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불법승계에 그룹 차원 공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배임과 조세포탈, 증권거래법 위반 등 3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정에 서게 됐다. 이학수 부회장 겸 전략기획실장과 김인주 전략기획실 사장, 유석렬 삼성카드 사장, 최광해 전략기획실 부사장 등 핵심 임원 9명도 함께 기소됐다.
삼성그룹 비자금 의혹 등을 수사해 온 삼성특검팀은 17일 오후 한남동 특검사무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이 회장을 비롯한 삼성 전·현직 임직원 10명을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및 양도소득세 포탈 등과 관련, 각각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지난 1월 특검팀이 발족한지 99일, 지난해 10월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한지 172일 만이다.
특검팀은 이날 수사결과 발표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등이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이 회장의 지시로 이뤄진 그룹 차원의 공모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조준웅 특검은 “에버랜드 사건, 삼성SDS 사건 등 경영권 불법 승계를 위해 벌어진 사건들은 그룹 비서실(현 전략기획실) 재무팀의 조직적인 개입으로 이뤄졌다.”면서 “이 회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계획을 사전에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특검팀은 또 계좌 추적 등을 통해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를 확보했지만, 불법 비자금이라는 증거는 찾지 못해 이 회장 개인 재산으로 결론내렸다.
또 이 회장 부인인 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고가 미술품을 사는 데 쓴 삼성생명 지분 배당금 등도 이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밝혀져, 불법의 소지는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특검팀은 대신 이 회장에게 조세포탈 위반 혐의를 적용했다. 이번 수사에서 확인된 삼성 임원들의 이름으로 분산 관리되는 자금은 모두 이 회장의 차명재산으로 규모는 삼성생명 지분 2조 3119억여원어치를 포함, 모두 4조 5373억여원에 이른다.
조 특검은 “이 회장이 삼성 전·현직 임원 명의로 소유하고 있는 차명계좌 1199개를 이용, 삼성전자 등 계열사 주식을 거래해 얻은 차익 5643억여원에 대한 양도소득세 1128억여원을 포탈했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이 부회장, 김 사장을 공범으로 판단하고 함께 기소했다.
불법 로비 의혹과 관련해서는 김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로비 대상자로 지목한 임채진 검찰총장과 김성호 국정원장, 이종찬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 대해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내사종결했다. 대선자금 수사 역시 검찰 수사에서 삼성이 정치권에 제공하기 위해 매입한 채권이 5억 2000여만원어치 더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데 그쳤다.
보험금 미지급금을 빼돌려 9억 8000만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삼성화재에 대해서는 대표이사인 황태선 사장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했다.
조 특검은 “이번 수사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유지·관리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내재돼 있던 불법행위를 엄단한 것으로 개인적 탐욕에서 비롯된 전형적 배임, 조세포탈 범죄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면서 “삼성의 경영 공백 등 개별적 특수성을 고려해 구속수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특검에서 기소한 사건을 형사23부(부장 민병훈)에 배당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