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발트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상처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출산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복구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 징역
    2026-08-0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2,193
  • 옐친의 소련/공산독재 막 내리다:3

    ◎쓰러진 레닌동상위서 새 역사 기록/「고르비의 6년」은 공산틀 안에서의 개혁/“진짜 개혁은 이제부터” 시민들 이구동성 소련전역에서 때아닌 「우상파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발트해 연안 공화국에서 시작한 이 우상파괴는 키르기스탄·몰다비아·백러시아공화국·레닌그라드를 거쳐 마침내 수도 모스크바에까지 도달했다. 모스크바에서는 24,25일 제르진스키와 스베르들로프등 10월 혁명동지들의 동상들이 잇따라 제거됐다.모스크바시민들의 관심은 이제 「옥타브리스카야 광장」(10월 혁명광장)에 버티고 서있는 무게 50t이 넘는 레닌입상이 언제쯤 끌어내려질 것인가에 있다.그에 의해 소련의 역사가 창조되어 왔지만 이제 다시 시민혁명의 피플파워는 공산독재 소련의 역사를 정지시키려 하고 있다.25일 잠에도 자정 전후해서 철거작업이 시작될 것이라는 루머가 나돌아 10월광장은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모여든 시민·취재진들로 붐볐다. 고르바초프가 쿠데타군들에 의해 억류됐다가 풀려난 지난 22일을 이곳 사람들은 소련에서 진짜 페레스트로이카가 시작된 날로 부르고 있다. 고르바초프가 지난 6년간 추진해온 개혁은 사회주의의 틀내에서의 「한계내 개혁」이었다.즉 사회주의를 보다 발전시키기 위한 개혁이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독재의 이름하에 자행된 70여년의 공산당 일당 독재는 이 사회에 일체의 기득권 포기를 거부하는 「공산당 마피아」를 키워놓았다.이번 쿠데타는 이들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어떤 개혁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일깨워준 실증적 교훈이었다.모스크바에서 레닌 동상이 사라지는 것도 이제는 시간문제가 됐다. 1960년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체제 수렴논이 처음 제기되었을 때 소련은 이를 제국주의 세력이 소련을 망치려고 만들어낸 음모라고 흥분했었다.그러나 결과적으로 소련에서 사회주의 포기가 시작됨으로써 수렴논의 예언은 적중하고 있다. 사회주의는 「제3의 힘」으로 불리는 이 지구촌 공통의 문제들이 등장하는 것을 가로막은 마지막 장애였다. 한 소련학자는 소련의 역사를 러시아 중심주의와 서구주의가 주기적으로 반복된 것으로 설명한다.다시 말하면 폐쇄와 개방의 반복이고 이 반복은 볼셰비키 혁명이후에도 계속됐다.이번에 공산당의 간판을 내리게 하지 않으면 제2·제3의 쿠데타 기도가 반드시 다시 나온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의 진짜 혁명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말들을 하고 있다.발트해 연안 3국과 몰다비아 등이 2차대전을 전후해 만들어진 국경선의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이들은 자신들의 독립이 허용되어야 비로소 전후처리문제가 매듭지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그럴 경우 유럽은 국경선 변경문제를 놓고 일대 혼란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유고에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이미 독립을 선언했고 독일에서도 폴란드에게 넘어간 영토반환문제가 다시 제기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경제는 밑바닥을 헤매고있고 본격 개혁이 시작되면 혼란과 부작용은 더 심해질 것이다.올 겨울이 고비라는 이야기가 벌써 나오고있다.실제로 기아의 공포가 있다.「노동자가 천국」인 나라에서 노동자의 월평균 임금이 3백루블,배추 한포기 값이 1백루블이다.어떻게 살아가는지 기적같이 느껴질 뿐이다.힘빠진 고르비가 이 고비를 넘길수 있을것 같지가 않다. 당분간 국제질서는 미국과 통합EC가 주도하리란 견해가 유력하다.1992년 말 EC통합을 내걸고 유럽국가들은 옛 영광의 재현을 꿈꾸고있다.마르크스의 고전적 견해를 빌리면 앞으로 거대 통합EC와 미국사이에 제국주의적 시장쟁탈전이 벌어질 것이다.그러나 미래학자들은 계속되는 기술개발로 경제면에서는 양자간에 협조관계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있다. 레닌이 『임시정부는 붕괴됐다.토지 사유제의 철폐,생산수단에 대한 노동자의 소유,그리고 소비에트정부 수립은 보장됐다』고 외친 것이 1917년.고르바초프가 모스크바시내에 볼셰비키 혁명완수를 다짐하며 10월 광장에 초대형 레닌 동상을 세운게 1985년 11월이었다.이 두번의 길고 짧은 시행착오끝에 소련은 마침내 볼셰비키 혁명의 청산작업에 들어갔다.「눈물없고 착취없는」노동자 천국의 약속이 노동자들에게 가져다준 것은 눈물뿐이었다. 모스크바시내 한 곳에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문구가 쓰여있는 마르크스의 흉상이 있다.25일 누군가가 그 문구밑에 붉은 페인트로 이런 낙서를 해놓았다.『나를 용서하라』이제 역사는 그 낙서자에 의해 새로 쓰여질것이다.
  • “소 연방 탈퇴 공화국대상/러시아공,국경선 재고”

    ◎옐친대통령 밝혀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러시아공화국은 26일 소 연방으로부터 탈퇴하려는 공화국들에 대해 국경선을 문제삼을 권리가 있다고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이 말한것으로 파벨 보슈카노프대변인이 밝혔다. 타스통신은 이날 보슈카노프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발트3국은 제외하고 소 연방으로부터 탈퇴하려는 공화국들에 대해 러시아공화국은 국경선을 재검토하는 문제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우크라이나공화국이나 카자흐공화국등 국경지역에 러시아인이 다수 거주하는 공화국들의 독립시에는 러시아공화국과 국경문제가 발생할것으로 예상된다.
  • 「소련제국」이 지상서 사라진다

    ◎15개공중 9개공 독립선언… 그 파장과 전망/잇단 국제적 승인… 미도 곧 지지 방침/확산땐 유럽과 국경분쟁·유혈 우려/신연방 협상따라 「공화국 공동체」 전환 가능성 소련제국이 붕괴되고 있다.소련의 15개 공화국중 5개 공화국이 독립을 선포하고 다른 4개 공화국들도 독립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소연방이 와해되고 있는 것이다. 소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3개 공화국을 유럽국가들이 외교적으로 승인함으로써 소련제국의 해체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한 과정이 되고 있다. 다민족 국가인 소연방의 해체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 정책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수 있다.페레스트로이카는 소련인들의 자유와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이같은 시민의식의 변화가 힘에 의해 통제받던 각 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으로 이어졌다.그러나 소연방의 해체는 강경보수파들의 실패한 쿠데타로 본격화되고 있다. 쿠데타 주도세력들은 소연방체제의 유지를 강조했다.그들은 연방조약체결 하루전에 쿠데타를 일으켰다.그러나 보수파들의 「서투른 연극」은 오히려 공화국의 독립움직임을 촉발시켰다. 발트해 3국중의 하나인 에스토니아공화국은 쿠데타 와중에 독립을 선포했다.에스토니아가 독립을 선포하자 이미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승인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은 즉각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등의 독립을 승인했다. 옐친의 독립 승인에 이어 아이슬란드,노르웨이,덴마크 등도 발트해 3개 공화국과 수교를 발표하고 곧 외교관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유럽국가들도 발트 3국을 승인할 것이라고 밝히고 국제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미국도 발트공화국의 승인은 다만 「시간의 문제」라고 말해 곧 승인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발트해 연안 3국에 이어 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공화국도 독립을 선언했다.백러시아공화국은 보수적 슬라브민족의 전형이며 연방정부에 가장 충실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백러시아의회가 만장일치로 독립을 선언한 것은 소연방 해체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할수 있다.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독립선언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우크라이나는 면적으로는 소련전체의 40분의1에 불과하지만 산업과 농업의 중심지이며 인구는 5천1백만명으로 러시아공화국에 이어 2위이다.우크라이나는 소련 설탕및 옥수수생산량의 3분의2,밀의 5분1,감자의 3분의1을 생산하는등 곡창지대이며 석탄·철등 광산물 매장량이 풍부한 광공업중심지이다. 우크라이나는 이같이 소련의 핵심이면서도 지난 46년부터 독립주의자들의 무력항쟁 경험이 있고 전체인구의 73% 정도가 우크라이나인으로 구성되는등 「독립의지」가 내연해 왔다고 볼수 있다.우크라이나와 백러시아는 유엔회원국이기도 하다. 소련의 각 공화국들은 쿠데타이후 크렘린의 「권력공백」을 틈타 독립을 서두르고 있다.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각 공화국들의 독립 움직임이 많은 이민족들로 얽혀 있는 소연방내의 국경분쟁과 유혈사태를 가져올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이미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과의 민족분규로 8백명 이상이 희생된바 있다. 소연방의 해체는 특히 유럽의 국경분쟁으로 비화될 위험성을 내포하고있다.몰다비아공화국의 모사누 최고회의의장은 주민의 3분2가 루마니아인인 몰다비아의 독립은 루마니아와의 통일을 위한 1단계라고 밝혔다.몰다비아가 루마니아와 통합된다면 2차대전이후 설정된 유럽 국경선의 변화를 의미한다.이는 독일과 폴란드등 유럽의 국경선 분쟁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며 유럽안보의 새로운 불안요인이 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공화국의 독립은 신연방조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쿠데타이후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신연방안과 이를 수용하는 공화국의 태도에따라 소련의 모습이 크게 바뀔 것이다.일부 전문가들은 소련이 하나의 국가연합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그러나 발트해 3개공화국은 소연방에서 떨어져 나와 완전한 독립국가를 지향할 것으로 보인다. 소련은 옐친과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 대통령이 주장한 「공화국 공동체」로 전환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발트해 3국들이 독립을 선언했지만 경제관계만은 그대로 유지하는 하나의 공동체로 남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소련의 해체과정은 유럽공동체(EC)의 통합과 정반대의 현상을보이고 있다.그러나 소련 공화국들의 독립은 장기적으로는 대통령을 위한 하나의 「작은 분열」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한다.소련이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화된 사회로 전환된후 유럽의 일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소연방의 해체는 고르바초프가 주창한 「유럽공동의 장」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일지 모른다.
  • 유럽국,발트3공과 속속 수교/덴마크·노르웨이 “독립인정”

    ◎영·독서도 대사교환 추진/리투아공,비자 첫 독자 발급 【코펜하겐·본 AFP UPI 연합】 소련 보수강경파들의 쿠데타 실패 이후,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이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25일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이들 공화국의 독립 승인을 공식 발표하는등 서방 세계의 3개국 승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노르웨이는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들 국가와 외교관계를 개설키로 결정했다고 토르발 스톨텐베르 외무장관이 25일 밝혔다. 그는 노르웨이가 25일 아침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고 조만간 발트 3국에 대사들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국제사회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24일 발트 3국과 외교관계 수립 방침을 발표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대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모스크바 중앙정부가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할 때까지 이들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기존방침을 철회하고 25일 이들 3개공화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준비중에 있으며이를 위해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이 오는 27일 발트 3국의 외무장관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도 25일 발트3국의 독립은 빨리 이뤄질수록 더 좋다고 말하고 영국과 발트3국간의 외교관계수립을 위해 빠른 시일내에 외무부고위관리가 발트3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헝가리도 MTI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있는 러시아공화국이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헝가리는 주권을 회복하려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리투아니아 국민들의 노력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AFP 연합】 리투아니아공화국은 소공화국으로는 처음으로 26일부터 독자적으로 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리투아공이 최고회의 결의를 실행에 옮길 경우 소연방정부는 처음으로 입·출국관할권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옐친에 사실상 대권 이양/“공산당 해체” 무엇을 의미하나

    ◎반공 대세에 고르비 “정치적 패배”/개혁발걸음·공화국독립 가속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공산당서기장직 사임을 선언하고 공산당 중앙위의 해체를 촉구하면서 공산당 재산 몰수를 선언한 것은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든 공산당이 최후의 보루마저 상실하는 동시에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앞으로의 어떤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패배선언을 의미한다. 고르바초프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공산당 반대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해 공산당으로 하며금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역할을 맡도록 하겠다고 서슴없이 밝혔었다.공산당이 민주적인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믿었고 이제 개혁의 대세가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이틀만에 사실상 공산당과의 결별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급격히 확산되는 공산당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거부감과,특히 이같은 기류를 등에 업은 옐친의 거센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핵심각료 인선과정에서 옐친에게 끌려다니며 그의 요구에 전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고 러시아공화국의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군중들에게 야유를 받는 등 수모를 겪고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더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원 전체가 무차별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해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의 의도에 관계없이 공산당은 이미 붕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제 소련 공산당은 더이상 집권당이 아닐 뿐 아니라 일부 동구권국가에서 처럼 불법화될 위기에 직면해있으며 소련의 실질적인 대권행사는 사실상 옐친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칼자루를 손아귀에 쥔 옐친은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해오던 고르바초프와는 달리 급진적인 전환을 추진하고있다.옐친의 측근인 실라예프현러시아공화국총리가 연방총리로 임명돼 정부구성위원회와 경제계획위원회를 이끌고 확고한 시장경제 신봉자들이 경제계획위원에 포함된 것은 향후 소련경제개혁의 가속화를 짐작케한다.소련의 보수회귀 가능성을 우려해 대소경제지원을 머뭇거려오던 서방세계의 태도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개혁 이외의 다른 대안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경제의 앞날이 장미빛만은 아니다. 경제보다도 당장 더욱 큰 혼란에 휘말리게 되는 문제는 연방체제의 변화이다.과거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는 발트3국 등 산하 공화국들의 독립추진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저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그러나 옐친은 실세로 부상한 뒤 발트3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일부 공화국들의 탈소독립이 기정사실화단계에 들어간 것이다.이에 자극받아 2번째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공화국도 24일 독립을 선언하는 등 소연방에서의 독립이 유행처럼 번질 전망이다.옐친이 이같이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이 소련전체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등 대세를 좌우하고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그러나 독립열기가 군소자치주로까지 파급돼 걷잡을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경우 이 또한 만만치않은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은 비공산정권시대를 맞음으로써 개혁에의 최대장애물을 일단 제거하기는 했으나 개혁의 앞날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RSLDP),민스크에서 1차 당대회 개최. ▲1903년=RSLDP 2차 당대회.레닌당이 직업적 혁명가로 철저하게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소속한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의 분열을 주도. ▲1917년=RSLDP,11월7일의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함. ▲1918년=RSDLP,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 ▲1921년=레닌,10차 당대회에서 민간기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신경제정책(NEP) 제안. ▲1924년=레닌 사망.이후 수년간 당내투쟁이 전개되나 스탈린이 당권을 장악,트로츠키는 망명길에 오름. ▲1929년=스탈린,신경제정책 폐지.공업화및 농업의 집단화 운동에 착수함. ▲1934년=스탈린,17차 당대회에서 독재통치 강화.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의 집단지도 체제 시작.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유리 안드로포프가 권력승계.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브레즈네프의 측근이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승계. ▲1985년=체르넨코 사망.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권력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27차 당대회에서 조심스런 개혁과 당지도부 개편 시작함. 보리스 옐친,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름. ▲1987년=옐친,고르바초프및 정치국원들과의 불화끝에 당직 사임. ▲1990년=대통령제가 신설돼 고르바초프 인민대표대회에서 새로운 대통령에 선출됨.
  • “발트3국 6개월내 독립”/미 국무차관 전망

    【워싱턴 로이터 연합】 로렌스 이글버거 미 국무차관은 소 발트지역 3개 공화국이 앞으로 6개월안에 독립할 수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글버거는 23일 내용이 공개된 다음날 방영분 미 CNN­TV 대담프로에 출연,사견임을 전제로 이같이 지적하면서 소 쿠데타 기간중 반보수 투쟁에 앞장섰던 보리스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미하일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과의 관계에서 『현재 「상위」』라고 말했다. 이글버거는 발트 공화국들이 『6개월안에 독립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같은 전망이 사견으로 『크게 틀릴 수도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글버거는 고르바초프가 옐친과 연정구성 및 유사시 대권자동승계에 합의했음을 밝힌 23일자 연방최고회의 연설 요지등을 분석한 결과 두 사람 관계에서 옐친이 『현재 「상위」』라는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 우크라이나공도 독립 선언/연방독립 5곳으로 늘어나

    【키예프·모스크바 로이터 AP 연합 특약】 우크라이나공화국 의회는 24일 소련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5개 소련연방공화국중 러시아공화국에 이어 2번째로 큰 우크라이나공화국의 독립선언은 오는 12월 공화국주민들을 상대로한 국민투표로 확정된다. 이에앞서 발트연안의 에스토니아공화국은 지난 20일,라트비아공화국은 21일 각각 독립을 선언했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공까지 포함,독립을 선언한 공화국은 모두 5개로 늘어났다.
  • 고르비,공산당 해체 선언/인테르팍스통신 보도

    ◎당 서기장직도 사임/연방최고회의 당기구도 활동종료 독자결정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4일 소련공산당 서기장직을 사임하고 공산당을 해체할 예정이라고 중립계 인테르팍스통신이 보도했다. 소련 정부의 최고위층 동향보도에 강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 통신은 이 기사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홍보비서인 비탈리 이그나텐코는 『긍정도 부정도 할 수 없다』고 말했으며 고르바초프가 당지도부와 회담중이라고 덧붙였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 대변인은 고르바초프가 옐친에게 이같은 계획을 전한바 없다고 밝혔다.미국무성과 로만 포파뒤크 백악관대변인 역시 이 보도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당 서기장 직분으로서는 공산당의 해체를 명령할 수 없으나 연방대통령으로서 어느 정치단체라도 해산을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한편 연방최고회의의 당기구가 24일 스스로 자신들의 활동을 종료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이 기구의 이같은 결정은소련 전역에 걸쳐 공산당의 활동을 제한하는 각종 조치들이 계속되는 가운데 취해졌다. 발트해 연안의 리투아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이 공산당을 불법화한데 이어 에스토니아공화국·몰다비아공화국·그루지야공화국이 24일 공산당이 공화국 영토내에서 활동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24일 공산당 서기장직에서 사임했다고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보좌관들이 밝혔다.
  • 동상의 운명/송정숙 논설위원(서울칼럼)

    출입문은 탱크라도 저지할수 있을 만큼 견고하게 차단되어 있고 정문에는 초소가 있어서 철저한 검색끝에 사람들의 출입을 허가했다. 엄청나게 넓은 경내에는 옛날 귀족의 영지를 연상하게 하는 화원과 과수원·수영장들이 있고,그럴듯한 코너에마다 별장과 방갈로가 있고 간이 숙소가 있었다.본부 건물로부터 이들 별장이나 방갈로같은 부속건물들을 찾아가려면 꽃밭도 지나고 과수원도 지나 30분도 넘게 걸리는 곳도 있을 만큼 넓었다.호젓하고 아름답고 우아한,이런 별장에서 당의 높은 사람이나 그밖의 특권계층이 「휴양」을 하기 위해 짧게 혹은 길게 머물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곳이 소련의 우즈베크공화국 수도 타슈켄트의 교외에 있는 「내각 제1초대소」라는 숙소였다.이곳에서 며칠 묵게 되었을 때 겪은 일이 여러가지로 인상적이었다.사무실에는 컴퓨터나 팩시밀리는 커녕 복사기도 없었다.방끼리 연락하는 교환전화시설도 없었으므로 방번호와 전화번호를 적은 일행의 명단을 만들어 나누어 가지려다가 복사하는 방법이 없어서 포기해야만 했다. 당의고급간부나 연방중앙에서 여행오는 실력자들이 묵어가는 이 호젓하고 아름다운 숙소가 과학기재나 시설에 있어서는 이렇게 「후지다」는 일을 한국서 간 일행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낙후되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어 한심하게 여기기도 했다. 중앙아시아의 그 뜨거운 태양볕과 건조한 일기탓인지 그 도시의 거리에는 엄청나게 큰 멜론과 수박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손님을 부르고 있었다.시원하게 해서 먹으면 맛 또한 기막히게 좋았다.그러나 우리가 묵는 내각초대소인 숙소에서는 그 수박과 멜론을 주지 않았다.탱자만큼 작은 복숭아와 호두만한 살구,우리의 옛 능금같은 과일만 아침식탁에 오를뿐이었다.아마도 경내의 과수원에서 소출된 과일인 것같았다.우리는 따로 돈을 낼터인즉 그 소담한 수박과 멜론을 먹게 해달라고 주문했다.그러자 사무실에서는 즉각 『안된다!』는 회답이 왔다.이 초대소에는 아주 엄격한 「식품 검사관」이 상주하는데 그 수박이나 멜론은 「좋지 않은 농약과 비료를 사용했으므로 합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선 호출기를 가진 경비원이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면서도 사무실에 복사기 한대도 없는 내각 제1초대소에서 완벽하게 「오염안된 식품」만 먹으며 별천지같은 휴양을 즐기는 귀족스런 지도층이 있는 사회. 이 도시에서도 가장 흔한 것은 「레닌동상」이었다.정부청사 앞에도 있고,분수광장에도 있다.입상도 있고 흉상도 있고,릴리프도 있었다. 23일 소련의 발트연안 공화국인 리투아니아공화국에서는 군중들의 환호속에서 수도 빌나에 세워진 레닌동상이 철거되어 트럭에 실려갔다고 한다.같은날 또다른 발트공화국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에서도 레닌 기념비가 「강력한 크레인」으로 철거되었다는 라디오방송이 BBC에 청취되었다고 한다. 목에 밧줄이 감긴채 쓰러져 던져져있는 레닌동상의 사진도 전해졌다.오랏줄에 묶인 그동상을 보며 문득 특별한 보호구역 안에서 「몸에 좋은 것만」골라 먹어가며 발전한 과학기계까지도 활용할 생각은 안하는채 이기적인 특권을 누리던 「공산당귀족」을 연상했다. 사회주의 종주국에서 살아오다 자유에 눈뜬 민중들에게는거리거리에마다 서있던 「레닌동상」이 그들 특권계층과 일치되어 비쳐왔는지도 모른다. 서양문화는 광장의 문화다.광장에서는 불꽃튀는 민의가 작렬하고,위인과 영웅의 동상들이 시대를 초월하여 함께 숨쉰다.그런 동상들은 오랏줄에 묶여 끌려다니는 운명과는 만나지 않는다. 레닌동상이 수모를 당하는 일이 발트연안 공화국에서만 그칠리는 없다.조만간 중앙아시아에서도,종당에는 러시아 민족국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이미 러시아공화국에서 KGB 창설자의 동상이 같은 운명에 처해지지 않았는가.동구에서는 벌써 거쳐갔고. 「레닌동상」은 그래도 오래되고 멀어서 증오감이 덜할 수 있다.살아있는 우상의 거대한 동상과 흉상 석상들을 만개도 넘게 세우고 매일매일 그 앞에 경배하며 어린이의 고사리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갈고 닦도록 강요되어온 동상이 우리의 「북쪽」에는 있다.장차 이 동상의 운명은 어찌 될까.봉사가 강요된,그만큼이 한으로도 남고 증악로도 전환되는 것은 아닐까. 민중의 환호속에 질질 끌려다니는 「레닌」을 보며,유사한 장면이 자꾸만 연상되어 무겁고 우울한 느낌이 든다.
  • 옐친,「발트3국 독립」 인정/리투아공 이어 라트비아·에스토니아도

    ◎포고령 발표… 고르비에도 허용 촉구 【모스크바 로이터 연합 특약】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은 24일 발트해의 라트비아공화국과 에스토니아공화국의 독립을 공식 인정하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도 같은 조치를 취할 것을 촉구했다. 옐친대통령은 관영 타스통신이 보도한 포고령을 통해 라트비아와 에스토니아의 독립인정을 밝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소연방과 2개 공화국간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위해 협상을 시작하라고 요구했다. 옐친은 발트해 3개 공화국의 분리독립 움직임에 대해 동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으며 란츠베르기스 리투아니아공화국 대통령과 리투아니아의 「주권국가」를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한 바 있다.
  • 러시아공,사실상 연방정부 기능/「정변」이후 입지강화의 안팎

    ◎공당 불법화­쿠데타세력 처리 관장/「신연방조약」에 특수지분 요구나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주도한 반쿠데타운동이 성공함에 따라 향후 소연방에서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위상이 강화됨에 따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지도력은 이번 사건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되었다.따라서 향후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와 발언권이 강화된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이냐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쿠데타군의 동향을 일체 보고받지 못하고 구금되기직전까지 휴가를 즐겼다는 사실은 지도자로서의 그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흠이 될것으로 지적한다.반면 러시아공화국은 쿠데타 기간동안 갖가지 포고령을 발표하며 사실상 연방정부의 기능을 대신했다. 지난21일부터 열리고있는 러시아공화국 의회는 이런 투쟁에 대한 대가로 벌써 갖가지 요구사항을 내놓고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3일부터 단행하고 있는 내각개편및 요직인선을 모두 옐친러시아대통령과 협의하에 결정하고있다.고르바초프는 또 앞으로연방정부의 총리를 러시아정부인사로 임명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러시아정부의 연정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대통령 궐위기간중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채택한 제포고령에 대해서도 이들의 요구대로 추후 별도의 포고령을 통해 이를 공식 추인하겠다고 약속했다. 연방정부가 쿠데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정상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 러시아정부가 거의 연방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공산당 불법화·공산당 재산몰수·쿠데타 주도세력에 대한 처리문제 등 거의 모든 현안들이 러시아정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신연방조약이 당초 안대로 처리될 경우 연방정부는 국방·외교·교통·조세·화폐관리 등을 관장하고 나머지 권리는 연방공화국들에 대폭 이양토록 돼 있다. 즉 경제생활면 등에서 사실상 독자 권리를 인정해주되 연방정부의 권위만은 유지토록 돼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23일부터 시작된 신연방조약 지지 9개 공화국 모임에서 러시아의 특수지위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옐친을 민선대통령으로 선출한뒤부터 러시아공화국은 사실상 외교·경제면에서 독자노선을 거의 걷고 있고,독자군대창설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러시아 외무부는 옐친대통령에 대해 국가원수의 예우를 해줄것을 외국에 요구하고 있다.러시아는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여타 연방공화국들과 독자적으로 경제·우호조약들을 맺어왔고 극동지방의 석유개발 등 에너지 관할권도 모두 러시아정부로 이양했다. 독립요구중인 발트해 3국 등은 연방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러시아와 독자적으로 각종 조약을 맺어왔다.적어도 경제적으로 연방정부의 존재는 이미 모호해진 상태이다.러시아정부는 여기에 덧붙여 연방정부총리를 러시아정부출신이 맡는다는 등 사실상의 연정약속을 고르바초프로부터 받아냈다. 지난해말 고르바초프가 보수파들과 손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개혁파인사들이 대거 옐친 진영으로 넘어감으로써 인재면에서도 러시아정부가 연방정부에 뒤지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연방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통했다.예를들어 다른 공화국들은 형식적이나마 자체 수도·자체 공산당·자체 대학들이 있었지만 러시아공화국은 모든게 연방정부에 소속돼 있었다. 러시아공화국 주민들에게는 이점이 불만이었고 신연방조약이 추진되면서 자기들도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에서도 독자공산당이 조직됐고 독자 국기,심지어 KGB까지 독자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러시아정부와 주민들은 신연방을 구성하되 그 안에서 대러시아국으로서의 당연한 지분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요구의 상당부분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성격을 띠고있다.러시아가 새연방조약에서 특수지위를 고집할 경우 여타 조약참가 공화국들이 반발,자칫 조약참여 공화국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3일 러시아의회에서 러시아의 특수지위를 요구하는 대의원들에게 『모든 공화국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일단 거부의사를 밝혔다.이에대해 한대의원은 고르바초프에게 『우리는 당신이 필요없지만 당신은 우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반박,러시아공화국 사람들이 갖고있는 인식의 한단면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가능한한 이른 시일내에 신연방조약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신연방조약이 체결되기전 연방정부의 위상등에 관해 어떤 수정이 가해질지에 일차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신연방조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앞으로 러시아정부의 입김은 연방정부 및 다른 연방공화국들을 압도할 것이라는게 이곳 관측통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소 정치판도 변화/각국의 진단

    ◎고르비­옐친 「역할분담」갈등/워싱턴포스트 보리스 옐친은 이번의 최대최악의 혼란에서 지도력을 인정받게 됐으며 고조되고 있는 민주화 조류를 상징하게끔 됐다.옐친의 투쟁으로 가장 큰 덕을 본 사람을 미하일 고르바초프이긴 하지만 옐친은 원칙과 적법의 이름으로 이번 쿠데타에 대항하고 승리했다는 사실에 의해 입지가 엄청나게 강화됐다.고르바초프는 복귀되었으나 우선 당장 자신이 시작했으나 아직 종결짓지 못한 혁명적 개혁에 대한 설명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되는 처지이다.개혁을 발진시키면서 이룩한 과거의 업적으로 고르바초프는 아직도 커다란 위세를 지니고 있으나 앞으로의 개혁추진에 있어 그가 떠맡을 수 있는 역할은 지금부터 새롭게 정립해야만 하는 것이다.즉 그는 창피를 당했고 위신이 대폭 깎인 셈이다. ◎발트3국 「주권독립」필연적/아시안 월스트리트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복귀에도 불구하고 소련방정부는 비틀거리고 있다.그러나 러시아·아르메니아·우크라이나 등 대부분의 소공화국들은 완벽하게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쿠데타실패후 소련의 정치구조는 크게 바뀌고 있다.옐친은 그가 소련군대를 장악하고 있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고르비는 앞으로 옐친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협력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이 이제는 민주선거방식에 의해 조직되어 운영되고 있는 소련 각 공화국들에 대해 정치적 합법성 인정을 공개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함께 미국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등 발트3국의 주권독립을 공식 인정해야 한다. ◎경제회생 「제2의 개혁」시급/조일신문 합법정권의 최고지도자로서 고르바초프씨가 무사히 직무에 복귀한 것을 환영하면서 개혁노력과 신사고에 기초한 대외정책의 추진을 기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과제는 파국적인 상황에 있는 경제의 개선문제이다.그런 의미에서 소련지도부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제2막을 맞고있다. 쿠데타뒤 남은 과제는 「연방」과 「공화국」의 관계조정이다.옐친씨의 영향력확대는 그대로 러시아공화국및 다른공화국의 발언권증대로 이어질 것이다.따라서 고르바초프씨와 옐친씨의 「2두마차」가 어떻게 달릴까하는 것이 앞으로 초점이 될 것이다.소련정치의 안정화·민주화의 착실한 전진을 위해서도 「2명의 대통령」의 협조가 중요하다.
  • 독일/고르비 지원 확대/미국/「2원정책」을 추진

    ◎워싱턴의 새 대소 전략은/연방통제권 약화… 공화국과 밀착 시도/“발트 3국 조기독립 바람직” 조심스런 변화 시사 모스크바에서 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하고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권좌에 복귀했음에도 워싱턴의 정책 입안자들은 소련내 상황이 아직 유동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미국의 대소정책 변화에 관한 언급을 피하고 있다. 그러나 3일 천하로 끝난 소련의 불발 쿠데타가 워싱턴에 대해 정책 재검토를 촉구한 것은 분명하다. 워싱턴의 대소정책에 변화를 재촉하고 있는 주요 동인은 소련내 세력균형의 변화다.그동안 미국은 소련에서 중앙정부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만을 유일하게 지지했지만 앞으론 크렘린과 각 공화국을 동시 상대하는 2원정책으로 나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크렘린으로 복귀한 고르바초프가 쿠데타 주동자들이 무산을 기도했던 새 연방조약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불확실한 것으로 알려졌다.소련내 16개 공화국 가운데 9개공화국과 고르바초프간에 기본합의가 이뤄져 이른바 「9+1」연방조약이라고 불리는 이 조약은 각 공화국에 보다 큰 자치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까지 부시 미행정부는 소련권력의 중심이 고르바초프로부터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과 같은 독립지향적인 공화국 지도자들에게 옮겨지고 있다는 뚜렷한 조짐과 정보보고에도 불구하고 2원접근 정책의 채택을 회피했다.그러나 이젠 크렘린이 각 공화국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도 정책전환이 불가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워싱턴의 대소정책 변화는 발틱 3국문제에서 먼저 나타났다.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22일 『라트비아,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의 독립이 조속히 실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그는 『최근의 소련 사태가 발틱 3국의 독립을 앞당기게 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를 위한 『대화의 분위기가 충분히 조성된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부시의 이 발언은 발틱 3국 독립에 대한 미국의 최초의 적극적인 지지표명으로서,소련의 쿠데타 실패와 새 연방조약이 발틱 3국의 탈소 독립운동을 가열시켜 결국 이들에게 독립을 가져다줄것이라는 새로운 상황 판단과 이에 따른 정책 변화를 나타낸 것이다.발틱3국 독립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미국은 소련의 발틱3국 병합을 인정한 일이 없다는 식의 미온적인 태도를 취해 왔으며,부시는 만일 이 3나라가 평화적인 연방이탈 협상을 통해 독립을 할 경우 이를 인정하겠다고 약속한바 있다. ○대규모 식량원조설 이날 부시대통령은 쿠데타 발생과 더불어 소련에 대해 취했던 경제지원 중단조치를 해제했다.또한 부시 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고르바초프가 보다 확실한 개혁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지 않는 한 미국의 대소지원정책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소극적인 수준에 머물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워싱턴은 고르바초프에게 경제개혁 추진에 박차를 가하도록 압력을 가할 것으로 보인다.그동안 부시 행정부는 고르바초프가 강경파와 개혁파 사이에서 협공을 당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고르바초프에게 압력을 가하는 문제에 신중을 기해왔다. 그러나 이젠 개혁을 가로막았던 강경파들이 내각에서 사라진 이상 고르바초프의 개혁추진이훨씬 수월해졌으며,따라서 이번 쿠데타는 워싱턴이 모스크바에 대해 돈줄을 푸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일부 전문가들은 주장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는 21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부시 행정부가 고르바초프 정권에 대한 지지를 보여주기 위해 소련에 대규모 식량원조 등을 계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전문가들은 미국이 경제지원을 통해 고르바초프의 국내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대신 국제 무대에서 소련의 보조적인 역할을 정립하는 쪽으로 양국 관계가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고르비 포기는 안해 부시는 소련내 공화국에 대한 지지강도를 둘러싸고 의회와 실랑이를 벌이게 될지 모른다.미의회에선 『고르바초프의 시대가 끝나고 옐친과 소련 국민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소리가 높지만 부시는 고르바초프를 포기하지 않을 것같다. 부시행정부의 한 고위관리는 고르바초프가 쿠데타로 약화되긴 했지만 그는 여전히 소련의 군사외교를 통제하고 중앙정부를 이끌어나갈 지도자라고 말했다.고르바초프는 여전히 미국의 공식적인 대소 협상창구라는 것이다. 쿠데타에 과감히 도전,강경파를 패퇴시키고 영웅으로 부상한 옐친은 정치적 기반을 더욱 강화,확대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지금 모스크바의 선두주자가 옐친이라는 것은 세계가 인정하는 사실이기 때문에 워싱턴은 싫든 좋든 옐친을 상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따라서 옐친이나 다른 공화국지도자에 대한 미국의 공개적 지지가 고르바초프를 모독하는 것이 아니냐는 문제에 대해선 예민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워싱턴은 믿고 있다. 부시와 미 의회는 옐친을 비롯한 소련내 공화국 지도자들이 그들의 중앙통제경제를 시장경제로 전환시키려는 노력을 고무하면서 이들과 새로운 협조 관계를 모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의 「정변이후」대응/“쿠데타는 경제난 때문에 비롯” 판단/식품수출 확대… EC등과 추가경원 적극 추진 독일정부와 각 정파는 소련의 쿠데타기도가 진정된뒤 소련에서 확고한 위치를 되찾은 개혁파들을 집중적이고도 다양하게 지원해야한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특히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쿠데타기도이후 강력한 개혁정책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서구국들로부터의 재정적인 지원이 강화되어야 하며 그동안 대소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서구국들에게 대소지원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기로 했다. 겐셔외무장관은 22일 의회에서 서구가 소련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해야 하며 그동안 대소재정지원에 소극적이었던 서구국들에게 적극적인 지원을 하도록 촉구하겠다고 말했다.수상실의 루돌프 자이터스장관은 독일은 그동안 소련에 대한 지원에 가장 적극적이었으나 독일로서는 더이상의 재정지원을 할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자이터스장관은 서구국들은 이제 소련에 대한 「최대한의 지원」을 해야한다고 말했으며 겐셔외무장관은 『독일은 능력의 극한점에 이르기 까지 소련을 지원하겠다』고 다짐했다. 자이터스장관은 본정부가 89년이래 소련에 60억마르크(40억달러)를 지원했다고 밝히고 이같은 액수는 독일이 소련을 도울수 있는 상한선임을 회상시키고 이제는 미국·일본 등 런던 G7정상회담에서 소극적인 대소지원 자세를 보였던 국가들이 독일과 함께 경제지원에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사회당의 볼프강 로츠는 쿠데타기도이후 소련에 대한 국제적인 재정지원의 강화를 유도하기위해 콜총리가 미국·일본을 방문할 것을 요구했다. 독일은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지원으로 통일을 이룬뒤 대소지원에 가장 협조적이었으며 이번의 소련쿠데타사건은 소련의 어려운 국내경제상황에 반발하고 있는 보수파가 일으킨만큼 경제지원이 가장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소련의 쿠데타기도이후 본과 파리·로마 등 유럽국가들은 대소경제지원의 강화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이루고 있으나 미국·일본·영국 등은 아직도 소련의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이다. 독일은 소련의 안정이 유럽의 안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며 민주화를 추진하고 있는 구동구권국가들의 안정에도 필수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이때문에 독일은 소련에서 쿠데타가 일어나자 소련이 기존의 국제조약을 지킬 것을 강조하며 독일주둔 소련군이 예정대로 철수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웠으며 EC·NATO관계장관회담에서도 소련에서 보수세력이 집권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으로 모처럼 맞이한 「유럽의 봄」이 다시 냉전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경고했다.소련의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독일은 이번 사건이 소련의 경제적인 딜레마로 야기된 것이라는 분석을 하고 소련에 대한 재정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나 독일 단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EC·NATO 등 회원국들과의 협조강화에 노력한다는 방침이다.독일은 이와함께 소련사태이후 가장 불안감을 느끼고 있는 폴란드·체코·헝가리 등 동구권 국가들이 빠른 시기에 시장경제의 틀을 확립해 소련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EC가 약속한 경제적 지원을 예정대로 하며 정세가 불안한 리투아니아 등 발트공화국들에 대한 지원방안도 검토하고 있다.독일은 의회의 토론결과를 바탕으로 대소지원책을 추가로 마련,소련상품의 수입을 확대하고 소련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며 식료품수출을 늘리기로 했으며 국제적인 대소지원의 필요성 분위기가 조성됨에 따라 조만간 EC정상회담을 열어 소련지원의 구체적인 방안을 촉구할 방침이다.
  • 고르비­옐친 연정구성의 의미

    ◎“옐친 공로 인정”… 개혁가속화 동반/「온건개혁」새 포장… 이미지 회복 도모/고르비­외교·옐친­내정 “신역할 분담”/고르비,“정부사퇴 마땅”「연루설」에 배수진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23일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연립정부를 구성키로 합의하고 내무·국방장관과 KGB의장등 3개핵심권력부서의 책임자를 옐친과의 협의를 거쳐 온건개혁파인사로 교체한 것은 신속한 사태수습및 개혁가속화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와함께 쿠데타를 실패로 끝나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해「떠오르는 별」로 각광받고 있는 옐친의 위상 강화를 입증하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고르바초프가 이번사태를 통해 옐친에게 빚을 졌기 때문에 연정제의 수락은 충분히 예견됐고 불가피하기도 했다. 그러나 밀고 당기는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채 집무복귀 하루만에 첫회동에서 고르바초프가 연정을 받아들이기로 양보하고 더군다나 요직인 내무장관자리를 러시아공화국내무장관을 지냈던 옐친의 측근에게 넘겨준 것은 다소 의외라 하지 않을수 없다.그만큼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통치력에 손상을 입힌 쿠데타 국면에서 하루빨리 벗어나고 「쿠데타자작설」의 구설수를 불식시킨 뒤 새로운 개혁정국으로 전환시켜 이미지회복을 꾀하려는 욕구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이끄는 현소련정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보수강경파들을 저지하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한데 책임을 지고 전체가 사퇴해야 한다는 고르바초프의 말도 쿠데타연루설에 대응하는 일종의 배수진이자 대폭적인 개편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번 연정구성합의로 앞으로 신연방조약체결과 함께 공화국에 대한 권력이양작업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다.고르바초프가 내정부문에서 상당부분 실권을 넘겨주고 외교에 주력하는 반면 옐친이 내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역할분담이 이뤄졌다. 바카틴 신임 KGB의장은 독립을 추진하던 발트3국을 강경진압하라는 보수강경파의 요구를 거부해 지난해 12월 해임된 관료출신 온건개혁파인물로 지난 3월 개혁인사로는 유일하게 8인 국가보안위원에 지명됐으며 샤포스니코프 신임국방장관은 국방차관과공군사령관을 지냈으며 쿠데타가 발생하자 쿠데타 주도세력들의 명령을 거부한 온건파이다. 이번 연정구성합의는 대체로 소련개혁의 밝은 앞날을 예고하는 호조의 스타트인 것임에는 틀림없다.
  • 쿠데타 실패이후 권력변화 예진(크렘린 대지진:4)

    ◎소 권력구조 지각변동 온다/보수파 숙청되면 개혁파 급부상할듯/“공산당,이념고수땐 소수당전락”경고 소련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소련의 「피플파워」는 강경보수파들의 「역사의 반복」을 거부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도 이번 쿠데타의 실패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승리라고 선언했다.그는 소련의 개혁과 개방정책은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임을 천명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이미 소련사회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음이 이번 쿠데타로 증명되었다.민주와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소련국민들이 보수화를 거부한 것이다.이는 소련사회에서도 「힘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소련의 권력은 전통적으로 공산당·군부·KGB에 의해 장악되어 왔다.그러나 이번 쿠데타는 민중의 힘이 소련의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쿠데타 실패로 몰락의 길을 스스로 재촉했다고 볼수 있다.물론 쿠데타 실패가 아직도 소련사회각 부문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보수화 성향을 일거에 청산시킬수는 없을 것이다.더욱이 보수세력들은 쿠데타 실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군부·공산당·KGB관료체제에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그러나 강경보수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군부나 KGB는 이번 정변을 계기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우선 쿠데타 주도 세력이었던 야조프국방장관과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군부와 KGB내의 숙정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대통령도 쿠데타 주도세력의 제거를 서두르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쿠데타를 지지한 군부나 KGB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내에서의 보수파들의 영향력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전보좌관이었던 야코블레프는 공산당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지향정당과 기존의 공산당으로 분열될 것으로 전망한다.그는 공산당이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고집할 경우 수구파만의 소수 정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마셜 슐먼교수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제는 보수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더이상 보수와 개혁파간의 줄타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수세력의 영향력 위축을 전망한다.고르바초프는 그러나 보수와 개혁파간의 완충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고르바초프가 과연 어느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이다.일부 분석가들은 고르바초프가 상징적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또 고르바초프는 점차 독립을 추구하는 공화국들에 권한을 내어주고 약화된 연방정부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듀크대의 제리 휴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개혁의 구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르바초프와 옐친은 각각 자신들의 직책을 유지하는 비공식적 공동지도체제 이른바 「이중적 권력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옐친도 단기적으로는 고르바초프를 지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옐친은 이번 쿠데타를 저지시킨 피플파워의 구심점이 되며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러시아공화국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은 쿠데타를 저지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소련국민들 뿐만아니라 서방세계지도자들로부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옐친은 서방국가들에게 위대한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과거 어릿광대 취급을 하던 부시 미대통령도 『나는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그의 위대한 용기를 찬양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는 쿠데타 후유증의 치유와 경제난 해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경제적 혼란이 쿠데타의 주요 원인이 될 만큼 소련경제상황은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은 아직 가시적 결실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많은 정치분석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양세계는 소련의 보수화를 막기위해서도 대소경제지원을 적극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 강화는 소련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물론 쿠데타실패로고르바초프와 부시대통령이 추진하는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그러나 소련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강화로 소련이 서방세계 경제권으로 통합될 경우 국제정치의 화해무드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신연방조약에 따라 소련은 새로운 연방체제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조약체결을 약속한 9개공화국 외에 어느 공화국이 새로이 조약체결에 동참할지는 미지수이다.그러나 적어도 발트해 3개공화국은 그들의 독립움직임을 더욱 가속시킬 것으로 전망된다.에스토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은 쿠데타의 와중에서 독립을 선언했다.라우치스틴 에스토니아의회부의장은 『발트해 공화국의 실질적인 독립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방조약은 소련의 분권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크렘린의 집중됐던 권력이 공화국으로 분산되는 것이다.소련의 분권화는 소련사회의 민주화를 촉진시킬것으로 전망된다.쿠데타에 저항한 피플파워는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소련은 시민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 개혁추진기반 조기구축 포석/소 지도부 전격개편의 의미

    ◎사태수습·개혁추진 신속 대응/고르비·옐친 정치적 결속 입증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방장관과 KGB의장,내무장관등 소련전체를 움직일수 있는 핵심요직 3명을 새로 임명하는데 있어 대통령직무 재개후 만 하루도 걸리지 않은 신속함을 보인 것은 향후 소련정국의 향배를 점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될것으로 보여 주목을 끌고 있다. 이는 또 소련의 새 정부구성을 놓고 고르바초프와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양자간의 정치력 균형에 대해 모종의 타협을 이루는데 성공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수 있다.장관등의 임명이 연방대통령의 고유권한임에도 불구하고 새 국방장관등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임명이 사전에 옐친과의 합의를 거쳐 발표됐다는 사실은 옐친이 쿠데타를 분쇄시키는 과정에서 자신이 맡았던 역할에 대한 댓가를 강력히 요구,고르바초프로부터 양보를 얻어낸데 따른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부르고 있다. 옐친과 고르바초프가 손을 함께 잡음으로써 옐친은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다 확대할수 있는 반면 고르바초프는 옐친의 강력한 지지를등에 업고 안정적으로 소련정국을 이끌어 나가는게 가능하다.이는 고르바초프가 과거와 같이 큰 반대를 우려하지 않고 자신의 개혁정책을 추진해 나갈수 있을 것임을 의미한다. 새로 요직에 임명된 모이세예프와 셰바르신,트루신등 3명의 신상에 대해선 아직 정확한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그러나 셰바르신 KGB의장은 오랜 외교관 생활을 거쳐 KGB에 투신,KGB의 해외공작 총책임자직을 맡아온 인물로서 국내정치에 개입한 적이 전혀 없었으며 오랜 외국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개혁을 지지하는 입장에 섰던 인물로 평가됐었다. 모이세예프는 참모총장 재직시 고르바초프의 군감축및 국방비 삭감에 강력히 반발,강경파로 분류되기도 했으며 한때 이번 쿠데타의 주도인물이란 얘기가 나돌기도 했었다.그러나 모이세예프는 지난 1월 독립을 요구하는 발트 3국을 무력진압한다는 야조프국방장관의 계획에 반대,야조프와 마찰을 빚은 이후 개혁지지 쪽으로 돌아섰다는 평을 들어 왔다. 이처럼 개혁지지 세력을 군과 KGB의 최고위직에 앉힘으로써 고르바초프와 옐친은쿠데타 이후의 빠른 사태수습과 함께 개혁추진을 위한 안정기반을 확실하게 다진 것으로 평가할수 있다.
  • “비상사태 서명”거부하자 고르비연금/소 정변 「3일드라마」의 전말

    ◎KGB 30명 들이닥쳐 대통령내외 별장억류/크렘린측 전화불통되자 이상 감지/옐친,“대안은 군중동원”대책 주효 워싱턴 포스트지는 21일자에서 사흘동안의 소련쿠데타 실패의 전말을 3페이지에 걸쳐 상세히 보도했다.「소련에서 두려움이 사라졌을때」라는 제목으로 데이비드 렘니크기자가 쓴 이 글을 통해 쿠데타의 발생·전개·실패과정을 요약,소개한다. 쿠데타가 개시된 19일 하오 늦게 기관총으로 무장한 30여명의 KGB요원들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그의 부인 라이사여사를 흑해연안 크리미아반도의 포로스별장에 억류하고 있었다.그는 아무도 만날 수 없었고 전화통화도 불가능했다.군인들은 이중으로 별장을 포위하고 있었으며 바다쪽에는 15척의 경비정이 포진하고 있었다. ▷쿠데타의 징후◁ 쿠데타의 원인은 고르바초프의 잦은 정책변화와 책략등 지나친 자신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면서 그동안 여러가지 방법으로 강경파들이 궁정반란을 도모했었다고 전직 KGB간부 올레그 칼루긴이 말했다. 첫시도는 1988년 전직 정치국원이었던 이고르 리가초프에 의한 것으로 그는 언론에 신스탈린주의 강령을 발표하므로 글라스노스트(개방)정책의 종식을 꾀했다. 또 옐친은 이번의 쿠데타가 금년들어서만 세번째 시도라고 주장했다.첫번째는 지난 1월 KGB와 군부의 리투아니아 민선정부 전복음모였고 두번째는 같은 무렵 두드러진 강경파의 하나인 빅토르 알크스니스대령이 고르바초프가 「의지」를 잃었다며 군부는 소련지도부의 지원과 관계없이 더이상의 진전을 준비해야 한다고 밝힌 것을 들 수 있다. 세번째는 6개월후 고르바초프가 옐친과의 협력관계에 돌입했을때 그의 반대자들은 「헌법상 쿠데타」를 시도,고르바초프와 협의없이 발렌틴 파블로프총리가 연방최고회의로 가서 크류치코프 KGB의장,야조프 국방장관,푸고 내무장관등 강경그룹에 별도의 권한부여를 요청,입법화를 추진했다. ▷쿠데타의 발생◁ 20일 고르바초프가 체결하려 했던 신연방조약은 ▲연방의 붕괴 ▲절대권한의 몰락 ▲개인적 지위의 손실등을 구실로 크렘린의 보수파들에게는 큰불만을 야기시켰다. 쿠데타 이틀전인 17일 하오4시 이후부터 기오르기 샤크나자로프등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은 갑자기 대통령과의 전화연락이 되지 않는 것을 알았다.그러나 크리미아와 모스크바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알지 못했다. 러시아 의회와 CIA의 보고에 따르면 야조프국방장관을 포함한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의 지도부 수명이 일요일인 18일 크리미아의 별장으로 가서 대통령에게 신연방조약체결 무효화를 위한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언하는 포고령에 사인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하자 즉시 대통령을 연금상태로 두고 쿠데타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쿠데타의 전개◁ 무력시위는 19일 새벽 모스크바와 발트해공화국들의 주요도시에 탱크와 장갑차들이 진입하는 것으로 시작됐다.북부러시아의 볼로그다 같은 소도시는 지방KGB가 라디오방송국을 점령했다. 그러나 이날 새벽 옐친과 그 보좌관들은 고르바초프가 권력에서 제거됐다는 사실을 즉각 간파했으며 쿠데타세력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대중을 동원한 시위밖에 없다고 생각,옐친이 강경책을 썼다.그는 연방의회청사내에 월 룸(전투지휘소)을 차려놓았으며 그곳에는 청년정치인,급진파 학자,언론인,심지어는 군장교와 KGB요원들까지도 모여 저항세력의 싱크탱크를 구성했고 옐친은 밖으로 나가 군중들을 이끌었다. 정치적조치로는 이날 아침 외무부에서 야나예프부통령이 기자회견을 통해 쿠데타사실을 밝히고 포고령을 통해 자신들의 행동거취를 밝혔다. ▷쿠데타의 실패◁ 쿠데타가 실패한것은 지난 6년동안 고르바초프에 의해 소련국민들에게 심어진 신사고와 제도적 개혁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다. 또한 강경파 지도자들도 각자의 생각이나 목표가 달랐다.실패한 원인은 첫째로 옐친이나 리투아니아지도자 비타우타스 란츠베르기스 같은 지도자들을 검거하지 않았고 단지 대중적인 지지에만 크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둘째는 외국특파원이나 국내신문·방송등 언론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 셋째는 러시아공화국의 KGB책임자인 블라디미르 포데리아킨이 옐친의 편에 가담했다는 사실이다.넷째 강경파지도자나 군인들에게 스탈린시대와는 달리 대량학살의 의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소련민중에게 두려움이 소멸돼 있다는 사실이었다.옐친이 두려움이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마구 진주해오는 군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광부들은 파업을,어린아이들까지도 탱크에 오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소 강경보수파의 「막후」/“검은대령” 알크스니스

    ◎김영만기자가 만났던 “소유즈의 얼굴”/“고르비식은 혼란만… “비상조치 역설/“「60년대 한국」,경제난 타개의 모델” 소련쿠데타세력이 지향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독재」가 아닌가 싶다.그들이 구체적 모델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박정희형독재」라는 유추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이같은 추론이 가능한 것은 쿠데타세력의 의회내 기반으로 보이는 소유즈그룹이 한국의 「박정희독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들이 현 쿠데타세력의 아이디어뱅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8인국가비상위원회의 실세로 알려진 푸고내무장관은 소유즈그룹의 「도움」으로 개혁파인 전내무장관 바딤 바카틴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지난 4월 검은대령 알크스니스를 정점으로 한 소유즈그룹은 『파국의 소련을 구하기 위해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일찌감치 쿠데타세력에게 거사의 명분을 제공한 바 있다. 기자는 지난 4월23일 알크스니스대령의 숙소인 모스크바 호텔에서 2시간동안 그와 단독인터뷰를 했다.당시 그들은 비상사태선포를 주장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운동을 공공연히 벌이고 있었다.그들의 소련정세에 대한 시각과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소련의 미래상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현 쿠데타세력의 이념적 기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알크스니스는 고르바초프가 말하는 시장경제로 가기위한 혼란과 경제침체가 「일시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그는 공산당과 연방정부가 강력한 힘을 행사해 전권을 장악하지 않을 경우 소련경제는 3류 빈민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보혁갈등이 조기에 종식되지 않음으로써 끝내는 내전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알크스니스는 박정희와 한국경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그는 『보수세력이 개혁자체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우리는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정치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한국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요한 모델이다.한국은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알크스니스의 소련정치관을 요약하면 이렇다.우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소련경제를 희생시켜야한다.그러나 그방법은 현재와 같은 연방정부의 무기력화로는 빈곤과 내전만이 있을 뿐이며 연방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하나씩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알크스니스 일파가 현재 어느정도의 쿠데타 핵심세력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같은 알크스니스식 논리가 핵심세력의 이론적 기초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그들은 유혈사태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감내해야 할 희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민주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비상사태선포와 같은 강경책은 필연적으로 유혈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한국의 경험을 알크스니스에게 이야기해주자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그는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은 유혈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위해 국가는 때때로 힘을 사용할수 밖에 없고 소련은 개혁정책이 실시된이래 민족분규 등으로 1천명이상이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알크스니스 일파가 직접 쿠데타에 연루돼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다만 당시의 보수파들은 쿠데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알크스니스는 쿠데타가 가능할 것으로 믿느냐는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한마디로 잘랐다.한국과 달라서 쿠데타를 지휘하고 의견일치를 보아야 할 장군의 숫자가 너무 많고 나라가 커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는 『장성만 모여도 크렘린궁으로는 자리가 모자란다.또한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나 피노체트,주코프원수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장성도 없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소련에는 쿠데타가 일어났다.모스크바에 진주해 있는 군부대간에도 알력이 있고 비상위원회와 친고르바초프쪽으로 세가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알크스니스의 쿠데타 불가능론은 어느정도 맞아들어간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알크스니스는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발트3국중 라트비아 출신이다.그는 출신배경과 현재의 정치적견해 사이를 어떻게메울수 있느냐는 질문에 『민족주의자들이 내놓는 것은 「배고프지만 자유롭게」이다.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데도 연방탈퇴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인간의 생존권을 희생시키는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혁파가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때였다.그럼에도 알크스니스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한다고 이야기해 나갔다.
  • 소 쿠데타 실패/고르비 대통령직 복귀

    ◎비상위 8인 체포,곧 재판회부/군 철수… 통금등 포고령 무효화/모스크바 이기동특파원/옐친 급부상… 오늘 긴급간부회의 소집 유혈사태까지 빚으며 내란위기로 치닫던 소련의 반개혁 쿠데타가 실패로 끝났다.이에따라 크리미아휴양지에서 연금상태에 있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하오 모스크바로 돌아왔으며 연방최고회의는 그의 대통령직을 복권시켰다고 타스통신이 보도했다. 쿠데타 주도세력인 8인국가비상사태위원회는 20일 해산됐고 8인위원들도 대부분 체포되거나 도피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들은 모두 재판에 회부될 것으로 보인다. 모스크바와 발트3국을 비롯한 비상사태선포지역에 배치됐던 모든 연방군 병력도 이날 철수를 시작했으며 모스크바를 비롯한 소련 전역은 축제분위기를 이뤘다. 연방간부회의는 22일 긴급회의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쿠데타의 실패에 따라 반쿠데타 선봉에 섰던 옐친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크게 강화됐다. 【모스크바 AP 연합 특약】 고르바초프는 21일 모스크바로귀경길에 올랐다고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보좌관이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연금상태에 있던 크리미아반도의 휴양지로부터 루키야노프 연방최고회의 의장등과 함께 모스크바로 떠났다. 【모스크바 AP 연합】 소련 연방최고회의 지도자들은 21일 미하일 고르바초프 대통령 축출기도 쿠데타를 비난했으며 쿠데타 지도자들에 의해 내려진 모든 포고령을무효화했다고 연방최고회의의 유리 카리아트킨 대의원이 말했다. 그는 연방최고회의가 모스크바의 야간통행금지령과 독립적인 언론매체의 보도금지령 등 쿠데타 주도세력들이 내렸던 모든 포고령을 무효화했다고 덧붙였다. 【모스크바 타스 AFP 연합】 소련 국방부는 모스크바를 비롯,비상사태가 선포된지역에 배치된 모든 연방군 병력에 대해 철수를 명령했다고 소련관영 타스통신이 21일 보도했다. 타스통신은 국방부가 비상사태 선포 지역으로부터 모든 부대와 분견대 병력의철수를 이행토록 하는 결정을 채택했다고 전했다. ◎TV 정규방송/언론검열 해제 【모스크바 AP 연합】 쿠데타 세력들이 모스크바를 떠남에 따라 쿠데타발생이후 방송이 중단됐던 소련의 TV와 라디오가 21일 방송을 재개했으며 관영 타스통신은 독립적인 출판물에 대해 내려졌던 출판금지령이 해제되고 있다고 전했다.
  • 쿠데타 실패이후의 정국풍향은(크렘린 대지진:3)

    ◎페레스트로이카 가속이 붙는다/권력구조 변화등 후유증 뒤따를듯/서방의 경원 가시화… 동서화해 공고히 소련의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가 「3일천하」로 막을 내린것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페레스트로이카가 좌초의 위기에서 부활했음을 의미한다. 잠시 거꾸로 가던 「크렘린의 시계」가 멈추고 소련은 다시 페레스트로이카시대로 회귀하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으로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소련국민들이 보수파를 거부하고 있음이 이번 쿠데타를 통해 실증됨으로써 소련의 개혁과 개방은 더욱 촉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쿠데타 실패는 오랜 공산주의 체제에서 살았던 소련국민들의 의식이 크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소련은 이같은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바탕으로 보다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소련의 보수적 성향은 아직도 매우 깊다. 그러나 이번 강경보수파들의 쿠데타 실패는 소련 사회가 민주적 체제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쿠데타의 후유증에서벗어나 소련이 안정을 되찾은 후 소연방들은 예정대로 신연방조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 신연방조약 체결을 거부한 발트해 3개 공화국은 비롯 6개 공화국이 조약체결을 할지는 미지수이지만 각 공화국간의 관계는 호전될 가능성이 높다고 볼수 있다.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보수파의 쿠데타가 실패한후 일단 고르바초프가 다시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복귀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그러나 이번 쿠데타로 큰 상처를 입었다고 볼수 있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할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많은 소련문제 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는 보수와 개혁파간의 완충역할을 하며 행정수반으로서의 권한을 확보하는 것이 전부일 것으로 전망한다. 고르바초프의 시대가 다음 선거까지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이 적지않다. 반면 고르바초프의 계속 집권가능성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국제정치에서의 고르바초프의 위상과 그의 개혁정책을 감안할때 소련국민들이 그의 계속집권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이들은 이번 쿠데타로소련에서의 그의 비중이 더욱 중요시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함께 향후 소련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지도자는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다. 옐친 대통령은 이번 쿠데타의 성공을 저지한 「피플파워」의 구심점이었다. 옐친은 쿠데타로 소련이 침묵할때 분연히 일어나 쿠데타를 비난하고 반쿠데타 운동을 선도했다. 이러한 그의 역할은 소련국민들과 서방세계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는 옐친이 소련의 최고 지도자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고 볼수 있다. 옐친이 집권할 경우 소련의 시장경제로의 전환이 보다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옐친은 그동안 소련의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보다 빠른 시장경제도입 뿐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나 옐친이 주장하는 급진경제개혁을 도입하지 않더라도 소련의 경제개혁은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사회주의와 시장경제를 접목시키는 「경제실험」이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난 70년간의 공산주의 경제실험이 실패로 끝났음이 증명되었기 때문에 소련은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하지 않을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서방세계도 소련의 경제개혁을 보다 적극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부 국제 정치학자들은 서방세계의 미온적인 대소 경제지원이 소련의 경제난을 악화시키고 쿠데타로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미국도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에 보다 관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소련의 「불확실성」 때문에 대소 경제지원을 주저해왔다. 미국의 이같은 정책으로 독일을 제외한 대부분의 서방선진국들도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에 인색했었다. 소련의 강경보수화 움직임이 일단 실패로 끝났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를 바탕으로 한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정착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소련의 쿠데타로 한때 냉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렸었으나 냉전구도는 일단 청산되었다고 볼수 있다. 소련 지도부가 앞으로 어떤 외교정책을 추구할 것이냐에 따라 국제정치 기류가 크게 바뀌겠지만 소련이 보다 개방화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국제정치의화해무드는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의 「피플파워」는 공산주의로의 회귀를 거부했다. 소련국민들은 보다 개방된 민주주의 사회를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세계지도가 하나의 「민주주의」 세계로 통합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