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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패전후 “생체실험 증거 없애라”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제국주의 시절 악명높은 731부대 부대장 이시이 시로 옛 일본군 중장의 서명이 표지에 기록된 미공개 노트 2권이 발견됐다고 아사히신문이 4일 보도했다. 정식 명칭이 관동군 방역급수부인 731부대는 세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30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트는 이시이의 옛 측근 집에서 발견됐다. 그는 패전 뒤 연합군사령부(GHQ)에 자료를 제공하는 대가로 전범기소를 면했으나 본인의 수기는 발견된 적이 없었다. A5 크기의 노트에는 표지에 연필로 ‘1945-8-16 종전 당시 메모’,‘종전메모 1946-1-11 이시이 시로’라고 적혀 있어 패전 직후 쓴 비망록으로 추정된다. 미국 거주 저널리스트인 아오키 후키코가 도쿄도 내 이시이의 옛 측근 집에서 발굴했다. 1945년 메모에서 이시이는 패전 직후 도쿄에서 달려온 사령관으로부터 모든 증거물을 없애라는 명령을 받는다. 노트에는 “신경(현 창춘·長春)에 군사령관 방문/철저히 폭파, 소각, 철저한 방첩을 결정”이라고 적혀 있다. 이시이 등은 대량의 병리표본과 백신 등을 갖고 돌아왔다. 자료반출작업은 명령을 받은 직후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부산에 도착, 화물선을 수배했으며 “26/8 의무국”이라고 적혀 있어 8월 하순 도쿄로 돌아와 당시 육군성 의무국을 방문한 것으로 보인다.taein@seoul.co.kr
  • [길섶에서] 새마을에 대한 기억/심재억 문화부 차장

    언론계와 정계에 몸담았던 모 인사가 최근에 펴낸 책을 읽다가 이 대목에 눈길이 머물렀다.“(박 대통령은)특히 명치유신 때의 지사들을 존경…(중략)총독부의 아다라시이 무라 쓰쿠리(새로운 마을 만들기)정책과 새마을운동의 유사성도 있다.” ‘박통’이 ‘일본통’인 것은 다 아는 일이지만,그가 “밤잠을 설쳐가며 창안했다.”던 새마을운동의 시원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정책에 닿아있다는 데서 맥이 풀렸다. 문득 아린 기억이 되살아났다.어느 해 추수를 끝낸 늦가을,시멘트를 가득 실은 ‘오가다 도라꾸’가 마을로 들어오고,누대의 애환이 층층 켜를 이룬 초가지붕이 훌러덩 벗겨져 나갔다.볏짚을 이겨 쌓은 토담도 볼 것 없다는 듯 자빠뜨렸다.그 자리에는 슬레이트 지붕과 블록담장이 생겼고,담벼락에는 ‘반공 방첩’이나 ‘무찌르자 공산당 쳐죽이자 김일성’ 등속의 선전구호가 살벌하게 그려졌다. 그해 겨울은 추웠다.이엉 대신 홑겹의 슬레이트를 얹은 집은 겨우내 외풍이 들어 아무리 구들을 덥혀도 코가 시렸다.그런 집 꼬락서니에 울화가 치민 할아버지는 한 날,마을을 찾은 점잖은 면장에게 삿대질을 하고 말았다.“한겨울에 지붕을 걷어내다니,이런 똥물에 튀겨 쥑일 인사 같으니….”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백범 암살범 안두희의 실체 폭로

    백범 암살범 안두희의 실체 폭로

    백범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의 숨겨진 진실이 방송을 통해 밝혀진다.KBS1TV ‘인물현대사(연출 정우성)’는 그동안 감춰진 안두희의 1950년대 행적을 파헤치는 ‘반공,정치사찰의 1인자,암살범 안두희’편을 24일 오후 10시에 방송한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안두희가 1949년 백범 암살 이후에도 음지에서 활동하던 이승만 정권의 핵심 측근이자 정보공작원이었고,1959년 일본 북송선 폭파 공작을 주도한 책임자였다는 사실이 최초로 공개된다. 1955년 당시 일본에 주둔하던 미 육군 ‘308 방첩대’의 정보보고서인 ‘한국정치사’(The History of Korea Politics)에 따르면,안두희는 백범 암살 뒤에도 이승만 반대파 제거를 위해 헌신하는 핵심 정보공작원이었다.이 보고서를 ‘인물현대사’에서 최초로 공개한 정병준 국립 목포대 교수는 “이 자료는 1955년 당시 안두희가 한국에서 상당한 위상을 갖고 있었음을 방증한다.”고 해석한다.2001년 발굴된 미 국무성의 기밀보고서인 일명 ‘실리보고서’에도 안두희의 첩보경력이 실려 있다.문서는 안두희가 우익 테러단체인 ‘백의사’ 대원이자 국내에서 활동한 미군방첩대 ‘CIC’ 요원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특히 1959년 당시 일본의 유력지 ‘주간 요미우리’는 당시 북송선을 폭파하기 위해 일본에 와 있는 남한의 비밀공작대 책임자가 한독당의 주석 백범을 암살한 A대령,즉 안두희라고 밝히고 있다. 이밖에도 제작진은 안두희가 백범 암살 뒤 강원도 양구에서 2000여 평짜리 두부공장을 운영하며 근처 11개 사단의 군납을 맡은 사업가였다는 사실 등 소문으로만 떠돌던 사실들을 확인,최초로 공개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與 “5000년만의 첫 기회” 강경

    與 “5000년만의 첫 기회” 강경

    과거사에 대한 열린우리당의 강공 기류가 심상치 않다.선친 문제로 신기남 전 의장이 물러나면서 예견된 일이지만 수위(水位)가 예상을 웃돈다.약속이나 한 듯 주요 당직자들이 앞다퉈 과거사 규명을 외치고 나섰다. 20일 열린우리당에선 천정배 원내대표의 발언에 나타나듯이 ‘5000년 역사에서 첫 기회’라고 과거사 청산의 의미를 한껏 부여하면서 강공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이부영의장 “軍프락치사건도 조사” 이부영 의장은 취임 첫날인 이날 ‘과거사 규명’과 ‘언론개혁’을 자신의 ‘과제’로 내세웠다.박정희 전 대통령을 ‘군 프락치 총책’‘변신과 배신의 달인’이라고 맹비난하면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압박하기도 했다. 이 의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박 전 대통령은 초등학교 훈도(교사)를 하다 만주군관학교에 입교한 뒤 우수한 성적으로 일본 육사에 들어가 일본군 중위라는 엘리트 장교를 했다.”면서 “이후 변신을 해서 광복군 제4지대에 합류했다가 또다시 공산주의자로 변신,군내 프락치 총책으로 있다가 김창룡 방첩대장에게 붙잡히자 자신이 포섭했던 동료들의 이름을 모두 불어 죽게 한 뒤 자신은 풀려났다.”고 주장했다. ●박前대통령 맹비난… 朴대표 압박 그는 “박 전 대통령 한 분 때문에 과거 청산을 막으려는 것이 과연 온당하냐.한 나라의 리더가 변신과 배신을 통해 많은 사람을 희생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어 (대통령에) 오른 것이 옳은 일인지,앞으로 그런 사람이 다시 등장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얘기해 보자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의장은 동아일보 기자 시절 해직된 뒤 재야 운동권으로 지내던 전력을 상기시키며 “나는 우리의 얼룩진 과거사가 온 몸에 상처로 남은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했다. 오후 중앙위원회의에 참석한 신기남 전 의장은 “정치인은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하며,연좌제는 법에 없지만 도덕의 세계,정치의 세계에서는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자신의 사퇴가 선친의 친일 행적에 책임을 지는 성격임을 분명히 한 것이자,박근혜 대표를 최대한 압박하려는 의도로 비쳐진다. 천 원내대표 등 당 중진들은 이 의장의 강경 발언에 ‘힘 실어주기’를 계속했다.과거사에 보다 ‘올인’하는 모습으로 비쳐졌다.내부적으론 당의장 승계 과정에서 불거진 계파간 갈등을 봉합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국제플러스] 북한, 주민들 휴대전화 몰수

    |도쿄 이춘규특파원|북한 당국은 최근 주민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1주일 전 휴대전화를 보유하고 있는 전체 조직과 개인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몰수했다고 지지통신을 인용,2일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베이징발 타스통신 보도에 기초한 보도에서 신문은 북한 당국은 휴대전화 몰수시 이유를 밝히지 않았고,보상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타스통신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휴대전화 이용자의 증가로 인해 방첩당국의 도청이 어려워지자,북한 주민과 외국인들의 전화통화를 제한하기 위해 몰수 조치를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
  • 24일 개봉 실미도/ 32년만에 살아난 ‘잊혀진 진실’

    베일에 가려졌던 사건을 소재로 해 제작 전부터 숱한 화제를 뿌린 ‘실미도’(제작 시네마 서비스)의 실체가 드러났다.가슴을 싸하게 적시는 선이 굵은 액션 드라마다.24일 개봉하는 이 영화는 1971년 8월23일 전국을 발칵 뒤집은 ‘실미도 사건’을 소재로 한 것. 수류탄과 카빈총으로 무장한 특수부대원 23명이 인천에서 버스를 탈취한 뒤 서울로 진입하던 중 군·경과 대치하다 자폭한 사건이다.그 와중에 이들이 한때 ‘무장공비’로 잘못 발표되면서 전군에 비상령이 내리는 등 수도권이 혼란에 휩싸였다. 영화는 이 실화를 뼈대로 하면서 ‘픽션’이란 살을 붙인다.쉬쉬하면서 이뤄진 특수부대 창설부터 해체까지의 과정 자체가 워낙 극적인 데다 ‘투캅스’‘마누라 죽이기’ 등 숱한 히트작에서 탁월한 스토리 전개를 인정받은 강우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아 짜임새 있게 진행된다.최고배우로 자리잡은 설경구와 국민배우 안성기의 열연에 허준호·강신일·임원희 등 연기파 배우들이 가세해 탄탄하게 받쳐준다. 영화의 이미지는 우울하다.권력이라는 보이지않는 거대한 구조에 의해 조종당하는 ‘자동 인형’들의 항거는 태생부터 비극을 잉태한다.특히 용도 폐기처분된 뒤 몰살될 운명에 분노해 서울로 올라오다 ‘무장공비’란 누명까지 쓰면서 자폭이라는 ‘최후의 항거’를 선택하는 마지막 장면은 심금을 울린다. 강우석 감독은 ‘684 특공대’이야기를 기승전결식이란 정공법으로 풀어간다.그들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으로 ‘인간 병기’가 되었으며 어떻게 배신당하고 최후를 맞는가를 박진감 있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통령 암살을 위해 김신조 등 북한특수부대가 침입한 이른바 ‘1·21사태’에 맞대응하기 위해 특수부대가 창설된다.북파공작원 출신의 교육대장 최재현(안성기) 준위는 사형수 강인찬(설경구) 등 생의 막바지에 몰린 31명을 차출해 실미도에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지독한 훈련을 통해 ‘인간 병기’로 탄생시킨다.그러나 북파 예정일에 급작스러운 상부의 명령으로 임무가 중단되고 2년 가까이 방치되다가 해체,즉 몰살명령이 내려진다.자신들의 ‘운명’을 알게 된 요원들은 ‘죽음의 항거’에 나선다.감독이 탄탄한 구성과 굵은 스토리 전개에만 신경을 쓴 탓일까.탈취한 버스 속의 인질이 대치 과정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다가 풀어주는 장면에서만 등장하는 등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느슨한 요소가 더러 보인다.하지만 이야기꾼 감독은 자신의 특기를 최대로 살렸고 배우들도 혼신의 연기로 응수했다.우울함의 강도를 낮추려 원희(임원희)를 중심으로 훈련과정에 웃음 장치를 슬쩍슬쩍 밀어넣은 덕에 이들의 최후는 역으로 더 가슴시리다.그 덕에 “북으로 보내달라.”“그래도 ‘무장공비’는 너무 하잖아.”라는 등의 684부대원의 절규는 오래 남는다. 이종수기자 vielee@ ■실화와 영화 사이 실제 사건과 영화는 닮았으면서 다르다.골격은 같지만 어떤 부분은 픽션인데 그 이유는 두 가지.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처럼 ‘실미도 사건’도 베일에 가려 있었다.국민의 정부 이후 대북 방첩부대(HID) 등 ‘인권 사각지대’가 거론되면서 외부에 알려졌지만,재판기록 등 관련자료의 열람이 금지돼 있고 생존자도 없다.또 극적인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강우석 감독은 “박정희 대통령과 당시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등이 등장하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관객들에게 부담을 주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그래서 ‘상상의 옷’은 불가피했다. ●누가,왜 684부대를 만들었나‘1·21사태’ 직후 68년 4월 김형욱 중정부장의 지시로 창설됐고 이철호 제1국장이 운영을 책임졌다.‘684부대’란 이름도 창설시기에서 따왔다.이후 대북정책이 평화 무드로 바뀌면서 북파부대는 무용지물이 된다.영화는 이 내용을 시사만 할 뿐 구체적 인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들은 왜 실미도를 탈출했나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이 부대원 강인찬에게 ‘해체 명령’을 슬쩍 엿듣게 해 항거하게 하지만 실화에서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대한 불만이 기폭제였다. ●요원들의 신분과 사연 강인찬이 요원으로 차출되기 전 조폭이 된 주된 이유는 연좌제로 인한 불우한 환경이다.당시 요원 가운데 이런 사연의 주인공이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전과자가 많았지만 구체적 캐릭터는 픽션이다.또 영화에서 요원들은 인민군가를부르는데 강 감독은 “실미도 주민들은 당시 인민군가로 잠을 깼다고 증언했다.”며 “사투리를 비롯한 북한 익히기 훈련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다.체포 뒤 고문에 대비해 인두로 살을 지지는 훈련장면도 나오는데 이는 684부대가 아니라 북파부대(HID)요원의 증언을 참고한 것이다. ●부대원 31명…자폭과 생존 부원은 31명.이중 8명은 훈련 도중 죽거나 자살했고 23명이 탈출했다.15명이 자폭해 숨졌고 2명은 군·경에 피격돼 사망했으며 6명이 부상했다.이 중 2명은 병원에서 숨졌고 4명은 군사재판 뒤 바로 총살됐다.영화에서는 탈출한 28명이 전원 자폭하는 것으로 처리됐다.
  • 뉴스 플러스 / 전직 北외교관 핵장비 반출 연루

    독일 검찰은 독일 기업의 핵무기 제조용 장비 불법 반출 사건과 관련,한 전직 북한 고위 외교관의 연루 사실을 확인하고 수사중이라고 21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보도했다. 슈피겔은 최신호(22일자)에서 북한의 전직 외교관인 윤호진씨가 독일 기업 옵트로닉 대표에게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 제조에 활용될 수 있는 특수 알루미늄관을 주문하고,지난 4월 북한에 수출하도록 설득한 혐의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슈피겔은 독일 방첩기구인 헌법수호청과 외무부,IAEA 등의 전문가들이 윤씨를 심문하는 등 북한 관련 부분 수사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 정형근 국정원폐지 추진단장 / “정치적 악용되느니 국정원 없는게 낫다”

    전직 국정원맨으로 ‘국정원 폐지 및 해외정보처 신설 추진기획단’ 단장을 맡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5일 “국정원은 이미 무력화돼 있다.”면서 “정치적으로 악용되느니 없는 게 낫다.”고 밝혔다.다음은 일문일답. 6일 첫 회의에서 뭘 논의하나. -국내 부서는 폐지하기로 당론이 정해졌다.다만 방첩 부문을 살릴 거냐,살리면 해외정보처에 둘지 경찰에 줄지 아니면 일본 공안조사청처럼 별도로 할지 논의해 봐야 한다.미국처럼 FBI와 CIA가 분리되는 것이다. 양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해도 추진시기가 국정원 인사파문과 맞물려 ‘화풀이성’이란 지적도 있는데. -한나라당이 집권해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수사권 폐지 요구가 이미 있었고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라도 순수 정보기관으로 가자는 것이다.정보기관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미국 FBI에도 과거 인권유린 요소가 있었지만 비판받으면서 미란다원칙 등이 생겼다.잘 했다는 것 아니다.다만 당시 순기능적 역할도 있었고 지금 잣대로…. 안보를 강조해온 입장에서 보면 ‘자가당착’이라는 시선이 있다.-북한에 돈이나 갖다 주고 ‘깐수’ 같은 간첩도 다 풀어주지 않나.간첩 하나 잡는 데 10년,20년 공작해야 한다.난수표 등 증거를 가진 간첩은 5∼6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국정원이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다. 청와대는 고영구-서동만 임명에 국정원 개혁이라는 명분을 내걸었다. -개혁할 게 뭐가 있나.이미 대공 부문은 무용지물이 됐고,요즘 ‘인권유린’을 누가 하느냐.지금 국정원에 필요한 것은 글로벌 시각을 가진 사람이다.미국을 아는 인사가 하나도 임명되지 않았는데 미국이 정보를 주겠나.인공위성 사진 등 미국 정보가 없으면 우리는 북한 움직임에 눈뜬 장님이다. 정 의원이 폭로한 정치권 사찰을 위한 ‘도청’은 개혁 대상 아닌가. -2002년 3월부터 도청 시설 없앴다.내가 정보위에서 여러 차례 지적한 뒤로 다 뽑아버렸다. 국정원 직원들은 개편에 따른 구조조정에 반발하지 않을까. -국회에 13명 출입하는데 의원들이 만나주지도 않는다.이미 직업에 불안을 느끼고 사기가 극도로 저하돼 있다.인력감축은 불가피하다. 박정경기자 olive@
  • [사설] 정형근 의원 입수 ‘도청자료’ 뭔가

    정형근 의원이 국가정보원의 도청자료를 무더기로 입수했다고 한다.정 의원은 이에 근거했다면서 한화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의 ‘의혹’을 주장한 바 있다.더 나아가 정 의원은 집권층 고위인사들이 포함된 도청자료의 내용 공개를 예고하고 있다.불법으로 이뤄졌을 도청의 결과물을 국회의원이 상대방을 공격하는 자료로 활용하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그러나 이기회에 국가정보원의 ‘직무를 벗어난 광범위한 도청’여부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아직 정 의원이 갖고 있다는 도청자료가 국정원의 것인지 확인된 바는 없다.국정원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고,민주당에서는 정 의원측이 도청한 것 아니냐는 의심도 보내고 있다.때문에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예단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정 의원은 우선 문제의 도청자료를 공개해 이것이 국정원에서 만들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또한 국정원도 잘못이 있다면 시인하고 개선점을 찾는 것이 그 조직을 위해서도 옳을 것이다.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듯이,수천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조직인데,결국은 진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정 의원도 이 자료를 건네 준 국정원 직원의 ‘양심선언’을 빌려서라도 자료의 정체를 밝혀야 하며,‘아니면 그뿐’이라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된다. 국정원법은 1994년 김영삼정부 때 제9조로 ‘정치관여금지’를 명문화해 놓았다.또한 직무의 수행범위에 대해서도 대공·대정부 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 범죄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만약 정 의원의 주장대로 한화 회장의 통화내용이나,청와대 수석급들의 통화를 도청한 것이 사실이라면 직권남용과 정치관여금지를 어긴 것이 된다.거기에 담긴 내용이 불법이거나,정쟁의 대상이 되느냐의 문제는 그 다음이다.국정원의 도청 여부부터 밝혀져야 한다.
  • FBI 집안단속 ‘호들갑’

    [워싱턴 백문일특파원] 미 연방수사국(FBI)이 집안단속에 나섰다.비밀정보에 대한 요원들의 접근을 제한하는가 하면 일부 요원들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까지 동원,정보유출 여부를 가리고 있다.지난해 3월 간첩 혐의로 체포된FBI 방첩요원 로버트 핸슨 사건의 후유증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한마디로 내부 직원조차 100% 믿을 수 없다는 얘기다. 영화 속에 나오는 FBI 요원들은 컴퓨터에 ID만 치면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그러나 앞으로는 고급 정보로의 접근이 거절되는 요원들도 수두룩 할 것 같다.FBI는 24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국가 기밀에 접근할 수 있는 요원들의 수를 줄이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FBI 요원이면 웬만한 내부정보는 다 볼 수 있다.다만 1급 기밀보다 훨씬 ‘민감한 특수 정보(SCI)’에 접근할 수 있는 요원은 FBI 직원의 절반인 1만 4000명 정도로알려졌다.그러나 최근 FBI는 수백명의 요원에 대해 국가기밀과 관련된 SCI로의 접근을 금지시켰다. 특히 SCI 접근이 허용된 요원 가운데 700명 이상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를 실험한 결과 8∼9명 정도가 의심스러운 반응을 나타냈다고 FBI 관계자는 밝혔다. 그러나 간첩행위나 정보 유출 혐의가 있는지는 확인되지않았다. 법무부도 내부정보로의 접근을 제한키로 했다.그러나 미국 시민권이 없는 외국인 직원들에게만 제한을 둬 법무부조차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mip@
  • 한반도는 지금 ‘對테러 첩보전’

    지난 달 말 서울의 증권가 등지에는 미국 테러사태와 관련,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그럴듯하게 포장돼 급속히확산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기무사에대해 ‘빈 라덴의 일당으로 확인된 테러리스트들이 테러예정지 답사차 한국을 다녀갔으며,주한미대사관과 미군기지 등을 탐문하고 사진촬영까지 했다’는 내용이었다.국정원과 기무사는 이같은 통첩를 받고 부심하고 있으나 마땅한 대응수단을 강구하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덧붙여져있었다. 소문이 나돌자 서울에 공식·비공식으로 주재하는 CIA를비롯한 일본 영국 등 주요 서방국가의 첩보요원들은 즉시서울의 한 호텔에 모여 사실 확인작업에 들어갔다.이들은곧바로 ‘서울발 리포트’를 작성,본국으로 타전한 것으로알려졌다. 이들은 또 테러발생 직후 미국에서 파악한 1급 테러 용의자 50여명과 각국이 보유한 용의자 명단을 교환하며 상호협력을 다짐했다는 후문이다. 이른바 ‘코드명 T(Terror)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미국의 테러사태 이후 한반도에서는 새로운 첩보전이 전개되고 있다.지금까지 각국의 첩보요원들이 ‘각개전투식’으로 펼쳤던 첩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특히 미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는 최근 국가정보원 국방부 경찰청등 국내 첩보기관과 처음으로 대테러 전용 ‘핫라인’을개설,실시간으로 정보를 주고 받고 있는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핫라인’ 설치는 미 CIA본부의 지시에 따라 CIA서울지부가 한국측에 제의,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구체적인 내용은 보안상의 이유로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미국이 러시아·영국·프랑스·일본 등 극히 한정된 국가들에 대해서만구축한 핫라인을 한·미간에도 개설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 서울지부도 최근 프랑스 리옹에 본부를 둔 국제 인터폴본부 상황실과 경찰청 인터폴 상황실을잇는 새로운 비상라인에 24시간 접속,전방위 대테러 첩보전을 수행하고 있다.한국 경찰청의 인터폴 역시 이들과의공조를 통해 생화학 테러 등 각종 테러첩보의 흐름과 각국의 대응방안을 면밀히 분석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기관간의 공조에 힘입어 지난 12일 테러 용의자로 지목된 파키스탄인 아크바로 샤켈(20)이 캐나다 밴쿠버발 항공편으로 인천공항에 입국했다가 미 정보기관,국정원 등관계기관의 합동조사를 받은 뒤 입국이 거부돼 13일 강제출국 조치됐다.첩보전을 지원하기 위해 서울과 동북아 주변 상공에 떠 있는 첩보위성을 통해 음성,전자메일,휴대전화 등을 감청하는 첨단 시스템도 모두 가동되고 있다.96년4월 미 공군이 쏘아올린 볼텍스위성이 이를 전담하고 있는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 주재하는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회교권 국가의 첩보요원들도 서방요원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대응전에 돌입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같은 첩보전은 내년 6월 월드컵대회 때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김문기자 km@. ■국내 활약 해외첩보요원 100여명. 현재 한국에서 공식·비공식으로 활동중인 세계 각국의첩보요원 숫자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국내 방첩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서울에서 활동중인 세계 각국의 공식 첩보요원만 100여명으로 추산될 뿐이다.주로 미국 일본 러시아영국의 요원들이다. 미국은 주한 대사관에 CIA와 FBI서울지부를 두고 있다.서울에 파견된 공식요원은 CIA 20여명,FBI 1명 등이다. 그러나 첩보 전문가들에 따르면 CIA의 비공식 요원은 50여명,FBI는 5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마약감시국(DEA)과 국가안전국(NSA)요원들도 상주하고 있다. 세계 최첨단 감청장비인 ‘에셀론 시스템’을 보유한 NSA는 서울 용산 미8군기지내에 지부를 두고 있다. 미국 요원들의 주요 활동무대는 남산의 서울구락부,미8군식당, 서울 시내호텔 등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러시아는미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의 첩보요원들을 파견해 놓고 있다. 말레이시아 사우디아라비아 이집트 등 회교권 국가들도 1,2명씩의 공식요원을 파견하고 있으며,미국의 아프간 공습이후 활동반경을 조금씩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문기자
  • [사설] 백범 암살과 미국 자료

    백범 김구(金九)선생 암살범인 안두희(安斗熙)가 미군방첩대(CIC)요원이었다는 사실을 담은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가50여년만에 공개돼,백범암살 배후에 미국이 있었는지를 놓고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공개된 ‘실리보고서’를보면 미국이 암살사건에 직접 개입했는가를 판단하기에는한계가 있다.문서 작성자인 조지 실리 소령이 주한미군 정보장교로 재직하긴 했지만 그는 1948년 말에 귀국해 암살사건 당시 국내에 없었다.문서 내용도,안두희가 회원으로 있는 우익 테러단체 백의사 및 그 단장인 염응택(廉應澤·일명 염동진)에 관한 실리소령의 평가가 대부분일 뿐 암살사건 전말을 직접 언급한 것이 아니다.따라서 이 문서만으로미국의 개입을 단정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실리보고서’가 크게 주목받는 까닭은 백범암살의 배후로 추정되는 여러 세력 가운데 미국의 연계성을보여주는 실마리가 처음 문서로 등장했기 때문이다.문서를보면 안두희는 CIC요원인데다 명령에 따라 암살을 행하겠다고 ‘피의 맹세’를 한 백의사 특공대원이기도 했다.또 백의사 단장인 염응택은 실리 스스로 밝힌 대로,미군 정보장교와 20개월간 ‘긴밀한’관계를 유지했으며 ‘신뢰를 저버린 적이 없는’인물이다.그러므로 미군-염응택-안두희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작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이 백범 암살사건의 배후에 있는지,아니면 관련이 없는지를 명백히 밝혀내는 것은 이제 언론과 학계가 맡아야할 몫이다.물론 정부도 미국을 비롯해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한국 현대사 관련자료를 발굴·수집하는 일에 지원을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다.우리는 미국 정부에도 당부를 하고자 한다.미국은 한국전쟁 때 북한에서 획득한 ‘노획문서’등 방대한 양의 한국관계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데,상당량을 비밀문서로 분류해 공개를 꺼리고 있다.이제 반세기가흐른 만큼 해당문서를 비밀해제해 한국현대사 연구에 협조하기를 기대한다.
  • 美 비밀문건 내용·의미/ 백범암살 美개입 의혹 증폭

    1949년 6월26일 백범 김구(金九)선생을 권총으로 암살한 안두희(安斗熙)는 주한 미군방첩대(CIC) 요원이었음이 밝혀졌다. 또 안두희에게 백범 암살을 지시한 인물은 해방 직후 활발한 대(對) 공산주의 테러활동을 벌인 극우테러리스트 집단인 ‘백의사’(白衣社) 단장 염응택(廉應澤,일명 염동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재미사학자 방선주 박사와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박사가 최근 미국 제1군사령부 정보장교인 조지 실리(George E.Cilley) 소령이 백범 암살 3일 뒤인 6월29일 작성, 다음달 1일 미 육군 일반참모부 정보국장 앞으로 보낸 문건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해 4일 공개함으로써 처음 밝혀졌다. 이번에 공개된 백범암살사건 관련 미국측 문서는 그동안 추측으로만 난무했던,즉 백범암살사건과 미국과의 관련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과거에 나온 여타자료와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백범암살사건과 관련해서는 주로 저격범 안두희의 국내 ‘윗선’이 누구냐에 주로 초점이 모아졌었다. 일개 포병소위인 안두희가 단독으로 민족지도자를 백주에 암살한 데는 분명히 그를 사주한 정체세력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하에서였다. 그러나 이 역시 속쉬원히 밝혀진 것은 없다. 안두희의 범행을 사주했을 것으로 지목돼온 또 하나의 세력은 미국이었다.이는 미국이 미 군정기와 단독정부 수립과정 등에서 이승만에 비해 상대적으로 김구를 적대시했기 때문이다. 안두희는 그동안 미국과 이 사건과의 관련성에 대해 ‘흘리듯이’ 몇 마디씩을 증언한 적이 있으나 정확한 내용도 아닌데다 더러는 곧바로 번복해 의혹만 키웠다. 안두희는 84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서북청년회원들이 미국의 정보원으로 많이 활약하였으며,따라서 미국사람들이 백범을 싫어하는 것을 알았다”고 밝혀 당시 미국의 백범에 대한 인식의 일단을 드러냈다.이 때 안두희는 흥미롭게도 “언젠가는 미국의 비밀자료에서 ‘백범제거계획’ 같은 것이 나올지도 모른다”고 밝혔는데 이번에 결국 그런 자료가 나온 셈이다. 한편 안두희는 92년 4월 12일 다시 권중희씨를 통해 범행 전 장택상의 소개로 미 OSS출신 중령을 만나 백범암살에 대한 암시를 받았다고 거듭 증언했다가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돼 파장이 커지자 이틀뒤인 14일 MBC에 출연해 미국과의 관련성을 전면 부인했다. 그리고 다시 15일에는 그간의 증언을 절충, “정확한 소속은 기억나지 않지만 미군 중령과 반도호텔 등지에서 두 차례 만난 적은 있으나,이들이 백범암살과는 전연 관계없다”고 얼버무렸다. 이처럼 백범사건과 미국과의 관계는 실마리 단계에서 오락가락 하다가 96년 10월 그가 버스기사 박기서씨에 의해 살해되면서 완전히 미궁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번 자료는 안두희가 당시 미군 CIC(방첩대)의 ‘정보원(informer)’으로 일하다가 나중에 ‘정식요원(agent)’으로 활동한 사실을 명쾌히 보여주고 있으며,동시에 미국이 백범사건에 직접개입을 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어떠한 형태로든 미국이 이 사건에 관련됐음을 시사하는 방증자료를 확보한 셈이다. 특히 안두희의 바로 ‘윗선’이 테러집단인 ‘백의사’의 단장인 염응택이었다는 점은 새로 밝혀진 사실로 관련학계의 확인·검토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정운현기자 jwh59@. ■이강국·임화 CIC요원으로 활동했다.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공산당 당수 박헌영의 직계인 이강국(초대 북한 외무성 부상)과 임화(작가)등 남로당의 일부 핵심 간부들이 주한미군 CIC의 요원으로 활동했던 것으로 이번에 공개된 문서에서 드러났다. 이강국은 6·25직전 간첩혐의로 체포된 이화여전 출신 김수임과 연인 사이였다. 이는 당시 미군정의 실력자였던 베어드(미8군 사령부 헌병감·대한민국 경찰 최고고문) 대령과 동거하던 김을 이용해 남한의 경찰 및 군의 고급기밀,정부의 1급 비밀을 빼내갔던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공개된 문서는 이에 대해 대부분 증거 불충분으로 결론짓고 있다. 문서에 따르면 이강국이 김수임을 통해 남한 정보를 수집해간 것이 아니라 거꾸로 베어드 대령이 김과 연결된 CIC요원 이를 통해 북측 정보를 수집했을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문서에는 또 임화와 이름이 기록돼 있지 않은 남로당 선전부장 등이 CIC와 연계돼 있어 CIC가 좌익 조직에 광범위하게 정보원을 침투시킨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CIC문서를 통해 이가 미군 정보기과 연계돼 있었던 점이 드러남에 따라 53년 8월 휴전 직후 북한 당국이 발표한 ‘이승엽 등의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테러사건’에 연루된 12명의 남로당 고위간부중 일부가 미국 정보기관에 포섭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백의사’ 어떤 조직 . ‘백의사’는 ‘남의사’라는 중국 테리스트 집단을 본떠 해방 직전인 1944년 11월 무렵 신익희 주도로 서울에서 설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사무국’이 모태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방후 각종 극우테러리즘 활동을 벌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단체 핵심인물인 염응택은 일제하 관동군의 밀정출신. 영어·독일어·불어·일어·중국어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며 정적들로부터 ‘암살자’,‘청부살인자’,‘국수주의적 광신도’ 등으로 불렸다. 미군의 정보기관인 CIC는 활동이 매우 광범위해서 첩보,정보 수집 뿐만 아니라 한국인 정치지도자와 미국인에 대한 사찰도 벌였다.
  • “”백범 암살 안두희 美 방첩대 정보원””

    1949년 6월26일 백범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는 주한 미군방첩대(CIC) 요원이었음이 밝혀졌다. 또 안두희에게 암살을 지시한 인물은 해방 직후에 활발한 대 공산주의 테러활동을 벌인 극우 테러리스트 집단 '백의사'의 핵심인물 염응택(일명 염동진)으로 드러났다. 이런 사실은 재미사학자 방선주 교수팀이 최근 미국 제1군사령부 정보장교인 조지 릴리가 백범 암살 3일 뒤인 1949년 6월29일자로 작성해 사령부에 보고한 문건을 미국 국립문서보관서에서 발굴해 3일 공개함으로써 밝혀졌다. 안두희가 CIC요원으로 드러남에 따라 백범 암살에 미국이 개입돼 있다는 그동안의 의혹을 한층 짙게 해 주고 있다. 이 문건에서 릴리는 안두희가 CIC 정보원이었고 자신의 부하로 활동했다고 회상하고 있다. 또 안두희가 '백의사' 골수단원으로 활동했음을 지적하고 있다. 그 실체가 잘 드러나지 않고 있는 '백의사'는 해방 직전인 1944년 11월 무렵 신익희 주도로 서울에서 설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파사무국'이 모태가 됐으며 해방 뒤에는 극우 테러리즘 활동을 벌인 단체로 알려지고 있다. 백의사는 1946년 3월1일 평양역 광장에서 소련 공산당 주요 인물과 김일성, 김책, 최용건, 김두봉을 비롯한 나중의 북한 정권 핵심 인물을 비롯한 7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3·1절 기념행사장에서 폭탄투척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북한지역 토착 공산주의자의 대표자로 지목되는 현준혁을 암살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나중에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는 신익희와 유진산이 주도하는 가운데 염응택이라는 인물이 단장을 맡았다. 이 문건에는 '백의사'가 김구와 현준혁 말고도 여운형과 송진우, 장덕수를 비롯한 주요 인사 암살에 개입했음을 지적하는 내용도 들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구 선생 비서를 지낸 선우진 백범기념사업협회 상임감사는 “”백의사가 백범 암살사건에 관련됐다는 것은 처음 알려진 사실””이라면서 “”안두희가 미국 정보기관의 정보원이었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했다. 안은 지난 96년 10월23일 인천 자택에서 박기서(경기 부천시 소신여객 버스운전사)씨에 의해 '정의봉'이라고 새겨진 목봉으로 살해됐으며, 박씨는 이듬해 11월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돼 복역하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98년 3·1절 특사로 풀려났다. 이에 앞서 안은 지난 94년1월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산하 '백범 김구선생 암살 진상규명 조사소위원회'에서 백범 암살 경위 등에 대해 증언했었다. 정운현기자
  • 진상규명 범국민위, 학술심포지엄 “”한국전 민간인학살 대부분 계획적””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벌어진 민간인 학살사건의 진상규명과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학계,시민·유족단체의 노력이 한층 활기를 띄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상임대표 강정구 외)는 27일 낮서울 세종문화회관 4층 컨퍼런스홀에서 ‘한국전쟁기 민간인 학살의 지방사적 인식’을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개최했다.이날 행사에서는 ▲경남서부·마산 ▲대구·경북 ▲여수·순천 ▲전남·광주 등 4개 지역에서 자행된 학살의실태,유형 등에 관한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경남서부·마산지역의 학살실태를 발표한 전갑생(민간인학살문제 해결을 위한 경남지역모임)진상조사팀장은 “경남의 경우 구체적으로 학살책임자나 학살경위 등이 밝혀져있지 않으나 최근 1960년 4대 국회의 진상조사 기록 등이공개되면서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면서 “이 지역의 민간인학살은 한국전쟁 전후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계획적으로 저질러진 대학살극”이라고 밝혔다. 전씨는 한국전쟁 이전 거제지역에서 두차례에 걸쳐 발생한학살사건은 국군과 우익단체인 민보단,CIC(육군방첩대)등이 사감을 앞세워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용석 대구·경북 공동조사단장은 “대구·경북지역은낙동강 전선을 중심으로 북한군과 국군이 최대격전을 벌인곳으로, 민간인학살이 대형으로 이뤄졌다”며 경산·청도·포항지역에 살고 있는 유족의 증언을 공개했다. ‘여순사건’과정에서 발생한 민간인학살과 관련,이영일여수지역사회연구소장은 “이승만정권이 ‘여순사건’을국군내부의 반란이 아니라 민간인 공산주의자 폭동으로 선전하면서 민간인 피해가 커졌다”고 지적하고 “당시 여수·순천지역에 내려진 계엄령은 국회가 아닌,정부가 제정한것으로 명백한 ‘헌법위반’”이라고 주장했다.이 소장은“여순사건 당시 민간인 피학살자는 대부분 명령계통이분명한 의도적·조직적 학살로 ‘국가 후원적 대량살해’의성격을 띄고 있다”고 말했다. 최정기 광주인권센터 운영위원(전남대 강사)은 광주·전남지역 실태조사 중간보고를 겸한 발표문에서 “거의 동일한 시기에전남 모든 지역에서 발생한 ‘보도연맹사건’의경우 매우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학살”이라고 강조하고“경찰의 후퇴과정에서 발생한 해남·완도지역 학살사건의 경우,해당지역에 들어가지 전에 전화로 ‘인민군 환영대회를준비하라’고 연락한 다음 인민군 복장을 하고 들어가 환영의사를 표현하는 사람들만 학살했다는 점에서 매우 기만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발표가 끝난뒤 정범구 의원,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장완익 변호사,김동춘 교수 등이 통합특별법 제정과 국회 진상조사특별위원회 구성,자료공개 청구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정운현기자 jwh59@
  • 구멍난 보안망… 워싱턴 충격

    “냉전은 끝났어도 스파이전은 끝나지 않았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방첩임무 베테랑 요원이 지난 15년간 구소련과 러시아를 위해 스파이 활동을 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루이스 프리 FBI국장은 20일 지난 27년간 FBI에서 일해온 로버트 필립 핸슨(56)을 간첩활동 및 간첩활동 음모 혐의로 체포했다고 밝혔다. 핸슨은 첩보를 넘겨준 대가로 러시아측으로부터 그동안 미화 150만달러와 다이아몬드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미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냉전 이후 최대 규모 간첩 사건으로분석하고 있다. ■검거까지 핸슨은 미 정부의 이중간첩 운용계획과 미 정부가 분석한 KGB의 CIA요원 충원 공작 및 KGB 활동 분석 보고서 등 최고급 기밀문서를 넘겨줬다.그리고 소련 대사관내 미국측 고정 간첩 KGB 요원 3명의 신원을 러시아에 전해준 혐의다. FBI가 핸슨 체포작전에 돌입한 것은 4개월 전.자체 내부 조사반이 혐의를 잡고 가택 수색과 함께 전화를 도청했다.러시아측이 핸슨에게 전달하려던 5만달러를 가로채 증거를 확보했고 마침내 18일 핸슨이워싱턴 근교 폭스톤 공원에서 비밀정보 뭉치를 떨어뜨려 놓는 현장을 급습,체포했다.유죄판결을 받을 경우 핸슨은 최고 사형에 처해질수 있다. ■신출귀몰 핸슨은 용의주도하게 자신의 신분위장을 위장했다.FBI의 검거발표가 있기 전까지 러시아측도 핸슨의 정체를전혀 알지 못했다. 112페이지 분량의 진술서에 따르면 핸슨은 자신을 담당한 러시아측 요원을 절대로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며 비밀장소에서 암호화된 메시지와 금품 등을 주고받았다. 핸슨은 지난 85년 10월초 정규 우편물을 통해 러시아의 요원들과 접촉,금품을 대가로 한 정보제공을 제의했다.러시아첩보기관에 핸슨은 단지 ‘B’라는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며,자신은 편지에서 ‘라몬 가르시아’라는 이름을 타이핑으로서명하고 편지 겉봉에는 ‘짐 베이커’,‘G.로버트슨’ 등의이름을 썼다. 은밀한 교신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핸슨은 “토론을 계속할의향이 있다면 워싱턴타임스에 ‘71년형 다지 디플로매트 차량의 엔진 부품일체 구함.구입희망 가격 1,000달러’라는광고를 게재하라”고 제안하기도 했다.핸슨과 러시아 요원은워싱턴 외곽 숲속 비밀장소에서 소포와 메시지, 금품등을 주고받았다. 자신이 이용하고 있는 비밀장소와 자신의 정체가 수사대상에 올라있는지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FBI기록을 지속적으로체크했으며,러시아 요원과 접촉을 계속하기 위해 해외출장은한사코 거부했다고 프리 국장은 밝혔다. ■후속조치 핸슨의 간첩사건으로 인한 국가안보상의 피해조사와 FBI내 보안절차에 대한 점검을 위해 FBI,미 중앙정보국(CIA),국무부,법무부가 합동수사에 들어갔다. CIA국장을 역임한 윌리엄 웹스터 판사가 핸슨 사건 특별위원회를 맡았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미국의 신의를 배신하려는자는 경고하건대 반드시 찾아낼 것이며 결국 정의의 심판대에 올려질 것이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다양한 학력과 경력, 구소련 간첩책 탐독…이중간첩 핸슨. 핸슨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시민으로 철저하게 위장해온인물.6명의 아버지로 가톨릭 고교 종교과목 임시 교사였던아내와 함께 동네 파티에도 곧잘 참석하는 ‘일반 이웃’이었다. 스파이 자질을 키우려 했던 듯 76년 FBI에 투신하기까지 그의 학력·경력은 다채롭다.66년 일리노이주(州) 게일스버그의 녹스칼리지에서 화학을,노스웨스턴대학에서 치과학을 공부했다.71년 회계학 석사학위를,73년엔 공인회계사 자격을얻었다.시카고에서 한 회사의 회계담당으로,시카고 경찰청에서 수사관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FBI는 핸슨이 85년 KGB 스파이로 자원하면서 러시아 요원에게 “14살때부터 이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고 밝혔으며 30년대 영국을 무대로 활동한 구 소련 첩자 ‘킴 필비’에 대한 책을 탐독했다고 밝혔다.핸슨이 살고 있는 버지니아 근교주택가의 한 이웃은 “핸슨 집에 가본 적이 있지만 소비에트 깃발같이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김수정기자
  • 국군 기무사 창설 50돌 세미나

    국군 기무사령부(사령관 육군중장)는 13일 부대창설 50주년을 맞아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서 처음으로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21세기와 기무사의 새로운 선택’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세미나에서 김 사령관은 환영사에서 “기무사가 창설 50주년을 맞아 지난반세기 역사를 겸허히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진지한 논의의기회를 갖는 것은 부대발전의 큰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항구 통일문제연구소장은 ‘기무사의 역할과 국가발전’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간 화해무드가 조성되고 있으나 군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대북정책을 적극 뒷받침,시대변화에 부응하는 안보태세 확립이 필요하다”며 ▲북한관련 첩보 수집·분석을통한 남북회담 성과 극대화 지원 ▲돌발상황에 대비한 군 방첩활동강화를 강조했다. 김재창 국방개혁추진위원장은 “최근 정보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정보업무 영역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인간정보에 직접접근하는 임무수행에서 탈피,다양한 첩보를 수집해 필요한 정보를 얻는 간접접근 방식으로 전환하고 가상공간의 해킹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인재양성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규선 통일정책연구소 연구위원도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사이버전쟁에 대비한 전문인력 확보 및 교육기관 설립 ▲해외정보망 강화 ▲대학원 수준의 훈련기관 설치를 통한우수 정보인력양성 등을 제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문일섭 국방부차관,오자복 전 국방장관 등 군내외인사 180여명이 참석했다. 노주석기자 joo@
  • 통일시대 이렇게 준비하자/ 다른 가치관 존중

    *다시 민족을 생각하며 宋 基 淑 (소설가·전남대 교수)86년 교수들이 호헌 반대서명을 할 때 어느 대학에서 있었던 일이다.웬만한대학은 사오십 명씩 참여하여 서명교수가 전국적으로 칠백여 명을 넘어서고있을 무렵,일껏 서명했던 젊은 교수 한 분이 서명을 취소하겠다며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왜 그러냐고 하자 그 교수는 그럴듯한 핑계를 미처 생각해놓지 못했던지 얼결에 우리 어머니가 못하게 한다고 실토를 해버리고 말았다.교수들은 모두 웃었고 그 일은 한 동안 화제가 되었다.그러나 어느 노교수는 그 소리를 전해 듣고 함께 웃으면서도 그 웃음이 여간 쓸쓸하지 않았다. 그 젊은 교수 어머니가 6·25 등을 겪으며 험하게 살아왔음직한 가족사를 떠올리는 것 같았다. 머잖아 장기수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것 같은데 우리의 경우 감옥에서오래 징역 살다 나온 사람들만 장기수가 아니다.전투기의 폭음 소리만 나도참새 가슴으로 살아왔을 그 여인도 장기수나 마찬가지다.진부한 말로 창살없는 그런 감옥살이를 해온 사람들은 셀 수도 없을 것이다.지금은 되새기기도 지겹지만 간첩 사건 하나만 터지면 죄 없는 사람들도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았다.군사정권에 저항하다가 구속된 어느 목사는 군사정권은 분단이 아니었으면 성립될 수도 유지될 수도 없는 정권이라고 법정에서 목소리를 높였다.정권의 성립부터 그랬지만 정치적 위기가 닥칠 때마다북한이 쳐내려 온다고 겁을 주거나 간첩사건을 터뜨려 위기를 모면해 왔다는 것이다.그런 식으로 해마다 큰 거짓말 하나,달마다 작은 거짓말 하나씩을했다고 사례까지 들어가며 공격을 했다.그 동안 남북 양쪽의 정권은 겉으로는 서로 비방하면서도 속살로는 그 적대관계를 이용해서 정권의 위기를 모면하거나 정권을 다지는 상호 의존관계에 있었고 그런 관계가 분단체제라는 하나의 체제로 굳어버렸던 것이다.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그 안에서는 또 이렇게 갈기갈기 찢겼다.우리는 지난 한 세기 동안 그 반은 외세의 지배 아래서 또 그 반은 분단 치하에서 안으로는 이런 고통을 안고 민족해방과 민족통일의 강박에 눌려 살아왔다.그러나 이제 새 천년의 원년에통일의 서광이 비치고 있다.그 서광 속에서 첫걸음부터 시원스럽게 나가고 있다.이번에야말로 낡고 무거운 역사의 짐을 벗어야 한다.모두 호흡을 가다듬고 숨죽여 지혜를 모을 때이다. 통일되기 전에 독일 사람들의 태도는 우리의 본이 될만하다.이를테면 동독에서 서독으로 넘어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그가 대학을 나온 젊은이일 때 서독 정부는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학비를 계산해서 동독 정부에 보냈다는 것이다.당신들이 교육시킨 젊은이가 우리 사회에서 봉사하게 되었으니 그 대가를 지불한다는 식이었다.우리한테는 저쪽을 비아냥거리는 짓으로 느껴지는 꿈같은 이야기다.주민들이 동독으로 친척을 방문하게 되었을 때는 돈이며 선물을 가득가득 실어다 주었고 정부는 그런 일에 간섭을 않았다는 것이다.통일이 될 때까지 20여 년 동안이나 정부는 정부대로 주민들은 주민들대로 그랬던 것이다. 물론 우리도 그동안 많이 달라지기는 했다.초등학생들도 ‘무찌르자 오랑캐몇 백만이냐.’ 대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고,거리거리에 살벌하던 방첩표어가 사라졌으며,탈북자들의 딱한 사정과 꽃제비 아이들의 처참한모습을 보고 성금을 내기도 했다.그러나 이런 변화는 지극히 표피적이고 감상적인 차원이다.북한은 지금 경제가 말이 아닌 것 같고 우리는 그런 경제사정 한 가지만 보고 우월감을 느끼며 측은해하지만 그들의 체제와 그에 따른 가치관은 우리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학생들의 경우 우리는 공부하는 동기부터가 내 개인의 입신이며 그 경쟁으로 불꽃을 튀기지만 그들은 우선 그런 식의 살벌한 경쟁은 없을 것이다.나보다 내가 살고 있는사회를 먼저 생각하게 되어 있는 것이 그들의 체제이기 때문이다.경제 협력을 하든 성금을 내든 그들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앞서야 할 것이다.가난한사람에게 가난에 대한 동정만으로 돈 몇 푼 던져주면 되레 모욕감을 느낀다. 정상회담 뒤 지금 화해 분위기는 급속도로 무르익고 있다.얼마 전에 국방부는 ‘괴뢰군’을 ‘북한군’으로 부르기로 했다는 발표를 했다.존비칭 때문에 호칭이 유독 까다로운 우리는 인간관계가 상대방을 어떻게 부르느냐는호칭에서부터 시작된다.그런 점에서 볼 때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패러다임은현란한 사회과학적 용어보다 ‘북한군’ 김정일 ‘위원장’ 같은 호칭일 것같고 그런 호칭을 일상화하는 것은 이해와 화해의 바탕을 다지는 일이 될 것이다.‘김정일 위원장’이나 ‘김위원장’이란 호칭이 ‘김대중 대통령’ ‘김대통령’처럼 입안에서 거치적거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나올 때 그런 정신적 기반은 우리의 소원인 통일이 소원이 아니라 현실로 나가는 탄탄한 길이될 것이다.
  • 美 돌아온 核자료 ‘핵폭풍’으로

    ‘미국의 어마어마한 핵기밀 내용을 담은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가 증발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핵기밀 관련 첩보 영화의 도입부에서나 나올 법한 시나리오가 실제로 미국의 로스 알라모스 국립 핵기밀연구소에서 발생했다.이 연구소 연구원이던 대만계 과학자 리원허(李文和)의 핵기밀 유출 사건이 발생한지 수개월밖에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사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핵기밀 취급 관련부서는 발칵뒤집혔다.리원허는 99년 12월 중국정부의 사주를 받아 로스 알라모스 연구소에서 핵기밀을 빼돌린 혐의로 체포돼 현재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공화당은 이번 사건에 대한 관리 책임을 물어 주무 장관인 빌 리처드슨 에너지장관의 사임을 요구,정치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이번 사건의 핵심은하드 드라이브에 저장된 핵기밀사항이 복사돼 외부에 유출됐는지 여부.수사당국은 돌아온 하드 드라이브를 워싱턴 미연방수사국(FBI)으로 보내 정보가복사 또는 손상됐는지 조사하고 있다. ■사건 발생 5월7일.산불이 뉴멕시코주 일대를 휩쓸 당시 연구소 지하저장소내 보관중인 핵기밀자료의 피해여부를 살피던 연구원이 하드 드라이브 2개가없어진 사실을 뒤늦게 발견했다.연구소 직원들을 대상으로 거짓말 탐지기 수사 등 경찰의 솎아내기식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 16일 연구소내 별칭 ‘X국’으로 불리는 안전지대안 복사기 뒤에서 문제의 하드 드라이브가 발견됐다. ■수사 방향 스파이에 의한 의도적 유출과 관리소홀등 두가지로 수사방향이모아지고 있다.리처드슨 장관은 18일 NBC TV와 회견에서 “이 자료가 연구소를 벗어났거나 스파이들에 의해 유출됐다는 증거가 없다”며 스파이 개입설을 부정했지만 에너지부 에드워드 큐란 방첩담당 국장은 스파이 소행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그는 “이 사건은 범죄 사건이다.지하저장소에 단독출입이 가능했던 직원 26명에 대한 거짓말 탐지기 조사결과 진술이엇갈리고 있는 연구원은 2명 이상”이라고 밝혔다. 수사당국으로부터 정직 명령을 받은 연구원은 현재 6명으로 알려지고 있다. 분명한 것은 누군가 문제의 하드 드라이브를 빼돌렸다 수사망이 좁혀오자 슬그머니 되돌려 놓았을 것이란 점이다. 문제의 하드 드라이브는 게임용 카드 한벌 크기로 미국과 러시아 프랑스 중국 등의 핵무기 자료가 담겨 있다.특히 핵 관련 사고나 핵 테러에 대비,핵무기 분해에 관한 정보가 실려 있어 ‘핵비상수색팀’(NEST)의 훈련용 자료로도 활용돼왔다. ■정치적 파장 민주당 대선 전선의 최대 악재로 등장할 전망이다.리처드슨장관은 민주당 대통령후보가 될 앨 고어 부통령의 러닝메이트로 꼽힐 정도로민주당이 내세우는 정치인. 지난주 “리처드슨을 신뢰한다”고 밝혔던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이 18일 기자들의 질문에 노 코멘트로 일관한 것도 민주당 고민의 일단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러처드 쉘비 상원 정보위원장과 포터 그로스 하원 정보위원장 등 공화당내인사들은 “자격이 없다”며 리처드슨장관의 사임을 강력 요구하고 있다.나아가 클린턴 정부의 문서 해제 정책등에 대한 전면적인 공격에 나서고 있다. 김수정기자 crystal@
  • 이회창총재 서신 요약

    지금 이 나라는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정도로 심히 혼돈스러운 상황속으로 빠져 들고 있습니다.목숨 걸고 간첩을 쫓던 사람이 그 간첩에 의해서 백주에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고,전방의 군인들은 무엇을 위해서,누구를상대로 싸워야 하는 것인지 혼란을 느낄 정도입니다. 방첩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도 간첩을 잡는 것이 혹시나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는 일은 아닌지 갈등에 빠져 있습니다.국가안보의 최후 보루인 국가보안법에 대해 정부여당이 전면 개정이나 폐지를 논하고 있습니다. 북한에 대한 포용도 좋고,햇볕정책도 좋지만,나라의 안보를 이렇게 위태롭게 해서야 되겠는가 하는 우려의 소리들이 높아가고 있습니다.이 나라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개탄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통일도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고,통일이 되고 난 뒤에도 안보는 세계전략의 일환으로서,변함없이 국가 제 일위의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런데도 공기가 희박해지기 전에는 산소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처럼,전쟁이 나기 전에는 국가안보가 얼마나 소중한지,그 일선에 선 분들의 역할이 얼마나 고마운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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