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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출비자금 11억 추가확인/경찰/현대중 돈세탁 561억으로 늘어

    ◎국민당 지방조직실장에 2억/76개 사회단체에도 일부 지원/전표 입수 현대중공업의 정치비자금조성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청은 8일 신한은행 대여금고에서 찾아낸 출금전표 23장을 분석한 결과 비자금의 일부가 국민당에 유입됐다는 확증을 잡고 관련자 검거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또 현대중공업의 거래계좌를 추적한 끝에 현대측이 한미은행에서 인출한 수표가 1천1백9억원이며 비자금화하기 위해 세탁한 금액이 당초의 5백50억원보다 11억원이 늘어난 5백61억원이라는 사실을 새로 밝혀냈다. 이와함께 수배된 현대중공업 사장 최수일씨(56)등 7명을 검거하기 위해 전담검거반을 연고지로 내려보내는 한편 현대중공업과 국민당에 출석요구서를 전달했다. 지난달 25일부터 지난 4일까지의 비자금사용내역을 담은 출금전표가운데는 「당조직비용」일부라는 명목으로 지난달 28일 「신현일」씨에게 2억원이 전달됐다는 전표가 들어있다고 경찰은 밝혔다.신현일씨(54)는 국민당 중앙당 지방조직실실장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현대중공업,종합기획실,현대석유화학등 현대그룹 6개계열사가 지난달 25일 전국76개 사회단체에 1천6백60만원을 지원했다는 전표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 「연고지 출장비」명목으로 33명에게 5백80만원을,정주영후보의 인터뷰가 실린 모여성잡지 72만4천부를 구입하는데 4억4천여만원을 지급했다는 전표도 들어있는등 전표23장의 지출액 합계는 13억3천5백여만원에 이르고 있다. 경찰은 이 지출내용들을 미뤄볼때 현대중공업이 기업자금을 비자금으로 불법조성,돈을 빼돌리는등 국민당의 선거를 지원한 사실이 명백한 것으로 보고 사용처가 밝혀지지 않은 4백27억원을 찾아내기위해 은행감독원과 함께 수표추적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경찰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2억원을 전달받은 것으로 밝혀진 국민당 지방조직실장 신씨도 소환조사하기로 했다. 한편 정윤옥씨는 현대중공업이 비자금사용내역을 전표에 기록하고 한달마다 정산한뒤 전표를 파기했으며 전표에 기록되지 않은 비자금은 국민당에 파견된 정희찬대리(30)에게 직접 전달됐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은 또 신한은행 대여금고에서 압수한 11월2일부터 12월2일까지의 「LC(신용장)미착품현황」이라는 서류를 조사한 결과 현대중공업이 한미은행에서 인출해 비자금으로 조성한 금액이 기록된 서류임을 밝혀냈다.
  • 군 「공명선거 감찰반」운영/국방부/「부정」오해 없게 예방활동 강화

    전영진 국방부인사국장은 3일 이번 대선에서 군은 정치적중립을 지키고 부정선거를 예방하기위해 국방부와 육·해·공군본부,각급부대별로 「공명선거감찰반」을 설치,운영키로 했다고 밝혔다. 전국장은 공명선거 감찰반이 사단급에서 각 소대에 이르기까지 「암행감사」를 벌여 부정선거와 관련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예방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장은 이날자로 소대급에 설치된 「소원수리함」이나 「신문고」를 「부정선거사례고발함」으로 대체,사병들이 선거와 관련된 상급자의 부당행위등을 고발토록했다고 밝혔다.
  • 혼탁조짐속 바닥표 훑기(대선 유세현장 3일)

    ◎투기근절위해 모든 수단 동원/김영삼/서민아파트만은 반값에 공급/김대중/중소기업 경제대들보로 육성/정주영/교원 처우개선/이종찬/부정부패 척결/박찬종 ○전남 5개지역 누벼 ▷김영삼후보◁ 지난 21일 유세시작 이후 두번째로 취약지역인 전남 장흥을 시작으로 강진·해남·영암과 광주시등 5개 지역을 누비며 지지기반 확산에 진력. 김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이곳 지역정서를 감안,『이번 선거는 과거와 3가지가 달라졌다』고 지적한뒤 과거 선거는 민주세력대 반민주세력의 대결,관권과 민권의 대결,호남대 영남의 대결이었다고 구체적으로 예시. 특히 지역감정 문제에 집중 언급,『민주당 김대중후보가 지금 경상도를 종횡하고 있고 나도 엊그네 호남지역의 여러분들로부터 환영과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 유세를 했다』고 강조하고 『선거는 선택이며 감정의 표출이 아니다』라며 자신에 대해 지지해줄 것을 호소. 김후보는 이날 항공기편을 이용,광주에 도착한뒤 헬기로 유세지역을 누비려 했으나 김포공항의 짙은 안개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1시간 가량 늦게 광주대신 목포행 첫 비행기로 출발,장흥유세부터 시작. 이때문에 김후보는 유세장마다 『예정보다 늦게 유세를 해 죄송하다』며 『그러나 아시아나항공이 처녀취항하는 목포행 첫비행기를 타고 이 지역에 온 것 또한 행운아니냐』며 「유세인연」을 각별히 강조. 김후보는 자신의 정책목표인 신한국 건설이 「기회균등의 사회건설」임을 역설.김후보는 계층간 골을 없애기 위해 『집권하면 부의 세습을 막기위해 양도소득세와 증여세를 강화하고 부동산투기 근절을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약속. 이어 지역간 차별 철폐도 언급,『발전된 지역과 낙후된 지역의 차이를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며 『지역균형개발법을 제정,국토발전의 균형을 이뤄나가겠다』고 공약.그는 또 학력간 차이와 관련,『사람을 채용하고 승진시키는데 대학을 나왔느냐 안나왔느냐 보다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한뒤 『앞으로 민간기업까지 학력철폐가 이뤄지도록 대통령과 정부가 적극 나서겠다』고 「기회균등사회 건설」을 집중 거론.김후보의 이날 유세는 광주지역을 제외하곤 모두 옥내 간이유세였는데 원고없이 즉석 유세로 지지를 호소.김후보는 당초 예정보다 유세가 늦어지자 강진에서 해남으로 이동중 버스안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때우며 강행군. 간이유세에서 김후보는 대부분 지역이 농촌임을 의식,『신한국의 참모습은 열심히 하면 그 땀의 대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라며 신한국정신을 「심은대로 거두는 농업정신」에 비유. 김후보는 이날 길게 늘어지는 종전의 연설스타일을 바꿔 짧은 문장과 문답형을 섞어 자신의 뜻과 의지를 전달. 이날 광주유세에서 김후보는 청중들이 시민회관 옆 1천5백평 광장과 주변계단을 가득 메운데다 열기도 예상보다 뜨겁자 시종일관 자신에 찬 어조로 연설. 이날 광주유세장과 주변에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경찰병력 30개 중대,4천5백여명이 배치돼 김후보에 대한 경호와 유세장 질서유지에 분주. 또 내외신기자 1백여명이 대거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는등 어느 유세장보다 관심이 집중됐으나 87년 대선때와 달리 돌발사태 없는 성숙된 모습.○“농업보장세 꼭 신설” ▷김대중후보◁ 이날 중부권의 최대 격전지가 될 온양·예산·합덕·당진·서산·홍성등 충남지역 6곳을 버스로 순회하며 2박3일동안의 충남권 대장정에 돌입. 첫 유세지역인 온양방문에 앞서서는 이웃 현충사를 찾아 참배,『완전한 인격자』로 충무공을 표현하며 그의 정신을 기렸고 기차편으로 온양으로 오는 동안에는 옆좌석의 여대생 2명과 젊은이들의 포부,충무공정신을 놓고 즉석토론시간을 갖기도. 이자리에서 김후보는 『국민에게 인기가 없는 박정희전대통령이 충무공을 너무 떠받들어 그이미지가 손상됐다』고 말을 건넸고 한 여학생으로부터 『군인이 되겠다』는 포부를 듣고는『요즘 젊은이들은 소신이 뚜렷하고 주관이 있어 장래가 아주 희망적』이라고 응수. 이날 김후보가 제시한 지역공약으로는 삽교천과 아산만방조제 주위의 관광단지화,온양역사 외곽이전,천안∼홍성국도의 4차선확장(이상 온양),예산산업대를 종합대학으로,통합의보실시,종합병원유치(예산),공업전문대설립,아산만∼대전∼청주를 신산업지대로 육성(합덕·당진),서해안고속도로 98년까지 완공,안면도 핵폐기장반대,국공립대학의 부속병원유치(서산)등을 약속. 온양·예산지역 유세에서 김후보는『정주영후보나 김영삼후보 모두가 「이번에는 바꿔보자」는 우리와 똑같은 말을 인용해서 찬조연설을 하고 있는데 감사한다』면서 청중의 웃음을 유도한 뒤『3당합당이후 나라현실을 볼 때 이제는 심판을 내려 민자당에 한표도 주지말자』면서 우회적으로 지지를 호소. 당진·서산등에서는 이지역이 농업지역인 점을 감안,농촌실정을 부각시키는 한편 『우루과이라운드 태풍을 막아내려면 여러분이 농민의 정당인 민주당을 지지해서 민주당이 농민권익을 지키도록 해나가야 한다』며 새롭게 농업보장세의 신설을 공약. 김후보는 이어『국민당의 아파트반값공약은 실효성이 없으며 중산층을 위한 공약』이라고 비난하고 『집권하면 건축비를 내리고 건설공사의 기계화를 통해 서민아파트에 대해서만큼은 반값에 공급할 수 있다』면서 서민아파트 반값공약도 처음으로 제시. ○연설 시간 5분줄여 ▷정주영후보◁ 경기도김포에 이어 강서·구로·동작·용산 등 주로 서민층이 밀집한 서울남서부지역유세에서 경제문제해결을 역설하며 바닥표 모으기에 총력. 정후보는 3년내 무역흑자 3백억달러,5년내 1인당 GNP 2만달러등 예의 경제공약을 제시. 정후보는 『나는 20년간 중소기업을 하면서 10억원밖에 벌지 못했는데 정치만 30년씩한 양금씨가 어떻게 30억∼40억원을 모았느냐』고 양금씨의 축재과정에 의문을 제기한 뒤 『정치판이 돈을 버는 곳이냐』고 반문. 정후보는 『나는 집권후 은행을 개혁,신용만으로도 대출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중소기업을 우리경제의 대들보로 육성하겠다』고 약속. 정후보는 『집권후 지방자치제를 우선적으로 실시하고 지방경제를 활성화시켜 국민들이 정든 고향을 등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 국민당은 정후보의 지시에 따라 이날부터 하룻동안의 유세장소를 종전의 4곳에서 5곳으로 늘렸으나 대신 정후보의 연설시간은 평소보다 5분여쯤 단축. 이에따라 정후보의 유세장 도착시간이 전반적으로 30분이상 지연됐고 정후보의 연설 역시경제문제만을 언급한채 지금까지의 스타일에서 크게 축소. ○“인재 정계진입 지원” ▷이종찬후보◁ 서울 평화시장,동대문운동장앞,돈암시장,국민은행 돈암동지점등을 순회하며 유권자와의 직접접촉및 연설회를 갖고 금권선거방지책과 교원처우개선등을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 이후보는 유세에서 『민주주의 원산지인 서구의 민주정치풍토를 도입치 않고 일본의 더러운 금권정치풍토를 답습,전국에서 금권타락선거가 판을 치고 있다』며 『선거공영제를 실시,돈쓰지 않는 선거제도를 정착시키고 참신하고 능력있는 인재의 정계진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다짐. ○“책임세대로 교체를” ▷박찬종후보◁ 논산 부여 공주등 충남지역을 돌며 『이제 국민을 기만하는 양금의 무책임세대에서 책임세대로 과감히 세대교체를 해야한다』고 주장하며 부동표끌어모으기에 주력. 박후보는 『지금 당장 우리사회의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새사회의 건설도,경제중흥도 이룰 수 없다』면서 『정의와 원칙에 입각해 국가기강을 바로 잡을수 있는 인물을 대통령으로뽑아야 한다』며 자신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 박후보는 논산유세에서 ▲논산∼대전간 4차선확장도로 조기완공 ▲농산물가공 운송 중심도시로 개발 ▲연산대추시장의 특산물활성화 등을 지역공약으로 제시한뒤 부여와 공주에서는 ▲백제문화권개발로 세계적 관광도시화 ▲천안∼공주∼부여간 고속도로건설 ▲금강 수질개선등을 약속. ○3당 강도높게 비판 ▷백기완후보◁ 대선후보로는 2번째로 제주도를 방문,서귀포와 제주시에서 유세를 갖고 민자·민주·국민 등 보수 3당에대한 강도높은 비판과 함께 지역공약을 제시하며 지지를 호소. 백후보는 이날 유세에서 『김영삼씨의 관훈토론은 변절과 거짓으로 얼룩진 자신의 행적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에 불과하다』고 공격한 뒤 김대중씨와 정주영씨에 대해서도 「진보세력의 씨를 말리려하는 기회주의자」「악덕재벌의 원흉」등의 직설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비판.
  • “러 공산당 불법화 부분합헌”/헌법재판소

    ◎옐친 포고령 일부무효화 판결/당원회의 소집·집행기구 구성 추진/공산당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러시아헌법재판소는 지난달 30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의 공산당불법조치에 대해 옐친대통령이 공산당 상부조직을 해체한 것은 합헌이라고 판시하고 그러나 옐친대통령이 당기초조직을 해체하고 공산주의 자체를 폐지한 것은 위헌이라는 부분합헌 판결을 내렸다. 이에따라 러시아공산당이 일반당원회의의 소집과 동시에 당 집행기구 구성작업을 시작할 것으로 보여 공산당의 복귀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이와관련,발렌틴 쿠프초프 러시아공산당 제1서기는 이날 헌법재판소가 공산당 불법화위헌여부 최종 판결을 내린뒤 기자회견을 통해 『이제부터 공산당은 당 활동을 계속할 권한을 갖게됐다』면서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사실상 공산당과 당이데올로기의 합법성을 확인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공산당지방조직들이 조직재건을 위해 곧 회의를 소집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정부에 몰수당한 재산의 반환을 청구하는 소송도 병행될 것』이라고밝혔다. 한편 러시아헌법재판소의 이번 판결은 옐친대통령이 당초 기대했던 압도적인 지지에는 크게 미흡한 것으로 1일 열릴 인민대표대회의 정책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10년째 물난리겪는 목포시 저지대(심층취재)

    ◎매월 2차례 상습침수… 보름·그믐이 지겹다/만호때마다 역류… 오·폐수 악취 진동/영해 등 6개동 연간 재산피해만 17억/문턱 높이 쌓고 연탄부엌은 사용못해/“영산강하구언 축조때문” 보상 주장도 한달에 2∼3번씩 반복되는 목포시 저지대의 바닷물 범람을 막을 수 없는 것일까.목포시 영해동등 6개동 1천3백여가구는 10년째 바닷물과 싸우고 있다.지난 82년 영산강 하구둑 축조이후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 때마다 바다수면 높이가 지면보다 높아져 바닷물이 넘쳐들고 있다.이로인해 주민들이 겪는 정신적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물적 피해는 엄청나다.주민들 추산으로는 재산패해만도 연간 17억원을 넘는다는 주장이다.그런데도 항구적인 피해방지대책은 커녕 해수면이 왜 예전보다 높아지는지 원인조차 규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피해실태◁ 목표시 바닷물 침수피해지역은 영해동을 비롯,동명·서산·만호·온금·유달동등 6개동 28㏊에 이르고 있다.이곳은 특히 각종 어구상과 건어물상 철물점등이 들어찬 밀집상가로 목포경제활동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천2백58가구 5천여 주민들은 매월 음력 보름과 그믐만 되면 수방훈련(?)으로 지치기 일쑤다. 올들어 바닷물이 가장 많이 들었던 지난 9월28일부터 31일까지 4일동안 이일대 도로와 상가는 80㎝까지 물이 차올라 한때 교통이 마비되고 상가와 주택가의 진열상품및 가재도구가 모두 물에 잠겨 엄청난 피해를 냈다. 이때 측정된 해수면 조위는 최고 5.07m나 됐으며 바닷물이 호안벽에 설치된 24개의 하수구를 통해 역류한데다.호안벽을 범람,상가가 물바다를 이루었다. 이곳에서 30여년동안 어구점을 경영해온 김동윤씨(45)는 『지난 9월 바닷물 침수때만도 6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입었으나 보상 받을 길이 막막하다』며 특별대책을 호소했다. 또 송애용씨(59·여 숙박업·영해동1가2)는 『바닷물이 재래식 화장실을 통해 안방과 부엌등으로 넘쳐 들어오는 바람에 오·폐수가 냉장고·세탁기·장농등을 덮쳐 4백여만원의 재산피해를 있었으며 집안청소를 하는데도 이틀이나 걸렸다』고 털어놨다. 이곳 바닷물 침수지역 주민들은 바닷물 범람에 대비,방 한쪽에50∼60㎝높이의 물치장을 따로 만들어 이불등 가재도구를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이곳에서 연탄아궁이는 이제 거의 쓸모가 없고,대문 문턱과 방문턱이 20∼30㎝가량 높아진 것도 이곳에서만 볼수 있는 진풍경이다. 주민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백중사리나 만조때 마다 하수구를 통해 오물이 거꾸로 집안으로 넘쳐드는 것.악취가 심하고 가재도구를 버리기 때문이다.이같은 바닷물 침수피해는 바다건너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 선창마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목포 저지대는 상업지역으로 비좁아 대지면적 15평이하는 신·개축이 불가능한 도시계획에 묶여 주민들이 의도대로 건축물을 고치거나 집을 높일수 없다는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침수원인◁ 목포 바닷물 침수는 영산강 하구둑 축조가 원인이라는 주민들의 주장과 지구 온난화로 인한 바다수면 상승설이 팽팽히 맞서 있다. 주민들은 영산강 하구둑이 완공되기전인 81년까지만해도 만조때도 바닷물이 넘치는 일은 없었다고 말했다. 목포해양대 정명선교수(항해학)는 공학박사학위 논문을 통해 영산강유역 개발이 해수면 조위상승 원인이라고 주장했다.이 논문에 따르면 영산강 하구둑 축조에 이어 현재 영산강개발 3단계 사업으로 추진중인 영암·금호방조제가 완공되면 목포항 인접지역은 물론 내항의 수위가 20∼40㎝가량 더 불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 교통부 수로국 조위표에 따르면 둑설치 이후인 82년부터 목포항 인근만조위가 4·94m로 무려 38㎝나 상승했다.주민들은 따라서 목포바닷물 침수는 인재이므로 국가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농어촌진흥공사 영산강사업소측은 이에대해 『하구둑 건설이후 조위가 어느정도 상승한 것은 사실이나 침수피해가 하구둑 공사에 따른 조위의 변화 때문만으로 단정하기 어렵고 전반적인 지구온난화 현상,해수밀도변화등 복잡한 원인에 기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사업소 임채영관리부장(55)은 『교통부 수로국의 조위변화분석을 보면 군산12㎝ 여수10㎝ 목포19㎝등 서해안 일대 최고 조위가 지난 80년이후부터 꾸준히 상승해 왔다』며 『목포 내항일대의 침수피해가 영산강종합개발로인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영산강 개발사업은 현재 하구둑 완공에 이어 3단계 사업인 영암군 삼호면 삼포리(목포에서 15㎞위치)∼해남군 산이면 구성리를 잇는 2.2㎞구간의 영암방조제(Ⅲ­1지구)공사가 내년 10월 완공을 앞두고 있는데다 영암군 삼호면 달도∼해남군 산이면 금호도를 잇는 2.1㎞의 금호방조제(Ⅲ­2지구)연결공사가 5백여m를 남겨두고 있어 이 공사가 완공되면 수위가 더 높아질까 주민들은 벌써부터 걱정이 태산이다. ▷방지대책◁ 목포시는 1단계 응급대책으로 지난 10월30일부터 28억원을 들여 해안 1.6㎞에 차수벽을 설치하고 2백34m의 파도방지벽과 2백31m의 안벽정비,24m의 하수구를 16개로 통폐합하는 등 호안정비 공사를 시작,내년 말까지 완공예정이다. 또 2단계로 영해동·만호동·온금동 등 3개 지구에 50여억원을 들여 배수·펌프장을 만들어 만조때 차수벽 설치로 인해 빠져나가지 못하는 생활하수를 뽑아 낼 공사도 서두르고 있다. 한편 전남도는 해수면조위상승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대책을 세우기 위해 지난 6월한국 해양대학교부설 항만연구소에 「목포항주변 조위상승 원인분석및 항구대책 수립」에 관한 용역을 의뢰해 놓고 있다. 도는 이와함께 영해동등 상습침수 피해지역 주민들의 이곳에 대한 재개발지역 지정요구에 대해 현행법상 불가능하다고 판단,이 지역을 국토개발종합계획법에 따른 특정지역고시여부를 관계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관계기관 대책/“물막이 설치·낮은 지반 돋우겠다”/간선도로 만수위보다 높이고 하수구 정비/이만의 목포시장 『지난 10여년간 주기적으로 계속해온 목포시 저지대의 바닷물침수사태는 그동안 부분적으로 외부에 숨겨온 것도 사실입니다.그러나 이제부터는 쉬쉬하고만 있을게 아니라 중개적으로 외부의 자문과 지원을 얻어 이를 적극 해결해 나갈 계획입니다』 목포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이만의시장은 『지난9월 발생한 남해방조제 붕괴사고로 목포의 「물문제」가 전국에 알려져 시정 책임자로서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이는 근본대책마련을 위해 오히려 다행한 일』이라 말하고 재임기간동안 피해주민들의 입장에서 바닷물 침수지역의 항구대책을 세워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이시장은 이를위해 1단계로 내년말까지 침수지역에 해수차수벽을 설치하고 호안벽보다 낮은 영해동 일대 도로 8백90m를 만수위 수면높이로 높일 계획이다. 그는 특히 『이번 기회에 목포시 전체의 하수구를 재정비하고 저지대 지반을 높이는등 해수 침수피해문제를 새 도시계획 차원에서 해결해 나갈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시장은 이와함께 침수피해지역을 특수지역으로 지정하고 관련조례를 제정,건축물 증·개축을 쉽게할수 있는 방법을 신중히 검토중임도 밝혔다. 그는 또 지난6월 한국해양대학 「항만연구소서에 의뢰한 해수조위상승원인 규명」용역결과를 토대로 목포인근 방조제축조등 물막이 공사가 조위상승원인으로 밝혀지면 이에 대한 특별대책을 마련해 관계부처에 건의할 계획도 세워두고 있다. 이시장은 『목포시가 최근 중국 연운항시와 자매결연을 하는등 대중국 무역전진기지로서 서해안 시대의 중추적 도시로 떠오르고 있다』며 목포의 명성을 되찾는 차원에서 바닷물 침수피해문제를 해결할 작정이라고 덧붙였다.
  • 언론입국에 생애바친 선각자/서울신문 초대사장 위창 오세창선생

    ◎독립운동·저술 등서 뚜렷한 발자취/23세에 첫발… 필봉으로 민족혼 고취/팔순고령에도 본지서 해방조국 정론기개 불태워 『매일신보는 이제 혁신되어 이름조차 새로운 「서울신문」으로 냅떠 나서게 되었다.…우리는 일당일파에 기울이지 않고 언론보도에 공정하고 적확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총력의 집결통일과 독립완성의 시급한 요청에 맞추어 단호매진하는 동시에 국내를 비롯하여 연합우방의 동업기관과 더불어 민주주의적 질서수립을 위해 상응한 노력을 기울이려 한다…』19 45년 11월22일 혁신사란 이름의 서울신문 창간사중 일부이다. 언론입국의 기치를 이같이 내걸고 새로 태동한 서울신문에 초대사장으로 추입,격랑의 그 어려운 시절을 이끌던 이는 바로 위창 오세창선생이었다. 큰 체구에 근엄한 표정,그리고 절고의 기품과 해박한 지성으로 명성 높은 원로 민족인사였다.위창은 33인(3·1운동)의 한사람이자 불굴의 독립투사로 더 이름이 높다.또 근대미술사의 한 획을 긋는 탁월한 서예인이었다.그의 행적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개화사상 일찍 눈떠 개화운동및 개화사상가,언론인,종교인,전각가·저술가·고서화 수집가를 덧붙여야 할 만큼 다각적인 발자취를 남긴 민족근대화의 선각자였다.특히 개화사조의 계몽과 주권의식의 고취를 민족에 불어넣기 위해 벌였던 개화및 언론활동은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식을 새롭게 할 만큼 빛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위창은 개화사상에 일찍이 눈을 뜬 부친 오경석과 은사 유대치의 감화를 받아 일찍부터 개화및 진보적 사고를 지니게 되었다.자신의 개화사상이 곧 민족의 근대화를 이루는 지름길로 여겨 개화운동의 전면에 나선 것이 약관 23세이던 18 86년의 일이다.박문국의 주사로서 당시 관보였던 「한성주보」의 기자를 겸하면서 처음 언론을 대했다. 정치적 격변의 시대이기도 했던 그무렵 위창은 지위를 높여 영화를 누릴 기회도 많았으나 이를 마다하고 필봉의 길을 택했다.언론을 통해 민족에 개화의식을 심어 끝내는 국권회복의 길을 앞당기려는 깊은 뜻을 품었기 때문이었다.기자생활은 18 88년 7월 한성주보가 폐간될때까지 1년8개월간에 불과했다.그러나 신변의 위험을 무릅쓰고 민족을 일깨우는데 집념을 불태운 그 세월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다. 그뒤 31세이던 18 94년 국군기무처의 낭청(총재비서관)자리에 관직을 얻은 그는 당시 영의정이던 김홍집의 3차내각이 무너지기까지 의정부주사·농상공부 참사관·통신국장을 지내면서 줄곧 정부시책을 통해 또다른 민족근대화 작업을 집요하게 폈다. 위창의 민족개화운동은 도쿄 망명중 동학교주 손병희를 만나 입교하면서 그 날개를 더 달았다.19 06년에는 항일구국운동을 위한 신문 「만세보」를 손병희의 재정적 후원으로 창간,사장에 취임하면서 본격화 하기 시작했다.당시 위창은 주필로 국초 이인직을 취임시켰다.이인직의 신소설 「혈의 누」가 처음 발표된 것도 바로 「만세보」지면을 통해서였다. ○「만세보」 사장 취임 그러나 만세보는 경영난에 빠져 이듬해에 폐간되는 비운을 겪었다.위창은 권동진·장지연·김가진등과 「대한협회」를 조직,사회개혁과 항일운동을 계속했다.그러면서 이상재·김규식·안창호등과 「대한학회」발기인으로활동한 위창은 19 05년 5월 대한협회의 기관지 성격으로 「대한민보」를 창간,다시 사장으로서 항일언론을 지속하는등 민족을 위한 투쟁을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대한민보는 창간 이듬해 한일합병으로 사라지고 말았으나 당시 매우 획기적이고 용기있는 신문편집을 단행한 것으로 유명하다.창간호부터 1면에 청년화가 이도영이 붓으로 그린 비판적 시사만화를 연재한 것도 이때다.시사만화는 미련한 놈이 도끼로 나무를 찍다가 자루가 빠지는 바람에 도끼날이 제 발등에 떨어져 찍히는 내용이었다. 이 만화의 설명은 당시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미완용(이미완용)자부상피(자부상피)」라는 설명이 그것인데 당시 「매국대신 이완용이 자부와 상피붙었다」는 소문을 풍자한 내용이다.대한민보에는 이밖에도 일제통감의 침략행위와 일인들의 악행을 풍자한 만화도 등장했다.또 우리군대가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당한뒤에도 군복을 입고있는 이완용내각의 군부대신 이병무의 모습을 그려놓고 「벌거벗고 군도차기」라고 꼬집은 만평이 게재되기도 했다. 이 모든 비판적 만평은 위창의 항일언론정신에 바탕한 것은 물론이다.당시 그같은 통렬한 설명도 위창이 직접 붙인것으로 알려져 있다.매우 엄격하고 불의에 타협않는 단호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위창은 과묵하기 짝이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말과 행동을 늘 은인자중하여 심중을 알기 어려울 정도였으나 기회를 얻으면 결코 방관하지 않는 기민성을 보이기도 했다. 생전에 술과 담배는 즐겼다.19 19년 3월 민족대표 33인중 한사람으로 왜경에 체포,실형을 받은뒤 술을 끊기까지 두주불사에 줄담배였다. 한국서화사연구의 혁혁한 공로자로서도 언론인 못지않게 이름이 높다.김석학의 대가이던 부친 적매 오경석의 아들답게 근대적 미술가단체의 효시인 서화협회의 발기인이자 민족서화계의 정신적 지도자로 큰 폭의 활동을 했다.위창이 서화사연구와 전서쓰기및 전각에 전념하기는 통한의 국망을 본 이후 천도교도사로 은거하면서였다. ○서화사연구에도 열성 그리고 고서화수집가로도 유명했다.한학과 김석학에 깊은 조예가 없이는 손대기 어려운 전서에 뛰어났다.전서로당대의 일인자였던 그는 예서를 씀에도 고격하여 독보적인 존재이기도 했다.전서의 높은 경지와 함께 전자를 돌도장에 새기는 전각에서도 근대이후 일인자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가 남긴 미술사적 공적은 「근역서화징」의 편저이다.「근역서화징」은 삼국시대이후 3백92인의 화가와 5백76인의 서가,그리고 시·화를 겸했던 1백49인의 기록을 시대순으로 정리한 책자를 말한다.필생의 대업적인 「근역서화징」은 오늘에도 그 방면의 유일하고 거의 완벽한 사전으로 학계와 사회의 길잡이가 돼있다. 육당 최남선은 이 책자가 출간되었을때 『암흑한 운중의 전광』이라는 표현으로 그 업적을 극찬할 정도였다.위창은 또하나의 편저업적인 「근역인수」를 남겼다.조선시대 초기부터 근대에 이르는 서화가 8백56인의 성명·아호·별호·자·이명의 도장 약3천8백종을 실제의 날인본으로 모은 것이다.한국전각예술의 역사적 흐름과 실제 사용의 행적을 보여주는 최대의 자료집성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밖에도 1천1백16점의 글씨와 그림을 묶은 「근묵」이며삼한의 와당을 모은것등 많은 문화재를 수집 정리했다.위창이 명현석유를 비롯한 옛서화가들의 필적을 이처럼 모아 정리한것은 단순한 취미에서가 아니었다.선인들의 문화유품이야말로 민족의 정신적 생명으로 인식,이를 아끼는 마음에서 였다.그것은 위창의 애국애족정신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그의 이러한 정리작업은 광복을 맞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뒤 일제가 패망하고 국권을 찾으면서 위창은 팔순의 고령으로 서울신문 사장에 추대되었다.광복의 땅에서 우리말로 정론을 펴는 서울신문 초대사장에 취임한 그는 얼마 안되는 세월이었지만 노후의 기개를 불태웠다. 8·15 1주년을 맞아 지난날 일제에 빼앗겼던 대한제국 황제의 옥쇄를 민족을 대표하여 인수했던 위창­.그는 6·25로 가족과 함께 내려간 피란지 대구에서 1953년 4월 세상을 떠났다.그때의 나이 천수를 다한 90세였다.
  • 대선공고 따른 현 총리 담화(요지)

    정부는 제14대 대통령선거를 다가오는 12월 18일에 실시하기로 하고 이를 오늘 공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번 대통령선거를 공명선거로 치를 수 있느냐의 여부에 따라 멀지않아 새로운 세기를 맞게 될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공명선거를 통해서만이 새로 탄생할 정부가 선거 때마다 되풀이 되어온 정통성 시비에서 벗어나 국민 모두의 신뢰를 받는 민주정부가 될 수 있을 것이며,이로써 우리는 국민통합과 국력결집을 이루어 새로운 세기의 국가도약을 성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부는 새내각 출범이후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한 협조아래 각 정당의 사전선거운동에 대해 단호하고 엄격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으며,또한 공직자들이 선거과정에서 엄정중립자세를 견지하도록 가능한 모든 조치도 취해 놓았습니다. 앞으로 선거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탈법·불법선거운동사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를 가리지 않고 엄단할 것이며,아울러 선거를 틈타 사회기강을 문란케 하는 어떠한 범법행위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단속해 나갈 것입니다.정부는 선거운동과정에서 나타나는 탈법·불법사례에 대해 어떠한 예외도 없이 법규를 엄정하고 철저하게 적용하는 것만이 최선의 선거관리라고 확신하고 이를 실천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불법선거의 감시자가 되고 파수꾼이 될 때 비로소 이 땅에 정치선진화를 위한 선거혁명이 가능할 것으로 확신합니다. 불법·부정선거행위를 방관·방조하거나 그에 영합함으로써 선거풍토를 혼탁케 하는 것은 역사와 후세에 씻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국민의 성숙된 민주시민의식과 각정당,후보자들,그리고 정부의 공명선거 의지가 조화를 이룬다면 이번 대통령선거를 통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 선거문화가 뿌리내리게 될 것이라고 저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 지점장자살 관련/상은행장도 곧 경질

    금융당국은 상업은행 명동지점장 자살 사건과 관련,이 사건이 마무리되는대로 김추령행장에게 책임을 물어 경질할 방침이다. 18일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김행장이 명동지점장의 양도성예금증서(CD)불법유통사실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다면 이를 방조한 책임을 면할 수 없으며 만일 사전에 알지 못했다면 은행전반에 대한 감독부실책임을 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행장이 사건전모가 밝혀지는대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겨울철 온천욕/풀어지는 피로 살아나는 여유

    ◎전국 15곳 산재,38곳 새로 지정/대부분 관광지 소재… “일거양득”/40℃이하 수온 적절… 공복·음주후 입욕은 피해야 기온이 갑작스레 뚝 떨어지는 겨울 초입이다.동절기의 내습으로 주변은 살풍경해지고 마음마저 활발함을 잃고 움츠러만 든다.이럴 때 주위의 기온과는 아랑곳없이 뜨거운 지하수가 솟아나는 온천에 들면 으스스해졌던 심신이 기분좋게 풀어질 것 같다. 온천욕은 간단치 않은 병의 치료에도 도움이 되고 따뜻하고 상쾌한 기분전환에의 기대가 큰만큼 그 여행 또한 여유롭게 즐길 수 있다. 몇가지 효과적인 온천목욕법을 알고 떠나는 게 낫다.공복에 온천욕을 하면 현기증을 일으킬 수 있으며 음주후의 입욕도 피하도록 한다.온천성분의 효과를 충분하게 받으려면 너무 뜨겁지 않은 따뜻한 탕에서 장시간 목욕하는 것이 좋다.보통의 경우에는 40도 이하의 탕에 15∼20분간 느긋하게 머무르도록 한다. 의학적으로 40도 전후의 미온욕이 그이상의 고온욕보다 낫다고 권고된다.목욕횟수가 많다고 효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목욕후에는 찬물로 씻지말고 물방울만 간단히 닦아낸 뒤 30분이상 누워서 보온 휴식한다. 현재 전국에는 목욕및 레저시설을 갖춘 기존 온천지가 15개 지역이며 38개소가 새 온천지로 고시됐다.신 고시 지역도 몇곳에 부분적인 이용시설이 들어서 있지만 기존지역을 위주로 유명온천를 간략 소개한다. ▲이천온천=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경기도내 유일의 온천으로 이천읍내에 있다.광천이 아닌 단순천으로 신경통 부인과 안질 외상성장해에 효능이 있다고 한다.설봉관광호텔에 이어 지난해말 미란다호텔이 완공돼 성업중이다. 도자기단지 여주의 세종대왕 영릉과 신륵사 등이 가깝다. ▲온양온천=조선시대에 왕의 방까지 따로 두었을 만큼 유명한 곳이다.천온이 50도내외로 비교적 높으며 빈혈증세가 있는 허약체질이나 임신부에게 좋은 철성분이 많이 녹아 있다.이용허가업소가 무려 1백40여곳에 달한다. 주변에 들러볼만한 곳으로 현충사 민속박물관 신정호수 아산방조제 등을 꼽을 수 있다. ▲도고온천=온양에서 10여㎞로 서쪽에 위치한다.온도는 높지 않으나 달걀삶은 냄새와 비슷한유화수소가 함유된 유황천으로 약수로 마시기도 한다.피부질환 안질 신경통 외에 무좀 당뇨 변비 등에 효능. 근처에 김대건신부 생가인 솔뫼성지와 추사 김정희선생 고택이 있다. ▲덕산온천=온천수가 어머니 젖과 같이 유익하다하여 지구유로 불린다.2년전 40도이상의 온천이 새로 발견돼 뉴가야관광호텔이 세워졌다. 수덕사행 직행버스로 삽교천하차,군내버스이용.인근에 수덕사 윤봉길의사 사당 등을 찾을수 있다. ▲유성온천=피부미용에 효능이 있고 도시 안에 있어 이용객이 많다.현 이용허가업소가 18개이나 대전엑스포를 맞아 유성구청에서 추가로 공영개발중이다. ▲수안보온천=수온이 50도이상으로 높고 주변에 관광자원이 풍부하다.단순 유황라▦천으로 무색무취하며 매우 미끄러운 특징을 갖고 있다.위장병 충치예방에도 효능이 있다.이용허가업소 51개소. 월악산 충주호 문경새재 오로라밸리스키장 송계계곡 등을 찾아볼 수 있다. ▲오색온천=양양 한계령을 넘으면서 북으로 설악산 대청봉,남으로 점봉산을 보는 주변경관을 즐기며 오색약수터와 함께 들른다.2개의 온천공 가운데 최근에 새로 굴착된 1개만 사용하나 이용업소는 10곳이다. ▲척산온천=설악산 울산바위가 바라보이는 속초시 노학동에 소재.불소 나트륨 라듐 등 10여종의 광물을 약간씩 함유한 알칼리성 단순천이다. ▲백암온천=유황성분이 크게 줄어들었다는 분석도 있으나 현재까지 가장 인기있는 유황온천이다.만성피부염 금속중독 동맥경화 기관지염 등에도 효능이 있다. 불영계곡 성류굴 월송정 백암산 등 관광지가 가깝다.
  • 지하철 증차가 먼저다/김수정 생활부기자(오늘의 눈)

    영화화되어 국내에도 소개된 바있는 미국 작가 윌리엄 스타이런의 소설 「소피의 선택」에서 여주인공 소피는 『숨 쉴수 없이 밀집한 뉴욕지하철에서의 성적추행과 남녀간의 밀착으로 인한 불쾌감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경험한 「밀실의 공포」와 「인간이하의 수치감」보다 더욱 치유받기 어려운,영혼이 싸늘히 식어가는 모멸감을 느끼게 하는 고통』이라고 표현했다. 소피가 그토록 모멸감을 느낀 1940년대 뉴욕지하철보다 더 붐비는 우리의 지하철에서 출퇴근길 직장여성들이나 여학생들이 당하는 고통은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철도청이 12월부터 인천∼의정부,수원∼의정부간 수도권전철 1개 열차당 2량씩 여성전용칸을 설치키로 한것은 그런 고통으로부터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고육지책일 것이다. 그러나 이 보도를 접한 많은 사람들은 선뜻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해외토픽감」이라는 논평도 나온다. 물론 견디기 어려운 「지옥철」의 성적추행을 경험해온 여성들 가운데서 안도의 숨을 쉬는 이들도 있고 여성들의 고통에 동정하는 많은 남성들중 일부는 『수학적인 빈도에서 우선 성적추행을 당하는 여성들이 줄어들것』이라고 긍정적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개찰구에서부터 사람에 떠밀려서 계단을 오르내리며,전철을 타고 내리는 현실에서 여성들이 언제 전용칸까지 헤집고 갈것인가? 수도권전철의 하루 이용객 1백20만명중 여성은 32%라고 한다.불가피하게 남녀혼성칸에 타게되는 여성들은 정조관념이 희박하고 성적추행에 그리 개의치 않는 여성으로 오해되어도 괜찮은가? 또 자신을 피해 멀리 여성전용칸으로 달려가는 여성들을 바라보며 대부분의 선량한 남성들은 무슨 생각을 할것인가. 지하철안에서의 성적추행은 근본적으로 이 사회의 타락한 성윤리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객차수의 절대부족으로 인한 혼잡함이 이를 방조하고 있다.윤리회복이 단기간에 이루어지기 힘들다면 현실적으로 먼저 강구돼야할 것은 전철의 운행횟수와 객차수를 늘리는 일이다. 여성전용객차제도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 오늘 착공 영종도신공항 어떻게 건설되나

    ◎바다 1천7백만평 매립 「28년 대역사」/2천20년까지 4단계로 건설/대형활주로 4개… 연 70만회 운항/배후지원단지 2백64만평도 조성 12일 첫 삽질이 시작되는 영종도신국제공항은 2천년대 동북아시아의 중추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웅지를 담고 있다. 오는 2천20년까지 28년동안 4단계로 나누어 건설되는 영종도 신국제공항이 완공되면 1천7백만평의 부지에 4개의 대형활주로를 통해 연간 70만회의 항공기가 운항,연 1억명의 승객과 7백만t의 화물수송이 가능하게 된다. 신공항은 이용,항공기및 승객들에게 최고의 효율성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세계 최고수준의 규모로 건설된다. 3개의 복합형 여객터미널과 4개의 탑승동으로 구성된 청사는 1개 탑승동에 32개의 게이트를 설치한다. 청사안에는 항공사 사무실과 세관검사대 출국검사대 국제선대합실 면세매점등이 입체적으로 설치되어 승객들이 불편없이 출·입국 할 수 있게 된다. 총 면적 2백64만평의 배후지원단지는 약 11만명을 수용할 계획이며 대형전시장,국제회의장,호텔·위락시설이 들어선다. 공항에서 서울도심까지 50㎞에는 전용고속도로 공항철도 지하철 연육교 등을 건설 45분에 접근할 수 있게된다. 전용고속도로는 1단계로 시속 1백20㎞로 주행할 수 있는 6∼8차선 규모로 신공항∼연육교∼북인천∼김포공항∼한강변 남북도로 연결되는 총 54.5㎞가 신설된다. 2천5년에 개통될 공항철도는 대량수송이 가능한 수도권전철및 지하철로 시속 1백10㎞로 달릴 수 있도록 건설되며 66㎞의 복선으로 설계됐다. 영종도와 인천북서지역을 연결하는 총연장 5.1㎞의 연육교는 2층 교량으로 상부는 6차선으로 하부는 4차선도로및 복선 철도로 건설된다. 영종도신국제공항은 우선 97년까지 1단계공사로 5백40만평의 부지에 연간 2천7백만명의 여객을 처리 할 수 있도록 활주로 1개와 여객터미널 7만4천평을 건설한다. 김포공항은 98년 이후에는 영종도 신국제공항의 배후공항으로 국내선과 중거리 국제여객청사로 활용되게 된다. 영종도신국제공항은 바다를 매립해서 부지를 조성하기 때문에 국토확장의 효과와 함께 내륙공항의 가장 큰 문제점인 소음공해해결로 24시간 운영이 가능하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간석지에 17.5㎞의 방조제를 설치하고 주변의 구릉을 절토하고 바다모래를 준설해서 방조제안을 매립해서 활주로 부지를 마련한다. 영종도와 용유도사이의 간석지는 간조 때는 바닥이 드러나고 만조 때의 깊이는 불과 3∼4m밖에 되지않아 매립에는 별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활주로가 들어설 공항지역은 낮게 매립하고 배후지원단지는 높게 매립해서 부지가 계단식으로 설계됐다. 영종도신국제공항은 중국·러시아등 대륙북방항로 연결에 유리한 지리적 여건을 갖추어 이 지역 경제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영종도공항의 활주로시설은 차세대항공기인 초음속기및 미래의 초대형 항공기의 이·착륙이 가능해 장차 동북아시아지역의 최대 중추공항으로 부상할 것으로 기대된다.대규모 여객화물수송에 따른 인적·물적 유통의 증대와 고용기회의 창출및 기술·정보의 축적으로 산업고도화를 촉진하여 국민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의 민간항공수요는 지난 10년간 연편균 7%씩 증가했다.이같은 증가추세를 감안하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는 앞으로 10년간 세계 항공수요는 연평균 6%씩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항공여객은 이 지역 국가들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지난 10년간 연평균 10%씩 증가했으며 앞으로 10년간에도 평균 9·5%씩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항공우주과학의 발달은 현존하는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는 항공노선체제에서 지역중심과 또 다른 지역 중심을 연결하는 중추공항의 출현이 필연적이다. 2천년대 초반에는 지구상에 10여개의 중추공항이 출현하고 중추공항에서 근거리 공항을 방사형으로 연결하는 공항배치가 형성될 것으로 예견된다.영종도 신국제공항은 이제부터 이 중추공항의 하나가 되기 위해 거보를 내디딘것이다.
  • 대검 99개 부정선거운동 유형 시달의 배경

    ◎“선거존립 위협” 폭력예방 주력/“친북세력 테러가능성 높다” 판단/후보 신변위험 방지조치도 강화 검찰이 9일 발표한 99개부정선거운동유형은 이번 대선에서 특히 강조된 정부의 공명선거의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공무원과 국영기업체,관련단체들의 선거관여행위 유형을 세분해 체벌조항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검찰의 이번 단속지침 가운데 특히 강조된 점은 후보자 테러에 대비한 사전예방조치를 들수 있다. 이전의 선거에서도 검찰은 유세장폭력을 주요단속대상으로 삼아왔지만 검찰이 이번 대선에서 「테러」라는 용어까지 쓰며 출마자들의 신변안전에 특히 신경을 쓰는 것은 친북좌익세력의 테러 가능성이 그어느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사실 선거일이 공고되기도 전에 사전선거운동으로 구속되는등 과열양상을 빚고있는 현 상황을 감안하면 특정후보자에 대한 테러는 선거자체가 위협받는 것은 물론 선거로 인해 국가 전체가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들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수 없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나온 검찰의 대테러예방조치는 선거때마다 들먹이던 안보라는 「단골메뉴」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우리주위에 다가온 위협요소가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며 이에대해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락중간첩사건과 남한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사건등 일련의 공안사건을 수사해오는 과정에서 해이해진 국민공안의식을 틈타 서울지역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그들이 유사시를 대비해 묻어둔 소음권총·수류탄등이 수십군데서 발견됐으며 황인오등 구속자들은 『유사시 이를 사용하도록 했다』는 진술을 하는등 이러한 징후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검찰로서는 수백명이 유세를 벌이는 국회의원선거가 아닌 몇몇 후보자가 나서 수십만명을 대상으로 유세를 벌이는 대선은 최근 국내정치 상황으로볼때 어느 한 후보자의 돌발사고는 커다란 정치소용들이를 몰고 올수 있다고 보고있다. 따라서 검찰은 이같은 테러를 노린 어떤 징후도 용납할수 없으며 이에대비한 만반의 태세에 들어간 것이다. 검찰은 이날부터 전국50개 본·지청에서 각각 차출된 강력부 혹은 특수부소속검사 전원을 지역 테러전담반으로 편성해 검찰수사관·관할경찰관등의 위원을 지휘하도록 하는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앞으로 각 관할구역에서 열리는 선거유세장에 직접 투입돼 현장을 지휘하게 되며 유사시에 대비해 24시간운영태세에 들어갔다.
  • “원만한 대미통상관계 유지”/대한안보정책 큰 변화 없을 것

    ◎정부,상위답변/「김포땅굴」 재확인 탐사중/“일부 야당광고 사전선거운동 해당” 국회는 5일 내무·재무 등 7개상임위를 열어 계류안건을 심의하는 한편 예결위를 속개,정책질의에 대한 정부측 답변을 듣고 부별심사에 들어갔다. 예결위는 특히 미국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 민주당후보가 당선된데 따른 통상·외교·국방분야에 있어서 한미관계의 변화에 대비한 정부측의 대응방안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최각규부총리겸 경제기획원장관은 이날 예결위에서 『클린턴 미대통령당선자는 경제정책 우선순위를 대외경쟁력 회복에 두고 방위비 삭감,외국기업의 과세강화 등을 통해 재정적자를 50% 감축하겠다고 공약하는 등 보호주의 색채를 띠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그러나 클린턴 당선자는 중도진보주의자로서 민주당 보호무역주의 강경파들과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 미국의 새 통상정책은 부시행정부의 정책과 크게 다를 것으로 전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부총리는 또 한미통상마찰에 언급,『앞으로 예상되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움직임에 대해서는 우리의 경제실상 무역수지상황과 단계적 시장개방조치등을 정확히 설명,우리산업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한미간에 원만한 통상관계유지에 총력을 경주하겠다』고 답변했다. 최세창국방부장관은 『클린턴행정부는 안보정책면에서 국방비삭감과 해외주둔군 감축조치를 보다 확대시킬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나 미의 아 태전략 기본구상인 「런 워너안」이 민주당의원중심으로 통과됐고 북한의 핵개발에 대한 강력저지를 선거공약으로 내건 만큼 한 미안보협력관계에 근본적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장관은 또 경기도 김포군 일대의 땅굴존재설과 관련,『문제지역의 지하에서 소리의 녹음·채취물 등을 전문기관에 보내 의뢰한 결과 땅굴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그러나 북한의 장거리땅굴 굴착가능성도 있어 지난 10월12일부터 2차로 재확인 탐사활동 중』이라고 덧붙였다. 이정우법무부장관은 5일 국회 예결위 답변에서 최근 「일하는 사람들의 대선운동 준비모임」명의로 『당선가능한 야당을 찍읍시다』라는 광고가 일간지에 게재된 것과 관련,『당선 가능한 야당후보를 찍자는 광고는 특정인의 지지를 유도하는 것으로 대통령선거법에 금지된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된다고 본다』면서 『현재 관할 검찰청에서 관련자를 내사중』이라고 밝혔다.
  • 일­북 수교회담/「핵의혹」 해소가 관건/5일 북경 8차대좌 전망

    ◎남북상호사찰 수용땐 정상화 급진전/한중접근에 자극… 예상밖 결실 나올지도 북한과 일본의 국교정상화교섭 제8차 회담이 5일부터 북경에서 열린다.이번 회담은 한·중수교등 한반도 주변정세에 중대한 변화가 나타난이후 처음 열리는 것으로 특히 핵문제등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지난 5월중순의 7차회담이후 다음 회담을 계속 미루어 8차 회담은 거의 6개월만에 열리는 것이다.북한은 그동안 한·중수교등 주변정세의 변화에 대한 대응방안과 핵정책등 전반적인 대외정책의 재정립을 위해 일·북한회담을 늦추어 온 것으로 북한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북한은 대외정책을 둘러싸고 내부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북한의 대응자세가 주목되고 있다.최대의 초점은 양국 국교정상화회담의 진전을 가로막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해 북한이 유연한 자세를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일본 외부성당국자는 한·중수교로 외교적 타격을 받은 북한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위해 어떤 형태로든 유연한 자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해 한국 미국등 관련국들도 최근 유연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노태우대통령은 지난 9월 뉴욕타임스와의 회견에서 『북한의 핵개발 의지가 약화되었다』고 밝혔으며 그레그 주한미대사도 『북한의 핵개발 수준은 낮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의혹을 완전히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남북상호사찰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한국과 미국의 기본입장에는 변화가 없다.일본도 남북상호사찰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을 같이하고 있으며 나카히라 일본측 수석대표도 이번 회담에서 상호핵사찰의 필요성을 강조할 방침이다.그러나 북한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았으므로 핵문제는 해결되었다고 주장해왔다. 핵문제와 함께 중요한 의제는 보상문제이다.북한은 지난 5차회담이후 식민지지배에 대한 인적·물적피해와 고통에 대해 사죄를 전제로 한 일본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그러나 일본은 재산청구권과 경제협력방식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북한은 종군위안부에 대해서도 보상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일본은 이 문제도 재산청구권 범위에서 해결하려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1910년의 한일합방조약에 대해서도 근본적인 시각차를 보이고 있다.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제2차 한일협약 원본에 당시 통치자였던 고종황제의 서명이 없기 때문에 무효라는 자료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최근 보도했다.그러나 일본은 『한일합방조약이 현재는 무효이지만 당시는 국제법상 유효하게 체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북한국교정상화회담은 시작된지 거의 2년이 다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이견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남·북상호사찰을 받아드릴 경우 일·북한국교정상화회담은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양국은 기본적으로 서로 조기수교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 에이즈감염 11명 또 발견/보사부 10월 집계/1명은 남편에 옮아

    ◎환자 4명 사망 보사부는 2일 지난 10월 한달동안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항체양성자 11명이 새로 발견되고 에이즈감염자중 4명이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새로 발견된 항체양성자중 서모(37·남)강모씨(31·남)와 고모씨(32·남)는 잦은 해외생활중 예방조치없는 성접촉에 의해,정모(53·남)장모씨(39·남)와 이모씨(23·남)는 동성연애에 의해,최모씨(29·여)는 감염자인 남편으로부터 감염됐으며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계속 역학조사중이라고 밝혔다. 또 사망자 4명중 90년 4월에 감염자로 발견돼 지난1월 환자로 확인된 홍모씨(37·남)와 지난 6월 감염자로 발견된 배모씨(28·남)는 합병증인 폐결핵으로,지난 9월에 발견된 남모씨(32·남)는 수술후유증으로 사망했으며 지난 8월 발견된 이모씨(32·남)는 비관자살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 “한­일 합방조약 무효”/북,대일수교회담때 새 근거 제시할 듯

    ◎일지 보도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은 5·6일 이틀동안 북경에서 열릴 일·북한국교정상화회담에서 보상문제와 관련,「1910년 한일합방조약은 무효」라는 것을 입증하는 새로운 근거를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요미우리(독매)신문이 31일 일본외무성소식통을 인용,보도했다. 일본의 식민지지배의 부당성을 지적해온 북한은 제2차 한일협약 원본에 당시 대한제국의 박재순외무대신과 일본의 임권조 주한공사의 날인은 있으나 통치자였던 고종황제의 서명이 없기때문에 무효라고 주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 영종도 새공항공사/현대 등 3사 선정

    다음달 12일 착공될 영종도신국제공항의 부지조성과 방조제 및 배수갑문공사 업체로 광주고속과 한일개발,현대건설이 30일 각각 선정됐다. 이날 신공항건설본부가 실시한 1단계공사의 1차공사에 대한 공개입찰에서 1공구는 금호그룹계열의 광주고속,2공구는 한진그룹의 한일개발,3공구는 현대건설에 각각 낙찰됐다. 이번 공사발주는 오는 2020년까지 총사업비 10조원이 투입되는 4단계공사가운데 2천억여원 규모에 이르는 1단계공사의 1차공사분이다.
  • “이인모씨,「이산재회」와 연계 해결”(의정중계:26일 본회의)

    ◎개도국과 경협 등 「남방외교」에 힘써야/일 군비증강 미서 방조… 대책 세워라/대선일 정한바 없고 내년 1월14일 이전 실시 ▷정치분야◁ ▲이한동의원(민자)=국회 원구성과 개원문제는 의원의 당연한 의무이지 결코 협상의 대상이 아닌만큼 국회법에 『총선후 최초의 임시회는 상임위원장선출을 포함한 원구성을 해야한다』는 의무규정을 신설해야 한다. 「9·18결단」이 무책임한 처사라는 일부의 비난도 없지 않으나 이는 공명선거를 통해 정치민주화의 기적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최고통치권자의 확고한 신념과 숭고한 책임의식의 발현으로 「6·29선언」못지않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중립적 공명선거를 위해서는 대통령선거법등 선거관련법령의 제도적 개혁이 선행돼야 하고 공무원의 신분과 중립성보장이 실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간첩단사건과 관련,정부에서는 어떠한 문책과 사후조치를 취했으며 이에 연루된 정치권인사가 상당수 있다는게 사실인가. ▲김상현의원(민주)=「9·18선언」이후 국민들은「노심과 노언과 노행」을 주시하고 있다.총리는 박태준의원의 민자당탈당후 정치행보와 정원식전총리의 민자당선대위원장 선임의 배후에 「노심」이 작용했다는 의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명선거보장을 위해서는 한준수전군수를 석방하는 상징적조치를 포함,법적 제도적 선언적인 4대조치가 필요하다.법적조치로는 대통령선거법과 선관위법 정치자금법의 즉각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관변단체의 선거개입을 금지시킬 대책은 무엇인가.군과 안기부 검찰 경찰의 중립을 보장할 제도적인 장치를 강구하라. ▲김동길의원(국민)=중립내각의 정신이 국민적 합의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우리 정치권 전체의 대오각성이 절대 필요하다.총리로서도 마땅히 정치권에 대해 요구하는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총리는 무엇을 정치권에 요구하려는가. 93년도 대학입시를 계기로 학생의 입학과 졸업에 관한 전권을 각 대학의 총학장에 일임하지 않고는 이 입학지옥이 해결될 수 없다.대학당국의 자율에 맡긴다면 새해부터 신입생의 수가 65%는 증가될 수 있다. ▲유흥수의원(민자)=중립선거내각구성은 14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공정성확보라는 차원에서 세계헌정사상 전무후무한 결단이다.중립내각은 대선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중립적이어야 하지만 다른 국가정책수립과 집행이라는 측면에서는 여전히 민자당은 책임당이요 집권당이라 생각한다.중요정책의 당정간 협조방안과 임기말 원활한 국정운영방안을 밝히라. 단체장선거에 앞서 국회의원의 선거구조정문제도 같이 검토돼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정부의 입장은. 우리의 「국방예산안」이 북의 공작원에게,그것도 공당의 대표이자 대통령후보의 개인비서를 통해 유출됐다는 것은 충격이다.군기밀보호법이 유효한 상황에서 문제된 자료의 유출경위및 사건의 전모를 상세히 밝히라. ▲홍기훈의원(민주)=역사상 초유의 중립내각을 이끄는 현승종총리에게 커다란 격려를 보내며 지원을 약속한다.단체장선거는 하루라도 빨리 실시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새내각의 견해는. 안기부를 해외정보 전담기구로 개편할 용의는.선관위와 선관위원자체가 준사법기관으로서 강력한 집행력과 처벌권을 갇도록법을 개정하라.올해 추경예산에서 바르게 살기협의회 지원예산이 2∼4배씩이나 증가한 이유는.김영삼총재의 사조직인 민주산악회의 각종 이권개입 횡포등을 처벌할 용의는 없는가. ▷정부측 답변◁ ◇현승종총리답변=공직자의 선거중립을 위해서 앞으로 공무원에 대해서 구체적 사례중심으로 교육을 지속적으로 실시하는 것은 물론 공무원의 자세와 동향을 수시로 확인·점검하겠다. 부정·혼탁선거를 방지하기 위한 범국민적 노력이 확산되도록 시민·사회단체의 공명선거운동을 적극 지원하겠으나 이런 운동들이 변질되어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할 때에는 단호히 조치하겠다. 총리직을 맡을 때부터 지금까지 노태우대통령을 여러번 뵙고 공명선거를 위한 여러 당부와 지시를 받은 바 있다.공명선거에 대한 그분의 의지와 결심은 확고하고 순수하다는 것을 굳게 믿는다. 우리 사회에 북한의 고위공작원이 연계된 대규모간첩단이 활동해온데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이번 사건은 오래전에 시작되어 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사건인데다 구체적인 책임문제는 좀더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다만 차제에 대간첩및 대공경계태세를 제점검하는 것이 내부분열요인을 재거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정부는 14대대통령선거날짜를 아직 구체적으로 정한 바 없다.정치·사회 제반여건과 날씨 등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법정시한인 올 12월15일 이후 93년 1월14일 이전에 적당한 날짜를 선정해 실시할 방침이다. 6공이후 국회와 언론이 활성해됐고 국민기본권이 신장됐을 뿐아니라 지방자치시대도 열렸다.따라서 연말 대선만 공명정대하게 치러지면 이 땅의 민주화가 정착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준수 전 연기군수는 부정선거에 관련된 몇몇공직자와 후보의 부정행위를 밝혔다고 하지만 그 자신도 부정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구속되어 재판중이므로 석방검토대상이 아니다. 간첩단사건 수사는 개인적인 모략이나 음해차원에서 이루어지는것이 결코 아니다. 앞으로 대학자율의 폭을 보다 확대해 나갈 방침이나 대학 입학정원의 완전자율화는 대학의 역량·대학교육의 질적 충족등을 고려,단계적으로 풀어나가야 할것이다.◇이정우법무부장관=김대중민주당대표의 비서인 이근희가 유출한 문건은 92년 국방예산개요말고도 국회 국방위원회 의사속기록과 스스로 작성한 민자당계보관련 메모등이 포함돼있다. 대통령의 당적과 공명선거의 실시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그러나 노대통령의 9·18결단은 아직도 사회 일각에 잔재된 공무원선거개입을 근원적으로 청산하기 위한 획기적 개선책이었다고 본다.대통령과 국민의 뜻을 받들어 엄정중립의 자세를 견지하겠다. 긴급구속제도를 시행하면서 남용방지책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으며 보완책으로 영장실질심사제 도입등을 검토하고 있다. ◇최영철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인모씨 문제는 남북이산가족 전체문제의 틀속에서 해결돼야 한다.정부는 북한에 대해 정치범수용소내의 인권과 자유확대를 계속 요구하고 있다. ◇백광현내무부장관=정부는 지방자치시대를 대비하기 위해 상당한 준비를 하고있다.단체장직선등 본격적인 지방시대에 대비,「지방자치제도 발전심의위원회」를 중심으로 행정및 계층구조의 합리적 조정,민선단체장의안정성보장등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유혁인공보처장관=공정언론을 위해서는 관권은 물론 이익단체등의 외부간섭도 없어야 한다. 방송위원회 신문윤리위원회 간행물위원회등 언론자체기구와 언론중재위등의 역할과 기능이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도 노력하겠다. ▷통일외교 질문◁ ▲손세일의원(민주)=한­러,한·중수교가 이루어진 이상 북한만이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전제로 맺어진 조소우호조약이나 조중우호조약은 폐기되거나 수정돼야 한다고 본다. 중국은 두개의 한국을 공식인정했는데 우리가 대만과 단교한 것은 명백한 불평등 외교이다. 베트남과의 수교는 시급한 과제이다. 이제는 북방외교보다 자원개발 제조업투자등의 측면에서 개도국과의 이른바 「남방외교」에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보는데 정부의 견해는.구소련에 제공한 차관을 과연 상환받을수 있는 길이 있는가.또 30억달러중 미집행분을 개도국 원조자금으로 사용할 용의는. ▲이세기의원(민자)=한소,한중수교과정에서 6·25와 관련된 「과거사 청산」은 어떻게 정리됐는가.옐친 러시아대통령의 방한이 나머지 차관 15억달러를 받을 목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15억달러마저 줄 것인가.그리고 대중 20억달러 차관설의 진상은 무엇인가. 한일관계가 최악의 상태인 이 시점에 노대통령이 일본에 꼭 가야하는가.현지대사가 해도 될 일을 왜 대통령까지 나서도록 하느냐.언제까지 외무부가 「설거지 외교」라는 말을 들으려하는 것인가.일본 정치인들이 북에가서 김일성을 면담하게되면 상당한 돈을 주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를 파악하고 있는가. ▲조순환의원(국민)=국민의 빗발치는 반대여론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이 굳이 일본을 방문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항간에는 노대통령의 일본방문기간중 북한의 지도자와 만날 것이라는 추측이 떠돌고 있는데 임가만료를 얼마두지 않은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외교를 어떻게 국민들에게 설명할 것인가. ▲노승우의원(민자)=앞으로 우리나라 외교는 외무부차원을 벗어나 통일원,안기부,국방부,경제부처를 망라한 범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보는데 이에대한 정부의 입장은. 일본의군국주의 부활,군사대국화에 대한 정부의 인식은 매우 미온적인 바,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은 무엇이며 또 일본의 군사적 증강을 방조하는 미국의 전략에 대응하는 우리정부의 대안은 무엇인가. ▲강창성의원(민주)= 작금의 동북아정세는 1세기전 구한말시대를 연상케 한다. 민주당은 현단계에서 주한미군의 완전철수와 전투력감축을 반대한다. 북한일변도의 「단순가상적」방위체계를 통일이후를 대비한 「복수가상적」체계로 전환하고 군구조를 하사관및 초급장교중심의 장비집약형구조로 개편할 용의는. ▲곽영달의원(민자)= 조선노동당 간첩단 사건은 그 규모면에서 놀라울뿐 아니라 남북교류와 화합의 합의서 서명에 관계없이 양면성 대남적화전략이 조금도 변화가 없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대내적인 안보의식의 실종단계에서 이 나라 국가안보개념을 재정립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 새 전기「세기와 더불어」허동찬씨의 분석(신고 김일성자서전연구:8)

    ◎김형직의 행적/1920년대 민족주의 단체 활동/만주·임강·장백현 팔도구서 한의사로/25년 광정단 지방조직의 총무 명단에 김일성의 외가에서 일시적으로나마 독립운동에 참가한 인물을 찾으면 그의 외삼촌인 강진석을 꼽을 수 있다. 그는 1920년 봄에 임강에 있는 매부 김형직을 찾고 있다.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1918년 이주 「강진석외삼촌이 림강에 들어와 백산무사단을 조직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백산무사단은 평안도지방의 독립운동자들을 중심으로 무어진 무장단이다.이 무장단의 본부는 림강현에 있었다.백산무사단의 국내활동지점은 중강,초산,후창을 비롯한 평안북도 일대와 멀리 평양,수천,강서 지방에까지 길게 뻗어 있었다」 이것은 일본으로 귀화한 김정명(시천정명)교수가 발굴한 사료의 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이다.김일성은 이 자료를 입수하여 백산무사단의 본부를 「임강」이라고 왜곡하고 마치 강진석이 조직한 것처럼 이렇게 말한 것이다. 백산무사단은 3·1운동직후에 백두산 북쪽인 무송현에서 결성된흥업단과 동체이명으로 보이는 단체이다.그 간부에는 김호,윤세복(윤세덕),김성규가 있었다.20년이 되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온다. ○매제와 가입한 듯 「무토단은 무송현화개산에 근거하고 김성규를 단장으로 윤세복을 총무로 하는 단체로서 무송,안도내를 그 세력범위로 하여 목하 열심히 단원의 모집에 힘써 왔다고 하나 하등 실력이 없다.무장단체로서 들을 가치가 없는 단체이다」 일제기록에 의하면 김형직은 북한이 주장하는 18년 가을이 아니라 18년 5월경에 평북 중강진으로부터 압록강 대안인 만주 임강으로 이주하고 있다.그런데 20년 봄에 강진석이 찾아와 임강에서 백산무사단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김형직도 이때 입단한 것으로 보인다.김형직은 21년 여름 임강 동쪽에 있는 장백현팔도저로 다시 이주하게 되는데 임강에 있을 때와 같이 한방의를 하는 한편 민족주의 단체에 소속하고 있었다. ○「흥업단」의 이명 그간 흥업단은 군비단,태극단,광정단 등과 22년 여름에 통합하여 광정단으로 개편된다.이때 단장은 김호익(김호림,김호라고도 쓴다).군무장은 강진건,총무장은 군비단출신인 윤덕보였다.이중 강진건은 해방후 돌아와 북한의 요인으로 된다.아마도 김형직과의 인연으로 그렇게 된 것일 것이다.광정단은 대한통의부와도 관계를 맺고 있다. 대한정의부는 25년 1월,통의부,광정단 기타 10여개의 단체가 모여서 길림지방에 본부를 두고 성립하였다.광정단에서는 김호림이 민사부위원장으로 참가하고 있다. ○요인으로 귀국 25년 3월 광정단의 단장은 윤덕보였다.당시 이 광정단의 지방조직은 제1서부터 제4서까지 장백현에 있었다.그제4서는 팔도구에 있었고 서장이 박만석,총무가 김형식,재무 김상만,서기 김덕칠이었다.형직과 형식은 일본어 발음으로 다같이 「교쇼구」이므로 김형식은 김형직의 오기로 되는 것이다. 김형직은 따라서 1925년에는 백산무토단·광정단·정의부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①현대사 자료 28,15면 ②「세기와 더불어1」60·61면 ③조선독립운동사 ④,김정명편 9백95면 ⑤평전 85면 ⑥평전 35면 ⑦한국독립사 3백59면 ⑧평전 87면
  • 김형직 우상화(신고/김일성자서전연구:7)

    ◎새 전기 「세기와 더불어」 허동찬씨의 분석/“105인 사건의 일원” 선각자로 미화/신민회와 조선국민회 고의적 “혼합”/“안창호 등 독립지사 지도했다” 강변 북한에서 진행되는 역사날조는 다른 인물이 아니라 김일성 자신이 「솔선수범」한다.우리는 이 점에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가져야 한다. 김일성은 자기의 부친 김형직을 「민족주의운동을 공산주의운동에로 방향전환시키는 투쟁」을 한 인물로 둔갑시켰는데 이것 뿐 아니라 「3·1운동 이전의 모든 민족주의운동을 지도한 최고의 지도자」로 만드는데도 온갖 힘을 다하였다. 그는 1983년 6월30일부터 3일간 페루·아메리카인민혁명동맹대표단과 만나서 담화를 한 일이 있었다.그런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실려 있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선구자의 한사람이었습니다. 1917년 가을에 유명한 「105인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에서 민족해방투쟁을 하던 사람들이 1백5명이나 한꺼번에 일제경찰에 체포된 사건이었습니다.일제경찰에 체포된 사람들의 대부분은 조선국민회의 성원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반일민족해방운동에서 파벌싸움을 하여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없으며 오직 인민대중을 묶어 세워가지고 그들의 힘에 의지하여 싸워야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 수 있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일성은 지금 김형직이 「인민대중을 묶어 세우라」 「무산민중을 조직해라」라고 주장했다고 하고 있다.그러나 필자가 전에 언급한 1919년 10월의 대한국민회 규칙초안을 보면 그 회원의 항목에는 「단지 여자는 중등교육 또는 5연이상 종교의 교습이 있음을 요함」이라는 조목이 있다. 식민지시대 여성에게 중등교육 수료자격을 요구할 정도의 고급한 인텔리집단이 국민회였다.그러한 국민회에 있는 김형직을 김일성은 「무산민중」을 조선국민회에 묶어세우는 「선각자」로 선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김형직이 「105인사건」의 한사람이었다는 주장이다. 105인사건이란 1917년이 아니라 1911∼12년에 일어났고 조선국민회가 아니라 신민회의 회원들이 일제에 체포된 사건이다. 1910년 평북 선천에서 안명근이 사내(데라우치)총독을 암살하는 의거를 계획하다가 발각되자 일제경찰은 이것을 계기로 애국자들을 체포할 계획을 세웠다.일제는 신민회가 총독 암살을 준비하고 있다는 구실을 내세워 당시의 혁혁한 지사들인 유동설·윤치호·양기탁·이승훈·이동휘등 6백여명을 검거하였다. 총독부의 명석(아카시)경무총감이 그들을 고문하여 그중 1백5인을 기소,투옥하였다.이 사건으로 신민회는 큰 타격을 입고 해체되었다. 신민회란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후인 1906년 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가 결성한 비밀결사였다.김일성은 이 신민회를 고의적으로 조선국민회와 혼합시키고는 「조선국민회의 조직자」 김형직을 이 105인사건으로 「체포투옥」하게 하고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이 조작으로 안창호등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을 전부 김형직이 지도하였다는 신화를 만들었다.이것은 식민지시대의 신민회·국민회를 통틀어 민족주의자로서는 김형직이 제일이라는 우상화작업인 것이다. 그러나 김형직은 민족주의자이기는 하였지만 별로 두드러진 업적은 없는 인물이다.그 예로 북한이 김형직의 최대업적으로 선전하는 관전현홍통구(홍통구)회의를 들어보자. 이 회의에 대한 북한의 주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회의가 주로 조선국민회(대한국민회)의 회원이 참가하여 이룩됐다는 점이다. 3·1운동이 일어나자 식민지 조선에서 도만한 애국지사와 열혈청년들 5백60여명은 1919년 음력 3월15일 만주 유하현 삼원포 서구 대화사에서 회집하여 대한독립단을 형성하였다. 이 독립단에 입단한 지방조직의 하나로 평양숭실학교에 근거를 둔 국민회 인사들이 있었다.그 중심인물은 오능조,고진한,황보덕삼,허영진 등이었는데 이 중 황보덕삼과 허영진은 1919년 12월에 평양에서 체포되었다. 그런데 기독교장로파의 조사(목사,장로 다음가는 성직)였던 오능조(당시 31세)는 체포를 면하게 되어 만주로 달려가 관전현 홍통구의 대한독립청년단 안병찬 아래에서 서기를 하고 있다가 1920년 5월에 안병찬과 같이 체포되었다. 이 대한독립청년단에는 회고록에 나오는 오동진도 생계부장으로 있었다. 따라서 만약 홍통구회의가 있었고 그것이 국민회 성원이 주로 참가한 것이었더라면 적어도 평양의 오능조가 홍통구에 가 거기에서 대한독립단이나 대한독립청년단의 인사를 알게 된 이후라야 가능하다. 오능조는 1919년 12월이후에 홍통구로 갔다.북한에서는 「홍통구회의」가 1919년 8월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1920년 전반기라야 그러한 「회의」의 개최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관전현 홍통구회의」라는 회의는 문헌기록에는 보이지 않아 객관적으로는 누가 참가했는지도 알 수가 없다.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전혀 없었다고 보기도 어렵다.만주의 관전현지방은 주로 평안도의 독립지사들이 모이고 있었으므로 독립단이나 청년단에 망라된 인물의 연줄을 타서 평양의 국민회원들이 거기에 갔을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1919년 음력 3월에 조직된 대한독립단의 성원은 의병령수,유림수뇌,보약사대표,향약계대표,농무계대표,포수단대표들이었다.또 대한독립청년단의 총재 안병찬도,서기 오능조도 좌익계 인물은 아니었다. 따라서 이런 지방에 가령 김형직이 갔다 하더라도 오능조 등이 주최하는 비좌익계모임에 1920년 전반기에 참가해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민족주의운동을 공산주의운동으로 방향전환」시키는 말을 김형직이 할 여건도 없었다. 관전현 홍통구회의 개최라는 김형직의 「업적」은 물론 회의개최 당일 그가 냈다는 방향전환방침도 역사적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는 허황한 창작물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①「주체사상을 구현하기 위한 조선인민의 투쟁에 대하여」김일성저작선집9 1987년 당간 149면 ②현대사총평25 544면 ③대한계년사 732면 ④대한독립사 김승학편 1965년 한국독립사편찬위원회편 325면 ⑤현대사총평28 15면 ⑥한국독립사 334면 ⑦같은책 3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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