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원전 강국은 인재양성에서/박녹 한전원자력연료㈜ 감사·영남대 겸임교수
19세기 말 인류는 원자핵 속에 엄청난 에너지가 들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세 가지 실험적 발견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에 힘입어 이를 이용하게 됐다. 세 가지 발견이란 1895년 뢴트겐에 의한 X선 발견, 1896년 베크렐에 의한 방사선 발견, 1897년 톰슨에 의한 전자의 발견을 말한다. 1942년에는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연쇄반응에 성공했다. 그 결과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알리는 원자폭탄의 탄생이었다.
1956년에는 영국의 콜더 홀 원자력발전소가 세계 최초로 상업용 발전을 시작했다. 핵의 평화적 이용이 시작된 것이다. 이듬해 미국은 시핑포트 원자력 발전소를 시작으로 100여개의 원전을 건설하면서 원자력 선진국으로 거듭나게 됐다. 그러나 원전의 시발지였던 펜실베이니아주의 스리마일아일랜드(TMI) 발전소에서 1979년 방사능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인명피해가 없는 경미한 사고였지만 이후 30여년 동안 원전 증설이 중단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미국은 최대 원자력 기업을 일본에 팔았고 화력 발전을 주요 에너지원으로 의지해 왔다. 최근 들어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협약이 대두되면서 ‘청정에너지원 확보’라는 명분 아래 원자로 30여기를 계획하고 있지만 전문인력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실제로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의 연구 및 제조기술 인력도 미국 원전사의 요청으로 지난 2000년 초부터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프랑스는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의 원전기술을 도입, 발전소 건설에 매진했다. 그 결과 전체 생산 전력의 79%를 원자력에서 얻고 있고, 지금은 세계 최고의 원자력 기술과 인재를 자랑하는 나라가 됐다. 앞으로 30여년 동안 800조원대의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는 원전 건설 시장을 차지하는 데 있어서 프랑스가 가장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물론 프랑스는 글로벌 이슈인 온난화의 대응에도 가장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는 1962년에 원자로가 최초로 가동되면서 관련 연구가 시작됐고, 1971년에 기공된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력 발전소인 고리 1호기는 TMI 사고 1년 전인 1978년 상업가동에 들어갔다. 사실 원전의 황무지에서 해외에 거주하고 있던 과학자들을 불러 모아 시작된 한국의 원자력사는, 모든 것이 궁핍한 상황에서 관련분야 종사자들의 땀과 눈물로 이룩한 신화창조의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 6대 원전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막대한 자금도 아니었고, 풍부한 자원도 아니었다. 가난한 나라를 경제강국으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우수한 인력, 그들의 사명감과 노력의 결과였다. 원자력 연료, 원전 설계와 플랜트 엔지니어링 시스템 구축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으로 우뚝 섰으며, 원전 종합 설계와 주기기 설계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세계 유일의 기술진을 보유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자력 발전소를 설계한 경험도 갖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산업의 신성장동력화를 위해 국내 원전의 비중을 36%에서 59%로 확대키로 하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공기업 선진화 계획에 따른 정원 감축으로 원자력계는 인력 운영에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특별히 원자력산업 인력에 대해서는 외부기관에 용역을 주어 조직진단 중에 있는데 그나마 다행이라고 본다. 미국의 우(愚)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저탄소 녹색성장의 인프라 역할과 진정한 원전강국의 지름길인 원전 기술력 향상을 위해서라도 정부는 인재 양성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할 시점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의 최대 자원은 우수한 인력과 이들이 창조해내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박녹 한전원자력연료㈜ 감사·영남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