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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구 슈퍼리그 이대로 좋은가] 현황과 문제점

    배구슈퍼리그가 남자부 삼성화재에 4연패,여자부 현대에 10년만의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긴 채 지난 7일 막을 내렸다.그러나 배구장을 찾는 팬들의 숫자가 해마다 줄어 슈퍼리그는 선수들만의 잔치로 전락한지 오래다.지난 슈퍼리그는 일일 평균 유료관객이 1,322명(게임당 593명)으로까지 줄어들었다.인기추락 일로에 있는 배구의 현황과 문제점, 대책등을 알아본다. 올 배구슈퍼리그에 대해 대한배구협회는 “드래프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그동안 배구계에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회가 무사히 치러져 다행”이라고 자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배구계 인사들은 정상에 오른 팀 선수들의 환호가 공허하게 들릴 정도라고 말한다.오히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배구가 처한 왜곡된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지적이 많다. 배구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이번 대회의 입장객 수.일례로 4일동안 열린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은 단 한번도 잠실학생체육관을 메우지 못했다.가장 인기가 높은 남자부 챔피언결정전이 이 정도이니 여자부 챔프전을포함한 다른 경기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경기당 평균 관중수는 1,322명. 지난해 1,605명에 비해 20% 가량 줄었다. 심지어 지방에서 치러진 경기의 관중은 몇백명에 그친 경우도 있었다.중계를맡았던 모 방송국 PD는 “관객이 이렇게 없어서야…”라며 당혹해 하기도했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가.가장 큰 원인은 강팀과 약팀간의 심각한 전력불균형이다.특히 남자부 경기는 삼성화재의 싹쓸이 스카우트 여파로 LG화재가 불참한데다 현대자동차와 대한항공이 드래프트 불발로 선수 수급을 하지 못한 채참가,경기시작 전부터 삼성의 4연속 우승이 예견됐다.결국 뻔한 승부가 팬들의 외면을 자초한 셈이다. 배구협회의 안일한 행정처리도 흥행참패의 중요한 원인이다.우선 경기 외적인 이벤트 마련 등 특별한 관중유인책을 거의 내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게다가 대학신입생의 경우 1·2차대회는 뛰게 하고 3차대회부터 출전을 금지시키는 등 파행적인 대회운영으로 남자부 신인상을 뽑지 못하는 사태까지 발생케 했다.최대 붐 메이커인 신인들이 두각을 보일기회를 잃었으니 큰 흥미거리 하나를 스스로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 대회 도중 갑작스럽게 대학부 경기의 승점제를 변경하는가 하면 4차대회가 끝난 뒤 휴식 없이 챔피언결정전을 강행,팀들이 좋은 경기를 펼칠 여건을스스로 없애는 우를 범했다. 배구인들은 이런 상황에서 배구의 인기회복을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말한다.속히 구태에서 벗어나 제도개선을 통해 과감한 변신을 시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왕년의 배구스타 장윤창은 “전력불균형이 심각한 현 상황에선 팬들에게 식상함을 줄 뿐 흥미를 유발할 수 없다”면서 “협회차원에서 선수수급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먼저 조치를 취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다른 인사는 “협회가 배구의 활성화를 위해 프로화의 당위성은 외쳐대나 추진 주체를 놓고소모적인 싸움만 반복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세호 KBS 배구해설위원(강남대 교수)은 “이번 슈퍼리그 실패를 통해 배구계가 과감히 변해야 산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한다”며 “상업화는 물론 경기 방식과 내용의 질적 변화도 꾀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김영중기자] jeunesse@ . *배구 유일한 살 길은 '프로화'. 대한배구협회 관계자나 배구계 인사들은 현재 배구의 침체를 벗어날 유일한방법은 프로화라고 한결같이 입을 모은다. 4년전 프로를 시작한 겨울철 경쟁종목인 농구가 이미 정착단계에 이르고 있는 것을 볼 때 프로화만이 살길이라는 것이다.농구에 대적하고 축구 야구 등과 함께 4대 구기종목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현재와 같은 아마추어 형태로는 관중을 끌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던 진준택씨는 “이대로는 안된다”고 전제하면서 “팀 경기력의 평준화와 프로화가 안된다면 현 난국에서 헤어날 수 없다”고단언한다. 성균관대 엄한주교수(스포츠과학과)는 “배구를 상품화하는 작업이 속히 이뤄져야 하는데 프로화만이 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프로화가 되면 구단의 홍보와 관중동원이 공격적으로 이뤄지고 언론도 선수들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관심을 쏟게 된다는 논리다. 배구협회 김건태 국제심판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김 심판은“매스미디어의 발달로 팬들의 눈높이가 올라갔다”면서 “라이벌 경기가 없고 이벤트마저도 없다면 살아날 수 없다”고 프로화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프로화의 선결조건인 드래프트제가 현재 실업과 대학팀간 의견차로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화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원활한 선수수급과 팀 창단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를 보장한 가장 확실한 장치가 드래프트다. 경희대 김희규감독은 “대학팀과 실업팀 양쪽은 이해득실이 있기 때문에 의견일치를 내기 어렵다”면서 “협회가 참신한 아이디어와 행정력을 발휘해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지금처럼 특정팀이 특정 대학선수를 입도선매하는 풍토가 계속되는한 배구팀 창단은 불가능하다는 게 배구인들의 지적이다.만년 하위권을 맴돌게 뻔하다면 누가 팀을 만들려 하겠냐는 것이다. 결국 배구인들 전체가 절체절명의 위기의식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어느때보다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영중기자
  • 낯뜨거운 시청률 경쟁에 여론 집중포화/98 방송계 결산

    ◎통합방송법 제정 불발속 방송개혁위 출범/광고 40% 격감 방송사별 200억이상 적자/개혁 압박·구조조정 등으로 안팎 시련 KBS MBC SBS 등 지상파는 물론이고 지역민방,케이블 등 방송 전반에 걸쳐 98년은 어느해보다 힘든 한해였다. 특히 지상파 방송3사는 공영성강화를 골자로 한 정부·시민단체의 강도높은 개혁요구와 경영난으로 인한 구조조정 등 안팎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광고수입을 노린 치열한 시청률경쟁은 급기야 시사고발프로그램 등 상당수 프로그램의 선정성·폭력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여론의 집중포화를 받았다. 여기에 통합방송법의 연내 제정 불발과 방송개혁위원회의 출범이라는 숨가쁜 정치일정은 가닥을 잡아가던 방송개혁의 틀 자체를 허물어 논란을 일으켰다. 기업의 광고비지출이 급감하면서 방송사들은 생존을 위한 제살깎기에 들어갔다. IMF이후 1,140여명을 잘라낸 KBS는 최근 후속조치로 2001년까지 현 정원의 25%를 추가 감축하고 연봉제와 성과급제를 실시하기로 했다. SBS는 영상·미술·기술분야를 SBS아트텍과 뉴스텍 2개 자회사로 분사했으며,MBC도 올들어 부장이상 보직자 30%를 축소하고,전사원의 21%를 명예퇴직시켰다. 연초부터 광고판매율이 60%미만으로 떨어지면서 방송사별로 200억∼250억원의 적자가 예상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택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경영난이 심해지면서 시청률경쟁도 따라서 치열해졌다. 방송3사는 연초 일제히 프로그램 구조조정을 선언하는 등 IMF시대에 걸맞는 국민의 TV가 되려는 듯한 몸짓을 보였으나 지난 가을개편때 옛모습으로 회귀했다. 귀신이야기나 가벼운 시트콤이 주류를 이루는가 하면 시사고발프로그램은 사회 비리보다는 선정적인 소재로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잡는데 급급했다. 심지어 KBS 자연다큐멘터리 ‘수달’의 경우 인위적으로 연출한 사실이 드러나 각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 와중에 4년을 끌어온 통합방송법은 이번 정기국회에서도 상정되지 못하고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방송을 둘러싼 이해집단의 의견충돌과 방송·통신의 융합대책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통합방송법제정 등 방송개혁을 총괄할기구로 방송개혁위원회(위원장 姜元龍)가 출범,지금까지 두차례 회의를 가졌다. 3개월간 한시적으로 활동할 위원회는 방송법제정 말고도 전반적인 방송개혁의 방향을 정할 것으로 알려져 내년 방송계는 메가톤급 소용돌이에 휘말릴 것으로 보인다. 한편 KBS가 朴權相 사장 취임 이후 공영성을 강화한 프로그램을 전진 배치하고,MBC가 그동안 금기시해온 광주문제 등 인권을 소재로 한 일련의 특집프로그램을 내보낸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로 꼽힌다. 더욱이 KBS와 SBS가 방송제작원칙과 지침을 명시해 발간한 가이드라인은 방송인으로서의 올바른 자세와 책임을 스스로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로 평가받고 있다.
  • 이라크 사찰거부… 유엔 사찰단 철수/美 안보회의 소집 공습 논의

    ◎러­불선 “사찰단장 월권” 안보리 수집 【워싱턴 바그다드 AP AFP 연합】 이라크에 대한 무기사찰이 불발되면서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에 군사공격 가능성을 경고한 가운데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16일 이라크 사태를 논의하기 위해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했다고 CNN방송이 보도했다. CNN은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앞으로 수시간내 단행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그러나 백악관의 한 대변인은 이에 대한 확인을 거부했다. 같은날 미 국방부 관리들은 걸프 주둔 미군이 공격명령이 내려질 경우 언제든지 이라크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미국과 영국은 이라크가 약속과 달리 유엔무기사찰단에 대해 전적인 협력을 거부하고 있다는 리처드 버틀러 유엔 무기사찰단장의 보고서와 관련,이라크 군사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베리 토이브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의 대 이라크 군사공격 가능성에는 “모든 선택이 남아 있다”고 밝혔으며 로빈 쿡 영국 외무장관도 BBC 라디오방송을 통해 사전경고 없는 신속한 대 이라크 공습이 취해질 수있다고 경고했다.쿡 장관은 이번주말 시작되는 회교권 금식월 라마단 전야에 군사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한편 이날 버틀러 단장이 월권을 했다는 러시아와 프랑스의 요구에 따라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가 소집됐다. 한편 유엔 무기사찰단원과 구호요원들은 바그다드에서 철수,16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 도착했다고 유엔 관계자가 밝혔다.
  • 방송인 서유석­가수 안혜경(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말한다:11)

    ◎현실비판·운동권 노래… 고난의 ‘언더’ 인생/가수·방송인 서유석/유신반대 ‘맷돌’ 공연중단 시련/심의 묶인 금지곡만 10여편/방송에서도 강한 정치풍자/‘윗분’에 밉보여 도중하차 가시밭길 “가는세월 그 누구가/잡을 수가 있나요/흘러가는 시냇물을/막을 수가 있나요/…/이내몸이 흙이돼도/내마음은 영원하리”(가는 세월). 70년대 텁텁한 목소리로 사회성짙은 노래를 부르던 청년문화의 기수 徐酉錫씨(53)의 대표곡이다. 가수와 방송인으로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낸 徐씨의 체념한듯 하면서 굽히지 않는 의지가 담겨 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徐씨가 부른 노래는 ‘가는 세월’ 말고도 창작곡만 70곡. 1985년 마지막 레코드 ‘뚝잘라 말해’를 발표할 때까지 낸 음반도 11집이나 된다. ‘타박네’‘파란많은 세상’‘세상은 요지경’‘대답은 없어라’ 등 심의에서 묶인 금지곡도 10여곡. 이가운데 녹음을 끝내놓고도 가사내용 때문에 레코드를 수거당했던 ‘마지막 노래’는 2년뒤 다른 가수가 불러 심의를 통과한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교통관련방송 프로그램 진행을 20년째 맡아 이젠 가수보다 방송인과 교통 전문가로 더 알려진 徐씨. 세월은 흘렀지만 사회성 짙은 ‘운동권 가수’로 찍힌뒤 극적으로 시작한 방송인 생활의 기억들을 결코 잊을 수 없다. 성균관대 졸업무렵 학교앞 카페 ‘카사노바’에서 지배인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통금직전 具鳳書씨가 徐永春씨(86년 작고)등 연예인들과 함께 들러 徐씨의 노래를 청해 듣고 다음날 다시 TBC 쇼프로듀서와 함께 들러 徐씨를 소개했다. 그 다음날 곧바로 쇼쇼쇼에 출연한게 가수 생활의 시작이다. 그러다가 대학시절 핸드볼선수 경력을 살려 한동안 직장 핸드볼선수로 활약하며 안양예술인학교에서 묵고 있던 70년도 봄이었다. 신세계레코드사 작사가가 찾아왔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을 같이 본뒤 주제가 ‘어타임포어스(A time for us)’를 번안해 레코드를 취입하자고 했다. 쟁쟁한 가수들을 제치고 옴니버스 레코드 타이틀사진으로 실렸다. 노래가 히트하면서 방송국 프로듀서들이 ‘徐씨 모시기’ 경쟁에 나섰다. 이때는 매일 YWCA강당에서 ‘청개구리모임’을 갖던 시절. ‘청개구리’가 알려지면서 통기타 언더그라운드 계열 가수들이 모인게 바로 ‘맷돌’이다. 매주 수요일 명동 코리아나백화점 강당에서 자작곡 공연을 가졌는데 ‘군사독재반대’‘유신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결국 14회 공연도중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들이닥쳐 끝이 났다. 그리고 73년 4월 TBC 심야 라디오프로 ‘밤을 잊은 그대에게’ 진행을 맡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그해 가을 러스크 미국 국무장관이 제2차 한국군 월남파병 압력차 방한했을 때다. 방송도중 UPI 종군기자의 월남전 참전미군의 만행을 기록한 ‘추악한 미국인’을 죽죽 읽어내렸다. 즉각 중앙정보부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잡으러 온다”는 말을 듣고 방송국 앞 목욕탕으로 도망,4일간 숨어 지냈다. 그리고 3년간 모든 활동이 철저하게 금지됐다. 그때 당국이 대마초사건을 핑계로 대중가수들을 줄줄이 묶어 들여 빈사상태에 빠진 연예계의 대안을 찾던중 徐씨를 대상으로 삼았다. 중앙정보부 요원들이 대전까지 내려와서 상경을 권유해 일단 서울로 올라왔다.그리고 당국의 통제를 시험해보기 위해 취입한 노래가 ‘가는 세월’이다. 그때 MBC 라디오에서 ‘정오의 희망곡’ 진행 제의가 들어왔다. 물론 당국의 입김이었다. 같은 방송 라디오프로 ‘안녕하십니까 서유석입니다’와 TV프로 ‘여의도1번지’를 맡아 인기가 치솟기 시작했다. 77년 ‘푸른 신호등’을 맡아 진행한지 1년쯤 됐을 무렵 청와대로부터 진행자 교체지시가 떨어졌다. 프로 시작전 항상 정치판과 사회비리를 강도높게 비판한게 문제였다. 그후 동아방송으로 옮겨 ‘명랑 교차로’를 맡았다가 시사풍자 코너 ‘형님 이래도 됩니까’로 인해 79년 단명으로 끝났다. 81년 ‘푸른 신호등’을 맡았고 이후 지난 15대 총선에서 무소속 출마때까지 이 프로를 진행했다. 15대 총선이 끝난뒤 지금까지 줄곧 교통방송 ‘출발서울대행진’을 맡고 있다. 교통관련 논문도 2편을 발표하고 (주)다물대표로 교통관련 기기를 2건이나 상품화하는 벤처사업가로 변신했다. “지난 70·80년대의 언더그라운드 통기타 가수들은 현실과 벗어난 노래를 부르기가 어색했습니다. 사회적으로 만연한 부조리 부도덕을 보고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니 당연 제약이 많았고 음악계로서도 퇴보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가수 안혜경/반체제로 옥고 아버지에 영향/성악도서 운동권 가수 변신/계엄령 속에서도 민중가요 배포/여성밴드 결성 ‘저항 노래’ 1970년대말부터 지금까지 대학가에서 변함없이 불리는 ‘민주’란 노래가 있다. 운동권 노래의 고전중 하나지만 정작 이 노래를 만든 이의 이름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5인조 여성 록밴드 ‘마고’를 이끌고 있는 安惠敬씨(41). 이화여대 성악과 재학시절 노래운동에 뛰어든뒤 노동·여성·환경과 관련한 메시지 강한 노래들을 쉼 없이 발표해오고 있는 개성파다. ‘까치길’‘민주’‘황혼’ 등 초기의 노래에서 우리 역사와 사회의 모순들을 담았다면 ‘커피카피 아가씨’‘일이 필요해’에선 여성 노동문제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 또 ‘침묵의 봄’‘검은 민들레’ 등은 환경오염을 다룬 것이고 ‘평화공원’‘너희나라를 위해’등은 반전평화의 메시지가 강렬하다. 모두 현실비판과 역사의식이 흠씬 밴 자작곡이다. “70년대 사회 부조리와 부패에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던 아버님의 영향이 컸지요. 반체제적인 발언으로 옥고를 반복하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당부는 제삶을 지탱하는 기둥입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수감중이던 아버지에게 음악대 진학의 꿈을 알렸고 “대중을 위한 진정한 예술인이 돼라”는 아버지의 편지글을 가슴에 깊이 새겼다. 성악과에 진학해 현실과 동떨어진 귀족적인 음악에 반발했고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고민하던중 金敏基씨의 노래극 ‘공장의 불빛’에 참여한 게 노래운동의 시초. 1학년때 사전 정보누출로 불발에 그친 집회때문에 줄곧 정보과 형사들의 감시를 받아야만 했다. 레슨을 받으러 교수 집에 갈때도 항상 검은 색 짚차에 태워져 갈 정도였다. 졸업음악회 대신 혼자 작업한 노래 16곡을 담은 불법테이프를 만들어 선후배 동료들에게 돌렸다. ‘민주’도 여기에 실려 있다. 이 노래들이 자신도 모르게 대학 노래패들을 통해 퍼졌다. 80년도 대학 졸업후 바로 교사생활을시작했지만 노래 만들기를 중단하지 않았다. “계엄령이 내려진 가운데 TBC 방송국에서 ‘횃불’‘해방가’‘농민의 노래’ 등 민중가요 20곡을 숨죽이며 녹음해 배포했는데 이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청계천 복사가계에서 복사한 테이프 20여개를 돌렸고 임진각에 가서 통일을 생각하며 이 테이프 1개를 던졌다. 온산 여천공단의 오염실태를 고발한 마당극 ‘청산리 벽폐수야’ 금지도 잊지못할 일. 공연윤리위원회에 심의를 냈는데 전면 공연금지 지시가 떨어졌다. 결국 워크샵 형식을 가장해 서울 아현동 애오개소극장에서 4회공연을 어렵게 가졌다. 87년부터는 여성 환경 시민단체와 연계해 대학 교회무대와 소극장 운동을 벌였다. 92년 첫 공식 음반 ‘여성 환경 노래’를 출반했는데 이때도 노래 ‘평화공원에서’가 탈락됐다. 그리고 95년 2집 음반부터는 비교적 편한 음악을 택해 실었다고 한다. 지난해 여성5인조 록밴드 ‘마고’를 조직해 전국을 다니고 있고 지난 91년 결성된 ‘여성문화예술’에도 기획위원을 맡아 문화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물론솔로로 전국의 공연장을 다니며 공연을 병행한다. 성악과 출신이면서 운동권 가수로 방향을 잡았고 일부러 고전악기를 배웠다는 安씨. 1남1녀의 자녀를 둔 주부 가수지만 남자들만의 영역이란 편견을 깨기 위해 베이스 기타를 배워 그룹 마고에서 베이스를 맡고 있는 고집센 여성이다. 앞으로 계획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원하는 것에 달려들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 ‘TV 시국토론’ 대화물꼬 트이나/국민회의 MBC 제의 수락

    ◎한나라도 일단 긍정적 반응/서울집회 이후 결정 방침 마주 달리는 열차에 비유되던 여야 대치정국이 ‘방송 토론회’를 계기로 전기를 맞이할 수 있을까. 결과는 비관적이지만,절망적이지는 않다는 게 여권의 판단이다. 국민회의 鄭東泳 대변인은 27일 MBC에서 시국 토론회 개최에 따른 참석여부를 물어 즉각 수락했다고 밝혔다. 이어 “토론 참가자의 자격 조건을 두는 것은 아니지만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가 참석하고,방송일정은 28일 밤이지만 가능한 한 빠른 시일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했다”고 덧붙였다. 李총재가 참석할 경우 국민회의에서는 趙世衡 총재권한대행,자민련에서는 朴泰俊 총재가 나설 예정이다. 여권은 참석자를 두명씩 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다. 토론 주제는 ‘세도(稅盜)’사건과 지역감정 조장을 포함한 시국전반이 좋다는 의견이다. 한나라당도 TV시국토론에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표적사정,야당파괴공작 등이 주제에 포함되면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대화를 위한 반상은 마련된 셈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28일 간부회의 등을 통해 참석 여부를 최종 확정할 방침이어서 이번 토론회가 불발될 가능성도 있다. 토론회가 열려도 당리당략과 주의주장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있다. 하지만 여권은 방송 토론회에 상당한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다. 여야 모두 책임 있는 사람의 발언을 통해 물꼬가 터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 8·15축전 성사 가능성 ‘흐림’

    ◎北 ‘범민련·한총련 주도’ 조건 제기/판문점행사 불발책임 전가 수순 분석 북한측이 제의한 ‘8·15 판문점 통일대축전’행사에 참여하기 위한 정부와 각종 사회단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새로운 민간단체도 곧 구성될 전망이다.하지만 8·15 대축전의 성사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 분위기다. 북측이 계속 무리한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康仁德 통일부장관은 6일 송현클럽에서 정당과 민간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가졌다.薛勳 국민회의 기조위원장,鄭一永 정일영 제3정조위원장,諸廷坵 한나라당 제1정조실장 등 정당대표와 李長熙 경실련 운영위원장,宋榮大 민족통일협의회 의장,趙誠宇 자주평화통일 민족회의 집행위원장 등이 참석했다.간담회는 ‘민족화해협력 범(汎) 국민협의회’를 결성키로 했다. 이 협의회는 8·15 대축전행사 뿐 아니라 앞으로 민간통일운동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게된다.정부는 불법단체인 한총련과 범민련도 단체자격이 아닌 개인자격으로 8·15 대축전에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하지만 북한의 생각은 다르다.북한은 지난 달 10일 대축전을 제의할 때에는 한총련과 범민련에 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지난 달 18일 정부가 예상과는 달리 대축전을 수용하겠다고 선언하자 북한은 새로운 조건을 들고 나왔다.범민련과 한총련이 참석해야 한다는 ‘단골 메뉴’다. 또 정부가 범민련과 한총련도 개인자격으로 참석할 수 있는 쪽으로 전향적으로 나오자 북한은 한 술 더 떴다.북한 중앙방송은 5일 “범민련과 한총련이 남측 대표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북의 일련의 반응을 두고 볼때 북측은 8·15 대축전의 ‘판’을 깨 불발책임을 우리측에 넘기려는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 중견 방송작가 최홍준씨 ‘무한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 펴내

    ◎국내외 가톨릭 성인들의 삶 중견 방송작가인 최홍준씨(K­TV전문위원)가 국내외 가톨릭 성인들의 삶을 다룬 성인전 ‘무한을 향해 자신을 던지고’(가톨릭신문사)를 냈다.기존의 평면적인 성인전 구성방식에서 벗어나 성인들의 여러 일화와 약전을 입체적으로 구성해 놓은 것이 특징.또한 스스로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인 세계에 유례가 없는 한국 순교성인들의 박애정신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이미 30여년 전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은 공의회를 마치면서 발표한 메시지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파멸과 고루의 현상인 무신론 앞에서 생명의 신앙과 생명에 뜻을 주는 모든 것을 주장할 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이 책은 ‘미래를 비추는 불빛’인 다음 세대에게 이러한 생명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데에도 적잖은 비중을 뒀다.이 책의 1부 ‘이 땅의 순교자들’편에서는 초대교회 공동체를 연상시키는 현경련 베네딕다 성녀,이소사·아가다 등 기해년 5월의 순교자들, 한국성직자들의 수호자 김대건 사제순교자 등을 다룬다. 또 2부 ‘교회의 누룩이 된 해외 성인들’편에서는 로레또의 성가정, 사도요한,동정녀 아녜스,베네딕도와 스콜라스티카, 사도 마티아, 필립보 네리 신부,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동정녀 젤뚜르다,십자가의 요한,초대교황 베드로,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등이 소개된다.지은이는 2000년 대희년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특히 필요한 것은 성인들의 끝간데 없는 사랑의 정신과 사그라들줄 모르는 견인불발의 정신이라고 강조한다.
  • 정기국회 상임위별 쟁점과 전망(정가 초점)

    ◎여·야/공정거래법 치열한 고앙 예고/법사위­검·경 중립화/재경위­OECD 마찰 클듯/건교위­전세값 대책/내무위­한총련사태 이슈로 10일 개회되는 제181회 정기국회에서는 내년 대통령선거를 위해 고지를 선점하려는 여야의 공방으로 크고 작은 대립과 파행이 잇따를 전망이다.특히 법률제정안 43건을 비롯해 이번 국회에 상정될 1백59건의 법률안중 상당수가 여야의 이해를 달리하고 있어 오는 30일부터 시작될 국정감사를 시작으로 상임위마다 여야의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된다. 쟁점상임위로 꼽히는 법사위에서는 우선 검찰과 경찰등 선거관련 공직자의 중립화를 요구하는 야당의 요구가 거셀 전망이다.특히 야권은 신한국당 강삼재 사무총장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이와 연계,강도 높은 공세를 펼 자세다.신한국당이 검토하고 있는 안기부법 개정문제도 첨예한 대립이 점쳐진다.범죄신고자를 적극 보호하기 위한 법안의 제정이 주목된다. 행정위에서는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둘러싼 재계의 반대움직임이 여야의 공방으로 발전할 공산이 크다.정보공개법제정안의 정보공개범위도 여야의 쟁점이다. 재정경제위는 최근의 경제난에 대한 야당의 파상공세 속에 조세감면규제법과 소득세법·상속세법 등 각종 세법개정안에 대한 공방이 점쳐진다.특히 정부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연내 가입방침에 대해 야당이 반대하고 있어 가입비준안의 국회동의여부가 주목된다.이밖에 야당은 정부의 내년도 사회간접시설 확충예산의 상당수를 대선용 선심성 예산으로 규정하고 있어 예결위와 맞물려 마찰이 예상된다. 통일외무위는 북한 나진·선봉 투자포럼 불발에 따른 향후대책과 북한경수로 건설비용의 한·미·일 3개국의 분담률,탈북자 대책 등의 현안을 안고 있다. 내무위에서는 최근의 한총련사태에 따른 정부의 학원폭력시위대책과 집회시위법·화염병사용처벌법 개정등이 공방대상이다.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경찰중립화문제도 마찰요인이다.정부의 부동산관련정보의 전산화를 위한 지적재조사법제정안과 지역주민의 조례제정및 개폐청구제도를 도입하는 지방자치법개정안,현행 재난관리대책을 보완하는 재난관리법개정안이 주요입법과제로 꼽힌다. 국방위는 내년도 국방예산 12% 증액방침이 쟁점사항으로 꼽힌다.야권은 대규모 국방사업에 따른 국방부와 특정재벌의 유착가능성과 방위산업체비리등을 따진다는 방침이다. 교육위에서는 한총련사태에 따른 향후 학원대책과 한의대생 학사관리대책,교육감선거비리 등이 현안으로 꼽힌다.한총련시위 가담학생 학사징계조치와 통일교육강화문제,학생생활기록부의 문제점,한의대생 집단유급사태등이 중점 논의될 예정이다. 문화체육공보위는 야권의 방송위원회 독립성 강화요구와 맞물린 방송법 제정과 이른바 「관변단체」예산지원을 둘러싼 공방이 점쳐진다.지역간 과열경쟁이 우려되는 월드컵개최도시 선정문제와 지역민방 추가선정문제도 집중 논의될 전망이다. 농립해양수산위에서는 정부의 식용쌀 수입과 약정수매제도 시행을 놓고 여야의 대립이 예상된다.야당은 특히 직접지불제도 등 세계무역기구(WTO)특별법에 근거한 농어민지원대책의 조속한 시행을 요구하고 있다. 통신과학기술위에서는 21세기 과학입국을 위한 정부의 기초연구투자확대와 민간기술개발지원을 골자로 하는 과학기술혁신특별법제정안,우편시장개방에 따른 우정사업운영특례법제정안등의 처리가 주목된다. 노동환경위는 여천공단 환경오염및 시화호 수질오염개선대책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속에 민간기구에도 공신력 있는 자격증발행권한을 부여하는 자격기본법제정안과 건설근로자의 퇴직금제도를 도입하는 건설근로자고용개선법제정안을 처리한다. 보건복지위에선 의료사고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각 시·도에 중앙 및 지방의료분쟁조정위원회를 설치하는 내용의 의료분쟁조정법제정안 처리가 주요과제로 꼽힌다.한·약분쟁도 현안이다. 건설교통위는 대형국책사업과 각종 사회간접자본확충과 관련해 적지 않은 몸살을 앓을 것 같다.지난 임시국회때 보류된 수도권신공항건설촉진법개정안 처리와 경부고속전철 노선문제,위천국가공단 지정을 놓고 여와 야,각 지역간 충돌이 예상된다.이밖에 폭등하고 있는 전세값 안정대책도 중점논의될 전망이다. 정보위에서는 신한국당이 검토하고 있는 안기부법개정문제를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점쳐진다.
  • 서울신문에 비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서울신문50돌 특집:Ⅰ)

    ◎해방후 판·검사 한글공부 진풍경 「서울신문으로 매신이 갱생」.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은 이같은 1면 제목을 통해 창간을 선언했다.일제의 오랜 질곡에서 해방된 조국의 대변기관이 되겠다는 의지와 함께 첫발을 내디딘 서울신문의 역사는 바로 해방 50년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서울신문과 더불어 온 그 50년동안 서울신문 지면에 비친 우리의 세태도 세월의 깊이 만큼이나 변화무쌍 했다.해방의 감격과 환희가 묻어났던 창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세태 변화를 연대별로 묶어 본다. ◎해방이후 40년대/“엉터리 기생을 일소 풍기 향상시키고저…” 이색 시험광고 눈길 창간 당시는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사회상이 지면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창간호 만큼은 특성상 각계의 격려와 기대의 말들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음 날인 23일자부터는 상해임정요인 귀국,미소공동회담,3·8선 긴장 등 해방직후인 당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1면 톱은 「중경의 김구선생 일행께서 개인자격으로 23일 오후 4시 김포에 환국하며­」라는 기사로 임시정부요인들의 환국을 알리고 있다. 이같은 어지러운 정국 분위기와 함께 한동안 지면을 장식한 것은 이를 틈타 정치테러와 집단강도가 성행한다는 내용들이다.심지어 강도들이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처럼 한동안 살벌하던 지면은 점차 민생 분야로 그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46년으로 접어들면서는 판검사들이 토요일 하오 법원에서 한글을 배우는 진풍경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일제통치 36년이라는 세월속에 우리말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지만 무식쟁이나 농민 보다는 유식한 사람이 오히려 더 우리말을 소홀히 했던 세태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모자 광고가 어느 것보다 많이 광고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당시는 모자를 안쓰면 행세를 못하던 때라 모자광고가 지금의 패션광고 만큼이나 많았던 것이다. 「엉터리기생을 일소하여 풍기를 향상시키고저­」라는 기생자격시험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50년대/연재소설 「자유부인」 장안의 화제/전쟁중 밍크·귀금속 걸치면 처벌/“갈아보자” “구관이 명관” 유행어로 50년대는 6·25의 발발로 인한 여파가 사회 모든 분야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다. 6·25는 같은 겨레끼리 죽이고 죽는 민족상잔의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피란민으로 만든 가난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전시체제하에서 나온 「배급쌀」이라는 말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50년 10월에는 양곡배급이 시작됐다는 기사들이 사회면을 채우고 있다. 6·25는 또 전술용어와 투쟁용어를 양산해 내기도 했다.「진충보국」 「빨간딱지」(병역 기피자 등을 일컫는 말) 등 생소한 용어들이 생겨났고 의지할 데 없는 월남민들을 별볼일 없는 빈털터리의 대명사로 「38따라지」라 부르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밀수해온 외제양복과 구두를 갖춘 「마카오신사」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시중에는 마카오복지 등 사치스런 옷감이 범람해 당시 신문에는 「당신의 옷차림은 전시생활에 알맞습니까」라는 글이 실리고 「전시생활 개선법」이 만들어져 밍크목도리와 귀금속을 착용하면 처벌까지 당하기도 했다. 이무렵에는 전쟁이 심어놓은 퇴패와 성문화도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서울신문에 연재되던 소설 「자유부인」을 놓고 벌인 유명한 논쟁은 그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소설가 정비석이 쓰고 김영주화백의 삽화를 곁들인 소설 「자유부인」은 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2백15회에 걸쳐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서울 수복 이후 여성들의 취업전선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계바람,댄스바람 등 만연한 퇴패적 분위기 속에 바람난 한 대학교수 부인의 이야기가 소설의 큰 틀이었다. 논쟁의 발단은 서울법대 황산덕교수가 3월1일자 대학신문에 『대학교수를 상대로 모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유부인에게 드리는 말」이란 공개 비난문을 발표하면서 전개됐다. 이에 작가 정씨가 3월11일자 서울신문에 『황교수의 비난은 문학가에 대한 모욕과 감정적 흥분으로 일관돼 있다』는 반박문을 게재,반격을 가했고 여기에 홍순엽변호사가 3월21일자 지면을 통해 정씨의 입장을 지지하는 기고를 하면서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었다. 이같은 논쟁은 고정독자와 판매부수가 늘어나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당시 호사가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서가 어디쯤에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혼란은 사회상에만 내비친 것이 아니었다.전쟁이 끝나자 자유당의 부패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치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변해갔다.「막걸리선거」 「피아노선거」 온갖 부정을 저질러오던 자유당은 54년 11월29일 부결된 초대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 개헌안을 사사오입을 통해 가결시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야권이 집결,민주당을 창당했고 56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당과 맞붙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들고나와 일반국민들의 정서를 파고 든 반면 이에 맞서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희극적인 이러한 정치형태는 일반 모임이나 가정에서도 유행을 탈 수 밖에 없었다. 55년에는 국산 자동차 1호인 시발자동차가 등장,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6·25의풍파로 시작된 50년대는 마지막까지 국민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며 저물어 갔다.59년 9월16일 사라호 태풍이 영·호남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이 태풍으로 이 지역에서만 사망 8백30명,부상 2천2백여명,실종 3백4명,이재민 39만명이 발생했다. ◎60년대/“KS마크”는 출세보장… 과외열풍 불고 연탄가스·불발탄 사고 사회면 단골로 60년대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허무와 무력감속에 「빽」과 「와이로」가 난무해 「러키스트라이크」담배와 양주「조니 워커」가 민원인들에게 필수품이던 시절이다. 「조국근대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박정희의 혁명정부는 「우리가 살길은 수출이고 돈이 되면 무엇이든 판다」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펴나갔다. 담배는 고급담배인 「신탄진」한갑에 50원,「아리랑」 한갑이 25원이었는데 당시 귀했던 쇠고기 한근이 1백58원이고 연탄 한장에 8원,소주 2홉들이 한병이 43원이고 보면 담배 권하는 인심을 마다하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금 한돈쭝이 1천6백60원인데 결혼예물로 금반지 세돈쭝쌍가락지 끼고 「도고온천」이나 「경주」로 신혼여행을 가는게 보통이었다. 대학입시 열기도 대단해 대학생과외가 널리 유행처럼 번졌고 경기고(K)와 서울대(S)를 나오면 출세는 보장된다는 「KS마크」도 이때 등장 한다. 전후 서민들의 유일한 문화·오락 생활은 영화관에서 필름이 낡아 화면이 비가 내리는 듯한 영화속의 현실에 빠져 드는 것이다.이런 열기에 힘입어 60년대는 우리 영화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가 된다. 최초의 컬러시네마스코프 「성춘향」을 비롯해 「빨간 마후라」「맨발의 청춘」「남과북」「저하늘에 슬픔이」등과 함께 68년「미워도 다시한번」은 장안의 돌풍을 일으켜 이후 속편이 4번이나 만들어진다. 당시 「한국의 제임스 딘」신성일은 뭇여성의 우상이었고 그가 빠진 영화는 흥행에 실패해 한해 50여편 이상의 영화에 겹치기출연이 보통이다.한편 문희·윤정희·엄앵란등의 「트로이카」여배우의 연기대결도 볼만해 그야말로 영화사에 꽃을 피운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화는 61년 KBS-TV 개국에 이어 잇따라 등장하는 상업방송에 서서히 그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 70년대 들어서는「아씨」「여로」등 TV연속극에 밀려 「안방극장시대」에 자리를 내준다. 겨울만 되면 연탄가스에 일가족이 몰사했다는 기사가 하루 걸러 지면을 메웠고 지방에서 한해 불발탄 폭발사고로 2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또 3월이면 보릿고개 때문에 「춘궁…농촌현장을 가다」등의 단골 시리즈도 있었다. 당시의 신문광고는 주로 약·영화·책 광고 등이 대부분인데 「원기소」「테라마이신」「개풍경옥고」등 요즘 세대들에겐 익숙지 않은 약이름과 「천지 캬바레 개업」「연말연시 선물엔 역시 신탄진」「벌꿀비누 애용자 사은 쇼 파티」「통신강의록 독학생모집」「경기중·이화중 학생 대모집」등도 이채롭다.
  • 과거 청산(21세기 한­일 새 지평:1)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 광복 50년은 한국과 일본간에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매듭짓고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것이다.과거청산,외교·안보,경제협력,문화교류등 주요 분야별로 두나라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연재로 들어본다. ◎“일은 수억 아시아인 고통 외면 말아야”/일의 과거사 인식 자세의 문제점/아직도 침략전쟁 책임 회피 급급/굴절된 역사 직시… 참된 자성 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85년5월 당시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게 된다.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나치즘과 제2차대전의 교훈을 상기시켰다.같은해 8월 일본의 당시 나카소네총리는 A급 전범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정국신사에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배를 감행하였다. ○독일과 인식 큰 차 일본 각료들의 참배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금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제2차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죽은 일본군의 넋을 추모하는 결의가 무성하였다.과연 오늘의 독일에서 현직 각료가 나치 수뇌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제2차대전의 추축국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이같은 차이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대한 책임추궁제도로는 인적책임에 대한 전범재판과 물적책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제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제의 과거사에 관하여는 인적 책임과 물적 책임 그 어느편도 철저히 규명되거나 추궁되지 못하였다.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 미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단죄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대공방벽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였다.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보다도 일본의 경제부흥과 재군비를 더욱 강조하였다.그 결과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전후의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였으며 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전후처리가 맡겨졌다. ○가해자 인식 부재 이러한과정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전후처리 태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부각되었다.첫째,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이다.수억의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하여 장기간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되었고,오히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이 강조되었다.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가해자 의식의 부재는 전쟁책임의식의 부재로 연결되었다.일본인 스스로가 피해자의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을 외면하였고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하였다.패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죄결의가 속빈 강정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상의무도 회피 셋째,전쟁책임의식의 부재는 자연히 대외적 배상의무 회피를 조장하였다.전후 일본이 구군인 등 자국민 피해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의 누적합계가 근 40조엔에 육박하고 현재도 연간 2조엔에 상당하는 지불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 25개국과 체결한 29개 전후처리조약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지불한 금액의 합계는 1조엔을 약간 넘을 뿐이다.제2차대전의 희생자란 그릇된 나치즘의 피해자라는 성격 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의 전쟁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수행에 앞장서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 각지의 법원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하여 필리핀인·중국인·네덜란드인·홍콩인 등 각국 외국인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무려 30건 가까이 진행중이다.대부분이 70을 넘은 고령의 피해당사자가 그들 살아 생전에 끝나기나 할지조차 전망이 불투명한 소송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심정을 일본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일 소송 잇따라 금년 5월 유럽에서는 제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파리에서는 독일군의 시가행진도 있었다.금년의 독일군이 50년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닌 유럽 번영의 동반자로서 행진하였다는 점이다.일본은 현재 자신을 구적국으로 규정하고 출범한 유엔체제 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남경 아니면 마닐라에서 일본자위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일본 자신이 될 것이다. ▲정인섭 방송통신대 교수(41세) ▲서울 법대졸 ▲법학박사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바로잡는 일부터”/과거청산과 한­일 미래를 위하여/위안부 보상문제 등 적극 나설때/「불전결의 불발」 같은 추태 없어야 지난 6월9일 채택된 전후50주년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국회(중의원)가 보인 추태는 「50년 결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나라에의 국제공약이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일 국민 기대 배신 그것은 또 전후50년 결의가 아시아 여러나라와 진실로 화해하고 미래지향의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란 많은 일본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신진당 부당수)는 『전후50년이라는 고비를 살리지 못하고 결의를 끝내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대단히 엄한 반발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 신진당은 「50년결의」 채택의 본회의를 보이콧했다.여당 3당으로부터도 다수의 결석자가 있어서 5백2명의 중의원중 채택에 참가한 것은 겨우 과반수인 2백52명으로 이례적인 사태였다.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등 역대 일본총리가 방한시 행한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발언을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역대 총리의 발언을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만들고 만 일본국회의 어처구니없는 전후결의의 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찬물 끼얹는 행위 그런 가운데 일본인을 구해 준 것은 『일본의 국회결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새로운 불신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도 『좋은 내용의 결의를 향하여 노력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그 사람들은 이 결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앞으로의 노력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한 김태지주일대사의 적절한 발언이었다.(아시히신문·통일일보 인터뷰)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의 유력지들은 나름대로 특별기사를 게재하였으나 국교30년의 양국의 현재위치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어가는 상호의존」,「아직 두꺼운 마음의 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닛케이신문 6월 20일자였다.앞서 언급한 추태의 극을 보인 일본국회의 전후결의가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더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소걸음과 같지만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선,종군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해결등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문부성이 6월28일 발표한 국민학교 6년생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일본어의 강제,창씨개명,토지의 몰수,손기정선수의 일장기 사건등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나 국민학생도 잘 알수 있도록 됐다. 90년 5월 방일한 노태우전대통령은 일본 국회연설과 일본 기자클럽 회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호소했다.일본 문부성이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향해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 국교·중학교의 수업중 꼭 다루도록 지도를 거듭 내린 것도 이 때부터였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 이래 3년 넘어 보상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사업을 추진하는 임의단체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설립돼 7월27일에는 전참의원의장 하라 분베에(원문병위)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한국 중국 필리핀등 1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 전 위안부에게 일시금을 보상함과 아울러 복지와 의료면의 지원사업에는 일본정부로서도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로 됐다. ○청산 움직임 일어 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사람의 왕래는 30년전의 1백20배.지난해는 2백69만명을 헤아렸다.필요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람의 왕래의 확대다. 미래지향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한일 쌍방이 필요로 하는 관계의 심화와 발전인 것이다.앞에서 말한 닛케이신문은 「깊어지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묶는 키워드를 「공통의 이익」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한일간 수평분업체제는 또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필요로 하는 관계 자체다.엔고현상으로 생산거점을 대폭 해외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98년 생산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의 닛산자동차의 전면적인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협력관계 불가피 관련부품 메이커 1백15개사의 부산유치와 함께 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기타큐슈를 한국 남부와 결부,국경을 넘는 경제권의 성립이 예상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이인삼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국민의 뿌리깊은 감정마찰과는 별도로 세계의 외교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사실로 돼 있다」라는 닛케이신문의 지적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앞서 짚어보는 것으로서 매우 시사적인 것이다. ▲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 교수 61세 ▲나고야대 졸
  • 민족의식 고취에 중서 부담감/하얼빈 조선족공연 중단사태 안팎

    ◎등 사후 정정불안 요인 사전 차단 포석/정부,북경 자극않는 새전략 채택키로 현철·주현미 등 우리 연예인들의 하얼빈 조선족 행사 공연이 저지됨으로써 중국내 조선족에 대한 우리 민간의 접근태도가 한·중간 「뜨거운 감자」임이 새삼 확인되고 있다. 물론 이번 공연중단 사태는 조선족 민속문화축제를 기획한 현지 주최측과 우리 방송사의 무리한 추진이 직접적 도화선이 됐다.이들 연예인들이 중국 당국의 사전허가를 받지 않은 채 공연용 비자도 아닌 관광비자로 들어간 탓이다. 따라서 연예행사 불발문제는 두나라간 근본적 외교 마찰로 비화되지는 않을 전망이다.황병태 주중대사도 4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은 민간차원에서 의사소통이 안돼 일어난 일』이라면서 『외교적 마찰은 없으며 외교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황대사는 『그러나 중국측도 조선족이 4만명이나 모인 장소에서 한국 연예인들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공연을 하게 되는데 대해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고 있다』고 전했다.그러나 정부는 조선족 문제가 한·중간 민감한 외교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에서 민간차원의 한·중교류에 있어 중국측을 자극하지 않는 방향의 대책을 마련했다. 그동안 중국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인과 관광객들의 조선족을 상대로 한 민족의식 고취 움직임에 사시적 눈길을 보여 왔었다.사실 중국정부는 등소평 사후 최대 정정불안요인으로 소수민족의 독립 움직임을 꼽고 있다.실제로 이미 중국령 티베트 에선 독립운동이 활발히 일어나 유혈진압 사태까지 빚어지고 있는 형편이다.중국정부가 한국의 민간인들과 조선족의 교류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지난달 이홍구 총리의 방중때에도 이붕 총리가 『중국은 10여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으나 상호주권과 문화를 존중하고 있기 때문에 분쟁이 거의 없다』며 우회적으로 이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정부로선 일단 국내 정치성 행사에 중국동포 초청을 자제키로 하는 등 「우회전략」을 채택했다.정부의 판단은 한·중 경제협력이 본격적인 궤도에 진입했고 또 북한핵문제 등 단기적현안이나 유리한 통일환경 조성 등 장기적 숙제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같은 갈등소지는 서로에게 유리할 게 없다는 시각에 기초하고 있다.
  • “죽음의 향연”… 6·25(두만강 7백리:8)

    ◎“조국위해 몸바쳐라” 조선족 징집/인민군에 편입… 2달 훈련받고 출전/연합군 폭격에 화룡시 일대 “쑥대밭”/돌아온 포로들 “차라리 남쪽에 남았더라면” 중국에 사는 전 북한의 인민군 부소대장이상 퇴역 군인들이 불합리한 대우에 항의하여 서명운동을 일으킨 적이 있다.오늘 중국에 자리잡은 인민군 퇴역 군인들은 거의 모두 중국 인민 해방군 출신이다.이들은 본래 중국 내전의 공로자들인데 1949년 모택동과 주덕의 명령에 좇아 조선으로 건너가 조선인민군에 편입되였다.이들은 6·25전쟁에서 주역 노릇을 했지만 퇴역하여 중국으로 돌아온 후 농민이 아니면 공장 노동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이에 비해 중국 지원군에 소속되었던 군인들은 간부대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자연 분통이 터질 일이기도 했다. ○두달간 훈련받다 출전 이들은 연변 자치주 정부의 지지를 받아 대표를 파견하여 중앙에 신소,끝내 승소하였다.모든 조선인민군 부소대장이상 퇴역 군인들은 현재 간부대우를 받고 있고 자식들도 취직시켰다. 화룡시 승선진 고성리촌의 김성묵(70)은 1947년 중국 내전에 참전,1950년 4월 조선으로 나가 인민군 7사단에 편입되었던 사람이다.중국군의 군사민주에 젖어 있던 그들은 인민군 명령제에 잘 습관이 되지 않았다.소련군인식으로 다리를 꼿꼿이 펴고 행군하고 총도 왼쪽에 메야 했다.돌격시에는 꼿꼿이 서서 달렸다.두달동안 훈련을 받다가 전쟁에 휘말려 들었다고 한다. 『6월25일 새벽 맹렬한 포사격을 끝내고 국군진지로 돌격해보니 여자 방송원 한사람만 남았습데다.참말로 포탄 값도 못한 셈이디요.인민군들이 물밀듯 탕크를 몰고 서울에 들어가니끼리 우리를 소련군인줄로 알았다고 기래요.인민군이 탕크에서 나오자 깜작 놀라는 눈치였읍네다.내가 소속된 사단은 이천에서 국군의 반격을 받아 쌍방이 숱한 사망자를 냈수다.국군 포탄이 대피호에 떨어지면서 부상을 당했는데 팔이 끊어지고 다리를 상했디요.평양 웽그리아 병원으로 후송되어 치료를 받다가 매일 20리씩을 걸어서리 평양에서 신의주를 거쳐 압록강을 건넜지 뭡네까.유수현에서 치료를 받고 다시 이듬해 3월에 전쟁에 참가했디요.그 전쟁 말도 말라우요』 연합군의 인천상륙으로 후퇴한 북한 인민군은 중국경내로 전이했다.겨울에 두만강을 건너 온 인민군은 연변의 화룡·용정 등에 집중하여 사민들 집에 10여명씩 거주했다.중국에 친척이 있는 백성들도 강을 건너 피란을 했고 그외는 산속에 땅굴을 파고 살았다.그해 음력 10월1일(상사날)미군 비행기가 무산을 처음으로 폭격했고 이틀 후에 두번째로 폭탄을 내리부었다.화룡시 덕화진 천증백노인의 말을 들어보면 당시 상황이 잘 떠오른다. 『첫 폭격을 당한 무산에서는 17살 최호림학생이 죽었디요.비행기는 중국쪽에서 선회하여 조선쪽으로 꽂히면서 대두병같은 폭탄을 투하하고 기관포를 갈겨댔지 뭡네까.비행기가 어찌도 낮게 떴던지 자루 긴 올개미로 잡아댕기면 떨어질것 같습데다.조선쪽에서 폭파하는 진동에 중국쪽 마을 유리며 문짝이 떨어져 나갔디요.공습 사이렝이 울리면 조선 사람들이 새까맣게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왔는데 그러면 중국 쪽에서는 못오게 막더라 이 말입네다.사람들은 울면서 같이 삽시다고 손이 발이되게 빌어댔디요』 ○온마을 온통 울음바다 화룡시 승선진 고성리와 조선의 삼장은 한 마을이나 다름없어 폭탄세례를 당했다.한족 한사람이 수레를 몰고 가다가 폭탄에 맞아 죽었는데 유일하게 재수 없는 사람이었다.승선진 소학교 운동장에는 땅에 박힌 불발탄이 70년대에까지 있었다.그것은 반미 교육의 증거로 오래오래 써먹었다.천증백노인의 회고담을 계속 들어보면 연변의 조선족들도 6·25전쟁에 많이 시달렸다. 당시 민심은 황황하기 짝이 없었다.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식구들이 살아 있을 때 먹는다고 가축들을 잡아 얼려두고 먹어댔다.군인 모집이 나오면 적령 청년들은 물론 온집안이 숨이 후줄근했다.참전하면 영광이라고 온마을이 나서서 환송했지만 참전당사자와 가족들은 상사가 난 집 모양으로 울음바다였다.용정시 백금향의 박창묵(67)은 당시 6·25전쟁에 참전한 조선족의 한 사람이다.『나는 국민당군과 싸우다 47년에 부상을 입고 대퇴했수다.그후에 연변 통역학교를 다닐 때에 조선전쟁이 터졌디요.하루는 주장이자 우리 학교 교장인 주덕해동지가 와서 조선전쟁의 준엄한 형세를 이야기하면서 청년들은 국가를 위해 몸바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동원을 하데요.총알에 죽을 팔자거니 생각하니 눈앞에 아뜩합데다.우리 학급은 33명인데 여성 6명을 빼고 몽땅 잡혀갔디요.결국 절반이 죽었디만….다행이 지원군에 편입되어 통역을 맡는 통에 살아왔디요.물론 싸움판이었습네다만,안전지대에서는 남한 구경을 하고다녔디요. 마을에 열사증이 내려오면 군인가속들은 잔뜩 긴장해서 촌장과 말다툼하기 일쑤였다.국가를 위해 죽는 것은 영광이요 뭐요 하고 말꼭지를 떼면 개나발을 불지 말고 이름부터 대라고 소리를 질러댔다.일단 희생자를 알게 되면 가속들은 기절해 버리고 다른 가속들도 자기의 불행처럼 여겨 통곡을 했다.화룡시 용화향 상화촌에서만도 한국전쟁에 나갔다가 12명이 목숨을 잃었다.이번에 찾아온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의 김진수(65)는 동해바다 함포사격에 부상을 입고 1952년 9월23일에 붙잡혀 거제도에서 포로로 있다가 정전후 1954년 8월5일 포로 교환에 넘어왔다.포로병을 반역자처럼 대했던만큼 문화대혁명시기까지 인간이하의 대우를 받고 살아왔다.지금은 매달 소대장급으로 3백50원의 연금을 받고있지만 알코올중독으로 흐리멍텅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차라리 남에 떨어져 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괜히 돌아와서 고생을 했수다.부암에서 나와 같이 참전했다가 포로되었던 남원준과 이동준은 한국에 남았었는데 지금 꽤 잘 사는가 봅데다.나한테 편지가 왔댔소.보고 싶다면 보여주갔수다』 ○약혼녀… 다른데 시집가 화룡시 노과진 노과촌의 조창렬(84)노인의 둘째 동생 봉룡(1926년생)은 1945년 중국내전에 참군했다가 용케 살아났으나 한국전쟁에 나가 경상남도 창원군에서 전사했다.그는 결혼날까지 받아놓고 미처 성례를 이루지 못하고 군에 갔었다.매년 두번씩 오던 편지가 한 이년 끊기더니만 하루는 문득 열사증이 왔다.약혼자가 돌아와 머리를 얹어주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미혼녀는 다른 데로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열사증과 함께 무흘금 2백80원을 줍데다.지금은 매달 45원씩의 돈을 부모 대신내가 받고 있디요.동생 목숨 값이라 생각하니 돈을 받아 쥘 때마다 가슴이 미여집네다』 벌써 미수를 바라보는 조창렬노인은 벽에 가지런히 걸려 있는 동생의 열사증 앞에서 한숨을 지었다.
  • “김정일 강등 당해 승계 지연”/북한문제 권위자 이명영교수 분석

    ◎김일성이 작년 정치국상무위원 자격 박탈/“정일 수련필요” 김일성 「징계」가 유지로/일부서 집단지도체제 거론… 권력다툼/9일 중대방송 해프닝은 정일계기습 실패 북한의 김정일이 숨진 김일성으로부터 당정치국 상무위원 자격을 박탈,강등됐기 때문에 권력승계가 지연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돼 국내외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같은 주장을 한 북한 김일성문제 권위자인 이명영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기고를 싣는다. 김일성이 죽은지 다섯달로 접어든다.그런데도 평양은 당과 국가의 최고책임자 자리를 메우지 못하고 있다.민주국가 같으면 권한대행이 나왔거나 보궐선거를 한다해도 두번은 너끈히 했을 세월이다. 평양의 당규약이나 헌법에는 최고책임자의 유고시에 대비한 규정이 없다.「수령」의 유고를 상정한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어서 그랬을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일찍이 1974년2월의 당중앙위원회 제5기 제8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을 후계자로 결정해 놓은 이래로 20년동안 세습체제의 공고화를 위해 온갖 정력을 쏟아왔었다.당권과 국권을김정일이 세습토록 한 결정은 지난 7월20일의 김일성사망 중앙추도대회에서 한 김영남의 추도사대로 「어버이 수령님께서 우리 혁명의 미래를 위하여 이룩하신 가장 특출한 공적」이었을 터인데 왜 그 정해진 사람이 정해진 자리에 정식으로 오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평양에서 나오는 소리는 김일성 사망전이나 후나 똑같이 당과 국가의 영도자는 김정일로 되어있다.그러나 정식취임은 아니 하고 있다.일당독재의 전체주의국가에서 당과 국가의 최고책임자가 비어 있다는 것은 대단한 비상사태이다.이미 김정일체제로 되어있기 때문에 자리에 오르는 것이 급하지 않다느니,또 무슨 인민들이 아직도 슬픔에 잠겨 있는데 축하분위기로 바꾼다는 것이 마땅치 않다느니 하는 식의 소리들은 사사집에서나 통할 말이지 당과 국가의 논리로는 도저히 통용될수 없는 것이다. 김정일의 정식취임이 늦어지는 데는 곡절이 있다.김일성의 교시가 매사의 최고원리로 되는 것이 평양이었다.그 강대한 힘이 홀연히 사라지고만 허탈상태에서 모든 결정에서 기본기준으로 되는 것은 그의 유지일 수밖에 없다.그런데 그 김일성이 아들을 후계자로 정해는 놓았으나 나라 일을 맡기기에는 더많은 수련을 쌓아야 한다는 결정을 내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중대한 일은 평양은 발표하지 않는다.그러나 세밀히 분석해보면 알수 있다. 1993년 6월을 고비로 김정일의 직함이 바뀌었다는 사실이 있다.그 전단계에서는 예컨대 조선인민군 창건60돌 행사(92년4월25일),조선지식인대회(92년12월9일),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4차회의(92년12월11일),동 제5차 회의(93년4월7일) 등등 공석상에서의 김정일의 직함은 「정치국 상무위원이시며 중앙위원회비서이시며」하는 당의 직책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또는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이신」이라고 하는 군의 직책이 반드시 붙어 있었다. 그랬는데 93년6월 후단계에서는 예컨대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6차 회의(93년12월9일),동 제7차회의(94년4월6일),전국노병대회(93년7월24일),전승40돌행사(93년7월27일),당창건 48돌행사(93년10월10일),김정일 생일행사(94년2월16일) 등등 공석상에서의 그의 직함은 「정치국 상무위원이시며 중앙위원회 비서이시며」는 빠지고 그냥 「국방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이신」만으로 된다.김일성의 영결식에서도 그랬고 1백일 추도대회에서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이는 직함이 길어서 짧게 부르느라고 그런 것이 아니다.국가위에 당이 있는 나라에서 당의 직함을 뺀다는 것은 여간 딱한 사정이 아니고서는 아니된다.가능한 분석은 93년6월경에 있었던 정치국회의에서 김정일은 한단계 강등되어 그냥 「정치국위원」으로 되었다는 것이다.이를 그대로 발표하면 후계자의 위신에 여간 큰 상처가 되지 않는다.그래서 당직은 빼고 군직만을 쓰기로 한 것이다.마침 국방위원장이 국가서열로는 주석 다음 자리이니 그런대로 체모는 지킬 수 있었다. 김일성은 과거에도 김정일을 견책처분한 일이 있다.70년대 중반에 김정일이 3대혁명소조를 거느리고 전국을 휩쓸 때 젊은것들이 행동이 지나쳐서 노년 간부들과의 사이에 마찰이 심했고 사회에 불만·비난이 비등했다.그래서 김일성은 김정일을 나서지 못하게 하고 부자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던 것에서 아들 사진을 철거시켰다.민심을 수습하고 아들을 반성·수양케 하는데 있어서 김일성은 민첩한 대응을 했던 것이다. 그는 필요에 따라서 사람들을 하방했다가 상당한 기간뒤에 복권시키는 일을 예사로 했다.그의 처 김성애,동생 김영주,조선인민군 총참모장 최광등도 이런 일을 당했다. 강등의 이유는 알수 없다.제6기 제21차 전원회의에서 제3차 7개년계획을 총괄할 때 사상 처음으로 당은 그 실패를 자인했다.그 책임을 물었을 수도 있겠으나 다른 여러가지 사연이 겹쳤을 것이다.지난 4월에 김일성과 면담했던 미국의 전략연구소 윌리엄 테일러 부소장은 후계체제의 완결이 아득히 멀다는 심증을 얻었다 했고 6월에는 김일성이 카터에게 10년은 더 일을 해야겠다고 했다니 김정일이 신임을 얻는데 실패한 것은 확실하다. 지금 평양은 김일성의 유지대로 김정일을 최고책임자로 하되 전권을 맡길수는 없고 집단지도체제로 하자는 유지파와 전권을 쥐겠다는 김정일파와의 갈등의 와중에 있다.무슨 회의든 전원일치로 결정을 보는 저들인지라 군계일학이 없는 오늘에서는 건강상 이유로 김정일이 양보하든 아니면 유지파가 양보해야 한다.또 아니면 김일성의 장기를 빌려 선제기습공격으로 일거에 상대편을 침묵케 하는 쪽이 이긴다.이에 있어서는 호위총국장 이을설,제8특수군단의 지휘관등이 중요 변수다. 지난 11월 9일에 있은 「중대방송」예고는 김정일이 이 수를 쓰려다 불발로 그친 사건이지 다리를 놓으라는 것이 중대방송일 수는 없다.어차피 오는 12월 10일 전후에 있을 제6기 제22차 전원회의와 제9기 제8차 최고인민회의에서 당 총비서와 국가주석의 선출이 있을 것이다.그때까지 결론이 없으면 평양정권의 망조는 돌이킬 수 없으며 김정일이 수위에 오르더라도 권력의 독점은 있을수 없고 공유가 있을 뿐이다.
  • 부룬디 불발쿠데타/주동자 6∼7명 체포

    【나이로비 AFP 연합】 시프리엥 은타리아미라 대통령의 급서로 인한 부룬디의 정국 불안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24일 쿠데타가 발생했으나 불발에 그쳤다고 군부와 외교소식통들이 25일 밝혔다. 부룬디 군부와 이곳에 주재하는 외교관들은 전날 소수파 종족인 투치족 출신 공수부대원들이 가담한 쿠데타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로 돌아갔으며 주모자 가운데 장교를 포함한 6∼7명이 체포됐다고 전했다. 벨기에의 RTBF 라디오 방송은 이번 쿠데타에 3백명 정도가 가담했다고 밝혔다.
  • K­2TV「추적60분」과 M­TV「시사매거진…」을 보고(TV주평)

    ◎심야풍속도·매춘관광실태 “인상적” 시청자들의 관심속에 27일 첫방송된 KBS­2TV 시사다큐멘터리 「추적60분」과 MBC­TV 「시사매거진 2580」은 예상대로 사회의 어두운 면에 대한 충격적인 출발로 불발했다.기존의 사회고발성 프로와의 차별화를 위한 제작진의 노력이 요구된다.특히 「추적 60분」과 「시사매거진 2580」이 첫방송부터 공교롭게도 서울의 심야풍속도와 매춘관광등과 같은 향락문화와 관련된 선정적인 소재로 시청자들의 시선잡기에 나선 점은 앞으로 예상되는 프로간의 유사화를 염려케하는 대목이다.그러나 나름대로 다양성과 설득력을 지니기위한 노력이 엿보여 성공가능성을 예감케 한다. 서울의 요지경을 담은 「추적60분」의 경우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특히 11년전 방영됐던 프로그램을 소개,달라진 심야풍속도를 비교하고 그 원인을 분석한뒤 예상되는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제시한 부분은 설득력이 있다.서초동 나이트클럽,신촌 록카페­방배동 카페골목­호텔·여관으로 이어지는 심야풍속도는 가히 충격적이다.여기에 연령과 돈에 의해 배타적으로 차별화·양극화 현상을 보이는 우리의 유흥문화실태는 놀랍기까지 하다.의욕과잉탓일까? 디스코테크에서 춤을 추는 젊은 남녀의 얼굴이 화면조작없이 그대로 방영된 것은 초상권시비와 관련해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시사매거진 25 80」은 프로그램의 차별화를 위해 아이템선정에서부터 각별히 신경 쓴 흔적이 엿보였다.「외국인 상대 매춘관광의 실체」,세계 각국의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에 대한 왜곡·오류 실태를 통해 한국 대외홍보의 문제점을 분석한 「한국인은 혼혈족」,그리고 국내 모화장품업체의 피라미드식 불법적인 방문판매등으로 구색을 맞췄다.폭로·고발성 아이템뿐 아니라 특별해보이지 않으면서도 사회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을 추적,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등 다양성을 갖추려 애썼다. 「외국인 상대 매춘관광의 실체」와 「한국은 혼혈족」은 국내뿐 아니라 일본현지취재를 통해 국제적인 문제접근방식을 제시했다.특히 「한국인은 혼혈족」은 이날 아이템중 가장 인상적이었다.이는 이프로의 지향점을 제시하는 부분으로 선정적·물리적인 충격을 주지 않고도 시사성있는 문제로 차별화를 이루겠다는 의지로 분석된다.
  • 러 보혁 총선재대결/보수인물 대거 참가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반옐친 초강경 보수파 지도자들과 91년 불발쿠데타에 연루됐던 구소련공산당 핵심인물들이 오는 12월12일의 러시아 총선 후보로 대거 나서게됨에 따라 이번 총선에서 보혁세력간에 치열한 표대결이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러시아의 TV방송과 통신은 19일 보리스 옐친 대통령에 의해 지난 9월 해산된 최고회의의 초강경보수파 지도자였던 세르게이 바부린과 블라디미르 이사코프가 다음달 총선에 출마하기 위한 후보등록을 성공리에 마쳤다고 보도했다.
  • 인도·브라질·이스라엘(세계의 우주로켓 발사기지:5·끝)

    ◎「우리별2호」 계기로 살펴본 현장/인도 3곳,브라질·「이」 1곳씩 운영/80년 첫 우주 진출… 미·불 등에도 발사의뢰/인도/61년 추진… 최근 연23회 기상관측용 띄워/브라질/88년 자장·우주환경 연구위성 쏘아 올려/이스라엘 우주는 선진국의 전유물만은 아니다.개발도상국의 지분도 남아 있다.이번 호에서는 우주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도·브라질·이스라엘등 개도국의 우주발사현장을 가본다. ○1t이상 운송 능력 ▷인도◁ 자기자신의 우주발사체로 인공위성을 띄워올린 몇 안되는 나라중 하나다.우주기술개발을 담당하는 기관은 인도우주연구기구(ISRO)다.그리고 인도 국적의 인공위성을 우주로 출가시키는 일을 담당하고 있는 현장은 스리하리코타발사장과 싱바발사장 등을 꼽을 수 있다.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은 인도 남동쪽 벵골만에 위치하고 있다.안드라 페데쉬의 동쪽해안에 있는 스리하리코타섬에 자리잡고 있다.정확한 위치는 동경 80.4도,북위 13.9도.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은 ISRO가 책임,운영하고 있다.이 발사장의 최초의 우주진출식은1979년8월10일 거행되었다.인도 국적의 로히니 1A 인공위성의 우주출가식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불발로 끝나고 말았다.우주에서 꽃을 펴보지도 못하고 운명한 수명 1년2개월짜리 로히니는 발사체및 자신을 모니터하는 임무가 주어졌었다.이때 우주행 버스구실을 한 것은 인도산 SLV­3호 로켓이었다.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의 첫 쾌거는 1980년7월18일 찾아왔다.즉 꿈에 그리던 로히니1B의 우주진출식이 성공적으로 완수되었다.무게 35㎏의 이 위성은 당시 5억 인도인의 자긍심을 치켜올렸다.그 뒤 잇따라 로히니 시리즈가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을 출발했다.발사방위는 북향. 스리하리코타발사장은 위치의 특수성 때문에 극궤도로 우주행 화물을 수송할 때만 사용되고 있다.그러나 극히 짧은 시간대와 좁은 발사폭으로 썩 적합한 우주창구는 못되는 편이다.발사때마다 북쪽에 있는 인구밀접지역인 인도 본토와 남쪽에 자리잡은 스리랑카를 지나야 하기 때문에 발사관계자들이 가슴을 죄는 경우가 많다. 한편 캘커타 근처에는 극궤도위성인 태양동주기궤도로 궤도경사각99도까지 로켓 발사를 실행할 수 있는 곳이 있다.바로 발라소레발사장이다. 그리고 싱바발사장은 동경 77도,북위 8도 상에 있다.발사방위를 동향과 남향으로 선택할 수 있는 곳이다.소형 로켓 발사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인도는 우주행 버스인 로켓 개발국으로서 당당히 위세를 자랑하고 있는 나라다.인도가 내놓은 로켓은 SLV,ASLV,PLSV,GLSV등이다.SLV로켓은 4단 고체추진제 로켓으로 성능면에서는 미국의 스카우트와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ASLV는 SLV보다 한 단계 상위등급이다.2개의 고체추진제 부스터를 추가하는 등 추진력을 보강,1백50㎏의 우주행 화물을 거뜬히 저고도 지구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그리고 PSLV는 1천㎏을 1천m의 극궤도에,GSLV는 1천3백∼1천7백㎏의 화물을 지구정지궤도까지 싣고 갈 수 있는 수송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발사장과 운송수단인 로켓등 발사장비를 모두 갖춘 인도는 자국발사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1987년말까지 발사된 9개의 인공위성 가운데 3개는 (구)소련에 의뢰해 우주로 진출했으며,1개는 미국,1개는 유럽의 아리안,그리고 4개는 인도 국내 발사체에 의해 우주행을 시도했다. 1980년대 중반 인도의 우주개발예산은 30억루피아(약8백억원)를 넘어설 정도로 우주개발열기가 뜨거운 나라다.이 가운데 60%는 인도내의 기업체에 배분된다.ISRO는 통신·TV·기상·원격탐사 등을 국가적 혁신기술사업으로 지정하고 있다. 인도의 우주기술개발은 국가 주도 아래 산업체 이전을 확고히 다지고 있다.1987년 현재 IRSO가 개발한 80여가지의 우주기술은 인도의 산업체들에 기술이전되었다.우주개발도상국인 인도는 기술축적이라는 중간과정을 거치지 않고 고도의 기술영역으로 곧바로 직행,확실히 성공한 나라다. ▷브라질◁ 1961년 브라질은 우주과학및 위성연구분야에서 브라질의 우주개발을 맡는 INPE연구소를 설립했다.그리고 70년대 중반부터 때때로 브라질이 인공위성을 자체 능력으로 우주에 올릴 것이라는 소문이 끊임없이 나돌았다.정작 브라질이 인공위성 발사계획을 확고하게 잡은 것은 1986년이었다.그러나 여러가지의 국내 문제로 여러차례 수정을 거듭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로켓 미·독에도 수출 1985년,1986년 「브라질셋」위성을 아리안에 의뢰,발사하였다.이 두 위성은 통신위성으로서 1만2천개의 음성채널과 24개의 컬러TV채널 용량을 갖추고 있어 브라질 방송문화에 기여하고 있다. INPE에는 1천6백여명의 직원이 종사하고 있다.그리고 우주사업기구(IAE)가 설립돼 발사체개발을 맡고 있는데 1천여명의 기술자를 포함해 3천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1989∼1993년 사이에 4개의 위성발사계획이 발표되었는데 이 가운데 2개는 자료수집용이고 2개는 지구궤도 원격탐사위성이다. 브라질은 바라이라D,인펠른발사장을 보유하고 있다.위치는 서경 36도,남위 4도 지점이다.이 발사장은 브라질 우주연구소인 INPE가 관리,운영하고 있다.동쪽으로 발사방향을 갖고 있는 이 발사장에서는 우주버스로 소형로켓인 손다Ⅰ·Ⅱ·Ⅲ·Ⅳ를 이용하고 있다.1990년대 후반에는 알칸다라로 이전할 계획을 갖고 있다. 우주산업에 일찍 뛰어든 브라질은 1964년에 이미 발사체개발계획을 세우고 손다 과학관측용 로켓 제작에 힘을 기울였다.1백㎞ 고도에 4.5㎏ 탑재물을 올릴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손다ISMS는 주로 기상데이터 수집을 위해 2백번이상 발사되었다.현재는 손다Ⅱ를 사용하고 있는데 지난 15년동안 60개 이상이 발사되었다.요즘은 1년에 23개 이상을 발사하고 있다.손다Ⅲ모델은 1976년 개발을 끝내고 약20개 정도가 발사되었으며 미국과 서독등에 판매하고 있다. 한편 1974년 손다Ⅳ로켓 개발을 수행,1984년 첫 시험비행을 성공했다.이때 6백11㎞의 고도까지 올라갔다.탑재물은 5백㎏.두번째는 이 무게를 싣고 7백㎞까지 상승했으며 1987년10월 세번째 발사에 성공했다. ○유도탄 개량한 「혜성」 ▷이스라엘◁ 남부에 있는 네게브 사막의 팔마신 공군기지는 지형학적으로 세계에서 보기드문 우주창구다. 위치는 동경 34도27분,북위 31도31분 상에 있다.1983년 설립된 이스라엘 우주기구(ISA)가 총괄하고 있는데 이 곳에서 1988년9월19일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위성을 우주로 보냈다.뒷날 밝혀진 이 위성은 Offeq­1.수평선이라고 번역된 이 위성은 우주환경조건과지구자기장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었다.위성의 총무게는 1백55㎏,고도는 2백50㎞에서 1천1백50㎞까지 궤도를 경사각 1백42.9도로 지구주위를 회전한다. 1990년4월2일 무게 1백69㎏의 Offeq­2가 발사되었는데 고도는 2백10㎞에서 1천5백㎞ 궤도를 경사각 1백43도로 지구주위를 돌고 있으며 임무는 전임 Offeq­1호와 비슷하다. 이스라엘은 자력으로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세계 8위국이다.이스라엘 전용 우주행 버스 사비트.「혜성」이라고 불리는 이 로켓은 3단계 고체 로켓이며 중거리 탄도유도탄인 에리코Ⅱ의 개량형이다.이 로켓은 아랍 테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지구자전과 반대방향인 네게브사막에서 서쪽 방향으로 발사하고 있다. 이 사비트로켓은 이스라엘 우주국에서 관장하며 이스라엘 항공회사에서 제작한다.1992년 지구정지궤도에 아모스Ⅰ 통신위성을 발사했으며 몇개월 뒤 아모스Ⅱ가 같은 위치에 올라갔다.이 위성들은 주파수대역인 C밴드가 아랍 위성에 의해 점령,사용되므로 Ku밴드내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인도와 호주 이밖에 인도네시아와 호주의 발사장이 있다.호주 우메라발사장은 동경 1백36도48분,남위 31도15분으로 일본 가고시마우주센터와 정반대에 있다.면적은 기아나우주센터를 제외하고 두번째인 7백50㎦에 이른다. ○76년엔 잠정폐쇄돼 호주와 영국이 관리,운영하고 있는데 유럽 Ⅰ,Ⅱ,Ⅲ등의 로켓을 사용하고 있다.이 센터는 1946년 출발해 76년 잠정폐쇄되었다가 1987년 일부재개되는 기구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이곳에서 출발한 인공위성용 로켓은 2기(1989년2월 현재)였다.
  • 올림픽으로 심화되는 미­중 불화/2000년대회 시드니 결정 파장

    ◎“미서 천안문·인권 악선전” 비난/“차기에…” 만만디속 분풀이 관심 중국은 2000년 북경올림픽 유치 실패로 상처받은 국가적인 자존심을 어떻게 치유해갈 것인가. 이곳 신문과 방송들은 풀이 죽은채 45대43으로 아슬아슬하게 시드니에 패배했다는 사실만 간단히 보도할 뿐 패인분석이나 누굴 탓하는 기사는 아직 취급하지 않고 있다.이는 정부 당국에서 올림픽 유치가 불발로 그친다 해도 북경올림픽신청위를 공격하지 말고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책임을 돌려서도 안되며,당선된 도시를 비판해서도 안된다는 보도지침을 미리 전국 주요 보도매체에 하달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중국정부가 쏟아온 온갖 정성이나 12억 주민을 올림픽 유치작전에 총동원해온 사정들을 감안하면 그대로 넘어갈수 있을지 의문이다.24일 새벽 사마란치 IOC위원장의 『승자는… 시드니』 발표를 위성중계를 통해 지켜보다 허무와 좌절감에 못이겨 밤새도록 딱총을 허공으로 쏘아올린 시민들의 상처받은 마음들을 달래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냉정을 되찾고 평상으로 돌아와 패인을 분석하고 보면 가장 원망해야할 대상이 미국인 것만은 분명히 떠오를 것이다.잔칫상에 계속 재를 뿌려온게 미국이기 때문이다.미국은 지난7월 의회에서 『천안문 유혈진압의 피비린내가 아직 가시지 않은 도시에서 지구촌의 축제를 열수 없다』는 이유로 북경올림픽유치 반대결의안을 통과시켰다.그런가 하면 유럽공동체 의회가 비슷한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도 영향력을 행사한데다 사사건건 인권문제를 들고 나와 중국을 야만인 취급하고,심지어는 투표 불과 며칠을 앞두고는 『중국이 곧 핵실험을 할 것 같다』고 주장,평화의 제전인 올림픽 행사에 핵을 연계시키는 악선전을 펼쳐왔었다. 이에 대해 미국내에서도 너무 지나쳤다는식의 반성과 함께 중국에서 불어올 역풍을 걱정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지 않아도 가뜩이나 좋지 않은 미중관계가 더욱 불편해질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악선전에 관한한 영국도 한 통속이었다고 중국인들은 보고 있다.허드영외무장관이 『중국은 올림픽을 치를 자격이 없다』고 비난한 것은 아무리맨체스터를 후보지로 내세워 서로 경쟁하는 사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었다.인민일보등 중국신문들이 24일 아침 일제히 지난 82년 등소평이 대처영국총리에게 밝힌 「홍콩문제 기본입장」을 1면 머리기사로 보도한 것은 영국에 뭔가 분풀이를 하겠다는 신호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다. 북경올림픽 유치를 지지해온 홍콩 한국등 동아시아지역에서도 북경의 패배를 서운해 하며 미국의 행위를 곱지않은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특히 북경의 올림픽 특수를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업계에서는 수많은 건설사업등 많은 프로젝트가 취소되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다. 중국관리들은 이번에 실패하면 2004년도 있지 않느냐며 중국인 특유의 여유를 보여 왔으나 남을 탓하지 않은채 앞으로 4년간을 꾹 참고 지낼 것인지 아니면 미국이나 영국을 향해 분풀이를 하게 될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 유선방송 프로그램/공급업체 20곳 확정

    ◎11개 분야… 기존방송사 모두 탈락/「문화예술」·「기독교 채널」은 보류/방송국 12월 선정… 95년부터 공급 정부는 31일 오는 95년 방송예정인 종합유선방송(CATV)의 프로그램 공급업체로 종합보도분야의 연합TV뉴스등 11개분야 20개업체를 선정,발표했다.이날 선정된 프로그램공급업자는 별표와 같다. 35개 신청업체가운데 KBS문화사업단,MBC프러덕션,SBS프러덕션등 기존 방송사들은 정부의 배제방침에 따라 모두 탈락했다. 종교분야의 기독교채널도 허가를 신청한 기독교방송등 3개업체가 콘소시엄을 구성하지 못해 허가가 보류됐다.문화예술분야는 허가신청업체가 없어 선정이 2차로 미뤄졌다. 오인환공보처장관은 이날 프로그램공급업체 선정심사와 관련,『각 분야별로 공급업체를 복수선정한다는 원칙아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균등한 참여와 종합유선방송의 전문성 확보에 주력했다』면서 『특히 컨소시엄 구성주주 가운데 사회적 물의를 빚거나 자본금이 부실한 업체는 허가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종합유선방송위원회와 공보처의 심사를 거쳐최종 선정된 이들 업체들은 오는 95년초부터 보도·영화·스포츠·음악등 각 분야별로 프로그램을 제작,종합유선방송국을 통해 각 가정에 공급하게 된다. 공보처는 종합유선방송 프로그램 공급업체가 이날 선정됨에 따라 오는 10월말까지 종합유선방송국설립에 대한 신청 접수를 받은뒤 12월에 방송국을 지정할 방침이다. ◎투명한 심사과정… 중기등 고른 분포/선정 뒷얘기와 사업계획/35개사 경쟁 청문회 거쳐 잡음없애/수신료 월1만∼1만5천원 예상 공보처가 31일 허가업체를 선정·발표한 종합유선방송(CA­TV)프로그램 공급업은 민영 공중방송만은 못하더라도 상당한 이권사업이다.때문에 업체지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물밑 신경전이 전개되었었다. 그럼에도 공급업체선정과정에서 외부로 전혀 잡음이 새 나오지 않았던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오린환공보처장관은 이를 두고 『투명정치,투명행정을 지향하는 문민정부의 힘』이라고 자랑했다. 공보처는 사전내정설등의 의혹을 불식시키기위해 종합유선방송위의 예비심사를 거치는 2단계 심사모델을도입했다.공보처심사과정에서는 공정거래위·국세청등 관계부처의 의견수렴과 함께 법조계·언론계등 각계 대표로 구성된 허가심사위의 최종심의를 거치도록 했다.또 35개 허가신청업계를 대상으로 개별청문회를 치밀하게 함으로써 탈락자들의 불만소지를 없앴다. 물론 선정작업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당초 12개분야를 계획했으나 문화예술채널 희망자가 없었다.우여곡절끝에 여성분야를 신청한 승보케이블을 설득,문화쪽으로 돌리도록 해 21개 사업자를 선정했으나 발표직전 거절의사를 밝혀 공보처를 당황하게 했다. 또하나 골치아픈 문제는 기독교채널의 경우.기독교방송,개신교종합유선방송사업단,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등 3개 업체가 팽팽히 맞서 공보처는 마지막까지 컨소시엄구성을 권유했지만 불발,결국 선정을 보류했다. 이번에 지정된 업체들은 대기업7,중소기업7,언론사2,정부산하단체 2,종교단체2개등 비교적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다.KBS MBC SBS EBS등 기존 방송사는 매체독점방지를 명분으로 모두 탈락시켰다. 한편 이들 선정업체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따르면 유선방송가입자 기본수신료는 월 1만∼1만5천원정도일 것으로 예상된다.유료영화채널의 경우에는 7천8백원을 추가부담해야한다. 방송시간은 드라마·교육채널은 상오 방송후 중단했다가 하오에 다시 방송하고 영화,음악,여성채널은 새벽 1∼2시까지 방송하는 것을 예정하고 있다.나머지는 상오 10시에 방송을 개시,자정까지 계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다만 연합TV뉴스는 미CNN처럼 24시간 방송으로 신속한 국내외 정보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허가대상업체들은 95년 방송이 개시되면 96년까지는 1백만 가구가 가입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98년쯤에는 수천억원의 신규시장이 형성되면서 손익분기점에 도달하리라 예상된다.2천년대초에는 전체가구중 30∼40%가 유선방송을 시청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유선방송시대의 개막은 위성방송의 등장과 함께 뉴미디어시대를 열어 가며 시청자 채널선택권의 대폭 확대를 가져오는 동시에 방송인력의 열띤 스카웃전을 예고하고 있다.
  • 페루에 불발쿠데타설/거사주모자 아르헨에 망명 요청

    【리마 AP AFP 연합】 페루 정부군 일부 병력이 수도 리마에 있는 대통령궁에 침입,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의 축출을 기도했으나 불발에 그친 것같다고 TV와 라디오 방송이 6일 보도했다. 페루 방송들은 이들 정부군 병력이 침입했을 당시 후지모리 대통령은 육군 본부 구내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쿠데타군을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로돌포 로블레스 에스피노사 장군은 쿠데타기도가 좌절되고 군에 있는 두아들이 살해될 것이라는 위협을 받은 후 가족들과 함께 미대사관으로 피신했다. 로블레스 장군의 부인 넬리 몬토야는 6일 기자회견을 갖고 남편과 가족들이 5일 미대사관저로 들어갔으며 대사관측이 그들의 아르헨티나 망명을 주선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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