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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룡훈련’도 한국군 단독 진행… 한미훈련 줄줄이 축소

    국방부 “실질적 연합방위 태세 문제없다” 한미연합 상륙훈련인 ‘쌍룡훈련’이 올해는 미군 병력과 장비 참여 없이 한국군 단독 훈련으로 진행된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분위기 유지를 위해 한미가 최근 연합 훈련을 줄줄이 폐지·유예하거나 축소하는 방향과 연계된 것으로 풀이된다. 군 관계자는 4일 “올해 쌍룡훈련을 단독 훈련으로 진행하는 계획을 검토해 왔다”며 “미군이 참여하지 않는 만큼 쌍룡훈련이란 명칭 대신 ‘19-1 합동상륙훈련’이란 이름으로 단독 훈련을 진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쌍룡훈련은 매년 4월 독수리 훈련(FE) 기간에 연계해 실시하는 연대급 야외기동훈련(FTX)으로, 유사시 한미 해군과 해병대가 적 해안으로 상륙해 상륙부대의 진로를 개척하는 능력을 배양할 목적으로 실시돼 왔다. 미군은 이 훈련에 격년제로 참여했지만 한국군 단독 훈련을 시행하는 해에도 소규모의 병력과 장비 등을 지원해 왔다. 올해 미군이 쌍룡훈련에 완전히 배제된 것은 연대급 이상 훈련은 각자 단독으로 시행한다는 한미의 지난 2일 결정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한미는 연합훈련인 키리졸브 연습(KR)을 폐지하는 대신 기존보다 기간과 규모를 축소한 새로운 지휘소연습(CPX)인 ‘동맹’ 연습을 4일부터 시작했다. 자유한국당 백승주 의원은 한미가 키리졸브와 독수리 훈련을 폐지키로 지난 2일 결정한 데 대해 “대북군사위협에 대비해야 하는 한미 군사대비 태세를 크게 약화시킨 조치”라며 “북한의 위협 앞에서 스스로 무장해제를 선택한 것”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최현수 국방부 대변인은 “새로 마련된 연합 지휘소연습과 조정된 야외기동훈련 방식으로 실질적인 연합방위 태세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트럼프 “한미훈련 안 하면 수억 달러 절약”

    사업가 기질 드러내며 ‘안보=돈’ 강조 주한미군 방위비 협상에도 영향 미칠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트위터에 “한국과 군사훈련을 원치 않는 이유는 되돌려받지 못하는 수억 달러를 아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어 “이는 내가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나의 입장이었다”면서 “또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긴장을 줄이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한미가 올해부터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대신 소규모 동맹 훈련에 나서기로 한 것에 대한 비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미 조야 일각에서는 ‘노 딜’ 북미 정상회담 후 결정된 한미 연합훈련 종료가 ‘북한에 대한 일방적 양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안보도 돈이 돼야 한다’는 ‘사업가’ 기질을 다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트럼프 정부의 전 고위관리의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안보 브리핑을 하는 자리에서 ‘우리 장군들은 사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이는 정보·안보 관계자들에게 국제안보·갈등을 경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라고 요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시각은 향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의 한미 훈련 중단 결정은 결국 돈 때문이고, 북한과의 긴장 완화는 후순위”라면서 “매년 이어질 방위비 분담금 조정 등에서 난항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이날 한 인터뷰에서 한미 훈련을 재개할 계획이 없음을 확인한 뒤 “현시점에서 대규모 전쟁훈련을 시작할 생각은 없다. 다만 언제든 대통령이 재검토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 1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우리의 원칙적 입장에는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란 발언에 대해 “북한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와 대화를 계속할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옛 개인 변호사 마이클 코언의 의회 청문회가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하면서 청문회를 추진한 민주당을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북한과 아주 중요한 핵 정상회담을 하는데 그 시간에 민주당이 유죄판결을 받은 거짓말쟁이이자 사기꾼에 대한 공개 청문회를 연 것은 아마도 미 정치의 새로운 저점을 찍은 것”이라며 “이것이 아마도 내가 회담장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걸어 나오는 데 기여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조직와해 위기·일선 유치원 이탈에… 한유총 “무조건 개학” 유턴

    조직와해 위기·일선 유치원 이탈에… 한유총 “무조건 개학” 유턴

    개학 연기 참여 예상치 6분의 1 수준 그쳐 교육부·공정위·검찰 전방위 압박이 결정타 한유총 이사장 “곧 거취 표명” 사과했지만 ‘유치원 3법’ 반대 고수… 시간벌기 가능성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가 4일 ‘개학 연기’ 투쟁을 하루 만에 접은 것은 막가파식 전략을 계속 고수하다가는 조직 전체가 와해될 것이라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한유총 집행부의 강압에 못 이겨 개학 연기를 결정했던 상당수 유치원들이 전날 밤 급히 연기 결정을 철회하는 등 결속력 약화 조짐이 보였다.한유총이 꼬리를 내린 결정적인 원인은 정부가 공권력을 총동원해 압박했기 때문이다. 한유총 관계자는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계획대로 5일까지 회원들에게 폐원 투쟁 의견을 받은 뒤 (폐원 투쟁 실행 여부 등) 향후 행보를 결정할 것”이라며 강경 기조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서울교육청의 설립 허가 취소에 이어 교육부의 공정위 신고, 검찰의 동시다발 수사 조짐이 나타나자 벼랑 끝 전술을 이어가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덕선 한유총 이사장은 “모든 사태의 책임을 통감하며 조만간 거취표명과 입장을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유총은 개학 연기 투쟁 철회문을 통해 “개학 연기 사태로 국민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개학 연기 준법투쟁을 조건 없이 철회한다”면서도 “정부가 경찰관, 시청공무원, 교육청공무원을 동원해 개학 연기 참여 유치원을 압박했으며, 이로 인해 유치원 현장의 혼동과 학부모의 불안이 가중됐다”고 밝혔다. 혼동의 원인을 정부 탓으로 돌린 셈이다. 개학 연기 투쟁 철회는 한유총의 벼랑 끝 전술이 이젠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그동안 한유총은 유치원을 휴업하거나 폐업하면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큰 피해가 돌아가 여론의 화살이 정부로 쏠리는 약점을 활용해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해 왔다. 다만 개학 연기 투쟁 철회가 한유총의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 전략일 가능성이 크다. 한유총의 최대 목표인 ‘유치원 3법’ 통과 저지를 위해선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한유총이 자유한국당과 보수 언론을 우군 삼아 사립유치원 설립자의 전횡을 막고 공공성을 높이는 ‘유치원 3법’ 통과를 저지하려는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는 게 교육계의 분석이다. 한유총 관계자는 “개학연기 투쟁이 준법 투쟁이며 이번 사태가 정리된 이후 폐원 투쟁 등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미일 안보논리의 희생양 오키나와… 주민투표까지 묵살당해

    미일 안보논리의 희생양 오키나와… 주민투표까지 묵살당해

    日 0.6% 땅 미군기지 74% 몰려 있는 곳 70년된 후텐마, 위험한 비행장으로 악명 이전 추진·취소 번복… 24년째 지지부진 주민 72% 대체지 헤노코 매립 반대 투표‘이것이 민주주의 국가인가.’ 지난달 26일 아침 일본 아사히신문에는 다소 격한 제목으로 사설이 실렸다. 다음날 도쿄신문도 사설을 통해 ‘민주주의를 업신여기지 말라’고 일갈했다. 두 신문이 공통적으로 가리킨 곳은 일본 정부였다. 아베 정권이 지난달 24일 실시된 오키나와현 주민투표 결과를 짓뭉개고 미군 해병대 비행장 건설 공사를 강행키로 한 데 대한 비판이었다. 연간 1000만명이 찾는 짙푸른 쪽빛바다 상하(常夏)의 땅. 사계절 내리쬐는 뜨거운 태양 아래 피로 물든 역사를 간직한 땅. 전투기들이 뜨고 내릴 활주로 건설을 둘러싼 오키나와의 갈등이 점점 더 고조되고 있다. 일본 전체의 0.6%밖에 안 되는 땅에 주일미군기지의 74%가 집중돼 있는 오키나와. 투명한 바다에 잿빛 토사를 들이부어 군사기지를 만들고 있는 정부에 맞서 주민들은 필사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긴 세월 본토로부터 받아 온 차별과 핍박에 대한 분노의 외침이기도 하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이전 갈등의 과거와 현재를 문답으로 알아본다. -사안의 핵심은 무엇인가. “기노완시의 ‘후텐마’라는 지역에 있는 70년 이상 된 미군기지를 없애고 이를 북서쪽 해안지대 ‘헤노코’(나고시)로 이전하는 것을 둘러싼 문제다. 일본 정부가 주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기지 이전을 위한 해안 매립공사를 시작하면서 대립이 한층 격화됐다.” -오키나와에 대해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오키나와는 원래 ‘류큐’라는 이름의 독립된 왕국이었다. 그러나 일본이 1609년 이곳을 정복했고, 메이지유신 이후인 1879년에는 ‘오키나와’라는 이름으로 자국 영토에 정식 편입시켰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1945년 4월 미군이 상륙한 이후 단 3개월간의 지상전투에서 주민 9만 4000명을 포함, 총 2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 일본군은 오키나와 주민들이 미군에 협력할 것을 우려해 집단자결을 강요하기도 했다. 종전 후 27년간 미군의 군정통치를 받은 뒤 1972년 5월 일본에 반환됐다.” -후텐마 기지가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비행장’으로 통한다는데, 왜 그런가. “미군은 1945년 오키나와를 점령하자마자 일본 본토 공습을 위해 대형 폭격기 등 이착륙이 가능한 활주로를 건설했다. 전쟁 중에 급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민간인 거주지와의 거리 등 주변여건 고려는 생략됐다. 종전 이후 오키나와를 북태평양의 군사 요충지로 삼은 미군은 면적 4.8㎢의 후텐마 기지를 그대로 유지했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이곳이 오키나와현에서 인구밀도가 특히 높은 기노완시 주택가에 인접해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소음은 물론이고 때때로 일어나는 군용기 사고 등에 불안을 호소해 왔다. 그러나 대체부지와 비용 등 문제로 진전은 없었다.” -1995년에 큰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지 이전 논의가 활발해졌다던데. “그해 9월 주일미군의 12세 소녀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당시 미군은 범인 3명의 일본 측 신병 인도를 거부했고, 주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이는 후텐마 기지 폐쇄 운동으로 이어졌다. 결국 1996년 4월 당시 하시모토 정권은 기지를 5~7년 내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그래서 결정된 곳이 헤노코인가. “1996년 12월 미일 정부는 오키나와섬 동쪽 앞바다 헤노코 지역을 대체부지로 선정했다. 하지만 오키나와 주민들은 헤노코로 옮기더라도 안전이 위협받기는 마찬가지이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안 산호초 지역을 파괴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반대했다. 미군기지를 오키나와 바깥으로 옮겨 달라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미일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1999년 12월 ‘헤노코 이전’을 최종 확정했다. 이후 지난한 과정을 거쳐 2014년까지 ‘헤노코 연안지역 매립→V자형 활주로 건설’을 완료하기로 2006년 확정했다.” -지난해 말에야 매립이 시작된 것은 왜인가. “2009년 9월 민주당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당시 민주당의 선거공약은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바깥 이전’이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미국의 반대와 본토의 우려가 커지자 결국 8개월 만에 공약을 번복했다. 환호했던 오키나와 주민들은 실망과 분노로 바뀌었다.” -2012년 12월 아베 내각이 다시 들어서면서 기지 이전에 속도가 붙은 건가. “그렇다. 5년 만에 다시 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 올인’이라는 일본 보수 외교의 기조를 한층 강화했다. 지지부진했던 헤노코 이전을 2022년까지 완료하기로 미국 정부와 합의했다. 오키나와에는 낙후된 경제의 지원이라는 당근을 제시했다.”-오키나와현도 초기에는 찬성을 했다던데. “2013년 말 당시의 오키나와현 지사는 경제발전을 조건으로 내건 정부 방침을 수용, 헤노코 앞바다에 대한 토사 매립을 승인했다. 그러나 1년 만인 2014년 12월 ‘헤노코 이전 강력 저지’를 내건 오나가 다케시가 지사에 당선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오나가 지사는 2015년 10월 전임자가 했던 연안부 매립 승인을 전격 취소했다. 정부는 ‘승인 취소는 위법’이라며 법원에 제소했다. 이듬해 최고재판소는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다.” -지난해 오키나와현 지사의 사망이라는 급변 요인이 있었다. “췌장암 수술을 받았던 오나가 지사가 지난해 8월 세상을 떴다. 생전에 “헌법이 국민에게 약속하는 자유, 평등,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똑같이 보장되고 있는가”라고 외쳤던 그의 죽음이 주민들에게 안겨 준 상실감은 매우 컸다. 반면 아베 정부는 이를 기지 이전 실현을 위한 절호의 기회로 보고 여당 측 인사를 후임 지사에 당선시키려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9월 치러진 선거에서 전임 오나가 지사의 유지를 계승한 다마키 데니가 당선됐다. 아베 정권은 충격을 받았지만, 오히려 이를 계기로 공격적 행보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지난해 12월 시작된 헤노코 연안 매립 강행이다.”-그러면 지난달 24일 치러진 오키나와 주민투표는 무엇인가. “정부의 전방위 강공 드라이브에 다마키 지사는 ‘주민투표 실시’로 맞섰다. 오키나와현 조례를 만들어 헤노코 연안 매립공사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었다. 결과는 ‘매립 반대’(43만 4273표)가 72% 이상으로 나타났다. 다마키 지사는 지난 1일 아베 총리에게 투표 결과를 전달하고 공사 중지를 재차 요청했다.”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아베 정부는 투표 이전부터 단순한 현의 조례로 이뤄지는 투표결과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왔다. 아베 총리 본인이 투표 다음날 “결과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기지 이전을 더 늦출 수는 없다”고 거부의사를 명확히 했다. 맨 앞에서 인용한 아사히신문 등의 사설은 이렇게 민의를 무시하는 데 대한 비판이었다.”-아베 정부에 새로운 난관이 나타났는데. “이른바 ‘마요네즈 지반’의 문제다. 활주로가 놓여질 매립 예정지의 40%가 연약지반인 것으로 드러났다. 방위성은 해저에 7만 7000개의 모래말뚝을 박는 공사를 추가로 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를 위한 설계변경에는 오키나와 지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다마키 지사가 받아들일 리가 없다. 새로운 법정 공방을 예고하는 부분이다. 공사의 파행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아사히신문 사설은 이렇게 적고 있다. “기술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현재 계획의 파탄은 분명하다. 공사의 장기화를 피할 수 없기 때문에 헤노코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후텐마 기지의 고착화를 가져올 것이다. 아베 정권은 신속히 공사를 멈추고, 오키나와현 및 미국 정부와 협의에 들어가야 한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중재자 文 속도전… ‘영변핵 완전폐기’로 경협 제재면제 이끈다

    중재자 文 속도전… ‘영변핵 완전폐기’로 경협 제재면제 이끈다

    “플루토늄·우라늄 농축시설 등 폐기 땐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진입 평가해야” 北 궤도 이탈 막으려 유인책 제시한 듯 靑 “트럼프 영변+α 의미 정확하지 않아 한미 당국 한치 어긋남 없이 내용 공유” 이해찬 “트럼프, 文에 7차례나 중재 요청”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에서 제재의 틀 내에서 남북관계 발전과 판문점선언과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된 남북 협력사업의 속도감 있는 준비를 강조한 것은 ‘하노이 핵담판’ 결렬 이후 중재 역할에 전방위로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2차 북미 회담을 계기로 미국이 단계적·동시적 이행에서 ‘일괄 타결’로 선회한 가운데 ‘제재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 선순환을 통해 돌파구를 찾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이 “플루토늄 재처리 시설과 우라늄 농축 시설을 포함한 영변 핵 시설이 완전히 폐기된다면 북한 비핵화는 진행 과정에 있어서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 점이 눈에 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영변이 북한 핵 능력의) 70%이든 80%이든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영변을 폐기하면 되돌아갈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미국이 요구하는 비핵화 수준이 ‘영변+α’임은 분명해졌지만 향후 중재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영변의 완전한 폐기를 지렛대 삼아 미국에 남북경협에 대한 제재 예외 인정을 설득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궤도 이탈을 막으려면 ‘유인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대화 공백·교착이 오래 계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북미 실무 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노력해 달라”며 “그 과정에서 우리 역할도 다시 중요해졌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 1월 스웨덴 남·북·미 1.5트랙 대화와 같은 3자 협의체를 추진하기로 한 것은 비핵화와 상응조치에 대한 이견을 좁히는 것뿐 아니라 3자 협의체 상설화 등 비핵화 대화 형식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밝혔던 ‘영변+α’와 관련, 김 대변인은 “‘+α’가 특정시설을 가리키는지 대량살상무기(WMD) 등에 대한 조치를 포함한 포괄적인 것을 요구하는지 의미가 정확하지 않다”면서도 “전자라 해도 한미 정보당국이 한 치의 어긋남이 없이 내용을 공유하고 있고, 북한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여야 5당 대표 월례 회동에서 “북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 25분간 통화하면서 7차례나 ‘중재 역할을 해 달라, 김 위원장의 진의를 파악해 달라’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어른 됐으니 이제 새옷 입어야지’...황당한 日 개헌 노래 논란

    ‘어른 됐으니 이제 새옷 입어야지’...황당한 日 개헌 노래 논란

    일본의 집권 자민당 직원이 헌법 개정을 촉구하는 ‘개헌송’ 음반을 내 논란이 일고 있다. 노래 제목은 ‘헌법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헌법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절대가치가 아니라 단지 도구일뿐이므로 변화한 시대에 맞게 고쳐야 한다는 내용이다. 개헌을 바라보는 개인들의 입장에 따라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가사에 합리성과 논리성이 결여됐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4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2분 52초 길이의 이 노래는 지난달 6일 1080엔(약 1100원)에 CD로 발매됐다. 같은달 19일에는 영상도 ‘유튜브’에 올려졌다. 제목을 입력해 검색하면 들을 수 있다. 가사의 내용은 ‘언제까지나 같은 옷을 입을 수는 없잖아. 어른이 됐으면 이제 갈아입어야지.’, ‘헌법은 단지 도구일뿐이야. 바꾸는 걸 두려워하지마. 헌법보다 소중한 것은 것은 우리가 매일 행복하고 안전하게 사는 거잖아.’ 등으로 구성돼 있다. 노래 제작을 기획하고 직접 부른 사람은 자민당 정무조사회 심의역을 지낸 다무라 시게노부(66). 지난해 1월 정년 퇴직한 그는 현재 촉탁직원으로 재고용돼 일하고 있다. 그동안 안보정책과 헌법 문제에 대해 ‘방위정책의 진실’, ‘개정 일본헌법’ 등 공저를 포함, 약 50권의 책을 낸 인물이다. 그는 “자민당과는 전혀 상관없는 개인 차원의 음반 취입으로 앞으로 알찬 제2의 인생을 위해 한 일”이라고 마이니치에 말했다.그러나 마이니치는 노래 전체에 흐르는 경박함을 지적하며 “가사에 매일을 행복하게 안전하게 사는 것이 헌법보다 소중하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현행 헌법 하에서는 그런 삶이 불가능하다는 얘기인가”라고 반문했다. 특히 다무라가 개인 차원이라고는 했지만, 좀체 힘을 받지 못하는 개헌 여론을 띄우기 위해 자민당이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몰이를 하려는 조직적 시도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전력 불보유’를 명시한 현행 헌법에 자위대 근거 조항을 명기하기 위한 개헌을 추진 중이지만, 야권과 시민단체는 물론이고 일반국민들도 냉담한 반응을 보여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마이니치 여론조사에서 국회가 개헌안 발의를 서두를 필요가 있는지를 물은 데 대해 ‘아니다’(66%)라는 응답이 ‘그렇다’(22%)의 3배에 달했다. 규슈대 법학부 미나미노 시게루 교수는 “노랫말에 ‘헌법은 도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헌법이 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에선 맞지만, ‘어른이 됐으니 갈아입자’고 하는 것은 헌법에 대한 비유로 부적절하다”고 마이니치에 말했다. 문필가 히라카와 가쓰미는 “마치 컴퓨터가 낡았으니 새로 사자는 것과 같은 발상”이라며 “시대가 변했다는 단기적인 이유로 국가규범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헌법이 존재하는 것인데, 이 노래는 헌법의 기본정신을 무시했다”고 지적했다.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사설] 키리졸브 종료, 북미 비핵화 협상 서둘러 재개해야

    한국과 미국 국방당국은 올해부터 키리졸브(KR:Key Resolve) 연습과 독수리훈련(FE:Foal Eagle)이란 이름의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어제 결정했다. KR연습은 11년 만에, 독수리훈련은 4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대신 KR연습은 ‘동맹’이란 한글 명칭으로 바꿔 4일부터 12일까지(주말 제외) 7일간 시행하고, FE훈련은 명칭을 아예 없애 대대급 이하 소규모 부대 위주로 연중 실시하기로 했다. 두 훈련은 한미연합방위태세 유지를 위해 매년 초 시행해 왔던 2대 핵심 훈련이다. 정경두 국방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은 그제 전화 통화에서 이번 결정이 한반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비핵화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려는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 이번 결정은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사실상 결정됐으나, 양국 국방장관 간 통화로 최종 결정됐다. 비록 북미 정상 간의 지난달 27~28일 하노이 ‘핵담판’이 성과 없이 끝났지만, 차후 대화의 동력과 모멘텀 유지를 위해 국방 당국이 힘을 보태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군사훈련 중단 의지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여부에 대해 “군사훈련은 내가 오래전에 포기했다. 우리가 이런 훈련에 수억 달러를 사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쨌든 이번 결정을 통해 한미는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하고, 북한은 핵·탄도 미사일 시험을 더이상 하지 않는 이른바 ‘쌍중단’의 암묵적 합의틀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한미 연합훈련은 북한이 꼽는 최대 위협이다. 핵무기 투발이 가능한 전략폭격기와 항공모함 등 전략자산이 대거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KR과 FE훈련에 대해 “침략전쟁 연습”이나 “핵전쟁 연습” 등의 격한 어조로 강력히 반발해 온 이유다. 이번 한미 군사훈련 중단 선언에 북한은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구체적 조치로 화답하길 바란다.
  • 키리졸브→‘19-1 동맹’…기간·규모 절반

    美전략자산 전개 ‘독수리’…대대급으로 을지훈련 등도 유예 또는 축소될 듯 한미가 3일 키리졸브(KR) 연습과 독수리 훈련(FE)을 종료하기로 결정하면서 대체될 훈련 형태에 관심이 쏠린다. 한미는 지휘소 연습(CPX)인 키리졸브 연습을 ‘동맹’ 연습으로 이름을 바꿔 4일부터 12일까지 주말을 제외하고 7일간 실시한다고 밝혔다. 또 실기동 훈련이었던 독수리 훈련을 대대급 규모로 축소해 연중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따라서 이번에 실시하는 훈련의 경우 ‘19-1 동맹 연습’이 되며 이후에 실시되는 연합훈련은 ‘19-2 동맹 연습’ 등의 형태로 불리게 된다. 전쟁 상황을 가정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진행되는 훈련인 기존 KR 연습은 북한의 공격을 가정한 1부 방어 연습과 2부 반격 연습으로 나눠 2주가량 시행됐다. 하지만 올해는 2부 반격 연습은 생략하고 7일을 실시하며, 나머지 훈련에 대해선 따로 작전개념 예행연습인 ‘ROC-Drill’(록드릴)을 실시해 보완한다는 방침이다. 규모 면에서는 한미가 공개하지 않기로 했지만 예년보다 축소됐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전략자산이 전개했던 독수리 연습은 대대급 규모로 축소했다. 일정 기간에 대규모로 합동 진행했던 실기동 훈련을 연중에 축소된 형태로 해체해 실시하고 미국의 전략자산은 전개되지 않는다. 아울러 연대급 규모의 실기동 훈련도 한미 공조 필요 시 록드릴 형태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합참과 연합사령부는 이날 “‘동맹’ 연습은 한반도에서의 전반적인 군사작전을 전략·작전·전술적인 분야에 중점을 두고 시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매년 실시하던 을지프리덤가디언(UFG) 등 예정된 연합훈련도 현재 비핵화 분위기 기조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연합훈련에 대한 인식으로 볼 때 유예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비핵화 진행에 속도가 붙을 경우 연합훈련의 개념 자체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김열수 한국군사문제연구원 안보전략실장은 “북을 명백한 적으로 규정해 실시했던 훈련과는 달리 가상의 적을 규정해 폭넓고 다양한 개념의 작전 훈련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연합방위태세 역량은 연합훈련에 좌우되므로 훈련이 축소되면 방위태세 약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UFG와 비질런트 에이스 등 대규모 연합훈련이 연이어 유예됐을 때도 제기된 문제다. 그러나 군 관계자는 “그동안 일정 부분 보여주기 식으로 한꺼번에 모여서 실시했던 대규모 훈련 형태에 변화를 주겠다는 것”이라며 “변화되는 안보환경과 작전환경을 고려해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북미 정상회담 결렬, 한반도 비핵화 앞당기는 기회 될 수 있을 것”

    “북미 정상회담 결렬, 한반도 비핵화 앞당기는 기회 될 수 있을 것”

    북미협상 실무회담 위주로 바뀔 가능성 文대통령, 김정은의 분명한 생각 들어야 한미 北비핵화 행동 설득 위해 총력전을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이 오히려 한반도의 비핵화를 앞당기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서로 다른 비핵화의 눈높이를 직접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다음 북미 협상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노(no) 딜’ 선택에 대해서는 대부분 긍정적인 평가를 했으며, 이번 협상 결렬이 한반도 긴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 대부분은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가 북미 대화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패트릭 크로닌 허드슨연구소 안보석좌는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으로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법이 상당한 좌절을 겪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북미 대화의 문이 닫힌 것은 아니다”라며 “김 위원장은 핵·미사일 실험을 계속 중단할 것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2017년 이후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축소 등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력을 줄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은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가 북미 간 진전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수미 테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도 “북미가 이번 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비핵화 실무 협의가 진행될 경우 의도치 않은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는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서로 비핵화에 대한 서로 생각을 확실히 이해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오히려 협상이 쉬워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앤드루 여 미 가톨릭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노 딜을 선택했지만 북미 정상회담에 낙관적인 모습을 보였고 김 위원장을 칭찬했다”면서 “이는 북미가 상대적으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고 앞으로 이어질 실무협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게리 세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조정관은 “이번 하노이 정상회담은 김 위원장에게 변장한 축복이 될 수 있다”면서 “김 위원장이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더욱 현실적인 대안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톱다운’ 방식의 북미 협상이 ‘보텀업’(실무회담 위주) 중심으로 바뀔 가능성도 제기됐다. 카일 페리어 한미경제연구소(KEI) 애널리스트는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비건·김혁철’ 라인의 실무협상이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선임연구원도 “이번 회담의 실패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북미 실무급 협상이 구체적으로 진전돼야 한반도의 진정한 비핵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테리 선임연구원은 2차 정상회담 결렬 원인을 북미 정상이 서로에 대해 ‘오판’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 혼란 등으로 외교적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쉽게 하노이선언에 합의할 것으로 판단했고,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의 장밋빛 경제 청사진을 제시한다면 김 위원장이 ‘통 큰’ 비핵화에 나설 것으로 계산한 것 같다”면서 “이러한 두 정상의 오판이 하노이 정상회담의 주요 실패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6자회담 미측 차석대표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 딜 선택이 옳았다”면서 “북한이 너무 많이 달라고 요구하고, 영변 이외에는 내놓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디트라니 전 차석대표는 이어 “하지만 우리는 북한과 계속 협상하고 평화적으로 북한의 비핵화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리 카자니스 국가이익센터(CNI) 방위연구국장은 “북미의 진실한 중재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 나서야 한다”면서 “그래서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김 위원장의 분명한 생각을 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크로닌 안보석좌는 “미국은 북한의 확실한 비핵화 신호가 있기 전까지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재개뿐 아니라 철도·도로 등 남북 경협도 꺼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따라서 문 대통령이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행동을 설득하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한미 간 긴밀히 조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美검찰 비무장 흑인 오인 사격한 세크라멘토 경찰관에 “정당방위였다”

    美검찰 비무장 흑인 오인 사격한 세크라멘토 경찰관에 “정당방위였다”

    지난해 비무장 상태인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오인 사격해 숨지게 했던 두 명의 미국 경찰에 대해 검찰이 정당방위를 인정해 논란이 일고 있다.워싱턴포스트는 2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지방검찰청 마리 슈버트 검사가 22살의 스테폰 클락이 무장 상태로 자동차 절도범으로 오인해 20발의 총을 쏴 숨지게 한 경찰관 테런스 메르카달과 자레드 로비넷에 대해 “합법적으로 무력을 사용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두 경찰은 차 절도 사건이 일어났다는 911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가 자신의 할머니 집 뒤뜰에 있는 클락을 발견한 뒤 ‘손을 보여줘’라고 외치다 클락의 손에서 하얀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을 보고 총으로 오인해 격발했다. 경찰이 쏜 20발 중 7발을 맞은 클락은 결국 사망했다. 클락이 손에 들고 있던 것은 총이 아닌 플래시를 켠 아이폰으로 드러났다. 클락의 가족들이 따로 진행한 부검 결과 클락은 등에 6발의 총을 맞았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슈버트 검사는 “지난해 3월 이후 클락의 가족과 지역사회가 엄청난 슬픔과 분노를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이날 아침에 만난 클락의 어머니는 명백하게 슬퍼하고 있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이어 “클락의 죽음이 비극이라는 사실에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지역 검사로서 나의 일은 이번 총격에 대한 공정하고 독립적이며 완전한 조사였다”고 전했다. 그러나 슈버트 검사는 “수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두 경찰관이 치명적인 무력을 사용한 건 정당방위였다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우리는 그들(경찰)이 종종 분초를 다두는 결정을 하도록 압박을 받고 있으며, 불확실하고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상황 속에서 긴장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면서 “핵심은 ‘두 사람이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정직하고 합리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는가‘이다, 이번 사건에서 두 경찰은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고 결론지었다. 슈버트 검사가 이러한 발표는 내놓자 클락의 어머니는 “이것은 정의를 위한 싸움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녀는 “우리는 몹시 화가 났다. 그들은 내 아들을 처형했다. 그것도 내 어머니의 뒷뜰에서 그랬다. 이건 정당하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우리는 지난 1년간 인내심을 갖고 슈버트 검사가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지만 그는 우리를 실망시켰다”고 말했다. 지난 1월 클락의 가족은 새크라멘토시를 상대로 20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클락의 사망은 캘리포니아를 넘어 미 전역에 경찰의 무력 진압을 반대하는 시위를 촉발시켰다. 시위 현장에서는 민권단체들이 퍼거슨 사태 당시 구호인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등을 본떠 ‘휴대전화를 들었으니, 쏘지 마”(Cells Up, Don‘t Shoot!)를 외쳤다. 이는 2014년 미주리주 퍼거슨에서 일어난 흑인 소요 사태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키리졸브·독수리훈련 종료…키리졸브 새 명칭 ‘동맹’

    키리졸브·독수리훈련 종료…키리졸브 새 명칭 ‘동맹’

    한국과 미국 국방당국은 올해부터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이라는 이름의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키리졸브 연습은 ‘동맹’이란 한글 명칭으로 바꾼 가운데, 오는 4일부터 12일까지(주말 제외) 7일간 시행하고, 독수리 훈련은 명칭을 아예 없애 대대급 이하 소규모 부대 위주로 연중 실시하기로 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패트릭 섀너핸 미국 국방부 장관 대행은 2일 오후 10시(이하 한국시간)부터 45분간 전화통화를 하고 이같이 결정했다고 국방부가 3일 밝혔다. 국방부는 “양 장관이 한국 합참의장과 주한미군사령관이 건의한 연합연습 및 훈련에 대한 동맹의 결정을 검토하고 승인했다”면서 “한미 국방당국간 긴밀한 협의를 통해 키리졸브연습과 독수리훈련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그간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 훈련 이름으로 시행해오던 이들 연합훈련은 올해부터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키리졸브 연습은 2007년 명칭을 변경해 2008년 처음 시행한지 11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키리졸브 연습은 ‘동맹’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독수리연습은 1961년 ‘독수리훈련’으로 시작됐으나 1975년 영문 명칭인 ‘Foal Eagle’이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름을 바꿔 시행한지 44년 만에 이 훈련 명칭도 없어졌다. 이 훈련은 독수리훈련이란 명칭을 사용하지 않고 연중 대대급 이하의 조정된 야외기동훈련으로 진행된다. 군의 한 관계자는 “연중 조정된 야외기동훈련을 통해 연합 군사대비태세를 확고히 유지해 나갈 방침”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양 장관은 전화통화에서 “연습·훈련 조정에 대한 동맹의 결정은 긴장을 완화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가능한 방법으로 달성하고자 하는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기 위한 양국의 기대가 반영된 조치임을 분명히 했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특히 양 장관은 어떠한 안보 도전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한미연합군의 연합방위태세를 지속적으로 보장해 나간다는 안보 공약을 재확인하고, 새로 마련된 연합 지휘소연습과 조정된 야외기동훈련 방식을 통해 군사대비태세를 확고하게 유지해 나가기로 했다. 또 역내 평화와 안보를 위해 한미 양국군, 연합사령부, 유엔군사령부를 지속적으로 지원할 것임을 확인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양 장관이 한반도의 안보환경 변화 속에서 한미 간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도 원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 공감하면서, 한미동맹을 더욱 심화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가까운 시일에 직접 만나 공조와 협력을 지속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 장관과 섀너핸 장관대행은 전화통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북미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평가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향후 공조방안과 연합준비태세 유지를 위한 조치들을 논의했다. 섀너핸 대행은 2차 북미정상회담 결과를 설명했고, 정 장관은 북미정상회담이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을 표명하면서 이번 회담 결과를 바탕으로 북미간에 보다 활발한 대화를 지속해 갈 것을 기대했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국방부는 “양 장관은 한미 군 당국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외교적 노력을 계속 뒷받침해 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결정은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전에 사실상 결정됐으나, 이번 양국 국방장관간 통화로 최종 결정됐다. 이는 비록 북미 정상 간의 지난달 27~28일 하노이 ‘핵담판’이 합의문 없이 끝났지만, 차후 대화의 동력과 모멘텀 유지를 위한 외교적 노력에 국방 당국이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 것으로 분석된다. 일각에서는 연합방위태세 역량은 연합훈련에 좌우되므로 훈련이 축소되면 방위태세 약화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합참과 한미연합군사령부는 종전의 ‘키 리졸브’를 대체할 ‘동맹’ 연습을 4일부터 12일까지 실시한다고 이날 공식 발표했다. 훈련 기간은 종전의 2주에서 1주로 줄어든다. 앞으로 ‘동맹’ 연습은 그해 연도를 붙여 ‘19-1 동맹’ 등으로 부를 것으로 알려졌다. 합참은 “‘동맹’연습은 한미 양국 간에 긴 세월 동안 유지한 파트너십과 대한민국 및 지역 안정을 방어하기 위한 의지를 강조하는 연합지휘소연습”이라고 설명했다. 박한기 합참의장과 로버트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은 “‘동맹’ 연습은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및 유엔사 전력 제공국들이 함께 훈련하고 숙달할 기회를 제공한다”며 “또한 전투준비태세 수준 유지를 위해서는 정예화된 군 훈련이 시행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연습은 동맹을 유지하고 강화하는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고 합참은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2차 북미 정상회담 최후의 승자는

    2차 북미 정상회담 최후의 승자는

    최종 결렬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승자는 북한도, 미국도 아닌 베트남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과는 공통의 반(反)중국 노선을 확인했고, 혈맹이었던 북한과의 관계 또한 다졌다. 응우엔푸쫑 베트남 국가주석은 지난달 2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했다. 이날 만남고 관련 세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은 “양측 지도자들은 또한 국제법 및 항행의 자유 등에 부합되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과 주권 존중에 대한 공유된 원칙을 통해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증진시키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항행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베트남에 힘을 실어줬다. 베트남은 현재 남중국해 문제 등을 놓고 중국과 마찰을 빚고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 전단이 베트남 다낭에 입항한 바 있다. 미 항모전단이 베트남에 기항한 것은 1975년 베트남전 종전 이후 43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당시 남중국해에서 인공섬을 건설하고 군사기지화하는 중국을 견제하려고 미국과 베트남이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 힘을 얻었고, 이후 미국과 베트남은 군사·방위 협력을 강화해 왔다. 베트남은 동시에 베트남전에서 한편으로 싸웠던 ‘혈맹’ 북한과의 사이를 복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번 방문 전까지 북한 최고 지도자는 55년간 베트남 땅을 밟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 김일성 주석은 1958년, 1964년 두 차례 하노이를 방문해 당시 호찌민 주석과 정상회담했다. 그러나 이후 정치적 견해 등이 엇갈려 사이가 틀어졌다. 이번 방문에서 김 위원장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이 결렬됐음에도 곧바로 귀국길에 오르지 않고 쫑 주석과의 회담 등 예정된 주요 일정을 소화하며 베트남을 예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번 회담과 관련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는 1일 “회담 일정이 급박하게 잡혔으나 우리는 잘 준비해 절대적인 안전 속에 치러냈다. 이번 회담 개최국인 베트남은 조미(북미)는 물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았다”면서 “조미 양국과의 관계에서 새로운 진전을 이룰 기회”라고 자평했다. 하노이 강신 기자 xin@seoul.co.kr
  •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자유조선’으로 이름 바꾸고 선언문 올려

    김한솔 도운 ‘천리마민방위’, ‘자유조선’으로 이름 바꾸고 선언문 올려

    2017년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김정남의 아들 김한솔과 가족을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켰다고 주장해 온 단체 ‘천리마민방위’가 1일부터 이름을 ‘자유조선’(FREE JOSEON)으로 바꿨다. 이날 이 단체 웹사이트 주소(http://www.cheollimacivildefense.org/)로 들어가면 전날까지와는 다르게 엠블럼에 새겨진 단체명이 ‘천리마민방위’에서 ‘자유조선’으로 바뀌었다. 엠블럼 디자인도 모양은 그대로지만 색상 등 일부 달라졌다. 아울러 이 단체는 이날 사이트에 ‘자유 조선을 위한 선언문-2019년 3월 1일’이란느 제목의 한글·영문 글과 함께, 얼굴이 모자이크 처리된 한 여성이 흰색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한국의 고궁으로 보이는 곳에서 선언문을 낭독하는 7분 35초 분량의 영상을 올렸다. 선언문은 “100년 전 오늘, 선조들은 무자비한 박해와 견딜 수 없는 치욕의 구조를 전복하고자, 독립과 자유를 외쳤다”면서 ‘북한을 대표하는 단일하고 정당한 임시정부 건립’을 선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과거 독재와 억압의 상처를 지닌 국가들’, ‘이상을 함께하는 전 세계 동지들’, ‘노예가 되기 싫은 사람들’ 등에게 연대와 동참을 요청했다. 지난 25일 이 단체는 ‘통지해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이번 주에 중대한 발표가 있겠다”라고 예고한 바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레이건·고르바초프 핵 군축 회담도 불발 끝 ‘해피엔딩’

    레이건·고르바초프 핵 군축 회담도 불발 끝 ‘해피엔딩’

    “냉전 종식에 큰 역할”… 역사적 재평가 “북미 협상도 완전한 실패라 볼 수 없어”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합의문 없이 마무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지만 정상회담 결렬 자체가 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정상회담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핵 군축 협상 가운데 1986년 10월 열린 두 번째 회담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총 네 번의 회담을 가진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나 군비경쟁 중단과 축소를 논의했다. 이듬해인 1986년 두 정상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마주 앉았지만 회담은 빈손으로 종료됐다. 협상에서 발목을 잡은 의제는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SDI는 미국이 대륙간탄도탄과 핵미사일 등을 격추시키는 방법을 연구한 계획으로, 이른바 ‘스타워스’ 계획이라고도 불렸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SDI를 실험실 수준으로 제한하라고 요구했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 반발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해 이를 거부했다. 당시 양측이 얼굴을 붉히고 회담장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의견이 충돌했다는 후문이다. 레이캬비크 회담을 두고 ‘실패한 회담’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이는 향후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오히려 큰 역할을 했다. 두 정상이 회담이 결렬된 데 대해 반성하고 핵무기의 위험을 인식하는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1987년 워싱턴에서 이뤄진 세 번째 만남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에 서명했다.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조약은 당시 냉전 해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후 1989년 12월 3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몰타에서 만나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한다. 실패한 줄만 알았던 레이캬비크 회담은 시간이 흘러 역사적으로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역시 70년 이상 적대 관계를 이어 온 양국 정상이 비핵화와 제재 완화라는 핵심 쟁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레이캬비크 회담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속 회담과 관련해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며 협상의 불씨를 남긴 만큼 향후 후속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레이건·고르바초프 핵 군축 회담도 불발 끝 ‘해피엔딩’

    레이건·고르바초프 핵 군축 회담도 불발 끝 ‘해피엔딩’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28일 합의문 없이 마무리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지만 정상회담 결렬 자체가 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과거에도 정상회담 과정에서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 전례가 있는 만큼 이번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핵 군축 협상 가운데 1986년 10월 열린 두 번째 회담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꼽힌다. 총 네 번의 회담을 가진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1985년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처음 만나 군비경쟁 중단과 축소를 논의했다. 이듬해인 1986년 두 정상은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마주 앉았지만 회담은 빈손으로 종료됐다. 협상에서 발목을 잡은 의제는 전략방위구상(SDI)이었다. SDI는 미국이 대륙간탄도탄과 핵미사일 등을 격추시키는 방법을 연구한 계획으로, 이른바 ‘스타워스’ 계획이라고도 불렸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SDI를 실험실 수준으로 제한하라고 요구했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 반발과 자신의 정치적 입지 등을 고려해 이를 거부했다. 당시 양측이 얼굴을 붉히고 회담장에서 고성이 오갈 정도로 의견이 충돌했다는 후문이다. 레이캬비크 회담을 두고 ‘실패한 회담’이라는 비판 여론이 거셌지만 이는 향후 협상을 진전시키는 데 오히려 큰 역할을 했다. 두 정상이 회담이 결렬된 데 대해 반성하고 핵무기의 위험을 인식하는 동시에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후 1987년 워싱턴에서 이뤄진 세 번째 만남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중거리핵무기 폐기협정’(IRNFT)에 서명했다. 사거리 500~5500㎞인 중단거리 탄도 및 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이다. 이 조약은 당시 냉전 해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후 1989년 12월 3일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조지 부시 대통령은 몰타에서 만나 냉전 종식을 공식 선언한다. 실패한 줄만 알았던 레이캬비크 회담은 시간이 흘러 역사적으로 재평가를 받게 된다. 이번 2차 북미 정상회담 역시 70년 이상 적대 관계를 이어 온 양국 정상이 비핵화와 제재 완화라는 핵심 쟁점의 벽을 넘지 못했다는 점에서 레이캬비크 회담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속 회담과 관련해 “빨리 열렸으면 좋겠다”며 협상의 불씨를 남긴 만큼 향후 후속 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남아 있다.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53) ‘3인 3색’ 한화그룹 부회장단

    [이종락의 재계인맥 대해부](53) ‘3인 3색’ 한화그룹 부회장단

    ‘그룹 2인자’ 금춘수 부회장, 한화 공동대표이사 컴백엔지니어링 출신 차남규 부회장, 보험업계 장수CEO‘30년 영업맨’ 김창범 부회장, 과감한 결단력 장기  한화그룹은 최근 어수선한 분위기다. 지난 14일 ㈜한화 대전공장에서 근로자 3명이 숨진 폭발사고를 놓고 정부 조사와 유족의 항의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룹은 비상상황이라고 판단하고 두 번의 경영기획실장을 역임한 뒤 경영기획실이 해체되자 일선에 물러나 있던 금춘수(67) 부회장을 한화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한화의 공동대표이사에 선임했다. ㈜한화가 지난해 4분기에 3년 만에 분기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현재 옥경석 화약방산부문 대표, 김연철 기계부문 대표, 이민석 무역부문 대표 등 3인 각자대표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금 부회장이 지원부문 대표에 오르면 4개 부문 각자대표체제로 바뀌게 된다. 금 부회장은 한화그룹의 2인자로 평가된다. 그는 경영기획실장을 맡아 인수·합병(M&A), 지배구조 개편, 경영승계, 계열사 업무 조정 등 그룹의 주요 현안을 진두지휘했다. 대한생명(현 한화생명) 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삼성그룹과의 석유화학·방위산업 빅딜, 두산DST 인수합병,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 합병 등을 성사시켰다. 대구 계성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1978년 ㈜한화 무역부문(옛 골든벨상사)에 입사해 40여년간 한화그룹에 몸담아왔다. 미주, 유럽법인 등 해외지사와 그룹 구조조정본부 경영지원팀장을 거쳐 2006년 한화그룹 초대 경영기획실장에 올랐다. 이후 한화차이나 사장 등을 맡은 뒤 2014년 경영기획실장으로 복귀했다. 2016년 10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한화 지원부문 부회장으로 사내이사 선임을 통해 그룹사간 조정 및 지원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다.  차남규(65) 부회장은 8년째 한화생명을 이끌고 있는 보험업계의 대표적 ‘장수 CEO’다. 부산고, 고려대 법대를 나왔다. 한화기계와 한화정보통신, 여천 NCC 등 주요 계열사에서 근무했다. 2002년 한화그룹이 한화생명(옛 대한생명)을 인수했을 때 처음 지원부문 총괄전무로 금융업계에 발을 들였다. 보험영업을 총괄하면서 대한생명의 영업조직을 전담했다. 기계업체 출신이지만 금융전문가로 금방 탈바꿈하듯이 다방면에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치밀하게 정책을 세운 뒤 불도우저 같은 추진력을 발휘하는 스타일이다. 차 부회장의 노력으로 인수 당시 약 29조원에 불과했던 한화생명 총자산은 13년여 만인 2016년 100조를 돌파했고, 2018년 114조를 달성하며 약 4배 규모로, 수입보험료 역시 9조 4600억원에서 2018년 기준 14조 2400억원으로 약 1.5배 성장했다. 한화생명은 국내 신용평가사로부터 12년 연속 AAA등급 획득, 무디스, 피치 등 해외신용평가사로부터 ‘A1’, ‘A+’을 받으며 견조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다.  김창범(64) 한화케미칼 부회장은 한화첨단소재 대표이사 사장과 한화케미칼 사장에 이어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부산 동아고, 고려대 통계학과를 졸업했다. 김 부회장은 1981년 한화그룹 입사 이후 주로 영업 일선을 누빈 ‘영업통’이다. 일주일에 2~3일은 여수, 울산, 대전 연구소 등 사업장을 돌며 소통하고 현장에서 답을 찾는다. 과감한 사업부 매각, 인수합병 전략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 대표이사 취임 이후, 수익성이 안 좋은 사업을 정리하고 잘 할 수 있는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특히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건자재사업 중심이었던 한화L&C를 자동차소재 등 첨단소재기업으로 바꿔놓았다. 단기 실적도 중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외부 변수에 좌우되지 않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체질이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한다. 또한 카이스트, 서울대학교 등과 함께 공동 연구소를 설립해 미래 석유화학 분야를 이끌어 갈 원천기술 연구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상생을 주요 경영과제 중 하나로 추진할 만큼 협력사와의 ‘상생 생태계 조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 트럼프 “한미군사훈련 오래 전 포기…한국이 더 지원해야”

    트럼프 “한미군사훈련 오래 전 포기…한국이 더 지원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한미연합)군사훈련은 제가 오래전에 포기했다”며 “왜냐면 할 때마다 1억 달러의 비용을 초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결렬 후 숙소한 베트남 하노이 JW메리어트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이렇게 수억 달러를 군사훈련에 사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고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조금 더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저희가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 지원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또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돈을 많은 부유한 국가를 보호하는 데 사용하고 있는데 그 국가들은 각자 보호할 수 있는 예산이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한미는 지난 10일 유효기간 1년(2019년)에 1조 389억원(작년 대비 8.2% 인상)으로 책정된 새 협정안에 가서명했다. 가서명된 협정안은 차관회의에 이어 국무회의,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정식 서명하며 국회에서 비준 동의안을 의결하면 정식으로 발효된다. 정부는 4월 협정 발효를 목표로 과정을 진행중이다. 방위비 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이 분담하는 몫을 말한다. 주한미군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 각종 미군기지 내 건설 비용, 군수 지원비 등의 명목으로 쓰인다. 한미는 1991년 제1차 협정을 시작으로 이번 이전까지 총 9차례 방위비 분담 특별협정(SMA)을 맺었으며, 2014년 타결된 제9차 협정은 작년 12월 31일로 마감됐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반나절만에 무슨일 있었나” 회담 결렬소식에 시민들 허탈

    “반나절만에 무슨일 있었나” 회담 결렬소식에 시민들 허탈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28일 우리 시민들의 관심도 온통 뉴스에 집중됐다. 특히, 회담 기류가 반나절 만에 급변하면서 당황스러움과 아쉬움을 내비치는 시민들이 많이 보였다. 이날 서울역에서는 여행·출장객 등이 기차를 기다리며 TV로 북미 정상회담 중계·해설 방송을 지켜봤다. 회담이 순조롭게 진해되는 듯 했던 오전에는 기대감이 높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업무 오찬과 합의문 서명식이 취소됐다는 소식이 들리자 혼란스러워졌다. 발걸음을 멈추고 뉴스 속보에 멍하니 지켜보는 이들도 늘어났다. 시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 아니냐”거나 “두 정상이 아직 베트남을 떠난 것은 아니니 새 길을 찾지 않겠느냐”는 우려와 희망이 교차했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어제 만찬에서 분위기가 좋아서 오늘도 기대를 많이 했는데 북미 관계는 늘 살얼음판인 것 같다”면서 “결과가 꽃을 피우려는 데 꽃샘추위가 온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오전까지는 이번 회담에서 종전선언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자 시민들은 큰 기대를 드러내기도 했다. 대학원생 유모(31·여)씨는 “유일한 분단국가인 한국에서 종전 합의가 이뤄진다면 역사적으로 의미가 클 것 같다”며 “대북 제재가 완화돼 금강산 관광도 가보고 ‘김정은 로드’(김 위원장이 북한에서 베트남까지 철도로 온 경로)를 따라 베트남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통영 수용소에서 극적으로 만난 동생… 인제 전투서 생사 달리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 20회6·25 한국전쟁 당시 6년제 인천상업중학교 3학년생이었던 이경종(85) 씨는 6·25 전쟁에 자원입대하기 위해 1950년 12월 18일 인천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500㎞를 매일 25㎞씩 20일간 걸어갔다. 1951년 1월 10일 부산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도착했으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입대가 불허됐다. 결국 실종 군인의 군번을 부여받아 편법으로 입대했고 4년 동안 참전한 후 1954년 12월 5일 만기 제대했다. 1996년 7월 15일 이경종 씨는 큰아들 이규원 치과 원장과 함께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이하 6·25 편찬위)를 창립해 199명의 참전 학생과 참전 스승(신봉순 대위)의 육성을 녹음하고, 흑백 참전 사진과 참전 관련 공문 등을 수집했다. 20년간 노력해 마침내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은 인천 중구 용동에 ‘인천학생 6·25 참전관’(오른쪽 사진)을 세웠다. 6·25 편찬위(위원장 이규원 치과 원장)는 부산까지 걸어가서 자원입대한 인천 학생 약 2500명과 참전 스승의 애국심을 기억하고, 전사한 인천 학생 208명과 스승 1명(심선택·1926년 10월 25일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를 졸업하고 해병 소위로 참전하여 1950년 11월 12일 24세 때 전사)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기’를 시리즈로 본지에 기고한다. 편집자 주■ 송성환 어머니·친형 인터뷰 일시: 1999년 2월 15일 장소: 인천광역시 연수구 옥련동 271-5 장간란 씨 자택 대담: 장간란(전사학생 송성환 어머니) 송종환(전사학생 송성환 친형) 이경종(인천학생 6·25 참전관 설립자) 이규원 치과 원장(이경종 큰아들) ※송성환은 전쟁 중에 전사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와 친형의 인터뷰로 대신합니다.친동생 송성환에게 부모·집 지키라고 당부 6·25사변 때 나(송성환의 친형 송종환)는 철도공무원으로 철도국에 다녔다. 1950년 가을 중공군의 참전으로 인하여 우리 인천이 또다시 북한괴뢰군에 점령당할 위기에 몰리자, 그해 12월 초에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소집통지서가 나한테 왔다. 1950년 12월 17일 6년제 인천중학교(현재 제물포고교)에 모인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과 같이 남하하였다. 나는 남하하는 전날 밤 내 동생 성환이에게 너는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 모시고 집을 지키고 있으라고 당부의 말을 하였다. 하루 50㎞씩 걸어 국민방위군 수용소 도착 1950년 12월 17일 날 나는 인천에서부터 걸어서 내려가서 이듬해 1951년 1월 3일이 되어서야 경상남도 통영방위군 제3수용소(통영충렬국민학교)에 도착하였다. 그때 하루에 120리(약 50㎞) 길을 걸었을 때도 있었는데 내려가는 도중에 참으로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때 굶거나 얼어 죽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문경새재도 걸어서 넘어갔으며, 고생고생하며 경상남도 통영에 도착하였다. 그때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들어갔는데 들어가 보니까 그곳은 국민방위군(제2국민병) 제3 수용소였으며 그곳이 마지막 집결지였다. 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친동생 송성환 만나 그때 막 통영충열국민학교에 도착하였는데 “형”하고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까 거기에는 생각지도 않게 내 동생 송성환이가 나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깜짝 놀라면서 “네가 여기까지 웬일이냐”고 물으니까 동생 성환이가 “형이 인천에서 내려간 이튿날 친구들과 같이 인천학도의용대를 따라 남하하여 여기 통영까지 오게 되었는데 와서 보니까 인천에서 떠난 국민방위군(제2국민병)이 여기 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형님이 이곳에 오지 않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 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그때 이러한 내 모습이 안 돼 보였던지 성환이는 자기가 갖고 있던 양담배 채스타 한 갑과 끼고 있던 은반지를 내게 빼 주면서 “형, 나는 아직 쓸 돈이 남아 있으니까 염려 말고 이것 받아요. 우리들은 곧 부산에 있는 육군 제2 훈련소(부산진국민학교)에 들어가니까 형 몸조심하세요.”라고 말을 하는 것이었다. 친동생 송성환이 준 은반지 팔아 밥 사 먹어 그때 나도 동생에게 “군에 입대하더라도 몸조심하고 우리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만나자”라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때 내 동생이 준 은반지를 팔아서 허기를 달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통영 방위군 제3 수용소(통영충열국민학교)에서 3월까지 수용되어 있다가 제주도로 건너가 육군 제1 훈련소에 입소하여 훈련받고 060 군번을 받고 육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육군 보충대를 거처 강원도 전투지역으로 배치되었다. 당시 5사단장은 민기식 준장이었다. 그때 내가 간 전투부대가 5사단 27연대 2대대였다. 이때 3대대에는 인천학도의용대로 인천에서부터 같이 온 내 아우 친구들도 많이 보였다. 그때 우리 5사단이 속해 있는 군단이 포위되면서 후퇴할 때 많은 병력 손실이 있었다. 인제 전투에서 당한 손 부상으로 명예제대 그때 포위당해 매일 걸어서 후퇴하는데 며칠 몇 밤을 잠을 못 자고 후퇴만 하니까 그때는 ‘잠 한번 실컷 잤으면…’ 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그때 내가 인제 전투에서 손에 부상 당해 육군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게 되었을 때인데 며칠을 후퇴하면서 전투하느라 씻지를 못해 손을 치료해야 하는데 손에 때가 많이 묻어 있어 간호사한테 손 내밀기를 주저한 일이 있었다. 그 후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그 해 1951년 10월에 그 부상으로 인하여 나는 상이 명예제대를 하게 되었다. 친동생 송성환의 전사 사실 뒤늦게 알아 이렇게 제대를 하여 인천 집에 돌아와 보니까 내 동생 성환이의 전사통지서가 와 있는 것이었다. 그 당시 동생 전사통지서를 받으신 우리 아버지께서 낙담하시는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 속이 상하셨던 우리 아버지께서는 전사한 동생 때문에 한이 되시어 상심하시다가 동생의 전사통지서를 받고 2년 뒤 44세의 젊은 나이에 그만 세상을 하직하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5사단 강원도 인제지구 전투에서 거의 같은 날에 동생은 전사하고 나는 부상당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제대한 후에야 알게 되었으며 제대하기 전 5사단에 있을 때 내 동생 친구들은 동생이 전사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나한테 숨기고 있었던 것이었다.송성환 어머니 “전사 아들 생각 때마다 눈물” 우리 성환이는 6년제 공립 인천공업중학교 3학년이었던, 사변 나던 해(1950년) 겨울 집을 떠날 때 전쟁에 나가는 것을 큰 영광으로 알고 떠났어… 어렸을 때부터 전쟁놀이를 좋아했는데 전쟁놀이를 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시늉을 할 때는 쓰러지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면서 쓰러지곤 하였는데 끝내는 피어보지도 못하고 전쟁터에서 쓰러져 전사했어. 49년 전에 전사한 아들이지만, 그 전사한 아들을 생각할 때마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요. 글 사진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회 ▶다음호에 21회 계속 ■ 참전기 20회를 마치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중학교 3학년 16살에 자원입대 후 참전하여 전사한 아들을 49년간 그리워하면서 슬퍼한 어머님의 눈물이 이 나라를 지킨 것이다. 이규원 인천학생·스승 6·25 참전사 편찬위원장
  • 롯데홈쇼핑, 일자리부터 육아 지원까지… 여성이 행복한 일터

    롯데홈쇼핑, 일자리부터 육아 지원까지… 여성이 행복한 일터

    롯데홈쇼핑 이완신 대표가 지난 19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사)전문직여성 한국연맹(BPW KOREA)이 주는 ‘제25회 BPW 골드 어워드(Gold Award)’를 받았다. 이 대표는 여성 친화적인 기업 환경과 문화를 조성하고 간부급 여성 리더를 많이 배출함으로써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롯데홈쇼핑의 여성 고용 비율은 56%(2018년 12월 기준)로 전체 임직원의 절반 이상이며 최근 4년간 신입사원 공채 여성 비율은 60%에 이른다. 전체 간부 직원(과장급 이상) 중 여성 간부 비율은 약 37%며 2019년 간부 승진자 중 여성 비율은 40%를 넘었다. 롯데홈쇼핑은 임신부터 출산, 양육까지 전방위적인 지원을 통해 여성 임직원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예비맘 케어’ 제도를 운용하며 난임 시술비와 축하 선물, 간식 등을 지원한다. 임신 시엔 2시간 단축 근무를 하게 하고, 회사 내에 전담 간호사를 상주시켜 건강을 관리해주고 있다. 일과 가정의 양립을 돕기 위해 ‘유연근무제’, ‘PC 오프제’, ‘홈데이 조기퇴근’ 등도 운영한다. 김태곤 객원기자 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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