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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점심,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것

    [정종수의 풍속 엿보기] 점심,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것

    코로나19로 점심 풍경도 사뭇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도시락을 싸 오거나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직장의 권유로 싸지 않던 도시락을 쌌다. 오늘은 점심으로 뭘 먹을까 하는 고민은 덜었지만 집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하다. 보통 점심이란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음식이다. 아침과 저녁은 때와 끼니의 의미까지 가졌지만, 점심은 오직 끼니만을 일컫는다. 점심은 본래 두 끼를 먹던 중국에서 아침과 저녁 사이에 드는 간단한 식사로, 시장기가 돌 때 마음에 점을 찍고 넘겼다는 뜻과 한 끼 식사 중 다음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에 간단하게 먹는 음식이란 의미를 뜻했다. 요즘은 어떤가. 아침은 임금처럼, 점심은 양반처럼, 저녁은 거지처럼 먹으라는 말이 있지만, 거꾸로 아침은 굶거나 적게 먹고 오히려 점심과 저녁은 더 푸짐하게 먹는다. 원래 점심은 글자 그대로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 조금 먹는 음식으로, 낮에 먹는 끼니 혹은 선승들이 배고플 때 아주 조금 먹는 음식 등을 가리킨다. 요즘처럼 정식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소식으로 가볍게 먹는 것을 이른다. 당나라 때에는 점심을 이른 새벽이나 아침 혹은 낮 12시를 전후해 드는 간단한 소식으로, 기가 흩어졌을 때 마음을 새롭게 하는 다과류를 가리켰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스님들이 새벽이나 저녁 공양 전에 뱃속에 점하나 찍을 정도로 간단히 먹는 음식’을 말한다. 또한 간단한 간식을 뎬신(點心)이라 하고, 우리의 점심 식사에 해당하는 말은 우판(午飯)이라 한다. 우리나라에서 점심이란 용어의 첫 등장은 조선조 태종 6년(1406)이다. 태종은 심한 가뭄이 계속 들자 각 관아에 점심을 중지하라는 명을 내렸다. 여기서 점심이란 간단한 간식을 이른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후기 성호 이익 선생도 “이른 새벽에 소식하는 것이 점심이고 한낮에 많이 먹는 것을 점심이라 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라고 했다. 주자의 ‘가례’에 “주부가 새벽참을 드린다는 것은 소식을 말하는 것으로 곧 세속에서 말하는 점심을 가리킨다. 비록 오찬이라도 소식만 하면 점심이라 칭해도 된다”고 했다. 임진왜란 중에 오희문이 쓴 일기 ‘쇄미록’에서도 간단히 먹는 것을 점심이라 쓰고 푸짐하게 먹는 경우를 주반(晝飯), 즉 ‘낮밥’이라며 점심과 구분했다. 궁중에서도 아침저녁에는 ‘수라’를 올리고 낮에는 다과나 국수로 ‘낮 것’을 차렸다고 했다. 오늘날 우리가 낮에 푸짐하게 먹는 오찬(午餐), 즉 점심은 굳이 옛날로 따지자면 낮밥이지 점심이 아니다. 지금이야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를 먹지만 점심은 불과 100여년도 채 되지 않았다. 목천 현감 황윤석이 52세 때 쓴 1780년 4월 1일자 일기 ‘이재난고’에 따르면 “식사는 보통 하루에 두 번 먹는데 배가 고프다. 배가 고파 춘분부터 추분 이전까지는 부득불 속례에 따라 세끼를 먹었다”고 했다. 1790년대 실학자 이덕무도 조선인은 아침저녁으로 5홉씩 하루에 한 되를 먹는다고 했다. 19세기 중엽 실학자인 이규경도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해가 짧아지는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다섯 달 동안은 아침저녁 두 끼만 먹고 농사철이 시작되는 2월부터 8월까지 일곱 달 동안은 점심 포함해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했다. 1916년 일본군 군의관들이 북부 지방의 생활을 기록한 ‘조선의 의식주’에서도 한국인의 식사 횟수는 지방에 따라, 계절에 따라, 경제력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하루 두 끼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아침저녁으로 먹는다고 하여 식사를 ‘조석’(朝夕)이라 했다. 농촌에서는 노동력에 따라 하루에 먹는 끼니 수가 달랐다. 필자가 어렸을 적 모내기나 김매기, 타작과 같이 힘든 일을 할 때는 하루에 다섯 끼를 먹었다. 일이 시작되기 전 먹는 밥을 아침밥, 10시에서 11시쯤 먹는 밥을 아침 저밥, 오후 2시에서 3시쯤 먹는 밥을 ‘저녁 저밥’, 일을 마치고 먹는 것을 저녁밥이라 했다.
  • [박성국의 인터미션] 지구적 위기 속 예술이 반짝인 방식

    [박성국의 인터미션] 지구적 위기 속 예술이 반짝인 방식

    #1. 1912년 4월 14일 밤 11시 40분. 영국 사우샘프턴을 출항해 미국 뉴욕으로 향하던 초호화 여객선이 빙산과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여객선은 서둘러 구명정에 탑승하려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 됐다. 비명과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 선율이 흘러나왔다. 바이올리니스트 월리스 하틀리와 밴드 단원 7명이 선사한 연주였다. 이들은 죽음이 다가오는 상황에도 겁에 질린 승객들을 위해 끝까지 악기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이들의 이야기는 훗날 영화 ‘타이타닉’을 통해 재조명됐다. #2. 1980년대 초반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 극심한 가뭄이 이어지면서 굶어 죽는 아이들과 난민들이 속출했다. ‘제3 세계’라는 서구 열강적 시각 속에 이들을 향한 도움의 손길조차 없었다. 그러나 우연히 TV 프로그램을 통해 이들의 소식을 접한 영국 가수 밥 갤도프는 어린아이들의 죽음을 애도하고 기아와 난민 문제에 무관심한 국제사회에 분노했다. 곧 뜻을 함께하는 동료 가수들과 ‘밴드 에이드’라는 이름으로 모여 자선음반 ‘그들도 크리스마스를 알까?’(Do They Know It´s Christmas?)를 발매하고 에티오피아 구호 활동을 시작했다. 이는 이듬해인 1985년 7월 13일 범지구적 록페스티벌로 확대됐다. 영국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과 미국 필라델피아 존 F 케네디 스타디움에서 열린 자선공연 ‘라이브 에이드’(Live Aid)에는 각각 7만 2000여명과 9만여명의 관중이 모였고, TV 중계로 전 세계 160개국 15억명이 함께 노래했다. 록밴드 ‘퀸’은 이 공연을 통해 제2의 전성기를 알렸다. 이 장면은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조명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2018)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클래식부터 대중가요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기쁨과 슬픔의 순간에는 언제나 음악이 함께했다. 음표와 가사로 다양한 감정을 옮긴 음악은 집단적 고난과 위기의 상황에서 연대와 화합의 힘을 발휘해 왔다. 음악을 비롯한 예술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이미 23만 7000여명이 목숨을 잃는 등 범지구적 위기 속에서 다시 마법 같은 힘을 내기 시작했다. 집단적 우울과 불안에 빠진 인류를 위로하고 하나로 묶는 치유와 연대의 힘 말이다.지난달 18일 미국과 영국, 한국 등 세계 각지에서 유튜브 등 영상으로 대규모 온라인 자선 콘서트 ‘원 월드: 투게더 앳 홈’(One World: Together At Home)이 진행됐다. 이 공연에는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를 비롯해 롤링스톤스, 엘턴 존, 스티비 원더, 셀린 디옹, 테일러 스위프트, 빌리 아일리시 등 세계 팝의 전설과 현시대 최고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하며 ‘2020년 라이브 에이드’라는 반응이 나왔다. 폴 매카트니는 노래에 앞서 “우리는 이것(코로나19)과 싸우기 위해 함께해야 한다. 우리의 지도자들에게 전 세계의 건강관리 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래야 이런 위기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호소했다. 이날 공연에선 608억원 규모의 코로나19 기금이 모였다.세계적으로 명성을 인정받는 거장과 가장 빛나는 별로 떠오른 젊은 연주자 등 클래식 음악가들은 과거 타이타닉의 악사들처럼 사람들을 위로하고 희망을 선사하기 위해 관객 한 명 없는 텅 빈 공연장 무대를 지키고 있다. 베를린 슈타츠카펠레의 종신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은 지휘봉을 잠시 내려놓고 피아니스트로 돌아가 시대의 불안과 고통을 어루만졌고, 티켓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가 된 피아니스트 조성진도 최근 영상으로 세계의 관객들과 호흡했다. 공연마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언어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희망을 이야기했다. 뮤지컬 제작자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매주 자신의 작품 1편씩을 공개하는 유튜브 채널에는 공연마다 수억원의 코로나19 기금이 쌓이고 있다. 이처럼 코로나19로 불안과 공포에 떨던 세계 시민들은 이를 떨쳐내고 극복하기 위해 지역과 인종을 초월해 하나로 뭉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연대 속에는 음악과 예술이 있다. 전대미문의 지독한 감염병은 역설적이게도 인류에게 음악과 예술이 필요한 이유를 증명하고 있다. psk@seoul.co.kr
  • 돌밥돌밥에 지친 주부들 “설거지 스트레스 다 씻어주렴”

    돌밥돌밥에 지친 주부들 “설거지 스트레스 다 씻어주렴”

    코로나·맞벌이 증가로 위생가전 약진 시장 규모 2년 새 9만→30만대 급성장 가전업계 새 모델들로 시장 선점 경쟁 삼성, 12인용 출시로 대용량 수요 공략 SK매직 ‘트리플케어’ 호조 1위 굳히기 LG, 100℃ 스팀 기능으로 주도권 노려코로나19 속 위생가전들의 약진이 눈부신 가운데 최근 독보적인 판매 성장세를 보이는 가전이 있다. 온라인 개학, 재택근무 등으로 매일 반복되는 ‘돌밥돌밥’(돌아서면 밥하고 돌아서면 밥한다는 신조어)에 지친 주부들, 맞벌이 증가로 가사노동을 덜어 줄 가전을 눈여겨보는 신혼부부들에게 ‘필수가전’으로 선택받고 있는 식기세척기다. 식기세척기의 인기는 최근 제조업체와 유통업체들이 내놓는 1분기 판매 수치에서 여실히 확인된다. 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지난해 내놓은 한국형 식기세척기는 지난 1분기 판매 규모가 전년 동기보다 2.8배 늘었다. 식기세척기 시장에서 점유율 50%를 차지하며 1위 업체로 꼽히는 SK매직에서도 지난 1분기 식기세척기 판매량이 전년 동기보다 160% 증가했다. 최근 전자랜드의 1분기 가전제품 판매량 분석에서도 식기세척기는 전년 동기 대비 448%로 월등한 판매량 증가를 기록했다. LG전자는 지난해 3월 출시한 디오스 식기세척기에 대한 수요가 늘자 지난 1월 말 창원 공장의 식기세척기 생산능력을 전년보다 2배로 대폭 늘렸다.이에 따라 식기세척기 시장은 파죽지세로 몸집이 커지고 있다. 가전업계에서는 2018년 9만대가량에 불과했던 시장 규모가 지난해 성능이 향상된 신제품들의 릴레이 출시로 20만대로 급성장한 데 이어 올해는 30만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주요 업체에서 새 모델을 잇달아 선보이거나 출시할 계획을 밝히면서 앞으로 시장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8인용(2~3인 가구용) 식기세척기를 내놨던 삼성전자는 최근 12인용(3~4인 가구용) 한국형 식기세척기를 새로 공개하며 대용량 수요까지 흡수할 채비를 마쳤다. 지난 1월 내놓은 ‘트리플케어 식기세척기’로 출시 2개월도 채 안 돼 1만대를 판매한 SK매직 측은 “신제품에 대한 호응이 높아 올해 안에 ‘트리플케어 식기세척기’ 대용량 버전도 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식기세척기의 세척력이 손설거지보다 떨어진다는 인식이 많았으나 최근 1~2년 새 오목한 밥그릇, 국그릇 등 한국형 식기에 맞게 세척, 살균 등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제품이 쏟아지며 판매가 급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LG전자가 지난해 이지현 부산대 교수팀과 함께 ‘식기세척기와 손설거지 비교 행동 연구’를 진행한 결과 디오스 식기세척기의 세척력이 손설거지보다 26% 더 뛰어나다는 결과가 도출되기도 했다. 최근 SK매직은 세척, 건조, 보관까지 식기를 한번에 손쉽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운 트리플케어 식기세척기를 홈쇼핑에도 내놓으며 1위 굳히기에 나서고 있다. 정수 필터를 통해 안전하고 깨끗한 세척수를 사용한다는 점, 유아용 젖병이나 젖꼭지 등을 씻어 낼 수 있는 하트박스나 머그컵 등을 적재할 수 있는 보트존을 탑재했다는 점, 식기의 세균을 99.9% 없애 주는 열풍 건조 시스템 등도 특장점으로 꼽힌다. LG전자의 디오스 식기세척기는 ‘스팀’과 ‘대용량’을 키워드로 내세워 시장 주도권 잡기를 꾀하고 있다. LG전자의 식기세척기를 구매하는 고객의 95%는 스팀 기능이 있는 모델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객들은 해당 모델이 세척기 천장, 정면, 바닥 등 3면에서 100도 스팀을 ‘사각지대’ 없이 분사해 눌어붙은 음식물과 인체에 유해한 세균, 바이러스 등을 말끔히 제거한다는 데 주목했다. 토네이도 세척 날개와 여러 토출구에서 만들어 내는 고압의 입체 물살이 끈적이는 기름때까지 깨끗이 없애 준다.삼성전자도 최근 내놓은 12인용 한국형 식기세척기로 추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번 제품은 ‘한국인의 식생활과 설거지 습관을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물’임을 강조했는데 눌어붙은 밥풀과 양념 등을 애벌 세척하는 ‘스팀 불림’ 옵션이나 헹굼, 건조까지 55분 만에 완료할 수 있는 ‘표준 세척’ 코스 등이 관심을 모은다. 특히 4단 세척 날개로 구현한 강력한 입체 물살, 75도의 고온 직수 세척으로 위생, 살균 성능을 한층 더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밥 대신 돌 끓인 엄마, 끝없는 배급줄…코로나19발 식량난

    밥 대신 돌 끓인 엄마, 끝없는 배급줄…코로나19발 식량난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외곽의 도시 센투리언. 약 24만 명이 거주하는 이곳에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5주 전 봉쇄령이 떨어졌다. 그 여파로 경기 침체와 식량 공급망 교란이 이어지면서 굶주림에 허덕이는 사람들도 쏟아져 나왔다. 주민 80%는 짐바브웨, 모잠비크, 말라위, 카메룬, 말리 등 다른 아프리카 지역 출신 외국인이라 정부의 재정지원에서도 제외됐다. 극심한 기아에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벌어졌고 약탈도 자행됐다. 이들을 딱하게 여긴 건 몇몇 개인기업이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센투리언에서 8000개의 식량 키트가 굶주린 주민에게 돌아갔다고 전했다. 식량 원조 소식이 전해지자 주민 수천 명이 구름떼처럼 몰려들었다. 하늘에 띄운 드론으로 본 배급 현장은 길게 늘어선 줄이 4㎞까지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았다.코로나19 사태 이후 몇몇 국가는 극심한 식량난에 빠졌다. 인명피해와 폭력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케냐 수도 나이로비에서는 밀가루와 식용유 배급 현장에 인파가 대거 몰리면서 압사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사망했다. 외출금지령으로 집에 머무는 콜롬비아 사람들은 창밖으로 붉은 천을 내걸고 식량 원조를 호소하고 있다. 특히 감염병 확산 이전부터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던 수단과 짐바브웨 등 아프리카의 기아 인구가 급증하는 모양새다. 1일 영국 BBC에 따르면 케냐 코스트주 몸바사의 한 여성은 코로나19로 일거리가 끊기자 펄펄 끓는 물에 돌을 넣어 끓였다. 실제로 먹일 수는 없지만 배고파 우는 8명의 자녀를 잠시라도 달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 다행히 방송을 통해 이 소식이 알려지면서 후원이 쇄도해 당장의 굶주림은 모면할 수 있게 됐다.생산량 부족과 공급망 교란 등 코로나19발 식량난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의 수출 제한 영향도 크다. 코로나19 이후 베트남과 러시아, 세르비아, 파키스탄, 캄보디아, 태국 등 주요 농축산물 수출국은 자국 식량확보를 위해 수출을 일시 제한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코로나19 여파로 1억3500만 명이었던 전 세계 기아 인구가 2억6500만 명까지 2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관측한다. 뉴욕타임스는 현재의 식량난에 대해 “코로나바이러스 대신 굶주림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내놨다. 세계식량계획 수석 경제학자 아리프 후사인은 현재의 식량난이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현상”이라고 경고했다.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일부 지역에 국한돼 나타나던 기아 현상이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적으로 그 범위가 넓어졌다는 분석이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취중생] ‘아줌마’가 아닙니다, ‘노동자’입니다

    [취중생] ‘아줌마’가 아닙니다, ‘노동자’입니다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1일은 제130주년 세계 노동절이었습니다. 서울신문은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계층인 중년 여성 비정규 노동자의 고통에 대해 다뤘습니다. ‘아줌마라고 쥐꼬리 임금, 툭하면 무시… 위기 내몰린 중년의 노동’(2020년 5월 1일자) 기사가 그것입니다. 가스 검침원, 마트 직원, 특수교육 실무사 등 3명의 목소리를 통해 경력 단절을 겪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단기 저임금 비정규 노동으로 내몰리는 여성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사가 나간 뒤, 포털 사이트에선 ‘여자만 힘드냐, 남자도 힘들다’, ‘기술 없으면 그런 일 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그런’ 일이란 무엇일까요? 배운 게 없고 능력이 없으면 일하면서 겪는 부당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걸까요? 중년 여성 노동자의 일은 정말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개에 물리고 성희롱당해도 참는다…갈 곳이 없어서“우리는 일하면서 개한테 세 번은 물려야 ‘가스 밥’ 먹는다고 해요.” 서울도시가스 점검원으로 15년 동안 일한 김윤숙(53)씨의 말입니다. 김씨는 2005년부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일자리를 잃자 “살림에 도움이 돼야겠다”는 마음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습니다. 그가 가스 점검원으로 일하게 된 건 육아와 병행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씨는 “남편 일도, 아이 학교 일도 내가 챙겨야 하는데 집에 돈은 없으니 중간중간 개인 용무를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고 했습니다. 결혼, 육아로 경력 단절을 겪고 재취업해야 하는 중년 여성 일자리 대부분이 이 같은 성격을 띱니다. 하지만 그가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은 예상보다 훨씬 컸습니다. 김씨는 “여자 혼자 가스 점검을 하러 집집을 다니다 보니 성추행도 일어난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어떤 집은 남자가 알몸 상태로 나와서 문을 열어주더라”면서 “너무 당황해서 ‘악’ 소리도 안 나왔다”고 했습니다. ‘퇴근이 언제냐’, ‘맥주 한잔하자’는 성희롱도 심심찮게 일어납니다. 개에 물리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그는 “집주인이 다들 ‘우리 개는 안 문다’고 하면서 풀어놓는데, 뒤꿈치든 정강이든 어깨든 몇 번씩 물린다”면서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이런 일은 김씨만 겪는 일이 아닙니다. 지난해 4월에는 울산 경동도시가스 점검원이 일하던 중 성추행을 당한 후 감금까지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점검원은 트라우마에 시달리다가 자살까지 시도했습니다. 가스계량기가 있는 곳은 대부분 골목이나 후미진 곳. 이 때문에 담벼락 등에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무릎이나 발목에 골절상을 입고, 인대가 파열되는 일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김씨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대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40~50대 여성에게는 취업 문을 열어놓은 데가 없다”고 했습니다.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우고 나면 다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전문성 있는 젊은이들에 비해 당연히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김씨처럼 절박한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없으니 ‘임금 후려치기’나 쉬운 해고의 악순환이 이어집니다. “값싼 인력 취급 상처…여자라고 ‘하찮은 일’ 아니야” 은연중에 여성이 하는 일을 ‘하찮은 것’이라고 보는 사회적 시선도 여전합니다. 김씨는 “가스업계에서도 관리자는 전부 남자”라면서 “여성이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니 ‘언제든 그만둘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노동자로서 법적인 보호는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일반 시민들 눈에는 가스 점검원이 1년에 2번 방문하는 사람에 불과하겠지만, 뒤에서 하는 일은 가스계량기 검침, 검침 송달 등 훨씬 많다”면서 “현장 노동자이자 감정노동자”라고 말했습니다. 전문가들도 중년 여성 일자리의 질이 낮은 이유가 여성이 사회적으로 낮은 지위를 가진 것과 관련이 크다고 봅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 일자리 자체가 저가치화돼있다”면서 “여성이 하는 일은 원래 집에서 하던 거니 특별한 기술 없이 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이 있고, 이 때문에 남성만큼 돈을 줄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인식 탓에 여성이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일자리에 진입하기도 어렵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해외에서는 아예 남녀 일자리의 차이를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이 교수는 “북유럽 국가에서는 직업 훈련과정에서 남성이 지배적인 직종을 오히려 남성이 아닌 여성에게 먼저 소개한다”면서 “남녀 일자리를 구분하지 않으면서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는 방식”이라고 했습니다. 김씨는 말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동네 아줌마’가 아니라 하나의 인격체로 봐주는 것”이라고요.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 엄태준 이천시장 ‘화재현장 이탈’ 보도에 “사실무근” 반박

    엄태준 이천시장 ‘화재현장 이탈’ 보도에 “사실무근” 반박

    엄태준 이천시장은 물류창고 화재 참사 당일 현장을 이탈했다는 내용의 일부 언론 보도와 관련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엄 시장은 사고 현장 앞에서 발표한 입장문에서 “저는 처음 사고 발생을 보고받은 이후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 사고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고 밝히고 시간대별 동선과 현장 대응 상황을 설명했다. 엄 시장은 또 “유가족분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사고 당일 시장은 화재 현장 중심으로, 부시장은 유가족을 중심으로 업무를 이원화해 사고수습에 나섰다”고 유가족을 사고 다음 날 만난 이유에 대해 해명했다. 그는 “22만 시민의 시정을 책임지고 있는 시장 입장에서 온 시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사고를 최우선으로 수습해야 하는 현 상황임에도 특정 세력의 이해관계에 얽혀 현 사태수습이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상황으로 변질하는 듯 하다”고 비난했다. 또 사건 당일 자신의 부인도 의용소방대원들과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한 뒤 이튿날 새벽2시에 귀가했다며 악의적 편집으로 사고수습을 지휘한 자신의 행적을 폄하한 특정 언론사에 대해 정정보도를 요구했다. 이날 한 일간지는 “물류창고 화재 당일인 지난달 29일 현장 대응과 수습을 총괄해야 할 엄 시장이 현장에서 보이지 않아 논란이 일고 있다. 엄 시장은 하루가 지난 30일 현장에서 희생자 유족들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밥 안먹는다” 3살 딸 숨지게 한 20대母·지인 징역 15년

    “밥 안먹는다” 3살 딸 숨지게 한 20대母·지인 징역 15년

    재판부 “갈비뼈 4대 부러지고 눈 멍들어”“폭행 뒤 숨 멈췄지만 은폐하는데 급급”3살 딸을 철제 옷걸이와 주먹으로 때려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혀 숨지게 한 20대 어머니와 그의 지인이 중형을 선고받았다. 인천지법 형사13부(고은설 부장판사)는 1일 선고 공판에서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A(25·여)씨와 그의 지인 B(23·여)씨에게 각각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A씨의 동거남 C(33)씨에게는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A씨 등 피고인 3명에게 120시간 아동학대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제한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2주 동안 별다른 이유 없이 만 3세 여아인 피해 아동을 무차별적으로 잔혹하게 폭행하고 학대하는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질렀다”며 “시신이 발견됐을 때 갈비뼈 4개가 부러지고 두 눈은 심하게 멍들고 입술은 점막이 찢어져 심한 염증이 생긴 상태”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피고인들은 아동이 숨을 멈췄음에도 병원에 데려가는 등 살리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은폐하는 데 급급했다”면서 “피고인의 태도가 비춰보면 그 죄에 상응하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만 피고인들이 뒤늦게 죄를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어린 시절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는 지적장애가 있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점, B씨는 정신적 질환이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A씨는 이날 녹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출석해 재판장이 양형 이유 등을 설명하는 동안 울음을 터트렸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A씨와 B씨에게는 각각 징역 20년을, 동거남인 C씨에게는 징역 15년을 구형했다.A씨는 지난해 11월 14일 경기도 김포시 한 빌라에서 철제 옷걸이와 주먹 등으로 딸 D(3)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A씨와 함께 살던 B씨와 C씨도 범행에 가담한 사실이 드러나 재판에 넘겨졌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말부터 11월 14일까지 20일 가까이 번갈아 가며 거의 매일 폭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D양이 사망한 당일에는 오전부터 밤늦게까지 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심하게 때린 것으로 조사됐다. 미혼모인 A씨 등은 D양이 밥을 잘 먹지 않고 꼭꼭 씹어 먹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폭행했다. 이들은 D양이 목욕탕에서 씻다가 넘어져 숨졌다고 거짓말을 하기로 사전에 말을 맞췄으나 경찰 수사로 범행이 들통났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총알에 맞았다… 아!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다”

    “총알에 맞았다… 아! 나는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다”

    1980년 작성된 일기장 14편 기증받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일기도 포함 5·18 경험한 평범한 일반인들의 기록 무자비한 국가 폭력의 참상 고스란히#1. “21일 오후 시내에 나갔다. 광주은행 본점(금남로 3가) 앞으로 오니 총성이 나고 있었다. 한 대학생이 마이크를 들고 있다가 왼팔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신기했다. 바로 2~3m 전방에 서 있던 사람이 쓰러졌다. 목에서 피가 난 사람도 있었다. 겁이 났다.” 1980년 당시 광주 서석고 3학년 장식씨가 5·18 첫 집단발포가 이뤄진 5월 21일 오후 전남도청 인근 금남로 상황을 이같이 5월 26일 일기장에 기록했다. 장씨는 시민들과 계엄군이 격렬하게 맞섰던 5월 20일 일기에서도 그날의 저녁 상황을 세세히 기록했다. “밤 7시 30분에 시내로 걸어갔다. 남광주 근처에 오니까 시민들이 학동(동구)파출소를 부수기 시작했다.” 5월 20일은 광주역 인근에서 발포가 이뤄져 처음으로 4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방송국이 불타는 등 시내가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때다. 장씨는 일기장에 5월 31일 광주에 있는 탱크·군인·장갑차 위치를 그린 약도와 당시 상황을 알리기 위한 호소문도 적어 놨다. #2. “하나의 총알이 주방 유리창을 뚫고 맞은편 벽에 꽂혔다. …난데없이 등에 뭐가 꽉 박히며 코와 입으로 피가 쏟아져 나왔다.(아침 6시 30분쯤)” 전남대 2학년생인 김윤희씨가 19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 진압 작전인 ‘상무충정작전’ 때 본인이 입은 총상에 대해 적은 내용 중 일부다. 김씨는 ‘새벽 4시 30분쯤 큰 폭음에 잠이 깼지만 도망을 가지 않고 YWCA에서 밥을 안치는 순간, 총격을 경험하고 총알에 맞기까지 했다’고 썼다. 일기장에는 ‘총알에 맞는 순간, “아! 맞았구나. 하지만 난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적혀 있다. 5·18민주화운동기록관이 1980년 5·18을 기록한 시민의 일기장 14편을 기증받아 30일 공개했다.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주소연·조한유·주이택·조한금씨 등이 쓴 일기장도 포함됐다. 당시 동산국민(초등)학교 6학년이던 김현경, 주부 김송덕과 강서옥, 5월 27일 당시 전남도청에서 사망한 문용동 전도사, 직장인 박연철, 전남대 사범대 4학년이던 이춘례씨 등의 일기장도 기증됐다. 40년 전 시민들의 일기장에는 1980년 5·18의 진실과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대한 공포가 담겼다. 기록관 측은 “오월 일기는 5·18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당시 평범한 일반인들의 경험을 전달해 주는 중요한 매개체”라며 “역사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기증자들은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가짜뉴스를 보며 5·18의 진실을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기증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 일기장은 오는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서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열리는 전시회에 공개하고, 홈페이지에도 올릴 방침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어떡해요 어떡해”… 엄마가 확인할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어떡해요 어떡해”… 엄마가 확인할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사망 9명 시신 훼손 심해 유전자 검사 혼인 신고 한 달 만에 남편 잃은 부인 “한 번이라도 좋으니 시신 봤으면” 오열 구순 노인 “새벽부터 일한 아들” 눈물 지문인식 못하는데 “부검 하자” 혼선도“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이고 이놈의 손아(손주)!” “아직 너무 어리잖아. 아유, 불쌍해서 어떡하지 내 새끼….” 총 48명의 사상자가 나온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발생 이튿날인 30일 참사 현장 인근 체육관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쉼터에서 유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연신 통곡했다. 이번 화재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는 “아들이 스물네 살밖에 안 됐다. 제 아빠 친구를 도와 미장일을 한다고 왔는데 이렇게 됐다”면서 “어제 오전 열한 시 반까지도 밥 먹고 쉬러 왔다고 전화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애가 아직 어리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못 해본 것도 너무 많은데 이렇게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 우리 애가 너무 안됐다”며 오열했다. 이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38명이 사망하고 중상 8명, 경상 2명 등 10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9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나머지 9명은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지문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들의 유전자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이들은 대부분 전기·도장·설비 등의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로 장남을 잃은 구순의 노인은 깊은 슬픔 속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붉은색 지팡이를 짚고 손자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그는 “아들이 새벽 4시부터 경기 안산 집에서 나와 여기까지 일을 다녔다”면서 “밥 벌어 먹고살려고 한 건데 이렇게 됐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혼인 신고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김모(26)씨는 이번 참사로 남편 임모(29)씨를 잃었다. 현장을 찾은 임씨의 어머니는 큰 소리로 오열하다 결국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어머님이 사고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면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남편 시신을 확인하고 싶다. 어머님이 남편을 혼자 힘들게 키웠는데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통곡했다.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에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강모씨는 “오늘 아침에야 연락을 받고 급히 왔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아들이 여기서 일하는 줄도 몰랐다”면서 “어제 뉴스 볼 때만 해도 남 얘기인 줄 알았다”며 울먹였다. 이날 오후 물류창고 시공사 ‘건우’ 이상섭 대표가 체육관을 찾아 사과한 뒤에는 유족들의 울분이 더 커졌다. 단상에 올라간 이 대표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했지만, 유족들이 “대책을 얘기하라”고 고성을 지르자 업체 관계자의 부축을 받고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한 유족은 “시신이 다 타고 없는데 지문 인식을 하자고 해놓고, 경찰서에 갔더니 부검을 하자고 하는 등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천시는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시신 수습, 장례 일정 등을 유족과 협의하고 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불쌍한 내 새끼…” 엄마가 확인할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불쌍한 내 새끼…” 엄마가 확인할 시신조차 남지 않았다

    ‘이천 참사’ 유족들의 피눈물사망 9명 시신 훼손 심해 유전자 검사“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아이고 이놈의 손아(손주)!”“아직 너무 어리잖아. 아유, 불쌍해서 어떡하지 내 새끼….” 총 48명의 사상자가 나온 경기 이천 물류창고 화재 발생 이튿날인 30일 참사 현장 인근 체육관은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가족들의 울음소리로 가득했다. 체육관 한쪽에 마련된 쉼터에서 유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연신 통곡했다. 이번 화재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는 “아들이 스물네 살밖에 안 됐다. 제 아빠 친구를 도와 미장일을 한다고 왔는데 이렇게 됐다”면서 “어제 오전 열한 시 반까지도 밥 먹고 쉬러 왔다고 전화를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애가 아직 어리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못 해본 것도 너무 많은데 이렇게 가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 “내가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다. 우리 애가 너무 안됐다”며 오열했다. 이천시 재난안전대책본부 등에 따르면 이번 사고로 38명이 사망하고 중상 8명, 경상 2명 등 10명이 다쳤다. 사망자 중 29명의 신원이 확인됐고, 나머지 9명은 시신이 심하게 훼손돼 지문 확인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들의 유전자를 채취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이들은 대부분 전기·도장·설비 등의 업체에서 고용한 일용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사고로 장남을 잃은 구순의 노인은 깊은 슬픔 속에 몸을 가누지 못했다. 붉은색 지팡이를 짚고 손자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그는 “아들이 새벽 4시부터 경기 안산 집에서 나와 여기까지 일을 다녔다”면서 “밥 벌어 먹고살려고 한 건데 이렇게 됐다”며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혼인 신고한 지 한 달 만에 남편을 떠나보낸 부인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김모(26)씨는 이번 참사로 남편 임모(29)씨를 잃었다. 현장을 찾은 임씨의 어머니는 큰 소리로 오열하다 결국 실신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어머님이 사고 때문에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느냐”면서 “한 번이라도 좋으니 남편 시신을 확인하고 싶다. 어머님이 남편을 혼자 힘들게 키웠는데 누가 책임질 것이냐”며 통곡했다.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에서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강모씨는 “오늘 아침에야 연락을 받고 급히 왔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는 “아들이 여기서 일하는 줄도 몰랐다”면서 “어제 뉴스 볼 때만 해도 남 얘기인 줄 알았다”며 울먹였다.이날 오후 물류창고 시공사 ‘건우’ 이상섭 대표가 체육관을 찾아 사과한 뒤에는 유족들의 울분이 더 커졌다. 단상에 올라간 이 대표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며 연신 죄송하다고 했지만, 유족들이 “대책을 얘기하라”고 고성을 지르자 업체 관계자의 부축을 받고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조카를 잃은 김용윤(62)씨는 “어제 집으로 가던 길에 물류창고 쪽에서 연기가 올라오는 걸 봤다. 거기서 조카가 일하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008년 화재와 완전히 똑같은 일이 반복됐다”면서 “하청에 재하청까지 줘서 공기를 맞추느라 급급하다 보니 이런 사고가 되풀이되는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 유족은 “시신이 다 타고 없는데 지문 인식을 하자고 해놓고, 경찰서에 갔더니 부검을 하자고 하는 등 혼선이 계속되고 있다”고 항의하기도 했다. 이천시는 서희청소년문화센터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시신 수습, 장례 일정 등을 유족과 협의하고 있다.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여기는 중국] 中 억대 연봉 직종은 ‘금융업’…고소득자 속출

    중국 금융업 가운데 ‘증권업계’ 종사자의 억대 연봉자 비중이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국 시장조사기관 ‘윈드’(WIND)가 최근 조사, 공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수령하는 금융기관 7곳 중 6곳이 증권업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나머지 1곳은 은행업으로 집계됐다. 이 보고서는 같은 해 기준 중국 금융업 연봉 1위는 증권업계라고 집계, 해당 직종 근로자 1인당 평균 연봉 수준은 47만 위안(약 8100만 원)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이어 은행업과 보험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1인 평균 연봉이 각각 38만 9600위안(약 6710만 원) 25만 3700위안(약 4370만 원)으로 2~3위를 차지했다. 반면 같은 시기 중국 금융업계에 종사하는 최고경영자(CEO), 부사장, 재무담당 최고책임자(CFO) 등 고위 임원 관리직의 연봉 수준은 업체별로 뚜렷한 격차를 보였다. 보고서는 이 시기 중신증권(中信证券)의 고위 관리직 연봉 총액이 약 1억 5500만 위안(약 267억 원)으로 금융업계 전체 1위를 기록한 것으로 집계했다. 이어 핑안보험(中国平安)의 고위관리직 연봉 총액이 3000만 위안(약 234억 원)으로 2위, 민셩은행(民生银行)이 6435만 9700위안(약 111억 원)으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고위직 연봉 증가 속도는 지난해 대비 중신증권은 약 22.05% 증가, 핑안보험 3.44%, 민셩은행은 21.32% 증가했다. 특히 이 같은 금융업계 고위 임원의 높은 연봉 수준은 지난 2013년 평균 232만 9500위안(약 4억 원)과 비교해 크게 높아진 수치다. 보고서는 금융업 고위 임원들의 높은 연봉은 대규모 순이익을 올리고 있는데 따른 보상이라고 분석했다. 더욱이 이 시기 핑안보험과 디이촹예증권(第一创业), 자오상증권(招商证券) 등의 회장 연봉이 500만 위안(약 8억 7000만 원)을 초과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핑안보험과 디이촹예증권, 자오상증권 등 세 곳의 회장이 수령한 지난해 연봉은 각각 △885만 6500위안(약 15억 원) △594만 3100위안(약 10억 2000만 원) △515만 5500위안(약 8억 8000만 원) 등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중국 금융업은 지난 2008년 이후 줄곧 중국 최고 연봉 분야로 선정되는 등 이른바 ‘황금밥그릇’이라는 별칭을 얻은 바 있다. 특히 이 분야 임금 인상 속도는 증권업과 은행, 보험업 등의 이윤이 지속해서 증가하면서 근로자 1인당 임금 인상 속도도 빠르게 증가한 셈이다. 같은 시기 증권업 전문 경영인 중 100만 위안 이상의 연봉을 수령하는 기업체의 수는 총 41곳에 달했다. 이들 중 증권업계가 24곳, 은행업 16곳, 보험업이 1곳으로 확인됐다. 국가통계국 측은 이 같은 금융업의 연봉 수준에 대해 “은행원에 대한 해고조치와 은행업계에 종사 중인 고위 관리직 연봉 수준을 제한하는 중국 당국의 규제 탓에 은행업계의 임금 인상 속도가 가장 느리다”면서 “금융업계는 중국에서도 가장 고임금 직군에 속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하지만 이 분야에서도 증권업과 은행업, 보험업 등 세분된 영역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지난 2017년 중국 4대 국유은행에서 약 2만 명에 달하는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 금융업 파행 사태를 겪은 후 가파른 연봉 상승세가 주춤했다는 지적이다. 다만, 이 보고서는 이날 기준 상장 은행의 지난해 실적 보고서가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은행업에 종사하는 근로자 1인당 연봉 수준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분석했다.
  • 당신은 내 마음의 별…저 별도 따다 줄게요

    당신은 내 마음의 별…저 별도 따다 줄게요

    봄이다. 뺨을 스치는 살랑바람에도 몸이 들뜨는 계절이다. 코로나19가 헤살을 부리는 바람에 애써 세운 여행 계획이 틀어진 이들이 어디 한둘일까. 특별한 계획을 다시 세울 여력은 없어도 느닷없이 하늘보다 더 파란 바다가 보고 싶을 때, 방구석을 박차고 훌쩍 다녀올 수 있는 곳이 강원도 강릉이다. 이번 발걸음엔 하늘 가까운 안반데기에 올라 별바라기가 돼 보는 것도 좋겠다. 약간의 퍼포먼스만으로도 독특한 풍경 속에 나를 세울 수 있다. 물론 아직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조되는 시기이니만큼 조금만 더 참았다가 마침내 찾아올 그날, ‘보복적 여행’에 나서시길.●드넓은 모래 해변 걸어볼까… ‘BTS 정류장’ 들러서 인증샷 사천진의 바다부터 찾아간다. 넘실대는 파란 바다, 드넓은 모래 해변이 있는 곳이다. 이 바다 앞에 서면 코로나19의 악몽과 ‘집콕’으로 쌓인 먼지가 죄다 날아가는 듯하다. 사천진 해변이 좋은 건 넓고 조용해서다.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번다해지긴 했지만 경포나 안목 해변처럼 떠들썩하지 않고 비교적 적요한 바다와 만날 수 있다. 바다 건너엔 작은 섬이 있다. 해다리(海狗) 바위다. 오래전 물개들이 많이 서식해 이름지어졌다. 지금은 바위 몇 개가 뭉친 갯바위 정도지만 예전엔 어엿한 섬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방파제를 세우느라 이 섬의 바위를 캐다 쓴 데다, 광복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채석을 하는 바람에 규모가 작아졌다고 한다. 해다리바위까지 작은 다리가 놓여 있다. 갯바위에 걸터앉아 망중한을 즐길 수도 있고, 낚시를 하며 세월을 낚을 수도 있다. 예서 주문진 방향으로 조금 올라가면 저 유명한 ‘BTS 정류장’이 나온다. 방탄소년단의 앨범 ‘유 네버 워크 얼론’의 재킷 사진을 찍은 곳이다. 실제 버스가 서지는 않지만 방탄소년단의 체취가 남은 곳이어선지 끊임없이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정류장 인근의 향호(香湖)엔 매향(埋香)의 전설이 잠겨 있다. 내세의 복을 빌기 위해 향나무를 묻었다는 곳. 1000년이 지난 뒤 묻힌 향을 꺼내 부처님 전에 피우면 모든 소원이 이뤄진다던데, 올해가 바로 그 해라 믿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독특한 형상의 갯바위가 밀집된 소돌바위공원,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였던 주문진항 방사제 등의 주변 관광지도 차분하게 돌아볼 만하다.●별 볼 일 많은 안반데기에선 ‘인생 사진’… 해돋이는 정동진 저녁에는 안반데기를 찾아야 한다. ‘안반’(案盤)은 가운데가 우묵하고 넓은 통나무 판, ‘데기’는 평평한 땅을 가리키는 ‘덕’의 사투리다. 그러니까 우묵한 고지대에 터를 잡은 마을이란 의미다. 안반데기는 원래 고랭지 배추밭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여름철엔 마을 북쪽 고루포기산에서부터 남쪽 옥녀봉에 이르는 198만㎡(약 60만평) 산자락이 배추로 가득 찬다. 그런데 난데없이 고랭지 배추밭은 왜? 별 볼 일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 안반데기는 고도가 높고 도시의 빛공해가 적어 별을 관찰하기 딱 좋다. 얼마전부터는 연인에게 ‘별을 따주려는’ 젊은이들이 부쩍 늘었다. ‘인생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부터다. 별빛 고운 밤하늘을 배경 삼아 다양한 빛의 퍼포먼스를 곁들이면 퍽 로맨틱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전망대도 생겼다. 멍에전망대와 일출전망대다. 각각 대기리 마을 남쪽과 북쪽의 높은 언덕에 조성됐다. 전망대로 몰리는 사람들을 피해 좀더 내밀한 공간을 찾으려는 젊은이들은 캄캄한 밤에도 안반데기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닌다. 너른 안반데기 곳곳에서 랜턴 빛이 명멸하는 건 그 때문이다.새벽에도 별은 뜬다. 다른 별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별, 해다. 아침에 솟는 해를 맞기에는 정동진이 제격이다. 보통 연말연초에 사람이 몰리지만 평소에도 떠오르는 해를 보며 소망을 빌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TV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해진 소나무를 비롯해 8t에 달하는 모래가 꼬박 1년 동안 떨어져 내리는 거대한 모래시계 등 볼거리도 많다. 정동진 남쪽에는 정동심곡바다부채길이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천연기념물 437호)를 따라 조성한 2.86㎞ 길이의 탐방로다. 아쉽게도 현재는 보수 공사 중이고 5월 초 재개장할 예정이다.정동진에서 안인진까지는 국도를 버리고 해안도로를 따라 가는 게 좋다. 해안 풍경이 무척 빼어나다. 다양한 설치미술 작품들이 전시된 하슬라 아트월드, 조용한 절집 등명락가사, 해군 함정 등이 전시된 통일공원 등 몇몇 관광명소도 이 도로에 매달려 있다. 안인진 위는 커피거리로 유명한 안목항이다. 이 거대한 커피거리의 모태가 된 건 ‘커피 자판기’였다. 명주동 주민해설사협동조합의 함계정 이사장에 따르면 “현재의 엄마 세대에게 안목항은 연인과 자판기 커피를 마시며 데이트를 즐기던 곳”이었다. 당시 20여개가 늘어서 있던 자판기 중에 커플마다 즐겨 마시는 자판기가 따로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커피거리 북쪽 끄트머리에 3개가 남아 있다.●차순옥 할머니가 모정으로 쌓은 노추산 3000개 돌탑 이제 노추산 모정탑을 말할 차례다. 산비탈을 따라 3000개 돌탑이 빼곡한 곳이다. 모정탑을 처음 만난 건 지난 2010년이었다. 3000개 돌탑을 쌓는 할머니가 있다는 주민의 말을 듣고 노추산을 찾았다가 뜻밖의 진기한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연하다. 당시 할머니는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저 ‘탑돌이 할머니’라 부르라 했을 뿐이다. 할머니가 돌탑을 쌓기 시작한 건 꿈에 “키가 조그맣고, 하얀 도포에 갓 쓴 산신님이 나타나 ‘노추산에 돌탑 3000개를 쌓으라’고 지시”한 이후부터다. 자식을 먼저 보낸 참척의 고통에, 자신마저 이런저런 병마에 시달릴 때 꾼 꿈이었던 탓에 할머니는 몸을 사리지 않고 돌탑을 쌓았다. 한 달에 20일은 강릉 집을 나와 움막에서 기거하며 억척스레 공사를 이어 갔다. 기왕에 보낸 자식의 영면과 남은 자식들의 건강을 바라는 절박한 모정이 이 불가사의한 역사(役事)를 이어 가는 원동력이었지 싶다. 당시 할머니는 쌓은 탑의 정확한 개수를 알려주지 않았다. 꼭 3000개를 채운 뒤라야 말할 수 있는데 “앞으로 5년이면 끝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듬해 할머니는 영면에 들었다. 할머니의 이름은 ‘차순옥’. 꼬박 10년 만에 알게 된 이름이다. 내일이면 5월, 가정의 달이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모정탑길을 걷다 보면 도타운 정이 돌탑처럼 쌓일 듯하다. 노추산 주차장에서 할머니가 기거했던 움막까지는 1㎞가 조금 넘는다. 길도 그리 험하지 않아 산책하듯 다녀올 수 있다. 글 강릉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명주동 초입의 ‘원성식당’은 1971년부터 5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중국집이다. 70대 주인장이 여전히 웍을 잡고 있다. 잡채밥이 알려졌다. 건너편의 ‘용비집’은 장칼국수로 알려진 집. 하루 200여인분만 판다. 입암주공아파트 인근의 ‘콩새야’는 소고기 타다키, ‘강릉양갈비’는 양갈비를 먹음직스럽게 낸다. →파랑달이 ‘시나미, 명주 나들이’ 프로그램을 유료로 운영한다. 마을해설사와 함께 또는 태블릿을 들고 마을을 구석구석 돌아본다. 시나미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을 뜻하는 시나브로의 강원도 사투리다. →수도권에서 곧바로 안반데기를 가려면 평창 쪽이 빠르다. 한데 길이 좁고 가파른 만큼 가급적 강릉 닭목령 쪽으로 오르길 권한다.
  • MLB 단축시즌 가능성 솔솔… 0점대 ERA·4할 타율 나오나

    MLB 단축시즌 가능성 솔솔… 0점대 ERA·4할 타율 나오나

    MLB 6월 말 개막 추진한다는 보도 나와코로나19로 열리지 않은 경기 환불 조치162경기는 사실상 무리 단축시즌 가능성경기 수 적으면 꿈의 기록 나올 수도 있어메이저리그(MLB)가 단축된 경기 일정으로 시즌 재개를 모색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번 시즌은 괴물 같은 기록들이 나올 수도 있을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 ‘USA 투데이’ 29일 “MLB 사무국과 구단들이 6월 말에서 늦어도 7월 3일 전에 시즌을 개막해 각 팀이 최소 100경기 이상 치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실적으로 162경기를 다 치르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100경기라는 마지노선을 정해놓고 최대한 많은 경기를 치르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에 ESPN의 “MLB 사무국이 코로나19로 열리지 않은 경기들에 대한 환불을 허가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경기가 취소되지 않았으니 환불해줄 수 없다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 물러난 것으로, 이는 사실상 162경기 중 일부가 취소될 수밖에 없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USA 투데이에 따르면 시즌을 치르기 위해 기존 양대리그 개념이 아닌 지구 단위 개념으로 묶는 시나리오도 제시됐다. 서부지구, 중부지구, 동부지구 각 10개팀씩 묶는 방안이다. 지역별로 묶여 있는 만큼 이동이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경기수가 얼마나 줄어드느냐에 따라 0점대 평균자책점(ERA), 4할대 타율 등 꿈의 기록들도 나올 가능성도 있다. 야구는 결국 평균으로 회귀하는 스포츠지만 단축 시즌이 되면 타율, 승률 등 비율 기록은 유리해지고 홈런, 타점 등 누적 기록은 불리해진다. 류현진이 지난해 22경기에서 1.45까지 ERA를 낮췄을 당시 라이브볼 시대 22경기 기준으로 역대 5위 기록이었다. 22경기 기준 역대 1위는 1968년 밥 깁슨이 세운 0.96이다. 경기수가 줄면 불펜 투수 운용을 보다 공격적으로 할 수 있는 만큼 선발 투수들의 평균자책점은 보다 낮게 관리될 수 있다. 1941년 테드 윌리엄스를 끝으로 78시즌 동안 4할 타자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단축 시즌이 되면 100경기를 가정했을 때 310타수 124안타를 치면 4할이 가능하다. 이 역시 불가능한 시나리오는 아니다. 역대 최고 승률팀, 승률 100% 투수 등도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미국 내 코로나19 확진환자가 좀처럼 줄지 않고 있어 MLB 개막이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는 상태다. 미국은 29일 기준 104만 5717명의 확진환자와 6만 8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하루 확진환자는 9952명으로 사태 해결이 여전히 쉽지 않은 분위기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이제 할 건 기도밖에”…생활치료센터 마지막날 자원봉사자가 보내온 편지

    “이제 할 건 기도밖에”…생활치료센터 마지막날 자원봉사자가 보내온 편지

    대구 생활치료센터 30일 완전 해산첫날부터 자원봉사 지원한 유동훈씨지난 10일 이후 두 번째 편지 보내와코로나19 진정에 기쁘지만미완치 환자 볼 때 안타까움 더해코로나19 생활치료센터가 지난 3월 1일 설립된 이후 4월 30일을 끝으로 해산한다. 설립된 지 꼭 60일 만이다. 코로나19 경증 환자를 치료·격리할 목적으로 대구 중앙교육연수원에 처음으로 센터가 설립된 이후 14개 센터가 추가로 설립·운영됐다. 경증 환자 3025명이 입소해 2957명(완치율 97%)이 퇴소했으며, 의료진 등 누적 종사자는 1611명에 이른다. 중앙교육연수원에 센터가 마련됐을 때부터 간호조무사로 자원봉사를 한 유동훈(39)씨가 해산을 맞아 29일 서울신문에 편지를 보내왔다. 지난달 10일 이후 두 번째 편지에서 그는 자신을 ‘패잔병’이라 표현했다. 완치 판정을 받지 못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환자들이 마음에 걸려서다. 그는 그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음을 아쉬워했다. 대구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습니다. 지난 3월 1일부터 일했으니 이제 60일째입니다. 고민하지 않고 이곳에 지원했지만, 의료진 감염 소식에 걱정이 앞선 것도 사실입니다. 이곳이 세계 최초의 생활치료센터라는 점 때문에 언론의 관심이 높아 행동 하나하나가 부담스러웠습니다. 개소 직후 들어오던 수많은 구급차 행렬은 잊지 못할 겁니다.과거에 병원에서 일할 땐 환자들을 깊이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외딴곳에 내려와 환자들이 먹는 도시락을 먹으며 같은 곳에서 생활하다 보니 오랜 격리 생활에 지쳐 있는 환자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저 역시 고립감과 불안감 등으로 불면증에 시달렸습니다. 우리 의료진은 환자들과 가장 밀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혈압을 재고 체온을 재며 투약 업무 등 늘 환자와 가까이 있었습니다. 다른 불편한 증상이 있을 때도 의사 지시 하에 관찰하고 보고하고, 환자에 관련된 모든 걸 살피며 지내왔습니다. 계속되는 유전자 증폭(PCR) 검사 때도 들어가 의료진을 돕고, 검체 포장 등 잡다한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함께 지내온 환자들이 완치해 우리에게 감사 편지를 남기고 떠날 때 위안과 기쁨을 얻었습니다. 심리적 압박 겪는 코로나19 환자들 이곳에 입원한 환자 증상은 다양했습니다. 오랜 격리생활로 불안과 우울감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았습니다. 심리적 부분도 지원하고자 지역대학의 정신간호학 교수님이 매일 오셔서 환자 한분 한분 상담을 해주시며 일일이 살피고 정서적 지지를 해주셨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고령자, 기저질환자 분들은 긴장하고 더 살펴야 했습니다. 새벽에 갑자기 통증이 있으면 항상 방호복을 입고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에 남는 환자도 많습니다. 코로나 환자 이송업무를 하다가 감염돼 입소하신 구급대원이 있었습니다. 항상 표정이 밝아 보는 사람들을 더 안타깝게 했습니다. 간호사, 간호조무사로 일하다가 확진돼 오신 분들을 보면 막중한 책임감이 들었습니다. 요양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다 감염된 분도 있었는데, 저와 동성동본이라 더 반갑게 이야기를 나눈 기억이 있습니다.치료 후 사회로 복귀해도 마냥 기뻐할 수 없는 환자들도 있습니다. 고용불안 문제 때문입니다. 2년간 공무원 준비했던 한 남성은 코로나19로 일주일 정도 다닌 회사에서 해고됐습니다. 실업급여대상도 아니어서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습니다. 당장 이달 월세 낼 돈도 없고 주소도 대구로 이전돼 있지가 않아 어떤 지원도 받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위로해 드렸지만 근본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저 역시 오랫동안 생활고에 시달려 그 마음이 이해됩니다. 저도 돈 벌면서 야간에 간호학원을 다니며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계속 병원 일을 하며 돈을 마련해 왔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대구에 내려오긴 했지만, 그 뒤에 대한 삶은 저 역시 또 고민이 생길 것 같습니다. 돌아갈 직장이 있는 분들도 걱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회사에서 낙인이 찍혀 안 좋은 소문이 돌아 허탈해하신 분도 있었습니다. 신천지도 아닌데 신천지로 소문난 분도 있습니다. 지역적 팬데믹을 만들어낸 신천지에 대한 분노도 컸습니다. 특히 한 분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신천지 교인으로 인해 감염 됐는데 끝까지 말하지 않아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었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신천지랑 상관도 없는데 왜 코로나 걸렸느냐고 추궁하는 부모님 때문에 힘들다는 젊은 분 이야기를 들을 땐 가족 간 오해도 생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이 세상 어머님들은 역시나 본인보다 가족과 자식을 더 걱정하며 지냈습니다. 남편이 타지에서 근무하고 자녀가 10, 15세 아들이라 끼니 거르지 않을까 걱정하시는 어머님, 6, 10세 아이들을 다른 곳에 맡겼지만 그래도 밥 먹는 게 걱정된다는 어머님, 자녀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자녀 전화 안 받는다는 어머님 등…그중 안타까웠던 건 7년 전 딸이 교통사고를 당해 후유증으로 자신이 간병을 해왔는데, 격리되는 바람에 간병을 할 수 없는 분 이야기였습니다. 차라리 이곳에 병실을 따로 만들어 제가 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전쟁 뒤의 황폐함 들어 대구 지역만 현재 누적 완치자가 6000명대에 이릅니다. 그래서 다른 생활치료센터들은 속속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그곳들이 닫을 때마다 이곳에 환자가 집중돼 뉴스로 보는 바깥세상과 이곳의 현실이 달라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점차 고립돼 낙오된 보병과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코로나19 진료에 참여한 수많은 의료진이 겪었을 정신적인 고통에 공감합니다. 20대 초반부터 병원 일을 시작해 음악 대학원 마칠 때까지 병원 일을 했습니다. 환자들을 대하며 살아온 시간은 짧지 않습니다. 그때도 많은 죽음을 봐왔고 종종 가까운 이들의 죽음도 겪었지만 잘 이겨냈습니다. 그때 경험은 교통사고를 겪은 느낌이라면, 이번 일은 전쟁 뒤의 황폐함 같은 감정이 듭니다. “패잔병처럼 저는 서울로 갑니다…할 수 있는 건 기도뿐” 이곳 생활치료센터도 이제 해산합니다. 적은 숫자이지만 아직도 완치되지 못하고 집에 못 돌아가는 분도 있습니다. 또다시 여러 병원으로 나뉘어 보내지게 될 것입니다. 그분들을 결국 집으로 보내드리지 못하고 저는 패잔병처럼 서울로 돌아갑니다. 이제는 기도밖에 해줄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특히 외딴 이곳에까지 기부 물품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유머사이트 커뮤니티인 ‘웃기는 대학’ 회원들이 우리의 수분 보충을 염려해 음료수를 상자 채로 보내줬던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코로나19가 완전히 종식될 때까지 불편하더라도 사회적 거리두기는 꼭 지켜줬으면 좋겠습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형제복지원 탈출하려고 소대장 됐는데… 내 손으로 생매장한 이들 못 잊어”

    “형제복지원 탈출하려고 소대장 됐는데… 내 손으로 생매장한 이들 못 잊어”

    “제식 틀리면 구타” “강간 뒤 아이 입양” 생존자 21명 심층면접·설문조사 등 확보 市, 새달 과거사 정리법 개정 촉구 나설 듯 “탈출하기 위해 신임을 얻어 소대장이 됐는데 내 손으로 생매장했던 사람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한국판 홀로코스트’로 불리는 부산 형제복지원 피해자 용역보고서에 나온 A씨 내용이다. 피해자들은 수십년이 지났지만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기억하며 몸서리쳤다. 부산시는 최근 시의회 회의실에서 연구용역 최종보고회를 열었다고 27일 밝혔다. 부산시는 지난해 7월 동아대 남찬섭 교수 등에게 실태조사와 관련 용역을 의뢰했다. 보고서에는 피해자들의 진술심층면접과 대면 설문조사 등에서 나온 내용 등이 담겼다. 용역팀은 지난 2월부터 한 달여 동안 생존 피해자 30명, 유족 9명 등을 심층면접했고 21명의 기억을 담았다. 1972년부터 1987년까지 수용된 피해자들은 아직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절규하고 있었다. A씨는 “그들의 신원이라도 찾아주고 싶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친구랑 놀러 갔다가 형제복지원 단속반에게 끌려간 B씨는 “제식훈련 때 한 사람이라도 틀리면 밥을 늦게 먹고 방망이로 맞곤 했는데, 맞다가 죽는 사람도 봤다”며 “소대장이 성폭행을 많이 했는데 성폭행하는 분대장, 소대장, 조장들이 있었다”고 전했다. 방학 때 부산역 앞에서 오빠를 기다리다가 끌려간 C씨는 “여자들에게 생리대도 지급하지 않고 천만 4개 줬다”면서 “허벅지가 터지도록 매 맞고 정신병동에서 몇 개월 일했는데 강간당하는 사람들과 낙태 수술하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C씨도 성폭행당해 아이를 출산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새 입양됐다고 한다. 전기기술자였던 D씨의 증언은 용역보고서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의 살인 가담설을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1980년 사업차 부산에 갔다가 싸움에 휘말려 수용됐지만, 전기기술자라 박 원장 사무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유일한 사람이라고 진술했다. D씨는 “원장실은 사무실 옥상에 따로 지어 놨는데 그 안에 몽둥이 열댓 개, 대장간에서 만든 수갑 30개가 걸려 있었다”면서 “하루는 원장이 불러서 가 보니 피가 바닥에 흥건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2월까지 진행된 설문조사에는 피해자 149명이 참여했다. 이들 가운데 형제복지원을 퇴소한 뒤 한 차례 이상 자살을 시도한 비율은 51.7%(77명)로 나타났다. 2016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전 국민 평생 자살 시도 비율 2.4%와 비교할 때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남 교수는 “생존 피해자를 대규모로 설문조사해 객관적 수치로 피해 정도를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박민성 시의원은 “형제복지원 사태의 진실규명을 위한 용역이라는 점에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다음달 말쯤 최종보고서가 나오는 대로 피해자 지원에 나서고 국가차원의 진상규명을 위한 과거사 정리법 개정 촉구에 나설 방침이다. 부산 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보상 없는 격무·기부 압박·조롱까지… 공무원은 ‘봉’ 아닙니다

    보상 없는 격무·기부 압박·조롱까지… 공무원은 ‘봉’ 아닙니다

    휴일 없는 질본 등 연가보상비 전액 삭감 51년 만의 3차 추경에 연일 야근 기재부 전국민 지급에 맞서다 “정치한다” 핀잔 정치권 재난지원금 기부 동참 목소리에 “불이익 우려… 승진 앞둔 경우 다 기부할 것” “연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인데 보상비는 주지 않겠다고 하고, 삭감한 연가보상비 등으로 마련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부하라고 눈치나 주고, 정치권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혼내기만 하네요.”코로나19 사태 최전선에서 싸우는 공무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 당국은 물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 대는 중앙부처, 일선 현장에서 각종 코로나19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지방자치단체까지 전 공무원 조직이 비상 체제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다는 푸념이다.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공조직이 앞장서고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올해 국가공무원 연가보상비 전액(3957억원)을 삭감한 가운데 27일 공무원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선 세무서 주무관은 “초과근무수당 지급도 제대로 안 되는데 연말 보너스 성격인 연가보상비까지 안 주겠다고 하니 불만이 없을 수 없다”며 “배가 고픈데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겠느냐”며 한숨지었다. 반면 경제 부처 사무관은 “연가를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어떤 정신 나간 공무원이 이 시국에 연가보상비 안 준다고 쉬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하지만 고통 분담 차원에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질본의 연가보상비 삭감에 대해선 기재부의 생각이 짧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재부는 보건복지부 등 20개 기관만 연가보상비 삭감 대상에 올리고 청와대와 국회 등 34개 기관은 비삭감 대상으로 넣어 논란을 불렀다. 특히 질본이 삭감 대상이 된 것에 많은 질타가 나왔다. 싱가포르가 정치권 급여를 삭감해 보건 공무원에게 특별보너스를 준 것과 대조된다. ●기재부, 靑·국회 제외 논란에 “사실상 삭감” 이에 대해 기재부는 “전 기관 연가보상비를 삭감할 경우 국회의 추경 심사 업무가 늘어나 통과가 지연될 가능성을 고려했다”며 “인건비 규모가 1조원 이상의 큰 기관과 세출 조정 대상 기관만 연가보상비 삭감 대상에 넣었다”고 해명했다. 비삭감 기관도 예산집행지침 변경 등을 통해 연가보상비를 불용 처리하며 사실상 삭감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어 “오해가 계속되는 만큼 비삭감 기관도 삭감 대상에 올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제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질본은 휴가는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상황인데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힘쓴 질본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보장해 주세요’란 청원이 올라와 이날 오후 3시 현재 1만 3000여명이 동의했다. 기재부 예산실도 질본 못지않게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정치권의 질타를 받으며 사기가 저하됐다. 무려 51년 만에 3차 추경 편성 절차에 들어간 예산실은 내년도 본예산 편성까지 겹치며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정치권에 맞서 소득 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하다 험한 꼴을 당했다. 여당으로부터 “기재부가 정치한다”는 조롱을 받았다. 총선 압승을 등에 업은 여당의 밀어붙이기에 결국 백기를 들었고, 2차 추경 주도권을 정치권에 완전히 빼앗겼다. 이에 대해 볼멘소리를 냈다가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 공개 경고까지 받았다. 경제 부처 서기관은 “정치권이 억누르면서 (예산실 공무원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무원노조 “정부차원 기부 압박 땐 대응” 정치권이 공무원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동참 목소리를 내는 건 사실상 무언의 압박이란 해석이 적지 않다. 경제 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혹시나 아내가 신청할까봐 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기부 여부를 확인당했다가 괜히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 승진이 걸려 있는 공무원은 다 기부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아직은 정치권 아이디어 수준이라 입장 표명을 하지 않겠으나 정부 차원에서 공무원이 먼저 기부에 나서자는 움직임을 보이면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항해체험하던 학생들, 항공편 끊기자 범선 몰고 대서양 횡단

    항해체험하던 학생들, 항공편 끊기자 범선 몰고 대서양 횡단

    쿠바에서 항해 체험을 하던 네덜란드 학생들이 코로나19로 항공편이 끊기자 체험 중이던 범선을 몰고 대서양을 건너 무사 귀환했다. 14~17세로 구성된 네덜란드 고등학생 25명이 26일(현지시간) 스쿠너(돛대가 2개인 범선)를 타고 쿠바에서 대서양을 횡단해 네덜란드에 도착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학생들은 쿠바에서 ‘와일드 스완(Wylde Swan)’호를 타고 6주간의 항해 체험 교육에 참여했는데, 교육이 절반 정도 지났을 무렵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해졌다. 이들은 쿠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3월 중순쯤 네덜란드로 귀국할 계획이었지만, 항공편 운항이 멈추면서 기약 없이 현지에 발이 묶였다. 이에 항해 프로그램 담당자는 결국 학생들과 함께 7000㎞ 거리의 대서양을 횡단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배 안에는 학생들 외에도 노련한 선원 12명과 교사 3명이 동승한 상태였다.이들은 카리브해에 있는 세인트루시아에서 따뜻한 옷과 각종 물자를 비축한 뒤 와일드스완 호를 타고 네덜란드 북부 하를링언 항까지 약 5주간의 여정에 올랐다. 항해에 참여한 학생인 아나 마르티어는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수밖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라면서 “처음으로 든 생각은 ‘지금 있는 옷으로 어떻게 버티지? 배 안에 음식은 충분할까?’라는 것이었다”고 당시 상황과 심경을 전했다. 이날 오랜만에 육지를 밟고 가족 품으로 돌아가게 된 학생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구호를 외치며 감격을 나눴다. 또 다른 학생 플로어 허크먼스는 “집에서는 혼자만의 시간도 가질 수 있지만, 여기(배)서는 잘 때든, 밥을 먹을 때든 늘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해서 긴장을 놓기 어려웠다”고 말했다.허크먼스를 데리러 나온 어머니는 딸이 코로나19에 따른 ‘봉쇄령’을 접하게 되면 오히려 바다에서의 삶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면서 “집에서의 생활은 아주 지루하고, 할 일도 없는 데다 친구도 찾아갈 수 없다”고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이번 항해 프로그램을 기획한 회사인 ‘마스터스킵’은 매년 15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매년 항해 체험교육을 진행한다. 마스터스킵의 책임자인 크리스토프 마이어는 학생들이 선내 생활에 적응하고, 긴 항해 기간에 수업을 이어갈 수 있어 기뻤다고 밝혔다. 그는 “아이들이 적응력에 대해 배웠을 뿐만 아니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고, 일반적인 학교 수업까지 마쳤다”면서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앞서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사회적 거리두기로 SNS ‘집콕여행’ 영상 대유행

    사회적 거리두기로 SNS ‘집콕여행’ 영상 대유행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사는 기술자 필립 클라인 에레로는 최근 빙벽을 타고 눈 덮인 산에 올라 정상 비탈에서 스키 점프로 360도 회전을 시도하다 눈 속에 처박혔다. 에레로는 이 모험을 사회적 거리두기 규칙을 지키면서 아파트 안에서 해냈다. 매년 프랑스로 가던 가족 스키 여행이 코로나19로 인한 전세계적 이동 제한으로 취소되자 침대 시트와 스키 장비를 바닥에 늘어놓고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기법을 이용해 동영상으로 가상 여행을 연출한 것이다. 에레로가 지난 3일 올린 유튜브 동영상(www.youtube.com/watch?v=_HrIVWziJ0Y)은 27일 현재 조회수 70만 건을 돌파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자가 격리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에레로처럼 창의력을 발휘해 집 안에서 여행하는 장면을 연출해 올리는 놀이가 틱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CNN이 보도했다. 사람들이 집에서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본 에레로도 여기서 영감을 얻었다. 레딧에서 이 영상을 본 토머스 서베티는 말레이시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침대 시트, 수건, 책꽂이를 사용해 서핑 여행을 재현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인스타그램과 틱톡에서 ‘#travelfrom home’ 또는 ‘#travelfrom home challenge’라는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더 인기를 끌었다. 틱톡에서 해시태크를 처음 사용해 인기를 끈 영상은 ‘@jeroengortworst’라는 대화명 이용자가 지난 4일 올린 것으로 비행기로 세인트마틴 섬에 착륙하는 동안 와인을 홀짝이는 장면을 담았다. 사실 비행기는 세탁실 타일 바닥이었고 비행기 창밖의 풍경은 세탁기 유리문 안에 둔 노트북 화면이었다. 영상은 틱톡에서 조회수 4000만 건을 넘어섰고, 세인트마틴 관광 그룹은 이를 페이스북에 다시 게재했다. 이같은 ‘집콕 유희’는 여행 블로거들이 대거 동참하며 전세계로 퍼졌다. CNN은 특히 20초 정도의 짧은 동영상에 저작권이 있는 노래를 짧게 배경음악으로 사용할 수 있는 틱톡의 특성 덕분에 이런 놀이가 크게 유행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세인트마틴 영상을 만든 이집트계 캐나다인 디나 버티는 두바이에서 미국 보스턴에 사는 오빠를 만나러 가려던 계획이 무산되자, 아쉬움을 달랠 겸 밥 말리의 ‘Everything‘s Gonna Be Alright’을 담아 오빠에게 보내려고 영상을 제작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연가보상비 삭감, “정치하냐” 조롱…코로나19 최전선 공무원 사기 저하

    연가보상비 삭감, “정치하냐” 조롱…코로나19 최전선 공무원 사기 저하

    “연가를 갈 수 없는 상황인데 보상비는 주지 않겠다고 하고, 삭감한 연가보상비 등으로 마련하는 긴급재난지원금은 기부하라고 눈치나 주고, 정치권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니 혼내기만 하네요.” 코로나19 사태 최전선에서 싸우는 공무원의 사기가 떨어지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등 방역 당국은 물론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각종 대책을 쏟아 대는 중앙부처, 일선 현장에서 각종 코로나19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는 지방자치단체까지 전 공무원 조직이 비상 체제로 움직이고 있음에도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다는 푸념이다. 미증유의 위기를 맞아 공조직이 앞장서고 고통 분담에 나서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일방적인 희생만 강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재원 마련을 위해 올해 국가공무원 연가보상비 전액(3957억원)을 삭감한 가운데 27일 공무원들 사이에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선 세무서 주무관은 “초과근무수당 지급도 제대로 안 되는데 연말 보너스 성격인 연가보상비까지 안 주겠다고 하니 불만이 없을 수 없다”며 “배가 고픈데 서비스 질을 높일 수 있겠느냐”며 한숨지었다. 반면 경제 부처 사무관은 “연가를 가면 되지 않느냐고 하는데 어떤 정신 나간 공무원이 이 시국에 연가보상비 안 준다고 쉬겠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하지만 고통 분담 차원에서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 방역 최일선에서 고군분투하는 질본의 연가보상비 삭감에 대해선 기재부의 생각이 짧았다는 지적이 많다. 기재부는 보건복지부 등 20개 기관만 연가보상비 삭감 대상에 올리고 청와대와 국회 등 34개 기관은 비삭감 대상으로 넣어 논란을 불렀다. 특히 질본이 삭감 대상이 된 것에 많은 질타가 나왔다. 싱가포르가 정치권 급여를 삭감해 보건 공무원에게 특별보너스를 준 것과 대조된다. 이에 대해 기재부는 “전 기관 연가보상비를 삭감할 경우 국회의 추경 심사 업무가 늘어나 통과가 지연될 가능성을 고려했다”며 “인건비 규모가 1조원 이상의 큰 기관과 세출 조정 대상 기관만 연가보상비 삭감 대상에 넣었다”고 해명했다. 비삭감 기관도 예산집행지침 변경 등을 통해 연가보상비를 불용 처리하며 사실상 삭감할 계획이라는 것이다. 이어 “오해가 계속되는 만큼 비삭감 기관도 삭감 대상에 올리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경제 부처 과장급 공무원은 “질본은 휴가는 물론 주말에도 쉬지 못하는 상황인데 섬세하게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힘쓴 질본 직원들의 연가보상비를 보장해 주세요’란 청원이 올라와 이날 오후 3시 현재 1만 3000여명이 동의했다. 기재부 예산실도 질본 못지않게 격무에 시달리고 있지만,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놓고 정치권의 질타를 받으며 사기가 저하됐다. 무려 51년 만에 3차 추경 편성 절차에 들어간 예산실은 내년도 본예산 편성까지 겹치며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밥 먹듯이 하고 있다. 하지만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는 정치권에 맞서 소득 하위 70% 지급 입장을 고수하다 험한 꼴을 당했다. 여당으로부터 “기재부가 정치한다”는 조롱을 받았다. 총선 압승을 등에 업은 여당의 밀어붙이기에 결국 백기를 들었고, 2차 추경 주도권을 정치권에 완전히 빼앗겼다. 이에 대해 볼멘소리를 냈다가 정세균 국무총리로부터 공개 경고까지 받았다. 경제 부처 서기관은 “정치권이 억누르면서 (예산실 공무원의) 자존심이 많이 상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권이 공무원의 긴급재난지원금 기부 동참 목소리를 내는 건 사실상 무언의 압박이란 해석이 적지 않다. 경제 부처 국장급 공무원은 “혹시나 아내가 신청할까봐 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기부 여부를 확인당했다가 괜히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 승진이 걸려 있는 공무원은 다 기부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공무원노조 관계자는 “아직은 정치권 아이디어 수준이라 입장 표명을 하지 않겠으나 정부 차원에서 공무원이 먼저 기부에 나서자는 움직임을 보이면 대응책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보양식 뺨치는 고사리 육개장 한그릇 하세요

    보양식 뺨치는 고사리 육개장 한그릇 하세요

    햇볕에 삶은 고사리 말려 돼지뼈 육수에 끓여 겉보기엔 걸쭉한 죽, 구수하고 깊은 맛에 매력 풍부한 식이섬유로 포만감… 다이어트 딱이야 고사리 육개장은 제주 토속 음식이다. 4, 5월에 채취한 고사리를 삶아 햇빛에 잘 말렸다가 돼지뼈를 우린 육수에 메밀가루를 넣고 길게 찢은 고사리를 넣어 걸쭉하게 끓여 낸다. 여기에다 고춧가루와 매운 청양고추를 가미하기도 한다. 고사리가 쫄깃하게 씹히는 식감은 흡사 질 좋은 소고기를 씹는 듯하다. 겉보기엔 죽처럼 보이지만 구수하고 깊은 맛을 낸다. 예로부터 제주 경조사 때 먹었으며 보양식으로도 즐겨 먹는다. 가정에서도 흔히 고사리 육개장을 만들어 먹는다. 우선 고사리는 독성을 빼기 위해 잘 삶아야 한다. 보통 끓는 물에 5분 정도 삶으면 되지만 늦게 딴 고사리는 더 삶아야 한다. 삶은 고사리는 물에 담그면 고사리의 향이 떨어질 수 있어 최대한 헹구지 않고 물기를 빼고 식힌다. 돼지 등뼈는 한 번 끓인 물을 버린 뒤 새로 물을 부어 생강, 대파, 마늘, 소주 등을 넣어 삶는다. 삶은 등뼈에 붙은 고기와 삶은 고사리를 잘게 찢어 돼지고기 육수에 고기와 고사리를 넣고 약한 불로 고사리의 형태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푹 끓인다. 여기에 메밀가루로 농도를 조절해 죽처럼 걸쭉하게 끓여 낸다. 메밀가루 대신 밀가루나 보릿가루를 넣기도 한다. 중국인 관광객들 사이에 제주에서 꼭 맛봐야 할 음식으로 꼽히고 건강식을 즐기는 일본인 관광객도 즐겨 찾는다. 일본에 사는 이유미(39·제주올레 일본지사장)씨는 제주에 오면 꼭 고사리 육개장을 먹는다. 이씨는 “일본에서도 봄이면 고사리를 튀겨서 먹거나 절임, 우동에 얹어서 별식으로 먹지만 제주 야생고사리만큼 진한 향과 맛은 안 난다”고 말했다. 제주 음식 콘텐츠를 개발하는 베지근연구소 김진경 총괄디렉터는 26일 “고사리가 연하고 향이 진하면 밥에 넣어 해먹어도 좋고 푹 데친 고사리에 들깻가루와 쪽파, 으깬 두부를 넣고 간장과 들기름으로 버무린 고사리 들깨무침도 봄철 입맛을 돋운다”고 말했다. 김 총괄디렉터는 “제주사람들은 예로부터 돼지고기와 고사리를 함께 볶아 즐겨 먹었다”면서 “국물 없이 바싹 볶은 고사리 돼지고기 지짐을 빵에 넣어 모차렐라 치즈를 뿌려 그릴에 구우면 고사리 돼지고기 파니니 샌드위치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고사리는 식이섬유가 풍부해 쉽게 포만감을 주는 음식으로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또 비타민 A, 칼슘, 철분, 칼륨 성분이 풍부해 체내의 나트륨을 배출시켜 혈압 및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해 주는 효과도 있다. 여기에다 단백질, 비타민 B1, B2, C와 미네랄 등이 많이 들어 있다. 제주시에서 고사리 육개장만 전문적으로 파는 음식점이 성업 중이고 낮에는 대기표를 받고 최소 30여분을 기다려야 하는 등 관광객들이 별미로 찾는다. 포장 판매도 하고 급속 냉동한 고사리 육개장을 전국 택배도 해 준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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