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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화합 대토론회 주제발표

    한국자유총연맹(총재 楊淳稙)과 민주개혁국민연합(상임대표 李昌馥)이 공동주관하는 ‘국민화합 대토론회’가 24일 서울 중구 장충동 자유센터에서 국내 보수·진보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25일까지 열린다.‘국민화합의길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내건 토론회 첫날에는 김달중(金達中)세종연구소장의 사회로 정용석(鄭鎔碩)단국대 교수와 노정선(盧晶宣)연세대 교수가‘냉전구조 해체와 대북 포용정책’이란 주제발표를 했다.둘째날인 25일에는 이재정(李在禎)성공회대 총장의 사회로 유한수(兪翰樹)전국경제인연합 전무,조우현(曺尤鉉)숭실대 노사관계 대학원장이‘시장경제와 생산적 복지’를 다룬논문을 발표한다.첫날 발제한 정교수의 ‘포용정책-당위성과 문제점’과 노교수의 ‘한반도평화와 냉전구조 해체’ 등 2편의 논문을 요약한다. ■한반도 평화와 냉전구조 해체/정용석 단국대 교수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햇볕정책이 유화(宥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그해 11월 보수·진보세력 모두 80% 이상이 지지한다고 주장했다.햇볕정책의 가시적 성과와 관련해 “1년쯤 지켜봐 주면 뭔가를 만들어낼 수 있을것”이라고 말했다. 로만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방한 중 “햇볕정책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진 않지만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그의 이같은언급은 햇볕정책의 조심스러운 추진을 강조한 것으로 주목된다. 햇볕정책이 집행되면서 일부 국민에게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게 나왔다.또김대통령이 약속했던 ‘좋은 결과’는 1년반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지난 4월 햇볕정책이 성공을 거두었다고 선언했다. 햇볕정책은 지난달부터 일부 궤도수정의 징후를 나타내기 시작한 듯싶다.북한 도발에 대한 종래의 유화적 대응에서 ‘상당한 대응’ 또는 ‘상호주의원칙’으로의 방향전환이 이뤄지고 있다.이런 궤도수정은 지난달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개최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시사됐다. 한국의 미사일 사정거리를 500㎞로 늘려야 한다는 김대통령의 주문이 그것이다. 10개월 전 북한이 4,000∼5,000㎞ 사정거리의 대포동 미사일을 쏘아올렸을때 정부 고위 관계자들은 미사일 발사가 미국과 일본을 겨냥한 것으로 먼저나서서 문제삼을 필요가 없다고 태연스럽게 말한 바 있다. 햇볕정책의 기조는 대통령의 말대로 유지돼야 마땅하다.그러나 햇볕정책을서해교전 이전의 유화정책 형태로 다시 되돌려 놓아선 안된다.햇볕정책이 실험을 끝내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려면 새 출발의 자세로 임해야 한다. 첫째,가시적 성과는 차기 정권이 거두어 들인다는 대승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둘째,변하지 않는 북한을 변한 것처럼 헛짚어서는 안되며 북한의 실체를옳게 파악해야 한다.셋째,남북 정상회담에 연연해선 안된다.넷째,상호주의원칙은 가능한 한 지켜져야 한다.다섯째,먼저 주고 나중에 얻는 선공후득(先供後得)이 아니라 먼저 약속받고 나중에 주는 선약후공(先約後供) 원칙을 따라야 한다.여섯째,북한은 아직 햇볕을 수용할 만큼 준비돼 있지 않다는 전제아래 접근해야 한다.일곱째,햇볕은 차가운 북풍과 함께 교차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한반도 평화와 냉전구조 해체/노정선 연세대 교수 남과 북의 군대는 이제 적대관계를청산하고 외적을 막아내기 위한 공동 협력구조를 구축해야 한다.적이 아니라 동반자이어야 한다고 한 7·7선언의 정신을 군사적으로 실현하는 것은 곧 한반도에서 평화체제를 이루어내는 첩경이다. 최근 서해 해상전투를 분석하면 북은 전면전을 바라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앞으로 이 지역에서의 갈등을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북한군과의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남북한이 아닌 제3의 세력들에 의한 전쟁으로,한민족 이외의 제3의세력들이 이익을 얻는 음모가 있을 수 있다.이를 구조적으로 방지할 수 있는남북의 합동작업이 필요하다. 군사적인 협력을 이루어내는 것은 단순히 전쟁만 막는 것이 아니라 남북이 경제적으로 행복한 사회를 건설하는 차원으로연계되는 것이다. 군사적 대결을 종식시켜 군사적인 합동작전이나 합동훈련,나아가서는 동맹과유사한 수준의 동반자 관계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남북의 경제도 이제는 서서히 협력구조로 전환해야 한다.경제적으로 통합하는 과정은 평화를 구축하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다.남한이 대북한 투자 규모를 300억 달러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쌍방의 경제를 상호 보완적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눈앞에 있다.굶주리는 북한의 어린이·노인·인민들에게 비료와 옥수수 100만t을 보내줌으로써 신뢰를 쌓을 수있다.무조건적인 식량 지원은 신뢰를 확실하게 형성시켜 줄 것이다. 어떻게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인가.단순히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물론 남한 정부의 입장은 새로운 평화구조를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보다 항구적인 것은 사랑과 애정을가질 때 신뢰가 형성되고,남북이 강력한 경제 부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북한의 식량 기근과 경제위기를 불쌍하게 여겨 동정하는 것은 민족의 전통적인정서에서 나와야 한다. 북한 동포와 참 평화를 이루어내기 위해 물질적인 나눔을 기초로 하면서 영적인 나눔과 연대의 체험을 일구어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항구적인 신뢰가 형성되고 평화와 공존을 통한 민족통일을 기대할 수있을 것이다. 정리 김성호기자 kimus@
  • 국민회의 ‘영남권 전략’ 수정론 부상

    국민회의가 집권 후 계속 추진해온 명망가 중심의 영남인사 영입전략에서벗어나 영남 민주세력과 참신한 신진세력 영입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여권내에서 제기돼 관심을 끌고 있다. 국민회의 총재특보단등 당내는 물론 외곽조직등에서도 거론되고 있다.이와관련,황태연(黃台淵)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동국대 교수)은 18일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정치적 지역화합 전략은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황위원은 현 정권에서 영향력 있는 핵심적인 소장학자다.황위원은 지난달 14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오찬을 하면서 특별검사제 도입을 강력히주장했다.정부와 여당에서 특검제 도입을 공개적으로 찬성한 인사는 별로 없을 때였다.황위원의 건의대로 김대통령은 특검제를 도입했다. 황위원은 “지난 1년간 정부와 여당은 영남의 알려진 기득권 정치인을 영입하는 일을 추진했으나 알려진 영남 정치인은 영입되자마자 영남지역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혀 정치적 견인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명망가 정치인을영입해봐야 별로 실익이 없었다는 의미다. 국민회의 관계자도 “알려진 영남 정치인은 대개 5·6공 인사였기 때문에영남 민주세력이 정부와 여당의 영입전략을 격렬히 성토해 영남지역 재야세력의 민심이 현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떨어져나가는 부작용도 있었다”고 분석했다.5·6공 세력을 영입하면서 정권과 여당의 민주적 정체성을 혼란에 빠뜨려 전통적 지지세력까지 멀어지게 됐다는 뜻이다. 대안은 민주화운동세력 쪽이다.영입대상을 영남 민주세력과 참신한 신진세력에 한정하는 쪽으로 영입전략의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는게 이들의 주장이다.여권의 방향전환 여부가 주목된다. 곽태헌기자 tiger@
  • 힘빠진 한나라 내각제派

    한나라당내 내각론자들이 ‘꼬리’를 내리는 분위기다.JP(金鍾泌총리)와의연대 가능성을 염두에 뒀던 이들 주변에선 “JP의 입장변화로 장기판의 졸(卒)로 전락했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같은 기류는 15일 조순(趙淳)명예총재와 장관출신 의원 8명의 오찬 회동에서도 드러났다.당내 내각제론자인 김중위(金重緯)의원이 주선한 모임에는이상희(李祥羲),한승수(韓昇洙),김정수(金正秀),강현욱(姜賢旭),김덕(金悳),권영자(權英子)의원이 참석했다.이들은 “내각제 문제 등의 논의로 국민을불안케 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건의안을 이회창(李會昌)총재에게 전달하기로 했다.한 참석자는 “내각제 문제는 더 이상 꺼내지 말자는 것이 주요취지다”고 말했다.참석자들 전원을 내각제론자로 보긴 어렵지만 당내 내각론자들의 ‘방향전환 신호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다른 내각제 애호가들도 마찬가지다.서울지역의 한 중진의원은 “JP는 역시 도전의식이 없다”며 극도의 실망감을 표시했다.“이제 대통령직선제,소선거구제로 권력구조 문제는 가닥이 잡혔다”며 더이상 목소리를 낼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내각제 깃발을 처음 내 걸었던 서청원(徐淸源)의원측도 “내각제 문제를 공론화하자는 것이었다”고 한발 뺐다.또 “한마디로 허(虛)하다”면서 “그동안 능동적으로 판의 변화를 모색했지만 이제는 상황순응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김윤환(金潤煥)의원도 “다 결정된 다음 얘기하자”며 내각제문제는 이제 의미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내각제론자로 여권영입설이나도는 이한동(李漢東)전부총재 측근도 “근거도 없는 영입설이 왜 나도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광숙기자 bori@
  • 수상 레포츠의 꽃 윈드서핑

    파도타기와 요트를 한꺼번에 즐길 수 있는 수상 레포츠의 꽃 윈드서핑. 장비조작과 운반이 간편할 뿐만 아니라 물에 떠 있을 정도의 수영솜씨만 갖추면 안전하게 즐길 수 있는 레저 종목이다.여기에 장비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활동비도 적게 들어 동호인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뚝섬·잠실부근 동호인클럽 몰려]지난 7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뒤 88올림픽 이후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 윈드서핑은 동호인수가 현재 20만∼30만명에 이른다.장비와 강사를 갖추고 지속적인 활동을 하는 클럽도 전국에 200여개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윈드서핑은 강,호수,바닷가 등 물과 바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든 가능한게 특징.서울에선 한강 유역이 잘 알려져 동호인 클럽중 3분의2이상이 뚝섬·잠실대교 부근에 몰려 있다. 서울 근교에서는 새터·대성리와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이 꼽히고 아산만 지역,삽교천,부산의 수영만요트장과 해운대·송정 해수욕장,제주 이호·신양해수욕장,전남 여천 요트장,거제 사곡리해수욕장,동해안의 속초·강릉 해수욕장에도 동호인들이 끊임없이 몰린다. 장비는 일반적으로 요트의 기능을 하는 보드와 돛 부분인 세일을 한 세트로구입한다.새 것이 200만∼300만원선.클럽을 통하면 중고품을 50만∼15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초보자는 장비를 사기보다 1∼2년간 동호인 클럽이나 강습단체에서 빌어 타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하루 대여료는 3만원.본격적으로 즐기려면 동호인클럽에 가입하는 게 유리한데 연회비 30만∼50만원으로 장비까지 무상으로이용할 수 있다. [장비 한세트 200만~300만원]복장은 짧은 반바지와 티셔츠 또는 수영복 차림에,보드 위에서 미끄럼을 방지하고 발을 보호하는 가벼운 운동화,구명조끼,그리고 체온유지와 몸 보호에필요한 수트 정도만 갖추면 된다. 윈드서핑의 재미는 출렁대며 거칠게 움직이는 보드 위에 서서 돛을 요령껏움직여 바람의 강약에 맞춰 균형을 잡아 물위를 질주하는 것이다. [초보자도 3일이면 즐길수 있어]따라서 균형감각과 기본조작법을 철저히 익히는 게 중요하다.먼저 땅위에서모의 연습기를 통해 보드와 세일을 조종하는 기본동작을 익히는데,돛을 올려서 세일링하기까지의 바른 조작법과 발의 위치,균형감각 적응연습을 철저히해야 한다. 보드 위에서 균형잡는 요령을 습득한 뒤에는 수상훈련에 들어가는데 출발전기본동작,바람을 이용한 보드 진행방법,방향전환법 등을 익히면 비로소 윈드서핑을 제대로 즐길 수 있다.초보자들은 보통 3일정도면 세일링을 할 수 있으며 그때까지의 강습비는 10만원 정도가 든다. 충분히 경험을 쌓은 뒤엔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윈드서핑을 즐길 수 있는데 스피드 내기와 일종의 곡예 세일링인 파도타기,해협횡단·대양횡단 같은 크로스컨트리도 시도할 수 있다. 대한윈드서핑협회와 전국 11개 시도지부에서 겨울철을 빼놓고는 연중 초보자를 위한 강습을 실시하고 있다. 대한윈드서핑협회 사무총장 김명환씨(45)는 “한계에의 도전을 통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수상 레포츠”라면서 “자연을 상대로 인내심을 시험하면서멋스러움까지 느끼는 첨단 스포츠이면서 원시성을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라고 자랑했다. 김성호기자 kimus@
  • 친일의 군상(22회)-독립선언서 기초 崔南善

    육당(六堂) 崔南善을 ‘역사의 저울’에 달면 공(功)으로 기울까,과(過)로기울까? 공과가 교차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견해나 입장에따라 한 쪽으로 기울기 쉽기 때문이다.육당 최남선(1890∼1957)이 바로 그런 인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흔히 육당은 3·1의거 당시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문필가·출판인 등으로 알려진 인물이다.70이 안되는 생애를 살다간 그지만 그가 문화사 분야에서 남긴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 될 수 없다. 육당은 1907년 18세의 나이로 출판사인 신문관(新文館)을 설립,계몽도서를출판하였다.또 이듬해에는 종합잡지 ‘소년(少年)’을 창간,창간호에 최초의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게재한 사실은 우리 문화사 첫 페이지에기록돼 있다. 육당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민족적 면모는 그가 3·1의거 때 ‘독립선언서’를 작성한 사실이다.문체를 두고 지나치게 나약하다거나 한문투라는 비판적인 견해도 있지만 그는 이 일로 31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그러나 그는 다른 독립운동가들이받은 건국훈장을 받지 못했다.이유는 간단하다.그의 친일행적 때문이다. 친일파 중에는 초창기 민족진영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진 일제말기에 가서 친일로 변절한 사람이 상당수 있다.그러나 육당은 사정이 다르다.1921년 10월 가출옥으로 석방된 그는 출옥 직후부터 일제와 ‘교감’을 하고 지냈다. 출옥 이듬해 그는 16년동안 운영해온 신문관을 그만두고 동명사(東明社)를설립,주간지 ‘동명(東明)’을 창간하였는데 창간과정에서부터 일본측 인사로부터 도움을 받은 구석이 역력하다.출옥후 육당이 일본인 거물인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대목이 있다. “잡지는 ‘동명(東明)’이라는 이름으로 원서를 제출하였습니다(중략).잡지건은 진력한 성과가 가까운 시일안에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금후의처분은 모든 것을 하나로 하여 선생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 없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이 편지는 본지가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서 입수,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임) 특히 이 편지의 첫 부분과 끝 부분을 보면 정말 이 편지를 육당이쓴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지난날 (선생께서) 경성(京城,서울)을 출발하실 때부친과 함께 역까지 달려갔습니다만 공교롭게도 정각에 늦어 실례가 많았습니다.”우선 보고(報告)를 드리면서 이것으로 붓을 놓겠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사람은 사이토(齋藤實)총독의 정치참모이자 총독부 일어판기관지 ‘경성일보(京城日報)’의 사장을 지낸 아베(阿部充家)였다.‘독립선언서’를 기초한 애국지사 육당 최남선의 면모는 이미 보이지 않는다.3·1의거가 발생한지 불과 2년 9개월만의 일이다. 육당이 친일대열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것은 1928년 10월 총독부의 역사왜곡기관인 ‘조선사편수회’의 편수위원직을 수락하면서부터다.조선사편수회는1911년 총독부가 ‘구습(舊習)제도의 조사와 조선사 편찬계획’을 목표로 발족한 단체.본래 목적은 조선을 영구히 강점하기 위해 조선인을 일본인으로개조한다는 ‘동화주의(同化主義)’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서 편찬하려는 조선사는 식민사관에 의한 조선사 왜곡이 주목적이었다.육당은 편수위원으로 위원회활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실무자로 직접편찬작업에 참여하기도 하였다(1928년∼36년).이밖에도 그는 총독부가 위촉하는 여러가지 위원직을 수락,일제에 협조했는데 이 공로로 그는 중추원 참의(주임관 대우·1936.6∼38.3)를 지냈다. 육당의 대표적인 친일행적중의 하나는 만주에서 있었다.중추원 참의를 물러난 직후인 1938년 4월 그는 만주행에 올랐다.처음 맡은 직책은 만주의 친일지 ‘만몽일보(滿蒙日報)’의 고문자리였다.원래 이 자리는 秦學文이 있던자리였는데 진씨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 그 자리를 물려받은 것이다.1년뒤그는 다시 만주국의 엘리트 양성기관인 건국대학(建國大學) 교수로 부임하였다.대우는 칙임(勅任)교수에 월급은 400∼500원으로 최상급이었다.(‘삼천리’1938년 5월호). 사학자로 육당과는 절친한 친구였던 위당(爲堂) 鄭寅普선생이 그의 집 대문앞에 술을 부어놓고 “이제 우리 육당이 죽고야 말았다”며 대성통곡을 한것은 그가 건국대학 교수로 부임한 것을 두고 한 것이었다.육당은 이 대학예과에서 만몽(滿蒙)문화사를 강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건국대학 교수 재직중 그는 1940년 10월에 조직된 ‘동남지구 특별공작후원회본부’의 고문직을 맡기도 했다.이 단체는 일본 관동군의 반공·선무(宣撫)공작을 지원한 친일단체로 독립군과 항일빨치산을 상대로 한 귀순공작이 주임무였다.이 단체의 총무 朴錫胤은 육당과 처남-매부간으로 나중에만주국 외교부 조사처장,‘매일신보’ 부사장 등을 지냈다. 육당의 친일은 일제 말기까지 계속됐다.4년 7개월간의 만주생활을 청산하고 1942년 11월 귀국한 그는 칩거하면서 집필활동에 전념하였다.그러던중 이듬해말 총독부의 부탁으로 李光洙 등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유학생들을 상대로 학병지원을 권유하는 연설을 하기도 했다.훗날 육당은 자신의 학병권유가 마치 조국의 광복을 대비하여 ‘민족 기간요원 양성’을 위한 행위였던 것처럼 변명하고 있지만 이는 설득력이 없다.속으로는 일제패망을 확신하고 있었는지 모르지만 당시 그는 일제의 필승을 장담하면서 대일본제국의성전(聖戰)을 위해 조선청년들이 전쟁터로 나가 죽어야 한다고 공언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하면,그는 학병권유를 한 반면 그의 3남은 그와 정반대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경도(京都)상고 출신으로 동경(東京)제대 법학부에 재학중이던 그의 3남 漢儉(1922∼?)은 학병출진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해방을 맞았다.해방후 월북하여 문학대학·김일성대학에서 교편을 잡기도 했던 그는 부친의 친일행적 때문에 적잖은 곤욕을 치뤘다고 한다(북한 고위직 출신 신모씨 증언). 49년 1월 초부터 반민족행위자 검거에 나선 반민특위는 2월 들어 문화계 인사를 손대기 시작했다.2월 7일 마침내 육당의 우이동 집에 특위 조사관들이들이닥쳤다.자택에서 ‘조선역사사전’의 원고를 집필중이던 그는 “시대적현실을 역행할 수 없다”며 순순히 체포에 응했다.같은 날 세검정에서는 춘원 李光洙가 체포됐다.일제하 문화계의 양대 거물이었던 두 사람이 ‘역사법정’에 끌려나온 것이다. 마포형무소 수감시절 육당은 ‘자열서(自列書)’라는 일종의 ‘반성문’을쓰기도 했다.“내가 변절한 대목,즉 왕년에 신변의 핍박한사정이 지조냐학식이냐의 양자중 하나를 골라잡아야 하게 된 때에 대중은 나에게 지조를 붙잡아라 하거늘 나는 그 뜻을 휘뿌리고 학업을 붙잡으면서 다른 것을 버렸다.대중의 나에 대한 분노가 여기서 시작하며 나오는 것을 내가 잘 알며 그것이 또한 나를 사랑함에서 나온 것도 내가 잘 안다” 양자택일의 기로에서 학문을 위해 지조를 버렸다.이 선택을 그는 ‘변절’이 아닌 ‘방향전환’이라고 했다.명색이 학자를 자처한 그가 지조와 학식을 별개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그에게 지조있는 지식인이 되어줄 것을 기대한 자체가 조선동포들의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심산 金昌淑선생이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을 때의 일이다.한번은 전옥(典獄,교도소장)이 육당이 쓴 ‘일선융화론(日鮮融和論)’을 갖고 와서는 읽고 감상문을 쓰라고 했다.심산은 첫 몇 장을 읽고는책을 전옥에게 던지며 이렇게 호통쳤다.“나는 반역자가 미친 소리로 요란하게 짖어대는 흉서(凶書)를 읽고 싶지 않다.기미년 독립선언서가 남선(최남선)의 손에서 나오지않았는가.이런 사람이 도리어 일본에 붙어 역적이 되었으니 비록 만 번 죽여도 그의 죄가 남는다”고.
  • 5대그룹 구조조정 金 대통령 직접 나서

    ◎내주 정·재계 간담… 朴泰俊 총재 참석 金大中 대통령이 5대 재벌의 구조조정문제 매듭을 위해 직접 나선다. 金대통령은 30일 청와대에서 朴泰俊 자민련총재와 주례회동을 갖고 5대 재벌의 구조조정 가운데 미흡한 주력기업의 재편방안을 오는 15일까지 매듭짓기로 하고 이를 협의할 정·재계간담회를 빠른 시일내에 소집하기로 합의했다. 金대통령과 朴총재는 “더이상 뒷말이 없고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두 사람이 직접 간담회에 참석,충분한 토론을 통해 완벽하게 결말을 짓기로 했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金대통령은 朴총재에게 지난 29일 金宇中 전경련회장을 청와대로 불러 5대 기업의 구조조정문제를 협의한 사실을 털어놓은 뒤 “구조조정 방안 가운데 특히 미진한 부분을 논의했으며,金회장도 적극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강조,곧 결론이 날 것임을 시사했다. 이어 “金회장이 또 경제계도 국내외 정세와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고 협조할 것이라고 전하면서 이를 협의할 정·재계간담회 개최에 동의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7월4일 정·재계간담회가 상설된 이후 金대통령이 처음 참석하는 이번 청와대 간담회는 다음주 중 열릴 전망이다. 특히 이 자리에는 정·재계,채권은행단 등 핵심 지도부가 참석할 예정이어서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을 결론지을 사실상의 ‘정·재계 영수회담’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와관련,康奉均 경제수석은 “기업구조조정문제를 예정대로 연내에 매듭짓고 내년 3월부터 방향전환을 실행해 나갈 것”이라면서 “30대 재벌의 생각을 상당기간 점검한 결과,잘될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 부동산­IMF 1년 건설업계 현주소

    ◎민간공사 바닥… 공공건설에 ‘사활’/부도업체 연말까지 500개 넘길듯/100억규모 공사 50여업체 경쟁/낙찰가 예정액의 75%로 크게 하락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국내 건설업계가 최대의 격변기를 맞고 있다. 공사물량의 급격한 감소와 금융경색·고금리에 따른 신규투자 기피,실업률 증가로 인한 주택수요 실종 등으로 건설업계는 그야말로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상황에 놓여 있다. 대한건설협회가 추정한 올 건설공사 수주액은 49조4,800억원. 지난해보다 무려 38% 남짓 줄었다. 외형상으로는 4년전인 94년의 50조8,700억원과 엇비슷하지만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사실상 6∼7년전 수준으로 후퇴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90년대 들어 97년(9.7%)을 빼고 모두 두 자리수의 수주 상승률을 기록했던 것과는 너무 딴 판이다. 올해 부도난 건설업체 수도 500개를 넘길 전망이다. 부도난 건설업체는 95년 145개로 처음 100개를 돌파한 뒤 96년 196개사,97년 291개를 기록했다. 올해 들어선 지난 9월 말까지 모두 454개사가 쓰러졌다. 부도업체는 연말까지 지난해의 2배를 웃돌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전문가들은 내년 건설경기도 올해보다 나아질 게 없을 것으로 진단한다. 연말까지는 이미 비축해 놓은 일감으로 근근히 버틸 수 있겠지만 올해 수주량을 집행하는 내년에는 이월 공사마저 거의 바닥이 날 것이기 때문이다. 민간 공사물량이 뚝 끊기면서 건설업체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분야가 공공기관이 발주하는 관급공사. 비교적 공사대금을 떼일 위험이 적은데다 건당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대한건설협회가 추정한 올 공공공사 수주액은 지난해보다 7.6% 줄어든 32조7,000억원. 올 민간공사 수주액이 63% 감소한 것에 비춰 보면 그나마 건설업체들이 멸종하지 않은 것은 공공공사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건설업체들의 공공공사 수주전은 말그대로 ‘피를 튀길’만큼 치열하다. 10여개 업체가 경쟁하던 100억원 규모의 중소형 공사에는 50개 이상의 업체가 몰려 들고 있다. 몇몇 대형업체가 독식하던 1,000억원 이상의 대형공사에도 10∼20개 업체가 뛰어 든다. 건설업체들이공공공사 수주 여부에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치열한 수주전은 저가입찰이란 달갑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최근 조사한 100억원 이상 공공공사의 경우 낙찰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평균 낙찰률은 2·4분기까지 공사예정가 대비 85∼88%를 유지했으나 3·4분기에는 75.8%선으로 크게 떨어졌다. 덤핑공사가 그만큼 증가했음을 말해 준다. 저가낙찰은 부실공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안고 있다. 건설회사의 입장에서도 한정된 물량에 달라 붙는 업체가 갈수록 늘다 보니 수주단가가 하락,채산성이 그만큼 악화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에 따라 건설업체들은 저마다 IMF파고를 넘길 수 있는 생존전략 수립에 골몰하고 있다. 조직의 대혁신을 통해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는 경영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르는 한편 임직원을 축소하고 업무조직을 통폐합하는 구조조정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하도급 비중을 줄이고 직영체제를 확대하는가 하면 시공과 관리를 분리하는 이른바 아웃소싱 전략도 구사하고 있다. 세계무대 재도약을 위한 방안의 하나로 동남아에 편중된 시장을 다변화하고 달러화 계약 위주의 선별수주전략도 펼치고 있다. ◎기고/張永壽 대한건설업협회 회장/위기속에 길이 있다 지난해 IMF 구제금융지원 이후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경제는 아직도 뚜렷한 회복전망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물론 몇가지 거시경제 지표상으로 볼때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들이 있지만 아직 누구도 우리 경제의 회복시점이 언제가 될 것이라는 확실한 전망을 내릴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 이러한 위기에 대응하고 극복하는 방안을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오랜 기간 건설업에 종사해온 경영자의 한사람으로 현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다소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가지 제언한다. 첫째,현재의 위기상황을 우리 스스로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우리건설업계는 그동안 양 위주의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러나 이제 과거 매출위주의 경영전략에서 수익성 위주의 전략으로 일대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기업들이 핵심적인 사업을 중심으로 자발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군살을 빼고 차입경영에서 벗어나 업체규모에 맞는 “규모의 경영”을 통한 안정된 경영전략을 수립,실천해 나가야 한다. 둘째,건설시장개방에 대비한 기술개발 노력을 가일층 확대해야 할 것이다. 공기단축,품질제고를 위해 끊임없이 기술개발을 추진해 IMF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 지금같은 위기 상황에 품질향상과 기술개발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원가절감을 위한 투자를 강화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 셋째,건설기업간의 분업체계 및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앞으로 경쟁은 더욱 심화되고 생산조직도 다양·복잡화하는 만큼 대중소 건설업체간 협력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 협력은 상호이익추구와 건설활동의 지역적 분산 및 지방건설시장 활성화,건설인력의 현지화,지방화라는 기본방향에서 추진돼야 한다. 넷째,건설업계 전체에 “제값주고 제값받고 제대로 시공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이를 위해서는 불합리한 계약·건설제도와 발주제도를 개선하고 처벌규정 완화를 유도하는 한편 적정공사비 확보 및 책임시공 풍토조성을 위해 전 건설업계가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다섯째,건설산업 회생을 위한 정부의 역할이 그 어느때보다도 강조된다. 정부는 그동안 건설경기 침체와 주택업계의 부도 도미노 현상을 극복하고자 SOC 투자확대,주택중도금 대출 등 건설경기진작과 각종 제도개선을 추진중에 있으나 업계입장에서 보면 아직은 그 뚜렷한 효과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정부는 업계의 제안을 진지하게 검토,보다 합리적이고 과감한 규제개혁과 정책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우리는 전쟁으로 잿더미가된 이 땅을 일구어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열사의 땅 중동에서 조국 근대화를 위해 땀흘린 불굴의 의지와 저력을 보여왔다. 이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도전한 결과로 이같은 자신감이 바탕이 된다면 지금의 위기는 능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 공무원교육 비리 추방에 역점/행자부

    ◎친절봉사 등 교육훈련 지침 확정 새해 공무원교육훈련 지침이 확정됐다. 행정자치부는 30일 ‘99년도 공무원교육훈련 세부치침’을 확정짓고 이를 각 부처·지방자치단체 등 행정기관과 각급 공무원 교육훈련기관에 전달했다. 새해 공무원교육훈련의 가장 큰 특징은 공직비리 근절 캠페인에 발맞추어 공직자 의식개혁 교육을 강화하고 전문인력 육성,친절교육 등에 중점을 둔 것으로 요약된다. 각 행정기관과 교육기관은 이 지침을 바탕으로 기관별 사정에 맞는 자체교육 계획안을 확정지어 오는 12월15일까지 행자부로 제출토록 했다. 행자부 鄭男俊 교육훈련과장은 새 교육훈련 지침이 “21세기 지식기반 정부 시대에 대비한 인력양성을 목표로 작성됐다”고 밝히고 “교육훈련기관이 23개에서 10개로 통폐합됨에 따라 교육훈련의 전반적인 방향전환이 불가피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 10월 중순 지방행정연수원,교육행정연수원을 통합해 국가전문행정연수원을 신설하고 노동연수원,보훈연수원 등을 폐지키로 하는 등 대대적인 공무원훈련기관 정비조치를 단행한 바 있다.
  • 서울대 권영민 교수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카프문학의 문학사적 위상 규명/프롤레타리아 동맹 조직에서 해체까지/식민지체제 민족문학운동 전개과정 추적/신간회·조선공산당과의 관계도 밝혀 일제 식민지시대 문학을 연구할 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것 중의 하나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이하 프롤레타리아동맹)을 중심으로 전개된 계급문학운동이다.계급문학운동은 한국문학의 역사적 발전단계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며,그 문학사적 위상은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서울대 권영민 교수(국문과)가 계급문학의 실천적 주체인 프롤레타리아동맹의 조직과 계급문학운동의 성립과정 등을 살핀 연구서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문예출판사)를 냈다. ‘카프(KAPF)’라는 약칭으로 잘 알려진 프롤레타리아동맹은 1925년 조직된 사회주의계열의 문예운동단체.이호·이적효·송영 등이 조직한 ‘염군사’와 박영희·김기진 등이 조직한 ‘파스큘라’ 두단체가 모체가 됐다.초기활동은 신경향파문학 또는 자연발생적 프로문학으로 요약된다.이 시기의 주요 논객이 바로 김기진과 박영희다. 그러나 카프는“다만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상실한 것은 예술이다”라는 전향문으로 유명한 박영희 등이 조직에서 이탈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1935년 카프는 마침내 공식 해체된다. 식민지 체제에 대한 문학적 대응방식은 민족주의적 색채를 드러내는 국민문학운동과 사회주의적 이념을 지향하는 계급문학운동으로 나뉜다.하지만 그것은 모두 민족문학운동의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다.권교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계급문학운동이 식민지 상황에 대응해 이루어진 민족사회 문화운동의 일환임을 강조한다. 이 책에서는 1927년 ‘정치투쟁을 위한 투쟁예술 무기’로서의 조직에 역점을 둔 카프의 1차 방향전환에 대해 상세히 다룬다.이것은 당시 신간회의 결성이라는 정치적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그러나 무엇보다 일본 조직인 ‘나프(NAPF)’의 변화를 주도했던 ‘후쿠모토(福本)주의’의 영향이 크다.권교수는 1927년 이른바 ‘제3전선파’에 의해 주도된 제1차 방향전환 이후 프롤레타리아동맹이 신간회와 조직적으로 연계돼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규명한다.나아가 조선공산당 재건운동의 거점이 되었다는 사실도 밝힌다. 부록으로 계급문학운동사 연표와 관련 문인의 약전을 실어 카프문학 연구자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했다.
  • 민주열사 열전:7/朴寬賢 前 전남대 총학생회장(정직한역사되찾기)

    ◎시민 민주역량 결집한 ‘광주의 아들’/5·18 당시 특유의 지도력으로 평화 시위 주도/교도소내 비인간적 처우에 항거 단식중 사망 역사는 검은 음모를 뿌리치지 못하지만 가끔 환한 광장으로 가는 길을 가리킨다.음모의 시대가 갈듯말듯 하던 1980년 봄 사람들은 광장을 찾았다. 1980년 봄 광주의 도청앞 광장은 일개 지리적 점에서 드넓은 역사적 공간으로 빠르게 변신하고 있었다.이 변신은 朴寬賢이란 촉매제 덕분이었다. 80년 5월14일 박관현이 주도하는 ‘민족민주화 성회(聖會)’가 도청앞 광장에서 개시될 때 1만명의 참가자 중 대학생 아닌 시민은 소수였다.박관현을 아는 시민은 더더구나 적었다.성회 마지막날 5월16일 야간 횃불시위를 마치고 다시 광장에 모였을 때 참가자는 5만명이 넘었고 시민 수가 학생 못지 않았다.그리고 50만명 이상의 광주 시민들이 朴寬賢을 ‘광주의 아들’‘무등의 아들’로 부르고 있었다. 朴寬賢은 광주의 희망으로 우뚝섰다.그러나 도청앞 광장은 그의 존재보다 더 큰 부피로 살아나고 있었다. “민주화의 성스런 횃불이 꺼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영원히 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한 朴寬賢은 “휴교령이 발동되면 정오에 도청앞 광장에 모이자”고 당부했다.광장은 광주 시민을,역사를 안을 태세가 되었다. 80년 4월9일 직선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뽑혔던 朴寬賢은 5·18 광주민중항쟁이란 역사의 핏빛 숲으로 똑바로 난 푸르른 길이다.광주에 박관현이 있음으로 해서,박관현의 결집력과 지도력이 있음으로 해서 5·18의 야만적 폭거와 승화된 공동사회체의 대조적인 두 측면이 뚜렷하게 부각된다. ○민주화운동에 남다른 열정 그는 한달이 약간 넘는 짧은 기간에 전남대 학생들과 광주 시민들에 잠재된 민주역량을 깊은 속까지 파내고 정연한 모양새로 다듬었다. 광주 시민들은 이 민주역량의 판석들을 꺼내 비록 가장 불행한 형태이긴 하지만 거대한 항거의 피라미드를 구축했던 것이다. 79년 10월26일 朴正熙 대통령의 사망과 함께 유신철폐와 민주화에의 기대가 드높기만 했으나 崔圭夏 과도정부는 애매한 이원집정제의 정부주도 개헌을 고집하고 있었다.무엇보다 全斗煥 중앙정보부장 겸 보안사령관이 이끄는 신군부는 비상계엄 상태를 유지하면서 정권찬탈의 야욕을 구체화해 갔다.분열과 대립으로 내닫는 정계보다는 대학이 민주화의 기수로 나섰으며 특히 광주의 전남대가 그러했다.박관현이 4월 27세의 나이많은 법대 3년생으로 총학생회장에 당선할 때 그의 사회 및 학원 민주화에 대한 남다른 열정과 탁월한 대중지도자 자질을 알고 있었던 사람은 소수였다. 고시 합격을 통해 사회정의 실현을 강력하게 꿈꾸었던 그는 1학년 말 야학운동에 뛰어드는 일대 방향전환을 한다.‘들불’ 야학을 통해 박관현은 尹祥源,金永哲 등 광주 빈민·노동 운동의 선구자들을 만나는데 박관현과 깊은 신의를 맺은 이들은 5·18 때 시민투쟁군의 중추로 활약했다. ○현상금 눈먼 동료 공원이 고발 朴寬賢은 5월 중순 단 며칠새 민주화를 희원하는 모든 광주 시민의 가장 믿음직한 아들로 자리잡았다.변혁에 대한 갈망은 리더에 대한 갈구를 깊게했고 민주화 변혁 갈망이 유달랐던 광주에 때마침 청중의 귀와 마음을 사로잡는 연설력의 박관현이 등장한 것이다.전남대와 박관현의 주도로 계엄령 아래 3일 연속 도청앞 광장에서 열린 민족민주화 성회는 비상계엄 즉각해제를 요구했으나 평화스럽게 마무리되었다.朴寬賢은 이때 방관자,구경꾼으로 머물러 있던 시민들을 민주화 희원의 역군으로 동참시키는 자력을 발휘했다. 그의 이같은 능력은 세계 역사상 드문 5·18 항쟁의 일반시민 주도 사실과 맞물려 전설이 되다시피 했으나 정작 박관현은 5·18 때 현장에 있지 못했다.신군부가 5·17 비상계엄 확대 쿠데타로 민주 인사들을 사전검거하자 18일 아침 격렬한 논쟁 끝에 학생회장 박관현의 피신이 결정됐다. 인간의 야수적 본성을 그대로 드러낸 만행과 함께 사람들의 더불어 같이 사는 소질이 꽃처럼 만개한 열흘간의 항쟁 상황을 여수 앞바다 돌산섬에서 전언으로만 듣게된다.몇번 잠입을 시도하다 실패한 박관현은 항쟁이 진압된 뒤 6월6일 서울로 도피한다.항쟁후 ‘공수부대원들이 조각조각내 버렸다’는 소문이 돌았던 朴寬賢은 82년 4월 서울 편물공장에서 현상금을 탐한 동료 공원의 고발로 체포돼 광주로 압송됐다. “도청앞 광장에서 만나자”는 자신의 ‘말’을 금쪽같이 지켜줬던 광주에 23개월 만에 발을 디딘 박관현은 드디어 ‘행동’한다.내란 중요임무 종사 죄목으로 5년형이 선고됐으나 朴寬賢의 눈은 다른 곳을 천착하고 있었다.그는 광주교도소 수감 3개월 후인 7월부터 교도소 내의 비인간적 처우에 항거하는 단식을 실시한다.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무기로 육신을 택한 그의 단식은 철저한 것이었고 3개월 동안 3차에 걸쳐 50여일에 달했다. ○단식중 외부진료 한번 못받아 교도소 당국은 처우개선 약속을 조롱하듯 파기하면서 점점 한계 상태로 빠져드는 그를 외부진료 한번 없이 방치했다.10월10일 온 신경이 돌처럼 굳어 도무지 음식을 음식으로 여기지 못할 지경이 되어서야 전남대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급성 심근경색증에다 급성 폐부증 증세로 12일 새벽 숨지고 말았다.만 29세였다. 朴寬賢의 젊고 강한 넋은 5·18의 핏빛 숲 뒤꼍에 언제나 푸르른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朴寬賢 열사 연보 ▲1953년 전남 영광군 불갑면 출생 ▲70년 광주동중 졸업 ▲73년 광주고등학교 졸업 ▲74년 군입대 ▲78년 전남대학교 법대 입학 ▲78년 12월 광주공단 노동자실태 조사작업에 참여 ▲79년 광천 들불야학 강학 활동 ▲80년 4월 전남대 총학생회장 당선 ▲80년 5·17조치로 서울 피신 ▲82년 4월5일 체포,12일 광주교도소 수감 ▲82년 7∼10월 3차례에 걸쳐 50여일 간 단식투쟁 ▲82년 9월 ‘내란중요임무종사자’로 5년형 선고 ▲82년 10월12일 전남대 병원에서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사망 ◎누나 朴幸順 여사/어머니는 아들 검거된뒤 생존 사실 알아/동생 죽기전 “전면 단식” 조언 지금도 恨 朴寬賢 열사의 셋째 누나인 朴幸順 여사(49)는 광주대에서 구내매점을 열고 있다. 항쟁이 끝난 후 寬賢이 죽지 않고 서울에 은신한 사실을 서울의 큰언니를 통해 알았지만 寬賢의 부탁대로 아들의 생사를 몰라 애태우는 어머니에겐 체포 때까지 비밀에 부쳤다.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을 들으면 아무래도 어머니의 안색이 달라져 당국의 주의를 끌까 우려해서였다. 체포된 뒤 단식 소식을 전해듣고 찾아간 그에게 寬賢은 새벽 2시 무렵에 고문하는 소리가 수시로 들리고 수형자의 부식비를 빼먹는 비리와 함께 생명 유지도 어려울 정도로 형편없는 음식만 지급한다며 “안에서 이런 악을 해결하지 못하면 바깥에 나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한편 누나는 자신의 잘못된 조언이 동생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지금도 가슴아파한다.단식이 30일째에 가까웠을 무렵 재소자 폭행 근절,주·부식 정량 지급,정치범 부당 차별대우 개선 등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았다며 다시 전면 단식을 강행할 것인가,부분 단식으로 나갈 것인가를 寬賢이 자신에게 물었다는 것이다.이때 누나는 다소라도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있으면 ‘전면’으로 나가라고 말했는데 동생이 죽기 열흘 전쯤 한 이 ‘매정한 조언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는 것이다. ◎동료 宋善泰씨 회고/결벽 심해 현실적 타협 거부/뜻 정하면 끝장보는 성격… 自身에 철저/검정고무신 신고 술·노래 잘하던 학생 朴寬賢 총학생회장 아래서 제2선의 비공식 기획실장 역을 맡았던 宋善泰 현 광주 시의회 전문위원은 “결벽증이 있을 만큼 자신에게 철저했던 朴寬賢은 뜻을 정하면 끝장을 보고 말지 결코 어설프게 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학생회장 취임 직후 학원민주화 현안으로 어용교수들의 퇴진 문제가 대두됐을 때 朴寬賢은 타협안이나 다른 이슈와 함께 추진하자는 의견에 반대,어용교수의 발본색원과 문제의 완전해결을 강력 주장했다.또 학생들이 단식 농성에 들어간 후 몇몇 집행부 학생들이 투쟁 지도를 위해 김밥을 먹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는 이를 빼앗아 내팽겨쳐 버렸다고 한다. 소금장수,모기장 행상,편물공장 공원 등으로 서울에 피신하고 있을 때 광주 민주인사들에게 연락을 해 고향에서 잠적하거나,자수를 해서 형을 살고 나와 ‘내일’을 도모할 수도 있었다고 본 宋위원도 그의 강직한 성품이 이런 현실적 타협책을 거부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학생회장이 되기 전까지 쭉 검정 고무신 차림으로 학교에 다녔던 朴寬賢은 술도 잘 먹고 노래도 곧잘하는,놀 줄아는 젊은이였다고 한다.
  • 姜元龍 크리스찬 아카데미 이사장·목사(국난극복의 지혜를 듣는다)

    ◎회개하라 정치인이여/IMF 검은 태풍속 한심한 잇속 다툼/국민분노 폭발 직전/반성 모습 보여야 예수님의 세상을 향한 처음 메시지는 ‘회개하라’였다.왜냐하면 지옥같은 역사 속에 임하여 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이어온 모든 분야에 먼저 대전환이 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전통과 특히 기층문화 속에는 21세기의 세계안에서 큰 빛을 끌어낼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회개(패러다임의 전환)없이는 이 시대를 맞이할 수 없다.오래전에 베네딕트란 사람은 동양문화는 서구의 죄책문화 대신 수치문화(Shame Culture)라고 했다. 간단한 예를 들면 히틀러의 야수같은 정치가 붕괴된 후 독일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회개운동을 전개했다.많은 예가 있지만 빌리 브란트가 총리가 된 후 학살당한 유대인 무덤에 엎드려 통곡을 했었다.이런 회개의 힘이 전후 독일을 폐허에서 구해내고 큰 피해를 주었던 유럽국가들과의 관계도 정상화될 수 있었다.10월7일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하는데 일본은 독일이 전후에 보여준 이런회개를 전혀 한 일이 없다.문제는 한·일관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지금 흥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 분명하다.21세기는 5,000년간 축적된 우리의 잠재능력을 세계사 속에서 꽃피우느냐,아니면 역사의 무대에서 탈락하느냐의 기로다.가장 시급한 것은 회개문화의 형성이다. 해방후 역사만 보아도 우리는 일제의 유산을 회개를 통하여 청산하지 못한 채 정부를 세웠고 6·25를 겪으면서 미·소 강대국이 덮어 씌운 국토와 민족분단정책을 그대로 수용한 잘못도 회개하지 못했다. 4·19 학생의거에서 회개의 기회를 가졌으나 민주당 정부는 추잡한 신·구파 싸움만 하다가 군사혁명을 유발했으며 그들이 저지른 잘못을 오늘까지도 회개한 일이 없다.박정희정권 하에서 19년동안 민주주의의 토대를 무너뜨리고 생태계를 파괴하고 정경유착으로 돈과 권력을 숭배해온 과오를 회개한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대 최고의 국가원수로 치켜세우기까지 하고 있다. 문민정부 하에서 외채 400억달러가 1,650억달러가 되어 IMF 사태를 초래했다고 하는데그런 기막힌 역사를 만들어온 장본인들이 회개의 모습은 고사하고 전 국민의 분노가 폭발 직전인데도 구태의연한 추잡한 정치에 몰두하고 있다. 새로운 국민정부는 길고 긴 야당생활로 불가피하게 개미군단같은 조직과 저항을 해오다가 집권당이 되었으니 과감한 방향전환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개혁으로 방향전환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이번에 ‘제2의 건국’도 대한민국이란 배가 도착해야 할 항구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시장경제는 과거에 비해 훨씬 새로운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수단은 될지언정 목표가 될 수는 없다.우리의 목표를 뚜렷하게 하고 그리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꾸어야 한다.IMF사태는 우리의 항로에 태풍이 온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이 태풍권을 벗어나기까지는 내 보따리 찾는 싸움을 하지 말고 모든 힘을 하루빨리 이 태풍권을 벗어나는 일에 모아야 한다. 국민들에게 태풍권을 벗어나면 우리가 도착할 항구의 모습,즉 민족의 비전을 뚜렷이 제시해야 한다.그리고 지금까지 내려온 권력과 금력이 숭배받는 사회의 계승이 아니라 권력도,경제도 수단일 뿐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주고 정치권 경제권만이 아니고 각계각층에 걸쳐 과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 미사일이건 위성이건 위협적/池萬元 군사평론가(기고)

    ◎한·미·일 3국 대북정책 변화 불가피 북한이 발사한 물체가 미사일이냐,인공위성이냐에 대해 세계 이목이 집중돼 있다.북한은 위성발사 사실을 전 인민은 물론 세상에 매우 자랑스러운 톤으로 발표했다.그렇게 자랑스러운 일을 왜 맥빠지게 4일 후에야 했을까. 더구나 국제적 비난여론과 이미지 손상을 무릅쓰면서까지 말이다.만일 북한이 처음부터 위성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면 북한의 위상은 신사적인 방법에 의해 일거에 준러시아급으로 상승됐을 것이다. 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상정해 볼 수 있다.북한은 그들이 쏘아올린 위성에 대해 시시각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영상정보 수집 능력이 없다.그래서 그들이 위성에 장착해 놓은 고유 주파수를 전탐기능에 의해 탐지함으로써 위성이 제 궤도를 돌고 있는가를 판단해야 한다.여기엔 시간이 걸린다.그래서 그들은 4일 동안의 관찰과정을 통해 뒤늦게 성공사실을 발표했을 수 있다.위성을 띄우겠다고 발표부터 해놓고 만일 실패한다면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온갖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성공할 때까지는 오해를 받더라도 침묵했을 수도 있다.사실은 곧 밝혀질 것이다.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북한이 곧 ICBM(대륙간 탄도미사일)국가로 올라 선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단지 몇년 더 빠르냐에 대한 문제일 뿐이다.ICBM은 화학무기와 핵무기가 없으면 의미가 없다.북한은 이미 화생방 무기 보유국이다. 만일 이번 것이 위성이라면 이는 북한이 미국의 첩보망을 따돌리고 예상했던 기간보다 더 빨리 ICBM국가로 급부상하는 것을 의미한다.사거리 180㎞로 손발이 묶인 한국만 비참할 뿐이다.이제 우리에게 할 말이 있다면 그건 북한이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 일 것이다. 미사일을 일본 근해에 발사했다는 것은 국제 상식상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그래서 일본인들의 감정이 극도로 상했다.일본이 대북관계를 모두 차단하면 북한 당국도 당장 돈줄이 끊긴다.그러나 더 심각한 것이 있다.재무장 정서가 전 일본인들에게 확산됐다.가상적국도 명분있게 부각됐다.만일 그것이 인공위성이라 해도 일본의 재무장 명분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번 발사체가 무엇이든 이는 한·미·일 3국에 엄청난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북한의 인공위성은 평화목적이 아니라 군사목적이다.여기에는 엄청난 돈이 소요된다.북한이 이제까지 어려웠던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필요 이상을 군사력에 투입했기 때문이다.북한 인민은 한·미·일이 먹여 살리고 북한 당국은 그 돈으로 한·미·일을 겨냥해 ICBM을 개발해 왔다는 엄청난 넌센스가 통해 온 것이다. 미국의 정보력에도 구멍이 뚫렸다.북한은 미국을 감쪽같이 속이고 기습에 성공했다.이는 앞으로도 북한이 얼마든지 미국의 눈을 피해 기습적인 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암시해준다. 아울러 한국의 국방·안보 정책에도 일대 방향전환이 요구된다.한국군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다시 정립돼야 한다.지금의 햇볕정책과 정경분리 정책도 전면 재고돼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이라크나 아프리카국가에게는 과감한 군사적 보복을 가했다.그러나 북한은 보복의 대상이 아니다. 미국은 앞으로도 북한을 포용하게 될 것이다.미국과 한국의 길은 분명 다르다.
  • KIST 등 6개硏 매킨지社에 경영진단

    ◎내년부터 연구기관 연봉제 도입/科技部,연구체계 대학­기업중심 전환 과학기술부는 19일 미국의 세계적인 경영평가 기관인 매킨지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자력연구소,기계연구원,화학연구소,생명공학연구소,항공우주연구소 등 6곳의 정밀 경영평가를 의뢰했다. 이들 6개 연구소는 연구영역이 다른 연구소와 겹치거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돼온 기관들이어서 통·폐합의 주요 대상에 해당될 것으로 보인다. 과기부는 연간 1조 3,000억원을 넘는 방대한 예산을 쓰는 산하 20개 정부출연 국책연구소의 경영혁신 방안을 오는 10월까지 확정할 예정이다. 20개 출연연구소 중 표준과학연구원,에너지기술연구소,자원연구소,전기연구소,천문대 등 7곳은 연구기관평가전문기관인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STEPI)가 매킨지와 공동으로 평가토록 했다. 과학재단과 원자력안전기술원은 매킨지의 기법을 이용,STEPI가 자체평가한다. 매킨지에 지불하는 용역비용은 11억7,000만원이다. 평가는 연구소의 주요 업무를 과정별로 분석,진단한 뒤 개혁방안 및 개선가능 분야를 확인,제시하는 절차를 밟는다. 외국기관과의 벤치마킹 등 권고방안도 함께 제시된다. 과기부는 이와 함께 국가연구개발 시스템을 국책연구소 중심에서 대학 및 기업 중심으로 전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99년부터 모든 연구기관에 연봉제와 계약제를 전면 도입하는 방안도 혁신안에 포함시킬 방침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과학기술 투자규모는 135억달러로 세계 7위,인력규모도 15만2,000명으로 9위이지만 기술협력분야는 41위,과학교육은 32위에 머무는 등 질적 수준이 낮고 효율이 뒤떨어져 국제경쟁력은 세계 28위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20개 국책연구소의 경영혁신을 통한 과학기술계의 자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기업 패러다임 바꿀때/삼성경제硏 학술심포지엄 金仁秀교수 주제발표

    삼성경제연구소가 삼성 창립 60주년을 맞아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국경제의 발전과 경제난 극복을 위한 학술심포지엄을 가졌다.金仁秀 과학기술정책관리연구소장(고려대 경영학과교수)의 주제발표(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기업의 패러다임 전환)내용을 요약한다. ○핵심능력·기술 위주로 우리가 경제위기를 처음 당하는 것은 아니다.석유파동 등 여러번의 위기를 겪었다.그러나 이들 위기는 일시적 외부충격이었기 때문에 충격이 없어지면서 경제가 다시 활력을 되찾곤 했다.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일과성 충격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제경제질서의 근본이 바뀌는 환경의 구조적 변화이며 고비용 저능률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으로 인한 총체적 실패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이같은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러 측면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정부의 개혁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를 위한 환골탈태적 변화,사회개혁을 통한 투명한 시스템의 구축,국민들의 내핍과 저축,‘다시 해보자’는 각오 등이 필요하다.특히 기업의 경우 그동안 강점으로 생각했던 부분들과 규범으로 받아들여 추진해 온 부분들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과 방향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보호를 받던 시절에는 문어발식 사업다각화가 주효했다.그러나 이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핵심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경쟁력을 갖출 수가없게 됐다.기업은 이제 확장위주에서 핵심능력위주로 나가야한다.경쟁력도 가격경쟁력에서 기술경쟁력 확보쪽으로 빠르게 가야 한다.선진국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어차피 생산요소면에서 고비용사회로 가지 않을 수 없다. ○경영전략 세계화 전환 80년대에는 중화학공업 제품을 단순 모방하며 성장해왔다.그러나 모방방식도 기술능력과 경영능력을 바탕으로 외국제품보다 더 좋은 제품을 창의적으로 모방하지 않으면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됐다.모방을 버리고 혁신을해야 한다고들 한다.그러나 새로운 제품의 개발도 좋지만 창의적 모방도 중요한 전략이다. 경영사고 역시 국내위주에서 세계화 전략으로 바뀌어야 한다.우리기업들은 60년대 산업화 초기부터 수출주도 정책에 힙입어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수출해왔다.그러나 이제는 외국인 투자진출로 국내시장에서의 경쟁도 불가피해졌다.기업으로선 연구개발과 구매 생산 판매 고객서비스 등 기업의 가치창출활동 하나하나를 비교우위가 가장 큰 국가에 배치하고 이를 효율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중소기업들도 전통적 중소기업에서 기술집약형 중소기업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한다.중소기업을 돕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술집약형 중소기업들이 태동하고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기술이 급변하는 태동기 산업이나 성장산업의 경우 혁신적 자본재나 부품을 공급하는 데 있어 기술집약형 중소기업만큼 효과적인 기업도 없다. 생산능력보다는 혁신능력을 향상시켜나가야 한다.고비용 저효율문제를 장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기업의 과학기술능력을 바탕으로 공정혁신과 제품혁신을 통해 원가를 떨어뜨리고 효율을 높이는 데 있다. ○유기적 팀조직 활성화 조직측면에서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과거에는 기업의 불확실성이 대부분 정부와의 관계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정경유착이 불가피했다.이 과정에서 최고경영층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돼 자연히 톱­다운 방식의 경영이 한국기업의 경영특성으로 자리잡았다.그러나 기술이 급변하고 경쟁이 치열해진 상황에서 혁신기술능력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조직체제도 생산에 능률적인 군대식 관료주의보다는 조직구성원이 창의성을 발휘하도록 유기적 팀조직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이를 위해 내부 통합적 조직을 네트워크 조직으로 바꿔나가야 한다. 또 관리의 조직에서 끊임없이 지식을 창출·획득·확산하는 데 능숙한 조직,학습하는 조직이 돼야 한다.인사관리도 연공서열이 아니라 능력과 업적에 따라 대우하는 역동적 인사관리로 전환해야 한다. 오늘날 기업이 무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기술능력과 경영능력을 확보해야 한다.과학기술 선진국이 돼야 하며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역시 선진화돼야 한다.우리에게 맞는 경영능력의 개발도 절실하다.국제언어에 대한 취약성,타민족과 문화에 대한 몰이해와 배타성,이로 인한 타문화권 민족과의 갈등 등이 우리의 세계화를 가로막는 요인이다.
  • 클린턴 스캔들 탈출/힐러리가 1등 공신

    ◎“최대 위기 백악관 구한 여장부”/미 언론 집중조명 ‘물줄기’ 바꿔 【워싱턴〓김재영 특파원】 동서를 막론하고 정변이나 혁명이 마무리되면 공신 서열매기기가 시작된다.클린턴 대통령의 백악관 인턴 섹스 스캔들과 관련해 지면을 온통 도화색으로 분칠하던 미국 신문과 방송이 이제 클린턴 대신 클린턴 위기극복의 1등공신이란 측면에서 부인 힐러리 여사를 집중조명하고 있다.공신이 운위될 단계면 이미 위기는 정점을 지난 만큼 언론의 이런 방향전환은 클린턴 부부를 이중으로 기쁘게 할 전망이다. 이전부터 여러 면에서 남편을 능가한다는 칭찬과 비방을 들어온 힐러리 여사는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인생 중 최대로 심각했던 이번 스캔들 위기에서 클린턴에게 최대의 도움을 주었다.위기 초반 백악관은 자중지난에 빠져드는듯 했다.공화당 등 적들이 전략적 침묵을 택하고 있는 가운데 하필 백악관출신의 클린턴 과거 최측근들이 ‘침몰하는 배의 쥐’처럼 등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해댔다. 그런데다 백악관에선 관련사실을 정확히 파악할 때까지 혐의 부인 외에 섣부른 해명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법률가들과 여론의 악화를 막기 위해 당장 적극적 해명이 긴요하다는 정치분석가들이 맞붙어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을 때 힐러리가 나서 대오를 정비하고 해명없는 강력부인 쪽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독려했다. 무엇보다 클린턴이 여론전환의 찬스로 삼은 국정연설 12시간 전 방송에 나와 남편의 혐의 부인을 진심으로 믿는다는 말과 함께 이 스캔들의 우익음모론을 분명하게 지적했다.
  • (주)코디넷 ‘GUNCHASE’/인터넷 가상전쟁

    ◎적을 죽여야 내가 산다?/총·폭탄 등 아이템 얻은뒤 개전/특성다른 탱크로 공격·방어/최고점수 딴 조종사엔 훈장도 ‘GunChase’는 국내 최초의 인터넷 실시간 슈팅게임.(주)코디넷(02­337­7605)에서 개발했다. 게이머는 인터넷에 접속한 뒤 마음에 드는 탱크와 전투장소를 골라,다른 사람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총과,폭탄,지뢰 등 각종 아이템을 얻은뒤 탱크를 파괴하려는 상대방의 공격을 피하고 끝까지 살아남아야 하는 일종의 서바이벌(survival)게임이다. 가장 큰 특징은 기존의 네트워크 게임이 한정된 인원만 함께 사용할 수 있던 것과 달리 동시에 수백명까지 접속하여 실시간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는 것.슈팅게임이지만 네트워크상에 지원되는 세련된 화면이 돋보인다. 섬세한 배경 그래픽과 3차원 랜더링 기법을 사용,국산 게임의 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다. 특히 인터넷 게임만의 특징인 실시간처리기법을 자체 개발,기존의 온라인 게임들과는 다르게 움직임이 부드럽고 자연스럽다. 게임을 하려면 먼저 Direct X3.0과 GunChase 게임에뮬레이터를 설치해야 한다. GunChase 게임에뮬레이터는 http://www.CodiNET.com/GunChase/download/down.html에서 다운로드한다.다음 gunchase.exe를 실행시킨다.이어 Direct X를 다운로드하받고 directx3.exe를 실행한다. 이제 게임을 즐기려면 아이네트에 있는 ‘GunChase’의 홈페이지(http://www.iWorld.net/GameLand/GunChase)에 접속한다.이곳 자료실에서 게임랜드 셋업프로그램을 받고 InetGame.exe를 실행시킨다.이후 홈페이지에 다시 접속,연결버튼을 누르면 게임이 자동으로 실행된다. 서버와 연결한 뒤 나타나는 대화 상자에서 ID와 패스워드를 넣고 탱크 종류,전투 장소를 결정한 뒤 시작버튼을 누르면 게임에 들어간다. 탱크마다 특성이 각기 다르므로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EY-19는 속도가 빠르고 세 방향 연속발사를 할 수 있는 총을 갖고 있다.반면 공격에 약하고 회복력이 느린 것이 단점. L­32 프로벤트는 강한 회복속도를 갖고 있고 특수병기로 상대방의 속력을 떨어뜨릴수 있는 파란색의 폭탄을 지녔다.하지만 속도가 느리므로 사격술에능한 조종사에게 적당한 탱크다. 폭탄과 총도 적절하게 써야 한다. 폭탄은 너무 가까운 곳에서 터지면 자기에게도 피해가 온다.폭탄의 폭발력이 크면 클수록 자기 에너지도 줄어듦으로 무기를 함부로 쓰면 안된다. 네가지 종류의 총도 속도와 강도가 제각각이다. ‘지뢰’를 요령있게 쓰는 것도 승리의 관건.지뢰는 순간적인 방향전환이 약한 빠른 상대나 너무 가까이에서 꽁무니를 추격하는 상대에게 유용하다. 게임을 하다보면 현재 점수와 등수가 표시된다.맨위에 있는 사용자의 이름이 최고 점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최고점수를 가진 조종사에게는 훈장이 수여된다. 화면 왼쪽 하단에는 지뢰수,폭탄수,에너지,속도가 표시된다. 조작방법은 비교적 간단하다. 총알발사는 Ctrl,폭탄발사는 Tab.좌우방향전환은 ←,→,↑,↓키는 속도조절을 하는 식이다.지뢰설치를 하려면 Shift+Tab이다.
  • 외국인투자한도 3일부터 26%로 확대/폭락 증시 부축‘최대변수’

    ◎비관론­우량주도 대거 매도… 유입 가능성 적어/낙관론­1∼5차때 순매수 기록… 매도 진정 점쳐 정부의 잇따른 증시부양책과 금융안정대책에도 외국인들의 매도세가 수그러들기는 커녕 오히려 사상 최대를 기록하고 있다.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한도확대(23%→26%)시행 당일인 11월3일 이들의 동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날도 외국인들이 팔자에 나서는 것.국내 증시이탈에 대한 우려속에서도 이를 한도확대를 앞둔 시점의 교체매매일 것이라는데 한가닥 기대를 걸어온 증시로서는 그야말로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최근 일련의 외국인 동향을 지켜본 증시 전문가들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다.외국인들은 지난주 3천억원가량 매도 우위를 보인데 이어 27일 3백74억원,28일 4백77억원,29일 7백24억원을 각각 순매도했으며 30일에는 사상 최대인 1천3백48억원을 순수하게 팔아치웠다.지난 석달동안 이들이 빼내간 자금만 총 1조2천억원. 특히 외국인이 한도확대 선호주로 인식하던 삼성전자 국민은행 신한은행 유공 현대건설 등을 집중적으로 매도하는 것을 근거로 일부에서는 이번 한도확대가 외국인들의 매도세를 돌리는데는 역부족일 거라는 견해를 내놓고 있다.외국인의 자금유입이 어느 수준에 달할지 초미의 관심사이지만 국내적인 요인만을 놓고 볼때 외국인의 자금유입이 순조롭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한도확대 이전의 매도세가 한도확대 이후 방향전환을 했던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춰 이날을 기점으로 외국인들의 자금이 다시 들어올 것으로 보는 낙관적인 전망도 만만치 않다.지난 94년 12월 1일의 1차한도확대이후 지난 5월 1일의 5차한도확대때까지 외국인들은 당일날 적게는 1백4억원에서 많게는 6천1백14억원의 순매수를 기록했다.외국인투자자를 총괄하는 증권감독원도 그동안 빠져나갈만한 외국인 자금은 거의 정리돼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에 매도세가 진정되면서 순매수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 황장엽씨 ‘김정일 승계 비판’ 기고

    ◎북 정권 승계에 정책변화 기대는 ‘환상’/시대 뒤떨어진 세습 감추려 3년3개월간 고심 흔적 ‘역력’/쇄국·민족배타 노선 버리고 평화 통일 ‘열린 길’로 나서라 오늘 북한 통치자들은 김정일의 공식 권력승계를 놓고 마치 새로운 태양이 솟아 오른 우주의 대사변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떠들고 있다. 후계자의 권력승계에 대하여 말한다면 그것은 오래전에 시작되었으며 적어도 1974년 2월 노동당 조직비서로서 제2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자기 삼촌(김영주)을 내쫓고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됨으로써 사실상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수령의 유일독재체계는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제를 통해서만 실현된다는 원칙이 전면적으로 관철되게 되어 실권은 완전히 후계자가 장악하고 수령은 더욱 신격화되었을뿐 좋은 경우에 후계자의 최고 고문의 역을 담당하게 되었다.그러므로 수령이 사망하였다고 하여 통치자가 달라진 것이 아니며 권력승계를 공식화한다고 하여 김정일의 지위가 더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김정일이 공식승계를 서두르지 않은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실제 승계 23년전 마감 그러면 북한 통치자가 3년3개월이나 공식승계를 미루는 남다른 변덕을 부리다가 오늘은 또 공인된 정상적 선거절차도 밟지 않고 공식승계를 슬쩍 해버린 의도는 어디에 있겠는가? 첫째로 김정일에게 가장 아픈 약점은 현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세습승계를 한다는 점이다.이 문제를 무마시켜 보려고 매우 고심해왔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있다. 북한 통치자들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쇠퇴 몰락이 그 이론이나 그것을 구현한 사회체제의 본질적 결함때문이 아니라 전적으로 수령의 후계자를 잘못 선발한데 있다는 그릇된 주장을 내놓고 저들의 세습적 승계를 정당화해보려고 하였다.그들은 이러한 논리적 기만술책만으로는 부족하여 후계자인 ‘광명성’은 태어날 때부터 아버지 ‘태양’의 지위를 승계할 운명을 지니게 되었다는 허황한 미신까지 만들어 냈던 것이다.김정일은 공식승계를 미루면서 부친의 방조없이도 자체의 힘으로 능히 영도자의 지위를 지키고 나라를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신격화된 계승 중요시 둘째로 김정일은 총비서라든가 국가주석 같은 공식적인 법적 지위보다는 절대적으로 신격화된 수령의 초법적인 지위를 계승하는 것을 더 중요시 하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수령의 지위를 계승하는데서 첫째가는 조건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이기 때문에 김정일은 수령에 대한 자기의 충성과 효성을 과시하여 수령의 지위 승계를 위한 도덕적 권위를 높이는데 1차적 의의를 부여하였다.따라서 수령의 사망후 굶어죽어가는 수많은 주민들은 돌보지 않고 부친의 시신을 영구보존하기 위한 화려한 궁전을 건설하는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였던 것이다. 또 그는 ‘탁월한 사상이론가’라는 영상을 높이기 위하여 글만 쓰는 학자들도 무색케 할 정도로 연이어 글을 발표하였으며 수령에 대한 우상화 수준과 후계자에 대한 우상화 수준을 비등하게 만들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들을 동원하였다. 이러한 준비에 기초하여 김정일은 당규약과 세계가 공인하는 선거절차를 무시하고 총비서 추대를 선포함으로써 자기가 초법적이며 초국가적인 존재라는 것을 시위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정권 본질은 결코 불변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기대하여야 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바라는 것은 김정일이 봉건적인 개인독재체제를 버리고 개혁 개방의 길로 나오는 것이며 무모하고 범죄적인 무력통일노선을 버리고 남북대화와 교류의 길로 나오는 것이다.그러나 김정일 정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것만큼 큰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첫째로 북한통치자들은 세계 어떤 경제적 파동에도 끄떡하지 않는 ‘자립적 민족경제’를 건설하여 놓았다고 호언장담하여 왔는데 그것을 누가 다 망쳐먹고 북한땅을 가장 가난한 나라,빌어먹는 나라로 만들었는가에 대하여 밝히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권력을 다 틀어쥐고 있는 북한 통치자가 민생고에 대하여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북한 인민은 수령복을 누린다고 하는데 수령복의 내용이 주민이 헐벗고 굶주리는 것인가? 우리는 1995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만 하여도 수많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굶어죽어 가고 있다. 북한당국자들은 어째서 세계 각국에 식량을 구걸하면서도 이 사실을 숨기고 있으며 실태를 조사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가? 더욱이 엄중한 것은 남한동포들이 순결한 동포애적 심정으로부터 북한동포들의 민생고를 책임지고 풀어주려고 하는데 그것을 왜 가로막는가? 앞으로 남한동포들이 보내는 식량과 의약품 등 구제물자들을 판문점을 통하여 무조건 받아들이겠는가,않겠는가? 우리는 이것이 알고 싶다. 둘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오늘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자유가 없고 인권이 유린된 일대 감옥으로 만든데 대하여 응당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최고 인권유린국 반성 조선민족을 ‘김일성 민족’으로 부를 권리를 누가 주었는가? 조선사람은 수령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하면서 수령을 옹위하는 총폭탄이 될 것을 강요하고 있는데 이 이상 더 큰 인권유린이 어디 있으며 인민을 노예화하는 정책이 아니고 무엇인가? 수령을 우상화하기 위하여 모든 선전수단을 동원하고 역사를 왜곡하다 못해 이제는 우리민족의 자랑인 금강산·묘향산·백두산 같은 명승지에 자연경치까지 못쓰게 만들고 있는데 이 죄과를 인정하는가? ○언제까지 굶길 것인가 셋째로,북한 통치자는 무엇 때문에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계속 전쟁준비에만 내몰고 있는가? 북한 사람들을 굶겨죽이다 못해 전쟁의 폐허 속에서 행복과 번영을 쟁취한 남한동포들까지 죽일 작정인가? 북한 주민도 먹여살리지 못한 통치자가 무슨 염치로 전조선을 통치해 보겠다는 망상을 가지려고 하는가? 청년학생들이 군사훈련과 충성의 무슨 운동 때문에 재학기간에도 공부할 시간이 없는데 13년간이나 군대에 복무하면서 수령옹위의 총폭탄이 되는 연습만 하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청춘의 희망을 꽃피울수 있단 말인가? 청년들의 희망을 짓밟는 만행을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는가? 넷째로.북한 통치자는 입으로는 ‘민족대단결’이요 ‘민족통일’이요 떠들지만 남한에 대한 적대감을 고취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하고 있는데 여기에 무슨 평화통일의 의지가 있단 말인가? 미국이나 일본하고는 회담을 하자고 하면서 동족끼리는 대화조차 거부하고 있는 속셈이무엇인가? 일본인 처는 고향방문을 허용하면서 남북간에는 편지거래조차 못하게 하고 이산가족 상봉도 절대 반대하는 의도가 어디에 있는가? ○‘벼랑끝’ 외교전술 중단 다섯째로 북한 통치자들은 인민들의 귀를 막고 눈을 가리우고 손쉽게 개인독재를 실시하기 위하여 쇄국정책을 계속 실시하고 있는데 쇄국정책이 망국의 길이라는 역사적 진리를 왜 외면하고 있는가? 북한 통치자들은 주변대국들의 모순을 조장시켜 어부지리를 취하고 전쟁과 테러로 평화애호 인민들을 위협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벼랑끝 전술’을 김정일이 발명한 대단한 외교지략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데 이렇게 한 모든 선행자들의 말로가 비참하였다는데 대하여 왜 교훈을 찾지 못하는가?북한 통치자들의 사상은 인간중심의 사회주의 사상과 인연이 없을뿐 아니라 스탈린주의로부터도 멀리 후퇴·변질하였다.그들의 사상은 무자비한 계급투쟁을 신봉하는 계급주의이고 쇄국주의를 주장하는 민족배타주의이며 철저한 개인숭배에 기초한 전제주의적 개인독재 사상이며 폭력을 신성화하는 군국주의 사상이다.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역겨운 자화자찬으로 가득찬 이른바 ‘고전적 노작’들을 대담하게 버리고 보다 겸손한 자세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로 일대 방향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다.
  • 황장엽씨 “북 정책변화 없을 것”/김정일 승계 의미 없어

    황장엽 전 북한노동당 비서는 20일 “김정일이 당총비서직을 공식승계했다 하더라도 김정일정권의 본질이 달라지지 않은 만큼 (북한의) 정책적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라고 밝혔다. 황씨는 안기부가 언론사에 배포한 ‘김정일의 권력승계에서 무엇을 기대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기고문을 통해 “북한 통치자는 보다 겸손한 자세로 인민의 자유와 행복을 위한 길,조국의 평화적 통일의 길로 일대 방향전환을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황씨는 또 “북한통치자들은 무엇때문에 굶주린 북한주민들을 계속 전쟁준비에만 내몰고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인민들의 귀를 막고,눈을 가리우고,손쉽게 개인독재를 실시하기 위해 쇄국정책을 실시하고 있는데 쇄국정책이 망국의 길이라는 역사적 진리임을 외면치 말라”고 경고했다.
  • 황장엽 회견을 보고/3인 특별 좌담

    ◎안보의식 해이·국론 분열되면 언제든 남침”/북은 개혁·개방­전쟁의 갈림길… 대화 시급/강한 군사력·북 포용정책 함께 추진할때 □참석자 ·전인영­서울대 교수 ·현성일­전 북한외교관 ·황승길­본사 국제전략연 위원,북한문제 전문가 지난 4월 우리나라로 망명한 ‘주체사상의 창시자’ 황장엽씨가 10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김정일의 전쟁시나리오’는 내외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황씨 회견을 계기로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과 김정일의 노선,그의 발언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전인영 서울대교수,현성일씨(귀순 전 북한외교관) 홍승길 서울신문사 국제전략연구소 연구위원 의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편집자주〉 ▲전인영 교수=황씨 기자회견은 망명이후 첫 공개증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가장 관심을 끌었던 부분은 역시 북의 전시관리체제였다.결국은 전쟁이 발발할 것이라는게 황씨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우리사회에는 안보불감증이 널리 퍼져 있지만 북한에서는 우리와 다른 긴장된 생활을 하고 있으며 무력을 이용한 통일을 줄곧 추구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 셈이다. ○북의 전쟁의도 분명 ▲홍승길 연구위원=어제 회견에서 정부의 대북정보가 거의 들어맞은 것으로 밝혀졌다.특히 북측의 전쟁의도,전쟁수행역량이 분명하게 밝혀져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긍정적 의미도 있었으나 몇가지 부정적 영향도 우려된다.황씨가 남북대화에 거부적 입장을 보여 대화위주의 대북전략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하는 점과 황씨를 한사람의 귀순자로 보기보다 영웅시하지 않는가 하는 면이 걱정된다. ▲현성일씨=황씨 증언의 핵심은 전쟁발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남한측에 있다는 부분이다.북한이 식량난에 허덕여 이판사판으로 불장난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김정일은 승산없는 싸움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교수=김정일의 전쟁시나리오가 92년 소련해체 직후 북한의 위기상황에서 나왔다는 점에 놀랐다.당시는 북한이 수세로 남북대화에 응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또 북한이 간단하게 남한을 공략할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과 전쟁의지가 강력하고 일관성있게 유지된 것도 놀랍다. ▲현씨=전쟁에 관한 얘기는 북에 있을 때도 많이 들었다.황씨가 이번에 말한 것은 단계별 전략으로 매우 구체적이었다.북한내에서는 전쟁발발시 무엇보다 미군개입의 차단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미군 1천명만 죽이면 미국내에서 반전기운이 싹터 북한이 유리하다고 여기고 있다.또 전쟁이 나면 미사일로 주한 미군부대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먼저 침공한다는 말도 하고 있다. ○전쟁방지 우리 책임 ▲전교수=이미 전쟁발발을 경고한 상황에서도 남북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위험성을 간과한 남측의 책임이 더 크지 않겠냐는 황씨의 발언을 실감있게 들었다. ▲홍위원=김정일에 대해서 민족발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한반도에서 전쟁을 피하는 것은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이다.어떻게든 전쟁을 피해야 한다.황씨는 논문 ‘조선문제’에서 대북개혁전략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페쇄·고립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기자회견에서는 북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그의 견해가 왜 바뀌게 됐는지 배경설명을 했어야 했다. ▲전교수=국가위기는 힘이 약하고 국론이 분열돼 있을때 주로 온다.6.25전쟁도 마찬가지다.안보 없이는 경제발전도 국민복지도 없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알아야 한다.북한처럼 전쟁을 수단으로 여기는 나라와 대처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안보의식의 강화를 통한 국론통일을 꾀해야 한다. ▲홍위원=황씨는 안기부,정보기관,군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이를 사시적 관점으로 보거나 당리당략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 ▲현씨=황씨가 김정일에 대해 무계획하고 조급하고 독단적이라고 말했다고 해서 그가 앞뒤 좌우 안가리고 덤벼든다는 말은 아니다.그에게 있어 김정일체제 유지는 지상과제다.그가 사회주의를 살리겠다고 마음먹었으면 진작에 개혁개방을 했을 것이다.때문에 남북관계는 남한 국민 모두와 김정일의 대결로 보아도 무방하다.국민 여론에 의해 움직이는 남한사회와 달리 북한은 김정일 개인의 결정으로 좌우되기 때문이다.남한 여론이 불안해질때 김정일은 대남통일전선전술의 적기로 여기고 전쟁을 감행할 것이다. ▲홍위원=기존의 대북정책이 남북경쟁차원에 입각한 평화전략이었다면 앞으로는 통일실현을 위한 대북전략으로의 방향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전교수=황씨의 말 가운데 전쟁이 난다면 그 책임은 남한에 있다고 한 말은 매우 인상적이다.군사적 대응과 유연한 외교적 대응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오랜 시간을 두고 교류 협력을 꾀하는 한편 강한 군사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그러면서도 우리는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햇빛과 바람은 함께 필요한 것이다. ▲현씨=현재 북한의 권력구조,특히 당과 군,보안기구,외교분야는 이미 80년대 김정일의 의도대로 구축된 것이다.따라서 김정일이 주석직을 승계한다해도 전면적 물갈이는 없을 것이며 권력개편도 의미가 없다.부분적 인사개혁은 가능할 것이다. ○북도 주변환경 적응 ▲전교수=북한의 특수성을 인정해야 한다.김정일은 개혁개방의 필요성을 다 인정하고 있지만 정치적 위험부담 때문에 못하고 있다.소극적,보수적이다.그러나 주변환경의 변화때문에 변할수 밖에 없다.북한은 현재 최소한의 것만 받아들이면서도 상황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앞으로 생존을 위해 주변환경에 적응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급류를 건널때 저절로 몸이 하류쪽으로 밀려내려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현씨=김정일의 가장 큰 목적은 체제유지다.남북이 긴장관계에 있어야 주민의 불만을 대외적으로 희석할 수 있고 국제사회로부터 원조도 끌어들일수 있다.그러나 이같은 수단이 체제유지연장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경제를 회생시킬수는 없을 것이다.따라서 김정일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알 것이다.아마 다음해 남한에 새정권이 들어서면 북한에서 주동적으로 대남정책을 펴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홍위원=기본적으로 북한은 군사에 치중하고 있다.집권층에 포진하고 있는 호전적인 군사강경파는 남한내 좌익세력의 약화로 더욱 조바심하고 있다.김정일의 성격상 대담한 대남정책들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개혁·개방 어려울것 ▲전교수=황씨가 기자회견에서 강경파도 온건파도 없다고 얘기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아쉽다.사람이 여럿이면 입장 차이가 있게 마련인데 김정일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다.북한내 세력구조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은 정보가 필요하다. ▲현씨=김정일은 현재 속으로는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겉으로는 개혁을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그나마 북미 외교관계를 통해 나진·선봉지역에 투자를 유치하려고 하지만 이는 외화벌이에 한정될 뿐 진정한 개혁·개방은 아니다.지난 90년초 북한은 나진·선봉지역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결국 제대로 되지 않았다.한국 미국 일본이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김정일이 개혁,개방을 시도하는 것은 김일성이 추진한 자립적 민족경제정책의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고,이렇게 되면 ‘김일성의 후계자’라는 김정일의 유일한 카리스마가 무너지게 된다.따라서 개혁·개방정책은 김정일의 목숨과 관련된 것이다.김정일은 현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회생책을 쓰는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전교수=북한은 개혁개방이냐 전쟁이냐의 갈림길에 서있는데 황씨는 전쟁쪽이라는 비관적전망을 제시했다.전쟁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북한이 개혁개방으로 인한 두려움을 덜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안도감을 느껴야 대화도,군축도 하는 것이지 불안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접근법이 중요하다. ▲현씨=개혁개방은 그 결과보다 주민들이 두렵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개혁개방을 했을때 주민들이 당장에는 모르지만 나중에는 하고 싶은 소리를 하면 막을 길이 없어서다. ▲전교수=앞으로 1∼2년내 북한붕괴 등 극적인 변화가 있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일단 21세기로 넘어가야 변화가 있을 것이다.북한의 붕괴가능성을 평가하려면 여러 분야에서 북한이 어느 정도 해이해졌는가 하는 지표를 잘 지켜봐야 한다.아직까지 북한은 동원체제로 자발적 정치참여가 없고 경제가 마이너스성장을 거듭해 취약하지만 군·경이 버텨주고 있다.또 외교적으로도 탈냉전시대에서 북한에 압력을 가하는 국가는 없다.미국 일본도 북한과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중이며 중국도 최소한 북한에 식량 등을 지원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관계복원을 원하고 있다.북한의 정치문화도 여전히 봉건국가적인 순종형이다.북한은 경제적으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아프리카와 달리 가능성이 있는 국가다. ▲현씨=북한이 가까운 장래에 붕괴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김정일이 죽을 때까지는 갈 것 같다.최근 체제유지의 근간인 당비서,보위부 위원들까지 체제에 대해서 비난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주민들의 조직적 반체제 움직임은 결코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김정일이 곱다기 보다는 저희들이 살기 위해 그런 일은 안할 것이다.김일성이 “땅과 물과 인민만 있으면 안 망한다”고 평소 이야기했던 부분이 이를 뒷받침한다. ▲홍위원=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를 유지하는 바탕은 수령과 당의 일심단결인데 아직 북한에는 사상과 통치체계와 통제가 있기 때문에 이 우리식 사회주의가 유지되는 것이다. ○1∼2년 현체제 유지 ▲전교수=공개처형등 철권으로 다스린다면 앞으로 1∼2년간은 큰 저항없이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4자회담의 주대상은 한국보다는 미국이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 비난은 하면서도 현재의 대외정책기조를 그대로 몰고 갈 것으로 보인다.특히 극심한 식량문제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는 못할 것이다. ▲전교수=황씨의 회견은 북한 고위핵심인물의 증언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는데서 큰 의미를 찾을수 있다.무게있는 말은 정책수립에 참고해야 한다.단순히 전쟁 없이 잘되리라는 희망적 생각만 하지 말고 안보불감증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앞으로 큰 비극이 일어날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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