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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UR 두렵지 않은 이호열씨 부부(이사람)

    ◎무공해농사·직판으로 온마을에 “활기”/쌀·채소 유기농법 개발… 14가구에 전수/“맛 좋다” 서울서 큰 인기… 소득 50% 껑충/“신용이 생명”… 철저한 품질관리로 「새 농민상」 받아/가을되면 소비자 초청,「메뚜기잡기대회」 여는 “억척” 무럭무럭 자라고 있는 상추와 쑥갓,버팀목을 타고 올라간 덩굴엔 싱싱한 오이들이 가지마다에 주렁주렁 열렸다. 밖은 영하의 쌀쌀한 날씨였지만 비닐하우스안은 섭씨 20도 내외로 약간 더운 느낌이 든다. 비닐하우스 밭에는 김장용 무·배추가 출하를 위해 기다리고 있다. 충남 아산군 음봉면 산정리 이호열(35) 김복순씨(34) 부부가 「무공해 농산물」로 승부를 걸어 보겠다면서 땀흘려 농촌의 부를 일궈내고 있는 곳이다. 충남 온양에서 아산만으로 가는 국도를 달려 8㎞쯤 들어가다보면 공기와 물이 전혀 오염되지 않은 비교적 한적한 마을 산정리가 나온다. 이씨부부의 삶의 터전이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면 이미 탈곡하고 난 볏짚들이 여기저기 쌓여있고 경운기가 다닐 정도의 농로주변으로는 온통 비닐하우스뿐이다. 이씨내외를 비롯한 이 마을 14농가가 이른바 「건강한 식품」을 이곳에서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무공해 식품은 대개 농약이나 화학비료를 쓰지않고 퇴비만으로 생산하는 「유기농법」에 의한 농산물과 그 가공품을 말한다. 『무공해식품 하면 얼마전까지만 해도 도시 부유층의 사치품으로 여겨졌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2∼3년 사이에 도시인들 사이에서 식생활과 성인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오염되지 않은 청정농수산물이 일반화된 것이지요』 선견지명이 있었다고나 할까. 온양고등학교를 나온 이씨는 군에서 제대한 지난 76년 고향마을에 눌러 앉기로 작정했다고 한다. 그는 산정리에 본관인 본관인 덕수 이씨의 종중땅이 있기도 했지만 농촌 청년들이 고향을 자꾸 떠나 날로 황폐화되고 있는 농촌을 자신은 도저히 떠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처음엔 다른 농가와 마찬가지로 농약을 사용해서 벼농사를 지었다. 그러다가 80년초 일본에서 무공해 농산물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사를 농촌 잡지에서 읽고는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자신도 모르게 두주먹을 불끈 쥐었다. 잡지에 난 기사대로 그가 살고 있는 산정리는 지역적으로나 주변환경 그리고 토양 등이 무공해 농산물을 재배하기에 최적지였다. 그래서 83년부터 벼농사를 유기질 비료와 농약을 안쓰는 방법으로 지었다. 좋은 벼품종을 선정하고 볏짚에 발효효소를 섞어 만든 발효퇴비만을 써서 벼농사를 지었다. 그해 처음으로 무공해 쌀을 수확했으나 당초 예상과는 달리 판로의 벽에 부닥치는 시련을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는 아직 공해·환경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기에는 이른 시기였는데도 이같은 사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그저 젊음 하나만으로 덤벼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가 지금까지 농사를 짓는 동안 가장 어려운 시기였고 농사에 회의까지 느껴 도시로 나가 다른 일을 해볼까하는 어리석은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이때 그는 남들처럼 도시로 나가 막노동이라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런 유혹을 뿌리치게 한 것은 물론 그의 아내덕분이었다. 그의 아내는 자신이 서울 토박이지만 그곳 역시 농촌 이상의 어려움이 있다면서 그같은결심이 있으면 농촌에서도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는 부인 김씨는 남편대신 서울 친정식구를 동원해 무공해 쌀의 판로개척에 나섰다. 『제 자신이 찌든 서울보다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농촌에서 살고파 이이를 따라 왔는데 도회지로 나가려는 남편을 말리지 않을 수 있겠어요. 누구보다도 농촌을 사랑하고 점차 농사짓는데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는 남편을 농촌에 남도록 꼭 붙잡았죠』 이씨는 뿌린대로 걷을 수 있는 농사일이 더없이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부인의 간곡한 만류와 격려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그는 아내와 같이 생산한 무공해 쌀을 싣고 서울로 올라와 주택가를 돌며 소비자에게 직거래를 시도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그때 고지대주택가나 아파트에 쌀을 배달하다가 허리를 다쳐 지금도 통증을 느낀다』면서 안쓰러운 표정이다. 날이 갈수록 무공해 쌀을 찾는 이가 늘면서 이제는 주문량을 다 대지 못할 지경이 됐다고 한다. 이씨는 같은 마을 청년들에게도 무공해 벼농사법을 소개해 지난해에는 14농가에서 모두 5백가마의 무공해쌀을 생산,서울·부산 등 대도시 고객에게 판매했다. 이들 농가는 무공해라는 상품성을 지키기위해 제초제등을 단 한번이라도 사용했을 경우 공동판매대상에서 제외시키는등 품질관리에 철저를 기했다. 회원들은 지난해 무공해쌀 5백가마를 생산한 것 외에 청정채소 2천여만원어치를 생산,시중보다 30∼50% 높은 값에 모두 판매할 수 있었다. 그의 아이디어는 소비자들에 대한 관리방법에서도 번쩍인다. 회원들은 매년 가을이면 자신들의 무공해농산물을 사주는 소비자들을 이곳에 초청,농약을 주지 않은 논에서 메뚜기잡기 대회까지 펼치고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지난달 3일 이 행사를 가져 소비자 1백50여명이 다녀갔다. 이씨 부부는 지난 83년 중매로 맺어졌다. 그때부터 이들 부부는 이곳에 삶의 터전을 내리고 있다. 1남3녀중 둘째딸인 부인 김씨는 서울여상을 나와 모전기회사 경리사원으로 근무했다. 농촌이 얼마나 살기 좋은지 아니면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글자그대로 문외한이었다. 『남편의 순박하고 성실한 태도에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이끌렸어요』 부인은 남편을 바라보면서 그때 일이 수줍은 듯 입가에 미소를 띄운다. 재민(8·음봉국교 1년) 재휘군(6)을 낳아 키우면서 한번도 불평없이 힘든 농사일을 거들고 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이씨는 무척 미안하다는 표정이다. 이씨는 『지난 80년 논·밭 4천평에서 시작한 무공해 농산물 재배로 올린 연간 소득은 4백만원에 불과했지만 이젠 3배정도 소득을 올리고 있다』면서 『내년에 4백평 규모의 비닐하우스를 더 지으면 그곳에 상추·쑥갓·오이·호박 등을 사철 재배해 적어도 3천만원의 소득은 거뜬히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농한기도 없어요. 그러니 수입이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모두들 농산물 시장개방으로 불안감에 빠져 있는 것 같지만 우리와 같이 무공해 농산물을 재배하는 방법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부인 김씨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이다. 이들 부부는 이달초 이같은 노력으로 농협이 뽑은 제11회 「이달의 새 농민」이 됐다.
  • 국내재벌이 본받아야 할 일 기업인의 근검(재벌/이대론 안된다:7)

    ◎도코 전 경단연회장/10평 목조주택서 일생/냉난방시설 않고 회장부인이 가사일/월 생활비 5만엔… 출장땐 손수 세탁/중소업체사장들도 종업원들과 같은 사무실서 근무 예사 근검절약은 일본인들의 생활철학이다.일반 국민들은 물론이고 기업인들에게도 몸에 배어있다.일본은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가 넘는 세계제일의 알부자 국가지만 근검절약정신은 아직도 가정의 생활철학이 되고 기업운영의 기초가 되고 있다.특히 일반국민들보다 소득이 많은 기업인들조차 다른나라 사람들은 잘 납득이 가지않을 정도로 아주 검소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즈음 일본은 2차대전후 최장 호경기였던 「이자나기」경기를 2개월이나 넘어서는 59개월째 호경기를 누리고 있어 세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그렇다면 2차대전때 참담한 패배를 당했던 일본이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으로 일어선 동인은 무엇인가. ○호화저택 소유 드물어 여기엔 여러가지 시각과 분석이 있지만 한마디로 패전으로부터 재기하기 위해 국민모두가 근검정신으로 무장하고 경제부흥에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경제주체인 기업·근로자·정부 3자의 협력을 기초로 한 일본식 자본주의가 성공을 거둔 것이다. 특히 이 3가지요인 가운데서도 일본의 경제성장에서 기업의 기여는 절대적이었다.비록 무력에 의한 전쟁에선 졌지만 경제적으로 세계를 정복해 보겠다는 무사정신으로 기업이 운영되어왔기 때문이다.요제프 슘페터가 일찍이 「경제발전 이론」에서 주창한 기업가정신은 일본경제의 견인차역할을 했다.「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첨단기술개발·기술혁신에 앞장섰고 기업을 개인의 기업이 아닌 국민의 기업으로 육성시켰다.이처럼 일본특유의 기업가정신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데에는 근검정신이 큰 기여를 했다. 사실 일본에는 서구의 경제발전의 정신적 지주가 됐다고 막스 베버가 지적한 프로테스탄티즘과 같은 뚜렷한 사상적 뿌리는 없다.그러나 에도(강호)시대때 융성했던 유교의 전통적 윤리사상과 부국강병및 국민적 이익을 주창한 명치유신의 국가근대화이념이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의 근간이 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근검절약은 에도시대 무사들의 기본적인 생활지침이기도 했다.그당시 무사들에게 첫번째로 강조된 덕목은 근검절약이었다.그래서 호사스런 생활을 하는 부상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부상들은 「문전을 장식하지않는 생활」을 했다. 일본 유수의 재벌인 미쓰이그룹의 경우 이미 17세기초에 상인의 덕목으로 검약과 정직을 강조해왔다.이같은 배경에서 오늘날 일본기업인들의 검소한 생활이 일반화됐고 기업가정신이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이같은 배경말고도 대부분의 최고경영진은 밑바닥인 평사원으로 출발,과장→부장→이사→사장→회장으로 승진하고 상담역으로 은퇴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근검절약생활엔 아무런 변함이 없다. 일본기업인들이 얼마나 검소한 생활을 하는지는 그들이 살고있는 집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일본 재계의 총리라고 할 수 있는 히라이와 가이시(평암외서)경단연회장의 경우 건평 36평의 낡은 기와집에서 살고있다.도쿄전력의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그는 『집은 그저 비바람만 피하면 족한 것』이라는 소박한주택관을 갖고있다.일한경제협회회장인 스기우라 빈스케(삼포민개)일본장기신용은행 상담역도 도쿄시내의 조그만 집에서 살고 있다. 지난 88년에 타계한 도코 도시오(토광민부)전 경단연회장의 주택은 일본기업인들의 검소한 생활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로 남아있다.요코하마 근교의 가마쿠라에 있는 그의 집은 10평 남짓한 목조주택이어서 집앞으로 트럭이 지나다닐 때마다 집이 흔들릴 정도였다.그는 경단연회장 재직때 도시바전기회장을 겸직하고 있었는데,회사에서 새로운 태양열 난방장치를 개발,그의 집에 설치해보자고 건의하자 지붕이 약하다며 설치를 하지못하게 한 일도 있다.또 한번은 그의 부재중 손님이 찾아와 초인종을 눌렀더니 가정부처럼 초라한 노파가 나오길래 사모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바로 부인이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냉난방시설도 하지않은 초라한 집에서 살았던 그는 당시 한달에 5만엔의 생활비만 부인에게 주고 나머지 수입은 전부 장학기금으로 기부했으며 해외출장때는 손수 빨래를 하기도 했다고 한다.대지만 해도 1천평이 넘고 건물을 호화롭게 지어 재산세만 수천만원씩 내는 우리나라 재벌총수들의 저택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이밖에 「기업경영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인 고마쓰시타 고노스케(송하행지조)도 호사스럽지않은 집에서 수수하게 살았고 전 경단연회장인 사이토 에이시로(재등영사낭)신일본제철 명예회장등 일본을 대표할만한 기업인들도 대부분 검소하게 살고 있다. ○오일쇼크 극복 원동력 일본 기업인들의 검소함은 집무실에서도 엿볼 수 있다.우리나라 재벌기업의 회장이나 사장들의 사무실이 호사스러운데 반해 그들은 업무를 보는데 불편하지않을 정도의 공간만 활용하고 있다.큰 기업체의 회장이나 사장의 검소함이 이 정도이니 중소기업체사장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종업원 20∼30명을 거느리고 있는 중소업체사장들은 사장실도 따로 없이 종업원들과 식사등 생활을 함께 하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직접 청소까지 하는 경우도 적지않다. 일본 기업인들은 이같은 검소한 생활말고도 기술혁신·감량경영·에너지절약등투철한 기업가정신을 발휘,2차에 걸친 오일쇼크와 미국의 통상압력에 따른 이른바 「엔고」를 거뜬히 극복했다.또 기업인들이 검소한 생활을 하고 회사일에만 전념함으로써 노사화합도 다져나갔다.이런 결과로 여러차례에 걸친 위기가 일본기업엔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된 셈이다. 최근 일본은 근검정신으로 이룬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위대의 해외파병추진등 군사력증강도 꾀해나가고 있다.무력으로 달성하지 못한 세계제패의 꿈을 경제력으로 이뤄보려는 야망을 갖고있는 「무서운 나라」로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 외언내언

    세상에는 식도락가들이 적지않다.그래서 무슨 집의 주물럭,어떤 골목의 추어탕,과부댁이 하는 복국집을 찾는다.하지만 끼니 때우는 일이 귀찮은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다.그럴때 하는 말­『영양이 농축된 알약같은 것은 없나?』◆말이 그렇지 「알약식사」를 한다고 해도 계속할 수는 없다.위기상황등 특별한 경우 말고는.두어번만 하고 나면 김치·된장찌개 생각이 간절해질 것이다.식욕이란 인간 본연의 욕망.미각과 포만감을 즐기면서 행복해지는 것이 인간 아니던가.『먹기 위해 사느냐,살기 위해 먹느냐』는 말이 나오는 까닭도 여기 있다.치아·타액을 비롯하여 내장에 소화기능을 점지한 섭이의 뜻에 어긋난다 할 것인지도 모른다.◆사람은 문명화함에 따라 차츰 미각을 즐기는 쪽으로 기울어 온다.식사를 하되 어떻게 맛있게 하느냐 하는 생각.그 생각으로 처음에는 자연에서 갖가지 조미료를 만들어 냈다.그러다가 인공이 가해진 화학조미료로 발전한다.그것이 많이 일반화해 버린 근년 들어 그에 대한 성찰도 일고 있다.미각을 즐기는 것은 질병과 죽음으로가는 길이라는 생각이 확산되면서이다.◆미각에 젖다보면 첫째,과식을 한다.과식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그러면서도 불지불식간에 과식하는 것이 인간의 식욕.이 과식을 화학조미료가 유도한다.맛에 취하게 하기 때문이다.그 다음,화학조미료 그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높아가는 것은 사실.인체에 좋지 않다고들 생각한다.이번 한 「시민의 모임」이 「조미료 안먹는 날」(16일)을 맞아 조사한 결과에도 그런 의식은 나타나고 있다.◆가정의 식탁에서는 화학조미료를 없애거나 줄여가는 흐름이다.그래도 대중음식점의 경우 99.5%가 「맛」을 그것으로 낸다.「시민의 모임」에 의할 때 우리의 사용량은 「세계 최고수준」.미각과 건강의 관계를 생각은 해봐야 할 때다.
  • 노벨물리학상 드 젠느교수의 업적/응집물질학의 새 지평 개척

    ◎물질상태·구조변화 일반이론 확립/액정·고분자화합물 실용화에 기여 91년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프랑스의 피에르 질르 드 젠느교수(58·「콜레주 드 프랑스」)는 물질의 상태·구조변화에 대한 일반이론을 확립·증명,물질이해와 이용에 새 지평을 연 「응집물질 물리학」의 선구자. 60년대말부터 프랑스의 오르세이(ORSAY)연구소에서 일단의 물리·화학자들을 규합,물질상태및 구조변화를 내부구성물질간의 상호작용변화란 측면에서 고찰·연구하는 새로운 조류를 형성해왔다.이러한 물질이해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접근은 화학·분자생물학등 인접과학뿐 아니라 철학·사회학등 이후 사회사상형성에도 뚜렷한 영향을 끼쳤다. 특히 액정(고체면서 액체구조까지 포괄하는 단결정)과 고분자화합물에 대한 개척자적 이론정립과 실험증명등 연구활동은 오늘날 컴퓨터·전자계산기등의 화면(디스플레이)에 쓰이는 액정의 광범위한 실용화와 각종고분자화합물의 활용범위확대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이러한 연구는 세계 각국의 관심의 대상이되고 있는 초전도체의 생태·구조변화가 액정및 고분자화합물의 변화와 어떤 유사점을 갖고 있는가 하는점을 설명해 보이는데까지 진전되고 있다. 노벨상수상자 선정위원회인 스웨덴한림원도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들이 질서있는 운동상태에서 무질서 상태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일으키는 자력형성등 각종 현상및 이행과정을 수학적으로 일반화시킨 것도 그의 중요수상 이유중 하나라고 밝혔다. 드 젠느교수의 연구분야는 우주에 존재하는 물질의 다양성만큼이나 폭넓은 것으로 유명.17세기 뉴턴이 우주와 물체의 운동법칙을 일반화했다면 그는 물질내부의 상호작용을 이론·실험을 통해 일반화시켜 「우리시대의 뉴턴」이라 불리기도 한다.한마디로 그의 연구는 물과 얼음은 똑같이 수소2분자와 산소1분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구성요소사이의 「상호작용의 다름」에 의해 물이 되기도 하고 얼음이 되기도 하는 과정과 이유를 밝히는데 있다.이러한 그의 연구접근방법은 두뇌세포들의 사고작용,인체효소들의 생화학반응,DNA의 유전정보운반활동 등 생명의 신비규명에의 도전에서부터 컴퓨터반도체칩의 개발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세계과학자에 의해 응용되고 있다.현대물리학계의 고전이 되다시피한 「액정물리학」이란 저서를 내기도 한 그는 외신인터뷰에서 마리 퀴리­피에르 퀴리부부가 한때 봉직했고 현재 자신이 책임자로 겸직하고 있는 파리 물리화학대학이 시당국으로부터 보조금삭감에 직면하고 있는 이때 상을 받게돼 기쁘다고 밝히기도 했다.(도움말=최무영 서울대 물리학과교수)
  • 부의 세습/외국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현대그룹 정주영명예회장 일가의 주식 변칙증여·상속 사실을 계기로 재벌그룹을 중심으로 한 「부의 변칙세습」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현행 세법에 규정된 상속·증여세를 제대로 물고는 재벌그룹이 2세에게 그대로 세습되기가 어려운데도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재벌기업의 세습이 어떻게 이루어져 왔으며 미국·일본·독일등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알아본다. ◎미국/기업 경영권등 이사회전속 제도화/상속세 기초공제 초과땐 최고 55% 누진과세 미국에서는 부의 대물림이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회사경영 형태를 살펴보면 실질적 경영권이나 의사결정권은 전적으로 이사회에 속하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 부호였던 록펠러 2세의 경우 1934년 부인과 자녀 6명의 장래를 위해 총1억달러를 신탁하면서 3천5백여만 달러의 증여세를 물었다.부인을 위한 신탁금이 1천8백30만달러로 가장 많았는데 석유회사 주식으로 납입했다. 그는 또 록펠러 센터등 소유재산을 처분했던 1952년 후손들에게 6천3백30만달러의 재산을 나눠주면서 3천2백20만달러의 증여세를 냈다.그의 재산 양여는 이때도 대부분 신탁으로 이뤄졌다. 록펠러가의 이같은 재산상속및 관리방식은 미국부호들의 세계에선 「전형」으로 통한다. 록펠러 2세는 「1934년 신탁기금」에 대한 통제권을 자신의 보좌관들로 구성한 피신탁인 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했으며,위원들에겐 후임자 임명권이 주어졌다.기금관리는 체이스 내셔널 뱅크 신탁부가 맡았다. 그는 자녀들에게 기금에서 생기는 수익은 갖게했지만 기금 자체를 소유케하지는 않았다. 미부호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는 재산관리및 상속과 관련하여 어떻게 하면 면세혜택을 많이 받고 절세를 극대화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때문에 뉴욕의 부촌에서 이같은 세무를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들은 미국에서도 가장 수입이 좋은 직종으로 꼽힌다. 미국의 상속세 기초 공제액은 60만달러이며 이를 초과할 경우 최저 18%에서 최고 55%(3백만달러 이상부터)의 누질세율이 적용된다. 재산세를 배우자에게 상속하거나 자선단체에 기증하는 경우 상속세와 증여세가 면제된다.미국에서 많은 부자들이 생전에사재를 털어 문화재단을 세우거나 유산을 자선단체에 상속시키는 것은 사회적 관행이기도 하지만 이같은 세제와 무관하지 않다. 현재 미10대 재벌기업들의 계열사에 대한 지분율은 10%정도에 불과하다.록펠러가의 엑슨이 8%,US스틸 11.8%,제너럴 모터스 9.9%,제너럴 일렉트릭 9.4%등이다. 이들 재벌의 가족 지분율은 엑슨이 0.8%,US스틸 1.2%,제너럴 모터스 0.75%,제너럴 일렉트릭 0.4%등으로 나타났다. ◎일본/기업경영·소유 분리… 직계승계 없어/도요타사등 창업주 주식지분 1%도 안돼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창업자인 도요타 에이지(풍전영이)는 평생을 바쳐 도요타를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그러나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주식은 전체주식의 0.18%에 불과하다.도요타는 자신의 기업이 아닌 것이다. 창업자의 아들인 도요타 쇼이치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비율도 0.86%에 지나지 않는다.창업자와 그의 가족이 가지고 있는 모든 주식을 합쳐도 전체주식의 겨우 1%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비단 도요타자동차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일본의 대표적인 위스키회사 산토리의 창업자 도리씨와 그의 가족의 주식 지분역시 1%미만이다. 마쓰시타(송하)전기의 신화를 창조한 마쓰시타가 생전에 가지고 있었던 주식 지분도 2.8%에 불과했다.일본의 기업들은 이같이 창업자와 그 가족들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지분율이 매우 낮다.일본기업들은 족벌경영과 부의 세습을 위해 각종 비리를 일삼는 많은 한국의 대기업들과는 다르다. 일본 대기업의 주인은 창업자나 그의 가족이 아니다.한국의 대기업은 가족중심적이지만 일본의 대기업은 금융기관등 법인소유가 일반화되어 있다. 일본통계에 의하면 지난 89년3월 현재 일본기업의 개인지주 비율은 22.4%에 불과한 반면 법인지주비율은 73%에 이르고 있다.특히 법인인 은행,보험회사등의 투자재원이 국민으로 부터 나온다는 점에서 일본의 대기업은 「국민기업」이라는 측면이 강하다. 일본 대기업에 있어서 자본가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화되어 가고 있다.이같은 현상의 역사적 배경은 제2차대전후 맥아더사령부에 의한 재벌해체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맥아더사령부는 기업을 독점하고 있던 재벌가족의 기업지배를 배제하고 주식소유를 분산시켰다. 미국에 의해 해체된 재벌들은 개별기업들의 연합체적 성격을 띤 거대한 기업집단으로 변신했다.미쓰비시,미쓰이,스미모토등이 대표적인 기업집단들이다.그러나 이들의 경영과 소유는 분리되어 있다.이들 뿐만이 아니다 거의 모든 상장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대기업들은 이같이 자본과 경영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기업의 세습승계란 거의 없다.혼다의 창업자인 혼다 소이치로(본전종일낭)는 직계가족을 자신의 회사에 입사조차 시키지 않았다.그는 스스로 젊고 유능한 후계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기까지 했다.그러나 한국의 기업풍토는 창업자의 직계라는 이름만으로 후계자로 선택된다.한국과 일본의 기업가정신은 한일간의 기술수준 만큼이나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독일/주식 2세 이전땐 증여세 80% 중과/「국민기업화」 정착… 부의 대물림 제도적 봉쇄 독일은 자본과 노동의 갈등을 오랫동안 경험해온 만큼 2차세계대전이후 기업운영의기본방향을 사회보장에 바탕을 두어왔다.또 기업 뿐만 아니라 사회분위기가 전체적으로 공개되어 있어 탈세나 주식의 위장공개등으로 한 기업의 부가 후계세대에게 불법적으로 이전될 수 없다. 모든 경제활동이 은행이나 공증인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제도화되어 있어 불로소득이란 있을 수 없으며 기업의 주식이 은밀하게 다음세대로 인계될 수 있는 소지가 막혀있어 재벌총수의 세습은 불가능하다. 더욱이 자본과 경영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어 아무리 대주주라도 경영에는 참여할 수 없으며 회사의 운영은 전문경영인들과 종업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독일대기업의 2대 지주는 사원지주제와 사원경영참여권으로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뿌리내리는데 모태가 됐다.사원지주제는 75년 법제화돼 한 기업의 주식 30%이상을 사원들에게 배당하도록 되어있다. 사원경영참여제도의 정착으로 인해 근로자들도 일정기간 근속하게 되면 회사경영에 책임을 지게되며 기업의 추가이윤을 배당받기 때문에 기업경영의 감시자로 독일 기업이 국민기업으로 정착하게 되는데 큰역할을 담당해왔다. 창업주가 생존시 기업의 주식을 2세에게 넘겨줄 경우에는 상속세·증여세가 80%이상 부과되며 사후에 인계될 경우에는 소득세가 따라붙기 때문에 한 기업의 부가 후계세대에 이전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더욱이 독일의 주식회사들은 완전히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부의 위장이전이 이루어질 수 없어 창업주는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기보다는 기업에 돌려주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어 기업의 부는 기업에 그대로 남아있게 된다. 이 때문에 독일의 대기업인 지멘스·메르세데스 벤츠·보쉬등의 계열기업의 경영진중에서는 창업주의 성인 지멘스·벤츠·보쉬의 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단지 많은 주주중의 한사람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몇년전 독일의 신문재벌인 악셀 스프링거가 사망하고 그의 부인이 이 재벌을 인계했으나 신문사 경영문제로 베르리너 모르겐포스트지등 독일 유수의 신문사종업원들과의 마찰로 주식의 대부분을 회사에 반납하고 일개 주주로 남아있는 것은 그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경우는어떤가/기업합병·물타기 증자… 변칙상속 일쑤/작년 상속세,국세의 1.5%… 일과 큰 격차/세제개선·금융실명제등 보완이 과제로 우리나라 재벌기업의 역사가 40여년에 이르면서 많은 기업들이 2세들에게 물려졌다.그러나 지금까지 세습에 의해 규모가 줄었거나 전문경영인에게 맡겨진 사례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오히려 2세에게 물려지면서 더욱 비대해진 경우가 많다.그만큼 재벌들이 부의 세습을 어렵게 하고 있는 현행 세법을 거의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현행 우리나라의 상속과 증여에 관한 세법에는 상속의 경우 10억원이상일때 55%,증여의 경우는 5억원이상일때 60%의 세율의 상속·증여세를 물도록 규정하고 있다.법을 제대로 지킨다면 기업을 세습할 경우 규모가 절반으로 줄어야 하며 3대 4대에 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아야한다. 그러나 80년이후 우리나라에서 재벌기업들의 실질적 기업경영권이 2세 또는 3세에게 넘어간 경우는 모두 27개 그룹이지만 이들이 낸 상속및 증여세는 최고 2백77억원에서 최저 1억여원 정도에 지나지 않은 것은 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세금을 탈루해 왔는지를 쉽게 짐작케 해주고 있다.물론 이들이 탈법적 수단을 동원할 수 있었던 데는 세제의 미비와 금융실명제의 허실이 「합법」을 가장한 수법을 도왔다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80년 이후 국내 재벌그룹중 상속·증여세를 가장 많이 낸 사람은 한국화약그룹의 김승연회장.그는 지난 81년 7월 부친 김종희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 가운데 증여세 2백8억1천2백만원,상속세 69억2천만원등 모두 2백77억4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또 삼성그룹의 경우는 이병철회장 사망후 이건희회장이 상속세 1백76억2천9백만원,증여세 4억7천8백만원을 물었다. 또 한진그룹의 조중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물려받은 아들 양호·정호·수호씨도 증여받은 재산에 대해 각각 33억4천만원,32억6천만원,20억4천만원의 세금을 냈다. 이밖에 그룹별 상속·증여세액을 보면 ▲범양상선(박승주)1백37억5천만원 ▲동아그룹(최원석)80억3천만원 ▲삼미그룹(김현철)70억6천만원 ▲현대그룹(정주영)54억7천만원 ▲한일합섬(김중원)51억3천만원 ▲럭키금성(구자경)16억5천만원 ▲금호그룹(박성용)14억3천만원 ▲쌍용그룹(김석원)12억6천만원등이다. 그러나 이같은 세액 규모는 창업주들의 유산 규모와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거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액수에 불과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국세청 집계에 따르면 상속·증여세는 81년이후 매년 0.1%정도씩 꾸준히 증가,90년 현재 국세의 1.5%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일본의 4.1%에 비하면 크게 낮은 수준이다. 선진국의 상속·증여세의 납부 수준이 높은 데는 일본의 경우 상속및 피상속인들이 상속세및 증여세의 탈세는 가장 큰 불명예라는 인식이 기업인들 사이에 뿌리박혀 있고 과세 체제가 치밀한데도 원인이 있다. 일본 최대의 재벌인 마쓰시타(송하)전기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가 지난 89년 사망했을 때 보유재산 규모가 1조엔(한화 5조원)을 넘은 것과 우리나라 제1의 갑부였던 삼성그룹의 고 이병철회장의 사망시 재산이 3백억원이었다는 점은 우리나라재벌들의 부의 세습과 관련,많은 것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나라 창업주들이 세금을 피해 2세들에게 재산을 상속하는 수단으로는 현대그룹의 예에서 보듯이 ▲주식을 상장전에 증여대상자에게 념겨주고 상장후 차익을 챙겨주는 「물타기증자」 ▲기업의 흡수·합병과정에서의 대주주(창업주)의 실권을 위장한 합법적 변칙 증여 ▲기업합병시 감자를 통한 변칙상속등이 주로 동원되고 있다.
  • 소,핵 폐기물 대량 투기/23년간 수심 얕은 북극권 바다에

    ◎대규모 해양오염 우려 【도쿄 연합】 소련이 1963년부터 23년동안 북극권의 바렌츠해와 카라해의 얕은 수역에 대량으로 핵연료 폐기물을 버려 대규모로 해양오염이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일 마이니치(매일)신문이 모스크바발로 보도했다. 이같은 사실은 러시아공화국 무르만스크지역 출신 소련 인민대의원 안드레이 조로스코프씨가 환경보호단체인 「그린피스」주최 모스크바 세미나에서 23일 관련 자료를 폭로함으로써 밝혀졌다. 조로스코프씨에 따르면 소련은 1963년부터 86년까지 군용·민용 원자로에서 나오는 핵연료폐기물을 컨테이너에 넣어 일반화물선을 이용,노바야 젬랴섬 주변 바다에 버렸다. 그러나 소련측이 투기한 장소는 북극해역에서도 수심이 수십m 정도로 얕으며 84년에는 노바야 젬랴섬에 컨테이너 1개가 떠올라 다시 바닷속에 버리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 93년부터 「유연차」 사라진다/환경처

    ◎휘발유·경유 납­유황 함량기준 대폭 강화/무공해 연료 공급도 전국 확대/배기매연 줄여 대기오염 방지/대기환경보전법 시행 규칙 확정 오는 93년 1월부터 유연(유연)휘발유가 사라지고 경유등 연료용 유류의 황(황)함량기준이 대폭 강화된다. 이에 따라 유연연료를 쓰고있는 자동차가 자취를 감추게 되는등 전국 대기의 질이 크게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처는 5일 저공해연료 보급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연료용 유류의 황함유기준강화및 공급지역」을 동력자원부와의 협의를 거쳐 오는 10월 고시키로 했다.환경처는 또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상의 휘발유 제조때 납함량을 유·무연의 기준인 0.013g/ℓ이하로 하기로 최종 확정하고 이같은 내용을 11월에 고시할 예정이다. 정부가 이처럼 연료자체의 첨가유해물질을 규제하기로 한 것은 기존의 배출가스 규제로는 현재의 대기오염을 막기가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연료용 유류의 황함량기준은 경유의 경우 현행 황의 무게기준 0.4%에서 0.2%로,벙커C유는 1.6%에서 1.0%이하로 각각 크게 강화한다. 이같은 저유황 연료는 우선 93년 1월부터 서울·부산등 전국 20개 시·군에,95년부터는 34개 전국 주요도시와 군지역으로 단계별로 공급을 확대하기로 했다. 환경처는 이와 함께 현재 휘발유의 생산때 전혀 규제를 받지 않았던 납함량을 0.013g/ℓ이하로 규제,오는 93년 1월 1일부터 이같은 무연휘발유를 전지역에 전면 보급키로 했다. 이에 따라 현재 2백36만대의 휘발유연료차량중 24%에 달하는 56만대의 유연휘발유차량이 별도의 촉매장치를 갖추지 않는한 자연 소멸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연연료를 쓰고 있는 대부분의 차량들이 지난 87년 이전에 제작된 노후화된 차량들로 무연휘발유가 전면 보급되면 거의 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무연휘발유가 93년부터 일반화될 경우 현재 대기오염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매연공해가 줄어들게 돼 우리나라 대기가 한층 깨끗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 북한경제 작년 첫 마이너스 성장/통일원,「90년 북한경제」 발표

    ◎GNP 남의 10%선 머물러/올 식량부족 1백만t 예상 북한경제가 지난해 해방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기록하는등 최근들어 심각한 침체국면에 빠져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통일원이 28일 발표한 「90년도 북한경제종합평가」자료에 따르면 북한의 90년도 국민총생산(GNP)은 2백31억달러,1인당 GNP는 1천64달러로 추계됐으며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7%를 기록한 것으로 밝혀졌다.89년도 북한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2.4%였다. 이는 같은 기간 남한에 비해 GNP에 있어 10분의 1,1인당 GNP는 5분의 1 수준이다. 이같은 북한경제의 침체는 에너지및 원자재부족으로 인한 광공업부문의 시설가동률 저하(45%수준)와 기후불순으로 전년대비 12%의 부진한 실적을 나타낸 곡물생산량의 감소에 기인한 것으로 이 자료는 밝히고 있다. 북한의 전반적인 산업생산 부진은 대외무역에도 영향을 미쳐 90년도 무역규모는 전년대비 4% 감소된 46억4천만달러,무역적자는 6억달러로 추산됐다.반면 외채규모는 78억6천만달러로 89년의 67억8천만달러에 비해 10억8천만달러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89년 보다 3.7%나 이 결과 북한주민들의 경제생활여건도 더욱 어려워졌는데 특히 흉작으로 곡물총생산량이 지난 89년의 5백48만2천t보다 67만t이 줄어든 4백81만2천t에 그쳐,올 추수기까지 총 1백만t이상의 식량부족사태를 겪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에따라 북한은 최근 식량배급량을 평균 20%이상 감량지급하고 있다고 이 자료는 밝혔다. 또 생필품의 부족으로 세탁비누 신발 작업복등 기초생필품까지 감량지급되고 있어 주민소비품의 암거래시세가 공정가격의 20∼40배 수준으로 일반화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비는 예산상의 발표에 따르면 42억6천여만원(19억9천만달러)에 불과했으나 실질 군사비 지출은 GNP의 21.5%에 해당하는 49억6천만달러로 평가됐다. 석탄생산능력은 탄광개발부진으로 전년도 수준인 4천3백30만t을 넘지 못했으며 여름철 폭우로 인한 일부 탄광의 침수와 투자부족등으로 실제 생산량은 3천3백만t으로 추계됐다. ○외채 78억6천만불 주에너지공급원(70%차지)인 석탄생산실적의 이같은 부진은곧 에너지부족을 유발,공장가동률의 저하를 초래하고 있다. 에너지공급구조에 있어 차지하는 비율은 10%정도로 매우 낮으나 수송·농업·어업등 일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큰 원유는 외화부족과 중·소의 경화결제요구등으로 도입량이 줄고있다.90년의 경우 89년의 2백60만t보다 적은 2백52만t이 도입됐는데 이는 정유능력 3백50만t에 비해 약1백만t이 부족한 것이다.주요국가별 수입실적은 중국 1백10만t,소련 44만t,이란 98만t으로 추정된다.이와관련,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따라서 연평균 7·4% 성장을 목표로한 북한의 제3차7개년계획(87∼93년)은 이미 실패로 돌아갔다』면서 『이는 본질적으로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체제의 비능률성,정치·군사우선의 비합리적 경제정책에서 비롯된 결과』라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최근들어 심화되고 있는 자존부족과 기술낙후,설비노후및 생산의욕저하현상이 상승작용을 일으켜 경제침체가 가중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중국내 한국공단 후보지 5곳 선정/북방정책 실무위

    ◎우리기업 대중 진출 적극 추진/상해·천진·청도·진황도·영구로 확정 정부는 국내기업의 대중국진출을 돕기위해 중국내 한국전용공단설립을 추진키로 하고 상해등 5개 후보지를 선정했다. 또 한·중간 인적·물적교류촉진을 위해 인천∼천진간 카페리직항로등 2개 해상정기직항로를 연내에 추가개설하기로 했다. 정부는 14일 하오 북방경제정책실무위원회(위원장 강현욱 경제기획원차관)를 열어 중국내 한국전용공단개발의 기본방향과 해상정기직항로의 추가개설을 확정했다. 정부는 이날 공단개발의 기본방향을 경제적 실리와 한·중간의 관계개선에 두고 공단개발예정지의 투자환경과 국내산업구조조정을 연결해 추진하기로 했다. 한국전용공단개발의 후보지는 천진 청도 진황도 영구 상해등 5곳이며 공단개발은 지난해 11월과 지난 5월 이들 지역에 대해 현지조사를 실시한 토지개발공사가 맡게될 공산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그러나 아직까지 양국간 공식수교가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투자보장협정등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지 않아 공단개발을 수교및 경제협정체결과 연계해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또 이날 회의에서 우리측의 국제대호개발이 중국의 천진시해운공사와 합작운영하는 인천∼천진간 카페리선 운항직항로(5∼10t급,10월예정),천경해운과 중국의 대외무역운수총공사가 합작하는 부산∼상해간 일반화물 직항로(3천t급,10월예정)의 사업계획을 각각 승인했다. 한·중간 여객선항로는 지난해 9월 개설된 위동항운유한공사의 인천∼위해간 항로에 이어 두번째이며 화물직항로는 장금유한공사와 경한해운유한공사의 부산∼상해간 직항로에 이어 세번째이다.
  • 「후보논의」의 시기(사설)

    김영삼민자당대표최고위원이 최근 제주에서 차기대통령후보 자유경선을 수용하겠다는 구상을 주요당직자와 측근들에게 밝힌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여당내의 대권향방과 관련된 문제라 국민적 관심은 당연하다.아직은 정치적 양동작전에 불과할지도 모르나 당내경선 자체는 정당의 민주화뿐만 아니라 우리정치제도의 진일보로 볼수 있기에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조정된 내용을 토대로 실현될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이문제는 지난달 26일 최영철대통령정치담당특보의 「과거 야당식 경선」발언을 통해 제기됐다.이것이 「김대표포위작전」의 일환인지 아닌지 그동기는 알수 없으나 여당의 경우 대통령의 절대적 권위에 의해 사실상 후계자가 지명되던 관례에 비추어 대통령특보의 이같은 발언은 파격적인 것이라 할수 있다. 또 김대표가 숙고끝에 이를 간접적이나마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도 후보총선전결정을 위한 승부수로 보이지만 민자당 합당당시의 지분비가 민정5 민주3 공화2로 되어있고 최근 공화계가 민정계입장에 서고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이다. 상식을 초월한 계파간의 이같은 「장군멍군」식 대응에는 상당한 정략이 내포되어 있는듯 싶다.대통령후보경선제가 미국등 선진민주국가에서 당원개개인의 뜻을 집약하는 중요한 민주제도로 일반화되어 있는 좋은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민들이 회의하고 불안하게 생각하는 까닭은 말속에 숨어있는 이같은 정쟁적 요소 때문이다. 원내의석 3분의 2가 넘는 집권당이 치열한 내분을 벌인다면 그여파는 정치불안과 국정의 혼돈으로 이어지며 결국 그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같은 문제는 이제 국민앞에 떳떳이 내놓고 논의되고 나아가 국민적 합의를 거치는 노력이 정치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다만 이번 제기된 경선문제가 대통령후보 결정시기를 14대 총선 전으로 하느냐 그이후로 하느냐의 문제에서 파생된만큼 이에 대한 계파간의 갈등이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우리는 현직대통령의 임기가 1년반이나 남아있는 시점에 이문제가 모든것에 앞서서 논의되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따라서 이에대한 논의를 적어도 이번 정기국회의 주요국정처리때까지 철저히 유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그런다음 국민앞에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적 합의를 얻어나가더라도 너무 늦다고 볼수는 없다. 최근까지도 정치인들은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이익에 투철하여야 한다는 생각과는 별도로 대권이다 계파다 하면서 다투는 행태를 「정치」라고 생각해 왔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이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야당이 경선하던 과거와는 달리 일사불란을 외치고 있는 시점에서 여당에서 뜻밖에도 「과거 야당식 경선」얘기가 나오고 논의가 진전되고 있음은 여당의 당내민주주의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민주화의 주요한 계기로 보기에 논의가 더욱 구체화되기를 바라며 그 과정을 국민과 더불어 주시하고자 한다.
  • “동무”호칭,70년만에 소서 소멸(세계의 사회면)

    ◎개혁영향… “신사·숙녀” 사용 일반화/고르비·옐친,“…동포들” 표현 애용/스탈린,2차대전중 “형제·자매”로 불러 구설수 지금 소련에는 적절한 호칭이 없다. 1917년 10월 혁명이후 소련의 모든 지역에서 남녀로소를 가리지 않고 쓰여지던 「동무」(타바리쉬)라는 호칭이 공식적,비공식적인 자리를 막론하고 사라져 버린것이다. 「동무」라는 호칭의 소멸은 공산주의를 지고지선의 이념으로 내걸고 등장한 소련공산당이 최근들어 마침내 공산주의를 포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것과도 맥락을 같이하는 것이어서 흥미롭다. 소련에서 호칭이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된 것은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에 앞서 발생했던 1917년 2월의 멘셰비키 혁명을 계기로 한 것이었다. 당시 케렌스키를 수반으로하는 멘셰비키 정부는 이전까지 계층에 따라 구분돼 있던 호칭을 단일화시켜 모든 공식적인 호칭을 「공민」(남성 그라즈다닌,여성 그라즈단카)으로 통일시키는 호칭의 혁명을 단행했었다. 1917년 2월 멘셰비키 혁명을 계기로 단일화라는 또다른 혁명을 달성한 호칭은 이후 같은해 10월 볼셰키기 혁명을 계기로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있던 「공민」이 남성과 여성의 구별이 없는 「동무」라는 단어로 바뀌었을뿐 단일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해 나갔다. 단지 이같은 일관성은 독재자로 악명높은 스탈린이 2차대전중 히틀러의 침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소련을 지키자는 내용의 라디오 연설을 하면서 「형제」「자매들」(브라치야,쇼스트르이)이라는 기독교용어를 사용해 스탈린 자신이 기독교 계통의 학교를 다녔던 경력을 무심결에 드러냈던 단 한번의 예외를 갖고 있을 뿐이었다. 이처럼 공산당이 지배하는 소련에서는 영원토록 부동의 위치를 지킬 것 같이 보였던 「동무」라는 호칭이 흔들리게 된 것은 소련 사회 전체를 뒤흔들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부터였다. 공산당 서기장 당선이후에 「친애하는 동무들」을 공식 호칭으로 사용하던 고르바초프는 지난해 3월 개정 헌법에 의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하게되면서 이제까지 70여년이 넘도록 소련지도자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해오던 「친애하는(경애하는) 동무들」을 버리고 「친애하는(경애하는) 동포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르바초프의 이같은 호칭전환은 물론 다른 정치지도자들에게도 확산돼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인 옐친도 「동포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와중에서 제정러시아 시대때 귀족계층을 일컫던 「신사 숙녀 여러분」이라는 호칭이 소련 사회에서 점차 일반적인 호칭으로서 힘을 얻어 가고 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 이질성 극복의 몸부림… 이기백특파원 현지보고(통일이후의 독일:9)

    ◎“「동쪽 하숙생」 부양”에 올 42조원 투입/“재원 마련” 공공요금 인상 러시… 가계 압박/소득의 서고동저 심화… 94년 2대 1 예상 통일독일은 경제통합1주년을 맞은 1일부터 처음으로 집행되는 91∼92년도 전체예산의 4분의 1가량인 1천억마르크(42조원)를 구동독복구와 주민생활향상등의 통일비용으로 충당해야 하는 막대한 재정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이때문에 이날부터는 각종 공공요금의 인상이 불가피해져 물가불안요인이 되고 있다.또 천문학적인 액수의 통일비용지출에도 불구하고 동서지역의 빈부격차가 해소될 전망이 없어 흡수통합의 마무리가 순탄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서쪽지역주민들에게 통일은 값비싼 지출을 요구하고 있고 동쪽주민들 사이에서는 생활격차로 인한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등 동서간 부의 재분배진통이 여간 심각하지 않다. 통일비용의 충당을 위해 독일정부는 1일부터 휘발유값을 1ℓ당 약 1마르크30페니히에서 25페니히로 인상했으며 담배값·보험료·소득세의 국고전입비율도 상향조정했다.우편요금도 보통봉함우편물이60페니히에서 1마르크로 오른데 이어 철도·버스·상하수도요금 등도 역시 인상될 예정이다.이같은 물가인상러시는 그동안 예상되어 오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가계에 부담을 안겨주어 서쪽주민들은 「가난한 동쪽하숙생들에게 부유한 서쪽가정의 식탁을 내준꼴」이라며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구서독주민들의 입장에서는 구동독지역에 1천억마르크라는 거액이 투입된만큼 엘베강동쪽에는 돈이 넘쳐흐른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본정부도 『이같은 투자로 새로운 5개주는 생활개선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지역사회 운영에 필요한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게 됐다』고 통일후속조치가 순조로움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구서독국민들은 『돈을 갖다 쓰는 사람으로서는 그들의 호주머니에 얼마나 들어 있는것인가를 살펴 본뒤 돈쓸생각을 해야된다』며 서쪽주민들에게 기대려는 구동독쪽 태도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동쪽국민들은 나름대로 그들의 호주머니로 들어오는 액수가 기대치에 못미쳐 재정적으로 쪼들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구동독주들은 올들어 지난 4월말까지 60억마르크의 소득세가 징수될 것으로 전망했으나 이지역 기업들의 경기침체로 20억마르크밖에 거둬들이지 못해 올 한해에만 최소한도 1백억마르크의 세수결손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같은 자체세입의 차질과 함께 구동독주들은 가장 중요한 재원인 통일기금의 지원이 올해 2백98억마르크에서 매년 줄어들어 94년 85억마르크를 끝으로 중단되기 때문에 갈수록 재정상태가 나빠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구동독주들이 안정되고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세수입이 증가돼 통일기금지원액의 축소분이 보전될 것이라는게 연방정부의 계산이지만 경제전문가들은 이를 믿지 않고있어 구동독지역의 개발과 주민생활향상의 꿈이 밝지만은 않은 상태이다. 경제연구기관들은 결과적으로 구동독국민들의 1인당 소득이 서쪽동포들에 비해 올해는 85%수준에서 94년에는 52%로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더욱이 구동독주들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재투자를 하지 않아 낙후한 도로·철도를 시급히 건설 또는 보수해야 하며 학교·병원등 공공시설을 고쳐야하는등 손댈 곳이 한두곳이 아닌데다 각 지방단체에 대한 교사임금·대중교통·주택 보조금을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이를테면 마그데부르크시는 올해 11억마르크의 시예산가운데 4억마르크가,라이프치히시는 5억마르크가,소도시인 로스토흐시는 2억5천마르크의 적자가 예상된다.이는 구동독의 시세수입이 비슷한 구서독시의 16%수준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서양극화현상이 전혀 개선될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동서독통일협약에 의해 구동독주들은 통일기금지원이 중단되는 94년이후부터 재정이 단단한 구서독주들로부터 재정의 지원을 받거나 차입을 할 수 있기때문이다. 구서독주들간에는 다양한 조세분배협약에 따라 상호 재정지원과 초과 세입금을 다른주에 직접 대여하는 제도가 일반화돼 있어 구동독주들도 돈많은 서쪽주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있기때문이다.실제로 구서독 11개주 가운데 가장 부유한 바덴 뷔템베르크주와 헤센주는 지난해 구서독에서 비교적 가난한 주인 브레멘·잘란트·니더작센·라인란드팔츠·슐레스비히홀스타인주에 40억마르크를 지원하는등 각주간 부의 상부상조가 제도화되어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부상조의 관례는 주세가 비슷할 때에나 가능한 것으로 주재정력의 차이가 비교가 안되는 엘베강 동서주간에도 이루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다.구서독주간에는 빈부의 차이가 있다하지만 평균치를 1백으로 볼때 가장 가난한 주가 92,가장 잘사는 주가 1백10으로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그러나 구동독주의 재정규모는 구서독주 평균치의 50%수준 밖에 안돼 지난해 서독주간의 재정보전액의 8배에 이르는 3백20억마르크의 돈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들어 가야한다. 이때문에 연방정부와 통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된 구동서독의 16개주는 주간의 재정교류원칙을 새로 마련,빈부격차를 줄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경제통합 1년을 맞아 가장 큰 과제로 생각하고 있다
  • 전통 민속주가 안 팔린다/양산 어려워 대중화에 한계

    ◎두견주,하루 매출 1백병에 불과/문배·황금주만 생산령 겨우 소화/「판매지역 제한」 완화등 정부 지원책 시급 민속주가 당초 기대와는 달리 안 팔린다. 정부가 「전통문화를 전수 보전하고 관광진흥 확대에 기여한다」는 취지로 민속주 제조·판매를 전면 개방한 것은 지난 89년 2월의 일. 이후 90년 4월 안양 옥미주가 첫선을 보인 데 이어 제주토속 좁쌀약주,인천 칠선주,면천 두견주,문경 호산춘,서울 문배주,경주 황금주,함양 국화주,안동소주,횡성 억이인(율무)주,전주 이강주 등 11종이 줄이어 나왔다. 그러나 처음 국민의 각광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민속주들이 1년여가 지나면서 이제는 대부분 잊혀져가고 있다. 그나마 문배주·황금주 등 일부 민속주만이 제대로 팔리고 있을 뿐,다른 민속주들의 인기는 기대에 못 미쳐 생산량이 줄고 있는 실정이다. 문배주는 두견주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술.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방한 때 만찬용으로 쓰이는 등 한국의 대표적인 술로 널리 알려져 생산량은 거의 팔려나가는 편이다. 현재하루 5백병(4백㎖)이 생산돼 서울시내 일부 호텔과 백화점·한국의 집·문화부 매점,그리고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기내에서 팔고 있다. 황금주도 판매구역이 「경주」라는 관광지이기 때문인지 물건이 달리는 상태이다. 이에 비해 문배주와 더불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두견주의 경우 하루 판매량은 1백병(7백㎖)에 불과해 문배주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 또 개방 이후 「최초」의 민속주인 옥미주는 하루 판매량이 30∼40병(9백㎖) 정도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민속주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로는 우선 판매지역이 제한된 점을 들 수 있다. 현재 민속주는 제조장이 소재한 시·군내에서만 팔 수 있도록 제한돼 있다. 즉 서울에서 생산되는 문배주는 서울시내에서,황금주는 경주시내에서,옥미주는 안양시내에서만 팔아야 한다. 다만 두견주만은 무형문화재로서 서울시내에서 일부 팔 수 있도록 허용됐을 뿐이다. 이에 따라 민속주 판매량은 시·군 규모별로 큰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두견주 면허자인 박승규씨(54·충남 당진군)는 『두견주의 경우 인구 14만명인 당진군민이 주 소비대상』이라면서 『술을 즐기는 여행자들이 일부러 찾아오기도 하지만 그 양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는 현재 시설로도 하루에 4백병쯤은 만들 수 있지만 팔 곳이 없어 1백병만 생산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옥미주 면허자인 임송죽씨(54)도 『경제성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전통을 잇는다는 사명감에서 옥미주를 생산하고 있다』고 밝히고 정부가 기왕 민속주 판매를 허용했으면 이에 따른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민속주 판매지역이 제한된 데 대해 민속주 면허자들은 기존 주류업자들을 보호하려는 의도가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판매지역 제한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전국의 민속주를 골고루 맛보기 어렵게 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이와 함께 일부 민속주들의 값이 다른 주류에 비해 비싸다는 것도 판매부진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용기·포장 등을 지나치게 화려하게 해 이 비용만 2천원 가량 든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음식점에서만 팔 경우 음주에 따른 음식값이 큰 부담이 되고 있기도 하다. 이밖에 소비자의 음주 취향이 기존 주류에 길들여져 민속주의 독특한 「맛」을 즐기지 못한다는 풀이도 나오고 있다. 민속주 판매지역 제한은 지난 5일 열린 「행정규제 완화실무위」에서도 완화대상에 포함돼 조만간 개선책이 마련될 예정이다. 그러나 민속주의 대부분이 약주에 속한 반면 약주 판매구역은 주세법상 제한돼 있기 때문에 민속주 판매지역이 전면 개방되기에는 장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더구나 이를 해제하더라도 민속주의 특성상 대량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민속주의 일반화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폭력시위 「일본의 양식」이 잠재웠다/60년대 학생소요 수습의 교훈

    ◎「전학연」 국회난입에 질타여론 비등/언론사서 「구국선언」… 극렬투쟁 퇴조 1960년 6월17일은 일본신문사와 반체제운동사에 길이 남는 일이다. 이날 도쿄(동경)에서 발행되는 7대 신문은 조간1면 중앙에 5단 크기의 박스로 「폭력을 배제하고 의회주의를 지키라」는 공동선언을 일제히 게재,폭력을 규탄했다. 『6월15일 밤 국회 내외에서의 유혈사건은 그 사태를 야기한 이유를 별도로 하고,의회주의를 위기에 몰아넣는 통한사였다. 우리는 일본의 장래에 대해 오늘날 만큼 깊은 우려를 가진 때는 없다고 시작되는 이 공동선언은 폭력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것은 결단코 허용될 수 없다고 밝히고 『일단 폭력을 시인하는 것 같은 사회적 풍조가 일반화된다면 민주주의는 사멸하고,일본의 국가적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중대사태로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폭력사태를 철저히 비판했다. 반면 정부에 대해서도 『국민의 양식에 부응하는 결의를 표명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사회·민사 양당에 대해서도 『지금까지의 쟁점을 잠시 덮어두고 솔선해 국회에 돌아와 국회기능을 정상화시킴으로써 사태수습에 협력하는 것이 국민 다수가 바라는 바』라고 피력했다. 이 공동선언의 말미에는 이 선언에 참여한 일본경제·동경타임스·동경신문·독매·매일·조일·산경신문사의 이름이 가나다 순으로 적혀 있었다. 미일 안보조약의 개정을 둘러싸고 빚어진 당시 일본의 사회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해 6월4일 안보조약 개정저지를 위한 제1차 스트라이크에는 전국에서 5백60만명이 참가했다. 10일에는 미국 대통령의 비서가 하네다(익전) 공항에서 포위되는 곤욕을 겪었다. 15일에는 안보조약 개정저지 제2차 투쟁이 벌어졌다. 전국에서는 5백80만명이 통일행동에 참가했으며 국회주변에는 11만명의 데모대가 둘러쌌다. 「전일본 학생자치회총연합」이라는 명칭의 「전학연」은 국회구내에서 집회를 갖기로 방침을 정하고 1만7천명의 멤버가 국회주변에 집결했다. 이 가운데 1천5백명이 경찰의 저지를 뚫고 국회구내에 돌입했다. 최루가스·소방호수·경찰봉으로 저지하는 경찰에 데모대는 보도블록을 깨뜨려 던졌다. 15일과 16일에 걸친 국회 주변에서의 격돌에서 학생측 1백82명이 검거됐으며 구급차 48대가 44차례에 걸쳐 출동,부상자 5백89명을 실어 날랐다. 이 와중에서 동대문학부 3년생 간바 미치코(화미지자)양이 사망했다. 6월16일부터 17일에 걸쳐 일본 열도는 「성명」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정부를 비롯,각 정당·노동조합·대학·신문사·재계 등 일본의 유력한 기관은 모두가 어떤 형태로든 성명을 발표했다. 그만큼 전학연 주류파에 의한 국회난입사건은 일본의 중추를 진동시켰다. 더구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은 더욱 국민적 분노를 사게 되어 어느 단체든 조직이든 이 같은 사태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밝혀 둠으로써 국민을 무시하고,혹은 진정화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때문이다. 정부는 전학연의 행동에 대해 『사회질서를 전복시키려는 국제 공산주의의 기도에 함께 춤추는 계획적 범행』이라고 규정했다. 가야 세이지(모성사) 동대학장은 『사망자를 낸 난투사건은 학생측의 행동에도 책임 있다. 그러나 경찰에 다소의 과잉이 있었던 것은 명백하다』며 결론적으로 의회정치의 룰을 깨뜨린측의 책임도 크다며 강력히 비판했다. 일본에 있어서의 소위 「학생운동」은 전전·전후를 통해 일관하여 좌익운동 또는 정치운동의 대명사가 되어왔다. 사회적으로 하나의 층을 형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집단·조직적 행동이 반체제·반권력 투쟁의 선봉역을 맡아 왔다는 사실은 일본 역사의 큰 교훈으로 남는다. 일본에 있어서 반사회적 극렬 학생운동은 60년대와 70년대 초반에 걸친 10년 남짓한 기간 동안 계속 벌어졌다. 7대 신문의 공동선언이 있고도 일본의 학생운동은 10여 년 동안 계속되다 69년 「야스다(안전)강당사건」으로 막을 내린다. 동대 야스다강당 점거농성사건은 「전공투」(전학적투쟁조직)에 의해 발생했다. 당시 과격파 학생들은 아카몽(적문)과 더불어 동대의 상징인 야스다강당을 점거,학사행정 일체를 마비시켜 놓았다. 학교당국은 경찰에 캠퍼스내 진입을 요청한 상태였다. 경찰은 69년 1월19일 8천5백명의 경찰관,3백45대의 방석차,4대의 헬리콥터를 동원,몇달째 강당을 점거하고 있던 과격파 학생들에 대해 대공세를 펼쳤다. 돌과 화염병,1만발의 최루탄이 난무하는 가운데 격전은 상오 7시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하오 5시47분 야스다강당이 불타는 가운데 경찰이 7백67명의 농성학생 전원을 체포함으로써 격전은 막을 내렸다. 수련의 제도의 개선을 요구하던 의학부학생 12명이 68년 1월 무더기 징계조치를 받음에 따라 발단이 된 이 사건은 전체학생의 「1년간 유급」이라는 전대미문의 결과를 낳았다. 지난 56년 제9차 전학연대회에서 위원장으로 선출됐던 학습원대 고야마 겐이치(향산건일)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과격이 휩쓴 자리에 남는 것은 소모 뿐이었다. 그래도 면학에 열중한 대다수 학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일본이 가능했던 것이다』 과거 학생운동에 정열을 불태웠었다는 한 중견언론인도 『무정부 상태에서 파괴가 계속되면 그 회복에 30년은 걸린다. 일본이 70년대초를 끝으로 학생운동에 종막을 고한 것은 여론의 냉혹한 비판과 경제력의 축적 때문이었다. 총리를 구타하는 것 같은 반인륜적 행위가 자행되는 오늘의 한국은 매우 우려해야만 할 상황이다. 사회의 각계각층은 누구의 눈치를 볼 것 없이 자신의 입장을 뚜렷이 밝혀야 한다. 오늘의 한국은 이런 점에서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 지방아파트 미분양 급증/4월말 현재 2천6백여 가구

    최근 주택공급물량이 계속 늘어남에 따라 지방 중소도시 지역에 새로 건설되는 아파트의 미분양현상이 일반화되고 있다. 7일 건설부에 따르면 지난 4월말 현재 지방 도시의 미분양 아파트는 주택건설지정업체 건설물량 1천8백5가구,주택건설등록업체 건설물량 8백24가구 등 모두 2천6백29가구에 달하고 있다. 지역별 아파트 미분양실태를 보면 전남이 9백67가구로 가장 많고 충북 6백22가구,경남 3백52가구,강원 3백2가구,경북 1백69가구,충남 1백42가구,광주 39가구,부산 23가구,전북 13가구 등의 순이다.
  • “오른 요금 싸게 내기” 차등요율 활용안내

    ◎“138% 할증서 68% 할인까지”… 다단계 전기료/여름철 밤시간엔 최고 55% 싼값 적용/휴가로 50% 절전 땐 기본료 5배 감액/대형공장 등은 「전력수급제」 활용 유리/밤 10시∼아침 8시에만 축열하면 1㎾H21원50전 올 여름 전기가 모자라 자칫하면 제한송전 조치마저 우려되는 상황인 데다 전기요금마저 6월부터 올랐다. 그러나 수요자 입장에서 잘만쓰면 전기요금도 덜 내 도움이 될 뿐더러 부족사태도 막을 수 있다. 동자부와 한국전력이 여름철 수요를 줄이기 위해 일정한 시간대나 미리 계약한 날에 전기를 덜 쓰면 요금을 크게 깍아 주는 갖가지 요금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피크타임 요금제」를 비롯,「여름철 휴가기간 조정 요금제」와 「심야전력요금제」,「계절별 차등요금제」와 「전력수급조정요금제」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 제도들의 공통된 특징은 여름철에 전기를 아껴쓰면 그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올 여름 전력수급 상황이 불안하자 동자부와 한전은 전기를 많이 쓰는 공장과 업체를 대상으로 이들 요금제도 계약확대를 서두르고 있다. 특히 공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울산·구미·창원지역에서는 업체들과 전기소비절약을 위한 간담회 등을 갖고 서둘러 계약을 맺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이 같은 제도에 대한 한전과 계약여부는 업체 자율에 맞겨 있어 필요하면 계약을 해도 되지만 계속 공장을 가동해야 될 경우에는 안해도 된다. ○피크타임 요금제 지난 77년 12월1일부터 시행,적용되고 있는 제도이다. 하루를 저녁(하오 6시∼하오 10시) 밤(하오 10시∼다음날 상오 8시),낮(상오 8시∼하오 6시)으로 나눠 요금을 서로 다르게 매기고 있다. 또 여름과 봄 가을 겨울의 요금수준도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여름철에는 저녁시간대가 ㎾H당 44.20원으로 기준요금이지만 여름이 아닌 봄 가을 겨울에는 낮시간대가 기준요금이 된다. 따라서 여름철 피크타임인 낮시간대의 요금은 기준요금보다 1백38%나 비싸며 대신 피크와는 전혀 상관없는 밤시간대는 오히려 55%나 싸다. 다른 계절에는 피크가 저녁시간에 걸리기 때문에 저녁시간대가 오히려 기준요금인 낮시간대보다 1백24%나 비싸며 밤시간대는 역시 68%나 싸다. 최대전력수요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이 제도는 계약전력이 3백㎾ 이상인 이른바 「산업용 을」만 대상이 된다. 이 제도의 시행으로 지난해 최대전력수요는 5만5천㎾나 낮아졌으며 올해는 12만6천㎾ 정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심야전력요금제와 같이 시간별로 전력사용량을 따로 계산하는 자동계량기가 부착되어 있어 계량에는 문제가 없다. ○휴가기간 조정요금제 계약전력이 5백㎾ 이상 수용가만이 아껴쓰면 혜택을 받는 제도로 85년 7월10일부터 시행돼 오고 있다. 적용기간은 해마다 7월15일부터 8월31일까지. 이 기간 동안 집단휴가를 가거나 공장을 보수해 3일 이상 최대수요의 50% 이상 절감할 경우 기본요금을 5배나 깎아준다. 예컨대 계약전략이 1만㎾인 산업체가 3일간 휴무를 했을 때 기본요금을 ㎾당 4백원씩 수요를 낮춘 만큼 할인해 주기 때문에 할인액은 1천2백만원이 된다. 단 휴가날짜나 공장보수기간은 한전이 요청한 날을 택해 실시해야 한다. 이 제도로 지난해에는 12만5천㎾ 정도의 최대수요 억제효과를가져왔으나 올해에는 13만8천㎾ 정도 억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한전측은 보고 있다. ○전력수급 조정요금제 계약전력이 5천㎾ 이상인 대규모 공장들이 주 대상이다. 때문에 다른 어떤 제도보다 수요억제효과가 크다. 연중 실시되는데 하루 8시간 동안 실시해야 1회로 치며 이때 계약전력의 20% 이상을 줄여야만 된다. 계약전력이 5천㎾이면 1천㎾를 줄여야 된다는 얘기이다. 단 여름철 7∼8월 두 달 동안에는 조정횟수가 25회를 넘어서는 안 된다. 한전과 미리 계약을 맺어야 하며 휴가기간 조정요금제와 마찬가지로 한전이 시행 전 17시간 전에 요청하게 되며 계약업체는 무조건 이에 따라줘야 한다. 계약전략이 1만㎾인 산업체가 여름철에 하루 8시간 동안 10번을 계약전력의 20%인 2천㎽를 줄였다고 하면 요금감면 혜택은 2천1백만원이 된다. 이 제도로 지난해에는 최대수요를 40만1천㎾ 줄였으며 올해에는 46만㎾ 정도 억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심야전력 요금제 축열기기를 밤에 사용하게 해 낮시간대의 전기수요를 밤으로 돌리는 제도로 85년 11월10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대상은 하오 10시부터 다음날 상오 8시에만 사용하는 축열기기와 이 시간대에 주로 사용하고 다른 시간대에도 일부 사용하는 축열기기 등 2개로 나뉜다. 적용요금도 차이가 있어 심야에만 사용하는 축열기기는 ㎾H당 21.50원이며 다른 시간에도 일부 사용하는 축열기기는 24.30원이다. 주택용 전기요금을 30% 수준의 값싼 요금으로 내게 되는 셈이다. 아직까지 기기의 보급이 일반화되지 않아 낮시간대 수요를 심야시간대로 돌리는 효과는 미미한데 지난해에는 2천㎾,올해에는 4천㎾로 전망되고 있다. ○계절별 차등요금제 최대수요가 발생하는 여름철에는 비싼요금을 적용하고 봄·가을·겨울 등 다른 계절에는 값싼 요금을 적용하는 제도로 피크타임요금제와 엇비슷하다. 다만 적용대상이 달라 계약전력이 3백㎾ 이하인 산업체와 업무용만이 적용된다. 3백㎾ 이하인 산업용은 6∼8월 여름철 요금이 다른 계절보다 30% 비싸며 업무용은 50%나 고율 적용된다. 이 제도로 지난해 2만2천㎾ 정도의 최대수요억제효과가 있었으며올해는 20만4천㎾의 수요 억제효과가 있을 것으로 한전측은 보고 있다.
  • 형태·무게 비슷한 마르크화 대신 이용(세계의 사회면)

    ◎폴란드 동전 “밀물”… 독 자판기 “비명”/4원20전짜리 넣고 420원 상품 빼가/통용중단된 ‘옛 엽전’까지 대량 유입/비자 면제로 쇼핑객 행렬… 양국정부 대책에 고심 독일의 마르크화동전을 사용하는 자동판매기가 독일동전과 무게·형태가 거의 동일한 폴란드의 즐로티(Zloty)화 동전을 넣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 무용지물이 될 운명에 놓여 있다. 폴란드 동전을 투입,자판기에서 상품을 빼가는 사례는 종전에도 있었던 일이었으나 지난 4월부터 독일과 폴란드간에 사증(비자)면제 조치가 실시되면서 폴란드관광객과 쇼핑객들이 대거 독일로 몰려들어 자판기상인들이 입은 피해는 여간 막심하지가 않다. 특히 독일에서는 토요일과 일요일 등 일주일에 이틀이 휴일인 데다 평일에도 하오 6시면 상점들이 문을 닫아 담배·청량음료·간이식품은 물론 지하철승차권·휴지·콘돔 등 일반 소비품들을 자동판매기에 의존하는 것이 일반화된 상태에서 갑자기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는 바람에 시민들이 크게 당황하고 있다. 이 때문에 1백50만개의 자판기를운영하는 독일상인들 사이에선 1마르크 동전을 사용 못하게 구조를 바꾸거나 아예 자판기를 철수시키는 사례가 늘고 있다. 1마르크 동전(4백20원)과 20즐로티짜리 동전(4원20전)은 가치면에서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차이가 나지만 크기(마르크화 23.45∼23.68㎜,즐로티화 23.9∼24.0㎜)와 무게(5.56∼5.65,5.34∼5.74g),그리고 두께(1.65∼1.85,1.70∼1.80㎜) 등 모양과 형태가 비슷해 즐로티 동전의 가장자리를 샌드페이퍼로 약간만 문질러 자판기에 넣을 경우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오데르강을 사이에 두고 폴란드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1억8천4백만개의 20즐로티 동전이 독일로 계속 밀려들고 있으며 더욱이 현재의 5마르크 동전과 형태는 같으나 통용이 중단된 구 20즐로티 동전까지 폴란드 고물상에서 독일로 유입되고 있어 자판기시장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놓고 있다. 쾰른시 운수당국은 지난해 통일 이후 지하철·버스승차권 자동판매기에서 5만여 개의 구즐로티 동전을 회수,19만마르크(7천9백80만원)의 재정손실을 보자 최근 승차권자판기의 5마르크 동전 사용을 금지시켰다. 시당국은 사람들이 자판기에 5마르크짜리와 같은 형태의 구즐로티 동전을 투입하고 가장 운임이 싼 1마르크 20페니히짜리 어린이승차권을 산 뒤 자동적으로 거스름돈으로 반환되는 3마르크80페니히를 챙기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어 어린이승차권을 학교에서만 판매하도록 조치,사기수법으로 인한 시민들의 세부담을 줄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교통당국과 자판기 상인들은 현재 통용되고 있는 1마르크,2마르크,5마르크 동전 가운데서 형태가 다른 나라와 비슷한 것이 없는 2마르크짜리만을 사용할 수 있게 자판기 구조를 개조하고 있으나 시민들이 겪는 불편이 커 현재 논란이 분분하다. 독일정부는 이같이 마르크화와 폴란드 동전의 형태가 비슷한 데 따른 상거래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바르샤바측과 협의를 하고 있으나 새로운 화폐발행은 절차상으로나 재정지출상으로 난점이 많아 뚜렷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누드광고의 천국 프랑스(세계의 사회면)

    ◎상품 선전마다 벗은 여인 내세워/“건강미의 활용” 성차별론 사라져 프랑스에서는 벗은 여자가 요구르트에서 치약에 이르기까지 각종 상품을 선전하는 광고가 이젠 일반화되다시피했다. 여성해방을 부르짖는 사람들조차도 별 불평이 없다. 버스정거장에는 브래지어 하나만 걸친 금발미녀의 누드광고포스터가,약국 진열창에는 스킨 로션을 선전하는 여자의 나신이 요란하지만 행인들은 총총이 지나칠 뿐이다. 프랑스에서는 광고에 누드가 등장해야 상품이 팔린다. 광고전문가인 파스칼 베일 여사는 프랑스의 누드광고는 앵글로 색슨 세계의 다소 청교도적인 전통광고와는 대조적이며 이는 프랑스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는 상품을 파는 것이지 섹스를 파는 것은 아니다』고 그녀는 강조한다. 프랑스에서는 누드광고가 논란이 되었던 1980년대 이후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으며 요즈음의 누드광고는 건강과 날씬한 체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베일 여사는 말한다. 『누드광고의 여성차별 시비는 이제는 완전히 옛날얘기다. 요즈음의투쟁목표는 직장에서의 남녀 급료차별 철폐이다. 요구르트 선전광고의 경우 요구르트가 몸에 좋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 건강한 여자의 나신을 이용했다면 문제가 될 게 없다. 누드광고도 그것을 어떻게 제작하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베일 여사의 설명이다. 한때 금기처럼 생각되던 것들이 세월이 가면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요즈음에는 상반신을 완전히 벗은 여자들을 해수욕장에서 흔히 볼 수 있게 되었듯이 광고도 이러한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식기세척제 같은 가정용품 선전광고의 경우 남자가 쓰고 싶을 정도로 물건이 좋다는 뜻에서 남성을 광고에 등장시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고 베일 여사는 말한다. 프랑스가 누드광고에 앞장서게 된 것은 1981년 토플리스 모델이 광고에 등장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해 비키니차림의 모델 미리암양은 전국에 뿌려진 광고포스터에서 『9월2일 상반신을 벗겠다』고 선언했다. 9월2일 이 모델은 약속대로 토플리스의 모습으로 다시 광고포스터에 나타났고 이번에는 『9월4일 하반신을 벗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프랑스는 전국이 숨을 죽였다. 이틀 뒤 그녀는 뒤쪽에서 찍은 전라의 자태로 광고포스터에 등장했다. 프랑스 여성문제담당장관을 지낸 이베트 루디 여사는 누드광고가 여성의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감시하는 역할을 주도해오고 있다. 1989년 1월 루디 여사는 마루깔개를 선전하는 TV광고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 광고는 빗자루에 마루깔개가 감겨지는 장면과 남자가 여자와 춤을 추다가 여자를 팽개치는 장면을 교차시킨 것인데 루디 여사는 마루깔개와 여자를 비교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항의,결국 이 TV광고는 중단되었다. 『하지만 요즈음 TV에 나오는 누드광고에는 시비할 것이 없다. 멋이 있고 저속하지가 않다. 공격적인 누드광고는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에는 벗은 여인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루디 여사는 말한다.
  • 증시에 「포철주 홍수」 걱정/의무보유기간 끝나

    ◎2백50만주 출시 예상 6백만주가 넘는 포철주 할인매각분이 13일부터 증권시장 유통이 가능해짐에 따라 매물압박에 대한 우려감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88년 국민주 1호로 포항제철이 공개될 당시 3년간 거래금지조건과 함께 발행시가보다 30% 싸게 투자자에게 넘겨졌던 할인매각분 6백17만주가 11일로 의무보유기간을 채워 13일부터 시장에 나온다. 이처럼 거래가 자유로워진 물량 중 상당량이 즉시 매물화될 가능성이 짙어 약세장세의 악화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포철주의 현시가가 비록 상장 최대치에 비해 큰 폭으로 떨어진 상태이지만 3년 전 매입가보다는 주당 8천원 가량 웃돌고 있어 보유자들의 즉시매도 경향을 예견할 수 있는 것이다. 투자자들의 증시이탈현상이 일반화된 데다 현 장세의 취약한 매수기반을 고려할 때 6백여 만 주의 신규유통물량은 마이너스 요인으로 분석된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할인매입분 1백85만주와 국민주신탁매입분 4백32만주로 구분되는 이번 거래금지 해제 포철주 가운데 2백50만주 가량이 실제로 시장에 출회될 것으로추정된다. 1만5백원의 할인가격으로 매각된 이들 물량 중 우선배정자를 대상으로 했던 할인매입분은 전량 곧바로 매물화될 가능성이 크나 국민주 신탁매입분은 10% 정도인 40만∼50만주만 즉시 매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4개 시중은행에 예탁되어 있는 신탁매입분은 지난 4월부터 주권교부 절차에 들어갔으나 10% 정도의 가입자만이 거래 전제조건인 주권교부를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매물출회 물량이 전체의 40%에 그치지만 포철주의 평균 거래량에 비춰보면 이 정도의 출회도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포철의 하루평균 거래량은 상장년도인 88년엔 7만5천주였으나 89년 5만5천주로 줄어들었다. 금년 들어서는 3월까지 3만3천주까지 격감했다가 할인매각분의 시장출회로 시세하락이 예상되면서 매물이 늘어 최근 40일간 평균거래량 6만주를 기록했다. 1만5천원 발행가로 상장된 포철주의 주가추이를 보면 88년 1월10일 4만3천원까지 치솟았으나 증시침체와 함께 연속하락해 올 4월22일 1만8천1백원의 바닥까지 떨어졌다. 11일 종가는 1만8천7백원이었다. 포철의 전체 발행주식은 9천1백80만주(자본금 4천6백40억원)이나 일반투자자 및 우리 사주조합원에게 실제 공개된 물량은 34.1%이며 이 중 60.3%인 1천8백85만주는 시가로 매각돼 상장과 동시에 유통되고 있다. 13일부터 거래가 가능한 할인매각분은 실제공개분의 19.7%이며 우리 사주조합원에게 배정된 20%는 5년 예탁 조건으로 돼 있어 93년 5월 이후에나 거래가 트인다.
  • 김 교수의 소신과 사표(사설)

    연세대학교에 36년 동안 몸담아 온 김동길 교수가 8일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의 사표 제출은 명지대생 강경대군 치사사건 후의 시국과 관련되어 있다. 어떻게 결과 지어질지는 모르지만 강의실에서의 시국에 관한 소신 피력이 사표 제출로까지 이어졌다는 점에서 각별히 주목을 끌게 한다. 두루 알려져 있듯이 김 교수는 강군의 죽음에 대해 그의 죽음을 애달파하고 있는 학생들이 얼핏 듣기에는 섭섭할 수 있는 말을 그의 서양문화사 강의 시간에 했다. 그는 『입학한 지 두 달밖에 안 되는 학생이 사회를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면서 배후 조종한 사람들이 그를 민주열사로 만듦으로서 사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발언이 발단이 되어 대자보가 붙는 등 학생들 사이에 심한 반발을 그 동안 일으켜 왔다. 김 교수는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이 정권 쪽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싸우겠으나 제자들이라는 점에서 심한 배신감 속에 물러나는 길을 택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설사 재단측에서 사표를 반려한다 해도 그는 강단에 안설 것인지모른다. 적어도 지금의 심경은 그러할 것이다. 또 그의 그 동안의 처신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여러 가지 사견도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런 가운데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어느 쪽의 눈치를 보거나 무엇엔가 연연하여 좌고우면하지는 않는 확고한 소신을 가진 지식인이었다는 점이다. 3공과 5공을 거쳐 오는 동안 정권으로서는 눈에 가시가 되는 언행으로 숱한 고초를 겪었던 사람이 김 교수이다. 따라서 오늘의 이 시국에 대해서도 그 나름대로의 판단과 진단은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그가 하는 말에 대한 학생들의 반발을 예상 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그는 떳떳이 소신을 밝혔다. 그리고 그의 소신에서는 학생들이 매도하듯이 강군의 죽음을 폄하함으로써 또 다른 죽음을 부르는 부추김에 대한 경계의 뜻이 더 강했던 것임을 그후의 잇따른 분신자살이 증명해 주고도 있다. 우리가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그의 이 발언은 강군이 죽은 3일 후인 29일에 있었다는 점이다. 조금만 사려가 있는 사람이라면 김 교수 같은 생각을 안 해봤다고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것을 표현한다는 일 자체가 자칫 억울하게 죽은 강군이나 그 가족에게 누가 될까봐,혹은 울분이 끊어오른 학생들의 공격표적이 될까봐 삼가거나 몸사리고 있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영웅시 말라,열사 운운 말라고 하는 말이 보다 일반화하게 된 것은 분신자살한 김영균군의 아버지 김원태씨의 5월3일 발언을 기점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겠다. 김원태씨의 경우 분신자살한 학생의 아버지였기에 거림낌없이 양식을 토로할 수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김동길 교수는 학생들에게 뿐 아니라 어디에 대고든 그의 지성이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 것을 우리는 보아온다. 때로는 야당지도자에게도,때로는 최고통치권자에게도 한다. 그 같은 소신을 남보다 먼저 피력함으로 해서,자기들 뜻에 거슬리는 것은 모두 비민주며 독재로 치는 흑백논리에 의해 매도 당한 결과를 낳았다. 하지만 세상 흐름의 눈치를 보면서 뒤질세라 시국성명이나 내고 체면치레 하려드는 일부 지식인들과는 다른 지식인임을 우리는알고 있다. 그러한 김 교수가 「용납 안 되는 소신」으로 해서 물러난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이번에는 『죽음 선동하는 세력이 있다』고 한 서강대 박홍 총장에게 흑백논리의 화살이 날아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행적을 아는 사람이라면 김 교수와 같이 사심없이 시국을 우려한 끝에 한 발언임을 또한 알게 될 것이다. 용기있는 양심들의 바른 시국진단과 그에 따른 처방만이 이 혼돈의 늪에서 우리를 구출해 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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