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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백종원, 중국 청두 길거리 음식 비밀 파헤친다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 백종원, 중국 청두 길거리 음식 비밀 파헤친다

    군침 돋우는 백종원의 미식 방랑기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가 23일 첫 방송된다.23일 첫 방송되는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tvN과 백종원의 새 프로젝트로, 백종원이 세계 방방곡곡 숨겨진 길거리 음식을 찾아 떠나는 프로그램이다. ‘백종원의 미식 방랑기’라는 부제에서 엿볼 수 있듯 백종원이 세계 각 도시의 맛집을 소개하며 음식에 얽힌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예정. 최근 중국 청두와 홍콩, 방콕에서 촬영을 마쳤으며 tvN ‘집밥 백선생’의 박희연 PD가 연출을 맡았다. 첫 방송에서 백종원은 중국 청두의 길거리 음식을 탐방하며 매운맛의 비밀을 파헤친다. 청두는 톡 쏘는 매운맛이 특징인 중국 사천요리의 중심지인 것. 앞서 공개된 예고편에서 백종원은 “사천요리의 매운맛은 차원이 다르다”며 “매운맛의 비밀을 한번 풀어보려고 한다. 뭔가가 있다”고 말해 이날 방송에서 그가 공개할 이야기에 많은 궁금증이 집중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오늘 첫 방송하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매주 월요일 밤 시청자들의 군침을 제대로 자극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맛을 절로 상상하게 만드는 백종원의 감칠맛 나는 입담과 감각적인 영상이 어우러지며 시청자들을 빠져들게 만들 예정. 최근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박희연 PD는 “영상에도 많은 신경을 썼다. 음식 동화책을 보고 계신 것처럼 이야기와 그림이 묻어날 것”이라고 전한 바 있어 더욱 기대를 높인다. 또한 박희연 PD는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현지 길거리 음식에 녹아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시작된 프로그램”이라며 “백종원의 이야기와 영상에 빠져들다 보면 어느 순간 실제로 현지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23일 오후 11시에 방송된다. 사진=tvN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시론] 노래의 공유, 시각의 공유/윤중강 음악평론가·연출가

    [시론] 노래의 공유, 시각의 공유/윤중강 음악평론가·연출가

    다행이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 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북 합동공연이 잘 끝나서 참 다행이다.남측의 공연단이 그간 평양에서 여러 차례 공연을 했지만 늘 환대를 받은 건 아니다. 1985년 9월 고향방문단과 함께 남측 예술단이 평양에서 공연을 했을 때의 반응은 냉담했다. 당시 원로 가수 김정구는 ‘눈물 젖은 두만강’을 열창했다. 남쪽에선 ‘눈물 젖은 두만강’을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과 연결시킨다. 북쪽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북한 주민의 가난한 실상을 강조한 라디오 프로그램 ‘김삿갓 북한 방랑기’ 방송이 시작될 때면 늘 이 노래가 나왔다. 입장을 바꿔 북측에서 남측으로 내려와 공연하면서 우리(대한민국)를 자극하는 노래를 불렀으면 어땠을까. 우리도 상대의 무지와 무례에 격분했으리라. 희한하다. 노래란 게 그렇다. 같은 노래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노래의 의미가 크게 산다. 이번 평양에선 강산에가 ‘라구요’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다. 김정구의 노래에서 “두만강 푸른 물”을 가져왔으나 실향민의 부모를 등장시켜 통일을 노래했다.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공연에 강산에가 참여한 건 참 다행이다. 그의 노래 중 ‘명태’가 있다. ‘명천 사는 태서방’이 등장하고, ‘함경도 사투리’로 노래하는 부분이 있다. ‘라구요’에 이어 ‘넌 할 수 있어’도 불렀다. 강산에가 ‘선한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상대에 대한 이해와 존중으로 전해진 것 같다. 강산에는 노래했다. “세상이 너를 무릎 꿇게 하여도 당당히 네 꿈을 펼쳐 보여줘.” 우리 민족이 남북을 떠나 모두 ‘굴하지 않는 보석 같은 마음’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2005년 8월 조용필은 평양에서 ‘홀로 아리랑’을 불렀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절대 안 부르기로 유명한 ‘가왕’이지만 북측의 요구에 이 노래를 불렀고 이제는 남북이 모두 부르는 대표곡이 됐다. 이번에 최진희가 ‘뒤늦은 후회’를 부른 것도 참 잘한 일이다. 남과 북의 연결고리가 됐을 뿐 아니라 남쪽에서는 요절한 싱어송라이터 장덕의 숨겨진 노래를 새롭게 발견하는 기쁨을 경험했다. “이렇게 살아온 나에게도 잘못은 있으니까요.” 다시 들어 보니 이 가사가 마음에 파고든다. 남북은 모두 한반도의 이러한 장기적인 분단에 대해 ‘내 탓’으로 돌리진 않는다. 남북은 각각 상대의 체제로 인해서 분단이 고착화돼 가고 있다며 서로 ‘네 탓’으로 돌렸다. 이번 공연을 계기로 남북이 ‘네 탓’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안타깝다. 이번 평양 공연에 관한 언론보도에서 자주 등장하는 ‘한국 시간’이란 말이 자꾸 걸린다. 같은 한반도에 사는데 30분의 시차가 있다. 201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맞아 북한은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변경했다. 노래가 ‘상황’과 ‘해석’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듯이 ‘표준시’ 또한 그렇다. 우리 ‘대한민국’도 북한처럼 표준시를 사용한 적이 있었다. 1908년 4월 1일 대한제국이 표준시를 처음 시행할 때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했다. 그러다 조선총독부에 의해 일본 땅에 맞춘 동경 135도가 됐다. 독립 이후 이승만 정권이 127도로 바꿨으나, 박정희 정권이 1961년 다시 135도로 변경했다. 기대한다. 대한제국 표준시에 의하여, 한반도의 통일을 위하여, 표준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기대한다. 이번 공연이 한반도의 양쪽이 서로의 시각(視覺)과 시각(時刻)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뜻깊은 첫걸음으로 기록되길 바란다. “우리는 하나”를 표방한 공연이었다. 이젠 남과 북은 서로서로 사안에 따라 사이좋게 한발씩 물러나거나, 한발씩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남북 교류가 여러 장르를 통해서 더욱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그렇게 되면 남북은 이번처럼 서로 마주 보고 숨을 쉬는 것에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설 거다.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는” 기쁨을 경험하게 되길 바란다. 다행을 넘어 행복을 말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란다. ‘행복하다’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글을 하루빨리 쓰고 싶다.
  •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고전의 향연-옛 선비들의 블로그] 평생 ‘울울한 삶’을 산 지식인… 생육신으로 절개를 지키다

    생후 8개월 만에 글을 알고 세 살에 시를 짓고 다섯 살 때 ‘중용’, ‘대학’에 통달해 신동으로 불렸던 사람. 이런 기이한 재주를 세종 임금이 전해 듣고 직접 불러 시험하고 ‘뒷날 크게 쓰겠노라’ 다짐했던 사람. 그러나 평생 울분과 방랑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도 허름한 절간에서 생을 마감했던 사람. 우리 한문소설의 명편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지은 김시습(金時習·1435∼1493)이다.그가 쓸쓸한 삶을 살게 된 계기는 거듭된 가정사의 참극으로 지쳐 가던 중 접한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사건이었다. 불의의 소식을 들은 젊고 순수했던 21세 김시습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날 며칠을 통곡했다. 그러다 돌연 서책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나서 승려의 행색으로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영월로 쫓아 보낸 뒤 죽음으로 내몰았던 그의 반인륜적 행위를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전국을 방랑하던 끝자락, 경주 금오산 용장사에서 한동안 지내며 금오신화를 지었다. 그리고는 “뒷날 반드시 나, 김시습을 알아줄 자가 있으리라”면서 그 책을 석실에 감췄다. 당대 현실과 화해할 수 없던 자신의 고뇌, 그리고 한번도 펼쳐보지 못했던 자신의 꿈을 기이한 이야기에 은밀하게 담아두었음을 짐작게 하는 일화이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는 울울한 삶을 살아간 한 중세 비판적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우리는 지금 그의 바람처럼, 그의 이름과 삶을 뚜렷하게 기억한다. #산사를 전전하던 자의 자기 초상 평생 전국을 전전하며 지내던 김시습은 충청도 홍산 무량사에서 59세를 일기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런 최후는 자신이 젊은 시절 썼던 ‘금오신화’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너무도 닮았다. 소설 속 주인공들도 모두 깊은 산속으로 홀연 자취를 감춰 버리거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을 마감했는데, 김시습은 자신의 비극적 최후를 젊은 시절부터 그렇게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궁벽한 산사에 몸을 의탁하고 지내며 자신의 초라한 몰골을 직접 그림으로 그린 뒤, 거기에 다음과 같은 찬시를 적어두기도 했다. 나의 초상에 쓰다(自寫眞贊) 俯視李賀(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 볼 만큼 優於海東(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譽(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의이치지) 너를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구학지중) 이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흔히 이백을 ‘적선’(謫仙)으로 부르듯, 당나라 시인 이하는 ‘귀재’(鬼才)로 불리던 천재 시인이었다. 김시습은 찬시 첫머리에서 당시 사람들이 자신을 ‘오세 신동’으로 부르며, 그런 이하와 견주었던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아름다운 과거였다. 하지만 이하가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것처럼 그 자신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세상에 한번도 쓰이지 못한 자신의 현실에 몸서리치고 있다. 깊은 자괴, 아니 자조와 자기 경멸이 뼛속까지 배어들었다. 실제로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에는 이런 소외된 자의 울울한 심경을 담아낸 작품이 많다.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는 오로지 시밖에 없었던 셈이다. 그의 “마음이 세상살이와 어긋나기만 하니, 시를 빼놓으면 즐길 것이 없다네(心與事相反, 除詩無以娛).”라는 고백은 결코 허투가 아니었다. 불의에 영합하지 않고 평생 방외인, 곧 ‘아웃사이더’로 살아간다는 것은 혹독한 일이었다. 물론 그런 대가를 치러낸 덕분에 지금 우리는 그를 생육신(生六臣)이라는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지만.#서울로 복귀한 또 다른 삶의 면모 김시습을 기억하는 우리 대부분은 머리를 깎고 승려의 복색을 한 채, 평생 산사를 전전했던 행적만을 주목한다. 그러나 김시습은 삶의 가장 중요한 장년기에 서울의 저잣거리를 누비며 다니기도 했다. 그가 38세 때인 성종 3년(1472년) 경주에서 서울로 올라오고 나서 49세 때인 성종 14년(1483년) 다시 관동으로 떠날 때까지다. 이 12년 동안 수락산에 거처를 정해 놓고 종종 도성으로 내려와 당대 인물들과 교유했다. 어린 시절 교분이 있던 서거정, 김수온과 같은 고관대작도 만났지만, 진정 마음으로 교유한 부류는 자기보다 스무 살쯤 어린 젊은 선비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절친했던 남효온은 그런 사실을 ‘사우명행록’에서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사람들은 김시습의 행동을 위태롭게 여기고는 교유하던 자들이 모두 절교하고 왕래하지 않았다. 그러자 홀로 저잣거리의 미치광이 같은 자들과 놀다가 술에 취해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하고, 바보처럼 웃고 돌아다니기도 했다. 뒤에 설악산에 들어가기도 하고 춘천 산에서 살기도 하여 드나듦에 일정함이 없었으니 사람들이 그 종말을 알지 못했다. 그가 좋아한 사람은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그리고 나 남효온이다.” 남효온은 김시습이 영의정 정창손의 행차를 만나자 길거리에서 “너 같은 놈은 벼슬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소리쳤다는 일화를 소개한다. 모두 위태롭게 여겨 절교할 만하지만, 이정은, 우선언, 안응세, 남효온 등과는 절친하게 지냈다. 이들은 모두 20대의 젊은이들이다. 수양대군 왕위 찬탈을 용납할 수 없어 서울을 떠났던, 바로 그 혈기 왕성한 나이들이었다. 김시습은 그런 맑고 순수한 그들에게 자신이 20대 때 목도한 반인륜적인 비화를 들려줬다. 성종대의 젊은 신진사류들이 세조대의 일그러진 역사를 바로 세우려는 분투를 시작하는 결정적 계기도 생겼다. 김시습보다 스무 살 어린 남효온은 성종 9년(1497년) 스물다섯 나이에 단종의 생모인 소릉을 복위해야 한다는 상소를 올림으로써, 모두 침묵하고 있던 세조의 행태를 역사 무대 위로 끄집어냈다. 또한 역적의 이름으로 죽어간 인물들을 충절의 인물로 복권하기 위해 ‘육신전’을 짓기도 했다. 그 대가로 남효온 또한 김시습처럼 평생 전국을 떠돌며 울울한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김시습은 승려의 행색으로 산사에 숨어 살며 은둔의 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잘못된 과거를 바로 잡아 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한 시대정신을 당대 젊은이들과 함께 벼려가기도 했다. 뒷날, 선조 임금의 분부를 받아 ‘김시습전’을 지은 율곡 이이는 그런 면모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그는 절의를 세우고 윤기를 붙들어서 그의 뜻은 일월과 그 빛을 다투게 되고, 그의 풍성을 듣는 이는 나약한 사람도 용동하게 되니, ‘백세의 스승’이라 한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애석한 것은 김시습의 영특한 자질로써 학문과 실천을 갈고 쌓았더라면, 그가 이룬 것은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율곡은 김시습을 미친 자가 아니라 ‘백세의 스승’으로 마음에 간직했다. 실제로 김시습은 서울로 복귀해 지내다 환속해 머리를 기르고 결혼도 하며, 유자의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굳게 다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를 받아들여 주지 않았다. 김시습은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승려의 행색으로 관동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꼿꼿한 삶의 자세 덕분에 그가 서울을 떠났다 해도 결코 감춰질 수 없었다. 그 뒤로도 많은 지식인이 그를 추모했던 까닭이다.#마음은 유자, 자취는 불자(心儒跡佛) 율곡은 김시습의 삶을 ‘심유적불’(心儒跡佛)이라는 네 글자로 집약했다. 마음은 유자였지만, 불자의 행적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실제로 김시습은 승려 생활을 하면서도 머리는 깎았지만, 수염은 깎지 않았다. 그 이유를 “머리를 깎은 것은 세상을 피하기 위함이요, 수염을 남겨둔 것은 장부의 뜻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설명하기도 했다. 김시습은 유교와 불교의 삶을 함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교의 세계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불·도에 정통했기에 많은 사람이 그를 다양한 사유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 자유인으로 치켜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김시습의 그런 삶은 그 어디에도 심신을 잠시도 누이지 못했던, 극심한 방황의 흔적으로 읽는 게 올바른 독법일 것이다. 정출헌 한국고전번역원 밀양분원장·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매월당집’은 김시습 사후 이자가 첫 유고 수집…선조의 명으로 총 23권 9책 발간 남효온은 ‘사우명행록’에서 “그가 지은 시문은 수만 편이 되는데,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바람에 거의 모두 흩어져 없어졌다. 조정의 신하들과 선배들이 혹 그의 글을 절취해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하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작품을 도적질해 갔던 것이다. 실제로 김시습의 시문을 그의 사후, 그를 존중하던 이자가 중종 16년(1521년) 여기저기 흩어진 유고를 수습해 겨우 3권으로 묶을 수 있었다. 그 뒤에도 박상, 윤춘년 등이 꾸준히 모아 가며 정식 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 그 매월당집은 사라지고 없다. 지금 전해지는 매월당집은 선조 16년(1583년) 임금의 명을 받아 경진자 활자로 간행한 중간본이다. 분량은 총 23권 9책으로, 시집이 15권이고 문집이 8권이다. 매월당집 서두에는 이산해가 쓴 서문과 이이가 쓴 ‘김시습전’이 실렸다. 1927년 후손이 김시습 관련 기록을 부록으로 덧붙여 신활자로 간행하기도 했다. 1979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5책으로 번역·출간했다.
  • “한국엔 젊은 클래식 관객 많아 무척 인상적”

    “한국엔 젊은 클래식 관객 많아 무척 인상적”

    “유럽은 클래식 관객이 주로 노년층인데, 한국에는 젊은 클래식 관객이 많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올해는 한국 음악가들과 우정을 만들고 그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노래하는 인문학자’라 불리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4)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돼 올해 국내에서 7번의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향은 매년 세계 정상급 음악가를 초청해 그 음악 세계를 조명하는 ‘올해의 음악가’ 제도를 올해 신설했다. 리트(독일 가곡)의 대가이자 슈베르트 전문가인 보스트리지는 2004년 첫 내한 공연 이후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며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보스트리지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관객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다른 두 나라가 음악을 통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보스트리지의 음악은 지적이고 학구적이라는 평을 받는데, 이는 그의 독특한 이력과도 관련 있다. 옥스퍼드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철학과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그는 당대 최고의 리트 전문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권유로 20대 중반부터 성악을 배우기 시작, 29살이 돼서야 데뷔했다. 데뷔는 남들보다 한참 늦었지만, 오랫동안 품어 왔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깊이 있는 해석은 아름다운 목소리와 만나면서 곧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6년에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로, 1998년에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그라모폰 베스트 솔로 보컬상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워너 클래식에서 발매한 ‘셰익스피어의 노래’로 그래미상 베스트 클래식 솔로 보컬 앨범에 뽑혔다. 보스트리지는 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실내악 공연에서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일부와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말러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을 선보인다. 보스트리지는 “슈베르트가 베토벤에게 큰 영감을 받게 된 ‘멀리 있는 연인에게’와 베토벤이 죽은 다음해 슈베르트가 발표한 ‘백조의 노래’를 한 무대에 준비해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연결 고리를 잘 보여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는 10~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8 올해의 음악가 이언 보스트리지’ 무대에서 브리튼의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을 국내에 처음 올린다. 셰익스피어와 셸리, 테니슨 등 영국 작가들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으로, 영국 클래식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월 6~7일에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 11월 17~18일는 ‘오스모 벤스케와 이언 보스트리지’ 무대가 예정돼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한국엔 젊은 클래식 관객 많아 무척 인상적”

    “한국엔 젊은 클래식 관객 많아 무척 인상적”

    ‘노래하는 인문학자’ 이언 보스트리지 서울시향 첫 ‘올해의 음악가’ 내한 “유럽은 클래식 관객이 주로 노년층인데, 한국에는 젊은 클래식 관객이 많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올해는 한국 음악가들과 우정을 만들고 그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노래하는 인문학자’로 불리는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4)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올해의 음악가’로 선정돼 올해 국내에서 7번의 무대에 오른다. 서울시향은 매년 세계 정상급 음악가를 초청해 그 음악 세계를 조명하는 ‘올해의 음악가’ 제도를 올해 신설했다. 리트(독일 가곡)의 대가이자 슈베르트 전문가인 보스트리지는 2004년 첫 내한 공연 이후 꾸준히 한국을 방문하며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형성하고 있다. 보스트리지는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관객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게 돼 무척 기쁘다”면서 “멀리 떨어져 있고 문화적으로도 다른 두 나라가 음악을 통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보스트리지의 음악은 지적이고 학구적이라는 평을 받는데, 이는 그의 독특한 이력과도 관련 있다. 옥스퍼드대와 스탠퍼드대에서 철학과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옥스퍼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던 그는 당대 최고의 리트 전문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의 권유로 20대 중반부터 성악을 배우기 시작, 29살이 돼서야 데뷔했다. 데뷔는 남들보다 한참 늦었지만, 오랫동안 품어 왔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깊이 있는 해석은 아름다운 목소리와 만나면서 곧바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1996년에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로, 1998년에는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그라모폰 베스트 솔로 보컬상을 받았으며, 지난해에는 워너 클래식에서 발매한 ‘셰익스피어의 노래’로 그래미상 베스트 클래식 솔로 보컬 앨범에 뽑혔다. 보스트리지는 6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서울시향 실내악 공연에서 슈베르트의 ‘백조의 노래’ 중 일부와 베토벤의 ‘멀리 있는 연인에게’, 말러의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등을 선보인다. 보스트리지는 “슈베르트가 베토벤에게 큰 영감을 받게 된 ‘멀리 있는 연인에게’와 베토벤이 죽은 다음해 슈베르트가 발표한 ‘백조의 노래’를 한 무대에 준비해 슈베르트와 베토벤의 연결 고리를 잘 보여 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는 10~1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18 올해의 음악가 이언 보스트리지’ 무대에서 브리튼의 ‘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녹턴’을 국내에 처음 올린다. 셰익스피어와 셸리, 테니슨 등 영국 작가들의 시에 곡을 붙인 작품으로, 영국 클래식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7월 6~7일에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 11월 17~18일는 ‘오스모 벤스케와 이언 보스트리지’ 무대가 예정돼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양정철 “靑, 지지율 보지 않고 뚜벅뚜벅 갔으면…”

    양정철 “靑, 지지율 보지 않고 뚜벅뚜벅 갔으면…”

    ‘세상을 바꾸는 언어’ 북콘서트 “2월 이후 국내 떠나 외국서 공부”문재인 대통령의 ‘복심’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 비서관이 30일 저서 ‘세상을 바꾸는 언어’의 북콘서트에서 “청와대 계신 분들이 국민을 보고, 멀리 보고 가야 한다”며 “지지율 보지 않고 당당하게 신념 있게 뚜벅뚜벅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남은 4년은 방랑자이지만 대통령 퇴임 후에는 전직 대통령 비서관을 찜해 두었다”고도 했다. 양 전 비서관의 북콘서트는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빌딩에서 두 시간 동안 진행됐다. 350석의 객석은 예약 독자로 꽉 찼다. 문 대통령 당선 이후 뉴질랜드와 일본, 미국 등을 떠돌다 지난 17일 한국으로 돌아온 양 전 비서관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첫 자리다. 양 전 비서관은 “이 책의 뜨거운 반응은 저에 대한 찬사가 전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아마도 문 대통령 옆에서 고생한 친구가 책 쓰고 좀더 힘내라는 정도로 긍휼히 여기시는 것”이라고 말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제가 출마할 일도 없고 정치할 일도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2월까지는 한국에 있고 (이후엔) 외국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대통령과도 떨어져 있고 싶고 권력과도 거리를 두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가 끝나고 나면 불필요한 저의 복귀설, 역할설 이런 게 잦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양 전 비서관은 책의 내용이 2012년 대선 패배 이후 지방의 한 대학에서 글쓰기 수업을 하며 준비한 수업 노트 내용이라고 했다. 그는 “아이들을 보면서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책임을 느끼고 힘을 많이 찾았다”고 말했다. ‘양비’로 불리는 양 전 비서관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공식적 직책을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북콘서트에는 서울시장 출마를 준비하는 더불어민주당 민병두·박영선 의원과 김병기 의원, 양향자 최고위원도 참석했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도 참석해 “타지에 있다 보면 아프면 서러우니 낙관주의와 건강을 부탁드린다. 몸 잘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2차 북콘서트는 다음달 6일 열린다. ‘3철’로 불리며 경기도지사에 도전하는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이호철 전 민정수석이 참석한다고 알려졌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문화마당] 아무튼, 하루쯤 방랑/강의모 방송작가

    [문화마당] 아무튼, 하루쯤 방랑/강의모 방송작가

    새해 첫 트레킹으로 낙동정맥트레일을 걸었다.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후배와 미리 잡은 날인데 하필 올해 들어 최저기온이라 했다. 보온 속옷 두 겹에 방풍방한 외투까지 네댓 벌 옷을 껴입으니 모습이 영락없는 두 마리 곰이었다. 서로 손가락질을 하며 한바탕 웃고는 비장한 각오를 품고 어두운 새벽에 시동을 걸었다. 그런데 몇 시간을 달려 막상 출발 지점에 내리고 보니 따스한 햇살이 체감온도를 누그러뜨리고 무엇보다 바람이 없어 청명한 공기가 시원하기까지 했다. 길의 표정은 계절마다 참 많이 다르다. 이른 봄에 걸을 땐 낙동강 상류의 청청한 물빛이 눈을 시리게 하더니, 꽁꽁 얼어 잔설이 덮인 강은 동화 속 풍경처럼 고즈넉했다. 기찻길과 나란한 좁은 길과 이어진 능선의 숲길은 길고도 긴데, 풍경을 즐기며 타박타박 걷다 보니 그야말로 무념무상! 추위 따윈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동글동글한 돌을 골라 빙판에 던지면 ‘돌도르르’ 굴러가는 소리에 귀가 즐거웠다. 두꺼운 얼음장 위를 뛰어다니며 신나게 미끄럼을 타기도 했다.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그때 겨울은 더 추웠다. 앞마당에 묻은 동치미는 늘 살얼음에 덮여 있었고, 논바닥이나 개울가 스케이트장은 겨울이 끝날 때까지 녹지 않았으니, 방학 땐 아침마다 엄마 눈치를 살피며 스케이트장 입장료 타낼 궁리에 바빴다. 말하자면 그 시절의 추위는 피하는 게 아니라 즐겨야 하는 것이었다. 영동선을 따르는 길의 매력은 양원역 대합실에도 숨어 있다. ‘한반도 최고 오지에 마을 주민들이 만든 최초의 초미니 민자역사’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곳. 문을 밀고 들어가니 뜨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무쇠 난로를 중심으로 할머니 예닐곱 분이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고 계셨다. 대합실이라기보다 동네 경로당인 셈이다. 추운 날 왜 돌아다니느냐며 혀를 차시는 할머니에게 과자를 꺼내 드렸다. 쉬었다 가라고 손을 꼭 잡는 할머니와 고구마나 구워 먹으며 도란도란 하루를 보내도 좋겠다는 생각을 간신히 떨쳐 내고 다시 언 길로 나섰다. 그렇게 쉬다, 놀다, 지나는 기차에 신나게 손을 흔들며 걷다 보니 승부역에 닿았다. 뜨거운 어묵과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기차를 탔다. 세 시간 넘게 걸은 길이 기차론 겨우 10여분이었다. 빠른 길과 느린 길, 속도에 길든 삶과 시간을 비켜 서서 나를 들여다보는 느린 삶을 생각했다. 영화 ‘와일드’가 떠올랐다. 5285㎞, 멀고도 긴 길을 홀로 걸으며 삶의 고통과 상처를 이겨 내는 주인공은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질리도록 듣던 말을 기억해 낸다. ‘일출과 일몰은 매일 있는 거란다.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 아름다움 속으로 언제든 들어갈 수 있단다.’ 조지프 캠벨은 ‘신화와 인생’에서 이렇게 말했다. “방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비록 ‘와일드’의 그녀처럼 대장정을 떠날 순 없지만, 단 하루라도 자연 속에서 느린 호흡을 맞추며 일상의 피로를 조금씩 덜어 낼 수 있음에 나는 만족한다. 겨울은 특히 방랑하기 좋은 시간이다. 헐벗은 자연을 보면서 마음을 비울 수 있으니. 또 빈 가지를 흔드는 낙엽송 사이사이 청청한 상록수를 보며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으니. 그리고 어느새 눈을 틔우는 나뭇가지를 보며 새로운 봄을 꿈꿀 수 있으니.
  • [아하! 우주] ‘자전 주기’가 변하는 혜성도 있다

    [아하! 우주] ‘자전 주기’가 변하는 혜성도 있다

    천체의 자전 주기는 보통 일정하다. 그래서 지구 역시 하루의 길이가 일정하다. 하지만 천체의 자전 주기도 변할 수 있다. 사실 지구의 경우 과거에는 지금보다 자전 속도가 빨라 하루의 길이가 짧았고 현재도 달과의 중력 상호작용으로 자전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있다. 다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려 우리가 잘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태양계에는 훨씬 빨리 자전 주기가 변하는 천체들이 있다. '41P/Tuttle–Giacobini–Kresák' 혹은 약자로 41P는 지름 1.4km 정도의 작은 혜성이다. 대략 5.4년 주기로 태양을 공전하는데, 어두운 혜성이라 지구 가까이 와도 망원경 없이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사실 인지도가 낮은 혜성이지만, 작년에 이 혜성을 관측한 과학자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혜성의 자전 주기가 갑자기 두 배 이상 늘어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경 지구에 가까워질 때 41P의 자전 주기는 20시간 정도였다. 그런데 미 항공우주국(NASA)의 스위프트 위성이 5월 7일에서 9일 사이 이 혜성을 관측한 결과 놀랍게도 두 달이 채 안 되는 동안 자전 주기가 46-60시간 정도로 늘어난 것이 관측되었다. 과거에도 자전 주기가 바뀌는 혜성은 알려져 있으나 이렇게 빨리 자전 주기가 바뀐 혜성은 처음이기 때문에 이는 과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혜성의 자전 주기가 바뀌는 것은 혜성의 상대적으로 작은 질량과 혜성에서 분출하는 가스와 먼지 때문이다. 태양에 가까워진 혜성에서 분출되는 가스는 모든 방향으로 균일하게 배출되는 것이 아니라 약한 부분을 뚫고 분출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분출된 가스와 먼지의 방향, 질량, 속도 등이 혜성의 자전 속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 경우에는 브레이크로 작용한 셈이다. 과학자들은 41P의 자전 주기가 100시간까지도 늘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 가정이 옳다면 혜성 41P의 하루는 20시간에서 100시간 정도로 매우 다양한 셈이다. 태양계는 사실 우리 은하에 있는 수많이 존재하는 평범한 별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 태양계에는 특별한 사연을 가진 천체들이 많다. 태양계를 방랑하는 혜성 역시 자신만의 스토리를 지닌 독특한 존재들이다. 동시에 혜성에는 태양계 역사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된다. 태양계 초기의 물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혜성이 지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연구가 계속될 것이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미운우리새끼’ 김건모♥ 마야, 올해 43세...? 근황 사진 봤더니

    ‘미운우리새끼’ 김건모♥ 마야, 올해 43세...? 근황 사진 봤더니

    ‘미운우리새끼’ 김건모와 마야의 러브라인이 그려지면서, 마야의 근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4일 전날 밤 방송된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에서 가수 태진아는 김건모 장가보내기에 도움을 자청, 가수 마야(43·김영숙)와 전화 통화를 시켜줬다. 이날 마야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우리 대장(태진아)이 자꾸 박애 정신이 생기나 보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이날 방송에 함께 출연한 태진아, 김흥국, 김무송 등이 마야와 김건모의 소개팅을 추진하려는 모습이 그려지면서 마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마야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근황을 공개하기도 했다.지난달 15일 마야는 “길 위에서 삶을 찾는다. 행복 유랑자. 방랑 마야.”라는 문구와 함께 자신의 셀카를 올렸다. 사진 속 마야는 검은 티셔츠를 입은 채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마야의 상징이기도 한 짧은 머리와 매력적인 보조개가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편 지난 2003년 스물아홉 살의 나이에 데뷔한 마야는 올해로 43세가 됐다. 그는 히트곡 ‘진달래꽃’, ‘아래로’, ‘못다 핀 꽃 한 송이’, ‘나를 외치다’, ‘쿨하게’ 등을 부르며 큰 인기를 얻었다. 또 드라마 ‘보디가드’, ‘가문의 영광’, ‘민들레 가족’, ‘대왕의 꿈’, ‘못난이 주의보’ 등에 출연해 연기자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마야는 2013년 앨범 ‘우연이라도 만나지 않기를’ 발매 이후 활동이 뜸해져 팬들의 아쉬움을 샀다. 사진=마야 인스타그램 연예팀 seoulen@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우습지 않았던 인생

    어렸을 때 텔레비전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쟈니 윤 쇼’라는 방송을 했다. 그때까지 내게 코미디란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그런 표정을 짓는 것에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쟈니 윤의 코미디는 전혀 다른 식이었다. 게다가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가서 미국사람들을 대상으로 코미디를 했다고 하니 더욱 대단한 사람처럼 보였다.사사로운 자리에서 그를 직접 만난 일이 있다. 나는 그가 심형래를 능가하는 최고의 코미디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실제로 만난다면 그 얼굴을 보자마자 인사도 하기 전에 웃음부터 날 것 같아 긴장했다. 하지만 내 우려는 완전히 빗나갔다. 쟈니 윤은 우스운 사람이 아니었다. 양복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는 시종일관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를 살짝 머금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가 보일 정도로 웃는 일은 없었다. 그는 행동이 무척 신사적인 사람이었고 기대와는 달리 말하는 내내 가벼운 농담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날 이전까지 내 머릿속에 있던 쟈니 윤의 이미지는 완전히 지워졌다. 여전히 나는 그의 본 모습을 코미디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방송인으로서 그는 우스운 연기를 하지만, 실제 쟈니 윤은 로버트 드니로처럼 멋진 신사라고 믿는다. 그 만남이 있은 후부터 나는 쟈니 윤이 한 시대를 풍미한 명배우 찰리 채플린 같다는 느낌을 가지게 됐다.찰리 채플린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왜소한 체격에 허름한 양복, 윗옷은 자기 치수보다 작아 꽉 끼지만 바지는 헐렁하다. 커다랗고 다 낡아빠진 구두는 발에 매달려 있는 수준이라 걸을 때면 오리처럼 뒤뚱거린다. 우스운 차림이지만 대나무 지팡이까지 있어서 신사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춘 모습이다. 채플린은 매번 똑같은 차림으로 영화에 출연했고 그가 맡은 배역은 언제나 말썽을 몰고 다니는 떠돌이 방랑자 역할이었다.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많이 웃었고, 또 감동도 받았다. 하지만 채플린이 죽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그렇게 전 세계를 웃겼던 사람의 삶이 실은 전혀 즐겁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많은 사람의 증언을 보더라도 영화 밖의 채플린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다. 채플린과 비슷한 시기에 무성영화에 출연한 배우로 대단한 인기를 끌었던 버스터 키튼은 경쟁자였던 채플린을 이렇게 회상한다. “사실 그가 가장 우습지 않을 때는 영화를 제작할 때이다. 차분하고 냉정하고 명석하고 면밀한 그의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나비의 날개를 다루는 곤충 채집가의 꼼꼼함에 비견된다.” 세상에서 가장 우스운 사람 채플린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서 정작 자신은 가장 우습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던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채플린은 영화에 있어서만큼은 모든 것을 자신이 직접 해내고야 마는 완벽함을 추구했다. 배우 섭외에서부터 촬영, 연기지도, 시나리오 작성, 필름 편집은 물론 나중에는 영화에 들어갈 음악까지 독학으로 공부해 직접 작곡했다. 영화 산업이 발전하면서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촬영장에 의무적으로 분장사를 고용해야 했을 때도 특유의 ‘떠돌이 찰리’ 분장은 언제나 스스로 했다. 이 놀라운 인간은 자서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썼다. 보통 유명인들의 자서전인 경우 전문 작가의 도움을 받으며 쓰는 일이 많은데 채플린은 삶의 후반기 여러 해 동안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을 직접 썼다. 우리말로 번역된 책만 해도 본문 분량이 1000쪽이 넘어가는 책이다.워낙 다채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 관한 평전이나 연구서도 꽤 많다. 그런데 그중에서 분량이 비교적 적은 책 한 권이 눈길을 끈다. 제목은 ‘나의 아버지 채플린’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판본은 중앙신서에서 문고본 시리즈로 펴낸 작은 책이다. 서지를 보니 1978년에 초판을 낸 이래 1981년까지 다섯 번을 더 찍었으니 나름 잘 팔린 책이다. 제목으로 미루어 보아 글을 쓴 사람은 찰리 채플린의 아들인 것이 분명하니 더욱 인기를 끌었을 것이 분명하다. 평론가나 전문 작가보다 아들의 위치는 채플린과 더욱 가깝다. 그래서 이 책에는 좀더 인간적인 면이 많이 드러나 있다. 책의 저자는 찰리 채플린의 두 번째 아내인 리타 그레이의 아들인 ‘찰스 스펜서 채플린 주니어’인데 채플린은 그 자신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들의 이름을 지어주었을 정도로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리타 그레이와의 결혼 생활은 오래가지 못해 자녀를 본 직후인 1927년에 이혼했다. 아내와 함께했던 날은 만 3년뿐이었지만 자녀들과는 이후로도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함께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채플린과 지낼 수 있었기 때문에 채플린 주니어는 바로 이 책 ‘나의 아버지 채플린’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들은 채플린이 ‘키드’, ‘모던 타임즈’, ‘독재자’를 만들 때 작업장에 함께 있었다. 이 때문에 배우이자 감독 그리고 연기 지도자였던 채플린을 누구보다 생생한 모습으로 책에 그려 내고 있다. 채플린은 믿음이 가지 않는 사람에게는 일을 맡기지 않았고 모든 걸 직접 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지만 한번 믿음을 준 사람에겐 모든 걸 맡겼다. 책 속에는 채플린의 집에서 일하던 세 일본인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들은 각각 집사, 운전사 그리고 요리사였는데 꼼꼼한 채플린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있었기에 큰 신뢰를 얻었다. 진주만 공습의 여파로 집에 일본인을 두지 못하게 됐을 때도 채플린은 이들에게 때마다 봉급을 줬다. 재미있는 일화도 꽤 있다. 채플린은 미국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히트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공로로 아카데미 특별상 수상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는 수상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신의 영화를 전문가 몇 명이 평가해서 상을 수여하는 것에 반감이 있던 것이다. 채플린은 평론가들의 의견보다는 더 많은 영화팬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고 웃어 주는 게 더 값지다며 상을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는 수 없이 아카데미 특별상 트로피는 채플린의 집으로 배달됐고 그는 한동안 이 ‘물건’을 문이 닫히지 않도록 틈에 고정해 두는 도구로 사용했다. 떠돌이 방랑자 캐릭터가 워낙 세계적인 인기를 끌다 보니 여기저기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도 많이 열렸던 모양이다. 채플린은 미국의 한 동네에서 열린 닮은꼴 경연대회에 신분을 숨긴 채 본인이 직접 참가했던 일이 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재미있게도 본인이 직접 참가한 채플린 흉내 내기 경연대회에서 진짜 채플린은 3등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아들이 쓴 책에 따르면 아버지로부터 경연대회 결과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외모가 닮았다는 이유로 나치가 정권을 잡았던 독일에서는 채플린의 영화가 상영금지되었던 때가 있다. 히틀러와 채플린은 외모도 닮았지만 같은 해, 같은 달에 태어났다는 점 때문에 당대뿐 아니라 후대에도 두 사람의 운명에 관한 숱한 이야기가 양산됐다. 완전히 다른 방향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전 세계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 인물로 성장한 것도 같다. 나중에 채플린은 아예 히틀러와 똑같은 분장을 하고 그의 연설 장면을 흉내 낸 영화 ‘독재자’를 만들어서 크게 히트시켰다. 이처럼 아들이었기 때문에 좀더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채플린의 여러 모습이 이 작은 책에 고스란히 들어 있다. 하지만 아들이 쓴 책의 마지막 장은 채플린이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인 우나 오닐과 결혼해 스위스에 정착한 것에서 멈췄다. 이때 채플린은 방대한 자서전의 첫 부분을 쓰고 있었다. 얘기가 이렇게 끝난 것은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 채플린’은 1960년 롱맨출판사에서 처음으로 출판됐고 채플린 주니어는 1968년에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떠돌이 찰리 채플린은 1974년에 자서전 ‘My Life in Pictures’를 펴냈고 1977년 12월 25일 성탄절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배우가 죽었을 때 영국 신문 가디언지는 그를 추모하며 다음과 같은 기사를 내보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이광식의 문화유랑기] ‘역대급 기인’ 공초 오상순

    2004년에 방영된 EBS 드라마 ‘명동백작’은 50~60년대 서울 명동에 모여든 문인, 예술가들의 생활사를 그린 24부작 드라마로, 말하자면 6·25 직후 한국의 문화사라 할 수 있다. 전후에 문인, 예술가들이 왜 그리 명동바닥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지 이유를 몰랐던 이들도 이 드라마를 보면 비로소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리라. 당시에는 전화가 고가품이었다. 갑부급이 아니면 꿈도 꾸지 못할 물건인지라 문인, 예술가들은 명동의 다방이나 술집을 아지트로 삼아, 거기서 원고청탁도 받고 창작 얘기도 나누었던 것이다.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들도 오후 3시쯤 되면 다방으로 전화를 걸거나 아니면 직접 명동 바닥을 뒤지고 다니며 필자를 만나 원고를 청탁하고, 고료 역시 그 자리에서 건네지곤 했다. 그러니 너 나 할 것 없이 가난하던 문인들은 그 돈으로 우루루 술집으로 몰려가 권커니 잣거니하며 토론과 담론으로 밤을 지새웠던 것이다. 그러한 문인들 중에 명동을 특히 사랑하던 소설가 이봉구가 바로 명동백작이란 별명으로 불리었다. 보통 명동에 모여드는 문인, 예술가들은 소설가와 시인, 극작가, 무용가, 가수, 배우 등 수백 명은 좋이 되었고, 그중에는 한국문화계를 이끌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즐비했다. 모나리자 다방, 은성주점 같은 곳이 주요 집결지였는데, 이를 무대로 오상순, 서정주, 김수영, 박인환, 김관식, 전혜린, 이중섭, 이해랑, 김백봉 등등이 날이면 날마다 얼굴을 맞대고 담소를 나누었다.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은 술자리에서 지어진 것으로, 마침 작곡을 하는 김진섭이 그 자리에서 곡을 붙이고, 역시 자리를 같이하던 나애심이 노래를 불러 유명하게 되었다는 얘기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박인환은 술에 취하면 술잔을 높이 들고 에디뜨 삐아프의 ‘사랑을 찬가’를 불러대곤 했다. “캄캄한 어둠에 싸이고 세상이 뒤바뀐다 해도 그대가 날 사랑하면 무슨 상관 있으리요”라면서 말이다. 이처럼 로맨티스트였던 박인환과 모던니스트 김수영은 절친이었지만, 기질적으로는 상극이었던 모양이다. 박인환은 김수영에게서 우정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강고한 김수영은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 30살에 심장마비로 절명. 김수영은 그보다 10여 년 더 살다가 교통사고로 사망. 어쨌거나 명동에 모여드는 수많은 문인, 예술가 중 역대급 기인을 꼽자면 단연 승려 출신의 시인 오상순(1894∼1963)이다. 잠자는 시간 외에는 담배를 입에 떼지 않았다는 가공스런 체인스모커. 호는 공초(空超). 우리는 한때 문학사를 배우면서 오상순 호가 꽁초에서 나왔으리라 짐작했다. 근데 알고 보니 골초에서 따온 거란다. “술이라 하면 수주(변영로)를 뛰어넘을 자가 없고 담배라 하면 공초를 뛰어넘을 자가 없다”는 말이 한때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라니 알아줄 만하다. 공초는 원래 기독교였는데 나중에 불교로 개종했다. 일본 도시샤 대학 종교학과를 졸업하였다니 당시로서는 드물게 가방끈이 길었음에도 어떤 자리도 맡지 않고 명동 다방에서 담배와 문학에만 정진했다니, 기인이 아닐 수 없다. 평생을 무소유로 살아 생전에 시집 한 권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이봉구가 다방에 앉아 있는 공초를 보니, 웬일인지 담배를 피우지 않고 멀근히 있었다. “아니, 선생님, 왜 담배를 안 피우시죠? 끊으셨습니까?” “끊기는…차라리 목숨을 끊지.” “아, 돈이 떨어지셨군요?” “돈이란 게 늘 떨어지는 것이지.” 이봉구는 얼른 나가 담배 한 보루를 사와 선생에게 건넨다. 공초는 늘 그런 식으로 담배를 이어갔다. 죽을 때도 조계사의 허룸한 헛간방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1963년 제자들에 의해 ‘공초오상순시집’이 간행되었다. 유해는 수유리 북한산 등산길 옆에 안장되었는데, 묘 앞 시비에는 그의 ‘방랑의 마음’ 첫머리가 새겨져 있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오, 흐름 위에/ 보금자리 친/ 나의 혼(魂)’ 이광식 칼럼니스트 joand999@naver.com
  • 김삿갓이 머물던 화순… 방랑자 잡는 국화 향연

    김삿갓이 머물던 화순… 방랑자 잡는 국화 향연

    “아늑한 공원에서 펼쳐지는 화순 국화향연에서 마음껏 힐링하세요.” 전남 화순군은 27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화순읍 남산공원에서 ‘김삿갓이 머문 국화동산으로! 산 너머 국화밭 가는 길’이라는 주제로 ‘화순 국화향연’이 열린다고 26일 밝혔다.남산공원의 지형과 지물을 이용해 가꾼 아늑한 힐링정원에서 핀 형형색색의 50만 포기의 국화는 향기와 색깔에 흠뻑 취하게 한다. 억새, 목화, 수수, 코스모스, 해바라기와 어우러진 풍경은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장관을 연출한다. 올해 군 대표 축제로 격상돼 축제장 규모도 5㏊로 확대했다. 여느 때보다 볼거리와 먹거리, 체험 프로그램이 풍성해졌다. 주민들의 소박하고 진솔한 일상생활상을 묘사한 성안 벽화마을과 문화관광형 고인돌 전통시장과 연계해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새롭게 선보인다. 남산공원 남문~성당 앞 가로수길에 특수 조명빛을 이용한 ‘국화夜(야) 거리’가 조성됐다. 매주 토~일요일 관광객과 함께하는 춤, 연극, 마임, 요들송 숲속음악회, 마술 등 프린지 공연도 펼쳐진다. 국화향연은 밤 10시까지 운영돼 은은하면서도 특별한 조명과 거리 공연 등이 곁들여지며 늦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게 해준다.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을 형상화한 고인돌 게이트와 핑매바위, 공룡, 운주사 석탑도 발길을 잡는다. 복숭아, 파프리카 등 농특산물 조형물 435점이 국화동산 탐방로 주변에 테마별로 배치돼 볼거리를 더한다. 전국 사진촬영대회와 시 낭송 대회, 서울팝스오케스트라 공연 등과 병장기 놀이 체험, 김삿갓 방랑 체험 등의 프로그램도 있다. 개막일 오후 7시 특설무대에서는 김연자, 조항조, 김용임 등 인기가수 10여명이 출연해 축하공연을 한다. 구충곤 화순군수는 “국화향연은 들국화처럼 소박하고 순수한 화순 사람들의 정성 집약체”라며 “군민들의 땀과 열정의 산물인 향토 축제장은 깊어가는 가을에 푹 빠지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화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물들어 볼까 더 늦기 전에

    물들어 볼까 더 늦기 전에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만추여행’을 테마로 11월에 가볼 만한 곳을 선정했다. 낙엽 밟으며 걸을 수 있는 명소들이다.서울 아차산, 울긋불긋 단풍… 파노라마 전망 아차산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도심 속 단풍 여행지다. 야트막하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누구나 오르기 쉽다. 어떤 코스든 느릿하게 걸어도 정상까지 40~50분이면 충분하다. 등산로에 야자 매트가 깔려 걷기도 수월하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감탄의 연속이다. 고구려 건축 양식을 본뜬 고구려정, 해맞이광장, 아차산5보루 등 전망 좋은 곳이 늘어서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아차산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전망 포인트에 서면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고층 건물이 빼곡한 시가지 전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차산생태공원과 단풍 명소인 워커힐로를 함께 둘러봐도 반나절이면 충분하다. 여기에 구리시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유네스코 세계유산 동구릉을 포함하면 하루 코스가 완성된다. 광진구 문화체육과 (02)450-1320.한탄강벼룻길, 낙엽 따라 걷는 자연사 시간 여행 한탄강 주변으로 용암이 만든 검은 현무암의 세계가 펼쳐져 있다. 경기 포천시 등에서 한탄강 일대의 독특한 자연과 주민들의 문화를 엮는 지질트레일을 조성 중이다. 총 4개 코스 가운데 현재 개통된 곳은 1코스 ‘한탄강벼룻길’이다. 부소천협곡에서 멍우리협곡을 지나 비둘기낭폭포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6.2㎞. 길이 순해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한탄강벼룻길은 특히 늦가을에 낙엽을 밟으며 걷는 맛이 각별하다. 낙엽과 현무암 절벽, 그리고 에메랄드빛 폭포가 어우러진 비둘기낭의 자태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황금빛 협곡이 굽이치는 강물을 따라 4㎞ 넘게 뻗은 멍우리협곡과 구름다리로 계곡이 이어진 부소천 협곡도 인상적이다. 가을을 더 느끼고 싶다면 명성산에 오르면 된다. 은빛으로 물결 치는 억새의 바다와 만날 수 있다. 포천시 문화체육과 (031)538-3027.노추산 모정탑길, 어머니 마음 닮은 붉은 돌탑길 노추산은 여느 단풍명소처럼 북적이지 않아 사색을 즐기며 가을을 만끽하기에 맞춤한 곳이다. 어머니의 마음을 떠올리게 하는 모정탑길도 있다. 3000여 기에 달하는 돌탑들이 산정 언저리까지 늘어선 길이다. 돌탑은 고 차순옥 할머니가 2011년 모진 삶을 마감할 때까지 무려 26년 동안 쌓아올린 것이다. 규모도 방대하지만, 돌탑 하나하나에 깃든 모정이 더욱 심금을 울린다. 낙엽 밟으며 모정탑길을 걷다 보면 가을이 가슴 속으로 들어온다. 노추산 정상에 오르면 파도처럼 물결치는 산세가 들어온다. 자연과 어머니의 넉넉함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구름이 손끝에 닿을 것 같은 안반데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고, 커피커퍼커피박물관에서 향긋한 커피 한잔 기울이는 것도 좋겠다. 솔향 가득한 강릉솔향수목원도 빼놓을 수 없다. 강릉시종합관광안내소 (033)640-4414.보은 세조길, 속세 넘어 왕이 거닐던 길 뚜벅뚜벅 속리산은 고운 최치원의 ‘산은 사람을 떠나지 않는데 사람이 산을 떠나는구나’(山非離俗 俗離山)라는 시가 전해 오는 명산이다. 속리산의 산세는 한마디로 기골이 장대하다. 최고봉인 천왕봉, 문장대 등 장대한 바위가 솟구쳤다. 그 험준한 산세가 유순한 길을 품었다. 그게 ‘세조길’이다. 조선 7대 임금 세조가 요양 차 복천암에 온 역사적 사실에 착안해 붙인 이름이다. 세조길은 법주사 매표소부터 세심정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거리는 2.5㎞ 정도다. 왕복 5㎞에 달하는 산길이지만 급한 오르막이 없어 산책하듯 설렁설렁 다녀올 수 있다. 거리가 짧다고 생각되면 오리숲길과 세조길을 함께 걷고, 이어 복천암과 비로산장을 둘러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인근에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이 있다. 동학농민군이 최후를 맞은 북실 전투를 기리는 곳이다. 속리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 (043)542-5267.순창 강천산, 고추장보다 더 빨간 단풍 전북 순창의 가을은 고추장 빛깔로 물든다. 단풍 명소인 강천산은 왕복 5㎞의 맨발산책로만 걸어도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길이 평탄해 아이들이나 어르신, 유모차나 휠체어 이용자 등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맨발산책로에서 만나는 병풍폭포, 구장군폭포는 산수화처럼 아름답다. 강천사, 삼인대, 수령 300년 넘은 모과나무도 꼼꼼하게 챙겨 보자. 강천산의 랜드마크인 현수교(구름다리)도 잊지 말고 올라야 한다. 강천산 일대는 물론 멀리 담양의 금성산성까지 보인다. 강천산 초입의 메타세쿼이아길도 가을빛이 멋지다. 순창장류박물관, 순창옹기체험관, 순창군승마장 등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근처에 여행 명소가 여럿이다. 읍내에는 금산여관, 방랑싸롱, 순창농부의부엌, 일우당 같은 곳이 젊은 감성으로 인기다. 순창군 문화관광과 (063)650-1648.밀양 재악산 사자평습지, 억새 산행 길에 선물 같은 풍경 경남 밀양의 사자평습지는 영남알프스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재약산 남동쪽 사면 해발 750m 부근에 형성된 국내 최대 산지 습지다. 한때 육지화의 위기를 맞았으나 지속적인 복원 사업을 통해 습지 생태계가 되살아났다. 표충사에서 사자평습지로 가는 등산로가 여럿이고, 케이블카를 이용해 천황산과 재약산을 거쳐서 가는 방법도 있다. 케이블카를 타면 해발 1020m 지점까지 10분 만에 올라 영남알프스 경관을 360도로 조망하며 비교적 수월하게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천황산, 천황재, 재약산, 사자평습지로 이어지는 능선은 억새를 감상하며 가을 정취를 만끽하는 코스로 꼽힌다.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를 추모하는 유교식 사당이 있는 점이 독특하다. 밀양강을 굽어보는 영남루, 소나무 9500여 그루가 울창한 기회송림도 빼놓을 수 없다. 밀양시 문화관광과 (055)359-5646.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18개월 전 가출한 애완견, 1600㎞ 떨어진 곳서 발견

    18개월 전 사라진 애완견이 무려 1600㎞나 떨어진 곳에서 기적처럼 발견됐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AP통신 등 외신은 셰퍼드와 잭 러셀 테리어 혼혈인 '릴레이'의 믿지못할 귀향기를 전했다. 릴레이의 주인은 플로리다 주 웨스트 팜 비치에 사는 릭 모넥. 그는 지난 2014년 릴레이가 강아지였던 시절부터 입양해 키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릴레이는 지난해 초 집 앞 펜스 밑을 기어나간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이때부터 모넥은 대부분의 견주가 그렇듯 릴레이를 찾아 온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모넥은 "며칠동안 릴레이를 찾아다니다 그 흔적을 발견했다"면서 "인근 CCTV에 릴레이가 한 낯선 남자와 나란히 걷다가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이 촬영됐다"고 밝혔다. 이렇게 둘의 인연을 끝나는 것처럼 보였으나 지난주 기적처럼 전화 한통이 멀리서 걸려왔다. 발신지는 자택에서 1600㎞나 떨어진 뉴욕시 동물보호단체로 릴레이를 보호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릴레이에게 심어놓은 마이크로칩에서 견주인 모넥의 정보가 확인된 것. 모넥은 "전화 상으로 몇번이나 우리 개가 맞느냐고 확인했다"면서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시절부터 릴레이가 방랑벽이 좀 있었다"면서 "다시 만날 날을 학수고대 하고있다"고 덧붙였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젠 자유로워졌다” 오치균의 ‘30년 로드무비’

    “이젠 자유로워졌다” 오치균의 ‘30년 로드무비’

    오치균(61)을 말하자면 두 가지 사실이 먼저 떠오른다. 하나는 손가락으로 그리는 화가, 둘째는 그림 많이 팔아 부자가 된 화가라는 것이다. 그는 실존의 명암을 붓을 쓰지 않고 손가락으로 표현한다. 유화 물감과 모델링 원료를 섞은 안료를 손가락에 묻혀 두터운 마티에르의 느낌이 살아 있는 그의 뉴욕 시리즈, 시골집의 붉은 감 시리즈, 사북 시리즈는 한때 컬렉터들의 소장목록에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꼽히며 날개 돋친 듯 팔렸다.그게 전부일까? 우리가 간과했던 세 번째가 있다. 그는 끝없이 여행하며 자신의 열정을 풀어내지 않으면 직성이 안 풀리는 예술가다. ‘늘 꿈꾸는 방랑자’이길 원하는 오치균의 30여년 여정을 담은 작품들이 ‘로드무비’라는 타이틀로 서울 인사동 노화랑에서 선보이고 있다. 작가가 그동안 발표하지 않고 꼭꼭 숨겨 두었던 작품들, 그리고 최근 뉴욕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신작들이 선보인다.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스스로를 뒤돌아보는 전시이자 오치균 그림의 맥락을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게 기획한 전시”라고 소개했다. 그는 “가 볼 만큼 가 봤고, 뚝 떨어지기도 해 보니 이제 마음이 자유로워졌다”면서 “60대에 접어들어서도 새로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여행지에서 한동안 머물며 작업해 왔다. 전시는 마치 작가가 영화 속 주인공처럼 그동안 여행 속에서 그려진 작품들을 재구성해 보여 준다. 계획된 목표나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욕망의 결과물이 아니라 여행 과정에서 느끼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화면에 담아낸 작품들이다. 그의 여정은 브루클린대학원에 다니던 뉴욕 시절부터 시작된다. 이방인 유학생으로서 느껴지는 타인의 시선, 빛과 단절된 자취방의 깜깜한 실내에서 나신으로 괴로움에 뒹굴고 있는 인체를 그렸다. 가난한 유학생의 처절한 자화상이었다. 이때의 서울풍경은 역시 어둡고 힘든 세상일 뿐이었다. 오 작가는 귀국 후 작가로서 성공을 거둔 뒤 다시 뉴욕으로 갔다. 유학생 시절 보이지 않던 뉴욕의 다양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이 보이고 풍경과 동물이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으로 시각이 변화했다. 그리고 산타페에서 보낸 1년 동안 그의 작품에는 밝은 색조가 들어앉았다. 1996년 서울로 돌아온 이후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사북 시리즈와 감 시리즈에서 보이는 시골 풍경은 우리의 정서를 그대로 담아낸 그의 여행이었다. 그는 여행지에서 발견하고 느낀 것을 손가락으로 물감을 만지고 경험하며 이미지로 재현한다. 작가는 “가격이야 어떻든,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화가라고 손가락질을 하든 상관하지 않고 작업한다”면서 “무엇보다도 신작을 하면서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온 게 너무 좋다. 어차피 장삿속으로 팔 계획이 없는 작품들이니 많이 와서 감상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시는 30일까지. 글·사진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책꽂이]

    [책꽂이]

    국세청은 정의로운가(안원구·구영식 지음, 이상 펴냄) 최순실 일가의 해외은닉 재산을 추적하는 일에 매진한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이 권력과 재벌, 세금을 둘러싼 불편한 진실을 밝힌다. 336쪽. 1만 5000원.별 헤는 밤(윤동주 지음, 곽효환 엮음, 교보문고 펴냄)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모든 시, 산문과 함께 박영근·김선두 등 국내 대표 화가 6인의 그림을 더했다. 294쪽. 1만 5000원. 인섬니악 시티(빌 헤이스 지음, 이민아 옮김, 알마 펴냄) 미국 뇌신경학자 올리버 색스의 연인이 그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암 선고, 그리고 마지막 며칠까지의 과정을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 352쪽. 1만 7500원. 자유의 비극(유진수 지음, 한길사 펴냄) 경제학자인 저자가 자유가 비극이 될 수 있는 열두 가지 이유를 구체적 사례를 통해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다. 244쪽. 1만 5000원. 카메라와 부엌칼을 든 남자의 유럽 음식 방랑기(장준우 지음, 글항아리 펴냄) 신문기자 생활을 하다 이탈리아로 요리 유학을 떠난 저자가 주방에서의 경험과 유럽을 거닐며 찍은 사진을 한데 엮었다. 328쪽. 1만 5000원. 바람이 그리움을 안다면(강원석 지음, 구민사 펴냄) 공직자 출신 시인의 두 번째 시집으로 사랑과 행복을 주제로 수채화를 그리듯 쓴 시 77편을 담았다. 134쪽. 1만 2000원.
  • ‘난민 드레스’? 비난 쏟아진 의류업체 노이즈 마케팅

    ‘난민 드레스’? 비난 쏟아진 의류업체 노이즈 마케팅

    미국 뉴욕 브루클린에 매장을 두고 있는 한 의류 브랜드(UZI NYC)가 출시한 원피스에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문제의 상품은 면 소재의 시프트 드레스로, 가격은 119달러(약 13만5000원). 헐렁한 모양새로 착용감이 좋을 것 같지만, 문제가 되고 있는 이유는 외형이 아니다. ‘난민 드레스’(Refugee Dress)라는 제품명 때문이다. 이 드레스는 발매 직후부터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큰 논란을 일으켰다. 네티즌들은 “왜 이 옷의 이름이 난민 드레스냐. 의미를 모르겠다” “믿을 수 없다. 난민은 방랑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판매 전략 용어도 아니다” “UZI NYC는 즉시 사과한 뒤 드레스 이름을 바꾸고 UNHCR(유엔난민기구)에 기부하라” 등의 혹평을 업체 계정에 쏟아냈다. 이에 대해 이 의류브랜드 공동설립자 마리 구스타프손은 Mic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드레스는 원래 난민 위기에 사람들이 좀 더 관심을 두게 하려고 만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난민 문제를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게 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미국 경제는 회복 중이며 우리 회사도 인내의 시간을 거쳐 회복했다”면서 “이제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희망이나 안정을 느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불쾌감을 느꼈다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이들의 목적은 크게 엇나갔는지 난민 차별을 조장하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는 문제의 드레스를 ‘옥스퍼드 드레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고 판매를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UZI NYC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단독] “누군가를 위한 노래가 좋아서 전국 돌며 거리에서 부릅니다”

    [단독] “누군가를 위한 노래가 좋아서 전국 돌며 거리에서 부릅니다”

    서울 신촌역을 지나던 사람이라면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교대역과 인사동, 부산 해운대에서 봤다는 사람도 있다. 푸른 눈에 레게머리(머리 전체를 여러 가닥으로 얇게 땋은 스타일)를 한 외국인이 기타를 치며 자기 흥에 겨워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유창한 한국어를 내뱉는다. “여러분 같이 할 수 있어요? 다 같이 한번 더!”호기심에 걸음을 멈춘 행인들은 그 옆의 바이올린 연주자의 화려한 선율이 이어지면 아예 방향을 돌려 그 앞에 구름처럼 모여든다. ‘맨발의 뮤지션’으로 불리는 안코드 아베 자카렐리(27)는 정식 앨범을 낸 적은 없지만 이미 유명한 버스커(거리의 음악가)다. 3년 전 서울 교대역에서 버스킹을 할 때 부른 GOD의 ‘촛불 하나’가 유튜브에 올라 ‘교대역 백형’으로 알려졌고, 뒤이어 전국 곳곳을 돌며 노래 부르는 영상 수만 건이 동시에 올라오며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지난해 아리랑TV 국악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 TV 데뷔를 하더니 얼마 전엔 JTBC ‘비정상회담’에도 출연, ‘연예인이 다 됐다’. 최근 서울 홍대 앞 무브홀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에는 1500여명이 몰렸을 정도다. 그는 세계를 돌면서 만난 한국인 바이올린 연주자 탁보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색소폰 연주자 태보코와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날 선보인 곡 가운데 관객들의 반응이 좋고, 자신의 마음에 드는 곡을 골라 첫 앨범으로 낼 계획이다. “그냥 좋아서” 거리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안코드는 그동안 앨범을 내지 않은 이유에 대해 “누군가를 위해 노래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없어서”라며 웃었다.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하는 게 자연스럽잖아. 청중들의 반응에 따라 2절을 반복하기도 하고, 어떨 땐 건너뛰기도 하지. 때로는 드럼만 계속 칠 때도 있고. 그런데 스튜디오에서 정박자에 맞춰서 노래하면 아무리 완벽하게 했다 해도 뭔가 느낌이 없어.” 국적은 영국이지만 그는 자신을 “지구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일본인 부모에게 입양됐고 일본과 이스라엘, 한국, 이탈리아 등을 돌며 자랐다. 유창한 한국말은 언론사 특파원인 아버지를 따라 어릴 적 한국에서 6년을 살았던 덕분이다. 이후 노숙과 방랑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이력이 그의 음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인생과 인간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하며 방황하던 그는 19세 때 무작정 이탈리아 피렌체로 가서 노숙 생활을 했다. 잠시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또다시 자신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빠져들게 된 그는 비파사나(여러 가지 현상을 관찰하는 불교의 명상 수행법) 명상을 하면서 현재에 충실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코드는 “진짜 마음이 가는 대로 하루하루를 살면 빛이 생길 것”이라고 노래한다. 대표곡 ‘디스 이스 헤븐’(This is Heaven)에서 “지금 보이지 않는 것을 걱정하지 마. 옆 사람의 눈치 보지 말고 내 마음이 하는 소리를 들어라. 그게 진실”이라고 외친다. 그의 노래를 듣고 “힐링이 된다”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노래하는 그 순간 모든 열정을 아끼지 않고 쏟아내는 그는 굳이 악보를 그리거나 녹음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라지는 곡들도 있지만 개의치 않는다. 그는 조만간 한국을 떠나 또다시 방랑길에 오른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다만, 콘서트 성공 이후 인터뷰와 앨범 레코딩 섭외가 쏟아지면서 고민이 된다고 털어놓았다. “유명해지려고 살고 싶지는 않아. 지금 내가 원하는 건 여행하고, 음악하고, 레게머리 하고 싶고…. 이게 전부다.” 글 사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문 대통령 ‘칵테일 타임’으로 이틀째 기업인 간담회 일정 시작

    문 대통령 ‘칵테일 타임’으로 이틀째 기업인 간담회 일정 시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7일에 이어 28일에도 청와대에 국내 주요 기업인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다.이날 간담회에는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신동빈 롯데 회장, 허창수 GS 회장, 최길선 현대중공업 회장, 황창규 KT 회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7명이 참석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이틀 연속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참석자들과 만나 약 20분 동안 ‘칵테일 타임’을 가졌다. 전날에는 상춘재 앞에서 ‘호프 미팅’을 가졌지만 이날은 서울에 비가 내려 본관 로비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기업인들과 담소를 나눴다. 이날 참석자들에게 제공된 칵테일도 수제맥주 업체 ‘세븐브로이’의 맥주가 바탕이 됐다. 세븐브로이 맥주를 바탕으로 한 ‘레드아이’와 ‘맥주 샹그리아’ 등 두 종류의 칵테일이었다. 또 ‘방랑식객’이라는 별명으로 잘 알려진 임지호 셰프의 안주가 이날도 준비됐다. 전날 무를 이용한 카나페 요리, 소고기를 얇게 썰어 양념한 한입 크기의 요리, 시금치와 치즈를 이용한 요리를 준비했던 임 셰프는 이날 황태절임과 호두·땅콩·아몬드를 갈아 동그랗게 뭉친 원(圓), 치즈를 올린 말린 수박 껍질 등 3가지 메뉴를 제공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황태절임 안주가 갖는 의미에 대해 “추운 겨울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만들어지는 황태처럼 상생의 길은 멀고 험하지만 그 과정을 겪어야 만 한 마리 황태가 만들어지듯 많은 갈등과 대립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길 바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청와대가 본관 로비에서 내방객에게 음식물을 제공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칵테일 타임’을 마친 뒤에는 본관 인왕실로 자리를 옮겨 참석자들과 본격적인 ‘비공개 만찬 간담회’를 시작했다. 이날 만찬 메뉴는 콩나물 밥과 오이냉채, 황태포 묵은지 찜, 부추김치, 장조림, 황태조림 등으로 구성됐다. 전날 메뉴는 미역, 조개, 낙지를 이용한 비빔밥이었다.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전날과 마찬가지로 주요 기업 대표들로부터 최근 경영 여건 등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새 정부의 최우선 과제인 일자리 창출과 대·중소기업 간 상생 등을 당부할 것으로 보인다. 전날 참석한 기업인들은 중국의 경제 보복과 미국의 철강 제품에 대한 반(反) 덤핑 관세 부과 등 경영상 어려움을 호소하는가 하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신규 투자 계획을 밝히는 등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호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도 기업인들은 제각각 고충을 털어놓고,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이날 전체 행사시간을 75분으로 예상했으나, 사실상 시간제한 없이 간담회가 진행되는 만큼 실제 행사는 예상보다 길어질 전망이다. 전날 행사는 오후 5시 57분 시작해 159분 만인 오후 8시 36분 종료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연이틀 생맥주에 칵테일···문 대통령 주량이 폭탄주 3~4잔

    연이틀 생맥주에 칵테일···문 대통령 주량이 폭탄주 3~4잔

    문재인 대통령이 28일에도 내리 이틀째 기업인들과 ‘음주 미팅’을 가지면서 그 주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전날인 27일 기업인들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호프미팅’을 가졌다. 청와대는 28일 비가 오는 관계로 당초 계획했던 야외에서의 호프미팅 대신 실내에서 20여분간 ‘칵테일 타임’으로 바꿨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 SK, 롯데, GS, 현대중공업, KT, 한진 등 7개 기업 경영인과 총수 등이 참석한다.박용만 두산 인프라코어 회장은 전날에 이어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자격으로 자리한다.문 대통령은 27일 가진 첫날 호프미팅에서 350㎖ 세븐브루이 수제 맥주 한 잔을 마신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의 주량은 대선 당시 이력서에 따르면 소주 1병, 폭탄주 3~4잔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칵테일 타임 참석자들의 주량도 엇비슷한 것으로 머니투데이가 보도했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소주 1병, 최태원 SK 회장은 소주 반 병, 신동빈 롯데 회장은 식사에 곁들여 와인을 하는 정도며 폭탄주는 못한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허창수 GS 회장은 위스키 반병, 황창규 KT 회장은 가벼운 와인을 선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안주는 전날에 이어 ‘방랑식객’이자 자연요리연구가 임지호 셰프가 준비했다. 황태절임과 호두·아몬드·땅콩 뭉침, 치즈 얹은 수박 등이다.황태는 추운 겨울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맛이 드는 것에 착안, 갈등과 대립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좋은 결과로 만들어내길 바라는 의미가 담겼다. 호두·아몬드·땅콩을 부숴 동그란 모양으로 뭉쳐 만드는 안주 ‘원’(圓)은 씨앗을 형상화한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씨앗은 꿈의 완성이자 모든 것의 시작”이라며 “새로운 미래를 위해 오늘의 자리가 씨앗 같은 의미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박은 살을 파내 수분을 제거한 상태에서 치즈를 얹어 내놓는다. 일견 어울리지 않는 두 음식이지만 조화가 불가능한 건 없다는 뜻을 담았다고 청와대는 전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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