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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백리 열전(화제의 책)

    ◎민성휘등 청백리의 바른삶 소개 조선 인조 대에 민성휘라는 사람이 있었다.평안감사 시절 대동강 선교리 나루까지 서너 사람만 거느리고 순시를 나갔다.그때 세도가에 딸을 시집보냈다는 자의 일행이 하루 종일 기다린 백성들을 쫓아내고 가마에 탄 기생 첩실과 함께 유유히 나룻배를 타고 건너갔다. 이에 그는 『통인은 급히 나루를 건너 백성에 행패를 부린 저 양반이란 작자를 옥에 가두라』고 지시했다.이에 군중들은 일제히 큰절을 하면서 그를 우러러 보았다.민성휘에 대해서는 『공은 고을을 순시하면서 교자를 타는 일이 없었고 일산도 받지 않았다.밥상에는 언제나 두가지 고기를 올리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용선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5천원.
  • 여성계도 개혁에 적극 동참을/신용자(여성칼럼)

    개혁의 거센 바람이 삭풍처럼 차갑게 곳곳을 할퀴며 지나간다. 이 바람이 견딜수 없는 아픔과 고난을 안겨주는 사람도 적지 않겠지만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은 살을 깍는 고통을 참고 이겨내며 개혁의 열매를 거두는데 일조를 하고 싶다는 다짐의 소리를 내고 있어 정말 다행스럽다. 그런데 개혁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인가. 지난날 온갖 권세와 영화를 안고 국민이 용납할 수 없는 부정과 부패를 저지른 공직자를 몰아내고 혼내주는 일이며 모든 국민에게 막중한 영향을 미치는 중책을 맡은 자가 자신의 이속을 차리고 볼품없는 권위만 내세우던 세도가들을 응징하고 이 나라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 나갈 새로운 지도자들에 일할수 있는 튼튼한 터전을 닦아주는 일인가. 이 모두가 합쳐져 국민 모두가 기꺼이 아픔도 고통도 함께 나눌수 있는 용기와 소명감을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개혁」의 내용이요 방법이라 생각한다. 「고통은 나누면 나누어진만큼 줄어들고 기쁨은 나누면 그만큼 불어난다」는 말과 같이 이 국가적인 개혁의 과업수행에 따르는 고통과 기쁨은 여성에게도 당연히 그 몫이 응당히 주어져야 한다. 새 정부는 지금 여성의 우대받는 사회를 만든다는 각오로 여성관련 정책수립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약수행을 위하여 추진중인 성폭력방지법제정,영유아보육법 및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보완및 대통령직속의 여성지위위원회 설치를 비롯하여 여성계의 주장으로 대두된 국회내에 여성특별위원회 설치운영에 대한 건의등 여성을 위한 정책추진의 분위기가 그 어느때 보다도 생동감 있고 바쁘게 조성되고 있는데 오히려 여성계는 이상하리만큼 잠잠한 것같아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특정인 몇몇의 독점된 주장과 요구가 아니라 각계각층의 여성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 거르고 모아진 구체적이고 합리적인 내용을 담은 의견이 지금쯤 정책입안자나 추진의 책임자의 손에 곧바로 들어갈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하는게 아닐까. 바쁘고 중요한 시기에 맥놓고 앉아 있다가 다 차려놓은 밥상에서 익은 음식 몇술에 배불러 안주하게 된다면 평소에 목청을 높이던 주장과요구는 어느 허공에서 메아리치고 여전히 소외되고 무력한 열외인간이 될수밖에 없을 것이다.
  • 여성노인들의 설움/이경자(여성칼럼)

    지하철에서 만난 팔순이 가까운 할머니의 주름파인 얼굴은 일종의 서글픔을 전해주고 있었다.조그마한 손지갑을 잃어버릴까 꼭 쥐고 있는 쪼글쪼글한 손은 그 할머니가 지금껏 얼마나 많은 일을 해 오셨는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고,아직도 계속하고 계실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해 주고 있었다. 오늘은 누구집에 또 무슨 일을 해주러 가시는 길일까.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이 돈없는 시어머니의 입장이고 가장 하기 싫은 일이 집 지켜주는 일이라는데­. 이 시대의 노인여성들은 유교적 가부장문화의 영향과 일제 식민지시대,해방전후의 혼란기와 진쟁등을 겪으면서 노후의 대비가 전혀 불가능했던 세대로 그 어느 시기의 노인들보다도 어려움을 맞고 있다.대체로 무학력이며 과거에 경제활동의 기회가 거의 없었고,있었다 하더라도 비연속적이었던 경우가 대부분이며 또한 남성에 비해 저임금으로 수입이 적었기 때문에 자기몫의 재산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고령층 생활보호대상자의 약 70%가 여성이며 양로원과 요양원에서 보호 받고있는 노인의 약 90%도 여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딸이라고 환영받지 못해 말순이나 후남이 같은 이름을 얻고,자라면서도 밥상부터 차별받으며 부엌이나 뒷전에서 지내다가 결혼후도 온갖 집안일 다 하며 시어른을 모시고 남은 반찬과 찬밥 먹어가며 가족들을 보살피고 자녀를 키우고 교육시켰지만 그러한 가정적,사회·경제적 기여에 대한 보상도 없이 자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이 보편적 현상이다. 요즈음 젊은층의 효도의 기준은 부모를 부양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결혼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는 것만 해도 효도라고 생각한다.나이먹고 병들어 서러운데다가 남성보다 불이익을 당하는 여성노인들은 자식들의 행위가 괘씸하여 본전생각이 절로나며,길어진 수명조차 더욱 거추장스럽게 여겨질 뿐이라고 한다. 이러한 여성노인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책이 이루어져서 그들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감소될 수 있고,활기를 찾을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은 일이 될까. 우리 모두가 다시금 생각해야 할 과제이다.
  • 수필가 피천득씨(이세기의 인물탐구:16)

    ◎티없이 순수한 글에 고결한 기품 가득/자연·인간심리의 섬세한 현상들 묘사 주력/황홀·찬란하지 않은 언어로 인생향취 음미/부모 일찍 여의고 도산·춘원 등에 문학·인생의 멋 배워 『난영이 잘 있나요?』하자 『그럼 잘있구 말구.세영이 엄마,난영이 데려와요』한다. 금예 피천득씨가 사는 구반포아파트에는 노부부와 난영이가 있다.어린 난영을 위해 그는 지금도 날마다 낯을 씻기고 머리에 빗질을 해주고 1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시킨다.난영은 요즘 엷은 청회색 봄쉐터에 멜방이 달린 남색바지,그보다 더짙은 감색 양말을 신고 있다. 난영은 피천득씨의 또하나의 딸이다.그의 「새털같은 머리칼을 적시며」의 주인공인 딸 서영이 미국으로 가버리자 마음을 달랠 수 없던 그는 대신 난영을 돌보게 되었다. 난영은 지금부터 40년전,그가 하버드대 연구교수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없는 서영을 위해 사온 서양인형이다.이제 금빛 머리칼은 퇴색한 브론드지만 천진하고 밝은 얼굴,푸르고 맑은 눈동자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부모의 정성과 손길이 그만큼 자상했던 탓이리라.난영의 봄쉐터와 바지 골무만한 털 양말은 부인 임진호여사(78)가 부군이 시키는대로 손수 떠서 입힌 것이다. 우리는 고교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금예의 「인연」이란 수필을 잊지 못한다. 10대와 20대 40대에 걸쳐 세번 만나게된 한 소녀와의 운명적 인연을 짤막한 글속에서 산호와 진주처럼 표현하여 어른이 된 지금도 사춘기의 애잔한 추억으로 남게하고 있다. 그는 어느 글에서나 사람의 도리와 경우,삶의 기쁨과 행복을 전하면서 이른바 「동천년로항장곡 매일생한불매향(오동은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고 매화는 일생을 추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의 절개와 기품을 꼿꼿이 지키고 있다. ○삶의 행복 글속에 담아 그의 시의 소재는 언제나 자연과 인간 심리의 섬세한 현상을 교차시키는 것이 특징이다.설움과 심사가 「구름같이」피어나고 「물결같이」일어난다.그리고 「저 바다 소리칠때마다」그의 가슴이 뛰고 「저 파도 들이칠때마다」그의 피는 끓으며 그의 마음은 바다로 하늘로 달음질친다. 그의 글들은 티없는 옥천이다.그는 정수만을 쓰기위해 혼신을 다하고 온오을 드러내는데 전력하며 그의 처신은 언제 어디에서나 경홀(경홀)과 당혹함이 없다.작은것을 말하면서 큰 것을 암시하고 비탄에 앞서 비장미의 감동을 담고 있다. 그가 「수필」에서 쓴 것처럼 그의 「수필은 청자연적이다.수필은 난이요,학이요 청초하고 몸맵시 날렵한 여인이다」 「수필은 청춘의 글은 아니요,서른여섯살 중년 고개를 넘어선 사람의 글」이며 「그속에는 인생의 향취와 여운이 숨어있고」「황홀찬란하거나 진하지 아니하며 검거나 희지않고」「언제나 온아우미」하다. 금예는 서울사람이다.종로 화신 건너편에서 신전을 열어 가죽신장사로 부자가 된 피원근씨와 김수성여사의 독자로 태어났다.그러나 7세때 부친을 잃은 그는 서화와 거문고에 뛰어난 어머니로부터 예능과 문장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여름이면 모시,겨울이면 옥양목」,모시처럼 섬세하고 깔끔하고 옥양목처럼 깨끗하고 차가운 「엄마」가 그에게 있었던 것은 「타고난 영광」이라고 표현한다.「엄마같은 애인」「엄마같은 아내」를 갖고싶어했고 또하나 간절한 소망은 「엄마의 아들」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그는 어느 글에서나 그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른다.그가 10세때 30세의 나이로 어머니마저 타계하자 어머니에 대한 한과 그리움이 시와 수필속에서 절절히 사무치게 된것같다.그래서 딸 서영을 「엄마가 하느님께 부탁하여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라 생각하고 서영의 일거 일동을 섬세하게 지키는건 물론 유치원서 국민학교를 졸업할때까지 거의 매일이다시피 학교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곤 했다.딸도 아빠를 따르고 섬기고 아빠가 원치않는 것은 어기지 않는다.그런 서영이 서울대 화학과 졸업후 미국으로 가버렸을때의 허전함과 허탈은 누구도 쉽게 짐작할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이다. 딸과 어머니외에 그의 구원의 여상은 성모마리아와 단테의 베아트리체,헤나의 파비올라,「둘이서 걸어가기엔 좀 좁은 길이라고 여겨지는 알리사」,그리고 「자존심이 강하여 싱싱하면서도 수줍어할때가 있는 푸른나무와 같은 여성」「마음을 허공에 둘지언정 아무것으로나 채우지 않으며」신의 존재·영혼의 존엄성·진리와 사랑의 기도를 열심히 믿으려고 애쓰는 여성이다. 또 「평범하되 정서가 섬세하고 동정을 주는데 인색치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여기는 미소같은 유머를 지닌 사람들에게 그는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1926년 춘원의 권유로 상해유학을 결심한것은 공부도 공부지만 도산 안창호선생을 만날수 있다는 호기심과 기대도 그 하나의 이유가 된다. 큰 기대에는 환멸이나 실망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도산을 처음본 순간의 기쁨은 마치 김강산을 처음 봤을때의 감격과 비슷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우렁차면서도 날카롭지않고 청아하면서도 부드럽고 위엄이 있으나 상대방을 억압하지 않는」용모와 풍채와 음성이 그랬다. ○16세때 상해로 유학 병들어 누웠을때 그를 상해요양소에 입원시켰고 겨울 아침마다 문병하는등 끔찍한 사랑을 받았음에도 32년 6월 도산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고국으로 압송되고 그가 순국했을때도 일경의 감시가 두려워 장례식에 참석치 못한것은 「예수를 모른다고 한 베드로 보다더 부끄러운 일」로 자책하고 있다. 춘원 이광수역시 도산못지않게 그의 인생과 문학에 커다란 획을 그어준 잊을수없는 인물의 하나다. 상해에서 돌아와 3년간 춘원댁에 기거하고 있을때 춘원을 그에게 「금아」란 호를 지어 주었다.워즈워스,도연명을 읽게 했으며 마음가짐이 항상 밝고 맑은 「광풍명월」,어떤 경우에도 구애없이 순응하는 「행운류수」의 행동을 깨우쳐준 장본인이다.상해 호강대(호강=후장)선배인 용예(주요한) 여심(주요섭) 소년시대때부터의 치옹 윤오영과의 청담·청교도 빼놓을 수 없지만 이제 시간이 지나 그들은 먼길을 먼저 떠나버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소팽을 듣고 아파트 주변을 산책한다.전에는 곧잘 비원에 가곤 안내원의 인솔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싫어서 시내에 나오면 덕수궁에나 들르고 있다. 담배·커피는 물론 술은 입에 대지못한다.체질상 마시지는 못해도 「거품이 풍기는 맥주·빨간 포도주·환희소리를 내며 터지는 샴페인」등 술에 관한 이야기라면 수주의 「명정사십년」못지 않게 쓸 수 있을 것같다. 그의 생활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학자·문필가로서의 청빈을 면치않는다.39년 신혼초에는 성균관동재에 방한칸을 빌려 살았고 어느해엔 1년에 여섯번이나 이사,방둘짜리 영단주택,이 아파트로 이사오기 12년전까지만해도 버스가 15분마다 한번씩 오는 하남시 망월동 9평짜리 집에 살면서 강아지를 키우고 꽃과 나무도 심었다. 3남매가 결혼후 모두 미국으로 떠나자 집을 지닐수 없어 아파트생활을 하게 됐고 「학문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면 비록 오막살이라도 누추하지 않다」는 옛글과 맞지않아 『늙은 아내탓을 하지만 기름때는 아파트로 온것은 분에 넘치는 노릇』이라고 얼굴을 붉힌다. 현관에 들어서면 휑덩그런 거실,커튼도 소파하나도 없다.그 흔한 붙박이 장식장도 없이 밥상겸 집필상으로 쓰는 오래된 교자상 하나,서재에도 옛날 딸이 쓰던 책상과 제자들이 돈을 모아 사다준 책상위에 캐나다에서 치과기공소를 경영하는 장남(세영씨·52·전연극인)미네소타의 소아과의사인 차남(수영씨·50)이제 MIT교수인 독일인 남편과 함께 세계적 물리학자이며 보스턴대 교수가된 딸 서영씨(48)가족사진들을 나란히 늘어놓고 도산과 아인슈타인,잉그리드 버그먼과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상사진,르노아르 세잔의 프린트 그림뿐.표구된 그림이 벽에 기댄채로 서있기에 『왜 그림을 걸지 않으시냐?』고 물으니 『벽에 못을 박기가 싫어서』라고 대답한다. ○작은 기쁨에도 만족 그는 언제나 필요한것만큼만 소유하며 작은 기쁨 작은 아름다움에 만족하고 있다.일찍이 그런 그를 가리켜 월탄이 『개결이 지나치다』고 한것은 그를 꿰뚫어 아는 명언에 틀림없다. 비오는 날이면 미술전시와 음악회 프로그램,묶어두었던 편지와 사진을 풀어보면서 『인생은 사십부터도 아니며 사십까지도 아니다.어느나이나 다 살만하다』고 확인한다. 이제 기쁨과 슬픔을 다 겪은후 맑고 침착한 눈으로 인생을 관조하려는 그는 여전히 『사랑과 슬픔은 남에게 보이지 않을것』을 원칙으로 지키려 한다. 요즘은 수필보다 시에 집착하여 최근에는 「아침이슬 같은/무지개 같은/그 순간이 있었으니/비바람 같은/파도 같은/그 순간이 있었으니…」지난 시간을 돌아본 시를 발표했다.밤에는 그의 곁에 난영을 재우고 새근새근 잠든 난영의 평화로운 숨결속에 그의 모든 그리움과 외로움과 시름을 묻는다.그리고 그는 이런 만년의 기쁨과 여유와 평화를 혼자 누리는것이 다른이들에게 송구스럽다면서 소년처럼 조용히 웃어보인다. □연보 ▲1910년 5월29일(음 4월21일) 서울 종로출생 ▲1932년 서울 제일고보 부속국민학교 졸업 ▲1923년 〃 제일고보 입학 ▲1926년 제일고보 4년 재학시 중국 상해로 유학.상해 공부국 Thomas Hanbury public school에서 수학. ▲1929년 상해 호강 대학교(University of shanghai)예과 수학.도산 안창호선생에 사사 ▲1931년 호강대학교 영문과 진학 ▲1933년 신동아에 「기다리는 편지」「나의 파일」 등 발표로 문필 생활시작 ▲1934년 재학중 수차 구국하여 춘원 이광수택 유숙 청교.(이무렵 현진건·이상범·이은상·인촌·고하교류) 금강산서 1년체류(시작 「단풍」외) ▲1937년 상해 오강대학교 영문과 볼업.서울 중앙고등학원 교원 ▲1945년 경성대학교 예과교수 ▲1951년 서울대 사대교수 ▲1954년 미 하버드대에서 연구 ▲1959년 「금아시문선」(경우사간) ▲1967년 서울대 대학원 영어영문학과 주임교수 ▲1969년 미 하버드대 등 여러대학에서 한국문와강의 British Council초청으로 영국방문.시집 「산호와 진주」(일조각간) 영문판 「A Flute Player」 출간 ▲1974년 서울대 퇴직후 미국여행 ▲1976년 수필집 「수필」(범우문고간) 세익스피어 「소네트시집」(정음문고간) ▲1980년 「금아문선」「금아시선」(일조각간) ▲1987년 「피천득시집」(범우문고간) 이후 시작 「새」 「너」 「기억만이」 「만남」 「그뒷 이야기」 「저 안개속에」 등 계속 발표중.
  • 21세기 한국의 문을 여는 “이어령과의 대화”:12

    ◎부채의 원리/인간과 도구·기계와의 관계 변화/로봇과 구도여행하는 삼장법사/상호 대립·단절… 균열속에 따로 존재/서구/쥘 부채처럼 사용자 마음따라 변화/동양/친화 바탕 새 도구관 한국서 나와야/이불·요는 필요에 따라 펴고 개키고/서양침대는 사람 일어나도 그대로/한국이이 자동차를 발명했더라면/주차장 공간 필요없게 연구했을것 □황규호문화부장=이 대담이 처음 시작되었을때 선생님께서는 「에너지에서 정보」로 산업사회의 가치체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그리고 21세기는 그동안 서양문명이 구축한 두꺼운 벽이 무너지는 자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씀도 하셨습니다.에너지와 벽은 어떤 면에서 상관성을 갖고 있는지요. ○인력·축력 1% 불과 ■이어령 전문화부장관=19세기 중반까지 인간이 사용한 전 에너지의 94%가 인간과 가축의 근력에서 나오는 에너지였다고 합니다.그런데 1백년이 조금 지난 오늘날에는 그것이 불과 1%도 안된다고 합니다.놀랍지 않습니까.산업화의 기점은 제임스 와트의 증기기관의 발명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것은 국민학교 학생들도 아는 상식이지요.근력이 증기의 힘,전기의 힘,그리고 이제는 원자력의 힘으로,에너지원의 새로운 개발이야말로 오늘의 산업화시대를 만들어낸 바로 그 심장이요 손발이라고 할 것입니다. □자연에너지가 인공적인 에너지로 바뀌어 갔다는 것이지요.지금도 자동차를 몇마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산업화 이전의 에너지를 대표하였던 것은 말의 힘이었지요.여기까지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입니다마는…. ■그래요.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지요.그런데 조금 파고 들어가면 우리가 잘 모르는 사실들이 드러나게 되지요.말의 힘이 증기기관의 힘으로 바뀌어간 그 과정을 살펴보면 산업혁명이 일어나게 된 문명의 그 숙명적 의미를 피부로 느낄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산업혁명을 낳은 당시의 영국사회 특히 런던의 그 도시환경 말씀이신가요. ■16세기중반에서 17세기에 이르면 런던과 같은 대도시의 연료와 목량업의 발전으로 영국의 산림자원은 황폐해지기 시작합니다.수풀의 죽음속에서 서서히 농경 문명이 막을 내리게 되는 상징적인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지요.심각한 열 에너지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나타나게 된 것이 바로 석탄이었는데 이 검은 돌과 탄광이야말로 산업문명을 낳은 아버지라고 할 것입니다. □『석탄 백탄 타는데』라는 개화기때의 우리나라 노랫가락이 생각나는군요. ■문제는 석탄을 연료로 썼다는 자체가 산업화를 이룩했다는 것은 아닙니다.첫째 이 석탄을 캐려면 탄광의 배수문제를 해결해야 되는데 결국 거기에서 발명된 것이 바로 배수펌프이고 후일 와트의 회전식 증기기관으로 맥을 잇게 되는 뉴커먼 기압기관의 탄생입니다. □산업혁명을 낳은 아버지가 석탄이라면 그 어머니는 동력기의 발명이라는 말씀이군요. ■뿐만이 아닙니다.산에서 캔 석탄을 도시로 수송하려다 보니 이번에는 말이 자꾸 증가하기 시작합니다.말이 증가되면 그 사료를 증산해야 하고 이렇게 말 사료가 늘어가면 결국 사람의 식량이 달리게 됩니다.더이상 말을 늘릴 수 없는 한계상황에 부딪치고 만것입니다. ○채털리부인 숲향기 □알겠습니다.그 극한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 와트가발명한 인공의 동력의존이라는 말씀이시지요. ■그렇지요.말의 힘을 대신할 인공동력의 발명,기차가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석탄을 때서 석탄을 운반하는 이상한 현상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웃음).숲이 죽고 말이 죽고 그대신 태어난 것이 동력기관과 기계들이었지요.탄광과 공장,로렌스의 소설을 보면 숲의 죽음과 산업문명의 탄생이 아주 선명하게 그려지지요.그의 문학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상실한 숲의 재생이라고 할 것입니다.그가 그리는 섹스라는 것도 이 남벌된 숲의 한 풍경에 지나지 않아요.왜 그 유명한 채털리부인의 사랑이 있지 않습니까.그 정사장면의 묘사를 보면 그가 그리려는 섹스와 숲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잘 알 수가 있습니다.채털리부인의 온 몸에서는 숲의 향내가 나고 성불능에 걸린 그 남편의 몸에서는 검은 연기와 불꽃을 토해내는 공장 굴뚝의 석탄 냄새가 나지요.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산업문명이 어떤 것인지 오관을 통해서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석탄냄새,지하의 탄광과 광부들,그리고연기를 내뿜고 달리는 철마­초기 산업문명의 이 풍경이야말로 근대인이 뽑은 운명의 카드였지요. □그런데 21세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는 그와는 다른 또하나의 「운명의 카드」를 손에 들고 있다는 것이군요. ■우리 손에 들린 그 새로운 운명의 카드에는 어떤 그림들이 보일까요.우선 동력기에 의해 돌아가던 거대한 기계들이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로 변한 모습이 보입니다.전자시계를 비롯한 전자제품들,전화,반도체를 이용한 컴퓨터와 모든 정보기기와 관련된 것들은 19세기때의 기계식 제품과는 달리 아주 작은 동력으로 돌아갑니다.강전의 시대에서 약전의 시대로 말입니다.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덜쓰는가?정보기기가 아니더라도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제품일수록 이 지상에서는 공룡처럼 자취를 감춰가는 운명에 놓여 있습니다.후기 산업사회는 전세계가 오일쇼크를 경험하고 난 그 뒤부터라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에너지」에서 「정보」로 그 힘의 비중이 바뀌어 간다는 말은 에너지에서 전파로,기계에서 전자로 그 패러다임이 변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기계가 마이크로 일렉트로닉스로 바뀌면서 모든 산업주의의 패러다임도 변화되었다는 말씀이시군요.동력기는 반도체로,에너지는 전파로,강전은 약전으로 중심개념이 옮겨간다.그래서 도구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그렇습니다.기계는 동력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들이라 인간과 다른 자기독자의 심장을 갖고 있지요.인간과 기계는 대립적이거나 단절적입니다.인간과 기계의 이같은 관계를 극단화시킨 것이 그 유명한 프랑켄슈타인입니다.작품이 아니라 실제로 기계와 인간이 힘을 겨루는 이야기는 유럽 미국등지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서양사람들은 인간과 인간사이 만이 아니라 도구와 인간사이에도 두꺼운 벽을 가지고 있었지요.이러한 벽때문에 인간은 자연과 도구를 객체로 파악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인간따로 기계따로 제각기 따로 노는 균열이 생겨난 것입니다. ○마음따라 수시 변용 □한국의 경우는 어떻지요.인간과 도구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관계말입니다.더 적대감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서양사람과 한국사람 넓게는 동아시아 사람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지난번에 병풍이야기를 하였지만 그 쓰는 도구를 보면 분명히 알수가 있습니다.부채를 보십시다.서양이나 동양이나 부채를 사용한 것은 다 같습니다.그런데 일본과 한국인은 접는 부채를 발명하였고 애용했습니다.전주의 합죽선은 지금도 그 맥을 이어오고 있지 않습니까.보통 부채와 달리 왜 우리는 접는 부채를 많이 사용하였을까요.부채 역시 사람이 쓸때에는 펴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접어 둡니다.상황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에 의해서 도구도 수시로 변하는 것이지요. □사람과 도구가 대화를 한다는 것이군요. ■서양부채는 사용할 때에나 그렇지 않을 때에나 똑같습니다.그러나 접부채는 쓰지 않을 때에는 작게 접혀서 옷소매나 주머니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부채만이 아니지요.이불과 요를 보세요.잠잘 때에는 펴고 일어나면 개키지 않습니까.이불과 요는 그 주인인 인간과 함께 행동하지요.그런데 서양침대는 어때요.사람이 자고 일어나도 꼼짝도 안합니다(웃음).24시간 자리를 차지하고 드러누워 있는 거예요.어디 침대만 그래요.집집마다 양옥을 짓고 응접실에 소파를 들여놓고 삽니다마는 그 의자라는 것은 사람이 앉아 있는 시간보다는 제가 혼자서 죽치고 앉아 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응접실은 결국 사람보다 의자를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그러나 한옥 사랑방을 보십시오.의자 대신 방석이 있는데 손님이 오면 내왔다가 돌아가면 방석을 넣어둡니다.사람이 앉을 때만 존재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집니다.인간과 도구는 일체가 되어 함께 호흡하지요.서양식탁은 세끼 밥먹기 위해서만 있는데 밤낮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요.먹을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그러나 우리 밥상은 어디 그래요.먹을 때에는 나오고 먹고나면 들어갑니다(웃음). □먼저 시간에 말씀하신 한국의 보자기와 서양 가방의 차이와 같군요. ■자동차는 서양사람이 만든 물건 가운데 대표적인 최악의 발명품으로 사람이 탈때나 내릴 때나 변함이 없어요.한국인이 만들었더라면 전주 합죽선처럼 내리면 척 접혀져 작아지거나 벌떡 일어서거나(웃음)무슨 변화가 있도록 디자인 되었을 것입니다.빈차가 잠자고 있는 주차장 공간을 볼때마다 과학기술이 발달했다고 자부하고 있는 현대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됩니다.농담이 아니라 사실 근대에 들어서 동양인의 독창적인 발명품으로 유일하게 손꼽히는 인력거를 보더라도 손님이 내려 비었을 때에는 세워놓도록 설계되어 있지 않습니까.가마도 다 해체할 수 있도록 되어 있구요. □근대 기계를 수용하는 데 있어서도 그런가요. ■일렉트로닉스는 합죽선과 가까운 도구인 것입니다.전자제품은 인간과 일체형으로 되어 있지요.그것들은 몸에 휴대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서 안테나를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된 라디오 카세트처럼 쓸때와 쓰지 않을 때에 따라 달라집니다.인간과 대화를 하고 있지요.컴퓨터의 변화를 보세요.이젠 노트북 컴퓨터에서 펌(손바닥)컴퓨터에 이르기까지 인체에 밀착하도록 발전되어가고 있지요.인간과 함께 하는 마치 인체의 일부처럼 붙어다니는 기계 그것이 전자제품들의 특성입니다. □무선전화니 휴대폰도 다 그렇구요. ■기계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면서도 그 결과는 인간을 해치고 대결하고 파멸시키는 프랑켄 슈타인이 되었지만 앞으로의 그것은 좋은 동반자로서 같이 호흡하고 대화하는 커뮤니케이션 파트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기계는 생산하는 도구,공장의 기계로 대표되었던 그런 도구가 아니라 방안에서 인간과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따뜻한 도구로 변신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도구와 인간이 일체가 되는 그런 정신을 우리는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어서 미래의 기계에 대한,도구에 대한 새로운 철학은 한국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도구론이 말입니다.삼장법사가 손오공과 저팔계를 데리고 경전을 구하러 가는 그 여행처럼 앞으로 우리는 로봇이었던 컴퓨터였던 그런 반려자를 데리고 복지의 땅 행복과 번영의 인간문명의 경전을 받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호칭에도 인격부여 □실제로 그런 현실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지요. ■가령 접부채를 만들어낸 일본의 예를 들어보면 그들이 어떻게 로봇왕국이 되었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요.전세계의 공장에서 일하는 로봇의 80∼90%는 일본것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급속도로 로봇이 인간과 함께 공장에서 일하게 되는 것은 로봇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마치 인간처럼 기계와 친숙하게 벗하면서 일을 한다는 것이지요.아침에는 로봇과 함께 라디오체조를 하기도 하고 인기가수나 연예인 이름을 따다 로봇에 붙여 놓고 부릅니다.『고장났다』고 하지 않고 『병에 걸렸다.몸이 불편한가 보다』라고 말한다는 겁니다.서양에서는 로봇을 인간의 대립물로 보기 때문에 노조에서는 물론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적대감을 갖는 경우가 많지요.도구와 친화력을 갖는 전통문화를 갖고 있는 사회에서 로봇이나 전자제품은 보다 잘 수용되고 발전해 갈 가능성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기계의 개념이 바뀌어지는 데서 21세기의 문이 열린다.산업사회와는 다른 새로운 도구관이 탄생되어야 한다.이 가능성이 우리에게 많다.대체로 이러한 논법에서 산업문명 뒤에 오는 미래의 역사를 전망해 주셨습니다.다음에 계속하지요.
  • “향토역사 한눈에”/전시공간 잇달아 개관

    ◎안동민속박물관 이어 강릉도 곧 문열어/주민이 기증한 민속유물·놀이기구 전시 한 지역의 총체적인 문화와 문물을 한자리에 선보이는 지역문화 전시공간이 잇따라 개설된다. 지난 6월말 경북북부지역의 민속문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안동민속박물관이 개관된데 이어 오는 10월에는 영동지방의 향토역사를 대규모로 소개하는 강릉향토사료관이 문을 열 예정이다.이들 지역문화 전시공간들은 이제까지 소규모의 개별적인 소개에 머물러 왔던 지역문화와 역사를 종합·체계화한다는 의미외에도 상대적으로 소개에 소홀해 왔던 서민들의 민속문화를 위주로 한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이같은 이유때문인지 이들 전시공간에 선보일 전시품목 대부분이 지역주민들의 자발적 기증과 기탁에 의존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우선 안동시 성곡댐·안동댐옆 안동민속경관지 내에 들어선 안동민속박물관에는 골동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닌 유물보다는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던 민속유물이나 민속놀이기구가 주로 전시되고 있다.17만1천3백29㎡의 부지위에 모두 40억원이 투자돼지상 2층,연건평 3천85㎡규모의 현대식 장방형 콘크리트건물로 세워진 이 박물관에는 안동시가 경북 북부지역 각 시 군과 문중에서 기증받거나 사들인 3천8백여점의 민속유품 가운데 1천여점이 전시되고 있다.이 박물관의 주요 전시공간인 1층 제1전시실은 중앙에 초가까치구멍집을 설치하고 입구로부터 선사유적,고려시대 불교유적을 비롯하여 돌차림 어린이정장 남녀복식장구 농경생활 농기구 안동포짜기 등을 배치,서민생활을 소개하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2층 제2전시실에는 반촌 양반생활을 짐작할 수 있게하는 7채의 건물이 배치됐다. 오는 10월 개관을 앞두고 유물배치작업이 한창인 강릉향토사료관 역시 강릉문화원 영동지역 주민 등으로부터 기증 또는 기탁받은 1천여점의 유물중 1차적으로 4백여점의 유물이 공개된다.강릉 죽헌동 오죽헌 바로옆 5천2백여평의 부지위에 건평 5백평의 단층 슬라브 한옥으로 건립된 이 사료관은 강릉을 중심으로 명주·삼척·양양 등 영동문화권에서 전해지고 있는 서민문화를 위주로한 각종 문화유산을 한자리에 모은다.이사료관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내는 역사자료실의 경우 조상들이 사용하던 농기구·통방아·밥상·의상 등 생활용품 및 도구,토속신앙을 엿보게 하는 서낭당,이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발달했던 사다리꼴 모양의 오금집 등을 전시해 서민들의 생활상을 알 수 있게 할 예정이다.이밖에 무형문화제 13호인 강릉단오제를 조형물로 재현,성황당 제례굿 씨름 등을 내용으로 하는 옛날 단오제를 한눈에 엿보게 하는 한편 마네킹을 이용하여 지방문화제인 강릉농악도 전시한다. 선사시대실에는 이 지방에서 출토된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물을 비롯하여 안인리 선사시대유적지가 복원·전시되며 역사미술실에는 보물 81호인 한송사 석불좌상과 보물84호인 신복사지의 와당편 등 주로 강릉지역의 불교미술품들이 선보일 예정이다.
  • 피나무/껍질 용도 다양… 밧줄·한지 등 원료로(나무이야기:15)

    ◎키 20m 낙엽활엽수… 중부이북서 자라/6월에 꽃피고 목재는 고급식탁재로 피나무는 한자로 피목으로 쓴다.나무의 껍질 즉 섬유의 쓸모가 많음을 알 수 있다.Tilia란 속명은 그리이스어 Tilo에서 왔는데 뜻은 섬유를 의미한다.영어로는 Basswood라 부른다.Bass란 나무의 속껍질을 뜻하는 Bast란 나무의 속 껍질을 뜻하는 Bast가 변한 것인데 수피의 용도가 많아 속껍질 나무라는 이름을 얻었다.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름의 유래가 같은 뜻을 담고있는 식물이 상당수 있어 재미있다.또한 보제수로도 쓰고 보리수나무로 읽는데 이때의 보리수나무는 한국산이 아니다.보제 또는 보리(보제)란 불도 또는 정도라는 범어의 Bodhi에 해당한다.우리나라산 피나무의 잎은 얼핏보기에 인도보리수나무(Bo Tree)의 잎을 닮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된다. 피나무는 중부이북의 산지와 중국,몽골,아무르지방에 분포한다.낙엽 활엽교목으로 수고 20m,직경 1m에 달하는데 내음성,내한성과 공해에 강하다.건조에 견디는 힘은 다소 약하다.목재의 질이 뛰어나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통나무를 그대로 파서 만드는 함지박,나무절구통,나무쌀통 등의 최적재로 꼽혀왔다.특히 떡을 치는 안반재로도 많이 쓰였고 최근에는 비자나무,은행나무의 대용재로서 바둑판,장기판 등에 쓰이며 각종 민예품조각재와 향나무,포플러 대용으로 연필,성냥 등에 쓰인다.또한 주걱과 젓가락으로도 사용되었고 특히 그릇의 자국이 나도 물기있는 행주로 닦으면 감쪽같이 자국이 없어지는 특성으로 밥상의 천판재로 손꼽힌다.유럽에서는 이 나무를 스펀지재(Sponge Wood)라 하여 식탁의 천판재로 최고급재 대우를 한다.껍질의 인피섬유는 아주 질겨 밧줄과 삿자리를 만든다.꽃은 향기가 강하고 밤나무꽃이 진 이후인 6월에 피어 귀중한 밀원자원을 공급한다.열매는 염주를 만들어 불가에서는 이 나무를 즐겨 심는다.이 외에 닥나무 대용의 한지원료로 쓰는등 용도가 다양하다.피나무의 열매는 우리나라에서는 8월 하순경이 되면 씨앗속이 젖처럼 물컹한데 이런 유숙기에 따서 포지에 바로 뿌려야 싹이 잘 튼다.
  • 절대권력의 절대부패/장수근 북한부장(오늘의 눈)

    「하느님」이 애첩을 둔 꼴이 됐다. 북한의 언론매체들이 「하느님」이란 호칭을 붙여가며 신격화·우상화에 열을 올리고 있는 김일성에게 30살짜리 첩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말이다. 원체 비밀이 많은 집단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김일성의 가족관계는 더더욱 두꺼운 베일에 가려져 북한에서도 제대로 아는 이가 없다. 김일성이 전처인 김정숙과 결혼한 날짜도 이제껏 밝혀진 적이 없다. 김일성이 지금의 처 김성애와 재혼한 연대역시 비밀에 붙여져 있다.그뿐 아니다. 김성애가 불가리아주재대사인 아들 김평일외에 몇명의 자녀를 낳았는지도 일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김일성 일가에 대한 철저한 비밀유지는 그의 신격화를 위한 공작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는게 북한전문가들의 해석이다.북한에서 절대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김일성.그가 인민들과 다를게 없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그에 대한 개인숭배가 약화될 것을 우려해 취한 조치가 바로 주석궁 일대를 비밀의 커튼으로 차단했다는 풀이다. 아무도 보는이가 없다보니 그 안에서의 김일성·김정일부자의 행동은 그야말로 천방지축일 수 밖에 없을 터이다. 대낮에 애첩을 끼고 노닥거리든,「목란관」에서 서양 무희들이 추어대는 스트립 쇼를 즐기든 뭐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김일성이 「장수연구소」에서 마련한 식단에 따라 차려진 밥상을 받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한편 김정일은 한술 더 떠 호사를 극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게 망명자들의 증언이다.김정일은 북한에서 나는 것은 아무 것도 먹지를 않는다.그는 오로지 세계 각처에서 들여온 값비싼 수입식품만을 먹는다고 한다. 김일성 일인지하의 세상인 북한에서 그가 몇명이고 애첩을 거느리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북한에서 김일성 일가는 일반 국민과 유리된 특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주민들은 극심한 식량난으로 하루에 두끼만을 먹고 있다는게 외신의 보도다. 이런 판에 애첩 일가에게 호화판 해외여행을 시키고 싹쓸이 쇼핑에 외화를 펑펑 쓰게 한 패악은 김일성이 그토록 위한다는 「인민」들을 정작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로 부패하고 끝내는 무너진다고 했다.이번에 밝혀진 김일성의 파렴치한 축첩행위는 북한 최고 권력층의 부패가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예라는게 산케이(산경)의 분석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일성체제가 붕괴직전에 있다며 지금은 일본이 대북원조에 나설 때가 아니라고 한 폴토라닌 러시아부총리의 경고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 2천억원 LNG 3호선 수주전 가열(경제초점)

    ◎한진 기습에 삼성·대우 대반격/운항사 한진해운,예상 깨고 계열사 추천/삼성·대우,“기술·인력 경쟁력없다”맹공/가스공사 결정에 부담… 월내결론 내야 국내에서 건조하는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용 선박의 수주를 둘러싼 조선업체의 경쟁이 치열하다.오는 95년12월부터 인도네시아 아룬가스전에서 생산하는 LNG를 우리나라까지 실어나르게 될 3호선을 두고 삼성중공업과 한진중공업 및 대우조선등 3사가 서로 자기들이 짓겠다고 나서고 있다. 말레이시아 빈투르에서 생산되는 LNG를 오는 96년12월부터 수송하는 4호선의 조선소는 운항선사인 현대상선이 선형을 공 모양의 가스탱크를 선체에 탑재하는 방식의 모스형으로 선택함으로써 모스형 기술계약을 독점한 현대중공업으로 사실상 결정된 상태이다. ○4호선 현대중 유력 LNG선은 일반 선박과 달리 초고압의 액체가스를 운반하기 때문에 고도의 안전성이 요구돼 첨단 건조기술을 필요로 하는데다 건조비용도 척당 2억5천만달러(약 2천억원)나 되는 고부가가치 선박이다.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같은 선박을수주하려면 건조실적이 있어야 하므로 국내 조선업체들로서는 피나는 경쟁이 불가피하다. 또 국내 LNG 소비가 급격하게 늘어나 3,4호선 이외에도 오는 2006년까지 적어도 6척을 더 지어야 한다.따라서 초반 승부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절박감도 경쟁을 더욱 가열시키고 있다. LNG선을 건조하게 될 조선소는 앞으로 이 선박을 운용,관리하는 해운회사가 한국가스공사에 추천한 뒤 가스공사가 한국선급·한국해사기술연구소등 국내외 전문기관의 자문을 받아 공기·기술성·안전성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하게 돼 있다.최종 권한은 하주인 한국가스공사가 쥐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뜨거운 경쟁은 3호선의 운항선사인 한진해운이 같은 계열사인 한진중공업을 선박건조사로 가스공사에 추천하면서 비롯됐다.조선소의 규모나 지금까지의 건조실적을 감안할 때 전혀 예상치 않던 한진중공업에 일격을 당하자 삼성과 대우가 파상적인 반격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진중공업은 산업합리화 대상업체인데다 은행관리까지 받고 있어 LNG선 건조는 어렵다는게 업계의 일반적인 예측이었다.실제로 한진은 지난 5월초까지만 해도 수주에 나설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2호선의 선형이 모스형으로 정해지는 바람에 눈물을 삼켰던 삼성과 대우는 그동안 3호선의 선형을 멤브레인형으로 정하기 위해 공동작전을 펴왔다.모스형과 달리 가스탱크가 선체에 내장되는 멤브레인형은 국내 조선업체가 모두 기술계약을 맺고 있어 누구나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삼성이나 대우는 3호선의 선형을 멤브레인형으로 정하는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정작 밥상을 한진중공업에 빼앗길 처지에 놓여있는 셈이다. 운항선사의 후광을 업고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한진중공업은 경쟁업체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삼성이나 대우는 적어도 지난 90년부터 3년동안 LNG선의 건조를 위해 인력양성 및 기술개발등 적극적인 투자를 해 온게 사실이다.반면 한진의 경우 거의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한진이 3호선을 짓게 된다면 공연히 외국 업체에 비싼 로열티만 지불하게 된다고 비난한다. ○“운항·건조 독식” 비난 한진해운이 20년간의 수송권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한 마당에 한진중공업이 선박건조까지 맡을 경우 한진그룹은 2중의 혜택을 받게 된다는 비난도 하고 있다.이번처럼 운항과 건조를 같은 그룹이 독식할 경우 앞으로 해운회사를 갖지 않은 조선소,예컨대 삼성이나 대우는 영원히 LNG선을 지을 수 없다는 반박이다. 운항선사가 조선소를 추천하고 하주가 최종 결정하는 제도에는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20년 동안 화물의 수송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운항선사나 이에 대한 최종책임을 지는 하주가 믿을만한 조선소에 선박건조를 맡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경쟁력과는 무관하게 단지 같은 계열사라는 이유만으로 추천을 받았다는데 문제가 있다.조선업계에서 삼성이나 대우보다 한진의 경쟁력이 높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경쟁업체들의 반발이 큰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3호선을 건조할 조선소는 이달중 최종결정을 내려야 한다.이래저래 가스공사의 부담만 커지게 됐다.
  • 여야 상임위배정 어떻게 돼가나(진단)

    ◎재무·내무위에 지원자 집중 “고심”/이동통신관련 교체위 인기/민자/“군축관심” 국방위의석 초과상태/민주/“「경제당」이미지 부각”… 상공위등 중점배치/국민 14대국회 개원을 앞두고 여야는 소속의원들의 임기 전반기 2년간 의정활동의 주무대가 될 상임위 배정작업에 들어갔다. 각당 지도부는 가급적 선양들의 희망과 전문성을 존중해 상임위를 배정한다는 입장이나 재무·내무·건설등 이른바 인기상위에 희망자가 쇄도하는 바람에 「교통정리」에 고심하고 있다. ▷민자당◁ ○…지난 3일 가락동 중앙정치교육원에서 소속의원들로부터 상임위지망서를 받은 민자당은 이를 토대로 김용태원내총무의 진두지휘 아래 일차적인 가배치작업이 진행중. 그러나 민자당의 상임위배정이 1백% 완료되는 시점은 여야간의 상임위원장 배분협상과 민자당입당후 법사위원장후보로 거명되고 있는 현경대의원등 잔여 무소속의원의 영입작업이 끝난 이후가 될 전망. 3지망까지 적어낸 민자당의원들의 희망상임위 집계결과 전통적인 인기상임위인 재무·내무·건설위 등은 여전히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 반면 여타 상임위는 13대국회 후반기 때보다는 상당히 평준화됐다는 후문. 종전까지 「찬밥상임위」로 선호도가 낮았던 교체위에 남재두·강삼재·김동근의원등 많은 지원자가 몰린 것도 특기할 만한 사실.이에 대해 당의 한 관계자는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이동통신사업등 첨단사업을 관장하는 바람에 인기도가 높아진 것 같다』고 귀띔. 역대 국회에서 경쟁률이 낮았으나 원로·중진급의원들이 대거 포진했던 외무통일위에는 이번에도 김종필·노재봉·박정수의원 등 중량급의원들이 대거 지원,여전히 「상원」상임위로 불릴 듯.전공분야를 살려 지원한 의원 중 박태준·서상목·이명박의원(이상 경과),김복동의원(국방),이순재의원(문공)등은 희망이 이뤄질 전망이나 초선의원으로 경합이 치열한 재무위를 지망한 나오연·김채겸의원의 경우는 낙관을 불허. 거물급 초선인 박세직의원(경과),검사출신으로 청소년문제연구소를 개설한 김영수의원(교청),역시 검찰출신인 김영일전청와대사정수석(건설)등은 자신의 전공과 다른「신천지개척」을 희망. 이에 비해 김영삼대표와 김영구사무총장·김용태원내총무 등 일부 핵심당직자들은 지망서를 내지 않았고 황인성정책위의장·박희태대변인 등은 『당지도부의 재량에 맡긴다』고 써내 눈길.이들 주요당직자들은 관례에 따라 희망자가 적은 상임위에 안착할 전망인데 김대표의 한 측근은 이와관련,『핵심당직자의 상위배정은 총무단에 일임하는 것이 관례이고 김후보는 대선에 앞서 적당한 시점에 의원직을 반납할 예정이므로 희망자가 가장 적은 상임위로 낙찰될 것』이라고 언급. ○…환경특위 신설 여부와 함께 13대국회 폐회후 국회법상 자동해체된 통일·윤리·대전세계박람회지원특위 등 특별위원회의 부활여부도 관심사. 민자당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상설특위 성격인 윤리위는 당연히 재구성될 것이고,존치필요성이 상존하고 있는 대전박람회특위도 야당측과 협의해 부활시키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고 귀띔. ▷민주당◁ ○…역시 「인기 상위」인 재무·내무·건설·농수산위등에 신청이 집중돼 있는 상태. 그러나 이철총무는 『개인의 이해와 관련되는 상임위 배정은 할수 없다』며 건설업자의 건설위 배정등의 배제 원칙을 밝히고 있어 향후 조정에 진통이 따를 전망. 상임위 신청의 또다른 특징은 종래 비인기 종목이었던 국방위에 9명이 희망해 할당 예상석인 5∼6석을 초과하는 등 국방·외무통일위에 몰리고 있다는 것.국방위에는 김대중·이기택대표와 정대철·유준상·권로갑의원,군출신인 강창성·나병선의원등이 신청했는데 이는 앞으로의 정치활동이 남북통일·군축등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는 판단 때문. 김상현·조세형의원 등 일부최고위원들은 당의 조정에 맡기겠다는 입장인데 이해찬·원혜영의원등은 『환경문제를 다뤄보겠다』며 노동위를 희망. 김·이대표는 국방위의 초과신청으로 이미 신청한 이부영최고위원과 함께 외무통일위로 옮겨질 가능성도 높은 상황. ▷국민당◁ ○…의정활동을 통해 「경제당」이미지를 중점 부각시킨다는 전략에 따라 당내 「인재」들을 재무 경과 상공위 등 경제관련상임위에 집중 배치. 재무위엔 전국민은행이사장인 윤항렬의원과차화준의원(전경제기획원차관보)이 배치됐고 정몽준의원은 경과위에,차수명의원은 상공위에 각각 포진. 정주영대표는 안기부 소관상위인 국방위를 자청했고 김동길최고위원도 평소 희망대로 교청위에 내정됨으로써 이들 상임위에서도 만만치 않은 대여공세가 퍼부어질 것이란게 국민당측의 분석. 국민당은 그러나 절대적 자원빈곤으로 상임위 조정에 적지 않은 애로를 겪고 있는데 차수명·변정일의원등 원내 2명의 율사 모두가 법사위를 고사하는 바람에 현대출신인 전국구 정장현의원이 법사위에 배치.
  • 외언내언

    먹거리 가운데서 한국을 대표하는 것은 무엇일까.누가 뭐라해도 역시 김치 덮을 것은 없을듯.한국인에게 있어 김치 없는 밥상은 비유컨대 배 없는 항구라 할까.어떤 형태의 것이건 끼니마다 먹는다.◆「삼국지」위서 동이전의 고구려조에 「선장양」이라는 말이 나온다.고구려 사람들의 풍습을 말하는 대목.이를 『술을 잘 빚는다』고만 볼 일은 아닌듯 하다.발효식품 일반을 가리킬 수도 있는 것.그것은 간장·된장 뿐 아니라 오늘의 김치 비슷한 것을 생각할 수도 있다.이와 관련하여 흥미있는 것이 황해도 안악고분의 벽화.우물가에 장독대가 보이기 때문이다.◆그 독들에 무엇이 들어 있었던지는 모른다.그러나 임란이후 고추가 들어오고부터 우리의 김치 문화는 독특한 발전을 보여온다.갖가지 영양이 듬뿍 들어있는 점은 외국의 학자들도 놀라고 있을 정도.한국 사람은 외국에 나가서도 김치를 먹고 힘을 낸다.일제시대 일본사람들이 한국사람을 업신여기면서 『닌니쿠 쿠사이(마늘내 난다)』했던 냄새가 바로 김치 냄새.한국 사람한테서는 김치내가 난다.◆국제화 시대 따라 김치도 국제화 해간다.특히 88서울올림픽은 그런 계기를 지어 주었다.처음에는 맵고 짜고 이상했지만 먹어볼수록 감칠맛을 느끼게 하는 김치.한국에 온 외국인들도 김치와의 친숙도와 체류 햇수가 정비례한다.오래 있을수록 김치와 정이 든다는 뜻.이래저래 김치도 수출품으로.재외한국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맛들이고서 귀국한 외국인 때문이기도 한 것이리라.53개국 식탁에 오르는 먹거리로 되고 있다.◆김치 종주국은 한국이건만 수출은 장삿속에 약삭빠른 일본한테 뒤지는 형편.선도유지가 중요한 것이 김치인데 포장기술이 모자라서 그렇다고 한다.하여간 바르셀로나올림픽 공식 메뉴로까지 된 김치.자랑스런 한국의 먹거리이다.
  • 외언내언

    1950년 12월1일 하오 4시30분 함박눈이 쏟아지던 함경북도 주을온천.18살의 청년 정동규는 울며 붙잡는 어머니를 뿌리치고 집을 나섰다.『3일후에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남긴채.압록강까지 진격했다가 후퇴하던 한 국군상사가 3일후에는 다시 진격할 것이란 말을 굳게 믿었기 때문.그러나 그것이 마지막이었다.◆KBS­TV 드라마 「3일의 약속」의 실제주인공인 재미교포의사 정동규씨가 최근 서울에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이산가족의 회한을 털어놨다.어머니와의 약속을 어쩔수없이 저버리게된 그는 성진항에서 군함을 타고 3일후 경상북도 포항에 도착했다.◆이때부터 험난한 세파를 헤쳐가면서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62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5년만에 심장전문의 자격을 따냈다.지금은 부시미대통령과도 친교를 맺고 있는 저명인사.인간승리의 표본같은 인물이지만 어머니와의 약속을 저버린 회한으로 아직도 가슴앓이를 앓고있는 「불쌍한 아들」이다.◆50살이 되던 82년 죽더라도 어머니를 만나야겠다는 일념으로 북한행을 결심,이듬해 고향을 찾았다.「3일의 약속」이 33년만에 이루어졌지만 어머니는 4년전인 79년 세상을 떠났고 그를 기다린것은 숟가락 하나였다.외아들이 사용했던 그 숟가락을 숨질때까지 하루도 빠지지않고 밥상에 올려놓았다는 모정을 전해듣곤 가슴을 쳤을뿐 발길을 돌려야했다.◆정동규씨같은 이산가족은 우리주변에 너무나 많다.고향이 그리워,아직도 살아있는 핏줄이 그리워 날마다 눈물짓는 사람들.지금 평양에서는 제4차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다.이산가족들이 고향을 자유롭게 찾아가고 그리워하는 이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날은 언제나 올것인지.이산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기 바란다.
  • 「캠퍼스 폭력」을 자책하며…/윤혁민 방송극작가(특별기고)

    ◎「뿌리」 못가르친 애비를 용서하라 애비는 요즘 밤과 낮을 거꾸로 살고 있다. 밀린 원고 때문에 밤을 새우다보니 아침이면 으레 당연한 듯이 잠자리에 들게 되고 언제부턴가 그것이 하나의 습성으로 굳어져버렸다. 시차가 다르다보니 TV를 안 보게 되고 최루탄 냄새,생살 타는 냄새가 끔찍해서 신문조차 외면을 해왔는데 어쩌자구 그날은 내손으로 그 신문을 들고 들어왔는지 모르겠다. 주먹만한 활자도 충격적이었지만 어떤 개그맨이 억지로 시청자를 웃기기 위해서 분장을 한 것 같은 그 사진을 보았을 때 애비는 정말 기가 막혀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신문을 안 보던 애비가 너무 열심히 신문을 보고 있는 게 이상했든지 옆에서 일을 하고 있는 K군과 S군이 다가왔다. 너도 알다시피 K군은 너와 동갑내기이고 S군은 네 후배가 아니더냐. 애비가 두 번째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그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아니 총리가 호위도 없이 거긴 왜 들어가요. 나는 총리가 되었어도 지하철을 타고 운동권학생들이 진을 치고 있는 대학에 들어가 마지막 강의를하고 온 사람이다. 그걸 내세우려구요』 『이런 때 선생님하구 저하구 세대차이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전 제목을 보는 순간에 통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거든요』 애비는 그 순간 불현듯 너희들 남매의 얼굴을 떠올렸다. 아니 이건 K군과 S군의 얘기가 아니라 바로 너희들 남매의 환청인 것 같아서 아찔하는 현기증마저 느껴야만 했다. 왜 이렇게 시각이 다르고 감각들이 다른가. 어느날 술자리에서 애비의 친구인 너희 학교 P교수님이 이런 귀띔을 해준 일이 있었다. 『××과 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기에 슬그머니 가봤지. 한 녀석이 앞에 나와 주먹을 흔들면서 열심히 외치다가 말이 막히면 자꾸 한쪽을 쳐다보는 거야. 거기 누가 있기에 그러나 해서 살펴봤더니 아 바로 그 놈이 구석줄 맨앞에 앉아 있는 게 아니겠어. 그 놈이 거기 앉아 고개를 끄덕이고 눈짓을 보내고 이젠 아주 거물급이더라구』 네 누이동생은 어떠했느냐. 그때도 새벽에 나오면 밤중에 들어가는 애비였기 때문에 한 달에 두세 번 얼굴 마주치기가 힘들었지. 어느 날 밤에 너희 어머니가사색이 되어 들어와 벌벌 떨며 귀엣말을 하더구나. 『저애 큰일났어요. 밤엔 야학인지 뭔지 한다구 공장 아이들과 어울려 다니는 모양인데 말하는 걸 들으면 빨갱이가 다된 것 같아요. 어떡허죠』 애비라고 왜 이 땅의 현실을 모르고 너희들의 순수성을 모르겠느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너희들의 열정과 정의감으로 해서 한 사회의 썩은 물고가 트여지고 자칫 궤도를 이탈하려던 역사의 방향이 올바르게 바로잡혀지는 것을 애비도 목격을 했고 그런 젊은이들과 의식을 같이하는 아들 딸이 있다는 것을 내심으로 대견해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비는 너희들과 대화를 해보면서 처음엔 당황했고 마침내는 허탈해졌다. 너는 나름대로 애비를 안심시키려고 했지만 『고정관념의 틀 속에 갇혀 있는 아버지와는 근본적으로 대화가 안 된다』는 식으로 대화 자체를 기피하는 모습은 네 동생과 다를 바가 없었고 결국 애비와 자식간의 시각차이는 기성세대와 젊은이들 사이의 불신의 골이 얼마나 깊은 것인가를 확인해주는 것으로 흐지부지 끝이 났다. 할아버지의 영혼이 계시다면 얼마나 이 못난 애비를 질타하시랴. 당신은 다섯 살난 아들을 끼니 때마다 밥상머리에 꿇어 앉혀놓고 혼자 식사를 하시면서 그 아들이 주발 뚜껑 열어드리고 닫아드리고 숭늉 떠다 바치는 것부터 가르쳐주셨다. 중학에 다닐 땐 저녁에 이부자리 봐드리고 아침에 방 앞에 기다렸다가 일어나시는 기척이 나면 들어가서 자리 정돈해드리고 「명심보감」 한 페이지를 완전히 외어야만 해방을 시켜주셨다. 그러면서도 애비는 사흘이 멀다 하고 매를 맞았어야 했다. 대부분은 애비 잘못이 아니라 네 삼촌들,고모들 잘못 때문이었고 『큰놈이 다스리지 못해 그렇다』며 동생들 앞에서 매를 때리실 때마다 애비는 이 무서운 아버지가 빨리 돌아가셨으며 좋겠다고 마음 속으로 빌었으니 그 불효막심,아직도 이 애비의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애비는 평생에 그 할아버지의 손을 두 번밖에 잡아보질 못했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집에 오니 뜻밖에도 약주를 하셔서 거나해진 할아버지께서 먼저 손을 내미시며 『고생 많았다』 하시더구나. 때가 겨울철이고 약주를하신 손이었으니 그 체온이 따뜻하게 전해오는 건 당연한 게 아니겠느냐. 그런데도 애비는 『아버지가 무서운 분이 아니었구나. 아버지 손두 이렇게 따뜻한 손이었구나』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스물다섯 해 동안 쌓여온 애비 나름의 그 큰 벽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줄을 어찌 알았겠느냐. 그리고 두 번째 마지막으로 만져본 그 손은 그로부터 7년 후 부산 출장중 여관에서 연탄가스로 이미 유명을 달리하신 너희 할아버지의 그 차디찬 손이었다. 자식에게 고통을 주고싶은 아버지가 세상이 어디 있느냐. 제대로 못 먹이고 못 입히고 못 가르친 자식. 그 자식이 자라 험난한 세상 살아가는 데 딛고 올라설 토대 하나만이라도 내손으로 만들어 주자,그래서 할아버지는 자식들을 필요 이상으로 엄하게 키우고 단련시켰는데 그걸 모르고 야속해 하는 자식들의 눈초리에 접할 때마다 얼마나 괴롭고 외로우셨겠느냐. 세상에서 제일 좋은 아버지는 자식한테 완전한 지도자가 되는 아버지이고 그보다 더 좋은 아버지는 자식한테정직한 친구노릇을 하는 아버지라는데 이 애비는 「완전한 지도자」도 「정직한 친구」 노릇도 못 해온 어정쩡한 애비가 되고 말았다. 지도자도 못 되고 친구도 못 되는 애비한테 무슨 권위가 있겠느냐. 살림은 아내에게 맡기고 자식교육은 선생님께 맡기면 그만인 줄 아는 평준화된 어정쩡한 애비들이 어찌 이 애비 하나뿐이겠느냐. 간혹 뜻있는 선생님이 계셔서 그 어정쩡한 애비 대신 내가 이놈 토대를 만들어주겠다고 회초리라도 들면 폭력이니 뭐니 해서 쫓아내기가 바쁜 세상이 돼 버렸는데 누가 너희들 한테 외풍에 버틸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주겠느냐. 서 있는 바탕이 다른데 어찌 시각이 일치하기를 바라겠느냐. 모든 게 애비 탓이 아닌가. 애비의 권위를 스스로 포기한 애비를 용서해라. 회초리를 들 용기가 없어 뿌리없는 너희들을 만들어놓고 구경꾼처럼 서 있는 이 어정쩡한 애비를 용서해라.
  • 얘들아,그만하면 됐다/「5월시국」에 부쳐/한운사 작가

    얘들아 욕 봤다 잠 좀 잤느냐? 뭐 좀 먹었느냐? 날씨가 풀리면서부터 연일 그렇게 뛰어다니며 돌을 던지고 화염병 던지고 노 정권 물러가라 민자당 해체하라 민주화하라 소리지르고 전신에다 시너라는 것을 뿌려 불을 지르고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니 나이 먹은 우리는 가위가 눌려 잠 이루지 못하고 걱정했었다. 이 나라가 이거 어디로 가나 세계고 나발이고 없다는건가 모두다 한꺼번에 죽자는건가 열사의 나라가 되자는건가 그래야만 이 나라가 산다는건가 늙은 우리들을 삿대질하며 증오를 담아 욕하는가 오죽 못났으면 늙은이들아 일제때 그 모욕을 다 감수하며 열사 될 생각은 하나도 없이 무슨 염치로 살아왔느냐! 쓸개도 허파도 없는 것들아 해방후 반세기가 다 되건만 민주화 하나 못이룬 무리 박 정권 때는 무엇을 했고 전 통때는 어떻게 살고 아직도 죽지않고 거기 있느냐! 조석으로 밥상을 뒤엎으며 그대들 힐난이 추상같구나 그러면 새파란 이 사람들아 열사가 아니면 사람 아니냐? 민주화 덜 됐으면 세상아닌가 늙은 것들은 모두 쓰레기인가 왜? 어째서? 인생의 아침에 겨우 깨어난 싱싱한 생명의 그대들 몇가지 지식으로 단정말라 인생은 참으로 긴 것이야 여러가지 일이 있는 것이야 출발점에서 속단말게 우리가 그대들 나이 때에는 인생이 무엇이냐 헤매면서 살 것이냐 말 것이냐 고민을 했어 살만한 뜻은 무엇이며 죽어야 될 까닭은 무엇이냐 우리는 그런것을 문제삼았어 참으로 많은 세월 참아보았다 온갖 모욕을 견뎌 보았다 그러면서도 한가닥 희망 언젠가 광명이 찾아오겠지 어둠 속에서 새어 나오는 가느다란 한가닥 빛! 우리가 저주받을 까닭이 없다 우리가 버림받은 민족 아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 오,그날이 오면! 얘들아 이승만 박사를 욕하느냐? 장기독재한 노망이라고? KOREA IS KOREA! 우리의 자존심을 세워준 사람 박정희 장군을 욕하느냐? 태어난지 13세의 대한민국을 일어나라 일하라 채찍질하며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 레일을 깔아놓고 달리자 했지 그대! 너! 젊은 사람들아 그나마 오늘날 우리 형편이세끼밥은 누구나 다 먹는데 그렇게 만든 것이 박정희라면 삼켜버린 음식을 토해내겠나? 박정희때 깔아 놓은 레일 위를 대한민국호가 달려간다 저지하려고 돌을 놓아도 산모퉁이에 다이나마이트를 이중삼중으로 깔아 놓아도 대한민국호는 달려간다 이상하게도 달려간다 꺼떡도 않고 달려간다 국민들이 다 지키는거야 한 번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보자 우리의 땅 덩이가 어디에 있나 이대 이데올로기의 시험장으로 남북으로 갈라진지 40여 성상 피투성이가 되어 싸우면서 양쪽 다 열심히 해보았다 그 결과가 오늘의 남북 네가 잘 했나,내가 잘 했나 언짢은 얼굴로 다투지 말자 보라 남북 단일팀의 탁구우승 코리아 청소년의 축구장도 이제 춘삼월에 눈 녹듯이 얼었던 가슴이 풀리는 계절 때마침 소련과도 손을 잡고 중국과도 번영을 이야기 한다 세계를 향해서 큰 소리 치자 우리는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남북은 각기 몫을 충실히 했다 다시 한몸 되는 절묘한 과정! 세계여 눈여겨 지켜보시라 얘들아 젊음들아 과격이 늙은 눈에 걱정이었다 그러나 이제 보니 뜻이 있었다 그만 하면 됐다 그것으로 됐다 이젠 거리에서 헤매지 말고 돌을 던지지 말고 화염병 던지지 말고 살기를 일체 버리고 고개 반듯이 들고 부모가 기다리는 집으로 가라 역사의 우람한 대 회전은 실망스럽게 가지 않는다 아니 가려해도 가지 못한다 우리의 내일은 환하다 7천만 동포가 어울리는 날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서로 손을 꼭 잡고서 쳐다보고만 있자 눈물이 주룩 흐를 것이다 그러면 됐다 아무말도 하지 말자 쳐다보고만 있자 만사,너무 서둘지 말자 오,찬란한 태양이여! 1991년 5월21일 새벽
  • 쌀·개방압력·생존권의 삼각함수/황규호 특집부장(데스크 시각)

    서울로 들어온 한 외신이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우리 정부당국자가 쌀시장 개방을 암시했다는 이 외신은 그 진위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는 가운데 국내 매스컴을 연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시장개방의 온갖 외풍이 불어닥치는 때라서인지 그 충격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을 무색케 했다. ○국제사회 냉정함 실감 우리는 쌀문제로 하여 늘상 시달리고 있다. 쌀이 없다는 것이 곧 가난을 의미한 시절에는 많은 사람들이 배를 곯기가 일쑤였다. 그 기근의 시대를 살았던 소년들은 추운 겨울날 눈이라도 내리면 그 눈송이가 떡가루이길 골무 만한 가슴으로 갈구했다. 참으로 헐벗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밥술이나 먹게 된 요즘와서는 쌀이 남아 돈다고 야단들이다. 쌀이 지천인데 또 다른 한쪽 강대국에서는 자기들의 쌀을 사주지 않는다고 우리를 윽박지르고 있는 것이다. 기묘한 국제질서 속에서 진퇴양난의 경지를 맞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딱할 뿐이다. 허기진 이에게 밥 한 술은 적선일 수 있으나 포식 후의 밥한 술,그것도 돈을 내고 먹으라는 것은 비정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의 쌀 생산량은 지난해의 경우 4천95만8천섬에 이른 것으로 집계되었다. 전년도에 이월된 1천91만5천섬을 합하면 자그마치 5천1백87만3천섬이라는 엄청난 양이다. 이를 식량으로 쓰고 가공하거나,또 종자용으로 내놔도 1천4백7만섬이 남아 돈다는 것이다. 특히 우리가 식량으로 먹어 치우는 쌀은 3천5백54만2천섬,지난 85년 3천6백52만2천섬에 비하면 약 1백만섬을 덜 먹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처럼 쌀은 덜 먹고,쌀은 쌓이기만 하고 있다. 그런데도 쌀을 사가라는 압력을 받아왔고,앞으로도 압력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 비정한 국제사회에서 시달림을 받지 않으려면 쌀을 사들이는 것이 최상의 해결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네 딱한 사정은 선뜻 쌀을 사들여 올 수 없다는 데 있다. 비행기로 씨앗을 뿌려 집채 만한 콤바인으로 거두는 농업대국의 광작을 어떤 재간으로 당해낼 수 없는 것이 한국 농촌의 현실인 것이다. 오늘날 농촌은 적자영농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그래서 만의 하나라도 농업대국의 값싼 쌀이 밀려 올 경우 농촌은 더욱 피폐할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벼농사는 여러 농사 가운데서도 언제나 으뜸이었다. 그러나 쌀은 곧 재화라는 마음으로 벼농사를 지어왔다. 이 때문에 쌀 시장개방이 현실로 나타나는 날 농민들의 정신적 충격파 또한 대단할 것으로 염려되고 있다. ○농업기반 붕괴 막아야 재산을 「땅 몇섬지기」로 가늠하면서 「쌀 몇말어치」라는 식으로 쌀을 화폐기준으로 삼은 시대를 산 우리였다. 보잘 것 없는 작은 농사로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점심 한끼쯤은 걸러 뛴 채 아침밥 저녁죽(조반석죽)을 먹었다. 밥풀 하나라도 밥상에 흘릴라치면 「낱알마다에 피땀이 서렸다」(입입개신고)는 꾸중을 들었다. 모두의 어머니와 누님같은 여인들은 나락을 거두어간 늦가을 황량한 들녁에서 이삭을 주워다 양식에 보탰다. 그것은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과는 사뭇 다른,을씨년스러운 초겨울 문턱의 풍경이었다. 그런 끈끈한 고향이 있었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과 땅을 잊고 있다. 쌀을 쌀나무에 열리는열매로 알고 자라는 후손들과 함께 도시에 살면서 고향을 영영 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또 쌀이 없어 밥 못 먹던 시절을 말하면 『라면 먹으면 되지…』라고 대꾸하는 그 어린이들과 더불어…. 최근 농업관계 단체들에 의해 「내고향 농산물 사주기운동」 같은 캠페인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농산물 시장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한 움직임이 아닌가 한다. 이른바 UR(우루과이라운드)라는 이름의 탁상압력을 통해 밀물쳐올 외국농산물과의 경쟁에서 국내 농산물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이 있다면,그것은 먹어주는 일이다. 한때는 쌀의 소비절약을 미덕으로 여긴 적도 있다. 쌀을 다소 많이 먹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식생활을 오도했던 「쌀 귀한 시절」의 일이다. 이는 쌀 소비를 어느 정도 억제하는 데 효과를 거두었는지는 몰라도 우리 전통식 생활의 패턴을 무너뜨렸다. 몇몇 기관과 학회가 요즘 내놓은 이론에 따르면 쌀에는 사람몸에 필요한 양질의 탄수화물과 고기에서 얻어지는 것과는 다른 단백질이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인 한 사람이하루 4공기반 정도의 쌀밥을 먹어야 퇴행성 질병류의 성인병도 예방할 수 있다는 권위있는 해석을 내렸다. 어떻든 쌀을 좀더 먹어야 할 판이다. 그리고 우리 쌀을 보호하려면 현행 농업구조의 재조정은 물론 고품질화를 위한 재배기술 향상 등 농업정책이 수반돼야 하는 모양이다. 과잉생산억제책에 의한 휴경제도 정착이나 재배·가공기술 개발에 성공한 일본 쌀농사를 굳이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더라도 여기 상응하는 근본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쌀 위주 식생활 바람직 한반도에서 쌀농사를 지었다는 흔적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부터 나타나고 있다. 기원전 10세기 전후의 경기도 여주 흔암리와 전남 나주 가흥리,북한의 평양 남경 유적 출토 탄화미(불에 타서 숯이 된 쌀)는 한반도 쌀농사의 역사가 3천년 이상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고고학 자료이다. 우리의 농경문화를 도작문화로 분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쌀 이야기를 해봤다. 쌀에 대한 너스레를 늘어놓으면서 20세기를 지배하는 농업대국에 대해 한마디 하고픈 말이 있다. 걸리버가 작은 사람들의 나라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이 비좁은 땅의 벼농사가 한국의 기층문화임을 이해해 달라는 당부가 그것이다.
  • 광주군 「한사랑마을」 요육사 서미화양(밝은 삶을 산다:3)

    ◎버려진 정박아 뒷바라지 3년/한밤까지 친엄마처럼 팔·다리 역할/“상태 호전되면 피곤한줄도 몰라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신월리 산5의1에 자리잡고 있는 중증 정박아 요양시설인 「한사랑마을」의 요육사 서미화양(27)에겐 정초가 따로 없다. 정상적인 의사표현은 커녕 제한몸 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뇌성마비 장애자들을 돌보느라 잠시도 쉴틈이 없는 것이다. 하루하루가 고되기만 한 서양이지만 그래도 남달리 뜻있는 일을 한다는 보람에 힘든줄을 모른다. 이곳에 수용된 어린이 99명 가운데 64명은 부모들로부터 버림받았으며 6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부모가 있더라도 경제적인 능력이 부족해 이곳 신세를 질 수밖에 없는 딱한 장애자들이다. 서양이 맡고 있는 어린이는 2층의 「마리아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증정박아 10명. 이 방의 하루 일과는 아침6시부터 시작된다. 잠에서 깨어난 어린이들에게 기저귀를 갈아주거나 세수를 시켜주고 머리를 빚겨주는 등 식사준비를 마치고 식사한끼 하는데만 꼬박 2시간이 걸린다. 수용어린이 대부분은 온몸이 뻣뻣해지는 「강직현상」이 심해 제대로 밥상앞에 앉히기조차 힘들뿐더러 한 어린이를 앉히고 다른 어린이들을 돌보려면 먼저번 어린이가 금새 뒤로 나자빠지곤 해 애를 먹는다. 하루세끼 식사시간 사이사이에는 차례로 물리치료실·특수치료실에 보내고 남는 아이들과 일일이 이름을 부르며 그림이야기 걷기연습 말하기연습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틈나는대로 아이들 빨래까지 해줘야 한다. 서양이 이곳에서 일하게 된 것은 경상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인 88년 5월부터. 이곳을 관할하고 있는 사단법인 한국어린이재단에서 일하는 친척의 권유로 다른 직장들을 모두 마다하고 이 길을 택했다. 처음에는 낯선 어린이들을 대할 때마다 두렵기도 하고 행여 잘못 선택한 길이 아닌가하고 걱정도 많았다. 특히 몸이 약해 경기를 자주 하는 어린이들은 정상인과 달리 걸핏하면 새파랗게 질리곤 해 혹시 잘못되는게 아닌가 싶어 가슴이 떨리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곧 어린이들과 친숙해지고 날이 갈수록 그들이 귀여워졌다. 하루하루 상태가 호전되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면 여간 흐뭇하지 않았고 이제는 이들이 없이는 혼자 살수 없을것 같은 심정이 됐다. 서양은 『처음엔 「예」 「아니오」라는 두마디밖에 못하던 혜미양(8)이 이제는 수다꾼이 됐으며 등으로만 기어다니던 주현군(9)은 이제 혼자서 앉을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그림맞추기는 단연 으뜸』이라며 고된 일을 하고 있는 보람을 자랑했다. 『열흘에 한번정도 동·식물원이나 공원 유적지 등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는데 일반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때면 몹시 원망스럽기까지하다』고 우리 사회의 이해부족을 제일 섭섭해 했다.
  • 어디 좀 물어봅시다/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지금 서울ㆍ중부지방은 온통 물난리를 겪고 있다. 불과 이틀동안 1년간 올비의 3분의 1이 쏟아져 야단들인데 1년동안 할일의 반의반도 못한 국회와 선량들은 여전히 한가롭다. 대저 국회란 무엇이고 국회의원은 누구인가. 이 세상에서 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선 사람들은 모름지기 국회의원부터 되고자 한다. 그러니까 국회의원은 정치를 해야하는 사람들인데 오늘날 우리 국회의원들은 정치를 아니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를 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정치를 하고자 아니한다니 묘한 노릇이다. 그러면 그들은 무엇하는 사람들인가. 결코 말장난이 아니다. 사실이 그러하다. 그러니 지금 이 나라 국회의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으며 도대체 어디쯤 서 있는가. 어디 좀 물어봅시다. 정치인들에게 있어 가을은 그야말로 정치의 계절이다. 여름은 그들에게 너무 덥고 지루하고 길다. 정치인들은 그래서 가을을 기다린다. 여름내내 정치인들은 출신지역구를 오르내려야 한다. 이사람 저사람 만나야 하고 적당히 외유도 즐겨야 한다. 가을정국에 대비해 활동비도 조달해야 하고 생계도 꾸려가야 하는 의원들에게 여름은 한가하지 않다. 하한이란 말은 맞지 않는다. 지난 초여름 임시국회의 변칙과 소란은 국회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80명 야당의원 전원이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고는 아예 보따리를 싸들고 떠나버렸다. 그런저런 모양들이 국민들에겐 한심스럽게 비춰졌던게 사실이었다. 올 여름 더위는 유난히 화끈했다. 스스로 이러저리 밀리던 정치인들도 올 여름 더위는 지겨웠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가을이다. 삽상한 가을하늘이 정치와 정치인들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속상한 눈도 조금 위로해 줄 것이다. 정치인들도 이제 저간의 상심과 투정을 풀고 그들 스스로 황폐화시켰던 정치판을 원상복원 해야 한다. 정기국회가 열렸다. 그에 앞서 야당의원들이 홧김에 내던졌던 사퇴서도 국회의장의 「불가」판정으로 반려됐다. 한여름 더위동안 장외에서만 빙빙돌며 서로 소 닭쳐다 보듯 하던 여야 정치지도자들이 정기국회 개회에 앞서 마침 국회의장이 남북 총리회담 대표들을 위해 베푼 만찬에 함께참석해서 한 밥상에 앉았었지만 대화하지 않고 신경전만 벌이는 듯 했다. 활짝 열린 국회의사당의 한 복판인 본회의장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정치의 마당인 국회는 여당만으로 개회식만 치러놓고는 장날 아침에 폐장이 되고만 형국이다. 의원 제위는 언젠가의 유행어처럼 『왜 맨날 우리만 갖고 그러느냐』고 되받을지 모른다. 그런데 오늘의 안팎정세를 살피건대 그들만 갖고 그럴 수 밖에 없다. 정기국회 개회와 더불어 이제 새로운 정치가 전개돼야 한다. 정치인들은 우선 퇴색할대로 퇴색한 그들의 정치력을 복원시켜야 한다. 야당은 무조건 국회에 복귀하고 여당은 지극히 겸허한 자세로 이들을 맞아야 한다. 여당은 특히 지난 임시국회에서 수의 힘을 빌려 밀어붙임으로써 지나치게 「의욕적」이라는 지탄을 면치 못했던 파행적인 국회운영에 대해 자책하고 사과해야 한다. 민주ㆍ의회정치를 해나가는데 있어 무너져서는 안될 마지막선이 준법정신이다. 반민주적 권위주의 체제에서와 달리 민주주의는 먼저 법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제도이다. 민주주의의 공개된 광장인 의회에서 의안상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일도 안되지만 그것을 빌미로 해서 다수의 힘으로 날치기식 변칙강행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도 준법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초여름 이래의 정치부재는 거기서 비롯됐다.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는 자리는 민주주의의 광장이 될 수 없고 그런 일을 예사로 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 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 정치권이 황폐화돼 있고 민심이 정치를 떠나 있는 것은 결국 정치인들의 자격과 역량미달을 입증하는 것이나 다름 없다. 지난날 한때 우리 사회에서는 정치란 건달들이나 하는 사업으로 치부된 적이 있었다. 자기와 무관한 일에 걸핏 잘 덤벼들고 풍을 치며 휘젓고 다니는 시정잡배를 건달이라 한다. 고전적 의미에서 대개 정의구현을 지상의 과제로 한다는 정치를 그런 건달들이나 하는 짓으로 봤다는 자체가 예삿일이 아니었다. 사실이 그런 적도 있었다. 허황된 꿈과 자기 도취속에서 무위도식 하면서도 온통 민족이요 민중만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치를 한다고 모여 판을 꾸몄다. 그러니까그들이 일궈내는 정치 또는 정치판은 건달들의 놀이터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그래서도 안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을 가만 놔두고 볼 국민들도 아니다. 국회가 열렸는데도 정치판은 휑덩그러니 찬바람만 불고 있다. 정치과잉도 안좋지만 정치부재는 더욱 큰 일이다. 대화는 커녕 갈등만 깊어간다면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혐오감은 또한 얼마나 심각해질 것인가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여기에 생각이 미친다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의사당으로 뛰어가야 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그 정치인들이 아무리 자존과 자재의 원칙아래 개성과 창의를 존중하고 평등과 다양성을 지향한다 해도 가장 소중한 원리 즉 일상성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변칙과 강행,그로인한 무책임한 탈출이 다시 더 있어서는 안된다. 그게 난장판이지 무슨 국회냐고 따져도 할말 없을 것이다. 국정을 꾸려가는 막중한 위치에서는 위세과시나 투정도 적당해야지 지나치면 직무유기가 된다. 여야의 줄다리기가 그러하다. 지금 정치는 부재이고 정국은 위기이다. 사태를 되돌릴 책무를 지닌 정치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다시 한번 묻고자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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