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 광우병 정국서 본 북한의 미래/구본영 논설위원
생전의 북한 김일성 주석은 “이밥(쌀밥)에 쇠고기국을 먹이겠다.”고 북한주민들에게 약속했다. 그러나 그 비원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 그의 사후에도 식량자급은 이뤄지지 않았다.
작가 황석영은 지난 1993년 펴낸 그의 방북기 ‘사람이 살고 있었네’에서 “식의주 문제는 완전히 해결됐다.”고 북한 측의 주장을 소개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님은 불문가지다. 지난 1995∼98년 ‘고난의 행군’ 기간 적게는 수십만명에서 많게는 300만명 이상이 아사했다는 추정이 나오지 않았던가. 사정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에 들어와 더 악화됐다. 지난 수년간 해마다 남측으로부터 수십만t의 식량지원을 받은 게 그 증거다.
올 들어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우리 측 인도적 지원단체들은 수많은 아사자가 나올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우려하고 있다. 이 와중에 지난달 말 뜬금없는 김정일 위원장 유고설을 접했다.
하지만, 필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구체적 팩트가 없는 첩보이어서만이 아니라 나름대로 남북관계를 취재해온 경험에 따른 직감이었다. 특히 인류 역사를 통틀어 굶주려서 망한 국가는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나 며칠 후 생각을 좀 달리하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 북한당국이 남쪽의 ‘광우병 정국’에 뛰어들면서다. 당기관지 노동신문은 “역도의 범죄적 책동에 격노한 민심은 온 남녘땅을 촛불바다로 뒤엎고…”라며 대남 공세를 폈다.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로 불붙은 촛불시위에 편승한 셈이다.
북한은 지난 2001년 유럽에 광우병이 창궐할 무렵, 독일과 스위스에 폐기할 소를 무상 원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양국은 “(북한주민이)굶주리는 것보다는 폐기 처분할 쇠고기를 먹는 게 낫다.”며 제안에 응했다. 당시 스위스와 독일에선 각각 수백마리의 광우병 소가 발견됐다. 위험성으로 말하면 북한주민들이 먹은 쇠고기는 오래 전에, 그것도 3마리만 광우병 소로 판명된 미국 쇠고기와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다행히 북한에서 단 한명의 인간광우병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광우병 공포증’이 촉발시킨 촛불집회로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광우병 정국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광우병 우려가 컸던 유럽산 쇠고기를 대량 소비했던 북한이 목소리를 낼수록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는 꼴인 까닭이다.
이런 모순되는 논리 전개가 가능한 것은 북한이 확고한 김정일 1인체제임을 웅변한다. 인터넷도, 촛불시위도 없는 사회이기에 정보 소통이나 주민 여론에 대한 통제가 가능할 게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북한사회의 급변 가능성과 그 이후의 남북관계를 걱정해야 할 진짜 이유다. 김 위원장이 언제까지고 북한의 개혁·개방을 미룰 수는 없을 터이기 때문이다. 개량이나 점진적 개혁을 거부하는 경직적 정권은 언젠가 혁명을 당해야 하는 게 역사의 법칙이 아닌가.
일사불란한 것처럼 보이는 북한이 실은 광화문을 가득 메운 촛불시위대와 맞닥뜨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보다 더 큰 위기요인을 잉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엊그제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도 한·미는 물론 중·일까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다가오듯이 북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면 그에 대한 우리의 대비도 이를수록 좋을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