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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흐 ‘해바리기’중 한점은 모작

    ◎일사에 팔린 370억원짜리는 불 교사가 모사 【런던 AP 연합】 빈센트 반 고흐의 유명한 해바라기 그림중 하나로 지난 87년 일본의 한 보험사에 2천4백75만 파운드(현 환율로 약3백70억원)에 팔렸던 작품이 한 가난한 미술교사의 모작일 가능성이 크다고 영국의 선데이 타임스가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술평론가 제럴딘 노먼이 1년간 조사한 결과 반 고흐가 아니라 프랑스의 미술교사 클로드 에밀 쉬프네케르가 이 작품을 그린 것이 “거의 확실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문제의 작품은 푸른색 배경에 14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진 고흐의 그림 3점중 하나인데 원작은 1888년 그려졌다. 노먼은 선데이 타임스 기사에서 반 고흐의 편지는 해바라기 그림 6점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있으나 현재 7점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 황동규씨 신작시집 「외계인」 내주 출간

    ◎라인강∼이 미켈란젤로공원 「발품 흔적」/꽉막힌 일상서 「개안의 순간」을 짚는 순발력/언뜻 비치는 꿈에 본 지난날… 늙음의 영상… 시인 황동규씨(58)의 신작시집 「외계인」이 내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다. 지난 93년의 「미시령 큰바람」,95년 연작시집 「풍장」에 이어지는 이번 시집엔 한 대가가 부지런히 팔았던 발품의 흔적이 찍혀있다. 「발품팔아 쓴 시」란 여행길에 건져올린 작품들이란 뜻.유달리 길떠나 떠돌길 좋아하는 시인은 앞선 시집들에도 자기 유랑의 자취를 드문드문 뿌려놓길 즐겼지만 이번엔 죽도에서 몸섞는 남도의 금강줄기부터 라면봉지,소주병 하나 널리지 않은 라인강변을 따라 도시의 내장이 훤히 내려다뵈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켈란젤로공원에 까지 이른다. 〈…장마 때면 떠내려가는 나무다리 몇 채/건너는 사람없어 하릴없이 건들거리고 있는 곳/그 마지막 건들거림 끝나면 강물이 사행하며/마음속에 질탕한 곡선 하나를 그어주는 곳./마음이 몸 빠져나와 두어 길 높이로 떠서/걸어오는 나를 보는 곳.//마음 빼앗기고/일회용으로 건들거리며 걸어오는…〉(「걷다가 사라지고 싶은 곳­3.정선군 가수리길」에서) 〈고트프리트 벤이 진치고 살았다는 쿠담에 들려/체코출신 다다이스트 시인 리하 교수와/…/다다이즘과 관계없는 날씨와/날씨에 관계없는 커피맛에 대해 얘기할때//…/히치코크 「새」의 주인공들보다 더 생생한 까마귀 떼가/겹겹이 접근하고 물러선다./반 고흐의 밀밭 까마귀들이 그림마다 사라져/… 열배 백배로 늘어 공중에서 휘돌며/…/다다 저 다다다,/…저 놈봐!/뒤쳐지는 놈 하나,/한 날개 절듯 나는 맵시 어색하고/(나도 한때 무리에서 처져 날아다녔다.)…/까마귀떼 풀린 저 대리석 하늘/내려와 내 시간이 된다./커피 한 잔 더./어이 못산당?〉(「독일 시편­5.쿠담의 까마귀떼」) 부대끼고 상처입히는 거추장스런 일상에서 앞이 확 트이는 개안의 순간을 꼭 집어내는 시인의 순발력은 여행길에선 혼의 무게마저 벗어부친 채 까마귀떼에게서도 그로테스크한 삶의 탄력을 읽어낸다. 얼마전 가벼운 풍으로 수술받은 체험탓인지 시집은 꿈에 본 지난 날들,희미한 내세나 늙음의 영상을 어느 때보다 자주 내비친다.하지만 시인에겐 죽음이 사로잡힌 종말이 아니다.삶의 축제에서 새롭게 날아오르기 위한 하나의 벼랑이라며 시인은 장난치는 제사장처럼 미소를 던지고 있다. 〈복사꽃 조팝꽃 산벚꽃 싸리꽃/꽃 물결 때문에/길들이 온통 뒤영켰구나./그 길에 엉켜 앞뒤 못보고/아파트 거실의 찌든 살 한 덩이/떠돌지 않고 돌아왔다면/그대를 어찌?//가슴에 주렁주렁 꽃채 매단 큰 재 하나 넘으면/작은 재들 머리에 꽃 동이 이고 떠돈다./처음 보는 재도 낯익은 재 같이/벼랑 가까이 끌려가다 아슬아슬 놓여난다./발 바로 앞에서 산까치 한마리 현란히 난다./벼랑이란 바로 날기 시작하는 곳.그 날음에 눈 퍼뜩 떠져/벼랑 반보앞/살 떨림 한번 격하게 격하게 그대 몸 훑지 않았다면/그대를 어찌?〉(「그대를 어찌?」전문)
  • 젊은 날의 반 고흐/드뤼으 라 로셸(화제의 책)

    ◎외톨이 화가를 통해 본 「고독」 삶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었던 한 외톨이 화가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숙명적 고독을 그린 소설.「아터버리」「런던」「훼브르」「헤이그」등 4부로 이뤄진 이 소설은 끊임없는 내적 성찰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해간 반 고흐를 모델로 삼고 있지만 미술사적 관점에서 고흐를 다루지는 않는다. 고흐에게 있어 예술은 그의 개인적인 운명과 동일한 것이었다.그의 작품은 하나하나가 곧 그의 전 존재의 작열이자 불안 혹은 기쁨의 절규였다.자신의 운명적인 외로움에 시달리면서도 스스로 정열의 포로가 된 인간.「…반 고흐」는 바로 이 천재예술가의 고독과 정열의 길을 따라 씌어진다. 젊은 날의 방황과 좌절을 거쳐 마침내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갈 천직을 찾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불투명한 자아와 익명성에 흔들리는 현대인에게 특히 단단한 중심이 되어줄만한 작품이다.민음사 이연행 옮김 6천5백원.
  • 미 구겐하임미술관 소장품/호암갤러리,16일부터 전시

    ◎근·현대 서양미술 걸작 한눈에/「복숭아 담긴 접시」서 「마법의 섬」까지/세잔·반 고흐 등 거장 47명 작품 망라 1879년 폴 세잔의 「정물­복숭아가 담긴 접시」에서부터 1965년 코르네유의 「마법의 섬』까지­. 19세기말부터 지난 60년대 중반까지 서양 근·현대 미술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릴 예정이어서 국내 미술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삼성문화재단 호암미술관이 오는 16일부터 10월3일까지 서울 호암갤러리에서 개최하는 「구겐하임 미술관 걸작전­세잔에서 폴록까지」전.이 재단이 미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관으로 꼽히는 뉴욕의 솔로몬 R 구겐하임미술관 소장작품을 대규모로 들여와 마련하는 흔치 않은 볼거리다. 한국,뉴질랜드,싱가포르를 연결하는 아시아 순회전의 첫 순서로 재단측이 5억원을 들여 유치한 이 서울전의 출품작은 대가 47명의 작품 58점(회화 54점,조각 4점).폴 세잔,빈센트 반 고흐,앙리 마티스,마르크 샤갈,파블로 피카소,피에 몬드리안,바실리 칸딘스키,잭슨 폴록,후안 미로등 세계 미술계의 큰 흐름을 주도했던 대가들이 망라돼있다. 뉴욕 5번가에 자리하고 있는 구겐하임미술관은 철강계의 거물이었던 솔로몬 R 구겐하임이 설립한 명소.1920년대 독일 귀족출신의 화가 지망생 힐라 리베이의 영향을 받은 구겐하임은 유럽및 미국의 비구상회화를 집중적으로 수집,1937년 미술관 건립을 위한 재단을 창립하고 2년후인 1939년 뉴욕의 이스트 54번가에 비구상미술관을 개관했다.구겐하임은 미술관을 확장하기 위해 세계적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 새 미술관의 설계를 의뢰하기도 했으나 준공을 보지 못했고 그의 사후 10년후인 지난 59년 새 미술관이 마침내 대중앞에 모습을 드러냈다.재단측이 창립자의 유지를 기려 이름을 솔로몬 R 구겐하임으로 정한 이 미술관은 큰 달팽이 모양과 계단없는 나선형구조가 독특해 개관 직후부터 뉴욕의 새 명소로 자리잡았다. 이번 전시에는 이가운데 폴 세잔의 「정물 복숭아가 담긴 접시」와 빈센트 반 고흐의 「눈내린 풍경」등 전통적인 전근대 회화의 출발을 알리는 회화 2점을 비롯해 피카소의 「세레의 풍경」,그리고 1909년부터 1920년대 중반까지 다양한 입체주의 양식을 보여주는 들로네,그리,레제도 포함돼있다.〈김성호 기자〉
  • 이대원·천경자 원로 2인 대규모 개인전

    ◎이대원­산·들·나무 등 자연풍경 묘사 근작 40여점 전시/천경자­「미인도 위작시비」 시름 딛고 화력 50년 회고전 서양화가 이대원(75·예술원회장)씨와 한국화가 천경자(71)씨. 국내화단을 대표하는 두 원로작가가 오랜 세월만에 혼자만의 대규모 전시공간을 나란히 펴보일 예정이어서 애호가들의 기대가 한껏 부풀어 있다. 이대원씨가 25일부터 11월8일까지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관 첫 전시를 갖고 천경자씨가 11월1일부터 한달간 호암갤러리에서 개인전을 마련하는 것. 서울 종로구 사간동 기존의 건물을 4층 규모의 새 전시관으로 꾸민 갤러리현대 신관에서 개관테이프를 끊는 이씨는 40여점의 근작으로 전시장을 꾸민다. 산과 들,나무와 연못등 자연풍경을 빠른 필치와 생동감넘치는 점과 선으로 표현하는 그의 조형세계는 반 고흐의 화면에서 만날 수 있는 「호사스러움속의 특별한 외로움」을 보여준다. 화려하면서도 기의 흐름이 담겨있어 황홀한 석양을 바라보는 감흥과 유사하다. 이씨의 개인전은 지난89년 현대화랑 개인전 이후 6년만이다.천경자씨의 회고전 형식의 전시회는 지난 80년 이후 15년만의 개인전인데다 지난 91년 「미인도」 사건 이후 처음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매우 특별한 자리이다. 「미인도 위작시비」에 휘말려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던 그 당시에도 『95년엔 화력50년을 돌아보는 회고전을 꼭 갖겠다』고 했을 만큼 중요한 전시회이다. 자신이 그린게 아니라고 주장했던 천씨는 그의 진품이라고 우기는 수십명의 미술인들과 싸워야 했던 그 힘든 사건 직후 1년간 붓을 꺾었다.그러나 그림이 자신을 버틸 수 있게한 힘의 원천이란 사실을 깨달으면서 다시 붓을 들어 실의와 좌절을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백호 이상의 대작 35점을 포함한 2백여점을 망라하는 이 전시는 채색화로 한국화단에서 독특한 경지를 이룩한 「천경자풍」의 형성과 변모과정을 일목요연하게 보일 수 있는 기회이다.
  • 유럽국가/“약탈 미술품 돌려달라” 한 목소리

    ◎구텐베르크 성화 등 60만점… 5조원 상당/「붉은 군대」 약탈,러시아선 “전리품” 주장 유럽대륙에서 독일군이 물러나고 제2차세계대전이 끝난지 50년.당시 약탈한 예술품을 반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일고 있다. 예술품의 반환요구대상은 독일이 아닌 러시아다.붉은 군대가 2차대전 종전과 함께 독일군으로부터 빼앗은 미술품들을 모스크바 등으로 가져가 아직도 보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술품들은 종전 직후 원품 그대로 봉인된 채 기차로 고리키에 반입됐다가 지난 58년 모스크바 등으로 옮겼다.그 가운데 일부는 수송을 맡은 군인들이 빼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고스란히 운송됐다. 붉은 군대가 가져간 작품은 60만점에 이르는 막대한 양으로 추정되고 있다.독일이 러시아에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작품의 수는 20만점. 구텐베르크의 「성서」를 비롯해 명작들이 포함돼 있으며 시가로는 5조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네덜란드의 작품은 유화 등 그림이 7백점,데생화 3천점이다.헝가리와 벨기에 등의 작품에다 프랑스 화가의 작품들도 상당수포함돼 있다. 프랑스의 미술품은 그림이 6백69점이고 3천점의 데생화에다 7백점의 청동상 등이다.이 가운데는 드가의 「춤추는 여인」,고갱의 「타페라 마하나」,드가의 「두사람과 집안」,반 고흐의 「흰집」,르누아르의 「빗질하는 여인」,마티스의 「무희」 등 명작도 섞여 있다. 이들 프랑스 작품들은 「오소비판(OS)」이라는 별도의 목록으로 보관돼 있다.구소련이 이렇게 많은 서구와 동구의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스크바대학의 미술사 교수인 알렉세이 라스토구에프씨가 지난 91년 러시아의 일간신문 이즈베스티야지에 처음 공개하면서 밝혀졌다. 또 최근에는 프랑스의 주간지 렉스프레스지가 자고르스키의 맥주의 탑에 유화와 청동상 등 1만6천5백점이 보관돼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들 미술품들은 스탈린이 대외비를 명령한 이후 외부에 공개가 절대 금지돼 왔다.단지 소련국가안보위원회(KGB)의장의 허락을 받아야 관람이 가능했으며 KGB를 방문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특별한 경우에만 관람이 허용됐다는 것이다. 일부 미술품들은 러시아의 해외주재공관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러시아는 옛소련시대인 지난 74년 브레진스키와 지난 92년 옐친러시아대통령때는 일부 예술품을 헝가리에 되돌려주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러시아측은 「예술품을 두번이나 구조했다」고 생색을 내고 있으나 헝가리는 「두번이나 도독맞은 작품들」이라고 맞서고 있다.특히 옛소련및 동구의 붕괴로 상호 연대가 느슨해지자 반환의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러시아 내부의 반응은 다양하다.푸슈킨박물관의 야아다이리나 앙토노바푸슈킨 관장(72)은 『독일에 협력한 헝가리가 독일에 팔아치운 것을 되돌려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반대하고 있다.또 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은 『우리가 전쟁에서 이겼다는 증거』라고 전리품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되돌려주지 않겠다는 얘기다.하지만 일부 자유주의자들은 전리예술품들은 「전쟁의 마지막 감옥」이라며 반환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보관한 예술품들 가운데 일부는 내년부터 전시도 될것으로 전해진다.지하에 보관돼 있다가 50년만에 빛을 보게 되는 것이다.
  • “개성있는 언어” 산문집 4권 눈길

    ◎유년시절 고백·분단현실 등 소재 다양/신경숙 「아름다운 그늘」/김하기 「마침내 철책끝…」/함광복 「DMZ… 아니다」/고종석 「고종석의 유럽통신」 한국문학의 지도에서 산문의 위치는 모호하다.붓 가는 대로 쓴 수필로서 감상적인 여고생이나 주부의 심심파적 정도로 치부되기도 하고 시나 소설에서 맛볼 수 없는 깔끔한 언어로 삶에 대한 직접적인 통찰을 드러내는 글로 대접 받기도 한다. 감상적인 수요층을 노골적으로 겨냥,감미료를 잔뜩 친 수필집들이 서점의 에세이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독특한 산문집 4권이 나왔다.작가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을 필두로 김하기 산문집 「마침내 철책 끝에 서다」,함광복 산문집 「DMZ는 국경이 아니다」,고종석 산문집 「고종석의 유럽통신」등이 그것.이 책들은 주제와 스타일은 다르지만 개성적인 언어로 산문정신의 본질인 「삶의 진실」을 추구하고 있다. 젊은 여성작가 중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신경숙씨의 「아름다운 그늘」은 마음의 떨림을 섬세한 언어에 담아온 소설가의 사적인고백.농촌에서 식구들과 부대끼며 자란 유년시절,글쓰기와 문단 친구들 이야기 등을 특유의 섬세한 문체로 속삭이며 작가는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삶의 비의에 가 닿고자 한다.이 책의 소제목인 「말해질수 없는 것들」이란 말은 그의 감성의 세계를 한마디로 드러내면서 유행어가 돼버렸다. 「마침내 철책끝에 서다」는 지은이가 휴전선을 따라 여행하며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기행문.백령도·강화도·민통선을 거쳐 최전방 철책 끝에 이르기까지 서로 대치하고 있는 민족의 고단한 운명을 보며 한층 불댕긴 지은이의 민족애가 열정적으로 뿜어져 나온다. 「DMZ는 국경이 아니다」역시 분단 현장인 DMZ을 글감으로 한 글.하지만 사회부 기자의 글답게 DMZ의 생태계와 거주지·역사 등에 대한 방대한 보고서의 성격이 짙다.천연기념물의 보고로서,주말 외출한 군인들이 애인과 어울리는 최소한의 삶의 터전으로서,그리고 예술가가 월북하고 남북이 정치적으로 충돌했던 역사의 현장으로서 DMZ의 중첩된 의미가 간결하고 차분한 문체에 실린다. 「고종석의 유럽통신」은 현재 파리에 체류중인 신문기자출신 지은이가 한국의 선후배·동료들에게 띄우는 편지글 형식.1백23년전의 실패한 파리 코뮌,일본인의 노벨문학상 수상,대선을 앞둔 파리의 분위기 등 현안을 보는 소감과 현지에서 본 앙리 레비의 영화,반 고흐,생텍쥐페리 등에 대한 여러가지 상념이 지은이의 두터운 문학적 소양과 사회를 보는 매운 눈에 걸러져 명쾌하게 드러나 있다. 문학동네 차창룡 편집차장은 『산문집이라면 이미 발표한 글을 모으는 것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최근엔 시골로 내려가서 산문집에 실을 글을 따로 쓰는 시인도 있다』면서 『산문이 푸대접받는 시대라지만 산문을 통해 아름답고 정확하면서도 감각에 맞는 국어에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 문인들도 적지 않은 듯 하다』고 말했다.
  • 도쿄 현대미술관/문 열자마자 “구설수”

    ◎“만화” 「머리 리본을 단 소녀」 거액구입 말썽/“현대 아시아미술 무시했다” 비난 드높아 도쿄가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세계적인 도시로 인정받기 위한 야심작으로 최근 개관한 도쿄현대미술관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흔히 세계적인 도시라고 하면 뉴욕 런던 파리를 일컫는다.이들 도시는 문화적으로 뭔가 대단한 듯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파리하면 루브르박물관,런던은 테이트 미술관,뉴욕은 시립미술박물관이 자동적으로 연상된다. 도쿄도 세계적인 도시의 반열에 끼기를 원하지만 문화적으로 이렇다하게 내세울게 별로 없었다.우에노공원에 국립박물관이 있어 귀중한 일본예술품을 보관하고 있지만 초라해 보이고,그 옆에 국립서양미술관이 있으나 전시작품을 다 합해야 루브르박물관의 전시실 한두개를 겨우 채울 정도다.시립미술관이 있지만 전시용으로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장소로 주로 사용된다. 그래서 지난 63년부터 은밀히 준비하고 87년부터 건물설계에 들어간 끝에 도쿄현대미술관이 지난달 18일 문을 열었다.일본작품 외에도 주요 외국작품 4백80점을 과시하면서. 그러나 몇가지 점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우선 간판작품으로 삼기 위해 6백만달러(약47억원)를 주고 구입한 미국 대중미술가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머리리본을 단 소녀」를 놓고 『시민들의 돈을 이같은 「만화」하나 구입하는데 그렇게 엄청나게 써도 되는냐』하는 반발여론이 제기된 것.6백만달러는 물론 일본이 구입한 단일작품 최고가는 아니다.오사카가 모딜리아니 작품을 1천9백만달러에,아이치현이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을 1천7백만달러에 구입했고,군마현도 모네작품에 1천1백만달러를 쏟아부었다.사기업이지만 야스다 해상화재보험은 반 고흐 작품인 「해바라기」를 3천9백만달러에 사들였다.그러나 모두 사치가 당연시됐던 80년대 거품경제 시대에 이뤄졌던 일들이다. 두번째로 현대 아시아미술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앤디 워홀,데이비드 호크니,프랭크 스텔라,케네스 놀랜드,마크 로스코 등 서구 기성화가들의 작품을 배면 대부분이 일본작품이다. 마지막으로 장소 선정문제다.쓰레기 매립지인 「꿈의 섬」과공장지대로 더 잘 알려져 문화적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고토구에 위치해 있다.매립지여서 지진에 약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작품까지 합해 4억3천만달러가 투입된 화강암 건물의 도쿄현대미술관은 도쿄의 새로운 명물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미술관측은 연간 관람객이 70만명 수준이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 고흐이후 화란의 거장/몬드리안 불서 재조명

    ◎파리 현대미술관,사후50년 특별전/신조형주의 창조,미술사에 큰 획/20세기 건축·그래픽디자인 영향 네덜란드의 화가 피터 몬드리안(1872∼1944)이 사후 50년을 맞아 파리에서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파리 시립현대미술관은 몬드리안 특별전을 계획하고 있다.이유는 두가지다.첫째는 네덜란드 미술계의 부활이라는 역사적인 의미 때문이다.반 고흐 이후 종말을 고했던 네덜란드 미술계가 그의 등장으로 활기를 찾았다고 보고 있다.또 하나는 신조형주의로 미술사에 큰 획을 긋기에 이르기까지 이 작가가 걸어온 탐구적 발자취를 작품들을 통해 볼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바다와 네덜란드 매립지의 습지,운하및 나무들을 그린 그의 화법에서는 반 고흐를 연상하게 된다.모래언덕과 농촌 교회를 화폭에 옮긴 그는 점묘화법을 구사했다.색조는 살아 있는 듯하면서 이미지는 낙천적이고 서정적이다. 그러나 관람객들은 그 후에 그가 창조한 신조형주의 작품들에 더욱 경탄하게 될 것이다.직각으로 된 선과 흑백및 회색의 조화에서 새로운 네덜란드 미술을 발견하게된다. 몬드리안은 당시의 모든 스타일과 경향을 예외없이 모두 실행해보고 새로운 미술 창작을 이해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그처럼 끊임없이 실험적으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변화시켜간 화가는 흔하지 않다. 몬드리안의 풍경화들은 풍만함을 그렸던 당시의 조류에 반해 일그러진 거울을 통해 보는 것처럼 가냘프게 그렸던 점이 특징이다.또한 신조형주의의 새로운 미술방식은 종래와는 다른 감성과 존재의 방식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꼽힌다.그가 20세기 추상회화와 건축,그리고 특히 그래픽 디자인에 끼친 영향은 참으로 크다. 그는 1911년 파리의 현실주의와 인상주의,야수주의및 입체주의를 모두 경험했다.몬드리안만큼 미술에 대해 학술적인 연구를 한 사람은 없다는 것이 미술사가들의 평가다. 그가 활약할 당시인 1911년에는 모든 예술조류가 뒤바뀔 때였는데 그는 이때 입체주의를 발견했다.친구인 철학자 스훈마케르스의 영향을 받아 기하학적인 추상을 만들려고 시도했으며 1912년부터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꽃핀 사과나무」를 시작으로 조용하면서도 단순한 추상적 표현으로 돌아선다.그로서는 엄청난 대변환이었다. 제1차세계대전으로 파리를 떠나 네덜란드로 돌아온 그는 테오 반 두스뷔르흐와 함께 잡지 데 스테일을 창간,새로운 추상미술운동을 선도해 갔다. 기존의 화법을 과감히 변화시켜 나간 용기있는 시도는 사후 50년을 계기로 재조명되면서 다시금 「몬드리안의 승리」라고 극찬되고 있다.
  • “회화의 시인” 미로 작품 국내 첫 나들이

    ◎가나화랑 20일부터·줄리아나 아트캘러리 5월말 기획전/가나화랑/조각·세라믹 등 60년대작품 조명/줄리아나/장르 대표작 모아 세계관 한눈에 「회화의 시인」「피카소 이후 세계최대의 화가」등으로 불리다 지난 83년 타계한 초현실주의작가 호안 미로(1893∼1983년)의 작품전을 국내에서 잇따라 볼수있게 됐다. 가나화랑이 오는 20일부터 5월7일까지 마련하는 「미로작품전」과 줄리아나 아트갤러리가 5월말부터 한달동안 기획할 예정인 「호안 미로 종합전」이 그것으로 국내 화랑이 주선하는 미로의 첫 한국전이란 점에서 벌써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특히 미로 탄생 1백주년인 지난해부터 경쟁적으로 추진해온 두 화랑의 미로전은 같은 미로 회고전의 성격이면서도 시기와 양식별 차이를 보이는 기획으로 많은 화제를 불러 모을 전망이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출신인 호안 미로는 빈센트 반 고흐,폴 세잔,앙리 루소로부터 예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면서 시어와 음조를 색으로 나타내려 애썼던 독특한 초현실주의작가로 여겨지고 있다. 지난해미로 탄생 1백주년을 맞아 뉴욕현대미술관에서는 대규모 미로회고전이 열려 1백56점의 회화와 1백46점의 드로잉,조각작품,도자기등 미로의 대표작을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도 했다. 가나화랑이 봄전시로 설정,의욕적으로 추진해 성사시킨 「미로작품전」은 지난해 미로회고전에 가장 많은 작품을 출품했던 뉴욕 아쿠아벨라화랑과 스위스 바젤 바이엘러컬렉션등이 소장한 작품중 조각 22점,회화 5점,판화 10점등 모두 37점을 소개한다.미로가 회화보다는 조각,세라믹,판화제작에 치중했던 60년대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40년대와 70년대 작품들도 일부 전시한다.이중 대표적 조각인 「새」와 3백호짜리 대형유화 「여인과 새」는 특히 눈에띄는 작품. 지난해 가나화랑과 비슷한 시기부터 국내 미로전을 추진해온 줄리아나아트갤러리의 「호안 미로 종합전」은 파리의 를롱화랑과 호안 미로재단이 소장한 작품중 대표작들을 선보이게 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미로가 생존할때의 전속화랑이자 사후 그의 유작을 관리해온 를롱화랑과 호안 미로재단의 소장품가운데 선별한 작품전이란 점에서 미로의 작품세계와 특징을 소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회화 조각 판화 드로잉등 미로가 전 생애에 걸쳐 몰두했던 다양한 양식에 걸쳐 50여점이 소개되는데 2백호 크기의 대형판화와 대형조각도 공개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독 표현주의 화가 재조명 작업/히틀러때 박해받은 「화폭」

    ◎강렬한 원색… 탐미주의 경향/칸딘스키 등 유명… 불 현대미술관서 4백점 전시 예술의 생명력은 영원한 것인가.독일에서는 요즘 극우세력이 기승을 떨치고 있는 가운데 1차대전 당시 히틀러치하에서 정치적 박해를 받은 표현주의 화가들에 대한 재조명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20세기초 이래 독일에서 일어난 이 예술운동은 「자연」보다는 작가의 「정신적 체험」을 바탕으로 강렬한 원색을 사용,선이나 윤곽의 표현력을 유별나게 강조했다. 표현주의 그룹에 속한 일단의 화가들은 그러나 미술사에 빛나는 자신들의 업적과는 달리 적극적인 현실참여로 인해 해외로 망명을 떠나거나 자살하는 경우가 많았다.그래서 프랑스·독일등 유럽화단에서는 뒤늦게나마 이들의 공적을 추모하는 열기가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파리 현대미술관에서는 나치점령시절(1905∼14) 몰수당한 표현주의 예술인들의 작품을 발굴,이 가운데 그림·조각·판화 4백여점을 전시하는 등 이들에 대한 재평가작업에 들어갔다. 그런가하면 독일에서도이 유파에 소속된 대부분의 젊은 화가들이 1914년 1차대전 발발과 동시에 「늙은 유럽」 재건을 위해 참전한점을 높이 평가,이들의 유작·유품 발굴에 나서고 있다.최근 나치 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베를린 비밀경찰책임자가 1933년 작성한 메모에는 『거추장스런 퇴폐주의화가 바실리 칸딘스키를 제거하라.그의 타락한 정신세계는 전체 인민들에게 해악을 끼친다』고 적혀 있다.나치당국의 끈질긴 추적을 받은 칸딘스키는 친지들의 도움으로 파리로 망명했다.베를린에서 당시 암울했던 삶을 소재로 작품활동을 해온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는 추방된 스위스에서 1938년 5월 자살했으며 표현주의 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던 뮌헨파의 마르크와 아우구스트 마케도 남의나라 프랑스 전선에서 생을 마감했다. 반면 이번에 현대미술관의 한 전시실을 가득 메울정도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한 에밀 놀데는 나치에 협력한 장본인.독일 홀스타인지방 농부의 아들인 그는 표현주의에 참여하기 전까지 풍경화를 주로 그려 「엘베강의 예인선」「가을바다」 등의 걸작을 남겼다.미술사에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표현주의는 1905년 에리히 헤켈,키르히너 등 당시 드레스덴(구동독)에 거주하던 일단의 젊은 건축가들로부터 비롯됐다.이들은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건축학을 택했지만 미술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처음에는 자신들의 모임명칭을 「다리파」(교파)라고 불렀다.다리는 이들의 전공과는 또다른 예술의 세계를 안내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마침내 다리파는 베를린 근교의 허름한 건물로 옮겨와 공동예술작업을 하게 되지만 새로운 회원들이 참여하면서 현대미술사에 획기적인 여러 운동으로 진전,제1차대전후 나치가 대두할 때까지 유럽의 예술계를 지배하기에 이르렀다.예술의 추상성을 내세우는 「신뮌헨 미술가협회」,「푸른기사의 화가들」 등이 바로 그들이다. 또한 색채의 자유로운 표현을 내세운 반 고흐,고갱 등은 야수주의를 지향하게 된다. 다리파의 창립멤버들은 사회적 변혁을 추구하는 한편으로 「자연」에 대한 탐미주의에 빠져들었는데 헤켈의 「갈대숲에서 목욕하는 사람들」,페흐슈타인의 「하늘 가득히」 등의 누드작품들은 그당시의 시점에서 보면 다소 타락한 작품들이었다.이런 퇴폐주의는 나치치하의 인종우월주의와 맞물려 결국 박해를 자초하고 말았다.
  • 초현실주의화가 호안 미로/탄생 1백돌 맞아 스페인 “떠들썩”

    ◎강한 색조·6환각적 유명/각국소장 4백80여점 전시… 9월엔 뉴욕으로 초현실주의 화가 주안 미로(1893∼1983)탄생 1백주년을 맞아 그의 출생지 스페인에서 다양한 문화행사가 펼쳐지고 있다.스페인당국은 올해를 「미로의 해」로 정하고 그가 태어난 카탈루냐 지방의 수도 바르셀로나를 비롯,마드리드,말년을 보낸 마요카르 등지에서 요즘 크고 작은 미로 전시회와 세미나·심포지엄 등을 열고 있다.특히 오는 8월말까지 계속되는 바르셀로나 전시회에는 30만명의 관람객이 몰려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는 미로재단 소장품들 뿐만아니라 유럽·미국·일본 등지의 미술관·화랑들로부터 대여해온 회화 1백80점과 드로잉 3백여점이 연대별로 전시돼 미로의 작품세계가 어떤 모습으로 변천해 왔는지를 살펴볼 수 있게 하고 있다.오는 9월에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장소를 옮겨 전시회를 갖는다.이번 전시회를 주최한 미로재단의 코디네이터 로사 마리아 말레트여사는 미로를 가리켜 『가장 세계적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카탈루냐 지방의 색채가 강한 작가』라고 평했다. 미로의 초기작품은 고향의 농촌풍경을 낭만적 기법으로 표현한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난 그는 카탈루냐문화와 언어에 깊은 애착을 갖고 사물에 대한 정밀한 형태적 감수성과 친밀감이 느껴지는 서정적인 작품을 많이 그렸다. 그래서 그는 풀잎 하나까지 세밀히 그리는 시기를 맞게 되는데 대표작은 1922년에 그린 「농장」이다.미로가 『내 시골생활의 이력서』라고 불렀던 이 작품은 풍경·태양·생활집기·자연의 세밀한 움직임 등 젊은 시절의 미로가 즐겨 택했던 소재들을 화려한 색채로 묘사하고 있다. 1924년 미로는 프랑스 작가 앙드레 브르통이 초안한 초현실주의 선언서에 서명하고 그의 최초의 초현실주의 회화 「베니스의 축제」를 그렸다.미술평론가들은 여러가지 상징들을 환각적으로 표현한 이 작품을 두고 『초현실주의자들 가운데 가장 초현실적인 작가』라고 평했다. 파블로 피카소와는 달리 미로는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프랑코독재체제 아래서도 망설이지 않고 스페인으로 돌아가 창작활동에 몰두했다.이때 미로는 「농장」과 함께 자신의 최대 걸작으로 꼽히는 「낡은 구두가 있는 정물」(1937)을 그렸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폴 세잔·앙리 루소로부터 예술적인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으며 『시어와 음조를 색채로 표현하려고 애썼다』고 말년에 회고한 적이 있다. 회화 말고도 그는 판화 조각 도자기등 다방면에 걸쳐 탁월한 예술적 재능을 발휘,54년에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국제전에서 판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 워싱턴 사교계여왕,외교관 변신

    ◎73세 “여걸” 해리먼여사,주불대사로 부임/민주당 정치자금 모금에 큰 공헌/“권력·돈에 굶주린 여자”로 비난도 워싱턴정가의 「제1귀부인」「사교계의 여왕」「막후의 여걸」로 명성을 날려온 파멜라 해리먼여사(73)가 23일 클린턴 미국대통령에 의해 프랑스대사로 임명돼 화제가 되고있다. 그녀의 정치적 실력은 클린턴이 대통령에 당선된뒤 처음으로 워싱턴에 왔을때 조지타운에 있는 그녀의 저택에서 첫 파티를 가졌던데서 잘 나타나고있다.반 고흐와 피카소의 작품들이 즐비하게 걸린 그녀의 저택에서 클린턴의 대통령당선축하파티가 열렸고 당시 언론들은 이 자리에 초대된 사람들이 새 행정부에 영향력을 미칠수있는 인사들이 될것이라며 참석자취재에 열을 올렸었다. 파멜라는 영국에서 딕비경의 딸로 태어났으며 윈스턴 처칠영국수상의 아들인 랜돌프 처칠과 결혼했다.2차대전후 랜돌프와 이혼한 파멜라는 미국의 영화제작자인 리랜드 헤이워드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왔으며 71년 헤이워드가 죽자 당시 소련대사였던 애브렐 해리먼과 다시 결혼하면서 워싱턴정가의 사교계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새 남편 해리먼은 그후 뉴욕주지사로 민주당내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그가 사망하자 파멜라여사는 남편못지 않게 민주당의 재건과 정치적 단합에 헌신했다.그녀는 남편이 남긴 조지타운의 우아한 저택을 민주당의 정치적 결속의 무대로 제공했다. 그녀가 이끌고있는 정치모금기구인 「팸팩」은 80∼90년사이 1천2백만달러를 모금했고 이 자금을 민주당의 이미지고양작업에 투입했다.클린턴은 자신이 팸팩에 봉사했던 지난 81년이래로 파멜라와 알고지냈는데 그녀는 클린턴­고어선거운동본부의 공동위원장으로도 이름을 걸어놓는 등 민주당의 「막후정치의 대모」로서 아낌없는 지원활동을 벌였다. 파멜라를 두고 한 작가는 『고양이 눈에 천진한 웃음이 가득한 여인』이라고 평했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녀의 웃음은 언제나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말하고있다.그녀에 관한 책은 2권 출간되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녀를 「권력과 돈에 굶주린 여자」로 묘사되어있다.
  • 영 리얼리즘화가 시커트/유럽서 회고전 잇따라 열려

    ◎“영 모더니즘운동 대부” 평가/실험정신 탁월… 「에드워드8세」가 대표작 19세기말 영국의 화풍을 유럽대륙에 소개하는데 큰몫을 한 리얼리즘 화가 월터 리처드 시커트(1860∼1942)만큼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된 예술인도 드물 것이다.시커트는 20세기 개막과 동시에 S­F 고어,해럴드 길맨등 영국의 젊은 모더니스트들에게 활기를 북돋웠을 뿐아니라 루시안 프로이드·프랭크 아우에르바흐 등과 같은 조형예술 작가,심지어는 철학가 프랜시스 베이컨에게 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쳤었다. 요즈음 런던의 왕립예술 아카데미에 이어 암스테르담의 반 고흐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시커트의 회고전은 그의 복잡다단한 내면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1887년에 그린 그의 대표작 「우스꽝스런 사자」는 섬세하고 솔직담백한 필치로 당시의 연예계 스타를 잘 묘사한 걸작으로 꼽힌다(사자 또는 맘모스라는 말은 하얀 넥타이를 매고 무대에서 노래에 곁들여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대중가수를 일컫는다).특히 무대에 선 가수의 불룩한 연미복과 배경을 이루는 호수의 묘사는 C 마네의 그림을 연상시켜 주고있다. 어찌 보면 다소 따분한듯한 시커트의 초기 작품세계는 1907년 그가 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고 돌변한다.어느날 런던의 하숙집 근처에서 목이 잘린 금발 창녀의 변사체가 발견된 것이다.이 살인사건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이듬해부터 침대에 드러누운 나부와 정장차림을 한 신사를 등장시킨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다.거칠고 어두운 이미지를 담은 일련의 그림들은 한결같이 무겁고 불길해 보인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가 죽은지 20년이되자 창녀 살인사건의 진범이 시커트 자신일것이라는 소문이 나온 것이다. 1880∼1930년 사이에 활발히 진행된 미술분야의 뛰어난 모더니스트 운동가들이 그러하듯 종래와 다른 엉뚱한 발상을 한 시커트도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을 듣고있다.이같은 새로운 시대흐름에 대한 그의 실험정신은 아무래도 그의 성장과정에서 찾아야 할 것같다. 시커트는 덴마크출신 아버지와 영국계의 어머니 사이에 뮌헨에서 태어났다.그런 탓으로 독일어와 프랑스어에도 능통했다. 청년시절 J M 휘슬러 밑에서 작품활동을 했고 83년엔 휘슬러의 소개로 E 드가와 만나 드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그의 초기 화풍은 신인상파적인데 드가는 물론 모네,H T 로트렉 등 프랑스 화가의 착상을 도입하기는 했으나 예술의 바탕은 영국풍을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자화상을 연상케하는 「아브라함의 하인」(1929년),막장에서 올라오자마자 아내와 열렬히 입맞춤하는 「광부」(1935년)등 그의 후기 작품에선 마치 사진을 찍어놓은 듯한 사실주의적인 경향을 보이고있다.특히 털모자를 들고 리무진 승용차에서 내리는 「에드워드8세」(1936년)의 묘사는 사실주의의 극치를 이룬다는 찬사를 받기도한다.
  • 미 뉴욕근대미술관 소장품/동경나들이 전시

    ◎피카소·샤갈·고흐 등 대표작 망라 미국이 자랑하는 「뉴욕 근대미술관」이 그동안 소장하고 있던 작품들을 한데 모아 오는 6일부터 5월9일까지 도쿄의 우에노 공원안에 있는 우에노 모리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지난 84년 재개관식때 세계적으로 1백65명의 절음 세대 화가 조각가들의 작품을 선정,8백여점의 새작품을 선보여 신선한 충격을 던진이래 최대규모가 될 이번 전시회는 예술가의 신집단주거지로 알려진 뉴욕을 떠나 일본에서 개최된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피카소의 작품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뉴욕 근대미술관답게 특히 피카소의 작품들을 대거 출품할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전시회에는 피카소의 작품만 하더라도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게르니카」를 비롯해 「거울앞의 소녀」등 10여점이 출품될 예정. 그 가운데서 주목되는 작품은 피카소가 연인 마리 텔레스 왈텔을 대상으로 그린 「거울앞의 소녀」.이 작품은 피카소가 1932년 그린 것으로 정면과 측면의 얼굴을 색상으로 대비시킴과 동시에 거울을 통해 숨겨진 여자의 허실을 간파,인간존재의 신비성을 잘 묘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함께 이번 전시회에서는 러시아출신의 프랑스 화가 마크 샤갈의 「나와 마을」(1911년) 「골고타」(1912년)등 4∼5작품과 함께 프랑스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 클라우드 모네의 「둥근다리」(1922년),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총총한 달밤」(1889년)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 외언내언

    1990년 네덜란드는 암스테르담 반 고흐박물관에 3월30일부터 1백22일간 반 고흐 1백주기 회고전을 마련했었다.이때 입장권예매를 외국팀들에 마꼈었다.이 표팔기를 주관했던 미국팀은 뉴욕과 파리에서 무려 1백50만장을 팔았다.전시기간이 4개월뿐인데 표는 1백50만장을 팔았으니까 좀 어이없는 조건까지 붙이게 됐다.표마다 2시간씩 시간을 제한했고 날짜나 시간이 지나면 무효이며 환불도 해주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전시회가 마치 영화관처럼 바뀐 것이다.◆그러나 사람들은 이 표를 샀다.그 후일담은 더 신기했다.전시기간중 현장에서는 단 한장의 프리미엄이 붙은 입장권마저도 구할수 없었다.이 프로그램을 보는 관점도 전과는 달랐다.기념비적인 전시회를 꾸려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이제는 문화상품도 산업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네덜란드는 반 고흐작품 3백85점을 한군데에 모음으로써 최소한 1백50만명의 관광산업수요자를 창출했던 것이다.◆그래서 또 오늘의 관광산업은 문화의 소재로 관광적 이벤트 프로그램을조직하는 일에 새롭게 매달리고 있다.모차르트 2백주기 행사들은 마치 열병처럼 세계관광계를 앓게 했고 이렇게 되니까 비발디 사후 2백50주년,부조니 사후 75주년같은 제목들까지 만들어졌다.이런 흐름에 비추어 본다면 서울정도 6백주년이벤트는 실제로 세계적 관광상품에 중요한 자리를 가질수 있다.이를 계기로 정부도 94년을 「한국방문의 해」로 설정해 놓고 있다.◆그러나 그 접근방법은 아직 흐름에 좇아가고 있지는 않은것 같다.알려진바 94년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항공료·호텔·쇼핑등을 할인해주는 특별인센티브카드제를 운영할 모양이다.세계 어디에나 있는 숙박과 교통료의 할인으로 관광객이 증가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이제는 좀 지나간 관점이다.오히려 돈을 더 받아도 프로그램의 질과 이미지가 더 잘 벌수 있게 해 준다는 점을 깊이 깨달을 때가 된 것이다.그러고보면 94년 우리의 프로그램준비는 지금도 너무 빈약하고 느리게 조직돼가고 있다.
  • 불서 개인전열고 귀국 황영성씨

    ◎“유명한 베르넴 준화랑 전시… 격찬 받아” 중진서양화가 황영성씨(51·조선대교수)가 지난 2월12일부터 3월5일까지 프랑스 파리의 베르넴 준화랑에서 개인전을 갖고 현지 미술인들로부터 호평을 받는 큰 성과를 올렸다. 뿌듯한 기분으로 최근 귀국한 황씨는 『이번 파리전이야말로 제게 새로운 젊음을 불어넣어준 뜻깊은 자리였습니다.그곳의 권위있는 1급화랑의 초대작가가 된 것도 뜻밖의 일이지만 제 그림에 대해 「감동적」이란 찬사를 받았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지난해 몬테카를로 국제회화제에 참가,특별상을 받게 된 그의 작품을 본 프랑스 미술평론가 로제 부이요씨가 황씨를 격찬하면서 베르넴 준화랑에 추천한 것이 파리데뷔의 계기가 됐다. 우리 작가들이 흔히들 파리나 뉴욕등 외국에서 개인전을 갖고 좋은 성과를 올렸다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이는 자화자찬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실상은 현지의 무명화랑에서 작품을 걸어두는 정도에 그치는 예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 그런 점에서 황씨의 이번 파리전은 남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베르뎀준화랑의 명예와 권위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곳인 때문이다. 파리 마티뇽가에 있는 이 화랑은 18세기부터 미술품 취급상을 하던 한 가족의 가업의 터전이 된 곳으로 19 01년에 반 고흐가 이곳에서 첫번째 파리전을 가졌고 세잔,마티스,루소,블라맹크,모딜리아니,고갱,르노아르,달리등 수많은 거장들의 개인전도 여기에서 열렸다. 그는 1백호 중심의 대작위주로 근작24점을 발표했는데 5점을 판매하기도 했다. 호당 60만원선의 황씨가 국내가격의 70∼80%선에서 가격을 매겼는데 그 가격도 현지에서는 A급작가 가격수준이었다고 한다. 그의 그림에 대한 파리사람들은 『동양화가들이 그린 서양화를 수없이 봐왔지만 그것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동양적인 서양화이며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현지미술잡지 L’OEIL 3월호)고 했다. 지난 90년부터 1년여 남미 마야 잉카문명을 돌아보고 이제 파리전까지 마친 황씨는 『올가을까지 아무 생각없이 작업에만 몰두하겠다』고 밝혔다.
  • 로트레크 사거 100년 파리 회고전 인기

    ◎포스터·판화등 2백여점… 예술세계 재평가 키1백52㎝의 난장이였던 화가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18 64∼ 19 01)은 날이 가면 갈수록 천재성이 재발견되는 거인으로 추앙되고 있다.그의 사후 1백년을 넘기면서 「로트레크 회고전」이 영국 런던에서 열린데 이어 지난 22일 파리 그랑팔래 국립미술관에서 개막되었다.세계 곳곳에 흩어진 그의 작품 2백여점이 한지붕 아래 모인 이 회고전은 6월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되는 작품 가운데는 회화 70점 외에 그가 독특한 경지를 개척한 포스터와 판화 부문의 작품 그리고 소묘가 포함돼 있다.프랑스 내의 알비 미술관(알비는 그의 출생지임)과 오르새 국립미술관,국외의 런던 시카고 상파울루 런던 모스크바 등지 미술관및 미술품수집가들에게서 빌어온 것들이다. 오늘날 로트레크 작품의 인기는 대단하여 값이 매우 비싸다.그의 생시에 20프랑 하던 판화 1장이 19 91년 12월 런던 소더비 경매장에서 2백31만 프랑(1프랑은 1백40원)에 팔렸다.로트레크 작품 가격의 최고 기록은 19 89년 파리 드뤼오 경매장에서 3천35만5천3백96프랑에 팔린 「바티뇰에서」라는 그림(92×65㎝)이 지니고 있다. 파리의 신문들은 여러 차례 로트레크 회고전을 크게 다루었으며 전시장 입장권이 개막 보름전에 이미 4만7천5백장이 팔리는 기세로 보아 예매하지 않고는 이 전시회를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충고하고 있다. 지난 17일에는 일반공개에 앞서 미테랑 대통령이 자크 랑 문화장관과 함께 관람했다. 로트레크는 알비라는 곳에서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다.그의 가문은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귀족가문의 하나로서 조상들은 대대로 툴루즈 백작이라는 칭호로 불렸다. 스무살 나던 해인 18 84년 파리의 몽마르트르 지역 투르라크 거리 7번지에 정착한 로트레크는 이듬해 근처의 무도장 물랭 루주(빨간 풍차)가 문을 열자 여기 드나들면서 이 업소 선전 포스터를 그리는 한편 이곳의 무희와 가수들을 즐겨 화폭에 담았다.그래서 로트레크 하면 몽마르트르와 물랭 루주를 연상하게 된다. 난장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멍에처럼 이고 살아야 했던 그는 술과 불우한 밤의 여인들에게서 위안을 받았다.알코올과 화류병으로 그는 33세때 이미 폐인처럼 되었으며 결국 37세로 죽었다.그가 살았던 때는 이름난 화가와 문인들이 예술의 꽃을 피우던 「좋은 시절」로 일컬어지던 시기였다.동시대인으로는 반 고흐가 로트레크의 재능을 남달리 인정한 사람이었다. 로트레크의 작품은 그가 죽은 뒤에도 수십년 동안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환락가의 탕아라는 평판 때문이었다.그의 사망 직후 옛 백작부인인 어머니가 파리시와 뤽상부르 미술관에 작품들을 기증하겠다고 했으나 거부당했다.19 20년에 이르러서야 출생지인 알비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받아들여졌다.
  • 전통문화 해외소개/이태동 서강대교수 영문학(굄돌)

    얼마전 이수정 문화부 장관은 취임 후 처음 가진 기자회견에서 새해 문화정책 가운데 가장 역점을 두어야 할 부분은 한국전통문화의 해외소개라고 말했다. 이장관의 이러한 발표는 때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대단히 환영해야만할 일이다. 사실 해외에 나가서 몇 년을 지내본 사람이면 누구나 외국인들이 한국문화에 대해서 너무나 눈이 어둡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게 됨은 물론 심한 당혹감까지 느끼게 된다.정말이지 그들이 한국문화가 중국문화와 일본문화와는 다른 독특한 개성과 우아한 미학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우리것을 종속된 문화로만 보려고 할 때 필자는 딱하기보다 슬픔마저 느낀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전통문화가 서구인들에게 이렇게 비친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책임이다.사실 그동안 우리는 여러가지 내외적인 조건때문에 전통문화의 보존에만 급급해 온 나머지,그것을 계승발전시켜,해외에 알리는 일에 너무나 게을리해 왔다.그런데 한 나라 문화를 다른 나라에 알리는 일은 결코 물리적인 힘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비교문화이론에 의하면,문화의 흐름은 어디까지나 「비각우위」의 법칙에 의존하고 있다.이를테면 일찍부터 일본문화가 서구사회에 부분적으로나마 성공적으로 침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것이 서구문화가 가지지 못한 독특한 개성과 미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반 고흐와 같은 세계적인 화가가 프랑스에서 본 일본의 목판화에 영향을 입어 후기인상파의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든지,혹은 애란의 민주시인 예이츠가 감정을 보이지 않는 일본 능극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일본의 전통예술이나 현대예술에 「키쉬」(저속함)가 한 점도 없는 것은 아니나,그들은 그것을 끊임없이 계속 발전시켜 외국인의 숨은 미학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그러면 현 시점에서 우리 문화는 어떠한가.라이사워가 지적한 바와 같이 그것은 우리의 성격처럼,생명력은 강하게 지니고 있으나,아직까지 성기고 거칠다.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전통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이 지닌 건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면서,원색적으로 거친 면을 우아하게 세련되게 만드는데 있다.다행히 지난 해 한국의 유엔가입을 기념하는 문화사절단이 보여준 공연은 한국문화가 세계문화속에 설 수 있는 가능성을 훌륭히 보여 주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계승발전 시킨 한국의 「매듭장식」이 미국의 유명대학 전시실에서 일본의 「종아학」보다 「비교우위」에 있을 장면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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