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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9)활어·선어·싱싱회, 진실과 오류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9)활어·선어·싱싱회, 진실과 오류

    먹을거리만큼 살아가는 데 소중한 게 또 있을까. 그런데 열심히 먹기만 하지 밥상의 안전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이 없는 게 우리의 세태다. 회(膾)만 해도 먹는 데는 열심이지만 그에 상응한 정확한 인식이 부족해 ‘비싼 값 지불하고 값싸게 먹기’ 일쑤다. 우리들의 회 문화에 관한 상식을 점검할 필요성을 느낀 것은 이런 까닭에서다. 회가 이렇게 대중화된 건 단군 이래 처음이다. 바다나 강에서 회를 뜨기는 했어도 운반이나 저장문제 때문에 예전에는 제한적으로만 즐겼을 뿐이다. 물론 소 돼지 닭 같은 육식도 제한적 선택만 가능했다.1970∼1980년대가 동물성 단백질 섭취량이 엄청(?) 늘어난 시기였다면, 경제적 부가 일정하게 축적된 90년대부터는 해산물 소비가 급증한다. 이른바 웰빙 슬로건이 내걸리면서 건강식인 해산물이 보다 각광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런데 회에 관한 일반의 상식은 여전히 ‘바닥’이다. ●전치10주 중상 입은 생선 먹는 꼴 회의 문화적 우성은 역시 일본의 ‘사시미’다. 해양선진국 중에도 회를 사양하는 민족이 많은 반면, 일본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이를 정교하게 발달시켜 세계화에 성공하고 있다. 김치 없는 우리 식탁이 뭔가 빠진 듯하다면 횟감 없는 일본식탁도 쓸쓸한 풍경이리라. 일본인에게 회는 ‘라면’같이 일상적인 것이며, 이제 ‘사시미’와 ‘스시’는 만국공통어로 통용되고 있지 않은가. 서양인은 본디 회를 즐기지 않았다. 회 문화가 진출했다지만 아직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미국 동부의 코넬대학 같은 시골 대학촌에도 초밥집이 진출해 있으니 샌프란시스코 같은 해변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그런데 유심히 보면 초밥집은 있는데 수조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 광저우 같은 유수의 해양도시를 가보아도 수조를 두고 횟감을 파는 음식점은 없다. 일본 시모노세키에 있는 최대 규모의 어시장을 누비고 다녀도 수조는 없다. 의문이 풀린다. 펄떡거리는 활어를 그 자리에서 회 쳐 먹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드물다는 점이다. 회는 살아있는 활어와 일단 죽여서 숙성시킨 선어로 구별한다. 한국 사람들은 자기 눈으로 ‘확인 사살’해 그 자리에서 쳐낸 활어만을 굳게 신뢰한다. 그러나 먼 바닷가에서 시장이나 음식점으로 실려오면서 온갖 사투를 벌이고, 중간 유통업자를 거쳐 최종 소비처로 팔려가는 과정을 생각하면 우스갯소리로 전치 10주 정도의 뇌진탕에 골절상을 입은 소위 ‘중병 걸린 생선’을 먹게 되는 꼴이다. 바닷가에서 곧바로 옮겨온 물고기는 그대로 먹는 법이 아니다. 물고기도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므로 2∼3일쯤 지난 다음에 잡아야 제격인데, 사람들은 바로 도착한 놈이 좋다고 그저 믿어 버린다. 그래서 횟집에는 반드시 수조가 있어야 하지만,‘사시미의 나라’ 일본에도 살아있는 물고기만이 싱싱하다는 믿음은 없다. 회 문화는 일본에서 들여왔으면서도 이것만은 우리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면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본인들은 ‘씹히는 맛’보다 미각 선호 한국인은 쫄깃한 횟감을 선호한다. 한마디로 ‘씹히는 맛’을 즐긴다. 그래서 갓 잡아 올린 놈을 즐긴다. 반면에 일본인들은 씹히는 맛보다 미각을 택한다. 생선회 전문가인 부경대 조영제 박사는 이를 양국의 식문화 차이로 설명한다. 우리는 넙치·우럭·농어 같이 육질이 단단하여 씹힘성 좋은 흰살 생선을, 일본은 방어·참치·전갱이 같이 육질은 연하지만 혀로 느끼는 맛이 좋은 붉은살 생선을 선호한다. 또 초밥과 횟감 비율이 8대2나 돼 ‘초밥을 먹기 위해 회를 먹는다.’는 말이 생길 만큼 초밥을 즐긴다. 반면에 우리는 2대8로 회 선호도가 높다. 따라서 초밥 즐기는 일본인이 활어보다 선어를 선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선어는 갓 잡은 활어보다 씹힘성은 떨어지지만 잡은 뒤 10∼15시간이 지나면 육질부의 이노신산이 많아져 맛이 극대화된다. ●선어·활어 장점 두루 살린 싱싱회 그렇다면 선어와 활어의 장단점을 두루 취할 방도는 없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싱싱회. 싱싱회란 선어의 일종으로, 갓잡아서 위생적으로 손질한 뒤 냉동이 아닌 냉장 상태로 소비처에 공급하는 횟감을 뜻한다. 해양수산부 수산정책국 이인수 박사는 “해양수산부나 수협 등 전문가들의 노력에 비하면 세간의 인식이 전혀 바뀌지 않아 이런 시도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싱싱회로 가야 하는 행로는 분명한데 인식의 문제이지요.” 눈 앞에서 퍼덕이는 놈만을 싱싱하다고 믿는 우리의 음식관을 일조일석에 바꿀 수 없어 엄청난 고비용을 치르는 중이다. 활어 운송비가 들고, 음식점에도 수조를 설치해야 하며, 물갈이 등 관리비용도 많이 든다. 당연히 유통 중의 폐사율도 높다. 또 내장이나 뼈, 머리 같은 부산물이 50%나 되니 불필요한 운반이 되고 말아 원가가 비쌀 수밖에 없는 활어문화에 단단히 발목이 잡혀 있는 셈이다. 횟집촌을 가다 보면 ‘마리당 9900원’ 식으로 적어 내건 가격표를 자주 보게 된다.500g 정도의 미숙어를 이렇게 파는데, 그걸 모르는 사람들은 이를 ‘싼 게 비지떡’인 줄도 모르고 선호한다. 성장한 1㎏ 이상 크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양식장 출하 때도 500g짜리 미숙어는 비싸게 팔리는 반면 오래 키워 맛이 있는 놈은 싸구려로 팔리는 엉뚱한 문제가 발생한다. 사실,1㎏짜리를 시켜도 정량을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소비자만 ‘봉’이 되고 있으니 우리 수산물도 정량화·규격화 단계로 들어서야 하지 않을까. 우리나라 최대의 싱싱회 공장인 포항의 한국빙온을 찾았다. 횟집을 연상하면 안된다. 어엿한 공장이다.1일 5∼10t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수조에서 건진 회는 즉살해 얼음물에 씻는다. 내장을 바르고, 탈피기로 껍질을 벗긴 뒤 다시 얼음물에 채운다. 살균한 타월로 말아서 탈수하고, 적절하게 다듬어 진공포장해 얼음을 재워 냉장 상태로 유통시킨다. 직원들은 위생복을 입고, 소독을 해가면서 공정에 임한다. 바닷가에서 갓 잡아 퍼덕거리는 횟감을 그대로 위생처리, 일사불란하게 유통시키는 시스템이다. 이곳 장석원 대표는 “위생적으로 처리되기 때문에 식품이 절대 안전하고, 싸게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런 방식으로 회를 먹을 경우 최고 30∼40%선에서 절반까지 가격을 낮출 수 있다. 술집 분위기인 횟집에 주부가 아이들을 데리고 가기 쑥스러운 경우도 많다. 저변 확산을 위해 가정에까지 회가 공급되려면 현재의 횟집이나 횟감 판매구조로는 어림없다. 아무리 싱싱하다 해도 직접 회를 뜰 수 있는 기술은 아무나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선어 공급은 소비자들에게 돌아가는 이점이 크다. 또 연간 한국인의 횟감 소비액이 6조∼7조원에 달한다고 볼 때 엄청난 이득이 창출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눈앞에서 퍼덕거리는 횟감만을 좋아할까. ●자연산 선호는 반환경적 습속 한번 잘못 길들여진 문화는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창해를 누비는 싱싱한 바닷고기에 관한 ‘상상의 공동체’가 우리의 뇌리에 흡사 꿈처럼 박혀있기 때문이다. 현실은 이렇다. 창해를 누비는 싱싱한 물고기는 거의 없다. 횟감의 90% 이상은 양식이다. 자연산은 잡히더라도 소량일 뿐더러 자연산을 마구잡이로 훑어내는 소형 기선저인망(일명 고테구리)은 어족보호 차원에서 금지시켜야 하기 때문에 자연산 선호 자체가 반환경적인 습속이기도 하다. 어차피 이제는 양식어류를 먹고 살아야 한다. 자원이 절대적으로 줄어든 탓도 있지만 한국인들의 횟감 선호도가 급등한 데다 늘어난 외식문화의 수요까지 감당하려면 자연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따라서 과학적·합리적으로 양식업을 확충해야 하며, 소비와 유통도 코페르니쿠스적으로 전환해야 할 시점에 와있다. ●바닷가 횟집의 엄청난 생태오염 혹 바닷가에 즐비한 횟집이 야기하는 엄청난 생태오염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환경운동단체 어느 누구도 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민중이 먹고 사는 문제라는 단 한가지 이유로 횟집에서 배출하는 엄청난 부산물과 박테리아로 오염된 수조의 물, 쓰레기 분리수거 등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하다. 더 이상 이런 바닷가 횟집들이 낭만의 대상이어서는 안된다. 전세계 어디에도 이만한 물량으로 수조가 즐비한 바닷가 풍경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한국이 회 문화의 세계적 선진국이라서 용인되는 것인가! 무를 당근으로 알고, 쑥갓을 상추로 알고 먹는 소비자는 없다. 그런데 ‘모둠회’라는, 내용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회를 먹는 소비자들이 의외로 많다. 횟집 주인은 소비자에게 무슨 회인지를 분명히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 횟감의 생산자 실명제가 이뤄지지 않아 항생제에 찌든 값싼 중국산이 슬쩍 끼어든다. 어디에서 누가 잡았는지, 어느 양식장에서 누가 길렀는지도 모른 채 소비자들은 그저 먹고 값만 치른다. 지난 4월22일, 국회에서는 이영호 의원이 주도하고 바다포럼과 한국수산회 등이 주최한 ‘비브리오패혈증을 법정전염병에서 제외시키자.’는 요지의 입법공청회가 열렸다. 여름철만 되면 비브리오경계령이 발동되어 전국의 횟집들은 문을 닫는다. 비브리오는 노약자 등 신체가 약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식중독일 뿐 법정전염병으로 지정할 병증이 아닌데도 언론 등의 과장 보도 때문에 국민들이 ‘공포의 전염병’으로 잘못 알게 됐다는 것이다. 물론 익히지 않은 횟감을 불결한 곳에서 조리해 판다면, 비브리오패혈증 등의 병이 생길 것은 자명하다. 조리해 먹는 육고기와 달리 횟감은 말 그대로 ‘날것’이다. 열악한 음식점에서 비위생적으로 조리해 내다 보면 식품안전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더러운 그릇, 씻지 않은 도마, 병균이 들끓는 행주 등을 누가 다 감시하랴. 이제 원산지 표기가 분명하고, 정량을 지키고, 세무서에서 세수를 분명히 파악할 수 있고, 소비자는 위생적인 양질의 회를 눅은 가격에 먹고, 양어장은 안정적 판로를 확보하고, 비브리오 파동 같은 위험부담에서도 벗어나는 ‘윈윈 전략’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다. 거제도에서 대형 양식장을 경영하면서 싱싱회를 맨 처음 시작해 일본으로 수출하고, 한때 도쿄 스즈키 수산시장의 최대판매량까지 올렸던 일운수산 김산세 회장의 지적을 아프게 들어야 한다.“회를 어디 배 채우려고 먹습니까? 맛으로 승부해야죠. 수산양식도 미래 전략산업으로 거듭나야 하고 활어만 선호하는 소비자도 이제는 생각을 고칠 때가 됐다고 봅니다.” 급격한 변화의 요구는 이제 우리의 식탁까지 당도해 있다.
  • [길섶에서] 머위/이호준 인터넷부장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발견한 ‘머위’라는 글에 절로 눈길이 멎었다.“잎이 솟아 나올 때 불그스레한 자루와 함께 따서 샘물에 훌렁훌렁 씻은 뒤 초고추장에 버무리면 쌉싸래한 맛, 독특한 향에 둘이 먹다가 셋이 죽어도 모를….” 글 쓴 이의 맛깔스러운 표현이 절로 입맛을 다시게 했다. 생각난 김에, 아내에게 머위가 먹고 싶다고 전화를 했다. 하지만 저녁에 집에 도착해 보니 아내는 풀죽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몇 군데 가봤지만 구경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하긴 서울에 그런 게 그리 흔하려고…. 휴일에 재래시장이라도 가보자며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없었다. 시골에서는 집 근처 어디든 머위가 지천이었다. 담밑에도 뒤란 언덕에도…. 어머니는 밥을 짓다가도 나가 금방 한 움큼씩 뜯어오곤 했다. 밥상에서 맞이하는 그 쌉쌀한 맛이라니. 생각만으로도 입에 군침이 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조금 두렵기도 하다. 인스턴트식품과 자극적인 음식으로 척박해졌을 입에 머위는 아직도 그 때 그 맛일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잃어버린 게 한두 가지랴마는…. 이호준 인터넷부장 sag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④-현대그룹

    “믿겨지지 않았다.” 2003년 8월 4일 새벽. 그룹 비서실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아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훗날 지인에게 “처음엔 얘 아빠(정몽헌 회장)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남편의 죽음을 제대로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시숙(정상영 KCC그룹 명예회장)에게서 그룹을 지켜야 했다. 경영 전면에 나섰다. 스물한살에 현대가로 시집와 30년 가까이 살림만 했는데 세상에 나오는 것이, 그것도 시아버지(고 정주영 명예회장)가 평생을 일군 그룹을 덜컥 떠맡는 게 두렵지 않았을까. 지인의 얘기다.“나도 그 점이 궁금해 언젠가 한번 물어봤었다. 그랬더니 그 때는 (경영권 분쟁으로) 상황이 너무 다급해 두려워할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에서 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때가 2003년 10월 21일. 그로부터 1년여. 주력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관리종목’의 악몽에서 벗어나 지난해 사상 최대 순익(4279억원)을 올렸다. 금강산 관광사업을 주도하는 현대아산 역시 소폭이나마 첫 흑자(8억원)를 기록했다. 현대엘리베이터(839억원), 현대증권(580억원 추정치), 현대택배(74억원), 현대경제연구원(3억원)도 지난해 흑자로 돌아섰거나 흑자를 지켰다. 그룹 경영을 맡은 지 불과 1년 만에 6개 계열사 모두를 흑자로 돌려놓은 것이다.2010년까지 그룹 매출을 20조원(지난해 말 6조 6400억원)으로 끌어올려 재계 10위권(현재 19위)에 입성하겠다는 현 회장의 ‘2010 프로젝트’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 것은 그래서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운’이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왕회장(정주영 명예회장) 시절부터 현대에 몸담아온 한 임원의 해석은 다르다. “운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다.(현 회장 취임후) 해운 경기가 살아나면서 그룹의 주축인 현대상선이 살아났으니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되는 부분이 있다. 전에 비해 그룹의 방향이 매우 뚜렷해졌다. 현 회장은 한번 결정을 내리면 단호하다. 흔들리지 않는다. 배포와 결단력은 오히려 몽헌 회장(MH)을 능가한다는 게 임원들의 공통된 평가다.” 이와 관련해 또다른 임원의 말이 재미있다.“현 회장을 보고 있으면 사업가 유전자라는게 따로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업가 집안의 둘째딸 현 회장은 1955년 딸만 넷을 둔 사업가 집안의 둘째로 태어났다. 훗날 현대상선에 흡수된 당시 신한해운의 현영원(78) 회장이 아버지다. 일제때 ‘호남의 거부(巨富)’로 이름을 날렸던 현준호씨의 후손이다. 어머니는 김용주 전남방직 창업주의 외동딸인 김문희(77) 현 용문학원 이사장이다. 김창성 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김무성 한나라당 의원의 친누나이기도 하다. 현 회장에게는 외삼촌들이다. 현대가의 며느리 가운데 손아래 동서 김영명(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의 부인·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딸)씨와 더불어 친정이 가장 화려한 편이다. 현 회장은 그룹 홈페이지에 올린 ‘나의 삶 현대의 길’에서 “기업가 집안의 엄격한 가정교육 속에서 세상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시각을 조금씩 키워나갔다.”고 어린 시절을 회고했다. 임원의 해석처럼 ‘유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사업가 집안의 가풍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운 점은 현 회장의 자매들 이름이다. 언니가 일선씨, 여동생이 지선씨다. 현 회장의 시조카들과 이름이 똑같다.“정씨 집안과의 혼사는 숙명”이라는 우스갯말이 나올 만도 하다. 언니 일선씨는 수입 침장(沈臧) ‘쉐르단’으로 유명한 홈텍스타일코리아 유승지 회장과 결혼했다. 유 회장은 유일한 유한양행 창업주의 친동생이자 유유산업 창업주인 고 유특한씨의 아들. 현 유유산업 유승필 회장의 친동생이다. 동서지간인 유 회장과 생전의 MH는 나이가 같아 유난히 친했다고 한다.MH가 죽기 직전 가족들과 외식을 할 때도 유 회장이 함께 했었다. ●‘군인’ MH와의 첫 만남 대학(이화여대 사회학과) 4학년때인 1975년 1월 어느날. 현 회장은 아버지를 따라 울산의 현대중공업 선박 명명식에 갔다. 당시 아버지는 사업관계로 잘 알고 지내던 홍콩 행정 장관(C.Y. 퉁)이 방한하자 때마침 열린 선박 명명식에 ‘모시고’ 갔다. 애초 맏딸만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둘째딸의 성화에 딸 둘을 대동하고 나섰다. 몇달 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쪽에서 넌지시 연락이 왔다.“군대간 아들이 마침 휴가 나왔는데 한번 만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선박 명명식에서 ‘참한 인상의 늘씬한 재원’을 처음 본 정 회장이 단박에 며느릿감으로 점지한 것이다. 이 때가 75년 5,6월께. 현 회장과 MH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이뤄졌다. 언젠가 현 회장이 사석에서 털어놓았다는 MH의 첫인상이다.“요샛말로 필이 꽂히거나 그렇진 않았다. 군인이라 머리도 짧았고…그래도 듬직해 보였다.” 첫 데이트 장소는 ‘군인 커플’답게 서울 태릉사격장. 이듬해 7월 두사람은 결혼했다. ●“나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 현 회장은 결혼 후 첫딸을 낳고도 남편과 함께 미국 유학길에 올라 페어리 디킨슨 대학원에서 인간개발론을 전공했다. 귀국해서 얘들 키우고 살림하는 동안에도 짬짬이 걸스카우트연맹(이사)·대한적십자사(여성봉사 특별자문위원) 등에서 ‘표 안나게’ 사회활동을 했지만 사업가로 나서게 되리라고는 그 자신 상상도 못했다. 현 회장을 가까이서 지켜본 임원의 얘기다.“그룹 경영을 맡은 지 1년여밖에 지나지 않아 아직 평가를 내리기에는 이르지만 확실한 것은 배포가 여간 아니라는 점이다. 경영 참여를 결심한 것도,8개월에 걸친 경영권 분쟁을 버텨낸 것도 이같은 배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겉으로 보면 전형적인 현대가의 조용한 며느리인데 어디에 그런 배포가 숨겨져 있는지 모르겠다. 본인 스스로도 ‘내게 이런 속배짱이 있는 줄 몰랐다.’며 웃더라.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경영권 분쟁때의)그 지독했던 마음 고생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의지력도 대단하다. 더러 확신이 서기까지 결단을 늦추는 경향이 있어 답답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일단 확신이 서면 무섭게 밀어붙인다. 번복하는 일도 없다.”결단을 내려놓고도 마음이 여려 ‘가신’들의 주장에 흔들리곤 했던 MH와는 대조되는 면모다. 현 회장의 단호함을 보여주는 일화 한가지. 지난해 8월 그룹 비전을 선포할 때의 일이다. 당시는 경영권 분쟁을 매듭짓고 새로운 도약을 다짐하던 때라 사내외에 선언할 ‘비전’이 매우 중요했다. 현 회장은 ‘용기와 자부심의 현대’라고 직접 쓴 쪽지를 내밀었다. 임원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살림만 하던 사람이 기업 경영과 직원 심리를 얼마나 알겠느냐.”는 냉소도 은근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현 회장은 지금이야말로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용기와 ‘재계 1위 현대’에 대한 자부심이 절실한 때라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결국 선언문에는 이 문구가 그대로 들어갔다. 시간을 지체해 물건너갔다고 생각했던 가신그룹(김재수 당시 경영전략팀 사장 등)에 대한 인사도 그 해말 전격 단행해 임직원들을 다시한번 놀래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 숙부의 난 현 회장은 취임하자마자 다른 사람도 아닌 시삼촌과 길고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정상영 명예회장이 2003년 8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면서 본격화된 경영권 분쟁은 이듬해 3월 30일 현대엘리베이터 주총에서 현 회장이 승리할 때까지 8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은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 집안의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비즈니스가 얽혀있어 개입할 수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중립이 현 회장을 도왔다. 현 회장측은 분쟁의 단초가 된 금호생명 대출 200억원에 대한 정상영 회장의 보증과 관련,“정 명예회장은 조카(MH)에 대한 의리라고 주장하지만 처음부터 경영권을 뺏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보였다.”고 주장한다. 한 측근은 MH가 정상영 명예회장을 인간적으로 따랐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그는 “왕자의 난이 일어나기 이전부터 정상영 회장이 MH의 자금줄을 교묘하게 막았다.”면서 “이 때문에 MH가 ‘그룹을 위해 (내가) 이렇게 희생했는데 상영 삼촌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언젠가 몹시 화를 낸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다.KCC측에서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여전히 팔지 않고 있어 경영권 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경영수업 받는 큰딸…‘코디’ 둘째딸… 사격 좋아하는 외아들 시어머니(변중석)가 아이 잘 낳는 보약을 하루가 멀다하고 들이미는 바람에 얼떨결에 일찍 가졌다는 큰딸. 딸을 낳자 시댁보다 딸만 넷인 친정의 실망이 더 컸다고 한다. 그 딸이 지금은 현 회장의 든든한 친구이자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지이(28)씨다. 서울대 고고미술학과와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대학원을 나온 그는 외국계 광고회사에 다니다 아버지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지난해 1월 3일 현대상선 재정부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올 1월 1일 대리로 승진했다. 회사 흐름을 가장 빨리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재정부에 배치한 것을 보면, 제대로 경영수업을 받게 하려는 현 회장의 의지가 읽혀진다. 경영권 분쟁때도 현 회장은 정상영 명예회장 등 시댁 어른들과의 대면 자리에 반드시 지이씨를 데리고 나갔다. 맏이답게 찬찬하고 침착해 현 회장에게는 큰 의지가 된다고 한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평이 매우 좋다. 지난해 10월 그룹 해체후 처음 가진 신입사원 수련회때는 다른 ‘신참’들과 똑같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장기자랑도 마다하지 않아 주위의 경계심을 녹였다.‘싼타페’를 직접 몰고 출퇴근한다. 아직 사귀는 사람은 없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터울이 크면 아들일 확률이 높다.”는 집안 어른들의 압력에 6년 7개월만에 가졌다는 둘째딸 영이(21)씨는 서울 상명여고 1학년때 혼자서 미국 유학을 떠났을 만큼 당차다. 보스턴에서 한시간 거리인 사립 고등학교 ‘쿠싱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현재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부에 재학중이다. 언니와 달리 성격이 매우 활달하다. 방학을 맞아 귀국하면 엄마의 의상을 열심히 조언해준다. 막내 외아들인 영선(20)씨는 모 대학 경영학과를 다니다 지금은 휴학한 상태다. 군대를 먼저 다녀온 뒤 미국 유학을 떠날 예정이다. 아버지 장례식때 고3(경복고) 수험생이었는데도 어찌나 많은 친구들이 빈소로 몰려왔던지 조문객들 사이에 화제가 됐었다. 아버지를 닮아 총쏘는 것을 좋아한다. ●옛 영광 재현 꿈꾸는 핵심 브레인들 경영전략팀이 그룹의 ‘싱크 탱크’다. 다른 그룹으로 치면 구조조정본부에 해당한다. 현 회장 사람들로 전부 세대교체가 이뤄진 점이 가장 눈에 띈다. 최용묵(57) 사장을 사령탑으로 이기승(55) 전무-하명호(47) 상무로 수직 연결된다. 현대엘리베이터 사장도 맡고 있는 최 사장은 경영권 방어전략을 촘촘히 짜 현 회장의 리더십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급진적 개혁보다는 점진적 개선파로, 조직 안정이 최우선 과제인 현 회장 체제에서는 적임이라는 평을 듣는다.76년 현대건설 평사원으로 입사,84년 현대엘리베이터 창립과 함께 관리부장을 맡으면서 조직관리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지금도 임직원들과 회사 앞마당에서 족구를 하고 삼겹살 소주 뒤풀이를 즐긴다. 이 전무는 경영권 분쟁을 겪으면서 금융전문가의 보완을 절실하게 느낀 현 회장이 지난해 6월 외환은행에서 영입해온 이다.KS(경기고-서울대 법대) 출신답게 머리회전이 빠르면서도 친화력이 뛰어나 핵심인맥의 자리를 굳혔다. 미국 디킨스대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하 상무도 재무 전문가다. 현대석유화학에서 지난해 말 그룹 심장부로 옮겨왔다. 그룹의 정신적 뿌리인 대북사업은 ‘서울대 트리오’가 이끌고 있다.“대북사업에 인생을 걸었다.”는 김윤규(61) 현대아산 부회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 왕 회장때부터 ‘소떼 방북’ 등을 성사시키며 현대와 동고동락해 온 김 부회장은 MH가 그 앞으로 남긴 별도 유서를 통해 “자주 윙크하는 버릇 고치라.”고 농담을 던졌을 만큼 2대에 걸쳐 각별한 신임을 얻었다. 얼마전 부회장으로 승진해 대북 라인 접촉 등 대외 업무에만 힘을 쏟고 있다. 대내 업무를 떼준 것은 과중한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이자 ‘거리 두기’라는 해석도 있다. 대내 업무는 윤만준(60) 현대아산 사장의 몫이다. 고문으로 물러나 있다가 김 부회장의 승진과 함께 대표이사 사장으로 발탁된 그는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초창기부터 관여해 실무에 밝다. 서울법대를 나와 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MH와 함께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일궜다. 김 부회장의 서울대 공대 직속 후배인 심재원(58) 현대아산 부사장은 개성공단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업무처리가 치밀하다. 그룹의 ‘캐시 카우’(돈버는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노정익(52) 사장이 이끌고 있다. 유동성 위기로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던 2002년 9월 사장에 취임해 1000원대이던 주가를 2만원 가까이 끌어올린 것으로 유명하다. 자동차 운반선 매각 등 뚝심으로 구조조정을 밀어붙여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 때 들어온 1조원대의 현금이 없었다면 뒤이어 터진 대북송금·분식회계 등의 악재를 버텨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취임하자마자 승선 체험을 자청, 선원들과 거센 파도와 싸우며 하나가 된 덕분에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안살림을 꼼꼼하게 챙기는 안홍환(55·부사장) 지원본부장, 회사 매출의 70%를 책임지고 있는 이재현(54·전무) 컨테이너본부장, 일반화물 영업을 이끄는 이동렬(56·전무) 벌크선영업본부장, 해양대 항해학과를 나와 선장으로도 근무한 ‘마도로스’ 신용호(56·전무) 해사본부장 등도 상선의 중추 세력이다. 2003년 6월 부국증권에서 스카우트돼 온 김지완(59) 현대증권 사장은 ‘현투(현대투자신탁증권) 책임분담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지어 그룹의 고민을 덜어주었다.‘숙부의 난’때는 오랜 증권업계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권 방어 전략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문이어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하마평에 자주 오르기도 한다. 김 사장을 떠받치고 있는 노치용(53·전무) 도매영업본부장은 그룹 홍보도 겸하고 있어 여의도와 광화문을 오가며 ‘셔틀 업무’를 보고 있다. 경영권 분쟁때 설득력있는 논리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숙부의 난 당시 격전지(경영전략팀) 한복판에 있었던 현기춘(51) 현 현대엘리베이터 전무도 눈에 띈다. 현대엘리베이터의 또다른 한 축인 한승준(51) 전무와는 춘천고 같은반 친구이다. 기획·관리 전문가로 ‘선 굵은 CEO’로 불리는 김병훈(55) 현대택배 사장, 경제연구원 최초로 수익모델 창출에 도전한 재무관료 출신의 김중웅(64) 현대경제연구원 회장,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주현(53) 현대경제연구원장 등도 그룹의 핵심 브레인들이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다.“경영권 분쟁이 오히려 약이 됐다. 몽헌 회장의 죽음으로 흔들리던 임직원들이 경영권이 위협받자 현 회장을 중심으로 차돌처럼 뭉쳤다. 이번 기회에 전열을 확실하게 정비해 그룹의 모태로서 옛 현대의 영광을 반드시 재현하겠다.” hyun@seoul.co.kr ■ ‘비운의 황태자’ 정몽헌 현대가 사정을 소상히 알고 있는 한 현대맨은 “90년대 들어 언론에서 빅3(MK,MH, MJ) 운운했지만 그 때는 이미 왕회장이 MH를 후계자로 형제들에게 선언한 뒤였다.”면서 “좀체 칭찬을 하지 않는 왕회장이었지만 MH에 대해서는 심지가 깊은 아이라며 믿음을 내보였다.”고 전했다. 보성고와 연세대를 나와 미국 페어리 디킨슨 대학에서 MBA(경영학 석사학위)를 딴 MH는 귀국후 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세워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그룹 단독 회장에 취임했다. ‘왕자의 난’의 상처를 털고 MH시대를 여는 듯했다. 하지만 2003년 8월 4일 계동사옥 12층 집무실에서 몸을 던지고 만다. 이유는 밝히지 않았다. 그저 유서를 통해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다.”고만 했을 따름이다. 대북송금 특검 등에 따른 중압감 때문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한 측근은 당시 “극심한 중압감 때문이었다면 가족들이 낌새를 알아챘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일축했었다. 투신하기 직전, 가족과 식사한 것을 두고 미리 자살을 준비했다는 분석도 나왔지만 이 역시 MH가 일요일에는 가족들과의 외식을 즐겼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MH는 바깥일을 집에 와 자상하게 털어놓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가급적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등 가정적인 편이었다. 한 측근의 얘기다.“(대북송금·비자금 수사 등이 진행되자) 나 혼자 책임지겠다는 말씀을 여러번 하셨다. 그때는 혼자 감옥가겠다는 뜻인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살을 염두에 뒀던 것 같다. 그렇더라도 투신하기 두달 전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게 나오자 부인(현 회장)에게 매일 순두부를 끓이라고 했던 점으로 미뤄보아 투신 결심은 순간적으로 이뤄졌던 것 같다.” 소탈하면서도 합리적이고 머리도 좋아 따르는 이가 많았던 MH. 그는 그러나 끝내 아버지의 꿈(대북사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삶을 접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55살때였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며느리들 현대가의 며느리들은 4월을 ‘제사의 달’이라고 부른다. 시아버지(정주영 회장)가 생전에 워낙 제사를 중시한 데다 온갖 제사가 몰려있어 4월에는 아예 청운동 시댁 부엌에서 살다시피 했다. 시아버지의 독특한 ‘밥상머리 교육’ 때문에 새벽마다 시댁으로 가 아침식사도 직접 준비해야 했다. 한 며느리는 “새벽 3시반에 갔다는 항간의 얘기는 다소 과장이고 이를 때는 4시반, 보통때는 5시나 5시반쯤 갔다. 시아버님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새벽마다 수행원들 몫까지 김밥을 엄청나게 쌌던 기억이 난다.”고 털어놓았다. 언젠가 한번은 아들들이 꾀가 나 아침식사 회동에 몇번 빠졌다. 대로한 왕회장이 “모두 들어와 살라.”고 불호령을 내려 1년간 청운동 시댁 주변에 모두 모여산 적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이 나서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왕회장이지만 말년에는 겸상 식사도 허용했다고 한다. 맏며느리 이양자씨는 수도여대를 나와 한때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이씨가 91년 암으로 세상을 뜨면서 실질적 맏며느리 역할을 해온 둘째며느리 이정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부인)씨는 당시 명문으로 꼽히던 숙명여고를 나왔다.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던 넷째며느리 이행자씨는 한양대 출신으로 세간에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숙명여대를 졸업했다. 유난히 여대 출신이 많은 데는 이유가 있다.“여자는 여대를 가야 한다.”는 왕회장의 보수성 때문이었다. 이화여대에 수석 입학해 화제가 됐던 손녀 유희씨(고 몽필씨 딸)도 원래는 연세대 원서를 다 써놓은 상태에서 할아버지에게 ‘보고’했다가 된통 혼이 난 뒤 여대로 틀었다고 한다. 며느리든 딸이든 해외유학까지 다녀오고도 회사 경영이나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이가 거의 없는 것도 유교적 가풍 탓이다. 왕회장은 “살림에만 신경쓰라.”며 며느리들에게 골프도 치지 못하게 했다. 현정은 회장은 이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골프장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월이 훨씬 흐르고서야 뒤늦게 골프를 배웠지만 영 재미가 붙지 않아 골프장에 딱 세번 나가본 뒤 관뒀다고. 오는 10월 ‘금강산 골프장’ 개관에 맞춰 상징 티샷을 날리라는 임원들의 압력이 많아 여간 고민이 아니라고 한다. 한때 기체조를 배웠으며 ‘걷기’ 가 취미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이집이 맛있대] 서울 삼청동 ‘고조선’

    [이집이 맛있대] 서울 삼청동 ‘고조선’

    삼청동 골목에는 숨겨진 보석 같은 공간들이 숨어 있다. 한정식집 ‘고조선’은 그중에서도 맛이나 분위기가 삼청동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하늘하늘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 삼청동 나들이에 나서 고궁과 그림, 특색있는 옷과 신발을 구경하다 어머니의 밥상이 생각날 때 들를 만하다. 한정식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다는 것도 이집의 장점. 10년간 가정주부로 일하다 맏딸이 대학에 입학하자 식당을 연 박선영(50) 사장은 3년전,30평짜리 한옥을 개조했다. 사찰요리, 약선음식, 한정식의 고수들을 쫓아다니며 요리를 배웠고 재료 고유의 맛을 살리기 위해 서양식 소스는 사용하지 않으며, 쑥·냉이·씀바귀·톳나물 등 제철나물을 많이 쓴다. 둥글레차와 함께 단호박과 쌀가루로만 만든 담백한 단호박죽, 싱싱한 양상추와 샐러리·비트를 살짝 넣고 파인애플을 얹은 양상추 샐러드, 고조선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간장소스로 상큼한 맛을 낸 굴 톳나물 샐러드, 계란찜, 호두조림, 파래전, 오징어전 등이 전채로 나온다. 명란젓, 새송이버섯 구이, 꼬막, 갓김치, 오이선 등의 찬이 입맛을 살리고 들깨국, 된장찌개, 생선구이, 삼겹살 등이 푸짐하게 곁들여진다. 고조선의 별미인 백련잎 찰밥은 공주대 생명과학과 서승염 교수와 공동개발한 건강식으로 연자(연꽃 열매), 수수, 차조, 은행, 서리태, 잣, 조, 대추 등 아홉가지 잡곡을 연잎에 싸서 찐 것이다. 소금간만 살짝 한 찰밥은 연잎에 싸여 고소하고 향긋한 맛을 낸다. 또 산머루주와 산머루와인은 해발 650m의 감악산 산머루농원에서 직접 길러 제조한 것으로 향이 진하고 맛이 달다.1만 5000∼6만원선. 제철음식을 상에 올린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는 것이 자랑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27일 TV 하이라이트]

    ●실험쇼 진짜?진짜!(MBC 오전 9시55분) 딸기우유를 비롯해 두유, 아세로라, 당근 등이 여성의 가슴 발육에 좋다는 속설이 있다. 이 음식들 외에도 한의사가 추천한 두유, 석류, 고단백 비타민 식단을 각 실험군에게 일주일간 섭취하도록 하는 실험을 통해 그들의 가슴에 과연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본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2억 5000만년 동안 모습이 변하지 않은 살아 있는 화석 투구게. 투구게는 게보다는 진드기에 더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으며, 행성 충돌로 지구의 모든 생물이 멸종했을 때에도 살아 남았다. 또 일본과 인도네시아에서는 투구게의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는 꾸준히 번식하고 있다. ●삼색토크 여자(EBS 오후 8시) 레드 코너에서는 밥벌이를 위해 애쓰는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20~30대 직장인들로 결성된 직장인 밴드 ‘사내소동’을 찾아간다. 그린 코너에서는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이 자상하게 당부하는 ‘요리없는 요리책-소박한 밥상’을 읽어준다. ●그린로즈(SBS 오후 9시45분) 유란을 벽으로 밀어붙인 정현은 왜 위증을 했느냐고 위협한다. 유란은 정현이 윽박지르자 정 기사가 시킨 짓이라고 털어 놓는다. 정현은 수사관이 들이닥치자 칼을 꺼내 유란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TV를 보던 수아는 정현을 걱정하고, 현태는 회장님 병실을 잘지키라고 지시한다. ●부모님 전상서(KBS2 오후 7시55분) 형표는 성미에게 명품 시계를 선물하는데, 성미는 부모돈으로 턱없이 비싼 물건을 사는 형표가 끔찍하다며 화를 낸다. 한편, 준이와 놀이터에 나간 창수는 준이에게 아무 것도 해준게 없어 미안하다며 되뇌이고, 준이는 뜻을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끄덕인다. ●KBS스페셜(KBS1 오후 8시) 일본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무엇을 노리는 것일까. 이번에는 일본의 독도 도발 이후 드러난 이번 사건의 배경과 의미를 심층 진단한다. 일본 사회 내부의 우경화, 군국주의화의 뿌리와 구조를 분석하고, 한·일관계 성격 변화의 양상을 국제정치적 맥락에서 살핀다.
  • [길섶에서] 알전구/심재억 문화부 차장

    전기는 들어오지 않았지만 전기용품은 진즉부터 사용했지요. 호롱불 켜고 살던 시절의 ‘부시맨 콜라병’ 같은 얘깁니다. 갯가에서 놀다 보면 가끔 ‘촉 떨어진’ 알전구가 파도에 떠밀려오곤 했지요. 도시에서 쓰는 그 ‘전기다마’를 전기없는 시골에서는 전혀 다른 용도로 썼습니다. 구멍난 양말 뒷축을 깁는 데 알전구가 그만이었거든요. 매끈한 알전구를 양말 안쪽에 대면 웬만한 양말 구멍 꿰매기는 식은 죽먹기였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시골집 반짇고리에도 알전구 하나쯤 들어앉게 되었고요. 그런 쓰임새가 있어 갯가에서 놀던 애들 알전구가 보이면 대뜸 주워오곤 했는데, 한 날 그걸 주머니에 넣고 달리다가 넘어져 일이 생겼습니다. 깨진 유리조각이 옆구리에 박혀 생살을 손가락 한마디만큼이나 베인 것입니다. 그 정도 상처야 쓱쓱 문질러 딱지만 앉으면 낫는 줄 알았지만, 어른들이 아주 놀랐던 모양입니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아버지 “이런 세근머리 는 눔, 그걸 주머니에 넣고서 고 까불다니….”라며 호되게 나무라십니다. 서운한 마음에 두번 다시 알전구는 줍지 않았지만 그런 꾸지람도 사랑이었음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심재억 문화부 차장 jeshim@seoul.co.kr
  • [20일 TV 하이라이트]

    ●실험쇼 진짜? 진짜!(MBC 오전 9시55분) 냉동실에 넣어 얼리기, 깨물기, 침 바르기, 땅에 묻기. 건전지를 오래 쓰는 방법이라고 알려진 속설들이 너무 많다. 이번에는 건전지와 관련된 이런 속설을 증명해 보인다. 개그맨 임혁필의 진행으로 이뤄진 거리 실험실에서 다 쓴 건전지를 살릴 수 있는 비법도 알아 본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카메룬과 콩고에서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기 위해 개설한 도로는 야생동물 밀매를 위한 통로일 뿐이다. 벌목회사와 정부, 야생동물협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야생동물 밀매는 심각하다. 밀렵꾼들은 국립공원의 코끼리와 다른 포유동물을 모두 없애버리겠다고 떠들고 다닌다. ●청소년 원탁토론-교내 선후배 질서(EBS 오후 6시10분) 얼마 전 충북 모 중학교에서는 13명의 학생들이 인사를 하지 않는다며 후배 15명을 방에 가둔 채 집단폭행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번 시간에는 최근 사회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학교 내에서의 선후배간 위계질서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토론한다. ●그린로즈(SBS 오후 9시45분) 정신이 든 정현은 오 회장을 업고 불 속을 헤치고 나온다. 소식을 들은 수아와 명숙은 수술실 앞에서 결과를 기다리고, 병원으로 달려온 현태는 사태를 모르는 척한다. 수아를 위로하던 정현은 방화 용의자로 경찰에 체포된다. 정현은 범인이 아니라고 하지만 수사관은 지문을 들이댄다. ●비타민(KBS2 오후 10시5분) 만병의 근원이 되고 그래서 더 위험한 비만. 비만 예방을 위한 ‘위대한 밥상’이 공개된다. 세균의 공격을 막아서는 1차 관문인 입. 입 속에 존재하는 수천가지 세균들이 일으키는 구강질환은 곧 전신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입 속을 제대로 보는 방법과 입 속의 세균을 퇴치하는 방법 등을 알아본다.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조선시대의 ‘3원3재’ 중 한 명인 관아재 조영석. 그의 필치로 추정되는 그림이 의뢰됐다. 산수화는 물론이고 인물화에도 뛰어났던 조영석. 작은 화폭의 이 그림은 과연 진품일까? 형태가 마치 오래 전 사용했던 다리미를 연상시키는 의뢰품. 이 근대유물을 통해 옛 추억 속으로 들어가보자.
  • 사람 살리는 발효음식의 힘

    사람 살리는 발효음식의 힘

    서구화된 밥상 앞에서 점점 시들어가고 있는 현대인들.20∼22일 방영될 MBC의 3부작 HD다큐멘터리 ‘곰팡이’에서는 이제 현대인들이 생식과 화식이 아닌 발효음식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본다. 발효음식의 신비로운 힘을 찾기 위해 1년여 동안의 취재와 실험을 거쳤다. 1부 ‘살아있는 음식, 발효’(20일 오후 10시35분)에서는 잘못된 섭생이 몰고 올 위험을 경고하고, 발효음식을 통해 무엇이 우리에게 이로운 음식인지 살펴본다. 신생아들이 중금속에 오염된 이유와 경로를 추적하고, 장수촌으로 잘 알려진 일본 나가노와 순창을 찾아 장수 비결을 알아 본다. 하얗게 곰팡이가 핀 돼지다리,30년 넘게 삭힌 꽁치 등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한·중·일의 각종 발효음식을 소개하는 시간도 갖는다.2부 ‘발효가 사람을 살린다’(21일 오후 11시)에서는 발효음식의 신비로운 힘을 경험한 사람들의 생생한 체험담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발효 음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짚어본다. 김치가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고, 아토피까지 고친 임상시험의 결과를 보여주면서, 식중독은 물론 사스까지 물리치는 김치의 효능을 알아본다. 김치 맛의 비밀을 풀 수 있는 김치 유전체지도도 세계 최초로 공개한다. 식탁을 뛰어넘어 발효음식의 산업적 가치를 조명한 3부 ‘21세기 미생물 전쟁’(22일 오후 11시)에서는 미생물만으로 IT 이상의 부가가치를 낼 수 있는 각국의 소리없는 미생물 전쟁 현장을 취재했다. 모든 상황을 똑같게 통제한 뒤 음식을 만드는 실험을 통해 음식 맛을 좌우하는 비밀의 열쇠가 무엇인지도 규명해 낸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토종웰빙을 찾아서] 마산 고현 미더덕

    [토종웰빙을 찾아서] 마산 고현 미더덕

    봄철이면 너나없이 입맛이 떨어진다. 주부들이 정성을 다해 밥상을 차려보지만 가족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을 때는 미더덕 요리가 제격이다. 미더덕은 바다에서 나는 더덕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입안에 번지는 향이 독특하고,‘오도독’하고 씹히는 맛이 일품인 ‘웰빙 먹을거리’다. 한국수산물 성분표(1995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미더덕에는 성장기 어린이에게 좋은 필수아미노산 함량이 32%나 되며, 이중에는 타우린·글루타민산·글리산 등과 같이 원기회복에도 좋고, 입맛이 돌아오게 하는 유리아미노산이 50%나 차지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등푸른 생선에 많은 EPA와 DHA와 같은 고도 불포화 지방산 함량이 상당히 높아 청소년의 두뇌발달 및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모든 성인병의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동맥경화와 고혈압 및 혈전 예방효과가 뛰어난 식품이다. ●성장기 어린이의 보약 미더덕과 사촌쯤 되는 오만둥이도 성인병 예방에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흰 멍게라고도 하며, 산란 및 부착시기가 미더덕과 비슷하다. 오만둥이의 몸은 원형에 가깝고 때로는 불규칙한 모양을 하며 외형의 물질이 붙어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겉껍질은 회황색에서 연한 등황색을 띠며 가죽 모양으로 두께는 2∼8㎜ 정도다. 표면에는 불규칙한 홈이나 주름이 있고 속은 흰색으로 미더덕보다는 단단하고, 씹히는 맛이 좋아 젊은이들이 더 선호한다. 육질의 주 성분은 단백질 5.3%, 지방 함량은 2.0%로 적은 편이다. 동맥경화 및 혈전병 등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타우린과 혈중 콜레스테롤을 개선시키는 DHA와 EPA가 들어있어 성인병 예방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더덕은 껍질을 까서 먹지만 오만둥이는 껍질째 먹는다. 외형적으로 배에 꼬리가 달려 있으면 미더덕이고, 꼬리부분이 없는 것이 오만둥이다. 둘다 회로 먹거나 찜으로 쪄 먹어도 좋지만 된장찌개의 부재료로 첨가해도 좋다. 미더덕은 우리나라와 극동아시아에만 분포하는 해양동물이다. 우리나라에는 진해만을 중심으로 남해안에 주로 서식하고 있으며, 특히 경남 마산의 특산물이다. 마산시 진동면 고현마을에서 생산되는 미더덕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할 정도다. 채취 시기는 수온이 9∼15℃로 유지되는 3∼4월. 이때쯤이면 길이 65㎜ 내외로 통통하게 살이 올라 가장 맛있다. ●입안에 퍼지는 바다냄새 미더덕을 즐겨 먹는 안원준(53·마산시)씨는 “미더덕을 깨물어 터뜨리면 입안 가득 진한 바다냄새가 밴다.”고 말한다. 안씨는 3∼4월 채취 시기에 1년치를 구입한다. 껍질 깐 미더덕 20㎏을 구입, 한번 먹을 만큼씩 나눠 랩에 싸서 냉동보관하면 두고두고 먹을 수 있다는 것. 싱싱할 때는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소주 안주로 그만이라고 자랑한다. ●노화를 방지하고 항암효과도 뛰어나 최근에는 미더덕과 오만둥이에서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산화물질이 다량 함유돼 있다는 사실이 경남대 경남지역문제연구원 이승철(식품생명공학부) 교수팀에 의해 밝혀졌다. 이 교수팀이 경남 마산시의 의뢰로 미더덕의 장기보관 포장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연구하다 뜻밖의 결과를 얻은 것이다. 또 대장암 세포로 실험한 결과 오만둥이는 항암효과도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활성산소는 세포와 DNA를 공격, 각종 독성물질을 생성시켜 만성질환과 노화를 촉진시키는 주범으로 알려져 있다. 이 교수는 “인위적으로 활성산소를 주입해 실험한 결과, 미더덕이 이를 제거하는 능력이 뛰어나 항산화물질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미더덕이 어떤 항산화물질을 어느 정도 함유하고 있는지, 마늘이나 녹차 등 다른 식품에 비해 함유 정도가 얼마나 되는지는 연구를 계속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마산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1개월 장기유통 가능해져 미더덕은 재래시장에서 자연식품 형태로 판매되고 있어 유통기한이 3일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1개월 이상 장기유통이 가능하게 됐다. 마산시가 주산지인 진동면 고현마을을 정보화마을로 지정하고, 사업비 4억원으로 전자상거래용 포장기술을 개발했다. 진공포장 후 110℃에서 15분간 가열하거나 동결건조한 뒤 분말포장하면 맛과 향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1개월 이상 장기 유통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산시와 미더덕 영어조합법인 등은 1차 가공하거나 분말상태로 상품화하기로 하고 특허를 출원, 머지않아 서울 등지에서도 손쉽게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 [건강칼럼] 춘곤증 이기는 밥상

    점심 후면 졸음이 쏟아지면서 몸이 나른하다. 봄이 되면 으레 나타나는 춘곤증이다. 봄이 왔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썩 반갑지만은 않다.‘하곤증’이나 ‘추곤증’이라는 말은 아예 없는데, 유독 봄에 졸음이 쏟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설이 있지만, 기온 변화에 몸이 적응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우리 몸이 계절에 빨리 적응하도록 돕는 데는 운동과 먹을거리 전략이 효과적이다. 규칙적인 운동과 틈틈이 하는 1분 스트레칭이 도움이 된다. 먹을거리 역시 마찬가지이다. 신선한 새 봄 음식이 한창일 때라 먹는 즐거움이 더할 수도 있다. 춘곤증을 물리치기 위한 봄 식단 전략을 알아본다. 첫째는 물량 공세다. 영양소가 부족하면 춘곤증이 더 쉽게 나타난다. 풍부한 채소와 해조류로 비타민과 미네랄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산채류는 소화를 도와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한다. 풋마늘 쑥 원추리 들나물 취나물 도라지 두릅 더덕 달래 냉이 돌미나리 부추 등 봄나물에는 피로회복에 좋은 비타민과 미네랄이 풍부하다. 해조류 역시 마찬가지. 끼니 때마다 다시마 미역 톳 파래 김 등 해조류를 곁들이면 좋다. 둘째, 적당한 음식을 때에 맞춰 먹으면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다. 체력 보강을 위해서는 단백질을 섭취할 필요가 있다. 낮에는 주로 생선류와 야채, 해조류, 잡곡 등 질 좋은 단백질 식품을 먹어준다. 또 저녁에는 잠을 부르는 당분 식품을 함께 곁들인다. 이렇게 하면 숙면을 취하는 데 도움이 돼 다음 날의 피로감도 덜 수 있다. 셋째, 입맛이 없다면 미끼를 던져야 한다. 밥상이 아무리 좋아도 한두 술 뜨고 만다면 도로아미타불이다. 이 때는 입맛을 돋워주는 미끼가 필요하다. 바로 새콤달콤한 음식. 신맛은 식욕을 자극하고, 타액과 위액을 분비시키는 기능이 있어 좋다. 초장이나 겨자초에 야채를 무쳐 먹으면 특유의 신맛이 입맛을 돋운다. 신맛 나는 야채나 과일을 먹는 것도 도움이 된다. 신맛이 나는 반찬류로는 매실을 추천할 만 하다. 매실의 신맛을 내는 구연산은 피로회복 효과가 탁월해 여러 모로 활용할만 하다. 이승남 강남베스트클리닉 원장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①-창업주 故정주영회장 일가

    보는 이마다 다르겠지만 현대를 삼성보다 앞세우는 사람들은 현대의 창업 정신을 강조한다. 현대는 남이 일궈놓은 기업을 인수하기보다는 밑바닥에서부터 하나하나 주춧돌을 올렸다. 건설이 그랬고, 자동차가 그랬으며, 중공업이 그랬다.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회장은 이를 평생의 긍지요, 자랑으로 여겼다. 서슬 퍼렇던 군사정권 시절, 국보위(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에 끌려가서도 “사정상 어쩔 수 없었던 인천제철만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내 손으로 말뚝을 박고 길을 닦아 시작하지 않은 공장이 없다.”며 기업 강제 통·폐합에 맞섰을 정도였다. 1947년 5월25일 서울 중구 초동의 허름한 자동차 수리공장 한 귀퉁이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건 지 60여년. 삼성보다 10년 가까이 늦은 출발이었지만 현대는 이내 1위 기업으로 우뚝 섰고,‘경영권 다툼’이 일어났던 2000년까지 그 지위는 차돌만큼이나 단단했다. 이때 현대그룹의 자산규모가 87조여원. 계열사 수만 40개가 넘었다. 비록 그룹이 쪼개지면서 외형상의 규모가 작아지고 재계 서열은 떨어졌지만, 경제 전문가들은 ‘전화위복’이라고 입을 모은다. 자동차(현대차그룹), 유통(현대백화점), 해운·제조(현대그룹), 조선(현대중공업), 금융(현대해상·현대기업금융) 등 각자 전문그룹의 길로 나서면서 경쟁력은 더 강화되고 동반 부실의 위험은 현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다른 그룹들이 이제서야 계열분리 등으로 홍역을 앓는 동안 현대의 대표주자들은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다. 현대산업개발,KCC, 한라, 성우 등 창업주의 형제들이 이끄는 그룹들도 각자 독자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언뜻 봐도 느껴질 만큼 현대에 뿌리를 대고 있는 기업들은 유난히 굴뚝업종이 많다. 고용된 인원과 딸린 부품·협력업체가 많다는 얘기다. 국민경제 기여도로 따지면 현대가 여전히 1위라는 말은 그래서 나온다. 또 한 가지, 현대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현대정신’이다. 현대에는 일단 해보자며 덤비는 정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때로는 비합리성을 낳기도 하지만 현대맨들은 이를 “맨바닥에서부터 기업을 일군 현대만의 저력”이라고 자부한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이를 “진정한 기업가(起業家) 정신”이라고 불렀다. 제각각 ‘마이 웨이’를 걷고 있는 오늘날의 현대가를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기도 하다. ●담(淡)한 혼맥… 후한 연애결혼 다른 재벌가에 비해 현대의 혼맥은 의외로 소박하다. 낭만을 즐겼던 고 정 회장이 자식들의 연애에도 너그러웠던 영향이 가장 크다.‘왕 회장’이라는 별칭으로 더 자주 불렸던 그 자신, 강원도 통천의 평범한 고향처녀(변중석)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했다. 슬하에 9남매(8남1녀)를 두고 동생이 일곱(한명은 어려서 사망)이나 됐지만 눈에 띄는 혼사는 손가락을 꼽는다. 직계가족 중에 굳이 꼽자면 다섯째아들 고 몽헌(MH)씨와 여섯째아들 몽준(MJ)씨를 들 수 있다. 몽헌씨는 신한해운 현영원 회장의 딸 정은씨와, 몽준씨는 김동조 전 외무장관의 막내딸 영명씨와 각각 결혼했다. 오랜 세월 재계를 주름잡았던 현대의 위상에 견줘 혼맥이 조촐한 데는 창업주의 성공과정과도 무관치 않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부두 막노동꾼을 거쳐 대기업 총수에 오른 그는 살아생전 “세상에 공짜란 없다.”며 담(淡)한 마음을 갖자고 입버릇처럼 강조하곤 했다. 권력이나 부(富)를 결코 싫어하지 않았지만 굳이 혼사줄까지 대가며 공짜를 탐할 이유 또한 없었던 것이다. 정략결혼의 흔적이 적은 대신에 유난히 많은 손(孫)과 맞닥뜨리는 게 현대라는 집안이다. 이런 현대가 대(代)를 건너뛰면서 LG, 롯데, 한진, 이건, 비비안 등 내로라하는 그룹들과 사돈을 맺은 점은 흥미롭다. 현대가의 2세들이 ‘몽(夢)’자 돌림이라면 3세들은 딸이 ‘이(伊)’, 아들은 ‘선(宣)’자 돌림을 쓴다.4세는 ‘진’자(딸),‘창’자(아들) 돌림이다. ■ 현대의 핵심축 아들들 ●장남 몽필… 쌍용가와 인연 큰아들 몽필씨는 나이 50도 안돼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국영 적자기업 인천제철을 인수해 정상화에 여념이 없던 1982년 4월 어느날,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오던 고속도로에서 그가 탄 승용차가 트레일러를 들이받았다. 이 때가 마흔아홉살. 수도여대 출신의 부인 이양자씨와 두 딸 은희·유희씨는 망연자실했다. 몽필씨가 떠난 지 한달 뒤, 정주영 회장은 동서산업 공장장이던 이영복씨를 사장으로 파격 승진시켰다. 이씨는 몽필씨의 처남, 즉 이양자씨의 친동생. 졸지에 가장을 잃은 장남 가족에 대한 배려였다. 하지만 이양자씨마저 91년 위암으로 눈을 감고 말았다. 큰딸 은희씨는 최근 미국에서 귀국했다. 둘째딸 유희씨는 김석원 쌍용양회 명예회장의 장남 지용씨와 결혼해 두 아들(진석·진하)을 두었다. 지용씨는 현재 용평리조트 상무를 맡고 있다. ●2남 몽구… 글로벌 현대차그룹 리더 몽필씨의 죽음으로 사실상 집안의 장남 역할을 도맡아 한 이는 둘째아들 몽구(MK)씨였다. 유희씨가 결혼할 때 부모 역할을 대신 한 사람도 몽구씨 부부였다.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사장 시절,‘갤로퍼 신화’를 만들어낸 그는 기아차마저 인수해 지금의 현대·기아차 그룹을 이끌고 있다.2000년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출범한 지 몇 년도 안돼 그룹을 세계 6위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출범 당시 10개였던 계열사 수는 28개로 불어났다. 그룹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지난해보다 17% 늘어난 85조원.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미국의 ‘소비자 보고서(컨슈머 리포트)’는 최근 현대차의 뉴쏘나타를 세계에서 가장 결함이 적은 차로 선정했다. 갤로퍼 신화 때부터 MK가 강조해온 ‘품질 경영’의 힘이다. MK는 평범한 집안의 딸 이정화씨와 결혼해 3녀1남을 두었다. 큰딸 성이씨는 저명한 정형외과 의사이자 영훈의료재단을 설립한 고 선호영 박사의 아들 두훈씨와 결혼했다. 둘째딸 명이씨는 정경진 종로학원장의 아들 태영씨와, 셋째딸 윤이씨는 미국 MBA(경영학석사) 출신인 신성재씨와 결혼했다. 둘째사위와 셋째사위는 그룹 계열사인 현대카드·캐피탈 사장, 현대하이스코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막내이자 외아들인 의선씨는 지난 11일 기아차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룹내 직함은 현대·기아차기획총괄본부 담당 사장으로 기아차의 기획, 재무, 수출, 연구·개발(R&D) 등 핵심 업무를 관장하고 있다. 일찍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고 있다. 부인은 정도원 강원산업 부회장의 큰딸 지선씨다. ●3남 몽근… 소리없이 유통명가 키워 셋째아들 몽근씨는 일찌감치 유통을 넘겨받아 현대백화점 그룹을 이끌고 있다.‘빅3’(MK·MH·MJ)에 가려 조명은 덜 받았지만, 묵묵히 외길을 걸으면서 소리없이 유통 명가로 키워낸 주인공이다. 현대백화점, 현대H&S(非 백화점 계열), 현대홈쇼핑 등 주력 계열사를 토대로 지난해 5조 50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문 최고경영자(CEO)들이 소신있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 주면서도 거의 매일같이 매장을 둘러봐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바로 위 형 몽구씨와는 고등학교(경복고)-대학교(한양대) 동문인 데다 선굵은 외모까지 비슷하다. 옛 현대그룹에서 고문을 지낸 우호식씨의 딸 경숙씨가 부인이다. 두 아들은 각각 부회장, 기획담당 이사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큰아들 지선씨는 고 황산덕 전 법무장관의 손녀인 서림씨와 결혼했다. 둘째아들 교선씨는 자동차부품 전문기업인 대원강업 허재철 부회장의 큰딸 승원씨와 지난해 말 깜짝 결혼식을 올렸다. 교선씨의 결혼식에는 큰아버지인 정몽구 회장을 비롯해 집안 어른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우애를 다지기도 했다. 현대가는 한때 딸만 남기고 떠난 몽필씨의 대를 잇기 위해 지선씨를 양자로 입양하는 방안을 의논했었다. 유교식 법도대로라면 바로 아래 동생인 몽구씨의 아들을 입양해야 했으나 의선씨가 외아들인 탓에 지선씨가 선택된 것.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실제 입적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주영 회장의 장례식때 의선씨가 ‘종손’ 자격으로 고인의 영정을 든 것은 이 때문이었다. ●외사위 희영… 천마산스키장 운영, 이건·비비안과 사돈 현대가는 자손이 많은데도 딸은 귀한 편이다. 외동딸 경희씨는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재원. 그러나 바깥 활동은 없다. 대신 남편(정희영)이 선진종합㈜ 회장이다. 공교롭게 고 정주영 회장의 여동생 희영씨와 이름이 똑같다. 서울대 상대 출신으로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입사 동기다. 조선 수주에서 뛰어난 수완을 발휘, 창업주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됐다. 정주영 회장은 딸 경희씨가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자 희영씨를 도쿄법인 이사로 발령내 자연스러운 교제를 유도했다고 한다. 이후 희영씨는 조그만 해운회사(선진해운) 하나를 갖고 독립, 장인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천마산 스키장은 오롯이 그가 독립해 만든 회사다. 외아들 재윤씨가 선진종합㈜ 상무다. 두 딸은 각각 이건그룹과 비비안그룹으로 시집갔다. 큰딸 윤미씨의 남편이 이건창호 박승준 상무, 둘째딸 윤선씨의 남편이 비비안 남석우 부회장이다. ●4남 몽우… BNG스틸 통해 부활 넷째아들 몽우씨는 숙명여대를 떠들썩하게 했던 ‘미인’ 이행자씨와 연애결혼했다.40대에 현대알루미늄 회장을 맡은 그는 그러나 심한 우울증을 앓았다. 결국 1990년 4월 45세의 젊은 나이에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남겨진 유족을 돌보는 일도 사실상의 장남 몽구씨의 몫이었다. 조카 셋을 모두 현대차그룹의 계열사인 BNG스틸(전 삼미특수강)에 입사시켰다. 큰조카, 즉 몽우씨의 장남인 일선씨는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최근 BNG스틸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선씨에 이르러 비로소 현대는 내로라하는 재벌가와 사돈관계를 맺는다. 일선씨의 부인은 구자엽 희성전선 부회장의 딸 은희씨다. 구 부회장은 구태회 LG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이자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조카이다. 일선씨의 동생 문선씨는 김영무 김&장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의 딸 선희씨와 결혼했다. ●5남 몽헌… 못다 이룬 꿈, 현 회장이 힘찬 날갯짓 ‘비운의 황태자’ 몽헌씨는 1998년 그룹 공동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화려한 비상을 시작했다.1983년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설립해 4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면서 아버지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끌어냈다.2000년에는 형들을 제치고 그룹 단독 회장에 추대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북 송금’ 사건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2003년 8월4일 서울 계동사옥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부인 현정은씨가 경영에 뛰어들었다. 급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으로 황망히 그룹을 물려받았지만 사업가 집안의 딸답게 배포와 합리적 리더십으로 1년 만에 그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았다. 사상 최대 호황을 누리고 있는 현대상선, 올해 첫 흑자를 넘보고 있는 현대아산, 주가 1000시대의 수혜주 현대증권 등을 축으로 재계 10위권 진입(현재 19위)을 눈앞에 두고 있다.2010년까지 매출 20조원을 달성해 10위권에 진입한다는 ‘2010’ 프로젝트를 가동중이다. 현 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이 직접 ‘점지한’ 며느리로도 유명하다. 현 회장이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결혼 뒷얘기는 이렇다.“당시 현대상선 회장이던 아버지(현원영)를 따라 선박 명명식차 울산에 내려갔다가 남편을 처음 만났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명예회장(정주영)께서 나를 선보러 미리 내려오셨었다. 명예회장께서 중매를 서신 셈이다.” 큰딸 지이씨는 현대상선 재정부 대리로 근무 중이다. 아버지를 잃었을 때 고3 수험생이었던 외아들 영선씨는 졸업후 미국 유학을 준비중이다. ●6남 몽준… 세계1위 현대중공업 ‘건조’ 지금은 정치인의 이미지가 더 강하지만 세계 일류 현대중공업의 뒤에는 기업인 몽준씨가 있다. 형제중에 학벌(서울대-미국 MIT 경영대학원)이 가장 좋아 ‘신문대학’(소학교만 졸업한 정주영 회장은 신문을 통해 지식의 대부분을 얻었다며 자신을 신문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하곤 했다) 출신인 왕 회장이 유난히 예뻐했다는 몽준씨는 31세에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전격 발탁되면서 집중 조명을 받았다.1988년 금배지를 처음 달면서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시도했다. 경영은 CEO에게 맡기고 자신은 대주주로서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만 내리고 있는 것. 지금도 현대중공업의 어떤 직함도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직함은 5선의 국회의원이자 축구협회 회장.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현대중공업의 올해 매출 목표액은 10조원. 웬만한 그룹과 맞먹는다. 부인 김영명씨와는 미국 유학시절에 만나 결혼했다. 큰아들 기선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올해 학사장교(ROTC)로 임관했다. 이로써 부자(父子)가 ROTC 선후배가 됐다. 두 딸 남이씨와 선이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월드컵 베이비’로 유명한 늦둥이 아들 예선씨는 초등학교 4학년이다. 우리나라가 98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전을 최종 통과한 것을 기념해 이름을 ‘예선’으로 지었다고 한다. ●7남 몽윤… 현대해상으로 컴백 몽윤씨는 지난해 말 업계 2위의 손해보험회사인 현대해상의 등기이사 겸 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왔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지 8년 만의 전격 복귀였다. 방카슈랑스(은행상품과 보험상품의 교차판매) 확대 시행 등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맞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이고 있다.1981년 김진형 부국물산 회장의 딸 혜영씨와 연애결혼해 정이양과 경선군을 두었다. ●8남 몽일… 할부금융으로 내실 막내아들인 몽일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마친 뒤 현대상사 등에서 근무하다가 2000년 현대기업금융을 차려 독립했다. 기업대출 등을 주로 취급하는 회사다. 권영찬 현대파이낸스 회장의 딸 준희씨와 결혼해 고등학생인 현선(영국 유학중)군과 중학생인 문이양을 두고 있다. ■ 현대의 또 다른 축 형제들 고 정주영 회장의 형제들은 동생이기 이전에 창업 동지요, 사업 동료였다.6·25전쟁 직후 고령교(대구와 거창을 잇는 교량) 복구 공사를 덜컥 떠맡았다가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 내남없이 살던 집을 팔아 돈을 내놓은 것도 동생들과 매제였다. 이 때문에 20명이 넘는 대식구가 한 집(돈암동)에 모여 살아야 했지만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았다. 지금은 모두 독립해 각자의 그룹을 이끌고 있다. ●옛 영화 꿈꾸는 한라·성우 동아일보 외신부 기자로 활동하던 첫째 동생 인영씨는 1953년 현대건설 전무로 입사하면서 경영에 본격 합류했다.75년 말 중동 진출 때 신중론을 펴 형과 이견을 빚을 때까지 그룹의 초석을 닦았다. 당시 독립해 만든 한라그룹은 한라건설·한라시멘트·한라중공업·만도기계 등을 거느리며 재계 서열 12위로까지 도약했다. 그러나 외환위기 때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그룹이 부도나는 시련을 겪었다. 지금은 둘째 아들 몽원씨가 한라건설 회장을 맡아 재기를 꿈꾸고 있다. 큰 아들 몽국씨는 94년 아버지가 동생을 그룹 후계자로 지목하자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한때 배달학원 이사장을 맡았으나 지금은 개인사업을 하고 있다. 부인 이광희씨는 배달학원 계열인 한라대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현대시멘트·성우종합건설·성우리조트·현대종합금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성우그룹은 둘째 동생 순영씨 일가가 이끌고 있다. 순영씨는 명예회장으로 물러앉고 2세 경영을 정착시켰다. 큰아들 몽선씨가 현대시멘트와 성우종합건설을, 둘째아들 몽석씨가 현대종합금속, 셋째아들 몽훈씨가 성우전자, 넷째아들 몽용씨가 성우오토모티브를 각각 맡고 있다. 몽선씨는 사촌인 정몽윤 현대해상 이사회 의장과 함께 정몽헌 회장의 부검을 임관하기도 했다. ●‘기계박사’가 일군 한국프랜지 자동차부품회사인 한국프랜지공업의 김영주 명예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의 유일한 매제다. 정주영 회장은 ‘이 땅에 태어나서’라는 두 번째 자서전에서 “그가 다가가기만 해도 기계가 저절로 고쳐졌다.”며 매제를 ‘기계박사’라고 불렀다.1946년 정주영 회장이 미 군정에서 불하받은 토지에 ‘현대’(현대자동차공업사)라는 상호를 처음 내걸었을 때, 감격적으로 지켜본 이도 영주씨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로부터 몇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기직종이던 운전기사 출신의 영주씨는 황해도 홀동광산에서 역시 운수업을 하던 정주영 회장과 뜻이 맞아 사업을 같이 도모했고, 매제까지 됐다. 부인 정희영씨는 2001년 정주영 회장이 노환으로 세상을 떴을 때 “대통령 한번 못해보고… 우리 오빠 불쌍해서 어쩔거나.”하며 가장 서글프게 울었던 동생이다. 장남 윤수씨가 회사를 물려받아 한국프랜지공업 회장으로 있다. 둘째아들 근수씨는 독립해 울산화학·퍼스텍 등의 계열사를 거느린 후성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윤수씨의 장남 용석씨가 프랜지공업 계열사인 서한산업(자동차부품회사) 대표이사 사장이어서 3세 경영체제를 갖춰 가고 있다. 둘째아들 용범씨는 이름을 용태로 바꿨다. ●‘포니 정’ 부자(父子)의 변신 ‘포니 정’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넷째 동생 세영씨는 외아들 몽규씨와 함께 1999년 3월 현대그룹에서 독립해 건설시장에서 영역을 확실하게 굳혔다. 꼼꼼한 시공과 치밀한 분양으로 현대산업개발을 국내 도급순위 4위 업체로 키워놓았다.‘포니 정’이라는 별명은 1976년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국산 고유모델 자동차 1호 ‘포니’를 만들어낸 데서 붙여졌다. 이같은 열정과 헌신을 인정받아 87년 형에게서 현대그룹 회장직을 물려받기도 했다. 분가한 뒤로는 현대산업개발 경영에만 매달렸다. 몇 년 전 폐암수술을 받았지만 지난해 희수연을 치렀을 만큼 건강을 되찾았다. 회사 경영은 아들 몽규(회장)씨가 책임지고 있다. 지금의 서울 삼성동 사옥은 몽규씨가 직접 지었다.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현대가 맺은 최고위층 사돈도 세영씨 집안에서 나왔다. 큰딸 숙영씨가 노신영 전 국무총리의 장남 경수(서울대 교수)씨와 결혼한 것. ●“아… 신영아”-교통사고 아닌 병으로 요절 다섯째 동생 신영씨는 고 정주영 회장이 가장 자랑스러워했던 동생이다. 서울대를 나와 동아일보 기자로 있다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함부르크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병으로 세상을 떠난 것이 1962년. 처음에 어떤 기자가 교통사고사로 쓰면서 오랜 세월 세상에 잘못 알려졌지만 정확한 사인은 지병이라고 유족은 본지에 밝혔다. 당시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잠시도 일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정주영 회장이 일주일을 손놓았을 만큼 가족의 슬픔은 컸다. 서울대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였던 미망인 제수씨(장정자)에게 현대학원(현대고)을 경영토록 했다. 지금도 현대학원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정자씨는 남북이산가족 상봉때 대한적십자사 부총재로 남한측 방문단장을 맡았었다. 장홍선 전 극동도시가스 회장의 누나다. 신영씨는 1남1녀를 두었다. 아들 몽혁씨는 32살의 젊은 나이에 현대정유(현 현대오일뱅크) 대표이사로 취임해 인천정유(구 한화에너지)를 인수하고 오일뱅크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그러나 외자유치와 함께 2002년 전문경영인에서 물러나 그 해 건축자재 유통회사 ‘에이치애비뉴앤컴퍼니’를 설립해 돌아왔다. 부인 이문희씨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동원 이홍근 선생의 손녀이다. 사업가이자 문화재 수집가였던 동원 선생은 평생 모은 문화재 4941점을 1980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딸 일경씨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블룸버그대학 회계학과 교수인 남편 임광수씨와 함께 미국에서 살고 있다. ●‘리틀 정주영’이 이끄는 KCC 막내동생인 상영씨는 ‘불에 타지 않는 바닥재’ 등으로 유명한 자재 전문그룹 KCC를 이끌고 있다.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성격 등이 고 정주영 회장을 가장 많이 닮아 ‘리틀 정주영’으로 불린다. 큰형과 나이 차이가 21살이나 나 아버지처럼 따랐다. 장조카 몽구씨와도 2살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또 다른 조카인 고 정몽헌 회장이 자금난에 몰렸을 때 200억원을 선뜻 내놓았을 만큼 의리도 강하다. 그러나 조카의 죽음 이후 현정은 회장과 경영권 다툼을 벌이면서 다소 빛이 바랬다. 그룹 경영은 두 아들에게 맡긴 상태다. 큰아들 몽진씨가 대표이사 회장, 둘째아들 몽익씨가 대표이사 부사장이다. 셋째아들 몽열씨는 계열사인 금강종합건설 사장을 맡고 있다.KCC는 몽익씨를 통해 롯데·한진그룹과 사돈으로 연결된다. 몽익씨의 부인 은정씨가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외조카(신 회장의 여동생인 정숙씨의 딸)이다. 은정씨의 언니 은영씨는 한진해운 조수호 회장의 부인이다. 몽익씨와 조 회장이 동서지간인 셈이다. ●현대가의 여자들 현대가의 딸이나 며느리들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 이화여대(정경희-이양자-현정은-김혜영-정유희 등) 출신에 해외유학(김영명-정지선-황서림-허승원 등)까지 다녀온 재원들이 적지 않지만 경영에 참여하거나 대외활동에 나서는 사람이 거의 없다. 하다못해 남편을 따라 공식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는 일도 드물다. 유일한 경영자인 현정은씨도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전업주부’였다. 오너 일가를 가까이서 들여다본 한 관계자는 “지금도 명절 때면 청운동 집(정주영 회장이 생전에 오랫동안 살던 집)에 몇 대에 걸친 며느리들이 모두 모여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음식을 직접 장만한다.”면서 “옷차림들도 수수하고 인상이 소박해 언뜻 봐서는 재벌가 며느리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미인들이다. 어떤 이는 그 이유를 ‘유난히 많은 연애결혼’에서 찾는다. ●그룹분리 가속화시킨 ‘경영권 분쟁’ 2000년 ‘형제간 다툼’은 현대가를 정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핵분열시킨 결정적 계기였다.99년 12월 마지막 날, 고 정몽헌(MH) 회장쪽 인사로 분류되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이 정몽구(MK) 회장 계열의 현대차 회장으로 전격 발령나면서 시작된 형제간의 경영권 갈등은 그룹 후계자로 MH를 지목한 고 정주영 회장의 육성 테이프가 공개되기까지 석달여에 걸쳐 숨막히게 전개됐다. 효심이 남달랐던 MK는 아버지의 육성이 공개되자 깨끗이 승복하고 자동차 계열사를 이끌고 그룹에서 나왔다. 이 과정에서 아픔도 적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현대의 지배구조를 선진화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오는 21일 왕 회장의 4주기에 모처럼 형제들 모두가 함께 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은 공식적으로 가족화합이 됐음을 안팎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현대가에 정통한 소식통은 전했다. hyun@seoul.co.kr ■ 정주영 회장의 ‘빈대론’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은 ‘해당화가 찬란하고 눈(雪)이 많은’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에서 1915년 6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죽어라고 일해도 콩죽을 면할 길이 없는 농군이 진절머리나게 싫고 지겨워”(첫번째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소학교를 졸업한 열네살 무렵부터 줄기차게 가출을 시도했다. 무작정 길을 나서 보기도 하고, 아버지의 소 판 돈을 훔쳐도 봤다. 그러기를 네번째. 열아홉살 마지막 가출에 성공해 인천부두 막노동꾼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한 푼이 아까워 몸을 기댔던 곳이 노동자 합숙소. 뼈가 으스러지는 중노동으로 누가 떠메고 가도 모를 만큼 고단했지만 좀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빈대들의 공격 때문이었다. 궁리 끝에 밥상 위에 올라가 잠을 잤다. 빈대들의 공격이 잠시 뜸해지는 듯싶었다. 하지만 이내 밥상다리를 타고 기어올라와 온 몸을 물어 뜯었다. 다시 머리를 써야 했다. 무릎을 탁 칠 만한 묘안이 떠올랐다. 밥상다리 네 개를 물 담은 양재기 넷에 하나씩 담근 뒤 그 위에 올라가 잔 것이다. 빈대를 밥상다리로 유도해 양재기 물에 익사시키자는 계략이었다. 쾌재를 부른 것도 이틀여. 빈대들은 또다시 물어뜯기 시작했다. 도대체 어떻게 양재기 물을 건넌 것일까.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불을 켜본 젊은 정주영 회장은 기겁을 하고 말았다. 빈대들이 밥상다리 대신 벽을 타고 천장으로 올라가 사람을 겨냥해 뚝 떨어져 목적 달성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역경에 부딪칠 때마다 정주영 회장은 ‘빈대의 노력’을 떠올렸다.“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지, 걸려 넘어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라든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단골 지청구는 모두 여기서 비롯됐다. 아무것도 없는 백사장(울산 염포리)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조선소 투자금액을 유치할 때나,20세기 최대 역사(役事)로 꼽히던 중동 주베일 공사 입찰전에 뛰어들 때나, 직원들이 불가능하다고 도리질칠 때면 “이봐, 해봤어?”라고 불호령을 쳤던 것도 빈대의 집요한 노력을 떠올리면서였다. “자본가가 아니라 부유한 노동자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정주영 회장은 근검과 노력을 평생의 신조로 삼았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평등한 자본금” “한강에 기적은 없다. 성실하고 지혜로운 노동이 있을 뿐” “고선지부지설(苦蟬之不知雪;여름철 서늘한 나무 그늘에 앉아 노래만 하다 겨울이 오기 전에 없어지는 매미는 한겨울 펑펑 쏟아지는 눈을 알 수 없다)” ‘아산 정주영 어록’에 실려있는 그의 유명한 말들이다. hyun@seoul.co.kr ■ ‘현대家 대모’ 변중석 여사 열여섯살에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여섯살 연상의 고향총각 정주영에게 시집온 변중석씨는 현대가의 산 증인이다. 올해로 84세. 젊어서 남편이 사준 재봉틀 하나를 자신 소유의 유일한 재산으로 여기며 한결같은 근검과 후덕함으로 ‘현대가의 여자’라는 상징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매일 새벽 5시의 ‘밥상머리 교육’을 통해 동생들과 자식들에게 근검을 가르쳤다면, 변씨는 새벽 3시반부터 손아래 동서·며느리들과 아침 준비를 함께 하면서 “언제나 조심스럽게 행동하고 겸손하라.”고 일렀다. 가혹하리만치 자식 교육에 엄격했던 정주영 회장이 아이들을 자가용으로 등교시키는 며느리들을 보고 “젊었을 때 콩나물 버스에 시달려봐야 나중에 자가용을 샀을 때의 기쁨을 안다.”며 역정을 내자 “손주녀석들 키우는 문제에까지 시아버지가 잔소리를 할 거냐.”며 막아준 이도 변씨였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도 아내를 가리켜 “늘 통바지 차림에 무뚝뚝하지만 60년을 한결같고 변함이 없어 존경한다.”고 자서전에서 고백했을 정도다.“아내를 보며 현명한 내조는 조용한 내조라는 생각을 굳혔다.”고도 했다. 그러나 자식을 먼저 땅에 묻는 참척의 고통과 여자로서의 마음고생을 거치면서 ‘살아있는 보살’도 탈이 났다. 거동이 불편해 10년 가까이 병원(현대아산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 사실상 맏며느리인 이정화씨 등 며느리들이 틈날 때마다 병실을 들여다보고 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13일 TV 하이라이트]

    ●실험쇼 진짜?진짜!(MBC 오전 9시55분) 남자들은 텔레비전을 볼 때 귀머거리가 된다. 비밀은 바로 뇌구조의 남녀차에 있다. 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뇌량이 잘 발달되어 있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는 여자와 달리 남자는 한 가지 일에 깊이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실험쇼가 전격 검증에 나섰다. ●인사이드 월드(YTN 오후 1시25분) 급속한 경제성장을 해온 중국은 세계 환경오염의 주범이자 피해자다. 중국 정부는 양쯔강 중류에 댐을 건설해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출 예정인데, 댐 건설지 주변 6억명이 넘는 주민들은 전기공급뿐 아니라 환경파괴라는 선물까지 받게 된다. 과연 해결책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청소년 원탁토론(EBS 오후 6시10분) 지난해 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해 야간 자율학습 실시 방침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과 학부모의 의견을 무시한 야간 자율학습은 여전히 잔존해 있다. 야간 자율학습의 선택권, 학습 환경과 효과 등 청소년이 생각하는 문제점을 이야기해본다. ●일요일이 좋다(SBS 오후 6시) 박준규 전진 홍경민 정만호 신정환 타블로 온주완 재우 황보 이지현 윤은혜 유니 최여진 혜령 강호동 공형진 등 16명의 멤버들이 엑스맨 찾기에 나선다.MC유의 무반주 한 평 테크노, 효자보이·전진의 카사노바 사랑댄스, 막무가내 보이즈의 특별공연 등이 펼쳐진다. ●비타민(KBS2 오후 10시5분)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빠져드는 음주병 알코올 중독에 대해 알아본다. 잦은 술자리로 인해 피할 수 없는 음주. 잦은 음주로 알코올을 해독하는 간은 점점 더 망가져 가고 있다. 그래서 나타나는 병 알코올성 간염. 알코올성 간염을 예방하기 위한 오늘의 위대한 밥상은 무엇일까? ●TV쇼 진품명품(KBS1 오전 11시) 자그마한 크기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는 종. 완벽한 형태가 지금이라도 은은한 소리를 낼 듯 한데 과연 이 종은 언제, 어디에서 사용됐던 것일까? 조선시대 선비들의 곁에서 문방사우와 함께 사용된 연적. 사각형 연적부터 복숭아 모양의 연적까지. 이들 도자기 4점 중에서 진짜를 찾는다.
  • 웰빙된장 맛을 찾아서

    웰빙된장 맛을 찾아서

    ‘장(醬)은 정월장’이라며 매운 겨울날씨에 팔을 동동 걷어붙인 어머니가 큰 항아리에 메주와 붉은 고추, 숯을 넣어 장을 담그던 모습은 아련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장은 음식 간을 맞추는 것이지만 ‘되는 집안은 장맛도 달다.’ ‘말이 달면 장맛이 쓰다.’는 옛말처럼 장이란 음식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장담그는 집안이 드물다고, 편안함을 좇는다고 여성들을 비난할 수만도 없다. 아파트에서 메주를 띄울 수도 없고, 항아리를 놓을 공간도 마땅치 않다. 더욱이 햇볕에 따라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닫아줄 손길도 없어졌다. 된장을 사 먹게 된 시대를 거스를 방법은 없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정성을 담은 장맛마저 포기할 수는 없다면 맛있는 장맛을 찾아 떠나자. ●죽염으로 만든 절 된장 충남 공주시 장기면 장군사 자락 영평사란 절에서 만든 된장을 따라 길을 나섰다. 스님이 만드는 된장이라니 우선 믿음이 간다. 환성 스님은 영평사 부속 영평식품이란 회사를 만들어 6년째 된장을 만들고 있다.“절 재정에 도움이 될까 해서 만들어 팔고 있는데 매년 손해예요.”스님이 웃었다. 그도 그럴 것이 광고 한 번 안 하니 아직은 덜 알려졌고, 제대로 된 된장을 만드느라 아홉번 구운 죽염을 쓰기 때문이다.“자부심없이는 된장 못 만들어요.10㎏에 2만원의 낮은 가격의 된장이 시중에 나와 있지만, 그 가격에 우리 콩 쓰면서 1년 숙성시킬 것을 기대하기란 무리예요.” 스님은 된장은 우리 콩을 사용하는 것만큼 어떤 소금을 쓰느냐, 어떤 물을 사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일염은 바다가 오염되면서 함께 오염됐다. 그래서 스님은 천일염을 대나무에 넣고 800℃에서 구워내기를 8번, 그것도 부족해 아홉번째에는 1500℃로 죽염을 굽는다. 그러면 죽염이 녹아내려 자주색 덩어리가 생긴다. 그것이 유명한 자죽염이다. 물은 영평사 뒤에서 나는 천연 석간수를 사용한다. 그러니 장맛이야 더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웰빙’이라면서 몸에 좋은 음식들을 골라먹는데 우리가 제일 많이 먹는 것은 물하고 소금인데 어찌 그것은 가려먹지 않는지 답답하다.”고 스님은 걱정했다. 절 뒤편에 수백 개의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햇볕이 좋은 날이면 항아리 뚜껑을 모두 열어 하늘의 좋은 기운과 신선한 공기를 받게 한다. 이렇게 하기를 여섯 달, 그래야만 제대로 된 된장이 된다. 된장은 1㎏에 1만 5000원, 고추장은 1㎏ 2만원. 간장과 죽염도 판매한다.www.young pyungsa.org,041-857-1854. ●찬란한 백제의 숨결 백제 문화를 대표하는 곳 무령왕릉이 근처에 있다.1호부터 7호분까지 발굴된 송산리 고분군 중 7호분이 바로 무령왕릉. 그러나 아쉽게도 무령왕릉에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다. 보존관계로 영구 폐쇄됐기 때문. 대신 무령왕릉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형 전시관을 볼 수 있다. 입장료 어른 1500원. 공산성은 백제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해발 110m 언덕에 있다. 산성을 따라 고즈넉한 산책로를 걷노라니 여유가 생긴다. 공산성의 길이는 모두 2.6㎞로 천천히 걸어도 1시간이면 족하다. ●다양한 박물관을 찾아 공주에는 무령왕릉에서 나온 유물을 전시하고 있는 국립공주박물관(gongju.museum.go.kr,041-850-6302)부터 다양한 주제의 박물관들이 많다. 웅진교육박물관(www.wjem.or.kr,041-853-4569)은 조선시대부터 1970년대까지 옛날 교과서와 어린이 잡지, 우표, 문서 등을 모아놓은 곳으로 아이들보다 어른들에게 인기가 많다. 충남산림박물관은 중부권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산림교육장이다. 산림박물관, 야생동물원, 연못, 팔각정 등이 있어 아이들의 야외학습에 그만이다. ●공주국밥을 찾아 공산성 앞쪽에는 근사한 식당들이 모여 있다. 그중에서 새이학가든(854-2030)의 ‘따로국밥’은 유명하다. 사골 뼈와 잡뼈 등을 넣고 이틀 동안 고은 국물에 양지 사태 등을 삶아놓고 파, 마늘, 소금으로 간을 하고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을 풀면 그 맛이 얼큰하고 담백하다. 공주에 가면 꼭 들러볼 만한 집이다. 국밥 5000원. 아이들과 함께라면 장수고을(856-0208)도 강추. 돌솥에 막 지은 밥과 18가지 반찬이 함께 나오는데 가격은 1인분에 4000원으로 저렴하다. ■ 광양 나종년 농장 가볼까 ●신지식인이 만드는 된장 볕 좋은 전남 광양 백운산 자락에 자리잡은 나종년 농장(061-762-3937)은 고로쇠 된장으로 유명한 집. 집에 들어서니 메주를 한창 닦고 있던 할머니가 달갑지 않은 얼굴로 흘깃 쳐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장 담그는 날은 바빠서 원래 남의 집 방문을 삼가는 것이 예의인 것을…” 어쩔 줄 몰라 머리를 긁적이고 서 있느니, 인상좋은 나종년씨가 인사를 건넸다.“저희 어머니는 장 담그는 날 사람들이 오는 것을 싫어하세요….” 나씨의 모친 정정원 할머니는 손맛뿐 아니라 마음가짐까지 옛날방식 그대로였다. 올해 신지식인에 선정된 나씨는 어머니의 손맛에 과학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우리의 전통음식은 그냥 하던 대로, 관습적인 부분이 많은데 이것을 분석해보면 그렇게 과학적일 수 없습니다.”라며 선조들의 생활속 지혜에 감탄했다. 나씨는 백운산에서 나는 고로쇠 물로 장을 담근다. 나씨 가의 장은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의 성분검사결과, 뼈에 이로운 칼슘이 다량 함유되었으며 헬리코박터 파이로리균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 이렇게 고로쇠수액으로 만든 된장과 간장 덕에 그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앞으로도 더덕, 도라지 간장, 재첩된장, 쑥된장 등 다양한 기능성 장류에 도전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된장 1㎏에 1만원, 고추장 1만 2000원. ●남도의 명산 백운산 광양의 가장 큰 자랑거리는 남해안 최고봉인 백운산. 해발 1218m로 전남에서는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산이며, 주능선이 16㎞에 이르는 큰 산이다. 또한 4월에는 철쭉이 장관을 이룬다. 백운산은 ‘신비의 약수’ 고로쇠나무 수액이 한창이다.8개 마을의 민박농가 174농가에서 채취 판매하고 있으며 18ℓ 한 통에 5만원. 광양시청 산림과(061)797-2423. 또 동곡계곡에 만들어진 백운산 자연휴양림은 신발을 두손에 들고 맨발로 황토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황톳길, 등산로, 산책로 등이 좋다. 입장료 성인 1000원. 주차료 2000원. ●천년의 역사를 느끼며 나종년농가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옥룡사지가 있다. 옥룡사는 신라 말에 조그만 암자였던 것을 도선국사가 864년부터 35년 간 거처하며 수백 명의 제자들을 키운 곳이다. 하지만 1878년 화재로 소실된 후 폐찰됐다. 지금은 절터만 덩그러니 남아 있지만 천년 세월의 찬란했던 당시의 문화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옥룡사지 입구에 도선국사가 땅의 기운을 보강하기 위해 심었다는 7000여 그루의 동백림은 해마다 이맘때면 붉은색으로 장관을 이룬다. 이 밖에 광양읍에는 16세기 광양현감 박세후가 만든 ‘유당공원’이 고을의 깊은 역사를 전해주고 있다. 유당공원은 수령 400년의 이팝나무를 비롯, 수백년 묵은 고목 수십 그루와 연못이 조화를 이룬 고유의 정원이다. ●광양의 별미 불고기 광양을 대표하는 음식이 불고기.한국식당(761-9292)은 4대째 가업을 이은 불고기집이다. 고기에 양념이 거의 없는 선홍빛의 고기가 한 접시 나온다. 한우의 등심을 얇게 썰어서인지 고기 군데군데 떡심이 붙어 있다. “불고기의 맛은 고기를 손질하는 기술과 양념하는 기술이 맛을 좌우합니다. 갓 잡은 한우의 등심에 붙은 힘줄과 비계를 떼어내고 살코기는 결 반대로 얇게 썰어 내어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양념에 묻혀서 냅니다.”라고 주인 박영희(54)씨는 말한다. 우윳빛 누룽지도 별미. 불고기는 1인분에 1만 3000원. 누룽지는 2000원. 광양읍사무소 뒤에 있다. ● 전통된장이란 발효식품인 우리의 전통 된장이 몸에 좋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맛과 향이 사먹는 된장이나 일본 된장과는 구분이 되는데 그것은 바로 바실러스(Bacillus)라는 세균 때문이다. 즉 메주와 된장은 새끼줄이나 짚을 좋아하는 세균, 곰팡이, 효모 등이 작용하여 혈전용해능력, 항암효과 등 각종 효능을 갖는다. 우리 전통된장은 보통 음력 10월에 콩을 삶아 메주를 만들고 볏짚에 묶어 약 1개월 동안 두어 미생물을 자연배양한다. 정월 초에 30℃ 내외의 방에서 15일 정도 발효시킨다. 이때 메주의 표면이 갈라지고 그 틈에 각종 세균과 미생물이 자란다. 다음에는 메주를 씻고 잘게 부숴 말린 다음 항아리에 물과 소금을 적당량 섞어 장을 담근다. 그다음 3개월이 지나면 물과 메주를 분리한다. 그 물을 달이면 간장이 되고, 메주는 곱게 갈아 풀과 소금을 넣어 항아리에 담아 6개월 정도 숙성시키면 된장이 맛있게 익는다. 대표적인 슬로 푸드인 셈이다. 개량된장은 곰팡이의 일종인 황국균을 쌀에 미리 길러 콩과 섞어 만드는데 시간도 단축되고 간편하다. 하지만 1년 동안 항아리에서 숨을 쉬며 적당한 햇살과 좋은 공기로 발효시킨 전통된장과 2주일만에 뚝딱 만들 수 있는 된장을 비교할 수는 없다. ■ 가볼만한 된장마을 ●안성 서일농원 1991년부터 장을 만들기 시작한 서일농원은 수천 개의 항아리들이 가지런히 있는 놓여 있는 풍경이 이색적이다. 주인 서분례씨가 옛 문헌의 고증을 통해 철저하게 된장을 만들고 있다. 된장 1㎏ 2만 5000원, 고추장 4만원.(031)678-3171. ●양평 수진원 수진원은 직접 농사지은 콩으로 된장을 만든다. 물론 농약을 전혀 치지 않으며 황금색의 태광콩만을 고집한다.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는 간장, 즉 5년 숙성시킨 조선간장이 유명하다. 된장 900g 1만 2000원, 고추장 500g 2만원. 간장 500㎖ 1만원.(031)773-3747. ●정선 메주와 첼리스트 첼리스트가 만드는 된장으로 익히 알려진 도완녀씨가 강원도 햇콩과 두메산골의 공기와 햇볕, 깨끗한 물을 버무려 예술된장을 탄생시킨다. 청국장환과 된장환까지 제품도 다양하다. 된장 550g 9900원. 고추장 550g 1만 1900원. 청국장환 300g 2만원.(033)562-2710 ●보성 성원식품 보성에서 차밭을 하던 안효성씨가 우연히 된장을 관심을 갖게 되면서 녹차향이 담긴 기능성 된장이 탄생했다. 전통된장보다 녹차의 향 때문인지 된장냄새가 덜하며 맛이 담백하고 깔끔하다. 녹차된장 1㎏ 1만 5000원, 녹차고추장 2㎏ 2만원.(061)853-3529. 글· 사 진 광양·공주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변신된장 쌩뚱맛죠 ● 된장 치킨 샐러드 재료 닭 가슴살 6쪽, 양상추 1/5통, 샐러드용 야채 적당량, 식용유 2컵, 올리브 기름 2큰술,튀김옷(밀가루 1컵, 달걀 1개, 된장물(된장 1큰술, 물 1/2컵), 밀가루 조금),닭양념(양파즙 2큰술, 청주 1큰술, 소금·후춧가루 조금씩),된장소스(된장 2큰술, 마요네즈 3큰술, 머스터드소스 1큰술, 꿀 2큰술) 만드는 법 (1)닭 가슴살은 손가락 굵기로 길쭉하게 썰어 준비한 양념을 넣고 섞은 다음 간이 배도록 잠시 재어 둔다.(2)그릇에 밀가루를 담고 밑간한 닭고기를 넣어 애벌로 밀가루옷을 입힌 후 가볍게 턴다.(3)된장 1큰술을 물 1/2컵에 걸러 풀어 고운 된장물을 만든 다음 밀가루에 붓는다. 여기에 달걀을 깨뜨려 넣고 고루 섞어 튀김옷을 만든다.(4)밀가루옷 입힌 닭고기를 튀김옷에 넣었다가 건진 후 180℃로 끓는 기름에 넣어 바삭하게 튀겨 건진다.(5)양상추를 비롯한 샐러드용 야채를 깨끗이 씻어 물기를 턴 후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 올리브 기름으로 가볍게 버무린다.(6)준비한 소스 재료를 한데 넣고 고루 섞어 소스를 만든다.(7)야채와 닭튀김을 서로 어우러지도록 담은 후 소스를 듬뿍 끼얹는다. ● 두부 바지락 된장소스찜 재료 두부 1모, 바지락 300g, 대파 1/2뿌리, 붉은고추 1개, 다진 파슬리 1작은술, 된장·식용유 1큰술씩, 카레가루 2작은술, 소금 조금 만드는 법 (1)두부는 씻어 물기를 닦은 다음 주사위 모양으로 썬다. 썬 두부는 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소금을 조금 뿌려 간하면서 볶는다.(2)바지락은 연한 소금물에 담가 해감을 토하게 한 다음 껍데기끼리 마주 비벼가며 깨끗이 씻는다.(3)냄비에 물 2컵을 붓고 깨끗이 손질한 바지락을 안친 후 대파를 넣어 삶는다. 바지락이 익어 입이 벌어지면 불에서 내린다.(4)바지락 삶은 물에 된장, 카레가루를 넣어 고루 푼 다음 중간 불로 끓인다. 조개 삶은 국물 자체가 짭짤하고 된장의 짠맛이 있으므로 간은 따로 하지 않는다.(5)그릇에 볶은 두부를 담고 된장, 카레가루를 풀어 끓인 (4)의 바지락찜을 떠서 얹은 다음 다진 파슬리와 붉은 고추를 뿌리듯 얹어 낸다. ● 된장 돈가스 재료 돼지고기 안심 400g, 양배추 1/4개, 오이·당근 1/2개씩, 붉은 양배춧잎 3장, 치커리 조금, 식용유 2컵, 된장 2큰술, 물엿 1큰술,돼지고기 양념(청주 2큰술, 양파즙 5큰술, 소금·후춧가루 조금씩),튀김옷(달걀 2개, 빵가루 1컵, 밀가루 1/2컵),된장소스(된장 2큰술, 토마토 케첩 5큰술, 설탕 1작은술, 물 1/4컵) 만드는 법 (1)돼지고기는 돈가스용으로 준비해 앞뒤로 잔 칼집을 넣은 후 양파를 갈아 넣고 소금·후춧가루를 뿌려 밑양념을 한다.(2)밑양념한 돼지고기에 된장과 물엿 섞은 것을 고루 발라 잠시 그대로 둔다.(3)된장 바른 돈가스에 밀가루옷을 입힌 후 달걀물에 담갔다가 빵가루를 묻혀 튀김옷을 입힌다. 마지막에 빵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가볍게 누른다.(4)끓는 기름에 튀김옷을 입힌 돈가스를 넣어 바삭하게 튀긴 후 건져 기름기를 뺀다.(5)양배추와 붉은 양배추는 굵은 심을 도려낸 후 곱게 채 썰어 물에 담갔다가 건지고, 오이와 당근도 채 썬다.(6)튀긴 돈가스를 먹기 좋은 크기로 썰어 접시에 담고 손질한 야채를 곁들인 후, 준비한 소스 재료를 고루 섞어 듬뿍 끼얹는다. ● 북어포 된장구이 재료 북어포 2마리, 참기름 1큰술, 통깨 1작은술, 식용유 3큰술,된장 양념장(된장·다진 실파 3큰술씩, 다진 붉은고추 2큰술, 청주 1큰술, 참기름·고춧가루 1/2큰술씩, 물엿·설탕 1작은술씩) 만드는 법 (1)북어포는 대가리를 잘라내고 반으로 자른 후 물에 담가 부드러워질 때까지 불린다. 불린 북어포는 흐르는 물에 한 번 씻어 물기를 충분히 뺀다.(2)된장양념 재료를 분량대로 넣고 고루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3)물기를 뺀 북어포에 된장 양념장을 고루 바른 후 양념장이 충분히 배어들도록 잠시 그대로 둔다.(4)달군 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양념을 바르지 않는 껍질 쪽이 아래로 가게 놓아 한 번 구운 후 다시 뒤집어 다른 면도 익힌다.(5)노르스름하게 구운 북어포를 접시에 담고 참기름과 통깨를 뿌려 맛을 더한다.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놓으면 편리하다. ■ 사진 도서출판 리스컵 제공 ■ 그때그때 발라~요…된장소스 6가지 ‘된장요리의 달인’ 최승주씨는 여성잡지에서 10여년간 요리를 진행하다 손맛과 적성에 맞아 요리연구가로 방향을 돌렸다. 서울 서초동에서 올리브쿠킹(02-568-8141)이란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그는 감각적이고 실용적인 요리를 많이 소개한다. 집에서 담가 먹던 된장·판매 된장·음식점의 된장에서 맛의 차이를 느끼면서 된장에 관심을 집중, 토속음식에서 퓨전까지 된장요리 65가지를 소개한 ‘몸에 좋은 된장요리’란 책도 냈다. ● 된장, 정말 맛있네 ‘음식 맛은 장맛이다.’,‘뚝배기보다 장맛’이라는 속담이 있다. 예로부터 장은 우리 음식문화의 근본이자 음식 맛을 내는 데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조미료로 자연히 장에 관련된 속담도 많다. 그런데 우리음식 맛의 근본인 된장은 늘 밥상에 오르지만 의외로 된장요리 전문점을 찾기 어렵다. 대체로 ‘된장요리’ 하면 된장찌개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을 게다. 하지만 된장 샤부샤부, 된장수육, 된장 칼국수 등 된장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장맛을 찾아 1년 넘게 전국을 다녔다고 하면,‘어느 집 장맛이 제일이냐?’ ‘된장요리 맛집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럴 때는 정말 난감하다. 장맛은 어릴 적부터 먹던 입맛에 따라 기호도가 달라지므로 쉽사리 추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집요하게 된장요리 맛집을 캐묻는 이들에게 된장으로 맛을 낸 음식도 먹고 장맛도 볼 수 있는 곳을 권한다. 경기도의 슬로푸드 마을로 선정된 파주의 통일촌에 가면 장단콩마을식당(031-953-7600)이 있어 장으로 만든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 지난 1987년부터 관광객을 대상으로 식당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손님들이 숟가락을 들고 장독까지 따라올 정도로 장맛이 남다른 곳이다. 직접 농사지은 장단콩으로 담근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와 장떡 맛이 구수하고 깊다. 된장과 간장으로 맛을 낸 장아찌와 나물 등 밑반찬도 감칠맛이 제대로다. 충북 괴산군 청안면 질마재 고개 국도변의 호산죽염된장(043-832-1388)은 장을 사가는 사람들에게 손맛과 장맛이 어우러진 밥상을 차려낸다. 된장을 사러 왔다가 공짜로 한끼 대접받는 음식이라 맛에 후한 점수를 매기는 건 결코 아니다. 직접 장을 담그는 이정림씨의 요리솜씨가 쏠쏠해서다. 된장찌개와 장아찌 맛이 토속적이다. 이 집의 된장양념 돼지고기 숯불구이는 특유의 누린내가 나지 않고 뒷맛도 느끼함이 덜하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의 전통장집 서일농원에 있는 전통음식점 솔리(031-673-3171)도 된장한정식이 유명하다.‘솔리’밥상에는 된장찌개를 중심으로 더덕, 가죽, 감, 미역, 무, 깻잎, 파래 등 장아찌와 쌈을 싸먹을 수 있는 야채가 나온다. 음식 맛을 평하자면 평균 이상이지만, 유명세에 비해 깊은 맛은 떨어지는 편. 된장찌개와 장아찌 등 전체적으로 짠맛이 약간 강하다. 이밖에 특별한 된장요리를 원한다면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바로 옆에 있는 깡장집(02-720-6152)도 들 수 있다. 뚝배기에 된장을 넉넉히 깔고 그 위에 돼지고기, 양파, 오징어, 마늘, 청양고추를 넣고 자작하게 끓여낸다. 청양고추와 고추장이 들어가 칼칼한 끝맛이 입맛을 돋우는 깡장에다 밥을 비벼 먹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혀 ‘정말 잘 먹었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오장동 사거리 골목 안에 있는 장칼국수(02-2276-1715)에서는 된장국물로 끓인 독특한 칼국수와 수제비를 맛볼 수 있다. 오로지 된장으로 맛을 내고, 근대나 아욱, 감자와 같이 된장과 잘 어울리는 야채가 듬뿍 들어가 담백하고 뒷맛이 시원하다. 특히 술 마신 다음날 땀 흘리며 한 그릇 비우면 속이 후련해진다. 인천시 구월동 된장요리전문점 해월 토장집(032-467-6221)은 매스컴 보도로 유명해진 집이다. 된장수육, 토장전골, 된장동태찜, 된장비빔밥, 된장야채전 등 특색있는 된장요리를 맛보기에 좋은 곳이다. 된장육수에 새우, 낙지, 조개 등 해물과 야채를 익혀 샤부샤부식으로 소스에 찍어 먹고 시원한 국물로는 소면이나 밥을 넣어 비벼 먹는 토장전골 맛이 이색적이다. 푸드칼럼니스트 이진랑 이진랑씨는 라디오와 주·월간지에서 푸드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음식평론을 쓰고 있다.‘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보약 된장의 달인들’이란 책의 공동 저자인 그는 “단순히 먹을거리 정보 전달에 머물지 않고 음식문화를 읽어내겠다.”고 말했다.
  • 수입쌀 9월 밥상 오른다

    지난해 말 쌀협상 타결에 따라 올해부터 허용되는 수입쌀의 일반 소비자 시판이 오는 9월쯤 시작될 전망이다. 농림부 관계자는 6일 “수입쌀 시판의 법적 근거를 마련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주 국회를 통과함에 따라 수입쌀 시판을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며 “개정된 양곡관리법이 발효되는 6월 말 이전에 수입쌀 시판을 위한 시행령 등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중국 등 9개국과의 쌀협상 결과에 대한 국회비준이 6월 임시국회에서 이뤄지더라도 수입쌀 시판은 9월쯤부터 시작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법적으로는 개정 양곡관리법이 발효되는 6월 말부터 수입쌀 시판이 허용되지만 정부가 쌀 보관이 어려운 장마철(7∼8월)을 피해 9월쯤 수입쌀을 국내로 들여와 시중에 유통시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수입쌀 시판을 10월 이후로 늦출 수도 있지만 쌀 수확기와 맞물려 농민들의 큰 반발이 우려되고, 시기를 더 늦추면 쌀 수출국들과의 통상마찰이 예상돼 9월이 수입쌀 시판 개시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지난해 말 쌀협상에서 올해부터 쌀 의무수입물량(TRQ)의 10%를 시중에 유통시키고 이를 2006년까지 단계적으로 30% 수준까지 늘리기로 했다. 올해의 의무 시판물량은 2만 2575t(15만 8000섬)이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밥상용 배우’ 아닌 당당한 주연급 브라운관 ‘중견의 힘’

    요즘 안방극장의 지형도를 ‘중견의 반란’쯤으로 표현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동안 10∼20대 중심의 트렌디 드라마가 범람하면서,‘얼짱’‘몸짱’을 내세운 신세대 스타들에 치어 브라운관 뒤편으로 밀려났던 중견 연기자들. 그들이 세월의 농익음에서 뿜어나오는 원숙미를 뽐내며 안방극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고 있다. 희화화되거나 망가지는 등 단순 감초 역할이 아닌, 작품 전체를 이끄는 당당한 주인공으로 맹활약하는 등 브라운관 전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멜로드라마에서 오락프로까지 ‘점령’ 6일 오후 10시5분 방영되는 KBS 창사 78주년 특집드라마 ‘유행가가 되리’(극본 노희경, 연출 김철규)는 최근 브라운관을 관통하고 있는 ‘중견 코드’가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 청춘을 소진하고 어느새 세상의 뒤안길로 쓸쓸히 밀려난 우리네 ‘어른’들에게 훈훈한 위로의 시간을 마련한다는 게 기획의도다. 김철규 프로듀서는 “뛰어난 연기력과 풍부한 경험, 삶에 대한 철학과 연륜까지 갖췄지만, 나이가 들면서 ‘누구누구의 엄마·아버지’로 밀려나 젊은 스타의 배경이 돼주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던 중견 연기자들을 위한 작품”이라고 강조한다. 늦바람이 든 중년의 부부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발견하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려낸 ‘유행가가 되리’는 박근형·윤여정 두 주인공을 필두로 연규진, 박원숙 등 연기파 중견 연기자들이 드라마를 견인한다. 최근 큰 관심을 받고 있는 SBS 금요드라마 ‘사랑공감’‘(극본 전영실, 연출 정세호)은 중견 연기자의 매력을 톡톡히 실감할 수 있는 작품. 시청자들은 극중 주인공인 이미숙, 전광렬, 견미리, 황인성 등 중견 연기자들이 탄탄한 내공을 바탕으로 쏟아내는 ‘아우라’에 압도돼 감탄사만 연발하고 있다.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인기 시트콤 MBC ‘안녕 프란체스카’의 주인공으로 열연중인 심혜진이나, 안방극장의 ‘지존’인 KBS2TV 대하드라마 ‘해신’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최수종과 채시라, 김갑수도 중견 연기자의 힘을 보란 듯이 과시하고 있다. 주말드라마 시청률 1위를 달리고 있는 KBS2TV ‘부모님전상서’,MBC ‘한강수 타령’의 인기도 고두심, 송재호, 김해숙, 김희애, 허준호 등 중견연기자들이 이끌고 있다. 그동안 젊은 연예인들의 전유물이 되다시피 했던 오락프로그램에서도 중견 연기자들의 힘은 빛을 발하고 있다. 출연 빈도가 늘어난 것도 그러하지만, 활약 또한 젊은 연기자 못지않다.KBS2TV ‘해피투게더’와 ‘비타민’,MBC ‘브레인 서바이버’와 ‘전파 견문록’,SBS의 ‘야심만만’과 ‘솔로몬의 선택’ 등 간판 오락프로그램에서 강부자, 임현식, 노주현, 조형기, 김을동 등 중장년 연기자들이 특유의 경험과 연륜을 바탕으로 젊은 연예인 못지않게 내실 있는 웃음을 선보이고 있다. ●“신세대 위주 제작흐름에 시청자 염증” 이렇듯 중견 연기자들이 당당하게 제몫을 담당하는 작품들이 속속 선보이는 것은 “시청자들이 신세대 스타 위주의 획일적인 제작 흐름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라는 것이 방송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 특히 신세대 연기자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안정감과 원숙함 등 또 다른 매력에 환호를 보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오기’에 가깝게 느껴지는 중년 연기자들의 당찬 각오들은 이런 분위기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낳게 한다.SBS 주간시트콤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 혀를 내두를 정도의 농익은 연기력으로 찬사를 받고 있는 김수미는 “중견 연기자가 더이상 ‘밥상용 배우’(극중 가족들이 식사하는 장면에만 등장할 정도로 극 비중이 미미하다는 것을 비꼬아 부르는 표현)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겠다.”고 밝힌다. ‘사랑 공감’의 이미숙도 “주인공이 나이로 결정되는 것은 정말 웃긴 일”이라면서 “중견 연기자들도 얼마든지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나이를 거꾸로만 먹어 온 안방극장에 요즘 중견 연기자들이 보여주는 ‘세월의 힘’이 언제, 어느 정도까지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뒷골목 맛세상] 강남의 맛집

    [뒷골목 맛세상] 강남의 맛집

    마침내 입춘과 우수를 지나고 봄이 비롯되었다. 얼핏 보면 봄이야 시절에 따라 저절로 오는 것 같지만, 결코 저절로 오는 봄이란 없다. 지난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모진 눈보라가 있어야 비로소 꽃 피는 봄도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도 봄과 마찬가지일 터이다. 절망을 거치지 않은 희망이란 얼마나 무의미할 것인가. 우리 선인들이 입춘이 되면 봄맞이라도 하듯이 대문이며 사랑방 기둥에 크게 써 붙이던 입춘대길(立春大吉)의 대길은 주역의 지천태(地天泰)에서 나온 말로, 역술인들은 입춘대길과 함께 이 괘를 그려 넣기도 했다. 이 지천태의 괘는 곤괘(坤卦)의 땅이 위로 올라가고 건괘(乾卦)의 하늘이 아래에 있어 얼핏 위아래가 뒤바뀐 것 같지만, 오히려 이 뒤바뀜을 선인들은 크게 길하게 여겼으니 그이들의 깊은 뜻이 오늘에 새삼스럽다. ●하늘과 땅의 기운이 뒤바뀌는 立春 선인들에게는 봄이야말로 어두운 음의 기운이 하늘에 가득하고 밝은 양의 기운이 땅에 가득하여 이 뒤바뀐 기운으로 만물이 생겨나는 시절인 것이다. 하늘과 땅이 서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다 보면 천하에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고, 만물도 생겨날 수가 없다. 대신에 하늘과 땅이 뒤바뀌면, 절망과 고통이 어쩔 수 없이 뒤따르는 가운데에서도 하늘과 땅이 본디 자리로 돌아가려는 기운이 천지에 가득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늘과 땅의 교류가 이루어져 만물이 생겨나는 것이다. 비록 절망과 고통이 뒤따른다 해도, 이런 천지의 뒤바뀜이 어찌 크게 길하지 않으랴. 천지의 뒤바뀜을 사람살이 식으로 풀이하자면, 가장 깊은 절망의 가운데에서 한 가닥 희망이 솟아나오고, 반대로 온통 장밋빛으로 가득한 희망의 가운데에서 이미 한 가닥 절망은 비롯된다는 지혜일 터이다. 천지의 뒤바뀐 기운은 어느 새 그대를 파고들어 마침내 그대에게도 지천태의 입춘대길로 봄이 온다. 길고 긴 절망의 터널을 지난 그대가 이제는 희망을 꽃피우고, 그리하여 일생에 가장 소중한 이를 만나게 된다. 자, 이 크게 길한 날에 어디에 소중한 이와 만나는 자리를 마련할까. 강남의 지하철 2호선 역삼역 2번 출구를 나오면 바로 앞에 스타타워라는 멋있는 빌딩이 바라보는 이의 고개를 모자라게 할 만큼 높은 키로 세련된 외양을 자랑하고 있다. 그 빌딩을 끼고 돌면 후문이 나오는데 후문 바로 앞에 ‘바이더웨이’라는 24시 편의점이 있을 터이다. 그 골목을 들어서서 10여 미터 걷다보면 ‘민들레(02-558-8513)라는 자그맣고 예쁜 입간판을 만나게 된다.2층 양옥집을 개조하여 전통 한정식집으로 꾸몄는데, 깔끔하면서도 멋스러운 실내 디자인과 개량한복 차림의 종업원들이 예사롭지 않은 주인의 성품을 은은하게 내비치고 있다. 얼핏 한정식집 주인으로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깊은 눈빛과 단아한 분위기의 오성숙씨가 있는 듯 없는 미소를 띤 채 그대에게 조용히 인사를 할 터이다. 그 첫 대면의 순간 그대는 그이에게서 어쩌면 그대와 함께 사람살이의 신산고초를 겪으면서 심성이 보다 그윽해진 큰누님이나 혹은 큰언니 같은 살붙이의 정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런 살붙이의 정을 느끼면서 그이의 곁을 보면, 이번에는 흰머리가 참 잘 어울리는 장년의 노신사가 역시 그대에게 가볍게 인사를 할지도 모른다. 흰머리의 그이는 다름 아닌,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김세균 박사이다. 방학이 되거나 한가할 때면 그이는 이따금씩 민들레에 나타나 아내인 오성숙씨를 도와 기꺼이 손님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한때 참교육·여권운동에 몸담기도 민들레에 와서 주인 내외를 만나본 이들은 한결같이 한 가지 의문을 품게 된다. 적어도 이 나라 명문대학의 교수이고 또 그 부인되는 이가 도대체 더 이상 뭐가 부족해서 한정식집까지 차리게 된 것일까.1997년 민들레라는 한정식집 주인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오성숙씨는 명문대학의 교수부인이기에 앞서 1980년대 후반부터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회장을 맡아 전교조와 함께 잘못된 교육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운동권에 몸을 담아온 소위 여성운동가였다. 또한 한국여성민우회 편집실장이며 정책실장으로, 저소득여성들이나 근로여성들을 위한 지원활동에 나서 공부방이나 쉼터를 열어주고, 주부들을 위한 생활협동조합을 설립하는 등, 여성의 지위를 자리매김하는 여권운동의 일선에서 뛰어온 이였다. 그런가 하면 그이의 남편 되는 김세균 교수는 형제인 사회학의 김진균 교수와 함께 진보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오며 1970년대부터 이 땅의 민주화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마련한 이이기도 했다. 오성숙씨가 자신의 잘못된 빚보증 한번으로 집이며 재산 따위를 깡그리 다 잃고 무일푼이 되어 남편이며 아이들과 함께 10여 평 남짓 되는 셋방에 나앉게 된 것이 바로 1997년이었다. 이때부터 그이는 모든 사회활동을 접고 여기저기서 돈을 그러모아 한정식집을 차린 것이었다. 기실 그이는 평소부터 음식솜씨가 남달라서, 남편과 함께 독일의 베를린에 있는 자유대학에 유학 중이던 1980년대 초에는 당시에 소위 운동권 출신 유학생들이며 황석영씨 같은 정치적 망명자들 사이에서는 그 뛰어난 음식솜씨 때문에 청진옥으로 불리기도 했다. 청진옥이란 그이의 큰아들 김청진이라는 이름에서 따서 유학생들이 붙인 별칭으로, 프랑크푸르트에 있던 이해동목사 내외의 해동여관과 함께 유학생들에게는 공짜로 자고 공짜로 고국의 음식을 먹으며 향수를 달랠 수 있는 소중한 쉼터이기도 했다. ●단아한 분위기의 큰누님같은 안주인 민들레의 한정식은 코스요리를 주로 하지만, 낮손님들을 위해서는 민들레밥상이라고 하여 흑임자죽이며 녹두죽 같은 죽에 잡채, 야채샐러드, 해물무침, 고등어조림, 김치전, 콩비지 등에 된장찌개며 밥이 나오는데, 무나물이며 취나물, 고사리나물 무침에 조개젓, 도토리묵, 김치 같은 밑반찬이 따라 나온다. 이 8000원짜리 민들레밥상에 곁들여 불고기볶음이며 제육주꾸미볶음, 해물한정식, 더덕구이, 갈비찜오분자기, 메로구이, 간장게장 등이 추가되면 각각 1만원에서 1만 5000원짜리 정식이 된다. 저녁나절에 주로 하는 코스요리에는 1인분에 2만 5000원짜리 기본정식과 3만 5000원짜리의 민정식이 있는데, 그대가 소중한 이와 처음으로 함께하는 자리라면 약간 무리할지 모르지만, 민정식을 권하고 싶다. 민정식은 나오는 순서에 따라, 녹두죽에 야채샐러드, 탕평채, 찹쌀화전이며 생선전이며 표고버섯전으로 구색을 맞춘 삼색전, 도미찜, 굴이며 소라며 우렁이며 새우가 들어간 모듬해물, 도다리며 도미의 싱싱한 모듬회, 연어쌈, 수삼과 꿀, 해물고추잡채, 홍어와 돼지고기에 보쌈김치를 곁들인 홍어삼합, 구절판, 새우튀김, 갈비찜, 해물냉채, 대구탕, 장어구이 등이 나오고, 마지막으로는 민들레밥상의 반찬과 밥에 누룽지가 함께 나온다. 민들레에는 10여 개의 방에 130석의 자리가 있어 얼마든지 대형 모임도 가능하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에서 내려 7번 출구를 나와 시티극장에서 골목으로 접어들어 50미터쯤 언덕길을 올라가면, 골목 막다른 곳에 푸치니(02-552-2877)라는 정통 이탈리아 레스토랑이 있다. 일찍이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곧장 이탈리아로 건너가 로마에 있는 페스타라 음악원에서 10년 가까이 유학을 하고 돌아와 모교에서 강사를 지낸 테너 안종선씨가 주인인데,1998년에 자신이 살던 양옥을 개조하여 3층까지 한결 깔끔하고 격조 있는 레스토랑으로 바꾸어 놓았다. ●유학생활 10년동안 익힌 미각 잘살려 투명한 유리창으로 지붕을 덮은 정원에 앉아 따스한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소중한 이와 함께 정통 스파게티며 파스타를 즐기고, 밤이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도 헤아릴 수 있는데, 푸치니의 지배인으로 있는 피아니스트 안토니오 파텔라씨의 감미로운 연주까지 들을 수 있다면 더욱 소중한 시간이 될 터이다. 볼로냐의 음악원에서 피아노를 전공하고 서울발레단의 음악감독으로 왔다가 8년 넘어 머무르고 있는 안토니오씨의 피아노 연주에 맞춰 안종선씨의 테너 독창까지 들을 수 있다면 거기에서 더 이상 무엇을 바라랴. 푸치니의 손님들은 거의 절반 가까이가 외국인들이고, 그만큼 주인 되는 이의 정통 이탈리아 요리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주로 이탈리아인들을 위시한 유럽인들이 즐겨 찾는데, 기실 10년 가까이 이탈리아에 유학하면서 정통 이탈리아 요리의 미각을 익힌 그이가 귀국하자마자 푸치니를 차린 것도 그때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이탈리아 레스토랑들이 그의 미각을 만족시키지 못한 때문이었다. 그이는 통밀에서부터 치즈같이 이탈리아 요리에 필요한 재료들을 거의 대부분 이탈리아에서 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푸치니에서 레스토랑의 이름을 내걸고 손님들에게 특선메뉴로 내놓는 ‘스파게티 알라 푸치니’는 푸치니 스페셜로 부르기도 하는데, 볼로냐와 피렌체 사이의 산간지방인 폴리아에서 주로 먹는 토속음식으로 파마산 치즈 중에서도 3년산 레지아노 치즈를 사용한다. 이 치즈는 무게가 35kg이 나가는 거의 맷돌만한 크기인데, 치즈 가운데에 홈을 파서 홈에 ‘바카디151’이라는 높은 도수의 럼주를 붓고 불을 붙여 치즈를 녹인 후에 여기에 스파게티며 야채를 넣어서 비벼내는 식이다. 1인분에 1만 8000원인 이 푸치니 스페셜은 강한 화력으로 럼주가 증발한 후에도 그윽한 향이 남아 여성들도 즐기는데, 요리사가 주방에서 나와 손님 앞에서 직접 시연을 펼치고 서브까지 한다. ■다국적 요리·술 한자리에 지하철 2호선 강남역 7번 출구를 빠져나오면 바로 출구 앞에 레비스(02-565-5959)라는 퓨전요리집이 있다. 간판에도 버젓하게 내세운 ‘다국적 식주공간(食酒空間)’답게 한식, 중식, 일식, 양식을 위시해서 세계의 퓨전요리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옛날두부김치에서 매운낙지볶음, 직화구이곰장어, 신닭발, 화이어뽈에서 일식의 해물오코노야키, 해물 스테미나나베, 후지볼케이노롤, 모리아와세, 겐키도리, 중식의 광동갈비, 팔보라조, 타이치킨, 홍콩야식, 깐소꽃게, 양식의 레비스초이스, 새우퐁듀, 철판돈가스, 시푸드치즈그라탕, 치즈칠리치킨, 파에리아 이외에도 훈제연어허브샐러드, 아보카드샐러드, 펌킨셀러드에 군고구마베이컨 피자, 데리야키 치킨피자에 소이웰빙파스타까지 모두 100가지가 넘어 미처 종류를 헤아릴 수 없는 요리들을 1만원 안팎의 저렴한 가격으로 내놓고 있다. 거기에 술 또한 우리의 백세주며 천국, 설중매를 위시해서 일본의 나마조조나 고노이즈미부터 중국의 죽엽주와 금화고량주, 공부가주, 죽봉주에 와인이며 양주, 생맥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구비하여 20대의 신세대들은 물론 30,40대의 취향에도 뒤지지 않게 구비해 놓았다. 다국적 요리들이라고 해서 결코 싸구려로 맛이며 정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레비스에서는 이 다국적 요리들을 위해 대학에서 조리학과를 나온 젊은 조리사들이 각각 한중일양으로 나누어 모두 12명이 주방을 맡고 있다. 게다가 직접 조리를 담당하지 않은 관리직들도 저마다 한두개씩은 조리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새로운 퓨전요리를 개발하기 위해 힘을 기울이기도 한다. 레비스에서 개발해낸 퓨전요리 중의 하나로 훈제연어 허브 샐러드는 훈제연어에 비타민이라는 야채, 케이퍼라는 서양배추 봉오리, 치커리, 물냉이, 양상치, 트레비스라는 보라색양상치, 천연의 천도복숭아, 가늘게 채 썬 양파를 올리브유로 드레싱해내는 식이다. 팔보라조는 갑오징어, 해삼, 새우, 참소라, 피조개 등의 해산물에 죽순, 표고버섯, 양송이버섯, 베이비콘을 넣어 매운 소스로 볶아내는 식이다. 그러나 레비스의 뛰어난 점은 380평에 360석이라는 대형 홀에 대한 섬세하고도 세련된 실내 디자인에 있을 터이다. 홀을 크게 나누어 한식의 분위기를 살린 공간, 일식집의 분위기를 살린 공간, 중식집의 분위기를 살린 공간에 양식집 분위기의 이국적 공간에 이어 룸살롱처럼 화려하고 푹신한 둥근 소파의 공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요리며 술을 맛보며 소중한 이와 함께 저녁 한때를 즐길 수 있다.
  • [길섶에서] 아버지의 십자가/이기동 논설위원

    “돌이켜보면 지금의 나 또래였을 것이다. 아버지는 약수동 고갯길을 한참 걸어내려가 버스로 한강을 건넌 뒤, 다시 바꿔타고 영등포의 사무실로 출근하셨다. 시간 반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더구나 콩나물시루라는 말이 꼭 들어맞던 당시 출근길 버스다.” 사제의 말은 이어진다.“아버지는 작은 회사의 말단직원이었다. 어쩌면 상사한테서 차마 못 들을 욕설을 일상사로 들으며 지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는 당당한 가장이셨다. 그가 내미는 쥐꼬리만했을 월급봉투에 담긴 눈물의 의미를 어머니는 아셨던 모양이다. 밥상머리에서 형제들이 밥투정을 할라치면 어머니는 당장 밥숟가락 놓으라고 호통치셨다.” 사순절, 예수의 희생에 담긴 종교적 의미를 사제는 어릴 적 자기 아버지의 추억에 담아 이렇게 설명했다. 가족에게 먹일 밥 한 공기를 담아내기 위해 아버지가 감내했을 수치심과 눈물의 의미를 사제가 된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고 그는 말했다. 매일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이 땅의 지친 아버지들을 다시 생각한다. 이기동 논설위원 yeekd@seoul.co.kr
  • 儒林(288)-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8)-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며느리의 갑사저고리는 소매끝부분인 끝동과 겨드랑이와 접촉이 되는 곁막음 부분과 옷고름과 깃부분은 노랑저고리의 빛깔과는 달리 분홍색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퇴계가 분홍빛깔의 깃을 직접 자름으로써 이이(離弛)가 성립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퇴계는 남의 눈을 피해서 며느리를 친정으로 돌려보낸다. 마지막으로 작별의 큰절을 올리는 며느리에게 퇴계는 다시 다음과 같이 당부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아주 멀리 멀리 떠나거라. 그리고 아들딸 많이 낳고 행복하게 살거라.” 퇴계의 이러한 인간적인 면모는 ‘퇴계언행록’에 기록된 다른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다. 1554년, 퇴계가 예천에 들렀을 때 어느 먼 일가의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매우 딱한 사연을 호소해 온 적이 있었다. 퇴계는 평소에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었으므로 관청에 사사로운 일을 부탁하는 것을 금기하고 있었는데, 뜻밖에도 직접 군수에게 부탁하여 과부를 도와주었던 것이었다. 이때 퇴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언행록은 전하고 있다. “내게 있어서는 비록 먼 일가라고는 하지만 선조로 보면 똑같은 자손이니 내 어찌 길가는 사람 보듯 하겠는가.(彼之於牙 雖曰疎遠 以先祖之 一般子孫也 豈敢視若路人)” 먼 친척을 대하며 자기를 기준으로 보아 멀다고 여기지 않고 선조의 입장에서 보면 똑같은 자손이라는 의식은 퇴계가 지닌 위대한 휴머니즘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찮은 먼 일가의 과부 한사람까지도 ‘길가는 사람’으로 보지 아니하고 한 핏줄로 본 퇴계가 한순간 생과부가 되어버린 새 아기에 대해서 풍습을 타파하고 자유의 몸으로 풀어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퇴계의 에피소드는 여기에 그치지 아니한다. 그로부터 몇 년 뒤 퇴계가 선조의 부르심을 받고 어쩔 수 없이 한양으로 상경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종자 하나만을 데리고 한양길에 오른 퇴계는 도중에 날이 저물자 어쩔 수 없이 하루 묵을 집을 찾게 되었다. 다행히 작지만 깨끗한 인가를 발견하여 젊은 집주인에게 하룻밤 묵고 갈 것을 허락받게 되었는데, 퇴계의 신분을 확인한 집에서는 대접이 융숭하였다. 퇴계가 짐을 풀고 피곤한 몸을 쉬려고 할 때 밖에서 젊은 주인이 말하였다. “어르신, 비록 없는 반찬이지만 저녁식사를 준비하였습니다.” 퇴계가 방문을 열자 젊은 주인이 상을 들고 서 있었다. “집사람이 내외를 심히 하는 편이라 쇤네가 가지고 왔나이다.” 퇴계는 밥상을 보자 깜짝 놀랐다. 시골 한촌에서는 볼 수 없는 성찬이었던 것이었다. 퇴계는 육식보다는 가지나물과 산나물과 같은 채식들을 좋아하고 있었는데, 상위에 오른 반찬들은 한결같이 퇴계가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들뿐이었다. 특히 나물국이 차려져 있었는데, 한 숟갈 떠먹은 퇴계는 간이 입에 딱 맞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니 어떻게 내 입맛에 이렇게 딱 맞을까. 꼭 우리 집 음식을 먹는 것과 같구나.” 다음날 아침도 마찬가지였다. 아침 일찍 아침상이 들어온 것이었다. 민폐를 싫어하여 일찍 먼 길을 떠나려던 퇴계의 방으로 어젯밤과 같은 성찬의 밥상이 들어 온 것이었다.
  • 儒林(28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儒林(287)-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제3부 君子有終 제1장 名妓杜香 퇴계는 둘째아들 채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도 없었다. 전해오는 기록에 의하면 가난하여 장례 치를 형편이 못되어 장비를 빌려 쓸 지경이었으며,2월의 봄추위인데도 눈보라가 심하여 가매로 묻어 놓고 뒤에 이장키로 했다고 한다. 그러나 채의 무덤은 사후 10년 후에야 외할아버지 선산에 이장될 수 있었는데, 지금의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무하리 고망봉 산기슭에 묻혀 있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둘째아들 채와 정혼을 했던 며느리였다. 비록 혼례를 올리진 못하였지만 정혼을 한 처지였으므로 며느리는 어쩔 수 없이 생과부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조선시대의 법도는 ‘여자는 삼종(三從)의 의리가 있어 다시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즉 결혼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 후에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기르며 아들을 따라야 했는데, 이를 삼종지도(三從之道)라고 했던 것이다. 따라서 며느리는 혼례를 올리지 못하였다고 하더라도 정혼을 한 이상 퇴계의 집식구였던 것이다. 이 사실에 대해 퇴계는 가슴 아파하였다. 자신이 성리학의 대가였으므로 이를 어찌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퇴계는 뒤채를 거닐다가 며느리 방에서 인기척이 있는 것을 느끼고 깜짝 놀란다. 방안에서 며느리가 어떤 사람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퇴계는 크게 놀라 가까이 다가갔는데, 방안에서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어서오세요. 얼마나 보고 싶었는 줄 아세요.” “나도 당신을 보고 싶었소.” 그렇다면 뒤채에 홀로 살고 있는 며느리가 외간남자를 불러들여 정이라도 통하고 있단 말인가. 크게 놀란 이퇴계는 문틈으로 방안을 엿보았는데, 잠시 후 벌어진 방안의 풍경은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며느리는 베개에다 남편의 옷을 입혀놓고 밥상을 차려 베개에 숟가락으로 음식을 떠주며 혼잣말을 하면서 슬피 울고 있었던 것이다. “서방님 이 음식은 아주 맛이 있어요. 식기 전에 어서 드세요.” 며느리는 다시 혼잣말로 남자 목소리를 흉내 내며 혼자서 대답하였다. “역시 당신의 음식솜씨는 최고요.” “그러니 이제 자주 오세요.” 현진건의 ‘P사감과 러브레터’를 연상시키는 이 장면이 실제로 있었던 사실이었던가 아니면 다만 야담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인가는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뒤 이퇴계가 며느리를 친정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것이다. 물론 당시에는 아내를 버리거나, 내보내거나, 쫓아버리거나 하는 일은 있어도 이혼하는 일은 없었다. 다만 사정파의(事情罷議)라 하여서 의절하여 내보내는 일은 있었던 것이다. 이때는 의절의 증표로 아내가 입던 저고리의 깃을 자르는데, 이를 할급휴서(割給休書)라 했던 것이다. 원래는 남편이 아내가 입던 저고리의 깃을 자르는 것으로 소유권을 포기하는 의식이었는데, 아들은 이미 죽었으므로 퇴계는 은밀히 며느리를 불러 혼례 때 입으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며느리의 갑사저고리의 깃을 자신이 직접 가위로 잘라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퇴계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이제 너는 우리 집 귀신이 아니라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로써 너는 부부로서 인연을 끊고 새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이제 다시는 우리 집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멀리 떠나서 새생활을 하도록 하여라.”
  • 오곡밥으로 대보름 풍성하게

    오곡밥으로 대보름 풍성하게

    정월 대보름에는 보름달만큼 음식도 풍부하다. 대보름에 먹는 음식에는 한해를 건강하게 지내려는 기원이 담겨있다. 대보름 전날 저녁에는 오곡밥을 지어 아홉 가지 나물과 함께 먹는다. 이웃의 아홉집 음식을 아홉번 먹는 풍습도 있다. 보름은 설의 연장선상에 있는 명절에다 농한기인만큼 이웃끼리 나눠 먹고, 함께 즐기는 놀이도 많다. 아홉가지 나물은 전년 봄부터 제철 나물을 따다 햇볕에 말린 묵은 나물, 진채(陳菜)다. 김수진(F&C코리아 대표)씨는 “값싼 제철 나물을 찬바람과 햇볕에 말리면 겨울에도 먹을 수 있는 좋은 저장식품이 된다.”면서 “묵은 나물은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하고 특히 통변에 매우 좋다.”고 말했다. 겨울을 나는 동안 부족해지기 쉬운 섬유소 섭취에도 나물은 큰 도움이 된다. 궁중음식연구원의 정길자 교수는 “봄에는 고사리, 가을에는 호박고지와 시래기를 햇볕에 말렸다 겨울에 불려서 먹으면 씹는 맛이 아주 좋아진다.”고 말했다. 요즘은 비닐하우스에서 여러 나물이 나오지만 제철 나물을 갈무리해 먹는 것은 웰빙이라고 강조했다. 쌀, 수수, 조, 콩, 팥을 한데 섞어 짓는 오곡밥은 음양오행설에 입각, 쌀밥에 부족한 영양상의 문제점을 해결해준다. 흰쌀밥에 비해 오곡밥은 비타민과 섬유소가 풍부하다. 최근엔 대보름처럼 굳이 오곡을 갖추지 않더라도 콩이나 팥·조 등을 섞은 잡곡밥을 지어 먹는 사람이 많다. 잡곡밥은 처음엔 모래를 씹는 것처럼 까칠하게 느껴지지만 계속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깊은 단맛이 난다. 보름날 아침에는 복쌈을 먹는다. 쌀밥을 김 또는 아주까리, 취나물 이파리를 펴서 싸먹는다. 귀밝이술(耳明酒)에 담긴 뜻은 진짜 귀가 밝아진다기보다 일년 내내 좋은 소리만 들으라는 의미다. 잣, 밤, 호두, 은행, 땅콩 등의 견과류는 보름날 밤에 부럼으로 까먹는다. 사실, 견과류는 몸에 좋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해 건강음식으로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꿀물에 경단을 띄운 원소병은 대보름달을 닮은 음식이다. 대보름 음식의 특징은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제사음식에도 고추를 쓰지않는 것처럼 주술적 의미에다 맑고 담백한 음식으로 한해를 시작한다는 뜻도 있다. 푸드 스타일리스트 김혜선씨는 “나물 아홉가지를 만들려면 손이 많이 갈 것 같지만 기본양념이 비슷해 어렵지 않다.”며 “오곡밥과 나물로 가족들끼리 보름달만큼 풍성한 정을 나눠보라.”고 권했다. ■ 촬영협찬:F&C코리아(02-362-6704) 글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사진 이종원기자 jongwon@seoul.co.kr ■ 나물 여기서 맛보세요 대보름에 아홉가지 나물을 하기가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정성스레 나물 반찬을 내놓는 곳을 찾아가보면 어떨까. 사찰 음식의 대가인 선재 스님의 자문을 받은 채근담(02-555-9173)에서는 채식 한정식을 맛볼 수 있다.10년째 궁중 한정식을 만들고 있는 ‘한미리’에서 바로 옆에 3년전 문을 연 곳이다. 서형철 팀장은 “가락시장이나 경동시장에서 묵은 나물을 사다 소금과 들기름만으로 간을 한다.”고 말했다. 사찰 음식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자극적인 오신채(마늘·파·부추·달래·무릇)는 쓰지 않는다. 피마자, 고추나물, 건취, 묵나물, 원추리, 고사리, 취로 구성된 나물 반찬은 특히 담백하고 한국적인 맛을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 값은 정식이 일인당 2만 1000∼5만 7000원이다. 자하문(02-396-5000)에서는 코스별 한식을 맛볼 수 있다. 코스별로 10∼15가지 요리와 토속적인 반찬, 절임류가 나온다. 특히 강된장과 대나무 통밥이 별미.1만 9000원짜리 기본 코스요리인 ‘우의정’을 주문하면 게살전병, 단호박찜, 생선모듬초회, 묵은 김치와 한방제육, 매생이탕 등 각 지역의 향토 별미와 10가지 토속 찬, 영양대나무통밥을 내놓는다. 메뉴판닷컴에서 추천한 마천동 남한산성 등산로의 탑골집 시골밥상(02-449-9599)은 육류를 전혀 쓰지 않은 밥상이 맛있다. 입맛을 돋우는 부드러운 녹두죽이 먼저 제공되는 시골밥상(1만원)은 비타민C가 살아 있는 마른 나물, 오이소박이, 젓갈, 김치 등 일상적 반찬 하나하나에도 신선함과 정갈함이 가득하다. 산채보리비빔밥(5000원)의 초록빛을 입안 가득 느끼면 웰빙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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