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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형마트 ‘유통기한 눈속임’ 심각

    일부 대형마트와 마트 내 반찬 가게가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을 진열대에 내놓거나 유통기한을 고의로 늘리는 방식으로 영업하다 보건 당국에 무더기로 적발됐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3월 300㎡ 이상 규모의 전국 대형마트 2229곳을 점검한 결과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판매하는 등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대형마트 13곳을 적발했다고 2일 밝혔다. 이번 점검에서는 마트 안에서 영업하는 반찬 가게 12곳과 식품 소분 판매업소 2곳도 적발됐다. 우선 롯데쇼핑㈜ 롯데슈퍼의 경기 소재 한 영업점은 유통기한이 16일이나 지난 ‘와이즐렉 내 몸 사랑 단무지’를 진열해 영업 정지 7일의 처분을 받았다. 또 ㈜GS리테일 전북 소재 영업점은 유통기한을 각각 17일과 27일 넘긴 ‘백설 돼지 불고기 양념’과 ‘캘리포니아 스위트콘’을 진열해 역시 영업 정지 7일 처분을 받았다. 전북 군산시의 한 대형마트는 유통기한이 56일 지난 라면을, 경남 진주시의 마트는 유통기한이 78일과 208일 지난 ‘해찬들 재래식 된장’과 ‘해찬들 고기 전용 쌈장’을 진열하다 적발되기도 했다. 적발된 대형마트 13곳 가운데 12곳은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을 보관하거나 진열하다가 영업 정지 7일의 행정 처분을 받았고, 나머지 1곳은 유통기한이 일절 표시되지 않은 무허가 ‘멸치액젓’을 판매하다 영업 정지 1개월의 처분을 받았다. 유통기한을 없애거나 임의로 유통기한을 늘린 대형마트 내 반찬 가게도 많았다. 농협하나로마트 대구 소재 영업점 2곳 내 반찬업소는 유통기한, 원산지 등이 표시되지 않은 소스류와 명란젓갈을 내놓거나 유통기한을 2일 늘린 어묵볶음을 진열한 것으로 나타났다. 홈플러스 대구 소재 영업점도 즉석 강정 과자의 제조 일자를 하루 늘렸다 적발됐다. 심지어 홈플러스 대전 소재 영업점 내 반찬업소는 유통기한이 4일 지난 김치 양념을 판매 목적으로 보관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체 조사 대상 업소 가운데 적발 비율이 1.2%에 불과한 것은 식약청이 지난 1월 미리 언론 및 유통단체를 통해 단속 계획을 알렸기 때문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앞으로도 위생 취약 분야나 국민 관심 사항 등에 대한 기획 단속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정서적 고립 겪는 노인문제 이제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독거노인 사랑잇기] “정서적 고립 겪는 노인문제 이제 사회가 함께 해결해야”

    대한적십자사가 독거노인에 대한 봉사활동을 시작한 것은 2005년이다. 김용현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은 지난달 29일 서울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독거노인 문제에 우리 사회가 힘을 모으는 모습을 보며 정말 고마움을 느꼈다.”면서 “독거노인 봉사활동이 범국민적으로 확산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독거노인에 대한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독거노인의 수가 이미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버이결연맺기’ 봉사활동을 5년전부터 진행해 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가 독거노인 사랑잇기 활동을 시작하게 됐고, 사업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함께 손잡고 홀로 사시는 어르신들을 돕게 된 것이다. 이를 통해 전국 독거노인의 고독사(孤獨死)와 정서적 고립을 막고, 노인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고령화 사회에 대한 걱정의 목소리가 많다.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노인의 빈곤, 질병, 고독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과거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였지만 이제는 사회, 국가가 같이 해결해야 한다. 국가도 국민연금, 건강보험, 노인복지 등 막대한 재정소요와 지원인력의 한계 등으로 이 문제를 감당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의 손길이 닿지 않는 노인들의 생활안정, 건강관리, 정서적 안정을 위해 국민, 기업과 봉사단체들이 네트워크를 구성하고 공동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독거노인과 같은 취약계층을 위해 적십자사가 진행하고 있는 봉사활동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대한적십자사는 일반구호, 밑반찬 지원, 결연사업 등 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독거노인, 저소득 아동 및 청소년, 다문화가족, 북한이탈주민 등 4대 취약계층을 위한 ‘희망 DIY (Do it yourself)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중점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취약계층에게 봉사자 및 후원자가 삼각결연을 통해 지속적으로 경제적, 정서적 지원을 하는 것이다. 적십자사는 앞으로 더 많은 국민이 후원자와 봉사자로 참여해 희망 네트워크의 가교 역할을 해 주리라 기대한다. →앞으로 대한적십자사의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어떻게 전개해 나갈 계획인가. -독거노인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문제, 우리 자신의 문제가 되었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올해는 현재 1만 4000여 가구인 결연 대상자 규모를 2만 5000가구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런 결연·후원 활동에 많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줄 것을 당부드린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⑧ 어르신 찾아가는 대한적십자사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⑧ 어르신 찾아가는 대한적십자사

    독거노인의 고독사 예방을 위한 안부 확인 전화서비스 ‘사랑 잇는 전화’ 활동을 펼치고 있는 보건복지부가 노인에 대한 가정방문 활동인 ‘마음 잇는 봉사’ 활동을 4월부터 시작했다. 먼저 대한적십자사와 협약을 맺고 적십자사 소속 자원봉사자 5277명과 함께 봉사활동을 시작했으며, 앞으로 민간기업과 단체 등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할 계획이다. “지난주에 갖다 준 동태탕이 정말 맛있었어요. 생선 머리가 특히 맛있더라고.”(구춘심 할머니) “동태탕을 제일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다음 주에 올 때 다시 조리해서 가져올게요.”(적십자사 봉사단 서문성씨) 지난달 27일 서울 가락동 구춘심(91) 할머니의 단칸방은 음식 이야기만으로도 진수성찬이 차려진 듯했다. 대한적십자사의 독거노인 봉사단인 서문성(오른쪽·59·여)씨와 이춘조(왼쪽·50·여)씨는 매주 구 할머니를 비롯, 가락동에 사는 독거노인 4명에게 반찬을 제공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반찬 배달과 함께 건강에 문제는 없는지, 생활에 다른 어려움은 없는지 등을 물으며 1시간 남짓 대화도 나눈다. 서씨와 이씨가 구 할머니를 찾은 이날은 마침 구 할머니의 친구이자 함께 적십자사의 반찬 봉사를 받고 있는 장운정(86) 할머니가 함께했다. 같은 동네에 사는 장 할머니는 일주일에도 서너번씩 구 할머니 댁을 찾아 대화를 나눈다. 할머니들을 위해 가져온 이번 주 반찬은 간장게장과 파전이었다. “할머니, 게장은 가위로 잘라서 드시면 돼요. 많이 가져왔으니까 두고 넉넉하게 드실 수 있을 거예요.” ●“반찬 남김 없이 드실 때 보람 느껴” 서씨가 게장 먹는 법을 가르쳐 주자 구 할머니는 자신의 치아를 보여주며 “간장 게장이 밥도둑이라잖아. 나는 이가 튼튼해서 아무거나 잘 먹을 수 있어요.”라며 걱정 말라는 듯 손짓을 해보였다. 서씨가 구 할머니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8년이었다. 구 할머니는 2008년 4월 길을 걷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마침 지나가던 동 주민센터 직원이 걷지도 못하고 길가에 누워 있던 할머니를 발견, 병원치료를 도와주다가 구 할머니의 가난한 생활형편을 알게 됐다. 도움을 줄 방법을 찾던 중 송파구 적십자사가 흔쾌히 구 할머니를 돕겠다고 나서게 된 것이다. 서씨와 이씨는 자신이 만든 반찬을 늘 좋아하고 반겨주는 할머니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서씨는 “90세를 넘기신 나이에도 갈비탕 한 그릇을 너끈히 드신다.”면서 “가져다 드린 반찬을 남김 없이 드시는 모습을 보며 형언하기 어려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독거노인 봉사활동을 펼치는 적십자사 봉사원에게는 노인 1명당 월 1만원의 활동비가 지급된다. 서씨 등은 1만원의 활동비로 독거노인에게 전할 반찬을 만들어 제공한다. 서씨는 “사실 할머니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기에 1만원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라며 “어쩔 수 없이 사비를 써야 하지만 아깝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구 할머니와 장 할머니는 이달에 서씨, 이씨 등과 함께 ‘온천 나들이’에 나선다. 독거노인과의 온천관광은 어버이날 전후에 갖는 적십자사의 연례행사다. 이렇게 5월이면 적십자사는 지역별로 온천 나들이를 비롯한 경로잔치, 수의나눔 등의 행사를 펼친다. 구 할머니와 장 할머니는 벌써 얼굴에 기대가 가득했다. 이씨는 “할머니들이 언제 온천에 가느냐고 저를 볼 때마다 물어보신다.”면서 “그런 모습을 보면 꼭 소녀 같다.”고 전했다. 적십자사는 올해 행사를 2일부터 3000여명의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실시할 예정이다. ●생활안정·가사 지원 서비스도 적십자사는 2005년부터 노인복지활동의 하나로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 1만 4000여 가구에 자원봉사자를 1대1로 연결하고 생활안정서비스와 가사서비스, 정서지원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밑반찬 배달과 일용품, 부식 등을 제공하고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에게는 나들이도 지원한다. 더불어 적십자사는 기업과 연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는 2006년부터 ‘은행사랑나눔 네트워크’를 통해 5억~10억원을 매해 적십자사에 기부하고 있다. 또 우리은행은 온라인 고객을 대상으로 한 기부 프로그램 ‘우리사랑나눔터 효심저금통’을 통해 적십자사의 노인복지 활동을 돕는다. 노인보건도 적십자사의 주요한 활동 중 하나다. 적십자사는 1993년 노인을 위한 건강생활체조를 개발했으며, 2006년부터 노인건강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노인건강교육 지도사를 양성해 오고 있다. 또 2008년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발맞추어 노인요양시설에서 신체 및 가사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력을 양성하는 요양보호사 교육과정을 국가자격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⑦고독속에 사는 농어촌 어르신

    [독거노인 사랑잇기 (1부) 벼랑 끝에 선 노인들 ⑦고독속에 사는 농어촌 어르신

    “오늘 죽지 못하니까 그냥 사는 겁니다. 내일 안 죽으면 또 그냥 사는 것이고….” 전남 순천시 서면 판교리에 사는 김점례(오른쪽·83) 할머니는 20여년 전 회갑에 남편을 잃고 22년째 농촌에서 혼자 지내고 있다. 별다른 희망이 없어 보이는 얼굴에, 말하는 것도 귀찮게 여겼다. 할머니에게는 아들 4명과 딸이 2명이나 있지만, 서울과 수원 등지로 떠나고, 순천 시내에 사는 막내아들이 간혹 잠깐씩 들르곤 한다. 하지만 막내아들 내외도 직장 일로 자주 찾아오지 못하기 때문에 김 할머니의 하루는 익숙한 외로움 속에서 지루하게 연명하는 수준이다. 17년 전 5일장에 나갔다가 버스에서 내리다가 넘어지면서 허리를 크게 다쳤다. 농촌에서 살다 보니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허리가 90도 가까이 굽은 상태가 돼 버렸다. 이제는 한쪽 귀까지 들리지 않아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것도 수월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 집에 텃밭이 있어서 전에는 채소와 나물 등을 가꿔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을 벌었지만, 거동이 불편해져 그마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마루 앞 소 축사는 무너진 채 폐목들이 쌓여 있기만 하다. 정부로부터 매월 받는 기초노령연금 8만 4000원이 할머니 수입의 전부이다. 하지만 전기세와 전화세 등 공과금을 내고 나면 남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 지난겨울에도 비싼 기름값 때문에 보일러를 사용하지 못하고 잠잘 때에만 잠시 전기장판을 이용해 잠시 냉기를 피했다. 그래서 낮에는 따뜻하게 난방이 되는 노인당에 가지만 오후 5시가 넘어 집에 돌아와서는 TV를 켜고 보는 둥 마는 둥하면서 방안에서 새우잠을 잔다. 농어촌 오지 노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몸이 아파서 읍내 등에 있는 병원에 갈 때 차를 갈아타는 것이다. 김 할머니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동안 옆집에 산다는 박덕림(왼쪽·81) 할머니가 묵은 김치를 들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역시 혼자 산다는 박 할머니도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몸이 아파서 며칠 누워 지내다 오랜만에 나왔다는 박 할머니가 김 할머니의 유일한 벗이다. 두 할머니에게 “지금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대답은 한결같이 “아무도 없다. 손자나 자식들도 자주 봐야 정이 드는데 거의 얼굴을 못 보니까 보고 싶은 마음이 안 생긴다.”고 쓸쓸하게 말했다. 두 할머니들은 노인당에서도 ‘왕따’가 있어서 자주 나가지 못한다고 했다. 자식들이 가끔씩 노인당을 들러서 다른 노인들에게 간식거리라도 가져다 주는 노인은 대접을 괜찮게 받지만, 이런 사정이 안 되는 노인은 눈치가 보여서 같이 어울리지 못한다고 한다. 이들에게 노인돌보기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은 유일한 버팀목이다. 농촌은 도시와 달리 자치단체의 말벗도우미 서비스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농촌 27개 마을의 노인 35명을 관리하고 있는 사단법인 ‘희망세상’ 소속 돌보미 남순애(58)씨는 “명절이면 시내에 있는 경로당은 사람들로 북적대지만, 오지 노인들은 이런 혜택도 받지 못해 참혹할 만치 외로움을 안고 산다.”고 말했다. 남씨는 “돌보미들이 약간의 돈을 모아서 반찬거리를 사다 주는 경우가 있다.”며 “노인들이 무엇을 하려고 해도 아무런 방법을 몰라서 매일 무료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글 사진 순천 최종필기자 choijp@seoul.co.kr
  • “중장비 하나 없이… 히말라야 아이들 ‘꿈’ 짓는다”

    “중장비 하나 없이… 히말라야 아이들 ‘꿈’ 짓는다”

    네팔이 늘 그리운 건 산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깊은 골을 만들고 그 안에 행복한 얼굴의 사람들을 품어서다. 엄청난 등짐을 지고도 낯선 이에게 길을 비켜 주며 ‘나마스떼’(‘안녕하세요’라는 산스크리트어. 원래 뜻은 ‘내 안의 신이 당신에게 경의를 표합니다’임.)를 읊조리는 이들, 그리고 수천개의 계단을 올라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 건물은 다 무너지고 교실은 비좁고 캄캄해도 낡은 공책에 ‘희망’을 꾹꾹 눌러 쓰던 아이들이 있었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기로 한 가운데 지난 12일 부처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룸비니주 시리 싯다르타 거텀부타에서 세 번째 학교 기공식이 열렸다. “내가 다닌 히말라야 고봉과 같은 숫자의 학교를 지어 산과 신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던 엄홍길(51) 대장의 약속이 이렇게 진척되고 있는 것은 홍순덕(41) 네팔 지부장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직함이 그렇지, 실은 현지인과 먹고 자며 이들을 부리는 현장소장 역할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내려가는 데 사나흘 걸리는 히말라야 자락에 온갖 건축 자재를 끌어올리는 일만도 보통이 아니다. 중장비도 없이 학교를 짓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비정부기구(NGO)들도 제대로 된 학교 하나 짓기가 힘들어 포기하곤 했다. 충북 제천에서 목조주택 사업을 하다 지난해 3월부터 네팔에 눌러앉은 홍씨와 전화,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거텀부타 마을의 상황은. -기공식과 함께 문을 연 진료캠프에 500여명이 찾아왔고 의류와 문구, 가방 등을 선물받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 학교 건물조차 제대로 없는 이곳에 커뮤니티홀을 포함해 10개의 교실이 들어선다는 생각에 온 마을이 들떠 있다. 본격적인 공사는 오는 24일쯤 시작한다. →어떻게 재단 일을 맡게 됐나. -지난해 3월 말에 엄 대장이 첫 학교로 짓던 팡보체 휴먼스쿨 공사를 마무리하기 위해서 왔다. 일을 맡았던 선교사가 재단과 갈등을 빚었고 준공이 임박했는데도 공사에 진척이 없어 급하게 내가 투입됐다. 한달 반 현지인들을 독려해 공사를 마친 뒤 6월 중순에 귀국해 다시 본업에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고 해 네팔에 돌아왔다.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이 많았을 텐데. -40대 초반은 사업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리를 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다. 2000년 에베레스트, 2003년 로체샤르를 함께 등정했던 엄 대장과의 인연이 소중하고 오지에 학교를 짓는 사업이 보람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2~3년은 고생할 생각이다. →왜 첫 휴먼스쿨이 팡보체에 들어섰나. -엄 대장이 첫 학교의 터로 이곳을 잡은 것은 1986년에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세상을 떠난 셰르파 술딤 도로지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 수많은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찾는 쿰부 지역에서 가장 높은 마을이며 해발고도 4060m가 갖는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보람으로 여기는 건 두 번째 타루프학교겠다. -구입한 자재를 현장에 올리는 데도 위험한 산길로 3시간여를 곡예하듯 가야 하고 우기에는 거의 매일 장대비가 2~3번씩 내리는 데다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주민들은 우기가 끝날 때까지 보수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꿈만 같다. →학교 짓는 데 얼마나 공력이 드나. -자재를 수송하는 데 전체 공사비의 절반이 들 정도다. 인력으로만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기 한달 반 동안은 공사를 못 하고 네팔 명절에는 15일 정도 쉬어야 한다. 돈도 많이 들지만 모든 분들의 마음을 모아 이곳 학생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소중한 학교를 세우고 있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네팔말을 전혀 몰라 손짓 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화물차가 오도 가도 못 하는 경우도 많았다. 트럭을 움직이려고 싣고 가던 모래를 길에 뿌리며 도착하면 모래가 반밖에 남지 않은 일도 여러 번이었다. 말도 안 통하는 주민들과 협상도 했는데 한국에서 이 정도로 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거란 엉뚱한 생각도 들었다. →재단에선 학교만 짓고 운영에 간여하지 않는 건가. -학교를 지어 주었다고 학교 운영이나 교사 배치 등에 간여할 수 없고 간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부 자체가 선의의 일이지만 기득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팔만의 운영 방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존중하되 학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교사나 의약품 지원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지원이 다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지인은. -자기네 학교가 지어진다는 생각에 쉬는 날 현장에 나와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고 벽돌 내리는 일도 함께 했던 아이들이다. 주민들도 호박, 감자 등 반찬거리를 가져다주었다. 성심껏 서로를 대하면 나라와 피부색, 언어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가족과는 어떻게 지내나. -충주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큰아이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해 굉장히 미안했다. 가족들이 지금 하는 일을 많이 응원해 줘 힘이 된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중장비 하나없이…히말라야 아이들 꿈을 짓는다.”(전문)

    “중장비 하나없이…히말라야 아이들 꿈을 짓는다.”(전문)

    네팔이 늘 그리운 건 산이 높아서만이 아니다. 깊은 골을 만들고 그 안에 행복한 얼굴의 사람들을 품어서다.  엄청난 등짐을 지고 가파른 길을 오르내리다 낯선 이와 마주치면 조심스레 비켜 서며 두 손 모아 ‘나마스테(산스크리트어로 ‘내 안의 신성이 당신의 신성에 경의를 표합니다’란 뜻)’를 읊조리는 이들, 그리고 논밭에 잇닿은 수천 개의 계단을 올라 학교로 향하던 아이들. 건물은 다 무너져 가고 교실은 비좁고 캄캄해도 낡은 공책에 ‘희망’을 꾹꾹 눌러쓰던 아이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기억하며 엄홍길휴먼재단이 네팔에 16개 학교를 짓기로 한 가운데 지난 12일 부처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룸비니주 쉬리 싯타르다 거떰부타에서 세 번째 학교 기공식이 열렸다. “내 발 아래 둔 히말라야 고봉과 같은 숫자의 학교를 지어 산과 신이 베푼 은혜에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던 엄홍길(51) 대장의 약속이 이렇게 진척되고 있는 것은 홍순덕(41) 네팔 지부장에 힘 입은 바 크다.  직함이 그렇지, 사실 혈혈단신으로 현지인과 먹고 자며 이들을 부리는 현장소장 역할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큰길까지 내려가는 데만 사나흘 걸리기도 하는 히말라야 자락에 온갖 건축자재를 끌어올리는 일만도 보통 일이 아니다. 더욱이 중장비도 없이 학교를 짓느라 이만저만 고생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나라들의 비정부기구(NGO)들도 제대로 된 학교 하나 짓기가 힘들어 포기하는 형국인데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충북 제천에서 목조주택 사업을 하다 지난해 3월 엄 대장의 간곡한 당부에 넘어가(?) 1년 넘게 네팔에 눌러앉게 된 홍씨와 전화,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룸비니의 그곳 상황은. -기공식과 함께 연 진료캠프에 500여명이 찾아왔고 의류와 문구, 가방 등을 선물받은 아이들이 해맑게 웃는 모습을 보고 가난한 형편에 기본적인 치료도 받지 못해 불치의 병으로 키우고 생필품도 턱없이 부족한 이곳의 생활이 떠올라 가슴이 아팠다. 학교 건물조차 제대로 없는 이곳에 커뮤니티홀을 포함해 10개의 교실이 들어선다는 생각에 온 마을이 들떠 있으며 주민들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본격적인 공사는 24일쯤 시작한다. →어떻게 재단 일을 맡게 됐나. -지난해 3월 말에 처음 네팔에 왔다. 엄 대장이 첫 학교로 짓던 팡보체 휴먼스쿨을 마무리하는 일이었다. 당초 한 선교사에게 일을 맡겼는데 재단과 여러 문제가 있었고 준공이 임박했는데도 공사 진행에 진척이 없어 급하게 날 보낸 것이었다. 한달 반 현지인들을 독려해 어린이날에 학교를 교사들에게 인계한 뒤 6월 중순에 귀국했다. 본업에 전념할 생각이었는데 네팔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없다고 해 돌아와 지난해 추석에 잠시 다녀온 것 빼고는 죽 네팔에서 일하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많이 고민했을텐데. -40대 초반은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바탕으로 사업으로나 가정적으로나 자리를 잡아야 하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자리를 잡지 못하면 인생 후반이 쉽지 않다는 생각도 많이 했는데 2000년 에베레스트와 2002년 로체, 그 이듬해 로체샤르를 함께 등정한 엄 대장과의 인연이 소중하고 오지에 학교를 짓는 사업이 보람도 있고 자신을 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2~3년은 고생할 생각이었다. →왜 첫 휴먼스쿨이 팡보체에 들어섰나. -엄 대장이 첫 학교 터로 이곳을 잡은 것은 1986년에 함께 에베레스트에 오르다 1000m 아래 절벽으로 떨어져 세상을 먼저 등진 세르파 술딤 도로지의 고향이기 때문이었다. 또 수많은 산악인과 트레커들이 찾고 해발고도 4060m에 쿰부 히말라야의 전초기지란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다. →홍 지부장이 정말 자기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두 번째 타루프이겠다. -지난 2월23일 완공한 타르푸 휴먼스쿨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서북 방향으로 95㎞ 떨어진 곳이다. 버스로 6시간 걸린다. 트레킹 명소로 떠오른 랑탕 히말라야의 들머리 트리슐리에서 25㎞ 떨어져 있다. 아래 작은 사진의 옛 학교 건물과 비교하면 정말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 우리네 학교에선 새삼스러울 게 없는 화장실, 급수시설에 주민들 보건소를 겸한 양호실, 컴퓨터실까지 갖췄고 완공식 날 아이들이 난생 처음 타보는 미끄럼틀과 시소 등에서 밤 늦도록 뛰어놀던 기억이 새롭다. →처음에는 엄두가 안 났다고 들었다. -구입한 자재를 현장에 올리는 데도 위험한 산길로 3시간여를 곡예하듯 가야 도착하고 우기에는 거의 매일 장대비가 2~3번씩 내리고 산사태로 길이 막히면 우기가 끝날 때 까지 길을 보수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돌이켜 보면 꿈만 같다. →그렇게 한 채 짓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며 얼마만큼의 돈, 공력이 드는지 알려 달라.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물자 수송이 어렵다. 기계장비를 올리기도 쉽지 않으니 모든 작업을 인력으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걸린다. 우기 한달 반은 공사를 못하고 네팔 명절 인 더사인축제, 띠알 축제로 15일 정도 쉬어야 한다. 자금도 많이 들었지만 재단을 돕는 모든 분들의 마음이 모아져 이곳 학생들에게 꿈을 이룰수 있는 소중한 학교가 세워지고 있다.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는. -네팔말을 전혀 몰라 손짓발짓을 동원해 의사소통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비가 내리면 산사태로 길이 막히는 일도 많았다. 화물차가 오도 가도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모래를 나르는 트럭을 움직이기 위해 싣고가던 모래를 길에 뿌리면서 도착해보니 모래가 반밖에 남지 않은 일도 여러 차례였다. 말도 안 통하는 주민들과 협상하는 일 등을 돌이켜보면 한국에서 이 정도로 했으면 큰 부자가 됐을 것이란 엉뚱한 생각도 했다. →재단에선 학교만 짓고 운영에 대해선 간여하지 않는 건가. -학교를 지어 주었다고 학교 운영이나 교사 배치 등을 관여할 수 없고 관여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부 자체가 선의의 일이지만 기득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네팔만의 운영 방식이 있기 때문에 존중하되 학교의 요청이 있을 때에는 교사 지원이나 의약품 지원 등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무조건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노력 여하에 따라 지원이 다르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팡보체에도 헬스 포스트를 설치하고 심각한 장애 소녀였던 밍마참지를 국내에 초청해 무상으로 외과 수술을 받게 하고 간호 교육을 받게 한 뒤 헬스포스트에 간호사로 배치해 간단한 진료와 약품을 나눠주게 했다. 급여는 물론, 의약품도 꾸준히 보내고 있다.  학교에도 영어와 예체능 교사의 급여를 지원하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현지인은. -자기네 학교가 지어진다는 생각에 쉬는 날에 현장에 나와 삽질도 하고 모래도 나르고 벽돌 내리는 일도 함께 했던 아이들이다. 우리 애들처럼 느껴졌고 학생들 역시 먼저 달려와 “나마스테!” 인사하며 삼촌처럼 따랐다. 주민들도 호박, 감자 등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심전심이란 말대로 성심껏 서로를 대하면 나라와 피부색, 언어의 차이는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2000년 에베레스트, 2002년 로체, 2003년 로체샤르 등정한 산악인으로 알고 있다. 산악인 엄홍길을 평가한다면. -청주대 조경학과 다니며 산악부 활동을 했는데 늘 존경의 대상이었다. 2003년 엄 대장과 함께 로체샤르 오르면서 더욱 존경하게 됐다. 좋은 일에 뜻을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산에서 받은 은혜와 에너지를 더 넓은 곳으로 환원한 데 대해 경의를 표한다. →재단에 기부한 이들로부터 어떤 찬사를 듣는지. -많은 격려를 듣지만 “지금 나 자신에게 충실한가?”라고 가끔 묻는다. 네팔과 이곳 어린이들에게 순수한 마음과 지극한 사랑을 변함없이 베풀고 나에게도 충실하게 생활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전기나 인터넷 모두 열악할텐데 여가는 어떻게 보내나.  (홍 지부장은 19일 전화 통화에서 답변과 사진 30여장을 이메일로 전송하는 데 14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푸념했다.) -네팔에 처음 왔을 때는 부족한 것들에 불평도 많이 하고 힘도 들었지만, 지금은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네팔의 입장에서 생각하자 편안해졌다. 짬이 나면 가까운 이들과 카트만두밸리의 산행코스를 오른다. 걸으면서 ‘난 누구인가?’ 생각하며 돌아보는 시간을 만들고 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어려움이 상당할 것 같다. -충주에서 초등학교 보육교사로 일하는 아내와 아들 둘이 있는데 올해 큰아들의 중학교 입학식에 참석하지 못해 굉장히 미안한데 가끔 전화로 적응도 잘하고 재미있게 지내는 것 같아 안심이 된다. 힘들어하는 가족들이 지금 하는 일에 대해 많이 응원해주고 있어 힘이 된다. →새삼스럽게 돋는 의문점 하나. 네팔이 필요로 하는 많은 것 중에 왜 학교인가. -제대로 된 교육과 의료 시설도 없는 곳에서 부모가 살던 것처럼 가난을 대물림하는 실정이다. 이 아이들에게 부모처럼 포터와 셰르파로 사는 게 아니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심어주고 싶었다. 바로 그게 학교다. 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길섶에서] 삼청동/최광숙 논설위원

    오랜만에 나들이 간 삼청동. 가볍게 걷기 좋아 간 곳인데 주말이라 사람들의 물결이 넘실댄다. 거의 한줄로 서서 걸어야 할 정도다. 삼청동 바로 옆 동네, 조선시대 여덟 판서를 배출했다고 이름 붙여진 팔판동에 살았던 터라 이곳에 오면 옛 생각이 난다. 정독도서관에서 삼청동 길로 접어드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니 내 풋풋한 20대의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커트하러 갔다가 미용사 꾐에 빠져 내 생애 처음으로 뽀글뽀글 파마를 하게 된 미용실 자리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당대 여학생들이 즐겨 읽던 잡지 ‘여학생’ 출판사 터는 예쁜 장신구들로 가득차 있다. 반찬거리를 사 먹던 코딱지만 한 슈퍼는 삼청동의 눈부신 개발바람에도 꿋꿋하게 버티더니만 이젠 사라졌다. 도로변 차들의 질주에 먼지가 뽀얗게 쌓인 작은 창문이 있던 작은 집은 화려한 옷들로 여인들을 유혹한다. 잠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은 듯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내 젊은 날의 추억이 담긴 삼청동, 이젠 더 변하지 말아다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최근 심한 두통… 자고 일어나니 코피 범벅”

    일본 후쿠시마 원전 인근에서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한 남성이 인터넷에 올린 글로 열도가 시끄럽다. 일본 최대 커뮤니티사이트 니찬네루(2ch)에 문제의 글이 올라온 것은 지난 1일. 이 남성은 자신을 정부가 대피령을 내린 원전 반경 20㎞ 이내 지역인 나미에를 떠나지 않은 채 계속 살고 있다고 소개한 뒤 근황을 전했다. 그는 건강 상태에 대해 “최근에는 심한 두통을 앓고 있다.”면서 “자고 일어나니 코피 범벅이 돼 있다. (방사능에 노출돼도) 그렇게 빨리 죽는 것은 아닌 것 같다.”고 적었다. 또 “조깅을 하면 정신을 잃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피난을 생각하기도 했었다는 이 남성은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집을 잃고 나서 살아갈 기력도 없어 이대로 사라져버릴 것”이라면서 원전 인근에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처음 글이 올라오자 네티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남성은 스마트폰인 아이폰의 위치정보 서비스를 이용, 자신이 원전에서 8.9㎞ 떨어져 있음을 증명했다. 또 종이에 ‘2011 4/3’이라는 날짜와 자신의 사용자 아이디를 적어 마을 이정표나 전신주 등에 붙인 뒤 사진을 찍어 게시판에 올렸다. 오토바이를 타고 검문을 피해 대피 구역 밖에서 식료품을 구입하고 있다는 이 남성은 “식사는 (반찬 없이) 쌀만 가지고 하고 있다. 남은 돈은 350만엔(약 4500만원) 정도인데 저금이 바닥나는 게 먼저일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게 먼저일지…”라고 밝혀 안타까움을 더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편의점 여성·어린이 ‘입 맛 잡기’ 경쟁

    핸드백에 쏙~, 한입에 쏙~. 편의점들이 여성과 어린이 고객 입맛을 잡기 위해 나섰다. 보광훼미리마트는 여성들과 아이들이 선호하는 메뉴에 한입 크기의 반찬으로 먹기 간편한 도시락 3종을 출시했다. 실속 치즈 돈가스 도시락(210g), 실속 비엔나 도시락(200g), 실속 닭갈비 도시락(205g) 등은 각 1800원으로, 편의점 도시락 중 가장 저렴한 가격이라고 훼미리마트는 밝혔다. 산뜻한 오렌지색 체크무늬로 도시락 포장도 새로 바꾸고 크기는 기존에 비해 3분의2가량 줄여 핸드백에 넣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도 31일 앞으로 고객층을 세분화해 먹을거리를 출시하겠다고 밝히고 1탄으로 여성과 어린이 고객을 위한 제품을 내놨다. 한 손으로 들고 먹기 편하다는 점을 강조한 샌드위치 ‘원핸드 샌드’는 2030여성들에게 제격인 상품이다. 섭취 시 내용물이 흘러내리거나 위생상 불편했던 점을 보완했다. 고구마샐러드, 에그샐러드 2종이 각 1000원으로 칼로리도 낮고 가격도 저렴하다. 또한 연세우유와 공동 개발한 카페인 없는 커피대용 음료인 ’밀라노의 오후 오르조 라떼’(250㎖, 1500원)도 선보였다. 이탈리아어 ‘오르조’는 보리라는 뜻. ‘오르조 라떼’는 100% 보리를 사용해 식이섬유가 풍부하고 카페인이 전혀 없지만 커피의 맛과 향은 그대로 유지한 것이 특징이다. 커피 음료는 좋아하지만 카페인 때문에 마시기 어려운 임산부, 어린이도 부담 없이 커피 맛을 즐길 수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차 한잔 하실까요] 진익철 서초구청장

    [차 한잔 하실까요] 진익철 서초구청장

    진익철(60) 서초구청장은 “우리 구내식당은 주민들에게도 자랑거리”라고 말을 건넸다. 손님을 모실 때도 고급 음식점보다 구내식당을 선호한단다. 그를 30일 서초구청 구내식당에서 만났다. 편한 장소여서 인터뷰는 무겁지 않았다. 구수한 사투리가 섞인 진 구청장과의 대화를 ‘키워드’로 엮어 본다. ●구내식당 자연히 구내식당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직원들이랑도 식당에서 자주 식사를 하시나 보죠?”라고 묻자 “그럼요. 직원들과 돌아가며 식사하면서 표정을 살피는 거죠. 물론 구를 대표하는 자리지만 내부 고객의 마음부터 느끼는 게 구정의 첫 단추라고 생각해요.”라고 진지한 답변이 이어진다. 그렇다면 진 구청장에게 이런 식사 자리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얼마 전에는 강남대로 노점상을 단속하는 직원들과 식사를 하며 애로사항을 들었어요. 구내식당은 저와 직원들 간의 소통의 장입니다.”라고 말한다. 이내 호기심이 생긴다. 과연 직원들이 애로사항을 순순히 털어놓을까. 구청장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닐까. 우문현답이 되돌아왔다. “맞아요. 처음에는 얘기 잘 안 해요. 그래서 예전엔 폭탄주를 이용하기도 했죠. 하하…. 그런데 그건 취중 발언이니까 지양해야죠. 그래서 계속 들으려고 추궁해요. 그러면 정말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들이 쏟아지죠.” ●로맨스 진 구청장의 과거사(?)를 캐물었다. 스스로 ‘울산 촌놈’이라고 말하는 진 구청장은 27세 때 대학에 입학한 늦깎이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를 다녀온 뒤 과수원 농사를 짓기도 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공무원이 되기로 결심했다. 대학 3학년 시절인 1979년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줄곧 서울시에서 공직의 길을 걸었다. “대학 때 학생들이 ‘영감이 학교에 들어왔다’고 장난도 많이 쳤죠. 마음고생도 했고요. 하지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고생을 해 보니 남 힘든 거 알겠더라고요.” 맞선을 본 지 한달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웃는 진 구청장. 30차례 이상 선을 봤지만 아내(김경희씨)를 보는 순간 ‘아, 내 사람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버지께 며느릿감을 빨리 소개시켜 드리려는 마음에 부산에서 만난 지금의 아내를 데리고 울산까지 택시를 타고 갔죠. 당시 수습공무원 월급이 16만원이었는데, 택시비가 5만원이나 나왔어요. 아직도 아내랑 그 얘기를 하면 배꼽을 잡아요.” ●귀양살이 그가 ‘안정된’ 공무원 생활을 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진 구청장의 이력서는 본인 말대로 ‘정신이 없다’. 30여년 공무원 인생, 맡았던 보직도 수십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2차례 해외 파견, 대통령 비서실 등 근무 반경도 넓다. “베이징에 4년, 뉴욕에 1년 6개월 파견됐죠. 사실 인사에서 밀려나 일종의 ‘귀양살이’를 한 것인데, 그때 배운 게 너무 많았어요. 다문화 사업을 기획할 때, 당시 익힌 감각이 약이 됐죠.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배울 수 있는 것 같아요.” 진 구청장은 가장 기억에 남는 보직으로 2001년 맡았던 서울시 ‘공보관’을 꼽는다. 대(對)언론 홍보 업무를 맡으며 시정의 큰 그림을 한눈에 볼 수 있었던 까닭이다. “민감한 현안이 생기면 공보관은 시의 모든 부처와 긴밀히 협동을 해야 합니다. 해결책을 논의하고 언론, 더 나아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는 자리가 공보관이거든요. 이미 모든 현장에 다 다녀온 셈이 되니 이만한 보직이 없었죠.” ●소통 최근 ‘소통’은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돌고 있는 말. 조직의 수장 가운데 소통을 말하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하지만 진 구청장의 소통 어젠다는 더 구체적이다. 일단 결재 시간을 대폭 줄였다. “관료제이다 보니 어떤 사안을 보고하는 데 시간이 너무 걸려요. 주무관은 팀장한테, 팀장은 과장한테, 과장은 국장한테, 국장은 부구청장한테, 부구청장은 청장한테…. 어떨 땐 결재가 15일 뒤에 올라와요. 이러면 주민들이랑 소통이 가능하겠어요? 그래서 중요 현안이 있으면 이들이 모두 모여 의사 결정을 해요. 그렇게 처리한 현안이 지금까지 200건이 넘습니다.” 구청장을 하면서 가장 감동을 받았을 때도 주민과 소통을 할 때라고 했다. 진 구청장은 출근을 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구청 홈페이지의 ‘구청장에게 바란다’를 확인하는 것이다. 매일 20~30개의 지적사항이 올라오는데 곧바로 해결하도록 지시한다. 이따금 해당 주민에게 불만사항이 잘 해소됐는지 전화를 건다. “구민들은 이런 세세한 모습에 고마워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저도 감동을 받고요.” 다시 구내식당 이야기로 인터뷰를 매듭지었다. “아, 구내식당에서는 남은 반찬을 포장해서 값싸게 팔아요. 맞벌이 부부의 가사 부담도 덜고, 친환경 식재료로 만들어 건강도 챙기고, 잔반도 처리하고, 구 예산에 기여도 하는 일석사조(一石四鳥)입니다. 이 기자도 반찬 좀 사서 구 예산에 기여하시죠. 하하….”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요즘, 엄마한테 해선 안되는 말? “고등어 반찬”

    동일본 대지진이 원전 사태와 방사능의 바닷물 유출로까지 번지면서 수산물 가격이 들썩거리고 있다. 일본산은 냉장(생물) 수산물이 중심인데 냉동 수산물까지 덩달아 오르는 추세다. 수산물 검역기간이 10일로 늘어난 것도 가격 오름세를 부추기는 한 요소다. 22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에서 들여온 수산물은 총 8만 1847t이다. 이 중 냉장명태(생태)가 1만 5998t(19.5%)으로 가장 많고 냉동명태(동태)는 1만 5072t(18.4%)으로 두번째다. 이어 고등어(8718t), 꽁치(6313t), 갈치(1667t) 등을 일본에서 수입한다. 수입 생태와 수입 생물 고등어는 100% 일본에서 수입된다. 일본산 수입 생태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한 마리당 경락가격이 지난 14일 6750원에서 21일 2500원으로 뚝 떨어졌다. 방사능 유출에 대한 두려움으로 수요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반면 고등어 값은 오르고 있다. 지난해 한파 등의 영향으로 국내 조업량이 줄어 일본산 수입물량이 늘어난 측면이 강하고, 정부가 물가안정 차원에서 냉동고등어에 무관세를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름세다. 냉동고등어는 일본뿐만 아니라 노르웨이, 중국 등에서 수입된다. 특히 도매가격은 소폭 내리고 있는 반면 소매가격은 반대로 오르고 있어 매점매석이 우려되고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에 따르면 고등어(중품 1kg) 도매 가격은 11일 4520원에서 18일 4460원으로 하락한 뒤 22일까지 변동이 없다. 반면 고등어 한 마리당 소매가격은 11일 3553원에서 21일 4223원으로 올랐다. 냉동고등어는 중품 ㎏당 4520원이던 도매가격이 지난 14일 4460원으로 소폭 떨어졌다. 반면 소매가격은 일본 지진이 발생한 11일 2750원에서 2875원으로 오른 데 이어 15일 2925원으로 올랐다. 정부는 지난 1월 냉동고등어 수입 전량에 대해 관세율을 10%에서 무관세로 내린 바 있다. 비슷한 상황은 냉동삼겹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정부는 25%인 관세율을 영세율로 내렸으나 지난주부터 돼지고기 값은 오히려 소폭 오르고 있다. 이와 관련,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왜 그런지 분석하고 무관세 수입물량이 시장에 차질 없이 풀리도록 점검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뒷돈 거부땐 위생국 동원 식당폐업” “영사들이 우리의 피눈물을 등졌다”

    상하이 교민들의 울분은 컸다.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영사들이 덩신밍의 협박과 금품 갈취에 시달리는 교민들의 참상은 눈감고, 덩을 비호하며 불륜을 저지르거나 덩을 통해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만 혈안이 됐기 때문이다. 교민들은 “영사들이 우리의 피눈물을 등졌다.”면서 “정부합동조사단에서 덩이 교민들에게 저지른 행태도 조사해 달라.”고 절규했다. 덩의 패악은 4~5년 전 식당, 반찬가게, 의류점, 마사지숍 등 교민들이 운영하는 영세업소에서 ‘공짜 대접’을 강요하거나 소액의 금품을 갈취하는 데서부터 시작됐다. 교민 A씨는 “식당에서 수백 위안어치를 공짜로 먹거나 옷가게에서 옷을 그냥 들고 간 뒤 몇주 입다 싫증나면 다시 돌려주는 등 악행이 말도 아니었다.”면서 “아무도 덩에게 돈을 내라고 요구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덩은 매월 수백~수천 위안씩 상납을 강요하기도 했다. 교민 B씨는 “덩이 대놓고 협박을 하거나 편의를 봐주겠다며 갈취하는 액수는 천차만별”이라며 “중국 고위직을 들먹이며 협박해 ‘뒷돈’을 뜯었다.”고 증언했다. 덩은 중국 공안이나 위생국 등의 공무원을 움직였다. 위생국은 식당 등에 사업자등록증을 내주고 감사를 한다. 교민들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어 해당 공무원들의 권한은 막강하다. 교민 C씨는 “식당은 문제가 없을 수 없다.”면서 “위생국에서 나와 검사하면 ‘위생국 법령’에 뭐라도 걸리게 돼 있다.”고 말했다. 덩이 위생국 공무원을 동원해 식당 문을 닫게 한 사례도 부지기수다. 교민 D씨는 “분식집, 한식당 등 덩의 금품 상납 요구를 거부해 위생국 단속으로 문 닫은 업소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고 전했다. 교민 E씨는 “덩은 교민 앞에서 위생국에 전화해 한 식당의 단속을 요청한다. 그러면 다음날 어김없이 위생국에서 나왔다.”면서 “실제 눈앞에서 봤기 때문에 갈취를 당해도 후환이 두려워 영사관에 신고를 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덩의 욕심은 나날이 커졌다. ‘라이선스 브로커’ ‘부동산 브로커’를 자처하며 점차 큰 액수를 강탈했다. 가게의 경우 분점을 낼 때 까다로운 수속 절차를 간단하게 해주겠다며 수만~수십만 위안에 달하는 수수료를 착복했다(일명 ‘라이선스 브로커’). ‘부동산 브로커’를 자처하며 교민들의 투자를 강요한 뒤 차익의 반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한 교민은 “개발사 사장을 알아 다른 사람보다 5% 이상 싸게 살 수 있다.”면서 “아파트 등을 구입하게 한 뒤 바로 되팔거나 1~2년 뒤 집값이 오르면 팔아 생긴 차익을 반반씩 나누도록 종용했다.”고 말했다. 다른 교민은 “다들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돈을 줬다.”면서 “떼인 사람도, 이익을 본 사람도 덩이 더 큰 요구를 할까 봐 전전긍긍했다.”고 토로했다.덩은 최근 활동무대를 구베이(古北)에서 푸둥(浦東)까지 확장했다. 교민들은 “산둥성 시골 출신인 덩이 교민들의 피를 빨아 5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상하이에서 유력 재력가로 컸다.”면서 “이런 실상을 알고 있는 영사들이 덩과 놀아났으니, 천인공노할 일”이라고 탄식했다. 상하이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덩신밍, 교민들 고혈짜내 ‘떵떵’

    덩신밍, 교민들 고혈짜내 ‘떵떵’

    ‘상하이 스캔들’의 장본인 덩신밍(鄧新明·33)이 상하이 교민들의 고혈을 짜내 막대한 부를 축적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중·대기업은 상하이 정부에 미치는 덩의 영향력을 이용해 사업 편의를 도모하고자 덩을 고문으로 올리는 등 로비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총영사관은 민원 등을 통해 이런 심각성을 알고서도 눈감아 줘 교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14일 서울신문이 입수한 단독 문건과 이를 토대로 상하이 현지 교민 등을 확인 취재한 결과 덩은 4~5년 전부터 교민들을 협박해 금품 갈취 등의 방법으로 재산을 불렸다. 덩은 협박 수단으로 상하이 공안이나 위생국 등 정부 관료들을 활용했다. 한 교민은 “식당의 경우 돈을 주지 않거나 말을 듣지 않으면 위생국 관리들을 동원해 검사하게 한 뒤 문을 닫게 했다.”면서 “덩은 중국 고위직을 들먹이며 교민들을 협박해 ‘뒷돈’을 뜯었다.”고 털어놨다. 교민을 상대로 한 덩의 패악은 ▲교민 운영 식당, 반찬가게, 옷가게 등에서의 ‘공짜’ 대접 강요 ▲교민 업주들에게 매월 수백~수천 위안씩 상납 ▲가게 분점 낼 때 수속 절차 간소화 명분 수만~수십만 위안 수수료 착복 ▲아파트 등 투자 종용 뒤 되팔아 시세 차익 반분 요구 등이다. 덩은 이렇게 부정 축재한 돈으로 BMW3(회색 차량)를 몰고, 수십억원에 달하는 아파트와 빌라에 사는 등 호화생활을 누렸다. 카르티에, 구치 등 명품 옷·가방·귀금속 등으로 치장하며 재력가로 행세했다. 복수의 교민들은 “덩은 상하이 교민들의 피를 빨아 재산을 모았다.”고 토로했다. 상하이 김승훈기자 hunnam@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옴부즈맨 칼럼]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인가/강청완 경희대 언론정보학부 4년

    일고여덟살 무렵부터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신문을 펼치는 사람은 나였다. 아침에 눈만 뜨면 내복바람으로 달려나가 신문을 집어들고 와서 먼저 펼쳤던 것이 ‘TV편성표’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색연필까지 들고서 만화영화의 편성시간대에 체크를 하고, “~하고 마는데…” 하고 끝나는 프로그램 예고기사를 두근거리는 맘으로 읽기도 했다. 여덟 살 꼬마에게 신문읽기는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의식이었다. ‘신문사랑’은 계속되었다. 열살 때는 연재소설에 맛을 들였다. 그런데 그 내용이 지금 생각해도 상당히 야했다. “보지 마라.”는 부모님의 핀잔은 어린 가슴에 불을 댕겼고, 그 이후로 아침마다 가장 먼저 신문을 읽고 나서는 안 읽은 척, 새 신문인 것처럼 각을 잡아놓곤 했다. 내용도 내용이거니와 몰래 읽는 스릴이 최고였다. 나이가 들고 관심의 영역이 넓어지면서 스포츠 섹션, 시, 짤막한 칼럼, 독자참여란이나 오피니언 등의 순서로 ‘열독 코너’의 수준이 높아지고 범위가 확장되어 갔다. 서울신문에서 요즘 가장 즐겨 읽는 코너는 토요일자 서평 섹션이다. 마음만큼 책을 읽지 못하는 욕구불만을 서평으로 대리만족하곤 한다. 이렇게 자잘한 재미를 찾아 신문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신문과 친해지고 그 이로움을 알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하여 신문을 읽는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얻고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소소한 즐거움이 있기에 신문을 집어들게 된다. 매일 아침 펄떡거리는 새 뉴스를 상에 올리는 신문이지만 고정적으로 즐겨 찾는 밑반찬 같은 코너가 있다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과 위안은 자못 큰 것이다. 그런 면에서 서울신문은 ‘재미있는’ 신문일까. 눈에 들어오는 편집과 디자인 덕에 전체적으로 읽어 나가기에는 쉬운, 젊은 느낌의 신문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을 붙일 만한 피처기사들이 상대적으로 적거나 취약하다는 점은 아쉽다. 유머는 한물간 것이고, 날씨는 지면 중간 애매한 곳에 있어 가독률이 떨어진다. 만화, 만평, 운세는 다른 신문과 별반 차이가 없다. 풍부하고 충실한 내용 이외에도 독자의 충성도를 높여줄 ‘갈고리’를 추가로 장착할 것을 제안한다. 서울신문은 지난 1954년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연재하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한국 신문소설의 역사, 나아가 현대문학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전자책을 읽는 시대지만 여전히 연재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전력을 살려 세간의 화제를 불러일으킬 만한 실험적인 작품의 연재는 어떨까. 서평이나 문화면에서도 차별화를 권한다. 서평 전문기자의 충실하고 풍부한 서평은 지금도 좋다. 책의 주제를 쉽게 함축한 디자인에는 눈이 덜컥 가서 걸린다. 하지만,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하다. 그냥 화제작이나 신간만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출간된 지 오래되었지만, 다시 읽어 볼 만한 책이라든지 특정 주제의 책을 묶어 소개하는 식으로 기준을 다양화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구색갖추기용 지면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 어느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이 신문을 읽을 때 먼저 1면을 대충 훑어보고 그 다음 뒤로 넘겨 신문을 펼친다고 한다. 오피니언 면에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좋은 거리가 ‘길섶에서’와 ‘씨줄날줄’ 이다. 주제와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담담히 풀어낸 글은, 편하게 앉아 현명한 인생선배의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 같아 좋다. 기사를 읽기 전 혹은 후에 쉬어갈 수 있는 코너가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알차고 풍부한 내용이라도 쉼 없이 읽어 내려면 생각만 해도 숨이 찬다. 물론 그런 것이 신문의 본질은 아닐 것이다. 때로는 정공법 말고 다른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젊은 층이 신문을 외면하는 것은 ‘재미가 없기 때문’도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어릴 적 그 설렘을 다시 떠올리며 깊이 있는 신문, 살아있는 신문에 더해 재미있는 신문, 정이 가는 서울신문이 되기를 기대한다.
  • 전략 차별화… 편의점의 도약

    지난해 대다수의 유통연구소는 올해 가장 높은 신장세를 거둘 업태 가운데 하나로 편의점을 뽑았다. 근거리 이점과 상품 경쟁력 강화가 요인으로 꼽혔다. 이런 예상에 걸맞게 연초 편의점들의 행보가 활발하다. 물건값이 비싸다는 곱지 않은 시선을 받던 과거와 달리 최근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 것. 물가가 고공 행진하는 가운데 대형마트나 슈퍼마켓에서 무의식 중에 과소비를 하게 돼 장보기를 꺼리는 이들이 편의점의 소용량, 저가의 자체브랜드(PB) 상품에 손을 뻗고 있는 것. 업체들 또한 차별화를 위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상품들을 내놓으며 매력을 높이고 있다. 훼미리마트에 따르면 지난달 매출이 전년 동월 대비 118% 늘었다. 특히 장바구니 물가와 음식점 가격 인상의 영향으로 먹을거리의 매출이 급신장했다. 편의점 먹을거리는 과거 비싸기만 하고 맛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요즘은 다르다. 훼미리마트가 지난달 첫선을 보인 즉석 국밥은 역대 도시락 가운데 최대 실적을 거뒀다. 인스턴트 수프가 아닌 가마솥에서 직접 끓인 국밥을 표방한 이 제품은 출시 한달 만에 30만개가 넘게 팔렸다. 이에 자극받아 비빔밥 도시락 2종도 8일 새로 선보이며 당당히 음식점을 경쟁 상대로 삼았다. 저렴한 한끼에 대한 기대가 높을 것으로 예상하고 전통비빔밥(320g·2500원), 산채비빔밥(320g·2500원)을 품목당 2만여개 발주했다. 훼미리마트는 지난해 12월 방송인 홍진경과 손잡고 소규격 수제반찬 ‘더찬’ 4종을 선보였다. 한끼 식사용으로 적당한 50g 용량으로 각각 2000원이며, 출시 이후 매월 10% 이상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같은 4학년인데…우린 왜 돈 내나”

    “같은 4학년인데…우린 왜 돈 내나”

    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성동구 금옥초등학교 급식소. 친환경 무상급식 첫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2·3·4학년생과 학부모들을 모아 놓고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라며 ‘친환경 무상급식’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학부모님 부담을 경감하는 일입니다. 이는 민주주의의 성과이자 발전이고, 역사적인 민주주의의 작은 축제입니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행사 ‘주역’인 2~4학년생이 ‘공짜 밥’을 먹을 때까지 5·6학년생들은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눈치 빠른 6학년 김모(13)군은 “누구는 돈 내고 먹고, 누구는 아니고…. 기분 나쁘다.”고 투덜댔다. 비슷한 시각 송파구 문덕초등학교. 4학년 김모(11)양은 “다른 학교는 4학년까지 무상급식인데 왜 우리는 돈 내고 먹어야 되는 거죠.”라며 되묻는다. ‘반쪽짜리’ 무상급식이 연출한 교육 현장의 뒷모습이다. ●시교육청 예산부족… ‘반쪽 급식’ 우려 이날 21개구 초등학교에서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무상급식이 이뤄졌다. 반면 강남·서초·송파·중랑구 등 4개구에서는 1~3학년을 대상으로만 무상급식이 실시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예산상 3학년까지만 무상급식을 시행했다. 구청장이 민주당 소속인 21개 자치구에서는 4학년 급식비를 지원했다. 이날 금옥초등학교에서는 첫 메뉴로 찹쌀현미밥, 배추된장국, 삼치간장구이, 오이달래무침, 총각김치가 나왔다. 아이들은 급식을 받자마자 먹기 시작했다. 밥과 반찬이 한입 가득 차 있어도, 떠드는 소리는 왁자지껄했다. 밥맛이 없어 깨작거리는 아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3학년 윤영삼(9)군은 “이전 급식도 맛있었지만 오늘 급식이 더 맛있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같은 반 서현수(9)군은 “내가 봤을 때는 달라진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같은 맛이다.”고도 했다. 4학년 위소연(10)양은 “무료 급식이어서 기대된다.”면서 “가계 부담을 덜 수 있어서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신다.”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학부모들 “생색 내기” 두 딸이 금옥초교 4학년과 6학년에 다니는 윤지현(38·여)씨는 “6학년인 딸의 월 급식비로 4만 8000원(우유 포함)을 내고 있는데, 내년이면 두 딸의 급식비를 모두 내야 한다.”면서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공약으로 내세웠으면 전면적으로 해야지 1~4학년까지만 하는 것은 생색 내기”라고 질책했다. 노원구의 전모(46) 주부는 “무상급식으로 아이에게 학습지를 하나 더 시킬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준·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맥주는 차갑게 해서 마셔야 좋다?

    맥주는 차갑게 해서 마셔야 좋다?

    “정부가 비용을 댄 연구들에 의해 다량의 마블링이 결코 쇠고기의 연한 육질과 맛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러나 마블링이 풍부한 ‘프라임’ 쇠고기의 지위는 끈질기게 유지됐으며 미국은 지방 밀도를 고기 품질의 주된 기준으로 삼는 세 나라 가운데 한 나라가 되었다. 다른 두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화학자 눈으로 추적한 음식 세계 ‘세상 모든 음식에 대한 과학적 지식과 요리의 비결’이란 부제를 단 신간 ‘음식과 요리’(해롤드 맥기 지음, 이희건 옮김, 백년후 펴냄)에 나오는 내용이다. 부제만큼 내용도 방대해 1328쪽에 이르는 책은 백과사전을 방불케 한다. 저자는 ‘주방의 화학자’ ‘요리의 과학자’로 불리는 미국의 화학자다. “한국의 김치는 밥이라는 다소 단조로운 맛을 가진 음식에 필수적으로 딸려 나오는 반찬이다./…/김치는 온전한 배추의 줄기와 잎사귀들을 매운 고추, 마늘, 갖가지 채소, 젓갈과 함께 발효시켜서 만든다. 사과, 배, 참외 등의 과일을 넣기도 한다. 비교적 많은 소금을 쓰며, 상당히 낮은 온도에서 발효시킨다.” 미국인이 썼지만 한국의 김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등장한다. 저자의 전공이 화학인 만큼 화학자의 눈으로 들여다본 음식의 세계가 설명된다. ●마블링은 美 소농장주 로비 결과 맥기는 화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바다 생물과 민물 생물의 맛은 왜 다른지, 열은 과일과 채소의 성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생선살은 희고 연한데 왜 쇠고기는 붉고 질긴지 등을 설명해 준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음식 상식도 바로잡아 주는데 대표적인 예가 앞에서 예로 든 쇠고기에 촘촘히 박힌 지방을 뜻하는 마블링이다. 마블링은 흔히 맛있고 좋은 쇠고기의 표식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저자는 마블링을 쇠고기의 등급 기준으로 삼은 것은 미국 소농장주협회의 로비 결과일 뿐이라고 말한다. ●잘못된 음식 상식 바로잡아줘 또 미국 정부 자문위원들은 성인들에게 골다공증을 예방하고자 하루 1ℓ의 우유를 마실 것을 권장했지만 이러한 권고는 특정 음식에 대한 지나친 편중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맥주 온도에 관한 편견을 깨는 이야기도 재미있다. 맥주를 얼음처럼 차갑게 해서 캔이나 병째 마시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습관은 갈증을 없애 주는 가벼운 맥주면 괜찮지만 나름의 풍미를 가진 맥주들에는 온당치 않은 처사라는 게 맥기의 설명이다. 어떤 음식물이든 찰수록 풍미가 덜해진다는 것. 라거 맥주는 대개 냉장고 온도보다 좀 높은 10도 정도로 마시는 것이 가장 좋으며, 윗면 발효한 에일은 서늘한 실내 온도인 10~15도 정도에서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음미할 만한 맛을 지닌 맥주들은 유리잔에 따라 이산화탄소 일부를 날려 보내고, 까칠한 느낌을 완화시킨 뒤에 마시면 색깔과 거품을 더 잘 즐길 수 있다. 음식에 얽힌 역사 이야기도 흥미를 자아낸다. 영국 테이트갤러리를 만든 헨리 테이트는 과립형 설탕을 만드는 장치를 개발해 떼돈을 벌었으며 그 돈으로 미술품을 수집해 테이트갤러리를 열었다. 7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최수종씨 등 ‘100인 이사회’ 연예인·대학생 사랑의 밥 나누기

    [독거노인 사랑잇기] 최수종씨 등 ‘100인 이사회’ 연예인·대학생 사랑의 밥 나누기

    25일 오전 8시 서울 이화동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일회용 도시락통에 흰 쌀밥을 담는 사람들 가운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바로 태조 왕건으로, 대통령으로 TV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탤런트 최수종씨였다. 연예인 봉사단체 ‘좋은 사회를 위한 100인 이사회’ 이사장인 최씨는 이날 부인 하희라씨 등 연예인 13명, 대학생 40여명과 함께 ‘독거노인을 위한 사랑의 밥 나누기’ 활동을 펼쳤다. TV 속 배우가 아닌 평범한 ‘나눔인’으로 참여했지만, 인기 연예인들의 등장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었다. 종합복지관에서 도시락배달 봉사를 한다는 이수련(67) 할머니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배우들을 보니 신기하다.”면서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도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일하지는 않는데, 참 고맙고 대견하다.”고 말했다. 최씨 등은 종로구에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도시락을 배달했다. 참여한 연예인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남능미씨는 종합복지관에서 30여분 떨어진 창신동의 독거노인댁을 사회복지사들과 함께 방문했다. 남씨는 “그동안 받은 사랑을 부족하나마 돌려 드리는 것 아니겠느냐.”며 “노인들을 직접 방문해 식사도 전하고 건강도 확인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봉사”라고 말했다. 남씨는 도시락 배달을 마치고 연이어 시작된 무료 점심 급식에서 노인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으며 인사를 건넸다. “체하지 않도록 급하게 드시지 마세요.” 여배우가 직접 말을 건네자 노인들은 아이처럼 “함께 사진을 찍자.”며 반가움을 전했다. 김흥수씨 등 배우들은 최수종씨와 함께 출연하는 드라마 ‘프레지던트’ 촬영을 아침까지 마치고 행사에 참여했다. 이들은 점심 급식판을 노인들이 앉은 자리까지 전하고 청소 등 뒷정리까지 하며 복지관 곳곳을 챙겼다. “모자란 반찬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인기 여배우 왕지혜씨는 노인 한분 한분에게 부족한 반찬과 밥을 챙겨 드렸다. 홍창주(70) 할머니는 “꼭 손녀를 보는 것 같다.”며 반가워했다. 대학생 김기현(21·여)씨는 “오늘 자리를 통해 봉사의 의미와 더불어 노인들의 현주소와 독거노인 문제를 다시 한번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1만여 한국팬 영혼 울린 ‘원더풀 투나잇’

    1만여 한국팬 영혼 울린 ‘원더풀 투나잇’

    별다른 밑반찬도 내지 않고 단품으로 승부를 보는 맛집들이 있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얘기다. 지난 14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둘째아들 김정철의 싱가포르 원정 관람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국 출신 기타리스트 에릭 클랩턴(66)의 내한공연이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설픈 한국말 인사 대신 곡부터 연주20일 서울 송파동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 흔히들 내한공연을 온 팝스타들이 ‘립서비스’로 내놓는 어설픈 한국말 인사나 ‘만나서 정말 반갑다’는 식의 치레는 없었다. 다짜고짜 첫 곡 ‘키 투 더 하이웨이’(Key To The Highway)를 뽑아내더니 ‘생큐~ 굿 이브닝’이라고 한 게 그의 가장 긴 멘트였다. 무대 위에는 푸른색 체크무늬 셔츠에 청바지, 트레이드 마크인 뿔테안경을 쓴 그를 중심으로 두명의 건반 주자와 드러머. 베이스기타, 두명의 여성코러스가 전부였다. 주최 측이 대형화면으로 내보내는 장면 역시 ‘기타의 신’의 손놀림을 클로즈업할 뿐 화려한 무대장치나 오케스트라 협연 등 ‘액세서리’는 없었다. 단지 노련한 세션맨의 도움을 받은 클랩턴과 그의 음악이 전부였다. 이것만으로도 울림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1997년과 2007년에 이어 4년 만에 한국을 찾은 ‘살아있는 거장’의 무심한 듯한 목소리와 울부짖는 기타에 1만여명의 팬들은 넋을 잃었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목을 축일 때와 기타를 바꿔 메는 시간을 제외하면 120분 동안 숨도 돌리지 않았다. 그룹 ‘야드버즈’와 ‘크림’의 멤버로 두번, 솔로 아티스트로 한번 등 남들은 한 차례도 이름을 올리기가 어렵다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세번 헌액된 그답게 완벽한 무대를 연출했다. 조금씩 들떠가던 체조경기장에 불을 지핀 것은 5번째 곡으로 ‘아이 샷 더 셰리프’( I Shot the Sheriff)를 부르면서다. 후반부에 이르러 ‘레일라’(Layla)와 ‘원더풀 투나잇’(Wonderful Tonight), ‘비포 유 어큐스 미’(Before You Accuse Me) 등 히트곡을 쏟아내자 공연장은 터져나갈듯 달아올랐다. 다섯살짜리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만든 ‘티어스 인 헤븐’(Tears in Heaven)은 이날도 부르지 않았다. ●“서울공연에도 김정철 오나” 전화 한편 싱가포르 공연(14일)에 김정철 일행을 취재하려는 일본 취재진이 몰려 분위기가 흐려진 탓에 클랩턴의 매니저가 15일 주최 측인 나인엔터테인먼트에 “혹시 김정철이 한국에도 오는 것 아니냐.”고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클랩턴은 내한한 뒤로는 이에 대해 더는 언급하지 않았고, 이날 공연도 관중들의 기립 박수 속에 무사히 끝났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건강노트] 영조대왕의 장수법

    우리나라 역대 제왕 중에 가장 오래 산 왕은 고구려의 중흥을 이끈 장수왕이랍니다. 광개토대왕의 아들로, 97세까지 살았다니 지금 나이로 치면 족히 120세는 된답니다. 그러나 장수왕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기록이 없으니까요. 그 다음으로 장수한 왕은 조선의 명군 영조입니다. 83세까지 살았으니, 요새로 치면 100세는 족합니다. 조선 왕 중에서 회갑을 맞은 이가 고작 6명이라니 대단한 장수인 셈이지요. 영조가 어떻게 장수했는지를 살필 근거는 많지만 그 중에서도 눈길을 끄는 게 있더군요. 바로 거친 음식과 미행(微行)입니다. 영조는 평소에도 기름진 음식과 흰 쌀밥 대신 잡곡밥과 거친 소찬을 즐겼습니다. 굶주리는 백성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고 싶어 그랬다는 겁니다. 거기에다 철저한 소식주의자였으니 임금답지 않은 ‘겸손한 섭생’이 그를 오래 살도록 이끈 셈이지요. 또 다른 점은 잦은 미행입니다. 미행이란 여항에 나가 직접 백성들의 삶을 살피는 암행시찰 같은 것이지요. 재위 중 그런 미행을 500회나 했다니 그 왕성한 활동력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요새처럼 요란하게 행차해 신문에 나고 방송에 날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처럼 빈번하게 미행에 나섰으니 여간한 체력 아니고는 감당 못 할 일이거니와 그런 미행으로 체력을 기른 측면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보면 주지육림 호의호식하고 굼벵이처럼 거동 싫어하는 게 잘 사는 법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장삼이사야 몸 편한 가운데 고기반찬에 이밥 챙겨먹는 게 소원이지만 그게 정답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지금 당신의 일, 당신의 먹을거리가 바로 왕의 그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잠시나마 위안이 되지 않을까요.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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