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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여행가고 싶다’ 전국에 퍼진 가을 향기

    ‘아~여행가고 싶다’ 전국에 퍼진 가을 향기

    완연한 가을 날씨를 보인 22일 전국의 산과 공원이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붐볐다. 전남 강진군 강진만 생태공원에는 탐방객이 화사하게 피어난 코스모스를 보기 위해 모여들어 너나 할 것 없이 활짝 핀 코스모스를 카메라에 담았다. 서울 마포구 월드컵 공원에는 가을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줄을 이었고, 도봉산에는 단풍이 물든 산을 즐기기 위해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 외에도 전국 곳곳을 물들인 단풍과 활짝 피어난 가을꽃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주말을 맞아 전국이 들썩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살이] 소공동의 추억

    [노주석의 서울살이] 소공동의 추억

    촌놈들만 아는 40년 전 얘기다. 대학 진학 후 시작한 서울살이는 한동안 서울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친구들과의 만남은 으레 역전에서 이뤄졌다. 시간이 흘러 종각이나 명동으로의 진출을 꾀했다. 한 번은 네댓 명이 명동 찾기에 나섰다가 중도 포기했다. 그때 우리는 양복점이 즐비한 고층빌딩 숲에서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헤어진 곳이 소공동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리고 30년 전 결혼식 때 입을 예복을 맞추려고 소공동 맞춤 양복점을 방문해서 치수를 재고, 가봉을 했을 때의 감회를 잊지 못한다. 직장생활을 시내에서 한 덕분에 소공동 일대를 무던히 쏘다녔다. 그 흔한 기념일 제정이나 기념식조차 없지만 지난 12일은 대한제국 건국 120주년이었다. 알다시피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까지 12년 10개월 17일 동안 실재한 이 땅의 처음이자 마지막 제국이다. ‘그놈의’ 식민사관 탓에 오랫동안 잊혔다. 아직도 대한제국이 아니라 조선이 폐망한 것으로 아는 사람이 많다. 대한제국으로부터 국호와 국기를 물려받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격이다. 공교롭게도 소공동 건너편 정동은 흥청거렸다. 때마침 중구청이 주최하는 ‘정동야행’이 열렸기 때문이다. 정동은 고종이 국내 망명지로 택한 러시아 공사관 등 서구 열강의 공관과 학교, 교회를 내세워 이 땅의 새벽을 알린 ‘근대 1번지’로 각광받고 있다. 태종의 둘째딸 경정 공주가 살던 ‘작은공주골’을 한자로 옮긴 소공동은 소박맞은 느낌이다. 사대문 밖 용산이 외국군의 주둔지였다면 소공동은 외빈용 숙소라는 공간사를 품고 있다. 뒤집어 보면 임진왜란 때 왜장 우키타 히데이에가 처음 머물렀고, 명의 장군 이여송이 이어받은 뒤 중국 사신이 묵는 남별궁이 들어섰다. 청의 위안스카이가 12년간 이곳을 중심으로 ‘총독’ 노릇을 하면서 소공동 화교촌의 기원이 됐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소공동 중국집을 기억하는 까닭이다. 고종은 황제국에만 둘 수 있는 천단(天壇)인 환구단과 태조의 신위를 모신 황궁우 그리고 영빈관인 대관정을 소공동에 세웠다. 경운궁(덕수궁)에서 고개만 들면 바라볼 수 있도록 소공동에 건립했다. 정동이 대한제국의 머리라면 소공동은 대한제국의 심장이었다. 정동과 소공동은 일제강점기 된서리를 맞았다. 경운궁은 사쿠라 피는 중앙공원으로 둔갑했고, 환구단은 허물고 호텔을 세웠다. 소공동이라는 지명조차 2대 총독 하세가와 요세미치(長谷川 好道)의 이름을 따 장곡천정으로 바꿨다. 모더니즘의 대표 시인 김광균의 ‘장곡천정에 오는 눈’에 등장하는 ‘찻집 미모사의 지붕’, ‘호텔의 풍속계’, ‘기울어진 포스터’가 당대 소공동의 첨단 풍경이다. 해방 후 도로 지명을 바꿀 때 대한제국은 기억하지 않았다. 소공동에 한 번 잘못 깃든 외빈용 숙소의 장소성은 대한제국의 영빈관인 대관정과 철도호텔 그리고 반도호텔로 이어졌다. 철도호텔은 웨스틴조선호텔, 반도호텔은 롯데호텔의 전신이다. 플라자호텔은 1978년 도심재개발사업 1호로 화교촌 자리에 지어졌다. 지금 대한제국의 심장에는 피가 돌지 않는다. 호텔이 된 환구단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드물고 복원은 요원하다. 황궁우는 한낱 호텔 장식품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공터로 남아 있던 대관정 터와 양복점 빌딩군을 이루던 근대 건물 7채 자리에 또 특급호텔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정동에는 근대의 향기나마 남았지만 소공동의 추억은 흔적마저 사라질 참이다.
  • JB오토리움, 전북 전주에서 대규모 자동차매매단지 홍보관 운영

    JB오토리움, 전북 전주에서 대규모 자동차매매단지 홍보관 운영

    대규모 실내 자동차매매단지인 ‘JB오토리움’ 홍보관이 전북 전주 완산구에서 개관했다. 이에 전북 주민을 비롯한 전국 각지의 방문객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자동차매매단지 JB오토리움에 기대를 품고 있는 이유는 다양하고 차별화된 자동차관련 종합시설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총 3만1천여㎡ 면적에 1,957대 규모의 주차전시장과 매매상가를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할부, 금융, 보험사 등 금융지원시설과 카페, 푸드코트 등 복합문화단지가 마련될 계획이다. 게다가 호남고속도로 익산 IC, 1번국도 인근에 위치한 JB오토리움은 전국 각 지역 고객유입에 유리한 사통팔달 광역교통망을 구비해 홍보와 고객유입 효과가 우수하다는 평가다. 특히 효율적인 원스톱 통합매매시스템을 갖춰 차별화를 강조했다. 자동차매매단지 JB오토리움 홍보관 관계자는 "차량 구입에서부터 정비, 부품, 세차, 광택 등의 서비스와 성능검사, 이전등록, 금융에 이르기까지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빠르고 편리하게 처리할 수 있다"며 "자동차에 관련된 콘텐츠와 문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가족단위 및 젊은 세대 방문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전했다. 또한 주기적으로 신차발표회, 정기적 프로모션을 진행하면서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 제공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입주업체, 자동차마니아 및 잠재적인 소비자층까지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JB오토리움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JB오토리움 홍보관에 방문하면 상가 정보와 향후 운영계획, 위치 등 자동차매매단지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박정희 벙커·경희궁 일제 방공호·신설동 유령역… 땅밑 역사가 깨어났다

    박정희 벙커·경희궁 일제 방공호·신설동 유령역… 땅밑 역사가 깨어났다

    ‘여의도’ 시립미술관으로 활용 ‘경희궁’ 일제사진 2만장 전시‘신설동’ 활용 방안 본격 논의19일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 문을 연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 입구. 점심식사를 하러 온 직장인들의 눈길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했다. 직접 아래로 내려가자 새롭게 설치한 항온항습 설비에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곳곳에 남아 있는 당시의 타일과 양변기, 거울 등이 지난 세월을 느끼게 했다. 벽에는 한국의 근현대화를 담은 사진들이 전시됐고, 역사갤러리에서는 ‘나, 박정희, 벙커’라는 제목의 영상이 상영됐다. 지난 40여년간 땅속에서 잠들어 있던 여의도 비밀벙커가 리모델링을 마치고 전시 공간으로 돌아왔다. 서울시는 1970년대 대통령 경호용으로 추정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여의도 지하 비밀벙커를 전시문화공간 ‘SeMA(서울시립미술관) 벙커’로 새 단장해 이날 시민에게 공개했다. 벙커는 2005년 서울시가 버스환승센터 건립공사를 하던 도중 발견한 뒤 2015년 10월부터 한 달간 한시적으로 개방한 바 있다. 임시개방 당시 시민들의 63%가 유휴공간을 전시공간으로 조성하자는 의견을 냈다. 시 관계자는 “1976년 11월 항공사진에는 이곳의 흔적이 없지만, 이듬해 11월 항공사진엔 벙커 출입구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이 시기 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벙커 위치가 당시 국군의 날 사열식 때 단상이 있던 곳과 일치해 1977년 국군의 날 행사에 대통령 경호용 비밀 시설로 사용됐으리라 보고 있다. 냉전시대 산물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시는 서울역사박물관 주차장 한구석에 있는 ‘경희궁 방공호’와 ‘신설동 유령역’도 21일 시민에게 개방한다. 경희궁 방공호는 전체 면적 1378㎡ 규모로 10여개의 작은 방을 갖춘 시설이다. 일제강점기 말기 비행기 공습에 대비해 통신시설을 갖춰 만들었다. 방공호의 느낌을 되살리도록 조명과 음향 장치를 설치하고, 일제강점기 관련 사진 2만여장을 전시한다. 신설동 유령역은 지금은 쓰지 않는 옛 승강장으로, 운행을 마친 1호선 동묘앞행 열차의 군자차량기지 입고선으로 활용되는 장소다. 1972~1974년 신설동 1호선 건설 당시 5호선도 동시에 건설했으나 이후 노선이 변경되면서 5호선 기능이 상실된 곳이다. 21일부터 주말에 한 달만 공개하고 내년부터 활용 용도에 대해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도시재생을 통해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 잊혀졌지만 우리의 역사와 기억을 간직한 공간이 시민에게 개방됐다”며 “많은 시민이 즐겨 찾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
  • 지도에 없는 신설동 유령역, 시민에 개방…트와이스 ‘치어업’ 뮤비 촬영장소

    지도에 없는 신설동 유령역, 시민에 개방…트와이스 ‘치어업’ 뮤비 촬영장소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설동역의 ‘유령역’이 시민들에게 개방된다.이 유령역은 영화·드라마 제작자나 ‘철도 마니아’들에게는 익숙한 곳이지만 일반 시민들은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19일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이곳은 1호선과 2호선이 교차하는 지하철 신설동 지하 3층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신설동역 2호선 성수지선(성수∼신설동)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엘리베이터 사이 좁은 공간에 보라색 철문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는 굳게 닫혀 있다. 이곳을 열고 내려가면 이 유령 승강장이 나온다. 역사 안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것은 물론, 40여 년간 일반 시민의 발길이 끊긴 탓에 방치된 콘크리트 구조물과 승강장에 희미하게 남은 노란색 안전선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선로 쪽 벽에는 ‘11-3 신설동’이라고 적힌 낡은 표지판 하나가 벽에 붙어 있어 세월의 흐름을 짐작게 한다. 이런 ‘유령 승강장’의 탄생은 1970년대 지하철 건설 계획의 수정에서 비롯됐다. 서울시는 1974년 8월 개통한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면서 연희동∼종각∼동대문∼천호동으로 이어지는 5호선 노선을 구상했다. 이에 따라 1972년 9월부터 1974년 8월까지 5호선이 지나갈 이 지하 3층 승강장을 포함해 신설동역을 건설했다. 하지만 이후 여러 사정으로 5호선은 왕십리∼청구∼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지나는 것으로 노선이 변경됐고, 신설동역 지하 3층 승강장은 버려져 지금의 ‘유령 승강장’이 됐다. 시는 이후 2호선 전동차가 입고하는 군자차량기지가 완공된 1977년 8월까지 이 승강장을 차량 정비작업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지금은 지하철 1호선 동묘역행 열차가 운행을 마치고 군자차량기지로 들어가는 선로로 하루에 평일 14회·휴일은 12회씩 쓰이고 있다. 1호선 선로에서 갈라져 나와 2호선 성수지선으로 이어지는 선로에 이 승강장이 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74년 이래 43년간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지만, 이 지하 3층 승강장은 그 음산하고 독특한 분위기 때문에 많은 드라마, 영화, 뮤직비디오의 배경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드라마 ‘스파이’, 영화 ‘감시자들’, 걸그룹 트와이스의 ‘치어업’ 뮤직비디오 등이 이곳에서 촬영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명 화산 관광섬, 7일 동안 지진 352차례 관측

    유명 화산 관광섬, 7일 동안 지진 352차례 관측

    스페인의 한 섬에서 일주일 사이에 불과 352차례의 지진이 관측돼 전문가들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스페인 카나리아제도에 위치한 라 팔마 섬에서는 지난 6일부터 일주일동안 동안 총 352차례의 크고 지진이 감지됐다고 스페인 국립지리원(IGN)이 지난 14일 공식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조사를 시작한 6일부터 7일까지 40회가 넘는 약한 지진이 발생했으며, 가장 강력한 것은 진원 깊이가 28㎞, 리히터 규모 2.7의 지진이었다. 이후에도 꾸준히 작은 지진이 이어져 약한 흔들림이 감지되다가 13일 하루에만 진원 깊이 15~22㎞의 지진 44차례가 발생했다. 이렇게 일주일간 관측된 지진 횟수는 352차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이 섬에 있는 쿰브레 비에카 화산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진의 전조를 관측하기 위한 이산화탄소 수치도 24시간 연속 측정 중이다. 쿰브레 비에하 화산의 마지막 폭발은 1949년이었으며, 전문가들은 이 화산이 대규모로 폭발할 경우, 불과 8시간 만에 미국 동해안에 엄청난 쓰나미를 발생시킬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실제 1949년 화산 폭발 당시에는 서쪽 능선이 바다 쪽으로 약 4m 가라앉는 피해가 발생했다. 스페인 국립지리원 측은 이러한 현상을 무리 지진(본진이라 할 만한 지진 없이 약한 지진의 통칭)으로 보고 있다. 일반적으로 관찰되는 무리 지진보다 그 횟수가 훨씬 많을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라 팔마 섬에서 지진관측을 시작한 이례로 단 한 번도 관측되지 않은 형태의 지진이라고 국립지리원 측은 설명했다. 한편 라 팔마 섬에는 주민 8만 6000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빼어난 자연 경관과 화산을 직접 관찰하려는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길섶에서] 스마트폰 육아/김균미 수석논설위원

    “△△야, 밥 먹어. 아이, 착해.” “이모님, 팬티 좀 잘 입혀 주세요.”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데 근처에서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휴대전화로 뉴스를 읽거나, 페이스북·카톡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게임을 하는 사람들 사이로 스마트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한 여성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없이 이어폰을 귀에 꽂고 소형 마이크에 대고 연신 뭐라고 얘기를 했다. 출근길에 몇 번 마주쳤던 30대로 보이는 ‘워킹맘’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남자 아이가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얼핏 보였다. 집안에 설치한 폐쇄회로(CC)TV로 아이가 일어나 밥 먹고 노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사무실에서 데스크톱이나 노트북 컴퓨터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집에 두고 온 어린 자녀들이 잘 놀고 있는지 살피는 경우는 간혹 봤지만 스마트폰으로 아이의 상태를 ‘관찰’하는 ‘스마트폰 육아’는 처음 봐 낯설기도 했지만 가슴이 짠했다. 가정용 CCTV가 육아의 필수품이 된 지 오래라고 한다. 저렇게까지 하지 않고도 맘 편히 아이를 키울 수 있어야 ‘정상 사회’다. 발길도, 마음도 무겁다. kmkim@seoul.co.kr
  • 드론으로 본 무스의 늑대 탈출기

    드론으로 본 무스의 늑대 탈출기

    늑대에게 쫓기는 무스(캐나다 및 미국 북부에 사는 큰 사슴) 모습이 공개됐다. 미국 매체 매셔블은 한 유튜브 이용자가 캐나다 온타리오 북부 한 호수에 드론을 띄워 촬영 중 늑대에게 쫓기는 무스 모습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하늘에서 촬영된 이 영상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시작한다. 이어 호수 안에 오도카니 서 있는 무스 한 마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평온하게 느껴지던 그때, 늑대 한 마리가 호수로 뛰어들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된다. 이후 호수 안에서 벌어지는 늑대와 무스 간의 쫓고 쫓기는 긴박한 상황이 펼쳐진다. 다행히 무스가 격렬하게 저항하면서 늑대가 사냥을 포기하고 돌아선다. 영상은 숲 속으로 발길을 돌리는 늑대와 그 숲 반대방향으로 헤엄쳐 건너는 무스의 모습으로 마무리된다.영상은 지난 9일 Dan Nystedt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됐으며, 현재(17일, 오후 3시 기준) 32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영상을 게재한 이는 “온타리오에서 드론으로 촬영하던 중 우연히 카메라에 담은 영상”이라며 “예상치 못한 굉장한 상황에 흥분했다”며 녀석들을 찍은 소감을 전했다. 사진 영상=Dan Nystedt/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왜 어깨 부딪쳐”…30대들 골목길서 난투극

    “왜 어깨 부딪쳐”…30대들 골목길서 난투극

    골목길을 지나다 어깨를 부딪쳤다는 이유로 새벽 시간 길거리에서 30여 분간 주먹질을 주고받은 30대들이 경찰에 입건됐다.광주 동부경찰서는 만취 상태로 싸워 상대방에게 전치 8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상해)로 A(3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7일 밝혔다. 피해자 B(32)씨도 A씨에게 주먹 등을 휘둘러 함께 싸운 혐의(폭행)으로 입건됐다. A씨와 B씨는 지난 9월 3일 오전 6시 광주 동구 계림동의 한 골목길에서 30∼40분간 주먹과 발길질을 교환하며 몸싸움을 벌였다. 사건 당일 만취한 이들은 길을 가다 상대방이 자신의 어깨를 부딪쳐 시비가 붙었다고 서로 다른 진술을 했다고 연합뉴스가 광주발로 전했다. 승강이 하던 B씨가 택시를 타고 귀가하려던 것을 A씨가 붙잡아 욕설하자 다툼은 주먹 싸움으로 번졌다. 한적한 길가로 이동한 A씨는 B씨에게 먼저 주먹을 날렸고, B씨도 이에 대항해 싸웠다. 이들의 싸움은 30여 분 동안 이어졌지만, 새벽 시간 행인이 드문 골목길이라 말리는 사람은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B씨만 치아가 부러지는 등 전치 8주의 진단이 나와 A씨는 처벌이 상대적으로 무거운 상해 혐의를 적용했고, 함께 주먹질하긴 했으나 상대방을 크게 다치게 하지 않아 B씨에게는 폭행 혐의가 적용됐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괴범, 발차기 한 방으로 제압한 아빠(영상)

    유괴범, 발차기 한 방으로 제압한 아빠(영상)

    이 유괴범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어린 여아를 납치하려다 아이 아빠의 발길질에 호되게 당했다. 14일(현지시간) 중국 동영상 공유 사이트 피어비디오는 중국 헤이룽장성 푸진시의 한 거리에서 포착된 감시카메라 영상을 공개했다. 납치 미수사건이 발생한 날은 지난 12일. 30~40대로 보이는 남성은 딸을 데리고 식료품 점에서 쇼핑을 하는 중이었다. 그 뒤로 단 몇 발자국 떨어진 거리에서 후드 차림의 남성이 부녀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아빠는 낯선 남자의 거동을 눈치채고, 경계태세로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상점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유괴범은 어린 여아의 손을 끌어당겨 잡아채려했다. 그러나 아빠는 딸의 손을 단단히 부여잡고 유괴범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발길질 한 방에 남성은 범행을 포기하고 납치 현장에서 재빨리 달아났다. 주변 상인들은 “낯선 남성이 몇일 전부터 이 부근에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며 “3~4일 전에도 거리에서 엄마와 함께 있던 어린 소녀를 잡아채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아마 정신 질환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사건을 회상했다. 푸진시 경찰은 “그 같은 사건은 지금까지 보고받은 적이 없다”면서도 “만약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시민이 있다면 주저 말고 바로 연락을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사진=피어비디오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中 사드 보복에 면세점 국내 브랜드 ‘치명타’

    中 사드 보복에 면세점 국내 브랜드 ‘치명타’

    佛 에르메스 2160억 첫 3위 올라 해외 명품 브랜드 반사이익 누려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국내 면세점 이용객 자체가 급감한 가운데 판매상품의 구성에서도 국내 브랜드는 위축되고 외국 브랜드는 반사이익을 크게 본 것으로 나타났다.16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박광온(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관세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 1~8월 국내 면세점에서의 브랜드 판매실적 상위 10곳 중 국내 브랜드는 단 3곳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K뷰티의 양대산맥인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브랜드 ‘후’와 아모레퍼시픽의 ‘설화수’가 각각 판매금액 3650억원과 3649억원을 기록하며 1, 2위에 이름을 올렸지만 3위부터는 줄줄이 해외 브랜드에 자리를 내줬다. 프랑스의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2160억원의 매출을 올려 처음으로 10위권에 진입하며 3위에 올랐고, 해외 화장품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과 ‘에스티로더’가 각각 1757억원, 1754억원으로 나란히 4위와 5위를 했다. 후와 설화수를 제외하고 10위권 안에 포함된 국내 브랜드는 9위의 ‘라네즈’ (1312억) 한 곳뿐이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의 발길이 끊기면서 중국인들에게 집중적으로 인기를 끌던 국산 화장품 브랜드 판매량이 줄어든 반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두루 인기를 끌고 있는 해외 명품 브랜드들은 판매량을 어느 정도 유지해 순위가 뒤바뀐 것”이라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79세 경비원, 40대 남성에 ‘묻지마 폭행’ 당해 전치 7주 중상

    79세 경비원, 40대 남성에 ‘묻지마 폭행’ 당해 전치 7주 중상

    충북 충주에서 70대 후반의 노인이 건장한 체격의 40대 남성에게 ‘묻지 마 폭행’을 당해 중상을 입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치 7주의 진단을 받은 노인은 한 달 동안 제대로 거동도 못 하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16일 충주경찰서 등에 따르면 지난달 16일 오후 7시 충주시 교현동의 한 횡단보도 앞에 서 있던 이모(79)씨가 아무런 이유 없이 달려온 이모(41)씨에게 심한 발길질을 당했다. 가해자 이씨는 무방비 상태에서 가격당해 쓰러진 노인을 발로 사정없이 밟기까지 했다. 경비 일을 하던 노인은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이었다. 주변을 지나던 행인이 하나둘 모여 때리던 남성을 제지하고 피해자의 몸 상태를 살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현장에서 가해자의 신원을 파악, 검거한 뒤 출석 고지만 하고 돌려보냈다. 머리 등을 심하게 다친 노인 이씨는 전치 7주의 피해를 봤다. 피해자 가족은 “현재 병상에서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경찰 관계자는 “조사를 진행한 결과 가해자 이씨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신병력 부분을 더 조사한 뒤 폭행치상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객실 타입별 특화설계 돋보이는 분양형 호텔 ‘밸류호텔 이천’ 분양

    객실 타입별 특화설계 돋보이는 분양형 호텔 ‘밸류호텔 이천’ 분양

    비즈니스, 관광 거점으로 거대한 호텔 배후 수요를 거머쥐고 있는 이천에 신규 분양형 호텔이 들어서 주목 받고 있다. 지난 달 모델하우스 오픈 이후 꾸준히 투자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주인공은 ‘밸류호텔 이천’이다. 이 호텔은 입지적으로 비즈니스, 관광 배후 수요가 탄탄한 장점을 토대로 수익률을 최대화 할 수 있는 선진화 호텔로 각광받고 있다. 운영시스템은 물론 프리미엄급 부대시설, 인테리어, 서비스를 모두 갖춰 주목도가 크다. 국내에서 운영되는 ‘밸류호텔’ 브랜드는 현재 부산, 강릉, 세종, 수원 등 전국 각지에 포진돼 있다. 신뢰 높은 호텔 운영기업으로 평가 받고 있는 (주)알라코리아는 마케팅 지원서비스, 교육서비스, 호텔경영컨설팅 서비스 등을 무료로 제공하며, 국내 호텔 개발은 물론 운영과 수익관리 지원, 호텔 위탁경영사업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호텔 부대시설 역시 지역에서 보기 드문 고급화를 추구해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안흥유원지와 이천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는 하늘정원이 옥상에 조성된다. 더불어 고품격 휘트니스센터, 관광객과 비즈니스맨들에게 유용한 고급 로비, 세계적 수준의 스파와 마사지 시설, 모임과 비즈니스가 가능한 컨퍼런스룸, 조식 뷔페 라운지 등이 마련된다. 경기 이천시 중리동에 자리하는 밸류호텔 이천 규모는 지하 3층~지상 20층이다. A~D타입, 총 270실로 구성된다. ㈜더유플러스가 시행하고 SC제일건설㈜이 시공을 맡았다. 객실 타입별 특화설계도 돋보인다. 차별화된 공간으로 이뤄진 객실을 살펴보면, 20A.B타입은 유럽형 스탠다드형으로 모던과 심플을 선사하는 휴식공간으로 구성해 휴식 및 휴양에 최적화 시켰다. 25C타입은 비즈니스와 휴식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실용적 공간 설계에 중점을 뒀고, 34D타입은 비즈니스와 가족 휴양에 맞춘 모던 내추럴 스타일의 디럭스 공간으로 구성됐다. TV,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쿡탑, 스타일러+수납장, 비데 등 ALL 빌트인 & 풀퍼니시드가 제공되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특히 계약자에게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더욱 눈길을 끈다. 합리적인 분양가에 7년간 8% 수익보장(2년 확정, 3~7년 가동률 65%시)을 해주며, 매년 10박 무료숙박 이용(밸류호텔 이천, 밸류호텔 강릉)과 부대시설 이용 및 할인, 조식제공, 밸류호텔 멤버쉽 발급, 국내 밸류호텔(8개 예정) 50%할인 등의 여러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렌탈쉽 혜택을 제공한다. ‘밸류호텔 이천’이 조성되는 이천시는 이천도자기축제, 세계도자기비엔날레 등 다양한 공예예술축제 개최되는 세계적 유네스코 창의도시며 그 일대에는 대규모 사업체 배후지가 포진돼 있다. SK하이닉스, 신세계푸드물류가공센터, 현대엘리베이터 등 총 20개 대기업과 924개 기업체가 입주할 뿐 아니라 한해 관광객도 100만명에 육박하는 도시로써 지역 내 숙박업소 객실가동률이 약 90%대에 육박한다. 우수한 교통망도 빼 놓을 수 없다. 작년 9월 경강선(판교~이천~여주) 이천역이 인근에 개통되어 서울 및 수도권 진출입 한층 수월해졌다. 지역을 잇는 주요도로는 국도 42호선, 지방도 325호선, 영동고속도로 덕평IC, 중부고속도로 서이천IC 등이 있다. 여기에 지난해 말 착공한 제2외곽순환도로 이천~오산 구간도 오는 2021년 개통될 예정이다. 또한 정부에서 추진 중인 서울-세종고속도로를 추진 중이다. 모델하우스 오픈과 동시에 객실 분양에 나선 밸류호텔 이천은 선착순 동·호 지정 계약이 가능하며, 현재 계약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어 빠른 분양 마감이 전망되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역사 속 북소리] 고발의 가장 큰 걸림돌 ‘무고’

    [역사 속 북소리] 고발의 가장 큰 걸림돌 ‘무고’

    “횡령했다” 거짓 소문으로 옥에 갇힌 ‘어사’ 박문수 노비 다툼에 앙심품고 모함 역적죄로 처형당한 권식 세종 25년(1443년) 함경도 종성에 사는 김귀생이라는 이가 예조판서 김종서를 찾아와 “회령 사람 노겸과 정헌, 김상보가 대감과 황보인을 함께 죽이려 한다”고 고발했다. 두만강 유역 6진이 개척되자 조정은 전국 각지 백성을 이 곳으로 강제 이주시켰는데, 고향을 떠나기 싫은 이들이 6진 개척을 주도한 김종서와 황보인을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다. 마천령과 철령 계곡에 숨어서 활을 쏘거나 한양의 김종서 집을 찾아가 죽일 것이라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설명했다.김종서는 고발 내용이 허무맹랑하다고 느껴 김귀생을 심문하라고 지시했다. 확인 결과 그가 보상금을 노리고 애꿎은 이를 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그는 장 100대를 맞고 3000리 밖으로 쫓겨났다. 신문고 교서에는 “무고죄는 ‘반좌(反坐)의 율(律)’(남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한 형벌로 똑같이 처벌하는 법)로 다스린다”고 돼 있다. 태종 10년(1410년)에는 원한을 품고 남을 무고한 자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무고금지법도 제정됐다. 태종 1년(1401년) 권식이라는 자가 노비 문제로 권희·권근 부자와 다툼이 생겼다. 그는 앙심을 품고 주변 노비들을 꿰어 “권씨 부자가 역적 모의를 했다”는 증언을 얻어냈다. 하지만 권식의 고발은 무고임이 밝혀졌다. 그는 반좌의 율에 따라 역적죄로 처형됐다. 붕당 정치 상황에서 조정 내 상대 세력을 견제하고자 거짓 소문을 내 탄핵시키는 사례도 빈번했다. 우리에게 암행어사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박문수(소론)도 그 피해자 가운데 하나였다. 영조 19년(1743년) 그는 함경도 관찰사로 부임했다가 홍계희(노론)에게 탄핵돼 옥에 갇혔다. 대흉년 상황을 부풀려 조정에서 곡식을 타내 기생 이매에게 허비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박문수의 아들이 아버지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격쟁(擊錚·주변을 시끄럽게 해 왕의 이목을 끈 뒤 자신의 사연을 알림)하자 영조가 재조사를 지시했다. 확인 결과 박문수의 횡령 의혹이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그는 복직됐고 홍계희는 삭탈관직에 처해졌다. 권력에서 벗어나 있는 민초들도 종종 불만을 품고 관리를 무고하곤 했다. 성종 1년(1470년) 한 농민은 밭 소유권 문제로 이웃과 갈등을 빚자 수령과 감사에게 심판을 받았지만 두 차례 모두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자 “수령과 감사가 모반을 꿰한다”고 무고했다. 그 결과는 반좌의 율에 따른 사형이었다.태조 7년(1398년) 저잣거리에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이방원을 왕으로 만든 ‘킹메이커’ 조준이 반역에 가담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출처는 그의 첩인 기생 출신 국화였다. 사연을 알아보니 애초 조준이 국화를 아껴 자주 찾았지만 첩으로 삼은 뒤에는 되레 관심이 떨어져 발길을 끊자 국화가 이에 원한을 품고 거짓 소문을 낸 것이었다. 의금부에서는 국화를 한강에 수장시켜 사건을 종결했다. 고발은 정의를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심성이다. 진실을 찾는 행동은 종종 고발로 나타나곤 한다. 하지만 이런 고발 풍토가 자칫 죄 없는 선량한 이를 모함하는 경우도 종종 생겨났다. 이에 역대 왕들은 무고에 대해 예외 없이 반좌의 율을 적용해 엄격히 처벌했다. ■출처:태조 7년(1398년) 10월 28일, 태종 1년(1401년) 5월 1일, 세종 25년(1443년) 9월 24일, 세조 7년(1461년) 7월 3일, 성종 8년(1477년) 7월 17일, 중종 12년(1517년) 1월 2일, 영조 19년(1743년) 3월 20일 곽형석 명예기자(국민권익위원회 대변인)
  • [사설] 반드시 책임 물어야 할 ‘이영학 사건’ 부실수사

    경찰이 ‘어금니 아빠’ 이영학의 잔인하고 엽기적인 사건을 여러 차례 막을 기회가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경찰의 미진한 초동 수사와 늦장 수사 등 총제적인 수사 부실 논란이 일고 있는 이유다. 놀랍게도 이영학의 집을 찾아내고, 사다리차를 동원해 그의 집 내부 수색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경찰이 아닌 피해 여중생 부모였다고 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뒤늦게 서울지방경찰청이 경찰의 초동대처 미흡 등 부실 수사를 들여다보겠다며 내부 감찰에 나섰다. 여론을 잠재우려는 시늉에만 그쳐서는 안 된다. 여중생 딸의 친구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어금니 아빠’ 사건은 그 자체로도 충격과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이제 시일이 지나면서 수사 과정에 드러난 경찰의 무능력과 기강해이에 대한 국민적 공분도 그에 못지않게 들끓고 있다. 여중생의 실종 신고를 단순히 가출로 안이하게 받아들인 것도 모자라 실종 신고가 이뤄진 지 35시간이 지나서야 이영학의 집을 방문한 것은 경찰의 수사력이 밑바닥임을 스스로 자인한 꼴이다. 더구나 딸의 친구 등을 탐문해 이영학의 집을 찾아내고 그 주변에 있는 폐쇄회로(CC)TV를 확인하는 사실상 초동 수사를 한 것도 피해자의 부모였다. 자녀의 행방을 몰라 부모는 애간장이 타들어가는데도 경찰은 이씨의 집 수색도 처음에는 주저하고, 수색 뒤에는 “이 집과는 연관이 없는 것 같다”고 헛다리를 짚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오죽하면 피해자 부모가 “이 집(이영학)에서 발길이 안 떨어진다”고 경찰에 통사정을 했을까. 이 사건에 앞서 이미 이씨는 의혹이 가득한 부인의 자살사건에 연루된 요주의 인물로 내사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이씨에 대한 수사를 열심히 했더라면 그가 여중생을 상대로 한 악마짓은 없었을 것이다. 황당한 것은 경찰의 여중생 실종수사팀이 부인 자살 사건과 연루된 이씨에 대한 형사팀의 정보를 뒤늦게 인지했다는 점이다. 경찰 내의 소통만 제대로 됐어도 이씨에 대한 수사망이 더 빠르게, 더 치밀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강력사건과 연관됐을 수 있는 실종 사건을 얼마나 허술하게 대했는지는 수사팀이 사건 4일 만에 경찰서장에게 보고한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신고 이후 13시간이나 살아 있었던 여학생을 살릴 기회를 몇 차례 놓친 경찰의 안이한 대응은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 피해자 부모, 경찰 데리고 이영학 집 갔지만 ‘머뭇’…초동 수사에 분통

    피해자 부모, 경찰 데리고 이영학 집 갔지만 ‘머뭇’…초동 수사에 분통

    ‘어금니 아빠’ 이영학(35) 사건의 피해자 여중생의 부모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경찰의 초동 수사에 분통을 터뜨렸다.특히 피해자 부모는 이영학 집 앞에서도 수색을 주저하는 경찰에게 ‘이 집에서 발길이 안 떨어진다’며 사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는 14일 이번 사건의 피해자 김 양의 부모와 인터뷰를 하고 이와 같이 보도했다. SBS에 따르면 김 양의 실종 신고가 이뤄진 지 골든 타임인 하루를 넘기고도 11시간이나 지나서야 경찰은 김 양의 부모와 함께 수색에 나섰다. 김 양의 부모는 김 양의 행적을 쫓아 집요하게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건 경찰이 아니라 자신들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양의 어머니는 “형사가 그런 거 아니에요. 제가 들어가서 교회에 애를 잃어버렸다. 구구절절이 말해서 CCTV를 보게끔 허락을 받았어요”라고 SBS를 통해 말했다. 이영학의 집을 찾아내는 것도 피해자 부모 몫이었다. 김 양의 아버지는 “친구를 불러서 ‘너 혹시 (이영학 딸) 집 아니?’ 하니 안다 그러더라고요. ‘데려다 줄래?’ 그러니까 그렇게 해서 경찰이랑 그 집에 갔어요”라고 말했다. 이영학 집 내부 수색을 위해 동원된 사다리차도 김 양 아버지가 불렀다. 김 양의 어머니는 “애 아빠 친구가 사다리차를 해요. 사다리차를 우리가 사설로 불렀어요”라고 말했다. 김 양의 부모는 집 내부 수색도 영장이 없다며 주저하는 경찰에 사정해 겨우 이뤄졌다고 말했다. 김 양의 아버지는 “‘(딸이) 없으니까 이 집 하고는 연관이 없는 것 같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랬죠. 형사님, 전 이 집이 발길이 안 떨어집니다”라고 말했다. 경찰의 초기 대처가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경찰은 피해자 부모와 진실 공방을 벌이고 있다. SBS에 따르면 경찰은 살해된 김 양이 이영학의 딸을 만나러 갔다는 부모의 말을 듣지 못했고 당시 지구대가 시끄러운 상황이었다고 반박했다. 김 양의 부모는 지난달 30일 밤 지구대에 실종신고를 하면서 김 양이 이영학의 딸을 만나러 나갔다고 말한 것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다. 김 양의 어머니는 “마지막 만난 게 이○○(이영학 딸)이거든요. ‘얘한테 전화해서 물어볼게요’(라고 말하고) 제가 지구대에서 전화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당시 김 양은 이영학 집에 감금돼 살아있는 상태였다. 반면 경찰은 이런 말을 듣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최민호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얘기를 들었으면 우리가 수사가 쉬워질 건데. 우리가 그 어머니한테 전화를 할 때까지 그런 얘기가 없으니까”라고 SBS를 통해 말했다. 경찰은 신고 당일 당직 직원들을 조사하고는 당시 지구대가 시끄러워 말을 듣기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양재헌 서울 중랑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은 “지구대에는 다른 사건, 폭력 사건이 있어서 조사하고 있었어요. 소란스러운 도떼기시장 같은 그런 상황에서 들어오셨더라고요”라고 말했다. 경찰은 또 최초 신고 당시 가출 사건으로 판단한 이유를 어머니의 말 때문이라고 밝혔다. 최민호 서울 중랑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은 “(피해자) 엄마가 (딸이) 가끔 혼날 때는 휴대전화를 꺼 놓은 경우도 있다. 이런 얘기를 엄마가 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피해자 어머니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죠. 배터리가 다 되면 다했지”라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산책 중인 개 폭행 혐의 40대 남성, ‘무죄’ 선고

    산책 중인 개 폭행 혐의 40대 남성, ‘무죄’ 선고

    개를 폭행한 혐의 등으로 벌금형을 받았던 40대 남성에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지난해 8월 고양시 덕양구 한 편의점 앞에서 개를 발로 차고 견주에게 염좌 등을 입힌 혐의(재물손괴·상해)로 기소됐던 박모(44)씨에 대해 “이를 인정할만한 증거가 없다”며 지난 22일 무죄를 선고했다. 법원에 따르면 박씨는 작년 8월 25일 서모(42)씨가 소유한 개가 편의점 앞의 길을 막고 있다는 이유로 발로 개를 걷어차 우측 후지파행 등의 장애를 입게 하고, 그 과정에서 서씨에게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염좌 등의 상해를 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박씨에 대해 20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으나 박씨는 이에 불복, 정식 재판을 제기했다.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기록을 종합하면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피고인이 이 사건 개를 걷어차 이로 인해 장애가 발생되거나 그 과정에서 서씨를 발로 차 상해를 입게 했다고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서씨는 법정에서 박씨의 발길질에 사건 개가 공중으로 4~5m 떠서 날아가 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개의 무게가 약 40㎏ 정도인 점에 비추어 보아 서씨의 진술은 상당히 과장돼 있다.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면서 “박씨는 개가 자신에게 달려 들까봐 발로 한번 툭 찬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증인 역시 ‘박씨가 발을 한 번 들어 올린 것은 보았지만 걷어찬 것은 보지 못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사건 개는 사건 이전부터 오른쪽 뒷다리에 큰 부상을 입었다. 사건 당시에도 보조보행기를 차고 걷는 등 재활 중이었으나 상황 종료 이후 스스로 걸어 돌아갔다”며 “사건 후 장애가 발생했다는 부위 역시 기존 부상 부위다. 피고인의 폭행으로 인해 추가적 장애가 발생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봤다. 서씨 상해 혐의와 관련해서는 제출된 상해진단서가 사건 시점으로부터 5일 지난 8월 30일 진단된 것이라며 “상해 원인과 부위, 정도 모두 서씨의 진술에 의한 것이다. 통상적으로 폭행과 같은 외부적 충격이 있을 경우 발생하는 타박상 등의 진단을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낡은 옷 벗고 ‘문화’ 입은 길… 핫플레이스로 뜬다

    낡은 옷 벗고 ‘문화’ 입은 길… 핫플레이스로 뜬다

    요즘엔 길도 진화한다. 경북 경주의 ‘황리단길’, 광주의 ‘동리단길’ 등이 대표적이다. 서울의 경리단길에서 모티브를 얻어 형성됐다. 경남 창원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로 이름값을 올리는 중이다. 이 역시 서울 압구정동의 가로수길이 모티브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예전엔 낡은 길이었다는 것, 그리고 문화의 옷으로 완벽히 갈아입었다는 것이다. 글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한국관광공사■ 옛것새것 아우르길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다-경주 황리단길 ‘황리단길’은 최근 젊은이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며 경주 최고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곳이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낡은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은 침체 지역이었던 것을 떠올린다면 그야말로 상전벽해 같은 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의 머리글자와 서울 이태원의 경‘리단길’이 합쳐진 별칭이다. 황리단길이 형성된 곳은 황남동 일대의 왕복 2차선 도로 주변이다. 거리는 1㎞ 남짓. 정확히는 대릉원 후문에서 황남초등학교 네거리까지 약 700m의 도로와 대릉원 서편 돌담길 약 450m를 합친 구간이다. 황리단길 일대는 원래 허름한 점집이 많은 골목이었다. 지금처럼 젊은이 ‘취향 저격’의 업소들이 들어선 것은 불과 1년여 전부터다. 옛것과 새것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다만 주말의 경우 끊임없이 밀려드는 관광객과 불법 주차 차량이 뒤섞여 매우 혼잡한 편이다.황리단길 산책은 보통 내남사거리를 들머리 삼는다. 수십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다방, 점집 등이 트렌디한 업소들과 어우러져 있다. 대부분 가게는 본래의 외관을 최대한 살리고 내부만 리모델링한 형태다.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제법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길 초입의 브런치 카페 ‘노르딕’과 대표 맛집으로 꼽히는 ‘기와양과점’, 매주 다른 가정식 메뉴를 선보이는 ‘홍앤리식탁’, 창 너머로 대릉원이 보이는 ‘페트커피’ 등의 줄이 긴 편이다. 문학 서적만 파는 서점, 실용적이고 감각적인 기념품 가게, 생활한복 대여점 등 이색 업소도 많다. 흑백사진만 찍는 사진관 역시 매력적이다. 대릉원 돌담길 쪽에도 ‘피맥’(피자와 맥주)으로 이름을 알린 ‘987’ 등 젊은 취향의 가게가 제법 많다. 첫째, 셋째 토요일에는 수공예품 등을 파는 장터도 열린다.■ 추억까지 여전하길 시간이 빚은 보물 상자를 열다-광주 동리단길 광주 동구 쪽엔 예술과 문화를 자양분 삼아 시대의 변화를 묵묵히 지켜 낸 흔적들이 여태 남아 있다. 그중 하나가 동명동이다. 마을을 감싼 숲길과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카페와 책방, 근현대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추억의 골목 등이 시간의 보물 상자처럼 모여 있다. 역시 서울의 경리단길에 빗대 ‘동리단길’이라 불린다. 동명동은 옛 광주읍성의 동문 밖에 있던 마을이다. 무등산 자락에서 내려온 동계천을 사이로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나뉘었는데, 유력 인사들의 관사가 있던 윗마을이 지금의 동명동 카페거리다. 동명동 일대는 한때 학원가로 명성이 높았다. 학부모들이 머물던 카페도 많았다. 최근에는 문화 공간과 이색 카페가 생기며 젊은층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동리단길 가을 산책의 들머리는 ‘푸른길’이다. 동명동 재생의 기틀이 된 길이다. 시민들이 앞장서 경전선 폐철도를 산책로로 바꿨다. 광주역에서 광주천까지 8㎞ 가까이 이어져 있다. 푸른길 곳곳에는 일상과 연계된 길거리 건축물 ‘광주폴리’가 조성돼 있다. 잠시 구경해도 좋고, 다리쉼을 해도 좋을 곳들이다. 동구도시재생지원센터 뒤편의 ‘꿈집’, 한옥을 식당으로 개조한 ‘쿡폴리’ 등이 대표적이다. 푸른길에서 산수동으로 내려서는 길목은 호젓하다. 소규모 책방과 작은 카페가 좁은 골목을 채우고 있다. 윗마을의 부촌과 달리 비좁은 골목에선 투박한 라디오 소리와 도란도란 주고받는 담소가 담장 너머로 흘러나온다. 담장 벽화로 장식된 ‘동밖에 마실골목’도 인상적이다. 동리단길 옆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다. 근대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전남도청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옛 광주 예술을 되짚고 싶다면 궁동 예술의 거리를 찾을 일이다. ‘광주의 인사동’으로 불리는 곳으로, 오래된 찻집과 개미장터 등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나무 품고 푸르르길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수직 세상-창원 가로수길 서울 압구정동의 가로수길과 비슷한 곳이다. 은행나무 일색인 서울과 달리 창원의 가로수길은 메타세쿼이아가 만든 수직 세상을 따라 펼쳐져 있다. 가로수길은 한창 확장 중이다. 황리단길이나 동리단길의 업소들이 거의 포화 상태인 것과 다소 다르다. 가로수길 중심부엔 용지못이 있다. 둘레 1.2㎞ 정도의 작은 저수지다. 조선시대 축조된 저수지로 1970년대에 창원이 계획도시로 건설되면서 시민들의 휴식처로 변모했다. 이탈리아의 조각가 밈모 팔라디노의 ‘말’ 등이 전시된 잔디광장 등 볼거리가 제법 많다. 밤엔 더 멋들어진다. 가장 도드라지는 건 보름달이다. 지름 3.8m짜리 등(燈)으로 달을 형상화했다. 보름달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많다. 음악과 조명이 결합된 음악분수쇼도 펼쳐진다. 용지못 주변은 가로수길이다. 도로 양쪽으로 전남 담양‘급’의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높지거니 솟았다. 모두 630여 그루 정도다. 가로수길은 장방형이다. 총 3.3㎞ 구간에 걸쳐 조성돼 있다. 수직 세상 아래로는 카페촌이 형성돼 있다. 모두 50여개 업소에 달한다. 건물의 형태는 제각각이다. 저마다 개성이 있고 나름의 분위기가 있다. 한식당과 레스토랑 등 먹자골목도 형성되고 있다. 카페 겸 빵집인 1997영국집, 커피가 맛있는 경성코페, 흑염소 숯불구이를 내는 송림정 등이 이름을 알리고 있다. 작은 갤러리와 옷 가게 등도 군데군데 들어섰다. 경남도민의 집(옛 경남도지사 관사)과 경남여성능력개발센터, 창원남산교회 주변의 가로수 풍경이 빼어나다. 매달 세 번째 토요일엔 길마켓이 열린다. 일종의 벼룩시장으로, 2013년 처음 시작된 이후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다.
  • 엘리베이터서 반려견 짓밟는 여성 포착

    엘리베이터서 반려견 짓밟는 여성 포착

    미국 플로리다주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강아지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걷어차는 여성의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마이애미헤럴드 등에 따르면, 사건은 지난달 20일 마이애미데이드 카운티 아벤투라의 한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났다. 20대 여성이 시추 종의 반려견을 엘리베이터 한구석으로 몰고는 수차례 발길질을 한 것이다. 이 모습은 엘리베이터 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며칠 후 여성은 경찰에 동물 학대 혐의로 체포됐다가 5,000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마이애미의 한 동물보호기관은 여성에게서 강아지를 분리시켰다. 강아지는 구조 당시 복부와 귓바퀴 등에 타박상을 입은 상태였다. 동물보호기관 측은 강아지가 처음에는 겁을 먹었지만, 현재 안정을 되찾았다고 전했다. 사진·영상=CBS Miami/유튜브 영상팀 seoultv@seoul.co.kr
  • [사파 여행기 3] 안개에 싸인 사파, 그 흐릿한 매력 속 5박 6일

    [사파 여행기 3] 안개에 싸인 사파, 그 흐릿한 매력 속 5박 6일

    지난달 23일 베트남 북서부 라오까이주의 사파에서 열린 베트남산악마라톤(VMM) 주최측이 11월 베트남정글마라톤(VJM)에도 참여하라고 알려온 이메일에 첨부된 사진이다. 여행기 세 번째를 마무리하면서 메인 사진을 고민하던 참에 잘 됐다 싶었다. 올해 VMM 사진인지 종전의 VJM 사진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달림이들의 욕구와 본능을 부채질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지난달 21일부터 26일까지 사파에 머물렀다. 여행 안내판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사파의 하루에는 사계절이 다 담겨 있다.’ 멋지고도 함축적인 표현이다. 아침에 우중충하다가 낮에 번쩍 땡볕이 쏟아진다. 오후 서너시만 되면 잔뜩 안개가 밀려오고, 밤에는 몸서리가 처질 정도로 수은주가 뚝 내려간다. 얇은 옷을 여러 겹 입다가 낮에는 벗어 가방에 넣고 다녀야 한다. 베트남 동을 우리 원화로 계산할 때는 0을 하나 빼고 그 절반을 후려 치면 된다. 사파 터미널 근처 허름한 식당에서 24일부터 이틀째 아침을 쌀국수로 해결했다. 3만 5000동이니 우리 돈 1750원. 마라톤 다음날 새벽 터미널 뒤 시장을 둘러봤다. 대략 다섯 가지로 분류되는 민속의상을 걸친 아낙네들이 가게 건너편 노점에서 푸성귀와 과일 등을 팔았다. 그곳을 둘러보고 터미널 지나 우리 숙소 쪽으로 가다보니 하수도 공사장 건너 가게에 발길이 북적댄다. 서울에서 1만원, 심한 집은 1만 2000원 받는 쌀국수를 1750원에 먹었는데 거의 무한리필 분위기다. 국수를 더 달라거나 고수 등을 더 달라고 하면 아낌없이 내준다. 뒤늦게 일어난 룸메이트 셋을 이끌어 돼지고기 볶음, 반춘(계란 흰자를 풀어 만든 호떡 비슷한 먹거리) 등에 쌀국수 셋을 시켜 먹는데 우리 돈으로 1만 5000원 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식당 나와 35m 쯤 속소 쪽으로 올라와 대각선 가게에 들러 사탕수수주스를 먹었다. 300㎖ 쯤 될까. 기분 나쁘지 않은 달달함이 일품이다. 진오 스님과 베트남 오지 곳곳을 다녀본 최종한 구미육상연맹 회장은 피로 회복에 그만이고 무엇보다 갈급을 해소하는 데 탁월하다고 강추했다. 강권 수준이었다. 한 컵에 1만동, 우리 돈 500원이니 참 싸다. 24일 낮 12시 사파 스퀘어에서 VMM 시상식이 열려 옴짝달싹 못했다. 인도차이나 제일봉인 판시판 산을 오를 작정이었는데 가이드를 대동한 트레킹을 하려면 사흘 전에 예약했어야 했다. 김지섭과 장보영이 남녀 42㎞를 동반 우승하는 바람에 일행 모두가 이를 축하하기 위해 시상식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시상식을 마친 뒤 팀 양지훈과 대구 팀을 하노이로 먼저 떠나보냈다. 그리고 점심을 꼬치 요리로 때운 뒤 마사지를 받았다. 한 시간 전신 마사지를 받는 데 20만동, 우리 돈 1만원 꼴이었다. 타이 마사지만큼 강력한 맛이 떨어졌지만 그만한 가격에 훌륭했다. 마사지샵이 엄청 많았다. 남녀 우승자들이 마사지를 받자마자 까무러칠 듯 절규해 웃음바다가 됐다. 원래 저녁에 베트남레이스 디렉터인 로이드와 만찬 겸 인터뷰가 예정돼 있었지만 취소돼 9명이 조촐한 축하연을 했다. 외국인들이 북적거리는 식당이었고 분위기가 좋았다. 하지만 맛이 강해 난 그리 즐기지 못했다. 식당을 나오자마자 오한이 덮쳐 호텔로 돌아오자마자 앓아 누웠다.25일 아침 날이 꾸무룩했다. 다른 일행은 이날 오후 하노이로 이동할 참이다. 박성식 대표 등 7명이 판시판 산으로 오전 6시도 안돼 떠났다. 택시 둘을 불러. 택시는 우리 돈으로 5000원 정도씩 나왔다고 했다. 내가 몸이 좋지 않은 데다 뭐 볼 게 있겠나 싶어 안 가겠다고 했더니 조 박사님이 남아주셨다. 박사님과 새벽 시장을 조금 늦게 돌아봤다. 과일을 좋아하는 박사님이 대추와 자두 등 네 종류를 샀다. 종류를 따지지 않고 무게를 달아 ㎏당 3000원 정도에 파는 게 흥미로웠다. 2㎏를 사 일행이 하노이 가는 길에 먹었다. 난 아주 조금 덜었는데 이날 밤 나홀로의 훌륭한 만찬이 돼줬다. 판시판 산을 오른 이들은 오전 11시 30분이 못돼 돌아왔는데 대만족이라고 했다. 아무리 날씨가 좋지 않아도 한쪽 하늘은 열어주는 것 같으며 도저히 이 나라에 있을 법하지 않은 장거리에 케이블이 마련돼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라고 했다. 사진으로는 그 장쾌한 풍광을 오롯이 담을 수 없었겠지만 그것만 봐도 함께 가지 않은 것이 후회됐다. 특히 박사님에게 송구했다. 괜히 나 때문에 비경을 놓친 것 같아. 하여튼 김용욱 대장과 김재홍 씨가 마라톤 당일 저녁을 먹었다는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는데 30만동(우리 돈 1500원) 하는 볶음밥이 훌륭했다. 그리고 오후 3시 반 버스로 여덟 명이 떠났다. 난 카페에 들어가 사파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려는 그들과 서둘러 헤어졌다. 곧 날이 저물테니 사진이라도 남기려면 그래야 할 것 같았다. 21㎞ 출발 지점까지 걸어가 뛰어 올랐던 2㎞ 정도를 걸어 올라갔다. 비가 내린다. 빗방울을 후두둑 맞아가며 노적가리 쌓는 아낙네 등을 향해 셔터를 눌렀는데 그리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기 어려웠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졌다. 오토바이가 다가와 타란다. 노 머니라고 한다. 그에게 들은 유일한 영어였다. 10분쯤 타고 내려와 사파를 가자고 했더니 다른 오토바이를 안내해준다. 오토바이 업체인 듯했다. 왕복 2차로에 트래픽잼이 상당한데, 우리 같으면 너 걸어가라 할 듯 싶은데 운전자는 끈기있게 정체가 풀리길 기다려 날 사파 시장까지 태워줬다. 난 머릿속으로 계속 얼마나 달라고 할까 궁금했는데 3000원을 달란다. 눈치가 팁을 원하는 것 같았는데 베트남동이 넉넉치 않아 모른척했는데 그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호텔에 걸어 돌아오는데 오한이 다시 덮쳐온다. 그렇게 많이 걸은 게 아닌데도 피로가 대단하다. 며칠 잠을 못 잔 것이 화근이었다. 아침에 사온 과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잤다. 혼자 작은 방에서. 마지막 26일. 어제보다 날씨가 더 좋지 않다. 간밤에 비가 잔뜩 온 모양이다. 사파는 하수 사정이 좋지 않아 길이 질척거린다. 전날 점심 먹은 식당에서 과일볶음밥을 아침으로 들고 판시판산 케이블 타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거기 가서 날이 좋아질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사파에 도착한 다음날 새벽 걸어본 곳을 지나쳐 걸으니 완전 그리스식으로 건축되는 호텔이 있어 그곳도 둘러보고 이런저런 사람들 사는 모습을 곁눈질했다. 11시 조금 못돼 케이블카 타는 곳을 2㎞ 정도 남은 지점에서 택시만 통과시키고 자동차를 타고 온 이들은 하차하게 하고 코끼리버스 같은 것으로 갈아 태우게 했다. 내리막길이라 괜히 갔다가 오르막으로 돌아오려면 힘들겠다 싶어 주차장 바닥에서 말러 3번을 들으며 날이 개기만 기다렸다. 70분쯤 걸렸는데 영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포기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 싶었다. 케이블카는 300계단이 나오기 전까지 왕복하면 60만동, 계단 너머까지 왕복하면 70만동이라 했다.호텔 돌아오는 길에 물소 떼가 보여 셔터를 눌렀는데 오른쪽 어퀄렁을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전쟁 피해자인가 싶었다. 그가 지닌 힘겨운 삶의 무게가 느껴져 나중에 셔터 누른 게 후회됐다. 호텔을 체크아웃하는 데 내가 홀로 묵은 비용까지 씨가 다 계산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일인당 하루 8000원꼴로 숙박을 해결했다고 했다. 이를 확인하는 데 5분 정도 걸렸다. 주인 부부나 나나 영어가 짧아 바디랭귀지 수준이었다. 환한 미소로 노 프라블럼이라고 외쳐줬다. 전날 일행이 떠난 버스 티켓 파는 곳에 가 같은 시간 버스 티켓을 달라고 했더니 말이 안 통한다. 2분을 버벅거리다 겨우 뜻이 통해 티켓을 샀다. 카페에 들어가 베트남전통커피와 하이네켄을 마셨다. 판시판 가는 비용을 아꼈더니 갑자기 호사를 부린다. 한국인 60대 여성 두 분이 백패킹한 것이 딱 배낭여행이다. 두 분은 한사코 내가 앉은 곳을 지나쳐 몇 번을 두리번거린다. 비빔밥에 쓴 커피, 맥주를 들이켰더니 속이 편치 않아 아무래도 보고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 내 나이 또래 경상도 부부가 10분 전쯤 들어와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 2층 화장실에 다녀올테니 짐 좀 봐달라고 했더니 깜짝 놀란다. 내가 그렇게 현지화됐나 싶었다.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지났길래 티켓 판매자를 다시 찾아갔다. 다른 여자다. 역시 영어가 안된다. 번역기에 뭔가 두들겨 나를 보여주는데 ‘트래픽잼’이라고 적혀 았다. 대신 컴퓨터를 보여주는데 우리 숙소 앞을 지나치고 있다는 GPS가 깜박거린다. 나혼자니 모든 게 걱정이 앞선다. 이대로 하노이 무사히 갈까 싶었다. 조금 이따 도착한 버스 기사는 내가 이 버스 맞느냐고 했더니 무조건 자기를 따라오라며 티켓 창구로 간다. 얘 혼자냐? 뭐 이러는 것 같다. 그리고는 또 따라오란다. 결국 난 무거운 캐리어 끌고 뱅뱅 돈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는 운전대를 잡고 라오까이로 향한다. 난 속으로 생각했다. 하노이에서 여기까지 와서 조금도 쉬지 않고 다시 하노이까지? 속으로 도리질을 했다. 나만의 착각이었다. 정말 위험천만한 도로-전날 내가 걸었던 길-를 뱅뱅 돌아 황토빛 강물이 흘러내리는 협곡을 곡예하듯 타고 내려와 라오까이에 도착했다. 한 시간 넘게 난 차창 밖만 내다보고, 그는 운전대만 잡고 왔다. 차를 세운 그는 또 손짓으로 따라오란다. 캐리어를 끌고 갔다. 티켓 창구에 여자 셋이 있는데 내 티켓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입씨름을 벌인다. 그렇게 싸우더니 다른 남자가 내 캐리어를 빼앗듯이 끌고 가며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거의 같은 베스타형 승합차인데 아무래도 하노이까지 가기에는 무리다 싶었다. 번잡한 라오까이 시내를 벗어나 10분쯤 달렸을까? 또다시 내리란다. 이층버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 이걸 타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생각할 참에 내 캐리어는 차장 손에 넘겨져 벌써 짐칸에 실리고 있었다.새우잡이배 인신매매는 피하고 이제 진짜 하노이 가는구나 싶어 버스에 올랐더니 다자고짜 신발 벗고 비닐봉지에 집어넣은 다음 왼쪽 세 번째 자리에 가 누우라는 듯 손가락 셋을 펼쳐보였다. 그렇게 누워 하노이까지 갔다. 밤 9시가 가까워오는데 공항 활주로에 접근하기 위해 낮게 비행하는 비행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초조하기 이를 테 없어졌다. 전후좌우 승객들에게 ‘에어포트?’ 했지만 모두 도리질한다. 참다못해 차장과 기사에게 다가가 같은 질문을 다섯 번쯤 던졌다. 너 대체 뭔 소릴 하는거냐는 표정이다. 그 순간 갑자기 떠올랐다. 만국 공통의 공항 바디랭귀지. 한 손을 들어 쉭 소리를 내며 비행기 뜨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그랬더니 아하! 한다. 그리고 곧바로 인터체인지라 하기엔 조금 뭣한 길로 나가 정류장 앞에 내려준다. 내가 뭐라고 안해도 들러 내려줄 참이었다. 다만 영어를 조금이라도 알아들으면 생기지 않을 불편이었다. 차장은 뭐가 급한지 버스가 멈추기도 전에 뛰어내려가 득달같이 내 캐리어를 꺼내준다. 난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신짜오를 외쳤다. 역시 득달같이 두 택시 기사가 다가와 뭐라 외친다. 내가 에어포트 하자 그들은 안다. 다만 젊은 축이 원피프티 하며 곧장 흥정에 들어왔다. 이곳 정류장에서 공항까지 3㎞ 거리란 건 알았지만 밤이 이슥하고 캐리어를 끌고 가기에도 부적절하다 싶어 택시를 이용했는데 원피프티면 비싸다 싶었지만 젊은 애가 불쌍하다 싶어 그냥 탔다. 영어를 좀 하는가 싶었는데 그도 국내선이냐 국제선 터미널이냐를 묻는 쉬운 질문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무튼 도착해 200만동을 내밀었는데 텐밀리언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화폐 단위를 헷갈릴까 싶어 이런 짓을 벌이나 싶어 화가 났다. 소리를 지르며 원피프티라고 하면 150만동이라고 말했다. 1분쯤 지나도 말이 안 통하길래 경찰을 부르자고 했더니 애 얼굴이 달라진다. 이젠 100만동만 달라고 한다. 짜식 괜히 욕심부리다 50만동 손해 보네 싶었다. 제주항공 창구 들러 캐리어 부칠 별도 티켓을 사는데 인천공항에서는 8만원 받던 것을 여기선 80달러 받는다. 환율 때문에 1만 7000원 정도 더 붙는 것 같았다. 억울했지만 나중에 따질 일어었다. 영수증 떼달라고 했더니 프린터에 문제가 있다며 10분쯤 기다리게 했다. 하노이 공항 버거킹은 최악이었다. 13달러 정도 주고 햄버거 먹었는데 패티 맛이 영 아니었다. 검색대를 지나치는데 세계 어느 공항이나 마찬가지지만 여직원들이 손짓을 툭툭하며 영 예의가 없다. 면세점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살 때와 포장할 때의 표정이 확 달라진다. 운동도 할겸 내가 탈 게이트와 다른 쪽을 걷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눈에 들어온다. 진오 스님과 최종한 회장이다. 부산 가는 비행기인데 나보다 출발 시간이 30분 정도 앞이다. 24일 시상식 마치고 곧바로 다른 일정 때문에 떠난 두 분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앞으로 베트남 해우소 사업을 어떻게 진행할지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이번 여행의 마무리를 진지한 대화로 마쳤다. 그렇게 비행기에 올라 영화 다운 받은 것 두 편을 마저 보며 인천으로 왔다. ‘문라이트’의 깊은 여운을 만끽하며 설핏 잠이 들었다가 소스라치게 잠에서 깨어났는데 창밖이 붉은 빛으로 타오를 듯 밝아온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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