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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왕 사과로 「감정의 골」메워지길”

    ◎“통석의 염”… 일 정계ㆍ언론의 반향/직접적 사죄 아니지만 진전 언론/솔직한 표현… 천황 방한길 터 정계/우파정치인들은 침묵ㆍ공산당선 “위헌” 주장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간 현안의 초점이 되어 왔던 「과거문제」에 관한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발언내용은 일본언론과 국민들에게 여러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습니다』라는 24일 저녁 궁중만찬석상에서의 일왕의 발언은 일본의 책임을 명시한 것으로서 한일양국국민의 감정의 갭을 메울 수 있는 제1보라고 일본언론들은 받아들이고 있다. 아사히(조일)신문은 25일자 2면 해설기사에서 『천황의 발언은 84년 전두환대통령이 방일했을때 소화천황의 발언내용을 답습하면서도 식민지 지배의 책임이 일본에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명확히 하고 「불행한 과거」에 대한 생각을 솔직히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것은 한국측이 계속 요구해온 직접적인 「사죄」만은 피했으나 소화일왕의 「참으로 유감」이라는 것보다는 한층 깊은 표현이어서 양국관계는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25년만에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고 논평했다. 도쿄(동경)신문도 사설을 통해 『헌법상의 제약이 있는 가운데 상당히 진전된 표현으로 「과거」에 언급했다』고 평가하고 『누가 가해자이며 누가 피해자인가를 명확히 나타냈으며 표현도 인간미가 있고 알기 쉬웠다』고 말했다. 이 신문은 『비 온뒤 땅이 굳는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과거를 씻고 우호협력의 새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향상,사할린거주 한국인의 귀국협력,원폭피해자에의 원조액 증가,과학기술 및 원자력분야에서의 협력 등 많은 과제에 대해 일본정부는 성의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촉구했다. 한편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전총리는 『지난 84년의 발언을 인용하는 형식을 취해 시대의 흐름을 잘 처리했다』고 말하고 『(이 발언으로)천황의 방한은 가능해졌다고 생각하며 또 그렇게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천황을 정치의 장에 끌어 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등 반발을 보여온 민자당간부들은 냉철한 자세로 언급을 회피했으며 『일본이 무릎을 꿇고 빌라는 말인가』라는 망언을 했던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간사장도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솔직히 받아 들이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에 대해 야당 각 당은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노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함과 동시에 일왕의 발언에 대해 『상징천황으로서의 기분을 솔직히 표현한 것』(사회당 납택부서기장)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사회당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의 사죄에 대해서도 『때가 늦었다고는 하나 지금까지 역대 총리의 발언 가운데 가장 진전된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민사당은 『일본국민의 감정을 대변하는 것이다. 한국민에게도 그렇게 이해되었으면 한다. 이것이 새로운 한일관계확립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산당은 『천황은 국정에 관한 권능을 갖지 않는다고 명기하고 있는 헌법에 반하는 것』(김자서기국장)이라고 비판했다. 일왕의 발언은 일반국민들사이에도 이론이 분분하다. 일왕의 발언내용에 「일본의 행위에 의해」라는 구절을 넣을 것을 주장해온 전 방위대학교장 이노키 사사미치(저목정도)씨는 『대단히 만족한다』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소화천황의 발언에는 어느쪽이 가해자고 피해자인지 확실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됐던 불행한 시기」라며 가해자를 명확히 했다. 그런 내용 이하로는 앞으로도 한국대통령이 방일할때마다 문제화될 것이며 그 이상 깊은 내용이어서도 안된다. 나는 안전보장의 관점에서 사죄토록 주장해 왔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졌다. 이것으로 양국에 밝은 미래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에 간여하고 있는 다카기 겐이치(고복건일)변호사는 『사죄는 명확히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과거의 잘못은 분명히 인정하고 있다. 일본이 과거에 대해 책임을 지고 청산ㆍ보상할 의무가 있다고 선언한 것과 다름이 없다. 한국인들에게는 아직 불충분한 내용일 것이지만 한일간에 남아있는 문제에 대해 일본측이 해결에 전력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고 해석한다면 큰 의미를 갖는다. 어쨌든 구체적인 전후처리를 하는데 새로운 한일관계의 구축을 지향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 한ㆍ일 「감정적 매듭」 일단락/일왕 사과는 만족스러운 방일 성과

    ◎노대통령,주일특파원과 간담 【도쿄=강수웅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은 25일 『일본 국내의 헌법상의 제약과 정치ㆍ외교적 한계속에서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사죄발언을 받아낸 것은 한일 양국사이의 인식의 차이에 대한 핵심을 매듭짓고 풀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공식발표문뿐만 아니라 일왕과의 밝힐 수 없는 비공식 대화,총리의 충분한 사죄 등 제반사정을 고려할 때 이번 방일은 만족스러운 결실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자신한다』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3시30분부터 40여분 동안 방일기간중 처음으로 기자들과 만난 주일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일왕의 발언은 일본 국내적 제약의 범위를 약간 넘은 것으로 본다』는 소감을 피력했다. 이날 노대통령은 『진실한 동반자가 됐어야 할 한일관계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양국간 역사의 인식의 차이에서 모든 문제가 파생됐던 것』이라고 지적하고 『그동안 일본 언론인들과의 접촉,정치인들과의 협력 등을 통해 역사인식의 동일화에 역점을 둔 결과 이제 대세는 일본측이역사를 그릇 인식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고 강조했다.
  • 일왕,“불행했던 시대” 대목서 긴장/노대통령 방일여로 이모저모

    ◎도이 사회당위장도 “엄청난 과거사과”/가이후총리 “동년배끼리 대화로 풀자” 노태우대통령은 24일 낮 12시 특별기편으로 일본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뒤 환영행사 참석,일왕 예방,도쿄도지사 접견,일본 유력인사 개별접견에 이어 가이후총리와의 1차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참석 등 잠시의 틈도 없이 바쁜 일정. ▷일왕 주최만찬◁ ○…과거사에 대한 사과문제로 가장 관심을 모은 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는 24일 저녁 8시40분쯤 시작. 미리 준비된 만찬사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던 아키히토 일왕은 과거사에 언급하면서 『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라는 대목에서 잔 기침을 해 다소 긴장한 듯한 모습. 그러나 아키히토 일왕은 젊은이들의 교류를 비롯한 양국의 장래문제를 언급하면서는 밝은 어조로 바꾸면서 『노대통령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양국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 ○애국가 연주뒤 축배 만찬사가 끝난 뒤 애국가 연주에 이어 아키히토 일왕은 한국과 한국국민의 번영을 기원하는 축배를 제의. 이어 노대통령은 만찬답사에서 전후 일본의 발전과 아키히토 일왕의 즉위를 축하하고 고대로부터의 양국간 문화교류를 선린우호의 역사를 담담한 어조로 지적한 뒤 근세에 있어서의 어두웠던 과거에 언급. 노대통령은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다』고 힘을 주어 강조하고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것을 역설. 노대통령은 『일본의 역사와 새로운 일본을 상징하는 폐하께서 이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여주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라고 이날 아키히토 일왕이 과거사 문제를 언급한 데 대해 평가하고 『과거 역사의 그늘을 걷고 잔재를 치우는 데 모두 노력하자』고 다짐. 만찬이 진행되는 도중 노대통령 내외의 입장,아키히토 일왕의 만찬사,노대통령의 답사,민속공연은 보도진에게 공개됐는데 이때마다 취재기자들이 열띤 취재경쟁.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7시50분쯤 일왕 궁성인 황거내 만찬장 호메이 덴(풍명전) 현관에 도착,기다리고 있던 아키히토일왕내외로부터 영접을 받고 반갑게 악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은 만찬장인 호메이 덴 2층으로 오르면서 잠시 환담을 나누고 『오늘 만찬을 통해 반가운 사람들을 모두 만나게되어 기쁘다』고 인사. 이어 하오 8시35분쯤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을 선두로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미치코왕비,나루히토(덕인) 왕세자부처,그밖의 왕족들 순서로 만찬장에 입장했는데 이순간 미리 테이블에 착석해있던 귀빈들이 일제히 일어섰으며 궁내청소속의 실내악단이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벽을 넘어서」를 은은히 연주. 노대통령 내외와 아키히토 일왕 내외가 착석한 헤드 테이블에는 가이후총리 내외,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 내외,다케시타 나카소네 전총리 내외,쿠사바최고재판소장관 내외 등 일본측 인사와 최호중외무부장관등 우리측 수행장관들이 같은 열에 나란히 착석. 이날 만찬 음식은 제비집스푸 연어구이 등 주로 서양식이었으며 메인디시는 쇠고기였고 포도주와 일본주도 포함. ○…노대통령 내외는 하오 10시45분쯤부터 순쥬노바로 자리를 옮겨 일본 민속공연 「아악」을 일왕 내외와 약 20여분간 관람. 노대통령이 관람한 아악은 고대 한반도에서 전래한 고려악형식이었으며 노대통령은 민속공연이 끝난 뒤 연주자석으로 가 피리모양의 악기를 입에 대보기도 하며 연주팀을 격려. 이날 궁성만찬은 당초 하오 8시부터 10시30분까지 2시간30분간 진행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노대통령과 아키히토일왕 사이에 환담이 길어지는등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따라 45분이 길어진 밤 11시15분께야 종료. ▷1차 정상회담◁ ○…이날 하오 영빈관에서 열린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간의 제1차 정상회담은 접견환담및 확대정상회담의 순서로 진행 ○가벼운 담소로 시작 하오 6시 정각 영빈관에 도착,접견실인 2층 사이란 노마홀에 들어선 가이후총리는 곧이어 입장한 노대통령과 환한 얼굴로 악수를 나누며 사진기자들을 위해 잠시 포즈.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이어 2명씩의 배석자와 함께 자리에 앉아 가벼운 담소로 대화를 시작. 가이후총리는 이 자리에서 일본측의 사정으로 노대통령의 방일이 두차례씩 지연된 데 대해 송구스러움을 표한 뒤 한국내에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방문을 결심한 데 대해 사의를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대해 『정달 어려운 방일이었다』고 털어놓고 『그런만큼 뜻있는 방문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며 『20세기를 깨끗이 정리하여 밝은 21세기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강조. 가이후총리는 『각하께서 6ㆍ29 민주화선언의 선두에 나서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개척해 나가시는 것을 보고 신선한 인상을 받았다』며 『우리는 같은 연대 출신이므로 뜻을 나누면 대화로써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가이후총리는 이어 『곧 있을 정상회담에서도 솔직히 말씀드리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깊이 반성한다』며 「공식 사죄」에 앞서 사죄의 뜻을 간략히 표명. 노대통령은 이에 「고맙다」고 응답한 뒤 자신가 가이후총리,아키히토 일왕이 가가가 32,31,33년생임을 들어 『서로 배짱이 통하는 동년배의 우리가 진정한 대화를 나누면 긴 역사속에서 짧고 불행했던 기간은 능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 ▷각계 인사접견◁ ○…노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스즈키 도쿄도지사를 접견한 데 이어 나카소네(중증근),다케시타(죽하) 전총리,도이(토정)사회당위원장,이시다(석전)공명당위원장,오우치(대내) 민사당위원장 등 일 정계원로및 중진들을 차례로 접견. 다케시타 전총리는 노대통령을 만나 『이번 방문이 성공적이기를 빈다』고 했고 도이 사회당위원장은 『과거 양국간에 있었던 엄청난 일에 마음으로부터 사과한다』고 36년 식민통치등에 대한 사회당으로서 입장을 전달. ○일왕과 1호차 탑승 ▷환영식◁ ○…노대통령 내외는 이날 하오 1시20분 숙소인 영빈관 앞뜰에서 아키히토일왕 내외 나루히토(덕인)왕세자 왕족대표인 마사히토(정인) 일왕제 가이후 일총리부처 일본 전각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진 환영식에 참석,일 자위대 의장대를 사열한 뒤 일본측 환영인사들과 인사를 교환. 노대통령은 하오 1시19분 아키히토 일왕 부처와 영빈관 현관 입구에서 첫 인사를 교환한 뒤 붉은 카펫이 깔린 테라스에서 일왕 부처와 나란히 서서 의장대가 연주하는 애국가와일본국가를 들으며 새로운 한일 선린우호관계 발전을 다짐. 노대통령은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수석영접위원의 안내로 사열대에 올라 의장대의 총례를 받은 뒤 도보로 의장대를 사열. 노대통령은 사열을 마친 후 환영식에 참석한 사쿠라우치요시오(앵내의웅) 일 중의원의장 쓰치야 요시히코(토옥의언) 참의원의장및 일 각료들과 차례로 악수를 나누며 인사. 노대통령은 10분간에 걸친 환영식이 끝나자 아키히토 일왕과 국빈 1호차에 탑승하면서 환영나온 도쿄 한국인학교 학생,일본국민교생,재일교민 등 2백명을 향해 손을 들어 인사했고 이들은 양손에 든 태극기와 일본국기를 흔들며 환호. ▷일 하네다 공항◁ ○…노대통령 내외는 24일 정오 도쿄 하네다 국제공항에 도착,이원경 주일대사및 다나카 요시모토(전중의구) 일 외무성 의전장의 기상영접을 받은 뒤 21발의 예포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트랩을 내려와 역사적 일본방문을 시작. 노대통령 내외는 이어 다나카 의전장의 소개로 나카야마다로(중산태랑) 일 외무장관 내외와 야나기 겐이치 주한 일본대사 내외등 일본측 영접인사들과 인사를 나눈 뒤 재일동포 화동으로부터 꽃다발을 증정받고 대기하고 있던 국빈차량에 탑승. 이날 하네다 공항에는 경호관계로 일반 환영객은 출입이 금지됐고 공항구내에는 일본경호요원들이 50∼1백m 간격으로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펼쳤으며 일본 NHK­TV는 정오 뉴스시간에 생중계로 도착광경을 방영.
  • 일왕 “통석” 사과와 양국관계 앞날

    ◎「과거사」 매듭… 선린우호의 새 지평 열다/주ㆍ객체 명시… 우리측 요구 대체로 수용/대 미ㆍ중국 사과보다 훨씬 더 강도 높아/경협ㆍ교포지위 등 현안타결 가시화가 진실성 좌우 새로운 한일 우호선린관계의 개막을 위한 최대의 걸림돌이 일단 제거되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 일왕은 그동안 한일 양국간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과거사과」 문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책임과 반성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에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지난 84년 언급했던 「과거사유감」(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발언을 상기시킨 후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고 밝혔다. 일왕의 이같은 과거사에 대한 강도있는 사과표명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요구해왔던 ▲일제식민지 지배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시 ▲분명한책임과 반성의 표현을 대체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과문은 일 식민지배의 가해자가 일본이며 피해자는 「귀국의 국민」 즉 한국인임을 적시했고 사과의 주체가 「본인」 즉 일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반성의 정도는 『통석(일본용어이나 우리말로 풀어보면 「뼈저리게 뉘우치는」의 뜻)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심도있는 반성」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이러한 「사과수준」은 그의 선왕인 히로히토 일왕의 지난 84년의 「유감」보다는 크게 진전된 것이며 히로히토 일왕 재위시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행한 사과수준 보다는 훨씬 강도가 높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아키히토 일왕의 대한사과는 일단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일왕 사과에 이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 총리가 이날 하오에 있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문제와 관련,『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한 데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한다』고밝힌 점은 과거사에 대한 일측의 반성정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일본측의 사과에 대해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솔직히 사과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논평하고 『이러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이 각 분야에 반영되어 한일간에 상호존중과 이해ㆍ협력의 바탕이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공식논평은 일왕및 일 총리의 「과거사 사과」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로써 한일 양국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역사적인 첫 매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측의 심도있는 사과는 대체로 2가지 이유에서 연유되었다고 보여진다. 첫째는 한일간에 있어 과거문제를 가지고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는 인식이 일본정부 수뇌부에 그런대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서간의 벽이 무너지는등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서 우선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점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접국인 한국과의 선린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게 급선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촉진되는 아키히토 일왕의 한국방문이 성사되기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 종결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왕의 대한 사과는 그가 일본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통합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일양국 관계발전에 족쇄가 되어온 과거역사의 그늘과 잔재를 치우는 일대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인 「반성」과 「책임」을 표시하는 데 있어 일본식 표현인 「통석의 염」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측 요청사항을 교묘히 우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왕의 사과발언은 우리국민 감정까지 감안할 경우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고 지적된다. 여기에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대목은 일왕과 일 총리의 심도있는 사과만으로 과거청산의 완전종결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일본측이 얼마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사과수준에 상응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사과의 진실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과거사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재일 한국인 법적지위,특히 교포 1ㆍ2세에 대한 3세와 상응한 조치여부,원폭피해자ㆍ사할린 동포 지원에 있어 일본의 성의정도가 바로 사과의 진실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의 사과수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증폭된 욕구가 조성되는 것도 일본의 「행동」 가시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선린의 동반자관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잔재의 청산과 병행하여 미래지향적인 협력체제가 서서히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만성적인 무역역조의 개선,통상ㆍ경제분야의 협력,특히 과학기술의 협력 등은 바로 그 징표가 될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과 관련,국내적으로 「큰짐」이 되었던 과거사 문제가 이런 수준에서 일단 타결된 것은 그의 일단계 방일성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 “한인 1ㆍ2세 지문등 폐지를”/노대통령 촉구

    ◎일선 피폭한인지원기금 약속/1차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은 24일 하오 숙소인 영빈관에서 가이후 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갖고 동아시아및 국제정세 전반,재일한국인 법적지위문제등 양국간의 현안과 공동관심사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교환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지문날인 배제,외국인등록증 대체수단 강구,재입국기간 연장,강제퇴거사유 한정등 재일한국인 3세문제와 관련한 양국간의 합의가 재일한국인 1,2세는 물론 조총련계를 비롯한 모든 교포들에게 확대적용될 수 있도록 일본정부가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가이후 총리는 이에대해 『재일한국인 1,2세에 대한 한국정부와 노대통령의 깊은 관심을 염두에 두고 이 문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히고 『재일한국인의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채용,국공립교원 채용및 교육문제도 한국측의 높은 관심을 감안,양국이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가이후 총리는 또 『한국에 있는 원폭피해자 지원을 위해 40억엔(약 2백억원)규모의 기금을 만들겠다』며 그 구체적 방법과 절차는 양국 실무진이 협의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노대통령과 기이후 총리는 사할린거주 한국인의 모국방문도 보다 원활히 추진될 수 있도록 협조해 나가기로 했다. 노대통령과 가이후총리는 한일 두 나라가 냉철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21세기를 내다보는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양국정상은 또 세계적인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동북아지역에는 현실적으로 고무된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된 인식아래 아시아에도 개방과 개혁의 물결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함께노력해 나가기로 했다. 이날 낮 도쿄 하네다(우전)국제공항에 도착,방문일정을 시작한 노대통령은 숙소인 영빈관에서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곧바로 궁성으로 일왕 내외를 예방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ㆍ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 전총리ㆍ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사회당위원장등 일본정계 주요인사들을 차례로 접견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이날 상오 서울공항을 떠나기 앞서 출국인사를 통해 『한일 양국이 20세기의 마지막연대를 맞고 있는 이제 상호존중과 이해에 바탕한 진정한 우호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한다』면서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는 양국의 발전과 번영을 위해서는 물론 동북아시아의 장래를 위해서도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째인 25일 상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중ㆍ참의원 합동회의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 성의있게 법에 맞춰 분명히 사죄/노대통령 방일… 일 언론의 반향

    ◎세계평화ㆍ번영의 공동보조 기대/과거 청산… 「협력의 새 출발」의지 표현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일본언론들은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면서도 목표는 하나,과거를 초월해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양국관계의 발판을 굳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는 입장에서 논평하고 있다. 일왕의 사죄발언 내용이 문제가 되었을 때도 일본신문들은 각자의 입장의 차이를 보이며 「성의와 법에 맞는 사죄」를 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측이 일왕의 명확한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일본신문들은 일왕의 법적지위와 헌법상의 한계가 있음을 강조하며 한국측의 이해를 바라는 논조였다. 그러나 일본언론들의 인식이 「목표는 하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23일자 「노태우대통령을 환영한다」라는 사설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노대통령은 87년말 직접선거에서 선출돼 이듬해 2월 한국사상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에 의해 대통령에 취임했다.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분투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 정당성에 의의가 없는 대통령의 방일을다시금 환영하는 바이다. 바야흐로 한ㆍ일양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가치관을 공유한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된 일본의 국민적 테마는 「세계에 공헌하는 일본」이다. 정치적ㆍ경제적으로 난제를 안고 있다고는 하나 한국도 더욱 눈부신 성장을 거두어 선진국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특히 88년에는 올림픽을 성공시켜 소련 동구 중국과의 북방외교에 성과를 올려 세계에 있어서의 존재감을 높여가고 있다. 냉전이후 신질서를 찾아 격동하는 세계에서 아시아의 경제발전과 긴장완화는 물론 환경,에너지,남북문제 등의 지구적 과제의 극복을 위해 양국이 협조,협력해 수행해야 할 역할은 많다』 니혼 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도 「한ㆍ일양국간에 흔들리지 않는 신뢰관계를」이라는 사설을 통해 전두환 전대통령의 방일때에는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던 사죄발언이 이번에 문제가 된 점에 의문을 표시하면서도 『이번 한ㆍ일정상회담을 21세기를 향한 신뢰와 상호이해를 바탕으로 한 한ㆍ일관계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 사설은 『한국이 전임 대통령의 방일때 해결된 것으로 보이는 문제를 새삼스레 제기한 것은 국내정치면 등의 사정도 있다. 그 이유는 군사독재적인 정권이었던 전대통령의 일본측과의 합의는 식민지시대의 고통을 잊지 않고 있는 국민의 이해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민주화된 현정권에의 사죄ㆍ화해가 필요하다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아사히(조일)신문은 「새전개 맞는 한일」이라는 시리즈 기획기사에서 『일본이 추궁받고 있는 것은 「과거」 그 자체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계속되는 「현재」의 바람직한 상태이다. 노대통령의 방일은 대한관계 뿐만 아니라 일본외교의 장래에 있어서도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4일 하오 노대통령의 하네다(우전)공항도착과 영빈관에서의 환영식전을 생중계한 NHK­TV도 해설을 통해 『노대통령이 미국등의 방문일정을 취소하고 일본만을 방문한 것은 과거의 현안을 처리하고 양국 협력의 출발점으로 삼고 싶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논평했다.
  • 아키히토 일왕 만찬사

    ◎일본에 의해 초래된 귀국국민의 고통에 일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영도해 오신 대통령각하를 국빈으로 일본에 모시게 된 것은 참으로 뜻깊은 반가운 일입니다. 일행 여러분께 진심으로 환영의 말씀을 드리는 바입니다. 한반도와 일본은 예로부터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서 밀접한 교류가 이루어져 왔습니다. 일본은 문호를 닫고 있었던 에도(강호)시대에도 귀국의 사절들을 변함없이 맞아들였고 온 조야가 이를 환영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한반도와 일본과의 길고도 풍성한 교류의 역사를 돌이켜 볼때 쇼와(소화)천황께서 『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며 다시는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던 것을 상기하게 됩니다.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여 본인은 통석의 염(뼈저리게 뉘우치는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시대를 거친 뒤 일한우호의 회생을 바라는 양국 각계각층 여러분의 열의에 힘입어양국관계는 회복되었으며 모든 분야에서 우호와 협력관계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관계자 여러분께 깊은 경의를 표하고자 합니다. 바야흐로 일한 양국은 다 함께 세계평화와 번영을 위해 크나큰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요청받고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본인은 앞으로 양국 국민이 더욱 더 상호이해를 심화시키고 양국관계의 더 한층의 성숙을 기하며 서로 힘을 모아 이 과제에 부응해 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입니다. 특히 다음 시대를 짊어지고 나아갈 젊은이들의 교류가 활발해짐으로써 양국을 이어주는 참신한 우정이 싹트고 있는 것을 본인은 마음 든든하게 생각합니다. 이 새로운 우정은 금후 양국이 힘을 합쳐서 인류의 장래에 크게 이바지해 가기 위한 초석이 될 것입니다. 이번 대통령각하의 방일은 21세기로 이어지는 새로운 일한 관계의 초석이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 「통석의 염」의 해석/이경형 정치부차장(오늘의 눈)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과거사 사과」 발언을 하면서 구사한 「통석의 염」이란 말을 놓고 해석이 구구하다. 24일 저녁 아키히토 일왕은 노태우대통령을 위해 베푼 만찬석상에서 그동안 한일 양국의 최대현안이 되어왔던 「과거」문제에 대해 『우리나라(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며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 통석의 염이 우리말에 잘 사용되지 않는 용어임을 감안,「뼈저리게 뉘우치는 마음」으로 풀어 한국기자들에게 공식 발표했다. 이에앞서 일본측으로부터 사전에 사과문안을 수교한 한 당국자는 이 대목이 「아픈 마음으로 뉘우침」을 의미한다면서 이같은 한국측의 번역에 대해 한일 정부간에 이미 양해가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본외무성이 한국말로 번역,배포한 만찬사에는 「통석한 마음」으로만 되어 있어 묘한 여운을 남겼다. 더욱이 노대통령의 방일활동을 경쟁적으로 취재보도하고 있던 일본기자들은 한국측의 번역이 「과잉번역」이며 통석의 사전적 의미가 「대단히 슬프게 생각한다」는 것이라며 한결같이 매우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통석이라는 단어는 일본인들이 통상적으로는 잘 쓰지 않는 용어이며 「뼈저리게 뉘우치는 것」으로 번역되는 것은 다분히 자의적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기자들은 한국보도진들에게 『한국신문에는 「통석」이라는 표현이 어떻게 보도되느냐』고 몇번이고 캐물었다. 그러나 문제는 통석의 사전적 의미가 과연 어떤 것인가보다 통석의 단어를 구사하기까지의 양국 정부당국자들의 속마음이 과연 무엇이었던가가 더 중요한 것으로 생각된다. 일본측은 통석이란 잘 사용치 않는 용어를 씀으로써 일본국민들에게 일왕이 한국측에 「머리를 조아리는」 반성을 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한국정부는 일왕의 사과와 관련,증폭된 국민욕구를 무마하기 위해 아전인수격으로 확대번역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일단 갖게 해주고 있다. 외교적 사령가운데는 이따금 상대방이 서로 편리한 해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기교가 용인된다고 하더라도 「불행했던 과거」 매듭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는 겉치레 말로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을 곱씹어 보아야 할 것이다.
  • 일왕,“불행한 과거에 통석의 염” 사과/궁정만찬

    ◎노대통령,“과거 씻고 새 우호시대 열자”/가이후 총리도 “솔직히 사죄”/“「통석=뼈저리게 뉘우친다」 해석” 양국 양해 【도쿄=강수웅ㆍ이경형특파원】 일본을 공식방문중인 노태우대통령은 방일 첫날인 24일 아키히토(명인) 일왕과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총리로부터 각각 일제의 한국통치에 대한 사과및 반성의 뜻을 전달받았다. 노대통령은 또 이날 가이후 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현안해결과 협력방안을 논의,두나라 사이의 제분야에 대한 협력을 강화키로 합의했다. 아키히토 일왕은 이날밤 궁성에서 노대통령 내외를 위해 마련한 공식만찬에서 만찬사를 통해 『소화천황이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매우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 것을 상기한다』고 전제,『우리나라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 국민들이 겪었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의 염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했다. 아키히토 일왕이 사용한 「통석의 염」을 양국정부는 「뼈저리게뉘우치는 마음」으로 해석키로 했으며 이에따라 우리측이 요구했던 가해ㆍ피해자의 명시와 함께 분명한 사과와 반성의 뜻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만찬답사를 통해 『두나라 사이에는 좋은 일도 많았으나,우리는 근세에 들어와 고통을 받는 시기를 겪어야 했다』고 말하고 『역사의 진실이 지워지거나 망각될 수는 없지만 과거의 속박에 언제까지 묶여 있을 수 없다』며 『이제 두나라는 참된 역사인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과거를 씻고 우호협력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가이후 총리도 이날 하오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일본정부를 대표해 양국간 과거사와 관련,『과거의 한 시기,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한 데 대해 겸허히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를 드린다』고 사과했다.
  • “분명한 사죄ㆍ반성으로 평가”/이 청와대대변인

    【도쿄=강수웅ㆍ이경형특파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수행하고 있는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24일 아키히토 일왕및 가이후 총리의 과거 사과와 관련,『일본국가의 상징인 일본천황과 정부를 대표한 총리의 이같은 태도표명은 일본이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가 일본의 행위에 의해서 초래되었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우리국민이 겪은 고통과 슬픔에 대해서도 분명히 사죄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논평했다. 이대변인은 『우리는 이러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이 각 분야에 반영되어 지난 어두운 시절의 잔재를 씻고 한일 양국 국민간에 상호존중과 우호협력의 바탕이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21세기를 앞둔 우리도 너그러운 아량으로 과거문제를 여기서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열어나가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독립투사 아들 할복,중태/어제 낮/일대사관앞서 “일왕사죄”요구자해

    23일 하오2시35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김국빈씨(34ㆍ상업ㆍ강동구 신천동 시영 유공자아파트 124동 507호)가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일본국왕의 사죄를 요구하며 할복자살을 하려다 중상을 입었다. 김씨는 이날 서울 7루 5634호 코란도 승용차를 타고와 대사관이웃 주차장에 세워놓고 대사관앞으로 걸어가 『일왕은 무릎꿇고 사죄하라』고 외친뒤 준비해간 칼로 가슴과 배등 4군데를 그었다. 김씨는 배등에 각각 길이 5㎝ 깊이 2㎝정도의 상처를 입고 이웃 한국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있으나 출혈이 심해 중태다. 김씨는 병원에서 『최근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과 관련,각종 항의가 잇따르는등 한국민의 감정이 악화되고 있는데도 일본은 국왕이 아닌 총리가 사과를 대신하겠다는 등 교만한 짓을 하고 있고 또 일본 우익단체들이 한국민의 반일감정이 계속될 경우 재일교포들을 상대로 테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뉴스를 듣고 울분을 참지 못해 이같은 일에 나섰다』고 말했다. 김씨가 할복을 기도할 당시 일본대사관 정문등에는 정복경찰 1명과 사복전경 10여명이 경비를 서고 있었으나 김씨가 걸어오다 갑자기 품속에서 흉기를 꺼내 자신의 몸을 긋는 바람에 말리지 못했다. 김씨는 일제때 김구선생의 밀명을 받고 상해로 건너가 남의사에서 독립운동을 한 독립투사 김덕목씨(78ㆍ작고)의 4남1녀 가운데 넷째아들로 경기도 광명시 철산동 아파트단지에서 비디오 테이프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 노대통령,오늘 일본 공식 방문/2박3일 일정

    ◎가이후총리와 2차례 정상회담/일왕 주최 만찬서 “선린우호” 강조 노태우대통령 내외는 일본의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 초청으로 2박3일간 일본을 공식 방문하기 위해 24일 상오 대한항공특별기편으로 서울공항을 출발,일본으로 떠난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두번째로 일본을 공식 방문하는 노대통령은 이번 방문에서 가이후총리와 두차례 정상회담을 갖고 재일교포법적지위ㆍ원폭피해자 문제등 과거사 관련 현안과 복수비자발급 확대등 범국민적 차원의 교류확대방안을 논의한다. 노대통령은 또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주변 정세변화에 따른 동북아지역국가간의 협력및 아시아ㆍ태평양지역 국가간의 협력문제와 무역불균형시정및 첨단기술 이전등 경제ㆍ과학기술 협력문제도 광범위하게 협의할 계획이다. 양국간의 당면 최대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과거 일제식민지시대에 대한 일왕의 사과문제는 노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일왕의 주최로 열리는 궁성만찬에서 일왕만찬사를 통해 표명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방문 첫날인 이날하오 일본 도쿄 영빈관에서 개최되는 환영행사에 참석한 뒤 가이후총리와 1차 정상회담을 가지며 저녁에는 아키히토일왕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만찬답사를 통해 과거역사의 잔재 청산을 바탕으로 한 선린우호 관계 발전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방일 이틀날인 25일 상오 우리나라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국회에서 연설,한일관계를 역사적으로 조명하면서 과거사 청산을 강조한 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한일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협력의 동반자 관계정립을 역설할 예정이다. 노대통령은 또 방문 마지막날인 26일 상오 가이후총리와 2차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실질협력문제를 집중논의하며 이날 낮에는 일본기자 클럽에서 오찬회견도 갖는다. 노대통령은 이날하오 귀국길에 오르면서 오사카(대판)에 들러 교민리셉션을 갖고 현지교민들을 격려할 예정이다. 이번 노대통령의 일본방문에는 최호중외무 이종남법무 박필수상공 정근모과기처장관과 이원경 주일대사내외 이현우대통령경호실장 정호근합참의장 김진재민자당총재 비서실장 김종인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김종휘대통령외교안보보좌관 노창희대통령의전수석비서관 이수정대통령공보수석비서관 최규완대통령주치의 박건우외무부의전장 김정기외무부 아주국장등 16명이 공식으로 수행한다. 노대통령의 방일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다. ◇24일 ▲상오=서울항공출발 ▲하오=환영행사(일 영빈관),일본내외예방,1차정상회담,일왕주최 공식만찬 ◇25일 ▲상오=국회연설,경제단체주최 오찬연설 ▲하오=교민리셉션,일총리주최만찬 ◇26일 ▲상오=2차정상회담 ▲하오=일본기자클럽 오찬회견,교민리셉션(오사카),귀국.
  • 서울ㆍ경기도일원/경찰 갑호비상령/“방일반대”시위 대비

    치안본부는 23일 노태우대통령의 방일과 관련,이날 상오9시부터 26일 하오 9시까지 서울ㆍ경기일원에 갑호비상근무령을 내리고 대학생등의 방일반대 시위및 공공시설 기습등에 철저히 대비하라고 일선 경찰에 지시했다.
  • 외언내언

    지난 82년 한일간 최대현안이었던 경제협력문제 타결을 위해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중증근강홍)당시 총리가 한국을 전격 방문했을때 일본인들은 그의 발빠른 행보에 감탄했었다. 역시 나카소네다운 행동력을 보였다는 칭찬을 받았고 그의 이런 외교스타일이 그의 재임기간중 각광을 받았다. 그때 나카소네총리의 방한은 세지마 류조(뇌도용삼)가 밀사로 한국에서 벌인 막후접촉의 결과라는 것이 뒤이어 밝혀지자 많은 일본인들은 「과연 세지마」라고 말했었다. 그 세지마가 노대통령 방일을 바로 앞둔 중요한 시점에 한국에 왔다갔다. ◆일본의 밀사외교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유럽이나 미국등의 선진각국들과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무역마찰에 대한 무마용 또는 설득용으로 걸핏하면 밀사 또는 특사외교를 이용하고 있다. 아시아각국들로부터 지난달 일본의 만행에 대한 비난,반발이 있거나 현안을 해결하려 할때는 밀사가 동원됐다. ◆밀사외교는 나카소네집권때 절정을 이뤘다. 그 이후도 계속돼오고 있으나 나카소네총리때 가장 성행한 것으로 일본의정치평론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는 유명학자,교수들로 주요문제별위원회를 만들어 자신의 개인브레인으로 활용하고 이들 위원회의 회원가운데 특출한 전문가를 밀사로 뽑았다. 이래서 대중국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그때마다 학습원대학교수이며 교육개혁위원회의 한 멤버인 고야마교수(향산건일)을 파견했다. ◆외국에 밀사를 파견하거나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일본정부가 내세우는 말이 있다. 「태평양시대를 맞아」 「21세기를 앞두고」 「동반자로서…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럴때 저들은 경제협력 문제를 들먹인다. 우선 듣기에는 좋은 소리다. 이번의 노대통령 방일을 두고 일본정부지도자,자민당간부들은 어느 누구건 이것을 말했다. ◆일본의 밀사나 특사들은 귀국해서는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총리관서로 직행,보고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있다. 이것은 어느 국회의원이나 정부관계자 모두가 똑같다. 소련을 방문하고 돌아온 일본공산당수뇌도,북한에서 돌아온 사회당위원장도 이렇게 하고있다. 그래서 외교에 관한한,국익에 대해서는 일본은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이 우리와 다르다.
  • 과거청산과 새로운 한일관계/노태우대통령의 방일에 부쳐(사설)

    일본을 일컬어 흔히 「가깝고도 먼나라」라고 한다. 지리적으로는 가까우나 감정적인 측면에서나 이해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괴리가 크다는 표현이리라. 우리는 24일부터 2박3일간 있을 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이 이같은 괴리를 줄이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 바란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양국정부간에는 그동안 재일동포 3세의 법적지위문제와 일본국왕의 사죄문제 등으로 지루한 교섭이 오간 것을 국민들은 지켜보아 왔다. 특히 사과문안을 놓고 밀사가 오가는 막후교섭까지 계속되고 있으나 결과가 신통찮은 점에 대해 분노를 느끼며 대통령 방일을 반대하는 의견마저 있어온 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대통령의 방일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그렇다면 노대통령은 왜 그곳에 가는가. 현재 한일양국간에 특별한 현안은 없다는 것이 외교당사자들의 말이다. 그런데도 방문정상외교를 펴려는 것은 장차 동북아의 발전을 도모한다는 측면에서 두나라의 관계개선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또 안보와 경제분야에서의 협력과 보완이 두나라의 국익과도 일치한다는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과문제에 대한 상식적 결론이 나올수 있다. 양국간에는 강점과 탄압이라는 역사가 있고 이에따른 국민감정문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까닭에 장래의 진정한 협력과 발전을 이루려면 이같은 과거의 청산이 있어야 함은 당연하다. 가해자인 일본이 이같은 기본인식을 외면하고 진심이 담긴 사과 한마디에 인색하다면 우리 국민들의 대일감정은 풀릴 수 없다. 노대통령이 꼭 일왕의 사과를 받으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으로서는 과거를 사과하고 장차 선린관계를 발전시킬 좋은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또 우리가 입은 피해가 엄청난 것인 만큼 얼버무리는 정도의 사과는 반드시 다른 기회에 또다시 이 문제를 재론케 만들 것이다. 우리는 과거역사에 대한 일본의 사과가 수사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현재 두나라간의 현안중에는 일본의 과거 잘못으로 파생된 현실적 문제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재일교포의 법적지위문제는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당면현안이다. 일제의 희생자로서 당초 본인의 뜻과는 다르게 일본사회에 살게 된 재일교포들이 여러가지 제약과 차별대우를 받고 있음은 인과관계로 보아서도 부당하다. 지난 4월말 열린 양국 외무장관회담에서 지문날인,외국인 등록증 상시휴대,강제추방제도,재입국허가 등 이른바 4대악 제도의 일부적용 완화와 교포3세의 법적지위문제에 대체적 합의를 보았으나 4대악제도 폐지와 취업차별철폐 등 차별대우의 시정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계속되어야 마땅하다. 노대통령의 방일이 교포지위를 개선해 나가는데 있어 새로운 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 노대통령의 방일에서 국민들이 주시하고 있는 바는 경제분야의 가시적 협력이 이루어질 것이냐이다. 양국간에는 무역역조와 첨단기술 이전문제가 경제현안으로 대두되어 있다. 첨단기술문제는 국제시장에서 경쟁의 한계를 보이고 있는 우리 업계에 일본의 첨단기술을 접목시켜 재도약의 기회를 마련하려는 발상이지만 첨단기술을 갖고 있는 일본의 민간기업이 잠재적 경쟁자인 우리에게 얼마나 기술을 전수할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연간 40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역조를 줄이기 위한 노력이 정상외교를 전후하여 전개된다면 어느정도 효과를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를 위해서는 비관세장벽을 낮추고 대한수입을 정책적으로 확대하도록 만들어야 할 것이다. 이런 여러가지 현안들이 대통령의 방일기간중 꼭 가시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중요한 원칙이 결정될 수 있으며 앞으로의 외교교섭에 앞서 돌파구를 열 수도 있다. 이같은 현실적 기대와 아울러 우리의 통일까지를 내다본 먼 장래를 내다보며 한일간의 구조적 문제점을 풀어나가고 우호협력관계를 증진하는데 이번 정상외교의 목표가 두어져야 함을 강조해 둔다.
  • 일왕 사과 가ㆍ피해자 명시/가이후총리도 구체적 「반성」 표현 전망

    ◎일 대사,최종문안 정부에 통보 한일 양국정부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하루 앞둔 23일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협상을 매듭지었다. 일본정부는 이날 하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주한일본대사를 통해 일왕의 사과 문안을 최종 통보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사과문안에는 가해자 및 피해자가 명시되고 사과수준도 84년 당시의 「유감표명」보다 진전된 구어체의 표현이 담겨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왕의 이같은 사과와 함께 가이후(해부)총리도 노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및 만찬석상 등에서 일본정부대표 자격으로 과거사문제에 대해 구체적이고 확실한 사과와 반성을 표시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따라 정부는 일본측이 우리측의 요구를 상당부분 수용했다고 판단,내년초로 예상되는 일왕의 방한초청을 예정대로 추진할 방침이다. 최호중외무부장관은 이날 야나기대사로부터 최종적인 사과문안을 전달받은 뒤 기자들과 만나 『사과수준은 84년보다 진전된 것』이라고 밝히고 『일본측이 노대통령 방일을 정중하게 맞이하려는자세를 견지,신중하게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 일왕 사과수준 관련/일 분위기 한국전달/세지마 밝혀

    【도쿄 연합】 세지마(뇌도용삼) 일본 이토추(이등충)상사 고문의 전격적인 한국방문은 가이후총리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 자신의 움직임을 둘러싸고 갖가지 억측이 나도는 가운데 22일 방한,노태우대통령과 한시간반동안 만나고 이날밤 나리타공항에 내린 세지마씨는 요미우리(독매)신문과 가진 회견에서 『지난 21일 가이후총리의 전화를 받고 한국에 급히 간 것이며 아키히토국왕의 사죄발언 문안을 노대통령에게 전달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양국이 손을 잡아야 하고 노대통령의 방일은 중요한 의의를 갖는 만큼 성공을 거두지 않으면 안된다면서 아키히토국왕의 발언수준 문제에 관한 일본내 공기를 직접 전달하기 위해 개인자격으로 서울을 방문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세계지도자초청 「새시대의 도전」 대토론 내용

    ◎“통독은 한반도통일에 큰영향 미칠 것”/한국과 독일분단 「상호교류」측면서 큰 차이/경제개혁 실패한 고르바초프… 서방 자원엔 한계/한­일은 갈등극복,동ㆍ서구 변화에 대처해야 「새 시대의 도전­동아시아정세와 관련하여」를 주제로 한 세계지도자초청 대토론회가 23일 서울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신현확 전 총리 등 4명의 전직국가수반들은 한승주교수(고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소련과 동구의 개혁,미소관계 및 군축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체제 구성문제,아시아와 한국의 역할 등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독일통일이 한국통일의 교훈이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독일통일이 남북한관계개선에 미칠 영향과 남북통일을 위한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토론내용을 요약해본다. ▲한승주교수(사회)=세계 정세가 최근 급변하고 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등장이후 소련과 동구의 개혁도 본격화되고있다. 소련의 당면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는.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총리=소련은 글라스노스트(개방)와 언론의 자유면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경제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서는 실패했다. 현재 소련의 경제상태는 브레즈네프시대보다 오히려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는 용기가 있는 뛰어난 정치인이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개방정책은 성공적 고르바초프는 이밖에도 소연방을 하나로 유지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고르바초프 앞에는 당내 보수ㆍ개혁파간의 권력투쟁,개혁에 대한 관료층의 저항,군비축소 등에 따른 군의 반발 등이 해결과제로 놓여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련내의 지원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의 원조가 필요하다. ▲사회=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처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서방세계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는가.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서구는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성공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 그렇지만 서구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서구의 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련 내부의 경제 사회문제가 고르바초프 정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회=소련의 개혁정책 및 문제점들과 관련해서 일본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으며 내년쯤으로 예상되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방일이 일ㆍ소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리라고 보는가.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성공시킬수 있느냐에 따라 그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일본과 소련과의 관계는 서구ㆍ소련과의 관계와는 다를 것이다. 양국간에는 북방도서 반환문제 등이 놓여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소련정부가 발트3국에 대해 강경정책을 취하고 있듯이 북방도서 문제도 이와 비슷한 선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회=일소관계와는 대조적으로 한소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소련의 정책 및 체제의 변화와 함께한국이 북방정책을 표방한 결과일 것이다. 현재 한소관계는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는. ▲신현호 전 국무총리=그동안 한국은 정부수립이래 같은 유라시아에 있는 소련을 단지 「위협」의 의미로만 여겨왔으며 미국과의 관계만 유지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역사적인 조건이 누적된 것도 있지만 고르바초프가 등장한후 과감한 정책변경과 민주화ㆍ자유화 노선으로 한국에는 닫혀 있던 지평선이 완전히 열리게 되었다. 북방정책이 시기적절하게 주효하여 한국은 동구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소련과도 가까운 시일내에 국교를 수립할 전망이다. 한국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련 및 동구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움을 극복,신사고가 성공하기를 다른 나라들보다 더 바라고 있다. ○군사력 중요성 감소 ▲사회=통독은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이지만 분단국인 한국국민들은 더욱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통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주변 유럽국가들이 독일통일을 보는 입장은 어떤가. ▲지스카르 데스탱=유럽의회에서는 정기적으로 통독에 대한 현황을 논의하고 있다. 통독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91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며 7월2일 시작되는 경제금융통합이 잘되느냐에 따라 통독의 전망이 밝혀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헬무트 콜서독총리가 장기적인 것으로 통독의 10개항을 발표한 것과는 달리 통독은 훨씬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물론 동서독인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통독을 도와주는 주위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독이 쉬운것만은 아니다. 서독정부는 생산성이 떨어져 있는 동독기업들의 육성과 동독인들의 생활수준향상을 위해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마련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 통독에 호의적인 유럽인들의 수가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점차 줄어들고 있다. 유럽은 20여년전부터 영국ㆍ서독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4개국의 중요성이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될 경우 인구도 늘어나게 될 뿐아니라 GDP(국내총생산)가 40%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쨌든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사회=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속히 통일을 하게 되었는가. ▲헬무트 슈미트=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차이가 더 많다. 서독은 항상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왔으며 서독정부는 동독정부로부터 교통,왕래허용 등 적지않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 나는 호네커 전 동독국가평의회의장과 공식적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신을 자주 교환했으며 유선으로도 통화할 수 있었다. 콜총리와 호네커는 상호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서로의 노력으로 쉽게 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다. 이것은 한반도가 분단이후 남북이 접촉을 거의 하지않은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독은 지난 60년대말 브란트 전총리가 주창한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구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노력했으며 프랑스와의 협력을 위해서도 힘으로 기울였다. 90년대는 군사력보다는 경제ㆍ재정적인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사회=강대국뿐아니라 주변국가들이 통독을 경이적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2차대전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는가. ○한국,저자세 바꿔야 ▲헬무트 슈미트=동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서독은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은 배상을 했다. 프랑스와 협력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드골 전 프랑스대통령은 독ㆍ불관계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서독은 유태인학살로 피해를 당한 이스라엘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방문단을 파견하기도 했으며 폴란드 헝가리 등에도 재정지원을 했다. 서독정부는 이들 국가들에 수백억달러를 배상했으며 동구국가들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왔다. 소련은 서독의 이러한 움직임에 의심스런 태도를 보여왔다. 서독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잔류 등이 더욱 소련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다. ▲사회=독일과 일본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상이한것 같은데 24일 시작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쿠다 다케오=한­일 양국은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이를 극복함으로써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동ㆍ서구의 움직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며 두나라는 가장 가까운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일본은 환영하며 한일양국관계가 돈독해지고 좀더 전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말뿐이 아닌 명실상부한 이해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양국은 협력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에 영향을 미칠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서 바라는 것을 해왔으며 계속 노력해 왔다. 남북한이 현실을 직시한다면 미래에는 실수가 없도록 현명히 대처해야하고 일본은 미래의 우호적인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구ㆍ환경 주요이슈로 ▲헬무트 슈미트=30년전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전했다. 한국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므로 너무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자세를 바꿔야 하며 이것은 대소ㆍ중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상대방이 거절하겠지만 주변국들은 한국의 신뢰를 얻어야 할때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성공을바라서는 안된다. 한국은 이제 중간급 호랑이로 성장했으며 한­일은 동아시아의 유대를 위해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앞으로 10년 남은 21세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스카르 데스탱=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정권은 존립할 수 없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국가는 타국의 주의력을 이끌게 될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인구와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경제산업발전이 있었지만 환경은 이로 인해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군사력 대립은 줄어들게 될 것이지만 우발적인 사고가 야기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지적인 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지역문제는 그 지역기구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84년 「유감」보다 진전… 대승적 차원서 수용

    ◎일왕 「사과문안」 최종절충 안팎/가ㆍ피해자 명시됐지만 「책임」은 약해/일왕ㆍ총리 사과 합치면 우리측 요구수준 될듯 노태우대통령 방일시 아키히토(명인) 일왕이 궁정만찬석장에서 밝히게 될 대한사과문안에 대한 한일 양국간 협상은 방일 하루전인 23일 일단 마감됐다. 야나기 겐이치(유건일) 주한일본대사가 이날 하오 최호중외무장관을 예방,일본측이 과거사에 대해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시하고 사과의 주체를 밝히는 내용의 최종적인 일왕사과문안을 전달했기 때문이다. 최장관도 이날 야나기 주한일본대사를 만난 뒤 기자들에게 『일본측이 노대통령을 정중하게 맞이하는 자세를 견지,신중하고도 많은 고심을 한 결과라고 일단 평가한다』며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사과문안에 대한 소감을 피력한 데 이어 『이번 방일에서 아키히토 일왕이 밝힐 사과수준은 84년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당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말한 「유감표명」보다는 진전된 것』이라고 강조,우리측 요구가 상당부분 수용됐음을 시사했다. 일본측이 제시한 최종문안은 ▲한일 양국간 과거사에 있어 가해자및 피해자 명시 ▲사과주체의 표시 ▲84년 당시의 「유감」보다는 더 강도가 높은 사과표현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초 우리정부가 요구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적시,식민지배에 대한 「책임」과 「반성」을 분명히해야 한다는 수준에는 못미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같은 수준을 토대로 일왕사과문안을 정리해본다면 『본인(일왕)은 금세기 한 시기에 있어서 우리나라(일본)가 한국에 끼친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데 대해 고통과 슬픔을 통절히 느끼며 다시는 이같은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로 될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양국간의 이번 협상은 우리측의 강력한 입장개진과 일본측의 양보가 어우러져 마무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완전한 과거청산을 희망했던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미지수라고 할 수밖에 없다. ○…일본측은 84년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정식외교경로 전달방식을 선택,이날 하오 야나기 대사가 최장관을 예방하는 자리에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을 한국측에 전달. 일본측은 이에앞서 22일 밤 고위특사인 세지마 류조(뇌도용삼)씨의 보고를 토대로 가이후(해부) 총리 주재로 나카야마 외상,사카모토 관방장관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열고 최종문안을 23일 제시키로 결정했다는 후문. 일본측은 이 자리서 일왕발언의 헌법상 허용문제를 감안,일왕의 사과표명을 한국측의 요구수준보다는 낮추되 대신 가이후 총리가 한국측의 요구를 대폭 수용,깊은 반성과 책임을 밝힌다는 기존의 방침을 재확인했다고. ○…야나기 대사는 당초 예정시간보다 35분가량 늦은 이날 하오 2시35분쯤 외무장관접견실로 최장관을 예방,최종문안 전달과 함께 일본측의 전반적인 상황을 설명했다고 한 배석자가 전언. 40여분간 계속된 이 면담에서 최장관은 『양국관계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도 일왕의 사과문안이 우리국민의 기대를 상당한 정도 담기를 희망한다』면서 일본측의 성의있는 자세를 재차 강조했으며 야나기 대사는 이에대해 어려운 일본 국내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일본대사관측은 야나기 대사가늦게 도착한 이유에 대해 『본국정부로부터 텔렉스 도착이 늦었기 때문』이라고 밝혀 일본측이 우리측에 공식통보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진통을 겪었음을 시사. 최장관은 특히 야나기 대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인사말을 건네자 약간 상기된 표정으로 『일왕의 최종사과문안 제시가 온 국민의 관심사항이 되고 있다』고 답변,일본측이 우리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사과문안을 갖고 왔음을 의식한 듯한 발언을 하기도. 최장관은 또 야나기 대사와 악수하는 포즈를 잡아달라는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그냥 앉아서 얘기하는 표정을 찍는 것이 낫지 않느냐』며 신중한 자세를 견지. 최장관은 면담을 끝낸 뒤 청와대로 직행,노대통령에게 최종사과문안및 일본측 정황등을 상세히 보고. ○…최외무장관은 이날 노대통령에게 일측 사과문안을 보고한 뒤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만나 한동안 문안내용을 놓고 숙의. 노실장은 이어 삼청동에서 외무부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청와대로 돌아와 이수정공보수석비서관을 급히 찾았는데 주변에서는 『일측의 사과문안과관련한 우리측 대응입장을 다시 수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들. 노실장은 기자들이 『일왕사과문안은 절충이 모두 끝났느냐』는 물음에 직접적인 답변은 회피하면서 『비행기 타는 일만 남은 것 아니냐』고 말해 양국간의 절충이 사실상 마무리됐음을 시사. 노실장은 일왕의 사과수준을 캐묻자 『일왕과 총리의 사과내용을 합치면 우리가 요구하는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다소 미흡함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답변. 노실장은 이날 전달된 일본의 사과내용을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라는 질문에는 『당장 문안을 펼쳐보일 수는 없으나 긍정적일 것으로 본다』고 조심스레 피력.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일측 사과문안과 관련,『노대통령의 일왕주최 만찬답사ㆍ국회연설ㆍ일총리주최 만찬답사 등을 일부러 다시 손댈 필요는 없다』고 말하고 『일본측의 사과수준과 외교적으로는 정상적인 것 같다』고 피력해 다소 우리의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84년 사과수준」보다는 강도가 있는 것임을 시사. 이 관계자는 『일측의 사과문안이 일본내에서는 많은 반대견해가 있을 수도 있는 것으로 일본정부로서는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고 볼 수 있다』고 언급. ◎노대통령 맞는 동경의 기류/「침략국」인상 씻고 “평화지향 일본” 부각 겨냥/“한ㆍ일 신협력시대”들어 실리 치중 말은 안해도,노태우대통령의 일본방문에 대해 일본측이 전례없이 중점을 두고 배려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몇가지 「사정」에 기인한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미래지향적 우호ㆍ협력관계의 구축을 노대통령 방일실현의 첫번째 목적으로 꼽는다. 앞으로 다가올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이니셔티브를 잡기 위한 두나라 공동전선을 구축하며,세계경제 블록화에 대처하기 위해 보조를 맞춘다는 명분론을 들고 있으나 그 「필요성」은 더욱 현실적인 데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우선 국내의 정치적 기반이 취약한 가이후(해부)정권의 장기안정화를 꾀하기 위해 외교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오는 8월이면 발족 1년을 맞는 가이후내각으로서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방일실현,한국과의 유대강화,동구제국과의 관계개선등 외교실적을 통해 국제적 지위를 부상시킴과 동시에 「본격정권」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외에 인식시켜줄 필요가 절실하다. 두번째는 일왕의 방한실현 타진이다.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아키히토(명인) 일왕의 한국방문이 필요하다. 일왕의 한국방문이 갖는 상징성은 매우 강하기 때문이다. 세번째는 경쟁상대로 떠오르고 있는 한국과의 경제협력을 원활히 함으로써 세계적 경제마찰의 초점을 분산시키자는 등의 계산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신칸센(신간선)같은 대형 프로젝트의 판매등을 통해 기존시장을 확대하려는 의도도 없지않은 것으로 해석된다. 일본의 이같은 외교목표 설정은 한국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음으로써 지금까지도 불협화음을 빚고 있다. 지난 3월 일본의 학자ㆍ변호사ㆍ종교인등 58명은 『의회는 36년간의 식민지지배를 통해 일본이 한민족에게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준 데 대해 반성하고 국민의 이름으로 사과한다』는 결의를 채택하도록 일본 중ㆍ참의원및 각 당에 요구했다. 와다 하루키(화전춘수) 동경대교수,다카키 겐이치(고목건일),변호사 다케우치 겐타로(죽내겸태랑) 일본기독교협의회장 등을 대표로 하는 이들은 「한국병합조약 80주년을 맞아 조선식민지 지배 반성의 국회결의를 요구하는 성명」을 통해 이같이 촉구했다. 이것은 진정한 인식전환만이 우호의 바탕이라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가 자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평화ㆍ안전보장연구소 회장인 이노키 마사미치(저목정도)씨는 최근 산케이(산경)신문에의 기고를 통해 일왕은 일본의 책임소재를 명쾌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국의 상징으로서,일본을 대표하고 있는 것은 천황이다. 노일전쟁으로부터 종전까지 일본은 가해자였으며 한국은 피해자였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기 때문에 천황의 사죄내용에 「일본의 책임에 의해」라는 의미가 명시되어야 한다. 총리가 제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한국민은 결코 만족하지 않을 것』이라고 간파했다. 그러나 이같은 식자들의 우려와는 달리 평소 일본의 대한관에서는 불과 반세기도 지나지 않은 일제의 침략과 수탈에 대한 뉘우침과 반성의 뚜렷한 기미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오히려 최근의 오사카(대판) 나고야(명고옥)등지에서의 극우국수주의자들에 의한 폭발테러사건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같이 일제당시의 의식과 시각을 그대로 갖고 있는 언행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과거 일본교과서의 역사왜곡도 그 좋은 예의 하나이다. 일본법원은 일본군의 「침략」과 「대학살」표현을 완화토록 지시한 문부성의 수정지시가 합법적이라는 판결까지 내렸었다. 역사적 사실을 수정하도록 강요하는 정부,또 이를 마땅한 것으로 판단하는 법조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일부 지배층의 기본인식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진정한 의미의 한ㆍ일우호관계는 수립될 수 없다. 일본의 잘못된 대한인식과 태도는 지난번 재일한국인의 법적 지위보장ㆍ처우개선 협의에서도 잘 드러났다. 우여곡절끝에 「3세문제」에 대해서는 최소한도의 합의를 보았으나 1ㆍ2세문제는 거론되지도 않았다. 70여만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의 법적 지위문제는 바로 인간의 기본권인인권과 생존권의 문제이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교육울 받으며 일본사회에서 살고 있는 재일동포와 그 자손들의 법적 안정성 보장및 차별철폐,원폭피해자문제,사할린거주 한국인문제등 일본이 역사적 책임을 져야만 하는 문제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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