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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토] 에이핑크 정은지, 목소리 연기 도전

    [포토] 에이핑크 정은지, 목소리 연기 도전

    에이핑크 멤버 정은지가 11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영화 ‘세이빙 산타’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세이빙 산타’는 차세대 발명가를 꿈꾸는 사고뭉치 요정 버나드(수호)가, 악당 네빌(신동엽)에 의해 납치된 산타클로스를 구하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3D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여성가족부에서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다.같.이(다르지 않으니까, 같으니까, 이미 우리니까)’의 공익 캠페인 후원작으로 선정된 ‘세이빙 산타’는 방송인 신동엽, 엑소 수호, 에이핑크 정은지가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올 겨울 동심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되는 ‘세이빙 산타’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서울신문, 113년 전통의 노벨상 시상식에 가다

    서울신문, 113년 전통의 노벨상 시상식에 가다

    ‘지옥의 상인’으로 불린 알프레드 노벨은 1895년 11월 27일 유언장을 완성했다. 유언장에는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면서 얻은 달갑지 않은 오명을 인류에 대한 공헌으로 극복하기 위해 전 재산을 바쳐 상을 만들겠다는 뜻을 담았다. 하지만 정작 노벨이 그해 12월 10일 협심증으로 숨지자 스웨덴 국왕과 언론은 “스웨덴의 재산을 나눠 주는 것은 비애국적인 처사”라고 비난했다. 당시 노벨의 유산은 3122만 5000크로나(2010년 기준 가치 2억 5000만 달러·약 2630억원)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노벨의 5주기인 1901년 12월 10일 스웨덴 왕립 음악 아카데미에서 첫 노벨상 시상식이 열렸다. 엑스선을 발견한 뢴트겐(물리학상), 적십자의 아버지 앙리 뒤낭(평화상) 등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그리고 113년째인 10일(현지시간) 노벨상 시상식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노벨재단은 시상식과 만찬에 전 세계 언론사를 대상으로 엄격한 심사를 거쳐 매년 12곳만을 초청한다. 노르웨이에서 열리는 평화상 시상식에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수상 당시 공식 대표단이 참석한 바 있지만 스톡홀름에서 진행되는 시상식과 만찬을 포함한 메인 행사 전체에 국내 언론이 초청받은 것은 113년 노벨상 역사상 서울신문이 처음이다. 오후 4시 30분 로열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모차르트 행진곡 D장조(K.249)를 연주하는 가운데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단상에 차례대로 올랐다. 참석한 수상자는 모두 11명. 문학상 수상자인 캐나다 단편작가 앨리스 먼로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고 딸인 제니 먼로가 대신 수상했다. 시상식에는 스웨덴 국왕 부처와 왕족, 왕립 아카데미 회원들, 각국 대사 등 국내외 귀빈 1570명이 참석했다. 칼 헨드릭 헬딘 노벨재단 이사장은 환영사에서 “기아와 빈곤, 질병, 지구온난화 등 수많은 과제들이 인류 앞에 산적해 있지만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중하는 동시에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아무런 목적이 없어 보이는 기초과학은 언제나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고 강조했다. 며칠 전 세상을 떠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1993년 평화상 수상)에 대한 추모사도 잊지 않았다. 시상식은 분야별 노벨위원장들이 스웨덴어 또는 영어로 올해 수상자에 대한 헌사를 한 뒤 노벨 메달과 증서를 칼 구스타브 16세 스웨덴 국왕이 수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상 순서는 물리학, 화학, 생리의학, 문학, 경제학 순으로 나중에 추가된 경제학상을 제외하면 노벨이 유언장에 남긴 순서를 그대로 따른다. 라스 블링크 물리학 위원장은 ‘세상은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크다’는 동화작가 토펠리우스의 150년 전 문구를 인용하며 “올해 물리학상 수상자인 프랑수아 앙글레르와 피터 힉스의 짧은 논문은 갈 길을 잃었던 물리학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하며 인류가 우주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선물했다”고 추어올렸다. 행사 내내 수상자들에 대한 존경과 축하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시상식장은 스웨덴의 사계를 형상화한 플로리스트 헬렌 마그누손의 꽃 작품으로 장식됐다. 노벨이 말년을 보낸 이탈리아 산레모시가 매년 보내오는 장미꽃 1만 7000여 송이의 향기가 가득했다. 스톡홀름 박건형 기자 kitsch@seoul.co.kr
  • [포토] 신동엽, 19금 잠시 내려놓고 ‘전체관람가’ 도전

    [포토] 신동엽, 19금 잠시 내려놓고 ‘전체관람가’ 도전

    방송인 신동엽이 11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열린 애니메이션 영화 ‘세이빙 산타’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 참석해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 ‘세이빙 산타’는 차세대 발명가를 꿈꾸는 사고뭉치 요정 버나드(수호)가, 악당 네빌(신동엽)에 의해 납치된 산타클로스를 구하기 위해 시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3D 애니메이션 작품이다. 여성가족부에서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다.같.이(다르지 않으니까, 같으니까, 이미 우리니까)’의 공익 캠페인 후원작으로 선정된 ‘세이빙 산타’는 방송인 신동엽, 엑소 수호, 에이핑크 정은지가 목소리 연기에 참여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올 겨울 동심을 자극할 것으로 기대되는 ‘세이빙 산타’는 오는 19일 개봉한다. 문성호PD sungho@seoul.co.kr
  • [오늘의 눈] 노벨상은 ‘과거’다/박건형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노벨상은 ‘과거’다/박건형 사회부 기자

    피터 힉스 영국 에든버러대 명예교수는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시청사에서 진행된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연설에서 “내 이론이 입증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이디어가 현실에서 증명되기 위해서는 우주 탄생 직후의 환경을 그대로 재현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은 늘어났고, 슈퍼컴퓨터와 가속기가 개발되자 130억년 전 우주를 볼 수 있는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등장했다. 힉스가 논문을 쓴 지 50여년 만인 올해 노벨상을 받은 것은 황당한 아이디어를 이어서 발전시켜준 후배들 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디지털카메라에 널리 쓰이는 고체촬상소자(CCD)를 발명한 윌러드 보일은 2009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 연설에서 “내 발명품이 나를 가장 감동시킨 순간은 CCD를 장착한 화성 탐사선이 찍은 화성 표면을 봤을 때”라고 밝혔다. 보일이 CCD를 발명한 것은 45년 전이니 자신의 연구가 화성 탐사에 사용될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2000년 물리학상 수상자 잭 킬비가 집적회로(IC)를 발명한 것은 1958년이었고, 2007년 화학상을 받은 게르하르트 에르틀이 하드디스크의 원리인 ‘거대자기저항’을 발견한 것은 1980년대였다. 1901년부터 지금까지 모두 876명(두 차례 받은 사람을 제외하면 847명)의 노벨 수상자가 배출됐다. 노벨상은 백발의 노학자에게 ‘앞으로 잘하라’고 주는 상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상이다. 그가 한 일이 인류의 삶을 얼마나 윤택하게 했는지, 얼마나 많은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였는지에 대한 보상이다. 수상자들의 연구는 대부분 당시 학계의 주류와는 거리가 있다. 대부분의 수상자가 최소한 20년에서 5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에야 수상하는 것이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수상 업적을 내고 10년 이내에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DNA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과 로버트 크릭, 그래핀을 발견한 콘스탄틴 노보셀로프와 앙드레 가임 정도에 불과하다. 노벨상을 염원하는 한국의 꿈은 최소한 향후 10년 내, 아니 20년 내에는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특정 분야를 주도하는 한국인이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도, 대학도 ‘노벨상’ 노래를 부르면서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노벨상은 좀 더 잘 만들거나 개선하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다. 텔레비전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텔레비전이고, 반도체는 아무리 고성능화해도 반도체다. 그건 산업경쟁력이지 노벨상의 과학은 아니다. ‘획기적인 전환점’은 정형화된 시스템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지금 잘나가는 분야에서 연구를 잘하는 사람보다 괴짜나 황당한 학생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은 훨씬 높다. 물론 어려운 얘기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는 ‘아무도 내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였다. 그래도 그들은 연구를 할 수 있었고 노벨상을 받았다. 스톡홀름 kitsch@seoul.co.kr
  • 34년간 조사한 ‘치매 예방 키워드 베스트 5’(英 연구)

    34년간 조사한 ‘치매 예방 키워드 베스트 5’(英 연구)

    더욱 건강한 2014년을 위한 ‘치매 예방 키워드’, 어떤게 있을까? 최근 영국 카디프의과대학연구팀은 30년이 넘는 오랜 연구 끝에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5가지 키워드를 공개했다. 연구팀이 소개한 ‘치매예방 키워드 베스트5’는 규칙적인 운동, 금연, 적은 음주, 적절한 몸무게 유지, 건강한 식습관 등이다. 1979년부터 34년간 2345명을 대상으로 운동과 과일, 야채를 먹는 습관, 적정 체중 유지, 적은 음주와 금연 등의 생활 습관을 조사한 결과, 4가지 키워드 이상을 지키는 사람은 조사대상 전체의 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가 이뤄진 34년 동안 5가지 키워드를 지키는 모두 사람은 조사대상의 1% 뿐이었으며, 이들 중 치매에 걸린 사람은 13%,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12%,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은 6% 정도인 것으로 나타났했다. 연구를 이끈 피터 앨우드 박사는 “위의 생활습관을 잘 지킬 경우 치매 발병률을 70% 가까이 낮출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를 모두 지키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며, 대부분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쁜 습관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건강한 생활습관은 건강한 신체와 직결돼 있다. 특히 5가지 키워드 중 치매 예방에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운동이며, 이러한 습관들은 심장질환 등 기타 질병 역시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알츠하이머사회연구센터의 동 브라운 박사는 “우리는 심장에 좋은 것이 뇌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번 연구는 건강한 생활이 치매의 발명을 확실하게 낮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에는 약보다 지중해식 식단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분석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최근 ‘역학 저널’(journal Epidemiology)에 실린 논문 12편 중 9편의 논문이 올리브오일과 생선 등이 포함된 지중해 식단이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며 뇌의 노화를 방지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미국 허핑턴포스트 등이 보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치매 예방 베스트 키워드 TOP5(英 연구)

    치매 예방 베스트 키워드 TOP5(英 연구)

    더욱 건강한 2014년을 위한 ‘치매 예방 키워드’, 어떤게 있을까? 최근 영국 카디프의과대학연구팀은 30년이 넘는 오랜 연구 끝에 치매를 예방할 수 있는 5가지 키워드를 공개했다. 연구팀이 소개한 ‘치매예방 키워드 베스트5’는 규칙적인 운동, 금연, 적은 음주, 적절한 몸무게 유지, 건강한 식습관 등이다. 1979년부터 34년간 2345명을 대상으로 운동과 과일, 야채를 먹는 습관, 적정 체중 유지, 적은 음주와 금연 등의 생활 습관을 조사한 결과, 4가지 키워드 이상을 지키는 사람은 조사대상 전체의 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조사가 이뤄진 34년 동안 5가지 키워드를 지키는 모두 사람은 조사대상의 1% 뿐이었으며, 이들 중 치매에 걸린 사람은 13%,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12%, 심장질환을 앓는 사람은 6%에 불과했다. 연구를 이끈 피터 앨우드 박사는 “위의 생활습관을 잘 지킬 경우 치매 발병률을 70% 가까이 낮출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이를 모두 지키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며, 대부분은 30년이 넘는 시간동안 나쁜 습관을 전혀 바꾸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어 “건강한 생활습관은 건강한 신체와 직결돼 있다. 특히 5가지 키워드 중 치매 예방에 가장 효과가 좋은 것은 운동이며, 이러한 습관들은 심장질환 등 기타 질병 역시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알츠하이머사회연구센터의 동 브라운 박사는 “우리는 심장에 좋은 것이 뇌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이번 연구는 건강한 생활이 치매의 발명을 확실하게 낮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는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에는 약보다 지중해식 식단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 분석결과가 공개되기도 했다. 최근 ‘역학 저널’(journal Epidemiology)에 실린 논문 12편 중 9편의 논문이 올리브오일과 생선 등이 포함된 지중해 식단이 맛도 좋고 영양도 풍부하며 뇌의 노화를 방지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미국 허핑턴포스트 등이 보도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여대생이 만든 ‘지하철 성추행 방지 옷’ 화제

    여대생이 만든 ‘지하철 성추행 방지 옷’ 화제

    싱가포르의 한 여성이 지하철 등 대중교통 안에서 성추행을 피할 수 있는 특별한 의상을 제작했다고 공개해 눈길을 모으고 있다. 타이완매체의 4일자 보도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한 여대생이 공개한 ‘지하철 전용 성추행 방지 러닝’은 러닝셔츠를 연상케 하는 외피에 뾰족한 돌기를 달아 성추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능을 가졌다. 마치 고슴도치처럼 독특한 디자인의 이 특수의상은 특히 사람들이 몰리는 출퇴근 시간에 빈번하게 발생하는 성추행 때문에 곤욕을 겪는 여성들에게서 매우 환영받고 있다. 지금까지 성추행을 방지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이 소개돼 왔지만, 이 특수의상은 그 어떤 도구보다도 ‘철저하고 원천적인’ 피해 방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 이를 발명한 싱가포르국립대학의 첸(Chen)양은 “공상과학영화에 등장하는 여러 형태의 의상을 참조했고, 그 결과 탄성이 있는 ‘못’을 옷 전체에 박아 넣기로 결정했다”면서 “이 모습을 본따 ‘스파이크 어웨이’(Spike Away)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이 옷을 입고 지하철을 타 보니 남자들이 가까이 오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승객들도 접근이 어려워서 붐비는 곳에서도 여유롭게 자리를 차지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45년 전 최초 ‘마우스’는 이렇게 탄생했다…마우스 비사(祕史) 화제

    45년 전 최초 ‘마우스’는 이렇게 탄생했다…마우스 비사(祕史) 화제

    1968년은 여러모로 격동의 시기였다. 한반도는 무장공비 청와대 피습, 미국 푸에블로 호 나포, 울진·삼척 무장 공비 침투 등으로 긴장감이 맴돌았고 헬렌 켈러와 마틴 루터 킹이 세상을 떠났으며 제19회 멕시코 올림픽이 개막했다. 그리고 12월 9일 미국 컴퓨터 컨퍼런스에서 인류 제3의 손(?)인 ‘마우스(Mouse)’가 세상에 첫 모습을 드러낸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 온라인매체 허핑턴 포스트는 오늘 날 생활 필수품이 된 마우스가 세상에 등장하기까지 흥미진진한 과정을 9일 보도했다. 이 역사적인 발명품은 미국 스탠포드연구소(SRI)의 더글러스 엥겔바트(Douglas Engelbart) 소장과 동료 빌 잉글리시(Bill English)의 오랜 합동연구 끝에 탄생됐다. 이미 1963년 마우스 초기 형태가 나왔었지만 당시 미국 과학처 관계자의 “키보드 입력도 불가능한 그런 쓸모없는 기계를 누가 쓰지? 투자 받을 생각이라면 단념해”라는 독설은 엥겔바트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은 엥겔바트 뚝심은 오늘 날 우리에게 크나큰 혜택으로 돌아왔다. 이제 마우스 없는 컴퓨터를 상상할 수 있는가? 초기 마우스는 나무형태로 수직으로 맞물린 톱니바퀴로 커서를 움직이는 방식이다. 다소 투박하지만 그 만큼 클래식한 묵직함이 매력적이다. 마우스(Mouse) 명칭에 유래에 대한 다양한 가설도 재밌다. 흔히 몸통에 꼬리가 달린 모습이 ‘쥐’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엥겔바트가 ‘마우스’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설이 유력하지만 엥겔바트는 이를 언급한 적이 없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우리 중 누가 마우스라고 처음 이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이유도 잘 모르겠다”며 “아무튼 그렇게 명칭이 굳어져버려 미안한 감이 있다. 이제 되돌리긴 힘들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엥겔바트는 마우스뿐 아니라 ‘이메일’, ‘워드 프로세스’, ‘하이퍼텍스트’ 등의 초안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한 컴퓨터 업계 선구자였다. 안타깝게도 그는 마우스 발명에 대한 로열티는 거의 받지 못했는데 특허권을 가지고 있던 스탠퍼드 연구소가 마우스를 대중용이 아닌 전문기기 용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애플(Apple)의 스티브잡스는 마우스의 잠재력을 알아봤고 1983년 이를 4만 달러라는 헐값(?)에 사들였다. 이때 분배받은 1만 달러가 마우스 발명 공로로 엥겔바트가 받은 수익 전부다. 이후 마우스는 약 10억 개가 넘게 팔렸고 1987년 특허가 만료됐다. 속이 상할 법도 하지만 엥겔바트는 “PC 발전에 공헌한 것으로 만족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엄밀하게 최초 마우스는 1952년 캐나다 해군에서 먼저 발명됐다. 트랙볼(track ball)이란 이름의 이 기기는 캐나다 해군 군사 비밀 프로젝트인 DATAR(Digital Automated Tracking and Resolving)에 참여했던 톰 그랜스톤(Tom Cranston), 프레드 롱스태프(Fred Longstaff), 케년 테일러(Kenyon Taylor)가 개발했다. 그러나 이는 비밀 군사 프로젝트였기에 특허 출원되지 못했고 오늘 날 우리가 사용하는 ‘볼 마우스’ 형태를 처음 개발한 건 바로 엥겔바트였기에 그의 제품을 최초 마우스로 본다. 사진=http://commons.wikimedia.org 캡처 조우상 기자 wscho@seoul.co.kr
  • 아름다운 이유, ‘이동식 지지장치를 갖는 정수기’ 특허출원

    아름다운 이유, ‘이동식 지지장치를 갖는 정수기’ 특허출원

    아름다운 이유의 직원들이 발명한 ‘이동식 지지장치를 갖는 정수기’가 특허를 받았다. 업체는 특허청으로부터 박규진, 박정진 등 2명이 제출한 ‘이동식 지지장치를 갖는 정수기’의 최종특허결정서(특허출원번호 10-2013-0145243)를 받았다고 밝혔다. 특허를 받은 이동식 지지장치를 갖는 정수기는 정수기의 물받이케이스가 좁아서 물을 받을 시 떨어질 위험이 있다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용기의 크기에 따라 받침부재의 면적을 조절할 수 있도록 고안됐다. 이에 보다 손쉽게 냄비, 컵라면 등 다양한 크기의 용기에 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 발명품은 ▲본체의 전면에 콕밸브가 설치되도록 함몰 형성되는 요입부 ▲콕밸브에서 배출되는 물을 수용하는 물받이케이스 ▲물받이케이스에 안치돼 상측에서 흐르는 물이 통과하는 받침부재 ▲안치되는 용기의 크기에 따라 면적이 조절되는 면적조절부가 모두 포함된다. 이번 특허 결정으로 아름다운 이유는 향후 정수기업체와 협력해 제품화에 힘쓰며 새로운 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한편 2009년 창립한 아름다운 이유는 웹에이전시 및 인쇄 온오프라인 토탈솔루션 업체다. 현재 온라인 쇼핑몰과 인쇄공장을 운영하며 LG전자, 오라클, 국민은행, 국립암센터, 경찰청, 아이맥스플러스 등 다수의 협력사와 일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에어백 달린 스마트폰 케이스가 나왔다고?

    에어백 달린 스마트폰 케이스가 나왔다고?

    고가의 스마트폰. 실수로 떨어뜨려 액정화면이 깨져 비싼 돈을 주고 수리해본 사람이라면 정말 에어백이라도 달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에어백을 장착한 스마트폰 케이스가 등장해 주목을 받고 있다. 5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동영상 사이트에 게재된 에어백 달린 스마트폰 케이스에 관한 동영상이 네티즌들의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영상을 보면 혼다의 한 직원이 액정화면이 훼손된 자신의 스마트폰에 담긴 고양이와 찍은 자신의 사진을 처량하게 처다보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이를 통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스마트폰을 보호할 케이스를 발명하기 위한 실험에 돌입한다. 그는 건물 꼭대기에서도 떨어뜨려도 안전한 케이스를 만들기 위해 에어백이 장착된 케이스를 떠올렸고 다양한 프로토타입 모델을 만들어 실험했다. 마침내 그는 ‘케이스 앤’(Case N)이라는 초소형 에어백이 6개나 달린 케이스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가 만든 케이스는 일반적인 것보다 부피가 상당히 커 휴대성은 떨어져보인다. 사실 이를 개발한 일본의 자동차업체 혼다는 자신들의 최신 차량인 ‘앤 웨건’의 안정성을 홍보하기 위해 콘셉트 제품으로 만든 것이다. 즉,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때 느꼈던 그 안타까운 마음처럼 광고에 차량의 안전에도 신경쓰길 바란다는 암시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다. 한편 혼다는 이 콘셉트 케이스를 상용화할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많은 네티즌은 어서 빨리 이처럼 스마트폰을 완벽하게 보호할 케이스가 출시되길 희망하고 있다. 사진=혼다/유튜브(http://youtu.be/Ohp_PbYghWE)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누구나 원하는 제품 뚝딱… 청년 창업시대 활짝

    누구나 원하는 제품 뚝딱… 청년 창업시대 활짝

    ‘3차 산업혁명’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최근 3D프린팅이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사실 개인이 이 방식으로 아이디어 제품을 만들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행복동행’의 일환으로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SK텔레콤(SKT)이 우주인 후보로 유명한 고산씨와 손잡고 예비 창업자들이 3D프린터를 맘껏 이용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3일 문을 연 ‘SK팹랩(Fab Lab)서울’을 통해서다. 이날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 5층 고씨가 운영하는 ‘타이드 인스티튜트 아카데미’에서는 SK팹랩서울 현판식이 열렸다. SK팹랩서울은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 개발 등 정보통신기술(ICT) 관련 지원에 편중돼 있던 기업의 창업 지원을 하드웨어 개발에까지 확장하기 위해 SKT가 타이드 인스티튜트와 함께 만든 3D프린터 시제품 제작소다. 여기에는 고씨를 비롯, 3D프린팅 및 창업 지원 전문가 10명가량이 상주하며 제품 스캐닝, 프린터 조작, 후가공 작업 등을 돕는다. 장비는 3D프린터 5대와 제품 조각에 쓰는 CNC라우터 2대, 도색용 에어부스 1대 등 총 13대가 구비돼 있다. 현장에서는 3D프린팅 시연도 진행됐다. 3D프린터들은 행사 전부터 설계도에 따라 부지런히 제품을 인쇄해 내고 있었다. 노란 플라스틱 원판 형태의 제품을 인쇄 중이던 프린터에서는 약 1시간 후 SF영화처럼 탁상용 스탠드의 밑받침이 모습을 거의 갖췄다. 완성된 밑받침을 미리 제작해 둔 다른 부품과 결합하고 배선 작업 등을 거치면 스탠드 시제품이 되는 것이다. 행사에 참석한 전국학생창업네트워크 회장 송다현(20·서울대 동양사학과)씨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게 있어서 청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반갑다”며 “청년 창업이 정보기술(IT) 분야에 편중돼 있었는데 3D프린터를 통해 다른 분야도 활성화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씨는 “3D프린터로 누구나 원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됐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구나’라는 표현”이라며 “모바일 기기나 PC를 누구나 가지면서 상상도 할 수 없이 세상이 바뀌고 새로운 산업이 따라 생긴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제작소는 행복창업지원센터 포털(www.sktincubator.com)에서 예약한 뒤 이용할 수 있다. 올해 말까지는 SKT 창업 지원 프로그램 참여자를 대상으로 운영되며,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일반인에도 개방될 예정이다. 이형희 SKT CR부문장은 “3D프린터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발명품보다 인류 사회의 더 큰 변화를 이끌 물건”이라며 “창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첫 출발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bckang@seoul.co.kr
  • ‘민원인이 편하게’… 규제 17건 제거 완료

    특허청이 발명가와 출원인 등에게 ‘손톱 밑 가시’처럼 불편을 줬던 규제를 찾아내 개선했다. 25일 특허청에 따르면 11월 현재 17개 규제개선 과제를 완료했다. 지난 6월엔 ‘출원인 주소 자동변경제도’를 도입했다. 이사 등으로 주소가 변경됐을 때 출원인이 변경 신청을 하면 안전행정부 시스템과 연계, 최신 주소로 자동 업데이트된다. 이전까지는 제때 주소 변경이 이뤄지지 않아 특허료 납부 고지서가 과거 주소로 발송돼 특허료 미납으로 특허권이 소멸되는 문제 등이 생겼다. 특허등록증 온라인 재교부 서비스도 시행해 우편 또는 방문을 통해 유료로 발급받던 것을 집이나 사무실에서 온라인으로 신청, 무료로 재발급받을 수 있도록 고쳤다. 또 지식재산 창출·활용을 위해 국가로부터 기술개발 지원을 받은 1인 창조기업을 우선심사 대상에 포함해 조기 특허권 획득이 가능해졌다. 산업재산권 정보 이용 시 개인과 중소·중견기업은 50%까지 수수료를 깎아 준다. 국유특허 사용계약 시 미리 실시 수량을 예측해 실시료를 납부하던 방식을 개선, 계약기간 만료 후 사용한 수량에 대해 실시료를 납부토록 해 부담을 줄였다. 직무발명보상 우수기업 인증제를 도입해 특허출원 시 우선심사 및 각종 정부지원 사업 우대 등 혜택도 준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데스크 시각] 종이는 당신의 친구다/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데스크 시각] 종이는 당신의 친구다/손원천 문화부 전문기자

    종이는 ‘한물간’ 도구다. 최소한 인류 문명의 발전 과정에서 보자면 그렇다. 105년 중국의 채윤이 발명한 종이는 쉽고 편한 파급력을 앞세워 근 2000년 동안 인류 문명이 획기적으로 진화하는 데 큰 몫을 했다. 한데 바로 그 장점 탓에 고사 직전의 위기에 처했다. 한 수 위의 ‘쉽고 편한 파급력’으로 무장한 온갖 스마트 기기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 대단한 아이러니다. 그 종이를 이용하는 대표적인 매체가 신문과 책이다. 그러니 신문의 몰락을 논하는 말을 자주 듣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책도 예외일 순 없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얼마 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한국인의 하루 평균 독서 시간은 평일 26분이었다. 이에 견줘 인터넷은 2.3시간, 스마트폰은 1.6시간에 달했다. 독서 시간이 줄다 보니 출판 시장도 덩달아 불황의 늪에서 허덕댄다. 한데 최근 들었던 한 강의는 스러져가는 종이의 가치를 되새기기에 충분했다. ‘뇌 과학으로 본 셀프 리더십’이란 제목의 강연이었다. 요지는 이렇다. 영상매체를 통해 전달된 정보는 뇌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 전자책의 경우처럼 뇌가 보는 것 자체에만 치중하기 때문이다. 반면 신문이나 책을 통해 글을 읽으면 머리 앞쪽, 그러니까 전두엽에 오래 저장된다. 아울러 상상력과 창의력이 커지는 등 어린이들의 뇌 발달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 강연은 초등학교 학부모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스마트 시대’에 쌓인 피로를 풀려는 노력들이 사회 저변에서 진행되고 있었다는 게 놀랍고 또 다행스럽다. 이 대목에서 자연스레 ‘앞쪽형 인간’이 떠오른다. 2008년 나덕렬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가 출간한 동명의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되면서 유행했던 용어다. 뇌에는 앞과 뒤가 있는데 뒤쪽 뇌는 충동과 욕구 등 인간의 희로애락을 담당한다. 감각을 통해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한다. 반면 앞쪽 뇌는 뒤쪽 뇌에 저장된 정보를 종합 편집한다. 행동을 결정하고 충동이나 욕구를 조절하는 고차원적 업무를 담당한다. ‘앞쪽형 인간’은 앞쪽 뇌가 발달했다. 수동적 의존적인 ‘뒷쪽형 인간’에 견줘 창조적이고 능동적이다. 앞쪽형 인간이 되려면 평소 신문이나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게 책의 주장이다. 종이를 멀리하면서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디지털 치매’가 대표적이다. 디지털 기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뇌 기능 손상으로 인지 기능을 상실하는 일종의 치매다. 스마트 미디어들이 범람하는 마당에 머지않아 사회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긴다. 스마트 기기를 통해 길을 찾고 책을 읽고 세상을 보는 게 정말 ‘스마트한’ 삶일까. 엔지니어들이 모든 걸 통제하는 공간에서 나의 역할은 뭘까. 종이와 달리 디지털 시대에 스마트해지는 건 디지털 기기일 뿐 인간은 아닌 듯하다. 몸담고 있는 일터 얘기를 하자니 쑥스럽다. 제 자랑하는 것 같아 썩 내키지도 않는다. 한데 굳이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까닭은 이제 우리 사회가 스마트 시대의 피로도를 정색하고 짚어볼 때가 됐다는 생각에서다. 디지털이 쌓은 피로를 치유하는 건 결국 아날로그일 터. 분명한 건 종이는 당신의 친구란 거다. 멀리한다고 친구가 당신을 욕할 리 없지만, 시간이 흘러 후회하는 건 친구를 멀리했던 당신일 수 있다. angler@seoul.co.kr
  • 치킨 아로마?…美 켄터키 ‘치킨 향초’ 한정판 화제

    치킨 아로마?…美 켄터키 ‘치킨 향초’ 한정판 화제

    차세대 아로마 요법은 치킨 냄새가 될지도 모르겠다.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치킨. 일부에선 인류 최대의 발명이라고까지 평하는 그런 치킨의 냄새를 담은 향초가 인터넷상에서 한정 판매되고 있다고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22일(현지시간) 미국 USA투데이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켄터키주(州)의 지역 활성화를 위한 웹사이트인 ‘켄터키 포 켄터키’에서 이날 오전 10시 30분부터 치킨 향초를 비롯한 총 3종의 향초 판매를 시작했다. 25개만 한정 생산된 이 향초는 켄터키 지역 유명 인사인 캐시 워킹이란 여성이 천연 콩기름에서 추출한 원료에 프라이드치킨향을 가미해 만든 것으로 실제 초를 켜면 켄터키프라이드치킨 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한편 이 웹사이트에서는 치킨 향초 이외에도 주(州)내 특산품인 ‘에일 에잇’(Ale-8)이라는 진저에일과 켄터키 경마장을 떠올릴 수 있는 박하술 향기가 가미된 향초가 동시 판매되고 있다. 사진=켄터키 포 켄터키 캡처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제빵인생 50년 권상범 제과명장

    [김문이 만난사람] 제빵인생 50년 권상범 제과명장

    빵은 오래전부터 서양 사람들의 식탁에 단골로 등장한 대표적인 메뉴다. 큰 덩어리의 빵을 손으로 찢은 뒤 버터와 잼을 발라 먹는 장면은 영화에도 자주 등장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쌀을 주식으로 소비하는 우리 사회에서도 최근 들어 빵 중심의 식문화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빵집에서 만나 데이트를 하고 케이크로 파티를 하며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빵은 어느새 일상에서 친근한 존재가 됐다. 배고플 때 빵집 앞을 지나노라면 다양한 모양의 예쁜 빵과 막 구워낸 빵의 향기에 입 안에서 침이 절로 넘어간다. 밀가루와 발효를 통해 환상의 하모니를 빚는 대한민국 제과명장 권상범(68)씨. 그는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50년간 빵을 만들어 와 제빵 업계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다. 단돈 2000원이라는 월급으로 제빵 인생을 시작해 지금은 연간 20억여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성장했다. 특히 그가 서울 홍대 앞에서 30년 가까이 운영했던 ‘리치몬드제과점’은 여전히 ‘추억의 빵집’으로 남아 있다. 그의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다. 요즘 번듯한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젊은이들과는 분명 다른 점이 있을 터. 지난 13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리치몬드제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입구 벽에는 그의 부인이 직접 그린 ‘제빵명장’이라는 제목의 그림이 걸려 있었다. 최근에는 어떤 일로 바쁜지 물었더니 “끊임없이 연구하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남보다, 다른 나라보다 뒤떨어지면 결코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빵에 관해 배울 것이 있다면 어느 나라든 가서 견학하고 연구하고, 필요하면 우리의 기술도 전수해 준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제빵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해서는 “빵 분야에서는 경제 선진국 주요 7개국(G7)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외국에서 우리 기술을 배우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얼마 전에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에서 온 연수생들에게 한 수 가르쳤다며 웃었다. “우리나라 제빵 수준은 1990대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섰습니다. 그만큼 소득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제과와 빵을 선호합니다. 따라서 기술도 그 입맛에 맞게 더욱 발전하게 되지요.” 제빵 업계의 미래는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미국이나 유럽, 일본과 유사한 형태로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프랜차이즈에서 생산된 빵이 아니라 직접 손맛으로 만든 수제 빵이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게 될 거라고 장담했다. 최근 들어 기존의 빵집이 프랜차이즈에 밀리는 현상에 대해서는 “우리 제빵인들이 노력하지 않아 어느 정도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있다. 앞으로 빵의 소비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할 때 연구 개발을 통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취업을 하지 못한 젊은이들도 제빵 분야를 ‘3D’ 업종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에서 한국 대학생이 빵을 주식으로 하는 유럽을 제치고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제빵 기술의 선진화를 위해 20년 전부터 제빵기술학원 학생들에게 제빵 교육을 하며 후진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어떻게 하면 명장이 되느냐고 물었더니 “제빵 업계에 20년 이상 종사해야 하며 발명특허 관련 논문, 신제품 개발, 대회 입상 경력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돼 결정된다”면서 “누구나 명장에 도전할 수 있지만 아무나 되는 것은 아니다. 각고의 노력과 정성, 꾸준한 연구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의 제빵 인생은 올해로 50년째다. 경북 봉화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아버지를 따라 강원 영월군으로 이사했다. 당시 부친은 텅스텐 광산으로 유명했던 영월 상동광업소 내 국립의료원 원무과에서 일했다. 1949년 어느 날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병원에 들이닥쳐 부상자 치료를 요구했다. 병원 직원들은 상황을 따져볼 겨를도 없이 사람들부터 살리고 보자며 부상자를 치료해 줬다. 며칠 뒤 누군가가 ‘병원에 빨갱이가 있다’고 당국에 신고하는 바람에 부친을 포함한 23명이 몰살되고 말았다. “25살의 젊은 어머니, 어머니 배 속에 있던 막내 여동생, 어린 첫째 여동생과 저를 남겨두고 아버지는 그렇게 떠났습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삯바느질을 해 가며 우리 식구들을 키웠지요. 저는 종가 할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우며 봉화초등학교를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집안일을 돕느라 상급학교 진학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산에 가서 땔감을 해 오고 상점에서 점원 일 등을 하다가 16살 때 외갓집이 있는 경북 의성으로 갔다. 당시 외가는 다과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방학 때마다 외가의 다과점에서 일을 거들다 보니 빵 만들기에 이미 재미를 느끼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 길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1년쯤 외갓집에서 일을 하다 17살 때 좀 더 큰 곳에서 일을 배우고 싶어 대구 광월당에서 1년 정도 기술을 익혔다. 그런 다음 단돈 2000원을 들고 서울로 왔다.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종로 5가에 있는 성림제과에 먹여 주고 재워 주는 조건으로 우선 취직을 했다. 조그마한 제과점이라 공장장과 둘이서 일을 했고 잠은 주로 작업대에서 잤다. 하지만 온갖 고생으로 신경성 위장병을 앓아 몸무게가 20㎏가량 줄어들자 무작정 제과점을 나왔고 추운 겨울날 노숙자와 마찬가지 신세가 됐다. 그래도 열심히 직장을 찾아다녔다. 보름쯤 뒤 당시 조흥은행 본점 앞에 있던 풍년제과에 들어갈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던 같아요. 돈 한푼 없었고 갈 데도 없었고…. 직장을 찾아 종로에서 영등포까지 걸어다녔습니다. 배는 고픈데 날씨는 춥지요, 아마 그때 기차 탈 돈만 있었으면 어머니가 계신 고향으로 내려갔을 겁니다. 그때 뼈저리게 다짐한 것이 ‘옮길 직장을 잡아 놓지 않고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풍년제과에서 받은 첫 월급은 2000원이었다. 그러나 일이 끝나도 쉬지 않고 혼자 남아 열심히 청소를 하는 등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본 지배인이 한달 만에 월급을 3000원으로 올려 줬다. 처음에는 빵 반죽을 주로 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다음 단계의 기술을 전수해 줄 법도 한데 그럴 기미가 도저히 보이지 않자 눈치껏 어깨너머로 배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때 그는 ‘나중에 돈을 벌면 꼭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다짐했다. 그 무렵 반죽 온도 계산법을 스스로 익혔다. 아울러 당시 대표적인 제과 기술자로 평가받았던 김충복 선생에게 케이크 데코레이션 기술을 배웠다. 이와 함께 혼자 연구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시즌 때 사진사에게 돈을 주고 제과점을 돌며 케이크 사진을 찍어 오도록 부탁하기도 했다. 몸과 마음 고생이 심했지만 나름대로의 실력을 쌓아 나갔다. 1972년 10월 김충복 선생의 소개로 풍년제과 수련 생활 7년 만에 삼선동에 있는 나폴레옹제과점 공장장으로 옮기게 된다. 당시 나폴레옹제과점은 생긴 지 2년밖에 안 된 상태였지만 직원 5명과 함께 아침 7시부터 밤 12시까지 쉬지 않고 일한 덕택에 비교적 빠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1973년 제과학교를 수료하고 전국 빵·양과자 품평대회에 나가 6개 부문에서 1등을 휩쓸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내친김에 1975년 나폴레옹제과점 사장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당시 도쿄제과학교에는 300여명의 학생이 있었는데 외국인은 제가 유일했어요. 낮에는 양과자, 밤에는 화과자(和菓子) 만드는 걸 배웠습니다. 현지 제과점에서 실습하는 동안 유럽 제품을 익힐 수 있었던 것이 가장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유학에서 돌아온 뒤인 1979년 9월 그는 아현동 마포경찰서 옆에 ‘나폴레옹제과점’이라는 상호로 가게를 내 독립하게 된다. 이때 내세운 철학이 ‘오늘 만든 빵은 오늘 팔아야 한다’였다. 팔리지 않고 남은 빵은 마포경찰서 전경들에게 간식용으로 돌렸다. 그만큼 자신감과 정성으로 ‘권상범식 빵’을 만들어 나간 것이다. 1992년 상호를 ‘리치몬드제과’로 바꿔 성산동에 본점을 세웠고 이듬해 제과기술학원을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권상범식 빵’은 우리 밀과 유기농 계란 등을 사용해 건강식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제빵도 유행을 타기 때문에 고객의 취향을 앞서 파악하고 연구하는 노력은 필수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빵 굽는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빵의 앞날을 고민한다. 슬하에 2남 1녀를 뒀으며 두 아들은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제빵 업계에서 일하고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권상범 대한민국 제과명장은… 1945년 경북 봉화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18세 때부터 빵 굽는 일을 했다. 서울 삼선동 나폴레옹제과점 공장장(1972~1979)을 지낸 뒤 1979년 리치몬드제과 마포점 창업을 시작으로 자신만의 ‘빵 인생’ 길을 걸었다.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지만 일본 도쿄제과학교 졸업(1975년) 스위스 리치몬드 국립제과학교 수료(1993년), 서울대 보건대학원 외식산업 최고경영과정 수료(1997년) 등의 이력을 쌓았다. 주요 수상으로는 노동부 장관 표창장(2001년), 대한민국 제과명장(2002년), 대통령 표창장(2002년), 서울시장 표창장(2005년), 재정경제부 장관 표창장(2006년), 국민훈장 목련장(2006년) 등이다. 이 밖에 프랑스 리옹 세계 페이스트리컵 대회 한국대표 심사위원 3회(1997, 1999, 2001년), 사단법인 대한제과협회 중앙회 회장(2000년), 제36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제과·제빵 한국대표선수 정지도위원 및 심사위원(2001년), 대한민국 최초 프랑스 요리·제과협회 해외자문위원(2003년), 제40회 전국기능경기대회 제과제빵 심사위원(2005년) 등으로 활동했다.
  • 23일 지식재산능력시험 10 ~ 50대 2132명 응시

    특허청과 한국발명진흥회가 주관하는 지식재산능력시험(IPAT)이 오는 23일 2132명이 응시한 가운데 치러진다. IPAT는 국내 유일의 지식재산능력 검정시험이다. 이번 시험에는 인하대와 단국대 등 전국 11개 대학에서 단체로 접수한 응시생이 1603명으로 75.2%를 차지했다. 연령대는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하며 이 중 20대가 전체 65.7%에 달했다. 남성(69.3%) 응시자가 여성(30.7%)보다 2배 이상 많다. 최우수 점수 획득자에게 100만원의 상금을 지급하는 등 성적 우수자에게는 시상과 함께 취업 등에 활용할 수 있는 확인서가 발급된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열린세상] 아시아와의 대화/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시아와의 대화/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딱 20년이 지났다. 1993년부터 홍콩, 카트만두, 코임바토르, 치앙마이, 콜롬보, 후쿠오카, 방콕, 하노이 등 아시아 여러 곳에서 우리들은 만났다. 우리의 주제는 한결같았다. 서구식 발전 모델이 지속가능할까? 아시아식 발전 대안은 없을까? 아시아인의 눈으로 아시아를 보자는 큰 틀을 가지고 끝도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20년이 흐르고 이제는 서로 살아온 길에 대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베트남 여교수는 온 가족이 영웅 칭호를 받는 베트남 전쟁공신이었다. 그녀와 우리는 여성 인권 문제만 논의했지 생애 사를 토로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생애를 열자 베트남 전쟁 당시 전시 통신원을 했다는 10대의 그녀 모습이 들어왔다. 소비에트 유학생으로 러시아어가 영어보다 익숙하다는 그녀의 경험도 이채로웠다.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의 문제로 경북 구미시를 방문하면서 그녀는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주지스님과 찻잔을 마주하면서 과거를 털어내었다. 중국인 친구는 중국의 100년 역사 역시 서구 근대화라는 도전에 대한 적응의 역사라고 했다. 교수 부모를 둔 그가 문화대혁명 시기에 내려가 본 농촌은 생활 개선과 생산성 향상이 절실한 과제였다고 했다. 그의 생애사를 통해 본 문화대혁명, 해안도시와 내륙의 발전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고민은 어딘지 조금 다르지만 우리와 비슷했다. 국가를 만들고 발전을 위해 격렬한 토론과 시행착오를 무릅쓰는 인간의 맨 얼굴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는 서구의 발전 모델이 금융 중심이 되어 생산 기반이 약화된 상태로 양극화를 부추기기 때문에 더 이상 ‘모델’이 되기 어렵다고 했다. 대안으로 경쟁보다는 협동과 공동체를 중시했던 아시아의 농촌 ‘전통’을 다시 볼 것을 강조한다. 농촌 공동체의 품이 있어야 도시 중심 발전의 한계를 받아 안을 수 있다는 점과 중국 근대화의 기반이 토지개혁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이데올로기도 사실 따지고 보면 서구 발명품이 아닌가 라고 하면서 아시아적 ‘실사구시’를 강조한다. 우리가 나눈 수많은 대화 중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이유를 짐작할 것이다. 이제는 너무 당연해졌지만 냉전기에는 철의 장막 저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장막이 걷히니 ‘이해’할 수 있는 측면이 더 많이 보인다. 아시아는 제2차 대전, 냉전 해체가 여전히 미완성으로 있다. 경제는 냉전이 해체되었지만 정치는 냉전 상태다. 경제 문제만이 관심일 때는 정치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다. 웃는 낯으로 경제 협력의 얼굴을 하다가도 영문도 모른 채 갈등상태로 내몰린다. 식민지 시대, 제2차 대전의 가해와 피해의 문제를 봉합한 채 경제 협력으로 매진해 오던 한·일 관계도 필요에 따라 갈등 국면이 되었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경제 협력’이라는 편리한 얼굴로 바뀐다. 협력관계를 통해 안정된 평화를 만들어 내겠다는 자발적인 ‘의지’가 없이는 언제 갈등 국면에 휘몰릴지 모른다. 하물며 정치와 경제가 다 냉전 상태인 우리의 평화는 더 불안정하다. 정전 60주년 강원 DMZ 평화 생명포럼에 참석한 태국의 교수는 한국의 비무장지대를 보고는 서울에서 가까운 거리에 그렇게 살벌한 풍경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류와 산업화, 민주화의 성공 이면에 있는 그늘을 본 것이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것에 대해 아시아 친구들이 경제성장을 주로 꼽은 것에 비해 서구인들은 ‘분단국가’가 떠오른다고 했다. 사실 냉전의 벽은 비무장지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21세기의 대한민국 안에서도 냉전의 장벽은 높아지고 말은 험악해진다.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는 의지의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지도자의 애국, 애민 정신이 중요하다. 애국, 애민은 진부한 언어가 결코 아니다. 몇 년 전 인도의 압둘 칼람 대통령을 만난 적이 있다. 장미 정원 모퉁이에 소박한 오두막 정자가 있었다. 인도의 가난한 국민을 위해 기도하는 장소라고 했다. 압둘 칼람 대통령은 국민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줄 때 그 국민도 하나가 되고 그 나라도 하나가 된다는 간디의 말을 깊이 명심하고 있었다. 지도자의 애국과 애민의 마음으로 냉전의 장벽이 낮아지기를 빈다.
  •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정의로운 금융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정의로운 금융

    새로운 금융시대/로버트 실러 지음/노지양·조윤정 옮김/알에이치코리아/456쪽/1만 7000원 오늘날 우리는 금융자본주의라는 세계 질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금융자본주의는 여러 금융기관들이 이끌어 가는 경제 시스템을 말한다. 그 시스템은 지금 잘 작동되고 있을까. 경제위기로 금융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제위기를 촉발시킨 주된 원인이 금융업계의 탐욕과 무책임으로 지목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은 금융위기의 책임자들을 감옥으로 보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한다. 대표적인 예로 2008년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은 금융이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한 나라의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퍼질 수 있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일깨워 주었다. 또한 2011년 미국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 운동은 전 세계 80여개국으로 확산됐다. 이 사건은 결국 일단락됐지만 비난 여론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과 ‘좋은 사회’를 어떻게 연결해야 할까.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는 신간 ‘새로운 금융시대’를 통해 ‘금융’과 ‘좋은 사회’라는, 결코 양립하기 어려운 두 화두를 설득력 있게 풀어 냈다. 금융은 결코 돈을 뺏는 약탈자가 아니며 인류문명을 진보시킨 주체이고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시선으로 접근한다. 또한 금융은 고질적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이 만든 발명품이고 아직 미완성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어차피 써야 한다면 제대로 된 발명품을 만들어 쓰는 게 가장 실리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사회의 발전을 위한 금융의 역할, 즉 금융기관 종사자뿐만 아니라 정책 당국자, 경제학자,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금융의 중요성을 다시금 일깨우고 금융이 올바르게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아울러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넘어가는 금융 현상의 본질, 그리고 금융의 혁신과 개인 투자,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꿀 금융의 미래 등을 저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세심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生과 死 선택권 쥔 인류, 그만큼 책임감도 크죠”

    “生과 死 선택권 쥔 인류, 그만큼 책임감도 크죠”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은 주변에 도와줄 존재가 없다는 걸 일찌감치 깨닫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 나간 나라입니다. 제 소설의 주인공들도 처음에는 어려움에 맞닥뜨렸다가 스스로 키를 쥐고 운명을 극복해 나가죠. 한국 국민들과 닮은 주인공들의 역동성 때문에 한국에서 제 작품이 더 잘 읽히는 게 아닌가 싶네요(웃음).” 벌써 여섯 번째 방한이다. 한국 독자들의 ‘팬심’이 남다르고 그만큼 한국 사랑이 유별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2) 얘기다. 그가 키 17㎝의 초소형 난생인류 ‘에머슈’로 인류의 진화를 내다본 신작 ‘제3인류’(열린책들) 출간과 ‘개미’ 출간 2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다. 15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그는 “한국을 제2의 조국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지녀 나를 이해하는 분들이 (고국에서보다)더 많은 것 같다”며 한국에 대한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제3인류’에도 현대자동차 등 한국산 제품이 등장한다거나 로봇공학을 연구하는 인물이 서울로 떠나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작가는 ‘제3인류’가 “지금까지 집필한 작품 중 가장 대규모의 프로젝트”라며 “‘개미’와 ‘신’에 이어 완전한 세계를 완성시키는 작품으로 집필했고 지구에서의 새로운 인류를 진화라는 관점에서 다뤄보고자 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류의 진화가 여성화, 소형화, 연대감 강화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제 아이디어를 가장 압축해서 보여주는 문장은 ‘예전에는 우리가 진화를 받아들였지만 현재는 우리가 진화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조상들은 질병이나 기후조건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수동적으로 죽느냐 사느냐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우리 세대는 환경오염, 산업화, 인구문제 등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어요. 이렇게 선택권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인류의 큰 행운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인류의 책임감은 커졌고 양심의 모험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작가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양심을 바탕으로 미래 세대가 어떻게 변할지 자문해 보길 바란다”고 전했다. 스스로를 ‘기술지향적인 작가’라 일컫지만 그는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에 깊은 향수와 믿음을 품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책에 대한 찬양과 영적인 것으로의 회귀가 앞으로의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작가는 “책이야말로 가장 천재적인 발명품”이라고 꼽으며 “책이라는 매체 하나로 전 세계에 생각을 전파시킬 수 있고, 책은 사람들을 더욱 지성적, 양심적으로 만들어주는 도구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는 영적인 것, 자연, 고요함으로의 회귀가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인생의 목적은 권력을 갖는 것도 아니고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불교의 불상들을 보면 평온함의 경지를 보여주는 미소가 있잖아요. 그런 평온함이야말로 개인이 인생에서 추구하는 최상의 목표일 것입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용접 자동화 100%… “i시리즈 年 20만대 3교대 준비 끝”

    용접 자동화 100%… “i시리즈 年 20만대 3교대 준비 끝”

    지난 9월 기준으로 현대차의 유럽 자동차시장 점유율은 지난해와 비슷한 3.5%다. 유럽이 재정위기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나름 괜찮은 성적표다. 이는 i30, i20, i10 등 해치백과 소형 모델 위주의 ‘i시리즈’를 앞세워 시장에 순발력 있게 대응한 결과물이다. 특히 소형 i10은 ‘경차 천국’ 유럽에서 현대차의 자존심을 세우는 데 한몫했다. 현대차는 유럽기술연구소에서 개발된 i10의 생산기지를 최근 인도에서 터키로 옮기며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현대차는 내년 유럽시장 회복세를 대비해 최근 터키공장을 7억 5000만 유로(6900억원)를 들여 증설 및 현대화 작업을 마무리했다. 터키 최대 도시 이스탄불에서 동쪽으로 120㎞ 떨어진 항만도시 이즈미트시에 위치한 현대차 터키공장은 1997년 설립돼 ‘글로벌 현대’의 시초가 된 곳이다. 68만 7000㎡ 부지 위에 프레스, 차체, 도장, 의장 공정 등 자동차 생산설비와 부품·물류창고, 출하검사장 등 부대시설을 포함해 건평 12만 3000㎡ 규모의 첨단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공장을 가보면 그 업체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찾아간 터키공장은 현대차의 선전을 대변하듯 생기가 넘쳤다. 2300t짜리 텐더 프레스가 자아내는 굉음과 용접로봇이 쉴 새 없이 튀기는 불꽃은 활력의 증거였다. 평균 연령 29세인 현지 근로자들의 움직임에서도 굼뜬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현지 프로젝트관리팀 신현두 차장은 “용접로봇 147대를 확보해 용접 자동화율 100%를 달성했다”며 “자동차 차체와 엔진, 변속기 등을 한꺼번에 장착하는 ‘섀시 매리지 시스템’이 새롭게 도입돼 생산성도 향상됐다”고 말했다. 진병진 터키생산법인 공장장은 “터키공장은 이번 증설로 연구개발(R&D)-생산-판매를 잇는 유럽 현지화 네트워크를 완성하는 한편 체코공장과 함께 현대차의 유럽 양대 생산 거점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9월 양산에 들어간 i10에 이어 내년 10월엔 i20의 후속모델인 ‘GB’(개발명)도 이곳에서 생산돼 터키공장의 존재감은 더욱 커진다. 지난해 8만 5000여대 생산에 그친 터키공장은 올해 10만 2000여대로 20% 증산이 예상된다. 내년 4월 3교대에 들어가고 신규 모델이 투입되면 연 20만대로 늘어나게 된다. 2년 새 생산량이 두 배 이상 커지는 셈이다. 이즈미트(터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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