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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일성 주석에게/최평길 연세대 교수(서울시론)

    ◎역사를 거역하는 어리석음 버려야 김일성주석에게. 안녕하십니까? 올해 1990년은 20세기를 정리하고 21세기를 향해 가는 전환기인 90년대의 첫 해입니다.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발표한 지 142년,레닌이 혁명한 지 73년,그리고 해방된 북쪽에 공산정권이 들어선 지 45년,김주석이 6ㆍ25전쟁을 일으킨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공산주의 실험은 끝나 140여년 전에 마르크스가 공산주의 이론을 제시한 이후,실제로 소련에 적용되기까지는 7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또한 중국 북한 동구공산국가도 사실은 40년의 공산주의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극소수 생산수단 소유자가 노동자를 착취하고 부를 독점하는 자본주의 사회를 비판하고 착취당하고 소외된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무산자계급이 통치하는 사회로 나아가려는 것이 공산사회 아닙니까? 그런데 인간 나이로 보아 70세가 되기도 전에 이러한 공산사회는 통치차원에서 공산당 우위불가론을 제기하고 공산당 일당 독재를 실시한 결과 지난 한햇동안 순식간에 동구권 사회주의국가가 모두 공산당 간판을 내려버렸습니다. 더불어 시장경제원리를 도입하고 조금은 완화된 사회주의 정당을 창설하였으며 더 나아가 다른 정당도 창설되어 자유 경선으로 정치지도자를 뽑겠다는 의지를 표출하였습니다. 이제는 이러한 다당제 주장이 공산주의 체제내에서 개혁ㆍ개방을 부르짖던 소련ㆍ중국에 역수출되게 되었습니다. 중공업에 의한 군사력으로 사회주의 국가를 장악하던 소련은 열려진 사회주의 체제의 민주화 기수로 정치적 선제권을 잡고 있습니다. 고르바초프에 의해 주도되는 이같은 개혁 공세는 90년에는 중국과 북한이 그 주대상이 될 것입니다. 한국이 제1차 5개년 경제계획을 1961년에 시작할 때만 해도 북한이 경제면에서 한국을 훨씬 앞질렀고 철강생산만 하더라도 북한이 독점하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 현재 북한은 예상 기대목표 1천만t에 6백90만t을 생산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포항제철을 필두로 2천만t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60년대까지만 해도 남반부 혁명 완수라는 공격형 정치심리가,70∼80년대에는 「우리는 우리 식대로 살자」는 방어논리로 변질되었고 이제는 북한이 개혁이냐 폐쇄냐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갈등ㆍ모순의 정치상황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모스크바 북경에 가서 북한에 정통한 정부실무가ㆍ전문가ㆍ교포를 만나보거나 남쪽에온 북한의 시민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어보면 2년 전까지만 해도 북한의 노동당ㆍ정무원ㆍ기업소의 핵심 요원이나 알고 있던 한국 사정을 올림픽을 기점으로 또 어쩔수 없이 북한지도부도 업무상 해외나들이가 잦아지게 되어 이제는 한국이 잘 산다는 것을 함경도 산각벽지 농사꾼조차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더이상 주민 못속일 것 그리하여 현재 주석의 통치하에 있는 북한의 최대 딜레마는 식량을 위시한 생필품,물자의 절대빈곤과 북한 시민의 남북한 비교인식 시각이 넓어졌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즉 이제는 주체사상,김일성주의 칭송은 선전으로서만 습관화된 반면,우리도 풍요롭고 자유스럽게 잘살아 보자는 욕구표출이 최근 동구 사회주의국가의 민주화와 이를 밀어주는 소련의 입김으로 인해 더욱 상승작용을 한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키 164㎝에 몸무게 81㎏,당뇨기가 있는 데다가 신장염도 앓고 있으며 그저 영화예술에나 심취하고 있는 인기없는 아들 「친애하는 김정일 비서」 자체도 주민의 욕구 분출과 때를 같이하여 북한 정권승계에서의 커다란 걸림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김일성주석은 1986년 12월의 시정연설에서 아직도 북한은 불완전사회주의 사회에서 완전사회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극소수 핵심지도부 외에는 모두 가난한 「가난의 평등사회」라는 오늘날의 북한 실정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소련의 개방화 압력,물자의 절대빈곤,부자세습체제의 모순 등은 김일성주석의 정신적ㆍ육체적 건강에 커다란 심려를 끼치고 있으며 더군다나 주석 다음으로 장기집권한 차우셰스쿠서기장의 처형은 큰 타격을 주었으리라 봅니다. 해방되던 해 33세의 청년으로 소련군을 따라 입성한 주석은 그후 빨치산 생활을 청산하였는 바 밀림 속의 도보행군이 도시의 승용차 생활패턴으로 바뀐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자모산별장 근처 인공사육장에서 키운 꿩과 노루를 차에 탄 채 사냥하는 등 안방생활에 젖어있으며 강철의 영장인 당신도 일흔여덟의 나이를 못속이는지 두 다리가 약해져서 보행에 불편이 있고 허리가 아파 여행도 편히 누워갈 수 있도록 기차여행을 즐기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귀가 멀어가고 옛날 같으면 난치병인 귀의 종양제거수술도 동독의 의사를 불러 하였으나 최근에 다시 재발하여 고생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늙으면 하찮은 병도 이래저래 합병증으로 큰 병을 얻게 마련입니다. 티토가 오래 산 것이 5백m 고지에 있는 별장에서 생활했기 때문이라며 자모산별장의 침대를 해발 5백m에 위치하게 하고 오곡밥에 깊은 계곡에서 서식하는 생선,반드시 먹기 30분 전에 잡은 육류 등만을 먹고 함경도 호수 밑의 3층별장에서 여름을 지낸다고 해도 늙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세습고집도 그만둘 때 아들 정일이나 평일이 모두가 그 수준이라고들 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호쾌한 북한 인민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라고 외치게 되면 또 군사분계선에서 근무하는 영롱한 인민군전사마저 한국군이 무서워서라도 김주석과 아들들을 갈아치우는 것이 정치안정에 도움된다며 인민편에 설 때 그 뒤에 오는 불행한 사태는 가히 짐작이 가는 일입니다. 아무리 아들 김정일의 만경대혁명학원 동창생들을 군요직에 앉힌다고 해도 1백만 대군의 요직을 전부 차지하게 할 수야 있겠습니까? 부디 잘 생각하여 마음과 육신이 쇠잔하고 기억이 몽롱하여 대사를 그르치기 전에 실질적인 남북정상회담도 하고 다각적 교류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면서 자유경선으로 후계체제를 정착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과거에 거세되어 이국땅 소련에 있는 이상조장군,중국에 있는 서휘ㆍ김강같은 혁명동지들을 다시 불러모아 화해하고 즐거운 여생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올해 신년사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도 변천되는 현실에 맞게 끊임없이 개선,완성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였는데 김주석 스스로가 부단히 자성하고 개선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새해 문안드리며 이만 줄입니다.
  • 특별설비자금 1조원 앞당겨 집행/상공부 올 업무보고 내용

    ◎창업투자회사에 무담보융자 확대 ▷고도기술 산업 육성 기반의 구축◁ ◇고부가가치형 산업구조 확립 ▲1조원규모의 첨단산업 기술향상자금조성 ▲두뇌집약형 기업의 창업지원 ▲중국등 해외교포거주지역과 동남아에 해외공단조성 검토 ◇생산기술개발의 촉진 ▲대학부설 산업기술연구소 설립의 확대 ▲생산기술연구원의 기능을 활성화,오는 94년까지 고급중견인력 5천명을 육성 ◇생산성향상의 적극 추진 ▲기업자동화 설비투자자금의 지원을 1천억원으로 확대 ▲한국디자인의 포장센터를 디자인전문연구기관으로 개편 ◇업종별 구조고도화시책 강구 ▲철강 21세기 운동전개 ▲자동차부품연구단지 조성 ▲한국중공업의 조기 경영정상화 추진 ▷산업간 불균형의 시정◁ ◇활력있는 중소기업의 육성 ▲중소기업의 경영안정을 위해 올 중소기업구조 조정자금 3천4백억원을 적기지원 ▲창업투자회사의 무담보투자확대 등으로 창의적인 청년창업자가 기술 집약형 기업을 창업토록 유도 ◇지방화시대에 부응한 산업의 지역간 균형육성 ▲2천만평의 지방공단조성을통해 공업의 지방분산을 촉진 ▲생활여건의 개선을 통한 고급 두뇌의 지방정착기반 확충 ◇서민생활의 안정지원 ▲유통정보화의 확산과 물적 유통기반의 확충으로 유통산업의 효율성 제고 ▲고급의류ㆍ가구등 11개 수입공산품에 대한 원가표시제 실시 ▲할당관세의 적용,설비 능력의 확충을 통한 건축자재등 부족예상품목의 수급불안요인 해소 ▷공산품의 품질경쟁력 제고◁ ▲68개 품질관리추진본부를 중심으로 범산업적인 품질향상운동 전개 ▲중소기업 품질관리지원반 설치 ▲첨단분야에 대한 공업규격의 제정과 규격수준의 국제화 추진 ▷공업 소유권 행정의 효율성 제고◁ ▲정보종합전산망구축 계획의 지속적 추진 ▲공업소유권제도의 국제화를 위한 국제기구ㆍ공산권등과의 협력 강화 ▷수출회복과 투자의 활성화◁ ◇수출경쟁력의 회복 ▲중화학 제품의 수출증대를 위해 연불수출자금을 지난해 7천억원에서 7천5백억원으로 확대 ▲수출보험공사를 설립,위험부담이 큰 신시장 개척을 지원 ▲대기업에 대한 수출산업 설비금융 부활 ◇제조업 설비투자의 활성화 ▲설비투자 촉진을 위해 특별설비자금 1조원을 앞당겨 집행 ▲특별외화 대출의 지원규모를 70억달러로 확대 ▲수출 및 첨단산업에 대해 여신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 ▷산업평화 정착과 임금의 안정◁ ◇산업평화의 조기정착을 위한 여건조성 ▲종업원 1백인이상 전제조업체에 노무전담부서 및 노사상담실 설치권장 ▲무노동무임금원칙 실천을 위한 업계 전체의 대책강구 ◇생산성 범위내의 임금 안정유도 ▲대기업 중심으로 업종별 선도기업 선정 ▲자동차ㆍ철강ㆍ화섬 등 업종별 임금공동교섭 추진 ◇근로자의 의욕감퇴 고취와 기업인 윤리의 확립 ▲근로자 복지주택 마련지원등 평생직장의식 함양 ▲기업인의 부당노동행위 근절 ▷내실있는 확대 균형 무역의 추진◁ ◇선진무역기반의 조성 ▲서류없는 무역절차의 실현을 위해 무역전산화 전담회사 설립추진 ▲위조상품 수출근절 등 공정한 수ㆍ출입 질서확립 ▲남북한 직ㆍ간접 물자반ㆍ출입 촉진 ◇적극적인 통상외교활동의 전개 ▲90년말 종료예정인 우루과이 라운드협상에 적극 참여 ▲공산권별 특성에맞는 통상정책 추진
  • 지방 양여세 신설

    정부는 동구권의 변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고 북한의 개방화를 유도하기 위해 2천억 내지 3천억원 규모의 남북 경제교류협력기금을 설치하는등 다각적인 남북한 경제교류 증진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는 이와함께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정상화및 투자보장협정 체결을 적극 추진하고 우리 기업의 북방진출을 촉진하기 위해 현재 1천5백억원 규모인 대외경제 협력기금을 단계적으로 확대운용해 나갈 방침이다. 조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16일 상오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한 올해 주요 업무계획을 노태우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조부총리는 이 보고에서 지방자치제 실시에 대비,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의 기능을 전면 재조정하고 취약한 지방재정의 자립도 제고를 위해 지방양여세의 신설등 세제개편과 국고보조금 지급을 늘려 지방정부에 대한 재정지원을 강화하는 방안을 올 상반기중에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경제력 집중억제를 위해 동일 기업그룹내의 계열회사간 상호출자 금지를 위반하는 회사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특히 공정거래법상의 출자규제 제도를 금융ㆍ세제ㆍ산업정책과 연계,운용해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또 노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밝힌 민생치안,교육개혁,과학기술진흥,환경보전,도시교통난해소 등 5대과제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90년도 관련예산의 우선 집행 ▲89년도 세계잉여금의 집중적인 투입과 아울러 중장기적으로 7차 5개년계획(92∼96년)에 적극 반영해 나갈 계획이다.
  • 「탈소도미노」확산땐 고르바초프“위기”/거세지는 소 민족분규의 저변

    ◎영토ㆍ종교ㆍ문화 달라 반목 고질화/소수민족정책 근본적 궤도수정 불가피 고르바초프서기장의 리투아니아방문 마지막날인 13일 남부 아제르바이잔공화국에서 유혈충돌이 벌어짐으로써 소련의 인종분규는 이제 동시 다발적인 국면을 맞고있다. 특히 이번의 유혈사태는 분리독립자제를 설득키 위한 고르바초프의 리투아니아방문이 실패로 끝난데 연이어 일어났다는 점에서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련의 민족문제는 물론,러시아제국의 영토확장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인 뿌리를 갖는 것이지만 제민족의 불만이 이렇게 표면화된 것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에 기인하는 것이다. 특히 개방화로 인한 과거 역사의 재조명 움직임과 사회전반의 민주화ㆍ자유화가 소수민족의 독립분위기를 부추겼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드러나고 있는 소련내 민족운동의 흐름은 크게 세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반소ㆍ반러시아운동으로 궁극적으로 소연방에서의 분리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움직임이다. 최근 발트해 연안 3개공화국에서 일고있는 민족주의운동이 바로 여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소련당국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문제의 핵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리투아니아방문때도 드러났듯이 절대로 독립은 허용않겠다는 것이 소련당국의 입장인 반면 이들 3개공화국의 요구는 독립이다. 두번째는 소련영토내 각 공화국간의 영토와 영역의 변경을 요구하는 것으로 소수민족들끼리의 분쟁이다. 이번에 발생한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인들간의 유혈충돌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분쟁의 주된 배경은 아제르바이잔내 나고르노 카라바흐자치주의 귀속문제 때문이다. 지난 1923년 스탈린에 의해 아제르바이잔에 강제편입된 이지역은 원래 아르메니아공화국에 속해있던 곳으로 지금도 주민의 80% 이상이 아르메니아인이다. 아제르바이잔인은 수니파회교도가 대부분이고 아르메니아인은 대부분이기독교도들로 역사적으로 양측간 민족감정은 좋지가 않았다. 수십년간 갖은 인종적 편견과 불이익을 당해온 이지역 아르메니아주민과 아제르바이잔인들과의 해묵은 감정이 소련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분위기를 타고 폭발한 것이다. 지난 88년 2월에도 한차례 유혈충돌을 겪은 두민족은 이후 소련당국의 강경조치에 밀려 주춤한 상태였으나 양공화국이 각자 나고르노 카라바흐를 자국소유로 선포하는등 계속 불씨를 안고 있었다. 이 경우도 소련당국으로서는 쉽게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아르메니아측의 요구대로 이 지역을 넘겨줄 경우 아제르바이잔인들의 반발 또한 엄청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련은 현재 1백개가 넘는 다민족국가로 15개의 독립된 민족공화국,20개의 자치공화국,그리고 8개의 민족자치주가 어울려 살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곳에서 영토변경이 허용되면 도처에서 유사한 요구가 속출,엄청난 혼란에 빠져들 것이 자명하다. 그리고 이번 아제르바이잔의 경우와 같이 탈소독립요구와 민족간 분쟁이 복합적으로 그리고 타지역과 동시에 진행될 경우 민족문제는 항시 유혈사태로 발전할 소지가 크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세번째로는 앞의 두 경우와 같은 폭발력은 없지만 러시아공화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는문화적인 자치 무드이다. 각민족의 권리확대와 종교의 자유,독자 언어사용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 확대되고 있는 이런 운동은 근본적으로 앞의 두가지 흐름과 맥을 같이하면서도 지속적인 성격을 가진다. 분리요구가 가장 강하게 일고있는 발트해 3개국은 제2차대전때 소련에 합병되기전까지 높은 문화적전통을 가지고 있어 반소ㆍ반러시아 의식이 특히 강한 지역이었다. 그것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과 함께 「인민전선」등 조직적인 힘으로 발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해 4월 역시 유혈참극을 빚은 그루지야와 아르메니아는 기독교도들이 많은 지역으로 종교적으로 회교도인 아제르바이잔인들과는 충돌의 요소가 많았다. 그러던 것이 전반적인 민주화분위기와 함께 내재하던 이질감이 표출된 것으로 볼수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제 민족문제에 대한 소련당국의 기본정책에 전면적인 손질이 불가피해졌다고 보고있다. 역설적이지만 1988년 제19차 당대회에서 개혁노선의 방향이 확실히 잡혀진 이래 민족분규는 한시도 그친 적이 없다.그해 6월 에스토니에서는 자체 국기게양과 함께 에스토니아어를 공용어로 채택했다. 그리고 11월 에스토니아의회는 주권국가임을 선포하고 연방법률의 비토권을 천명했다. 발트3국중 다른 2개 공화국도 거의 같은 길을 걸었다. 89년에는 그루지야의 압하지아에서 대규모시위가 일어나 군이 투입되고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임시당대회에서는 민족문제에 관한 모종의 해결방안이 강구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고르바초프가 리투아니아방문때 밝혔듯이 소련당국의 입장으로 미루어 각 공화국의 탈소독립은 거의 실현가능성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지금까지 해온 개혁과 개방의 기조 위에 각민족의 「실질적인 자치」를 허용한다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을 수 밖에 없을 것같다. 물론 이것이 가능키 위해서는 각공화국에 경제면에서 개혁의 실질적인 과실이 돌아가고 정치의 분권화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한­알제리,대사급 수교/양국동시 발표/투자 보장협정등 곧 체결

    우리나라와 비동맹 제3세계 국가인 알제리가 16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과 알제리 양국은 이날(현지시간 15일 상오)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주재 양국대표부의 박쌍룡대사와 호신 주디대사를 통해 「한국 알제리 수교에 관한 공동발표문」에 서명했다. 양국 정부는 이날 『한국과 알제리정부는 양국간 우의와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90년 1월15일자로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의 공동발표문을 서울과 알제에서 공동 발표했다. 양국 정부는 이에 따라 이른 시일내에 서울과 알제에 각각 상주대사관을 설치키로 했다. 외무부의 고위당국자는 이와 관련,『이번 알제리와의 수교는 우리나라의 대 비동맹외교 노력의 결실이자 7ㆍ7선언의 실질적인 성과로 평가된다』고 강조하고 『이로 인해 북한도 국제현실을 인식,합리적인 개방화 정책을 추진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양국은 실질관계 증진을 위해 투자보장협정,2중과세방지협정 등을 조속한 시일내에 체결할 예정이다.〈관련기사5면〉
  • 「신정치질서」 만들기 본격화 예상/노대통령ㆍ3김회담이후의 「풍향」

    ◎정계개편 구도ㆍ대북접촉 “3야 2색”/경제난국등 현안 타개 공감대 형성/노대통령의 선택이 향후 정국 좌우할 듯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새로운 정치질서 모색이 서서히 가속화될 것 같다. 노태우대통령과 야3당 총재들간의 3일간에 걸친 청와대 개별연쇄회담이 13일로 끝남에 따라 이같은 전망이 가능해지고 있다. 이번 연쇄회담에서 1노3김은 여소야대의 현 4당체제의 기존 정국구도를 나름대로 진지하게 평가하면서 정계개편에 대한 서로의 속마음을 읽었다. 또한 ▲산업평화를 통한 경제난국 타개에 초당적 협조 ▲북방외교,남북문제에 대한 능동적 대처 ▲치안ㆍ교통ㆍ환경 등 민생문제 해결 공동노력등 국정현안 해결에 대해 공동인식을 나눴고 5공ㆍ광주 등 국회 특위의 조속한 해체,광주보상법ㆍ지방의회선거법 등 지난해 「12ㆍ15 대타협」에 따른 5공청산 후속조치의 매듭도 재확인함으로써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번 회담결과와 관련,정가의 관심을 끄는 대목은 정계개편의 향후 전개양상과 정당대표의 북한접촉및 방문으로압축할 수 있다. 우선 정계개편문제에 대해 야3당 총재들은 3당(평민ㆍ민주ㆍ공화) 2색(평민ㆍ민주­공화)의 복안을 나름대로 비쳤으나 노대통령은 「신중한 판단」을 이유로 유보적인 입장을 보였다. 물론 이것은 바깥으로 발표된 회담내용을 전제로 한 것이다. 그러나 노대통령이 야3당 총재중 어느 한 사람이나 혹은 두 사람에게 정계개편에 대한 자신의 깊숙한 복안을 설명했을 가능성이나 한 두 총재와는 서로 의중이 맞아떨어져 밀약을 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소식통은 이번 개별연쇄회담이 새로운 정치질서 모색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보느냐는 물음에 『통일에 대비하고 급변하는 내외정세에 능동적 대처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된 것으로 본다』고 말해 노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ㆍ김종필 공화당총재와의 회담에서 거론된 자유민주주의 지도세력의 대결속에 비중을 두는 듯한 감을 주었다. 이 소식통은 그러면서도 『이를위해 정치안정 정치 효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새 정치의 필요성에 인식을 일치시킨 것』이라고말해 「새 정치」가 현 4당구조의 변경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4당 질서를 유지하는 가운데 대화ㆍ타협을 통한 정당간의 정책연합이나 제휴를 강화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해 여운을 남겼다. 정계개편문제에 대해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현 4당체제 유지를 주장,부정적 입장을 피력했고 김영삼 민주당총재와 김종필 공화당총재는 현 4당구조가 지니는 지역분열성,세계정세,남북관계 급변에 따른 대응체제 미흡,정치불안 등을 이유로 들어 정계개편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평민당은 4당구조의 문제점은 대화ㆍ타협의 정치활성화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고 있고 민주ㆍ공화당은 모든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하나의 통합된 세력으로 뭉쳐야 통일과 90년대를 대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김종필총재는 90년대의 장기적 정치적 안정을 위해서는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를 바꿔가는 방향으로 정계개편을 추진해야 하고 가능하다면 금년 상반기에 하도록 되어있는 지방의회선거까지도 정계개편이후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김영삼,그리고 특히 김종필총재의 정계개편 구상은 지난해 정계개편 발언파문으로 대표위원직까지 사퇴한 박준규 전민정당대표의 구상과 일련의 맥을 같이하고 있어 더욱 주목된다. 노대통령이 이같은 3당 2색의 정계개편 입장에 어느쪽을 선택하느냐가 앞으로 정계개편의 풍향을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은 틀림없다. 노대통령은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나 그 시기문제는 당분간 계속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여론 추이 주시,각계각층 의견수렴」과 「신중한 검토」라는 원칙적인 입장만을 밝힌 노대통령은 분명히 정계개편의 복안을 갖고 있을 것으로 보이나 좀체로 이 카드를 내보이지 않을 것 같으며 다소 시간을 끌 가능성이 큰 것 같다. 노대통령이 선택할 수순은 우선 현 여권 결속강화와 함께 2월 임시국회에서의 타협정치의 결과를 보면서 그리고 지방의회선거 대비과정에서의 민주ㆍ공화당의 움직임을 종합평가한 뒤 「결심」을 하는 것이 아닐까 관측된다. 정당대표의 북한접촉ㆍ방문문제는 김대중총재의요청에 노대통령이 「긍정적 검토」 의사표시를 함으로써 주목을 끌었다. 김대중총재가 이 문제에 대해 이니셔티브를 쥐고 적극적인 태도를 나타낸 데 비해 김영삼ㆍ김종필총재는 「신중한 대응」을 촉구함으로써 제동을 거는 입장을 취했다. 평민당측은 정당대표 파북문제를 노대통령이 양해,수용했다고 발표한 반면 청와대측은 야당총재의 제의에 대해 『정부가 승인하고 협조하는 바탕위에서 검토하겠다』는 일반론적 답변을 한 것이라고 말해 「발표의 뉘앙스」에 차이를 주게 했다. 여하튼 김대중총재의 이같은 제의의 배경에는 ▲통일논의의 주도권 장악 ▲차기 대권경쟁에서의 유리한 고지 선점 ▲공안정국에서 입은 「상처」 치유 ▲보안법 개폐의 당위성 확보 ▲정계개편 정국의 전환 등 다목적용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정치적 접촉면에서 사실상 교착상태에 있는 남북관계의 어떤 돌파구를 찾고 정부의 대북 개방화정책에 보완적인 기여를 한다는 순수한 측면의 의의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민당 대표로서 김대중총재의 방북을 가상해 볼 때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을 고려한다면 그 실현성은 매우 불투명한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얘기한 「남북 최고위급당국자와 정당수뇌 협상」이 노리는 대남 통일논의 혼란,「분할 원격조정」에 그대로 이용될 우려가 있고 현재의 남북한관계나 여건이 과거 서독의 브란트가 동독을 방문했던 배경과 상황이 전혀 다르며 자칫 대권경쟁자들의 경쟁적인 북한방문을 불러 정부의 통일정책에 혼선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당대표의 파북문제는 앞으로 있을 일련의 남북대화 결과와 「자유왕래」등에 따른 노대통령의 단계적인 조치제의에 대한 북측의 반응을 종합검토한 뒤에야 성사여부가 판가름날 것 같다. 이번 청와대 개별연쇄회담은 앞으로의 정계개편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정치에 대해 국민들이 다소나마 안정감을 느끼게 해주었다는 면에서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 노대통령­김영삼 총재 무슨 말 나눴나

    ◎“정당의 대북교류 악용없게 신중히”/자유민주 전복세력엔 강력대응 노/4당구조 지속땐 정치불안 가중 김/4시간30분 대좌… 함께 숲속산책도 12일 청와대회담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총재가 의제별로 나눈 대화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계개편◁ ▲김총재=유럽을 비롯한 전세계가 개방과 화해의 물결속에 격변하고 있고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가 조만간 남북한 관계에도 밀어닥칠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세력이 지금처럼 4당체제로 나눠져 있어서는 통일문제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또 현재의 4당구조가 지속될 경우 정치불안과 경제ㆍ사회적 불안이 가중될 것이다. 특히 4당체제는 지역으로 갈라져 있어 지역감정을 격화시키고 있어 국민단합 차원에서도 정계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정계개편은 단순히 기존정당 차원의 개편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적 세력을 같이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노대통령=정계개편 문제야말로 나라의 장래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 만큼국민 각계각층과 각 정당의 의견을 듣고 대통령으로서 신중히 검토하겠다. ▷지자제◁ ▲노대통령=지자제선거가 과거처럼 돈을 많이 쓰는 타락선거가 되면 우리 경제에 결정적 악영향을 주고 민주주의도 후퇴하게 된다. 앞으로 열릴 임시국회에서 철저한 공영제를 바탕으로 하는 선거법을 만드는 것은 물론 깨끗한 선거가 이뤄지도록 여야가 공동대처해야 한다. ▲김총재=90년대는 주민참여에 의한 지방화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나가야 하고 지방의회선거는 금년 상반기내에 실시돼야 한다. 부작용이 나타날 소지가 있는 비례대표제는 도입치 않는 것이 좋겠다. ▲노대통령=찬성한다. 그리고 지방의회 의원정수도 지나치게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민정당안을 따를 경우 의원수가 6백30명이고 민주당안을 따르면 8백60명인데 민주당안보다 가능한 한 적은 방향으로 합의하자. ▲김총재=동의한다. ▷법률개폐◁ ▲김총재=5공청산의 정치적 마무리를 위한 후속조치가 마련돼야 하며 2월 임시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의 개폐,광주희생자 명예회복과보상에 관한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 또 경찰중립화법ㆍ노동관계법 등 민주개혁입법도 이뤄져야 한다. ▲노대통령=국가보안법은 우리의 안보현실에 비추어 볼 때 폐지란 있을 수 없다. 기본골격을 유지하고 필요한 부분만 손질토록 해야 한다. 광주보상법은 국회 법사위에서 다루도록 하되 다른 보훈대상자와의 균형을 이루는 방향으로 보상토록 하자. 경찰중립화법도 행정개혁위원회안을 바탕으로 한 정부안을 토대로 신중히 협의해 나가기로 하자. ▲김총재=국가보안법과 안기부법은 현행법을 살리는 방향에서 신중히 개정을 검토한다면 양해하겠다. ▷남북문제◁ ▲노대통령=남북 관계개선을 위해 필요한 경우에는 정당차원에서도 정치인간의 교류를 추진해 나가되 북한에 악용되는 일이 없도록 신중히 대처해야 할 것이다. ▲김총재=북한과 경쟁하는 시대는 지났기 때문에 정부가 남북간 교류ㆍ협력은 물론이고 정치ㆍ군사문제에 대해서도 적극적이고 과감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통신ㆍ통행협정 제의와 팀스피리트 참관초청등의 몇가지 조치는 전향적인 것들로 평가하나 현실적인 실천이 중요하다. ▷경제ㆍ민생문제◁ ▲노대통령=올해 노사분규는 우리 경제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사분규가 노사의 차원을 떠나 민주주의체제를 전복시키려는 폭력세력과 결탁할 때 정부는 법에 따라 강력한 조치를 취하겠다. ▲김총재=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정부가 과단성 있는 조치를 취한다면 협조하겠다. 대기업 경제력집중 완화와 분배의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과감한 정책적ㆍ제도적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노태우대통령과 김영삼 민주당총재와의 12일 청와대 단독회담은 전날 노­김대중회담과 똑같이 상오 10시30분에 시작되어 하오 3시에 끝남으로써 회담시간면에서 양 김총재는 4시간30분이란 타이기록을 수립. 이날 회담이 끝난 뒤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회담시간이 전날과 똑같은 데 대해 『손님이 일어서지 않는데 주인이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느냐』고 말해 김영삼총재가 회담시간에 매우 신경을 썼음을 짐작케 했다. 이대변인은 회담분위기에 대해 『화기가넘치는 가운데 솔직하고도 진지하게 진행됐다』면서 『두분 사이에 현안에 대해 특별히 이견을 보였다고 할만한 것이 없을 정도』라고 전언. 오찬이 끝난 하오 1시10분쯤 김총재가 『바깥바람이나 좀 쐬까』고 제의해 노대통령과 김총재는 청와대 본관을 나와 동쪽 산책로를 따라 나란히 숲속을 걸었고 이어 한옥식 연회장인 상춘재를 둘러보면서 그 앞뜰인 녹지원을 거니는 등 약 15분 동안 망중한을 즐겼다. ○…이에 앞서 노대통령과 김총재는 본격적인 회담에 들어가기전 먼저 커피를 마시면서 날씨와 가족얘기등을 화제로 약 7분여 동안 환담. 회담테이블 옆 응접테이블에 앉은 노대통령과 김총재는 날씨와 가족얘기부터 시작했는데 먼저 김총재가 『금년은 날씨가 따뜻해 감기에 걸려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하자 노대통령은 『농사를 위해서는 날씨가 좀 추워야 하는데 그래도 서민들을 위해선 따뜻한 것이 낫지 않겠느냐』고 응수. 이어 노대통령은 『새해에 고향에 다녀오셨다는데 부친의 건강은 요즘 어떠시냐』고 묻자 김총재는 『금년음력설을 지내면 팔순이 되시는데 건강이 많이 좋아지셨다』고 하자 노대통령은 『나도 팔순이 넘는 어머님이 계시는데 노년에 좀 모셔보려고 서울에 오시라 해도 사흘을 견디시지 못하고 내려가신다』고 했으며 김총재는 『저의 아버님도 서울에 오시면 답답해 하시며 곧 내려가신다』며 웃음. 이어 노대통령은 김총재를 회담테이블로 옮기도록 권유한 뒤 커피를 시키면서 『우리가 자주 만나 허심탄회하게 국정을 논의하는 것은 좋으나 어제는 시간이 너무 걸려 고단하더라』고 우회적으로 회담시간이 너무 길어지지 않도록 당부하기도. ○…청와대회담을 마친 김영삼총재는 이날 하오 3시20분쯤 당사에 돌아와 『가벼운 마음으로 진행된 유익한 회담이었다』며 차분한 표정으로 내용을 설명. 김총재는 관심이 집중된 정계개편 문제에 대해 『노대통령이 4당체제가 안되겠으며 정계개편을 해야 한다고 한 김총재의 말은 어떤 뜻이냐고 물었다』면서 『이에 대해 긴 설명을 했다』고 소개. 김총재는 남북 교류문제와 관련,『나는 다방면에서 우위에 있는 우리가여유를 갖고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노대통령이 정당대표의 북한접촉이나 방문은 간단히 결정할 수 없고 신중히 해야 한다고 분명히 했다』고 전해 지난 11일 노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총재간 회담결과로 평민당이 추진중인 평양방문이 쉽지 않을 것임을 은근히 시사. 한편 민주당은 회담후 청와대측이 『국가보안법을 개정하는 선에서 유지키로 합의했다』고 발표하자 『김총재는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형법ㆍ외환관리법ㆍ여권법 등에 필요한 조항을 분산수용한다는 당론은 그대로이며 총무나 법사위 차원에서 협의키로만 합의했다』고 이를 부인.
  • 향후 정국구도ㆍ운영 “의중읽기”/노대통령­김대중총재 무얼 논의했나

    ◎개편원칙만 피력,최종복안은 유보­노대통령/대화 앞세우며 “4당체제 고수” 분명히­김 총재/경제ㆍ민생ㆍ남북문제엔 공동노력 흔쾌히 합의 정치권 수뇌부들간의 정계개편에 대한 속마음 읽기 대좌가 시작되었다.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총재와의 11일 회담을 시발로 12ㆍ13일 잇따라 열리는 노대통령과 야3당 총재와의 청와대 개별회담은 이같이 향후 정국구도와 관련된 깊숙한 의견 교환이 큰 흐름을 이룰 것같다. 노대통령은 김대중총재와의 회담에서도 그랬듯이 정계개편에 따른 자신의 최종 복안을 일단 유보한채 야당 각 총재들의 내심을 읽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인위적 정계개편 불가」 「국민여론 수렴후 신중한 판단」이란 원칙만을 피력하고 있는 노대통령은 이번 일련의 회담에서 평민ㆍ민주ㆍ공화당이 각기 민정당과는 제휴의 가능성이 있다는 감을 가질 수 있도록 적절히 줄을 놓았다 당겼다 할 것으로 예상된다. 11일의 노대통령­김대중총재 회담에서 김총재가 현 4당구조를 깨지 않고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이룩할 수 있다고강조함으로써 기존의 4당체제 유지입장을 분명히했다. 이에대해 노대통령이 『다른 야당의 의견도 들어보고 정국움직임도 봐가며 국민여망도 좀 더 지켜보겠다』고 유보적인 자세를 보인 것은 현시점에서 정계개편의 방향이나 복안을 꺼내는 것은 적절치 못할 뿐아니라 섣불리 평민당 입장에 동조했다가 민주ㆍ공화당과는 등을 돌리는 형국을 연출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같다. 노대통령이 야3당 각각에 여권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감을 계속 가지도록 하는 것은 야로부터 정국운영에 협력을 끌어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평민당의 현 4당구조유지 입장은 지난해 3월 중간평가 연기이후 제1야당으로서의 지분이상으로 정국주도권을 누려온 지위를 그대로 끌고나가고 동시에 민정ㆍ평민 중심의 정국운영축이 가동될수록 민주당이나 공화당이 그 세를 잃어나가게 되므로 자연히 차기대권 경쟁이 본격화될 시점에는 민주당과의 격차를 크게 벌려지게 할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있다. 이날 회담에서 노대통령이 『국가운영이나관리,경영에 여당이 독식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밝힌 것은 평민당으로 하여금 정국운영에 협조해 줄 것을 단순히 당부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만 곰곰 씹어보면 정계개편과 관련한 대야 다목적카드도 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경영ㆍ관리의 여당독식반대는 뒤집어보면 국가경영ㆍ관리의 야당참여로 해석되며 이를 현실정치에 대입해 볼때 야당도 내각에 들어가는 연정과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이다. 대결ㆍ투쟁의 정치가 대화ㆍ타협의 정치로 바뀌기위해서는 정치의 인식이나 사고가 연정적 사고로 가야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정계개편과 「국가경영ㆍ관리의 야당참여」를 서로 교차시켜보면 결국 다수 정당의 연합형태로 정부를 운영하는 것이 되고 이는 바로 내각제를 상정하는 것이 된다. 평민당으로서는 현 4당구도유지를 선호하고 있기 때문에 노대통령의 이같은 「국가경영의 여당독식반대」발언은 평민당이 과거처럼 여권의 정국운영에 협조하지 않으면 다른 야당과의 협력을 구할 수밖에 없다는 대평민 「경고용」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노­김대중회담이 경제난국 극복,민생문제 해결,남북 관계문제에 대해 흔쾌히 공동노력을 하기로 합의한 것은 정치판이 자칫 다시 짜여질지도 모르는 판에 「작은 일」로 여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평민당측의 계산에 힘입은 것 같다. 이날 회담에서 특기할 대목은 정부의 승인ㆍ협조를 전제로 정당대표의 북한방문을 노대통령이 적극 검토키로 한 것이다. 이것은 김대중총재의 요청에 대해 노대통령이 검토를 다짐한 것인데 앞으로 남북관계 상황진전에 따라서는 김대중총재가 북한을 직접 방문해 보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북방외교에 관한한 민주당의 김영삼총재에게 선제를 당하고 있는 김대중총재가 북한방문을 통해 이를 일거에 만회하겠다는 고려도 했음직하다. 노대통령의 검토의사표시는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야당도 모든 노력을 다하고 남북한 당국간의 공식대화 통로를 분명히 인정한다는 김대중총재의 다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자제와 관련,연합공천문제가 얼마나 논의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평민당 입장으로서는지역감정해소차원에서 민정ㆍ평민당간의 지역별 연합공천의 가능성을 타진했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대해 노대통령은 구체적인 언질을 하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안기부법,보안법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의 폭이 컸으나 오는 2월 임시국회에서 광주보상법등 다른 5공청산 후속조치와 함께 타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담은 기본적으로 경제ㆍ사회 등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되어왔던 과거의 정치행태를 청산하고 정치가 나라발전을 뒷받침토록 하자는 입장에 공감함으로써 새해 정국운영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임을 예고해 주었다는데 큰 의의가 있다. ◎노대통령­김총재 대화요지/4당제 불편해도 민주화에 기여­노/정당별로 독자대북교류 바람직­김 청와대회담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의제별로 나눈 대화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계개편◁ ▲노대통령=현재의 4당구조가 불편한 것은 틀림없지만 민주화에 상당히 기여했다. 중요한 것은 여야간 협력관계를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이지 개편이 아니다. 정계개편을 해서 협력관계가 더욱 좋아진다면 바람직하지만 협력관계가 나빠진다면 문제가 생긴다. 다른 야당의 의견을 들어보고 국민여론을 지켜보겠다. ▲김총재=어제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보혁구도의 비현실성,인위적 정계개편반대의사에 동감한다. 보혁구도는 우리현실에 맞지 않으며 우리나라엔 혁신을 자처하는 정당이 없다. 4당체제는 국민들이 선택한 것으로 타협정치의 가능성을 보이고 많은 일을 했다. 박준규 전민정당대표가 밝힌 정계개편구도는 대통령이 양해한 것인가. ▲노대통령=그렇지 않다. ▷지자제◁ ▲노대통령=지난 연말 통과된 지방자치법에 올해 6월까지 지방의회선거를 실시하도록 돼 있으므로 국회에서 관련선거법안을 합의하면 차질없이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할 것이다. 지방의회 선거시기는 평민당측에서 앞당겨서 하자는 것 같고 공화당은 조금 늦게하자는 것 같은데 다른 야당총재들의 의견을 들어보고 협의해 결정토록 하겠다. ▲김총재=90년대에는 지방화시대ㆍ국민정치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상반기 지방의회선거ㆍ내년 단체장 선거가 이뤄질 수 있도록 단체장선거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선거법을 통과시켜야 한다. ▷광주보상문제◁ ▲노대통령=12ㆍ15 청와대타협의 후속조치가 차질없이 실천될 수 있도록 광주특별보상법을 임시국회에서 통과시켜야할 것이다. 보상은 다른 보훈대상자와 균형을 이루는 방향에서 여야가 협의하도록 해야한다. 상무대의 공원화문제는 광주시민의 의견을 좇아 결론을 내리겠다. 기념관을 건립할 경우 광주의 아픔과 상처가 연장되고 지역감정의 치유가 아니라 확산될 우려가 있어 기념관 건립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김총재=정부 여당은 2월 임시국회에서 성의를 다해 시민의 명예회복,유가족과 희생자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80년 당시 처벌된 의거관계인사들을 위한 특별재판소창설,정부 사과,기념일 제정,상무대의 기념성지조성 등 약속을 차질없이 이행해야 한다. 기념관건립은 아픔을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화합에 보탬이 되도록하면 될 것이다. ▷법적 청산◁ ▲노대통령=북한은 4대군사노선과 대남적화야욕등 기본노선을 전혀 바꾸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가보안법은 기본골격을 유지하고 필요한 부분만 손질하는 방향으로 논의해야 된다. 안기부법은 개정보다는 적용과정이 중요하다. 경찰중립화는 야3당 주장처럼 일거에 추진하면 곤란하다. 야당이 경찰을 마음대로 흔들려는 것도 문제다. ▲김총재=5공청산마무리 작업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마쳐야한다. 현 보안법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설정하고 있는데 현재의 법을 놔두고선 금강산개발ㆍ남북교류ㆍ자유왕래를 뒷받침할 수 없다. 안기부는 국내정치문제에 손을 떼고 해외문제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경찰중립화문제도 지금까지 여당이 경찰을 마음대로 한데서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남북문제◁ ▲김총재=대통령이 제안한 남북 정상회담,북한이 제안한 남북당국및 정상수뇌협상회의와는 별도로 남한의 각 정당이 정부당국과의 사전 연락하에 북한당국과 접촉하는 것을 정부가 수용하도록 제안한다. 각정당은 독자적으로 북한과 교류하되 그 절차에 있어서는 정부와 연락하고 협조를 얻어서 추진할 것이다. 남북간 TVㆍ라디오 상호개방문제와 관련,우리나라만이라도 먼저 북측의 라디오나 TV를 시청ㆍ청취토록 허용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노대통령=적극 동감한다. TVㆍ라디오 개방문제는 북측에서 응하지 않을 경우 우리측에서 만이라도 북측의 라디오부터 청취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 ▲김총재=우리는 지금 쌀의 과잉보유로 그 관리에 부심하고 있다. 우리의 쌀과 북한의 제공가능한 물자와의 교환을 실현토록 하면 좋을 것이다. ▲노대통령=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는데 어려움이 있다. 남북물자교류는 현재 검토하고 있다.
  • “지속적 경제개혁… 분배정의 실현” 노대통령 연두회견 내용

    ◎폭력ㆍ불법분규엔 단호히 대응/제2세제 개혁추진ㆍ토지공개념 차질없이 시행/경찰력 총동원,민생치안 확립 ▷국정운영 기조◁ 1990년대는 이 세기에 들어와 어느 민족보다 가혹한 시련을 겪어온 우리 민족의 소망을 이루는 「희망의 연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염원해왔습니다. 3년전 6ㆍ29선언을 출발점으로 우리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이 모든 헌정사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민주주의의 큰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욕구와 갈등이 무절제하게 분출되면서 우리 모두는 지난 3년간 큰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질서 위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경제난국 극복◁ 우리는 지금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90년대의 첫해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정치ㆍ사회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당면한 난국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확고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기업인과 여유있는 계층이 절제와 희생을 솔선수범해주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전체 경제를 살리면서 각 계층의 욕구를 점진적으로 실현해가는 슬기를 발휘해야 이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수출과 제조업,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기업의 체질과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대한의 지원을 할 것입니다. 인재의 육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첨단기술산업의 육성 등을 통한 선진국형 산업구조로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3년 임기동안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개혁을 결연한 의지로 추진하고 경제발전의 결실이 우리 사회 보통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희망의 사회」를 건설해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불법과 폭력에 대해서는 노사 어느쪽을 막론하고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쾌적한 사회건설◁ 정부는 우리경제의 갈등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경제개혁을 착실히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성실히 일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사회」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첫째,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 개혁을 밀고 나갈 것입니다. 올해부터 토지공개념관련 법률과 종합토지과세를 차질없이 시행하고 제2단계 새제개혁을 추진할 것입니다. 둘째,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할 것입니다. 또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도록 유도하여 근대적 경영구조가 뿌리내리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92년까지 주택 2백만호를 건설하여 주택문제를 해결해 나갈것입니다. 넷째,92년까지 16조원을 투입하여 농어촌종합발전대책을 추진합니다. 다섯째,올해 지방자치의 실시와 함께 경제ㆍ행정ㆍ교육ㆍ문화의 기능이 지방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국가발전의 힘이 지방으로부터 창출되는 지방화시대를 열 것입니다. 여섯째,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도로ㆍ철도ㆍ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을 커가는 경제규모에 모자람이 없도록 확충할 것입니다. ▷5대 당면과제 해결◁ 나는 국민생활과 직결되어있으며 우리의 밝은 미래을 위해 시급히 서둘러야 할 민생치안ㆍ교육개혁ㆍ과학기술진흥ㆍ깨끗한 환경보전ㆍ교통난의 개선,이 다섯가지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입니다. ①민생치안=범죄예방과 범인검거에 모든 치안능력을 투입하겠습니다. 경찰인력과 체제,통신기동장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것입니다.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장래의 길을 터줄 수 있도록 교육체제를 고치고 여가를 건전하게 보내는 문화ㆍ체육 공간을 늘리는 등 근본적 대책을 추진하겠습니다. ②교육개혁=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우수한 인력이 고등학교 단계에서 양성되도록 고등학교 교육체제를 개혁하겠습니다. ③과학기술진흥=앞으로 10년안에 우리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최첨단 반도체ㆍ슈퍼 컴퓨터ㆍ통신위성을 우리 손으로 만들고 신소재ㆍ광산업ㆍ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④환경보전=상수도원을 정화,보전하고 현재 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하수처리율을 빠른 시일안에 높이도록 할 것입니다. ⑤도시교통난 개선=지하철 건설,도로망 확충,주정차 공간확장 등 도시교통문제 개선에 과감한 투자를 해갈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개선◁ 우리는 미국ㆍ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의 전통적인 우방과 더없이 공고한 관계를 이룬 바탕 위에서 이제 본 궤도에 오른 북방정책을 더욱 내실있게 추진해갈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다함께 번영을 누려야 할 같은 민족공동체로서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여 개방으로 나오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분단 반세기를 앞둔 이제 남북한은 상호 신뢰의 바탕 위에서 대화ㆍ교류ㆍ협력을 통해 통일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합니다. 민족통합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이 문제는 남북당국,특히 그 최고책임자간의 회담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왕래ㆍ전면개방의 합의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서신교환과 전화통화ㆍ남북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부터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측이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하며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추진할 것입니다. 북한이응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금강산을 포함한 관광자원 등을 공동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한간의 물자교역도 게속 추진하여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해나갈 것입니다. 남북대화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올해 팀스피리트훈련은 축소하여 실시하기로 한미간에 합의하였습니다. 우리는 방어목적의 이 훈련을 직접 참관하도록 북한과 중국 및 중립국 감시단 4개국을 초청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북한이 실시하고 있는 군사훈련을 우리도 참관할 수 있도록 조처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2천년대의 설계◁ 우리가 모든 역량을 뭉쳐 우리가 맞고있는 도전을 이겨가면 10년후 서기 2000년의 우리나라는 수출 2천억달러,국민소득 1만5천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균형발전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가면 근로자와 서민이 어렵잖게 내집을 갖고 수입의 상당부분을 저축하며 더 밝은 내일을 설계하는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남북한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져 헤어진 가족과 친척을 만나며 금강산과 백두산을 가보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정당연합ㆍ통합 검토한적 없다”/노대통령 연두회견 일문일답

    ◎보안법 개정 신중… 「광주」보상 서둘러야/교통난 해소위해 10년간 60조원 투입/「친인척 후계」 있을수 없어… 전당대회 통해 후보 선출 ­정계개편 움직임에 대해 어떤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하시며 민정당과 평민당 간의 정치연합설의 진위와 가능성에 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지금 주로 야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정계개편이나 연합움직임은 4당구조가 지역적으로 편중되어 있고 지역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바람직스럽지 못한 측면에서 국민들이 정치가 불안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 등에 연유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개편이나 연합이란 문제들은 인위적으로 급작스럽게 이루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내가 속해있는 민정당은 지금 뿐 아니라 전부터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이 추측하듯 어느 특정야당과의 제휴는 검토하지 않았습니다. 국민여론을 더욱 신중하게 수렴하고 또 정치상황의 전개양상을 본후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되겠다고 생각합이다』 ○「보혁개편」 어려워 ­보혁구도로의 정계개편,정당간의 연합과 통합방식중 어느쪽이 여권으로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시며 정계개편은 언제까지 끝나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 민정당의 활짝 열린 문으로 야당이 들어오도록 하기위해 민정당의 기득권이나 대통령의 총재직 포기도 고려하실수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어느 정당이건 기본적인 이념과 지향하는 노선을 기초로한 정책정당을 만들어나가야 할 것입니다. 어느 개인이나 특정인을 위주로 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이런 입장에서 우리나라의 보혁구도를 말할때 보수는 그런대로 전통이 서있다고 생각하나 혁신세력은 아직 기반이 매우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4당구조가 어려운 구도이지만 이런 타협으로 그 구도속에서 계속 나갈수도 있으며 국회에서의 법률통과나 정책문제등에 대해서 제휴를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연합 또는 통합문제에 대해 여러 얘기가 진전되어 나가는 듯한데 앞에 말한대로 아직까지 이 문제에 대해서 내가 구상이나 검토한 적은 없습니다. 시기문제도 구체적으로 구상하지 않았기 때문에 분명히 밝힐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연정구상 또는 야당인사의 내각기용을 고려한 바 있으신지와 국민의 심판없는 정계개편이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의견을 말씀해 주십시오. 『의원들이 당적을 옮기는 것은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만큼 앞으로 정치상황발전에 따라 당간에 연합도 되고 통합도 되는 정계개편이 이룩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원해서 여소야대의 상황이 된 만큼 그대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에는 의견을 달리합니다. 다른 민주국가들에서도 처음 선거할때 모습이 발전과정에서 딴 모습으로 변화된 경우가 많습니다. 변화된 것이 잘됐느냐 못됐느냐는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심판 아래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입장에서 여러가지 융통성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헌법에 어긋나는 조기선거 등은 불가하며 이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것이 나의 생각입니다』 ­금년 상반기중 지방의회 구성이 예정대로 이루어질지와 연합공천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잇따른 선거로 예상되는 금권타락 등을 막기위한 제도적 장치를 구상하고 계신 것이 있으면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지자제선거는 법대로 금년 상반기에 실시해야 되리라 봅니다. 연합공천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현재 당의 구조가 지역성이 강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지역성을 배제하는 뜻에서 연합공천의 장점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방화시대 및 권력의 지방분산이라는 차원에서는 중앙에서 연합공천 등으로 너무 관여하게 되면 지방의 특색을 약화시키는 단점을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시행과정에서 여러가지 장단점을 고려해 대국적 차원에서 추진해나가야 되리라고 봅니다. 선거풍토에 관해서는 앞으로 지방자치에 대한 선거법을 여야합의로 만들어 낼 것이고 그 과정에서 여타 선거법에 미진한 점을 충분히 보완해 나갈 것입니다. 또 정치자금법도 새로이 개정되어 나갈 것입니다』 ○후보 1년전에 결정 ­집권중반기를 맞아 후계구도가 언제쯤 구체화되어야 하며 또 어떤 인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울러 차기대권경쟁자속에친인척도 포함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대통령에 취임한지 2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후계자ㆍ후보자 하게 되면 우리 정치체제의 체질로 보아서는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내 스스로는 대통령선거 1년전에 당의 전당대회를 통해서 후보자가 선출되는 것이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합니다. 후보자는 미래의 변화에 대응력을 갖추고 국민에게 희망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적절한 결단력을 갖춘 사람이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잡지ㆍ신문들이 후보자에 대해 별의별 억측을 하고 있습니다만 나의 친인척 중에서 후보자ㆍ후계자 운운하는 것은 나의 진심을 모독하는 것이며 대상이 되는 친인척에게도 불편함과 사생활을 제약하고 모독하는 등 침해를 주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친인척중에서 후보자가 나온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을 이 자리에서 다시한번 강조합니다』(이 대목에서 노대통령은 계속 정치질문만 받는데 우리나라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인 경제질문을 받아보자며 질문을 경제부문으로 유도.) ­선거때만 되면 여야를막론하고 당선을 위해 경제원칙을 무시하고 정치공약을 남발해 온 것이 사실인데 대통령께서는 정치우선의 경제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가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될수있는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경제를 위시한 딴분야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90년도부터는 앞에서 끌고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하자고 여야총재회담에서 굳게 다짐했습니다. 이런 원칙을 바탕으로 가능하면 돈 안드는 선거,경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선거가 되도록 선거법도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정치를 운용하는 사람들도 국민뜻을 받들어 경제를 위시한 다른 분야에 지장을 주지 않는 방향으로 획기적인 개선을 해야하며 나는 여의 입장에서 그렇게 할 것이며 또 야도 그렇게 하리라 기대합니다』 ○내각 개헌논의 일러 ­임기중 내각제 개헌을 추진할 용의가 있으신지,국정 경험을 통해 현행 헌법의 개정을 검토해 보신적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6ㆍ29선언때 대통령직선제가 국민의 뜻이란 차원에서 이를 수용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직선제에 단점이 있다고 해서 내각제 개헌논의를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어느 시점에 가서 대통령중심제의 헌법을 고쳐야 할 일이 있다거나 딴 방향으로 나가야겠다는 전체국민의 뜻이 있다면 전혀 가변성이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국민의 뜻을 따라야지요. 그러나 이 순간에 국민의 뜻이 당장 헌법을 바꿔 내각제를 하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권내부의 결속을 위해서 어떤 구상을 갖고 계시며,결속차원에서 정부와 국회직의 개편은 언제쯤으로 계획하고 있습니까. 또 전두환 전대통령과의 면담 및 앞으로의 거취문제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당론을 정하기전까지는 여러 의견이 나올 수 있겠지만 일단 당론이 결정되면 모두가 흔쾌히 당론에 따라야 합니다. 그 당론을 따르는 문제에 있어서 약간의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나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당의 체질이 훨씬 더 강해졌고 그런 과정을 겪지 않았던 과거보다 오히려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고 믿습니다. 전임대통령과의 면담문제는 이제는 이분과관련한 정치적인 모든 문제는 끝마무리 지어졌기 때문에 편리한 시기에,또 여건이 된다면 자유스럽고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지 만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내일부터 있을 청와대개별연쇄회담에서 정계개편ㆍ지자제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나가실 것인지와 보안법ㆍ안기부법 개폐문제 등 지난 청와대 회담대타협 후속조치는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지난시대의 문제는 작년 12월15일 역사적 대타협으로 종결되었으며 법률개폐등 후속조치도 여야협의정신에 따르리라 생각합니다. 이북이 국가보안법 개정을 제일먼저 주장하고 있는데 물론 남북교류 및 남북대화에 걸림돌이 되는 면은 개정을 해야 될 것이지만 이북이 대남노선을 변경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남북대화를 해나가고 북한이 더욱 협력자세로 나올 수 있는 면을 염두에 두고 신중하게 개정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광주보상법에 대해서도 여야가 빨리 협상을 통해 결론짓고 하루속히 희생자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실질적인 생활상의 편의를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내일부터 있을 연속 총재회담에서 3당중 어느 분도 과거문제를 가지고 씨름하고 갈등을 일으키려는 분은 한분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분들이 우리가 당면한 경제활력회복문제ㆍ산업평화를 어떻게 실질적으로 이룩할 것인가,지방자치제를 통해 어떻게 민주주의를 지방화할 것인가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가 있으리라고 기대합니다』 ­기업은 정부정책이 때를 맞추지 못해 어렵고 경제정책 시행과정에서 부처간에 불협화음으로 사업하기가 어렵다는 얘기가 있는데 대통령께서는 긴급명령권이라도 발동해서 경제를 살릴 각오가 되어 있으신지요.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정치불안ㆍ극심한 노사분규ㆍ심한 임금인상ㆍ환율등의 경제외적인 요인이 많은 것으로 여러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경제를 과거 10년 20년 되돌아 봤을 때 70년대 1ㆍ2차 오일 쇼크,80년대 인플레가 무려 40%가 넘고 마이너스성장 6%라는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던 때가 많았지만 우리는 극복했습니다.이런 점에서 오늘의 상황은 대통령이 비상조치권을 내려야할 만큼 극복할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로자ㆍ기업인ㆍ정부ㆍ정치인 모두가 한마음으로 화합하고 단합만 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씀드립니다』 ○지하철 대폭 확충 ­국민들은 하루종일 교통지옥에 시달리고 있는데 교통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이신지 말씀해 주십시오. 『앞으로 정부시책의 우선 과제는 교통문제 해결에 두고 있으며 세계잉여금을 이곳에 집중투입한다는 것도 다 잘 아실 것입니다(이 대목에서 노대통령은 배석한 고건 서울시장에게 서울의 지하철 확장계획을 답변토록 했고 고시장은 현재 1백16㎞가 있고 앞으로 1백50㎞의 제2지하철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제1단계로 47㎞를 공사중에 있다고 답변). 전철의 대폭 확충ㆍ서해안고속도로 등 고속도로의 망사형 건설ㆍ남북 및 동서간 고속전철건설문제 등 거대한 프로젝트들이 앞으로 10년간 60조원의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진행됩니다. 정부주도로 실천해 나가겠지만 차를 가진 사람과 자동차를이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참고 양보하면서 노력해야만 우리가 이 어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남북 실질교류”… 통일 향한 새 지표 제시

    ◎정계개편 당위성 인정… 구조변화 예고/국민 자제 호소… 경제난국 타개 적극적/노대통령 연두회견 함축 노태우대통령의 10일 연두기자회견은 본격적인 집권 중반기를 맞은 국내 정치구도ㆍ남북관계 개선ㆍ경제난 극복문제 등에 대해 자신의 구상을 가식없이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그의 국내 정치분야에 대한 답변내용을 분석해보면 정계개편의 속도가 일반적인 관측보다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4당체제 정치질서가 어떤 식으로든 변할 것 같다. 노대통령은 현 4당구조는 지역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고 여소야대 현상은 정치적 불안을 가져오고 있다고 말해 현 정치질서의 변화에 대한 당위성을 지적했다. 또 정계개편과 관련해 ▲의원들의 당적 이전의 자유는 법에 보장돼 있고 ▲민정당의 문은 열려있다고 상기시킴으로써 개편의 여건은 갖춰져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계개편의 촉진요소와는 반대되는 제동요소로서 ▲인위적 개편 불가 ▲보혁구조의 비현실성 ▲조기총선 불실시 ▲내각제 개헌 시기상조의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주목된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정계개편의 방향은 「촉진요소」와 「제동요소」의 중간지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민주ㆍ공화당의 합당 성격의 보수대연합이라든가,민정ㆍ평민당간의 정치연합설ㆍ대연정설은 모두 배제하면서도 여소야대를 타파하는 수준에서 민정당이 일부 야당의원을 영입하거나 아니면 특정 정당과 국회운영에 있어 지속적인 제휴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노대통령의 복안이 아닌가 싶다. 정계개편문제가 야권으로서는 차기대권 향방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면 노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집권 중반기이후의 통치구조를 견고히 한다는 데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계개편과 맞물릴 수 있는 내각제 개헌문제를 현재로서는 고려하기 힘들다고 한 것이나 여권내 후계구도와 관련,조기 거론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분명히 잘라 말한 대목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친ㆍ인척 가운데 차기 후보자 후계자 운운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인데 이는 시중에 일부 나도는 김복동씨나 박철언정무장관의 대권주자 관측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해석된다. 노대통령의 이날 회견중 국내 정치부분이 은유법을 사용한 것이라면 남북한문제ㆍ경제문제 등은 직설법을 사용해 분명한 방안과 조치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북 관계개선문제와 관련,주목되는 것은 북한 김일성의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환영,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 단계적인 실현방안을 역제의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김일성이 자유왕래등을 위해 「남북한당국 및 각 정당협상회의」의 개최를 주장한 데 대해 『북한측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다』면서도 자유왕래,완전개방의 합의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서신교환,전화통화,이산가족들의 왕래부터 실현시키자며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제의했다. 또 양측의 신뢰회복을 위해 한미간의 팀스피리트훈련 규모를 축소하고 북한ㆍ중국 및 스웨덴 스위스 체코 폴란드 등 중립국 감시위원단의 훈련 참관을 촉구하기까지했다. 노대통령의 이번 대북제의를 요약하면 전면개방원칙 환영→단계적개방안(60세 이상의 노인 이산가족 왕래,전 이산가족 왕래,서신교환,전화통화 등을 위한 통행통신협정 체결) 제시→신뢰회복 위해 상호 군사훈련 참관→통상 추진,경제공동체 건설(금강산등 관광자원 공동개발ㆍ물자교류)→전면개방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또 이런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남북당국 특히 남북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적극적인 대북개방화 유도제의는 6공화국 들어 가속화하고 있는 북방정책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북한의 수용여부에 따라서는 남북한 관계개선의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면 경제난 극복과 관련해서는 「대국민 호소」와 함께 경제정의 실현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기업인과 「더 가진자」의 자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한편 근로자와 전국민의 자제와 협력을 호소했다. 경제의 갈등구조를 해소하고 분배와 복지를 통해 「희망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토지공개념관련 법률과 종합토지과세의 시행 ▲금융실명제 실시,제2단계 세제개혁 ▲대기업 경제력 집중완화 ▲92년까지 2백만호 주택건설 ▲농어촌 종합발전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기존정책의 재확인수준에 머문 것이라고 할 수있다. 노대통령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로 민생치안,교육개혁,과학기술진흥,깨끗한 환경보전,교통난개선 등 다섯가지를 선정,결의와 의욕을 보였다. 또 현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발동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말함으로써 이의 극복에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밖에 「수출 2천억달러,국민소득 1만5천달러」 「근로자가 내집을 갖고 저축하며 복지를 누리는 사회」 등 앞으로 10년후인 「2천년의 한국」 비전을 제시했는데 이는 난국 극복의 국민적 합의를 모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대북한 제의에 담긴 뜻/신뢰성 회복 위해 북한측 입장 대폭 수용/이산가족 왕래등 실현 가능한 방안 촉구 노태우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중 남북관계에 관한 부분은 한마디로 남북한관계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입장에서 북한의 각종 대남제의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북한의 김일성이 올 신년사에서 제의한 「남북한간의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환영한다」는 표현으로 수락함으로써 김일성의 제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한편 자유왕래를 위한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제안,대외선전용일 수 있는 김일성의 막연한 제의를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대통령은 또 「전면개방」에 앞서 남북간에 편지교환이나 전화통화부터 실현시키고 아울러 이산가족의 자유왕래,이산가족 전체가 어려우면 60세 이상의 노인부터 당장 고향을 방문하게 하자고 제안함으로써 통일을 위해서는 실현성 없는 큰 걸음보다 실현성 있는 작은 걸음부터 시작하자는 합리적인 방안을 다시한번 촉구했다. 정용석교수(단국대)는 노태우대통령이 김일성이 제의한 「자유왕래ㆍ전면개방」에 대해 『북한측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환영한다」는 말로 수락한 매우 적극적인 대북자세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며 『금강산 공동개발ㆍ남북한간의 물자교역등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앞으로 보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대북관계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수는 또 팀스피리트훈련 규모의 축소는 북한의 중단요구에는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입장을 대폭 수용한 것으로 북한측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양성철교수(경희대)는 「통일을 위한 작은 걸음마 정책」이 노대통령의 이번 대북제의의 입장인 것 같다고 말하고 김일성의 허구에 찬 자유왕래 및 전면개방 제의에 대한 노대통령의 「원칙적인 수락」은 김일성을 다시 궁지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교수는 1천만 이산가족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통신ㆍ우편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통신협정의 체결제안은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계속 거부할 경우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평길교수(연세대)는 노대통령이 제안한 금강산 공동개발문제는 북한측이 먼저 그 필요성을 역설해온 것으로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북한이 대외개방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노대통령의 대북제의가 실현될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김일성의 신년사를 엄밀하게 검토해볼 때 북한의 태도가 변했다는 징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노대통령의 대북제의가 현실성 있는 구체안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이 실질적인 성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정용석교수도 북한측이 분단이후 반세기에 걸쳐 추진해온 대남적화 책동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오늘의 남북긴장 구조는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78세의 고령인 김일성의 사후를 겨냥해서라도 노대통령이 보여준 적극적인 대응전략은 꾸준히 계속돼야 할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평길교수는 올봄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김일성의 소련방문이 북한의 정책전환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이후 김일성이 노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방화용의자 소사체로/12시간 지나 발견

    당초 경찰에 의해 방화용의자로 지목됐던 사람이 화재현장에서 12시간여만에 숨진 채 뒤늦게 발견돼 경찰과 소방관계자들이 화재 사후처리에 소홀했음이 드러났다. 9일 상오3시쯤 불이난 성동구 행당동 191의27 한양미장원(주인 한금녀ㆍ여ㆍ44)화재 현장에서 당시 미장원안에서 잠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한씨 여동생 금자씨(28)의 남편 고광옥씨(38ㆍ노동)가 불이난지 12시간반만인 이날 하오3시쯤 경찰이 뒤늦게 발견했다.
  • 전주 영생교회에 불/본관 1천여평 태워

    【전주=임송학기자】 7일 0시30분쯤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 90 대한예수교 장로회 영생교회(담임목사 강홍모ㆍ70)에서 방화로 보이는 불이 나 연면적 1천여평의 본관 2층건물을 모두 태우고 이날 상오1시30분쯤 진화됐다. 불이나자 1층 기도실에서 철야기도중이던 신도 10여명은 긴급대피,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 정부,북한에 쌀 대여 추진/개방ㆍ관계개선 유도 일환

    ◎문화ㆍ환경 회담도 제의/팀스피리트 축소… 4만 감축/남북 군축 논의할 「군비통제위」 설치/노대통령 연두회견 때 발표 정부는 6일 올해를 북한의 개방화 유도및 남북관계 진전의 최적기로 판단,팀스피리트 한미 합동군사훈련 규모를 크게 축소하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차 방북을 허용하는 등 다각적인 남북관계개선 방안을 마련,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같은 방안을 오는 10일 노태우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와 함께 오는 91년 6월로 연기한 통일원장관의 부총리급 격상문제를 조속한 시일내에 매듭지어 통일원장관이 대북전략에 관한 정책개발 등 남북관계 업무전반을 관장토록 할 방침이다. 정부는 한국군 13만명,미군 7만명(주한미군 4만명 포함) 등 매년 20만여명이 참가해온 팀스피리트훈련 규모와 관련,총규모의 20%선인 4만여명을 감축해 16만여명으로 올해 훈련을 실시키로 했다. 감축대상인 4만여명은 한국군에서 3만여명,일본 오키나와및 미 하와이에서 파견되는 미군중 1만여명 등으로 주한미군 4만여명은 감축없이 그대로 훈련에 참가한다. 정부는 최근 외교경로를 통해 이같은 훈련인원 감축의사를 미 행정부에 전달,미측으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남북교류 협력사업을 활성화한다는 차원에서 지난해 1월7일 방북한 바 있는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2차 방북을 본인의 신청이 들어오는 즉시 허용,금강산 공동개발사업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정회장의 2차 방북은 본인이 이미 희망한 4월말경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밖에도 북한내에 자유화 바람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남북 고위급 회담을 위한 예비회담 등 기존의 4개 대화채널을 적극 가동하는 한편,문화ㆍ환경 등 비정치적 회담도 새롭게 제의하는 등 적극적인 대화전략을 구사하기로 내부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북한측이 오는 22일 열자고 제의한 제8차 남북적십자 실무대표 접촉이 개최돼 제2차 고향방문단 교환문제가 본격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와 함께 북한주민의 생활 향상을 돕기 위해 현재 남아도는 쌀을 대여하거나 북한산 잡곡과 교환하는 방안도 강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또 남북간 군비통제및 군축문제 논의에 대비하기 위해 대통령 직속의 군비통제위원회(가칭) 설치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위원회는 대통령 외교안보보좌관을 위원장으로 외무ㆍ국방ㆍ통일원및 안기부 실국장들로 구성돼 군비통제에 관한 정책을 개발하고 대북 군축협상전략 개발 등을 전담할 것으로 전해졌다.
  • 미 매케인 의원 면담/주한군 문제등 논의/최 외무

    최호중외무부장관은 5일 방한중인 존 매케인 미상원의원의 예방을 받고 주한미군의 규모 및 역할변경문제,한미연합사령부의 지휘체계 그리고 동구권의 개방화 물결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최장관은 이 자리에서 『주한미군의 일방적인 감축은 북한측에 오판의 기회를 줄 우려가 크다』고 지적하고 『한반도 상황의 변화가 가시화될 때까지 미군은 현상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케인의원은 이에 대해 『재정적자 등으로 인해 해외주둔군의 감축이 불가피하지만 주한미군에 관해서는 한국의 특수한 사정을 감안해서 처리하겠다』면서 『미군의 단계적 철수 등은 반드시 한국 정부와 사전협의를 거쳐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존 매케인상원의원은 5일 하오 서울 미문화원에서 한국은 주한미군의 병력수준과 구조에 대한 장기적 조절의 필요성을 감안,방위면의 기여도를 크게 늘리고 미군을 한국에 배치하는 직접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변혁의 역사현장」 직접 보고 싶다”/대학생들 동구연수 붐

    ◎헝가리 방문등 2천여명 신청/“자유왕래 되느냐” 여행사에 문의 쇄도 동구권국가로 해외연수를 떠나는 대학생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겨울방학을 이용해 시중 여행사 등의 단체연수단에 끼여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동구권을 비롯한 유럽지역에 보름부터 한달간의 일정으로 다녀오고 있다. 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이번 겨울방학동안 이같은 동구권연수에 나섰거나 나설 학생들은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보내는 2백40명을 포함,모두 2천여명에 이른다. 이는 미주 및 동남아지역으로 가는 해외연수학생의 2배가 넘는 것이다. 학생들이 이처럼 동구권 등 유럽지역을 크게 선호함에 따라 국내 각 여행사들은 방학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초부터 다양한 프로그램과 상품으로 이미 1백여명씩의 연수지망 학생들을 모집해 놓고 있는 상태이다. 여행사들은 「유럽지역 핵심탐방」 「개방화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동구권 사회의 신선한 바람을 맛보지 않으시렵니까」라는 등의 광고로 학생들을 모으고 있다. 여행사들은 이렇게 모은 연수지망생들을 방학동안 10여차례로 나누어 현지로 보낼 계획이며 연수비용은 1백만∼3백만원을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종로2가 학생여행공사는 지난달 19일 처음으로 30여명의 대학생을 헝가리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지역 10개국으로 보낸 것을 비롯,지금까지 7차례에 걸쳐 2백여명을 연수시켰다. 이 회사는 당초 2백여명의 학생을 모집할 계획이었으나 신청자가 예상을 웃돌아 앞으로도 5차례에 걸쳐 1백여명쯤 더 보낼 계획이다. 이 회사 강홍섭해외영업과장은 『얼마전까지만해도 하루평균 1백여명이 사무실을 찾거나 전화를 걸어와 동구권 지역에서의 연수 가능한 국가를 문의해왔다』면서 『학생들은 특히 베를린 등 동구권국가에 대해 관심이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서소문동 아주관광의 경우 12개의 프로그램을 마련,헝가리 등 유럽지역 12개국에 15∼30일동안 1백80만∼3백만원의 비용으로 어학 및 문화연수를 시킬 계획이며 이미 5개팀 1백여명이 떠났고 앞으로도 5∼6개팀 1백여명을 더 보낼 계획이다. 이 회사 해외연수사업부 서경진씨(31)는 『헝가리에서 카를 마르크스경제대학을 방문하는 등 주로 동구권 교육제도와 학교시설을 둘러보게 하고 있다』면서 『학생들이 동구권 국가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기 때문에 올 여름방학때는 유고슬라비아와 폴란드를 연수대상국으로 포함시켜 3∼4월쯤부터 프로그램을 짜기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주쯤 헝가리와 유고슬라비아 등 유럽지역 10개국에 47일동안 연수가게 돼 있다는 최헌군(20ㆍK대 사회학과1년)은 『동구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실상을 알 기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이번 기회에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실제모습을 꼭 비교해 보겠다』고 말했다.
  • 「90년대 개혁바람」 어떻게 불까(해외특별기고)

    ◎“동구국,새 사회주의 모델 개발 박차”/“「과거체제」에 실망”… 재생가능성에 회의적/다당제ㆍ개방화등 「새질서」형성기 될듯/안정확보ㆍ갈등해소위해 대통령중심제 채택 예상 지금 동유럽에서 진행되고 있는 변화는 혁명이라는 말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89년초까지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ㆍ중국은 지금까지 지켜온 체제의 근본원리 즉 당의 지도적 역할이나 재산의 국가소유,마르크시즘 등을 유지한 채 부분적인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적인 개혁으로는 사태를 호전시킬 수가 없었고 오히려 더 악화시켜 놓은 결과가 되었다. 과거의 체제는 흔들리기 시작했지만 새로운 질서는 아직 갖추어지지 않고 있었다. 사회주의하에서의 개혁과 사회주의의 재생가능성을 믿는 사람은 점차 줄어들었다. 기존의 지배계층에 대한 국민들의 신망은 급격히 떨어졌고 동독ㆍ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에서도 폭발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질적변화 추구 시급 89년 가을 동독에서 터져나온 시민운동은 마침내 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에 잇따라 변화의 불을 댕겼다. 헝가리ㆍ폴란드에서 수개월,혹은 몇년에 걸쳐 일어난 변화들이 불과 몇주만에 한꺼번에 이루어졌다. 질적인 변화없이 부분적인 개혁만으로는 구체제를 되살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질적변화란 진정한 사회경제적 발전을 보장해줄 완전히 새로운 성격의 사회구조를 만들자는 것이다. 다시말해 그것은 정치적 억압과 경제적인 착취로부터 인간을 진정으로 해방시키고 자유로운 개인의 발전이 보장되는 가운데 경제ㆍ학문ㆍ문화등 전체의 발전이 추구되는 사회의 실현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명령식 행정통제 체제의 해체와 함께 정치와 이념에서 교조주의와 이상주의를 몰아내야 한다. 경제와 정치분야 모두에서 이러한 질적변화가 요구된다. 중국의 경우는 경제와 이념분야에서의 개혁이 서로 보조를 맞추지 못할 때의 위험을 잘 보여주었다. 그것은 개혁과정 전체를 복잡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자칫하면 그것을 역류시킬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민주제도는 시장의 형성과정에 그 바탕을 두어왔음을알 수 있다. 반면에 전체주의 사회에서는 권력자체의 변화가 다른 분야의 변화를 위한 전제조건이 된다. 시장경제로 나가기 위해서도 권력의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말이다. 여러가지 점에서 90년대는 동유럽에서 새로운 사회질서의 형성기가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다양한 소유형태와 자유경쟁에 바탕을 둔 시장,그리고 다당제와 의회주의를 포함한 정치적 복수주의,광범위한 민주주의와 개방화,이념의 다양성,자유와 휴머니즘이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이 회복되는 시기가 될 것이다. 헝가리,동독,체코 같이 비교적 높은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겪지 않고 있는 국가들은 이러한 새로운 사회체제의 토대를 이미 마련해 가고 있다. 반면에 유고,폴란드,불가리아,루마니아처럼 경제적인 어려움속에 첨예한 대결상황에 놓여있는 다민족국가들은 보다 오랜 기간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변혁의 와중에 들어있는 국가들은 모두 의회민주주의를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진정한 의회민주주의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에 달려 있다. 명실상부한 자유선거에 의거한 공권력의 형성,대의원들의 완전한 활동보장,그리고 3권분립이 완전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들중 많은 나라들이 정권이양기에 안정을 확보하고 갈등을 해결키 위해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할 것이다. 헝가리와 폴란드에서는 권력의 의회로의 이양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로서는 처음으로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을 적시한 헌법조항이 폐기되는가 하면 복수권력체제가 이미 시작되고 있다. 동독,체코,불가리아,그리고 유고의 일부 공화국들도 뒤이어 이같은 작업에 들어갔다. ○공당,권력독점 포기 이러한 변화의 과정들을 우연적이거나 예외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들은 오히려 일반적인 발전단계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는 변화로 간주되어야 한다. 앞으로 헝가리,동독,체코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될 경우 폴란드에서와 같이 공산당이 패배를 당할 수도 있다. 공산당은 이제 사회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서 과감한 개혁과 함께 권력독점을 포기해야만 한다. 공산당이 어떤 식으로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것이냐는 아직 분명치 않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공산당에 대한 일반국민들이 갖고 있는 실망감을 고려해 볼때 「헝가리식 개혁」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의 공산당과는 결별하되 마르크스주의 및 사회민주주의 원리에 입각한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과거의 이데올로기적인 대결상태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단기적으로는 민족주의적인 애국주의와 서구지향적인 실무형 인사들,다시 말하면 급진파와 진보주의자들 사이의 이념적 갈등이 전개될 것이다. 새로운 복수정당체제가 만들어지고 의회ㆍ국가기구에서 함께 실질 권력을 행사할 것이다. 이들은 시급히 경제개혁을 시도할 것이고 이는 불가피하게 사회적동요를 야기케 될 것이다. 이러한 개혁과정의 성공여부는 시장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적절한 정치적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느냐에 상당부분 달려있다. 여기서 사회주의 세계는 사회변혁을 위한 독자적인 길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서구식 변화모델은 이 경우에 적합치가 않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가치들을 유지하면서상품경제체제로 점진적인 전환을 이루어 나갈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이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많은 경우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동시에 통화나 가격,국내시장의 안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해 정부는 인기없는 조치들을 함께 취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제는 사회구성원 대부분이 이러한 조치들을 참아내 줄 것이냐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러한 조치들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빌미로 다시 독재정권을 수립하려는 기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과도기 단계에서의 이러한 우여곡절이 현재 동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시장 민주주의에로의 일반적인 흐름자체를 바꾸기는 힘들 것이다. 동유럽이 서방의 발전모델을 따라간다고 생각하면 잘못이다. 몇나라에서 비공산세력이 지도부를 차지한다고 해도 그 나라가 자본주의국가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이들 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사회주의와 집단주의,그리고 국가의 「보호우산」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일반국민들의 욕구를 잊어서는 안된다. 국가재산제를 다른 소유 형태로 바꾸기는 극히어려운 일이다. ○국제관계 호전될 것 이런 점을 무시하면 엄청난 사회혼란만 야기하게 된다. 현재 동유럽에 있는 많은 반대 세력들도 인식상의 차이가 있을뿐 사실은 사회주의 이상의 영향권 내에 있다. 현재 헝가리와 폴란드에서 이루어지는 변화의 성격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2분법적 사고로 규정지을 수는 없다. 이 새로운 사회는 보다 다른 정의가 필요할 것 같다. 민주적 사회주의,아니면 인간적 사회주의라고나 할까. 이 새로운 사회는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국가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평등주의에 입각해 자유시장에 대해서도 어떤 제약을 가해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화들이 일어난다면 국제관계는 어떻게 될까. 동유럽에서의 변화로 보다 안전하고 안정된 세계가 이루어질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다. 「유럽공동의 집」이 이에 대해 밝은 전망을 약속한다. 소련과 동유럽국가들간의 경제 정치적 관계도 변화될 것이다. 양측의 협력관계는 완전한 평등과 시장관계를 통한 상호이해,그리고 지속적이고 안정된 동반관계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올레그 보고믈로프 △1927 모스크바생 △1949 모스크바 무역연구소 졸업 △1967 모스크바대 교수 △1980 사회과학아카데미 교수
  • 가정 불화… 아내 가출에 격분/매제가 처남집에 방화

    ◎일가 5명 참사사건… 자신도 목매 자살 【대전=박상하기자】 구랍31일상오 일가족 5명이 숨진 대전시 중구 석교동 양한기씨(46ㆍ문창동파출소 방범대장)집 화재사건은 숨진 양씨의 매제인 한석동씨(34ㆍ대전시 동구 홍도동 36의28)가 처남 양씨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뒤 자신도 목매 자살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대전경찰서는 3일 지난1일 하오2시쯤 대전시 동구 홍도동 철길뒤 대전천변 비닐하우스에서 앵글에 목을 매 자살하기전 한씨가 처남 양씨에게 남긴 유서와 화재현장에서 20ℓ들이 휘발유통을 찾아내 이번 사건을 한씨가 저지른 계획적 범행으로 결론지었다.
  • 김종필 공화총재(국회의장ㆍ대법원장ㆍ4당대표 신년사)

    ◎인간화ㆍ복지화ㆍ지방화 노력을 90년대는 민주화 과업을 본격화하면서 인간화ㆍ복지화ㆍ지방화 및 국제화를 어김없이 성취함으로써 선진 민주복지국가로의 발전 및 조국통일을 이룩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 정치체질이나 사회기풍,경제구조나 노사관계,국민의식 구조와 학원풍토 등 모든 분야에 신풍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동구권의 개방화물결은 공산주의가 스스로 자기 모순을 자각하고 몰락해가는 산증거로서 우리 사회의 좌경의식화분자들에게는 더없는 경종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김일성체제도 조만간 변화가 불가피하므로 90년대를 통일의 연대로 기대할 수 있게 한다.
  • 전 전대통령 특위제출 서면 답변내용

    ◎“「광주」발포 당시엔 보고 못받았다”/미 정부도 「5ㆍ17」 불가피성 이해했다/사북사태ㆍ학원소요가 계엄확대 원인 ▷다음은 전두환 전대통령이 서면으로 특위에 제출한 답변내용이다.◁ 본인이 당시 도청 앞 상황과 관련한 발포 건의를 받은 적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국회의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 있는 이희성계엄사령관,윤흥정 전교사령관 등이 「발포 사실조차도 상황이 진행될 때에는 보고받지 못했다」라는 증언내용에 비추어볼 때 당시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던 본인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건의를 받을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리라고 생각합니다. 도청 앞에서의 이러한 발포사태는 상황이 종료된 이후 통상적인 정보보고를 통해 본인에게 보고되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당시 본인은 즉각 이를 최규하대통령에게 보고하려 했으나 이미 계엄사령부를 통해 보고되었다고 하기에 중단한 바 있습니다. ▷미 정부역할◁ 광주사태를 전후하여 주한 미대사관을 포함한 미국 정부관리들은 한국의 제반상황에 대하여 우리측과는 어느 정도의 인식차이가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차이는 북한의 도발가능성에 대해 제3자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예민해 있는 우리의 현실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최근에 미국무성이 보내온 광주사태에 대한 석명서를 보면 당시의 한국 안보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묘사가 되어 있으나 이는 당시 미 정부가 광주사태를 계기로 취한 일련의 군사 외교적 조치들과는 모순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해 5월22일 미 국무성은 「불안한 사태가 계속되어 폭력사태가 과열된다면 외부세력이 위험한 오판을 할 위험성이 있다」고 북한의 도발책동을 우려하며 「한국사태를 방위조약에 따라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북한에 대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또한 같은날 국무장관 주재로 한국사태에 대한 고위정책조정회의를 열어 항공모함을 위시한 기동함대와 조기경보기를 한국에 파견키로 하는 등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 일련의 군사적 조치를 취했으며 당시 미 정부는 북한이 남침해 올 경우 미국은 즉각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경고를 제3의 외교경로를 통해 북한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5월26일을 전후하여 우리나라의 여야 정치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글라이스틴대사는 『광주사태가 오래 계속된다면 배고픈 호랑이같은 북한이 이를 이용할 가능성이 없지 않으며 미국은 5ㆍ17조치의 배경과 불가피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고 본인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의 미 정부의 입장과 이번의 미 국무성의 석명서에 나타나 있는 입장은 상황 및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기본 입장에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내의 일각에서는 광주사태가 특별한 의도에 의해 촉발되었다는 주장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만,이는 전적으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어느 누구라도 정권을 위한 치밀한 사전계획을 세웠다면 광주사태와 같은 커다란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오히려 바랐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그 구체적인 책임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간에 본인은 당시 정부와 군의요직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그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대통령재임기간중에는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습니다. ▷비상계엄 확대조치◁ 79년 10ㆍ26사태의 충격이란 절대권력의 돌연한 붕괴가 가져온 충격이었습니다. 이 충격에서 깨어나는 80년의 봄이 되면서 우리 사회에는 권력과 권위의 공동현상이 확실히 드러났고 거기에 발호하기 시작한 것이 혼란과 무질서였습니다. 빈발하는 학원소요와 노사분규는 그 일부에 불과했습니다. 4월의 사북사태는 며칠 동안이나마 그 지역에 관한 한 국가기능이 정지된 상태에 도달했고 5월 중순에 학원가두소요는 전국 곳곳에 넘쳐 지역계엄령하인데도 치안 마비상태에 도달하였습니다. 5월13일에서 15일에 걸쳐 절정을 이루었던 서울소요에서는 3일째 되는 15일 서울역에서 시청광장에 이르는 도심에 대학생을 중심으로 10만의 군중이집결되었고 경찰과의 충돌과정에서 당시로서는 예가 드물게 경찰차가 방화 당하고 경찰관 1명이 사망하고 1백13명이 부상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같은 혼란을 틈타 각종 범죄가 난무한 것은 물론,외국바이어들이 다투어 철수하고 조업에 지장을 일으키는 등 경제생활 전반에도 심각한 타격을 주게되자 국민들의 불안심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한편 10ㆍ26 이후 적화통일의 결정적 기회를 노리고 있던 북한은 이 시점이 되면서 대규모 기동훈련,전쟁물자 점검,전투태세 강화 등 심상치 않은 동향이 첩보사항으로 파악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국가 존망지추를 당했던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이 일일이 매스컴에 의해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나마 일반 국민의 동요를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같은 위기상황에서는 그 당사자가 누구이든,국가는 국가 스스로의 자위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같은 국가의 자위조치의 당연한 귀결이 비상계엄의 전국확대였습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지역비상계엄에서는 국방장관이 계엄업무를 지휘감독하고 전국 비상계엄하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국비상계엄확대의 문제는 특정지역에 소요나 문제가 있다 없다의 기준을 넘어서게 되는 것입니다. 위에서 설명한 위기상황에 처하여 5월15일 신현확총리는 시위사태에 대한 우려와 함께 자제를 촉구하는 특별담화를 발표했고 그때에 진행중이던 제2차 석유파동속에서 원유 확보를 위하여 중동을 방문중이던 최규하대통령도 국내 사태의 급보를 받고 일정을 하루 앞당겨 5월16일 귀국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최 대통령 귀국 직후 국무총리 내무 국방장관 계엄사령관 그리고 본인 등이 참석한 시국대책회의에서 총리는 국내상황을 종합적으로 보고하였고 주영복국방장관은 이 자리에서 비상시국에 임한 군의 대책마련을 위해 다음날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보고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0ㆍ26 이후 우리 사회의 각부면의 권력과 권위가 퇴화,공동화되는 속에서 군만은 국가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사회와 국민의 막연하고도 암묵적인 기대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5월17일 개최된 전문지휘관회의에 참석한 지휘관들은 당시 사태의 심각성과 이에 대한 획기적 대책의 필요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이를 위해 전국 비상계엄으로의 확대건의를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사회일각에는 학생소요를 옹호하며 전국 주요도시에서 대규모 군중궐기집회를 준비중인 세력도 있었고 5월16일에는 55개 대학 총학생회장단이 모여 5월22일을 시한으로 계엄의 즉각 해제와 정치일정단축 등의 요구를 내걸고 전면 투쟁태세를 굳히는 등 사태는 더욱 악화될 형세였습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전국 비상계엄확대 건의안은 결의되었고 국방장관과 계엄사령관은 이를 신현확총리에게 보고하여 동의를 받고 최 대통령에게 보고하여 재가받았으며 이날 저녁으로 임시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와서 당시 한국의 안보상황에 대해 미국의 인식이 어떻다고 말이 있습니다만 물론 한국의 안보에 대해 한국과 미국이 완전한 인식일치가 있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해도 당시 한국의 현존하는 안보위협에 대한 미국측의 인식과 대응의지를 과시하는 일환으로 5월13일과 14일 양일간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실시된 바 있음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계엄확대를 전후한 5월14일부터 18일에 걸쳐 전국 주요시설과 방송국들에 경계경비를 위해 인근병력이 배치된 것으로 알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국회가 개회중인데도 의원들의 동원이 저지된 것으로 압니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5ㆍ17비상계엄확대조치가 12ㆍ12를 주도한 이른바 신 군부세력의 쿠데타였다는 주장이 있습니다만 쿠데타가 국권을 탈취하기 위해 어떤 집단이나 개인이 국가를 치는 거사라 한다면 거기에 합당한 현상이 5ㆍ17시점에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히 지적해두고자 합니다. 다만,오늘의 시점에서 5ㆍ17을 본다면 신 군부세력이라고 일컬어지는 무인들이 명확하고도 주관적인 의지는 결한 채로 시대적 상황과 국가의 요청에 밀려 덧없는 정치의 수렁으로 말려드는 계기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감회가 있습니다. ▷국보위 설치경위◁ 국가보위 비상대책위원회는 전국 비상계엄하에서 대통령의 계엄업무에 대한 지휘감독을 보좌하기 위하여 계엄당국과 행정부간에 긴밀한 업무협조를 가능케 하여 조속하게 사회 안정기반을 구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대통령 직속하에 한시적인 자문보좌기관으로 설치된 것입니다. 80년 4,5월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상황이 되고 있었는지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만,한편으로는 혼란과 비례하여 소위 말하는 「정부의 영이 서지 않는」상황이 되어가고 있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무렵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비상한 상황이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극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뜻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헤아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되어 있었고,당시 「정부의 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국민들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해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벼랑으로까지 몰고 간 위기상황은 전국비상계엄을 불러왔고 전국비상계엄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관리와 난국타개를 위해 정부기능을 보완적으로 강화할 수단을 찾지 않을 수 없었으며 그 결과가 국보위설치로써 나타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행정부의 기능을 계엄적으로 강화하는 매개 역할,이것이 국보위 기능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만일 군으로 구성된 계엄당국에게만 당시의 문제해결이 맡겨졌다면 국가가 그렇게 단기간에 위기탈출을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국보위에는 계엄당국과의 매개역을 위해 군의 전문요원들도 차출되었으나 대부분은 행정부 요원ㆍ학자 및 각계 인사들로 구성되었던 것입니다. 상황이 긴박해지면서 나름대로의 비상대책안이 은연중에 우리 사회 여기저기에 거론되고 있었고 이같은 안들은 합수본부였던 보안사의 정보수렴과정에서 취합되고 있었으며 전국계엄으로 확대되는 것과 동시에 본인은 그동안의 정보보고를 상기하여 대책안의 구체적인 검토를 보안사 참모진에게 지시하였습니다. 그리해서 국보위는 설치되었고 그 책임상 본인이 상임위원장직을 맡았던 것입니다.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라는 용어가 누구의 착상인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습니다. 비상기구의 연구검토초기에는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발동을 전제하여 기구를 설치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보다 합헌적이고 합법적인 근거를 가져야 제대로 작용될 수 있다는 결론에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는 정부조직법 제5조와 계엄법 제9조 및 제11조 등에 근거를 두고 조직되었으며 그 설치안은 5월27일 최규하대통령께 보고되었습니다. 같은 날 국보위 설치령이 국무회의에 제안되어 의결을 거친 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5월31일 발족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발족됨으로써 군은 관련분야인 국방임무와 치안유지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계엄업무의 일환으로서 군이 당연히 맡도록 되어 있는 행정ㆍ사법 사무에 대한 기획조정업무는 국보위가 맡게되어 대통령이 전국계엄을 효과적으로 지도감독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설치의 당위성을 인식시키기 위하여 광주사태가 조작되고 유도된 것이 아닌가 하는 시각이 있는 모양입니다만,이같은 역사인식이야말로 날조되고 왜곡된,사실에 입각하지 않은 역사인식이요 본말전도도 유만부동입니다. 어떤 유능한 신이 있어서 광주사태의 전말을 연출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계엄확대에 의한 업무추진 과정에서 필요에 의해 국보위는 설치되었던 것입니다. 국보위가 추진한 과외금지조치나 공직사회정화 등 일련의 충격적인 조치는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납득이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국민들의 갈채를 받았고,그 때의 국가사회가 위기상황을 탈출하고 혼란과 무질서의 늪에서 벗어나는 데는 효과가 있었던 것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국보위가 비상한 상황에서 의욕이 앞선 나머지 때로 무리한 수단을 동원하여 물의를 빚은 점은 아쉽고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1980년 8월 최규하대통령이 하야하게된 진정한 동기가 무엇이냐 라는 질문이 있습니다만 본인으로서는 최 대통령께서 하야하시면서 발표하신 성명의 내용에 비추어 헤아려볼 수 있을 뿐 그 이상의 다른 동기가 있었는지에 관해 저의 주관대로 추측해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는 점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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