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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르켈 “터키 EU가입 반대”… 난민 문제 불거지나

    메르켈 “터키 EU가입 반대”… 난민 문제 불거지나

    “터키가 유럽연합(EU) 회원이 돼서는 안 된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일(현지시간) ‘터키 EU 가입 불가론’을 천명했다. 3주 뒤 치러지는 독일 총선의 마지막 변수로 꼽힌 TV토론에 출연한 메르켈 총리는 마르틴 슐츠 사회민주당 당수와의 양자 토론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AFP통신 등이 이날 전했다.메르켈 총리는 TV토론에서 “터키의 EU 가입 대화를 중단할 수 있는지 EU 회원국과 논의할 것”이라면서 “(터키가) 가입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터키와의 경제 접촉에 대한 실질적 제재를 부과하고 터키 여행 경보 발령을 내리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가 터키의 EU 가입을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사실상 EU를 이끌고 있는 독일은 터키와 지난해 3월 난민 협정을 맺고 터키가 유럽행 난민을 차단하는 대신 EU 가입 협상을 서두르자고 약속했다. 이 협정을 이끌었던 메르켈 총리가 태도를 바꾼 데는 민주주의적 가치가 훼손되고 있는 터키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실패한 쿠데타’ 이후 쿠데타 진압을 구실로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등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특히 지난 4월 국민투표 형식으로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는 내용의 개헌을 단행했다. 이에 EU의회는 지난 7월 터키의 EU 가입에 관한 협상을 중단하라고 EU와 회원국에 권고하는 보고서를 채택하기도 했다. 터키의 ‘반민주주의적 흐름’은 독일과의 관계도 악화시키고 있다. 터키는 지난 3월 독일 일간지 디벨트의 터키 특파원을 테러 선전 혐의로 구속한 데 이어, 7월에는 독일 인권운동가를 테러조직 지원 혐의로 체포했다. 지난달에는 터키계 독일 국적 작가인 도간 아칸리가 스페인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터키 당국의 수배 요청으로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에 체포됐다가 조건부로 석방되기도 했다. 터키에 정치적 이유로 구금돼 있는 독일 국민은 모두 12명이다. AFP통신은 메르켈 총리의 터키의 EU 가입 반대 방침은 지난달 31일 터키가 2명의 독일 국민을 ‘정치적 이유’ 때문에 체포한 뒤에 나온 것이라고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터키는 모든 민주주의적 관례로부터 위험할 정도로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다”면서 “그러나 터키와의 외교관계를 끊을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문제는 EU가 터키와 맺은 난민 협정이다. 터키는 EU 가입이 결렬될 경우 유럽행 난민 통제를 그만두겠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유럽이 다시 한번 난민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을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 협정은 지난해 3월 이후 터키를 거쳐 그리스로 들어오는 중동 난민 수를 크게 줄이는 역할을 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에 도착한 난민 수는 모두 36만 3300명으로 전년(100만 7400명)의 3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1987년 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에 회원 가입을 신청했던 터키는 인권과 민주주의 등 각종 정치·경제적 수준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가입을 거절당했다. EU와 터키는 2005년부터 정식 가입 협상에 들어갔으나 아직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BBC “北에 실상 알린다”…새달 대북방송 개시

    영국 BBC방송이 다음달부터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한 단파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프란체스카 언스워스 BBC월드서비스 국장은 20일(현지시간) 가디언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우리는 믿기 힘들 만큼 위험한 분위기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그럼에도 북한 주민들이 매일 밤 북한 방송에 나오는 여성을 통해서만 정보를 얻는다는 게 끔찍하지 않느냐. 북한은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에 이어 가장 도움이 필요한 국가”라며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대북방송은 새로 발족하는 한국어 서비스로, 매일 30분간 한밤중에 전파될 예정이다. 이어 언스워스 국장은 “런던에 있는 북한대사관이 BBC에 한국어 서비스 발족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우리는 반체제 방송이 아니고 정부 편도 아니다. 우리는 주민들의 편에 있으며 그게 원래 우리 소관”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서울과 런던에 대북방송 인력을 절반씩 배치할 예정으로, 그중 최소 1명은 북한 출신으로 채워진다.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방송을 들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지만 BBC는 탈북자 3분의1가량이 해외방송을 들었다는 한국 KBS의 조사 결과를 언급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김민희 기자 haru@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샌드위치·독서로 독재에 맞선 태국 ‘신개념 시위’

    [그 책속 이미지] 샌드위치·독서로 독재에 맞선 태국 ‘신개념 시위’

    거리 민주주의:시위와 조롱의 힘/스티브 크로셔 지음/문혜림 옮김/산지니/184쪽/1만 9800원2014년 쿠데타로 권력을 쥔 태국 독재 정권은 시민들에게 “행복해지라”고 명령했다. 행복이 명령한다고 될 일인가.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5명 이상 모이는 것도 금지하는 군부 정권의 횡포 앞에 시민들은 단순하지만 영민한 시위를 이어 갔다. 공공장소에서 샌드위치 먹기와 책 읽기로 거부하고 저항한 것. 그래서 샌드위치는 ‘민주주의 도시락’이라는 별칭까지 얻었다. 인권운동가인 저자는 중국, 미국, 유럽, 중동 등 세계 전역에서 이뤄진 기발하고 익살스러운 시위 풍경을 포착해 새로운 변화의 길을 만들어 간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시위의 효과적 표현은 오직 창의적 표현뿐”이라는 중국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의 말을 체감할 수 있는 79장의 사진들이 ‘변화의 순간’들을 증거한다. 저자는 “(이들이 이끈) 경험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주는 창조성과 용기 그리고 비폭력의 힘을 평가절하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을 준다”는 말로 시위의 정형을 깬 풍경들이 우리에게 건넨 가치를 전한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특파원 칼럼] 미완의 인터뷰/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미완의 인터뷰/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다이칭(戴晴·76·본명 푸닝)의 친아버지 푸다칭은 천두슈와 함께 중국 공산당을 창당했고 저우언라이와 난창봉기를 일으켰다. 1940년 일본헌병대에 암살된 항일투사이기도 하다. 다이칭의 양아버지 예젠잉은 마오쩌둥과 대장정을 이끈 홍군의 영웅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10대 원수 중 한 명으로 추대됐다. 예젠잉은 절친이었던 푸다칭이 죽자 다이칭을 입양해 지극정성으로 키웠다.중국 인민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 두 아버지를 둔 다이칭은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시진핑 등 혁명가 자제들과 유복하게 자랐다. 공산당 간부의 자녀들이 입학하는 하얼빈 군사공정학원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공부했다. 군 비리의 몸통으로 몰려 낙마한 쉬차이허우 전 군사위 부주석이 대학 친구다. 하지만 그녀는 1989년 톈안먼 민주화시위 때 시위대 편에 서면서 반체제의 길로 나섰다. 다이칭을 처음 만난 건 2015년 춘제(春節·설) 전날이었다. “마침 공안의 감시도 덜하니 만나서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하자”며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허락했다. 손수 기른 유기농 쌀을 챙겨 주던 그녀의 얼굴에선 훙얼다이(紅二代·혁명 원로의 자손)의 권세도, 반체제 인사의 비장함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향집에 계신 어머니처럼 푸근했다. 다이칭을 다시 만나기로 마음먹은 것은 류샤오보(62)가 사망한 지난 13일이었다. 다이칭과 류샤오보는 1989년 톈안먼 광장에 함께 있었던 동지다. 광장이 유혈 진압된 직후 류샤오보와 함께 구속됐다. 이후 류샤오보는 공산당 체제 전복과 서구식 민주주의 도입을 주장했고 다이칭은 공산당 체제를 바탕으로 한 사민주의적 개혁을 외쳤다. 다이칭은 산샤댐 건설을 5년 이상 중단시킬 정도로 당국에는 눈엣가시였지만, 두 아버지 덕택에 다시 감옥에 가지는 않았다. 예상대로 다이칭과의 통화는 쉽지 않았다. “지금 연락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문자메시지만 왔다. 드디어 지난 17일 통화가 이뤄졌다. “내가 오늘 태국에 왔어. 아예 떠나 온 거야. 류샤오보 문제로 매우 긴장된 날을 보냈어. 추모도 제대로 못하고 온 게 못내 아쉬워.” 다이칭은 중국을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베이징은 물가가 너무 비싸고 공기도 안 좋잖아. 나 같은 늙은이가 살기엔 적당하지 않아. 태국에 오니 방세가 절반도 안 돼.”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고는 굳이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중국 공민이야.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야지. 젊은이들을 가르쳐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서면 인터뷰는 가능하다고 해서 이메일로 이런저런 질문을 보냈다. 다음날 문자가 왔다. “답변을 다 완성했는데 이상하게 메일 전송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중국 통신사 이메일 계정을 쓰고 있었다. “당국이 보기엔 민감한 내용이라 중간에서 계속 걸러지는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검열이 없는 구글 이메일로 보내 달라고 말하려다가 참았다. 인터뷰 기사가 혹시 할머니의 이민 생활에 누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자 친구, 중국에서 살아 보니 어때? 자유가 없다고, 공기가 나쁘다고 중국을 너무 미워하진 마. 나는 벌써 중국이 그리워. 류샤오보는 미국식 민주주의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아. 중국 인민의 힘을 믿고 싶어. 나중에 만나서 못다한 얘기를 하자구.” 좀더 자유로워진 중국 땅에서 다이칭과 다시 만나길 고대한다. window2@seoul.co.kr
  •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中과 세계를 향한 외침

    [뉴스 전에 책이 있었다] 인권운동가 류샤오보, 中과 세계를 향한 외침

    중국의 인권운동가로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가 지난 13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반체제 인사로 지목되면서 류샤오보는 여러 차례 수감을 거듭했고, 노벨평화상 수상식장에서도 초상화로만 참여해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류샤오보의 사망은 간암이 직접적인 원인이었지만, 중국은 아내와의 면회도 불허하면서 “사실상 타살”이라는 국제적 비난을 받았다. 류샤오보의 위대함은, 대개의 반체제 지식인들이 톈안먼 사태를 기화로 중국을 떠난 데 반해 오히려 중국으로 돌아와 각종 문필활동을 통해 민주화 운동에 전념했다는 사실이다. 그 치열한 기록을 담아낸 책이 노벨평화상 수상 직후인 2011년 1월 출간된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이다.책에는 1990년 후반부터 2008년 중국 공산당의 독재 종식과 민주화 요구를 내건 ‘08헌장’(零八憲章) 작성을 주도하기까지 인터넷과 잡지에 기고한 글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비판의 수위가 꽤 높다. 1장 ‘중국의 정치를 말하다’에서 류샤오보는 마오쩌둥부터 후진타오 시대까지, 공산당 독재가 얼마나 큰 모순과 심각성을 내포하는지 가감 없이 지적한다. “기득권 유지에만 집착하는 독재 권력에 어찌 인민을 위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중국 공산당은 정권을 잡은 후 지금까지 중국 인민의 삶과 생명을 담보로 권력을 남용하고 있다”는 일갈은 중국 당국으로 하여금 류샤오보를 인민과 떼어 놓은 빌미가 되기에 충분했다.류샤오보는 책 서두에 “공산당의 이데올로기 주입으로 역사가 단절”되었다면서 “풍족한 물질생활에 도취된 중국 젊은이들은 정부가 떠들어대는 선전에 눈이 멀고 귀가 먹어가는 것도 모른 채 중국 공산당이 역사상 전례 없는 발전을 이뤄냈다고 믿는다”고 강조한다. 벼락부자와 인기스타들이 우상이 되어버린 현실은 결국에는 “중국인들의 패배주의적 사고방식과 냉소주의식 사회 분위기”를 강화한다고 류샤오보는 지적한다. 중국 사회를 향한 절절한 일갈이지만, 이는 신자유주의적 삶이 보편적인 현상으로 굳어진 전 세계를 향한 외침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사회와 문화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2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다양한 문화적 전통이 여전히 살아 숨 쉬는 듯 보이지만 오늘의 중국 문화는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다는 게 류샤오보의 생각이다. 그는 중국 학문과 문화의 근간인 공자와 그의 사상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고 있다면서도 “태평할 때 세상에 나오고 난세에는 숨는 ‘처세의 대가’이고 전형적인 기회주의자”라는 말로 공자와 그것을 이용하는 정치 이데올로기를 극복해야만 새로운 중국의 미래가 열린다고 강조한다. “국가주의를 위장한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편승하려고만 하는 얄팍한 술수”를 걷어내고 “자유사상과 미학적 저항”을 통해 전환기 중국을 이끌어야 한다는 통찰인 셈이다. 책에는 날카로운 비평만 담긴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여, 나는 당신의 영원한 죄수입니다”라는 아내를 향한 절절한 사랑 고백은 물론 섬세한 감성을 드러낸 시도 여럿 선보인다. 중요한 것은 권력을 향한 강력한 비판과 인민의 삶의 양식 변화에 항상 귀를 기울여 온 류샤오보의 통찰을 만날 수 있어 유용하다는 점이다. 류샤오보 없는 중국 권력은 여전히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거듭할 것이다. 경제적 측면만 부각된 숱한 중국 관련 서적들도 유용할 테지만, 이념으로 점철된 중국의 이면이 궁금하다면 ‘류샤오보 중국을 말하다’도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류샤오보 역시 비판을 받을 대목이 없진 않지만, 한 사람이 때론 태산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
  • [씨줄날줄] 류샤오보와 류샤/이순녀 논설위원

    [씨줄날줄] 류샤오보와 류샤/이순녀 논설위원

    “그대 멀고 먼 길을 걸어가야/겨울의 철문 앞에 도달할 수 있다/그렇게 작은 발이 그렇게 먼 길을 걸어가서/그렇게 차가운 발이 그렇게 차가운 철문에 닿는 건/오직 한 번이라도 이 죄수를 만나기 위함이다”(류샤오보 ‘그렇게 작고 그렇게 차가운 발’ 중)지난 13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는 노동교화소에 갇혀 있던 1996년 시인이자 화가,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류샤(劉霞)와 옥중 결혼했다. 사회질서 교란 혐의로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던 중이었다. 류샤오보는 재혼이었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운동 이후 감옥을 수시로 드나들자 첫 번째 아내는 아들을 데리고 떠났다. 민주화 동지에서 부부가 된 류샤오보와 류샤는 창살을 사이에 둔 채 서로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시에 담아 전했다. 류샤오보가 석방된 이듬해인 2000년 홍콩에서 이들의 시집이 출간됐다. 국내에선 류샤오보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직후인 2011년 류샤오보의 시만 번역해 ‘내 사랑 샤에게’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2008년 류샤오보가 공산당 일당 체제 종식을 요구하는 ‘08헌장’ 서명을 주도하다가 중국 당국에 체포돼 11년형을 선고받으면서 부부의 삶은 소용돌이쳤다. 류샤는 투사가 됐다. 트위터로 외부에 남편의 수감 생활을 알리고, 중국의 인권 실태를 폭로했다. 당국에 대한 항의로 삭발도 했다. 하지만 오랜 가택연금 탓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안타까운 얘기도 전해졌다. 지난 5월 말 류샤오보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가석방되면서 부부는 재회했다. 뼈만 남은 앙상한 체구의 남편, 짧은 머리의 가녀린 아내. 남매처럼 닮은 둘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예감하며 서로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생각했다. 다른 반체제 인사들과 달리 줄곧 망명을 거부하던 류샤오보는 류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죽기 직전까지 해외 치료를 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남편의 유해라도 집으로 가져가길 바랐던 류샤의 간절한 희망도 물거품이 됐다. 국제사회는 이제 “류샤마저 잃을 수 없다”며 해외로 이주할 수 있는 자유를 줄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중국 당국은 이마저도 외면하고 있다. 류샤에게 남긴 “잘 사시오”라는 류샤오보의 유언이 그래서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아마도, 그대의 죄수가 되어/영원히 태양을 못 볼 수도 있지만/나는 암흑이/나의 숙명임을 믿는다/오직 그대의 몸 속에서만/모든 것이 편안하다”(류샤오보 ‘나는 그대의 종신죄수’ 중)
  •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류샤오보…“부인 류샤는 가택연금”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한 류샤오보…“부인 류샤는 가택연금”

    유골함 통째로 바닷속에 넣어 물리적 추모공간 사라지는 셈 “류샤 연락 끊긴 채 우울증 극심” 서방 “잔혹하고 냉담한 쇼” 비판 홍콩선 기념관 건립 방안도 추진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는 죽어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의 시신은 사망 이틀 만에 급하게 화장돼 바다에 뿌려졌으며, 부인은 더 심한 당국의 감시를 받게 됐다.류샤오보의 형 류샤오광은 지난 15일 중국 당국이 마련한 기자회견에서 “오전에 동생의 시신을 화장하고 정오쯤 유해를 바다에 뿌렸다”고 밝혔다. 류샤오광은 “동생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 인도주의적 배려를 해 준 당과 정부에 감사드린다”면서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는 건강이 좋지 않아 기자회견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 당국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류샤 등 유족들은 유해가 담긴 유골함을 통째로 바다에 넣어 바닷속에서 자연스럽게 유해가 뿌려지는 방식으로 해장(海葬)을 치렀다.그러나 “류샤오광을 제외한 다른 유족들은 화장과 유해를 바다에 뿌리는 것을 반대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이 보도했으며, 교도통신도 “류샤가 유해를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 했다”고 전했다. 류샤오광은 류샤오보의 반체제 활동에 반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류샤오보의 친구들과 지지자들은 “당국이 류샤오보의 흔적을 영원히 지우기 위해 유해를 바다에 뿌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해가 바다에 뿌려지면서 류샤오보를 직접 추모할 물리적인 공간을 잃게 됐다. 장례 절차는 당국의 철저한 통제 속에 서둘러 진행됐다. 선양시 측은 화장에 앞서 고인을 보내는 의식에 친구들이 왔다고 했으나 당국이 공개한 의식 사진에 친구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 지역 담당자 니콜라스 베클린은 “내가 본 가장 잔혹하고 냉담한 쇼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침묵으로 일관하던 관영매체들은 류샤오광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서방의 비판에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사설을 통해 “국제사회의 만족보다 가족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면서 “외부 세력은 이 사건에 대해 멋대로 지껄일 권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중국은 300년간 서구의 지배가 필요하다’라는 류샤오보의 발언을 소개하면서 “피해망상적이고, 무지하며, 오만한 사람이었다”고 비난했다. 한편 부인 류샤의 출국을 허용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선양시 신문판공실은 “중국 정부는 그녀의 합법적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출국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홍콩 명보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류샤가 외부 지인들과 연락이 끊긴 채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면서 “현재 선양을 벗어나는 것이 금지된 채 가택연금 상태에 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중국 본토에서 류샤오보를 추모할 수 없게 되자 홍콩에서의 추모 열기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15일 밤에는 2500여명의 홍콩 시민이 촛불 행진을 벌였으며, 중국 연락사무소 앞에 설치된 임시 추모소를 찾는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홍콩에 류샤오보 기념관을 건립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남편 류샤오보마저 잃은 류샤…가택연금 상태에서 ‘우울증 악화’

    남편 류샤오보마저 잃은 류샤…가택연금 상태에서 ‘우울증 악화’

    지난 13일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61)의 사망으로 그의 부인 류샤(56)가 극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15일 홍콩 명보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류샤는 남편의 사망 이후로 선양을 벗어나는 것이 금지된 채 가택연금 상태에서 우울증이 심각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류샤오보 부부와 친분이 깊은 중국의 반체제 인사 후자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류샤의 근황에 촉각을 세우고 있지만 그녀와 관련된 소식이 전혀 없다”고 전했다. 다른 지인들 역시 류샤를 비롯한 유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류샤오보의 국제 변호사 재리드 겐서도 “지난 48시간 동안 류샤와의 모든 연락채널이 끊긴 상태로 크게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면서 “기소 절차도 없이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 중국 당국의 조치는 그 합법성을 증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인들은 류샤가 지난해 아버지의 사망, 올해 4월 어머니의 사망을 겪은 데 이어 남편까지 잃으며 극심한 좌절감에 빠져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류샤의 남동생 류후이는 2013년 사기 혐의로 기소돼 11년형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 지난 2014년 우울증 진단을 받았던 류샤는 류샤오보가 걱정할까봐 자신이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얘기를 남편에게도 전하지 않았다. 화가이자 시인, 사진작가인 류샤는 지난 2010년부터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다가 지난달 간암 말기 진단을 받고 가석방된 류샤오보와 다시 만난 상태였다.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전날 정례브리핑에서 류샤의 출국이 허용될지를 묻는 질문에 “중국 공민의 출입경은 법률에 따라 처리될 것이다. 어떤 예단도 필요치 않다”고만 잘라 말했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류샤오보 타계 직후 성명에서 “루샤의 희망에 따라 그를 가택연금 상태에서 풀어주고 중국을 떠나도록 해 줄 것을 중국 정부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류샤오보가 눈을 감기 전 아내 류샤에게 남긴 마지막 말은 “잘 사시오”로 알려졌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中정부는 나의 적이 아니다”… 류샤오보, 적이 없어 더 강했다

    작가 친구 예두 “두드리면 더 유연해져” 구심점 잃은 반체제 진영 위축 전망도 “내 자유를 빼앗아간 정부에 말합니다. 나에게는 적이 없습니다. 나를 감시하고 체포하고 심문했던 이들과 나에게 형을 선고한 이들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2010년 12월 10일 노벨평화상 시상식에서 노르웨이 출신 배우 리브 울만이 대신 읽은 류샤오보의 법정 최후진술이다. 당시 류샤오보는 감옥에 있었고, 그가 앉아야 할 시상식 의자는 텅 빈 채로 남겨졌다. 류샤오보는 노벨상 소식을 부인에게 전해 듣고 “톈안먼 광장에서 희생된 영혼들에게 주는 상”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중국 정부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류샤오보를 ‘체제의 적’으로 규정했지만, 류는 적이 없었다. 스스로 적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해졌다. 류샤오보의 친구인 작가 예두는 14일 홍콩 명보에 “당국이 그를 100번 두드리면 그는 100배 더 유연해졌다”면서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이 당국엔 가장 큰 위협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를 계기로 체제에 저항하는 모든 힘은 류샤오보로 응집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류샤오보는 1980년대 초반부터 중국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글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톈안먼 시위를 주도했던 저우펑숴는 “학생 대표 상당수가 류샤오보를 흠모했었다”고 밝혔다. 톈안먼 사태 직전에 류샤오보는 미국 컬럼비아대학에서 방문학자로 활동했다. 시위 소식을 듣고 고국으로 날아온 그는 광장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잡았다. 학생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며 단식에 돌입한 지식인 4명(톈안먼 4군자)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군인의 총을 빼앗아 무장하는 단계에 이르자 기관총을 직접 부수며 비폭력을 외쳤다. 학생 대표였던 수쑤리는 “1989년 6월 4일 새벽 류샤오보가 시위대를 무장해제시키지 않았으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더 죽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톈안먼 광장이 유혈 진압된 이후 많은 동지들이 망명했다. 지인들은 물론 당국도 노골적으로 망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류는 “망명은 패배”라고 여겼다.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08 헌장’은 2008년에 작성됐다. 당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시대였다.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중국 공산당은 서방의 체제를 마음껏 조롱했다. 이때 류샤오보는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헌장을 발표했다. 당국의 눈에는 톈안먼 사태의 씨앗을 잉태한 이도 류샤오보이고, 톈안먼을 영속시키는 이도 류샤오보로 비쳐졌다. 중국 내 반체제 진영은 구심점을 잃고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명보는 “그를 대체할 인물이 없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류샤오보의 죽음이 오히려 중국인들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중국에 제2, 제3의 류샤오보가 나타나면 통치가 어려워질 것이고, 류샤오보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면 더이상 견딜 수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중국은 침묵, 세계는 침통… 홍콩·대만 민주파 “류샤 빼내오자”

    중국은 침묵, 세계는 침통… 홍콩·대만 민주파 “류샤 빼내오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중국 인권운동가인 류샤오보(劉曉波·1955~2017)가 끝내 자유의 빛을 보지 못하고 구금 상태에서 숨지자 세계에서 애도의 물결이 일고 있다. 중국 당국의 반인권적 처사를 비판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국인들은 맘 놓고 애도하지 못하고 애도의 소리를 듣지도 못한다. 중국 당국이 ‘류샤오보’라는 이름이 중국 땅에서 거론되는 것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으로서는 죽은 류샤오보의 영혼과 질긴 싸움을 벌여야 할 판이고, 국제사회는 류샤오보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중국을 계속 압박할 태세다.류샤오보의 죽음을 전한 중국 관영매체는 두 개 정도다. 신화통신은 지난 13일 밤 10시 28분 “체제 전복을 꾀한 죄로 실형을 살던 류샤오보가 숨졌다”는 한 줄짜리 기사를 냈다.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중국 정부는 최고의 의료진을 동원해 류샤오보를 집중 치료했지만 숨졌다”고 전했다. 범죄자가 충분한 의료 서비스를 받다가 숨졌다는 것이다. 겅솽 외교부 대변인도 14일 “중국은 범죄자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심판한다”면서 “다른 나라의 문제 제기에 강력한 불만과 결연한 반대를 표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법률을 위반한 사람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한 것 자체가 원래 취지에 맞지 않았다”고도 했다. 웨이보와 위챗에 ‘류샤오보’를 입력하면 “규정과 정책에 의거해 검색 결과를 보여줄 수 없다”는 문구가 뜬다. 국제사회의 중국 비판에 늘 발끈하던 중화민족주의 신문 환구시보조차 이날은 침묵했다. 중국이 류샤오보를 인터넷에서 지운 것은 앞으로도 류샤오보를 계속 무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류샤오보가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았을 때도 중국은 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중국 국민의 85%가 관련 사실을 몰랐다는 여론조사도 있다. 우선 국민의 입과 귀를 막고 나면, 서방 국가는 돈으로 막을 수 있다는 게 중국 당국의 계산일지도 모른다. 노벨위원회가 있는 노르웨이도 결국 지난해 “중국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하고 연어 수출을 재개할 수 있었다. 노벨위원회가 류샤오보의 사망에 “중국 정부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고 비판했지만, 성명이 행동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다만,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劉霞·55)의 신병 처리를 놓고 국제사회와 중국이 대결할 여지는 있어 보인다. 1996년 옥중에서 결혼한 류샤는 류샤오보의 20년 동지이자 분신이다. 류샤 역시 9년간의 가택연금으로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 지인들은 그가 자살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망명을 거부하며 국내 투쟁을 고집했던 류샤오보가 임종을 앞두고 해외 치료를 요구했던 것도 류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였다. 홍콩과 대만의 민주파 진영은 류샤를 중국에서 빼내오는 것을 목표로 정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도 성명을 내고 “중국 정부는 류샤를 가택연금 상태에서 풀어 주고 중국을 떠나도록 해야 한다”며 이에 호응했다. 하지만 중국이 류샤의 출국을 허용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류샤가 외국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 반체제 세력이 류샤를 중심으로 다시 결합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류샤오보의 영향력을 류샤가 고스란히 넘겨받는 상황을 중국이 가장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메르켈, “‘용감하게 싸운 투사’ 류샤오보 추모” 트윗 남겨

    메르켈, “‘용감하게 싸운 투사’ 류샤오보 추모” 트윗 남겨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간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중국의 민주화 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에 대한 애도의 메시지를 남겼다.슈페텐 자이베르트 독일 정부 대변인은 13일(현지시간) 메르켈 총리 이름으로 올린 트위터 메시지를 통해 “나는 시민권리와 사상·표현의 자유를 위해 용감하게 싸운 투사, 류샤오보를 추도한다”고 밝히며 유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했다. 메르켈 총리는 자신만의 트위터 계정을 별도로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9월 총선에서 메르켈 총리에 맞서는 사회민주당의 마르틴 슐츠 당수 겸 총리후보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강력한 목소리를 잃었다”면서 “류샤오보는 모든 억압에 저항했고 하나의 큰 본보기였다”고 애도의 말을 남겼다. 슈피겔 온라인에 따르면 류샤오보의 석방 치료를 촉구했던 재독 중국 반체제 예술가인 아이웨이웨이(艾未未)는 “류샤오보의 죽음은 중국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며 류샤오보의 죽음에 대한 중국 정부의 책임을 언급했다. 독일은 최근까지 자이베르트 대변인의 발언 등을 통해 류샤오보의 출국 허용과 해외 치료를 지속적으로 촉구한 바 있다. 류샤오보는 2009년 12월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수감생활을 하다가 간암에 걸려 지난 5월 가석방된 뒤, 13일 세상을 떠났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중국 인권운동 상징 류샤오보, 간암으로 사망…中, 인권탄압 비판 직면

    중국 인권운동 상징 류샤오보, 간암으로 사망…中, 인권탄압 비판 직면

    중국 인권운동의 상징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가 13일(현지시간) 사망했다. 간암 말기 판정을 받고 가석방돼 병원 입원치료를 받은 지 한달여 만이다. 류샤오보 조치를 관장하는 중국 랴오닝성 선양시 사법국은 인터넷 홈페이지 공지문에서 병원에서 간암 치료를 받아온 류샤오보가 13일 사망했다고 밝혔다. 류샤오보를 치료했던 선양 소재 중국의대 부속 제1병원은 “12일 오후부터 류샤오보의 병세가 극도로 악화돼 호흡 곤란을 겪었으며 신장, 간 기능이 떨어지고 혈전이 생겨 고통스러워하더니 13일 오후 숨졌다”고 말했다.류샤오보는 지난 2008년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08헌장’ 서명 운동을 주도했다. 이듬해 그는 ‘국가전복’ 혐의로 징역 11년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진저우교도소에 수감됐다. 지난 5월 말 정기 건강검진에서 류샤오보는 간암 판정을 받았고 수일 뒤 가석방됐다. 류샤오보는 유럽 등 서방으로 출국해 선진 의료진 치료를 받기를 희망했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류샤오보는 사망 전 “죽어도 서방에서 죽겠다”며 강력한 출국 희망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결국 그는 타향인 선양 병원에서 눈을 감게 됐다. 선양시 사법국은 지난 3일 “최고의 의료진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의술과 요법으로 간암 진단을 받은 류샤오보를 치료하고 있다”며 “병원 측이 간암 전문의들과 상의해 종합적인 치료법을 류샤오보 치료에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5일에는 “미국, 독일 등지에서 국제적으로 가장 권위 있는 간암치료 전문의를 중국으로 초청키로 결정했다”고 홍보했다. 그러나 내막을 보면 입원 기간 류샤오보의 병세는 급속히 악화했던 것으로 보인다. 류샤오보는 3일 배에 찬 복수를 뺀 뒤 병세가 호전되는 듯 했지만 5일 갑자기 다시 악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종 전 수일간 복수가 증가하고 간 기능이 떨어졌고, 간 기능 저하로 인해 양약이나 한약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한다. 류샤오보가 간암을 얻게 된 원인은 규명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긴 옥살이로 인한 심신 탈진이 원인이 아니겠냐는 추측을 하고 있다. 아울러 교도소 당국이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하지 않아서 병을 뒤늦게 발견하는 바람에 제대로 손쓰지도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제 인권단체들은 중국 당국이 치료가 어려운 간암 말기에 이르기까지 류샤오보의 병세를 의도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공개된 한 CCTV 영상에는 류샤오보가 자신이 B형간염 보균자라는 사실을 20여 년 전부터 알고 있다는 의료진과의 문답 장면이 담겨 있다. 인권단체들은 중국 당국이 이런 사실에 주목했다면 류샤오보의 B형 간염 보균이 간암으로 진전됐겠느냐고 꼬집었다. 징역살이 중에 치료를 위해 가석방됐던 반체제 인사 가오위는 “류샤오보가 감옥에 가기 전만 해도 건강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는데 7년 후에 그가 불치병과 싸울지 누가 상상이냐 했겠느냐”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佛 “간암 말기 류사오보 체류, 中에 제안”

    佛 “간암 말기 류사오보 체류, 中에 제안”

    프랑스 정부가 최근 간암 말기 판정을 받아 가석방된 중국의 반체제 인사이자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61)가 프랑스행을 원하면 받아들이겠다고 중국 정부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프랑스 앵포방송은 29일(현지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프랑스 측이 중국에 지난 28일 류샤오보와 그의 부인 류샤(劉霞·55)를 수용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현재까지 중국 측이 이런 제안에 대해 응답하지 않고 있다”며,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들과도 류샤오보 문제를 논의하는 것에 별 관심이 없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주권 반환 20주년 기념식 참석차 이날 홍콩에 도착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류샤오보의 석방 시기 등에 대한 언론의 질문에 답하지 않은 채 공항을 떠났다고 현지 언론이 전했다. 앞서 일본 아사히신문은 이날 교도소 밖 병원으로 최근 이송된 류샤오보가 “죽어도 서방(유럽이나 미국)에서 죽겠다”며 강력한 출국 희망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류사오보를 지원하는 관계자의 말을 인용, 류샤오보를 받아 들이기 위해 중국 정부와 협의를 하고 있는 유럽 국가는 독일인 것으로 밝혀졌다면서, 미국도 류사오보를 받아들이는 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이 지원자에 따르면 중국 베이징 주재 독일 대사관이 류샤오보의 부인 류샤에게 부부의 독일 이주 의사를 타진해와 류샤가 5월 말 남편을 면회해 동의를 받았다. 독일은 이달 들어 중국 정부와 협의를 시작했으며, 협의 과정에서 류샤오보의 건강 상태가 심각한 것으로 판명돼 해외 이주 의사에 변화가 없는지 재차 확인한 결과, 그가 죽더라도 유럽이나 미국으로 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김미경 기자 chaplin7@seoul.co.kr
  • 中, 노벨평화상 류샤오보 간암으로 가석방

    中, 노벨평화상 류샤오보 간암으로 가석방

    2010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샤오보(劉曉波·61)가 간암으로 가석방됐다고 AP통신 등이 그의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류샤오보의 변호사 모샤오핑은 “류샤오보가 지난달 23일 간암 진단을 받고 며칠 후 석방됐다”며 “그는 현재 중국 선양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모샤오핑은 “류샤오보가 (석방 후) 특별한 계획은 없으며 그의 병에 대한 의학적 치료만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류샤오보는 2008년 공산당 일당체제 종식을 요구한 ‘08 헌장’ 서명 운동을 주도하다가 이듬해 ‘국가 전복’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진저우 교도소에 갇혀 있었다. 중국은 2010년 노벨상위원회가 반체제 인사인 류샤오보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한 것에 격분해 노르웨이와의 관계를 끊고 연어 수입을 중단했다가 올해 수입 재개를 논의 중이다.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
  • 차이 총통 톈안먼 재평가 요구 나선 까닭은

    “민주화 빠진 중국 굴기 실로 유감” 대만 인권운동가 리밍저 석방 촉구 홍콩 동질감 옅어져 추모집회 줄어 중국 현대사의 비극인 6·4 톈안먼 민주화 시위가 4일로 28주년을 맞았다. 중국에선 관련 검열이 강화됐고 홍콩의 추모 열기도 예전 같지 않은 가운데 대만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중국을 향해 톈안먼 사건을 재평가하라고 강력하게 촉구했다. 차이 총통은 이날 아침 페이스북에 톈안먼 사건과 관련한 성명을 발표했다. 총통은 성명에서 “28년 전 학생과 시민들의 항거는 한 세대를 계몽시켰다”며 “중국 정부는 개방적인 태도로 6·4를 재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민주의 길을 먼저 간 이도 있고 늦게 간 이도 있지만 결국은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길”이라면서 “대만의 민주 경험을 중국 대륙과 함께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은 특히 “중국이 굴기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민주가 빠진 것은 실로 유감”이라면서 “민주적인 대륙이 돼야 비로소 국제사회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국이 두 달째 구금하고 있는 대만의 인권운동가 리밍저의 석방을 촉구했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지난 2일 희생자 유가족들로 구성된 ‘톈안먼 어머니회’가 톈안먼 사태의 재평가와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촉구한 것과 관련해 “1980년대에 일어난 ‘정치적 풍파’와 관련한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일찍이 입장을 정한 상태”라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이 사건을 ‘동란’, ‘폭란’ 등으로 부르다가 최근 들어 ‘정치적 풍파’로 규정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톈안먼 광장 주변을 철저하게 통제하는 한편 일부 반체제 인사들을 강제로 이주시키는 등 감시를 강화했다. 4일 저녁 8시 홍콩 빅토리아공원에서는 ‘홍콩시민지원애국민주운동연합회’(지련회)가 주최하는 희생자 추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매년 13만명 이상이 참가하던 집회 규모는 올해 10만명 정도로 줄었다. BBC 중문망은 “톈안먼 민주화 시위는 중국은 물론 홍콩에서도 잊혀지고 있다”면서 “중국인이 아니라 홍콩인이라는 인식이 늘면서 톈안먼 사건도 대륙에서 발생한 것으로 홍콩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홍준표 “한국 보수, 新보수주의로 나가야”

    홍준표 “한국 보수, 新보수주의로 나가야”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였던 홍준표 전 경남지사는 14일 “귀국하면 신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겠다”고 말했다. 홍 전 지사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신보수주의 운동을 새로운 국민운동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다 할 것을 약속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이어 “구보수주의는 기득권에 안주하고, 특권의식에 젖은 부패보수, 무능보수로 지난 정권으로 끝이 났다”면서 “이제 한국의 보수주의는 신보수주의로 나가야 한다. 신보수주의 정신이 우리 한국당의 지향점이 돼야 하고 모든 정책의 지표가 돼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홍 전 지사는 ‘신보수주의’를 “자유주의를 바탕으로 개인과 기업의 창의성을 존중해 경제 성장을 이루고, 반체제 집단의 발호를 제압해 사회 질서를 확립함으로써 선진사회를 이룩하며, 강력한 국방 정책으로 국가를 보위하고, 부자에게는 자유를 서민들에게는 보다 많은 기회를 주는 서민복지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동시에, 실질적 평등사회를 추구함으로써 한국사회가 선진사회 대열에 올라설 수 있게 하는 이념”이라고 설명했다. 홍 전 지사는 또 다른 페이스북 글에서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등을 겨냥해 “부모 잘 만나 금수저 물고 태어나 돈으로 세습으로 지역구를 물려받고 정치권에 들어와 서민 코스프레하는 ‘패션 좌파’들이 한국 정치권에 참 많다”면서 “서민의 어려움을 알 리 없는 이들이 따뜻한 보수·좌파 정책을 내세우고, 밤에는 강남 룸살롱을 전전하면서 술이 덜 깨 아침회의 때 횡설수설하고 낮에는 서민인 척하는 그 모습들을 볼 때마다 역겨움을 느꼈다”고 맹비난했다. 이어 “위선의 탈을 쓰고 정치권에서 행세하면서 정치를 부업쯤으로 여기는 그릇된 행태가 다음 지방선거, 총선에서 반드시 도태돼야 할 것”이라면서 “국민이 이들의 행각을 알도록 해 다음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받도록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시진핑을 ‘변태고추’로 풍자... 중국 反체제 시사만화가, 언론자유상 받아

    시진핑을 ‘변태고추’로 풍자... 중국 反체제 시사만화가, 언론자유상 받아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과 중국 공산당을 신랄하게 꼬집는 만평으로 유명한 망명 반체제 시사만화가 왕리밍(王立銘·44)이 영국 국제 언론자유상을 받았다. 21일 BBC 중문망에 따르면 ‘변태고추(變態辣椒)’라는 필명의 왕리밍이 영국 인권 단체 ‘인덱스 온 센서십’이 주는 국제 언론자유상을 수상했다. 단체는 “왕리밍이 당국의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는 중국 언론에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왕리밍은 “나는 만화를 통해 중국 정부가 조성한 완벽한 허상을 타파해왔다”면서 “나의 펜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왕리밍은 2009년부터 웨이보 등 인터넷에 중국 지도자들의 행태를 비꼬는 시사만화를 실어 주목을 받았다. 인민일보 등 관영 매체는 왕리밍이 일본의 사주를 받는 ‘친일분자’라고 매도하며 그를 엄중 처벌할 것을 요구했다. 2014년 5월 왕리밍 부부는 일본에 3개월 일정으로 관광차 왔다가 귀국 후 탄압을 우려해 그대로 눌러앉았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중국을 비판하고 능멸하는 것이 서방의 언론자유상 기준이 됐다”면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중국에서 도태된 작가가 일본에서 연명하기 위해 조국을 팔고 있다”고 비판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中여행객 대만에 정치적 망명 요구

    대만을 여행하던 중국 여행객이 정치적 망명을 요청해 중국과 대만이 모두 고민에 빠졌다. 17일 대만 연합보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 출신의 남성 장샹중(48)이 지난 13일 단체여행 도중 일행에서 빠져나와 돌연 망명을 요구했다. 대만은 그동안 망명을 요청한 중국인 중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는 파룬궁 교도나 반체제 인사가 아니면 중국으로 돌려보내거나 불법 체류를 묵인하는 수준에서 봉합해 왔다. 그러나 장씨의 상황은 좀 애매하다. 그가 2013년 공직자 재산 공개를 요구하는 ‘신공민운동’에 참가해 투옥된 경험이 있긴 하지만 중국이 특별히 관리하는 반체제 인사는 아니다. 신용카드 사기 전과도 있다. 그러나 장씨는 “옥중에서 인권운동가 석방을 위해 단식투쟁을 벌였으며 교도소 측의 학대로 눈이 멀었다”며 정치적 망명을 받아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그는 최근 중국이 대만의 인권운동가 리밍저를 불법 구금하는 사태를 보면서 망명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연관성도 없다. 대만 이민국은 “정치적 망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씨의 망명을 허용할 근거법이 아직 없다. 대만 입법원은 지난해 7월 정치적 박해로 인한 난민을 수용하는 난민법 초안을 1차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법이 공포되려면 3차 심의까지 거쳐야 한다. 공표 이후에도 유예기간 1년이 지나야 시행된다. 대만은 지금까지 ‘양안 인민관계 조례’를 근거로 중국으로 돌려보내면 생명이 위태로울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게만 장기 체류를 허용해 왔다. 대만이 장씨에게 망명 또는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면 중국의 반발이 클 것으로 보인다. 유사 사례가 속출하면 양안 관계가 더 꼬여 대만으로서는 장씨 신병 처리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중국도 고민스럽다. 관영 환구시보는 “잡범 수준에 불과한 사람을 정치적 망명객으로 받아들이는 건 대만의 자유”라며 태연한 척했다. 그러나 장씨처럼 여행 도중 망명하는 사람이 늘면 중국이 선전해 온 체제 우월성은 빛을 잃게 된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美 틸러슨 국무 “‘비핵화’ 원하지만, 북한 정권 교체 목표는 없다”

    美 틸러슨 국무 “‘비핵화’ 원하지만, 북한 정권 교체 목표는 없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장관은 9일(현지시간) “미국은 비핵화한 한반도를 원하지만, 북한 정권을 교체할 목표는 없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CBS 방송의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의 정상회담 등을 언급하며 이같이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또 “중국조차도 북한이 자국의 이익에 위협이 됨을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양국 간 공유된 시각이 있다”며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관해 이견이 없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또 “북한 수뇌부의 사고방식의 조건들을 바꾸기 위해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점이 희망적”이라며 “그다음에, 그 지점에서 아마도 대화가 유용할 것”이라고 중국의 대북압박을 통한 북한의 변화에 이은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했다. 이어 틸러슨 장관은 ABC방송의 ‘디스 위크’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정권이 미사일 운반체제 개발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뤘으며 그 점이 미국의 최대 우려하는 바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북한 정권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모든 무기의 시험을 중단해야 그들과의 추가 대화를 하는 방안에 대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미국의 시리아 공습 결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그 메시지는 어떤 나라에 대해서도 ‘국제적 규범과 국제적 합의를 위반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타국에 위협이 되면 어느 시점에 대응이 시작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도쿄신문 “지난해 5월 北서 김정은 암살 기도…사전 적발”

    도쿄신문 “지난해 5월 北서 김정은 암살 기도…사전 적발”

    지난해 5월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전용 열차를 폭파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미수에 그쳤다고 일본 도교신문이 2일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현 국가보위부)의 지방 조직이 평안남도 주민들을 상대로 한 강연에서 수상한 행동이나 발언을 하는 인물이 있으면 곧바로 신고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이런 계획이 있었지만,사전에 적발했다고 소개했다. 강연날짜는 언급되지 않았다. 신문에 따르면 강연자는 “당 대회를 전후해 적의 책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며 “주의 환기를 위해 평안남도에서 최근 평안남도에서 보위기관이 적발한 사례를 소개하겠다”고 말했다.그러면서 국가보위부 강연자는 진학에 실패한 남자가 체제에 대한 불만을 품고 “체제 전복을 위해서는 수뇌부(김정은)를 우선 제거해야 한다”며 이런 계획을 세웠다고 전했다. 이 남자는 김 위원장이 참가하는 행사장으로 연결된 철도 노선에 폭발물을 설치해 (김 위원장 전용의) 1호 열차의 폭발 및 전복을 노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남자는 “폭약을 사용해 물고기를 잡을 것”이라며 주변 광산에서 일하는 3명으로부터 폭약을 확보했지만, 이를 수상히 여긴 다른 노동자의 신고로 체포됐다. 이 남자는 평소 김정은 위원장에 의한 권력 승계에 대해 비판적인 발언을 해서 다른 주민들로부터도 신고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이날 강연에서는 이 남자 말고도 평안남도의 교도소 출소자 5명이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 사망 직후 체제 전복을 모의했다는 점도 소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김정일 사망 이틀 후 “때가 왔다. 절호의 기회”라며 비밀결사대를 결성하고 폭파 및 암살 대상자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 고심을 거듭하다 한 달 뒤 아버지에게 계획을 실토하며 암살 계획은 발각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신문은 ”강연에서 나온 사건이 실제로 있었는지는 불투명하지만, 보위부원으로 보이는 강연자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 일어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한 것은 북한 내부에 반체제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을 북한 당국이 인식하고 있음을 엿보게해준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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