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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로당총책 박갑동씨의 「체험적 6ㆍ25론」

    ◎“공산주의로 잘 산다는건 꿈” 뒤늦게 자각/휴전 임박해서 박헌영과 함께 연금생활/후퇴길에 평양보고 “거지공화국” 실망 6ㆍ25 동란당시 38선 이남지역 남로당 지하총책이던 박갑동씨(72)가 27일 한국전쟁기념사업회(회장 이병형)주최로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6ㆍ25 40주년 국제학술대회에서 6ㆍ25체험담을 발표했다. 박씨의 체험담 요지는 다음과 같다. 50넌 6월 25일은 일요일이어서 나는 남로당 비밀아지트에서 쉬고 있었다. 아지트를 경비하는 사람이 외출후에 돌아와 전쟁이 터져서 피난민들이 미아리고개로 넘어오고 있다고 보고했다. 나는 순간 『김일성 이놈이 죽일놈』이라고 말하고 전신에 힘이 모두 빠져나갔다. 28일 새벽에 북한군이 탱크를 몰고 서울시내에 들어왔다. 나는 서대문 교도소에 갇혀있는 동지들을 구하기위해 나서며 비서에게 지하당원은 소공동 조선정판사빌딩에 모이도록 지시했다. 교도소에 갔다가 정판사빌딩에 가보니 비서 혼자 서있으면서 이승엽이 평양에서 전권을 가지고 서울시청에 와 당의 명령을 듣지않는 박갑동을 총살시키겠다고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 이승엽을 만나러 서울시청에 가서 정태식을 만났다. 그는 나를 보자 이가 매우 화를 내고 있어 주위사람들이 말리고 있으니 잠깐동안 몸을 피하고 있는 것이 좋겠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이때부터 김일성과 이승엽에게 밉게 보여 지위가 점점 낮아져갔다. 나는 복간된 해방일보 논설위원으로 명맥을 유지해가다 유엔군이 인천에 상륙하자 북으로 쫓기게 되었다. 유엔군이 북쪽에 가기도 전에 북쪽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인민위원회를 습격하고 약탈하고 있었다. 10월이 되자 북쪽은 상당히 추웠는데 대부분의 북한사람들이 얇은 여름옷을 입고 이불도 못덮고 생활하고 있었다. 나는 『이놈의 나라가 인민공화국이라고 선전하고 있으나 거지공화국이 아니면 간부공화국』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김일성이 5년동안 사회주의를 건설했다고 하는데 이것이 사회주의의 실상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평양에 도착해서 소위 인민시장에 가보았다. 국영상점 이외에 협동조합상점과 개인상점도 있었는데 생필품이 부족했다. 고무신점에 가보니 여자고무신이 두 종류 있었는데 하나는 흰색이고 하나는 회색인데 주인이 흰색은 남한제품이라며 품질이 아주 좋다고 말했다. 포목점에 가보니 옥양목은 짜지 못하는지 조악한 광목밖에 없었다. 국영정육점에 가보니 점원이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과 손으로 고기를 자르고 있었다. 개인정육점에 가니 20세가량되는 처녀아이가 쇠고기1㎏을 정확히 한번에 잘라주는 것을 보고 국영상점과는 경쟁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개인상점은 매일 매일 무거운 과세를 함으로써 국영상점을 우대했다. 국영상점 점원은 공무원이기때문에 손님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고 많이 판다고 월급이 많아지는 것도 아니니 성의가 전혀없었다. 사회주의 경제는 상품생산과 유통시장이 존재하는 경제가 아니었다. 상품이란 소비자가 소중한 돈을 주고 사고싶은 물품을 사는 상행위가 기본이어야 하는데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욕망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최저 최소의 생필품을 국가가 배급을 해주는것이 현실이었다. 휴전이 가까워지자 북한은 남로당계 인사를 출당하는 대대적인 숙청을 해 나는 박헌영과 함께 체포되어 56년 3월까지 감금생활을 했다. 56년 2월 소련공산당 20차대회에서 흐루시초프가 스탈린비판을 한뒤 석방되어 북경을 경유,공산권에서 탈출했다. 57년에 북경에 갔다. 중국은 사회주의도 자유주의도 아닌 대국주의ㆍ제국주의였다. 조선인민을 자기들이 도와서 미제국주의를 타도했다는 자부심으로 전국이 덮여있었다. 유엔군이 중국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았으나 국경을 지키기 위해 출병했다는 것이다. 세계강대국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한다면 지구상에는 하루도 전쟁이 그칠날이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약소민족의 서러움과 비애를 느꼈다. 모택동의 소수민족정책이라는 것도 자세히 보면 일본제국주의가 만주국을 통치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었다. 소련은 명목적이나마 공화국을 수립해주고 연방으로 묶어 통치하지만 중국은 소수민족의 공화국은 금지하고 직접 통치하고 있었다. 50년대 후반의 중국 공산주의는 정말로 「독점」「독선」「배신」의 연속이었다. 나는 공산주의가고상한 도덕이며 인도주의라고 믿어왔는데 실제로 공산주의가 실천되는 현장을 보니 정치적으로는 중세기 암흑세계이고 경제적으로는 기술이 낙후하여 자본주의 생산성에 도저히 따라 갈 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하에서 독립을 해서 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키기위해 공산주의자가 되었는데 공산주의 국가 북한과 중국에 가서 앞날이 없는 공산주의 사회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자신이 부끄러워서 일본에 망명하여 성명을 바꾸고 일개 노동자로 일평생을 살아가려고 했다. 그리하여 나는 일본에 망명하여 오키나와 사람이라고 속이고 고무공장 노동자를 몇해 하면서 숨어서 살아왔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점령하에 있어 일본경찰이 본적을 조회할 수 없었다. 지금 여러분 앞에 나와있는 것이 정말 부끄럽다. 선조가 남겨주신 유산으로 일본유학까지 해서 당시로서는 조선최고의 인텔리의 한사람이 그 능력을 옳게 발휘하지 못한 것을 뼈저리게 뉘우치는 바이다.
  • 방려지 출국허용과 이철영 방일의 의미

    ◎“경제봉쇄 풀기”… 중국의 실리외교/일 총리와 친한 이,56억불 차관교섭 추진/“서방에 경원재개 설득”요청할 듯 중국당국이 지난해 6ㆍ4 천안문사건 이후 서방세계에서 자국에 대해 취하고 있는 경제봉쇄령을 풀도록 하기 위해 요즘 들어 다양한 외교전략을 숨가쁘게 구사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25일 북경의 미국대사관에 1년이 넘도록 피신해 있던 반체제물리학자 방려지부부의 출국을 허용,서방국가들로부터 일단 환심을 사는데 적잖이 성공을 거둔데 이어 오는 30일엔 국무위원 이철영을 일본에 보낼 계획이다. 이의 방일계획이 발표된 것은 지난 21일이었지만 사실은 중국정부가 방교수부부의 출국허가를 이미 결정,이 조치의 파급효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과 부드러운 분위기속에 놓이게 될 것을 미리 계산하고 이의 방일날짜를 30일로 잡았을 것이란 지적이 유력하다. 또 시기적으로도 24일이 강택민이 당총서기에 취임한지 한 돌이 되며 7월들어 곧 서방선진 7개국(G7) 정상들이 모여 대중관계정상화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져 중국으로선 이번 기회에 서방세계의 경제제재가 종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번 일본행에 나서는 이철영의 경우 지나칠 수 없는 것은 그가 비록 대외적으론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 중국권력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한 편에 속한다는 점이다. 중국에서 부총리와 장관 사이의 직급으로 모두 9명뿐인 국무위원직을 맡고 있는 것 외에도 이철영은 최고정책결정기관이라 할 수 있는 당중앙정치국의 14명 위원가운데 하나이다. 이와 함께 국가교육위원회 주임(장관급)도 겸임하고 있다. 그러나 직함외에 관심을 끄는 대목은 그의 등소평 친자설이다. 등은 지난 30년대 중반 권력투쟁에 패해 심한 곤경에 빠졌을 때 두번째 부인 김유영(사망)과 이혼했으며 당시 등의 반대파였던 이유한(사망)과 재혼한 김이 얼마후 낳은게 이철영이라는 것. 따라서 이가 빠른 속도로 출세할 수 있었던 것도 보이지 않는 등의 뒷받침에 힘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번 일본행도 등의 특명을 받은 밀사자격으로 이뤄지는 것이라는게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그러면 지난해 6ㆍ4 천안문사건 이후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고위층인사인 이가 지닌 임무는 무엇일까. 크게 세가지 목적을 지닌 것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중요한 임무는 오는 7월9일부터 11일까지 미 휴스턴에서 열리는 서방 7개 선진국(G7)정상회담때 일본이 다른 국가들에 세계은행(IBRD) 차관동결을 비롯한 각종 대중국제재조치를 풀도록 설득해줄 것을 요청하는 일인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일본의 가이후(해부)총리는 지난해 총리가 되기 전 같은 문교행정을 맡은 장관으로서 이와 절친했고 당시 이에게 일본방문을 요청한 사실도 있고 해서 이번에 가이후ㆍ이회담은 당연히 이뤄질 전망이다. 두번째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가 일본에 대해 종전에 이미 중일간 계약이 체결된 56억달러 상당의 엔화표시 장기저리 차관을 하루 빨리 공여해주도록 촉구할 것이란 점이다. 이 엔화공공차관은 중국이 90∼96년에 사회간접자본시설을 확충하는데 필요불가결한 재원이다. 그러나 6ㆍ4사건이후 서방선진국들이 공동으로 취한 대중국 경제제재조치 때문에 이 차관제공계획도 동결된 상태이며 중국은 철도ㆍ항만ㆍ발전소시설 등의 건설계획이 큰 차질을 빚음에 따라 고통을 겪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는 가이후가 중국을 대신해서 미부시대통령에게 중국수출상품에 대한 미측의 지속적인 최혜국대우(MFN)조치를 요청해 주도록 바랄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가 1년시한부 연장의사를 밝힌 이 조치는 현재 미의회에서 중국의 인권문제와 관련,찬반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한창이다. 이 조치가 중단될 경우 연간 1백억달러 가까이로 예상되는 중국의 대미무역흑자는 10분의 1정도로 격감되고 경제운용은 말할 수 없는 타격을 받게 된다. 또 일본으로선 중국의 총외채 4백13억달러 가운데 그들몫이 35%나 되는데다 다른 나라에 크게 앞질러 중국시장에 진출하고 있으므로 자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의 대중국제재가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할 뿐 아니라 장기화할 경우엔 오히려 일본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일본측은 중국과 자국의 이익을 동시에 염두에 두고 다른 서방국들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같다. 가이후총리가 7개국 정상회담 직전에 단독으로 부시대통령과 만날 것으로 전해지는 것도 일본이 중국을 위해 단단히 총대를 메게 될 것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철영의 이번 방일은 중국과 서방의 관계회복에 도움을 주고 이는 한걸음 더 나아가 한국과의 교류에도 융통성이 주어질 것이란 기대감을 갖게 하고 있다.
  • “남북군축 3단계 구체방안 연구”(의정중계 26일 본회의)

    ◎용산 미 기지 이전 부담경비 밝혀라 질문/남북 신뢰조성까진 휴전체제 필요 답변 ◇조순승의원(평민)=정부는 7월중 한소수교단을 모스크바에 파견할 예정으로 있으나 소련관계자들은 수교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소련이 유보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며 수교시기는 언제쯤으로 전망하는가. 정부는 한중 수교문제를 협의키 위해 중국에 특사를 파견할 계획이라고 하는데 현재 어느정도 관계진전을 보이고 있는가. 정부가 일방적으로 발표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서 우리의 통일방안을 결정할 의사는 없는가. 일본은 우리나라 예산의 4배가 넘는 군사비를 쓰고 있는데 일본의 군사정책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박관용의원(민자)=남북한 대결은 남의 「경직된 안보논리」와 북의 「폐쇄적 주체논리」의 소산이다. 이제 더이상의 소모적인 군비경쟁은 종식되어야 한다. 북의 군축제안의 진실성을 확신할 수 없고 핵무기 개발 등도 고려해야겠으나 소련이 개혁과 군축을 선택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북의 제안을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긴장완화의 호기로 이용해야 된다고 보는데 이에 대한 정부의 견해는. 남북한 불가침협정의 수용이나 선후없는 교류협정 및 선 군사문제 해결방안을 수용할 의사는. 북측의 군축제안에 대한 우리측의 대안은 무엇인가. 북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국가보안법의 개정용의는. 통일원의 위상제고와 예산증액 등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무엇인가. ◇정몽준의원(민자)=한소 정상회담등 북방외교의 성공적 전개등 국제정세의 급격한 변화가 국민들의 안보의식을 약화시키거나 혼란상태에 빠뜨릴 위험은 없는가. 공산주의의 허구성을 파헤치고 일부 젊은이의 좌경화 환상을 일깨워 줄 교육계획은 무엇인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에 전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재래식무기 감축이 실효가 있겠는가. 군축에 대한 정부의 기본입장은 무엇이며 북한이 지난 5월31일 제안한 군축안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무엇인가. 군비통제조정위원회의 구성과 기능은 어떻게 되는가. 용산기지 이전의 소용기간과 우리측부담경비를 밝혀라. ◇강영훈국무총리=북방외교는 국민적인 합의를 바탕으로 공개외교방식을 택한다는 것이 정부의 기본입장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초당적 접근방식을 취해나가겠다. 한소 수교원칙은 합의됐으나 그 시기는 보류됐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동양적인 사고방식에 따라 대의명분을 중요시하는 우리나라는 정식외교 수립에 우선 비중을 두고 있으나 실질적인 접근방식을 취하는 소련은 경제협력문제등에 중점을 두고 있어 다소 입장차이가 있는 것으로 비춰지고 있다. 수교시기문제등은 양국이 외교경로를 통해 협의해 나갈 것이다. 대통령의 지난 방일때 아키히토 일왕과 가이후총리등이 과거 한일문제에 대해 명백히 사과 반성한다는 뜻을 밝힌 만큼 이제 과거사는 일단락 짓고 한일간 선린우호의 새 시대를 열어야 할 것이다. 일왕의 우리나라 방문은 양국 국민들의 환영하는 분위기가 성숙될 때 실현될 것으로 본다. 최근 북한의 군축제안은 현실여건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용어사용등에도 신중을 기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대내외 선전에 더큰 비중을 두고 있어 근본적으로는 종래 입장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남북 고위회담등이 성사될 경우 적극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군비통제문제등을 다루기 위해 군비통제종합조정기구의 설치를 검토중이다. 주한미군문제는 북한의 남침위협이 현저하게 감소될 경우 한미 양국간에 신축성있게 논의될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상황변화등을 반영,개정할 수 있으나 국가의 안전보장 차원에서 현행골격을 유지해야 할 것이다. ◇최호중외무장관=외교에는 상대방이 있기 때문에 교섭과정에는 불가피하게 비밀로 할 때가 있다. 한소 정상회담도 북한의 존재를 의식,소련측의 비밀요청이 있었으며 소련도 고르바초프대통령 측근 몇명만 정상회담 개최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에 대한 일본의 배상청구문제는 지난 65년의 청구권협정 조인으로 법적으로는 이미 매듭된 것이다. 김­오히라메모는 외교교섭과정에서 행해진 일로 공개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본다. 일본의 군사비 증대문제는 기본적으로 주권국이 독자적으로 결정할 문제이나 주변국가들의 과거경험을 고려,전쟁포기를 명시한 일 헌법과 자위권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도록 직ㆍ간접적으로 충고했다. ◇이상훈국방장관=유럽의 군축모델은 개별국가간 협상을 벌여야 하는 아시아 태평양지역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 당사자가 주도하고 주변국가가 지원하는 형태이어야 한다. 한반도의 군축을 위해 3단계의 구체적 추진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2천명의 주한미군 감축은 미 국방성이 사전 검토한 바 없으며 미 의회보고과정에서 급작스레 결정된 것이며 한미간에 충분히 협의되지 못했다. 주한미군 감축은 비전투군 중심으로 최소한 감축예정이며 유사시에 대비한 공동작전문제를 협의중이다. 7천명의 규모만 결정된 감축문제는 오는 11월 한미 안보회의에서 구체적 시행시기와 대비책등이 결정될 것이다. 북한은 22개 여단의 특수군을 보유하고 있으며 우리는 북한의 40% 수준에 있다. 장비도 북한의 우수부대에 비해 열세에 있으며 한국군내 특전부대가 최정예부대다. 군조직 개편은 독자적인 군지휘체제로 자주국방을 이루려는 것으로 남북한 군비통제 가능성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홍성철통일원장관=북한의 군축제의는 종래 대남전략과 달라진 게 없다. TV와 라디오의 일방적 개방은 대남 기본전략이 변하지 않는 한 남북관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 상호개방이 바람직하다. ◇조희철의원(평민)=정부는 대소정책에 자신감과 지식을 충분히 가지고 있는지,그리고 국내 소련관련 연구현황을 밝혀라. 6공화국이후 최근의 샌프란시스코회담까지 북방외교 추진과정에서 사용한 자금내역을 밝혀라. 남북 정상회담의 추진은 어느 단계까지 와 있는가. 민족동질성 회복과 신뢰구축을 위해서는 먼저 문화ㆍ경제분야 및 TVㆍ라디오 등 전파교류의 역할이 크다고 보는데 총리의 견해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북한의 핵보유 보도에 대한 정부의 입장과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정보를 밝혀라. ◇박승재의원(민자)=21세기를 대비한 새로운 외교ㆍ안보ㆍ통일의 전략은 무엇인가. 한소수교가 언제 실현되며 수교가 계속 지연될 때 이에 대한 대비책은. 북방정책의 성과나 한소 정상회담의 성과를 통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도 대폭적인 대북한 화해조치가 취해져야 한다. 한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을 통해 북한측에 어떤 메시지를 보냈는지 밝혀라. 정부는 7ㆍ7선언이후 북한과 미 일간의 관계개선을 위해 측면지원한 내용은. ◇강총리=북한은 남북한 정상회담에 아직까지 부정적 입장이나 국제환경등을 감안할 때 계속 거부키는 어려우리라 예상된다. 남북 정상회담 추진은 평화통일에 접근하고 남북 신뢰조성에 효과적 방법이기 때문에 하는 것이며 이를 국내정치에 이용할 의사는 추호도 없다. 휴전협정체제를 평화협정체제로 대치하는 데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남북간 신뢰조성 및 평화정착이 될 때까지 휴전협정이 필요하다. 남북 정상간 민족공동체헌장이 제정되고 남북연합이 제도화돼 항구적 평화가 정착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 대외여건 변화와 국민합의를 바탕으로 실천적 대북 화해조치를 꾸준히 전개하겠다. 북한의 자존심을 손상안주는 방향에서 각 분야의 남북 교류협력을 추진하겠다. ◇최외무=한ㆍ소 정상회담때 노태우대통령은 북한의 선동 대남정책과 우리의 통일정책 그리고 북한의 고립을 원치 않는다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설명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에 대해 김일성에게 전달할 메시지가 있느냐고 물었으며 노대통령은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응할 것 ▲우리는 북한에 군사적 우위를 행사할 의사가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 중ㆍ소교포에 대한 경제적인 지원문제는 거주국의 불필요한 오해를 살 우려가 있는데다 교포들이 고국에 대해 과다한 기대를 가질 우려가 있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국방=북한이 적화통일 노선을 포기하고 성실하게 남북대화에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북한을 군비통제협상으로 유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의 전력증강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본다. 서독이 동독보다 3배이상의 우세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경제ㆍ군사력 양면에서 우세를 보일 때 북한의 개방을 유도할 수 있다.
  • 서울신문 「까투리」만화 일왕 사과문안 바꿨다/일 시사주간지

    ◎“「가슴아프게」는 통속적”… 「통석의 염」으로 지난 5월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때 당초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로 돼있던 아키히토(명인)일왕의 대한사과 표현이 마지막 단계에서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로 바뀌게 된 것은 5월17일자 서울신문의 연재만화 「까투리여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도됐다. 일본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지 6월5일자 보도에 따르면 솔직하고 알기 쉬운 것을 좋아하는 아키히토의 성격에 따라 대한사과발언 내용은 처음 알기 쉬운 『가슴아프게 생각한다』로 결정됐었는데 한국의 유행가 「가슴아프게」를 일왕이 사죄의 노래로 연습하고 있다는 내용의 「까투리여사」만화를 보고 통속적이란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일본정부내에서 대두돼 결국 『통석의 염을 금치 못한다』로 바뀌게 됐다는 것. 아에라지는 『사죄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는 것』이라는 한국언론의 지적도 소개하면서 노대통령 방일시 가이후(해부)총리가 약속한 사죄방안들이 제대로 실행되지 않으면 앞으로 아키히토일왕이 한국을 방문할 때 대한사죄발언이 또다시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일,북한에 저리차관 검토/일지 보도/「여행 제한국」서 삭제도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일본정부와 자민당 및 사회당간에 지난달말 구성된 3자협의체에서 ▲일본여권에 북한이 유일한 여행대상제한국으로 표기된 문구삭제 ▲북한의 일본통신위성 사용허가 ▲저금리융자 ▲과거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죄 및 배상문제 등이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25일 지금까지 3차례 모임을 가진 3자협의의 내용을 이같이 밝히면서 외무성과 법무성,우정성과 국제전신전화회사등 관련 기관간의 의견이 대립되고 있어 아직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북한과 일본간의 공식접촉은 오는 7월초로 예정된 구보(구보항) 사회당 부위원장의 방북과 그 답례의 성격을 띤 북한노동당대표단의 방일에 이어 자민당의 실력자인 가네마루(김환) 전부총재의 연내 평양행으로 마무리 짓는 수순으로 추진되고 있다.
  • 한ㆍ일 기술협력위 연내에 설치키로

    정부는 첨단산업분야에 관한 일본의 첨단기술 대한이전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한ㆍ일 산업기술협력위원회의 연내설치를 적극 추진키로 했다. 정부는 21일 이진설경제기획원차관 주재로 노태우대통령 방일 후속조치 관계회의를 열고 지난 5월 노대통령 방일에서 일본측에 제의한 한ㆍ일 산업기술 협력위원회를 늦어도 금년중에 발족시키기 위해 빠른 시일내에 일본측과 실무협의를 갖기로 했다. 정부는 한ㆍ일 산업기술협력위원회를 통해 ▲기초과학 ▲원자력 ▲신소재 ▲중소기업 자동화분야의 일본 첨단기술 대한이전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 소ㆍ동구 공동진출 합의/한미 재계회의 폐막/양측 실무위 구성키로

    ◎한국,미에 첨단기술 이전 요구/미선 금융ㆍ통신시장 개방 촉구 한미 양국 재계는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지역 공동진출과 합작사업을 적극 추진키로 하고 이를 위한 실무위원회를 구성키로 했다. 또 한국은 미국측에 대해 첨단기술 특히 생명공학ㆍ항공산업ㆍ초전도체 산업분야의 기술이전을 요청하고 미국은 우리나라에 대해 금융ㆍ서비스ㆍ통신분야의 시장개방과 지적소유권 보호장치 강화를 촉구했다. 한미재계회의 제3차 총회는 18일 하오 2시30분부터 서울 인터콘티넨틀호텔에서 분과위별 회의에 들어가 테마별로 이같이 합의하고 19일 폐막됐다. 기술분과위원회에서 한국측은 미국이 기술우위에 있는 핵심적이고 원천적인 분야인 생명공학ㆍ항공산업ㆍ초전도체산업의 기술이전과 기술이전을 위한 법규의 간소화,기업 또는 정부간 기술 및 정보교환 채널의 마련을 촉구했다. 이에 대해 미국측은 첨단기술 이전에 대한 대가가 충분하지 않고 부메랑효과를 지적했다 서비스ㆍ금융분과위에서는 한국측이 미국의 반덤핑관행과 운영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미국은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키로 했고 미국은 금융ㆍ자본ㆍ서비스ㆍ통신분야의 시장개방과 지적소유권 보호장치 강화를 촉구하고 우선 한국정부는 이들 시장의 구체적인 개방일정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 분과위에서는 또 양국간 합작사업 확대를 위해 우선 양측에서 각각 6명씩 참가하는 실무위원회를 구성,합작유망분야와 효율적인 합작방법에 대한 합작기업모델을 만들어 내년의 하와이 운영위원회에서 보고키로 합의했다.
  • 고르바초프 내년초 방일/가이후 일총리 확인

    【도쿄 AFP 연합 특약】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본총리는 17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내년초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된다고 밝혔다. 가이후총리는 이날 집권 자민당의 한 세미나에서 이같이 말했으며 자민당소식통들은 그가 최근 고르바초프의 방일과 관련된 소련측의 서한을 전달 받았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죽지 못해 살아온 세월이었으리라. 일본 대사관앞에서 자살을 기도한 60대 할머니 말이다. 그는 원자폭탄 피해자. 피폭후의 한 많았던 삶을 죽음으로써 항의하며 청산하려 한 것이다. ◆일제때 강제징용된 아버지를 따라 갔던 그는 히로시마에서 변을 당한다. 구사일생으로 살아서 귀국. 그러나 후유증에 시달린다. 더욱 무서운 것은 유전. 모든 피폭자가 겪어왔듯이 그 또한 뼈없는 아들을 낳기도 하고 살다가 죽는 자녀를 묻어야 했으며 정신질환에 걸린 딸을 데리고 살아야 했다. 호소할 곳도 없는 채 얼마나 원통하고 뼈아픈 삶을 이어 왔던 것인가. 그 누적된 분통이 한꺼번에 터진 자살기도였다. ◆이런 경우가 이노파 한사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6일과 9일,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으로 두 도시에 있던 한국인 7만명중 4만여명이 죽었다. 징용되어 간 사람들과 그 가족들. 목숨을 건진 3만명가운데 2만여명이 귀국한다. 그 무서운 후유증을 모른 채. 그들은 앓다가 죽어갔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사람을 1만3천여명으로 치지만 정확한 숫자도 모른다. 자녀에의 「유전」이 알려지는 게 두려워 스스로 숨기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하나같이 비참했다는 것이 공통점. 그나마 국가적인 관심이 가게 된 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주의의 외면속에 그늘의 인생을 살아온 슬픈 역정은 「통석지념」정도 말재간으로 풀릴 한이 아니다. 패전후 정신이 없었을 때야 그렇다 치더라도 경제대국이 되면서 바로 마음썼어야 할 「한국의 피폭자」 아니었던가. 그들의 「절규」가 있기 전에. 노대통령 방일을 고비로 보상에의 길이 열리기는 했지만 어찌 「45년 한」까지 푼다고야 하랴. ◆지금의 핵무기는 45년전에 비길 것이 아니다. 양 진영 것이 터졌다 하면 지구는 몇십번 박살이 나고도 남는다. 그 점에서 양 진영의 화해무드는 바람직스러운 것. 하지만 핵무기는 여전히 존재한다. 피폭자의 슬픈 절규속에서도.
  • 서울∼평양 마라톤 북한에 협조 요청/아시아 육상련

    【도쿄 연합】 일본 사회당의 다나베 마코토(전변성) 부위원장은 방일중인 북한의 이청일 강원도 친선대표단장과 12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만나 아시아 육상경기 연맹이 내년 가을 개최를 구상중인 서울∼평양간 역전 마라톤 대회에 북한이 협조해 줄 것을 바라는 내용의 서한을 담당 책임자에게 전달하도록 요청했다. 당초 서울∼평양간 마라톤 대회(약2백km)는 지난 88년 올림픽의 남북한 공동개최문제와 관련,국제올림픽위원회에 의해 제안되었으나 개최 방법등을 둘러싸고 남북한이 대립,수포로 돌아갔었다.
  • “북한의 정책변화 조만간 기대 못해” 소 로가초프차관

    【도쿄 UPI 연합 특약】 이고르 로가초프 소련외무차관은 북한 경제가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으나 북한의 내정이나 외교정책의 큰 변화는 조만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일본 신문들이 10일 보도했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미소및 한소 정상회담 내용을 설명하기 위해 방일중인 로가초프차관은 9일 일 외무성 아시아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 로가초프는 북한의 경제적 악화는 이 나라의 무역과 인민생활 수준에 역작용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일본 신문들이 전했다.
  • “북한 비 이성적 행동가능성 배제 못해”/일 방위청장관

    【도쿄 연합】 이시가와(석천요삼)일본 방위청장관은 8일 북한이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나올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시가와 장관은 이날 방일중인 호주의 에반스 외무ㆍ무역장관과 만나 한소 정상회담후의 북한측 동향에 관해 의견을 나눈 자리에서 이같이 밝히고 『북한이 비이성적인 행동으로 나올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 크게 걱정된다』고 말한 것으로 니케이(일경)신문이 8일 전했다.
  • 북한,고르바초프 비난/“한국과 배신적 거래했다”

    【도쿄 로이터 연합】 북한관영 중앙통신은 7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증오하는 한국의 지도자와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배신적인 거래」를 했다며 신랄한 비난을 퍼부었다. 도쿄에서 청취된 이 통신은 이날 북한의 지원을 받는 「한국민족민주전선」(구통혁당)의 명의로 된 성명을 통해 이같이 비난하면서 노태우대통령은 「파시스트 군부독재자」라고 주장했다. 이 성명은 『독재자 노태우는 어제는 우리 민족의 오랜 적이었던 일본왕실을 방문,굽신거리더니 오늘은 미국에 인사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소련에게까지 무릎을 꿇어 간청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와함께 이 성명은 『한국민족민주전선은 민족의 생존과 국가의 장래운명을 위기에 처하게 만든 노태우집단의 비굴하고 복종적이며 배신적인 방일,방미에 항의하는 모든 인민과 연대투쟁할 것』이라면서 『우리 민족은 그같은 한국 독재자와 얼굴을 마주한 크렘린 당국의 태도에 대해 회의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미,“한·소수교 적극 지원”/노대통령·부시 정상회담

    ◎한·미 긴밀한 안보협력 재확인/부시,“북한개방·남북대화에 적극 협조” 【워싱턴=특별취재반】 노태우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은 6일 한소 관계증진이 한반도 긴장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미국이 한소간의 국교정상화등 관계개선을 적극 지원,긴밀히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이날 상오 10시(한국시간 하오 11시) 백악관에서 1시간동안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최근 잇따라 열린 미소,한소 정상회담 결과를 상호 설명하며 향후의 한반도대책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같이 합의했다. 양국 대통령은 또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문제와 관련,이 문제는 한미 양국은 물론 소련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한반도의 안정과 북한의 개방화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노대통령은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있어서는 ▲북한이 남북대화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고 ▲핵안전협정에 가입,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성을 보이는지를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으며 이에대해부시대통령은 그것은 바로 미국의 대북한 기본입장이라며 전적으로 동감을 표시했다. 노대통령은 한소간의 경제협력방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시베리아개발등 소련의 대형프로젝트는 한국단독으로 보다는 미국과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한미간의 협조체제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하고 특히 남북관계의 기본적 정세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양국은 긴밀한 안보협력관계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대통령은 안보협력과 관련,『장기적으로는 주도적 방위는 한국이 맡고 미국은 지원체제로 전환해 나가지만 주한미군의 기본적 역할과 미국의 대한 방위조약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부시대통령은 노대통령으로부터 방일결과에 대한 설명을 듣고 『노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과거문제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 협력우호관계를 구축한 것은 미국으로서도 고무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노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최근 일련의 한소및 한일 정상회담과 미소 정상회담의 결과와 관련,동북아지역에서의 양국 협력방안과 대소정책을 논의했으며 한ㆍ미ㆍ일 등의 3국 협력관계강화문제도 깊이있게 논의했다. 양국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가 지난 88년의 86억달러 수준에서 점차 감소,올해에는 양국간의 무역수지가 균형을 이뤄갈 것임을 지적하고 통상문제가 양국간 원만한 협의를 통해 조정돼가고 있다는 데 만족을 표시했다. 한편 노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 주미대사관저에서 주미한국특파원과 수행기자단이 참석한 가운데 오찬회견을 갖고 자신의 이번 연쇄정상회담의 의의와 성과등을 설명하고 소감을 피력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촉진시키는 데 협조하겠다고 말했다』고 밝히고 『나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런 원칙에 동의하고 노력함으로써 나는 한국의 재통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이날 상오 9시(한국시간 6일 하오 10시) 퀘일 미부통령과 조찬을 함께하며 양국간의 협력방안과 한반도 주변정세등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다. 노대통령은 3박4일간에 걸친 샌프란시스코및 워싱턴 일정을 모두 마치고 이날 하오 3시(한국시간 7일 상오 4시) 워싱턴 앤드루스공군기지를 출발,호놀룰루로 떠났으며 이곳에서 1박한 후 8일 하오 귀국할 예정이다.
  • 노대통령­부시회담의 의의

    ◎「동북아평화」 구축에 한ㆍ미ㆍ소 “3각협력”/한반도 탈냉전에 양국 시각 일치/“핵협정가입” 대북압력 가중될 듯/한국 수입개방 긍정평가… 무역문제 이견없는 듯 노태우대통령과 부시 미대통령의 6일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은 미소 정상회담과 샌프란시스코의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진 직후에 잇따라 열렸다는 시기적인 연쇄성에 주목을 해야 한다. 노­부시회담이 한소 관계증진문제에 관해 완전히 시각을 같이하고 미국이 이 문제를 적극 지원,협력키로 한 것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의 평화구도구축에 큰 토대를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노­고르바초프회담의 큰 줄기가 그동안 동유럽을 시발로 확산되어 온 세계적인 개방과 협력의 조류를 냉전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로 옮겨놓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면 노­부시회담은 이를 가속화시키는 데 있어 미국이 최대의 역할을 하기로 다짐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미국은 그동안 한국의 대소접근등 북방정책이 미소간의 새로운 데탕트시대 개막과 기본적으로는 궤를 같이하는 것이지만 그속도와 방법에 있어 다소의 의구심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 양국정상은 한소ㆍ미소 정상회담에서 상호파악한 소련의 대동북아정책에 관한 평가를 충분히 교환함으로써 한소관계증진에 대한 양국간의 시각을 완전히 일치시킨 것이다. 노­부시회담에서 확인한 중요한 대목의 하나는 한반도안보정세에 있어 아직까지 안보상황이 기본적으로 변한 게 없다는 공동인식부분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한국이 주도적인 방위를 맡고 미국은 지원체제로 전환해 나가지만 적어도 현상태에서는 주한미군의 급작스런 감축등의 필요성이 제기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부시회담에서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관련한 당면현안은 ▲북한의 핵안정협정에의 가입 ▲남북대화에 성실한 자세로 임하는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면서 이를위한 공동노력을 펴나가기로 했다. 이는 미소ㆍ한소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보인 남북한 긴장완화에 따른 남북한 군축문제 제기와 어떤 연관성을 갖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나 구체적인 한미 양국과 소련의 시각차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소련으로서는 한반도에 대한 미소의 무기판매중지,한미간의 팀스피리트훈련축소 및 불실시,남북한 군축 등을 거론하면서 북한측의 군사핵무기개발을 어떠한 경우에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의 핵안정협정가입 수락을 적극 종용하겠다는 입장을 취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한반도긴장완화를 위해서는 북한이 개방되어야 하고 핵안정협정에 가입해야 한다는 데는 한국과 미소가 견해를 같이하면서도 군축문제등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한미 양국과 소련의 입장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미 정상회담은 또 노대통령의 지난달 24일의 방일과 관련,동북아평화정착을 위한 기존 우방인 한ㆍ미ㆍ일간의 긴밀한 협력을 강조했다. 특히 부시대통령은 한일 양국이 일본의 「사과」로 과거문제를 매듭짓고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사실을 높이 평가했는데 이는 동북아평화정착을 위한 일본의 적극적인 기여를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또 일본의 대북한 접근도 한미시각과 같은 연장선상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같이 한ㆍ미ㆍ일의 공동협력이 상승작용을 일으킬 때 북한의 개방은 앞당겨진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부시대통령에게 한소간의 경제협력방향을 설명하는 가운데 시베리아개발등 대형프로젝트에는 한국단독으로 보다는 미국등과 공동으로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미국측의 의사를 타진했으나 미국측의 반응은 즉각 알려지지 않았다. 이같은 노대통령의 제의는 한국이 대소경협문제에 대해서도 미국과 긴밀한 협력속에 진행할 것임을 간접적으로 확인시켜 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그보다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개혁ㆍ개방정책이 국내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도록 미국이나 일본이 지원해 주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의미로 풀이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노대통령의 한일ㆍ한소 정상회담과 부시대통령의 미소 정상회담의 결과를 모두 꺼내놓고 양국간의 공동협력방안을 심화시킨 데도 그 의미가 있지만 두 정상간의 만남이 지난해 10월이 후 8개월여만에 세번째였다는 점에서 한미간의 돈독한 관계를 내외에 과시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국정상은 이와함께 양국간 무역마찰해소등 통상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는데 우리측의 점진적인 수입개방화추세에 관해 미측이 긍정적인 평가를 보인 것으로 알려져 별다른 이견은 없는 것 같다. 이는 올해들어 우리측의 대미무역흑자가 현격히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도 잘 나타난다. 한미간에 당장 정상이 만나 해소해야 할 현안이 없다는 점을 보더라도 이번 노­부시회담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의 평화구도 구축에 있어 한미 양국의 공동보조를 재확인한 의미가 큰 것 같다.
  • 노대통령·고르바초프회담 이모저모

    ◎「86년 단절」 잇는 첫 악수… 화기 넘친 1시간/“반갑다”·“꼭 만나고 싶었다” 첫 인사/고르비 일정쫓겨 회담 1시간 지연/노대통령 회견장 성황… 소 방송 “전세계에 센세이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역사적인 샌프란시스코 회담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일정 지연때문에 당초 예정보다 1시간20분 늦은 4일 하오 5시20분(현지시간)부터 진행. 이날 한소 정상회담이 열린 페어몬트호텔 신관23층 스위트룸은 한쪽의 창이 태평양을 면해 있는 방으로 노태우대통령이 창을 향해,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을 등뒤로 해 양측 배석자와 나란히 착석. 회담시작직전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바쁜데도 만나 뵙게 돼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나도 바쁘지만 꼭 노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인사. 노대통령은 회담서두에 창밖의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건너편에 우리 한반도·소련 그리고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멀리 보면서 태평양서쪽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지역이며 이곳의 평화와 번영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화답.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과일에 비유,『우리가 시작한 새로운 시발을 잘 익도록 해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으로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는 등 회담 중간중간에 양국 대통령은 위트와 유머도 섞어가면서 화기로운 회담을 진행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전언. ○고르비,“시간 아쉽다” 당초 이날 하오 6시쯤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캄차카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일정이 순차적으로 늦어져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6시20분에야 끝나자 서둘러 회담장을 떠났는데 노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시간때문에 아쉽다. 오랜 시간의 비행계획이 남아있고 떠나는 일정이 급해 정말 아쉽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은 건설적인 양국관계의 출발』이라고 다시한번 의미를 강조. 이날 회담이 예정보다 늦어진 것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의 조찬을 1시간정도 늦게 시작해 그후일정이 자동적으로 순연했기 때문이라고. ○…한소 정상회담과 노태우대통령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한국기자들에게 별도로 회담내용을 발표. 이대변인은 『페어몬트호텔의 23층 페어몬트특실에서 1시간동안 열린 이날 회담에서 양국정상은 아주 솔직한 의견을 나누었으며 의례적인 것이 아니고 핵심적인 문제에 상호입장을 충분히 얘기해 합의를 도출한 회담이었다』고 소개. ○환한 표정으로 회견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양국정상회담이 끝난지 40분만인 하오 7시 정각에 시작,노대통령의 준비된 성명서 발표와 가지들의 일문일답으로 35분간 진행. 감색 양복을 입은 노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가 당초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둔 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인 페어몬트호텔 1층 베네치아홀에 입장한 뒤 곧바로 노창희의전수석의 통역으로 기자회견을 개시.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한반도 냉전의 얼음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내용등 중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응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노대통령은 7쪽의 성명서를 20분가량 읽어 내려간 다음 한국기자 2명(조선·한국)과 미국(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영국기자(파이낸셜타임)등 4명의 질문을 차례로 받고는 상세하게 답해 주었는데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코니강기자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끝에 『샌프란시스코시장과 시민들이 3일을 노태우 날로 지정해 주고 4일을 고르바초프의 날로 지정해 주는 알뜰한 협조와 정성을 보여준 데 대해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치하,역사적 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시에 대해 고마움을 표명. 노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자인 영파이낸셜 타임지 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보너스로 한분만 더 질문 받겠다』고 조크,굳어있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일순 바꾸는 여유를 보이기도. ○미·소측,삼엄한 경호 ○…이날 회담장인 페어몬트호텔에는 미국과 소련측 경호원들이 경비견까지 동원한 삼엄한 경비를 펴 엘리베이터 입구에서부터 내외신기자들의 접근을 차단.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경제인 오찬장인 본관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30여m 걸어와 회담장인 신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색 더블보턴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꽉 짜인 일정 때문인지 다소 피곤한 표정. 이날 회담장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미했기 때문에 모든 편의시설이용의 우선권을 소련측이 행사해 모든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경호절차를 소련측이 전담. 이 바람에 우리측 수행기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측 대표단을 뒤따르려다가 소련측 경호원들의 제지로 기록사진사 1명만 회담장 입장이 가능했으며 이 사진사도 회담시작 20여분전에 미리 소련측 안내를 받아 회담장인 23층에서 대기. ○미소회담 설명들어 ○…한소 정상회담을 6시간여 앞둔 4일 상오 10시(한국시간 5일 상오 2시) 노대통령은 숙소인 페어몬트호텔에서 솔로몬 미국무부 동아태차관보로부터 미소 정상회담결과에 대해 1시간15분동안 설명을 듣고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 대비하는등 분주한 일정. 솔로몬차관보는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이 성과를 거둬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을 갖게된 데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는 부시대통령의 인사를 전한 뒤 『부시대통령은 아울러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일왕과 일총리가 「솔직한 사죄」를 함으로써 미국의 주요한 아시아맹방인 한일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데 대해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언. ○김대표위원과 통화 ○…노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이 끝난 뒤 하오 10시30분쯤 서울로부터 걸려온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의 국제전화를 받고 정상회담결과 등에 대해 20여분간 환담. 김대표는 노대통령에게 『이번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냉전시대를 종식시키려는 노대통령의 의지와 우리국민 모두의 노력을 전세계에 과시한 것이며 우리 민족의 염원인 평화통일과 동북아안정을 앞당기는 획기적 계기였다』면서 『이번 회담은 우리 국민은 물론 세계인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고 경의를 표시. ○라이사,한인상점에 ○…고르바초프대통령부인 라이사여사는 4일 샌프란시스코 시내 관광중 한국교포 김혜자씨(31)가 경영하는 가게에 들러 약 10분간 담소를 나누면서 부군고르바초프대통령과는 또다른 내조자로서의 한소외교에 한몫을 담당. ○…소련의 모스크바방송은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이 전세계적으로 『진짜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모스크바방송은 노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쌍방의 수교문제와 경제협력 증대문제뿐 아니라 한반도평화 및 통일문제가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전하면서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간의 이 회담은 만남 그 자체에 「큰 의의」가 있다고 역사성을 부여한 로이터 통신의 보도를 인용,소개했다.
  • “동북아 긴장완화의 새 디딤돌”/한ㆍ소정상회담… 일 각계의 반응

    ◎“일도 평양과 적극접촉,북한개방 도와야/대소 경협엔 난제 많아 성급한 기대 금물” 미소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미국을 무대로 한국의 노태우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대통령간 사상 최초의 한소 정상회담 개최가 전격적으로 결정된 사실은 「아시아 신시대」를 예고하는 역사적인 것이라고 일본 각계에서는 받아들이고 있다.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8시)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이번 회담에 의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및 동유럽의 격변에 따른 유럽에서의 긴장완화의 물결이 동아시아에도 파급될 것인가 여부가 특히 주목을 끄는 대목이라고 일본의 각계 인사들은 지적하고 있다. 한소 접근의 의미와 한반도정세,나아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을 일본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아사히(조일)신문이 정리한 일본조야의 반응을 소개한다. ▷정계◁ 노태우대통령은 지난달 24일부터 26일까지 일본을 방문,한일간의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와 회담을 끝낸 뒤 쉴새도 없이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회담이 성사된 셈인데 그같은 노대통령의 의향은 방일중 일본측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가이후회담에 배석했던 일본정부의 한 관계자는 『북한과의 대화계속등 동아시아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굳은 결의가 엿보였다』고 말했다.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관방장관도 『한국정부에 허를 찔렸다는 기분은 없으며 오히려 휼륭한 크린히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회담의 성과에 기대를 표시했다. 이처럼 일본정계에서는 여ㆍ야당을 불문하고 한소 정상회담이 동아시아에도 긴장완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전 부총리는 『소련은 동구제국과 마찬가지로 북한을 안전보장상의 위성국으로 묶어둘 필요보다는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오히려 한소관계가 진전돼 긴장완화가 추진되면 주한 미군의 대폭 삭감 또는 철수가 이뤄질 수도 있다는 전략적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르며 앞으로는 북한이 이같은 움직임을 언제까지 외면할 수 있느냐가 관심의 초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7월중에 사회당 대표단을 이끌고 북한을 방문할 예정인 구보 와다루 사회당 부위원장은 『아시아라고해서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편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면서 『북한이 다시 고립의 길을 걷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대미관계가 개선될 징후도 보이고 있는 만큼 일본도 지나치게 한국을 의식할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계◁ 그간의 교류에 비추어 언젠가 그렇게 될 것으로 생각은 했지만 예상보다 빨리 왔다는 반응이 주류다. 이시카와(석천)일본 상공회의소장은 『양국 정상이 만나 국교가 수립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 『양국 관계발전이 일본과 소련의 경제협력이나 무역에 직접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모 대기업의 소련담당 책임자는 『일본은 수십년에 걸친 거래를 통해 대소 경제협력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선은 한국의 솜씨를 한번 지켜보자는 분위기가 많다』고 말해 성급한 대소 경제교류에주의를 환기시켰다. ▷학계◁ 고마키(소목)아시아 경제연구소 국제교류실 차장은 『한국의 북방외교에는 사회주의국가와의 교류를 추진함으로써 북한을 국제사회에 끌어들이겠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고 말해 한소 양국의 정치ㆍ경제적 이해가 일치했기 때문에 정상회담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중국문제 전문가인 나카지마(중도)교수(동경외국어대)는 『북한은 국제적 고립을 각오하고 있기 때문에 한소정상회담으로 당장 어떤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한소 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에서는 앞으로 남북대립 이외에 다른 좌표축이 설정될 것이 분명하며 그를 위해서는 일본과 북한이 양호한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미ㆍ소 정상,대결시대 종식 선언의 의미

    ◎아태지역 새질서 구축의 “청신호”/“북한개방이 평화정착 열쇠”판단/소도 냉전구도 청산을 강력 희망/크렘린,한ㆍ일 등과 경협 확대… 긴장완화 추구 미국과 소련의 두 정상은 3일 양국정상회담을 마무리짓는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정상회담으로 미소양국의 대결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했다. 회담의 구체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들이 있겠지만 이번 회담으로 전후냉전체제를 이끌어온 두나라는 대결시대를 마무리하고 상호협조의 터를 다지는 하나의 이정표를 마련했다.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입문제에 대해 양측의 이견이 아직 좁혀지지 않았으나 지난 6개월여 계속돼온 동유럽의 변화는 이번 미소의 만남으로 사실상 마무리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이제 세계의 관심은 한반도를 비롯,중국ㆍ베트남 등 마지막 남아 있는 아시아공산국들의 변화여부에 모아지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도 3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와의 새관계를 바탕으로 앞으로 태평양권에도 새질서를 발전시키겠다』고 말해 다음의 외교목표를 아시아지역에 두겠다는 뜻을 밝혔다. 고르바초프는 이 계획의 일환으로 아태국들과의 경제협력체 구성을 위해 내년초 일본방문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노태우대통령과의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 합의와 대한수교의사는 고르바초프의 이러한 정책의 구체적인 첫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련은 고르바초프 집권이후 아시아 지역에서의 새 질서모색을 위해 정기적으로 여러 제안들을 내놓았다. 지난 86년 7월 블라디보스토크 선언에서 중국과의 화해를 천명한 것을 비롯,그해 11월에는 아태지역의 비핵화 등 군축을 제의한 「뉴델리 선언」,그리고 88년에는 이 지역국들의 경제협력과 집단안보 구상을 골자로 한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을 내놓았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아프가니스탄과 캄보디아주둔 베트남군의 철수가 이뤄졌고 89년 5월과 금년 4월 두차례에 걸쳐 중국과의 수뇌회담이 성사돼 양국 국경의 병력감축 합의가 발표됐다. 그동안 동유럽에서는 소위 「브레즈네프 독트린」의 페지로 거의 모든 나라에서 공산정권이 무너지는 일대 변혁이 진행됐다. 그러나 중국과 북한 등 아시아 공산국들은 좀체 변화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들도 80년대 들어 정치체제를 고수하면서 경제적인 변화만 추구한다는 소위 「위로부터의 개혁」방식을 도입,나름대로 변화를 모색했지만 그 정도는 너무 미약했다. 정치와 경제체제를 한꺼번에 바꿔버린 동유럽의 변혁물결이 일자 이들은 결국 체제안보를 위해 변화시도 자체를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6월 북경의 천안문 사태가 그 단적인 예이다. 북한은 동유럽 각국에서 유학생들을 불러들이고 남북대화를 교착상태에 빠지게 했다. 소련으로서는 아시아지역에서 유럽에 상응하는 군축,그리고 시베리아를 포함한 극동지역 개발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변화노력을 이곳에서 펼칠 때가 된 것이다. 아시아에서 동서대결구도가 청산되지 않는한 북한이 가지고 있는 전략적인 가치를 소련은 포기하기 어렵다. 북한은 주한미군과의 대치지역이고 블라디보스토크항에서 발진한 소태평양함대가 태평양으로 빠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소양국은 한ㆍ미ㆍ소 3국이 북한을 설득,개방을 촉진함으로써 남북한 대화와 미ㆍ북한관계개선 그리고 이 지역의 군축에 진척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한반도에서의 긴장완화를 위해 노력한다는데 합의를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과의 수교를 단기적으로 북한에게는 충격이겠지만 결국 이지역의 긴장완화를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게 소련의 판단인 듯하다. 북한의 충격완화를 위해 일시적으로는 주한미군철수,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 대체 등 북한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지지하겠지만 소련이 한반도에서 바라는 것도 결국은 독일식의 해결방안일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북방4개섬 반환문제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일본과의 관계개선도 아시아지역의 새질서 구축에 큰 도움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본과의 본격 협력시대를 열어 새 아태협력체를 구성시키겠다는 것이 소련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북한ㆍ중국을 포괄하는 구상이다. 고르바초프의 내년 방일은 이런 점에서 큰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동유럽의 변혁물결과 본격화될 소련의 아시아정책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유럽대륙에서와 같은 화해의 새바람이 불기에는 아직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오는 9월 북경아시아게임을 고비로 중국도 대외개방과 민주화를 추진할 것이란 전망들이 있으나 아직은 뚜렷한 변화조짐이 없다. 노대통령은 3일 한소정상회담을 위해 출국하면서 출국인사를 통해 『우리의 분단상황은 결코 21세기로까지 이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10년안에 한반도의 통일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남북한과 미ㆍ소ㆍ중ㆍ일 등 관련국이 무엇보다 먼저 할일은 이 지역의 긴장완화와 대결구도 청산일 것이다. 남북한을 포함한 아시아인들에게 주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의 의의는 바로 이런 노력의 첫발을 내딛게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 외언내언

    이런 우스개가 있다. 체르넨코가 죽고 고르바초프가 새 서기장으로 선출되어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얘기. 미국 기자가 질문했다. 『서기장은 당내에서 가장 급진적인 분이라 듣고 있습니다. 하지만 각료를 정할 때는 당신을 지배하는 강력한 지지자와 상의는 하겠지요』. 서기장의 대답­『여보쇼 기자 양반,이런 자리에서 내 안사람 얘기는 끄집어 내는 게 아니오』. ◆「아내 무섬쟁이」라는 뜻일까. 미소 짓게 해준다. 하여간 라이사여사는 「새 역사」를 만든 여성. 소련공산당 서기장의 아내는 공개석상에 나타날 수 없다는 크렘린의 터부를 타파해 버렸기 때문이다. 11살짜리 손녀까지 있는 57세 할머니이건만 「미인」. 공식석상에 함께 나타나기로 한 것은 「서기장­대통령」의 뜻이었을까. 「강력한 지지자」의 뜻이었을까. ◆바늘 가는데 실이 가는 건지 실 가는데 바늘이 가는 건지 서방지도자 부부같은 고르비­라이사. 고르바초프가 서기장이 된 해인 85년,제네바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때부터 그랬다. 그 때의 상대 퍼스트 레이디는 낸시 여사. 그 후로도 세계 각지의 외교행에 부군과는 「빛과 그림자」가 되어온다. 이번 미국에서의 미소 정상회담에도 물론 동행. 이번의 상대는 바버라 여사다. ◆사치가 지나치다는 비난도 더러 듣는 모양이지만 미모와 독특한 패션감각으로 해서 가는 곳마다 화제를 불러일으켜 온 라이사 여사. 그것은 지난해 5월의 베이징 나들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신문·방송은 「미인 라이사」의 쾌활한 성격과 지성을 찬양했던 것. 「라이사 패션」이 미국에 상륙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니다. 이번 미국 나들이에서도 라이사 여사의 동정은 관심의 대상. 러시아 고문서 전시회 리셉션에도 고문서보다 라이사를 보러온 사람들이 많았다지 않은가. ◆퍼스트 레이디도 외교를 함께 하는 시대. 지난번 노대통령이 방일했을 때 우리 퍼스트 레이디의 잔잔한 웃음이 떠오른다. 품위있는 모습이 아니었던가.
  • 청와대­크렘린 밀사의 “막후작품”/「샌프란시스코 대좌」성사되기까지

    ◎“평양 우회길 만들라” 지시로 급속추진/워싱턴 접촉서 소련측 “굿 아이디어”/박철언­고르비측근 회동서 합의한 듯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외교기념비적인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은 준비자체가 극비리에 진행된 만큼 이를 성사시킨 주인공이 누구인지와 양국간 교섭에 따른 뒷얘기 등이 초미의 관심을 끌고있다. 노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지난 4월7일부터 착수돼 5월17일 소련측이 최종수락을 통보해오기까지의 40여일간 막후교섭은 우여곡절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번 정상회담과 관련,노태우대통령은 지난 4월7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5월30일 미국 워싱턴에 도착,미소 정상회담을 노­부시 한미 정상회담 예정일 다음날(5월31일)부터 갖는다』는 보고를 받고 한소 정상회담이 반드시 이뤄지도록 교섭할 것을 지시하면서부터 한소간의 막후접촉이 청와대와 크렘린사이에 개시됐다는 후문. 노대통령은 당시 특히 『북한 김일성이 남북 정상회담에 불응하고 있고 현상황에서 남북관계를 푸는 최선의 길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만나는 것』이라고 말하고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과 김종휘외교안보보좌관에게 이같은 차원에서 회담이 성사되도록 지시했다는 것. 노대통령은 31일 낮 청와대 보좌관들과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평양으로 바로가는 길이 트이지 않는 지금 우리는 모스크바를 통해 평양으로 가는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고 말해 한소 정상회담에 거는 기대를 다시한번 강조. 한편 김종휘보좌관은 노대통령의 긴급지시를 받고 5월1일부터 3일간 극비리에 미국을 방문,워싱턴과 뉴욕을 주무대로 미소 관계자들과 한소 정상회담 개최에 따른 모종의 협의를 가졌다고. 당시 김보좌관은 그동안 20여일간에 걸친 막후분위기 조성을 토대로 소련측에 미국에서의 한소 정상회담 개최의사를 다시한번 전달했으나 소련측은 『굳 아이디어』(좋은 착상)라는 반응만 보인 채 확답은 하지 않았다는 것. 김보좌관은 한미 정상회담ㆍ한소 정상회담을 연쇄적으로 묶기 위해 미측과는 노대통령이 부시대통령과 회담후 함께 테니스를 하는 일정까지 잡았으나 소련측이 계속 확답을 유보한채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신호가 와 일단 귀국해 4일 아침 노대통령에게 전말을 보고. 이에 따라 노대통령은 청와대 참모들과 숙의를 거듭한 끝에 당초 계획했던 일본 캐나다 미국 멕시코의 4국 순방일정을 조정,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3국 일정은 취소키로 하고 이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을 통해 이를 공식 발표했던 것. 청와대는 그러나 소련측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부시 미대통령과의 워싱턴회담이 끝나는 6월3일 이후의 일정에 대해 일체 언급이 없는 사실에 주목,노실장과 김보좌관을 포스트플레이로 하면서 소련측의 속마음을 집중분석하고 한소 막후채널을 다시 풀가동. 이윽고 지난 17일 크렘린으로 부터 「OK」 연락이 청와대로 급전되어 청와대와 외무부당국은 극비에 실무문제를 본격추진. 노­고르비회담을 우리측에 직접 통보하러 크렘린으로부터 밀사가 서울에 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그가 누구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전 주미 소련대사였고 지금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의 고문인 도브리닌이 5월22일부터 서울에서 개막된 전직국가수반회의(IAC)에 참석차 20일 전후로 우리나라에 왔고 23일 저녁에는 노대통령이 회의참석자를 위해 베푼 청와대만찬에 참석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어 도브리닌고문이 바로 밀사였거나 그와 비슷한 시기에 입경한 다른 「핵심인사」가 있었을 것으로 관측. ○…이번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주인공이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는데 『지난 4월26일 외유를 떠났던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 동독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핵심측근(KGB의 고위관리와 일정담당보좌관)과 만나 정상회담개최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는 분석이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 외무부도 이에대해 『외교는 외무부만 하는 것이 아니다』 『박 전장관이 북방외교에 깊숙히 개입해오지 않았느냐』고 밝히는등 대체적으로 수긍하는 인상. 외무부의 다른 당국자는 이번 회담성사와 관련,『양국 정상측근들이 준비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혀 양국외무부를 중심으로 한 교섭이 아닌 청와대와 크렘린사이의 성층권에서 이뤄졌음을 강하게 시사. ○…박 전정무장관은 지난 4월26일 외유를 떠나면서 공항에서 『단순히 머리를 식히기 위해 몇 개국을 둘러볼 예정』이라면서도 북방정책관계자인 강근택비서관을 대동한 이유에 대해 『밝힐 수 없는 공적인 업무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 전장관은 지난 29일 귀국 후 다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6월중 한소간에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라고 예고,밝힐 수 없는 공적인 업무가 한소간의 관계증진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었음을 시사. 동독에서 원칙적인 합의가 있은 뒤 구체적인 일정은 지난 28일부터 서울서 열리고 있는 「소련주간행사」에 참석하러 온 소련당정인사들과 청와대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는 후문. 이 행사에는 소련측에서 2백여명의 준비요원이 참석했는 데 이 중에서 에너지부 부위원장을 비롯한 5명의 고위인사가 노­고르바초프회담성사에 따른 막바지 실무협상을 우리측 관계자와 가졌다는 것. 한편 청와대측은 당초 30일 상오 「6월2일 공식발표 때까지 비보도」를 전제로 언론사에 한소 정상회담사실을 브리핑했으나 일부 언론이 이를 지키지않은 데다 외신이 먼저 보도하면서 혼선이 일기 시작하자 정상회담 발표시기를 2일에서 1일로 앞당겼다가 소측과의 협의를 거쳐 다시 31일 하오 3시 한소 정상회담사실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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