과 차로 15분여 떨어진 알미르도 간척사업으로 생긴 신도시 중 하나다.  지난 1932년 길이 32㎞의 제방을 쌓기 시작한 이후 1969년 비로소 간척사업이 마무리됐다.간척사업으로 형성된 4만 3000㏊의 육지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숲을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어 1976년 정부가 5개 지구에 대한 계발계획을 수립하고,인프라 등 도시의 기본 틀을 구축한 뒤 1977년 알미르항구 인근부터 개발을 본격화했다.현재 3지구까지 개발이 완료됐으며,지난해부터는 4지구 개발에도 착수했다.개발 완료 시점이 2050년인 점을 감안하면 신도시 하나를 건설하는데 100년 이상이 걸리는 셈이다. 특히 알미르 시내 중심상가에 들어서면,눈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는다.건물·간판·도로·바닥패턴·가로수·가로등·도로표지판·볼라드(말뚝) 등 공간 전체가 통합적으로 디자인됐기 때문이다.다양한 공공시설물들이 간결하면서도 모든 기능을 한 눈에 살필 수 있도록 조화롭게 배치됐다.  최만진 경상대 교수는 “사람이 인식하는데 있어서도 인식대상의 체계성이 중요하며,이는 수많은 시설물이 있음에도 시각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줄 수 있다.”면서 “통합디자인이 중요한 이유는 시설물의 크기가 작아도 쉽게 눈에 띄고,약간의 변형만으로도 차별화가 가능한 점”이라고 강조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 인근,암스텔강에 위치한 3개 섬에도 70년대 후반 자바·KNSN·보르네오 등 신도시가 조성되기 시작했다.컨테이너 부두시설이 있던 곳을 재개발한 것으로,지금은 ‘건축 전시장’을 방불케한다.  다만 이들 3개 신도시는 도시계획·공간계획·건축·디자인 측면에서는 성공했지만,상업적으로는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소형·임대주택을 선호하는 수요를 예측하지 못해 대형·분양주택 위주로 조성돼 빈집이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문제점을 보완해 2000년대 들어 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신도시가 아이부르그이다. 암스테르담 서북쪽에 위치한 아이부르그에는 오는 2015년까지 모두 5000여가구가 들어설 예정이다.  아이부르그는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차량 운전자 등을 모두 배려한 공간 활용이 눈에 띈다.때문에 차도보다 오히려 보행로와 자전거도로가 넓다.아이부르그 시내를 가로지르는 주 도로조차 편도 2차선에 불과하고,이 중 1개 차선은 주차 공간으로 활용될 정도다.간판도 상업지역 외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최 교수는 “네덜란드 신도시는 구색 갖추기 식의 평면적 도시계획만으로는 부족하며,문화와 취향 등 3차원적인 요구를 반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증명한다.”면서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핵심은 다양한 시설물에 대한 통합디자인을 통해 공간의 질 향상과 경제 활성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구 60만명의 로테르담은 암스테르담에 이은 네덜란드 제2의 도시로,교역·상업·물류 중심지이다. 세계에서 관객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로테르담 국제영화제가 열리는 쇼부르크 광장에서 시청에 이르는 800m 구간의 레인반 거리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보행자 전용공간으로 꾸며진 곳으로도 유명하다.  당초 시내 중심부에 자리잡은 레인반 거리는 차량들이 이동하는 주요 통행로였다. 하지만 90년대 중반 로테르담중앙역 주변지역에 대한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이를 통해 일반 상가들이 밀집해 있던 지역이 통합디자인을 적용한 대형 쇼핑몰로 탈바꿈한 것이다.  보행자 전용도로의 폭만 20m가 넘는다.이처럼 넓은 도로 폭을 감안해 가로등·쓰레기통·벤치 등이 직선 또는 지그재그 형태로 배치돼 있다.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상점을 찾을 수 있도록 자연채광의 원리가 적용된 캐노피(덮개)도 설치됐다.  간판은 보행자들의 동선을 고려해 캐노피 아랫부분에 도로와 수직 방향으로 세워져 있다.상점마다 간판의 규격을 통일해 시각적인 자극도 최소화했다.여기에는 간판 크기가 2㎡를 넘으면 세금을 내도록 한 엄격한 규제도 한몫했다.  특히 레인반 거리 인근에는 로테르담 유일의 백화점인 바이엔코르프도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쇼핑객들은 백화점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물론,공간의 쾌적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레인반 거리를 찾는다고 한다.최 교수는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이 간판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간판 크기나 개수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면서 “결국 사람들을 끊임없이 즐겁게 하는 공간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경쟁력이 생긴 것”이라고 강조했다. shjang@seoul.co.kr
  • 라틴표 몰아준 클린턴맨 新에너지 이끌 ‘바이오맨’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상무장관으로 내정된 빌 리처드슨(61) 뉴멕시코 주지사는 가장 영향력 있는 라틴계 정치인으로 당초 상무장관이 아닌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됐던 인물이다.국무장관직이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에게 낙점되면서 상무장관으로 자리가 바뀌었다.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에 라틴계 유권자들의 힘이 컸다는 점을 배려한 인사라는 측면도 있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힐러리 의원과 마찬가지로 오바마 당선인이 경쟁자를 포용한 사례에 속한다.그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다가 초반에 사퇴했다.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시절 유엔대사와 에너지장관을 지내는 등 클린턴가 사람으로 분류됐으나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 당선인을 지지하고 나서면서 클린턴측으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마음 고생이 심했다.  리처드슨 주지사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제분쟁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미 육군 헬기 2대가 북한 지역에서 격추됐을 때 조종사 석방협상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고,북한 핵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특사로 북한을 다녀오기도 했다.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및 수단 반정부 단체와도 인질협상을 성공적으로 벌인 국제전문가이다.  그렇다고 경제쪽 경험이 전무한 것은 물론 아니다.에너지부장관을 지냈고,2002년부터 뉴멕시코 주지사로 일하면서 강력한 민-관협력 체제를 구축해 뉴멕시코를 태양력 에너지와 바이오연료,의료기술 산업의 새로운 중심지로 키우는 데 일조했다.뉴멕시코에 있는 연방 연구기관인 로스 알라모스와 산디아 등을 주립대학 연구소들과 연계·발전시키는 전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가 재생 에너지와 나노기술,친환경적인 자동차 기술 개발을 위해 민간기업과 대학,정부 이른바 민-관-학 협력관계를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따라서 리처드슨은 오바마 당선인의 최대 선거공약 가운데 하나인 대체에너지 기술과 그린 산업기술 개발을 통한 일자리 창출 정책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비즈니스위크는 내다봤다.  특히 그는 하원의원 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비준에 찬성표를 던져 대외 통상정책에 보다 유연성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1947년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태어난 리처드슨은 프로선수에 버금가는 투수실력을 갖췄으며 친화력이 뛰어난 정치인이다.터프츠 대학에서 학사와 국제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클린턴 행정부에 입각하기 전 1983~1997년까지 연방 하원의원을 지냈다.2002년 뉴멕시코 주지사 유세 당시 하루 8시간동안 1만 3392회 악수를 해 기네스북 세계기록을 갖고 있다. kmkim@seoul.co.kr
  • 지자체, 기업 떠날까 당근 유혹

    지자체, 기업 떠날까 당근 유혹

    정부가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을 내놓은 뒤 기업들이 지방이전을 늦추거나 철회하는 등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무더기 협약체결을 미룬 곳도 있어 ‘탈(脫)지방 수도권 U턴’ 현상이 현실화하고 있다. 자치단체들은 각종 지원책을 내놓고 지역 입주기업 붙잡기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삼성대로(大路)라고 이름 짓고 삼성깃발을 내걸겠다. 수시로 찾아가 무료 공연도 하겠다.” ●천안 “산업단지 우선 제공” 충남 천안시는 6일 지역의 매머드 입주기업 삼성을 껴안기 위한 ‘삼성 협력·지원계획’을 발표했다. 서북구 성성동 제3산업단지 28만 4949㎡에 있는 삼성전자·삼성SDI 천안공장을 달래기 위해서다. 시는 2011년 12월 완공되는 제3산단 확장지역을 삼성전자와 삼성SDI의 합작법인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SDM)에 우선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곳 20만 4000㎡의 부지에 4500가구 1만 2000명을 수용하는 삼성 전용아파트 건립 인·허가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오는 2010년 착공하는 1단계 경전철 노선은 삼성 공장을 경유하도록 하고 2012년 조성되는 삼성 앞 국제비즈니스파크에 ‘삼성특목고’를 유치, 삼성 임직원 자녀 입학시 우대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천안톨게이트~삼성전자간 4.8㎞의 북부대로를 ‘삼성대로’로 바꾸고 도로변에 삼성 깃발을 게양하는 대책도 추진하고 있다. 또 점심시간 때 시립 오케스트라를 삼성공장 구내식당에 보내 연주를 해주고 국악 및 풍물단 등 현장 공연을 연간 6차례 실시한다. 컴퓨터,TV, 에어컨 등 시청 물품은 삼성제품을 사주고 시 소유 문화·체육시설의 사용도 삼성 측에 우선 배려한다. 천안시는 최근 이를 총괄적으로 추진할 ‘삼성지원 전담반’을 구성했다. 삼성전자 및 SDI 천안공장에는 1만 5000여명의 임직원과 200여개 협력업체가 있다. 박상옥 천안시 기업지원팀장은 “삼성은 천안경제를 좌우하는 핵심 기업”이라며 “입주한 기업부터 챙겨 수도권 규제완화에 따른 이탈을 막고 상생을 모색하는 게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천안과 인접한 아산시도 국내 최대 삼성 탕정LCD단지에 대한 각종 행정지원 대책을 서두르고 있다. ●광주, MOU기업 관리 강화 광주광역시는 올들어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한 수도권 30개 기업과 이미 공장 등을 착공한 9개 기업에 대해 사후관리를 강화하고 있다. 투자유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타깃 업종’도 광산업·금형산업·자동차·가전으로 좁혔다. 전남도는 투자를 약속한 기업의 이행실태를 파악하고 있다. 올들어 9월 말까지 전남도와 22개 시·군이 기업체와 맺은 투자협약은 143건으로 지난해 83건보다 늘었으나 실제 투자 실현율은 31.5%로 지난해 51.8%보다 20.3%포인트나 떨어졌다. 부산시는 보조금의 국비지원을 현행 50%에서 80%로 늘리고 법인세 면제 및 감면혜택 기간을 7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김관용 경북지사가 공동회장으로 있는 지역균형발전협의체는 오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비수도권 13개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정부에 수도권 규제완화 정책의 즉각 철회와 ‘선 지방발전, 후 수도권 규제완화’ 원칙 이행을 요구하기로 했다. 이날 오후에는 서울광장이나 청계광장에서 비수도권 13개 시·도 주민 5000여명이 참가하는 수도권 규제 완화에 따른 대정부 규탄대회를 갖는다. ●경기, 완화범위 축소 촉각 반면 경기도는 지방의 강력한 반발로 규제완화 범위가 축소되거나 입법이 지연되는지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대한 위헌소송을 청구하는 방법 등으로 지방의 반발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전국종합·천안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명성 못잖게 매력적인 실용성의 도시

    유행의 첨단을 동경하는 사람들에게 뉴욕은 그 이름만으로도 심박수가 높아지는 ‘로망’이다.‘섹스 앤드 더 시티’‘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등의 화제작들이 뿌리를 대고 있는 곳이자 ‘코스모폴리탄’‘GQ’ 등 세계적 유행통신의 산실. 그러나 그쯤으로 거대도시 공간을 단정해서는 곤란하다. 잭슨 폴록, 앤디 워홀, 존 레넌, 백남준···. 뉴욕의 어떤 마력에 이끌려 그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뉴욕을 활동거점으로 고집했을까. 살인적인 물가와 불꽃 튀는 경쟁에 숨이 막힌다고 투덜대면서도 ‘뉴요커’로 살아가길 고집하는 이유는? “뉴욕만의 고유한 에너지 때문”이라고 귀띔하는 책이 ‘뉴욕에서는 길을 잃어도 좋다’(조창연 지음, 갤리온 펴냄)이다. 미시간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현재 뉴욕 심장부에서 건축가로 뛰고 있는 저자에게 뉴욕은 푸른 비늘 팔딱이는 활어 같은 도시공간이다. 국외자의 냉정한 관찰자 시점으로 10년 넘게 바라본 뉴욕은 “솔직하고 원시적인 도시”였다. 경쟁과 도전만이 최고 미덕인 거대도시는 철저히 실용성에 기반한 환경미를 자랑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쇼핑중심지 5번가에 매장을 낸 애플사. 명품매장 틈바구니에서 뒤늦게 지하매장에 문을 연 애플은 천장에 큰 구멍을 뚫고 유리로 입구를 만들어 손님끌기에 가볍게 성공했다. 이렇듯 환경에 순응하면서 실용성을 챙기는 ‘현실적 아름다움’이 뉴욕의 미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입맛과 눈맛을 배려한 가이드북과는 한참 거리가 먼 도시 탐색기다. 골목골목 누비며 저자가 손수 찍은 200여장의 천연색 사진이 함께 들어 있다.1만 1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Zoom in 서울] 장애불편 없는 도시 경제자립 기회 연다

    [Zoom in 서울] 장애불편 없는 도시 경제자립 기회 연다

    서울시가 ‘장애인 행복도시’로 거듭난다. 서울시는 2012년까지 8021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입, 장애인의 자립을 돕고, 생활불편을 개선하는 ‘장애인 행복도시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6일 밝혔다. 단순한 예산지원과 보호 위주의 소극적 복지정책에서 벗어나 장애인도 당당한 시민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이끄는 능동적 정책 변화를 목표로 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장애인이 편리함을 느끼면 모두가 편리한 도시”라면서 “서울을 시민 모두가 편하게 살 수 있는 ‘무장애 도시’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중증 장애인 홀로서기 체험시설 5곳 운영 서울지역 장애인 인구는 올 8월 기준 전체 시민의 3.3%인 35만 8000명이다. 이 중 89%가 후천적 장애인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장애인 복지사업은 일부 시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 모두를 위한 정책이라는 판단이 프로젝트의 출발이다. 서울시는 내년부터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돕기 위한 ‘체험홈’을 5곳 운영하기로 했다. 체험홈은 3~6개월 코스 체험시설로 물건 구매, 근거리 이동 등을 체험하며 실질적인 자립생활 능력을 키워 준다. 내년에 5개 시설을 시범 운영한 뒤 2012년까지 35개 시설로 늘릴 계획이다.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지원방안도 있다. 직업재활시설, 주민자치센터를 통해 공공 분야에 6000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어 매년 2200명이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단순히 취업알선 기능에 머물렀던 용산구 남영동 ‘장애인 일자리 정보 센터’를 ‘장애인 취업 통합센터’로 확대한다. 이를 통해 구직희망 장애인과 구인업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면서 4500명에게 취업 토털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청 연금매점에 장애인 생산품 판매장을 설치했다.81개 직업재활시설 2500여명의 중증장애인이 만든 한지공예품, 천연비누, 유기농 농산물 등을 팔아 자활을 돕는다. ●임대주택 등 추가공급 주거문제 안정키로 장애인 주거 안정대책도 마련했다. 임대주택과 장기전세주택 508가구를 장애인용으로 고치고 중증장애인 전용 전세주택을 2012년까지 400가구로 늘린다. 아울러 모든 정책의 추진 과정에는 장애인들이 직접 참여하도록 했다. 장애인이 공공시설을 점검하고 결과를 토대로 각종 기반시설을 개선해 나갈 계획이다. 특히 도시개발 계획단계부터 장애인을 배려한다는 정책 목표에 따라 용산국제업무단지, 마곡지구 등 재개발·재건축·뉴타운 사업을 추진할 때 장애인 편의시설을 사전 고려하도록 했다. 모든 건축물의 출입구를 보도와 평탄하게 연결하고 보도의 턱을 없애는 사업도 추진한다. 이와 함께 장애인 콜택시 300대, 저상버스 1945대, 장애인심부름센터 차량 150대를 추가로 보급하기로 했다. 장애아동을 위한 언어·심리치료 비용 지원제도를 도입한다. 서울복지재단 이성규 대표는 “이번 장애인 프로젝트는 복지 분야에 머물던 기존 장애인 정책을 시정 전반에 걸친 종합 공공시책으로 발전시킨 것”이라면서 “장애인이 당당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번 계획을 충실하게 실행하겠다.”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음해성 루머 집중단속 기업 압수수색 최소화

    음해성 루머 집중단속 기업 압수수색 최소화

    검찰이 전 국민적인 경제 살리기에 동참을 선언했다. 임채진 검찰총장은 4일 악성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경제 위기 조장 사범을 집중 단속하라고 전국 검찰에 특별지시했다. 최근 국제적인 금융위기에 휩쓸려 환율 급등과 주가 폭락으로 국내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근거 없이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거나 특정 기업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음해성 유언비어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집중단속 대상은 증권가 정보지나 인터넷을 통해 특정 기업의 자금난이나 부도설을 유포하는 등의 신용훼손 행위, 해외 원정 도박이나 국외 재산 도피·환투기·불법 외화 송금·고액 외환 휴대 반출·대외 채권 미회수 등 국부를 해외로 유출하는 행위, 주가 조작·미공개 정보 이용 등 악성적인 증권거래법위반 행위 등이다. 검찰은 국세청, 관세청, 금융감독원 등 관련 기관과 긴밀하게 협조하는 한편, 인지 부서와 형사부를 대거 동원해 경제 혼란을 가중시켜 부당이익을 챙기려는 행위 등을 엄중 처벌할 계획이다. 특히 검찰은 기업 비리 수사 과정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최대한 배려한다는 입장이다. 압수수색 상황이 공개돼 해당 기업이 수사 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고 압수수색도 필요한 최소 범위에서 실시하며 압수한 자료도 신속하게 검토한 뒤 돌려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금융시장이 안정될 때까지 기업들에 대한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키로 한데 이어 검찰의 이번 지시로 기업 비리 수사가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하겠다는 것이지 기업 관련 수사를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업 수사에도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공동주택 노인·여성 친화 구조로

    공동주택 노인·여성 친화 구조로

    수익률만 우선시해 획일적으로 지어졌던 소규모 공동주택 건축에 제동이 걸리고 있다. 연립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 주택 등에도 디자인적인 요소를 가미하고, 여성과 노약자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설계가 나와야 한다는 판단에서 자치단체마다 더 엄격한 건축심의 기준들을 내놓고 있다. ●각 방 인터폰… 층간 높이 2.7m 이상으로 영등포구는 소규모 공동주택을 건축할 때 지켜야 할 디자인 기준을 마련해 이달 14일부터 시행 중이라고 23일 밝혔다. 이번 기준은 경제논리 속에 공급자 중심으로 획일적인 주택들이 늘어가는 것을 막고, 새로 만들어지는 소규모 공동주택에는 입주민을 고려한 공간배치와 편의시설 등이 들어서야 한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디자인 기준은 우선 여성과 노인에 주목한다. 좀 더 편한 가사활동을 위해 싱크대 높이는 거실바닥으로부터 87㎝ 정도를 권장한다. 베란다에는 고정식 세탁물 건조대를, 주방 쪽에 가까운 베란다에는 음식물 처리기의 설치를 권고하고 있다. 주방과 각 방을 연결하는 내부 인터폰을 설치해 불필요한 주부들의 동선을 줄이도록 제안했다. 특히 노약자를 위해 계단 폭은 최소 2.4m 이상으로 시공하도록 했다. 집의 크기를 최대화하는 과정에서 계단 등에 할당된 면적이 줄어 노약자들이 불편과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또 방의 크기는 약 가로·세로 최소 2.1m 이상으로 시공하도록 했고, 일조권 때문에 들쭉날쭉해지는 층간 높이도 아파트 2.8m, 다가구·다세대는 2.7m 이상으로 설계하도록 했다. ●외곽설계도 도시경관에 어울리도록 도시경관 향상을 위해 건물 밖으로 에어컨 실외기는 물론 외부 돌출형 철재 난간을 설치하는 것도 금지했다. 보일러실을 설치할 때는 가구별로 환기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설치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외장재는 내구성이 좋고 관리하기도 편한 석재나 치장벽돌 등으로 마감돼야 한다. 디자인 기준이 적용되는 건축물은 20가구 미만의 다가구 주택과 다세대·연립·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주거용 건축물 그리고 300가구 미만의 건축법 적용을 받는 주상복합 건축물이다. 이런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구청의 계획이다. 이러한 노력은 자치단체에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 7월 구로구는 연립주택이나 다세대·다가구 등 소규모 공동주택에 대해 구청 건축심의를 통해 아름다운 디자인을 채택하도록 ‘디자인 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영등포구 관계자는 “아파트에선 맞춤형 실내장식이 나오는 등 수요자를 고려한 디자인들이 속속 개발되지만, 서민의 안식처인 소규모 공동주택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것이 현실”이라면서 “기준은 건축업자나 건물주가 좀더 쾌적한 주거환경을 마련하도록 하는데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유영규기자 whoami@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94) 해가 빛이 없다

    [병자호란 다시 읽기] (94) 해가 빛이 없다

    1637년(인조 15) 음력 1월30일,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나가 청 태종 홍타이지에게 항복했다. 일찍부터 여진족을 ‘오랑캐’이자 ‘발가락 사이의 무좀(疥癬)’ 정도로 멸시해 왔던 조선 지식인들에게 그것은 ‘차라리 꿈이었으면 좋았을’ 기막힌 장면이었다. 인조와 신료들은 ‘오랑캐 추장’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세 번 무릎을 꿇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가장 치욕스런 항복 의식이었다. 그것으로 ‘춥고 배고픈’ 산성에서의 고통은 일단 끝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인조와 신료들, 조선 백성들 앞에는 몇 배나 더 아프고 처절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색 융의를 입고 서문으로 나오라 인조가 남한산성을 나가 항복하기로 결정한 뒤, 항복 의식을 어느 수준에서 행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다. 1월28일, 김신국, 최명길, 홍서봉 등이 청군 진영에 갔을 때 전체적인 대강이 확정되었다. 용골대 등은 조선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제 1등 절목(節目)은 면제해 준다고 했다. 그것은 이른바 함벽여츤(銜璧輿)을 면제해 준다는 뜻이었다. 함벽여츤이란 손이 뒤로 묶인 채 구슬을 입에 물고, 관을 메고 나아가 항복하는 의식을 가리킨다. 관을 메는 것은 항복하는 사람이 자신을 죽이더라도 이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좌전(左傳)’에 보면 미자(微子)가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함벽여츤을 행했다고 되어 있는데, 선왕의 제기(祭器)까지 모두 바쳐 완전히 신하가 되어 복속하겠다는 것을 맹세하는 의식이었다. ‘함벽여츤’은 면제되었지만 청 측이 요구한 의식 내용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1월28일, 홍타이지의 칙서를 갖고 왔던 용골대는 조선 신료들과 항복 의식을 논의했다. 하지만 ‘논의’라기보다는 ‘통고’라고 하는 것이 정확했다. 용골대는 먼저 과거 조선이 명 황제의 칙서를 받을 때 어떤 의례(儀禮)를 따랐는지 물었다.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음에도 조선 신료들을 떠보기 위한 질문이었다. 당시 청 진영에는 범문정(范文程)을 비롯하여 한족 출신 이신(貳臣)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명과 조선 사이의 외교 전례(典禮)에 밝았고, 그 내용을 홍타이지는 물론 만주족 관인들에게 훈수하고 있었다. 홍서봉이 ‘칙서를 가져온 명 사신이 남향으로 서고, 조선 배신(陪臣)은 꿇어앉아 칙서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홍서봉이 조선과 명의 전례를 ‘실토’하자 용골대는 자신이 남향하여 서서 과거 명 사신이 하던 방식대로 칙서 전달 의식을 재현했다. 칙서 전달을 마친 뒤 용골대는 동쪽에 앉고 홍서봉 등은 서쪽에 앉았다. 이 같은 좌차(座次) 또한 과거 명나라 사신들이 조선에 왔을 때 했던 관례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 조선의 상국(上國)이 명에서 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례 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용골대는 삼전도(三田渡)에 수항단(受降壇)을 이미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과 1월30일을 항복 의식을 행하는 날로 정했다는 사실을 통고했다. 그는 또한 항복하는 인조가 용포(龍袍)를 착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 죄를 지었기 때문에 정문인 남문으로는 나올 수 없다는 것도 통고했다. 용골대는 인조가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수행원은 500명을 넘을 수 없고, 호위하는 군사나 의장대를 거느릴 수도 없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적어도 홍타이지를 황제로 받들고 신속(臣屬)을 맹세하러 나오는 이상, 인조는 철저히 신례(臣禮)를 행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홍서봉 등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용골대의 기세를 꺾기에는 이미 역부족이었다. ●인조, 홍타이지에게 무릎을 꿇다 항례(降禮)를 행하는 절차까지 정해지고 난 뒤 남한산성의 분위기는 침울했다. 일부 신료들은 ‘전하는 항복하시더라도 명에서 받은 옥새를 청 측에 넘겨서는 안 되고, 그들을 도와 명을 치는데 필요한 군사를 원조해서도 안 된다.’고 눈물로 간언했다. 일각에서는 각 관아의 문서들을 모아다가 불태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평소 각사(各司)끼리 주고받던 문서에서 청인들을 가리켜 ‘적(賊)’, 또는 ‘노적(奴賊)’이라 적어 놓은 것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1월30일이 밝았다. 산성의 분위기는 무거웠다. 나만갑은 이 날의 일들을 기록하면서 맨 앞에 ‘해가 빛이 없다(日色無光).’고 적었다. 자신의 주군(主君) 앞에 닥친 치욕을 염두에 둔 표현이었다. 일찍부터 용골대와 마부대가 나타나 인조의 출성을 재촉했다. 인조와 소현세자는 남색 융의(戎衣) 차림으로 남한산성의 서문을 나섰다. 인조의 뒤에 선 신료들 가운데서 울부짖음이 터져 나왔다. 청군이 양철평까지 들이닥치고, 강화도로 가는 피란길이 끊어졌다는 소식에 놀라 황망하게 산성으로 들어온 지 꼭 46일째 되는 날이었다. 홍타이지는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진영에서 나와 군기를 앞세우고 주악이 울리는 가운데 삼전도를 향해 한강을 건넜다. 삼전도에는 아홉 단으로 높다랗게 쌓은 수항단과 크고 작은 황색 장막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인조가 50여명의 수행원들을 이끌고 산성 밖 5리쯤까지 왔을 때 용골대 등이 영접을 나왔다. 용골대 일행이 앞장서고 인조는 삼 정승과 판서, 승지와 사관(史官)만을 거느리고 삼전도를 향해 걸어서 나아갔다. 군사를 도열시켜 놓고 장막에서 기다리던 홍타이지는 인조 일행이 도착하자, 그와 함께 배천(拜天) 의식을 행했다. 청의 입장에서 ‘조선이 한 집안이 되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의식이었다. 배천 의식을 마치고 홍타이지가 수항단에 오르자 인조는 그 아래 무릎을 꿇었다. 인조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개과천선하겠다고 다짐한 뒤 소현세자와 신료들을 이끌고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를 행했다.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의식이었다. 예를 행한 뒤, 용골대 등이 인조를 인도하여 홍타이지 아래에 마련된 자리로 안내했다. 인조에게 항복을 받은 뒤 홍타이지는 ‘이제는 두 나라가 한 집안이 되었다.’며 조선 신료들에게 활을 쏘아보라고 했다. 조선 신료들이 쭈뼛거리는 와중에 청나라 왕자와 장수들은 떠들썩하게 어울려 활을 쏘면서 놀았다. 이윽고 주찬(酒饌)이 나오고 음악이 울려 퍼졌다. 세 차례 술잔이 돌고 잔치가 파할 무렵, 청나라 사람이 개를 끌고 나오자 홍타이지는 직접 고기를 베어 개들에게 던져 주었다. 조선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야만적인’ 모습이었다. 인조는 이런저런 치욕을 겪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왕이시여,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시나이까? 잔치가 파하자 강화도에서 끌려온 강빈을 비롯한 왕실과 대신들의 처자들이 홍타이지에게 삼배구고두례를 행했다. 곧 이어 용골대가 홍타이지의 선물이라며 초구(貂, 짐승 가죽으로 만든 방한복)를 가지고 와서 인조 이하에게 주었다. 인조는 그것을 입고 홍타이지 앞에 나아가 사례했다. 다시 두 번 무릎을 꿇고 여섯 번 머리를 조아렸다. 홍타이지는 이어 강화도에서 사로잡은 포로들과의 상면을 허락했다. 서로 만난 왕실과 대신들의 가족들이 부둥켜안고 울면서 삼전도는 순식간에 통곡의 바다로 변했다. 홍타이지가 신시(申時, 오후 3~5시) 무렵 자리를 뜬 뒤에도 인조는 밭 가운데 앉아 그들의 지시를 기다렸다. 해질 무렵에야 도성으로 돌아가라는 통고가 내려졌다. 인조는, 인질이 되어 심양으로 가게 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 부부와 이별한 채 귀경 길에 올랐다. 송파 나루에서 배에 오를 때, 신료들이 다투어 먼저 건너려고 인조의 어의(御衣)를 잡아당기기까지 하는 소란이 빚어졌다.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상황이었다. 인조가 청군 병력의 호위 속에 도성으로 돌아올 때, 수많은 포로들이 인조를 향해 울면서 절규했다.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 임금이시여. 우리를 버리고 가시나이까?” 인조는 그 절규를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밤 10시 무렵 창경궁으로 들어갔다. 인조의 생애에서 가장 길고도 처참했던 하루가 저물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습지 관리 잘못하면 탄소 배출”

    오는 10월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제 10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 준비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아나타 티에가 람사르협약 사무총장은 기후변화 문제에서 습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티에가 총장은 이날 정부 과천종합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습지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습지에 저장된 탄소가 배출된다.”면서 “11월 총회에서는 습지보존이 기후변화 완화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집중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환경친화적이면서도 참가자 편의를 배려한 회의 준비와 람사르총회 이후의 계획 등 한국 정부의 빈틈없는 준비에 매우 만족한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서해안에서 기름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국 정부가 발빠르게 대응한 것에 대해 호평을 하며 “당시 사고를 계기로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습지의 중요성을 되새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람사르협약은 ‘습지의 보호와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국제조약’으로 158개국이 가입돼 있다.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는 오는 10월28일부터 11월4일까지 경남 창원에서 열린다.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굿모닝 베이징] 어느 중국인의 ‘끝장 접대’

    한 중국인의 저녁 초대를 받았다. 몽골족인 그는 처음엔 자신들의 뿌리인 초원 지역으로 안내해 ‘양을 한 마리 잡아’ 손님들을 모시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몽골족의 전통적인 손님 접대 방식일 것. 자신들의 방식으로 친구를 대접하려는 뜻을 저버리면 그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는 결례란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공간적 제약으로 양해를 구했다. 결국 베이징 시내 톈안먼(天安門) 근처의 한 몽골 전통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중국이 서구 열강의 윽박지르기에 무기력하게 나라의 문을 열었던 시절 각국 대사관이 들어섰다던 이 거리에는 현재 전통음식점들이 줄지어 있었고, 거리의 끝에 몽골 식당도 있었다. 푸짐함을 미덕으로 삼는 이들답게 상 위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한 양고기와 민물고기, 소젖으로 만든 전통차가 놓여있었다. 물론 술도 빠지지 않았다. 손님의 내공(?)을 배려한 것인지 38도 짜리인 나름 약한 술이 나왔다. 소주잔 절반 정도 높이의 낮은 잔이었지만, 꺾어 마시지 않는 것이 예의인지라 술병이 비어나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술이 얼큰하게 오른 그는 “너와 나는 민족도 나라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결국엔 친구가 아니겠느냐.”며 연신 술잔을 권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의 진심을 알 것 같았다. 한 번 손님을 대접하면 끝장을 보는 이들답게 자리는 장소를 옮겨 이어졌다. 보름을 훌쩍 남긴 장기 출장에 체력이 바닥난 터라 아무리 애를 써도 눈꺼풀이 닫힐 지경. 물론 그는 개의치 않았다.‘이쯤되면 집(숙소)에 가겠구나.’란 생각에 안도하던 순간, 마지막이라면서 야식집으로 안내했다. 꼭 무언가를 먹기 위해서라기보단 정해진 코스의 마무리란 느낌이 들었다. 간단한 오징어 조림과 국수 등을 주문한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중국술을 한 병 시켜 물컵에 술을 돌렸다. 이미 자포자기한 터라 류샹과 야오밍을 안주로 한참을 떠든 뒤 훗날을 기약하며 자리를 끝냈다. 사실 중국인에 대한 인상은 ‘아니거든요.’였다. 경기장에서 미친 듯이 “짜요(힘내라!)”를 외쳐대는 모습에 화가 났고, 거리에선 곡예에 가까운 비보호 좌회전과 유턴에 짜증이 났다. 특히 떼(?)를 지으면 공격적이고 무례하다는 인상이 강했던 것. 중국을 네 번째 방문했지만, 현지인들과 개별적으로 만날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편견이 더욱 굳어진 것 같다. 길고 길었던 그 밤은 중국인에 대한 또다른 인상을 남겼다. 베이징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中, 주한대사에 국장급 내정… 한국 배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한국의 자존심을 배려했을까?’ 중국이 청융화(程永華) 주 말레이시아 대사를 차기 한국 대사로 내정했다. 다섯번째만에 ‘국장급’ 대사를 한국에 보낼 것이라는 중국의 계획이 알려지면서 이런 궁금증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 외교 관련 인사는 20일 “상대국 체면을 배려한 인사란 기본적으로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소의 고려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자국의 ‘이해와 필요’라는 전제를 벗어날 수는 없다는 얘기다. 1998년 우다웨이(武大偉) 대사 부임 과정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한국은 당시 주일본 중국대사관 정무공사였던 우다웨이의 한국 대사 내정 사실이 전해지자 북한과의 ‘격’을 따지며 문제를 제기했다. 중국의 태도에 변화가 없자 한국은 최소한 본부 대사를 거치는 절차라도 밟아줄 것을 희망했지만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당시 중국은 북한에는 ‘차관급’, 한국에는 ‘부국장급’이라는 내부 원칙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06년 차관보급인 류샤오밍(劉曉明)을 주북한 대사로 임명한 데 이어 청융화 대사를 차기 한국 대사로 내정하면서 이같은 원칙에도 변화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무엇보다 중국은 ‘한국통’ 인력 운용에 여유가 충분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외교가에서는 ‘한국 대사는 적임자가 없고 북한 대사는 지원자가 없다.’는 오랜 속설이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다는 반응들이다. 한반도를 아는 주니어층은 늘어가고 있지만, 시니어급 운용은 여전히 원활치 않다. 초대 장팅옌(張庭延) 대사가 정년을 넘어선 뒤에도 임기를 연장해가며 6년을 재임하다 일본통인 우다웨이가 2대 대사를 맡은 배경이기도 하다. 청융화 대사도 역시 한국 근무 경험이 없고, 한국말을 할 줄도 모른다.j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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