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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오경장 1백주년… 그 개혁운동 재평가와 역사적 교훈

    올해는 갑오경장 1백주년을 맞는 해다.갑오경장은 1894년7월부터 1896년2월까지 약 1년반동안 지속된 제도개혁운동이었다.이 기간동안 우리나라는 구시대의 질서에서 신시대의 질서로 편입되는 엄청난 변혁을 겪었다.지난해 새정부 출범 이후 우리는 또다른 개혁의 시대를 숨가쁘게 달려왔다.1백년만에 다시 변혁의 기회를 맞이한 것은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갑오경장이 제도의 변혁이었다면 지금은 당시의 엄청난 변화에 비견될 의식의 개혁이다.올해는 새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의 성패를 가늠할수 있는 중요한 시점.「외세에 의존한 정권탈취 및 유지책」이라는 시각에서 「기반이 확보될 때까지 시한부로 일본의 후원을 기대한 자율적인 개혁운동」으로 재정립된 갑오경장을 재조명하고 지금 추진되고 있는 개혁을 성공으로 이끌 역사적 교훈을 찾아본다. ◎재평가 작업/민중지지 못얻은 미완의 제도개혁/농민 염원 수용… 국정에 새바람/민주·자립 등 근대적 이념 표명/“일제 등에 업고 권위주의적 추진으로 실패” 갑오경장은 조선조를거치며 쌓인 민중들의 원성이 1894년 동학농민봉기로 나타나자 새로 들어선 정권이 그 불만을 아우르기 위해 시도한 제도개혁운동이었다.그로부터 1백년뒤,제3공화국 이후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염원이 문민정부의 등장을 가져오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해 개혁이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과 크게 다를바 없다. 다만 갑오개혁의 주체들은 일본이라는 외세의 무력의 도움을 받아 집권했고 「잠정적」이라는 단서는 달았지만 그들의 지원으로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여기에 갑오경장 주역들의 「개혁은 곧 서구화 내지 일본화」라는 소신은 그것이 비록 역사적 관점에서 옳은 판단이었다 할지라도 구성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갑오경장이 미완의 개혁으로 끝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또 갑오경장이 그동안 그 역사적 비중에 상응하는 평가를 받지 못해왔던 것도 여기에 이유가 있을 것이다. ○혁명적 이상추구 그러나 갑오경장이 재평가되고 있는 시점에서 되돌아 본 갑오개혁파의 개혁정책은 당시로서는 가히 혁명적 이상의 변혁을 추구했음을 알수있게 해준다. 갑오경장을 주도한 개화파 관료들은 집권하자마자 외무아문을 신설해 근대적 자주외교를 펼칠 준비를 갖추었다.이어 국호를 대조선제국으로,국왕을 대조선황제로 부르고 1896년부터 건양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채택해 국가적 자주 독립을 내세웠다. 이들은 민주주의적 발상에 입각한 몇가지 참신한 정치제도개혁도 실시했다.개혁추진의 핵심인 군국기무처를 입법·자문기관인 「의사부」로 만들어 행정부에 대치시키는 의회설립안을 만들었던 것도 이 가운데 하나이다.또 조선협회라는 일종의 정당을 발족시키기도 했다. ○지방제도 일원화 이들은 8도·5유수부로 대표되는 종래의 지방행정체제도 23부·3백37군으로 개편했다.지방제도를 일원화함으로써 행정의 합리화를 기함과 동시에 지방관으로부터 사법권과 군사권을 박탈해 근대관료적 색채가 농후해졌다.또 「향회조규」와 「향약변무규정」을 발포해 초보적인 지방자치제를 실시코자 했다. 경제분야에도 힘을 기울였다.개혁파는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재정정리와 민간산업 진흥을 도모하고 근대적 자립경제의 기초를 다지는 경제개발 계획을 세웠다.이 계획은 경인철도 건설을 통해 수입을 늘리는 외에 왕실재정을 정리해 정부수입을 늘리는 한편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고 세수의 결손을 줄이며 민간상공업을 진흥한다는 내용까지를 포함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능력본위의 평등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개화파의 사회개혁 의지도 중요한 대목이다.이들은 집권하자마자 「사민동등지법」을 확립해 전통적 신분제도의 철폐에 착수했다.양반과 상민을 구별하지 않고 인재를 등용하고 같은 양반에서도 문반과 무반의 차별을 없앴다.공사노비를 풀어주고 인신매매를 금했으며 역정 광대 백정도 모두 면천케 했다.이밖에 죄인에 대한 고문이나 연좌법을 폐지하고 너무 이른 결혼과 과부의 재가를 허용하는등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도 관심을 기울였다. ○해외유학 적극적 개화파는 과거제도 중심의 교육제도가 조선을 쇠퇴케 한 근본원인이라 생각해 합리성과 실용 위주로 교육제도를 개선코자 했다.이에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본국문,즉 한글의 사용을 장려해 정부의 공문과 관보도 국한문 혼용체나 순한글로 쓰도록 했다.또 적극적인 유학정책을 펴 1895년에는 약2백명을 국비로 도쿄에 유학시켰고 미국인 선교사가 경영하는 배재학당에 2백명의 관비장학생을 입학시켜 신학문을 배우게 할 계획도 마련했었다. 갑오개화파의 이 모든 정책 대부분은 물론 일본과 관련한 부정적인 해석이 있어왔다.또 대부분이 민중의 의사를 도외시한 위로부터의 개혁이었다는 점만으로도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대항해 온 일군의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아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양한 시각의 존재가 필요해졌다.권위주의 시대에 역사에서 필요한 교훈이 한방향으로 귀결되었다면 문민시대에 필요한 역사적 교훈은 다양하기 때문이다.갑오경장에서 현재 행해지고 있는 개혁의 교훈을 찾으려 하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또 갑오경장을 일방적인 예속의 역사로 해석하는 것은 자존심을 위해서도 이제는 벗어나야 할 대목이다. ◎발단·경과/대원군추대,친일내각 수립/20개월간 전반적 혁신 단행 민씨정권은 1884년 갑신정변을 수습하고 나름대로 서구의 기술을 도입하는등 근대적 개혁을 추구하고 있었지만 열강의 침투에 속수무책이었다.또 지배층 위주의 개혁이었기에 농민층과의 충돌은 불기피했다.1894년 동학농민봉기가 일어나자 자력진압이 불가능한 민씨정권은 청에 응원군을 요청하는 한편 농민군의 요구를 일정수준으로 받아들이는 선에서 협상을 시도했다.그러나 민씨정권의 요청에 따라 청군이 아산만에 들어오자 일본은 천진조약을 빌미로 곧 이어 군대를 인천에 상륙시켰다. 민씨정권은 청·일양군공동철병론을 주장했으나 일본은 조선의 개혁에 대한 청·일공동지도론을 제의했다.이에 청이 내정간섭이라며 이를 거부하자 일본은 침략을 위한 독자적인 개혁의 원칙을 제시했다. 민씨정권은 이 요구를 거절하고 농민군의 폐정개혁요구를 반영하는 선에서 정권의 위기를 넘기려 했으나 일본은 7월23일 경복궁을 기습하여 민씨정권을 무너뜨리고 대원군을 추대했다.이어 김홍집을 수반으로 하는 친일계와 중립계로 정부를 개편했다. 1894년7월에서 1896년2월에 이르는 갑오경장기간 정계에서 부침하던 정파는 다섯 그룹으로 대별된다.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유길준등 갑오경장파와 박영효 서광범등 갑신정변파,박정양 이완용 윤치호등 미국·러시아등 외국공관을 배경으로 하던 정동파,대원군 이준용 이태용등 대원군파,그리고 고종과 명성황후를 둘러싼 홍계훈 이도철 이학균등 궁정파등이었다. 이 가운데 갑오경장 전기간에 걸쳐 가장 오래 정권을 장악하고,따라서 개혁운동에서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한 세력은 갑오경장파였다. 이들은 처음에 대원군파와의 제휴로 집권해 제1개혁기(1894년7월27일∼12월17일)에 군국기무처를 중심으로 개혁을 주도했다.이어 제2개혁기(12월17일∼1895년5월21일)에는 갑신정변파와 연립내각을 구성해 공동으로 개혁을 추진했다.제3개혁기(5월31일∼7월6일)에 갑오파는 갑신파와의 알력으로 김홍집과 조희연이 내각에서 사퇴했지만 다른 멤버는 남아 박영효가 주도하는 개혁에 동참했다.갑오파는 제4개혁기(7월6일∼8월28일)와 제5개혁기에는 정동파와 궁정파의 합세로거세될 위기를 맞았으나 제6개혁기(10월8일∼1896년2월11일)에 궁정파가 실권하자 다시 득세,집권하여 개혁운동을 재개했다. 갑오경장은 그러나 과격한 개혁조치에 불만을 품어오던 고종이 명성황후가 시해되는 을미사변이 일어나 대일감정이 극도로 악화된 사이 1896년2월에 러시아공사관으로의 망명(아관파천)으로 개혁정권이 붕괴되고 친러정권이 들어섬에 따라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 교훈/“민의따른 개력이 최상의 통치”/폭넓은 지지속 군사·재정 뒷받침 필수/“외세의존땐 성공 못한다” 역사의 명제 갑오경장이란 지금으로부터 1백년전 1894년에 동학농민봉기와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던 획기적인 근대화운동을 뜻한다.이 개혁운동을 통해 종래의 중국적인 우리나라 통치·행정구조 및 외교·재정·군사·경찰·사법제도 등이 일본 내지 서구식으로 크게 바뀌었다. 갑오경장때 추진된 일련의 「혁명적」개혁조치는 그후 많은 수정을 거치면서도 보존되어 오늘날 한국 사회 및 문화의 일각을 이루고 있다. 갑오경장은 1894년 봄의 제1차동학농민봉기를 계기로 서울에 불법적으로 침략해온 일본군이 7월23일 경복궁을 강점한 상황하에서 개시되었다.이때 (흥선)대원군을 받든 일군의 친일개혁관료들이 신정부를 구성하고 군국기무처라는 초정부적 입법기구를 만들어 그 곳에서 2백여개의 개혁안을 심의,채택함으로써 역사적인 「대경장」의 막을 올렸던 것이다. 이 개혁운동에는 처음부터 일본의 입김이 작용하였다.즉,갑오경장에는 「타율적」인 측면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그러나 갑오경장을 전적으로 일본의 지도와 후원에 힘입은 개혁운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잘못이다. 개혁운동 초반에 개혁을 주도했던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박정양 유길준등 20여명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1880년대 초반에 외교사절단원 혹은 유학생으로서 일본·청국·미국 등에 건너가 세계정세를 파악하고,특히 명치일본의 「문명개화」운동과 청국의 양무운동 등을 조사,연구한 끝에 조선의 자주독립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개화,자강의 방안을 고안하여 이를 실천에 옮겼던,나름대로 애국심이 강한 개명관료들이었다.그들은임오군란(1882)과 갑신정변(1884)을 거치면서 청국이 종주권을 내세워 대한간섭을 강화하자 정치적으로 실세하여 국내외에서 망명내지 유배생활을 강요당하가나 정부요직에서 소외당하였다.따라서 그들은 반청·독립사상이 강한 반면에 친일적 성향을 띠었으며 또 친청보수세력인 민씨척주에 대해 비판적이면서 대원군에게 호의적인 세력이었다. 그들은 오랫동안 개화·자강정책을 연구·실천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제도개혁을 스스로 추진할 능력과 의욕이 있었다.과연 초기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군국기무처 의원들은 대원군의 지도하에 동학농민군이 요구한 폐정개혁안을 수렴하면서 제도개혁을 거의 완전히 자율적으로 추진했다.갑오경장 중반에 내각 대신 혹은 협판으로서 개혁운동에 참여하였던 박영효·서광범·윤치호 등은 갑신정변(1884)때 자신들이 겪은 일본정부의 배신을 귀감으로 삼되 미국·일본에서의 망명생활,유학에서 스스로 터득한 개혁사상을 기초로 자율적 개혁추진을 도모했다.이러한 점에서 갑오경장은 조선인 개화파 관료들의 「자율적」 개혁운동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갑오경장을 담당했던 조선의 개혁관료들은 우선 국민 상하의 존경과 지지를 얻는데 필요한 위신이 부족한 데다,자기들의 권력을 뒷받침해 줄 독자적인 군사력과 개혁의 실현에 필요한 자긍력이 없었다.따라서 그들은 이러한 기반을 확보할 때까지 잠정적으로 일본의 후원 내지 지원을 받으려 하였다.결국 이러한 그들의 대일본 의존정략이 갑오경장을 중도반계의 실패작으로 만든 요인이 되었다. 갑오경장은 왕조의 유신과 중흥을 도모했던 조선왕조 최후의 개혁운동이었다.이 운동에서 원래 기대되었던 목적이 달성되었다면 조선왕조는 중흥되었을 것이고,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민족적 비극은 없었을 것이다.근원적으로 따져 볼 때,갑오경장은 오랫동안 축적된 조선민중들의 불만이 동학농민봉기라는 과격한 형태로 표출된 다음 정부가 서둘러서 개시한 개혁운동이다.만약 조선정부가 민중들의 불만요인을 미리 파악하여 적시에 필요한 개혁을 축적해 나갔더라면 외세의 간섭도 면하고 또 갑오경장 같은진통도 겪지 않았을 것이다.여기에서 우리는 집권자가 국민들의 요망을 미리 미리 알아차려 시의적절하게 작은 규모의 개혁들을 하나 하나 펼쳐나가는 것이 최상의 국가경영 철학임을 깨닫게 된다.이것이 갑오경장에서 우리가 얻는 최대의 역사적 교훈이다.아울러서 우리는 개혁사업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을 뒷받침해 줄 튼튼한 군사력과 재정이 필수라는 사실을 확인하며,나아가 민중을 도외시한 외세의존적인 개혁운동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는다.
  • 3개 신도시아파트 청약 마감/평균 11대 1 경쟁

    올해 마지막으로 실시된 일산 평촌 중동 신도시 민영아파트 분양이 20배수외 1순위자 청약에서 모두 마감됐다. 지난 19·20일의 20배수내 1순위자 청약에서 미달된 21개 평형,1천4백25가구를 대상으로 23·24일 이틀동안 실시된 20배수외 1순위자 청약에는 모두 1만6천68명이 신청해 평균 11.3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평형별로는 일산의 건영 33평형 41가구에 1천8백66명이 청약,45.5대 1로 가장 높았고 역시 일산의 동아 32평형(35.8대1),코오롱 32평형(33.6대1),쌍용 49평형(25.4대1)과 중동의 동원 33평형(26.8대1)등도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또 한성 37평형을 비롯,일산의 지역우선공급분 10개 평형이 미달됐으나 모두 일반청약분으로 자동 전환되기 때문에 청약이 사실상 마감된 셈이다. 당첨자는 다음달 10일 각 견본주택과 주택은행 본·지점에 일제히 공고된다.
  • 초반유세 점검/전략변경 부심/3당,새 방법 모색

    민자·민주·국민당등 주요정당들은 21일부터 시작된 초반유세점검 결과 청중의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고 판단,청중모으기를 위한 새로운 전략수립에 나섰다. 민자당은 23일 상오 선대위실무대책회의를 열고 이날의 경기지역유세부터 공약 제기방식을 「하루 한주제」로 바꾸어 유세를 펴기로 결정했다. 이와관련,김영구선대본부장은 『주제를 여러개 나열하다보니 청중의 관심도가 떨어지고 유세장의 분위기 또한 산만한 감이 없지않았다』고 지적하고 『주제는 물론 소규모집회의 시간·장소등도 함께 조정,일반청중을 적극적으로 유도해내겠다』고 밝혔다. 민주당도 이날 충북 수안보에서 김대중후보주재로 긴급유세대책위원회의를 열고 지방중소도시의 옥외집회가 별 실효성이 없다고 결론,앞으로 지방중소도시유세는 옥내에서 하기로 방침을 바꿨다. 민주당측은 특히 승부의 주요변수가 될 젊은층의 호응도를 높이기위해 주말과 휴일에 열 권역별 집회를 청년문화축제및 환경캠페인행사등과 같이 열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민당도 김동길최고위원주재로선대위운영회의를 갖고 정주영후보의 「경제대통령논)을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찬조연사를 과감히 활용하기로 당론을 정했다.
  • 체청부의 새 세대 육성 10년계획(국정탐방:주1회 연재)

    ◎청소년수련장 1만3천곳 건립 박차/정책 추진방향/통일조국 이끌어갈 호연지기 함양/건강한 정서·공동체의식 등 갖추게/연령·성별맞게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개발 『요즈음의 청소년들은 마치 시한폭탄과도 같아요.자신들의 비위에 거슬리면 상대의 연령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비를 걸어 싸우려 합니다.싸움은 그냥 주먹으로만 하나요.패거리로 몰려 집단폭행을 가하는가 하면 흉기를 마구 휘두르기 일쑤지요』 언젠가 합승택시 속에서 한 중년남자가 독백처럼 내뱉은 말이다. 이같은 느낌은 어느 특정인의 느낌이 아니며 최근 몇년동안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다수 국민이 한번쯤 가져본 우려요 불안이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학교와 직장등에서 성실히 생활하며 나름대로 미래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그 일부지만 비행청소년들의 행위는 이미 그 종류와 수법이 정도를 지나쳐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지 오래다. 흔히 청소년을 「국가장래를 밝힐 등불」이라 부른다. ○청소년문제 사회화 그래서 한나라의 청소년정책은 그 나라의 내일을 점칠 수 있는 지표로 삼는다. 우리나라 청소년정책은 ▲가정의존단계 ▲문제청소년위주의 초기단계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한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추진단계로 그 변천 과정을 크게 분류한다. 가정의존단계는 48년 건국에서부터 제3공화국의 출범(64년)까지다.이 시기는 6·25와 4·19,5·16등 사회혼란의 격동기로 별다른 모형없이 오로지 유교적인 윤리에 따른 전통문화에 의존,사실상 청소년정책의 대안이 없는 「무정책시대」였다. 이때는 의·식·주를 해결하는것이 선결과제였기 때문에 청소년정책이 있을 수 없었다. 제3공화국에서부터 지난해 청소년건전육성 10개년계획이 수립되기 전까지인 초기단계에 와서야 비로소 정부의 청소년문제에 대한 관심이 최초로 대두됐다. 대통령령 제1932호에 의거,내무부 산하에 「청소년보호대책위원회」가 설치됐다.그러나 공공질서 유지의 차원에서 문제청소년문제를 다루는등 극히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이 시기에는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 청소년정책을 담당하는 정부기관이 내무부에서 국무총리실문교부(교육부전신)체육부 등으로 수시 이관돼 정책의 일관성이 없었으며 추진과정도 선도·보호의 명분을 앞세운 규제위주로 일관했다.그러나 경제적 고도성장과 함께 우리사회는 가치관의 혼란,도덕성의 타락,질서의 문란,공해의 만연 등 청소년들에게 원천적으로 유해한 요인이 도처에 깔렸다.더불어 청소년교육은 오로지 입시위주의 지식편중에 그쳐 청소년들의 전인적 성장이 어려웠다.이로인해 국가장래를 우려하는 목청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장기적인 대책수립 이에 정부는 지난 91년 체육부를 체육청소년부로 개칭,청소년문제를 전담토록 하고 모든 청소년을 대상으로 스스로 자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장기적 종합적 청소년정책수립에 나서 「한국청소년육성 10개년 계획」을 수립,청소년정책의 조용한 개혁을 시도왔다. 올해부터 오는 2001년까지 추진될 한국청소년육성 10개년계획은 ▲청소년의 자율성에 기초한 능동적 삶의 실현▲청소년의 성장 여건과 사회환경의 개선▲민주·복지·통일조국에 대비하는 청소년의 자질향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이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있는 수련프로그램의 개발 보급,수련터전의 확충,청소년지도자 양성배치,청소년단체 육성지원,청소년수련활동참여의 동기부여등 5가지로 분류해 놓았다. 수련을 위해서 건강 정서 용기 예절 협동 긍지 등 6대 수련지표와 24대 세부지표를 설정,청소년의 유형·성별·연령과 시기·장소의 특성에 따라 기본형의 프로그램을 제작,생활권이나 자연권에서 청소년 개개인이 적성과 희망에 따라 선택,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수련터전은 생활권과 자연권으로 구분,10년간 1만3천5백17개소를 건립할 계획이다. 이중 50%인 6천5백28개소는 공공회관 새마을회관 농·어촌폐분교등 활용가능한 시설을 개·보수하며 나머지 6천9백89개소는 연차적으로 건립해 나가기로 했다. 이 계획의 시행원년인 올해는 지방에 청소년 수련원및 수련관,유스호스텔등 모두 1백23개를 확보했다. 특히 체육청소년부의 관계자는 시설확충과 관련,계획초기에는 관계부처와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고충을 겪었으나 청소년수련시설을 도시계획시설 차원으로 다루어 관계법령을 개정해 별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청소년지도자 양성은 청소년수련활동에 대한 전문지식과 인격을 갖춘 2만명의 지도자를 양성토록 하고 우선 올해 4백명을 배출,각 수련장에 배치했다. ○지도자 2만명 양성 또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단체와 더불어 수련활동을 할 수 있도록 건실한 민간청소년단체의 다양화를 꾀하고 운영지원으로 현재 1천3백60여만명의 청소년중 15%인 2백14만3천여명이 각 단체에 가입되어 있는데 이를 선진국 수준인 25%선까지 올려놓을 계획이다. 이와함께 청소년복지 부문을 사회복지의 범주에 포함시켜 시설보호청소년,영세가정청소년,소년소녀가장청소년,무직청소년 등도 일반청소년과 함께 성장할수 있도록 그 대상을 확대했다. 이 계획이 끝나는 2001년 이후 우리 청소년의 미래상은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개인적으로는 건강하고 정서와 용기가 충만하며,이웃과는 예절과 협동으로 공동체적 삶을 실천하고,조국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갖는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될것으로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조직화된 야영생활로 자립·협동심 등 길러/미국/다양한 단체활동에 문화·체육행사 등 병행/일본 선진국의 청소년정책과 활동은 어디에 역점을 두고 추진되고 있는가. 미국을 비롯,일본 독일 스웨덴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가들은 일찍이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필연적으로 제기된 청소년문제를 중시,그 해결을 위해 심혈을 기울인 결과 어느정도 정책의 안정기를 맞고 있다. 선진제국등 청소년정책을 성공적으로 추진한 나라는 미국으로 모든 나라들이 「청소년 정책의 모델」로 삼고 있다. 미국의 청소년정책과 활동은 흔히 야영캠프제도로 불린다. 전하버드대 총장을 지냈던 엘리어트씨는 『조직화된 캠프생활이야말로 미국이 세상에 내놓은 가장 훌륭한 청소년 육성방법이다』고 말한바 있다. 야영캠프제도가 시작된 것은 지난 1861년 코네티컷주의 한 고등학교 교장인 프레드릭 쿠넨씨가 학생들을 데리고 2주간에 걸쳐 아일랜드 섬에 간것이 그 효시이다. 이후 야영캠프는 미국 전역의 학교생활의 일환으로 전파됐고 자발적 참여로 이루어졌다. 청소년의 자립성장·협동심·용맹성등 캠프생활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사설캠프장,교회캠프장,보이스카우트 등 수련터전이 급격히 늘어 현재 지도자 프로그램 시설 장비 등을 완벽하게 갖춘 곳이 무려 8천5백개소에 이른다. 일본의 경우 청소년들이 건전한 가치관과 동기를 개발하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시킨다는데 정책의 주안점을 두고 있다. 청소년 정책의 프로그램은 청소년건전육성사업,가정에 관한 시책,학교에 관한 시책 등으로 분류해놓고 있으며 단체활동촉진과 문화활동 장려,그리고 체육진흥사업 등을 펼친다.전국에 4백40개소의 수련및 야영장이 있다. 스웨덴은 청소년계층을 제도화 하지는 않고 있으나 16∼18세 계층을 위하여 교육과 고용을 국가가 완벽히 보장하며 건강 체육 여가선용 사회복지 등에 정부의 부서별로 중점을 두어 실시한다. 독일의 경우 청소년정책은 15세 미만과 25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나 일반적으로는 18∼25세까지를 청소년으로 분류하며 생활조건개선및 청소년고용을 위한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 「청소년 찾아가는 문예사업」/자리잡았다

    ◎문화부,3월부터 학교·직업훈련원 찾아 173회 펼쳐/클래식서 팝까지 연주,청소년들 환호/딱딱한 학교예술교육 개선방향 제시/서울팝스오케스트라 가장 인기 문화부의 「청소년을 찾아가는 문예사업」이 학교예술교육의 방향제시와 아울러 참여 음악단체의 재정자립기여및 수준향상이라는 예상치 못한 부수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행사는 지나치게 대중문화에만 치우친 청소년들의 정서를 순화하고 문화접촉의 기회를 넓힌다는 취지로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문화부의 올해 역점사업.▲청소년을 위한 순회음악회 ▲우리가곡에의 초대 ▲가곡과 아리아의 향연 등 26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 이행사는 13일까지 전국의 학교와 직업훈련원등에서 1백73회가 열려 모두 19만3천여명의 청소년의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이번 문예프로그램은 참가한 숫자보다는 어느때보다도 친근한 공연내용으로 청소년들로 부터 갈채를 받았다.이와 더불어 교사와 학부모들에게도 「청소년들에게 어떻게 문화예술을 인식시킬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했다는 평가를받고있다. 이 과정에서 뚜렷이 부각되고 있는 단체가 서울팝스오케스트라.서울팝스오케스트라는 지난 3월부터 「청소년을 찾아가는 문예사업」에 참여하기 시작해 이제는 이 행사에서는 가장 환영받는 단체로 자리를 굳혔다. 이 악단은 서울은 물론 「청소년을 위한 지방순회음악회」의 첫날인 지난 11일 부산시민회관은 가득 메운 1천7백여명의 청소년 청중들로부터 열광적인 환호를 받았다.이어 12일 대구시민회관과 13일 광주시민회관에서도 끊이지 않는 박수갈채를 받는등 청소년들을 건전한 방향으로 열광시키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클래식소품은 물론 영화음악과 팝송이 연주되었으며 가수 최성수가 「동행」「기쁜 우리사랑은」등 자신의 히트곡을 부르고 테너 임웅균은 「목련화」「물망초」「여자의 마음」등 친근한 가곡과 아리아를 불렀다. 사실 문화부가 당초 「청소년을 찾아가는 음악회」의 참가단체로 서울팝스오케스트라를 선정한 것 부터가 발상의 전환을 뜻했다.가요와 팝송을 연주하는 「팝스」오케스트라를 학교에서 공연케한다는 사실 자체가 보수적인 공무원 사회는 물론 학부모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울팝스오케스트라의 활동 결과 이같은 우려가 사라짐으로써 앞으로의 예술교육 방향도 수정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를테면 그동안의 예술교육이 너무 고급한데만 치우쳐 『고급예술은 지루한 학교용』이라는 인식이 청소년들의 뇌리에 심어져 왔었다.이에 반해 팝스오케스트라는 청소년들이 환호하고 즐기는 가운데 음악에 대한 흥미를 유발,좀더 차원 높은 단계의 음악을 스스로 추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평가속에 서울 팝스오케스트라는 지난 5월부터 매월 3번째 토요일 하오에 「덕수궁 음악축제」를 열어 매번 4천명이상의 청소년은 물론 일반청중을 동원하는등 9월말까지 모두 16회의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다.이렇듯 인기가 높아지자 기업및 각 지방 자치단체의 초청도 늘어나 이 단체는 10월달에만 10회의 문화부사업을 포함해 모두 15회의 연주회를 갖는다.이 가운데는 5회의 지방연주회가 포함돼 있다. 연주횟수가늪어남에 따라 기량 역시 향상될 뿐 아니라 새로운 레퍼토리개발에도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됐다.그리고 악단의 재정형편도 좋아져 우수단원보강에도 주력할 수 있게 됐다.최근에는 홍콩필하모닉의 악장을 지낸 재미 바이올리니스트 김형진씨를 새악장으로 초빙한 것이 대표적 사례.단원들도 단원들대로 청중들의 반응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연주하고 있다. 이 악단은 올해 이미 70여회의 연주회를 소화한 결과 현재 우리나라의 수많은 명목상의 직업오케스트라가운데 연주회수입만으로 재정자립을 이룩한 유일한 단체로 떠올랐다.
  • 「양실」등 5개 대학 신의주에 몰려(새로 쓰는 북녘지리지:9)

    ◎평안북도:상/서해안 간척… 다사도등 농경지로/녕변·정주·향산엔 공동주택 건립 평안북도는 그동안 여러차례 이뤄진 행정구역 개편으로 신설 자강도에 동·북부의 여러 군을 빼앗겼다. 그러나 대륙으로의 관문인 신의주,한반도의 최서단(동경 1백24도 10분 47초)인 룡천군 비단섬,삭주군 수풍발전소,그리고 우리나라 4대 명산의 하나인 묘향산과 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유명한 녕변군 약산 등 우리에게 낯익은 여러 고장등은 그대로 거느리고 있다. ▷연혁·개편◁ 평안북도는 1896년 전국을 13개 도로 나눌 때 평안도가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생긴 도이다. 당시 청천강 이북지역이 평안북도가 됐으며 녕변이 도 소재지로 떠올랐다. 당시의 행정구역은 1개의 부,16개 군(의주 룡천 철산 선천 정주 박천 운산 태천 구성 삭주 창성 벽동 강계 희천 위원 초산)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도 소재지는 1908년에 의주로 옮겼다가 1923년 신의주로 옮겼다. 해방당시 평안북도는 1시19군이었으나 1949년 1월 자강도가 신설되면서 당시의 강계 자성 후창(현 김형직군)위원 초산 희천 등 6개군이 자강도로 편입됐다. ○인구 2백53만 추산 대대적 개편이 이루어진 1952년 12월에는 13개의 군(향산 구장 북진 운전 곽산 동창 천마 대관 청성 염주 피현 동림 우시)이 새로 창설되어 평안북도는 1개 시(신의주)와 26개 군을 거느린 도가 되었다. 1954년 10월,우시군이 자강도에 넘어가고 1967년 10월에는 구성군이 시로 승격되었으며 룡천군의 서석리 일부와 신서리 신도노동자구로 신도군을 만들었다. 그후 신도군은 룡천군에 다시 흡수되었다. 이로써 평안북도의 행정구역은 현재 2개 시(구성 신의주),23개 군(피현 룡천 염주 철산 동림 선천 곽산 정주 운전 박천 녕변 구장 향산 운산 태천 천마 의주 삭주 대관 창성 동창 벽동 신도)으로 되어 있다. 도 소재지는 신의주이다(*신의주시의 강안 광명남 등 3개 구역과 신도군의 동·리 구성은 미상). 도의 면적은 약 1만2천1백㎢이며 상주인구는 2백53만명 가량으로 추계(1991년)되고 있다. ▷도시개발◁ 평안북도에서 그런대로 도시의 형태로 개발이 추진된 곳은 도 소재지인 신의주(상주인구 32만명 가량)와 1967년에 시로 승격된 구성(상주인구 19만명 가량)이다. 유서깊은 역사의 고장 녕변과 정주,그리고 묘향산 관광객을 의식한 향산읍등 일부 군 소재지에 근래들어 2∼5층 규모의 공공건물과 공동주택(아파트 포함)을 짓고 『도시로 변모하였다』고 내외에 선전하고 있다. 그러나 시가지라고 해야 대부분 규격화된 잿빛 건축물들 뿐이며 상하수도를 비롯한 기반시설의 낙후상은 방문자들의 입을 통해 이미 널리 알려진 바 있다. ○하수도등 시설 낙후 식량부족으로 올들어 벌써 몇차례 주민 폭동설이 나돌고 있는 신의주시도 도 소재지라는 이름이 무색하리만큼 발전이 없으며,약처리도 제대로 안된 「붉은 수돗물」을 먹어야 하는 주민이 많다는 사실 역시 최근 신의주를 넘나드는 중국 단동의 「보따리 장사」들 입을 통해 알려지고 있다. 비교적 큰 건축물은 학교등 교육시설인데,평안북도의 대학들은 거의 신의주에 몰려있다. 지난해 10월 대부분의 대학이 그 이름을 바꾸었다. 신의주 제1사범대학을 차광수대학으로,신의주 제2사범대학을 관서대학으로,신의주교원대학을 양실대학으로,신의주의학대학을 광제대학으로,그리고 신의주농업대학을 만풍대학으로 교명이 바뀌었다. ▷자연·생태◁ 평안북도는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 평균 해발 2백36m,도내에서 가장 높은 산이 해발 1천9백9m의 묘향산이다. 도에는 자강도와 경계를 이루는 피난덕산줄기(산맥),천마산줄기·묘향산줄기·문수산줄기가 각 방향으로 뻗어 있으며 지세는 북·동부가 높고 서·남으로 가면서 낮아진다. ○비단섬 섬유기지화 대표적인 평야는 해안지대에 펼쳐진 룡천벌(3백60㎢),운전벌(1백50㎢),박천벌(1백㎢) 등이며 바닷가에는 철산반도와 가도·대화도·대계도·탄도 등 여러 섬이 있으며 선천만을 비롯한 여러 만과 포구가 있다. 다사도지구를 비롯한 서해안에는 대규모 간척공사가 이루어졌으며,압록강 어구의 류초도 함금평 등지도 농경지로 개간되었다. 특히 비단섬(70.7㎢)은 갈대가 뒤덮인 대규모 섬유원료기지로 바뀌었다. ◎신의주·구성시 행정구역표 ▲신의주시=압강동 개혁동 남하동 신원동 백운동 남중동 남서동 본부동 평화동 동하동 백사동 균화동 신포동 동중동 청송동 역전동 민포동 채하동 마전동 미륵동 남상동 친선동 수문동 해방동 남송동 관문동 신남동 동상동 상서리 하서리 선상리 와이동 유상동 송한리 석하리 중제리 련상(연상)동 향교리 삼룡리 낙원동 백토리 토성리 성서리 남민리 유초리 풍서동 방직동 반청동 ▲구성시=성안동 서산동 서성동 동문동 남산동 백석동 방직동 새골동 새날동 역전동 청년동 과일동 리구동 차흥동 상서동 금풍동 동산리 용풍리 남소리 양하동 오봉리 기용리 남흥리 조양리 방현리 청송리 발산리 원진리 대안리 청룡리 운양리 중방리 백상리 운풍리 신풍리 상석리 왕인리 백운동 신흥동
  • 「수서의혹」 캐기… 칼날세운 「특감」/감사원 감사 무엇이 초점인가

    ◎“불가” 방침 왜 “민원 수용”으로 돌아섰나/한보의 자연녹지 매입과정 적법한가/정치권 로비자금 유입설 사실인지 서울 수서지구 택지특혜분양 의혹사건은 노태우 대통령의 지시로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착수함에 따라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감사원의 특별감사를 계기로 감사원의 중점조사 대상이 되고 있는 이번 사건의 주요 문제점을 짚어본다. ▷서울시의 사업계획 승인◁ 서울시는 26개 연합주택조합의 택지특별공급 요구에 대해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 제13조 2의 5항에 규정된 수의계약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계속 「불가」 입장을 견지. 그러나 지난해 12월13일 국회 건설위에서 이들의 청원을 의결하는 과정에서 건설부는 「이들에게 택지를 특별공급하지 않았을 경우에 예상되는 집단민원과 수서택지에 대한 연고권,무주택자인 점 등」을 동시행령 제13조2의 3항에 규정된 「시행자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로 해석하면 된다고 유권해석하고 국회 건설위도 이를 받아들임에 따라 지난 1월19일 열린 관계기관 대책회의에서 서울시가 기존의 불가방침을 번복. ▷고도제한 해제의혹◁ 지난 1월21일 서울시가 수서지구 택지특별공급 대책을 발표한 이후 「특별분양」이라는 시비가 잇따르자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지정돼 건물높이가 5층으로 제한돼 있던 이 지역 15∼18블록 일대 7만6천여평의 고도제한 해제를 관계부처에 요청. 박세직 서울시장은 4일 국회 행정위에서 『일반청약 주택가입자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제한된 토지에 보다 많은 물량을 공급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면서 『고도제한 해제를 위해 관련 군당국과 협의한 결과 「군작전 개념의 변화로 고도제한을 해제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답변. ▷정치자금관련 의혹◁ 야당 의원들은 한보그룹의 정태수 회장이 민자당의 재정위원인데다 수서지구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던 89년 3월을 전후하여 2차례에 걸쳐 정치자금을 헌납한 사실과 지난해 6월부터 8월까지 당정회의를 통해 수서지구 연합조합주택의 집단민원을 논의한 사실을 민자당 지도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된 것으로 간주. 또 서울시에 1백억원,청와대에2백억원의 로비자금이 동원됐다는 「미확인 루머」까지 동원,정치자금 의혹설에 부채질. 정가 주변에서는 이번 특혜분양과 관련,한보측이 여야 지도자와 국회 건설위에 수억원 혹은 수십억원의 「검은돈」을 건네줬다는 소문이 무성. ▷한보의 택지취득 적법성◁ 한보는 수서지구 문제의 땅을 아파트건립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서울시가 지난 88년 건설부에 택지개발 예정지구 지정을 요청하기 불과 4개월 전부터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자연녹지에 대한 토지거래 신고제가 실시된 88년 9월13일 이후에도 땅을 계속 매입했으며 89년 11월까지 모두 5만1백35평을 매입,이 가운데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89년 3월21일까지 1만6천62평을 사들였고 지구지정 이후 89년 11월까지 1만4천90평을 추가 매입. 한보측은 이 땅의 취득목적을 「경작,현상태이용,병원건립」 등의 사유로 신고했으며 88년 9월이전에 사들인 2만1천90평은 토지거래 신고로 매입한 반면 같은해 9월이후 사들인 2만9천45평에 대해서는 모두 예외없이 「제소전 화해」 방식으로 소유권을 확보. ▷조합원의 자격심사과정◁ 수서지구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되기 이전에 조합설립 인가를 받은 조합은 88년 2월10일의 서울투자금융,88년 4월19일의 한국주택은행 등 모두 14개 조합 1천6백50가구. 지구지정 이후에는 89년 3월24일의 동양증권 제2주택조합을 비롯,90년 8월16일의 내외경제 주택조합에 이르기까지 모두 12개 조합 1천7백10가구가 설립인가를 받은 것으로 판명.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조합설립 인가일을 기준으로 연고권에 하자가 없는 조합은 13개 조합에 6백50가구에 불과하며 이들마저도 조합탈퇴 등이 잇따라 조합원 개인별로 적법여부는 불확실한 상태. 특히 수서지구가 아닌 다른 지구에 주택을 건립할 목적으로 설립됐다가 뒤늦게 한보에 의해 유치된 조합이 대부분으로 조합인가를 받을 때 수서지구를 주택건설 예정지로 기재한 조합은 ▲국군 8248부대 ▲서울지방국세청 ▲한국금융연수원 등 3개 조합뿐인 것으로 확인. ▷주택조합 민원처리 경위◁ 26개 연합주택조합측은 89년 3월 수서지구가 택지개발 예정지구로 지정된 이후 「당국의 공영개발 계획으로 선의의 피해를 입게 됐다」며 관계부처에 집단민원을 제기하기 시작. 특히 청와대는 지난해 2월16일 이들의 민원을 접수,서울시에 문의해본 결과 택지를 특별공급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줬다고 밝히고 있으나 서울시에 민원이첩을 하면서 보낸 공문에 「적법한 가격으로 우선 공급하는 방안을 건설부와 협의하라」고 지시. 또 이들의 민원을 접수한 평민당은 「민원인들의 요구를 적극 수용」토록 독려하는 내용의 협조공문을 서울시 및 건설부 등 관계부처에 발송했으며 민자당은 민원처리를 위해 3차례에 걸쳐 당정회의를 개최. ▷금융특혜 및 세금포탈◁ 지난 87년 해외건설업체의 부실화에 따른 구제금융조치로 한보주택의 주거래 은행인 조흥은행이 3백39억원,서울신탁은행이 2백10억원,상업은행이 32억원 등 3개 은행이 한보그룹에 5백81억원을 지원했으며 한보그룹이 이듬해인 88년 4월부터 2년6개월 동안 수서지구내의 토지 5만여평과 강남구 일원동 자연녹지 2만4천평 등 모두 7만4천평의 땅을 매입하면서 은행대출금의 상당부분을토지매입에 전용했을 것으로 추정. 한보그룹은 또 지난88년 9월 서울신탁은행에 임직원 명의로 된 수서지구 25필지 1만36만평을 담보로 30억원의 지급보증을 받은 뒤 89년11월 이 가운데 9천3백14평을 26개 주택조합에 넘겼으며 조흥은행에도 88년11월 임직원 명의의 수서지구 땅 6천9백34평을 담보설정 한뒤 주택조합으로 명의를 넘긴 것으로 은행감독원 조사결과 확인. 한보는 게다가 88년9월 토지거래 신고제가 실시된 이후 제소전 화해방식으로 2만9천45평을 매입,양도소득세를 포탈했으며 89년12월 주택조합측에 4만8천1백84평의 택지를 넘기면서 역시 제소전 화해방식으로 세금을 포탈.
  • 인천 앞바다 기름오염 확산/벙커c유 유출

    ◎영종ㆍ용유도 근해까지 접근 【인천=이영희기자】 코리아호프호 기름유출사건을 조사중인 해경과 인천지방 해운항만청ㆍ인천시는 17일 기름이 조류를 타고 월미도에서 영흥도ㆍ서산앞바다까지 확산된 것으로 확인,이 일대 해안의 기름제거작업에 나서고 있다. 해경은 이날 사고해역인 연안부두 남항에 일반청소선 12척을 동원,기름제거작업에 나서 1백15드럼의 기름덩이를 수거했다. 한편 인천시는 기름오염이 계속 확산,영종ㆍ용유와 인천 남동구 동막ㆍ소래 등 어장까지 접근하고 있다는 어민들의 신고에 따라 이 지역의 오염방제를 위해 유제 등을 준비하고 있다. 시는 또 이 유류가 5∼6일 후에는 옹진군ㆍ화성군ㆍ강화군해안으로 확산되고 10일후에는 충남 연안으로까지 확산될 것으로 보고 이 일대 어민들에게 주의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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