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배고픔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상업은행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노선 투쟁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형사재판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 사표 수리
    2026-03-0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4
  • [단독]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15년간 남은 건 ‘비만’

    [단독]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15년간 남은 건 ‘비만’

    야근→ 수면부족→ 폭식 매일 악순환입사 때 75㎏ 몸무게 어느덧 90㎏간수치·지방·혈당 모두 ‘빨간불’근성으로 버텨라? 망가진 내 몸은? “회사에 헌신한 15년간 남긴 건 건강기록부에 적힌 지방간과 고지혈증뿐이네요.” 중소기업에서 지적재산권 업무를 담당하는 박호영(45·가명)씨는 최근 병원에서 종합건강검진 결과를 받고 가슴이 철렁했다.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간수치, 혈당 등이 모두 정상 범위를 웃돌았다. 정밀검사를 할 필요 없이 거울만 봐도 볼록 나온 배와 퀭한 눈은 그의 몸 상태가 얼마나 악화했는지 한눈에 보여 준다. 15년 전 입사지원서에 적혀 있던 ‘키 180㎝·몸무게 75㎏’이라는 준수한 수치는 사라졌다. 대신 체중계의 화살이 90㎏을 가리킨 지 오래다. 그는 “중소기업을 일터로 택한 뒤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되자’며 앞만 보고 달렸는데 허탈하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과로는 단순히 개인 생활을 빼앗는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건강까지 갉아먹는다. 과로사나 과로자살 등 극단적 사례가 아니더라도 과로하는 직장인 다수는 몸의 이곳저곳이 망가지고 있다. “해가 갈수록 건강기록부에 병이 하나씩 더해진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김형렬 서울성모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학계의 최근 연구를 보면 장시간 근로가 비만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결과가 많다”면서 “몸에 포만감을 주는 렙틴 호르몬이 억제되고 배고픔을 느끼게 하는 그렐린 호르몬이 증가하면서 식욕이 왕성해진다”고 설명했다. # 하루 5시간만 잔 사람, 복부비만율 1.6배 높아 실제 서울대 의과대학 박상민·김규웅 교수 연구팀이 지난 3월 국민건강영양조사(2008~2011년)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수면시간이 하루 5시간 이하면 7시간씩 자는 사람에 비해 복부비만 비율이 1.61배, 전신비만 비율이 1.32배 높다. 연구진은 수면 부족에 따른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미국 국립수면연구재단이 밝힌 연령별 권장 수면시간은 만 26세 이상일 경우 7~8시간이다. 박씨에게도 집은 ‘잠만 자는 곳’이었다. 새벽 2시쯤 잠들어 고작 4시간 눈을 붙였다 일어나는 날이 많았다. 13시간 시차가 나는 미국 지사와 특허출원 등을 놓고 논의할 일이 잦아 취침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박씨는 “보통 자정이 돼야 통화를 할 수 있어 팩스 원고나 이메일을 미리 써놓고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보내곤 했다”면서 “잠을 못 자니까 계속 피곤하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게 됐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3~4일 정도는 밤늦게 일을 끝내고 “고생했다”며 동료들과 간단한 술자리를 가졌다. 과로는 비만만 낳는 게 아니다.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은 과로가 키우는 대표적 질환들이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근로시간이 길어지니 최소 수면시간을 못 지키고 당연히 운동할 체력은 안 되는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것으로 푸는 일이 순환한다”면서 “이런 생활이 반복되면 콜레스테롤 상승과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 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심하면 우울증… 정신질병 산재도 3년새 48%↑ 장시간 노동은 감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심하면 마음의 병으로 번지기도 한다. 게임 프로그래머인 김모(37·여)씨는 장시간 노동 탓에 우울증을 앓게 됐다. 2010년 게임업계에 발을 들여놓은 김씨는 게임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내놓으라는 상사의 지시에 밤낮없이 일했다. 주어진 시간이 짧을수록 압박감은 커졌다. 그는 “기획자, 디자이너, 프로그래머가 순차적으로 업무를 진행하는데 앞 공정이 지연되면 내가 작업할 시간이 확 줄어든다”면서 “그럼에도 회사는 무조건 시간 안에 결과물을 내놓으라고 하니 밥 먹듯 밤을 새우지 않고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근성으로 버티던 김씨도 한순간 일이 버거워졌고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상사에 대한 불만만 쌓였다. 우울감도 깊어져 최근 4개월 사이 서울의 한 자치구 정신보건센터에서 10번이나 상담을 받았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지난 2012년 내놓은 ‘근로시간이 건강 및 사고에 미치는 영향 연구’ 자료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로자들이 우울증, 불면증을 앓은 경우가 주 40시간 이하보다 각각 2.13배, 1.86배 높았다. 노동자가 근로복지공단에 우울증, 불안장애 등 자신의 정신질병이 ‘업무상 재해’라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보험급여를 신청한 경우도 매년 늘어 지난해 125건을 기록했다. 2013년 84건과 비교해 48.8% 늘어난 수치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요즘은 장시간 노동이 신체 건강보다 정신적 차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킨다”고 말했다. 그는 “우울증을 포함한 불안장애, 공황장애 등이 많다”면서 “오래 일하면 스트레스를 받아도 해소할 시간조차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오빛나라(법률사무소 인정) 변호사는 “일본은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스트레스 검사를 매년 1회 이상 시행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면서 “검사 결과 스트레스가 높은 것으로 판정되면 사업장은 근로자 신청에 따라 의사와 상담을 받도록 하고 근무지 변경, 근로시간 단축, 심야작업의 축소 등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회사가 지속적으로 직원의 정신건강을 체크하기 때문에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에 몰랐다고 발뺌하기 어렵다. # 주당 60시간 땐 심장질환·사망위험 2배 증가 과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뇌·심혈관계 질환이다. 정인철 아주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가 2013년 내놓은 ‘노동시간과 심혈관계 질환 위험도’ 연구 자료에 따르면 주 60시간을 넘겨 노동하는 집단에서 40~50시간 미만 일하는 집단에 비해 4배 넘는 심혈관 질환이 발생했다. 다른 연구들도 전반적으로 주당 근무시간이 55~60시간 이상일 때 심장질환의 발생 또는 사망위험이 1.5~2.3배 증가한다고 보고하고 있다. # 직업별 질병 리스트 등 예방 시스템 만들어야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동자들이 자신이 아프다는 것, 현장에서 나 자신이 병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제 병들었을 때 어떻게 구조요청을 보내야 하는지 방법을 알아야 한다”면서 “정부가 어느 분야에서 어떤 일을 많이 했을 때 질병으로 이어지는지 직업병 리스트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리스트에 포함된 질병이 발견되면 휴직을 권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기획팀 bulse46@seoul.co.kr 서울신문은 기업과 사회가 노동자에 과로를 강요하거나 은폐하는 현실을 집중 취재해 보도할 예정입니다. 독자들이 회사에서 겪은 과로 강요 사례나 과도한 업무량을 감추기 위한 꼼수, 산업재해 승인 과정에서 겪은 문제점 등 부조리가 있었다면 dynamic@seoul.co.kr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 대만 중년 여성, 배고픔 이기지 못하고 ‘아사’(餓死)

    대만에 거주하는 중년 중국인 여성이 ‘아사’한 사실이 30일 오전 뒤늦게 밝혀져 주위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더욱이 해당 여성은 지난 7월 대만의 한 도시에 소재한 편의점에서 일부 식재료를 훔치다 적발된 A씨(43세)로, 당시 “배고픔을 참지 못하고 도둑질을 했다”고 진술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지난 7월 당시 식재료 절도 혐의로 적발된 A씨는 경찰에 의해 강제 구인됐으나, 해당 편의점 주인의 선처로 풀려났다. 이후에도 수차례 거주지인 타이난시 중시구 따동루 자택 인근에 소재한 식당을 전전하며 손님들이 남긴 음식을 주워 먹는 등의 모습이 발견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발표에 의하면 A씨는 평소 그의 모친, 여동생과 함께 생활해 왔으나, 그의 자녀가 6세 되던 해 사망하면서부터 직장 생활 등 일체의 평범한 생활을 포기하고 식당과 편의점 등을 전전하며 식재료를 절도하거나 구걸하는 방식으로 생활을 유지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A씨가 자녀를 잃은 직후 온전한 생활을 유지할 수 없게 되자, 그의 여동생과 모친은 타 지역으로 이주해 직장생활을 해왔던 것으로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3개월에 한 두 차례씩 A씨의 집을 찾아왔으나, 함께 생활하지는 않았던 탓에 A씨의 아사 소식은 이웃의 발견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이웃 주민에 의해 발견된 아사한 A씨의 시신은 자택 6층 빌라 밖으로 상체 일부가 나와 있었으며, 온 몸은 흙투성이였으며, 출동한 경찰은 A씨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자택 문을 부수고 진입,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온라인 상에서는 A씨가 이미 지난 7월 한 차례 아사 직전 상태에서 식재료를 훔쳐 먹으며 전전한 사실을 경찰이 알고도 그를 돌보지 않아, 아사로 몰았다는 비판 여론이 일었다. 중국 최대 여론 사이트 ‘또우반(豆瓣)’에서는 이날 오전 해당 사건을 겨냥, ‘경찰도 버린 여인의 죽음’이라는 글이 게재됐으나 해당 글은 곧 삭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해당 사건을 담은 기사에 대해 네티즌들은 중년 여성의 안타까운 아사 사건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모아졌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퍼블릭 뷰] 굶주림 없는 쌀맛나는 세상을 위하여… 내년부터 연간 5만t 원조

    [퍼블릭 뷰] 굶주림 없는 쌀맛나는 세상을 위하여… 내년부터 연간 5만t 원조

    ‘그 반지르르 윤기 도는 쌀을/ 돌덩이같이 된 손으로 받으며/ 우는 듯 웃는 아버지는 안다/ 쌀이 농민의 피라는 것을’이라고 어느 시인은 읊었다. 쌀 한 톨을 밥상에 올리기까지 농부가 여든여덟 번의 땀을 흘려야 한다는 속담도 있다. 하얀 쌀밥 한 그릇만으로도 행복했던 시절이 있으며, 우리 국민들은 그 쌀밥으로 체력을 키워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식량공여 세계 6위로… 재고관리 부담도 줄어 최근 몇 년 사이 식습관의 변화와 다양한 먹을거리의 등장으로 해마다 수요보다 20만~30만t의 쌀이 더 많이 생산되고 있다. 전체 식량의 절반을 해외에서 수입하는 국가이지만, 우리나라는 쌀만큼은 100% 자급하고 있고 해외 원조를 할 수 있는 여력까지 갖추게 됐다. 정부는 식량원조협약(FAC)에 가입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말 FAC 가입을 위한 행정 절차를 끝냈다. 올해 안에 국회 절차를 거쳐 협약에 가입해 내년부터 연간 우리 쌀 5만t을 해외로 보낼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미국, 유럽연합(EU), 캐나다, 일본, 호주에 이어 식량원조협약 가입 국가 중 6위의 공여국이 된다. 식량원조협약 가입이 결정된 이후 농업인들과 관련 단체들도 쌀 수급 안정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에서는 쌀 재고관리 부담이 축소되고 국제적으로 우리나라 위상이 향상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 전쟁 때 받았던 도움의 손길 되갚을 기회로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국제기구의 원조를 받다가 비약적인 경제성장을 통해 원조국에서 벗어났다. 우수 졸업생으로 경제규모 세계 12위로 우뚝 섰다. 하지만 풍요롭다 못해 음식이 넘치는 지금은 상상도 하기 어려운 가난과 배고픔을 겪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우리의 근면, 피나는 노력과 함께 국제사회의 따뜻한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는 과거 우리가 겪었던 고통이 반복되고 있다. 내전과 기근을 겪는 소말리아에서는 이미 2011년에 26만명이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500만명 이상이 심각한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전 세계적으로 기상이변, 자연재해, 전쟁 때문에 약 8억명의 인구가 처절한 기아로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한국전쟁 이후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던 우리나라 국민들은 해외에서 원조 물자로 건너온 식품으로 배고픔을 달랬다. 추위에 떨어 본 사람이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고 굶주림에 시달려 본 사람이 쌀 한 톨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낀다. 이제 우리 정부도 과거 국제사회로부터 받았던 혜택을 돌려주고,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외원조를 통해 책임감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 # 지구촌 저편의 ‘식구’에게 따뜻한 밥 한 끼를 앞으로 정부는 우리 쌀이 국제사회에서 요긴하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물량이 지원될 수 있도록 여러 국제기구와도 협력해 나갈 것이다. 멀리 있어 마주 앉아 밥을 먹을 수는 없지만, 지구촌 저편에서 끼니를 거르고 있는 ‘식구’에게 이 땅에서 정성껏 기른 쌀을 보낸다. 쌀을 나눴으니 우린 이미 ‘식구’라고 말하며, 우리 쌀 먹고 지금의 고통을 이겨 낼 힘을 내라고 응원하고 싶다.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 ‘1박 2일’ 김준호, 배고픔에 지쳐 김종민에 “반말하냐” 예민美 폭발

    ‘1박 2일’ 김준호, 배고픔에 지쳐 김종민에 “반말하냐” 예민美 폭발

    ‘1박 2일’ 김준호-김종민이 미션은 물론 복불복 게임에서도 패했다.10일 방송된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시즌3’(이하 1박2일)에서는 ‘서울 미래유산 투어’ 마지막 이야기가 펼쳐졌다. 앞서 김준호-김종민-윤시윤은 3G팀으로, 차태현-데프콘-정준영은 LTE팀으로 나뉘어 미션을 수행했다. 서울 구석구의 미래유산을 섭렵하고 어린이 대공원으로 돌아온 멤버들은 정산을 했다. 정산 결과 승리는 LTE팀이었고, 3G팀은 춘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이후 베이스캠프에서 멤버들은 라면과 닭갈비를 걸고 라면 수프 복불복에 임했다. 복불복 결과 1등은 데프콘, 2등은 차태현, 3등은 윤시윤이었고, 김종민-김준호-정준영은 세 사람이 닭갈비를 먹을 동안 라면 국물만 먹게 됐다. 특히 배고픔에 예민해진 김준호는 “된장이 정말 맛있다. 뭐야?”라는 김종민의 혼잣말에 “뭐야는 반말 아니야? 인마?”라고 받아쳐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KBS 2TV ‘1박2일 시즌3’ 방송 캡처 연예팀 seoulen@seoul.co.kr
  • [In&Out] 북한이탈주민 지원정책을 다시 생각하다/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In&Out] 북한이탈주민 지원정책을 다시 생각하다/강동완 동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북한에서 이주해 온 사람을 북한이탈주민 혹은 탈북민이라 부른다. 2017년 7월 현재 국내 입국 탈북민은 3만 1000여명에 이른다. 우리 사회에서 그들은 ‘먼저 온 미래’, ‘통일의 마중물’로 불린다. 앞으로 통일시대가 오면 그들의 정착 사례나 교육 경험을 북한 주민에게 적용한다는 뜻이다.통일을 미리 연습한다는 가치를 담기도 한다. 그런데 탈북민이라는 한 단어로 포괄하기에는 최근 그들의 탈북 동기와 배경, 환경이 달라지고 있다. 첫째, 탈북 동기가 생계형에서 이주형으로 변하고 있다. 1990년대 말 극심한 식량 부족으로 인한 기아와 아사 위기 때는 그야말로 배고픔이 탈북 동기였다. 최근에는 탈북의 양상이 달라져 기존에 먼저 입국한 탈북민이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오는 경우가 많다. 단순히 배고픔보다는 더 나은 삶과 자유에 대한 갈망이 주요인이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 탈북을 감행하는 젊은 부부도 생겨나고 있다. 생존보다는 생활의 동기가 더 강하다. 두 번째는 국내 입국 탈북민의 인구학적 배경이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 가운데 70% 이상이 여성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여성들 가운데 대부분이 중국에서 장기간 거주했다는 점이다. 길게는 20년 이상 중국에서 살다가 최근에 남한에 입국한 사례도 있다. 탈북민 사이에서도 북한을 탈북해서 바로 한국에 들어온 경우를 ‘직행’이라 하고 중국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중국행’이라 해서 서로 구분 짓는다. 직행과 중국행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현재 우리의 탈북민 지원 정책은 북한에서 생활한 사람의 사상과 의식을 염두에 두고 이를 바꾸기 위한 교육이 주로 이루어진다. 북한에서 사상 교육을 받고 집단 생활을 하며 독재 체제에서 엄격한 규율 아래 살았을 거라 전제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여성들은 이미 그러한 요인으로부터 벗어난 지 오래다. 오히려 중국에서 생활하며 집안의 감시와 가정 폭력, 학대, 강제 북송에 대한 심리적 장애 등 비인권적 상황에 따른 트라우마가 더 깊다. 중국에서 경험했던 생활 문화와 여성에 대한 지위와 가치관, 인식 등은 남한 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탈북 과정에서의 트라우마보다 더 심각한 것은 중국에 두고 온 자녀 문제다. 중국에 자녀를 두고 온 탈북 여성의 경우 모성애를 가진 어머니로서 늘 죄책감으로 살아가게 된다. 북한에는 부모를, 중국에는 자식을 두고 온 탈북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물질적 지원과 자립, 자활만은 분명 아닐 것이다. 따라서 탈북민을 일괄적으로 규정하기보다 이들의 사회 인구적 배경을 고려한 보다 세분화된 생활 밀착형 지원이 필요하다. 중국 탈북민 집단자살, 재입북 등의 사건은 그들이 우리 사회에서 소외되고 어려움을 안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관과 단체는 일회성 행사를 위해 먹잇감을 찾듯 소위 ‘탈북민 헌팅’을 하고 있다. 탈북민 지원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계획된 중장기적 사업보다 기관·단체별 이벤트성 행사를 진행하다 보니 정작 당일 행사에 참여할 탈북민을 모으느라 어려움을 겪는 해프닝도 발생한다. 일부 탈북민의 경우는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지원 쇼핑’을 다닐 정도라고 한다. 물질적 지원 위주의 중복 지원 정책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남북한 출신 사람의 인식 개선을 확대하는 사회통합형 탈북민 지원정책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그들이 원하는 건 돈이 아니라 차별받지 않는 시선과 마음이다. ‘북한 사람’, ‘탈북민’이 아닌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고 싶은 것이다.
  • ‘나 혼자 산다’ 성훈, 폭풍먹방의 최후 ‘반쪽이 된 얼굴’

    ‘나 혼자 산다’ 성훈, 폭풍먹방의 최후 ‘반쪽이 된 얼굴’

    ‘나 혼자 산다’ 성훈이 남다른 ‘폭풍먹방’을 선보여 화제다. 11일 방송한 MBC 예능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는 성훈이 만화방을 찾아 ‘폭풍 먹방’을 펼치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날 성훈은 서핑을 위해 일산으로 향하던 도중 운동 관장에게 연락을 받았다. 그간 화보 촬영을 끝낸 후 운동을 가지 않았던 것. 다음번에 더 악랄하게 운동을 시키겠다는 트레이너의 협박에도 성훈은 목적지로 향했다. 그는 서핑 슈트로 환복한 후 실내 서핑을 배웠다. 수 시간의 험난한 서핑 수업 후 배고픔을 호소하며 ‘맛집’ 만화방으로 향했다. 성훈은 만화방에서 김치볶음밥과 짜장 라면을 주문해 단 시간에 음식을 먹었다. 이어 또 한 번 스팸계란 볶음밥과 라면을 주문해 국물 한 점 남기지 않고 흡입했다. 특히 뜨거운 라면을 식히는 동시에 탱탱한 면발을 위해 찬 물을 부어먹는 스킬까지 보였다. 또 핫도그와 미숫가루 등을 입에 가득 머금고 먹방 신공을 펼쳤다. 하지만 앞서 지속적으로 전화를 하며 ‘정말 서핑을 가는 것이냐’고 의심한 호랑이 관장님이 소문을 듣고 만화방으로 들이닥쳤고 섬뜩한 광경을 연출했다. 관장님은 성훈 앞에 쌓인 그릇과 주문 내역을 보고 “너 먹방 대회 나가려고 그래?”라며 경악했다. 관장님은 이내 그를 다시 헬스장으로 끌고 갔다. 결국 성훈은 문도 잠근 헬스장에서 고강도의 운동을 소화했다. 이후 성훈은 얼굴이 반쪽이 된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운동 후 피자까지 먹었는데도 체중이 줄었다”고 호소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기록…‘남한산성’ 티저 예고편

    역사상 가장 치열했던 47일간의 기록…‘남한산성’ 티저 예고편

    김훈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남한산성’ 티저 예고편이 공개됐다. ‘남한산성’은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조선의 운명이 걸린 가장 치열했던 47일을 그렸다. 출간 이래 70만부 판매고를 올린 김훈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도가니’, ‘수상한 그녀’의 황동혁 감독을 비롯해 이병헌, 김윤석, 박해일, 고수, 박희순, 조우진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합류했다. 공개된 예고편에는 병자호란을 일으킨 청의 공격을 피해 임금과 조정이 남한산성으로 숨어드는 긴박한 상황이 담겨 있다. 고립무원의 남한산성에서 충심을 지녔지만 다른 신념으로 맞서는 ‘최명길’(이병헌)과 ‘김상헌’(김윤석)의 모습이 팽팽한 긴장감을 예고한다. 또 첨예하게 맞서는 대신들의 의견 사이에서 번민하는 왕 ‘인조’ 역의 박해일,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는 대장장이 ‘날쇠’ 역의 고수, 남한산성의 방어를 책임지는 수어사 ‘이시백’ 역의 박희순 등 실력파 배우들의 등장이 눈길을 끈다. 충무로 연기파 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영화 ‘남한산성’은 9월 말 개봉 예정이다.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 “내 친구 3명은 결국 고향 송마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내 친구 3명은 결국 고향 송마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4)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임시로 탈영병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아들 이규원(인천 소재 치과 원장) 씨의 도움으로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8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 1명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해 인천 중구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는 부산까지 걸어가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000명과 참전 스승(심선택 소위, 신봉순 대위)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 소위·24세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이용화 인터뷰 일시 1997년 10월 12일 장소 인천보훈회관 대담 이용화 이경종(6·25 편찬위원) 이규원(6·25 편찬위원장·이경종 아들)자원입대한 이용화와 그의 친구들 임면기 인천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 후 17살에 전사 문병열 인천상업중 4학년 때 자원입대 후 17살에 전사 이하수 인천해성중 4학년 때 자원입대 후 17살에 전사 이용화 김포중학교 4학년 때인 17살에 자원입대 후 12년 3개월만에 만기 제대 1947년 6월 25일 : 송마리 4명의 친구 대곶국민학교 졸업 1950년12월 21일 : 이들은 나이가 어려서 국민방위군 소집대상이 아니었지만, 인민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가기 싫어서 국민방위군을 따라 부산진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를 향해 걸어서 남하를 시작함 1951년 1월 11일 : 송마리 4명의 친구는 함께 20일간 걸어 부산진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에 입소하였으나 김포에서 부산까지 20일 동안 걸어 내려갈 때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지독한 추위와 굶주림으로 죽을 고생을 함 1951년 1월 24일 : 송마리 4명의 친구는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해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에서 나와 부산 육군 제2훈련소에 입소하여 육군으로 자원입대함 1951년 2월 20일 : 이들 송마리 친구는 훈련소와 동래 보충대까지 함께 있었으나 대구 보충대에서 서로 헤어짐 1951년 5월 22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문병열이 1번째로 전사함 1951년 8월 12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이하수가 2번째로 전사함 1951년 9월 20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임면기가 3번째로 전사함 1963년 4월 20일 : 4명의 친구 중에서 이용화만 혼자 살아남아서 자원입대한 지 12년 3개월만에 명예제대함●나의 아름다운 고향 송마리 내(이용화)가 태어나 살던 김포시 대곶면 송마리 동네는 서해가 가까운 매우 아름다운 시골이었고 당시 80여 가족이 살고 있었으며 그때 우리 가족은 부모님과 4명의 동생이 있었다. ●내가 겪은 6·25와 인민군 6·25 전쟁이 일어난 일요일은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도와 밭에서 보리를 베고 있을 때인데 새벽부터 유난히 북쪽에서 ‘쾅, 쾅’ 하는 요란한 소리가 그때까지도 계속 들려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튿날이 되어 학교에 갔는데 학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렇게 지나는 동안 어느 틈엔가 우리 동네에 인민군이 들어오고 어린 학생들까지 인민의용군으로 강제로 끌려갔다. ●피난 생활 나는 위급함을 느끼고 급히 경기도 고양시에 계신 고모님 집으로 피신해 가 있었으며 그곳에서 두 달을 숨어 지냈다. 9·15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인민군이 물러가자 나는 집으로 돌아와 ‘이제는 공부할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기다리는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군이 또 밀리게 되어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또 피난을 가야 하나 걱정하고 있을 때 1950년 12월 18일이 우리 집 막냇동생 돌날이라 돌떡을 먹는 중에 우리 부모님께서는 피난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고심하시는 것이었다. ●4명의 친구 국민방위군을 따라서 남하 1950년 12월 중순경에 국민방위군 영장이 동네 청년들에게 나왔는데 1950년 12월 21일날 국민방위군들이 남쪽으로 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문병열·이하수·임면기·이용화)도 따라가기로 하고 김포에서 출발하였다. 그때 우리는 중학교 4학년으로 어려서 국민방위군 소집대상이 아니었지만, 송마리 3명 친구와 나는 인민군에 강제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함께 20일간을 걸어서 부산까지 내려갔다. ●국민방위군 사건 전시에 신속한 병력 동원을 위하여 1950년 12월 제정한 국민방위군법에 의한 군대였으나 1951년 1·4 후퇴 때 국민방위군 50만명 중에서 9만명이 굶거나 얼어 죽은 사건이 발생하여 총사령관 김유근 등 5명이 총살당했고 국민방위군은 1951년 5월에 해체되었다. ●부산 국민방위군 제2수용소에 입소 송마리 동네 4명의 친구는 6·25 사변 초기에 인민군이 들어와서 어린 학생들까지 인민의용군으로 강제로 끌고 간 것을 알기 때문에 국민방위군을 따라서 남하한 것이었다. 인민의용군에 강제로 끌려갔던 학생들은 결국 실종됐다. 최종 목적지는 부산진 국민방위군 수용소였으며 부산에 도착했을 때는 국민방위군들이 수용되어 있었던 부산지 국민방위군 수용소에서 약 2주간 있었다. 우리가 있었던 국민방위군 수용소는 범일동에서 해운대 가는 쪽에 있었다. 국민방위군은 아니었지만 국민방위군을 따라서 남하한 우리도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인하여 크나큰 배고픔과 추위의 고통을 당했었다. 고향이 또다시 북한 인민군에게 점령당해 있어서 우리 송마리 4명의 친구는 나이가 어리지만 군에 자원입대하기로 결정했다. ●17살에 육군 제2훈련소에서 자원입대 송마리 4명의 친구는 함께 육군 제2훈련소(부산진국교)로 입소하여 약 2주 동안 망가진 일본식 장총으로 열심히 훈련받았으며 사격훈련은 M1소총으로 실탄 6발을 쏘고 수류탄 투척 등으로 마지막 훈련을 마쳤다. 그런 다음 군번을 받고 정식 군인이 된 후에는 동래 보충대를 거쳐 대구 보충대로 갔다. 대구 보충대에서 우리 송마리 4명의 친구는 모두 헤어졌고 나는 당시 대구에 있던 8사단 10연대 2대대 6중대 본부에 배치되었다. 당시 대구에 있던 8사단은 강원도 횡성 전투에서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많은 병력 손실을 당하고 대구에 와서 재편성하는 중일 때 내가 배치됐던 것이었으며 그때 한 달 동안 재교육받고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에 투입되었다.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 전투 지역은 지리산 일대였으며 그때 2달 동안 공비토벌을 통해서 실전을 경험한 후 동부 전선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이동할 때에는 화물열차에 1개 중대씩 태우고 이동하였는데 이동할 때는 주먹밥도 제대로 못 먹어 많은 고생을 하였으며, 제천을 거쳐서 진부령까지 올라가서 1주일 정도 쉬다가 다시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 서화리에서 수도사단과 교대를 했다. 그때 그곳에서 3개월간 여름 장마를 겪으면서 맡은 전투는 1031고지 전투였는데 처음 1차 공격은 야트막한 무명고지였으며, 2차 공격은 854고지이고, 3차 공격이 마지막 목표인 1031고지였다. 처음 공격 시작했을 때는 울창했던 산림이었는데 탈환하고 보니까 함포사격까지 가세하여 1031고지 정상이 7m나 낮아지고 나무가 없는 운동장으로 변하였다. ●송마리 4명의 친구 17살에 자원입대하다 중공군의 참전으로 국군과 UN군이 밀리면서 1950년 12월 21일 우리 동네 인천상업중학교 문병열, 인천해성중학교 이하수, 인천중학교 임면기 등 3명의 친구와 함께 나는 어리기 때문에 국민방위군은 아니었지만 국민방위군을 따라 걸어서 남하하였다. 우리 4명은 송마리, 영등포, 수원, 안성, 괴산, 문경, 의성, 영천, 경산, 청도, 밀양, 삼랑진, 김해, 구포를 20일간 같이 걸어서 지나갔고 부산에서 한날한시에 함께 자원입대하여 참전하였다. ●17살에 전사한 송마리 고향 친구 임면기 국립묘지에 누워 있는 임면기는 부모님께는 효자이고 또한 학구열이 강해 학교에서는 1등을 하는 수재였으며 인천중학교 4학년 때 같이 부산까지 내려가 자원입대하여 8사단에 배치되어 1951년 9월 20일 연기에서 전사하였다. ●17살에 전사한 송마리 고향 친구 문병열 국립묘지에 누워 있는 문병열은 정의감이 강해 남을 괴롭히는 일이 없었으며 토론을 할 때도 조정자 역할을 잘했고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해내는 친구로 인천상업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하여 제5사단 35연대에 배치되어 1951년 5월 22일 전사하였다. ●17살에 전사한 송마리 고향 친구 이하수 국립묘지에 위패만 있는 이하수는 부모님이 늦은 연세에 낳은 외아들로 귀하게 자랐고 항상 명랑한 장난꾸러기로 인천해성중학교 4학년 때 자원입대하여 8사단 16연대에 배치되어 1951년 8월 12일 강원도에서 전사하였다. ●강원도 백암산 전투 참전 우리 사단은 지리산 공비토벌 후 강원도 양구 쪽으로 이동해서 약 20일간 재편성을 한 다음 전투지역인 양구군 반상면 문등리 북방 백암산 전투지역으로 출동하게 되었다. 이 지역 전투를 마치고 그간의 병력 손실을 정비하기 위해 지리산 공비토벌작전에 재투입 되었으며 그곳에서 공비토벌 하면서 재정비하고 이듬해에 다시 854전투 지역으로 재투입되었다. 이후 막바지 휴전회담이 진행 중일 때 쌍방 간에 한 치라도 더 땅을 차지하려는 전투로 많은 병력 손실을 보게 되었다. 휴전이 된 이후에 나는 장기 군 복무를 신청해 각 부대를 전전하면서 국방의무에 충실하였다. ●3명의 친구는 결국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내가 군 복무 연장을 신청했던 이유는 인민군 치하의 쓰라림을 같이 겪다가 1950년 12월 21일 함께 남하하여 군에 입대하였으나, 같이 자원입대한 3명의 친구인 인천상업중학교 문병열, 인천해성중학교 이하수, 인천중학교 임면기가 전사한 것 때문이었다. 나만 홀로 살아남아 고향 땅을 밟는다는 것이 그 당시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아 군에 그대로 남을 결심을 했던 것이었다. 1950년 12월 21일 날 송마리 4명의 동네 친구는 조국을 지키려고 고향을 떠나 부산진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하여 함께 1951년 1월 10일에 입대하였으나 나 혼자만 1963년 4월 친구들이 함께 자원입대한 지 12년 3개월만에 파란 많은 군 생활을 마감하게 되었다. ●3명의 이름 영원히 기억되길 기억해보니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4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 이름이지만 내 가슴 속에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친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문병열, 이하수, 임면기…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는 3명의 이름을 기억하고 기록해주려는 이경종·이규원 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 호에 3회 계속 참전기 2회를 마치며 대곶면 송마리에서 태어나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부산진까지 20일간 걸어서 남하한 중학교 4학년이었던 동네 친구 4명이 있었다. 비록 고향 송마리 그 어디에도 전사한 3명의 중학생을 기억해주는 추모비는 없지만 먼 훗날에도 중학교 4학년 학생들의 애국심을 기억해주길 바라며 이 참전기를 기록한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퍼블릭 詩 IN] 오두막집의 겨울밤

    [퍼블릭 詩 IN] 오두막집의 겨울밤

    오두막집의 겨울밤 깊은 겨울밤 뒤란 대숲에서 사그락 거리며 댓잎 부딪치는 소리 짙은 어둠속에서 소름 돋는 소리로 달려온다 이따금 부엉이가 서럽게 울면 이름 모를 산새들 추위에 떨다가 애처롭게 우는 소리들이 무서움 다닥다닥 붙여서 찬바람 뚫고 오는 밤 식어가는 구들장에 몸을 웅크리고 무거운 솜이불 뒤집어 쓴 채 겨울밤 슬픈 가락을 엿듣는다 먼 곳으로부터 출발한 찬바람이 산등성이를 훑고 강을 따라 내달리다가 산골마을까지 들어와 가쁜 숨 내뱉으며 먼 곳의 겨울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사뿐 사뿐 대숲에 눈 내리는 소리에 산새들 잠드는 시간 어둠을 눈 속에 하얗게 묻어두는 겨울 대숲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안고 산골의 긴 긴 겨울밤을 홀로 무서움 떨쳐내고 있는 아이는 부엉이만큼이나 서러움 속에서도 햇볕 받는 꿈을 꾸며 잠이 들던 아주 오래 전 그 겨울 대숲 속의 오두막집이 그리운 오늘!장석민 (동안양세무서 주무관) 20회 공무원 문예대전 동상 수상작
  • [공직체험]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체납자 1만 5000명과의 전쟁

    [공직체험]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체납자 1만 5000명과의 전쟁

    대한민국 헌법 38조는 ‘납세의 의무’를 기술하고 있다. 국방의 의무를 규정한 39조보다 앞선다. 그만큼 건국 당시부터 세금 납부를 국가의 근간으로 여겼다. 하지만 서울만 해도 1000만원 이상 세금 미납자가 1만 5000명(체납액 6700억원)일 만큼 납세의 의무를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경제적 능력이 있음에도 세금을 내지 않는 이들을 찾아내 추징하는 서울시 38세금징수과 직원들의 애환을 직접 들여다봤다.# 38사기동대 마동석 숨은 모델과 가택 수색 나서다 지난달 20일 오전 7시. 38징수과 직원 네 명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서래마을에 있는 한 고급 타운하우스를 찾았다. 20년 가까이 지방세 1억 7300여만원을 내지 않고 버티는 건설사 대표 박정식(가명·67)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왜 이렇게 새벽같이 길을 나서느냐”고 묻자 베테랑 안승만 사무관은 “출근 등 사회활동을 시작하기 전이어서 체납자 대부분이 집에 있는 시간대이고 ‘공무원은 오전 9시 이후에 일한다’는 통념을 역이용하는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2001년 서울시 38징수과 창립 당시부터 일해 온 그는 지난해 인기를 얻었던 TV 드라마 ‘38사기동대’에서 마동석이 연기한 세금징수과장 백성일의 숨은 모델이다. 이주열 조사관이 초인종을 누르고 “박정식씨 계십니까”라고 묻자 한 중년 여성이 조금 문을 열어 바깥을 살펴보고는 “그런 사람 없어요”라며 현관문을 걸어 잠궜다. 서울시와 체납자 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안 사무관이 “경찰 입회하에 열쇠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겠다”고 소리쳤다. 뒤따라온 김진욱 조사관이 112에 신고해 경찰 출동을 요청했다. 5분쯤 지나 경찰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자 박씨 측은 더이상 버티는 게 무의미하다고 판단한 듯 가정부를 보내 문을 열었다. 241㎡(약 73평) 규모의 집에는 위장이혼한 아내와 딸도 함께 살고 있었다. 조사관들은 박씨에게 가택 수색 목적을 설명한 뒤 집안 곳곳에 압류 스티커를 붙였다. 집안은 아내의 고성과 딸의 읍소 등이 뒤섞이며 금세 아수라장이 됐다. 박씨는 “회사가 외환위기 때 부도가 난 뒤로 사채에 시달리다보니 세금을 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박씨는 아내 명의로 돌려놓은 상도동의 5층짜리 빌딩(시가 30억원 이상)과 사당동의 85㎡짜리 아파트(7억원대)가 있었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15억원 이상)도 아내 명의였다. 박씨는 거의 매년 가족과 해외 여행을 다녀왔고, 최근에는 아파트 분양 시행 계약에 따라 시공사로부터 현금 20억원도 받았다. 생활비 명목으로 시공사로부터 매달 3000만원도 받고 있었다. 거실에는 “남편의 경제적 무능 때문에 사는 게 힘들다”고 울부짖던 아내 이름으로 된 홀인원 트로피가 세 개나 있었다. 가장 최근 트로피는 불과 몇 달 전의 것이었다. 이날 징수팀은 현금과 황금거북, 명품가방 10여개, 다이아몬드 20여점 등 2000여만원 상당의 자산을 압류했다. 박씨는 현장에서 5000만원을 낸 뒤 잔금도 순차적으로 갚겠다고 약속했다.# 첩보전 방불케 한 유명 방송인 집 찾기 오전 11시. 양천구 목동의 한 주택가 고층 빌딩을 찾았다. 인테리어 디자이너 주석준(가명·62)씨가 2003년부터 내지 않은 지방세 4800만원을 받기 위해서다. 주씨는 종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유명인이다. 주씨를 만나려고 10층 사무실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전화 통화에서 주씨는 “지방에 내려와 있어 오후나 돼야 올라올 수 있다”고 넉살 좋게 말했다. 세금징수팀이 일정 문제 등으로 오래 머무르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 것 같다. 징수팀은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짐을 챙겼다. 그때였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징수팀의 눈에 주씨 사무실 옆 보습학원이 눈에 들어왔다. 학원 홍보 입간판 옆으로 장독대와 빨래 건조대가 보였다. 안 사무관은 직감적으로 “지금 이 학원에 누가 살고 있네”라고 소리쳤다. 은석희 조사관도 우편함을 뒤져 주씨와 주씨 아내 명의의 우편물을 찾아냈다. 주씨는 세금 납부 독촉을 피하고자 인테리어 사무실 건물 일부를 집으로 개조해 숨어 살고 있었다. 이 조사관은 주씨에게 다시 전화해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들어오라”고 으름장을 놨다. 주씨가 10여분 만에 들어왔다. 주씨는 “사업이 어려워 세금을 낼 수 없으니 유예해 달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집 안 개인 금고에는 5만원권이 2000만원 넘게 들어 있었다. 아내 명의로 된 마곡지구 토지 1200㎡(약 360평)와 이곳 상가 건물, 오피스텔만 해도 수십억원에 달했다. 조사관이 압류 스티커를 붙이자 주씨는 그제서야 “오늘 손주들이 집에 놀러오는데…”라며 백기를 들었다. 현장에서 1000만원을 내고 매월 300만원씩 갚기로 서약했다. 안 사무관은 할아버지로서 자존심을 지켜주고자 거실에 붙였던 스티커는 떼어냈다. # 세금 회피 지능화될수록 징수 기법도 진화한다 오후 3시 30분. 예정대로면 세 번째 수색 장소에 가 있어야 하지만 앞서 두 곳에서 시간을 너무 쓴 탓에 이날 업무를 마치기로 했다. 시청에 돌아오니 오후 4시가 넘었다. 아침 7시부터 밥 한끼 먹지 못한 탓에 배고픔과 피곤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시청 주변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시켰다. 김 조사관은 “고액 체납자와 수 싸움이 치열하다”면서 “세금회피 기법이 갈수록 지능화되고 있어 세금을 징수하기 위한 노력 또한 끊임없이 진화한다”고 강조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경성의 월스트리트’ 한국은행 앞 광장·‘원조 유흥가’ 명동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 투어] ‘경성의 월스트리트’ 한국은행 앞 광장·‘원조 유흥가’ 명동

    투어길에서 만난 서울미래유산은 남대문시장, 상동교회, 한국은행 앞 광장, 유네스코회관, 명동예술극장, YWCA회관 등 6곳이다. 해방 후 지어진 유네스코회관, YWCA회관을 제외한 4곳이 제국주의 침탈기에 세워졌거나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당시 경성은 수도라는 지위를 잃고 제국의 일개 지방인 경기도 도청 소재지에 불과했지만 공식 지위와는 별개로 식민지의 수도 역할을 수행했다.지금의 한국은행 앞 광장을 경성시대에는 조선은행 앞 혹은 선전 앞이라고 불렀다. 경성은 일본식 자본주의가 이식된 실험도시였으며, 금융기관과 식민지 수탈기관이 줄줄이 늘어선 남대문로는 경성의 월스트리트였다. 시장 전체가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남대문시장은 대동법 실시 이전 곡식을 사고팔아 물가를 조절했던 상평창과 선혜청 자리에 1921년 들어섰다. 종로시전, 배오개시장과 함께 도성안 3대 시장 중 하나였던 칠패시장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상동교회는 조선 중기의 문신 상진(尙震·1493~1564)의 집터로, ‘상정승골’에서 ‘상동’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 신학문 보급 및 민족운동의 본산이었다. 헤이그 밀사 사건을 계획한 역사의 현장이지만 우리에게는 1977년 개업해 1998년 폐업한 옛 새로나백화점 건물로 더 유명하다. 유네스코회관과 명동예술극장이 자리한 명동 일대는 이 땅의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즐겨 찾는 술집과 다방으로 가득 찬 ‘원조 유흥가’였다. 시인 이상은 다방을 ‘티룸’이라고 불렀고, 소설가 박태준은 ‘끽다점’이라고 하였다. 이어령은 이곳을 “배고픔의 피난처요, 슬픔의 피난처”라고 표현했다. 명동은 일본 거류민들을 위해 만들어졌다. 일제는 1906년 비만 오면 진창이던 진고개 일대를 2.4m 깎고 지름 1.5m의 하수관을 매설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하수관거 공사였다. 명동성당 맞은편 옛 윤선도 집터에 자리잡은 한국YWCA연합회는 1922년 창립 후 1967년 지금의 장소로 옮겼으며, 회관은 1999년 철거 후 신축됐다. 애국계몽운동·여성인권운동·사회복지운동·환경운동·평화통일운동·반독재민주운동 등을 전개한 한국 기독교 여성운동의 대명사다. ㈔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팀
  • 죽음 마주하는 전쟁터, 병사들 감성 일깨우다

    죽음 마주하는 전쟁터, 병사들 감성 일깨우다

    극한의 경험/유발 하라리 지음/김희주 옮김/옥당/576쪽/2만 3000원15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전쟁을 해석하는 태도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살핀 책이다. 저자는 참전한 이들의 전쟁 회고록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두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한다. ‘사람이 전쟁에 참여하면 자신과 세상에 대해 무언가 심오한 것을 깨닫는가? 다른 사람에게 없는 권위를 획득하는가?’. 저자는 이를 위해 15세기와 21세기를 오가며 당대 전투병들의 경험담을 비교 분석하고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전쟁 회고록들은 전쟁을 치르며 애국심과 영웅심, 전우애를 깨달았다거나 심한 고통을 겪고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전투병들이 느낀 경험은 놀랍다. “죽음이 가까이 있었지만, 전에는 이토록 완전하게 살아 있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없다”(1993년 모가디슈 전투, 숀 넬슨, 미국)라거나 “전쟁은 모든 사람에게 ‘자신을 벗어날’ 기회를 줬다”(1971년 전사, 헨리 존스, 영국)는 식이다. 이들뿐 아니다. 많은 참전용사들이 배고픔과 추위, 탈진, 부상, 죽음 등에 늘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살인의 전율과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투의 흥분을 느꼈다고 했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군사훈련, 전투 전날 밤, 전투, 부상과 죽을 고비, 살인, 죽음의 목격, 전투 후 등으로 구분해 전투병의 경험담을 전하고 있다. 한데 중세부터 18세기 이전의 전쟁 회고록에는 이런 내용이 없다.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하지 못한다’는 식의 표현도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지식이란 경험이 아닌 성경과 논리의 결합으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됐기 때문이다. 변화가 나타난 것은 1740∼1865년 사이다. 저자는 계몽주의와 감성문화,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전쟁을 어떤 깨달음의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과거와 달리 육체를 정신의 우위에 두는 태도도 영향을 끼쳤다. ‘감수성×경험=지식’이라는 공식이 자리잡게 된 것이다. 20세기 들어 전쟁을 환멸 경험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늘어났다. 이에 따라 현명한 참전용사와 미친 참전용사 이미지가 대립적으로 부각됐다. 전투원들은 ‘극한의 경험’으로 현명해지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는 경험’으로 무감각해지기도 했지만, 어느 쪽이든 전쟁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근현대에 와서야 생긴 전쟁을 이해하는 방식의 변화는 이후 군사 혁신으로 이어졌다. 전쟁 정치, 군사 이론의 원리까지 바꿔놓았다. 책은 그 변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하백의 신부 남주혁, 치느님 앞에서 무너진 ‘물의 신’…“냄새 때문에” 동공지진

    하백의 신부 남주혁, 치느님 앞에서 무너진 ‘물의 신’…“냄새 때문에” 동공지진

    재기 발랄한 설정과 신선한 상상력, 신세경-남주혁의 주종케미로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는 ‘하백의 신부 2017’ 측이 남주혁의 치킨 영접 비하인드 스틸을 공개했다. tvN 월화드라마 신(神)므파탈 로맨스 ‘하백의 신부 2017’(연출 김병수/ 극본 정윤정/ 제작 넘버쓰리픽쳐스) 측은 8일(토) 냄새 투혼까지 불사한 남주혁의 ‘치킨 극한 영접기’ 비하인드컷을 대량 공개했다. ‘하백의 신부 2017’은 인간 세상에 온 물의 신(神) 하백(남주혁 분)과 대대손손 신의 종으로 살 운명으로, 극 현실주의자인 척하는 여의사 소아(신세경 분)의 신므파탈 코믹 판타지 로맨스. 지난 4일(화) 2회에서 공개된 이 장면은 걸신 주걸린에게 기습 키스를 당한 뒤 배고픔을 느끼게 된 하백이 치킨을 눈앞에 두고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는 상황에서 그려졌다. 언제 어디서든 ‘수국의 차기 왕’으로서 품위를 잃지 않은 채 근엄한 신의 위엄을 뽐내던 그가 돌연 닭다리를 손에 들고 동공지진을 일으키는 모습은 시청자들의 배꼽을 저격할 만큼 큰 웃음을 선사했다. 남주혁의 ‘극한 치킨 영접기’는 지난 5월 18일 이촌 한강공원에서 촬영이 진행됐다. 낯선 인간계 음식 중 하필 ‘치느님’으로 불리는 치킨을 영접한 탓일까. 닭다리에 영혼까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남주혁의 표정이 보기만 해도 웃음이 터진다. 실제 촬영장에서도 남주혁은 “냄새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애정 어린 투정을 했지만 막상 슛이 들어가자 드라마 속 오만방자 매력을 마구 뿜어내던 하백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치킨을 향해 불꽃 튀는 레이저 눈빛을 보냈고 스태프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남주혁의 모습에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고. 이에 ‘연기가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표정 같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남주혁의 극한 열연이 현장을 포복절도하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닭다리 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하백의 모습이 안방극장을 박장대소하게 만든 가운데 앞으로 그가 자신에게 닥쳐올 배고픔이라는 시련을 어떻게 극복할지 3회에 대한 관심이 쏠린다. tvN 드라마 ‘하백의 신부 2017’은 원작 만화의 ‘스핀오프’ 버전으로 기획됐다. 이번 드라마는 원작과 달리 현대극으로, 원작 만화의 고전적 판타지와 인물들을 활용해 완전히 새로운 설정과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 로맨틱 코미디다. 매주 월·화 밤 10시 50분 방송. 사진=tvN ‘하백의 신부 2017’ 제공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정글의 법칙’ 이경규, “편하게 놀다 오겠다” 했지만..눈물겨운 수난기

    ‘정글의 법칙’ 이경규, “편하게 놀다 오겠다” 했지만..눈물겨운 수난기

    ‘정글의 법칙’ 이경규의 생존기가 그려진다. SBS ‘정글의 법칙 와일드 뉴질랜드’ 편에 출연 중인 예능 대부 이경규의 정글 생존기가 연일 화제다. 최근 제작진에 따르면 이경규는 정글로 떠나기 전 사전 인터뷰를 통해 “편하게 놀다 오겠다”고 외쳤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정글 입성 첫날부터 산산이 조각났다. 이경규는 장어 사냥에 성공하기 위해 안경에 김까지 서릴 정도로 땀을 흘리며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넘어져 상처가 났다. 급기야 체력이 바닥나 아무 데서나 벌러덩 드러누울 정도로 온몸을 불살랐다. 장어를 기다리는 시간이 계속될수록 이경규는 “장어가 많은데, 사람들이 많으니까 안 되는 거다. VJ들 다 따돌리자”며 극도의 배고픔 앞에서 촬영보다 생존을 우선시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힘겹게 오르막길을 오르던 도중 카메라가 따라오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알아채고서는 “카메라가 왜 없어? 이런 걸 찍어야지! 이런 처참한 광경을!”이라고 버럭 소리쳐 현장이 웃음바다가 됐다고. 한편 이경규의 눈물겨운 정글 수난기는 7일 금요일 밤 10시 방송을 통해 공개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팀 seoulen@seoul.co.kr
  • [In&Out] 4차 산업혁명, 또 한 번의 절박함이 필요하다/송일근 전력연구원 부원장 겸 에너지신산업연구소장

    [In&Out] 4차 산업혁명, 또 한 번의 절박함이 필요하다/송일근 전력연구원 부원장 겸 에너지신산업연구소장

    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을 계기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전 세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다보스 포럼은 4차 산업혁명으로 향후 500만개의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고 의사, 회계사, 변호사 등의 전문 직종마저 위협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도의 정신력이 요구되는 직업이라 할 수 있는 프로바둑기사가 인공지능에 맥없이 무릎을 꿇는 모습은 이런 전망이 결코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우리에게 기회인지 위기인지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기회보다 위기에 더 가깝다. 4차 산업혁명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선진국의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방안에서 비롯됐고, 4차 산업혁명에 요구되는 융합과 소통, 창의성, 인문학적 토양 등은 우리나라보다는 서구에서 더 강조해 온 분야이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배경에는 자국 내 제조업 쇠락을 해결하고자 하는 선진국의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일찍이 ‘산업(Industry) 4.0’을 표방한 독일은 그 핵심적인 이유가 자국 제조업이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 제조업 강국의 위상을 한층 더 강화하는 데 있다.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노동 비중을 획기적으로 낮추고 다품종, 소량생산에 적합한 체계를 갖춤으로써 전 세계에 산재한 독일 공장들을 다시 불러들여 생산과 고용을 높이겠다는 것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노동자들을 설득하면서 밝힌 정책 논리다. 미국은 4차 산업혁명을 전면에 내세워 주창하고 있진 않지만 구글, 테슬라, 아마존 등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을 주도하고 있다. 현재 4차 산업혁명을 국가적 어젠다로 설정하고 전략적인 지원과 육성을 통해 대응하는 나라는 미국, 독일, 일본 등 소수 선진국이다. 그 외의 국가들은 종속적인 위치에서 바라봐야만 할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일고 있다. 한때 제조업 강국이었던 우리나라는 그 틈바구니에서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 전통 제조업은 신흥국에 밀리고, 첨단 제조업은 4차 산업혁명으로 무장한 선진국에 밀리는 데 대한 우려다. 그러나 이런 파도를 잘 헤쳐 나가면 대한민국 산업체계를 혁신할 계기로 만들 수 있다. 전통적으로 강한 우리나라의 ICT기술이 4차 산업혁명의 ‘빌딩 블록’(기본 회로)으로 탈바꿈돼 개별 산업의 융합과 창조적인 사업 모델로 혁신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 분야에서는 그간 ‘스마트 그리드’(양방향 지능형 전력망), ‘마이크로 그리드’(소규모 독립형 전력망)의 경험을 바탕으로 스마트에너지시티, 전기차 등 디지털 에너지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에너지 신사업 모델을 개발하고 이를 통해 에너지 스타트업(창업초기 벤처기업)을 육성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인재육성을 위해서도 창의·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에너지 분야의 4차 산업혁명에 한발 앞서 나가고, 글로벌 시장 개척의 주춧돌이 될 것이다. 올바른 위기의식은 사회 변화의 강한 원동력이 된다. 우리는 이미 경험이 있다. 60여년 전에 많은 서구인들이 대한민국은 발전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지만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단기간에 산업국가로 탈바꿈하는 경이로운 변화를 이뤄냈다. 성공의 원인에는 정부정책, 교육열, 근면성 등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필자는 ‘절박함’이 장대한 변화의 시작이었다고 생각한다. 배고픔을 벗어나고자 하는 국민적 열망이 사회를 똘똘 뭉치게 하면서 혁신의 굳건한 토대가 된 것이다. 정부와 대기업, 스타트업, 사회와 개인 모두 새로운 내일을 위해 ‘또 한 번의 절박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 “우주 에너지면 충분” …일주일에 세 번만 식사

    “우주 에너지면 충분” …일주일에 세 번만 식사

    매일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먹는 즐거움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다. 배고픔이 어떤 느낌인지 잊어버렸다는 한 커플은 9년 동안 일주일에 고작해야 서너 번, 한 줌의 과일이나 야채 수프만 먹고 살아왔다. 영국 데일리메일, 더썬 등은 15일(현지시간) 기수련을 하는 부부 아카히 리카도(36)와 카밀라 카스테로(34)의 독특한 삶을 공개했다. 부부의 평범하지 않은 라이프스타일은 2008년부터 시작됐다. 부부는 남미를 여행하면서 한 친구를 통해 ‘브리더리어니즘’(breatharianism)을 접하게 됐고, 21일 동안만 진행되는 기수련가 과정을 들으면서 음식 없이도 몸과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단 점을 알게 됐다. 그 과정 동안 부부는 처음 일주일 간 공기 이외에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았고, 다음 14일에는 약간의 물과 묽은 주스만 마셨다. 그러면서 사람이 공기와 햇볕, 자신과 우주에 존재하는 에너지만으로도 견딜 수 있음을 깨달았고 생식과 채식, 과일만 섭취하는 식단으로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이제 부부는 친목을 나누어야 할 상황이나 단순히 과일을 맛보고 싶을 때만 음식을 먹는다. 아내 카밀라는 2011년 첫 아이를 임신하고 있던 9개월 동안에도 기수련가의 식단을 적용해 5번만 고형식을 먹었다. 두 번째 임신에서도 과일 몇조각과 야채 수프로 일반 산모의 권장 섭취량보다 훨씬 적은 양을 섭취했다. 호흡을 통해 또는 모든 사물에 존재하는 에너지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는 한 음식 없이도 지낼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제 사랑이 아들에게 충분한 자양분이 될 거란 걸 알았어요”라며 “공복은 제게 이절적인 느낌이었죠. 먹고 싶은 욕구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고 빛에 의존했어요. 임신 혈액 검사에서도 흠잡을 데가 없었고, 결국 건강한 남자 아이를 낳았어요”라고 출산 당시를 설명했다. 현재 음식 대신 햇빛과 공기만으로 연명하는 ‘브리더리어니즘’(breatharianism) 과정을 가르치는 부부. 그들은 음식 없는 생활 방식이 건강을 증진시키고 식료품 비용을 절약해 다른 열정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남편 아키히는 “확실히 우리 생활비가 다른 가족들보다 더 적게 든다. 덕분에 여행이나 가족 답사처럼 정말 중요한 일에 쓸 수 있다. 누구든 기수련가의 생활을 추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혜택을 느낄 수 있다. 음식을 절대 안 먹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자양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인생에서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고 극찬했다. 앞으로도 이 식습관을 지켜 나갈 부부는 의외로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강요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아카히는 “아이들을 바꾸려고 시도하지 않을 거다. 먹고 싶은 것이 무엇이든 먹게 내버려 둘 생각이다. 서로 다른 맛을 경험하고 자라면서 음식과의 건강한 관계를 가지길 원하기 때문이다”라며 이유를 밝혔다. 사진=더썬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이용섭 “고용문제는 페널티 아닌 인센티브로 풀어야”

    이용섭 “고용문제는 페널티 아닌 인센티브로 풀어야”

    이용섭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은 15일 “연구개발(R&D)과 투자 등에 대한 세제 혜택이 일자리를 많이 창출하는 기업에 집중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할 것”이라고 밝혔다.이 부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서울신문 광화문 라운지’ 포럼 초청강연에서 “고용 문제는 페널티(벌칙)가 아니라 인센티브(혜택)로 풀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고용을 하지 않는다고 정부가 페널티를 주는 것은 일자리를 양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는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다”면서 “정부 각 부처가 줄 수 있는 인센티브를 모두 활용해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규제 완화에 대해서는 “신성장 산업과 관련해서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자율적이면서 최소한의 ‘네거티브 시스템’(일부를 제외하고 모두 허용하는 것)으로 갈 것”이라고 했다. 이 부위원장이 특별히 R&D 조세감면 지원 제도를 예로 든 것은 최근 10년간 그 혜택이 대기업에 집중됐다는 판단에서다.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조세특례제한법에 따른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 연구인력개발설비 투자 세액공제, 기술이전 및 기술취득 등에 대한 과세특례, 연구개발특구 첨단기술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등 4가지 조세감면 지원 제도를 통해 대기업이 세액공제 받은 규모는 14조 484억원으로 전체의 64.4%를 차지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7조 7794억원으로 35.6%에 그쳤다. 총 세액공제의 3분의2를 소수 대기업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또 야당이 반대하고 있는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확대에 대해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1.3%는 아니더라도 임기 중에 절반 수준인 12%까지는 늘려 보자는 것으로 결코 무리한 계획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를 만든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불공정, 불평등, 불균형으로 인한 중산층과 서민의 울분을 해소하고 사회를 정의롭게 통합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그는 “국민소득이 1만 5000달러 이하일 때는 ‘배고픔’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소득이 늘어나면 ‘배아픔’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부터 박근혜 정부까지 지난 9년 동안은 성장 일변도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만 초점을 맞췄다”고 평가했다. 어떤 정책도 부작용이 없을 수는 없지만, 현 시기에는 성장보다는 불평등 해소에 초점을 맞춘 정책의 긍정적 효과가 더 크다고 했다. 이 부위원장은 우리 경제를 ‘병(病)주머니 차고 사는 환자’라고 정의했다. 60년 전 극빈국이었던 나라가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하고, 2012년에는 세계 7번째로 ‘20-50클럽’(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명)에 가입하는 등 세계 경제사에 유례없는 성공 스토리를 써 왔지만 실질성장률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서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는 “1970년대에 우리는 10% 넘는 성장을 거듭했지만 최근 2%대로 떨어졌고,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진입한 뒤 11년째 3만 달러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영국은 연평균 성장률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은 1.8%에 불과하지만 연간 일자리 200만개를 만들어 내고 재정 적자를 절반으로 줄였다”고 소개했다. 일자리를 늘려 중산층과 서민의 소득을 증대시킬 수 있는 성장이라야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전체 근로자의 90%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데 이들의 임금수준은 대기업의 60%밖에 안 되며, 특히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대기업 정규직의 37%밖에 안 된다”면서 “모든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도 양극화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양극화 해결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부위원장은 그 근거로 상위 20%(소득 5분위)의 소득이 1% 포인트 증가하면 5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연평균 0.08%씩 감소하게 되고, 반대로 하위 20%(1분위)의 소득이 1% 포인트 증가하면 5년 동안 GDP가 연평균 0.38%씩 증가했다는 내용을 담은 국제통화기금(IMF)의 2015년 보고서를 소개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라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양극화가 심각해진 원인으로 ‘정부 재정의 소득 재분배 기능 약화’를 지목했다. 그는 “나라가 세금을 걷고 돈을 쓰는 것을 의미하는 재정은 사회적 정의 실현의 유일한 수단”이라면서 “정부가 적정한 세금을 걷어서 어렵고 힘든 분들에게 써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재정 재분배 기능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19.6%였던 조세부담률이 원래대로라면 21%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의 ‘부자감세’ 때문에 다시 17.9%까지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또 최근 조세부담률이 약간 올랐지만, 이는 부자감세를 되돌린 것이 아니라 담뱃세 인상 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부위원장은 “공평한 과세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GDP 대비 예산 규모가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낮은 편”이라며 “국방비가 많이 들어가는 분단된 나라에서 복지 비용이 급증하는 상황인데, 조세부담률을 가장 낮은 수준으로 가는 것은 정부가 일을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세금이 많은 것도 문제지만 적은 것도 문제”라면서 “적정 수준으로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부위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J노믹스’를 “일자리 양은 늘리고, 질은 높이고, 격차는 줄이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경제·사회 시스템을 일자리 중심 구조로 개편하고 일자리 창출의 기반을 강화해 이를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그 시작이 이번 일자리 추경”이라고 이 위원장은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공공부문 일자리가 OECD 평균에 못 미치는 부분은 주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 즉 치안과 안전, 소방 등의 분야”라면서 “추경을 통해 늘리는 공무원도 주로 이 분야에 집중돼 있다”고 했다. 또 “지금까지 시장에 맡겼는데 민간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는 상황이니까 시장의 실패를 정부가 보완해야 한다”면서 “경제가 어려울 때 국가는 최후의 고용주로 나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팔레스타인 아기에게 모유 먹인 유대인 간호사

    팔레스타인 아기에게 모유 먹인 유대인 간호사

    모성의 힘은 위대하다. 한 유대인 간호사가 팔레스타인 중환자의 아이를 품에 안고 자신의 젖을 먹이면서 이를 증명해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8일(현지시간) 자동차 추돌사고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엄마를 대신해 모유를 먹인 간호사의 선행이 전 세계인의 가슴을 훈훈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지난 주 이스라엘 중부 엔 케럼에서 장갑차 충돌사고가 일어나, 한 팔레스타인 가족이 병원에 실려왔다. 가족 중 유일하게 의식을 되찾은 야만 아부 라밀라는 배고픔을 호소하는 듯 세차게 울어댔다. 간호사 울라 오스트로브스키 잭은 태어난지 9개월 된 야만을 7시간 동안 끌어안고 보살폈다. 틈틈이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려 했으나, 야만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별다른 방도가 없자 오스트로브스키는 자신의 모유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야만의 친척들이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유대인이 팔레스타인 사내 아이에게 모유수유를 하고 있단 사실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하지만 나는 어떤 엄마라도 나처럼 할 것이라 말했다”며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이어 “야만에게 다섯 차례 모유를 주었고, 그의 고모가 나를 껴안으며 고맙다고 말했다”고도 덧붙였다. 이후 오스트로브스키는 온라인을 통해 산모의 도움을 요청했고, 2시간 만에 아이에게 모유를 먹이겠다는 수천 건의 제의가 쏟아져 들어왔다.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 도시에서 야만에게 모유수유를 하러 기꺼이 오겠다는 여성들도 있었다. 이는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사이의 오랜 갈등과 투쟁의 역사가 굶주리고 있던 한 아이 앞에서 무력해진 셈이자, 모성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결국 야만의 아빠는 사망했고 엄마는 여전히 위독한 상태라서 야만이 곧 퇴원하면 고모가 그를 돌볼 예정이다. 사진=데일리메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한끼줍쇼 송민호 “몸무게 90kg 찍었다” 믿기지 않는 과거

    한끼줍쇼 송민호 “몸무게 90kg 찍었다” 믿기지 않는 과거

    송민호가 의외의 과거사를 밝혔다. 7일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에는 개그맨 정형돈과 위너의 송민호가 밥 동무로 출연한다. 두 사람은 이경규, 강호동 규동형제와 함께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동탄동에서 한 끼에 도전한다. 최근 진행된 ‘한끼줍쇼’ 녹화에서 정형돈과 송민호는 등장부터 랩과 함께 ‘스웩’ 넘치는 특유의 동작으로 규동형제의 눈에 띄었다. 예상치 못한 둘의 흥 넘치는 공연에 이제껏 오프닝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던 이경규마저 자리에서 일어나 신들린 춤사위를 선보였다. 규동형제는 전혀 연결고리가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조합의 이유를 궁금해 했다. 이러한 반응에 송민호는 과거 사진을 공개하며 “과거 형돈이 형과 닮았었다”라고 밝혀 놀라움을 자아냈다. 이어서 “(몸무게) 90을 찍었던 적도 있다”라는 말에 이경규는 “아이큐?”라고 되물어 송민호를 당황하게 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벨 누르기가 시작되자 정형돈과 송민호는 더위와 배고픔에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특히 정형돈은 배고픔이 극에 달하자 ‘한끼줍쇼’의 규칙을 파괴하며 “한 끼 더 드시면 안돼요?”라고 막무가내인 모습으로 규동형제를 부끄럽게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정형돈과 송민호의 닮은꼴 호흡이 폭발하는 현장은 7일 수요일 밤 10시 50분에 방송되는 JTBC ‘한끼줍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두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송기인 신부…“문재인, 노무현보다 실수 적을 것”

    두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 송기인 신부…“문재인, 노무현보다 실수 적을 것”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신적 지주’로 불리는 송기인(79) 신부가 “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보다 실수를 적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송 신부는 1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은 들어주는 힘이 있고 생각을 깊이 하기 때문에 부딪히는 일이 적을 것 같다. 들어주는 아량이 있다”면서 “노 전 대통령은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실력이 있으니깐 다른 사람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는 어떤 일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결정해 버렸다”고 밝혔다.송 신부는 “적폐 청산 없는 화합은 거짓말 화합”이라며 “아무리 아파도 썩은 것은 도려내야지, 감싼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며 적폐 청산을 강조했다. 송 신부는 2005년 12월 사목 일선에서 은퇴한 후 경남 밀양시 삼랑진읍 용전마을에 정착했다. 1972년 12월 사제 서품을 받은 송 신부는 부산 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다음은 송 신부와 일문일답. -건강은 어떠신지.→괜찮다.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후 이곳에 정착한 지 12∼13년 됐다. -문 대통령이 재수 끝에 당선됐는데.→이번엔 문제가 없을 거라고 봤다.대세였다. 촛불이 밀어줬다. 촛불이 아니면 선거가 미뤄졌을 것 아니냐. 워낙 국내외 상황이 어려운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잘못해도 너무 잘못하니깐 나선 것 아닌가. -노 전 대통령, 문 대통령과 인연은 언제부터인지.→문 대통령이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반정부시위 전력으로 판사 임용이 안됐다. 무일푼으로 변호사 길로 들어섰는데 그때 먼저 개업한 노 전 대통령을 소개했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만났지.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였어.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연행되면 두 사람에게 (변론을) 부탁하곤 했다. -문 대통령 가족과 인연은.→문 대통령 모친과 아주 오래전부터 친하다. 부산 신선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모친이 성당 사목위원회 부회장을 맡았다. 굉장히 열심히 활동했다. -참여정부 이후 10여년 만에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는데.→이미 문 대통령이 국정을 운영해본 경험도 있고 10년간 다른 정부가 하는 걸 보고 공부를 많이 했을 것이다. 준비를 많이 했고 준비가 돼 있다고 본다. -이낙연 총리 후보자 등 새 정부 첫 인선을 어떻게 보나.→다 아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대체로 진보적으로 꾸리는 것 같다. 진보적인 것이 꼭 좋은 것만 아니고 발목을 잡힐 우려도 있다. 국회가 딴지를 걸 수도 있으니 참작해야 한다. -많은 국민들이 새 정부에 적폐 청산을 요구하는 것 같은데.→적폐를 청산하지 않는 화합은 거짓말 화합이다. 아무리 아파도 썩은 것은 도려내야지, 썩은 걸 감싼다고 낫는 것이 아니다. 적폐를 청산하고 화합을 해야지, 적폐를 포함해서 화합하자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참여정부 때 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안 했다고 보나.→청산이 안됐다. 하려고 하다 말았다. -참여정부 공과는.→참여정부만큼 큰 변혁을 가져온 정권은 없었다. 특히 검찰을 독립시켜줬다. 각각 자기 할 일만 잘하면 된다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 아니냐. 당시 그런 걸 놓고 보수언론이 딴지를 걸고 발목을 잡았다. 그때 보수언론을 비롯해 야당, 보수 쪽에서 협조했더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한 단계 올라갔다.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장·단점은.→문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보다 실수를 적게 할 거다. 그는 들어주는 힘이 있고 생각을 깊이 하기 때문에 부딪히는 일이 적을 것 같다. 들어주는 아량이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하고 실력이 있으니깐 다른 사람 의견을 대수롭지 않게 봤다. 그는 어떤 일이 있으면 자기가 먼저 결정해 버렸다. -문재인 정부에 국민들 기대가 큰 것 같은데.→국민이 신뢰하고 희망 섞인 기대를 하는 것 같다. 앞서 국정 운영 경험과 그동안 쌓아온 공부가 있으니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새 정부 인사에 대한 생각은.→탕평, 탕평하는데 그 지역 균형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실제로 해당 분야에 우리나라에서 실력이 가장 우수하냐를 봐야 한다. 가장 좋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북관계가 여전히 막혀 있는데.→국민이 생각을 바꿔야 한다. 북한 주민의 배고픔을 덜어주려는 것이다. 민간 차원에서라도 지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대통령이 지금 경색된 남북관계 물꼬를 열자고 하면 보수 쪽에서 야단일 거다. 먼저 사람이 사람 도와주는 것,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는 것으로 봐야 한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당부는.→시간이 길지 않다. 5년이 금방 간다. 쉬지 말고 부지런히 계속 일해야 한다. 개혁을 멈추거나 머뭇거리지 말아야 한다. -취임한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열심히 하는 것 같은가.→우선은 그렇다(웃음). 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딴지를 거는 세력이 많을 거다. 보수언론이 특히 그럴 것 같다. 이런 세력에 발목이 잡힐 우려도 상존한다고 본다. 노 전 대통령도 이런 부분에 발목을 잡힌 것이 제일 크게 작용했다. -곁에서 개인적으로 본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사람인가.→아주 강하다. 운동을 잘 하지 않느냐. 특전사 출신으로 등산도 좋아하지만, 스쿠버다이빙광이다. 가족 4명이 다 잘한다. 좀 안됐다 싶은 게, 청와대 가서 이제 하고 싶어서 어떻게 참을지(웃음). 어쨌든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는 것도 박력 있고 두려움 없이 잘했다. 축구도 잘한다. 운동에 만능이다. -문 대통령은 골프를 하는가.→못한다. 골프채는 있지만 너무 바쁘고 돈도 들고 하니깐 안 하더라. 하지만 난 언젠가 그것이 핸디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골프를 할 줄 알아야 다른 나라 수장이 골프를 제의해도 응할 수 있는데 할 줄 모르면 귀한 시간을 놓칠 수 있다. 웃으면서 언제가 후회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통화했나.→당선 후 한번 전화가 왔다. 그런데 그냥 끊었다. 내가 ‘바쁘니 끊으라’고 했다. 대통령이 전화할 시간이 있겠느냐. 우리는 서로 아는 사람인데 뭐하려고 전화를 하느냐. 그냥 예의상 전화를 했겠지만, 그냥 ‘끊고 일하라’고 했다. 김정숙 여사는 전화가 왔길래 그냥 격려만 해줬다. -문 대통령 주변 가족 가운데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은 없나.→없다고 본다. 그 집에 식구는 그럴 사람은 없다. 남동생은 오래전부터 멀리 있으면서 배를 탔고 여동생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서 겨를이 없다. 아이들도 다들 각자 삶에 충실한 거로 안다. -오는 23일 노 전 대통령 추도식에 참석하나.→지난 9일 지인들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아 참배하고 왔다. 이번 추도식에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더더욱 안 간다. 정치인들 많이 갈 텐데 나까지 가면 더 복잡하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