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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줄날줄] 중국인 난민/노주석 논설위원

    1951년 제네바에서 체결된 ‘난민의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 제1조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또는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로 인하여 국적국 밖에 있는 자로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공포로 인하여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것을 원하지 아니한 자’라고 정의하고 있다. 한국은 1993년 3월부터 이 협약을 시행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난민’이라고 하면 전쟁이나 천재지변으로 인해 곤궁에 빠진 이재민을 일컬어 왔다. 그러나 난민협약 체결 이후 인종적, 종교적 이유에 의한 정치적 국외 망명자를 지칭하는 법적 신분용어로 자리잡았다.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UNHCR)이 난민의 지위결정, 국제적 보호 등의 임무를 맡고 있다.UNHCR 인정 난민은 6700만명으로 집계됐다. 수단 다르푸르에서 25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고 아프리카 콩고에서는 장차 몇명의 난민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피비린내나는 분쟁이 진행중이다. 정치적 망명이 아닌 ‘국가내 난민’에 대해서는 보호 및 지원 규정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다. 쓰촨 대지진으로 1500만명의 중국인이 집을 잃었다.200만명 이상의 이라크인들이 종파분쟁으로 고향에서 쫓겨났다. 유혈분쟁을 피해 수백만명의 수단, 소말리아인들이 난민촌을 전전하고 있다. 내전과 폭력, 도시화와 개발, 지진·쓰나미 같은 자연재해로 집을 잃고 자국내를 떠도는 사람들의 숫자가 770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대법원이 중국 국적의 반체제 인사 5명을 난민으로 첫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들이 중국으로 강제 송환되면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했다.”고 판시했다. 법무부는 그동안 난민 신청자 1951명 중 76명만 인정했다. 중국인은 모조리 거부했다. 중국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부담스러워했다. 북한 탈북자 3만명이 중국내에서 숨어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부가 이를 전향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중국도 탈북자 중 명백하게 난민 범주에 드는 국군 포로와 납북자 등에 대해서는 난민 지위 부여를 검토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만화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0년형

    만화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0년형

    미얀마의 한 블로거가 군사정부(준타) 지도자 탄 슈웨를 묘사한 만화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네이 폰 라트(28)의 어머니 아예 탄은 아들이 최근 양곤의 악명높은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으며 아들의 동료인 틴 줄리 역시 2년형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다.  또다른 반체제 인사인 사우 와이는 주간 ‘러브 저널’에 탄 슈웨를 비꼬는 시를 게재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시의 행마다 ‘참모총장 탄 슈웨는 권력을 쥔 바보’란 메시지가 되풀이된다고 BBC는 전했다.  1월에 체포된 네이 폰 라트는 세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11일 어머니 아예 탄에게 전달된 법원 판결문에는 나와있다.전기통신법 위반 혐의로 15년형,‘대중을 놀라게 한 혐의’로 2년형,비디오법 위반으로 3년6개월형 등이다.마지막 조항은 판매금지된 비디오를 소지한 혐의로 보인다.  그의 블로그는 지난해 9월 반정부 시위가 비등했을 때 가치없는 정보를 제공한 잘못이 있다는 게 군정의 판단.  어머니 아예 탄은 군정이 허용하지 않아 재판에 출석하지도 못했으며 네이 폰 라트의 변호사인 아웅 테인 역시 지난 주말 법정모욕으로 4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아예 탄은 “우리 아들은 컴퓨터 전문가일 뿐 어떤 형사법도 위반한 적이 없다.저지르지도 않은 전기통신법 때문에 1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공정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정당을 위한 전국연합 대변인인 니얀 윈은 “정부가 정치범들의 재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형기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이 정당의 청년 당원이자 주간 뉴스 워치 발행인으로 지난해 체포된 툰 툰 나잉은 지난 7일 19년형을 선고받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는데 올해 들어 수감된 언론인만 10명에 이른다.  2주 전에도 이들을 변호하던 변호사 3명이 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에 항의하다 4~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전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미얀마 특사로 임명,미얀마 군정에 대한 압박을 높여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미얀마 군정, 최장기 복역 정치범 윈 틴 석방 수치 여사 음식거부 중단 “北 ‘김정일 사진공개’는 체제 동요 우려 때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부시의 어두웠던 날”  
  • 만화,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0년형

    미얀마의 한 블로거가 군사정부(준타) 지도자 탄 슈웨를 묘사한 만화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네이 폰 라트(28)의 어머니 아예 탄은 아들이 최근 양곤의 악명높은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으며 아들의 동료인 틴 줄리 역시 2년형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다.  또다른 반체제 인사인 사우 와이는 주간 ‘러브 저널’에 탄 슈웨를 비꼬는 시를 게재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시의 행마다 ‘참모총장 탄 슈웨는 권력을 쥔 바보’란 메시지가 되풀이된다고 BBC는 전했다.  1월에 체포된 네이 폰 라트는 세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11일 어머니 아예 탄에게 전달된 법원 판결문에는 나와있다.전기통신법 위반 혐의로 15년형,’대중을 놀라게 한 혐의’로 2년형,비디오법 위반으로 3년6개월형 등이다.마지막 조항은 판매금지된 비디오를 소지한 혐의로 보인다.  그의 블로그는 지난해 9월 반정부 시위가 비등했을 때 가치없는 정보를 제공한 잘못이 있다는 게 군정의 판단.  어머니 아예 탄은 군정이 허용하지 않아 재판에 출석하지도 못했으며 네이 폰 라트의 변호사인 아웅 테인 역시 지난 주말 법정모욕으로 4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아예 탄은 “우리 아들은 컴퓨터 전문가일 뿐 어떤 형사법도 위반한 적이 없다.저지르지도 않은 전기통신법 때문에 1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공정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정당을 위한 전국연합 대변인인 니얀 윈은 “정부가 정치범들의 재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형기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이 정당의 청년 당원이자 주간 뉴스 워치 발행인으로 지난해 체포된 툰 툰 나잉은 지난 7일 19년형을 선고받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는데 올해 들어 수감된 언론인만 10명에 이른다.  2주 전에도 이들을 변호하던 변호사 3명이 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에 항의하다 4~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전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미얀마 특사로 임명,미얀마 군정에 대한 압박을 높여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만화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0년형

    만화 인터넷에 올렸다는 이유로 징역 20년형

    미얀마의 한 블로거가 군사정부(준타) 지도자 탄 슈웨를 묘사한 만화를 인터넷에 올렸다가 2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네이 폰 라트(28)의 어머니 아예 탄은 아들이 최근 양곤의 악명높은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으며 아들의 동료인 틴 줄리 역시 2년형을 선고받고 영어의 몸이 됐다고 영국 BBC가 11일 전했다.  또다른 반체제 인사인 사우 와이는 주간 ‘러브 저널’에 탄 슈웨를 비꼬는 시를 게재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았다.이 시의 행마다 ‘참모총장 탄 슈웨는 권력을 쥔 바보’란 메시지가 되풀이된다고 BBC는 전했다.  1월에 체포된 네이 폰 라트는 세 가지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11일 어머니 아예 탄에게 전달된 법원 판결문에는 나와있다.전기통신법 위반 혐의로 15년형,‘대중을 놀라게 한 혐의’로 2년형,비디오법 위반으로 3년6개월형 등이다.마지막 조항은 판매금지된 비디오를 소지한 혐의로 보인다.  그의 블로그는 지난해 9월 반정부 시위가 비등했을 때 가치없는 정보를 제공한 잘못이 있다는 게 군정의 판단.  어머니 아예 탄은 군정이 허용하지 않아 재판에 출석하지도 못했으며 네이 폰 라트의 변호사인 아웅 테인 역시 지난 주말 법정모욕으로 4개월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이날 법정에 나오지 않았다.  아예 탄은 “우리 아들은 컴퓨터 전문가일 뿐 어떤 형사법도 위반한 적이 없다.저지르지도 않은 전기통신법 때문에 15년형을 선고받은 것은 공정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야당인 민주정당을 위한 전국연합 대변인인 니얀 윈은 “정부가 정치범들의 재판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며 형기도 갈수록 늘고 있다.”고 말했다.이 정당의 청년 당원이자 주간 뉴스 워치 발행인으로 지난해 체포된 툰 툰 나잉은 지난 7일 19년형을 선고받았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이들의 즉각적인 석방을 요구했는데 올해 들어 수감된 언론인만 10명에 이른다.  2주 전에도 이들을 변호하던 변호사 3명이 법정에서 불공정한 재판에 항의하다 4~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전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마이클 그린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미얀마 특사로 임명,미얀마 군정에 대한 압박을 높여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인터넷서울신문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미얀마 군정, 최장기 복역 정치범 윈 틴 석방 수치 여사 음식거부 중단 “北 ‘김정일 사진공개’는 체제 동요 우려 때문”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 “부시의 어두웠던 날”  
  • [2008 美 대선 D-6] 매케인측 막판 ‘인종편견 자극’

    |워싱턴 김균미특파원|공화당 지지 보수단체가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가 다닌 교회의 담임 목사인 혹인목사 제레미야 라이트가 ‘갓 뎀 아메리카’라고 미국을 저주하는 목소리를 담은 TV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공화당을 지지하는 정치활동위원회(PAC)의 하나인 ‘전국공화당트러스트’는 27일(현지시간) 저녁부터 이번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오하이오와 플로리다, 펜실베이니아 등 3개주에 오바마와 라이트 목사의 관계를 다룬 네거티브 TV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했다고 ABC방송과 AP통신 등 미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선거를 7일 앞두고 공화당 지지단체들이 매케인의 반대에도 불구, 인종적 편견에 불을 지를 수 있는 라이트 목사 카드를 꺼내든 것은 열세에 놓인 판세를 뒤집어 보려는 최후의 시도로 보인다. 광고는 오바마와 라이트 목사가 나란히 있는 모습과 함께 “오바마는 지난 20년 동안 미움을 설파했던 목사를 따랐고, 라이트 목사가 미국에 분노하는 것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기 전까지는”이라면서 “(오바마는)너무 급진적이고 위험하다.”고 끝맺는다. PAC는 온라인으로 모금하고 보수 단체들로부터 거둔 250만달러를 들여 3개 격전주에 선거일까지 이 광고를 집중적으로 내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고 ABC방송이 보도했다. 한편 CBS의 시카고 지역방송은 선거 막판에 라이트 목사가 전면에 등장한 것이 일부 유권자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 수는 있지만,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등 일부 공화당 지도자들은 매케인은 물론 상·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완패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라고 주장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일부 매케인 진영 관계자는 1960~70년대 급진적인 반체제활동가였던 에이어스와 오바마의 관계를 공격한 매케인의 TV광고가 역풍을 불러온 것처럼 이번 라이트 목사 광고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kmkim@seoul.co.kr
  • 中인권운동가 후자, 사하로프상 받는다

    중국 인권운동가 후자(胡佳)가 인권 개선과 민주주의 고양에 힘쓴 사람에게 수여되는 유럽의회 사하로프상의 20번째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럽의회는 23일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자유 사상을 지지하고 압제에 항거한 인권수호자를 기린다는 사하로프상 제정 취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후자는 지난해 11월 유럽의회 인권소위원회에서 중국 인권 관련 증언을 했다가 중국 당국에 구금돼 올 4월 징역 3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국가 권력 전복을 선동했다는 게 유죄선고 이유라고 AP통신은 전했다. 중국은 수상자 발표가 임박하자 후자가 선정되면 유럽연합(EU)과 중국 사이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될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그러나 유럽의회는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인권을 증진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약속은 수상자 선정에 고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 유럽의회는 수상후보로 후자와 함께 벨로루시의 반체제 인사 알렉산드르 코줄린, 콩고민주공화국의 선거관리위원장 아폴리네르 말루말루를 선정했었다. 사하로프상은 옛소련 물리학자이자 반체제 인사인 안드레이 사하로프를 기려 1988년 제정된 유럽에서 가장 권위 있는 인권상이다.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미얀마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 등이 수상했다.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임화 문학의 부활과 한국문학의 확대

    [신경림 누항 나들이] 임화 문학의 부활과 한국문학의 확대

    내가 어려서 북한 체제에 처음 실망한 것은 월북한 시인 임화가 미국의 간첩으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잘 모르면서도 가령 임화 같은 시인이 선택한 곳이니까 무엇이 있으려니 여겨 왔던 것이 사실인데, 그런 시인조차 기를 펴고 살 수 없는 세상이라면 과연 제대로 된 세상일까 회의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것이 당국이 날조한 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은 끝내 버리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당국은 국민을 상대로 예사로 거짓말을 해 왔기 때문이다. 뒤에 일본의 작가 마쓰모토 세이초가 쓴 소설 ‘북의 시인’을 읽고 임화의 숙청설이 사실임을 확인했지만 북의 입장을 두둔한 이 소설은 조금은 남아 있던 북에 대한 일말의 환상마저 완전히 깼다. 현역 국회의원으로 법무장관이었던 조재천이 한 잡지에 그 소설이 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던 정판사(精版社) 사건이 결코 조작이 아님을 담당했던 검사로서 조목조목 증거를 들이대며 반론한 글을 감동하면서 읽었을 정도로 임화를 죽인 북쪽이 미웠던 것이다. 일본의 이른바 좌파 지식인들의 편견과 허위의식을 이 소설을 통해서 간파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쨌든 교과서에도 실렸던 ‘오빠와 화로’의 시인 임화는 월북하고서도 북쪽에도 존재하지 않는 시인이 되었다. 남쪽에서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여서 문학사에는 임○ 또는 X화로밖에 표기될 수 없었으며, 그의 시집을 소지하고 있다가는 반공법으로 처벌되었다. 뜻있는 필자들은 두 복자(覆字)를 나란히 한 페이지에 등장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그것을 (임화)로 꿰맞추는 퀴즈놀이를 즐기게 만들었다. 다행히 남쪽에서는 민주화가 이루어짐으로써 1980년대 후반 이후 그의 시집도 읽을 수 있게 되고 쓸데없는 퀴즈놀이를 할 필요도 없게 되었지만, 쉽게 문학적으로 복권이 되지는 않았다. 사회주의 혁명을 찬양하는 반체제 전형적인 프로시라는 이미지가 쉽게 벗겨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문학비평가였다는 빛나는 그의 이론적 업적도 묻혀버렸다. 북쪽에서는 더욱 심하여, 두 차례의 평양 방문에서 여러 시인에게 임화에 대해서 물어보았으나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사람 하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체제의 우열이 비교되는 대목이지만, 아쉬운 것은 그가 우리 문학사에서 아예 없었던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임화를 비롯, 비슷한 사례가 수없이 있으면서 우리 문학은 작아지고 말았다. 아무리 부정해도 임화를 중심으로 한 흐름이 한 시대 우리 문학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었으니 그 문학은 바로 우리의 것인 까닭이다. 올해로 임화 탄생 백년이 된다. 다행히 뜻있는 후학들에 의해서 그의 시와 이론적 업적에 연구도 이루어지고 그를 기념하는 문학상도 생겼다. 분단으로 해서 터부시되었던 문학까지 우리 문학으로 수용하게 된다면 그만큼 우리 문학은 커지는 것이 된다. 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해마다 노벨문학상으로 열병을 앓지만 그 상은 “대~한민국”하고 소리만 지른다고 차지하는 것이 아니다. 시급한 것은 우리 문학을 큰 문학으로 만드는 문학적 인프라의 구축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이제는 미국 중국 일본 등에 사는 우리말로 하는 동포들의 문학까지도 포용하여 우리 문학을 큰 문학으로 만드는 일에 대해서도 깊이있게 생각해야 할 때다. 아직까지는 여러 조건 때문에 그들의 문학이 외면당하고 있는 측면이 없지 않지만, 그들이야말로 우리 문학을 밖으로 내보내고 밖의 문학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중간자 역할을 할 수 있는 최적격자다. 특히 외국에서 나고 자라 양쪽 문화에 다 익숙한 2세 3세들은 우리 문학을 깊이있게 해외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이다. 임화 문학의 부활, 그리고 작년에 왔던 각설이로 해마다 되풀이되는 노벨 문학상 열병을 보면서, 우리 문학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시인
  • 中 “반체제 인사 노벨상 안돼”

    대부분의 나라에서 노벨상은 국가적 자랑이지만 또 다른 나라에서는 정부가 나서서 경고를 쏟아내는 아이러니의 대상이다. 영국 BBC는 7일(현지시간) 중국 정부가 10일 노벨평화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고 전했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200명 남짓한 후보 가운데 중국 반체제 인사인 후자(胡佳·35)와 가오즈성(高智晟·44)의 수상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엔 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은 해여서 중국 반체제 인사의 수상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는 상황이다. 중국의 인권단체 인사들은 현재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집결해 이들의 수상을 기원하고 있다. 친강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노벨평화상이 세계 평화와 인권 향상을 촉진하려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고 있다.”면서 “적합한 인물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불편한 심기를 노출했다.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천하의 약골이 로마 첫 황제가 된 비결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로마황제와 동격인 단어로 굳어 있다. 하지만 그건 오해다. 타고난 용맹과 통치력으로 부패한 공화정을 뒤엎고 전제국가를 세우려 했으나 반대파에 살해되는 바람에 끝내 황제로 등극하진 못했다. 근대 유럽의 초석을 다진 로마제국 최초의 황제는 아우구스투스였다. 카이사르가 천부적인 통치자였다면, 그의 양자가 된 아우구스투스는 평범하다 못해 병약하기까지 한 천하의 약골이었다. 그의 무기는 비범함이 아니라 끈기와 치밀한 계획성이었다. 카이사르와 모든 면에서 대조적인 그의 일대기가 ‘아우구스투스:로마 최초의 황제’(앤서니 에버렛 지음, 조윤정 옮김, 다른세상 펴냄)에 담겨 나왔다. 역사가들은 전쟁사적인 측면에서 볼 때 아우구스투스의 삶은 지루하다고 평가한다. 그럴 만도 하다. 큰 전투가 있을 때마다 그는 전장이 아니라 병상에 있었다. 하지만 5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전기는 그의 다른 면모들을 짚어낸다. 전쟁을 비켜다닌 겁쟁이가 아니라, 전쟁이 아닌 다른 세상을 아울러 볼 수 있었던 인물로 해석한다. 정치, 문화, 가족제도, 전통관습과 풍속, 도시건설 등이 그의 치밀한 계획 아래 전개되었다는 풀이다. 적법하지 않은 법령들을 폐지했고, 국가를 공정하고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심했다. 카이사르의 상속자가 된 그는 권력을 얻는 것보다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했다.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일 줄 알았으며, 언론의 자유 즉 ‘정신의 독립’을 보장해 주는 포용력이 있었다. 책은 “그의 통치 하에서는 새벽 네시에 비밀경찰이 반체제 작가 집의 문을 두드리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는 등의 흥미로운 표현을 동원한다. ‘미완의 천재’였던 카이사르와 달리 아우구스투스가 ‘전략적 범인(凡人)’으로 빛날 수 있었던 이유를 조목조목 찾아내는 건 독자들 몫이다. 권력을 어떻게 얻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잘 이어갈 수 있느냐에 대한 교과서로 읽힐 만하다.2만 2000원.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달라진 간첩 패러다임

    최초로 적발된 위장 탈북 남파간첩인 원정화는 과거 간첩과는 달리 새로운 행태를 보였다. 과거 간첩들은 난수표나 위조신분증을 사용했지만 원정화는 탈북자라고 자수, 대한민국 국적을 합법적으로 취득한 대목이 가장 대표적이다. 원정화는 탈북자라는 신분 덕분에 북한 말씨를 쓰면서 남한 사정을 묻고 다녀도 큰 의심을 받지 않았다. 또 정보 수집을 위해 탈북자 단체 등에 접근하는 것도 용이했다는 것이 합동수사본부의 분석이다. 원정화가 14차례나 중국을 드나들면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 ‘원정 보고’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여권을 가진 국적자로서 자유로운 해외여행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합수부 관계자는 “과거 간첩들이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활동했던 것과 달리 원정화는 휴대전화 등 합법적인 수단을 이용해 합법적인 공간에서 사실상 ‘반공개적’ 간첩활동을 벌였다.”고 전했다. 대북무역 등을 통한 외화벌이로 공작금 상당부분을 충당하는 등 경제적으로 자립한 행태를 보인 것도 북쪽에서 보내주는 공작금에만 의존하던 과거 간첩 활동과는 큰 차이점이다. 원정화는 남한 정착을 위한 지원금으로 9000여만원을 받아냈고,“탈북자라 북한 사정을 잘 안다.”는 명목으로 대북무역회사를 운영했다. 빼돌린 회사돈 등 5만 5000달러는 동생이 북한 청진에서 운영하는 외화상점에 투자하기도 했다. 임신 7개월 상태로 남쪽에 들어와 아이를 출산·양육하며 간첩활동을 한 점이나 군 기밀 수집을 위해 군 장교 등을 만나는 방법으로 당당하게 결혼정보업체를 이용한 점도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양상이다. 정보원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남성과 성관계를 갖는 등 성(性)을 도구화한 점도 마찬가지다. 원정화가 북한 보위부의 지령을 받아 남파된 것은 반체제자 색출 및 가해 업무 등을 주로 하던 북한 보위부의 활동 영역이 탈북자들이 늘어나면서 중국, 한국까지 확대됐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합수부는 지적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위장탈북 간첩 처음 붙잡아

    위장탈북 간첩 처음 붙잡아

    탈북자로 위장 입국해 군사기밀과 대북 정보요원 인적사항 등의 정보를 빼낸 여간첩이 붙잡혔다. 공안당국은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에 비유하면서 “최초로 적발된 위장탈북 남파간첩 사건”이라고 밝혔다. 수원지검·경기경찰청·국군 기무사령부·국가정보원 등으로 구성된 합동수사본부는 27일 위장 탈북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 원정화(34)를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합수부는 원정화가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원정화를 도운 육군 모 부대 황모(26) 중위(대위 진급 예정)도 국가보안법상 불고지·간첩방조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합수부는 또 북한 고위직 출신으로 위장 탈북한 원정화의 의붓아버지 김모(63)씨도 간첩 혐의로 구속 수사하고 있다. ●황장엽 등 근황 유출시도 합수부에 따르면 원정화는 19 99년부터 중국 옌지와 훈춘 등지에서 탈북자·남한사업가 100여명을 납치하는 데 관여하다가 2001년 10월 보위부의 지시에 따라 조선족으로 위장한 뒤 최모씨와 결혼해 임신한 상태로 남한에 잠입했다. 입국 직후 이혼한 원정화는 같은 해 11월 국정원에 탈북자라고 자수하는 방법으로 신분을 위장했다. 그는 탈북자 지원금과 북한 공작금을 종자돈으로 대북 무역회사를 차린 뒤 중국을 14차례, 북한을 2차례, 일본을 3차례 왕래하며 보위부의 지령을 수령하고, 대북 정보 요원의 신상과 국정원 등 기밀시설의 위치정보 등을 유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원정화는 북한 보위부로부터 황장엽씨 등 주요 반체제 탈북자의 근황 정보 수집, 대북정보요원 2명에 대한 암살, 정보 수집을 위해 교제했던 김모 소령과 조모씨에 대한 납치 시도 등도 지시 받았으나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교 100여명 접촉…성관계도 원정화는 군 안보강사도 맡아 현역 군 장교 100여명과 접촉하며 명함을 수집하고 모 부대 정훈장교인 황 중위와 내연관계를 맺은 뒤 안보강사로 활동하는 다른 탈북자들의 명단을 빼내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원정화는 군 장교 등에게 정보를 빼내기 위해 성 관계를 갖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합수부는 “지난 10년간 남북화해 무드의 진전과 북한주민 이탈의 증가 속에서 일부 탈북자 중 간첩이 존재한다는 의심이 있었을 뿐 확인을 하지 못했는데 그 실체가 드러난 최초의 사례”라면서 다른 위장 탈북 간첩이 있는지에 대해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홍성규 홍지민 유지혜기자 cool@seoul.co.kr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34) 길쌈하는 여인들

    김홍도의 ‘길쌈’(그림 1)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이고, 또 길쌈하는 그림인 줄은 누구나 다 안다. 그림 2는 유운홍이 그렸다고 전해지는 ‘길쌈’이란 작품인데, 김홍도의 그림과 내용상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런 길쌈하는 그림은 제법 많이 전하고 있다. 다만 이제 길쌈이란 말 자체가 거의 사어(死語)가 된 형편이다. 예순이 넘은 분들만이 이 그림을 별다른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이하의 연배, 그리고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길쌈의 과정을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모르는 분들을 위해 무명 짜는 과정에 대해 간단히 언급한다. 봄에 목화를 심어 가을에 목화꽃을 거둔다. 목화꽃이 곧 목화솜이다. 목화솜에는 씨앗이 들어 있어서 실을 그냥 뽑을 수가 없다. 씨아를 이용하여 씨를 빼내고, 활로 솜을 탄다. 탄다는 것은, 활줄로 퉁겨서 솜을 부풋하게 부풀리는 것이다. 그 다음 넓은 판대기 위에 목화를 올리고 수수깡 같은 것을 30㎝쯤 잘라 심으로 삼아 손으로 밀면 기름한 솜덩이가 된다. 이것을 물레에 걸어 실을 뽑는다. 이 실을 막 바로 베틀에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림 1의 위쪽을 보면, 실을 길게 메고 여자가 쪼그리고 앉아 무언가 바르고 있다. 풀이다. 실이 엉키지 않게 풀을 먹이는 것이다. 여자의 오른손 아래쪽에 있는 것은 숯불이다. 풀을 말리는 것이다. 이렇게 풀을 먹이는 것을 베매기라 한다. ●지루하고 고된 노동 노래로 털고 씻어 베매기를 한 실이 날줄이 된다. 이 날줄을 도투마리(베틀 가장 왼쪽에 실을 묶은 부분)에 맨다. 이제 씨줄을 만들 차례다. 날줄을 둘로 나누어 엇건 뒤에 그 사이의 공간으로 씨줄을 통과시키면 천이 되는데, 이 엇건 공간으로 넣는 것이 곧 북이다. 북에 들어갈 씨줄은 따로 감아둔다. 북을 날줄 사이로 통과시키는 것은 씨줄을 넣는 것이다. 씨줄이 들어가면 바디를 내려 쳐서 천을 단단히 짠다. 조선시대의 피륙에는 비단, 삼베, 모시, 무명이 있었다. 무명은 알다시피 고려 말에 문익점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이다. 무명은 농사짓기가 쉽고 피륙을 짜기도 수월하며, 또 보온성이 뛰어나 이내 삼베나 모시, 비단을 물리치고 가장 많이 생산하는 피륙이 되었다. 여기서 무명 짜는 것을 예로 든 것도 무명이 가장 일반적인 옷감이었기 때문이다. 삼베나 모시, 비단은 실을 얻는 과정이 다를 뿐 짜는 원리는 동일하다. 그림 1과 2에 등장하는 길쌈하는 사람은 모두 여성이다. 조선시대의 수신교과서 ‘소학’은 아예 여성을 조리와 직조(織造)하는 존재로 규정하였고, 특별히 귀한 가문의 여성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여성은 두 노동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었다.‘소학’이 아니라 해도 조리와 직조를 여성이 맡았던 역사는 아마도 인류 역사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한국의 역사에서 그 기원의 흔적을 찾자면 다음과 같은 자료가 있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 9년 조다. 유리왕은 나라의 여자들을 두 패로 나누고 자신의 딸을 각 패의 우두머리로 삼게 한다. 그리고 7월16일부터 매일 아침 가장 큰 고을의 뜰에 모여 밤 10시 쯤까지 길쌈을 하게 한다.8월15일에 그 성적을 따져 진 패가 이긴 패에게 술과 음식을 대접하게 한다. 이때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고 온갖 놀이를 벌인다. 이것을 ‘가배’라고 한다. 진 패의 여자는 일어나 ‘회소, 회소’ 하고 노래를 부르는데, 그 소리가 아름답고 구슬퍼 사람들이 그 소리를 따라 ‘회소곡’이란 노래를 지어 불렀다. 이 ‘가배’가 뒷날 ‘가위’ 곧 한가위가 되었다고 한다. 어쨌거나 추석의 유래는 직조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고, 여성 직조의 역사는 역사의 기원까지 소급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신라 길쌈대회 ‘가배´서 한가위 유래 조선시대 옷감을 짜는 것은, 심상한 행위가 아니었다. 인간의 삶은 입을 것, 먹을 것, 비바람을 피하고 잠을 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그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데 집이야 한 번 지어놓으면 그만이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은 그야말로 끊임없이 소모된다. 다시 보충해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먹을 것만큼은 아니지만, 입을 것의 무게란 중세 경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지금 값싼 옷이 지천인 세상에서의 입을 것이 갖는 의미와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옷감은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무엇보다 가족의 옷이 되었고, 나라에 바치는 세금이 되었으며, 집에서 만들지 못하는 물건을 사들이는 화폐의 구실을 하였다. 그리고 먼 길을 떠날 때면 노잣돈이 되었으니, 한 필 무명이야말로 지금의 현금카드와 같은 구실을 했던 것이다. 옷감을 짜는 과정은 고되고 지루하였다. 그 노동의 고통을 여성들은 노래를 불러 잊었다. 수많은 길쌈노래, 물레노래, 베틀노래가 그 증거다. 어디 베틀노래 하나를 들어보자. 경상북도 의성 지방에 전하는 노래다. “시집 갔든 사흘만에/ 과거 빈다 소문 듣고/ 과거 보러 가신 낭군/ 밤낮으로 기다리니/ 밤도 길어 해도 길어/ 길쌈이나 시작하세” 남편은 과거 보러 떠났다. 아내는 기다리기 지루하여 길쌈을 하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잊으려 한다.“송이송이 따 모아서/ 참나무쐐기에 앗아내어/ 대나무활로 타다놓고/ 수수회기로 비벼내어/ 정데정이 치은 가락/ 버드나무 물레에 미여 넣고/ 당태실 같이 뽑아내어/ 파람파람 뽑아다가/ 앞마당에 날아다가 뒷마당에 매어다가/ 베틀이나 차려보세” 목화송이를 따서 활질을 하고 실을 뽑는 과정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그 다음은 베틀을 차리는 과정을 길게 늘어놓고, 그 다음 베를 짜는 과정을 늘어놓는다.“바디집 치는 양은/ 광한루 높은 정자/ 신선들이 모여 앉아/ 장기 바둑 뚜는 듯다/ 북이라고 노는 양은 청학이 알을 품고/ 들락날락 하는듯다/ 잉애라고 바란 양은/ 모시국이 실묵시를/ 놋전반에 받친 듯고” 이렇게 해서 짠 것을 이제 씻어 간직한다.“앞 냇물에 씻어다가/ 줄어 너니 줄 때 묻고/ 손에 드니 손때 묻어/ 고이고이 말라내어/ 은실겅에 얹어 얹고” 남편을 기다린다. “과거 선비 오실까봐/ 동창문을 열어놓고/ 날이 날로 기다려도/ 한양 선비 자취 없네” 아무리 기다려도 한양에 간 남편은 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가는 선비에게 물어본다.“말 묻기 어려우나 말 한 마디 물읍시다. 한양서 오시며는 우리 선비 안 옵디까?” 어렵게 말을 꺼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엉뚱하다.“오기사 오드마는 칠성판에 얹혀 와요” 아내는 절망한다.“아이고 답답 내 일이야/ 암행어사 하실까봐/ 고대고대 바랐드니/ 칠성판이 웬일인고” 남편은 과거를 치러 가서 무슨 사건으로 인해 죽어 시체가 되어 칠성판에 얹혀서 돌아온 것이다.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과 가혹한 운명을 이 노래를 부르면서 털고 씻고 잊었다. ●군역 대신 낸 군포… 한과 눈물의 응집물 여성들이 짜낸 무명은 그야말로 한과 눈물의 응집물이었다. 가혹한 노동의 결과라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무명이 ‘군포’란 말로 바뀌는 순간, 그것은 조선후기 사회가 앓아야 했던 거대한 모순이 되고 만다. 군포는 군역을 지는 대신 내는 무명이다. 조선은 원래 16세에서 60세까지의 장정은 모두 군역을 지게 되어 있었다. 복잡한 과정을 생략하면 남는 큰 줄거리는 이렇다. 곧 조선후기에 와서 군역의 의무는 그대로 남지만, 실제 군대는 직업군인으로 채워지기에 16세에서 60세까지의 남성들(양반은 제외)은 모두 직접 군역을 지는 대신 1인 당 2필의 군포를 납부해야만 하였다. 조선은 대가족제도다. 따라서 한 집안에 남자 장정이 6명이면 12필을 내어야 한다. 그 뿐인가. 죽은 사람에게도 군포를 물리는 백골징포, 어린아이에게도 받는 황구첨정이 있다. 군포를 못내고 달아나면 그 동네 사람에게 받거나(동징), 친척들에게 받아낸다(족징). 군포의 징수가 얼마나 가혹했던지 자살하는 사람, 달아나는 사람 등 별별 사람이 다 있었고, 급기야 마을 하나가 송두리째 없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가혹하게 거둔 군포 위에 조선이란 국가와 양반체제가 서 있었던 것이니, 저 그림 속에 보이는 여성 노동은 조선 후기의 체제모순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문화마당] 솔제니친 문학의 유통기한/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문화마당] 솔제니친 문학의 유통기한/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얼마 전에 타계한 솔제니친의 이름 앞에는 늘 ‘반체제 작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30여 년 전 내가 솔제니친을 처음 접했을 때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반체제’라는 단어였다.‘저항’이라든가 ‘반체제’ 같은 말이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던 시절이었다. 그가 세상을 하직하자 러시아 안팎에서 씌어진 수많은 추모 기사들 역시 그의 문학보다는 반체제적 업적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수용소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폭로한 지식인이었고, 억압에 저항한 러시아의 양심이었으며, 조국에서 추방당한 자유의 투사였다. 그러나 이 업적은 그에게 훈장인 동시에 평생 지고 가야 할 짐이 되었다. 그도 독자도 끝까지 ‘반체제’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는 비판으로 일관된 삶을 살았다. 구소련의 억압적인 체제를 비판했고, 서구 자본주의와 물질문명을 비판했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러시아의 혼란스러운 현실을 비판했다. 일각에서 그를 한물간 ‘욕쟁이 할아버지’처럼 생각한 것도 이해가 되는 일이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비판정신은 러시아 문학의 전통에 미루어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작가는 언제나 그냥 작가가 아니라 민족과 시대를 선도하는 지도자이자 교사이자 예언자였다. 고골은 중년에 도덕가로 거듭났고 도스토예프스키는 살아생전에 이미 예언자로 불렸으며 톨스토이 역시 위대한 교사로 추앙받았다. 러시아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시대를 풍미했던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상과 도덕은 언제나 예술의 일부였다. 그러나 19세기 대문호들이 오늘날까지 읽히고 기억되는 것은 그들의 도덕적 업적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문학 때문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고골의 설교는 놀림감이 되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국수주의적인 정치논평은 욕만 바가지로 먹었다. 톨스토이의 교훈서 또한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은 지금도 읽힌다. 그러면 솔제니친은 어떤가. 그는 자기가 철학자도 아니고 정치가도 아니며 다만 작가일 뿐이라고 말했다. 어쩌다가 정치에 말려들긴 했지만 정치를 혐오한다는 말도 했다. 그렇다. 솔제니친은 작가였다. 그의 사상과 도덕은 그러므로 그의 문학과 함께 평가되어야 한다. 그것이 고인에 대한 예우다. 만년의 그는 종종 구설수에 올랐다. 러시아로 귀환한 후 그에게 맡겨진 TV 토크쇼가 너무나 지리멸렬해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다고 한다. 그가 KGB 출신의 푸틴 전 러시아 대통령한테서 국가 공로상을 받은 것은 변절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작품은 이런 이야기들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수용소의 참상을 한 평범한 개인의 일상을 통해 담담하면서도 충격적으로 묘사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절제된 문체와 심리적 깊이 덕분에 소위 ‘수용소 문학’의 한계를 훌쩍 뛰어 넘는다.‘수용소 군도’의 그 방대한 리얼리티에 담긴 진솔하고도 정확한 역사의 증언은 문학작품의 경계를 확장시켰다.‘제 1권’의 문학성과 휴머니즘 역시 감동적이다. 반면 그가 미국 버몬트의 시골에 칩거하며 쓴 여러 권짜리 ‘붉은 수레바퀴’는 너무 지루하고 산만해서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앞으로도 누가 그 작품을 읽을지 심히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솔제니친 문학의 유통기한은 얼마일까. 그는 19세기 대문호들처럼 기억될 것인가. 기억된다면 그의 어떤 소설 때문일까. 판타지 소설과 자본주의 소비문화에 익숙한 세대가 그의 길고 긴 소설을 얼마나 읽을까. 수천 쪽의 행간에서 무슨 의미를 찾아낼까. 저자의 고뇌와 휴머니즘은 어떻게 해석될까.21세기의 눈으로 저항시인의 죽음을 바라보자니 착잡한 심정이 된다. 석영중 고려대 노문과 교수
  • 내 인생을 뒤흔든 세 권의 책은?

    일본 소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芥川龍之介)작품선’, 카를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김수영 전집’…. 러시아 출신의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가 꼽은 자신의 인생을 뒤흔든 세 권의 책이다. 인터넷서점 YES24는 18일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를 비롯해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 등 인문사회 분야의 인기 작가 10인에게 ‘내 인생을 뒤흔든 책’을 주제로 각각 세 권씩 책을 추천받아 소개했다. 박노자 교수는 “일본 소설가 아쿠타가와는 내게 인간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심어준 작가”라며 “인생이라는 회색 지대에서 선과 악이 따로 존재하지 않으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준다.”고 추천 이유를 설명했다. 박 교수는 또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수고’는 인간의 노동·자본의 ‘소외’에 대한 개념과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는 관점에서,‘김수영 전집’은 사회의 아픔 속에서 자유를 찾는다는 측면에서 내 인생을 뒤흔든 책”이라고 덧붙였다. 조국 교수는 ‘안토니오 그람시의 옥중 수고’와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 존 롤스의 ‘정의론’ 등 다소 ‘묵직한’ 책들을 추천했다. 조 교수는 ‘그람시의 옥중 수고’와 관련,“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자였던 그람시가 2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돼 옥사할 때까지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과 지적 모험을 접했을 때 심장이 뛰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는 2005년 200쇄 출간기록을 세운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최근 별세한 러시아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중국의 문호 루신(魯迅)의 ‘아Q정전’을 들었다. 조 교수는 “‘난쏘공’에 심취해보지 않은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말까지 있었을 정도였다.”면서 “소설의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정갈하고 완벽주의적이고 순도 100%에 가까운 문체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Beijing 2008] 최고·최대… ‘中國의 힘’ 과시

    [Beijing 2008] 최고·최대… ‘中國의 힘’ 과시

    “지난 3년 동안 피땀 어린 준비를 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5000년의 중국 문화를 짧은 시간 내에 담아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장이머우(張藝謀·57) 감독은 첸카이거 감독 등과 함께 중국 영화의 존재를 세계에 알린 대표주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붉은 수수밭’,‘홍등’,‘국두’ 등으로 중국 현대사의 질곡을 날것으로 드러내 중국 정부의 미움을 샀다. 세계 곳곳에서 갈채를 받은 그의 작품이 정작 고국에선 상영금지 조치를 당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반체제 예술인으로 낙인찍힌 그가 중국인이 100년을 기다려 왔다는 베이징올림픽의 개·폐회식 총연출을 맡았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영웅’,‘황후화’ 등 블록버스터를 찍으며 중국을 ‘대표’하는 작가에서 중국을 ‘대변’하는 작가로 전향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역대 최고, 최대의 개·폐회식을 뽐내 중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중국 지도부에 장이머우만 한 적임자는 없었을 것이다. 최근 그의 작품들은 중국인들이 끔찍히 아낀다는 붉은색 중심의 질펀한 색채의 향연에다 장대한 스케일을 보태며 중국의 우월성과 자존심을 고스란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장이머우 감독으로서도 1000억원을 쏟아붓고 2만여명을 투입, 중화 넘버원을 테마로 하는 블록버스터 흥행물을 65억 지구촌을 상대로 상영한 셈이 됐다. 예술의 자유를 억압하는 중국 정부와 손을 잡았다는 비난도 있지만 그는 “올림픽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 한 좋은 기회”라면서 “중국 인민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구소련 탄압에 저항… 러 문학전통 살려

    구소련 탄압에 저항… 러 문학전통 살려

    ‘수용소 군도’의 작가인 솔제니친의 생애는 ‘탄압’과 ‘저항’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평생을 타협하지 않는 비판을 업으로 삼았고, 그런 그에게 옛 소련 당국의 제재는 가혹했다. 솔제니친은 1918년, 카프카스 키슬로보드스크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출생 직전 세상을 떠났다. 예술에 조예가 깊던 어머니는 솔제니친이 일찍부터 문학에 눈뜰 수 있게 도왔다. 솔제니친은 대학을 졸업한 뒤, 제2차 세계대전에 포병으로 참전했다.1945년, 동프로이센에서 친구에게 보낸 한 통의 편지로 그는 10년을 수용소에서 보내게 된다. 스탈린을 비난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경험을 바탕으로 첫 작품을 출간했다.1962년 문학지 ‘노비미르’에 발표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다. 한 서민 출신 죄수가 스탈린 시대 수용소에서 보내는 하루를 그렸다. 솔제니친은 단숨에 유명인사가 됐다. 이후 1963년에는 ‘마트료나의 집’,‘크레체토프카역에서 생긴 일’,‘공공을 위해서는’ 등의 작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작가로 입지를 굳혀갔다. 그러나 1964년 옛 소련은 브레즈네프가 서기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념적 규제가 심해졌다. 그의 작품은 출판이 금지됐고 1969년에는 작가동맹에서도 제명됐다. 그에게는 ‘반체제 인사’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1968년작 ‘암병동’을 비롯한 이후의 작품들은 해외에서 출간해야 했다. 국내에서는 자비 출판 형태로 암암리에만 발표할 수 있었다. 솔제니친은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도덕적인 힘으로 러시아 문학의 전통을 추구했다.”는 것이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선정 이유였다. 노벨상 수상으로 탄압은 더욱 거세졌고, 그는 귀국하지 못할까봐 스톡홀름에서 열린 시상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1973년 그의 대표작인 장편 ‘수용소 군도’가 파리에서 출판됐다. 옛 소련의 체포, 심문, 정죄, 이송, 구금 등을 묘사한 작품이다. 당국은 그에게 반역죄를 씌웠고 강제 추방 명령을 내렸다. 그는 옛 소련이 무너진 1994년에야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는 귀국한 뒤에도 물질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향수를 끊임없이 비판했다. 하지만 무자비한 탄압을 받으면서도 베일에 가려 있던 스탈린 시대의 참상을 처음 드러낸 솔제니친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없지 않다.“폭로 일변도 문학에, 지나친 국수주의자”라는 것이다. 냉전시대 서방의 평가와 21세기적인 시선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中 “올림픽기간 정치적 망명 불허”

    |도쿄 박홍기·베이징 이지운특파원|중국이 베이징올림픽 기간 탈북자 등의 정치적 망명을 받아들이지 말 것을 베이징 주재 각국 대사관과 국제기구 대표부 등에 직·간접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올림픽 기간 탈북자나 올림픽 임원·선수단이 외국 공관 등에 진입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사례가 생기면 이들의 신병을 인도받아 즉시 해당국에 넘길 방침이라고 20일 베이징 소식통들은 전했다. 중국도 이들의 타국 망명을 인정하거나 자국 망명을 허용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중국 당국은 올림픽 때 안전을 해치는 최대 요인으로 신장·위구르지역 분리·독립주의자들의 테러, 티베트(西藏·시짱)자치구 분리주의자들의 독립 요구 시위, 반체제인사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 파룬궁(法輪功)의 반 공산당 시위 등을 꼽고 정치적 망명 등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특히 베이징 공안은 올림픽 기간 비정부기구(NGO)나 국제인권단체, 종교단체들이 탈북자 집단 망명이나 공관 진입 등을 기획·지원한 경우 일벌백계로 엄벌할 계획이다.중국이 자국내 일부 북한인들에게 올림픽 동안 중국을 떠날 것을 요청한 것도 이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 통신은 지난 16일 중국주재 북한대사관의 문서를 인용, 중국이 보안상 이유로 무역대표와 정부 직원을 뺀 북한인들에 대해 이달 31일까지 출국해 9월말까지 되돌아오지 말 것을 요구했고 주중 북한대사관은 최근 중국내 북한인들에게 이런 훈령을 하달했다고 보도했다.북한은 베이징올림픽에 11개 종목 63명의 선수단을 파견하며 베이징에 2만여명의 북한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중국은 또 그동안 껄끄럽게 여겼던 ‘중·일 역사공동연구’에 대한 보고서 발표도 당초 예정된 오는 29일에서 다음달 8일 개막되는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늦췄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20일 중국 측의 요청에 따라 연구 보고서에 대한 발표가 연기됐다고 보도했다. 보고서에는 난징(南京)대학살을 비롯해 중국측이 신경을 쓰는 부분을 적잖게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조치는 후쿠다 야스오 일본 총리의 올림픽 개막식 참석과 함께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과의 중·일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연구 보고서를 발표할 경우, 대일 감정을 자극해 국내의 불안을 초래할 우려를 감안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또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 따라 경색된 한·일 관계도 중국 측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hkpark@seoul.co.kr
  • [부고] 월가 ‘투자의 전설’ 존 템플턴 사망

    [부고] 월가 ‘투자의 전설’ 존 템플턴 사망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가 존 템플턴이 8일(현지시간) 숨졌다.95세. 파이낸셜 타임스 등 외신들은 그가 폐렴으로 미국 바하마 나소 닥터스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고 보도했다. 고인은 1972년 ‘종교·봉사의 노벨상’인 템플턴상을 제정한 뮤추얼펀드 개척자이다. 신앙을 고취하거나 영적 분야의 발전과 종교·과학 이해를 증진시킨 인물에게 주어지는 템플턴 상금은 140만달러로 약 100만달러인 노벨상보다도 많다. 수상자 중엔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한 마더 테레사, 미국 빌리 그레이엄 목사, 러시아의 반체제 작가 알렉산더 솔제니친이 포함됐다. 특히 그의 검소한 자세는 가진 자들이 어떤 삶을 이어가야 하는지를 몸소 보여줬다. 저서 ‘템플턴 플랜’에서 참된 부자가 되는 21가지 원칙을 밝혀 눈길을 끌었다. 원칙 가운데 하나가 경제적 이익은 남을 돕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방 5개짜리 아파트를 25달러의 가구로 채웠으며, 재산이 25만달러를 넘어서기 전까지 200달러가 넘는 자동차를 사지도 않았을 만큼 근검했다. 1937년 월스트리트에 발을 들여놓은 템플턴은 54년 뮤추얼펀드 업체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세웠다. 당시 10만달러였던 운영자금은 50년 뒤인 2004년 9월 현재 600배를 웃도는 6020만달러를 기록해 월스트리트의 귀재로 이름을 드높였다. 1939년 템플턴은 유럽에서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당시 뉴욕 증시에서 1달러 아래로 거래되던 104개 종목에 1만달러를 투자하는 대모험(?)을 걸어 큰 수익을 남겼다.97년 12월 외환위기를 겪던 한국 증시에 투자하기 시작해 다른 외국인들을 끌어들이기도 했다.99년엔 미국 ‘머니 매거진’으로부터 ‘금세기 최고의 주식 투자자’에 뽑혔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촛불들 ‘자발적 연행’… 경찰 난감

    촛불들 ‘자발적 연행’… 경찰 난감

    ‘광우병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시민들 사이에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는 식의 비폭력 저항운동이 일고 있다. 공안대책협의회까지 열며 폭력 시위와 ‘배후 세력’에 강경 대응하겠다던 검·경이 되레 머쓱해진 형국이다. 28일 새벽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거리행진 끝에 체포된 113명의 시민들은 경찰이 체포작전에 들어가자 대부분 아무런 반항 없이 경찰 버스에 순순히 올랐다. 수원에서 왔다는 이동익씨는 “이 시대가 이걸 필요로 한다면 가야 한다. 우리 집회는 불법이 아니었고 평화로운 행진이었기 때문에 나는 당당하다.”며 미소를 지은 채 체포에 응했다. 시민들의 ‘자발적 체포’ 운동은 인터넷 포털 다음의 아고라에서 ‘빨래’라는 아이디의 네티즌이 ‘함께해요 닭장차 투어’라는 제목으로 제안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아이디 ‘센친구’는 댓글에서 “경찰도 내 아들 내 형제인데 싸우지 말자. 웃으며 경찰서를 꽉꽉 채워서 ‘내가 바로 배후조종자’라고 말해주자. 평화집회, 평화연행 문화를 만들자.”고 했다. 연행되지 않은 시민들도 적극 호응했다. 이날 거리행진 현장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영훈(45)씨는 “정부가 탄압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될 것”이라면서 “나도 젊은 친구들이 자랑스러워 처음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서 유치장이 마냥 넓은 것도 아니고 저렇게 모두 붙잡히겠다고 나서면 경찰로선 난감할 뿐”이라고 털어놨다. ‘배후 세력’ 수사도 난항을 겪고 있다. 검찰은 1,2차 연행자 76명 모두를 불구속 입건토록 수사지휘했다. 검찰 관계자는 “일부 연행자가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설이 있었지만, 검거 과정에서의 몸싸움 정도로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적용하기는 힘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검찰의 이런 조치는 연행자 대부분이 자발적인 단순가담자로 당국이 수차례 엄단 방침을 밝힌 ‘배후 세력’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추가 연행자 역시 이들과 가담 정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무더기 연행→무더기 석방’의 수순이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검·경이 쫓는 ‘배후’의 실체도 명확하지 않다. 검찰 관계자는 “반정부 구호가 나오는 등 심상치 않기 때문에 배후가 있는지, 반체제 세력이 이 기회를 이용하는 것인지 확인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검찰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배후가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라면서 “기껏해야 도로를 점거한 참여자를 연행하는 것인데, 이는 더 이상 사태가 커지지 않게 하려는 의도”라고 귀띔했다. 경찰청 실무자도 “주동자 위주로 채증하는데, 실제 연행된 사람들은 ‘그만하고 가자.’고 해도 말을 듣지 않다가 붙잡힌 것”이라면서 “채증한 인물과 연행자가 달라 곤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밤 청계광장에는 3000여명의 시민이 모여 21번째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광화문 거리 진입을 우려한 경찰이 인근 인도와 차도를 봉쇄했지만 밤 11시쯤 시민 1500명이 한국은행 앞 차도에 진입해 행진했다. 경찰은 27일 연행된 29명의 시민 중 2명을 훈방하고 4명을 즉결심판에 회부했으며 나머지는 불구속 입건했다. 유지혜 이재훈 김정은기자 nomad@seoul.co.kr
  •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논쟁의 장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 논쟁의 장에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은 왜곡된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내의 반체제운동을 선도했고, 직접적으로 민중혁명을 촉구하는 북한의 대남전략을 도왔으며, 전후 일본인에게 부정적 한국상을 심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한상일) “‘통신’은 학문적인 글이 아니라 저항의 글이다. 박정희 독재와 싸우기 위해 과장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그렇게라도 싸우지 않았다면 오늘의 민주화된 사회가 가능했겠는가.”(지명관) ‘한국으로부터의 통신’(‘통신’)이 마지막 편지를 띄운 지 20년 만에 논쟁의 장에 호명됐다.‘통신’의 필자는 ‘TK生’이다.‘TK生’은 1973년부터 88년까지 15년간 일본 잡지 ‘세카이’(世界)에 ‘통신’을 연재했다. 국내 언론이 침묵을 강요당했던 시절,‘통신’은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의 현실을 일본과 세계로 알리는 창이었다.‘TK生’은 지명관 전 한림대 석좌교수다.‘사상계’ 편집장을 지낸 그는 72년 10월 일본 유학을 떠나 20년간 망명과도 같은 생활을 하며 ‘통신’을 썼고, 올 2월 ‘한국으로부터의 통신’(창비)을 책으로 묶어 출간했다. 최근 한상일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통신’을 비판하는 주장을 담은 책 ‘지식인의 오만과 편견-세카이와 한반도’(기파랑)를 내놓았다. 한 교수는 ‘세카이’ 창간호인 46년 1월호부터 89년 12월호까지 한국 관련 기사를 분석,‘세카이’가 ‘북한-선 남한-악’이란 흑백논리로 당시의 한국사회를 왜곡했다고 결론지었다. 한 교수는 ‘세카이’의 한국 인식에 ‘통신’이 결정적 악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한다. 그는 ‘통신’을 “황당무계한 유언비어를 통해 반정부 활동과 민중혁명을 촉구한 글”로 혹평하며,‘통신’이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팩트’의 부정확성을 지적했다.“민주화란 이름으로 거짓 정보, 근거 없는 소문, 반정부 집단이 의도적으로 조작한 유언비어 등을 진실인 양 전달”해 독자들에게 “추악한 한국의 정권, 그 밑에서 신음하는 국민이란 논리에 몰입하게 했다.”는 것이다.‘통신’과 달리 한 교수는 박정희 시대의 경제개발을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한 민족주의 기획’이라고 높이 평가한다. 한 교수의 주장에 대해 ‘TK生’ 지명관 전 교수는 “논평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맞받았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진실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폭압적 정권에 맞서느라 부정확한 정보가 확대 해석됐을 수 있다.”면서도 “학문적으로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와는 별개로 ‘통신’은 긴급조치 하에서 달리 선택할 수 없었던 치열한 싸움의 수단이었다.”고 못 박았다. 박정희 정권에 대한 한 교수의 긍정적 평가에 대해서도 지 전 교수는 “오로지 ‘경제성장’이란 잣대로만 시대를 논한다면 잔인한 인권침해와 억압적 통치를 간과하게 된다.”면서 “박정희 정권이 계속됐다면 오늘의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됐을지 상상하기도 싫다.”고 반박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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