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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명의 窓] 하일서정/이재무 시인

    [생명의 窓] 하일서정/이재무 시인

    여름 숲길엔 이 나무 저 나무에서 흘러나온 그늘이 합수하여 출렁거린다. 걷다가 마음의 조롱박으로 그늘을 퍼서 마시고 세안을 한다. 우람한 그늘의 등과 어깨에 기대거나 혹은 그늘을 홑이불로 끌어다 덮고 누워 내 생을 다녀간 이들에게 나는 과연 슬픔이었을까, 기쁨이었을까, 그늘이었을까를 떠올려 본다. 또 서늘한 그늘 서너 바가지 푹 퍼서 등에 끼얹으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젖어 본다. 이래저래 여름은 정서의 키가 웃자라는 계절이다. 그늘이 늘 풋풋하고 싱싱한 것은 날마다 새로이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른 새벽이나 아침에 태어난 그늘은 하루 종일 열심히 농사를 짓다가 밤과 더불어 어둠이 오면 한 점 미련도 없이 사라진다. 그늘처럼 날마다 새로이 태어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그늘이 새삼 위대해 보인다. 여름은 부지런한 계절이다. 일 년 중 해가 가장 많이 비추는 하지 즈음에는 밤꽃 내가 진동하고 호박 오이 넝쿨이 기세 좋게 뻗어 나가고 생강 촉, 토란 싹이 올라오고 풋고추, 풋가지가 주렁주렁 열린다. 이렇게 분주한 여름에는 사람도 덩달아 바빠지기 마련이어서 감자를 캐야 하고 장마 뒤에 풀의 차지가 되지 않도록 미리미리 밭마다 김을 매 주어야 한다. 비 올 때를 기다려 들깨 모를 내고 고구마 순을 묻어야 한다. 여름은 고요가 단단해지는 계절이다. 여름 중에서도 고요의 힘이 가장 세지는 때는 빨랫줄 바지랑대 그림자의 키가 작아지는, 정오를 갓 지난 오후 한 시에서 두 시 사이다. 이때에는 한동안 각축하듯 울어 대던 매미도 울음을 뚝 그치고 바깥에서 연애질하느라 분주하던 누렁이들도 마루 밑으로 기어들어가 그늘을 깔고 누워 오수를 즐긴다. 마당 텃밭 들길 산길 논길 밭길 들판 신작로 가릴 것 없이 숫돌 다녀온 왜낫처럼 날 선 햇살이 따갑게 내려, 꽂히는 바람에 사람의 경우도 축축한 생각은 금세 휘발되고 백치의 순간에 이르게 된다. 일체의 사고가 정지된 시간대에 고요만이 다 익은 살구씨처럼 단단해지는 것이다. 여름은 천렵의 계절이다. 천렵은 봄부터 가을까지 절기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이지만 그래도 수량이 풍부한 여름철에 해야 제 맛이 난다. 탁족(濯足)과 함께하는 천렵은 그 자체로 하나의 피서법이다. 천렵에는 여러 방식이 있지만 그중 나는 된장을 풀어 잡는 법을 선호한다. 민물고기들은 된장을 좋아한다. 어릴 적 나는 민물새우 천렵을 즐겼다. 악동들과 함께 소쿠리에 된장 주머니를 달아 놓고 저수지 가생이에 담가 놓고는 미역을 즐기다 해거름 출출해지면 소쿠리를 건져 올린다. 된장 주머니 둘레에 새까맣게 민물새우 떼가 매달려 있다. 그걸 주전자에 담는다. 제법 묵직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남의 집 담장 위 더운 땀 흘리는 앳된 애호박 푸른 웃음 꼭지 비틀어 딴 후 사립에 들어선다. 막 밭일 마치고 돌아와 뜰방에서 몸에 묻은 흙먼지를 면 수건으로 터는 엄니는, 한 손에 든 주전자와 또 한 손에 든 소쿠리 속 애호박을 바라보다가 지청구 한마디를 빼지 않는다. “저런 호로 자식을 봤나? 간뎅이가 부어도 유만부동이지 남의 농사 집어 오면 워찍한더냐, 워찍혀!” 그런데도 엄니의 얼굴 표정은 켜 놓은 박 속 같다. 아들은 눈치가 빠르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서리는 계속된다. 된장 밝히다 죽은 새우는 애호박과 함께 된장국으로 끓여져 식구들 입맛을 돋우곤 했다. 논두렁을 기어나온 개구리 울음들이 뽕나무 가지마다에 주렁주렁 열렸고, 달은 우물 옆 팽나무 가지가 휘청하도록 크게 열렸다. 여름의 서정은 넓고 우묵하다.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7] ‘100세 시대’의 겉과 속

    조선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습니다. 연전에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가 산출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절대 지존이라는 왕 27명의 평균 수명이 46.1세에 불과했고, 이들 중에 회갑연을 치른 사람이 20%도 안 됐답니다. 용상에 올라 잘 먹고, 잘 입고, 온갖 호사를 누렸을 왕의 수명이 이 정도였으니 백성들이야 말할 것도 없었겠지요. 황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백성들의 평균 수명은 고작 35세 이하였습니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그 시대의 실상이었지요. 그러니 누군가가 태어나 60년을 죽지 않고 살아남으면 거하게 회갑연을 열어 장수를 축하하고, 더 오래 살라고 축원하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요즘처럼 환갑이 기본이어서 회갑연조차 의미 없다고 피하는 세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100세 시대’는 꿈이 아니다 그 조선시대의 끝자락에서 세자면 불과 100여년 정도 밖에 지나지 않은 지금은 어떨까요. 1970년대의 우리 국민 평균 수명은 61.9세였습니다. 이만 해도 조선시대와 견주면 거의 2배에 가까운 수명 연장을 이룬 것입니다. 이후 1980년대에는 65.7세, 1990년대에 드디어 70대에 진입해 71.3세를 기록하더니 2000년대에 76.0세, 2010년대에 80.8세, 2012년에는 이보다 더 늘어난 81.4세를 기록합니다. 가장 최근 기록인 81.4세를 기준으로 보면 조선시대 왕의 수명보다 두 배 가까이 오래 살게 된 것이지요. 단순히 수명 만을 기준으로 보자면 정말 좋은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무엇이 좋은 일인지는 주관적이어서 한 마디로 규정할 수 없지만, 한사코 죽음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 인간의 보편적인 의지이고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수명이 늘어나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지요. 예전에는 입에 발린 말로 백 살까지 살라고 덕담이라도 건네면 “벽에 똥칠 해가면서 뭐하러…”하는 대답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백 살을 그저 기대나 할 수밖에 없는 ‘꿈의 나이’로 쳤던 것이지요. 그 꿈에 도달하기 직전의 나이인 아흔 아홉살을 백수(白壽)라고 불렀는데, 100을 뜻하는 ‘百’자에서 ‘一’을 빼면 ‘白’ 자가 되는 데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 백수를 세속에서는 선계(仙界)의 경계 쯤으로 봤다니, 요즘 모두가 현실로 받아들이는 ‘100세 시대’가 얼마나 대단한 변화이고, 발전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00세’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통계로 단순화된 수명 연장의 이면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수명이 늘어난 것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합니다. 우선, 잘 먹고 사는 덕분에 영양 상태가 좋아진 탓이 크겠지요. 인체는 무한히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유기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밥을 먹고도 누구는 10의 생산성을 보이고, 또 누구는 100의 생산성을 발휘합니다. 이 생산성은 기본적 필요조건인 ‘먹음’에 기초합니다. 생산성을 고도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항상성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는 몸이 그런 필요에 부응할 만큼 먹어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 ‘먹음’의 문제가 충족되지 않으면 ‘잘 먹고 잘 생산한다’는 선순환의 연결고리가 견고하지 못해 생산성에 균열이 생길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런 만큼 수명 연장의 일차적인 요인은 치명적인 영양 결핍이 없도록 잘 먹고 산 결과임을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다음 요인으로는 위생상태의 개선을 들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 인간의 수명을 결정적으로 위협한 것은 세균 감염과 이로 인한 질병, 그리고 기생충이었습니다. 실제로 콜레라나 이질, 장티푸스 등이 해마다 창궐해 수많은 사람들을 요절냈지만 사회적으로 이를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을 갖지 못했습니다. 수인성 전염병은 물이 전파 경로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물질로 작용하지만, 그래서 먹는 물만 잘 관리해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지만, 당시에는 오염된 물이 문제라는 생각조차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갔지요. 기생충도 그렇습니다. 요즘처럼 사회적 위생관이 확립돼 기생충의 생리가 낱낱이 드러나 있고, 보건 분야에서 감염을 차단할 수 있는 다양한 필터가 작동하며, 효과적인 구충제가 개발돼 있는 세상과 그 때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기생충의 알과 성충이 바글대는 인분을 밭에 뿌리고 맨발로 들어가 밭일을 해댔으며, 회와 쌈 등 생식문화가 보편화돼 기생충 감염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한 상황이었다고 봐도 틀리지 않지요. 생산성을 극단적으로 위축시킨 절대 왕정 체제에다 지배계급인 양반과 관료들의 수탈, ‘사농공상’으로 집약되는 계층 인식에서 보듯 농업이나 상공업을 통한 사회적 부의 축적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였습니다. 이렇듯 총체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속에서 질병과 기생충을 경계하고, 차단할 인식조차 갖지 못했고, 당장 먹고 사는 일이 화급한 터에 위생을 따질 엄두 조차 내기 어려웠던 게 그 때의 실상이었던 것이지요. 다음으로 꼽는 요인은 의료의 발전입니다. 누가 뭐래도 인간의 수명을 지금 수준으로 연장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의학과 의료의 기여라고 봐야 합니다. 윤리나 상식을 배제한 채 단순히 의료의 관점에서만 말하자면 이미 우리 국민의 평균 수명은 100세에 거의 도달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생명체는 죽어야 비로소 죽는 것인데, 현재의 의료 수준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지는 못 해도 절명에는 이르지 않도록 하는 많은 장치를 갖고 있으며, 더러는 이런 장치를 의료수입 확대의 방편으로 악용하기도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입니다. 말이야 인륜과 윤리성을 앞세우지만 의료인들이 의료적으로 도저히 회생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환자들이 지금도 연명치료에 의존해 아예 기대해서는 안 되는 가능성에 기대어 돈을 쏟아붓는 것이지요. ●‘100세’의 이면 의료인들은 이렇게 반문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그런 환자를 포기해야 하느냐?”거나 “그런 환자에게 아무런 의료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 옳다는 것이냐?”고요. 일리가 있는 문제 제기입니다. 당연히 모든 환자는 천부적으로 ‘치료 받을 권리’를 갖습니다. 그러나 치료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 행해지는 것입니다. 의료적으로 단 1%의 가능성도 기대할 수 없는 환자를 끌고 다니며 온갖 비싼 검사를 다 받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일단 최선을 다해 봅시다”라거나 “결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친절이나 열의가 아니라 기만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기만적이지 않은 유일한 처방은 “이미 의료적으로는 회생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원한다면 다른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저의 견해입니다. 이제 선택은 보호자의 몫입니다” 정도일 것입니다. 일부 의사들은 이 경계 지점에서 모호하고 불명확하게 말하곤 합니다. 가능성이 없음에도 “어쩌면…”이라고 일말의 미련을 갖도록 하는가 하면 이미 결과가 뻔한데 “좀 더 지켜보자”는 식이지요. 이런 경우 가족들은 대부분 의사의 판단을 따른다는 일반적 통념이 그들에게서는 돈으로 환산되는 일이 지금도 비일비재한 것이 바로 의료계이고, 병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의료 발전과 의료인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인간의 생명은 놀랄 만큼 길게 연장되기에 이르렀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생명 연장에 따른 삶의 질이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는데, 의료적인 수명만 기형적으로 연장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삶의 질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보장책이 없는 사회에서 수명만 연장하는 것은 축복이라기 보다 재앙에 가깝습니다. 국가는 노령화에 대한 비용을 부담하려 하지 않는데, 자꾸 수명이 연장되니 노후에 걸맞는 개개인의 삶은 그야말로 진창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꼴이 되기 십상인 것이지요. ●‘돈’이 항상 삶의 질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흔히 듣는 ‘고독사’는 이런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을 여과없이 보여줍니다. 전염병도, 기생충도 없고, 먹고 마시는 일에 별다른 구속이나 제약도 없고, 사소한 고통만 느껴도 병원을 찾는 현실, 그러나 일단 나이가 들어 일터에서 배제되고, 그래서 안정적인 수입원이 사라지면 조막만 한 몸뚱이 하나 의탁할 곳이 없어 습한 곳을 전전해야 하는 또다른 현실이 바로 오늘날 보편적인 한국인의 삶의 겉과 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처자식 먹여 살리느라 허덕이며 내일이 없는 삶을 산 데다, 약삭 빠르지도 못해 돈도 못 불린 그렇고 그런 사람들, 겨우 모은 재산을 주식이네, 펀드네 다 털어 부자들에게 고스란히 상납하고 난 뒤 그들의 삶은 시쳇말로 허무맹랑해지고 맙니다. 물신주의가 아니라 몸을 움직여 돈을 벌기가 어려운 노후에는 돈이 좀 있어야 복락을 향유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이 노후에 들면 더 많은 실효적 상징성을 갖습니다. 아무리 고고한 삶을 살았어도 아침 저녁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라면 고고함이 깃들 자리에 비루함이 자리잡게 마련이고, 그런 비루함이 곤궁을 넘어 가족 해체와 자기 부정으로 이어진다면 그 삶을 누가 잘 살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노후의 행복이라든가 복지도 결국은 돈의 문제로 귀결되는 게 사실이니까요. 노인이란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이라는 뜻인데, 이 말에는 ‘건강이 취약하다’, ‘경제적 자율권을 행사하지 못하거나 풍족하지 않다’,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의탁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부담이 된다’는 등 많은 부정적 의미를 함께 포괄하고 있습니다. 순전히 한국적 해석이지만, 이 같은 의미를 되짚어 보면 적어도 한국에서 나이 든다는 사실이 축복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그 축복이 아닌 점이 약점이 됩니다. 정부가 시행하는 사회적 복지의 수준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보장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산다면 늘어난 수명이 여락을 즐기는 시간이 아니라 비탄과 무기력의 시간이기 쉽고, 그렇다면 수명 연장은 복지나 의료의 개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도 균형을 잡지 못하는 외발로 거친 강을 건너는 것 만큼이나 위험한 수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불여사’의 삶은 지금, 우리의 문제입니다. 토대가 견고하지 못한 장수의 시대, 수많은 노인성 질병과 취약한 신체 조건, 의식주의 곤궁에 노출된 많은 노인들이 거리를 배회하며 만들어 내는 음울한 풍경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현대 복지국가의 허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두 죽을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자살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죄악이라는 의미 없는 계몽 탓이기도 하고,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근거없는 믿음 때문이기도 할텐데, 어떻든 “여러분의 노후가 늘어난 수명만큼 늘어나는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아무도 자신있게 말하지 못하는 세상인 것은 사실입니다. ●장수가 축복인 사회를 위해 확실히 노인은 사회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류임에 틀림없습니다. 생산성의 향상에만 모든 역량을 집중하는 산업사회에 어울리는 부류가 아니지요. 게다가 산업사회에서 작동하는 국가의 기능 역시 그런 산업사회에 걸맞는 체제를 갖출 수밖에 없는데,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자조는 여기에서 배태됩니다. 모든 산업사회는 이윤의 극대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국가도 그런 가치 추구에 편승하는 것이 상식인데, 그렇다보니 산업사회가 가진 가장 심각한 인간 소외, 노인 소외의 문제가 우리에게서 너무나 소홀하게 다뤄지는 것이고, 여기에서 발아된 각성이 없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의 우리 사회에서는 주목할만 한 어젠더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요. 현실의 인간 소외는 연령과 성별, 계층을 가리지 않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일, 즉 예전의 농경사회에서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핵심 가치였던 인간 존중의 가치를 되살리자고 말하는 것은 시대 역행의 발상일 뿐입니다. 이래서는 오래 산다는 것이 자랑할 일도, 기뻐할 일도 아닙니다. 요양병원의 한 의사가 제게 이런 얘기를 들려주더군요. “나이가 많으면 병도 많아지는 게 당연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픈 노인들’의 문제가 처음부터 선순환이 아니라 악순환에 빠져 어디에서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난감하다”고요.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나이 들어 이런 저런 질병에 노출된 노인들 중에 더러는 자식들이 부양할 형편이 못돼 요양병원에 맡겨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차 가족들의 관심이 멀어지다가, 종국에는 아예 경제적인 지원을 끊어버리기 일쑤라는 겁니다. 이런 설명에 딱 어울리는 환자가 한 명 있었답니다. 이 환자는 초기 치매에 중증 노인성 질환을 가져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는데, 어느 순간 이 환자를 부양해 온 외아들로부터 연락이 끊기고 말았답니다. 수소문 끝에 겨우 연락이 닿았는데, 사업에 실패해 집까지 날리고, 가족들과도 따로 사는 형편이라 어쩔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하더랍니다. 흙 파서 병원 하는 것도 아닌데, 그 의사도 난감했겠지요. 그래서 시한을 정해 두고 환자를 집으로 모셔가도록 안내했는데, 그 후로는 아예 연락도 되지 않더랍니다. 자식 키우느라 ‘몰빵’을 하는 바람에 돈도 못 모았지, 가족은 벌써 해체돼 자식도 같이 살려 하지 않지, 남은 것은 빈궁과 병 뿐이어서 혼잣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데, 정부의 지원이라는 것도 이래 저래 꼬이기만 하는 빛 좋은 개살구이니 악순환이랄 밖에요. ●‘복지 망국’이 아니라 ‘복지 부국’을 이뤄야 그렇다고 정부더러 ‘복지 망국’으로 가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구두선으로 복지를 말하지 말고 실질적인 복지를 실행하라고 주문하기를 주저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 땅의 선각자들이 “나라는 백성의 안온한 삶을 위해 ‘이용’ ‘후생’에 힘싸야 한다”고 외쳤던 게 벌써 200년쯤 된 얘기입니다. 그 이용(利用)은 공자왈 맹자왈만 하지 말고 제도와 물산과 이기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활용하지는 뜻이겠고, 후생(厚生)은 그렇게 해서 백성들 삶을 요족하게 만들어 주자는 의미입니다. 그 후생의 가치가 바로 오늘날의 복지 개념과 일치합니다. 북학파였으며, 실학의 씨를 뿌린 박제가의 말을 듣지요. “이용과 후생은 둘 중 하나라도 갖추어지지 않으면 정덕(正德)을 해친다. 공자도 백성을 넉넉하게 한 다음에 가르치라고 했고, 관중도 의식주가 갖춰져야 예절을 안다고 하지 않았는가. 지금 백성들의 삶이 날로 곤궁해지고, 나라 살림은 궁핍을 면하지 못하고 있는데, 어찌하여 사대부들은 팔짱만 낀 채 백성들을 외면하는 것인가.” 박제가의 이 질타에서 겉돌 뿐만 아니라 선거용으로 선심 쓰듯 주어지는 우리의 복지를 떠올리는 건 저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고도의 산업사회란 ‘이용’이 왕성하게 번창한 사회일 터인데, 그런 점에서 우리는 확실히 많은 것을 이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 이용과 맞물려 가야 할 후생은 답도 없고, 길도 없습니다. 국부는 크게 팽창했는데 여전히 가난한 국민들은 차고 넘칩니다. 소수가 부를 독점하는 관행이 용인되는 수준을 넘어 은밀하게 장려되고 권장되는 사회, 그래서 사회정의의 큰 축인 분배의 질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에 ‘화염지옥이라도 이만 하겠느냐’는 절망의 대꾸가 터져 나올 법 하지요. 누구에게나 오랜 산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누구든 필요하면 의료와 복지의 수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있지요. ‘한국인은 병원 안에 있는 사람과 병원 밖에 있는 사람, 치료 받고 있는 사람과 치료 받을 사람으로 나뉜다’고요. 이에 걸맞게 병원도 많고 의료의 질도 수준급입니다. 그러나 그 수혜가 최소한에 머물고 있어서 문제입니다. 살만 한 사람이라면 까짓 것 신경 쓸 필요도 없을 터이지만, 나이는 들었지, 벌어놓은 것도, 벌 일도 없지, 남은 건 중증 질환 뿐인 곤궁한 노약자들에게는 ‘새발의 피’일 수도 있고, 어쩌면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복지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 “오래 살아서 좋은 세상”이라고 하려면 이에 걸맞는 삶의 질이 갖춰져야 한다는 점, 이 삶의 질을 오로지 개개인의 노력만으로 개선할 수는 없다는 점, 그러니 국가의 몫과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국가가 그렇게 제 몫을 다 할 때라야 겉과 속이 딱 맞아 떨어지는 ‘100세 시대’가 될 테니까요. 심재억 기자 jeshim@seoul.co.kr
  •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죽음 생각했다” 무슨 병인가 보니 제2의 에이즈 ‘경악’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죽음 생각했다” 무슨 병인가 보니 제2의 에이즈 ‘경악’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죽는구나 생각했다” 무슨 병인가 보니 제2의 에이즈 ‘경악’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팝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라임병 투병을 고백해 화제다. 에이브릴 라빈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라임병 투병기를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5개월 동안 침상에 누워있었던 에이브릴 라빈은 “먹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또 움직일 수도 없어서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LA에 있었는데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실제 모든 진단 전문가와 유명의사들이 왔었다. 그들은 컴퓨터를 꺼내 이리저리 치고 보더니 나보고 ‘만성 피로 증후군’이라고 했다. 그리고 ‘침대 밖으로 나가라, 피아노도 좀 치고? 우울증 걸렸나?’라고 했다”고 전했다. 이어 에이브릴 라빈은 “이게 의사들이 라임병 걸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정말 멍청했다”고 토로했다.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은 항생제를 맞으며 병마와 싸우기 위해 휴지기를 가졌다. 에이브릴 라빈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병석에 누워 팬들이 보내준 응원 비디오를 봤는데 그들의 사랑에 눈물이 나왔다. 난 팬들과 같이 투병한 거다. 이제 난 제2의 생을 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정말 흥분된다”고 전했다. 라임병 투병 소식이 알려지며 응원이 쏟아지자 에이브릴 라빈은 자신의 트위터에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네요. (회복을 바라는) 여러분의 기원과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해요. 저는 느낄 수 있어요. 고마워요”라는 글을 올렸다. 한편 라임병은 진드기가 옮기는 세균성 감염증으로 제2의 에이즈(AIDS) 라고도 불린다. 피곤감, 근골격계 통증, 신경계 증상이 수 년간 지속될 수 있으며 드물게는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12월에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경우를 보면 북중미지역을 여행하거나, 밭일, 등산 등을 통해 발병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9년 37명, 2010년 62명, 2011년 40명, 2012년 35명, 2013년 34명이 라임병으로 치료 받았다. 사진=방송 캡처(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의사들 정말 멍청했다” 제2의 에이즈..진드기가 옮기는 병?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의사들 정말 멍청했다” 제2의 에이즈..진드기가 옮기는 병?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의사들 정말 멍청했다” 제2의 에이즈..진드기가 옮기는 병?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제2의 에이즈? “의사들 정말 멍청했다” 뭐라고 했기에? 유명 팝 가수 에이브릴 라빈이 라임병 투병 사실을 눈물로 고백했다. 에이브릴 라빈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미국 ABC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해 라임병 투병기를 털어놨다. 5개월 동안 침상에 누워있었던 에이브릴 라빈은 “먹을 수도 없고 말할 수도, 또 움직일 수도 없어서 ‘이제 죽는구나’라고 생각했다. LA에 있었는데 내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 실제 모든 진단 전문가와 유명의사들이 왔었다. 그들은 컴퓨터를 꺼내 이리저리 치고 보더니 나보고 ‘만성 피로 증후군’이라고 했다. 그리고 ‘침대 밖으로 나가라, 피아노도 좀 치고. 우울증 걸렸나?’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에이브릴 라빈은 “이게 의사들이 라임병 걸린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정말 멍청했다”고 덧붙였다. 에이브릴 라빈은 항생제를 맞으며 라임병과 싸우기 위해 휴지기를 가졌다. 에이브릴 라빈은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 병석에 누워 팬들이 보내준 응원 비디오를 봤는데 그들의 사랑에 눈물이 나왔다. 난 팬들과 같이 투병한 거다. 이제 난 제2의 생을 살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 정말 흥분된다”고 전했다. 에이브릴 라빈의 고백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라임병은 진드기가 옮기는 세균성 감염증으로 제2의 에이즈(AIDS) 라고도 불린다. 피곤감, 근골격계 통증, 신경계 증상이 수 년간 지속될 수 있으며 드물게는 사망에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 12월에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했다. 우리나라 경우를 보면 북중미지역을 여행하거나, 밭일, 등산 등을 통해 발병하는 사례가 많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09년 37명, 2010년 62명, 2011년 40명, 2012년 35명, 2013년 34명이 라임병으로 치료 받았다. 네티즌들은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안타깝다”,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처음 들어봤네”, “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꼭 완치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방송 캡처(라임병 에이브릴 라빈)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농민 품삯 고민 줄여준 ‘농기계 에디슨’

    농민 품삯 고민 줄여준 ‘농기계 에디슨’

    “농촌에 가면 노인과 부녀자만 많고 힘을 쓸 청년은 없어서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소형 농기계를 개발해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의 강태경(51) 농업연구사는 농진청에서 ‘농기계 에디슨’으로 통한다. 1992년 입사해 22년 동안 20여종의 농기계를 개발했다. 지난달에는 농업용 무인헬리콥터를 개발해 대통령 표창(과학기술진흥유공)도 받았다. 무인헬리콥터로 논에 볍씨와 농약을 뿌리는 기술이다. 전국에 230대가 보급돼 전체 논 면적의 20%가량에 무인헬리콥터로 농약을 뿌린다. 농민들은 김매기에 드는 비싼 품삯을 아낄 수 있다. 농약 사용량이 30%나 줄어서 농약 값 부담도 줄었다. 강 연구사는 “미국에서는 넓은 논에 경비행기로 볍씨와 농약을 뿌리지만 산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무인헬리콥터를 써야 한다”면서 “그동안 일본에서 무인헬리콥터를 수입했는데 이번에 국산화에 성공해 더 싼 값으로 보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강 연구사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힘든 논·밭일을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에 관심을 가졌고 학업으로 이어져 농업기계공학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농민 입장에서 농사를 편하게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다 보니 개발한 기계 중 50% 이상은 대량 생산돼 실제 농사에 쓰이고 있다. 2010년 개발한 ‘밭작물 중경제초기’는 밭 이랑 사이의 잡초를 뽑고 흙을 갈아주는 기계로 사람이 일할 때보다 10배나 빨리 제초 작업을 끝낼 수 있다. 2011년 농가에 보급한 ‘양파 정식기’를 쓰면 사람이 손으로 일일이 했던 양파 심기와 수확을 기계로 간단히 끝낼 수 있다. 사람이 밭 10a에 양파를 심으려면 50시간이 들지만 이 기계를 쓰면 5시간 안에 마친다. 강 연구사는 “논농사는 95% 이상이 기계화됐지만 밭농사는 기계화율이 55%에 불과하다”면서 “밭작물마다 특성에 맞게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는 농기계를 만들어서 밭농사 기계화율을 논농사만큼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쯔쯔가무시병 증상, 발열·오한·근육통 등…야외활동 진드기 조심해야

    쯔쯔가무시병 증상, 발열·오한·근육통 등…야외활동 진드기 조심해야

    ‘쯔쯔가무시병 증상’ 쯔쯔가무시병 증상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오리엔티아 쯔쯔가무시균(Orientia tsutsugamushi)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진드기의 유충이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먹은 부위에 가피(딱지)가 동반된 궤양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쯔쯔가무시병은 발병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쉽게 치료가 가능하지만 치료가 늦어지면 뇌수막염, 패혈성 쇼크, 호흡부전, 신부전 등의 합병증을 동반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서 발생하고 있으며, 농촌에서 밭일을 하거나 성묘, 벌초, 등산을 하고 난 후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이 나타난다. 쯔쯔가무시병은 1~3주의 잠복기를 거쳐 갑자기 시작되는 발열, 오한, 두통, 근육통이 특징적이며, 기침, 구토, 설사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진드기나 진드기 유충에게 물려서 감염된다. 따라서 야외활동을 할 때는 긴 옷으로 피부를 보호하고, 진드기 기피제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쯔쯔가무시병 유행 시기에는 풀밭 위에 옷을 벗어 놓거나 눕지 말고, 휴식을 취할 때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야 한다. 야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샤워나 목욕을 하고, 입었던 옷가지 등은 깨끗이 세탁하는 것이 좋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쯔쯔가무시병 증상, 발열·오한·근육통 등…야외활동 진드기 조심해야

    쯔쯔가무시병 증상, 발열·오한·근육통 등…야외활동 진드기 조심해야

    ‘쯔쯔가무시병 증상’ 쯔쯔가무시병 증상이 네티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오리엔티아 쯔쯔가무시균(Orientia tsutsugamushi)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성 질환으로 진드기의 유충이 피부에 붙어 피를 빨아먹은 부위에 가피(딱지)가 동반된 궤양이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쯔쯔가무시병은 발병 초기에 병원을 찾으면 쉽게 치료가 가능하지만 치료가 늦어지면 뇌수막염, 패혈성 쇼크, 호흡부전, 신부전 등의 합병증을 동반해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우리나라 전국에 걸쳐서 발생하고 있으며, 농촌에서 밭일을 하거나 성묘, 벌초, 등산을 하고 난 후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이 나타난다. 쯔쯔가무시병은 1~3주의 잠복기를 거쳐 갑자기 시작되는 발열, 오한, 두통, 근육통이 특징적이며, 기침, 구토, 설사 등이 동반될 수 있다. 쯔쯔가무시병은 진드기나 진드기 유충에게 물려서 감염된다. 따라서 야외활동을 할 때는 긴 옷으로 피부를 보호하고, 진드기 기피제를 사용하면 도움이 된다. 쯔쯔가무시병 유행 시기에는 풀밭 위에 옷을 벗어 놓거나 눕지 말고, 휴식을 취할 때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야 한다. 야외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후에는 샤워나 목욕을 하고, 입었던 옷가지 등은 깨끗이 세탁하는 것이 좋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깨끗한 물 절실한 케냐 할머니와 두 손자의 암담한 현실

    깨끗한 물 절실한 케냐 할머니와 두 손자의 암담한 현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 차로 8시간 거리에 떨어진 반지 마을에는 더러운 웅덩이의 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 형제가 있다. 첫째는 13세 에드워드, 둘째는 10세 토머스다. 형제가 마시는 오염된 물은 통에 담겨 학교 급식소로 전달되고, 급식은 형제의 허기를 달래는 귀중한 한 끼 식사다. 오염된 물에 의존하다 보니 몸이 성할 리 없다. 동생 토머스는 에이즈에 걸렸다. 할머니 다마(70)는 노쇠한 몸을 이끌고 손자들 먹일 음식 찾기에 급급하다. 자신은 굶을지언정 손자들만큼은 배를 채워 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에드워드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두 팔을 걷어붙이고 밭일을 시작한다. 할머니와 아픈 동생을 위해 에드워드가 할 수 있는 건 밭일뿐이다. 할머니에게는 꼭 지켜야 할 약속이 있다.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며 먼저 떠난 아들의 유언이다. 할머니는 어린 손자들이 학업의 끈을 놓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남들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요즘 들어 몸이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손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할머니는 토머스에게 오늘도 더러운 물로 약을 먹였다. 병원에서는 깨끗한 물을 마시라고 했지만, 하루 한 끼 해결하는 것도 버거운 현실에 깨끗한 물은 언감생심이다. 오늘도 에드워드가 일하러 나섰다. 이제는 손주들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할머니의 눈앞이 캄캄해진다. 더러운 물로 고통받고 있는 할머니와 두 손자의 이야기는 1일 저녁 8시 20분 방송되는 EBS 1TV ‘글로벌 프로젝트 나눔’을 통해 볼 수 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길섶에서] 노년의 서빙/정기홍 논설위원

    “일을 하세요.” 80대 선친이 숙환으로 고생할 때 드렸던 말이다. 고통을 덜어 드리고 싶었다. 하루도 거름 없이 논밭에 나가셨다. 두려움과 우울증이 한결 간 듯했고, 병은 더 악화되지 않았다. 나도 신경이 덜 쓰였다. 잔 생각 버림의 효과다. “어디 계세요?” TV를 보니 도회지의 딸이 어머니에게 밭일을 하지 말라며 지청구 전화를 수시로 한다. 어머니는 들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자식에게 부모님의 고통과 고생이 밟히는 건 비슷하다. 나이 지긋한 분이 서빙하는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젊은이와 달리 어색기가 있지만 미소는 시종 환하다. 삶의 켜, 연륜이 묻어난 서빙이랄까. 여간해선 다툼을 만들지 않는다. 원숙미다. 누구는 60~70대마저 벌어야 하는 ‘고달픈 노년’이라지만 그러면 어떤가. 건강이 돈과 명예에 앞서는 게 이때다. 70대의 좌중에서 “왕년에 내가 대기업 임원을…”이라 했다간 왕따 되기 십상이란다. 주위를 보면 ‘꼼지락 일’을 하는 어른이 건강하다. 논밭에서 잡초 뽑는 분들이 오래 사는 듯하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골프와 다르다. 일은 존재감이다. ‘워킹 실버세대’에 박수를 친다. 건강하게 그리고 오래 사시라.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녹슬어 버린 인생 그래도… 빛난다

    녹슬어 버린 인생 그래도… 빛난다

    “잘 살고 간다, 화장 뿌려, 안녕.” 이승에서의 마지막 시간, 시인의 아버지는 달력 뒷장에 한 줄의 유언을 남겼다. 손택수(44) 시인은 이 한 줄로 시집을 묶었다고 말한다. ‘나무의 수사학’ 이후 4년 만에 낸 네 번째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이다. “그는 세계와 세계를 연결하는 탁월한 중매쟁이다. 그는 늘 무엇과 무엇 사이에 관절 튼튼한 접속사로 존재한다”는 함민복 시인의 평대로 시인은 애잔한 가족의 내력, 정신적으로 곤궁한 사회와 자기 내면, 어김없는 자연의 섭리 등에서 감각하고 사유한 깨달음을 세상에 내어놓는다. 지난 3월 실천문학사 대표직을 내려놓은 시인은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으로 들어갔다. ‘내 속 다 내어주고 비루하게 벌가벗긴/빈껍데기가 되어’(23쪽) 돌아간 그는 몇해간 끊고 지낸 ‘시(詩)살이’를 다시 시작했다. 이 기간에 지은 시들이 새 시집을 이뤘다. 그래서인지 이번 시집에서는 손택수 시의 ‘원형질’이라 할 만한 고향, 가족, 자연에서 수혈받은 정서와 상상력 외에도 ‘닿을 수 없는 꿈들을 옆에 둔 채’(17쪽) 아파하고 녹슬어 버린 자신에 대한 성찰이 유독 두드러진다. ‘아무래도 내 생은 좀 심심해진 것 같다/꿈을 업으로 삼게 된 자의 비애란 자신을 여행할 수 없다는 것/닦아도 닦아도 녹이 슨다는 것/녹을 품고 어떻게 녹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녹스는 순간들을 도끼눈을 뜬 채 바라볼 수 있을까’(녹슨 도끼의 시) 그러고는 ‘서식 밀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를 뜯어 먹는 올챙이’(물속의 히말라야)처럼 발버둥쳐야 살아남는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공연하고 쓸모없는 일들의 가치와 미덕을 우러른다. ‘내게도 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일정표에 정색을 하고 붉은색으로 표를 해놓은 일들 말고//가령, 태풍이 올라온다는 소식에 모종대를 손보는 노파처럼/곧 헝클어지고 말 텃밭일망정/흙무더기를 뿌리 쪽으로 끌어다 다독거리는 일//(중략) 이상하지 않은가, 나는 이 쓸모없는 일들 앞에서 자꾸 부끄러워지는 것이다’(공연한 일들이 좀 있어야겠다) 돌아가신 아버지,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죽음에 대한 연작 시(‘죽음의 형식’ 1~5) 형태로 나타나는 동시에 묵은지, 지게, 꽃 등 일상의 사물과 자연에도 반복적으로 투영된다. ‘꽃이 피면 죽는 게 아니라/죽음까지가 꽃이다’(대꽃)는 인식에서나, 절명의 순간 동백나무 가지 꺾는 소리를 닮고 싶어 하는 마음이 그러하다. ‘암투병 중인 수녀님이 선물로 동백가지를 끊는다/뚝, 아무런 망설임 없이/마치 오랜 동안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단번에 가지 꺾이는 소리/세상 뜰 때 내 마지막 한마디도 저와 같았으면/비록 두려움에 떨다가도 어느 순간/지는 것도 보람인 양/가장 크고 부드러운 손아귀 속에서 뚝/꽃보다 진한 가지 향을 뿜어낼 수 있었으면’(이해인 수녀님의 동백가지 꺾는 소리)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박지원 “유병언 사체 발견 지점 민가 인근, 개조차 짖지 않아”

    박지원 “유병언 사체 발견 지점 민가 인근, 개조차 짖지 않아”

    박지원 “유병언 사체 발견 지점 민가 인근, 개조차 짖지 않아”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은 27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변사체가 발견된 지점이 주민들의 발길이 잦은 민가와 고추밭 인근이었음에도 불구, 개가 짖거나 까마귀가 오지 않았으며 사체 부패에 따른 냄새도 나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주민 녹취록 등을 공개했다. 지난 24일 법제사법위 전체회의에서 유 전 회장 변사체의 발견시점이 세월호 참사보다도 먼저라는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공개한데 이은 추가 의혹 제기이다. 박 의원은 이날 국회 기자회견에서 국과수 발표를 믿는다고 전제하면서도 “(사체 발견) 현장에서 불과 1∼2분 떨어진 거리에 민가가 있고, 그 민가에서는 개 두 마리를 기르더라”며 관련사진을 공개한 뒤 “그 집에 사는 할머니에게 ‘개가 안 짖었느냐, 냄새가 안 났느냐, 까마귀 등 동물이 안 왔느냐’고 물었더니 ‘아무것도 없었다’고 하더라”고 여전히 석연치 않는 구석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사체 발견 지점은 고추밭에서 3∼4m밖에 안 떨어진 곳”이라며 “바로 그 위에 고추밭, 수박밭이 있어 매일 사람들이 밭일 하러 왔다갔다 했다는 게 할머니의 진술”이라고 덧붙였다. 박 의원은 또한 “이 동네(학구3거리)에는 노숙자가 있을 수 없다”, “왜 노숙자가 왔다갔다 했다는 건지 웃기는 일”이라는, 이 민가 뒤편에 위치한 한옥 건설현장의 인부 1명의 증언도 공개했다. 박 의원은 “도망다니다 보면 민가, 특히 개가 있는 곳은 피하는 게 상식적인데, 유병언은 왜 이런 곳을 찾아왔는지 알고 싶다”며 “더욱이 사체 부패가 심했을텐데 냄새도 나지 않았고, 개도 짖지 않았고, 까마귀나 어떤 동물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박 의원은 “어제 낮 12시 30분 쯤 경찰간부의 허가를 받고 폴리스라인을 넘어 사체 발견 현장에 들어갔었는데, 사체가 처음 발견된 현장에는 풀이 무성했으나 완전히 풀이 베어져 있었다”며 “’왜 풀을 베었냐’고 경찰간부에게 질문했더니 ‘오늘 처음 나와 모르겠다”고 하더라. 현장보존을 하지 않고 풀을 베어버린 건 참으로 이상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과수 발표를 믿지만, 사체를 바꿔치기 했느니, DNA 결과를 못 믿는다느니, 의혹이 증폭되고 ‘유병언 괴담’이 계속되고 있다. 1억년 전 살던 공룡도 밝혀내는 과학시대 아닌가”라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경찰청장의 해임을 거듭 촉구했다. 박 의원이 지난 24일 공개한 주민 녹취록을 최초로 확보했던 같은 당 강동원 의원은 “이 지역 면장은 (사체가 발견된) 6월12일 ‘비가 부슬부슬 왔다’고 증언했지만 다른 주민 두 명은 ‘날씨가 맑았다’고 주장했다”며 “여러가지 정황들이 정부의 발표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말벌주의보 전국 발령…울산 76세 여성 말벌에 쏘여 사망, 말벌 기승 이유는?

    말벌주의보 전국 발령…울산 76세 여성 말벌에 쏘여 사망, 말벌 기승 이유는?

    ‘말벌주의보’ 말벌주의보가 전국적으로 발령됐다. 말벌주의보가 발령된 이유는 전국적으로 13일 하루 동안에만 말벌집 제거 신고건수가 800건을 넘었기 때문이다. 최근 3일간 경기 북부 지역에선 19명이 말벌에 쏘여 치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3일 울산소방본부는 한 76세 여성이 말벌에 쏘여 사망했다고 밝혔다. 해당 여성은 이날 오후 4시쯤 울주군에서 밭일을 하다가 말벌에 쏘인 뒤, 구토를 하며 호흡곤란을 호소해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당국에 의하면, 통상 말벌 주의보를 발령하는 시기는 추석 성묘가 낀 9월이지만, 올해는 끝없는 폭염과 이로 인한 개체수의 증가로 7월 초순이라는 이례적인 시기에 말벌주의보가 집중적으로 발령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벌집을 발견한 경우 건드리지 말고 먼저 소방서 등 전문기관에 신고할 것을 당부했다. 또한 벌에 쏘이지 않기 위해서는 향이 자극적인 향수나 화장품의 사용을 자제하고 주위에 청량음료나 과일 등 단 음식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만일 실수로 벌집을 건드렸을 때는 뛰지 말고 제자리에서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해야 안전하다고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인권침해 의혹’ 송전원 진상규명 진행중

    ‘인권침해 의혹’ 송전원 진상규명 진행중

    장애인 인권유린과 비리 파문을 일으킨 서울 도봉구의 사회복지시설 ‘인강원’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의 산하 시설인 ‘송전원’ 거주인들이 인권침해를 받고 있다는 주장<서울신문 6월 10일자 9면>이 제기된 가운데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도봉구와 서울시 등이 사태 해결 방안을 놓고 속앓이를 하고 있다. 특히 송전원 측은 “인권침해는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어 당분간 논란은 이어질 전망이다. 29일 송전원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이 있는 도봉구에 따르면 최근 현장 점검을 실시한 뒤 앞으로 거주인 간 성추행이 발생할 경우 적극 대처할 것을 지시한 것을 포함해 시설의 효율적 운영,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등을 권고하는 내용이 담긴 공문을 송전원에 보냈다. 구 관계자는 “전문가를 동원해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거주인에 대한 조사를 세 차례 실시했는데 진술이 일관되지 않아 사실 관계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서 “정확한 사실 관계를 밝히려면 앞으로 몇 차례 더 조사를 해야 하는 만큼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장애인·시민단체로 구성된 ‘인강재단 장애인 인권유린 및 시설비리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송전원에서 거주인 간 성추행이 발생했지만 직원들이 방치했고, 거주인들이 직업재활 명목으로 밭일·나무땔감 줍기·청소 등의 업무에 강제 동원됐으며, 거주인들이 사용하는 기저귀와 생리대의 사용 개수를 제한했다”며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8월쯤 송전원의 인권침해 의혹과 관련한 조사결과를 내놓을 계획이다. 이와 관련, 송전원 측은 “성추행 주장에 연루된 거주인들의 말이 서로 달라 진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면서 “담당 교사들이 거주인들을 대상으로 심층상담과 교육을 했으며 같은 상황이 발생하는지 관찰했지만 문제 행동을 발견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송전원은 또 “밭일은 원예프로그램으로 참여 희망자에 한해 실시했으며 강요한 적이 없고 기저귀·생리대 등 위생용품은 거주인의 개별 사정에 맞게 지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편 공대위는 지난 10일 서울시와 송전원 폐쇄를 놓고 면담을 가졌지만 구체적인 답변을 듣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서울시에 인강원과 송전원 거주인들에 대한 보호조치 계획을 수립하고 시설을 폐쇄할 것을 요구했지만 여전히 ‘대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만 내놓고 있다”면서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박원순 시장과의 면담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강재단 산하 시설을 폐쇄하는 조치보다 강도 높은 조치인 재단 이사진 해임 명령을 통보한 상황”이라면서 “시설 폐쇄는 거주인들을 다른 시설로 옮기는 등의 사전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장애인 인권유린·국고보조금 유용…인강재단 사회복지계서 퇴출시켜야”

    장애인을 상습 폭행하고 국고보조금을 유용해 파문을 일으킨 서울 도봉구의 사회복지시설 ‘인강원’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의 또 다른 산하 시설 ‘송전원’의 인권침해 및 시설비리<서울신문 6월 10일자 9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애인·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인강재단 장애인 인권유린 및 시설비리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10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강원을 비롯해 인강재단 산하 송전원에서도 인권유린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해당 시설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서울시에 “인강원·송전원을 폐쇄하고 인강재단의 사회복지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라”고 요구했다. 대책위는 “송전원에 거주하는 50여명의 장애인들은 거주인 간 성폭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직업재활이라는 명목으로 밭일, 나무 땔감 줍기, 세탁, 청소, 설거지 등을 무임으로 시키는 등 노동력 착취가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에 이 같은 내용의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현장조사를 벌였다. 대책위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송전원이 인권유린 지대임이 증명됐다”면서 “인권침해와 비리를 일으킨 인강재단에 정부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사회복지계에서 퇴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성추행 가해자·피해자 같은 방에 재웠다

    성추행 가해자·피해자 같은 방에 재웠다

    경기 연천의 지적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성추행, 강제 노동, 기저귀 사용제한 등이 자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심각한 인권침해가 반복적으로 이뤄진 곳은 지난 3월 장애인을 상습 폭행하고 국고보조금을 유용해 파문을 일으킨 서울 도봉구의 사회복지시설 ‘인강원’<서울신문 2014년 3월 13일자 9면>을 운영하는 사회복지법인 인강재단의 또 다른 산하 시설 ‘송전원’(2009년 설립)이다. 9일 장애인·시민단체로 구성된 ‘인강재단 장애인 인권유린 및 시설비리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 따르면 지난 5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송전원에서 거주인 간의 성추행, 강제적 노동, 기저귀·생리대 사용 제한 등 비인간적 처우, 외출 금지 등 자유 제한 등 인권침해가 일어나고 있다”면서 “장애인들의 인권을 보장하고 본인의 의사에 따라 복지서비스를 받게 해 달라”는 내용의 진정을 접수해 인권위가 현재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이 입수한 진정서에 따르면 지적장애인 50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송전원에서 거주인 간 성추행이 발생했지만 직원들은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방치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성 거주인 A씨가 다른 남성 거주인 B씨의 성기를 만지는 등 성추행을 했지만 직원들은 “(같은) 방에서 좀 떨어져서 자라”고 말했을 뿐 가해자와 피해자를 분리하지 않은 채 한 방에서 생활하도록 내버려 뒀다. 노동 능력이 있는 거주인들은 ‘직업 훈련’이라는 명목으로 밭일, 나무 땔감 줍기, 설거지, 세탁 및 청소 등 시설 내 각종 업무에 강제 동원됐다. 직업 훈련의 경우 일정 기간 단계별로 수행되어야 하며 직업활동으로 연계돼야 하지만 거주인들은 무임금 노동을 강요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에 대한 대가를 임금 대신 음식으로 대체하거나 심지어 종이로 만든 ‘가짜 돈’을 주기도 했다. 하루에 사용할 수 있는 기저귀와 생리대 개수를 평균 1~3개로 제한하는 등 비인간적 처우도 문제로 제기됐다. 이 때문에 일부 거주인은 피부 가려움증을 호소하거나 심한 경우 피부 발진 등으로 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송전원이 경기 연천의 외곽에 있는 까닭에 거주인들이 바깥 활동을 하기에 어려움이 따르는 등 이동의 자유 역시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거주인 대부분은 직원과 동행하거나 방문자가 있을 때만 외출이 가능했다. 대책위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인권침해가 반복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강재단에 대해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하는 등 적용 가능한 행정처분을 동원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인권위의 권고에 따라 인강재단 관할 자치구인 도봉구에 구본권 이사장을 포함해 인강재단 이사 7명 전원에 대한 해임을 명령했지만, 대책위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의 임시 조치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설을 운영하는 해당 법인의 이사진 전원을 해임하고 보조금 환수 조치를 명령하는 등 가장 강력한 조치를 취한 상태”라며 “하반기에 장애인 거주 시설에 대한 실태 조사를 통해 인권침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장애인 인권단체와 활동가들은 서울시가 제2, 제3의 ‘도가니 사태’를 막겠다며 2012년 1월 ‘장애인 인권침해 5대 근절 대책’을 발표하면서 시설 내 인권 문제와 비리가 있을 경우 해당 시설을 바로 퇴출시키겠다고 밝혔지만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인강재단 산하 시설들을 즉각 폐쇄해 인권침해와 비리에 휩싸인 사회복지법인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사남일녀’ 이하늬 돌직구 “박중훈쇼 이래서 안됐구나” 표정이..

    ‘사남일녀’ 이하늬 돌직구 “박중훈쇼 이래서 안됐구나” 표정이..

    ‘사남일녀 이하늬 박중훈’ 배우 이하늬가 선배 배우 박중훈에게 돌직구를 날렸다. 지난 2일 방송된 MBC ‘사남일녀’에는 박중훈이 게스트로 출연해 남매들과 함께 충청남도 서천군 장구리에 거주하는 부모와 가족이 됐다. 이날 밭일을 마친 박중훈은 과체중과 무릎 통증으로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체중계를 선물했다. 박중훈은 엄마에게 체중계 활용법을 알려 준 뒤 “염분이 체중 증가의 주원인이기 때문에 요리할 때 평소보다 소금을 적게 사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서장훈이 “심심하게 드셔야지”라고 싱겁게 먹어야 한다고 말하자 박중훈은 “음식이 심심한 거보다는 즐거운 게 좋다”며 말장난을 쳤다. 서장훈은 박중훈의 썰렁한 개그에 곤란한 웃음을 터뜨렸고 김구라는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하늬는 박중훈에 야유를 쏟아내며 “박중훈 쇼가 이래서 안 됐구나”라고 거침없이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앞서 박중훈은 2008년 12월 KBS2TV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토크쇼를 진행했으나 시청률 저하로 4개월 만에 막을 내린 아픔이 있다. 네티즌들은 “이하늬 돌직구도 매력있어”, “이하늬, 박중훈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네”, “이하늬 솔직해서 좋다. 표정이 진심 안타까워”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MBC(이하늬 박중훈)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일개미’ 시어머니와 ‘공주’ 며느리, 마음의 벽 허물까

    ‘일개미’ 시어머니와 ‘공주’ 며느리, 마음의 벽 허물까

    4대가 함께 사는 집에는 ‘일개미’ 시어머니와 ‘공주’ 며느리가 있다. 시어머니 박정순(61)씨는 아침 일찍 일어나 일곱 식구의 식사 준비를 하고 여든을 넘긴 시부모의 수발을 든다. 하지만 필리핀에서 온 며느리 유진(24)씨는 집안일은 제쳐두고 외모 가꾸기에 열중이다. 3일 오후 10시 45분 EBS에서 방송되는 ‘다문화 고부 열전’에서는 박씨와 며느리 유진씨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는다. 박씨는 스물한 살에 결혼해 40년 동안 집안일과 밭일을 도맡았다. 4년 전 들어온 며느리가 일을 덜어 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일이 줄기는커녕 손녀까지 돌보게 됐다. 유진씨는 해가 중천에 떠야 잠에서 깬다. 눈을 뜨자마자 하는 일은 화장. 심지어 매일 밤 다이어트 때문에 딸은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운동에 전념한다. 그래도 애교 많은 며느리와 어린 손녀딸 덕에 집에는 웃음이 늘었다. 박씨는 나이든 시부모 봉양에 꿈도 못 꿨던 외출도 가끔씩 할 수 있게 됐다. 더러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는데, 며느리 내외가 다툴 때다. 며느리는 평일엔 자동차 부품 회사에서, 주말엔 카센터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건다. 결국 퇴근한 남편과 연락 문제로 다투자 박씨도 목소리를 높였다. 고부는 서로의 마음을 헤아려보기 위해 며느리의 고향인 필리핀을 찾았다. 박씨는 며느리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왈칵 눈물을 쏟았다. 나무를 덧대 만든 집은 악취가 진동하고, 상수도 시설도 없어 물을 길어다 사용해야 한다. 이곳에서 둘만의 시간을 갖게 된 고부는 서로의 거리를 좁혀 나갈 기회를 얻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내러티브 리포트] 전남 신의도 염전마을 가보니…

    [내러티브 리포트] 전남 신의도 염전마을 가보니…

    지난 21일 국내 최대 천일염 산지로 알려진 전남 신안군 신의도. 소금 생산 개시일(28일)을 1주일 앞둔 시점인데도 척박한 소금밭에는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만 있었다. 이맘때쯤 염전 다지기 작업인 ‘로라질’에 한창이어야 할 염부(염전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달 초 불거진 ‘염전 노예’ 사건 이후 전남경찰청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가 민간인권단체인 전남장애인인권센터와 신의도에 상주하며 염부들을 상대로 면담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일부 염전주는 임금 체불 사실이 드러날까 봐 염부들을 섬 밖으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17일 시작된 도서인권보호특별수사대의 염부 면담 조사는 수십 년간 공공연하게 인권유린이 묵인된 이곳에서 최초로 이뤄지는 시도다. 수사대는 현재까지 신의도 내 염전 239개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를 30% 정도만 마친 상태다. 이날 면담이 이뤄진 염부 A(38)씨도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경찰은 추정했다. A씨는 서울 노원구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군대까지 다녀왔지만 오랜 노숙생활로 사회성이 매우 취약했다. 2011년 신의도에 들어온 A씨는 이듬해 염전 주인이 노환으로 숨지면서 서울로 올라갔다. 한 달간 일자리를 구하려 안간힘을 썼지만 실패했다. 결국 전에 일했던 염전 주인의 친척 집 염전에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지난달 염전 노예 사건이 불거진 이후 부랴부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근로계약서에는 A씨에게 염전철인 4~10월 매달 100만원씩을 지급한다고 돼 있었다. 하지만 A씨는 염전철이 아닌 11~3월에도 박씨의 밭일과 소금을 옮겨 싣는 일을 도왔다고 증언했다. A씨는 원형탈모증을 앓고 있었으며 치과 치료를 받지 못해 어금니가 모두 빠진 상태였다. 지난 3년치 임금만 제대로 받았어도 치료할 수 있었을 터였다. 신의도에서 만난 염전주들은 면담조사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다. “한 명당 면담이 5~6차례 이뤄지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 염부들이 자진해서 염전을 떠났다”고 말했다. 수사대 측은 “대부분 지적장애가 있거나 오랜 노숙생활로 사회성이 떨어진 상태라 마음을 열려면 5~6차례 정도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염전 노예 사건의 진원지로 질타를 받으면서 마을 주민들은 외지인에게 마음의 문을 닫았다.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인력난이 가중된 탓에 생계가 어렵다며 원망했다. 염전주 B(60·여)씨는 “염전 일은 일반인들이 기피하는 3D 업종”이라며 “사람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직업소개소와 염전주의 관계에서 인력브로커들이 ‘갑’”이라고 말했다. 15년간 부모에게 물려받은 염전을 운영해 온 C(41)씨는 “구인광고를 통해 인력을 구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허가 직업소개소를 통해서라도 사람을 구하곤 했다”고 털어놓았다. 신의면사무소에서 만난 염전주협의회 박영호 회장은 “300명에 이르던 염부들 수가 70~80명으로 감소하는 등 섬 전체가 뒤숭숭하다”면서 “염전주의 인권 의식을 바로잡으려고 지난달에 이어 25일에도 교육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안군의 본격적인 천일염 생산을 알리는 ‘채렴식’도 다음 달 15일로 미뤘다고 했다. 목포에는 염전주에게 노숙인이나 지적장애인들을 알선하는 직업소개소가 130여개나 있다. 이 중 70%는 무허가 직업소개소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찰은 “본인이 어떤 경로로 신의도에 왔는지 기억하는 염부가 손에 꼽힐 정도라 장애인들을 알선한 직업소개소를 단속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밝혔다. 인권센터 관계자는 “지자체나 고용노동부가 장애인을 고용한 염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임금 체불, 인권유린 등을 단속해야 하는데 손을 놓고 있다”면서 “남의 자식을 데려다가 한 평 남짓한 방에 재우면서 가혹행위나 임금을 체불한 염전주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신안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타오르는 선비의 기상 굽이굽이 지조의 역사

    타오르는 선비의 기상 굽이굽이 지조의 역사

    경북 영주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을 선비 고을이라 부른다. 목숨과 바꿔 의리와 지조를 지킨 역사에 빗댄 표현이다. 그 올곧은 기상과 만날 수 있는 곳이 영주 북쪽, 그러니까 소백산 자락에 기댄 순흥면 일대다. 오래전 풍기라 불렸던 땅. 더 오래전엔 순흥도호부가 있었다. 선비 고을 영주는 바로 그 시대부터 비롯됐다. 옛 풍기군은 ‘뭍의 삼다도(三多島)’라 불렸다. 제주와 닮아 바람과 돌, 그리고 여자가 많다는 뜻에서다. 소백산과 죽령을 타고 내려온 바람은 늘 세차게 소읍을 할퀴었고, 손바닥만 한 모래톱조차 없었던 남원천 바닥은 세월에 씻긴 둥근 돌로 가득했다. 여자가 많았던 건 ‘풍기 인견’(명주실로 짠 비단) 때문이다. 풍기는 해방 전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특히 명주(明紬)의 본고장이었던 평안도 사람이 주를 이뤘다. 이들은 남하할 때 가져온 ‘족답베틀기’로 인견을 짰다. 이게 ‘풍기 인견’의 시초가 됐다. 해방이 되면서 ‘풍기 인견’은 전국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인견 공장에 다니던 여공들의 숫자만 2000여명을 헤아렸다. 갓 1만 명 넘게 사는 소읍에서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여공들이 우르르 몰려다녔으니 여자 많다 소리 나오는 게 당연했다. 이제 풍기군은 없다. 영주시에 통합됐기 때문이다. 한때 영천과 충북 괴산 등까지 이르렀던 위세도 풍기읍으로 쪼그라들었고, 그 자리를 이제 순흥면 등이 대신하고 있다. 영주는 흔히 선비 고을이라 불린다. 이는 양반 고을과 다소 어감이 다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기상은 선비 정신과 닮았으되 권세가들이 모여 사는 양반 고을은 아니라는 거다. 이런 기질이 잘 살아 있는 곳이 순흥면이다. 순흥면의 으뜸 볼거리는 소수서원이다. 1543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한데 소수서원과 마주한 금성단, 압각수 등도 빼놓지 말고 돌아보는 게 좋겠다. 여기야말로 올곧은 선비 정신이 발현됐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금성단은 조선시대 단종 복위 운동을 벌이다 사약을 받은 금성대군을 모신 제단, 압각수는 1100년 묵었다는 금성단 옆의 늙은 은행나무다. 금성단 앞 게시판이 전하는 내용은 이렇다. 조카 단종을 내쫓고 왕위에 오른 세조는 동생 금성대군을 순흥으로 ‘위리안치’시킨다. 금성대군은 순흥에서 다시 단종 복위에 나선다. 하지만 계획은 발각됐고, 세조는 금성대군에게 사약을 내린다. 이에 가담한 선비와 주민들도 무차별 참살했다. 1456년의 정축지변이다. 당시 순흥의 청다리 밑을 적신 피는 죽교천을 따라 10여리 떨어진 마을까지 흐른 뒤 사라졌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동촌1리 ‘피끝마을’이다. 이때 오백 살 넘은 은행나무도 불에 타 죽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지난 1683년 단종이 복위됐고, 또 30년 뒤 금성대군 등 선비들도 복권됐다. 죽었던 은행나무도 이때 다시 살아나 잎을 틔웠다는 것. 순흥면사무소는 옛 순흥도호부 자리에 세워졌다. 면사무소 뒤뜰에 봉도각 등 옛 건물과 왕버들 등 수백 년 묵은 고목들로 장식된 정원이 여태 남아 있다. 대한민국 면사무소 가운데 이만한 정취의 뒤뜰 가진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예서 영주의 대표 명소 부석사가 지척이다. 최근 절집으로 드는 회랑을 새로 짓는 등 외형이 적잖이 달라졌다. 부석사는 저물녘 방문하는 게 좋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 앞에서 맞는 해넘이 풍경이 더없이 그윽하다. 영주 문어 이야기도 이채롭다. 바다의 산물이 내륙 중에서도 오지로 꼽히는 영주까지 가서 번듯한 명성을 얻게 된 이유가 뭘까. 음식 평론가들은 문어가 오래전부터 영주와 안동 등 경북 내륙지방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름부터 ‘글의 생선’(文魚)인 데다, 비상한 머리와 바위 속에 숨는 은둔적 성격이 선비를 닮았다는 거다. 또 문어의 먹물은 글 쓸 때 먹을 대신했다. 게다가 강력한 빨판은 과거에 제꺽 급제한다는 은유로도 통했다. 한데 현지 주민들의 이야기는 다소 다르다. ‘영주 문어’가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게 비교적 근세라는 것이다. 이는 영동선 철도 개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삼박물관의 송준태 관장이 전한 이야기는 이렇다. 영주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경북 북부의 철도교통 요지였다. 씨줄 날줄로 촘촘하게 얽힌 중앙선, 경북선 등 덕에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과 사통팔달로 연결됐다. 현재 영동선으로 통합된 영암선이 1955년 개통되면서 철길은 묵호까지 확장됐다. 귀한 해산물로 여겨졌던 문어가 영주로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한 건 이때부터였다. 묵호, 삼척 등에서 초벌로 삶은 문어는 기차에 실려 영주로 집결됐고, 곧바로 전국 각지로 확산됐다. 지금도 영주역 앞엔 번개시장이 있다. 문어가 도착하자마자 번개처럼 빠르게 팔려 나갔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영주 문어는 곧 숙성 문어다. 삶은 문어란 얘기다. 문어는 삶은 뒤 하루 정도 물기를 빼내고 먹어야 맛있다고 한다. 묵호 등에서 찐 문어가 완행열차를 타고 영주에 도착할 때쯤이면 가장 맛있는 상태로 숙성됐다. 그 덕에 영주 문어가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선비 고을 영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가 수도리 전통마을, 이른바 무섬마을이다. 내성천이 휘돌아 가며 만든 모래톱 위에 반듯하게 터를 잡은 옛 마을은 자체가 중요민속문화재(제278호)다. 40여 가구 가운데 100년 넘은 집이 열여섯 채에 이르고, 문화재 등으로 지정된 집도 아홉 채나 된다. 대부분의 고택엔 실제 주민이 산다. 그 가운데 일부는 고택 체험을 위한 숙소로 쓰이기도 한다. 마을과 내성천이 만나는 곳엔 태극 모양의 외나무다리가 놓였다. 마을 옆으로 수도교가 놓이기 전까지 외부와의 연결 통로 노릇을 했던 다리다. 요즘도 강 건너 밭일하러 가는 주민들이 가끔 이용하지만, 그보다는 주로 관광객들이 재미 삼아 오간다. 좁은 나무다리를 따라 맑은 물 위를 자박자박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 여행 수첩 (지역번호 054) →가는 길 부석사, 금성단 등 영주 북쪽의 관광지들을 먼저 보겠다면 중앙고속도로 풍기 나들목으로 나와야 한다. 이어 북영주 방면 931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곧장 가면 된다. 무섬마을은 중앙고속도로 영주나들목이 낫다. 28번국도에 이어 5번국도 영주시청 방면으로 갈아탄 뒤 적서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수도리 전통마을 표지판을 보고 따라간다. 영주시청 관광산업과 639-6601, 6606. 무섬마을 관광안내소 636-4700. →맛집 순흥 쪽에선 묵밥이 유명하다. 이웃한 봉화, 춘양 등에서 생산된 메밀로 묵을 만들어 낸다. 맛은 순하다. 도회지 묵밥처럼 미끌거리며 입에서 겉도는 듯한 식감도 덜하다. 순흥묵집(632-2028)이 알려졌다. 순흥사거리에서 소수서원 방향 주유소 옆에 있다. 묵밥 7000원. 주전부리는 기지떡이 좋겠다. 기지떡은 흔히 술떡이라 불리는 ‘증편’의 사투리다. 술로 반죽한 멥쌀가루를 찐 뒤 대추 등 고명을 얹었다. 순흥기지떡(631-2929)이 이름났다. 한 상자에 6000원. 순흥사거리 초입에 있다. 문어는 맛볼 곳이 드물다. 대개 결혼식 등의 잔치나 제사에 쓸 용도로 팔기 때문이다. 영주역 번개시장 앞에 문어 파는 집이 세 곳 있다. 여기서 문어를 산 뒤 바로 옆 종로식당에서 맛볼 수 있다. 상차림 비용은 따로 받지 않지만, 별도 음식을 주문해야 한다. 1㎏에 4만~5만원. 4인 가족이 먹으려면 10만원 정도는 써야 한다. →잘 곳 풍기 쪽에선 풍기관광호텔(637-8800), 소백산풍기온천리조트(604-1700) 등이 깨끗하다. 온천만 할 경우 8000원. 시내에선 영주호텔(634-1000)이 넓고 깔끔하다. 글 사진 영주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한 자 한 자 漢字쓰기 10년…상아탑 꿈★ 도운 주민센터

    한 자 한 자 漢字쓰기 10년…상아탑 꿈★ 도운 주민센터

    “그래도 제 앞에선 ‘다 늙어 대학 가서 뭐하게’라는 내색을 하지 않고 ‘대단한 결심 했다’ ‘애썼다’ 해 주니까 그게 고맙죠. 허허.” 14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양판태(66)씨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양씨는 최근 기쁜 소식을 하나 받았다. 대전대 서예한문학과에 특기자전형으로 수시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애써 키운 4남매는 이래저래 대학 공부를 다 시켰으니 집에선 14학번으로 학번상 가장 막내인 셈이다. 양씨가 서예에 취미를 붙인 것은 2004년이다. 응봉동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서예교실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뭔가 배워 보고는 싶었지만 그때만 해도 서예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어릴 적 어른들 어깨너머로 봐둔 건 있으니 주민센터에서 하는 다른 프로그램보다는 취미 삼아 하기 좋겠다 싶었죠.” 한자를 공부한 것도 아니다. “6남매였는데 집안이 어렵다 보니 학교 다녀와서 가방 던져 놓자마자 논밭일 돕기에 바빴어요. 그 시절에는 학자금 대출도, 알바라는 것도 없었으니 자연스레 그냥 공부를 그만둔 거지요.” 응봉동 주민센터에서 서예를 꾸준히 배워 나가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한국서화협회에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대학에 가고 싶단 생각도 슬슬 들었다. “글씨를 써 가며 이런저런 책을 보다 보니 ‘공부라는 게 한번 만지면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하는 것이로구나’ 싶더군요. 더구나 요즘은 100세 시대 아닙니까.” 10년이나 글씨를 써 왔으면서도 굳이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도 그 때문이다. “10년 썼다지만 쓰면 쓸수록 이제 입문이다 여겼습니다. 뭔가를 더 배워 한 단계 올라서고 싶었어요.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데도 활력을 얻고 저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서예 공부를 도와준 주민센터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4년 동안 열심히 배워서 졸업작품은 꼭 주민센터에 기증할 수 있도록 할게요. 도와주신 서예교실 강사님들, 회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서예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를 꼽아 달라는 말에 양씨는 ‘새옹지마’를 꼽았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살아지진 않지만 그래도 때론 이런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습니까. 허허허.”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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