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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남북정상선언] 방북중 평양서 딸 낳은 황선씨의 감회

    [2007 남북정상선언] 방북중 평양서 딸 낳은 황선씨의 감회

    “정상회담을 위해 노무현 대통령이 달려간 서울∼평양 간 도로가 누구에게나 열리는 날이 꼭 왔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딸 겨레(2)의 고향인 평양의 하늘을 생일선물로 보여줄 수 있는 날이 곧 오리라 믿어요.” 2005년 10월10일 북한 문화유적을 참관하러 방북했다가 평양에서 둘째딸 윤겨레양을 낳은 황선(33·민주노동당 부대변인)씨의 눈시울에는 감동이 그렁그렁 매달려 있었다. 노 대통령이 걸어서 군사분계선을 넘던 장면을 보며 2년 전 자신과 둘째딸이 겪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리랑 공연보다 산통… 평양산원서 출산 그는 당시 시부모와 함께 평양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대집단체조 ‘아리랑’공연을 관람하다 진통을 느끼고 평양산원으로 옮겨져 딸 윤겨레양을 낳은 뒤 같은 달 25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남한에 돌아왔다. 이 일은 당시 우리 사회에 환영과 논란을 동시에 일으켰다. 황씨는 분단 이후 남쪽 주민이 북쪽에서 아기를 낳아 돌아온 첫 케이스였기 때문이다. ‘통일둥이’ 겨레는 남한보다 북한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겨레에게 선물이 쇄도했고 북한 국립연극단은 겨레를 소재로 한 연극 ‘옥동녀’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황씨의 이야기를 소재로 “남북이 골육을 나눈 친척이며 한집안”이라는 점을 강조한 이 연극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평양 주민들에게 상연돼 호평을 받았다고 중국 신화통신이 지난 1일 평양발로 보도했다. 북한의 핵실험으로 모든 관심이 북핵문제에 쏠려 있던 겨레의 ‘돌잔치날(10월10일)’에도 평양산원에서는 축전을 보내 주었다고 한다. “그저 맘 편히 관광 갔던 평양에서 뜻밖에도 겨레를 얻었어요. 출산 예정일이 일주일 정도 남아있던 터라 저도 아이가 태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죠. 당시 제가 통일연대 대변인을 맡고 있어서인지 일부에서는 ‘아이에게 북한 국적을 부여하기 위해 기획한 원정출산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요. 아무튼 둘째 딸아이는 그 일로 아주 특별한 고향을 얻게 됐죠.” “그 일 뒤로 저는 한순간에 통일운동가에서 ‘통일둥이 엄마’로 바뀌었어요. 통일운동에 좀 더 책임감이 느껴지기도 하고요. 평양산원에도 아이를 가족처럼 돌봐준 분들이 많은데 자주 인사드릴 수 있게 남북의 문이 활짝 열렸으면 좋겠어요.” 그는 앞서 1999년에도 한총련 대표 자격으로 제3국을 거쳐 평양에서 열린 8·15 통일대축전에 참가했다가 판문점을 통해 처음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한으로 들어왔다. 당시 황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두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소떼를 몰고 방북했던 고 정주영 회장 같은 분들이야 군사분계선을 넘는 일이 큰 문제가 아니었지만 저처럼 이름 없는 통일 운동가에게는 ‘죽음을 각오해야’할 수 있는 길이었죠. 옥고를 치르면서 저보다 먼저 군사분계선을 넘었던 문익환 목사님이나 임수경 언니가 얼마나 힘든 길을 앞서 갔는지 많이 생각해 보기도 했지요.” ●정상회담 앞서 연극 ‘옥동녀´ 평양공연 호평 황씨의 남편은 1999년 한총련 7기 의장을 지낸 윤기진(32·현 범청학련 의장)씨.2004년 결혼한 뒤 민(3)과 겨레를 낳았지만 두 딸은 9년째 수배중인 아버지의 얼굴을 잘 알지 못한다. 겨레의 두 번째 생일에는 더 이상 수배자가 아닌 아버지와 함께 고향을 선물해 주고 싶단다. 그래서 노 대통령이 걸어서 넘어간 그 길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평양을 두 차례 다녀오면서 통일이 급진전되고 있다는 것을 느껴요. 노 대통령이 그 길을 걸으며 일찍이 그 길을 먼저 걸었던 김구 선생과 문익환 목사 등 숱한 개척자들을 한번쯤 떠올려 주길 바래요. 통일은 그렇게 자신을 희생한 분들의 노력 덕분에 찾아오는 것이잖아요.”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경남, 北서 ‘통일딸기’ 모종 받아

    ‘2007 남북정상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경남도와 북한측 교류협력사업의 상징인 ‘통일딸기’ 2만 5000포기가 평양에서 경남에 4일 전달됐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다. 경남도는 이날 오후 도청 광장에서 김태호 도지사와 전강석 경남통일농업협력회(경통협)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북에서 온 통일딸기 모종을 밀양의 류영돈(46)씨에게 전달했다. 김 지사는 “지난 4월 평양시 강남군 장교리 농장에 심은 딸기가 북측의 정성으로 잘 자라 돌아온 것에 감사한다.”며 “경남에 옮겨 심은 모종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성공적인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올해 통일딸기 모종은 밀양에서 싹을 틔운 순수 국내품종 ‘매향’(梅香) 원종(모주) 5000포기로, 지난 3월 평양시 장교리로 보냈던 것이다.4월9일 방북한 경남도민대표단이 직접 하우스에 이식한 뒤 그동안 장교리 협동농장 분조원 540여명이 정성껏 돌보며 키웠다. 지난 8월 초 평양에 515㎜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온실 내부까지 습해가 발생해 모종에도 피해가 약간 발생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모종은 지난달 21일 장교리 협동농장 하우스에서 채취돼 24일 남포항을 출발,27일 인천항에 입항했다. 국립식물검역소 중부지소에서 6일간 검역을 거쳐 바이러스 등 병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딸기 모종은 류씨 비닐하우스 2동에 심겨질 예정이다. 빠르면 12월쯤 통일딸기 열매를 맛볼 수 있을 전망이다. 내년 3월까지 5000㎏ 정도의 수확이 예상된다.창원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2007 남북정상선언]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3通 물꼬 튼 것”

    [2007 남북정상선언] ”서해평화협력지대 합의는 3通 물꼬 튼 것”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4일 공동서명한 ‘2007 남북정상선언’은 남북간 신뢰회복과 경제협력 강화를 넘어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추진 의지를 명시함으로써 향후 남북관계뿐 아니라 동북아 정세 전반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불러올 전망이다. 정종욱 서울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와 지난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을 수행했던 황원탁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특별대담을 통해 2007 남북정상선언의 의미와 향후 남북관계의 변화상을 점검한다. 대담은 서울신문 김인철 정치담당 부국장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김인철 정치담당 부국장 1.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사회 2007남북정상선언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의미 있는 진전이 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정종욱 교수 정상회담이 시작되기 전 단계에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품었던 최대 기대치는 6·15공동선언을 훨씬 더 뛰어넘어 남북평화번영의 대장정을 이룰 역사적 문건이 나오는 것이었다.2차세계대전 뒤 유럽 35개국이 상호 국경선을 인정키로 합의한 1975년 ‘헬싱키 선언’에 비교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6·15 선언이 화해·협력과 통일을 위한 문건이었다면, 이번 선언은 평화와 민족번영문제에 대해 남북 정상들이 합의를 이룬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황원탁 전 수석 2000년 1차 남북정상회담은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이 회동함으로써 남북관계가 대결과 갈등 관계에서 화해와 협력 관계로 전환되는 분수령이 됐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가졌다. 이후 남북관계에 진전이 있었지만, 북핵문제가 터지고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진전되지 못한 측면도 있었다.6·15 공동선언에 명시된 김 위원장의 답방이 이뤄지지는 않았지만,7년 만에 정상회담의 맥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회담이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새로운 엔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정 교수 합의내용을 보자면, 상당히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안 조정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 이유일 것이다. 남북한 민족·경제협력과 관련해 범위가 좁아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선언문에 ‘법률적·제도적 장치를 정비해 나가기로 하였다.’는 대목이 있는데, 북한 노동당 규약과도 관련이 있겠지만 (국가보안법 철폐와 관련해)국내에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황 전 수석 전반적으로 이번 합의 내용은 아주 잘 되었다고 본다. 애당초 목표로 삼았던 평화정착 문제에 있어서 많은 진척이 있었고, 공동번영을 위한 대책들도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문제들이 합의문으로 나왔다. 전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 2.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사회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가 합의됐다. 동시에 문산∼개성공단간 화물열차 통행이 보장됐다. ●정 교수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연계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게 NLL을 재논의·재설정하는 부분이라면 민감한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영토 개념이나 안보 개념에서 국민 정서와 거리가 있다고 본다. 북한 해군본부가 있는 해주는 경제적인 의미를 갖는 항구라기보다는 군사항의 기능을 하고 있다. 해주 직항 항로 통과를 허용한다면 민간 선박에 한정되는 것인지, 군함을 주로 이야기하는 것인지에 따라 차이가 있을 것이다. 문산에서 개성까지 수송 목적 경의선을 개통하는 것까지 함께 생각해 보면 통행·통관·통신이라는 ‘3통’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황 전 수석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따르면 남북간 해상경계선을 협의하게 돼있다.NLL에 대해 북한은 재설정을 주장하는 반면 우리는 평화를 정착한다는 차원에서 공동활용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입장이다. 우리는 이를 지난번 국방장관회담에서 제시했지만, 북측은 부정적으로 나왔다. 어떤 형식으로든 원만하게 NLL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이대로 가면 계속 분쟁의 불씨로 남을 뿐이다. 개성공단과 금강산도 DMZ 북방에 있다. 모두 북한의 주공(주력부대)이 위치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남측과의 협력지대가 돼 있다. ●정 교수 기본적으로 NLL 문제는 유엔사령부가 결정하고 관행을 통해 북한이 받아들이며 북방한계선 역할을 해왔다. 이를 조정해 다시 선을 긋는다는 것은 정전체제에 대한 수정을 뜻할 수도 있다. 북한의 의도가 정전체제에 대한 변경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 체제 수용을 전제로 남북한이 합의해 수역을 평화적으로 공동활용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본다. ●황 전 수석 새 달에 총리급 회담을 하기로 한 것은 군사적 신뢰 구축을 중심으로 한 군비통제문제를 넘어 평화체제와 관련된 문제를 총괄해 다루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정전협정체제에서 평화체제로 전환하려면 전쟁종결선언이 있어야 하고, 평화보장을 위한 조치도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함께 다룰 문제라는 뜻이다. 이런 문제를 다루기에 장관급 회담은 부족하니까 총리회담에서 총괄하자는 뜻이 담긴 듯하다. ●정 교수 종전선언과 관련해 관계국 회의를 한다는 합의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하노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과 관련 논의를 했었는데, 이를 남북 정상이 합의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다만 총리회담에서 종전선언의 세부내용에 대해 과연 무엇을 하려는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데 총리회담에서 얼마나 논의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회담을 ‘수시로’ 열겠다는 것은 기대하던 반가운 소식이다. 형식적인 정상회담보다, 정상이 만나 실무적인 문제를 얘기하겠다고 한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방북할 때 언급한 “차분하고 실효있는 정상회담”을 기대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갖게 한다. 다만 2000년 정상회담 이후 7년 동안 기다렸는데 공동선언문에 명시된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 것과 관련해 ‘수시로’라는 표현이 오히려 서울 답방이 이뤄지지 않은데 대한 면죄부를 주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황 전 수석 남북정상회담은 남북간 현안을 풀어 가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틀이라는 데 아무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만날 수 있는 것은 못 된다. 여건이 대단히 중요하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끌어온 것은 여건이 조성되지 못해서다. 정상회담을 주기적으로, 정기적으로 못박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수시로 만나 협의하기로 한 것은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자주 만나야 하고, 만나기 위한 여건을 만드는 게 보다 더 중요하다. ●정 교수 여건을 만드는 일은 중요하다.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이 두 번 열렸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같은 사람이 남한 대통령 2명을 만난 것으로 남한 대통령 임기 중에 한번 만나는 꼴이 됐다. 차기 대통령하고도 현안이 있고 여건이 성숙하면 만날 수 있다고 하는 의지 표명이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냐. 바람직한 발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3. 남북 ‘종전선언’ 추진 ●사회 남북이 ‘종전선언’을 위한 관련 당사국 회의를 개최키로 합의했다. 실현가능성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황 전 수석 지난해 6자회담 ‘9·19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에 영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관련 당사국과 별도 포럼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기로 했다. 이번 남북정상선언의 당사국 회의 조항에는 남북한 평화체제 문제를 남북이 주도적으로 다뤄 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총리가 당사국회의를 주최하겠다는 것도 그런 면에서 중요하게 평가할 점이 아니겠느냐.6자회담에만 맡기고 따라가는 형식은 안 된다.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부분을 평가해야 한다. 현실성을 묻는다면, 충분히 있다고 답하겠다. 노무현 정부가 임기말이라는 점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 이미 6자회담에서 관련 당사국 회의를 하겠다고 했기 때문에 한국이 안 한다고 해도 6자회담 틀 안에서 논의할 문제다. 미국 입장 등을 고려해 보면 생각보다 이번 합의가 현실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임기 안에 이번과 비슷한 행사, 즉 북·미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생각을 할 가능성이 높다. 4. 양측 협상전략 평가 ●사회 차기정부에서 이번 남북정상선언 합의사항이 바뀔 수도 있다고 일부 국민들이 얘기한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합의가 휴지조각이 될 수 있지 않느냐에 대한 질문이다. ●정 교수 민주주의 국가인 남한에서 정권이 바뀌는 것은 상식적인 얘기다. 정권이 바뀐다고 정상회담의 합의 내용이 백지화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다만 6·15 선언에서 합의한 5가지 사항 가운데 지켜지지 않은 것이 있는 데서 볼 수 있는 것은, 정상회담의 추진과정과 합의내용은 국민적 지지를 받아야 그 이행을 담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정이 투명하지 않거나, 국민들이 모르던 새로운 사안이 터져 나온다면 차기 정부에서 합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 남북정상회담 기간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태도와 발언 등에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3일 김 위원장이 회담을 하루 연장하자고 제안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양측 협상전략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황 전 수석 김 위원장이 오전 회담을 마치고 회담 연장을 제의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우리측에서 먼저 제의해 성사됐음을 감안하면, 오전 회담에서 아무래도 북한보다는 우리측이 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지 않았겠느냐. 북측에서 정상회담에 참석한 참모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유일했다. 그러니 남측이 제안한 안을 갖고 검토할 필요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이에 대해 우회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힌 남측의 대응은 적절했다. ●정 교수 김 위원장의 예상밖 제안은 남북정상회담과 북한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은 본인이 결정하면 북한에서 모든 것이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최고통수권자와 다른 의미의 절대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짐작이 이번 그의 발언에서 확인됐다는 느낌이다. 남측의 대응은 적절했다. 정리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靑 “金 환영 달라진것 없어”

    청와대가 3일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으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북 첫날인 2일 TV를 통해 비쳐진 김 위원장의 무표정한 모습을 비롯해 갖가지 의전이 1차 정상회담의 ‘융숭한 환대’와 많은 차이가 난다는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이다. 김정섭 청와대 부대변인은 이날 롯데호텔의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 상황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북측이 최대의 예우를 보여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먼저 김 위원장의 환영 태도와 관련,“최대한 정중한 예우를 한 것은 달라진 것이 없다.”고 평가했다.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 상임위원장이 먼저 영접하고 함께 차에 동승, 평양 연도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친 것은 북측이 두 번째 정상회담에 걸맞은 배려를 한 것이라고 했다. 또 노 대통령 영접의 주체가 마치 김 상임위원장인 것처럼 보여지면서 노 대통령의 ‘격’이 다소 떨어뜨렸다는 일각의 지적을 의식,“북측의 국가를 대외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김 상임위원장”임을 강조했다. 북측의 김 상임위원장 의전도 충분한 배려라는 설명이다. 환영식 행사에 참석한 북측 지도자도 1차때 13명에 23명으로, 군 관계자도 1명에서 3명으로 증가한 것 역시 남북관계의 진전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金 불쑥 제안…우리측 당혹

    3일 역사적인 2007 남북정상회담에 들어간 정상들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돌연한 ‘회담 하루 연장’ 제안을 놓고 반전을 거듭하는 파격을 연출했다. 김 위원장의 파격 제안은 오후 2시45분 백화원 영빈관에서 속개된 두번째 회담에서 나왔다. 김 위원장은 회담 시작과 함께 “모레 서울에 돌아가시는 게 어떠냐.”고 불쑥 제안했다. 이런 제안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노 대통령은 당황하는 표정을 지었으며, 옆에 앉은 이재정 통일부 장관 등 우리측 배석자들도 서로 얼굴을 쳐다 보는 등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김 위원장의 말이 끝나자 노 대통령은 “큰 일은 제가 결정하지만 작은 일은 제가 결정하지 못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와 관련,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기자들에게 “김 위원장의 제안은 회담을 보다 충실히 하고, 오늘 오후 취소됐던 일정 등을 가능한 한 모두 소화하자는 취지로 받아들인다.”면서 “대통령께서 참모들과 논의해 평양 체류 일정을 연장할지 여부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유보적인 반응을 보였다. 서울에서도 정부는 한덕수 총리 주재로 남북정상회담 추진위 회의를 열어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한 수용 여부를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지금 평양에서도 회의하고 있고, 서울에서도 회의한다.”라고 긴박한 분위기를 전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회담의 성공을 위해 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란 관측이 다소 우세한 편이었다. 일부 정부 당국자들은 “큰 방향은 김 위원장의 제안에 대해 우리도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제안이 나온 지 1시간40여분 뒤 우리 정부는 김 위원장이 회담 말미에 제안을 철회했다면서 4일 예정대로 서울로 귀환할 것이라고 밝혔다. 남측이 제안을 거절한 게 아니라 두 정상이 자연스럽게 공감했다는 설명이었다. 김 위원장이 “충분히 대화를 나눴으니 (연장을)안 해도 되겠다. 남측에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본래대로 합시다.”고 말했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말했다. 결국 서울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김 위원장의 제안은 100분 만에 없었던 일이 됐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해명만으로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남측이 제안을 거부해서 김 위원장이 철회한 것인지, 김 위원장 스스로 제안을 취소한 것인지가 불분명한 것이다. 한편에선 정상회담의 성격상 공개석상에서 상대 정상이 부담스러워 할 제안을 김 위원장이 불쑥 던진 것 자체가 외교적으로 결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날 김 위원장의 제안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를 얼핏 연상시킨다. 당시 북측은 애초에 6월13일로 합의했던 회담 날짜를 하루 늦춘다고 하루 전날 일방적으로 통보한 적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예정보다 하루 늦은 6월14일 방북길에 올라야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 방북 이틀째 화보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 방북 이틀째 화보

    남북정상회담 일정 이틀째인 3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두 차례에 걸쳐 정상회담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불참 속에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고 만찬을 가졌으며,4일 김 위원장과 공동선언문을 발표하고 서울로 돌아온다. 두 정상간 긴박했던 회담 분위기를 소개한다. 평양 청와대사진기자단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정상회담 美·中·日 반응

    |워싱턴 이도운·도쿄 박홍기·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이번 정상회담을 상세하고 신속하게 보도했다. 중국언론에 뉴스를 독점 공급하는 국영 신화사의 톱 뉴스는 남북 정상회담이 차지했다. 시시각각 전달되는 사실 관계와 현장 스케치 등을 실시간 속보로 전달했다. 평양 체류 일정을 하루 연장,5일 아침 서울로 돌아갈 것을 요청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제안과 거부 소식 등도 빠르게 전해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반면 미국 언론들은 비중이나 신속성에서 중국과 일본 언론들보다 뒤처졌다. 美정부와 언론은 평양에서 진행중인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정상회담의 추이에 계속 관심을 기울이며 다양한 평가를 내놓았다. 미 정부의 한반도정책 실무책임자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2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한국인들이 지닌 분단의 비극과 남북 대화의 열망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6자회담과 남북대화는 병행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 한국 정부와의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이날 8면 한 면을 거의 할애해 심층 보도했다. 또 노 대통령 일행이 탄 차량 행렬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쪽으로 향하는 사진을 ‘기념비적인 월경(越境)’이라는 제목아래 실었다. 또 정상회담에서 북한경제 재건지원책이 나올 것이며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도 논의될 것으로 전망했다. 日북핵과 함께 납치문제를 현안으로 갖고 있는 탓에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다. 신문들은 1∼2개면을 할애, 회담의 세세한 부분까지 보도하고 있다. 지난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와도 다르다. 당시에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납치문제들이 등장하지 않았던 데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방북, 정상회담을 할 만큼 북·일 관계가 해빙기였다. 아사히신문은 사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핵포기’의 언질을 받기를 바란다.”면서 납치문제의 해결도 설득해주길 주문하는 등 일본 주장을 분명히 했다.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상은 3일 마이니치 신문과 인터뷰에서 대북 정책과 관련,“제재를 해제할 만큼 북한쪽이 바뀌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에서 논의될 납치문제 수위에 따라 대북 정책도 조정해 나갈 것으로 알려졌다. 中전역을 커버하는 중앙방송(CCTV) 뉴스채널은 김정일 위원장이 주재한 환영식 등 주요 장면을 거의 실시간으로 방영했다.CCTV 시사프로도 회담 내용을 폭넓게 다뤘다. 다만 특별한 해설이나 분석은 내놓지 않았다. 신화사도 이날 노무현 대통령이 대장금 DVD를 김 위원장에 전달했다는 스케치성 기사도 소개했다. 시나(新浪), 서우후(搜弧)등 포털 사이트는 정상회담과 관련, 일정·주제·의제·회담별로 기사를 다양하게 분류해 소개했다. 이에 비해 홍콩 언론들은 비판적인 자세를 취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허풍쟁이의 블록버스터’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북한에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설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는 과정에서 ‘할리우드적’ 분위기가 가미된 이후 김 위원장의 직접 영접으로 ‘블록버스터’로 바뀌었다고 전하면서 노련한 북한 의도를 경계할 것을 주문했다. jj@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아리랑공연 관람후 찬양땐 문제 될수도

    남북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평화공존을 논의하는 ‘현실’ 속에서 국가보안법 적용이 또다시 도마위에 올랐다.2000년 6월 1차 정상회담 때와 달리 이번에는 훈풍이 아닌 역풍이 불 것이란 전망도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2차 남북정상회담도 국보법 적용에 대해 향후 치열한 법리논쟁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1차 회담 직후에는 보안사범들의 기대심리가 폭증해 검찰 공안부가 “예방주사를 맞기 전 전염병에 걸린 느낌”이라고 하소연할 정도였다. 정상회담 직전 대학가의 인공기 게양사건에 대해 전원 사법처리하려다 일부 사법처리로 한발 물러선 것이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2차회담에선 남측 대표단의 아리랑공연 관람이 한차례 역풍을 맞는 등 여론이 돌아섰다.“누가 어떤 목적으로 보느냐에 따라 적용 여부가 달라진다.”는 검찰의 유권해석이 이를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대검과 서울지검 공안부의 고위 검사들은 “현 시점에서 법 적용과 향후 전망을 논하는 건 적절치 않다. 법의 취지가 변하지는 않는다.”며 유보적 판단을 하고 있다. 안태근 법무부 공공형사과장은 “무엇보다 행위자의 ‘의사’가 중요하며 국보법 적용의 도식화는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안 과장은 방북단의 단순관람은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이를 보고 돌아와 찬양·고무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는 의견이다. 안 과장은 “97년 이후 국보법은 단 한차례도 개정되지 않았다. 개정문제는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법무부에 따르면 1차 정상회담이 열린 2000년 국보법 위반 구속자는 286명에 달했지만 지난해 62명, 올해는 8월말까지 45명으로 줄었다. 법원은 최근 판결에 유연성을 가했지만 여전히 ‘시대상황’보다 ‘법적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법원측이 “사회환경에 따라 법관의 판결이 쉽게 변하는 것도 아니고 개별 법관이 판단할 문제”라고 못박은 것과 궤를 같이한다. 법원은 앞서 8월 ‘일심회’사건 피의자들에게 간첩죄에선 무죄를 선고했지만 국보법 위반은 그대로 적용했다.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지자체 남북교류사업 재개

    지자체 남북교류사업 재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자치단체들의 남북교류사업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전남·북, 경북, 제주 등 지자체들은 지난해 10월 북한 핵문제로 일시 중단됐던 남북교류사업을 일제히 재개했다. 전남·북지사와 시장·군수 등은 이달 하순 북한을 방문, 각종 지원사업 준공식을 갖는다. 경북도는 ‘남북경협 조례’를 제정해 지자체 차원의 교류사업을 제도화하기로 했다. 제주도 역시 제자리걸음만 했던 ‘한라-백두 교류사업’을 다시 추진키로 했다. ●전남·북 단체장들 하순에 북한 방문 박준영 전남지사를 비롯해 전남지역 단체장들은 오는 26일부터 29일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이번 방북에는 시장·군수, 지방의원,(사)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 관계자 등 130여명이 참여한다. 이들은 북한어린이들의 영양 보충을 위해 (사)전남도민남북교류협의회의 지원으로 지난 4월 평양시 만경대구역 칠골동에 착공, 설립한 콩 발효식품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다. 하루 2만명에게 청국장 등을 공급할 계획이다. 이 협의회는 북한측 민족화해협의회와 협력해 2003년 평남 대동군에 농기계 수리공장을 세우고 지난해에는 평양에 1만 6500㎡ 규모의 친환경 남새공급소를 조성했다. 전북도 역시 23일부터 25일까지 북한을 방문한다. 김완주 전북지사와 도내 시장·군수, 지방의원, 농어민단체 관계자등 100여명은 평남 남포특급시 대대리에서 열리는 축사 준공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이 축사는 전북도가 지난해부터 11억원을 투자해 건립한 것이다. 김지사 일행은 이번 방북기간에 축사에서 기를 종돈 250마리도 전달키로 했다. 이 종돈은 전북도와 도내 14개 시·군의 공동 지원으로 최근 남포특급시 대대리에 설립된 축사에서 사육된다. 전북도는 2004∼2006년 20여억원을 들여 남포시에 농기계와 농기계수리공장, 농자재 등을 지원했다. ●경북, 자치단체 차원 남북교류 제도화 경북도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 조례 제정’ 및 ‘우선 사업 선정’ 등 도 차원의 남북교류협력사업에 적극 나서기로 했다. 1단계로 문화, 관광, 체육, 학술 등 민간교류 중심의 만남으로 이해의 폭을 넓히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북에서 태어나 북한지역에서 활동한 영천 출신의 최무선 장군과 정몽주 선생, 울릉도·독도를 지킨 안용복 장군 등 역사적 인물을 함께 재조명하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안동 하회탈춤과 북청 사자놀이 교류, 신라·고구려사 공동연구, 경주∼개성 왕조 유적 발굴조사,21세기 새마을운동 보급, 독도를 포함한 동해안 역사·생태자원 공동연구조사, 금강산∼울릉도 관광루트화 등도 검토하고 있다. 2단계로는 남북한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사업을 추진한다. 전국 최고 경쟁력을 갖춘 경북 사방(沙防)의 노하우를 전수해 홍수나 남벌로 헐벗은 북한의 산을 복구하는 사업이 검토되고 있다. 남북합작의 키 낮은 사과원 시범조성과 벼 육묘공장 설치 및 기술 지원, 우수 한약재 생산·가공단지 조성도 검토 대상이다. 경북도는 포항 영일만 신항을 중심으로 동해안 일대를 남북교류의 중점 항만으로 육성해 환동해권 물류·교통·산업교류 거점지역으로 개발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워 놓고 있다. 도는 현재 입법예고 중인 ‘경북도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조례(안)’가 제정되면 각계 전문가를 중심으로 남북교류협력위를 구성, 운영할 계획이다. ●제주, 한라-백두 교류사업 재추진 제주도는 ‘한라-백두 교류사업’을 다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2000년 첫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라-백두 교차관광’이 합의돼 제주도민 등의 백두산 탐방 등은 이루어졌지만 아직까지 ‘한라-백두 교류사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도는 2003년 8월 북한을 방문, 백두산에서 한라산연구소와 백두산연구소가 자료교환 등 ‘한라-백두’ 공동 학술탐사 등을 협의하기도 했다. 도 관계자는 “이번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한라-백두 교류사업을 다시 재개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전국종합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체류연장 제안’에 정치권 한때 촉각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3일 ‘체류연장 깜짝 제안’과 뒤이은 ‘당초 일정대로 진행’ 소식에 정치권은 신중한 입장을 내놓았다. 그동안 ‘국민이 만족할 만한 회담성과’를 주문해 왔던 한나라당은 김 위원장이 노 대통령에게 평양에 하루 더 머물 것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지자 긴장한 모습이었다. 당 관계자들은 “이면에 어떤 의혹이 있는 것 아니냐.”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 대통령의 방북에 부쳐 “국민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라.”고 논평했던 한나라당으로선 노 대통령이 평양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며 ‘무리한 약속’을 할 수도 있다며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러면서도 “일단 청와대가 공식적으로 수용의사를 밝히기 전까지는 지켜봐야 한다.”며 신중론을 폈다. 이후 최종적으로 노 대통령의 체류연장이 없던 일로 결정됐다는 소식에 나경원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기존 일정대로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다니 다행”이라고 말했다.나 대변인은 “방북일정과 정상회담 형식에 어울리지 않게 노 대통령이 평양 체류를 연장했다면 국민적 우려와 걱정이 더욱 커졌을 것”이라면서 “이제는 회담결과를 지켜보며 어떤 내용에 합의했는지 꼼꼼하게 살피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런 입장은 “무리하게 성과를 내려고 국민에게 부담을 주는 합의를 했다면 한나라당은 국회 동의 과정에서 꼼꼼하게 따질 것”이라는 기존의 당 입장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반면 ‘원샷 경선’ 성사여부를 놓고 진통을 겪고 있는 대통합민주신당은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노 대통령이 방북하던 날 앞다퉈 ‘남북 문제해결 적임자’라고 자처했던 대선주자들도 이날은 긴박하게 돌아가는 ‘원샷 정국’에 몰두했다. 다만 대통합민주신당 이낙연 대변인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당초 제안은) 국제적인 외교 관례와는 사뭇 다르지만 김 위원장으로서는 좀더 충실한 회담을 갖고 싶은 것으로 보였다.”면서 “그러나 국제외교 관례를 중시한 우리 정부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말했다.이종락 박지연기자 anne02@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盧, 우여곡절 속 아리랑 관람

    [2007 남북정상회담] 盧, 우여곡절 속 아리랑 관람

    정상회담 전부터 논란을 빚었고 비로 인해 취소될 뻔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아리랑 공연 관람이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그러나 관심을 모았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깜짝 등장’은 연출되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3일 저녁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대동강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아리랑 공연을 봤다. 비가 내려 다소 쌀쌀해진 날씨 속에 각각 베이지색과 감색 트렌치 코트 차림으로 나온 노 대통령 내외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나란히 주석단에 앉아 관람했다. 김장수 국방장관, 김만복 국정원장,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 등 공식 수행원도 함께 했다. 노 대통령 내외와 김 상임위원장이 경기장에 들어서자 경기장을 가득 채우운 평양 시민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와 ‘와∼’하는 함성으로 환영했다. 노 대통령은 꽃다발을 받은 뒤 환호하는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어 답례했다. 오후 8시반쯤 시작돼 1시간30분간 진행된 공연은 6만여명이 일사분란하게 펼치는 초대형 군무와 형형색색의 카드섹션으로 장관을 연출했다. 노 대통령 내외는 공연 내내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노 대통령은 관람 도중 두 차례나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공연 도중 무용복 차림의 아동들이 줄넘기 등 놀이를 마친 뒤 “아버지 장군님 고맙습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주석단으로 달려오자 김 상임위원장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공연이 끝나갈 즈음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며 노 대통령을 향해 환호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출연자들과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공연에서는 노란 옷을 입은 무희들이 현란한 부채춤을 선보였고, 초대형 지구본이 등장하는가 하면 관중석에선 고 김일성 주석의 얼굴도 형상화했다. 카드섹션으로 ‘핏줄도 하나’,‘통일의 문을 우리민족의 손으로’,‘자주·평화·친선’ 등 문구를 만들었다.‘21세기 태양은 누리를 밝힌다. 아, 김일성 장군’,‘무궁번영하라 김일성 조선이여’라는 체제 선동적인 글자도 선보였다. 특히 남측의 태권도 시범이 처음으로 추가돼 눈길을 끌었다.‘민족의 자랑’이라는 글자와 태권도 이단옆차기 그림을 배경으로 수백명의 젊은이가 태권도 시범을 선보여 박수 갈채를 받았다. 노 대통령이 공연을 관람하기까지는 난관이 적지 않았다. 먼저 방북 전 국내 비난 여론을 무마하느라 애를 먹었다. 공연 내용이 북한 체제를 일방적으로 찬양하는 등 ‘정치색’이 강하기 때문이다. 결국 북측은 정부의 요청에 따라 인민군이 총검술로 국군과 미군을 제압하는 장면을 태권도 시범으로 바꾸는 등 문제의 소지가 될 부분을 수정해야 했다. 게다가 공연 당일 비가 내리면서 취소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야외 카드섹션이 주류를 이루는 공연의 특성상 많은 비가 내리면 공연의 진행이 어렵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김 국방위원장과의 ‘동반 관람’이 불발로 끝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지난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공연을 보던 김 국방위원장이 대포동 미사일 카드 섹션 장면에서 “이것이 첫 번째 위성발사이자 마지막”이라고 말한 뒤 북·미간 미사일 협상이 반전된바 있어 이번에도 ‘깜짝 쇼’가 기대됐었다. 아리랑 공연은 북한의 외화획득에 일조하고 있지만, 어린 학생들이 혹독한 연습에 시달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인권 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영표 강주리기자tomcat@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남북정상 ‘벽’ 있었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3일 남북정상회담 일정을 하루 연장할 것을 전격 요청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들과의 검토 끝에 일단 예정대로 4일 회담을 종료하고 귀경하기로 했다. 정상간 회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일정 변경이 논의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김 위원장의 회담 연장 제의 배경과 이를 거부한 우리 정부의 판단, 이에 따른 향후 남북 관계의 향배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은 3일 오후 백화원 영빈관에서 속개된 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2차 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평양 체류 일정을 5일까지로 하루 연장할 것을 전격 제의했다. 김 위원장은 2차 회의가 속개되자 모두발언을 통해 “내일(4일) 오찬을 평양에서 여유 있게 하시고 오늘 일정들을 내일로 늦추는 것으로 해 모레 서울로 돌아가시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큰 일은 제가 결정하지만 작은 일은 제가 결정하지 못한다. 경호·의전 쪽과 상의를 해 보겠다.”며 즉답을 유보한 뒤 이후 수행 참모들과의 협의 끝에 예정대로 4일 회담을 마치겠다는 뜻을 김 위원장에게 전달했다. 이에 김 위원장도 회담 말미에 “충분히 대화를 나눴으니 본래대로 하자.”고 연장 제의를 거둬들였다. 이에 대해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김 위원장의 일정 연장 제의는 충분한 대화를 통해 회담의 성과를 높이자는 취지의 호의였으나, 회담이 좋은 분위기에서 효율적으로 진행돼 예상보다 짧은 시간에 합의에 이르게 되자 (우리 정부가 가부 입장을 밝히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제안을 거둬들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평화에 대한 (김 위원장의)확고한 의지를 확인했다.”면서도 “솔직히 벽을 느끼기도 했다.”고 소회를 밝힌 대목이 주목받고 있다.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오전 1차 회담 직후 김 위원장이 회담 연장을 요청하고, 정부가 이를 거부했다는 점에서 회담 연장 해프닝은 4일 발표할 합의문의 수준을 넘어 향후 남북관계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 남북간 현안에서 보다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과, 대북지원 등에서 노 대통령의 보다 큰 양보를 얻어내려 한 것이라는 해석 등이 엇갈린다. 반면 이날 평양에 큰 비가 내리면서 아리랑공연 관람 등 방북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자 예정 일정을 충분히 소화토록 하기 위해 김 위원장이 선의의 배려를 하는 차원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특히 정치권 일각에서는 대북지원 등과 관련, 남북 당국간 ‘물밑 거래’ 가능성에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 4일 발표될 합의 내용에 따라 국내 대선 정국에도 일정 부분 파장이 일 것으로 점쳐진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北 담판 속셈…南 실익없다 판단?

    [2007 남북정상회담] 北 담판 속셈…南 실익없다 판단?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상회담 기간을 하루 더 연장하자고 제안한 것은 ‘고도의 전략’이라는 지적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전격 제안에도 불구하고 예정대로 4일 귀환하기로 한 것도 북한 측의 의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회담 연장은 여러 의도 담겨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의 회담 연장이라는 파격적인 제안은 다목적 노림수를 담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남북공동선언문과 같은 합의를 위한 김 위원장의 전향적인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남북간에 보다 구체적인 합의 도출을 위한 시도에서 비롯됐다는 의견이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남북관계 전반에 대한 진전된 합의를 끌어내고, 차기 정부에 상관없이 남북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확실히 제도화하겠다는 의도가 가장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는 “회담 자체가 삐걱거린다기보다는 북측이 뭔가를 더 얻어내기 위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남측이 예기치 못한 획기적인 제안을 함에 따라 내부 논의가 필요했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서해상 긴장완화 방안과 관련, 남측이 ‘로드맵’을 제안, 군부·당과의 조율이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했을 수 있다.”고 해석했다. 또 협상 결과 도출을 지연시켜 상대방의 조바심을 유발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협상전략으로 보기도 했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는 “임기말 노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빅딜’담판을 하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일정을 연장시켜 풍성한 그림을 보여주는 제스처”라고 밝혔다. 하지만 북측이 장관급회담이나 군사회담에서 자주 선보이는 협상전략의 일환이긴 하지만 정상회담의 성격을 감안하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평양에 비가 오면서 당초 이날 예정된 아리랑 관람이 연기된 것이 직접적 이유로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내일 오찬을 평양에서 여유있게 하시고 오늘 일정을 내일로 늦추는 것으로 해 모레 서울로 돌아가시는 게 어떠냐.”는 김 위원장 2차 정상회담 모두 발언으로 미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리랑 관람이 일정을 하루 늘려야 할 만큼 절박한지는 의문이다. ●득보다 실이 많아 예정대로 노 대통령이 회담 일정을 연기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체류 연장으로 인한 이득이 별로 없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경호 문제를 비롯해 대규모 방북단의 일정 자체가 하루 늦춰지는 것 자체가 큰 부담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인 부담이 더 크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하루 연장하면서까지 정상회담을 진행했는데 변변치 않은 ‘성과’를 갖고 귀환해야 한다면 차라리 ‘낮은 수준’의 합의선에서 끝내는 것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우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제안을 했을 경우 더더욱 그렇다. 최광숙 이세영기자 bori@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 방북 첫날 화보

    [2007 남북정상회담] 노대통령 방북 첫날 화보

    2일 남과 북의 정상이 7년 만에 다시 평양에서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측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을 도보로 넘어 북측 땅을 밟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금단의 선을 넘어온 노 대통령을 반갑게 맞았다. 두 정상의 역사적인 상봉 첫날 모습을 소개한다. 평양 청와대사진기자단
  • [2007 남북정상회담] “반갑습네다” 7년만의 악수

    [2007 남북정상회담] “반갑습네다” 7년만의 악수

    사상 처음으로 남한의 정상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그리고 승용차로 북한의 내륙을 관통해 평양 한복판에 닿았다. 2일 아침 역사적인 2차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육로 방북길에 오른 노무현 대통령은 낮 12시 평양 시내 모란봉 구역 4·25문화회관 앞 광장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만났다.7년만의 남북 정상간 만남이다. 노 대통령은 환영식장에 5분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김 위원장과 악수하면서 서로 옅은 미소와 함께 “반갑습니다.”라고 인사를 나누었다. 환영식장에 대기하고 있던 수천명의 평양 시민들은 화려한 색깔의 꽃술을 절도 있게 흔들며 환호했다. 북한의 김영일 내각 총리, 강석주 외무성 부상, 박순희 여성동맹위원장을 비롯한 당·정·군 고위인사 21명도 행사장에 나와 노 대통령을 영접했다. 두 정상은 광장에 깔린 붉은색 카펫을 밟으며 나란히 북한 육·해·공 의장대를 사열했으며, 연단에서 의장대의 분열을 지켜봤다.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국가 연주나 축포는 없었다. 12분간의 공식 환영식이 끝난 뒤 노 대통령은 전용차에 올라 숙소인 백화원영빈관으로 향했으나, 김 위원장은 2000년 때와는 달리 동승하지 않았다.7년 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향해 환하게 웃던 얼굴도 노 대통령에게는 잠시였다. 앞서 노 대통령은 전용차로 평양∼개성간 고속도로를 통해 오전 11시40분 평양 시내 인민문화궁전 광장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기다리고 있던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은 뒤 나란히 무개차에 올라 4·25문화회관까지 20분간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연도에 늘어선 수십만명의 평양시민들은 꽃술을 흔들며 “만세”와 “조국통일” 등의 함성으로 반겼고, 노 대통령은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평양 만수대 의사당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공식 면담을 갖고 남북간 경제협력 강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남북관계 전반에 걸쳐 의견을 교환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5분쯤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통과했다. 노 대통령은 MDL 통과를 앞두고 발표한 ‘평화의 메시지’를 통해 “(군사분계선을 넘는)이번 걸음이 금단의 벽을 허물고 민족의 고통을 해소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많은 고통들을 넘어서 평화와 번영의 길로 가는 계기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노 대통령은 MDL 통과 직후 김정일 위원장의 측근인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과 최룡해 황해북도당 책임비서 등의 영접을 받았다. 이어 북측 여성들로부터 꽃다발을 받은 뒤 기념촬영을 하고 평양으로 향했다. 청와대를 출발하기 전인 7시55분쯤 노 대통령은 ‘대국민 인사’를 통해 “지난 2000년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길을 열었다면, 이번 회담은 그 길에 가로놓여 있는 장애물을 치우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면서 “군사적 신뢰구축과 인도적 문제에 있어서도 구체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서울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사설] 7년만의 만남, 평화의 새 장 열기를

    남북의 두 정상이 7년만에 다시 만났다.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평양에 도착,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은 한반도 평화를 향한 메시지를 지구촌에 전하는 ‘사건’이었다. 두 정상의 첫 회동 분위기는 2000년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얼싸안았을 때에 비해 차분했다. 하지만 남북 정상의 만남이 이어진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들뜬 겉모양보다는 내실 있는 성과를 거두는 정상회담이 되도록 남북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노 대통령을 맞아 북측은 나름대로 성의 있는 의전을 준비했다. 김 위원장이 공식환영식에 미리 와서 기다렸고, 노 대통령은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무개차 퍼레이드를 벌였다. 노 대통령을 첫 대면한 김 위원장의 표정이 활기차지 않았다고 해서 이번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를 미리 걱정할 이유는 없다. 또 평양시민들의 환호가 당국의 지침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폄하하지는 말아야 한다. 남북의 공동번영과 발전을 바라는 민족애가 담겨 있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앞서 대한민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남북 군사분계선(MDL)을 걸어서 넘었다. 이 장면은 전 세계로 생중계됨으로써 한반도에서 냉전의 틀이 깨지고 평화와 화해의 새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노 대통령은 대국민 인사를 통해 “2000년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길을 열었다면 이번 회담은 장애물을 치우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회담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군사분계선을 넘은 발걸음이 남북간에 남아 있는 장애물을 시원하게 치우는 지렛대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남북 정상은 오늘 두차례에 걸쳐 공식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노 대통령이 여러 차례 언명한 것처럼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함께 가져가기 위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합의문이 나와야 한다. 노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평화선언을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정부 당국자가 전했다. 남북 정상이 평화체제 수립을 향한 의지를 공동으로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실천이 담보되지 않은 평화선언은 공허함을 남길 뿐이다. 북핵 폐기의 확고한 약속 등이 포함되어야 평화선언이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노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아울러 노 대통령의 방북과 관련해 비무장지대(DMZ)와 서해 북방한계선(NLL)의 평화지대화, 군축, 그리고 남북 경협 아이디어가 쏟아져 나왔다. 어떤 의제든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지만 과욕을 부려선 안 된다. 미국·중국 등 주변국과 사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 있고, 막대한 재원이 드는 사업도 있다. 국내외 공감대를 얻지 못할 합의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고위급회담 정례화 등 분야별 후속회담을 통해 공동번영과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는다는 심정으로 회담에 임해야 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을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일원으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김 위원장이 외부세계에 이처럼 여러 차례, 오랜 시간 모습을 드러낼 기회는 없다.2000년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은 스스로 ‘은둔’의 이미지를 벗었다고 했다. 노 대통령과 이번 만남을 통해 핵을 포기하고 개혁·개방으로 북한 주민을 잘 살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김 위원장이 전면 핵폐기의 결단을 확실히 한다면 남측은 연말 대선 결과와 관계없이 북한을 도울 것이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은 평양 도착 성명에서 “남과 북이 힘을 합쳐 이 땅에 평화의 새 역사를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담의 성공을 위해서는 김 위원장의 결단을 끌어내는 담판이 필요하다. 잠시 휴회한 북핵 6자회담이 막바지 합의문 채택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감안할 때 김 위원장을 설득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노 대통령은 민족의 장래만을 바라보는 진심을 갖고 김 위원장을 설득하고, 김 위원장은 ‘통 큰 결단’으로 호응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새 장이 열리길 간절히 기원한다.
  •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2007 남북정상회담] 盧대통령 “금단의 선 넘어간다. 장벽은 무너질 것이다”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입니다. 이 장벽 때문에 우리 국민들은, 우리 민족들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군사분계선을 10m 남짓 남겨두고 승용차에서 내려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목소리에선 “여기서 한마디 하고 넘어가는 거죠.”라며 웃음 짓던 조금 전의 여유를 찾아볼 수 없었다.‘역사적 순간’의 감격을 다스리기란 산전수전 다 겪은 노 대통령으로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듯했다. ●“제가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 다녀올 것” “저는 이번에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 선을 넘어갑니다. 제가 다녀오면 또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질 것입니다. 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환송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노 대통령은 몸을 돌려 ‘금단의 선’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평상시 아무런 표지도 없는 군사분계선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역사적인 ‘도보 월경’을 앞두고 50㎝ 폭의 굵은 노란색으로 표시가 돼 있었다. 노 대통령이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는 듯하더니 성큼 노란 선을 넘어섰다. 노 대통령이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한 개성공단산 시계의 시침은 정확히 9시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는 역사적 순간은 CNN 등 외신의 생중계를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타전됐다. 이날 노 대통령의 도보 월경은 전 세계에 한반도 평화의 메시지를 극적으로 전달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게 정부측 평가다. ●방북길은 한국전 당시 남침·북진로 노 대통령 일행이 군사분계선을 거쳐 평양으로 가기 위해 이용한 경의선 남북연결 도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것이어서 의미를 더했다. 과거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의 침공로이자 유엔군의 북진로이기도 했던 이 길은 지뢰제거 작업 등을 거쳐 2002년 9월에 착공,2003년 10월 개통됐다. 이후 도로는 개성공단 입주기업뿐 아니라 각종 민간교류의 물류 통로로 활용되면서, 대립의 상징물에서 화해와 협력의 소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1948년 4월 백범 김구 선생이 단독정부 수립을 저지하기 위해 평양에서 열린 남북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에 참석하면서 38선을 넘을 때도 이 육로를 이용했다. 한편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도보로 넘는 것을 기념해 비무장지대 남방한계선 우리측 제2통문 앞에 3.6m 높이의 표지석을 세웠다. 표면에는 “평화를 다지는 길, 번영으로 가는 길.2007년 10월2일 대한민국 대통령 노무현”이란 문구가 새겨졌다. 김정석 청와대 부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직접 문구를 지어 친필로 기록했다고 전했다. ●“욕심 안 부리겠지만 몸 사리지도 않을 것” 이날 오전 노 대통령은 출발에 앞서 청와대 본관에서 국무위원 및 청와대 수석들과 간담회를 가진 뒤 대국민 인사를 통해 회담에 임하는 자세와 각오를 밝히는 것으로 역사적인 하루를 시작했다. 노 대통령은 푸른 빛 넥타이에 감색 양복을 입고 있었고 표정도 비교적 밝았다. 권 여사는 자주색 정장을 입었다. 노 대통령은 간담회에서 “역사는 단번에 열 걸음 나아가기가 어렵다. 이번에 한걸음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며 회담에 응하는 소감을 밝힌 뒤 “지금은 한걸음 더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때이고 6자회담 진전을 위해 남북정상회담과 잘 맞춰줘야 하는 때”라며 회담의 배경을 설명했다.10여분 간의 간담회를 마친 노 대통령은 본관 앞에 준비된 연단에 올라 5분간 방북에 앞선 ‘대국민 인사’를 발표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도열해 있던 한덕수 국무총리 등 국무위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태극기와 봉황 문장 깃발이 달린 전용차에 올라 7시55분쯤 청와대를 나섰다. 이날 노 대통령은 청와대 앞 효자동 길을 지나 시청앞∼서소문∼마포∼강변북로∼자유로 코스로 방북길에 올랐다. ●시민들 차분… 보수단체 반대성명도 서울시민들은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는 노 대통령 일행을 차분한 기대 속에 환송했다. 방북단을 태운 차량 행렬이 도라산 남북 출입사무소(CIQ)로 향하는 연도에는 출근길 시민들이 걸음을 멈추고 손을 흔들며 회담의 성공을 기원했고 가정이나 직장에 있는 시민들도 TV를 통해 출발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아침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과 정부중앙청사 앞 인도에는 노무현 대통령과 방북단을 환송하기 위해 ‘참여정부 평가포럼’ 회원과 시민 등 수백명이 몰렸다. 이들은 오전 7시쯤부터 세종문화회관 앞에 ‘5천만개의 마음이 당신과 함께 갑니다.’라고 적힌 노란색 현수막을 걸고 회원과 시민들에게 한반도기와 색색의 풍선을 나눠주기도 했다. 반면 선진화국민회의 등 보수단체 소속 50여명은 이날 노 대통령 차량 행렬이 통과하는 시간에 맞춰 정부중앙청사 앞 네거리에서 집회를 열고 ‘북핵폐기 없이 평화 없다’,‘서해북방한계선 그대로 유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성명서를 배포했다. 이들은 “남북정상회담이 국민적 합의와 진정한 화해정신에 입각해 진행되지 않고 정권 차원에서 정략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대선에서 유리한 여건을 만들기 위해 남북정상회담이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개성공단産 로만손 시계 착용 눈길 노 대통령이 이날 방북을 위해 특별히 착용했다는 손목시계도 눈길을 끌었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된 국산 로만손 시계로 시중에서 19만 8000원에 판매되는 제품이다. 남북경협의 상징인 개성공단산 제품을 일부러 선택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귀띔했다. 방북단은 노 대통령이 착용한 것과 같은 ‘TM7238L’ 모델을 9세트 더 구입해 김정일 위원장 등 북측 회담 관계자들에게 선물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회담의 공식수행원 13명 전원은 방북 기간 왼쪽 가슴에 회담을 위해 특별 제작한 휘장을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금색 테두리를 두른 무궁화 모양으로 흰색 바탕 위에 왼쪽에 태극기, 오른쪽에는 한반도기를 배치했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이세영기자
  • [2007 남북정상회담] 그렇게 새 역사가 씌어졌다

    [2007 남북정상회담] 그렇게 새 역사가 씌어졌다

    이벤트다. 금단의 군사분계선을 넘음은 분명한 정치적 이벤트다. 통속적 명칭으로는 이벤트지만,‘정치적 의례’다. 금단과 금기를 넘어섬은 일종의 통과의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어떤 의례도 격식과 절차가 필요하고, 종교적인 환상 같은 그 무엇도 필요한 법이다. 그동안 비행기, 배, 자동차, 철도 모두가 오고갔다고 해도 사람이 직접 걸어서 가는 것만 못하다. 도보로 분계선을 넘어갔음은 금단과 금기의 마지막 선이 무너졌음을 뜻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 마지막 선이 사라졌음을 내외에 천명한 셈이다. 군사분계선은 1953년 7월27일에 성립한 ‘한국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관념적 경계선일 뿐이다. 한갓 관념의 선에 불과하던 분계선이 강철처럼 굳어지자, 이 금단의 선을 넘음은 죽음 그 자체를 의미했다. 남북을 오고간 무수한 시대의 ‘간첩’들이, 자유라는 이름으로 ‘월남’과 ‘월북’의 경계선을 오고간 이들이 탄생했다. 분계선을 ‘월북’하고,‘월남’함으로써 이에 연루된 수많은 이산가족들이 민족 최대의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 반세기 이상을 고통으로 채워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었음은 분명히 ‘대통령의 월북’이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자 두말할 것 없이 군통수권자이다. 군통수권자가 군사분계선을 걸어넘었음은 강철같은 분계선이 그 순간 무너져 내렸음을 상징시켜주는 극적인 행위다. 군통수권자가 분계선을 걸어넘음으로써,155마일 철책선과 남북을 겨눈 벙커의 총부리들이 서로를 겨눌 명분 자체가 무색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 대통령제에서의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적 행위다. 휴전협정의 상징인 군사분계선을 대통령이 걸어서 넘었음은 단순한 도보여행이 아니다. 걸어서 선을 넘는 과정을 전세계의 언론이 생중계함으로써 유일한 분단국 한반도에서 분단선을 없애겠다는 의지가 각인됐다. 철책선 대신 평화선 선택이라는 고도의 전략적 사고가 만천하에 새겨진 것이다. 이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월북’하고 ‘월남’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장벽은 무너질 것입니다.”라는 대통령의 대국민 메시지처럼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다. 좀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월북’‘월남’ 자체가 옛말 사전으로 밀려나리라. 분계선의 존재자체가 의미없는 것이 되었으니 월북이나 월남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으로부터 7년, 분계선이 그어진 시점으로부터는 무려 54년 만의 일이다. 그러나 정작 넘는데는 찰나의 시간이 걸렸을 뿐. 고통과 압박, 숨죽임과 억누름이 반세기 이상을 흘렀지만 이를 깨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문득 깨닫고 보니 그 찰나의 순간이 바로 54년이었다. 백범 김구선생이 1948년 금단의 선을 넘어갔다. 금단의 열매를 딴 정치적 죄로 그는 암살을 당했다. 그로부터 59년,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국군최고통수권자가 걸어서, 당당히 금단의 선을 넘었다. 역사는 민족의 지난한 고통속에 이뤄진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의 찰나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2007년 10월2일 아침, 그렇게 한민족의 새 역사가 군사분계선 위에 씌어진 것이다. 주강현 제주대 초빙교수·통일문화학회 공동대표
  • [2007 남북정상회담] 평양 도착 盧대통령 “평화의 새역사 정착시키자”

    [2007 남북정상회담] 평양 도착 盧대통령 “평화의 새역사 정착시키자”

    사상 처음으로 남한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한 걸음으로 훌쩍 넘었다. 평양까지 승용차로 3시간이 채 안 걸렸다. 반세기 넘게 대치해온 남과 북은 지척에 있었던 것이다.2일 평양 시내 한복판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굳게 맞잡은 손엔 7000만 겨레의 통일 염원이 응축돼 있었다. ●군사 분계선 넘자 최승철 부부장이 영접 역사는 2007년 10월2일 오전 9시5분을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건너는 것 자체가 특별했던 금단의 선인 군사분계선을 걸어서 넘었다. 군사분계선을 넘기 직전 노 대통령은 감회에 젖은 표정으로 “한마디 하고 넘겠다.”며 짤막한 대국민 메시지를 남겼다.“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있는 이 선이 지난 반세기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장벽이며, 이 장벽 때문에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은 고통을 받아왔다.”고 했다. 이어 “이제 제가 대통령으로서 이 금단의 선을 넘어 다녀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녀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마침내 이 금단의 선도 점차 지워지고 장벽도 무너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측으로 걸어가자 최승철 통일전선부 부부장, 최룡해 황해북도 당 책임비서 등이 노 대통령 일행을 맞았다. 최 부부장은 노 대통령에게 “통일전선부 부부장입니다. 모셔가기 위해 나왔습니다.”라며 인사를 했다. 노 대통령은 밝은 얼굴로 북측 인사들과 악수를 나눴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여성들한테서 꽃다발을 받았다. 노 대통령 일행은 북측 CIQ를 그대로 통과해 ‘교류협력의 땅’ 개성공단 부근으로 진입했다. 한반도기를 흔들며 환영하는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뒤로한 채 노 대통령은 안암굴 터널을 통과해 왕복 4차선 160㎞에 달하는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북녘 산하를 보면서 내달렸다. 노 대통령은 오전 11시30분쯤 평양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영접을 받은 후 11시42분쯤 무개차에 함께 올라 20분 동안 4·25문화회관까지 6㎞ 정도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연도에 늘어선 수십만 평양 시민들은 저마다 붉은색, 분홍색, 자주색 꽃다발을 흔들며 “만세”와 “조국통일” “환영”이라는 함성으로 노 대통령을 맞았다. 노 대통령과 김 상임위원장은 카퍼레이드를 하는 동안 평양 시내의 건물과 지리, 최근 날씨 등을 화제로 담소를 나눴다고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인 벤츠 S600은 차량 우측에 소형 태극기를, 좌측에는 대통령의 상징인 ‘봉황기’를 함께 매달고 달렸다. 이는 노 대통령의 전용차량 방북에 이어 또 다른 파격으로 받아들여진다. ●또다시 파격적 영접 2일 오전 11시57분 평양 4·25문화회관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이 큰 환호성을 올리자 남북정상회담 생중계 방송을 보던 국민들은 잠시 노무현 대통령이 도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었다.2000년 정상회담 때처럼 김 위원장은 자신이 직접 영접을 나옴으로써 최고 수준의 손님맞이를 보여줬다. 김 위원장이 도착한 지 5분 뒤 노 대통령이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함께 무개차를 타고 환영식장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서로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며 악수를 나눴다. 두 정상은 붉은 색 카펫을 함께 걸으며 북한 육·해·공군으로 구성된 명예위병대를 사열했다. 노 대통령은 환영식에 참석한 김영일 내각 총리를 비롯한 북한 당·정·군 고위층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두 정상은 4·25 문화회관 앞 중앙단상에 나란히 올라 인민군의 분열을 받았다. 이날 환영식은 정오부터 12분가량 진행됐고, 두 정상은 환영식이 끝난 뒤 각각 자신의 차를 타고 식장을 떠났다. ●환영식장 철통 보안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등장은 1차 정상회담 때와 마찬가지로 막판까지 철통 보안이 지켜졌다. 공식환영식 예정 시간을 불과 한 시간여 앞두고 환영식 장소가 두 차례나 바뀌어 선발 취재진에 통보됐다. 당초 남북 실무 접촉에서 합의된 공식환영식 장소는 평양 입구의 조국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이었다. 그러나 오전 10시20분쯤 공식환영식 일정에 변화가 생길 조짐이 포착되기 시작했다. 이 무렵 공식환영식 취재를 위해 3대헌장 기념탑으로 이동하려던 남측 취재단 11명에게 환영식 장소가 인민문화궁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전달됐다. 북측은 남측에서 2차 선발대로 파견된 청와대 의전팀에 이 소식을 통보했고, 취재단에도 이같은 사실을 전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5분쯤 지나 찾아온 북측 관계자는 환영식장이 다시 4·25 문화회관 앞 광장으로 바뀌었다고 취재진에 통보했다. 이때도 북측은 김 위원장의 참석 여부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남측 청와대 선발팀에만 오전 10시를 조금 넘긴 시각 김 위원장의 영접 사실을 통보했다고 한다. ●점심 메뉴는 신선로와 쏘가리 간장조림 공식 환영식을 마친 노 대통령은 전용차를 타고 낮 12시21분쯤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했다. 노 대통령은 낮 12시50분에 부인 권양숙 여사와 공식 수행원들과 함께 평양∼개성 고속도로를 지나오며 본 북한의 풍광과 농업, 지하자원 개발, 경공업 등을 주제로 환담을 나누며 점심을 함께했다. 점심 메뉴는 신선로, 쏘가리 간장즙(간장조림), 냉채, 송편 등 한식이었다.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공식 환영만찬은 만수대의사당에서 진행됐다. 한때 김 국방위원장이 만찬장에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나왔으나 김 위원장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별수행원 김책공대 시찰 정계·재계 인사 등 특별수행원 40명은 오후 4시 김책공대 전자도서관을 참관했다. 지난해 완공된 전자도서관은 지하 1층, 지상 5층에 1만 6500㎡ 규모로 컴퓨터 420대, 일반도서 200만권, 전자도서 1150만건이 비치돼 있어 랜선이 연결된 다른 기관에서도 컴퓨터 접속이 가능하다. 평양 남북정상회담 공동취재단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2007 남북정상회담] ‘환한 웃음→딱딱한 표정’… 왜?

    [2007 남북정상회담] ‘환한 웃음→딱딱한 표정’… 왜?

    노무현 대통령을 맞이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영접 스타일은 지난 2000년 1차 정상회담 때와는 사뭇 달랐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대하는 김 위원장의 태도가 ‘환한 웃음’으로 부각됐다면 노 대통령의 영접 태도에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일관해 대조를 보였다. 물론 순안공항과 4·25문화회관이라는 예상치 않았던 장소에서 ‘깜짝 영접’을 하고 함께 의장대를 사열한 것은 지난 1차 때와 마찬가지다. ●평양주민들도 차분해진 모습 두 정상의 첫 만남에서 김 위원장의 자세가 확연히 달라진 분위기다.1차 때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두 손을 함께 맞잡아 흔들며 거리낌 없는 반가움과 환영의 뜻을 나타낸 반면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악수할 때 딱 한마디 하고는 말이 없었다. 4·25문화회관 공식 환영식에서 노 대통령이 차에서 내려 열 걸음 정도 걸어가는 동안에도 김 위원장은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않은 채 굳은 표정으로 두 다리를 어깨 넓이로 벌린 채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었다. 의장대 사열과 평양시민들에게 답례를 보내는 의전행사 전 과정에서도 김 위원장은 굳은 얼굴을 풀지 않았다. 거리의 평양주민들도 1차 때의 환영열기와는 달리 훨씬 차분한 모습을 보였다. ●김 위원장·노대통령 차량 동승 안해 차량 의전에서도 차이가 난다.1차 때 김 위원장은 평양 순안공항에서 김 대통령과 같은 승용차에 올라타고 김 대통령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까지 이동, 주위를 놀라게 했다. 당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에게 상석(上席)인 캐딜락 승용차 뒤편 오른쪽 자리를 양보하고 자신은 왼쪽 문을 통해 김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이 때문에 이희호 여사는 두 번째 차량을 이용했다. 차안에서도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과 손을 잡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그러나 이번에는 인민문화궁전 앞에서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노 대통령을 영접한 뒤 함께 무개차에 탑승,4·25문화회관 환영식장으로 향했다. 환영식이 끝난 뒤에도 김 위원장은 1차 때와 달리 자신의 차량을 이용, 식장을 떠났고 그를 대신해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다른 차량을 타고 노 대통령의 백화원 행을 동행했다. 노 대통령 영접의 주체가 마치 김 상임위원장인 것처럼 느껴지도록 함으로써 노 대통령의 ‘격’을 다소 떨어뜨리는 듯한 인상을 자아냈다. ●정상간 회담도 없고 오찬도 ‘우리끼리´ 우리 정부는 당초 이날 백화원 영빈관에서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비공식 환담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방북 첫날 노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에는 별다른 환담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김 위원장과 헤어진 노 대통령 내외와 공식수행원은 이곳에서 ‘우리끼리’ 쓸쓸하게 오찬을 했다. 1차 때 환영식이 끝난 뒤 김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백화원 영빈관까지 승용차로 동승한 뒤 곧바로 환담을 갖는 등 첫날부터 밀도 있는 대화가 이뤄졌던과 것과 대비된다. ●김 위원장 고도의 회담 전략? 김 위원장의 태도를 보면 뭔가 정상회담에 임하는 남북 간에 ‘이견’이 있는 듯해 보인다.1차 때보다 냉정한 듯한 일련의 김 위원장의 언행은 노 대통령으로 하여금 초조감을 유도,3일 정상회담에서 유리한 합의를 이끌어내려는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상회담 상황을 자신이 주도하려는 고도의 계산된 행동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김 위원장이 원하는 그 ‘무엇’을 우리 측이 제공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때문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일종의 ‘이면 합의’처럼 ‘선물 보따리’를 가져 가야 하는데 그럴 수 없게 됨으로써 김 위원장의 심기가 불편해졌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자칫 남북간 공동선언문의 합의 도출에 먹구름이 이는 게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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