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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공사 석장 이재순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공사 석장 이재순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석공의 흔적은 역사의 물결처럼 도도하게 흐른다. 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신라로 건너와 석가탑을 만들었다. 아내 아사녀는 천리길을 달려와 탑의 그림자를 기다리다 지쳐 연못에 빠져 죽었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아사달은 연못에 다가가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는 아내의 모습을 앞산 바위에 새기며 뼈 아픈 한을 달랬다. 그러다가 ‘아사녀! 아사녀!’를 외치며 연못에 빠졌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라고 했고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 했다. 석공의 슬픈 전설은 지금도 그렇게 전해진다. 이렇듯 신라시대의 석공은 많은 전설과 함께 오늘날의 ‘국보’와 ‘보물’이란 이름으로 우리들과 만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처음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120호) 석장(石匠) 부문을 신설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석공예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때 석조각 공예가 이재순(57)씨가 국내 최초로 무형문화재 석장이 됐다. 이씨는 김진영 선생의 제자로 경복궁의 석조물을 조각한 이세욱·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는 석조각계의 대가였기에 이 계통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씨는 요즘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숭례문 복원작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성곽 복원 전체 공정 중 85%가 진행됐고 오는 7월이면 거의 끝날 예정이다. 그는 12살 때부터 돌과 인연을 맺어 올해로 석조각 인생 45년째이다. 지난 26일 오후 경기 구리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10여m 높이의 미륵상을 비롯해 사자상, 부처상 등 수많은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가 돌이지만 다들 저마다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완성품도 있었고 아직 덜된 작품도 있었지만 다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습들이었다. 꽃샘추위를 담은 바람이 잠시 밀려왔다. 작은 부처상한테 물었다. “춥지 않으세요.”라고 했더니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에궁…. # 성곽 85% 복원… 옛 석공의 번뇌 읽다 그러는 참에 웃으면서 나타난 이씨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요새 무슨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숭례문 복원공사 얘기가 나온다. “숭례문 성곽 복원이 85% 정도 완료됐습니다. 숭례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53m, 서쪽으로 16m의 길이를 대부분 복원했지요. 기나긴 세월의 풍화를 읽으면서 하는 작업이 정말로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먼 옛날 석공들의 고뇌와 번민 등 그런 부분을 알고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씨는 석공 선현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숭례문에 쌓아 올려진 돌, 그러니까 오랜 세월을 간직한 유물들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비오는 날이었다. 돌에 구멍이 있었는데 빗방울에 의해 구멍이 뚫렸다. 이 순간 이집트의 신전이 생각났다. 커다란 돌을 옮겼던 기억이었다. 정사각형의 돌 중앙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자리 이동을 해 벽을 쌓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숭례문 돌 모양들이 아주 자연 친화적으로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돌 가운데 구멍 뚫어 옮긴 흔적 발견 “숭례문에 있는 돌들은 아무렇게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생각하면서 그에 맞게끔 친자연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석수(都石手)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도편수는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도석수라는 말은 이번 복원공사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마 당시 도석수는 지금으로 말하면 5급 관리 정도로 여겨집니다. 또한 돌마다 가진 물과의 관계, 즉 비가 오면 물이 밖으로 새도록 하는 등 아주 과학적이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돌의 크기가 다 다르다는 점에 눈길이 쏠렸다. 얼핏 보면 부자연스럽고 서로 맞추기도 힘들 법한데 퇴물림 형식으로 쌓아놓은 돌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이씨는 그런 돌을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 묻고 또 물었다. “선조들이 어떻게 돌을 다뤘으며, 또 어떻게 생각했을 것이란 상상을 하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중간중간에 놓인 장돌들을 볼 때에는 더욱 그랬지요. 위아래에서 누르는 압력을 장돌을 통해 견디도록 하는 지혜에 참으로 경탄했습니다.”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이씨는 “(방화사건 직후) 처음에 아직도 가시지 않은 화재의 기운과 접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몇몇이 피부병에 걸렸을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다들(20여명) 숭례문 복원공사가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작업했다고 술회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는 문화재를 복원한답시고 기계적으로 손을 대는 바람에 오히려 화재나 사고 등에 대해서는 무심했습니다. 정작 보존과 관리에 대해서는 진정성 없이 다가갔던 것입니다. 아마 숭례문 복원은 이런 것들을 전부 고민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 都石手가 있었음을 처음 알게 돼 이씨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앞에 언급한 도석수라는 단어였다. 원래 도편수라는 말은 있었지만 도석수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면서 선조의 존엄성을 몸소 느꼈던 것. 또한 부석소(浮石所), 즉 지금의 채석장을 두고 돌 문화 창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특히 돌을 다듬으면서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정교하게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의 흔적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을 깨는 방법이나 돌을 다듬는 방법이 정말 과학적이며 친자연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돌 중앙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이동시켰다는 걸 알고 놀랐지요. 대체로 돌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는 사방에 밧줄을 연결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밧줄을 빼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차가 생깁니다. 그런데 숭례문의 돌을 보면서 이런 과정까지 염려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흔들림 방지, 비 올 때 물의 흐름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를 숭례문 복원 공사를 통해 깨달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이런 점을 소중히 메모하면서 후배들에게 전수할 책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에는 돌을 다루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석공들 또한 자부심이 강했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돌이 안 들어간 것이 어디 있습니까. 소중한 것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돌의 미학, 석공의 예술을 책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이씨가 그동안 제작한 작품은 2000여점에 이른다. 전국의 사찰과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그의 손때가 대부분 묻어 있다. 뿐만 아니다.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일본 덕정사, 타이완 기륭 자항기념당, 프랑스 파리 7대학 등에도 이씨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화 한토막. 2005년 일제가 가져간 북관대첩비(임진왜란 때 정문부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전승비)의 환수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문화재청에서 북관대첩비가 환수될 때를 대비해 좌대와 옥개석을 복원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 후 북관대첩비는 무사히 반환돼 남한을 거쳐 북으로 돌아갔다. 이때 북관대첩비는 이씨가 복원한 옥개석을 머리에 인 채 북한 국보 193호로 지정돼 북한으로 갔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돌을 만지는 장인으로서 더없는 영광이 아니냐.”고 말한다. # 선조의 지혜 책으로 펴낼 계획도 이씨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12살 때부터 외삼촌에게 돌을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평소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팽이, 썰매 등 전통 놀이기구 제작에 솜씨를 발휘했다. 그러던중 1970년 스승 김진영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석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스승 김씨는 40년간 석조계에 몸담은 베테랑으로 조선 철종, 헌종 시대 경복궁의 해태상 등을 조각한 이세욱 선생과 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고 있었다. 이씨는 스승 김씨한테 10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두 번째 스승인 김부관 선생을 따라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보수작업을 하면서 숙석(熟石) 기법을 배웠으며 그 덕분에 불교미술 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돌 분야는 할 일이 많습니다. 현대와 전통을 접목시키는 것도 중요하고요. 사실 이제야 돌을 만지는 사람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돌은 정직합니다. 화난 사람이 돌을 마주하면 돌도 화가 나 있고, 예쁘게 돌을 보면 돌 또한 예쁜 대답을 합니다. 돌에는 정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도 정이 많잖아요. ” 선임기자 km@seoul.co.kr 열두 살 때부터 돌 잡아 국가주요무형문화재 석장 부문 1호 지정 195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12살 때 석공이었던 외삼촌에게 돌을 고르는 일을 배웠다. 문화재 공사현장을 다닌 것도 이때부터. 이후 스승 김진영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석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두 번째 스승인 김부관 선생한테 돌을 다듬는 숙석(熟石) 기법을 배웠다. 전국 기능인경기대회에서 연속 2회 금메달과 함께 한국문화재기능협회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으로 지정됐다. 1995년 타이완의 자항기념당에서 석굴암보다 더 큰 석상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현재 부도를 비롯한 석조물의 복원과 정비, 각종 석조물의 해체 및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성곽의 해체 및 복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본 오사카 보암사 석가노미불(1999), 경북 영주 석륜선원 부처 진사리석탑(2000),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기하형체(1977),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소상(1983), 북관대첩비 갑석(2005) 등 2000여점이 있다.
  • 고아 ‘제이’의 험난한 삶

    시작이 좀 생뚱맞다. 난데없이 괴기한 마술 이야기다. 의아하지만 읽어 내려간다. “하늘에서 밧줄이 내려온다. 그것부터가 이상하다. 그러나 시작이니까 아직은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고 이미 작가가 글에서 ‘선수’쳤으므로. 근엄한 마술사의 명령에 어린 조수가 밧줄을 타고 위로 올라갔다. 조수를 쫓던 구경꾼들 눈앞에 피를 뿜는 조수의 몸통 조각들이 떨어졌다. 그러나 마술사가 조각을 모아 담은 양동이에서 짜잔, 조수가 멀쩡히 살아나는 신기한 마술이다. 이 마술에 호기심이 인 어린 중국 황제는 마술사가 살려낼 것으로 믿고 내시 사지를 찢었는데, 마술사는 밧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나’는 처음엔 마술사가 어찌 됐나 궁금했다. 지금은 홀로 남겨졌을 소년을 생각한다. 이렇게 시작했지만 뉴욕에 머무는 김영하가 5년 만에 낸 장편소설 ‘너의 목소리가 들려’(문학동네 펴냄)는 마술사 얘기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고아 ‘제이’의 삶을 따라간다. 고속버스터미널 화장실에서 태어난 제이는 화훼상가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돼지 엄마와 함께 살다가 보육원으로 옮겨 갔고 어떤 힘에 이끌려 빠져나왔다. 인생 막장으로 달려가는 또래 사이에서 노예처럼 생활했고 어느새 우두머리가 됐다. 경찰의 폭주족 단속 대열 속으로 돌진하면서 마치 신화처럼 사라졌다. 소설은 어릴 적 제이와 운명처럼 묶인 친구 동규, 제이에게 빠진 목란, 제이의 뒤를 쫓는 박승태 경위의 이야기를 엮어 제이의 짧은 삶을 과도하게 사실적으로 때론 판타지인 양 펼쳐낸다. 허를 찔렸다는 느낌이 드는 건 제이의 이야기가 끝난 뒤다. 극 중 작가인지, 작가 자신인지,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털어놓는다. 한때 연인이었던 Y가 던져준 소재를 소설로 쓰기 위해 만난 동규와 목란, 박 경위의 말 그리고 한 여인의 편지를 덧댔다. 에필로그처럼 달린 짧은 글은 밍밍한 음식 속에서 강렬하고 맛난 양념을 발견했을 때처럼 희열을 번지게 한다. “작가들은 시작과 끝에 사람을 홀리는 뭔가를 숨겨놓는다고 말했다.” 이 책 중간, 제이의 독특한 성격을 설명하는 문장 중 이런 게 있다. 처음 풀어낸 마술사와 조수의 이야기가 소설 어느 인물과 맞닿는다는 것, 마지막 장을 덮고서야 이해하게 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노예로 팔려간 조선인을 그린 ‘검은 꽃’(2003), 인터넷만이 삶의 출구인 88만원 세대의 현실을 담은 ‘퀴즈쇼’(2007)와 함께 이 소설을 ‘고아 3부작’으로 꼽는다. 1만 2000원.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고층건물서 자살 시도女 구출하는 아찔 장면 포착

    자살을 시도하는 여성을 구출하는 장면을 담은 아찔한 사진이 공개됐다. 최근 중국 후난성 창사에 건설중인 건물에서 한 여성이 32층 난간에 걸터 앉아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이 인부들에게 목격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3시간에 걸쳐 여성과 대화를 나눴으나 결국 설득하는데 실패했고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 일촉즉발의 위기감이 감돌았다. 그때 여성 아래 층에 있던 경찰이 그녀의 한 다리에 밧줄을 묶고 나머지 다리를 손으로 잡는데 성공했다. 여성은 소리를 지르고 발버둥을 치며 경찰에게 저항했으나 결국 경찰에 강제로 끌려 내려와 목숨을 건졌다.  자살 시도 당시 여성은 “사랑도 직업도 필요없다. 가족도 나를 미워하며 모두가 나를 실망시킨다.”고 밝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현지 경찰은 “이 여성은 후난성 외곽 예양시 출신으로 과거 TV 데이트 프로그램에 출연한 바 있다.” 면서 “현재 자세한 자살 동기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9일 TV 하이라이트]

    ●행복한 교실(KBS1 오전 11시) 최근 인터넷과 온라인 게임이 학교 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학교와 학부모들 사이에서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청소년 게임 중독 관련 전문가들이 출연해 인터넷 게임 중독의 실태와 청소년들이 인터넷 게임에 빠지는 원인, 게임 중독의 심각한 문제점, 그리고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 등을 소개한다. ●수목 드라마 스페셜 보통의 연애(KBS2 밤 9시 55분) 7년 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아버지가 지목된 이후 정지된 시간을 살고 있는 여자 윤혜. 어느 날 그에게 낯선 남자 재광이 등장한다. 그 남자는 윤혜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한다. 윤혜는 그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재광 역시 윤혜가 점점 궁금해진다. 그렇게 재광은 윤혜에게 엄청난 진실을 털어 놓는다. ●수목 미니시리즈 해를 품은 달(MBC 밤 9시 55분) 훤은 드디어 풀린 의문에 절규의 오열을 쏟아낸다. 그리고 활인서로 달려가 뜨겁게 연우를 품에 안는다. 그런데 갑자기 활인서에 복면자객들이 나타나 연우를 공격한다. 양명과 운, 그리고 훤은 연우를 엄호하고, 그 과정에서 양명은 자객들을 따돌리며 연우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 달려간다. ●좋은 아침(SBS 오전 9시 10분) 치과의사 홍지호·탤런트 이윤성 부부는 임신 7개월 때까지 외출도 삼가고, 하루에 두번씩 유산 방지 주사를 맞는 고통 끝에 딸 세라를 얻었다. 그렇게해서 낳은 첫째 딸 세라가 건강하게 자라서 3월에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정든 유치원을 떠나는 세라의 졸업식 현장과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새로운 다짐을 들어본다. ●다큐 10+(EBS 밤 11시 10분) 전쟁을 하는 로봇. 공상과학 영화들이 그려온 암울한 미래의 모습이다. 하지만 로봇 전쟁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과연 로봇이 판단 능력까지 갖추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똑똑한 전투 장비가 늘어나면서 이런 의문이 생기기 마련이다. 최첨단 전투 로봇의 장점과 이면의 우려, 부작용들을 하나씩 짚어 본다. ●나는 전설이다(OBS 밤 11시 5분) 가수 김용임은 재능 기부로도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히트곡 ‘밧줄로 꽁꽁’이란 곡으로 행사 순위 1순위였던 그런 김용임을 당황케 한 행사가 있었다. 바로 교도소 공연이었다. 교도소 공연이라 꺼려졌지만 거부할 수 없었던 당시 상황에서 그녀는 애교스러운 애드리브로 떨리는 무대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 14년간 딸 ‘묶어놓고 키운’ 아버지의 눈물 사연

    장애를 앓는 딸의 두 팔을 묶어둔 채 키워야 하는 한 아버지의 눈물이 네티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중국 저장성 취저우시에 사는 홍윈웨씨는 태어날 때부터 약간의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아내를 만나 1983년 결혼해 행복한 삶을 살아왔다. 결혼한 지 10년이 훌쩍 지난 1998년, 두 사람 사이에 딸 홍자항이 태어났지만 안타깝게도 딸은 아버지 홍씨보다 더욱 심각한 선천적 뇌 결함을 안고 세상에 나왔다. 지적장애2급 판정을 받은 딸은 다른 사람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며, 습관적으로 머리를 벽에 부딪치거나 자해를 하는 등의 증상을 보여왔다. 홍씨 부부는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지만, 모아둔 돈을 병원비로 모두 소진한 뒤에도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딸을 집으로 데려온 홍씨는 딸이 자해를 막기 위해 팔을 몸 뒤로 돌려 묶은 채 키우기 시작했다. 잠시라도 눈을 떼면 주위의 물건으로 머리를 내리치거나 날카로운 것으로 자신의 몸을 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마음은 비할 데 없지만 홍씨 부부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다. 홍씨는 비록 딸의 두 팔을 묶어놓았지만, 추운 겨울이면 자신보다 먼저 딸의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잊지 않을 만큼 언제나 딸을 아껴왔다. 지난 2004년, 홍씨의 아내는 어려운 가정형편과 장애를 가진 딸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집을 떠났다. 8년 째 홀로 딸을 돌보는 홍씨에게, 그의 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말을 하거나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해 낸 적이 없지만 유일한 가족임이 분명하다. 홍씨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애인 보조기금과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지만, 해를 넘길수록 형편이 어려워지고 있다.”면서 도움을 호소했다. 행여라도 팔이 아플까봐 밧줄이 아닌 긴 천을 이용해 딸을 묶어두는 아버지의 눈물겨운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감동을 안기고 있다. 네티즌들은 “위대한 아버지다.”, “두 사람을 돕고 싶다.”, “자애로운 아버지란 홍윈웨이씨를 두고 하는 말일 것” 등의 훈훈한 댓글로 위로하고 있으며, 일부 네티즌은 직접 나서서 돕고 싶다는 뜻을 표하고 있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토다큐 줌인] “런던의 영광 위하여” 새벽을 여는 태극전사들

    [포토다큐 줌인] “런던의 영광 위하여” 새벽을 여는 태극전사들

    짧은 호흡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입김이 캄캄한 하늘 위로 퍼진다. 지난 11일 새벽 5시 30분. 2012 런던올림픽 태극전사들의 새벽 훈련은 어김없이 시작된다. 일사불란한 아침 조깅으로 시작한 선수단의 훈련은 가벼운 몸 풀기, 종목별 스트레칭을 거쳐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이어진다. 영하 7도를 밑도는 강추위지만 20여분도 채 지나기 전에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100㎏이 넘는 타이어를 세워 굴리기도 하고, 자기 몸무게는 족히 나갈 듯한 타이어를 밧줄로 허리에 묶은 뒤 트랙을 전력 질주한다. 심지어 동료를 어깨 위에 태우고 그라운드를 가로지르기도 한다. 호루라기 신호에 맞춰 사이클 페달을 밟는 미녀, 밧줄을 타고 오르는 선수들의 입에서 호랑이의 포효가, 전투에 임한 전사들의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4년 만에 올림픽의 해가 다시 밝았다. 올림픽을 기다려 온 선수들. 오는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영국 런던 일원에서 펼쳐지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를 위해 태극전사들은 지금까지 해 온 모든 것을 메달이라는 목표 하나에 모으고 있다. 4년 전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종합 7위를 차지한 우리나라는 이번 런던올림픽에서도 금메달 13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수영 박태환, 배드민턴 이용대, 역도 장미란, 펜싱 남현희 등 스타플레이어들의 활약에 벌써부터 매스컴의 열기가 후끈하다. 하지만 세대 교체를 무난히 마친 양궁, 체조, 레슬링, 태권도, 유도 등 전통적인 금밭에서 신세대 영웅들도 탄생을 꿈꾸고 있다. 이른 새벽 매서운 추위와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 선수들의 결의에 찬 눈빛이 빛난다. 7개월 후 런던 하늘 아래 또 한번 태극기가 시상대에서 휘날리는 모습이 그들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 그려지고 있다. 글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1) 해남 두륜산 천년수

    [고규홍의 나무와 사람이야기] (61) 해남 두륜산 천년수

    해를 가리키는 네 자리 숫자 가운데 한 자리만 바뀌었지만, 새해가 되면 늘 새로운 마음으로 부풀게 마련이다. 설레는 마음 한편에는 분명 흘러가는 세월에 대한 아쉬움도 담겨 있다. 한해를 마무리할 때마다 채 이루지 못한 사람살이의 꿈이 남기 때문이다. 결국 넘어가는 해를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세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달력을 바꿔 걸 즈음이면 새해의 설렘과 함께 지난해에 대한 안타까움이 엇갈릴 수밖에 없다. 지는 해를 붙들어 안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적지 않은 게 사람살이다. 예나 지금이나 세월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에게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산꼭대기의 절터에 홀로 남아 “두륜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흘러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어요. 해를 붙잡아 두는 어마어마하게 큰 나무가 있거든요.” 전남 해남의 대흥사 주차장 앞에 자리한 식당 주인의 너스레다. 그는 환하게 웃음 지으며 두륜산 정상에 서 있는 신비의 나무 ‘천년수’를 천천히 소개했다. “올라가서 보면 알겠지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느티나무예요. 1200년이나 됐다니까요. 높이 뻗은 나뭇가지가 산을 넘는 해를 붙잡고도 남죠. 나이 먹기 싫으면 그 나무에 해를 붙잡아 놓으면 돼요.” 대흥사 인근 마을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두륜산 천년수는 이름처럼 1000년을 넘게 산 매우 큰 느티나무다. 대개의 느티나무가 마을 어귀에서 살아가는 것과 달리 산 꼭대기에 홀로 서 있다는 사실뿐 아니라, 1000년이라는 믿기 어려운 나이와 해를 붙잡아 둔다는 전설까지,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나무다. 천년수가 있는 자리는 천년고찰 대흥사의 산내 암자인 만일암 마당이다. 만일암은 17세기 후반에 지은 대흥사의 산내 암자라고 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더구나 만일암의 모든 전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겨우 고려 때의 석탑 양식을 볼 수 있는 오층석탑만 남아 있을 뿐인 폐사지다. 그 만일암 터 바로 앞, 암자가 있던 시절이라면 법당 앞마당쯤 되는 자리에 서 있는 느티나무가 바로 해를 붙잡아 둘 만큼 큰 천년수다. 만일암이 있던 시절에는 두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고 하는데, 암자가 사라지면서 한 그루는 죽어 없어졌다. ●느티나무 가운데 가장 늙은 나무 천년수를 찾아가려면 대흥사를 거쳐 해발 703m인 두륜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한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는 길은 비교적 가파르다. 두 시간쯤 산길을 올라 정상인 가련봉 가까이에 이르면 만일암 터를 찾을 수 있다. 한 기의 초라한 오층석탑만이 옛 자취를 보여주는 쓸쓸한 폐사지 아래쪽으로는 무성한 대숲이 이어졌다. 천년수는 그 대숲 길 20m쯤 아래에 있다. 무려 1200살이나 된 느티나무다. 산림청 보호수로 등록된 느티나무 가운데에는 가장 나이가 많다. 규모도 식당 주인의 표현처럼 어마어마하다. 키가 22m나 되고, 가슴높이에서 잰 줄기둘레도 9.6m나 된다. 천연기념물 가운데 가장 큰 느티나무인 전남 장성의 단전리 느티나무보다 2m나 키가 더 크다. 줄기둘레는 10.5m인 단전리 느티나무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이지만, 한눈에도 그 장대한 규모에 감탄사를 내놓을 만하다. 비좁은 자리에서 나뭇가지를 사방으로 15m나 펼쳐서 실제보다 더 우람해 보인다. 산 정상 가까이에서 이처럼 큰 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건 뜻밖이지 않을 수 없다. 나무와 어우러지는 주변 풍광을 함께 바라보기 위해서 물러설 공간도 없다. 나무를 온전히 바라보려면 그저 나무 앞에 서서 고개를 한껏 젖히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나무 앞에 서면 단박에 나무의 위용에 압도당할 만큼 융융한 나무다. 깊은 산 정상이라고 해서 느티나무가 자라지 못할 이유야 없지만, 함께 어울릴 다른 나무도 없이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이토록 우람하게 자랐다는 건 나무가 사람과 더불어 살아왔다는 분명한 증거다. 사람이 심어 키우지 않고서는 느티나무가 이토록 멋지게 자라는 것이 불가능하다. 예전에 만일암 스님들이 암자의 너른 마당에 손수 심고 정성껏 보살펴 온 나무임에 틀림없다고 보는 근거다. ●지는 해 붙잡아 두고 하루를 늘려 두륜산을 넘어가는 해를 이 나무에 붙잡아 둘 만도 하다는 생각이 생뚱맞지 않은 건 거칠 것 없이 빈 하늘에 한가득 펼친 나뭇가지 탓이다. 이 나무에 전하는 흥미로운 전설도 바로 그런 생각에 알맞춤하게 지어진 이야기다. 옛날 하늘에 천녀와 천동이라는 두 젊은이가 죄를 짓고, 두륜산으로 쫓겨 왔다. 옥황상제는 그들을 땅으로 보내면서 용서의 마음으로 하루 만에 불상을 짓는다면 하늘로 다시 올려주겠다고 했다. 천녀와 천동은 하루라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 해를 붙잡아 나무에 매어두고 불상을 조각했다. 얼마 지나 불상을 완성한 천녀는 느티나무 앞에 돌아와 천동을 기다렸지만 천동은 감감무소식이었다. 다급해진 천녀는 홀로 밧줄을 끊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불상을 완성하지 못한 천동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서 나중에 두륜산의 신령이 됐다는 이야기다. 흔히 마을에서 보던 나무를 산 위에서 보게 된 생경한 느낌이 자연스레 이루어낸 이 이야기에는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을 야속해한 옛 사람들의 안타까움이 묻어 있다. 세월이 무정한 건, 늙는 게 아쉬운 때문만은 아니다. 지나온 자취를 새겨 둘 여유도 없이 새해를 맞이하는 게 안타까운 건 아닐까. 두륜산 천년수에 넘어가는 해를 붙잡아 두고 싶은 마음은 옛사람에게만 드는 건 아니지 싶다. 글 사진 해남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해남군 삼산면 구림리 두륜산 도립공원 내 만일암 터. 출발지에 따라 해남을 가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서울에서 가려면 서해안고속국도를 이용해 종점인 목포 나들목까지 가야 한다. 목포에서 국도 2호선과 13호선을 이용해 해남군청까지 간다. 해남군청에서 지방도로 806호선을 이용해 남쪽으로 10㎞ 남짓 가면 대흥사 입구 주차장이 나온다. 두륜산 천년수를 보려면, 대흥사 경내를 거쳐 등산로를 이용해 두륜산 정상으로 3㎞쯤 올라가야 한다. 나무는 만일암 터 아래의 비좁은 공간에 우뚝 서 있다.
  • 성경에서 길어낸 수사의 깊은 맛

    동서양을 통틀어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성경. 근본주의 개신교는 성경 자구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용납할 수 없다는 ‘문자주의’를 고집한다. 비단 근본주의를 떠나 많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성경은 어길 수 없는 경외의 대상이다. 그런가 하면 이 성경은 일반인들에겐 그저 ‘관심 없는 기독교의 경전쯤’으로 인식되기 일쑤다. 그 경외와 무관심의 간극을 좁힐 길은 없을까. 성경을 대하는 인식의 간극은 흔히 해석의 오류에서 생겨난다고 한다. 성경 원어의 난해함과 그로 인한 번역이며 풀이의 엇갈림이다. 개신교의 많은 교파가 생겨난 바탕도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을 문학적 텍스트로 본다면 그 간격을 어느 정도는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이어령 박사가 낸 책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열림원 펴냄)는 바로 그 성경 읽기의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이 박사가 이 책에서 도전한 성경 읽기는 다름아닌 성경 속 아이콘을 문화사적으로 풀어내는 시학적 독서법이다. 문학 강의뿐만 아니라 기호학 분야의 걸출한 전문가답게 책에서는 그의 해박한 지식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신학(神學)에서 ㄴ 받침 하나만 빼면 시학(詩學)이 된다.’는 저자는 무엇보다 시나 소설을 읽듯이 성경을 읽으면 어렵던 말들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고 말한다. 성경에는 시학에서 주로 쓰는 수사법이 가득하기 때문에 이를 염두에 두고 읽어야만 성경이 감춰 둔 섬세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성경 속 수사의 깊은 맛을 볼 때 성경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성경을 둘러싼 오랜 갈등과 오류까지 지울 수 있다는 지론답게 책에는 그 ‘성경시학’의 흥미로운 풀이가 넘쳐난다. 예를 들어 주기도문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구절을 보자. 잘 알려졌듯이 영어 성경에는 그것이 일용할 빵(daily bread)으로 돼 있다. 저자는 성경 속 빵은 양식 전체나 의식주의 모든 물질적 생활을 상징하는 제유적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빵처럼 식탁에 매일 오르는 음식물을 어쩌다가 명절 잔칫날에나 먹는 떡으로 옮긴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반문하다. 결국 단어 하나가 아니라 성경의 수사 구조 전체가 망가지고 만다는 오류의 지적이다.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게 더 쉬우니라.’라는 구절의 해석도 흥미롭다. 낙타의 히브리어 표기는 ‘gamla’이고 밧줄은 ‘gamta’인데 두 단어의 철자가 비슷해서 ‘밧줄’을 ‘낙타’로 잘못 번역했다고 설명한다. 결국 저자는 ‘책 뒤에 붙이는 남은 말’에서 “생활과 문화 코드가 다른 사람들이 성경을 읽는다면 어떻게 될까.”라고 물은 뒤 “그 생각을 적은 것이 이 작은 책”이라고 설명한다. 1만 70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은인(恩人)과 보은(報恩)/주병철 논설위원

    사자가 풀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쥐 한 마리가 사자의 머리에서 놀다 코를 건드렸다. 사자가 눈을 번쩍 뜨고 쥐에게 야단을 쳤다. 쥐는 한 번만 용서해 주면 은혜는 꼭 갚는다고 애원했다. 사자는 쥐 같은 짐승이 무슨 은혜를 갚을 수 있겠느냐며 그냥 풀어줬다. 그 후 어느 날 쥐가 산에서 사냥꾼이 놓은 덫에 걸려 꼼짝 못하는 사자를 봤다. 자신을 놓아 준 그 사자였다. 그래서 발을 꽁꽁 묶은 밧줄을 이빨로 끊어 사자가 빠져나올 수 있도록 했다. 작고 힘없는 짐승이라고 얕보았던 사자는 쥐에게 눈물을 흘리며 그가 은혜를 갚은 데에 고마워했다. 이솝우화의 사자와 쥐 얘기다. 채근담에도 은혜의 귀중함을 일깨우는 경구들이 있다. “입은 은혜는 비록 깊을지라도 갚지 않고, 원망은 얕을지라도 이를 갚으려 한다. 남의 나쁜 평판을 들으면 비록 명백하지 않아도 믿으려 들고, 좋은 평판은 사실이 뚜렷한데도 믿으려 하지 않고 또한 의심하나니, 이는 각박하고 경박함이 가장 심함이라. 마땅히 간절히 경계할 일이다.” 은혜를 베푼 은인이 있으면 보은도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죽어 혼령이 되어도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다는 결초보은(結草報恩)의 고사성어가 그런 것이다. 중국 춘추시대 진(晉)나라 위무자(魏武子)의 아들 과(顆)가 아버지의 유언을 어기고 서모를 개가시켜 따라 죽는 것을 면하게 하였더니, 후에 위과가 전쟁에 나가 진(秦)의 두회(杜回)와 싸워 위태로울 때 그 서모의 아버지 혼이 적군의 앞길에 풀을 잡아매 두회를 생포했다고 한다. 정부가 오늘 무역의 날을 맞아 ‘무역 1조 달러’를 일군 영웅으로 한국 수출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한 외국인 4명을 특별히 발굴해 훈·포장을 준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조선산업이 태동하던 1970년대 현대중공업에서 기술자문을 담당한 고(故) 윌리엄 존 덩컨의 유족을 현지 신문 광고와 현지 대사관의 수소문으로 찾아냈고, 아들에게 대신 금탑산업훈장을 수여하게 된 것이다. 무역 1조 달러를 일군 사람들이 이들뿐이겠냐마는 그래도 남의 공을 알아주고, 머리 숙여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함에 박수를 보낸다.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각 나라의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찾아내 보은했으면 한다. 보은만큼 값진 게 있다면 은혜를 베푸는 일일 게다. 경제대국 13위의 위상에 걸맞게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통 큰 은인’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못할 것도 없다. 주병철 논설위원 bcjoo@seoul.co.kr
  • [열린세상] 기회가 있고 변화가 가능한 사회/장제국 동서대 총장

    [열린세상] 기회가 있고 변화가 가능한 사회/장제국 동서대 총장

    최근 우리사회가 극심한 내홍을 겪고 있다. 제도권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있고, 링 밖의 실체 없는 선수들이 주목을 받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제도권에서 발신하는 정보는 곧바로 ‘비아냥’의 대상이 되어 희화화되고 있다. 건전한 비판이라기보다는 ‘허무주의’에 가까운 비웃음이 주를 이룬다. ‘비아냥’ 한마디에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까르르’ 웃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이젠 전혀 낯설지 않다. 우리사회 권위의 중심축이 급속히 비제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제도권은 이 중심축을 다시 돌려놓을 생각은 않고, 오히려 비제도권에 질질 끌려다니며 편승하려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비제도권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그들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주객전도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제도권 입장에서는 참으로 자존심 상하는 일일 것이다. 국민들이 직접 국민의 대표로 뽑아준 사람들은 다름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이기 때문이니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누가 대선에 나오고 안 나오고 하는 것에 있지 않다. 요즘 인기 상한가인 한 사람의 입에 모든 것을 건다면, 그것은 제도권의 몰락을 스스로 재촉할 뿐인 것이다. 제도권 권위 회복의 유일한 길은 뒤숭숭해진 국민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는 것이다. 특히, 젊은 층의 고민을 들을 수 있는 큰 귀를 가지는 것과 그 해결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설명하는 소통이 핵심이다. 그렇다고, 실천하지도 못할 달콤한 말로써 그들에게 ‘아부’나 떨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설픈 ‘아부’는 금방 바닥을 드러낼 것이고, 곧바로 재기불능의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대학에서 근무하다 보니 젊은이들과 만날 기회가 많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겨우 삶을 유지할 수 있는 현재의 처지도 무척 답답하지만, 그보다 지금의 어려움을 잘 감내하고 열심히 하기만 하면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데 더 큰 고민이 있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이를 악물고 열심히 살면 그래도 인생 역전이 가능했던 사회였다. 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현재 우리사회에서 높은 지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그런 인생역전의 주인공들이 아닌가. 지금 이시대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있다. 과거 신분 상승의 지름길이라던 법조계 진출도 이젠 로스쿨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지 못하면 아예 원서도 못 낼 판이다. 대학을 나와도 대학 졸업생에게 걸맞은 ‘폼 나는’ 직장을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가 된 지 오래다. 눈높이를 낮추고 적당한 곳에 취직하라는 말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이미 이들의 눈을 높아지도록 만들어 놓고 어떻게 낮추라고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기회(Chance)라는 단어 바로 밑에 변화(Change)라는 단어가 나온다. 마치 기회가 먼저 주어져야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젊은이들에게 기회라는 밧줄이 주어져야 비로소 그것을 열심히 타고 올라가 자신의 미래를 변화시키겠다는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이다. 밤새 아르바이트에 지쳐 눈이 충혈된 채로 등교하는 학생들을 붙들고 필자는 종종 “힘 내라”고 격려한다. 이들이 내는 힘이 곧 기회가 되고 그것이 자신의 꿈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이토록 열심히 사는 젊은이들이 잘되지 못하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사회인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사회가 지금 처해 있는 암울함에 대해 ‘비아냥’거리며 한가하게 카타르시스 놀음만 하고 있을 때가 결코 아니다. 그런 얼치기만 ‘즐기고‘ 있는 동안, 우리 젊은이들은 정말로 헤어 나오지 못할 구렁텅이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밤낮 허둥대고 있는 제도권 그리고 기고만장의 비제도권이 진정으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한다면, 이들 젊은이에게 보다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는 희망의 정책 비전을 제시하고 당당하게 링 위로 올라와 경쟁해야 할 것이다. 오랜 안개가 걷히고 실체가 드러날 즈음에 또 한번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아야 하는 상황이 올까 심히 두려운 것은 필자만이 느끼는 과도한 걱정일까.
  •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충남 서산 황금산에 오르다

    숲에 이슬을 더해 주는 바다. 가로림만(加露林灣)입니다. 예쁜 이름에 견줘 물살은 여간 사납지 않지요. 가로림만이 품은 여러 절경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 충남 서산의 황금산입니다. 해거름이면 황금빛으로 빛난다는 산. 비록, 체구는 작아도 바다와 만나는 해안가 절벽에 ‘국립공원급’ 절경을 숨겨두고 있지요. 황금산의 자랑은 저물녘 풍경입니다. 보다 정확히는 바닷가 절벽들이 그려내는 적벽도(赤壁圖)입니다. 저물녘 햇살에 바닷가 절벽들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모습은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닙니다. 이제 달력도 달랑 한 장 남았습니다. 산정에서 저무는 해 망연히 바라보고 싶다면 황금산이 좋은 대안이 되겠습니다. 황홀한 해넘이 풍경과 만난 뒤 되짚어 올 때를 대비해 손전등 준비하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봉우리가 아닌 바다를 보러 가는 산 지도를 펴고 가로림만에 초점을 맞추면 꼭 게가 두 집게발을 치켜세운 듯한 지형이 보인다. 아래쪽 집게발은 벌천포(벌말), 위쪽 집게발은 황금산(156m)이 있는 대산읍 독곶리다. 독곶리는 서산의 오지로 꼽히는 대산에서도 끝자락에 있다. 예전엔 독곶리에서 하루 두어 번 오가는 완행버스로 한 시간 이상 걸려 서산으로 나가는 것보다 인근 삼길포에서 뱃길로 인천을 오가는 게 더 편했을 정도였다. ‘독곶’이라는 이름도 ‘외따로 떨어져 있는 곶’(串·바다를 향해 돌출한 지형)이란 의미다. 황금산은 그 외진 땅이 숨겨둔 풍경의 보고다. 산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높이는 낮지만, 풍채만큼은 제법 당당하다. 쉬엄쉬엄 걸어도 4시간이면 둘러볼 수 있다. 황금산 들머리는 이름조차 없는 작은 포구다. 바다 인근의 산을 오르는 길이니 갯마을을 지나는 게 당연할 터. 하지만 일반적인 산행 기점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황금산을 기준으로 한쪽은 풍요로운 가로림만 갯벌, 다른 쪽은 수많은 굴뚝이 서 있는 공업단지다. 포구 앞바다는 더없이 잔잔하다. 바닷가 사람들 표현대로 ‘장판’을 깐 듯하다. 그러나 포구에서 조금만 나가도 물살은 곧 사나워진다. 물살이 갯바위를 찢으며 울부짖는 듯한, 딱 그 느낌이다. 산행은 대부분 황금산 주차장에서 오른쪽 산사면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를 따른다. 하지만 등산로 나무계단이 끝나는 곳에서 좌회전, 먼저 황금산사(黃山祠)가 있는 정상을 오르는 편이 낫다. 원래 등산 코스를 따르면 온 길을 다시 되짚어 내려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황금산은 능선으로 이어진 3개의 작은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늘어선 형태를 하고 있다. 정상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다소 된비알이지만, 숨이 턱에 찰 정도는 아니다. 황금산사는 임경업 장군을 모신 사당. 바로 뒤편엔 정상을 알리는 돌탑이 이정표처럼 서 있다. 여기까지는 다소 밋밋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섣부른 실망은 금물이다. 황금산의 진수는 정상의 봉우리들이 아니라 바닷가 절경들에 있다. 일반적인 산행과 다른 점이다. 황금산을 바다를 보는 산이라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정상에서 자박자박 내려오면 길은 네 갈래로 갈린다. 오른쪽은 원래 등산로에서 올라오는 길, 아래쪽은 금굴과 코끼리 바위 등 해안 절벽으로 내려가는 길, 곧장 가면 헬기장이다. 여기서 해안절벽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이 있던 산’이 ‘금쪽 같은 풍경의 산’이 되다 푹신푹신한 흙길. 게다가 힘들 것 없는 내리막길이다.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대략 유행가 두어 곡쯤 부를 시간, 두 번째 교차로와 만난다. 왼쪽은 코끼리바위, 가운데는 ‘등산로 끝’, 오른쪽은 금굴(堀)로 내려가는 길이다. 여기서부터 풍경이 속도를 내기 시작한다. 그리 높지도, 크지도 않은 산이니 둘러보는 방향을 잘 잡아야 한다. 황금산은 위에서 보고 아래에서 느끼는 게 순서다. 먼저 절벽과 똑같은 높이에서 전경을 휘휘 굽어본 뒤, 아래로 내려가 바닷가 트레킹을 즐기는 게 좋다는 얘기다. 산행의 대미인 해넘이 풍경과 마주할 곳은 코끼리바위가 있는 곳이다. 예서 금굴이 있는 해안까지는 20분이면 닿는다. 금굴은 절벽 아래 뻥 뚫린 해식동굴을 말한다. 금굴해변은 날물 때 가야 제맛이다. 김영숙(51) 서산시 문화관광해설사는 “물 빠진 자리에 드러난 다양한 형태의 갯바위들이 산수화 같은 절경을 펼쳐낸다.”고 전했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금굴 너머 끝골까지 해안트레킹을 즐겨도 좋겠다. 금굴해변에서 왼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오르면 코끼리바위 해변으로 이어진다. 황금산은 이곳부터 숨겨둔 속살을 아낌없이 드러내기 시작한다. 산굽이를 돌 때마다 색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기골이 장대한 절벽들이 해안을 굳건하게 감싸고, 이른바 ‘말 근육’ 같은 절벽 사이사이로 소나무들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다. 낮은 산이란 선입견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 난다. 바다는 또 어떤가. 물색은 푸르고, 갯내는 없다. 파도가 몽돌 사이를 빠져나갈 때마다 ‘차르르’ 소리를 내는데, 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잔잔해진다. ●코끼리 바위 넘어가면 푸른바다·기암·노송이 삼중주 밧줄 타고 코끼리바위를 넘어가면 풍경은 보다 다이내믹해진다. 맑고 푸른 바다와 기암, 노송이 삼중주를 펼쳐낸다. 윽박지르는 듯 서 있는 암벽은 누런 빛깔과 옅은 자줏빛이 뒤섞였다. 해안가 돌들도 마찬가지. 이곳의 풍경은 그야말로 천변만화다. 날씨와 계절, 시간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바뀐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지손가락 곧추세우는 풍경은 해거름에야 드러난다. 저물녘, 햇살이 암벽에 부딪치며 황금빛으로 산란한다. 해안 절벽들이 기다렸다는 듯 한껏 자신의 세포를 부풀리는 게다. 짜릿한 풍경이다. 이를 보는 탐승객의 세포도 소름끼치듯 반응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산, 황금산(黃金山)의 실체다. 예부터 금(金)이 있는 산이라 해서 황금산이라 불렸다던데, 금이 사라진 요즘엔 금쪽 같은 풍경을 캐는 산이란 뜻이겠다. ●‘용유대’(龍遊臺)엔 용의 알(?)이 있다 서산 지역 명소 가운데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곳이 용유대(龍遊臺)다. 광해군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단구자 김적이 자주 뱃놀이를 즐기던 곳. 음암면 유계리 정순왕후 생가에서 용유천변 길을 따라 몇 백m 올라가면 단구대(丹丘臺)다. 붉은 언덕이란 뜻의 너럭바위다. 용유대는 여기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다. 갈대 무성한 용유천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둥그런 바위 7~8개가 몰려 있는 희한한 풍경과 만난다. 말 그대로 용이 놀았다는 곳으로, 둥근 바위는 용의 알이란다. 어찌나 심한 풍화를 겪었던지 모난 곳 하나 없이 달걀처럼 둥글둥글하다. ‘알’들을 감싸고 있는 건 노송(松)들이다. 고아한 풍취의 소나무들이 바위 위에 자라고 있는데, 제법 독특한 정취를 풍긴다. 용의 해인 새해에 여행을 계획한다면 한번쯤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서산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1)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서해안고속도로→송악 나들목→38번 국도 대산·석문 방면→지하차도(북부산업로)→가곡 교차로→대산·성구미 방면 우회전→성구미 삼거리→대산·석문방조제 방면 좌회전→대호방조제 방면 우회전→초락2로 방면 우회전→서산·대산 방면 좌회전→화곡교차로 우회전(29번 국도)→황금산 순으로 간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 나들목에서 대산 읍내를 거쳐 독곶리로 가는 방법도 있다. 맛집 해미읍성 맞은편 읍성뚝배기(688-2101)는 조미료를 쓰지 않은 소머리곰탕(8000원)과 사골설렁탕(700 0원)이 맛있다. 서산시청 뒤 진국집(664-4994)은 토속음식 ‘게국지’로 소문났다. 1인분 6000원. 향토(668-0040)에서는 서산의 전통음식인 우럭젓국과 꽃게장, 게국지를 한자리에서 즐길 수 있다. 주변 볼거리 천수만 버드랜드에서 다양한 겨울 철새와 만날 수 있다. 간월암도 지척이다. 삼길포에선 배 위에서 갓 잡아 파는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포구 뒤 삼길산에 오르면 다도해 같은 서해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 [씨줄날줄] 연환계(連環計)/구본영 논설위원

    ‘연환계’(連環計)는 본래 중국의 고대 병법인 36계 가운데 35번째 계책이다. 이름 그대로 ‘고리를 잇는 계책’이란 뜻이다. 삼국지의 적벽대전에서 촉·오 연합군이 위를 상대로 실전에 사용했다. 촉의 방통이 조조를 속여 위의 선단(船團)을 쇠사슬로 연결하게 만든 뒤 제갈량이 예측한 대로 동남풍이 부는 시점에 화공(火攻)을 펼쳐 대승을 거뒀다. 중국 어선들의 서해 불법 조업이 통제불능 상태로 치닫고 있다. 선단의 규모는 말할 것도 없고 침범하는 우리 영해와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범위도 더욱 넓어지고 있다. 특히 우리 해경의 단속에 맞서 중국 어부들의 흉포한 맞대응이 점점 지능적으로 바뀌고 있다. 종전에도 이들이 도끼나 쇠파이프, 죽봉 등을 휘두르며 저항한 것은 다반사이긴 했다. 근래엔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 방식을 원용하기라도 한 듯이 해경의 승선을 막기 위해 갑판에 날카로운 쇠꼬챙이를 박는 어선도 눈에 띈다고 한다. 급기야 며칠 전 어청도 인근 우리측 EEZ에서 중국 측이 현대판 연환계를 펼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불법 조업 중이던 어선 11척이 모선을 중심으로 서로 밧줄로 묶어 해경의 단속에 맞선 것이다. 이처럼 중국 어부들의 준동이 날로 흉포화·지능화 양상을 띠면서 우리 측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재작년 검문하던 해경 대원이 둔기에 맞아 숨진 사례가 대표적이다. 얼마 전에는 중국 어선들이 제주도 앞바다까지 들어와 불법조업을 하는 것도 모자라 단속하는 해경에 집단으로 저항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제주해경이 불법 조업 어선 한 척을 나포하자 인근의 중국 어선 25척이 몰려들어 방해하는 과정에서 우리 측 해경 5명이 큰 부상을 당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우리 측이 삼국지에서처럼 동남풍을 기다려 화공을 쓸 순 없는 노릇이다.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시장이기도 한 공룡과도 같은 이웃이 아닌가. 그러지 않아도 중국 정부는 한국 측에 “(어부들에게) 문명적 법 집행을 하라.”며 고압적 자세까지 보이고 있다. 외교적 마찰을 우려해 물렁하게만 대응하면 더 큰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팃포탯(Tit-for-Tat)전략’은 국제관계에 적용되는 게임이론이다. 상대국과 협력하되 상대국이 배반하면 즉시 응징하고, 상대가 사과하며 협력한다면 협조 분위기를 복원한다는 게 골자다. 사랑채를 열어줬다 안방까지 내주는 수모를 당하지 않으려면 지금이야말로 단호한 팃포탯 전략을 적용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굴뚝에 껴 10시간 발버둥’ 체포된 멍청한 도둑

    ‘굴뚝에 껴 10시간 발버둥’ 체포된 멍청한 도둑

    굴뚝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려던 10대 도둑이 경찰에 체포됐다. 소년도둑은 굴뚝에 몸이 끼어 10시간 이상 꼼짝달싹하지 못하고 있다가 소방대와 경찰에 구조(?)됐다. 16일(이하 현지시간) 현지 언론에 따르면 굴뚝사건은 미국 애틀란타 노크로스에서 발생했다. 15일 새벽 17세 도둑이 굴뚝을 통해 점찍어둔 집에 들어가려다 몸이 끼어 꼼짝못하는 사고(?)를 당했다. 도둑은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에 의해 같은 날 오후 1시 30분에야 겨우 꿀뚝에서 빠져나왔다. 소방대는 밧줄을 이용해 도둑을 구조했다. 수갑을 찬 도둑은 경찰에 “새벽 3시쯤 굴뚝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장장 10시간 동안 굴뚝에 잡혀 있었던 셈이다. 주민들은 “굴뚝에 사람이 껴 있길래 ‘그곳에서 뭐 하나’라고 물었지만 소년이 ‘난 바보였어, 난 바보였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밝혔다. 소년은 절도미수와 경찰에 거짓말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소년은 구조된 후 가짜 이름을 대는 등 신원을 감추려 했다. 사진=텐뉴스 서울신문 나우뉴스 해외통신원 손영식 voniss@naver.com
  • 톱날 달린 ‘제임스본스 시계’ 낙찰가는 얼마?

    톱날 달린 ‘제임스본스 시계’ 낙찰가는 얼마?

    제임스본드 시계가 스위스 경매에서 우리 돈으로 2억여원에 낙찰돼 화제다. 주요외신에 따르면 지난 14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서 영화 007 시리즈 제8탄 ‘죽느냐 사느냐’에서 제임스 본드 역의 로저 무어가 착용했던 롤렉스 시계가 21만 9000스위스프랑(약 2억 7000만원)에 낙찰됐다. ‘죽느냐 사느냐’ 미술담당 시드 케인이 1972년 채택한 이 제임스본드 시계는 롤렉스 사의 다이버용 시계인 서브마리너의 한 종류(Ref. 5513)로 알려졌다. 영화 속 제임스 본드는 이 시계 테두리에 있는 회전 톱날로 밧줄을 끊어 상어로부터 여주인공을 구해낸다. 당시 경매는 39개국에서 모인 222명의 구매자가 모인 가운데 9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이 제임스본드 시계는 오전 출품되자마자 거의 바로 낙찰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경매의 하이라이트는 제임스본드 시계만이 아니었다. 세계 최고가 시계로 잘 알려진 스위스 시계 장인 파텍 플립이 1968년 제작한 한 종류(Ref. 3448)가 애초 예상 낙찰 가격을 두 배 이상 넘긴 209만9000 스위스 프랑(약 26억원)에 낙찰돼 주목을 받았다. 이 시계는 희귀한 핑크골드 색상에 캘린더와 낮과 밤을 알 수 있는 달 문양이 그려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사진=크리스티닷컴(제임스본드 롤렉스 Ref. 5513, 파텍플립 Ref. 3448)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진흙늪 빠진 ‘코끼리 모자’ 극적 구출 감동

    ▶사진 보러가기 진흙 늪에 빠진 코끼리 모자를 구출하는 모습이 공개돼 감동을 주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매체 원더러스트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아프리카 잠비아의 한 자연공원 내에 있는 늪지대에 어미와 아기 코끼리가 빠져 보호단체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일 늪지대에 빠진 어미와 새끼 코끼리를 주위를 서성이던 동료 코끼리들이 발견했다. 그 코끼리 가족은 카파니 늪에 빠진 코끼리 모자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늪의 진흙은 빠르게 말라 구할 수 없었다. 이에 사파리 측은 남부 루왕과 보호협회(SLCS), 잠비아 야생동물보호국(ZAWA)와 함께 이들 코끼리 모자를 구조하기로 합의했다. 합동 구조대는 우선 새끼 코끼리를 먼저 구하기로 했다. 이들은 숙련된 솜씨로 새끼의 몸에 밧줄을 걸었고 늪지대에서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 새끼 코끼리는 잔뜩 겁을 먹고 어미 곁을 떠나지 않으려고 발버둥쳤다. 우여곡절 끝에 아기 코끼리는 구조대의 손에 끌려나오다시피 구출됐고 이내 사촌으로 보이는 다른 코끼리가 소리를 내 부르자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진흙은 거의 말라 어미 코끼리는 거의 탈진한 상태였다. 구조대는 이 거구의 코끼리를 구하기 위해 트랙터를 동원했다. 밧줄을 건 뒤 조금씩 끌어냈고 어미 코끼리 역시 안간힘을 써서 겨우 늪지대에서 빠져나와 서둘러 자신의 새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에 대해 사파리 측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자연보호론자가 자연의 질서에 간섭하는 것을 꺼리지만 우리는 위기에 빠진 동물 구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들 사파리 내 구조팀은 이처럼 덫에 걸린 동물을 구조할 뿐 아니라 정기적으로 취약지역을 순찰하거나 덫을 제거하는 등 밀렵을 방지하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승마 달인 보고 와~

    한국마사회 제주경마본부는 오는 15∼16일과 22∼23일 제주경마공원과 도 일원에서 ‘2011 제주마 축제’를 연다고 10일 밝혔다. 축제 첫날에는 총상금 6000만원을 걸고 한국 승마의 최고수를 가리는 세계 최장거리 레이싱대회인 ‘2011 전국 Open Horse Racing 대회’가 펼쳐진다. 제주시민복지타운 일대에서 제주마와 목사행렬 거리퍼레이드, 조선시대 말을 진상하기 위해 공마를 선발하는 장면을 재연한 마당놀이, 개막식, 유명가수가 출연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기원 가을콘서트 등이 이어진다. 둘째 날과 넷째 날에는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출발해 회천동 잣성, 가시리 공동목장, 축산진흥원 목마장, 하가리 잣동네를 돌아보는 마문화탐방 행사 등이 열린다. 주행사장인 제주경마공원에서는 마상무예와 마상쇼를 비롯해 제주마 밧줄걸기, 말등에 올라타기, 말캐릭터 공모대회, 목마만들기, 편자 던지기, 말모양 토피어리 만들기 등 갖가지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제주마 사진전과 제주마 자료전시회, 말을 소재로 만든 향장품과 가죽제품 전시회 등이 마련된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남해 최고 전망대’ 경남 하동 금오산

    ‘남해 최고 전망대’ 경남 하동 금오산

    깜짝 놀랐습니다. 이런 곳도 있었나 싶었습니다. 바다를 등에 지고 입에서 단내 나도록 발품을 팔아야 오를 수 있었던 그 산은 참 빼어난 풍경으로 그간의 노고에 대해 듬뿍 보상을 해줬습니다. 산정에 서서 이제야 이 같은 풍경을 찾은 과문함을 자책했던 것 또한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는 최고의 남해 전망대, 경남 하동 금오산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빛깔 고운 북천역 코스모스까지 만나고 오신다면 단언컨대, 모자람 없는 초가을 여행이 되실 겁니다. ●쪽빛 바다 등지고 오르는 길 금오산은 ‘쇠 금’()에 ‘자라 오’(鰲) 자를 쓴다. 경북 구미, 전남 여수에도 같은 이름의 산이 있다. 산 자체의 아름다움이나 명성 등에서는 구미, 여수의 금오산이 한참 앞서지만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의 깊이를 견주자면 하동의 금오산을 앞줄에 세워야 한다. 금오산 전망의 백미는 바다 쪽이다. 지리산의 연봉들이 물결치는 북쪽 사면도 좋지만 남해 쪽빛 바다를 죄다 두 눈에 담을 수 있는 남 사면이 훨씬 매혹적이다. 하동 옥산에서 분기한 산줄기가 섬진강 만덕포구로 빠져 들기 직전 한 차례 솟구친 산이 금오산이다. 고도는 해발 849m. 북쪽으로 해발 1000m를 훌쩍 넘는 고봉들이 즐비한 하동 땅에서 금오산의 높이야 그리 대단할 게 못 된다. 하지만 등산을 할 경우는 얘기가 달라진다. 바다를 끼고 있어 해발고도 0m부터 올라야 한다. 여느 1000m급 고봉에 견줄 만큼 힘든 것도 그런 까닭이다. 산행 들머리는 진남면 중평리의 청소년수련원 주차장이다. 수련원 오른쪽의 계곡길을 따라 5분 남짓 오르면 약사암 갈림길이다. 길 왼쪽으로 약 25분가량 올라가면 다시 석굴암 갈림길과 만난다. 어느 쪽으로 가도 정상에 오를 수 있으나 대부분 왼쪽 능선을 따라 오른 뒤 오른쪽 능선으로 내려오는 코스를 선호한다. 왼쪽 길을 따르면 곧 된비알이다. 경사면에 나무 계단을 깔아 뒀다. 오르기는 쉬우나 단조롭고 지루한 게 흠. 입에서 단내가 폴폴 날 때쯤이면 달바위에 닿는다. 예까지는 채 한 시간이 안 걸린다. 달바위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도 예사롭지는 않다. ●걸개그림 같은 남해 풍경 달바위 조금 위쪽은 임도다. 아랫마을 고룡리와 연결된 포장도로다. 임도를 따라 5분 정도 걸어가면 ‘금오산’(鰲山)이 음각된 정상석이 나온다. 옛 이름인 ‘소오산’도 함께 새겨져 있다. 정상석 맞은편 나무 덱이 있는 곳은 해맞이 공원. 그 아래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수려한 풍경이 일망무제로 줄달음친다. 왼쪽으로 고전 ‘토생전’의 배경이 된 비토섬 등 사천의 섬들이 바둑알처럼 물 위에 떠 있고, 오른쪽으로는 하동 너머 광양 등 남도의 섬들이 줄을 잇고 있다. 물빛은 어찌나 고운지 더도 덜도 아닌 딱 옥빛이다. 눈앞에 거대한 걸개그림 하나가 떡하니 버티고 선 형국이다. 금오산 정상은 한국통신 중계탑이어서 오를 수 없다. 그 바로 아래 헬기장이 발로 오를 수 있는 사실상의 정상이다. 해맞이 공원을 돌아본 뒤 고룡리 방향 임도를 따라 KT기지국까지 내려가 보는 것도 좋겠다. 지리산 등 내륙의 산들이 마루금을 좁힌 채 내달리는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나무 덱에서 하산길로 접어들면 왼쪽으로 너덜지대가 장관을 이룬다. 예서 15분쯤 내려가면 봉수대다. 고려 헌종(1149) 때 설치됐다고 전해진다. 과거 봉수대 파수꾼들이 사용하던 거처인 석굴암은 지금은 불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볼품없는 집이지만 전망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다. 오른쪽 비탈길을 가는가 싶다가 왼쪽 능선을 따라 곧장 내려간다. 곳곳에 밧줄이 설치돼 있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르다. 계곡을 따라 왼쪽으로 누운 폭포(와폭)와 소류지 등을 줄줄이 지나면 하동청소년수련원(055-880-2771)이다. 일반인도 예약을 하면 숙박할 수 있다. 일출 산행을 목표로 삼았다면 하루를 묶는 것도 좋겠다. 수련원 왼쪽은 경충사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혁혁한 공을 세운 정기룡 장군의 사당이다. 금오산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은 차로도 쉬 오를 수 있다는 것. 고룡에서 포장도로를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6.3㎞를 오르면 산정에 가 닿는다. 길은 매끈한 편. 하지만 폭이 좁다. 굽어진 각도 또한 급한 편이어서 늘 마주 오는 차와 비켜 갈 장소를 염두에 둬야 한다. ●여기는 한들한들 코스모스역입니다 이 계절 하동 여행에서 잊지 말고 찾아야 할 곳이 경전선 북천역이다. 하동과 사천의 어름에 있다. 경남 밀양 삼랑진역과 광주 송정역 사이 300.6㎞ 구간을 5시간 30분 동안 달리는 ‘느림보 열차’, 경전선의 한 역이다. 하루 이용객이 평균 20명 남짓한 북천역이지만, 가을만 되면 무려 3000명에 가까운 승객들이 몰리고 주변 도로가 정체를 빚는다. 원인은 딱 하나, 코스모스다. 하동군은 2007년 역사가 있는 직전리 일대 31㏊에 대규모 코스모스·메밀꽃밭을 조성했다. 경관직불사업을 통해 지역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경관직불사업은 논에 벼 대신 경관 화초를 심고, 농민들에게 소득을 지원해 주는 사업이다. 그런데 이 사업이 ‘대박’을 터뜨렸다. 이듬해엔 명성을 타고 역 이름도 ‘북천코스모스역’으로 바꿨다. 올해도 직전리 남바구 들녘 등 약 40㏊에 코스모스와 메밀꽃을 심었다. 하동에서 고개 넘어 사천 가는 코스모스길 너머 북천역이 보인다. 단층 슬래브 지붕을 인 전형적인 시골 간이역이다. 핑크빛 바탕에 잠자리와 코스모스 그림으로 멋을 냈다. 스피커에서는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 나온다. ‘코스모스 피어 있는 정든 고향역’으로 시작되는, 저 유명한 나훈아의 ‘고향역’이다. 역 구내는 온통 코스모스 일색이다. 역사와 철길 주변, 멀리 남바구 들녘까지 형형색색의 꽃술들이 하늘거린다.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은 가까이 갈수록 더 명료해진다. 맑고 깨끗한 빛깔과 가녀린 선은 쉬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북천역 관계자는 10월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 코스모스를 볼 수 있다고 전했다. 역 인근의 ‘이병주 문학관’과 청학동, 삼성궁 등도 둘러보는 게 좋겠다. 글 사진 하동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금오산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진주 분기점→남해 고속도로→진교 나들목 우회전→2.2㎞→고룡교→금오산 순으로 간다. 북천역은 진교 나들목에서 좌회전해 청학동 이정표를 보고 계속 간다. 북천역 883-7788. ▲맛집 화개면 쌍계사 입구의 단야식당(883-1667)은 사찰국수(7000원, 2인 이상)로 유명한 집.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들깨가루와 버섯 등을 재료로 해서 만든다. 재첩국은 청송회식당(883-2485)과 혜성식당(883-2140), 부흥재첩식당(884-3903), 하옹촌(883-8261) 등이 알려졌다. ▲잘 곳 화개면 용강리 쉬어가는 누각(884-0151∼2)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굿 스테이’ 숙박업소. 건물 앞쪽으로 섬진강 상류의 계곡물이 흐르고, 맞은편 산자락에는 야생차밭이 펼쳐져 있다. 수류화개(882-7706)는 화개천을 내려다보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한옥 펜션. 화개장터에서 5분 거리다.
  • [내 안에 다른 軍 있다] (중)육군, 바다 위에서 땅을 지킨다

    [내 안에 다른 軍 있다] (중)육군, 바다 위에서 땅을 지킨다

    ‘배 타는 군인이라고 다 해군은 아니다.’ 바다 위에도 육군이 있다. 반잠수정이나 소형 함정을 타고 들어와 은밀히 뭍으로 스며드는 적을 바다 위에서부터 감시하고 저지하기 위한 경비정 부대가 ‘육군 속 해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삼면의 바다와 맞대고 있는 육군 사단별로 2~3척씩 배치된 ‘육군 경비정’(육경정) 부대가 바로 연안 방어의 최전선을 맡고 있는 첨병들이다. 수백t급 고속정에서부터 수만t급 이지스함까지 갖추고 있는 해군 전력에 비해 육군 경비정은 초라하다. 고작 20여t급에 불과하다. 초라한(?) 규모 때문에 때론 ‘종이배’라는 비아냥 소릴 듣기도 한다. 하지만 덩치 큰 함정들이 엄두도 못 낼 낮은 수심의 연안 안쪽 구석구석까지 샅샅이 살피고 막아낼 수 있는 함정이나 군은 국군을 통틀어 육군 경비정 부대가 유일하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해 관직에 오른 뒤 삼도수군통제사가 됐듯이, 육군으로 입대해 한반도의 연안을 지키는 이들이야말로 ‘이순신의 후예들’이 아닐까. 지난 22일 3시간 30분 동안 동서를 가로질러 강원 동해 해군 1함대 사령부를 찾았다. ‘육군 속 해군’인 육군 23사단 소속 육경정 ‘철벽3호(PBR15)’가 이곳에서 더부살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철벽3호와 마주친 순간 실망이 앞섰다. 수천t급 초계함과 구축함 한쪽으로 정박돼 있는 철벽3호는 과장(?)된 이름과 달리 조각배 수준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옆에 정박돼 있는 KDXⅠ급(4500t) 구축함의 선체길이가 130m, 초계함(2000t급) 길이가 80m인 것에 비해 철벽3호는 16m밖에 안 됐다. 외관이 함정 고유 색깔인 회색으로 페인트칠이 돼 있고, 경비정 앞뒤로 12.7㎜ 기관총 K6와 M60을 달고 있어 그나마 ‘군 티’가 났다. 철벽3호 정장 박춘연 상사가 기자의 이런 실망스러운 눈빛을 의식했는지 “작지만 빨라서 기동 매복과 정찰에 더 효율적이다.”라고 위로했다. 한데 박 정장의 위로가 아니더라도 기자의 선입견은 곧 무참히 부서졌다. 박 정장의 긴급 출항 명령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승조원 병사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면서부터다. ●“출항” 복명복창에 바다 갈라 박 정장이 육경정 내부 마이크를 통해 “출항 준비!”라고 외치자, 병사들이 “출항 준비!”라고 복창하며 신속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명자켓을 먼저 갖춰 입은 병사들은 미리 방풍 안경을 달아놓은 방탄헬멧과 개인화기를 챙겼다. 순식간에 개인 장구를 갖춘 병사들이 곧이어 각자 위치로 흩어져 항구에 묶여 있던 밧줄을 풀어내자 이번엔 박 정장이 “출항!”이라고 외쳤다. 역시 “출항!”이라고 복창한 병사들은 함수·함미 둘로 흩어졌다. 함수 쪽 K6 사수와 부사수는 함수창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 사격 자세를 취했다. 함미 쪽 역시 M60 사수들이 재빠르게 자세를 갖췄다. 이윽고 철벽3호는 날렵하게 접안지역을 빠져나와 파란 바다에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작전 구역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박 정장은 “철벽3호는 최고 35노트(시속 65㎞)의 속도로 신속하게 작전지역에 투입될 수 있다.”면서 “또 K6는 철갑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북한 특수전부대를 남침시킬 때 사용되는 반잠수정이나 소형 경비정과 맞닥뜨릴 경우 즉각적인 타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전우애로 해안을 지킨다 육경정 승조원들은 정장을 포함해 6명씩 2개팀으로 운용된다. 1개팀이 하루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나면 다른 팀과 교대하는 방식이다. 특히 해 뜨기 전이나 일몰 후 취약 시간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경계에 나서야 한다. 한밤중에도 해상의 바위섬에 정박해 놓고 뜬 눈으로 지새우며 매복 작전을 벌인다. 풍찬노숙도 다반사다. 해상 작전 중 갑작스레 기상이 나빠지면 가까운 항구로 피항해야 한다. 경비정을 버리고 뭍으로 오를 순 없는 노릇이니 선창 아래 작은 침대들이 놓인 좁은 공간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한다. 이런저런 병영생활에 대해 듣다 보니 일과가 너무 빠듯해 보인다. 해상 정찰 시간이 많아 교육훈련이나 정비할 시간조차 부족하다는 불만도 있다. 해군이 아닌 육군이다 보니 해상 근무에 대한 기초 훈련 프로그램이 마땅치 않아 숙련병이 제대해 버리면 공백도 크다. 박 정장은 “다른 육군 부대에 비해 규모는 훨씬 작고 해군 기지에서 더부살이를 해야 하는 설움도 있지만, 도리어 승조원 간 유대관계는 더 깊다.”면서 “빠듯한 임무에도 서로 다독이며 해안 경계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해 홍성규기자 cool@seoul.co.kr
  • 자유 찾아 사선을 넘다 동독 탈출 40년의 기록

    자유를 향한 질주, 인간성을 되찾기 위한 투쟁. 탈출을 이렇게 정의할 수 있겠다. 유사 이래 수많은 이들이 탈출을 통해 자유의 땅을 밟았다. 북한 주민의 ‘탈북’처럼 베를린 장벽이 존재했던 동독에서도 40년간 탈출이 잇따랐다. 인구 1700만명의 20%가 넘는 350만명이 총알이 빗발치는 사선(死線)을 넘었다. 서울신문 베를린 특파원과 사회부장, 출판국장을 거치며 30년간 일선을 누빈 언론인 이기백씨가 동독 탈출의 기록, ‘공화국 탈출’을 엮어냈다(에세이퍼블리싱 펴냄). 땅굴, 열기구, 장갑차, 수중스쿠터, 잠수정 등을 이용한 흥미로운 탈출 사례가 책에서 눈을 쉽게 떼지 못하게 한다. ‘도쿄 작전’은 1964년 10월 베를린장벽 10m 아래 지하에 길이 145m의 땅굴을 뚫어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처럼 사흘 동안 동독인 57명이 탈출한 작전의 암호명이다. 당시 24세의 법대 학생으로 이 작전을 기획하고 탈출한 슈렌부르크(70) 박사는 “장벽 설치는 반인간적인 중대한 범법행위였다.”고 말한다. 1979년 9월의 어느 날 새벽 1시 30분 슈트렐칙과 베첼 일가족 8명은 열기구를 타고 동독을 탈출했다. 한번의 실패 후 재시도한 ‘야간 비행’에서 그들은 무사히 서독 남부 바이에른주의 나이라에 안착할 수 있었다. 베트케 3형제가 차례로 동독을 탈출하는 데는 15년이나 걸렸다. 첫째 인고는 1975년 5월 한밤중에 공기 매트를 타고 엘베강을 건넜다. 둘째 홀거의 탈출은 홍콩 영화의 한 장면 같다. 1983년 4월 어느 날 홀거는 동베를린의 한 건물에서 서베를린의 건물로 밧줄을 연결한 화살을 쏘아 강철 로프를 연결했다. 이 로프를 타고 장벽을 넘는 데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셋째 에그벨트의 탈출은 더 극적이다. 1989년 5월 먼저 탈출한 두 형이 경비행기를 몰고 동베를린으로 넘어가 동생을 태우고 온 것이다. 버스 사업을 하는 한스 바이드너가 탈출한 때는 1962년 크리스마스였다. 2차대전 때 탱크 운전병이었던 그의 아이디어는 버스를 장갑차로 개조하는 것이었다. 개조된 장갑차로 국경을 넘어 돌진할 때 경비병들은 총을 쏘아댔으나 철판을 뚫지는 못했다. 뵈트거는 소형 엔진에 스크루를 연결한 수중스쿠터를 직접 만들어 1968년 9월 바닷물을 가르고 서독으로 탈출했다. 그가 제작한 수중스쿠터는 발명품으로 인정돼 오늘날 다양한 수상스쿠터로 개발, 이용되고 있다. 같은 체제였지만 동독은 북한보다 덜 억압적이었다. 제한된 동서 왕래도 있었다. 북한 주민의 탈출 열망은 동독인들의 그것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북한 탈출에 성공한 사람은 현재 2만명 정도다. 이 책은 탈북이라는 말에 무감각해져 가는 우리에게 탈출과 자유, 그리고 통일에 대한 생각을 다시 일깨워 준다. 1만 8000원. 손성진 사회 에디터 sonsj@seoul.co.kr
  • 12살아들 매달아 ‘몽둥이 찜질’한 中부모

    길거리 한복판에서 어린 아들을 매달아 구타한 부부의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18일 중국 상하이 데일리가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4일 오전 11시30분께 상하이 푸동시 주택가에서는 한 중년 남성이 12살 된 아들을 철재 구조물에 매달아 30분 동안 둔기로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유는 그의 아들이 300위안(한화 약 5만원)에 달하는 집세를 훔쳐 비디오 게임을 하는데 모두 썼기 때문. 이들 부부는 이 지역에서 폐가전제품을 모아 생계를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남성은 아들을 집 밖으로 끌고 나와 2m 높이의 철봉에 밧줄로 동여매고 매질을 시작했으며 그의 부인 역시 동조했다고 사건을 목격한 이웃들은 전했다. 한 목격자는 “그 소년은 다신 그러지 않겠다고 소리를 질렀다.”면서 “그의 부모는 정말로 아들이 맞아 죽길 원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전했다. 추후 남성은 때리던 채찍을 버리고 나무 몽둥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이에 사람들이 개입해 말렸지만 그는 “아들을 교육 시키고 있다. 당신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고 소리치면서 몽둥이질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한 지역 신문기자가 접근해봤지만 그 남성은 “내 아들을 훈육하는데 뭐가 문제냐?”고 반박했다. 급기야 경찰이 도착하고 나서야 매질을 중단했다. 소년은 다리에 부상을 입었지만 이들 부부는 경고 조치만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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